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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영표 “10년 같던 1년…나경원과 한건도 처리 못해”

    홍영표 “10년 같던 1년…나경원과 한건도 처리 못해”

    1년, 시작도 끝도 한국당 국회 복귀 촉구 “5·18 진상규명위 출범 못해 안타까움 커 후임 원대 충분한 협의로 개혁완성 확신” 오늘 경선 이인영·노웅래·김태년 3파전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지난 5달 동안 ‘특검·국정조사·패스트트랙 하지 마라’ 이것 말고는 여야 간에 대화가 없었다. 참 그게 아쉽다”고 말했다. 8일 1년간의 원내대표 임기를 마치는 그는 이날 국회에서 고별 기자간담회를 갖고 “앞으로 여야 간 충분한 협의를 통해 국민을 위한 정치개혁과 사법개혁을 완성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원내대표실에서 보낸 1년이 10년쯤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밝힌 그는 지난 1년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한 70점”이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것을 성과라고 내세우면서도 비리 유치원 문제 해결을 위한 유치원 3법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운 일로 꼽았다. 그는 “지난해 같으면 여야가 정치적으로 입장이 달라서 싸우는 건 싸우더라도 그런 건(민생법안) 처리해 왔는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는 단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홍 원내대표가 8일 임기를 마치면서 이날 새롭게 선출되는 원내대표가 어떤 협상력을 발휘할지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는 3선의 이인영·노웅래·김태년(기호 순) 의원의 3파전으로 치러진다. 지난해 홍 원내대표는 선출되자마자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중이었던 김성태 전 한국당 원내대표부터 찾아 설득했다. 새 원내대표의 가장 시급한 일도 장외투쟁 중인 한국당을 국회로 복귀시키는 일이다. 4월 임시국회는 이날 결국 빈손으로 끝났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5월 국회를 소집해 민생입법 처리와 함께 추경 심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 나 원내대표는 외교·안보 원내대책회의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셈법에 군과 정보당국이 휘둘리고 있다”며 “민주당에 패스트트랙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홍영표 “내 점수는 70점…유치원 3법 처리 못해 아쉽다”

    홍영표 “내 점수는 70점…유치원 3법 처리 못해 아쉽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국회에서 고별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말 원내대표실에서 보낸 1년이 10년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노력했지만 돌이켜보니 아쉬움이 더 많다”고 자평했다. 8일 임기를 마치는 그는 ‘지난 1년을 자평한다면 몇 점을 주겠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한 70점”이라고 답했다. 홍 원내대표는 “제 임기 동안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본회의에서 표결해야 하는 인사청문회 8건을 했는데 모두 통과시켜서 그것에는 A학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각자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을 조금씩만 내려놓으면 협치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게 저의 소신”이라며 “국익과 국민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고 야당을 더 열심히 설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홍 원내대표는 또 “지난해 5월 원내대표 당선 수락 연설이 끝나자마자 단식 농성 중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은 것도 싸우는 국회가 아닌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며 “그렇게 42일 만에 어렵게 다시 국회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서는 야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면서 국회 정상화를 이뤄냈다”며 “지난해 7월 여야 5당 원내대표의 방미 외교도 소중한 성과다. 협치의 제도화를 위해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처음 가동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평가했다. 홍 원내대표는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나면 ‘국정조사하자’, ‘특검하자’, ‘패스트트랙 하지 마라’ 딱 세 가지만 요구했다”며 “제가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지난 5개월 동안 그것 말고는 여야 간에 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청와대에서도 여야 영수회담이라든지 여야정 협의체를 빨리 하고 싶어한다”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열리고 논의가 시작되면 국회 정상화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홍 원내대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신법, 금융산업 혁신을 위한 인터넷 전문은행법,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아동수당법,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는 ‘김용균법’, 미세먼지법 등을 임기 중 처리된 주요 법안으로 꼽았다. 이밖에 사회적 대타협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를 현실화한 것과 여야 4당 공조를 통해 선거법·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이뤄낸 것도 핵심 성과로 거론했다. 홍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대치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를 다수 고발한 데 대해 “법대로 처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치적인 거래나 협상으로 이 문제가 유야무야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다만 “유치원 3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5·18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지 못한 것은 정말 부끄럽고 아쉽다”며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고자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당원과 지지자들이 자신의 ‘드루킹 특검’ 수용을 비판하는 데 대해 “저는 특검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면 오히려 해결될 것이라 예상했다. 비판을 달게 받겠다”며 “(수사와 재판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사법의 정치화’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출범 2주년을 맞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선 “제가 대통령을 뵐 때마다 안쓰러울 정도로 밤잠을 못 이루고 경제와 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성과가 하루 아침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며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다음 원내대표단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응원하고 함께 하겠다”며 “이제 민주당 의원으로서 일에 매진하고, 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39돌 맞는 5·18… 세계 인권·평화 디딤돌 놓는다

    포럼 참석 15개국 인권운동가 등 3000명 5·18 진상규명 논의… 난민 문제 등 다뤄 ‘원주민 보호’ 조안나 카리뇨 광주인권상 특별상엔 인도네시아 디알리타 합창단 5·18 민주화운동 제39돌 기념일인 오는 18~20일 ‘2019 광주인권상 시상식’과 ‘광주아시아포럼’이 동시에 열린다. 5·18기념재단은 이 기간 ‘학살 난민-국가폭력과 국가의 보호책임’이란 주제의 포럼을 통해 5·18 진상 규명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난민 문제 등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를 되짚어 본다고 5일 밝혔다. 광주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세계적 인권 운동가 등 15개국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개 세션으로 나눠 진행된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5·18 학살책임과 진상 규명’ 문제가 논의된다. 주제별로는 ▲5·18 진상 규명과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미완의 과거청산-성과와 쟁점 ▲로힝야 문제의 현황 및 국내적·지역적·국제적 문제해결 방안 등이다. 두 번째는 ‘국가의 책임-난민을 위한 법제도, 인식과 관행-차별과 혐오를 넘어’라는 주제로 국가폭력의 또 다른 양상인 난민 문제를 다룬다. 국가폭력과 분쟁으로 빚어진 시리아·로힝야 등과 같은 대량 난민사태 등이다. 유엔 등 국제적 차원에서 국가 간 협력, 의무 분담 등 난민보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지만 각 국가 내 논의는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되짚어 본 뒤 차별과 혐오를 넘어 공존으로 나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세 번째는 ‘미완의 과거청산-성과와 쟁점’이다. 과거 이뤄진 국가주도 과거사 청산 작업들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어떤 한계를 가졌는가를 살펴보고 전망을 논의한다. 홀로코스트,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와 같은 국내외의 국가범죄와 과거사 청산 사례에 대한 미래지향적 해결점을 제시한다. 포럼에 앞서 18일 오후 2시 ‘2019 광주 인권상’ 시상식도 열린다. 광주인권상 본상 수상자로 결정된 조안나 카리뇨(67·필리핀)는 필리핀 코딜레라 민중연합을 설립하는 등 30여년 동안 원주민의 권익 증진과 인권 보호에 앞장서 왔다. 특별상 수상자 디알리타 합창단(인도네시아)은 1965년부터 1966년 인도네시아 반공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여성과 희생자 가족이 2011년 결성한 단체다.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함은 물론 다른 피해자를 지원하고 비극적인 과거사를 공개적인 장으로 이끌냈다. 광주인권상 특별상은 격년 단위로 시상한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망언과 왜곡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5·18의 가치를 널리 확산해 세계 인권과 평화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 이번 포럼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포토] ‘진심어린 위로’하는 추모객…이철규 열사 30주기

    [포토] ‘진심어린 위로’하는 추모객…이철규 열사 30주기

    6일 오전 광주 북구 5·18망월묘지(민족민주열사묘지)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중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고(故) 이철규 열사의 30주기 추모제가 열린 가운데 한 추모객이 이 열사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 5·18 39돌 기념일에 광주포럼과 인권상 시상식 동시 열린다.

    5·18민주화운동 제39돌 기념일인 오는 18일~20일 ‘2019광주인권싱 시상식’과 ‘광주아시아포럼’이 동시에 열린다. 5·18기념재단은 이 기간 ‘학살 난민-국가폭력과 국가의 보호책임’이란 주제의 포럼을 통해 5·18 진상규명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난민 문제 등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를 되짚어본다고 5일 밝혔다. 광주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세계적 인권 전문가 등 15개국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개 세션으로 나눠 진행된다. 첫번째 세션에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5·18 학살책임과 진상규명’ 문제가 논의된다. 주제별로는 ▲5·18진상규명과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미완의 과거청산- 성과와 쟁점 ▲로힝야 문제의 현황 및 국내적·지역적·국제적 문제해결 방안 등이다. 두 번째는 ‘국가의 책임-난민을 위한 법제도, 인식과 관행-차별과 혐오를 넘어’란 주제로 국가폭력의 또 다른 양상인 난민문제를 다룬다. 국가폭력과 분쟁으로 빚어진 시리아·로힝야 등과 같은 대량 난민사태 등이다. 유엔 등 국제적 차원에서 국가 간 협력, 의무 분담 등 난민보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지만 각 국가 내 논의는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되짚어본 뒤 차별과 혐오를 넘어 공존으로 나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세번째는 ‘미완의 과거청산-성과와 쟁� ?甄�. 과거 이뤄진 국가주도 과거사 청산 작업들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어떤 한계를 가졌는가를 살펴보고 향후 전망을 논의한다. 홀로코스트,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와 같은 국내외의 국가범죄와 과거사 청산 사례에 대한 미래지향적 해결점을 제시한다. 포럼에 앞서 18일 ‘2019 광주 인권상’ 시상식도 열린다. 광주인권상 본상 수상자로 결정된 조안나 까리뇨(필리핀)는 필리핀 코딜레라 민중연합의 설립자이자 대표적 인권동가로 알려졌다.그는 마르코스 정부의 독재에 대한 투쟁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필리핀 바기오 대학 교수라는 신분을 버리고 현장에서 투쟁하는 활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1984년 ‘자결권과 조상의 땅 수호를 위한 코딜레라 민중연합(CPA)’을 공동 설립하고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필리핀 원주민의 권익 증진과 인권보호에 앞장섰다. 2016년‘SANDUGO(자결권을 위한 원주민 및 모로족 국민연대)’ 출범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현재 이 단체의 공동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특별상 수상자 디알리타 합창단(인도네시아)은 1965년부터 1966년 인도네시아 반공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여성과 희생자 가족이 2011년 결성한 단체이다.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다른 피해자를 지원하고 비극적인 과거사를 공개적인 장으로 이끌냈다. 광주인권상 특별상은 격년단위로 시상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망언과 왜곡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5·18의 가치를 널리 확산해 세계 인권과 평화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 이번 포럼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청와대 폭파’ 김무성 내란죄 처벌” 국민청원 10만 돌파

    ‘“청와대 폭파’ 김무성 내란죄 처벌” 국민청원 10만 돌파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일 4대강 보 해체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청와대를 폭파시키자”고 말해 정치권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비판이 거세졌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 의원을 ‘내란죄’로 처벌하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김 의원은 2일 4대강 보 해체에 반대하는 단체인 ‘4대강 국민연합’이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한 ‘대정부 투쟁 제1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다. 4대강 국민연합은 이재오 한국당 상임고문과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행사에는 홍준표 한국당 전 대표를 비롯해 김무성 의원과 당내 ‘4대강 보 해체 반대특위’ 위원장인 정진석 의원 등이 참석했다. 행사 도중 무대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김 의원은 “3년 만에 이 공사(4대강)를 완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어 “4대강 보 해체를 위한 다이너마이트를 빼앗아서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시켜 버립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지난 4일 비난 논평을 쏟아냈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6선 의원의 발언이 천박하기 그지없다”며 “대꾸할 가치도 없고, 안타깝다는 말도 정말 아깝다”고 밝혔다. 강 원내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사람이 박 전 대통령 석방에 앞장서질 않나, 이젠 다이너마이트 발언까지 하면서 몰상식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며 “지금까지 자신의 정치 인생을 스스로 하루아침에 날려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정치인의 정제되지 못한 과한 말이 국민들의 가슴을 ‘폭파시키고’ 있다”며 “격한 대립의 정치가 ‘막말 전성시대’를 낳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논평했다. 홍성문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5·18 망언 3인방에 이은 ‘내란선동’ 김무성까지 아무 말 대잔치에 국민들은 ‘한국당 막말 어벤저스’라고 탄식한다”며 김 의원의 사과 및 정계 은퇴 선언을 촉구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도 구두 논평을 통해 “다선의 김 의원도 망언과 폭언 대열에 합류해 ‘막말 경연대회’ 출전을 사실상 선언한 것 같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막말이 한국당 충성도의 지표가 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국당은 공식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했다.한편 5일 오전 10시 20분 기준으로 ‘김 의원을 내란죄로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2건의 동의자는 각각 10만 6000명과 7만명을 넘어섰다. ‘김무성 의원을 내란죄로 다스려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인은 “현직 국가 수장의 집무·주거 공간을 폭파하겠다는 발언이 내란이 아니라면 어떤 행위가 내란이 될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자한당 김무성 의원 내란선동죄로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린 청원인은 “도를 너무 지나친 것 같다. 한 나라의 대통령인데 ‘폭파하겠다’는 말을 하느냐”며 “지금 당장 김 의원을 내란선동죄로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물세례 맞고 20분간 갇히고 ‘굴욕’ 황교안…광주시민 “한국당 해체하라”

    물세례 맞고 20분간 갇히고 ‘굴욕’ 황교안…광주시민 “한국당 해체하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여야 4당의 선거제·개혁입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해 부당성을 알리고자 찾았던 광주에서 물세례를 맞고 20분간 오도가도 못하게 갇히는 등 굴욕을 당했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독단으로 국정과 국회를 운영하는 ‘독재국가’를 만들고자 한다”며 거듭 투쟁의 당위성을 밝혔지만 “말 그만해. 한국당은 해체하라”는 광주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의 항의집회에 목소리마저 묻히고 말았다. 황 대표는 3일 취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찾아 호남선 투쟁을 시작했다. 한국당은 전날 경부선(서울·대전·대구·부산)을 타고 내려가 호남선(광주·전주)으로 올라오는 일정으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라는 이름의 1박 2일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행사 시작 시각인 오전 10시 30분이 가까워져 오자 무대가 설치된 광주송정역 광장은 광주진보연대, 광주대학생진보연합 등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 100여명으로 가득 찼다. 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튼 채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 ‘황교안은 물러가라’, ‘학살정당 적폐정당 자유한국당 박살 내자’, ‘5·18 학살 전두환의 후예 자유한국당’, ‘황교안은 박근혜다’, ‘황교안은 광주를 당장 떠나라’, ‘세월호 7시간,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황교안을 처벌하라’ 등 문구를 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이로 인해 황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당초 규탄대회를 열기로 한 광장을 벗어나 인도에서 ‘문재인 STOP, 전남 시·도민이 심판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건 채 행사를 시작해야 했다. 황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자유한국당 당원 여러분, 말씀 들어주세요. 말씀 들으세요”라고 입을 뗐지만, 시민들의 “물러가라”는 고성과 항의에 묻혀 연설을 이어갈 수 없었다. 결국 황 대표는 조경태·신보라 최고위원의 연설 이후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선거제 개편으로 입법부까지 장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국회의원 300석 중 260석이 말이 되나. 그게 민주국가인가. 결국 이 정부는 독단으로 국정과 국회를 운영해 독재국가를 만들고자 한다”라면서 “15만명 경찰과 2만명 검찰이 있는데 도대체 공수처가 왜 필요한가. 국민을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정권에 필요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시민들의 항의와 고성 소리는 점점 커졌고, 황 대표는 연설을 마친 후 20여분간 시민들에 막혀 옴짝달싹 못했다. 한국당이 미리 준비했던 ‘문재인 정부 규탄’ 홍보물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황 대표를 둘러싼 시민들과 경찰 간 밀고 당기는 몸싸움도 터졌다.일부 시민들은 황 대표를 향해 500㎖짜리 생수병에 든 물을 뿌려 황 대표의 안경에 물이 묻기도 했다. 황 대표는 긴급히 우산을 편 채 근접 경호하는 경찰들에 둘러싸여 역사 안 역무실로 이동했다. 여기서도 황 대표는 편치 못했다. 역무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5·18 희생자 유가족인 오월 어머니 회원들을 피해 플랫폼으로 이동, 전주행 열차를 탔다. 황 대표는 광주송정역 플랫폼에서 기자들과 “우리나라는 한 나라인데, 지역 간 갈등이 있었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일민족이 나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광주시민들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훨씬 많으리라고 보며, 변화하는 새로운 미래의 세계로 나아가길 바란다”며 애써 미소지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포토] 취임후 첫 광주 방문…거센 항의로 피신하는 황교안 대표

    [포토] 취임후 첫 광주 방문…거센 항의로 피신하는 황교안 대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광역시 송정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마친 뒤, 5.18 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으며 역사로 올라가고 있다. 2019.5.3 연합뉴스
  •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대회,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송기인 이사장 등 참석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대회,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송기인 이사장 등 참석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범국민 추진위원회(이하 범국민추진위)는 2일 창원시청 시민홀에서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대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이날 대회는 지난해 10월 범국민추진위가 출범한 뒤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모은 60만명의 국민 서명을 공개하고 행정안전부에 국가기념일 지정을 공식적으로 건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촉구대회에는 오거돈 부산시장과 김경수 경남지사, 허성무 창원시장,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여영국 국회의원,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부마민주항쟁 주역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독재에 맞서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유신독재 종식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4대 민주화 운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독재에 항거한 부마민주항쟁 정신이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져 민주화 대장정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4대 민주화 운동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못했다. 범국민추진위는 항쟁 40주년을 앞두고 지난해 10월부터 국가기념일 지정 서명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59만 3858명이 동참했다. 범국민추진위에 따르면 부산, 경남을 중심으로 서울, 광주, 제주 등 전국 각지와 해외 동포까지 온라인으로 서명에 참여했다. 범국민추진위는 이날 촉구대회를 마치고 서명 용지를 박스에 담아 행정안전부에 전달한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부마민주항쟁 등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아이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며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은 그 첫걸음이 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문도 채택했다. 건의문을 낭독한 오거돈 부산시장은 “부마민주항쟁은 유신 독재 정권을 청산하고 자유, 민주, 정의를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부산·경남 주민의 자랑스러운 역사다”며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은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든든한 토대를 만드는 과정이다”고 강조했다.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은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뤄지고 정신과 가치가 제대로 정립될 때까지 전 국민의 관심과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에서 부산시·경남도·창원시·부산국제영화제·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부마민주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협약 참여 기관들은 부마민주항쟁 기념을 위한 각종 사업에 상호 협력하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부마민주항쟁 섹션’을 구성해 부마민주항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로 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전남대에 윤상원 열사·김남주 시인 기념홀 개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하다 숨진 윤상원(1950∼1980) 열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모교인 전남대에서 문을 열었다. 전남대는 2일 오전 사회과학대학 본관 1층에서 ‘윤상원 열사 기념홀’ 개관식을 했다. 기념홀은 ‘윤상원의 방’과 ‘윤상원 길’로 구성됐다. 방 안에는 들불야학 활동상, 그의 어록, 박기순 열사와의 영혼결혼식에 쓰였던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 윤상원 열사의 출생부터 산화하기까지 기록을 연보 형태로 사진과 함께 게시했다. 윤상원의 길은 평탄치 않은 삶의 여정을 물결무늬 빛으로 형상화했다. 연설문과 일기 일부를 5·18 사진 속에 담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손길과 발자취를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했다. 김경학 전남대 사회과학대학장은 “일기 등을 살펴보면 윤상원 열사는 흥도 많고 놀기도 좋아하는 청년이었다”며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했던 청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일 오후에는 전남대 인문대학 1호관에서 김남주(1946∼1994) 시인 기념홀이 문을 연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문대학 1호관 강의실을 복층형 기념공간으로 조성했다. 대표 시 ‘자유’ ‘조국은 하나다’ 5·18 관련 시 ‘학살’ 등과 서정시를 벽에 새겨 넣고 시집, 산문집, 번역집 등 25권 저서를 전시한다. 특히 김남주 시인이 감옥에서 화장지에 쓴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등 육필원고와 편지글도 원본으로 전시된다. 시인의 육성 시,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 안치환의 노래, 영상·인터뷰 자료 등도 설치돼 교육적 기능도 함께 하도록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광주 학생들, 올해도 5·18역사 기행 떠난다

    광주 학생들이 올해에도 5·18 주요 사적지를 탐방하는 ‘오월길 역사기행’을 떠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는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초·중·고생 2400여명이 참여하는 ‘오월길 역사기행’을 오는 29일부터 5월15일까지 진행한다고 27일 밝혔다. 올해 ‘오월길 역사기행’은 29일 오전 진남중을 시작으로 5월15일 백운초, 광주여고, 일곡초까지 12일 동안 진행된다. 학생들은 이 기간 옛 전남도청, 옛 전남도청 내 민주인권평화기념관,국립 5·18민주묘지,민족민주열사묘역(5·18 옛묘역) 등을 둘러보고 5·18의 의미를 현장에서 배운다. 학생들은 이들 유적지를 돌며 각 장소별로 움직이는 액자, 1980년 오월에서 온 전화 한 통, 5·18 진실을 담은 기사 등 다양한 다양한 체험활동에 참여한다. ‘움직이는 액자’에서 학생들은 시민군이나 계엄군을 표현하기도 하고 헌혈을 하고 주먹밥 만들거나 택시기사와 버스기사가 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오월 전화 한 통’은 드라마 ‘시그널’ 처럼 1980년 5월27일 윤상원 열사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당시 상황을 전해 듣는 프로그램이다. 윤 열사는 마지막에 “지금 광주는 어떤가요?”라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전교조 광주지부 관계자는 “5·18 교육의 전국화 과제에 맞춰 오월길 역사기행 대상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1980년 옛 전남도청 계엄군 사살명령 담긴 상황일지 공개

    5·18 당시 첫 집단 발포가 이뤄진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에서 시민 사살을 명령을 하고, 실제 사살 시범을 보였다는 내용의 군 상황일지가 공개됐다. 이는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가 이뤄졌다’는 신군부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김희송 연구교수가 26일 공개한 11공수특전여단 상황일지에는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사격 과정이 기록돼 있다. 일지를 보면 ‘오후 1시: 폭도(시민) 1명이 버스를 몰고 도청 앞 분수대를 돌아나가려는 의도를 알고 00(판독 불가)을 지시 그 자리에서 사살, 폭도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후 폭도들은 감히 도청을 향해 돌진해오지 못했다. 500m 이격된 가운데 APC(장갑차)를 이용, 강습돌파작전을 감행할 의도임을 인지하고 폭도 APC가 움직일 때마다 계엄군 APC의 CAL50(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실시했음’이라고 기록했다. ’35대대가 동시에 공포를 사격, 주춤한 폭도들 앞에서 61·62·63대대는 즉각 전열 재정비, 기관총 사격토록 지시했다’는 기록도 나왔다. 그러나 군이 ‘5공 청문회’ 등을 앞두고 1985년과 1988년 새로 작성한 11공수 상황일지엔 계엄군 사격 내용이 모두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새롭게 확인된 11공수 상황일지는 계엄군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집단 발포는 물론 위협 사격과 확인 사살까지 자행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는 특정 시기 군 기록이 체계적으로 은폐·조작된 정황으로 확인된 만큼 철저한 진상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문화마당] 대만 2·28과 한국의 4·3, 4·16, 5·18/박조원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문화마당] 대만 2·28과 한국의 4·3, 4·16, 5·18/박조원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얼마 전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2ㆍ28평화기념공원에 다녀왔다. 2ㆍ28평화기념공원은 타이베이 한복판에 있는데도 그 많은 여행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이 공원은 대만 현대사의 가장 큰 상처인 2ㆍ28대학살, ‘2ㆍ28참안(慘案)’이라고도 불리는 2ㆍ28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우리의 4ㆍ3, 4ㆍ16, 5ㆍ18을 떠올리면서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2ㆍ28사건은 비통한 대만 현대사의 상징이다. 대만은 청의 청일전쟁 패전으로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일본에 할양된다. 일본의 대만 식민 지배는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종식되며, 1945년 대만은 당시 중화민국으로 반환된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대만 통치를 위해 본토에서 파견된 무능하고 부패한 국민당 세력의 수탈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던 1947년 2월 27일 40세 과부 린장마이(林江邁)가 무허가 담배를 판매한다는 이유로 전매청 직원이 담배를 압수하고 권총으로 머리를 가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이에 항의하던 군중을 향해 발포하고 사망자가 생긴다. 이튿날부터는 시위가 격화되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다. 본성인 중심 시민사회단체의 중재로 시위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기도 했으나 장제스(蔣介石)는 국공내전의 와중에도 1만명이 넘는 병력을 전선에서 빼내 대만으로 보내며 대대적인 유혈 진압을 벌인다. 이로 인해 학살된 인원은 최대 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대만의 2ㆍ28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4ㆍ3이나 5ㆍ18과 판박이처럼 닮아 보인다. 4ㆍ3이나 5ㆍ18이 그랬듯이 2ㆍ28은 대만에서 계엄령이 해제된 1987년까지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수년간 언급 자체가 금기였으며, 정부의 강력한 사전 검열 대상이었다. 2ㆍ28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교과서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잊혀져야 할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4ㆍ3이나 5ㆍ18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나 2ㆍ28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만 민주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공론화되기 시작하며 끝내는 진상 규명과 가해자인 국민당의 사죄까지 이끌어 낸다. 1992년 대만 행정원이 사건보고서를 발간해 정부 차원에서 진상 규명이 이루어졌다. 1995년에는 국민당 출신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정부를 대신해 사죄하는 한편 2월 28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이 점에서 2ㆍ28은 우리의 4ㆍ3이나 5ㆍ18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2ㆍ28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가해 세력인 국민당이 진상을 밝히고 사죄한 반면 4ㆍ3과 5ㆍ18은 가해 세력 혹은 그 세력의 뒤를 잇는다는 이른바 보수 진영이 아직도 제대로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군과 경찰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4ㆍ3에 대해 국방부가 공식 사과를 한다고 발표했는데, 사과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 사죄라고 해야 한다. 경찰청은 반성적으로 성찰한다고 했는데, 이 무슨 해괴한 말장난인가. 국가가 국민 생명 보호의 의무를 방기해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된 세월호 참사는 지난주에 5주년을 맞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눈 5ㆍ18광주민주항쟁은 3주 정도 후면 39주년을 맞이한다. 치유될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도록 진상이 규명되고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죄가 있을 때 봄이 우리에게 한발 더 다가올 것이다.
  • “틀림없이 북한군”…제1광수라 지목된 인물 추적극 ‘김군’, 5월 개봉 확정

    “틀림없이 북한군”…제1광수라 지목된 인물 추적극 ‘김군’, 5월 개봉 확정

    5·18 시민군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이 5월 개봉을 확정하고 티저 포스터와 예고편을 공개했다. ‘김군’은 군사평론가인 지만원씨로부터 ‘제1광수’라고 지목된 인물을 사진 한 장으로 추적하는 과정을 담은 ‘공개수배 추적극’이다. 영화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 규명을 위해 사진 속 인물을 추적하는 동시에 모두가 ‘김군’이었을 당시 이름 없는 광주 시민군을 그렸다. 영화의 출발점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사진이다. 티저 포스터는 이 기자가 촬영한 또 다른 컷을 활용해 디자인되었고, 티저 예고편은 영화의 시작이 된 바로 그 역사적인 사진 한 장에 초점을 맞췄다.티저 포스터는 손을 흔드는 시민군과 그 뒤로 보이는 가스차(페퍼포그) 위의 인물을 빨간 방점과 직선으로 이어 화살표로 지목한다. 당시 사진 속 사람들에게 빨간 번호를 매기며 북한특수군으로 지목한 지만원씨 방식을 역이용해 ‘시민군’ 개개인을 재조명 하겠다는 선언이다. 함께 공개된 티저 예고편은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5·18 진실 공방’을 둘러싸고 엉켜버린 증언의 실타래를 집요하게 풀어가는 과정이 담겼다. “혹시 사진 속에 보이는 인물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사람은 군인 같아 보이진 않는데요”, “눈초리가 아주 엄청 매섭고…”, “학생이 낼 수 있는 포즈도 아니고” 등 흑백 사진 속 인물에 대해 정반대의 단서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는 “35년 동안 내가 저 사람이라고 나온 사람 하나 없어!”라며 날카롭게 포석을 던지고, “이거는 틀림없이 북한군”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사진 속 익명의 인물 ‘김군’을 향한 밀도 있는 공개수배 추적을 그린 영화 ‘김군’은 오는 5월 개봉 예정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고통 없는 곳서 영면하길… 김홍일 前의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고통 없는 곳서 영면하길… 김홍일 前의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보훈처 5·18민주묘지 이장 여부 심의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유해가 23일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 구 묘역)에 안장됐다. 이날 비가 내린 궂은 날씨에 치러진 안장식은 김 전 의원의 유가족과 5·18단체, 여야 정치인, 광주시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안장식은 이날 오후 3시쯤부터 추도 예배, 참배 등의 순으로 1시간 남짓 진행됐다. 김 전 의원이 안장된 5·18 구 묘역은 그의 아버지인 김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김 전 대통령이 1987년 9월 8일, 군사정권 방해 탓으로 어언 16년 만에 광주를 방문해 5·18 당시 희생된 영령을 찾아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은 신군부에 의해 5·18 주동자로 내몰렸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고초 끝에 미국 망명을 마치고 1985년 2월 귀국한 지 2년 7개월 만이었다. 김 전 의원은 아버지와 정치적 부침을 함께 겪으면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해 왔으며, 오랜 기간 고문 후유증을 앓아 오다 지난 20일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 전 의원이 이날 묻힌 민족민주열사묘역에는 5·18 당시 141기의 희생자가 가매장됐다가 인근에 조성된 국립5·18민주묘지로 옮겨졌다. 이들이 묻혔던 묘지는 이장 이후에도 가묘 상태로 광주시가 관리 중이다. 이후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농민 백남기씨 등 49명의 유해가 이곳에 묻혔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김 전 의원이 ‘5·18 유공자’이지만 알선 수재 혐의로 실형을 받은 만큼 조만간 심의위원회를 열고 국립 5·18민주묘지 이장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심재철 “21살 청년의 자필진술서 민주인사 77명을 겨눈 칼이 되었다”

    심재철 “21살 청년의 자필진술서 민주인사 77명을 겨눈 칼이 되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TV에 출연해 1980년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1980년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심 의원에 대한 재심에서 수원지법 안양지원 제1형사부(부장 김소영)는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심 의원은 징역형을 선고받은지 39년만이다. 심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있던 지난 1980년 4월 학내 시위를 벌이다 숨진 고 김상진 열사 추도식을 거행하면서 비상계엄 해제, 유신잔당 퇴진 등 구호를 외친 혐의 등으로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심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에서 유 이사장이 지난 20일 KBS 2TV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1980년 당시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글과 함께 판결문 증거요지를 참조로 덧붙였다. 심 의원은 “1980년 (유 이사장이)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에 이르는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중 3명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며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판결문에서 증거의 요지로 판시됐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자신의 재판에 핵심 증거물로 제출돼 유죄 선고 증거로 채택됐다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이러한 진술서에 대해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진술서 용지에 하루에 100장을 쓴 적이 있다…(중략)…안 맞으려고.어떻게든 늘여야 하잖아,분량을’이라고 하는 등 우스개마냥 이야기했다”며 “예능 화법으로 역사적 진실이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에 대한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며 “자신의 왜곡 발언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심재철 의원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 4월 20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KBS-2TV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1980년 서울의 봄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왜곡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TV에서 “누구를 붙잡는데 필요한 정보 이런 것은 노출 안시키고 우리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루어진걸로” 진술했다고 합리화 했지만 1980년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에 이르는 그의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 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되었고, 그 중 3명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되었다. 유시민은 군검찰에 임의진술 형식으로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한 뒤 불기소로 풀려났지만 검찰관이 작성한 그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공소유지를 위한 검찰의 핵심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되었고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서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다. 본 의원이 체포되기 3주 전인 1980년 6월 11일과 12일자로 최종 정리된 유시민의 합수부 제출 자필 진술서(001168-001257쪽)에는 77명의 이름이 구체적인 행동과 함께 적시되었다. 곧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지역 학생회장단 22명, 총장 등 서울대 보직교수 6명, 서울대 학생운동권 40명의 행적, 민청협(신군부가 김대중 산하단체로 기소함) 회장 이해찬 등 복학생 8명, 해직언론인 1명의 이름이 혐의내용과 함께 상세하게 기술되었고 결국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칼로 겨눠지게 되었다. 유시민의 진술서는 1980년 2월부터 5월까지 서울대 핵심 운동권의 동향, ‘김대중과 관계한다는 이해찬’을 중심으로 한 복학생들의 시위 교사 정황, 서울시 22개 학생회장단, 사북탄광 실태조사, 외부 해직기자들과의 연대까지 일지처럼 상세하게 9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자백 진술서에 77명의 이름과 행적을 적시함으로써 계엄당국은 사태 처음부터 서울대 등 당시 학원 상황과 학원관련 외부 움직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카드를 쥐게 되었다. 이처럼 상세한 진술서에 대해 유시민은 방송에서 “진술서 용지에 하루에 100장 쓴 적이 있어요. 편지지처럼 줄 쭉쭉 그어져있는 진술서 있죠. 거기에 볼펜으로 100장을 쓴 적이 있어요. 안 맞을려고. 어떻게든 늘여야 되잖아 분량을”이라고 등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우스개마냥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치게 상세한 진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가급적 숨기려했던 다른 관련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되었다. 수사당국이 이미 알고 있는데도 이를 알 리 없는 피체(被逮)자들은 하나라도 숨기려 했다가 곧바로 폭력의 세례 앞에 발가벗겨져야 했다. 실제 그의 진술서에는 ‘4월 11일 시국성토대회를 한다고 마이크를 접수하려던 복학생이 민청협회장이자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001180쪽), 복학생들이 5월 2일부터는 교내시위를 벌이면서 비상계엄문제를 이슈화하라고 지시했고(001196쪽), 사북사태보고서는 복학생 황광우가 조사반으로 현지에 다녀왔으며(001249쪽)’ 등을 비롯해,‘5월 14일 심재철이 광화문으로 가두시위 할 것을 결정 발표하고 저는(유시민은) 목이 쉬어 학생들 지휘할 생각을 포기하고 학생들 틈에 섞여 있었으며(001230쪽), ’5월 15일 12시 심재철의 지시에 따라 5천명이 모인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저는 사회를 보았는데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여 서로 양보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저는 중립을 지켰고(001232쪽)’등의 내용이 상술되었다. 검찰과 경찰에겐 상세 지도나 다름없는 유시민의 진술서는 본 의원을 기소할 때도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물로 재판부에 제출되었고(검찰 증거목록 정수 1582~1583), 유시민이 ‘심재철에 대한 내란음모 등 피의사건에 관하여 임의로 진술하겠다’고 작성한 8월 12일자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본 의원의 유죄선고 증거로 채택되었고(정수 1354~1364), 검찰의 공소사실이 전부 유죄로 인정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도 유시민의 진술은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다.(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쪽) 1980년 서울역 시위대 해산 과정도 유시민의 행동이 미화되는 소재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예능 화법으로 역사적 진실이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에 대한 폄훼이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 시위에 대해서도 유시민은 자신이 진술서에서 언급한 사실과 다르게 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행적을 대중의 입맛에 맞게 왜곡 미화했다. 유시민은 TV에서 “버스위에 올라가서 해산하면 안된다고 얘기를 하래요. 그래서 내가 올라가서 그 얘기를 했어요”라며 자신이 해산이 아닌 진군을 주장한 것처럼 했다는데 이것은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실제 유시민은 진술서에서 5월 15일 서울역으로 진출하기 직전인 낮 12시 교내시위 때 ‘강경론(교외진출 주장)과 온건론(당분간 교내투쟁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자신은 ‘중립을 지켰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후 학생회장단의 서울역 해산 결정이 내려지자 자신은 안도했다고도 말한 바 있다. 그랬던 유시민이 학생들에게 ‘해산불가’를 선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서울역 광장에 마이크 시설이라고는 이수성 서울대 학생처장의 주선으로 확보한 마이크로버스 한 대에 달린 소형 확성기 뿐으로 당시 마이크를 쥔 사람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본 의원뿐이었다. 그 마이크로 버스 안에서 서울지역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모여 해산과 진군 여부를 결정했던 것이다. 유시민 역시 진술서에 “심재철은 다음 단계의 행동은 오늘(5월 15일) 저녁 22:00시 고대에서 총학생회장단 회의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발표할 때 발판으로 이용된 것은 서울대학교의 마이크로버스였으며 이 마이크로버스에 방송기재를 싣고 갔습니다.”(001235쪽)라고 썼다. 역사는 예능이 아니다. 1980년 서울의 봄에서 39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역사적 진실은 은폐되지 않는다. 본 의원은 1997년 5.18광주민주화유공자보상위원회 결정으로 유공자 무상의료보험증이 발급되었지만 곧바로 반납했고 보훈처에 유공자 등록도 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화투쟁은 학생의 당연한 행동이었기에 국가에 공을 세웠다고 대우해달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 의원은 유시민이 이해찬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있던 1988년의 국회5·18민주화운동청문회 때는 80년 유시민 진술서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1995년 전두환내란음모사건 고발인 진술서를 작성할 때 비로소 80년 유시민 진술서의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2016년 총선 때는 유시민이 본 의원의 지역구에까지 와서 정의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본 의원을 허위사실로 비방하고 유투브로 낙선운동을 했을 때도 침묵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마저 거짓을 역사적 사실로 왜곡하는 모습을 보고 진실을 공개하기로 했다. 유시민 위원장이 TV연예프로그램을 통해 80년 상황을 왜곡하고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시키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역사는 후세에 전하는 현 시대의 기록이다. 개인적인 유불리 잣대로 진실을 거짓으로 왜곡하고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는 것은 역사 앞에 누를 범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입장이 각광을 받는다고 당시 있었던 사실 자체가 달라질 수는 없다. 21살 재기 넘치는 청년의 90쪽 자필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고 이 중 3명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24인 피의자가 된 진실을 감추고 자신의 문재(文才)를 확인하는 집필 계기가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유시민씨는 자신의 왜곡발언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39년 전 자신의 자백 진술서가 검찰이 본 의원을 기소한 핵심 증거였고 자신의 검찰관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로 운동권 선후배들이 고통당하게 된 신군부의 촘촘한 포획망이 되었음을 유시민 이사장은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2019. 4. 22. 국회의원 심 재 철   <참조>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판시된 유시민   공소사실이 100% 유죄로 인용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1,2심 판결문의 증거의 요지로 유시민의 이름이 판시되었다.  증거의 요지 (중략) 검찰관 작성의 한**, 김**, 홍**, 함**, 강**, 김**, 채**, 조**, 조**, 박**, 최**, 금**, 이**, 유시민, 박**, 이**, 조**, 이**에 대한 각 진술조서 중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 기재부분.(중략) 등을 종합하면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 김대중, 문**, 이**, 조**, 설*, 서** 및 김**에 대한 판시 각 전과 외 점은 위 피고인들의 이 법정에서의 각 해당판시 전과에 부합하는 진술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들에 대한 이건 판시 사실은 증명이 충분하다. (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쪽)   2. 검찰참고인진술조서를 작성하고 불기소로 풀려난 유시민 유시민은 980년 8월 12일 심재철에 대한 내란음모 피의사건에 대해 검찰관 참고인자격으로 수도군단계엄보통군법회의검찰부에 임의로 진술한 참고인 진술조서 작성후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본 의원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의자 중 유일하게 김대중씨나 김대중씨 측근에게 금품을 수수했다는 법정 진술을 한 적이 없었으며 이는 공판조서에서도 확인된다. 본인이 수배 중 계엄사 합수부에서 발표한 중간수사결과에서 언급된 백만원 수수는 김대중씨 최측근의 허위자백(김xx씨 검찰 참고인 진술조서)(김xx씨 합수부 진술조서)임이 확인되어 공소사실에 빠졌지만, 유시민은 추가로 김대중씨가 본인에게 20만원을 교부했다는 검찰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불기소로 풀려났다. 유시민: 저는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19:00경 청원중국음식점에 가기위하여 먼저 출발하였기 때문에 잘 모르겠으나 나중에 들으니 김대중이 함석헌과 함께 참석하여 조위금 20만원을 심재철에 교부하고 조사를 하였으며 학생들이 이 ‘김대중만세’등의 구호를 외치며 상당히 과열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유시민 검찰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 1980.8.12)) 1980년 4월 11일 고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서 본인이 김대중씨에게 받은 조위금 20만원 자기앞 수표는 다음날 학생회 총무가 은행에 입금후 인출해 농대학생회를 통해 김상진열사 유족에게 전달되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본인과 김대중씨의 공판조서에도 명백히 명시되어 있다. 본인은 공판중 추도식에서 ‘김상진열사 어머니가 소개되었다’ ‘장례금으로 수령했다고’ 진술했고 김대중씨 역시 ‘유족이 있어서 20만원을 조의금으로’ 줬다고 법정 진술을 한다.(심재철 1심 6차 공판조서 001601-1602쪽)(김대중 1심 14차 공판조서 002364~002365쪽)   3. 서울역 시위 해산과 진군에 대한 유시민 진술의 허구성 유시민의 진술서에는 유시민은 진군을 주장하는 학생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본인이 중립이었고 교문밖 시위를 주장하는 강경파와 복학생들에게 휘말리지 않으려 노력한 온건파 중립이었다고 기술했다. 저는(유시민은) 학생들 지휘할 생각을 포기하고 학생들틈에 섞여있었고(001230쪽)21:30분이 다가오자 초조해졌고 학생들을 해산시킬일이 걱정되었던참에 경찰저지선에서 지휘하시는 분이 서울대 정문에 오시던분이어서 제가 손을 흔들며 달려가서 인사를 드리고 22:00까지 해산시킬테니까 페퍼포그를 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리자 응낙해주셨고 저는 정확히 22:05에 학생들을 해산시켰습니다.(001232쪽) 5월 15일 12시 심재철의 지시에 따라 5천명이 모인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저는 사회를 보았는데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여 서로 양보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저는 중립을 지켰습니다.(001232쪽) 학생처장 이수성교수는 저에게 ‘자꾸 강경파에게 밀리지 말고 소신껏 학생들의 피를 흘리지말고 활동하라’고 말하였습니다.(001238쪽) 5월 17일 복학생 김병곤이 저를 찾아와 가두시위를 말해 저는 제가 결정할 일도 아니고 심재철에게 이야기해 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001240쪽)   4. 5월 17일 수배중인 본 의원의 행선지를 합수부에 밝힌 유시민 5월 17일 18시 25분경 이대 쪽에서 익명의 학생이 총학생회장단 검거소식을 알리고 19시 10분경에 학생활동위원장이 전화해 자신은 이대에서 도망쳐왔는데 심재철의 검거소식은 알 수 없다고 말하고(001243쪽), 19:30분경 심재철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와 노량진에 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001244쪽)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심재철, ‘계엄법 위반’ 39년 만에 재심서 무죄 판결

    심재철, ‘계엄법 위반’ 39년 만에 재심서 무죄 판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계엄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형사1부는 1980년 9월 내란음모, 계엄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심 의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였던 심 의원은 1980년 4월 고 김상진 열사의 추도식에서 김 열사의 유고인 양심선언문을 낭독하고 ‘비상계엄 해제’, ‘유신잔당 퇴진’ 등 구호를 외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열사는 학생 시위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심 의원은 학생 5000여명이 모인 병영집체훈련 입소환송식에서 비상계엄령 해제 활동을 촉구하고 이 같은 내용의 유인물 2000여장을 나눠준 혐의도 받았다. 당시 육본 계엄보통군법회의는 계엄법 위반 등 혐의로 심 의원에게 징역 5년 형의 면제를 선고했다. 검찰은 심 심의원 행위가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반대한 행위로 보고 ‘5.18 민주화 운동 특별법’에 따라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5·18민주화운동과 군사반란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 범죄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박정희 부역자 노릇” 비판에 이종찬 “국가와 민족 배반 없다”

    “박정희 부역자 노릇” 비판에 이종찬 “국가와 민족 배반 없다”

    광복회 회장 출마 … 새달 8일 선출광주시민단체 “박정희·전두환 부역자”李씨 “근거없는 비방, 책임 물을 것”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82) 전 국정원장이 자신의 광복회장 출마 선언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광주 시민단체들를 향해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종찬 전 원장은 23일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시민단체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내세워 저를 비방하고 있다”며 “과거 공직에 있거나 정계에 참여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원장은 “광복회장 선거에 대해 막상 광복회 광주지부는 아무 말이 없는데 왜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간섭하는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시민단체들이 연서했다는데 왜 시민단체명만 있고 책임있는 분의 이름은 없냐”고 따져물었다. 이어 ‘전두환 부역 논란’과 관련해 그는 “시민단체들이 내세운 이유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대신 분명히 밝힌다”며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활동 등에 대해 해명했다.그는 “일찍이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 1997년 12월 정권교체의 목표를 달성했다”며 “그 과정에서 야당의 부총재로, 또 대통령선거대책본부장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그 결과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야당이 여당이 되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적을 이뤘다는 사실을 큰 보람으로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며 “그런 본인에게 광주의 시민단체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내세워 비방하는 것을 듣고 대단히 섭섭했다”고 토로했다. 이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최초의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했다”며 “국가정보기관의 악·폐습을 개혁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우리 가문과 저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며 “앞으로 근거 없는 비방이 계속된다면 책임 소재를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전 원장은 육군사관학교를 16기로 졸업하고 군인으로 복무하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과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지냈다. 이후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에서 활동했고 김대중 정부 인수위원장, 안기부장, 초대 국정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 전 원장은 최근 광복회를 국가원로그룹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며 광복회장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광복회는 다음달 8일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 총회를 열어 회장을 선출한다.앞서 25개 광주 지역 시민단체는 전날 “국가재건최고회의 참여를 통한 박정희 군사독재의 충실한 부역자 노릇, 전두환의 국보위 참여로부터 광주학살 이후 민정당 창당의 주역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인사가,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한 반성과 사죄없이 광복회 회장으로 나선다는 것은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며 “광복회 출마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사설] 선거제·공수처법 패스트트랙 합의 환영한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어제 선거제도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에 올리는 방안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합의안에 대한 각 당의 추인을 거쳐 오는 25일까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완료한다고 밝혔다. 이번 주 안에 패스트트랙 절차가 시작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선거법 개정안은 내년 총선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4당이 극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지역구 의석 225석에 비례대표 의석을 75석으로 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권역별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한 ‘비례대표 배분 연동률’은 50%로 정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합친 총의석수가 300석을 넘지 않도록 했다. 여야 4당은 그동안 입장차가 컸던 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공수처법은 신설되는 공수처에 기소권을 제외한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법원에 재정신청할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다만 공수처가 수사하는 사건 중 판사, 검사, 경찰의 경무관급 이상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경우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등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에는 여야 두 명씩 위원을 배정하고, 공수처장은 위원 5분의4 이상의 동의를 얻어 추천된 2인 중 대통령이 지정한 1인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토록 했다.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은 늦어도 올해 5월 18일 전에 처리하기로 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대체로 선거법 개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에 부정적인 데다 국민의당계 일부 의원들도 공수처의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 각 당 추인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를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면서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으로선 4당의 선거제·공수처법안 합의를 막을 마땅한 수단이 없지만, 장외투쟁으로 4월 임시국회를 무력화할 수는 있는 만큼 국회 정상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지지가 압도적인 만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선거제 개혁은 대국민 약속이라는 점에서 반대 의견을 가진 의원들도 이번 합의안을 추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 5·18 그린 ‘금남로 사랑’ 詩碑 만든다

    5·18 그린 ‘금남로 사랑’ 詩碑 만든다

    ‘금남로는 사랑이었다/ 내가 노래와 평화에/ 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세월의 머리를 적시는 거리/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 금남로는 연초록 강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세월에 머리를 적시는 거리/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 금남로는 연초록 강 언덕이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김준태(70) 시인은 시 ‘금남로 사랑’ 첫 자락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바로 이 작품이 다음달 10일 시비로 만들어져 5·18 최후항쟁지인 광주 동구 광산동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전시된다. 광주시 푸른도시사업소는 폭 1.5~2.5m, 길이 10m의 꽃벽 조형물과 함께 ‘금남로 사랑’ 시비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꽃벽 안에 시비를 들어 앉히는 형태로 설치된다. 푸른도시사업소 측은 “최근 일부 국회의원의 잇단 ‘5·18 망언’ 속에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을 앞둔 만큼 이번 5·18 기념주간을 즈음해 이에 걸맞은 시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5월 시인’으로 통하는 김준태 시인을 만나 시비 제작 허락을 구했고, 김 시인은 이를 흔쾌히 승낙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당시 전남고 교사였던 시인은 5·18 직후 ‘전남매일신문’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기고하면서 교직에서 쫓겨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5·18 대표시로 꼽히는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1999년 국립5·18민주묘지 벽화에 새겨지기도 했다. 이번 ‘금남로 사랑’ 시비는 가로 70㎝, 세로 145㎝ 규모의 철판으로 만들어진다. 시인이 육필로 쓴 원본을 철판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시비는 꽃벽을 철거할 예정인 11월까지만 현재 자리에서 시민들을 맞을 예정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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