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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박정희기념관 논쟁에 마침표를

    최근 박정희기념관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그러나 정작 이에 대한 공개토론은 잘 열리지 않고 있다.반대측 토론자로 참여할 분은 아주 많지만 찬성측 토론자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이것만 보더라도 기념관 건립에 대한 시시비비는 이미 가려진 셈이다. 무릇 특정 사람에 대한 기념관은 그가 남긴 업적이 후대에 귀감이되고 역사교훈으로 기릴 만할 때 건립된다.그러나 박정희는 청산의대상이지 귀감의 보기는 아니다.그의 일생을 일본군 장교로서,해방후 한국군 장교로서,대통령으로서,또 인간으로서 각기 나누어 평가해보자. 먼저 일본군 장교로서 박정희 평가는 의문사를 당한 장준하 선생께서 그의 반민족적 친일행위 때문에 “대한민국 누구도 대통령이 될수 있지만 박정희만은 안된다”고 이미 내려주었다.그런데도 굳이 기념관을 건립한다면 우리는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허물어야 한다.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 투쟁하거나 돌아가신 선열들,곧 독립군과 의병을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자고 지어놓은 기념관인데, 이들을 죽이는데앞장선 일본군 장교의 기념관을 세운다면 논리적으로 천안기념관은마땅히 허물어야 한다. 다음 한국군 장교로서 박정희는 여순사건때 숙청 제1호였으나 그가가진 한국군내 좌익계의 비밀명단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목숨을 건질수 있었다.또 막 출범한 4·19 이후의 장면 민주정권을 총과 칼로써무너뜨리는 반역의 쿠데타를 감행했고 이 땅에 군사독재라는 악의 씨앗을 뿌렸다.그 스스로도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우리 역사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일반적으로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다.정통성은 역사적 정당성,권력창출의 정당성,권력행사의 정당성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그러나 역사적 정당성은 그가 일제의 황군장교였던 사실만으로도 이미 상실됐다.또 그가 초기에는 총과 칼로,유신시대에는 체육관 선거라는 요식 행위로 종신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기에 권력창출의 정당성도 없다.마지막 권력행사에서는 인권,통일,민주화,경제성장,법치주의,부정부패 일소,도덕성 등 다양한 요소에 걸쳐 평가를 해야하는데 어느 한 분야에서도 정당성을 찾을 수없다. 민주주의에서 박정희는 유신독재·군부독재의 원조였고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임명하는 반의회주의자였다.인권에는 인혁당사건등 수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반인권의 세계적 명사였다.법치주의에서는 내각이나 국회가 아니라 중앙정보부와경호실이 통치 핵심이 되고,대통령의 긴급명령이 헌법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등 반법치주의의 연속이었다. 부정부패에서는 그가 죽자 청와대 특수 비밀금고에서 발견된 현금 9억원,가족 중 최측근이 관리한 스위스은행 비밀계좌가 말한다.더 나아가 심복이던 김성곤·김형욱 등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1억달러 이상부정축재를 취했다고 미국 프레이즈 청문회는 밝힌 바 있다. 인간으로서 박정희는 채홍사인 중정요원 박선호 대령이 매일 연예인·가수 등을 대령하는 일이 가장 괴로웠다고 실토할 정도로 난봉꾼에다 변절·배신·기회주의·음모·타락으로 뒤범벅된 일생을 살았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한 가지 업적이나 사실만에 의존한 단편적평가가 아니라 여러 요소를 함께 포괄하는총체적 평가를 해야 한다. 박정희의 경우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단지 하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고들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마저도박정희 때문이 아니라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냉전의 대결 속에서 남한은 그 정도의 경제성장을 하게 돼 있던 점을 고려하면 그에게 기릴것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만약 10·26 직후 민주정권이 들어섰더라면 박정희의 전모는 샅샅이밝혀지고 그 평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을 것이다. 기념관 건립이란말조차 꺼낼 수 없게 됐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 우리는 박정희기념관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과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5)유배지의 한 끼니

    *'별사탕'과 함께 나온 건빵 최고의 간식거리로. 훈련병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간사병이 된 이후에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생기는데 보통 때에는 군대의 세 끼니를 지겨워하던 녀석들도 꼭 피교육자 신세가 되면 두 가지 병이 돋힌다.하나는 앉으면저절로 눈이 감기는 조름병이요 둘은 주는 대로 먹기는 했지만 식사를 하자마자 시작되는 허기증과 배고픈 병이다.이 허기증은 먹어도먹어도 끝이 없어 교육 기간이 끝날 때까지 뭘 배워야할 내용은 들어오지 않고 온통 먹을 것 생각만 하다가 끝난다.전쟁을 다룬 소설이나영화에서도 먹는 타령은 세계 공통이다. 대개 훈련병 시절이나 재교육 기간이나 기다려지는 게 주말의 면회시간인데,모두들 잔뜩 벼르다가 식구나 친지를 만나는 자리라 우선반가운 인사는 대충 치워 버리고 그들이 들고 온 보퉁이에만 정신을판다.갈비며 불고기는 초창기의 일이고 몇 차례 거듭되다 보면 가족들도 눈치가 있어서 허드레일지언정 부피 많고 양 많은 것으로 싸오기 마련이다.시루떡 인절미 같은 떡에서 전붙이와 호빵 만두 김밥 심지어는 찐고구마 등속인데 이런 것들을 잔뜩 먹고나서 허리춤에 싸들고 들어온다.숨겨 들여오는 음식을 전우들에게 나누어 주는 경우도있겠지만 대부분은 침상 밑에 감추어 두고 혼자서 배고플 때 야금야금 먹어 치우려는 속셈에서다. 교육 기관의 하사관들도 모두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서 몇 가지 기합으로 통과의례를 준비해 둔다.우선 내무반에 들어서자마자 신고도 받지 않고 ‘쪼그려 뛰기’부터 실시한다.몇번 뛰지 않아서 허리춤에차고 온 먹거리들이 툭툭 떨어지고 즉각 압수 처리된다.전우애를 발휘시켜 주기 위하여 다른 소대원들에게 분배되는 건 물론이다.그리고면회자는 거의 절반 정도가 이튿날 배탈이 나거나 설사로 훈련에 지장을 주기가 십상이고 그대로 취침 시켰다가는 위경련이나 급체로 위생실에 실려가는 사고도 발생하기 마련이라 특별한 기합이 준비되어있다.즉 ‘침상 배치 붙어’라는 동작이 실시된다.이층 침대의 끝에다리를 대고 물구나무 서기를 시키는 것이다.아까 면회실에서 열을맞추어 귀대할 때부터 벌써 허리띠를 제대로 채운 놈이 하나도 없고모두들 목구멍에까지 음식물이 차오른 느낌으로 헐떡거리며 바지는배꼽 아래 간신히 걸려있는 판인데 아! 거꾸로 서라니,용코로 걸린셈이다.참지못한 어느 병사가 먼저 꾸역꾸역 토해내면 그 냄새와 전염으로 참고있던 녀석들도 줄줄이 내놓아 버린다.물론 일어선 다음에 귀잡고 뺑뺑이로 마지막까지 반납하고 나서야 통과의례는 끝난다.즉각 내무실을 청소하고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까지 전담해야만 했던 것이다. 군에서는 가끔 발생하는 일이지만 내가 훈련 받을 때에도 과식 사고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비상식량으로 건빵이 나왔는데 별사탕이 섞여있고 아삭아삭하게 구운 것이 밥 보다더 맛이 있었다.이것을 기간사병들에게 돈 주고 사거나 지급 받은 물품과 바꿔 먹기도 하였다.어느 훈련병이 무려 다섯 봉지를 구해다가낮에는 다른 녀석들 시선 때문에 먹지를 못하고 취침 시간에 개인 침낭 안에다 몽땅 털어 넣고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그런 짓은 나도 가끔 해보았고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도광주에서 10. 26 직후에 계엄법 위반으로 상무대 감방에 갇혀 있을 때에 겪은 적이있었다.내 독자라는 헌병이 가끔씩 요기 하라고 건빵 한봉지 씩을 주었는데 주위에 몇 알씩 나눠 주고나서 담요를 둘러쓰고 건빵을 한알씩 넣고 천천히 씹어 먹었다.아무리 조용하게 먹으려 해도 와삭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마치 천둥 소리 같았다. 그 병사도 남들이 모두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먹기 시작했음에틀림없을 것이다.하여튼 와사삭 와사삭 씹어서 그 건빵 다섯 봉지를새벽녘에 모두 해치웠건만 취침 시간에 화장실을 가도 신고를 해야되는 터에 물을 마실 재간은 없었나 보다.건빵이 비상 식량인 것은뱃속에 들어가면 몇배로 불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위장은커녕 식도가 꽉 막힐 수 밖에.그래서 한 젊은 병사는 행복하게 숨을 거두었다. 나의 유년 시절은 전쟁 기간이었다.아니 태어나서 얼마 후에 해방이되어 미군이 들어왔으니 미제 먹을 것에 대한 선망과 추억이 어린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었다.환상적인 갖가지 색깔의 드로프스가 그렇고묘한 향내나는 젤리에 형용할 수 없이 혀끝을 사로잡던 초코렛이며츄잉껌이 그랬다.그리고 무엇 보다도 이 모든 것들이 골고루 들어있던 시레이션은 천국의 선물이었다. 전쟁 직후에 농촌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보리 개떡에 밀기울이 고작이었건만 그래도 도회지에는 미군부대가 있어서 아무리 양식이 떨어져도 학교에 가면 우유죽도 나오고 옥수수죽도 배급했다.시장 모퉁이에서는 ‘꿀꿀이 죽’이 언제나 끓고 있었다.미군 부대에 청소원으로 나가는 이들이 음식 쓰레기를 내다가 파는데 성한 고깃덩이나 빵이나 통조림 음식은 좀 더 값을 쳐서 팔고 이것 저것 합쳐서 내버린 음식 찌꺼기들을 한데 몰아서 무조건 끓이는 것이었다.이게 단돈 십원이었다.시장 장사치에서부터 지게꾼이며 아주머니며 아이들까지 균일하게 십원 한 장이면 한 그릇씩 퍼 주었다. 형편없는 콩나물 소금국만 마시다가 월남 파병에 끼어 배를 타자마자미군의 급식을 받게 되면서 저 황홀함이 되살아나던 것이다. 스테이크에서 포오크며 닭과 칠면조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깃덩이와 케이크후식으로 주던 캘리포니아 도장 박힌 오렌지의 맛은 전쟁터로 간다는두려움을 대번에 날려 보낼 정도였다.야전에 나가서는 시레이션이 나왔는데 우리가 먹던 것은 이차대전 때의 보급 전형이고 당시는 개량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나중에는 모두가 질려서 김치 생각만 하게 되었고 이 틈을 탄 군납업자들이 케이 레이션이란 국산 야전식을보급하게 되었다.고추장,멸치볶음,김조림,꽁치와 고등어,김치 등속의깡통이었는데 이것들과 미제 레이션 깡통의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햄등속을 넣어 찌개를 끓여서 탄약 통에 밥을 해먹었다.나중에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얼마 뒤부터 경기도의 기지촌 부근에서부터 처음에는 미국 대통령 이름을 딴 ‘존슨탕’이네 ‘카터탕’이네 하면서 미제 깡통 고기와 김치며 면을 넣은 찌개가 나와 돌더니 아예 ‘부대찌개’라는 어엿한 이름을 달고 일종의 퓨전요리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찌개는 일찍이 내 목숨을 살린 적이 있어서 요새도 소주 반주하며 즐겨 먹는다.바탄간반도 작전이라는 데를 끌려 갔는데 우리는 운좋게 해안방어 소대라상륙부대의 후미에서 베이스캠프만 지키고 있었다.가끔씩 밤에는 적의 박격포나 로켓포가 날아들었지만 낮에는 평온한 해수욕장 같은 곳이라 단독무장도 풀고 아주 기합이 빠져서 벙커에서 그야말로 ‘해골만 굴리고’ 있었다.취사당번이 내 차례였는데밥과 찌개를 실탄 통에 담아서 불을 지펴 놓고 뒤가 무둑해서 야전삽을 들고 볼일을 보러 모래언덕 위로 갔다.그곳은 우리네 벙커 보다지대가 높아서 나쁜 냄새가 해풍에 불려 날아가는 지점이라 소대원들이 정해 놓은 장소였다.자리를 잡고 먼 바다를 내다보며 느긋하게 볼일을 보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돌아보니 찌개가 넘치고있는 중이었다.실탄 통은 처음에만 뚜껑을 닫고 일단 끓기 시작하면얼른 열어 주어야 하고,만약 그대로 두었다가는 고무 바킹이 열리면서 찌개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던 것이다.아뿔싸,저걸 열어야겠구나. 나는 얼른 바지를 올리고 바삐 모래언덕에서 뛰어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귓가에 쌔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는 야전에서의 본능대로 얼른 아래로 미끄러져 슬라이딩을 하면서 엎드렸다.꽝,하는 폭음과 함께 화약 연기와 모래가 나를 덮어 씌웠다.한참이나 엎드려 있다가 말짱하게 일어나서 돌아보니 모래 언덕은 없어지고 거기 엄청난 구덩이가 패었다.해상에 떠 있던 함정에서 밀림으로의 지원사격이랍시고 함포를 오폭해버린 것이다.물론 구원 받지 못한 찌개도 뒤이어 터져 버렸다. 황석영
  • 20년만에 드러난 신군부 보도지침

    ‘누가 다음 정권 후계자인가 등 보도불가’(10.30),‘김영삼 외신기자회견 보도금지’(11.23),‘12·12사태는 ‘사건’으로’(12.15)박정희 유신정권의 종막을 고한 10·26 이후 80년 ‘서울의 봄’과‘광주항쟁’ 당시 신군부의 검열지침 실태가 당시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던 한 언론인에 의해 20년만에 전모가 공개됐다.5공시절폭로된 ‘보도지침’에 이어 10·26직후 신군부의 언론통제 실상을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68년 한국일보 사회부기자로 출발,세계일보 도쿄특파원 등을 역임한채의석(59)씨는 최근 출간한 ‘99일간의 진실-어느 해직기자의 뒤늦은 고백’(개마고원 펴냄)에서 20년만에 당시의 실상을 폭로했다.그는 80년 ‘광주항쟁’ 당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취재했고,뒤이은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 때 회사를 그만둔 인물이다.이번에 그가 펴낸 책은 계엄하 신군부의 검열지침 실태와 당시 한국언론의 굴절사를 꼬집은 한국언론의 ‘비판서’라고 할 수 있다. 채씨에 따르면,그가 다니던 회사에서 검열지침이편집국내 흑판에고지되기 시작한 것은 79년 10·26으로 인한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 지 나흘 후인 30일부터였다.당시 기자들은 자조적인 표현으로 이를 ‘오늘의 말씀’이라고 불렀는데 80년 3월 14일부터는 ‘보도지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지침’은 문공부로부터 신문사 각 부에 전화로 시달되었는데편집국 부국장이 매일 이를 취합,서무를 통해 흑판에 기록해 알렸다는 것.신군부의 보도지침이 20년만에 빛을 보게된 데는 매일 매일 이를 기록하고,또 흑판에 적힌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둔 사진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한국일보 사진부 김성수(70·경기도 고양시) 기자가 그 주인공이다.채씨는 김씨로부터 입수한 검열지침 내용을 책말미에 부록으로 날짜별로 정리하고 사진도 일부 실었다. 이번에 채씨가 공개한 것은 한국일보 편집국 게시판에 고지를 시작한 79년 10월 30일부터 도중에 고지를 창피하게 여긴 국장석이 관행을 바꿈으로써 게시가 중단된 이듬해 5월 24일까지 약 7개월간에 걸친 것으로 그 가운데 검열지침이고지된 99일분의 내용이다.신군부의검열지침은 10·26 직후에는 반체제 인사나 계엄사의 동정,학생시위·노사분규·야당의 활동에 대한 보도금지가 위주였다.그러나 ‘12·12쿠데타’ 3일 뒤인 15일자에는 ‘12·12사태를 ‘사건’으로’보도하라는 내용도 있다. 또 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에는 ‘(광주 시위)학생들의 행위를정당화하거나 지지하는 식의 기사는 모두 불가’(16일),‘인명피해,사상자 처리에 관한 개별 취재내용 보도불가’(24일) 등 광주항쟁 내용을 왜곡·은폐한 반면,간첩 검거,계엄당국 발표,계엄군의 활동 등공식발표에 대해서는 ‘크게 취급 요망’하고 있다.채씨는 “많은 날은 하루에 3회에 걸쳐 지침이 내려온 경우(79년 12월 6일)도 있었으며,103회에 걸쳐 총 474건의 상황이 검열대상이었다”고 밝혔다. ‘말’지 86년 9월호에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당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는 “전두환정권은 ‘10·26’으로 비롯된 계엄상황을 5공 내내 유지한 셈”이라며 “채 선배가 공개한 검열지침은 80년대 중반 ‘보도지침’의 원조격”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서해5도 영해 다툼 재연 조짐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로 잠잠해졌던 서해 5도 인근 수역의남북 관할권 다툼이 북측의 ‘남한 함정 영해침범’ 주장으로 재연될 조짐이다. ◆북측 주장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4일 밤 남측 함정 4척이 이날 오전 8시30분쯤 여러 척의 어선에 끼어 장산곶 서쪽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23일 백령·대청·소청·연평·우도 등 서해 5도에 대한 일방적으로 통항로를 지정·선포한 지 9개월만에 영해침범 주장을 되풀이했다.우리측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을 바라는 북측 의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합참의 해명 합참은 15일 ‘북측 주장에 대한 해명’을 통해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북한측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양측 모두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합참에 따르면 북측 경비정은 오전 8시55분부터 10시22분까지 NLL북방 0.5마일 해상에서,우리측 고속정은 NLL 남방 2.5마일 해상에서오전 8시56분부터 10시26분까지 각각 기동했다.지난 5일,6일,13일에도 동일한 상황이 반복됐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 영향은 오는 30일부터 시작되는 제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28일로 예정된 제4차 장관급회담 등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다.그러나 경의선 복원에 따른 남북군사실무협의와 유엔사와의 비무장지대관할권 다툼,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등 군사분야 협상일정에는 다소차질이 예상된다. 노주석기자 joo@
  • [발언대] 투표율 높이려 포상금 주는것은 잘못

    지난 10월26일 전국 48곳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전국 규모가 아니어서 국민의 높은 관심은 얻지 못했으나 해당 주민들에게는 의미가 큰 선거였다.따라서 투표율이 얼마나 될지 모두 관심있게 지켜보았다.일부 지역에서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포상금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농촌 지역의 투표율이 전통적으로 높은 점을 감안할 때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의 행사에서 경품을 주면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언론에서는 소비자의 사행심을 조장하고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에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해왔다.그런데 선거에서 경품등을 주면 백화점 행사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투표율이 높고 낮음에 따라 유리·불리한 정당·후보자가 생길 수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 시행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생각한다.그리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하여 읍·면·동 또는 지역 단위별로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관권 개입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본다. 투표 참여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국민 입장에서 당연히 어떠한 영향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투표의 본 정신이다.이 점에서 투표 참여를 국민에게만 홍보하고 투표율이 저조하다고 걱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당리당략보다는 국민을 진심으로 위하여 지역 주민을 위해 헌신할 때 국민은 스스로 투표에 참여할 것이다.임시방편적인 포상금이나 경품 지급보다는 장기적으로 정치개혁,지역 대표자의 도덕성 회복을 통해 투표 참여도를 높이는 방법이 근본대책이라고 생각한다. 배명열 [대전광역시 서구 갈마동]
  • 대한매일을 읽고/ 음지서 일하는 공무원에 감사하자

    한 젊은 소방관이 화재진압현장에서 건물더미에 깔려 숨졌다는 안타까운 내용의 기사(대한매일10월26일자)를 읽었다. 그 청년은 단칸 셋방에 사는 어려운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늘 웃음을잃지 않고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이며 효자였다고 한다.사실119구조대원과 경찰들의 활약은 서민들일수록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 화재현장 출동은 물론이고 교통사고나 집에 위급한 환자가 발생할 때도 즉시 달려온다.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그러나 우리들은 그들이 사고현장에서 타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사고가 날 때나 잠시 고마움을 느낄뿐 금방 잊어버린다.사명감으로 음지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만한 처우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욱[경남 진주시 신안동]
  • 대한매일을 읽고/ ‘명절 열차표 매진 여행사 횡포’공감

    해마다 명절 예매 열차표는 순식간에 매진돼 귀성객들은 발을 동동거리게 된다.그런데 이에 대한 주원인이 여행사의 횡포로 드러났다.(대한매일10월26일자) 올해 발행된 추석 열차표 203만여장 가운데 29.9%에 달하는 60만6,000장이 반환돼 평소 10% 안팎이던 열차표 반환율을 크게 뛰어 넘어섰다고 한다.그 이유가 철도청을 대신해 발권업무를 하는 여행사측에문제가 있는 것으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철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사실 기차 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경우에도 명절 표 구하기가 하늘에별따기이다.어렵게 대기자 명단에 올라 가까스로 표를 구해 타보면매번 빈자리가 눈에 띄어 의아했었다.세계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우리나라 명절 귀성행렬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점이 밝혀졌으니 표를 못구해 귀성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나 뒤늦게 표를 구하기 위해 마음졸이는 사람들을 생각해 귀성열차나 비행기의 예약시스템을 공정하고 과학적으로 바꿔야 하겠다. 김순희[경기도 하남시]
  • 10·26 지방 재·보선 3黨 반응

    27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자민련 3당은 26일의 지방 재·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최대 승부처였던 대전 서구청장 보선 패배에 아쉬움을 표시했고,한나라당은 텃밭인 경북 영천시장 선거에서 일격을 당한 데대해 충격과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반면 자민련은 대전 서구청장 보선 승리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민주당은 그러나 한나라당이 경북 영천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패배한 데 이어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총력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전 서구청장 선거를 놓친 점을 ‘위안’으로 삼는 듯했다.박병석(朴炳錫) 대변인은 “이회창 총재는 ‘충청 교두보’ 등의 발언을 하며 거당적으로 지원했으나 우리당은 철저히 지방선거 차원에서 치렀다”며 반사이익을 노렸다. 반면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경북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의 소극적인 선거 지원이 패배로 이어진 측면이 강하다”고 아쉬워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9개 지역 광역의원 보선에서 득표율이 49%에 달하고,특히 서울 용산·송파,인천 등 수도권지역에서 당선자를 낸 점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민련은 대전 서구청장 보선에서 여야 지도부의 지원 유세에도 불구,자당 후보가 큰 표차로 당선된 데 대해 “충청권은 여전히 자민련의 아성임을 입증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변웅전(邊雄田) 대변인은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의 뜻을 새겨,자민련은 국민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오일만기자 oilman@
  •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10·26은 민주회복 위한 거사”

    “10·26은 민주회복을 위한 쿠데타적 거사로 김재규는 ‘패륜아’가 아닙니다” 정해구(丁海龜·45)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 시해 21주년인 26일 “우리나라 민주화 이행과정의 출발점은10·26”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26 당시 김재규씨의 구명운동을 벌였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들이 제공한 많은 자료들을 열독한 뒤 더욱 이러한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밝혔다. 재판과정에서 김씨의 일관된 발언,증언을 확인하고 단순 권력욕이 아닌 국가거사를 위한 행동이었음을 확신하게 됐다.‘10·26재평가와김재규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가 전날 기독교회관에서 주최한 심포지엄에서는 주제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정교수는 10·26은 ‘민주화 이행과정의 계기’로 역사·정치적 평가가 내려져야지 ‘김재규는 배덕자’식의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평가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정교수는 김씨가 썼던 ‘민주’‘민권’등의 붓글씨 사진과 그의 구명운동을 촉구했던 서울대,성균관대 대학생 등을 포함,국민들의 두꺼운 서명집을 보여주면서 “독재자였던박정희에 대해서는 기념관을 세우려는 등 우상화작업이 추진되는 마당에 21년이나 지난 10·26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가 내려지지 않아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윤창수기자 geo@
  • 뉴스피플 10월26일자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최신호(10월17일 발매,26일자)는 역사적인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을커버스토리로 다뤘다.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의미와 파장, DJ가 걸어온 길,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노벨평화상의 현주소 등을 다각도로 취재했다. 올 국정감사에서도 ‘추악한 국회’의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당리당략의 잣대’로 힘겨루기를 펼치고 있는 여야의 ‘정쟁국감’을 정치면 주요기사로 다웠다.또한 올브라이트와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등급변하게 변하는 한반도와 앞으로의 변화를 정밀 진단했다. 최근 활기를 띄고 있는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소자본 창업을 원하는무경험자들의 창업요령을 꼼꼼히 취재했다.금융시장의 혼란 우려와관련,우량기업마저 동시에 추락하는 ‘동반추락’과 초우량기업 삼성전자에 쏠린 시각을 살펴봤다. 또한 ‘메디슨 연방’은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한국 벤처의 아버지’ 메디슨 이민화 사장 위기설의 진상을 파헤쳤다. 이밖에 새나 돌멩이·조개·바위·꽃 등과 같은 자연물을 대상으로상을 주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았다.
  • [한반도를 평화중심지로] (3)金대통령 민주·인권 장정

    젊은 세대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한대장정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30년이 넘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기도 하지만,국내언론에 ‘김 대통령의 진실’이 제대로 보도된 적이 없는 까닭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때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꼭한번만이라도 공정한 보도 속에서 선거를 치르고 싶다”고 했을 것인가.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한 노력 김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인권신장과 민주주의를 위한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朴正熙)정권하에서 ‘3선 개헌’과 ‘10월 유신(維新)’ 반대 투쟁에 앞장서다가 73년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79년 10·26사태 이후 신군부가 집권한 뒤 ‘5·18 광주민주항쟁’ 연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그 때마다 집권층은 온갖 회유와협박으로 유혹했으나,한 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굴하지 않은 민주주의 신념 때문이었다. ■국내 인권신장 노력 김 대통령의 그러한 신념은 취임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사상전향 제도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서 제도를 도입했으며,국가보안법의 확대해석과 남용을 금지시켰고,대폭적인 사면·복권을 단행함으로써 마침내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그들의 희망대로 북송되기에 이르렀다. 또 노조의 정치 참여와 전교조가 합법화됐으며,재소자의 인권을 위해미결수의 경우 사복차림으로 재판을 받도록 조치했고,가족간 유대를위해 ‘부부 만남의 집’ 운영 및 모범 재소자의 외출·외박제를 도입했다. 나아가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 및 청소년 인권 보호를 위해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법,가정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력방지특례법 등을 제·개정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제주 4·3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등을 제정한 것은 인권이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 덕목임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다. ■국제무대에서 인권외교 이러한 인권의 지평은 국내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무대로까지 확대된다. 지난해 뉴질랜드 APEC정상회의 때는 동티모르 사태를 회담 의제에포함시켜 끝내 한국군 파병으로 연결지었다.또 지난달 뉴욕 밀레니엄정상회의와 한·미,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연금중인 미얀마 아웅산수지 여사의 자유로운 정치활동 보장 촉구를 정상회담 공동 발표문에담는 일을 주도했다. 김 대통령은 수상후 노르웨이 NRK 국영 TV와의 회견에서 “인권은오늘날 국제정치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이같은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향후 전망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김 대통령의 이같은 노력은 국내외적으로 탄력을 받을 것이다.그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인권법 제정과인권위원회 설치,그리고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가 속도를 더할 것으로관측된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과 노동 권리를 보장할 ‘외국인근로자보호법’ 제정 역시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朴槿惠부총재 永川 연설회 불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부총재가 12일 경북 영천시장 보궐선거 정당연설회에도 불참해 조규채(曺圭彩·59·영천시 선거관리위원)후보는 물론 당 지도부의 애간장을 태웠다. 박부총재측은 이날 증인채택 여부를 표결처리키로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와 본회의 참석을 불참 이유로 댔다. 하지만 박부총재의 진짜불참 이유는 딴 데 있다.조후보가 10·26 사태의 주역이었던 김재규(金載圭) 전 중앙정보부장의 ‘비서관’ 출신이라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박부총재의 측근들도 이를 숨기지 않는다. 박부총재는 조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이 나서주기를 바라는 당내 기대감과 10·26 사태의 ‘구원(舊怨)’ 사이에서 고심했던 것으로전해지고 있다. 조후보는 김전중정부장이 건설부장관 시절 비서관으로 특채됐다가중정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중정 제3협력과장과 비서실 차장을 거쳤다. 조후보는 보선 열기가 오르면서 지난 10일 선대(先代)부터의 인연으로 김전부장을 측근에서 보필하기는 했지만 10·26 사태와는 아무런연관이 없었음을 강조하며 ‘악연’을털어주기를 바라는 팩스서신을 박부총재에게 보냈으나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남북이산상봉/ 北국적기 남한영공 첫 통과 순간

    “여기는 평양,Hand off(관제를 넘겨받아라)”“여기는 대구,OK.Roger(알았다)” 15일 오전 10시5분 평양 순안공항을 이륙한 북한 고려항공 IL-62 특별기는 오전 10시26분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하면서 대구 항로교통관제소(ACC)와 교신했다.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국적기가 한국 영공을 넘는 순간이었다. 특별기는 북측 서해상을 일직선으로 진행하다 서해 공해상 북위 38도48분,동경 124도15분 지점에서 기수를 남으로 돌려 북위 38도,동경124도20분 지점에서 NLL을 통과했다.이어 우리측 영해인 우도에서 일직선으로 만나는 북위 37도12분46초,동경 124도24분47초 지점에서 기수를 인천방향으로 꺾는 ‘ㄷ’자 코스로 비행했다. 특별기가 남측 비행정보구역(FIR)에 들어온 10시26분부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규정에 따라 항공기에 대한 관제는 대구 ACC가 맡았다.이때부터 대구 ACC를 비롯,김포관제소·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공군작전사령부는 비상태세에 돌입,감시장비를 동원해 북측이 통보한 비행 항로를 실시간으로 정밀체크했다. 군당국은 지난 6월의 정상회담 때와 달리 공군 전투기 편대를 동원한 원거리 초계비행을 하지 않았다.다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인근공군기지에 HH-60 헬기 등 탐색 구조전력을 비상 대기시켰다.특별기는 이륙 54분만인 10시59분 서울 김포공항에 안착했다. 한편 오는 18일 3박4일동안의 일정을 끝마친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의 귀환은 대한항공 특별기편을 통해 이뤄진다. 귀환용 특별기는 에어버스가 제작한 중형 여객기로 258석 규모의 A330-200 신형 기종.조종은 1만3,000여시간의 비행시간 기록을 보유한베테랑 김홍순(金鴻順·51) 기장이 맡는다. 노주석기자 joo@
  • [기고] 상생발전 하는 세상 만들자

    요즈음 우리 사회가 어수선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병원이 문을 닫아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나니,은행이 금융개혁을 두고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하여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맞을 뻔했다.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 버렸고,대통령 임기가 절반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공권력 누수현상을 보이고 있구나 하는 우려마저 들게 하였다.또한 국회는 종전과 달라짐이 없이 정책대결보다는 당리당략에만 집착하고 있고,IMF사태 이후 상승세를 탔던 경제도 정점을 찍고 하강국면으로 접어드는 등 정치,사회,경제를망라한 총체적인 혼란과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이러다가 또다시 IMF사태와같은 제2의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과 위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영국의 저명 잡지인 이코노미스트의 주장을 빌리면 “한국의 모든 국민들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 개혁이 자신이 아닌 타인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지적한다.이런 이기적 사고들이 시장논리와 공익성을 기초로 추진되어야 할 개혁을변질시키며 다양한형태의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이익단체의 정당한 권익주장은 민주시민으로서 당연한권리이다.정부 또한 이것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다만 염려스러운것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思考)가 너무 지나치면 정말로 큰 사고(事故)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우리 민족이 광복후 억눌렸던 자유를 한꺼번에 만끽하려다가 남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던 것과 4·19의거 후에 정치민주화가 왔는가 싶더니 데모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잘못된 관행이 사회의 혼란을 야기해 5·16 쿠데타의 빌미를 주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이것은 10·26사태에서 5·18의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으며,결국 그러한 원인으로 또다시 군사정권의 통치를 경험하였다.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거울 삼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민주화의 꿈을 달성했다고는 하지만,아직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성숙되지 못한 단계에서 무분별한 각계의 이익 요구는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요사이 연쇄적으로 나타나고있는 힘에 의지한 불법적 집단행동도 이 범주 내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큰 흐름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은 세계에 유례가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6·25전란 후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정치민주화를 달성했으며,세기말에 닥친 IMF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모범적으로 극복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더욱이 새천년 초입에들어 그동안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짓눌러 왔던 남북관계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해빙기에 접어들며 민족사적 일대 전기를 맞고있다.따라서우리 민족에겐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이다.이러한 상승무드를 지속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새천년 우리 민족의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새천년에 우리가 꿈꾸는 글로벌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우선 정부와 여당이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흔들리고 있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총제적인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그리고 국민들도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지말고 대승적 견지에서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나만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주변과 공리공존하는 것이 나도 더불어 잘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상생발전(相生發展)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吳上鉉 화재보험협
  • 금리 안정

    은행권 총파업 여파에도 불구하고,7일 국고채 금리가 연 7%대로 진입하고회사채 금리가 연중 최저치를 갱신하는 등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3년만기 국고채의 유통수익률은 7.90%를 기록,전날보다0.16%포인트 하락하면서 8%대를 깼다.국고채 금리가 7%대로 진입한 것은 지난해 10월26일(7.86%) 이후 8개월여만의 일이다. 3년만기 회사채의 유통수익률도 전날보다 0.09% 포인트 내린 9.12%로 마감,8%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이날 회사채와 국고채 금리는 모두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한국은행 김성민(金聖民) 채권시장팀장은 “프라이머리 CBO발행으로 차환발행물들이 대부분 예약되고 우량물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계속 몰리면서 수급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면서 “시장 관심사는 회사채 금리가 9%대를 깰 것이냐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량물 중심의 채권수요가 트리플B 이하의 투자부적격 채권으로 넘어가고 있어 회사채 금리의 8%대 진입도 기대해볼 수 있지만 워낙 시장의 하루변동폭이 커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안미현기자
  • 신용카드 사고 ‘위험수위’

    정부의 신용카드 사용 장려정책과 전자상거래의 급증,신용카드 복권제 등으로 신용카드 사용이 크게 늘면서 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신종 사고가 늘고 심지어 주민등록증을 위조해신용카드 소지자의 카드 분실 신고까지 해지해 사용하기도 한다. 신용카드 가맹점 숫자는 지난해 3월 488만여개에서 지난 3월 현재 662만여개로,신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한 대금은 15조5,949억원에서 38조2,353억원으로 각각 늘었다. [실태] 99년 한햇동안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신용카드 관련 상담 건수는 6,307건으로 월 평균 526건이었다.반면 올해는 지난 4월까지 3,249건에월 평균 812건으로 1.5배 이상 증가했다. 김모씨(37·서울 성동구 송정동)는 최근 지난 5월분 신용카드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물건을 구입하지 않았음에도 한 전자상거래 회사로부터 200여만원이 청구됐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누군가 인터넷 쇼핑사이트에 접속,자신의 카드번호와 카드 비밀번호,유효기간 등을 모두 입력한 뒤 판매사를 방문,구입한 물품을 직접 찾아갔음이 확인됐다.판매사는 카드번호와 이름만 확인하고 물품을 내줬다. 회사원 김모씨(34)는 지난해 10월26일 새벽 2시쯤 서울 홍익대 앞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지갑을 분실,아침에 곧바로 카드회사에 분실 신고를 했다.그러나 지갑을 주운 사람은 김씨의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사진을붙여 위조,카드 분실신고를 해지하고 김씨가 군번 앞 4자리 숫자를 이용해만든 비밀번호를 알아내 현금 서비스로 140만원을 빼내고 150만원어치의 물품도 구입했다. 이모씨는 지난 4월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통해 일본의 한 업체로부터 의약보조품을 구입하기로 하고 신용카드로 대금을 치렀으나 아직까지 물품을 받지못하고 있다.전자우편(e-mail)을 보냈으나 답장이 없어 소비자단체에 문의한결과 유령업체일 확률이 크다는 답을 들었다. [주의할 점]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외국 업체의 물품을 구입할 때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지난달부터 시행하고 있는 ‘실재 인증마크제’를 이용하거나 대금을 치르기 전 카드회사에 문의하라고 권유한다. 아울러 전표를 작성할 때사용금액과 날짜·가맹점 이름 등을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생일이나 전화번호 등은 비밀번호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좋다고 주문한다. 전영우기자 ywchun@
  • 김재규 前중앙정보부장 명예회복 위원회 추진

    10·26사태 주범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지난 80년 5월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에 대한 명예회복 추진위원회가 발족된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김재규사건 변호인단,재야 단체인 광주 전남송죽회 회원들은 김전부장 20주기인 24일을 맞아 10·26의 역사적 의미를재평가하고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 명예회복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김승훈 신부 외 3명)를 정식으로 발족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위원회는 24일 낮 12시30분 김 전중앙정보부장의 묘역이 있는 경기도 광주삼성공원묘지에서 20주기 추모제를 갖는다. 김경운기자 kkwoon@
  • 기무사부지 문화공간화 ‘산넘어 산’

    경복궁 동쪽 국군기무사령부를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고 부지 전체를 역사·문화공간화한다는 문화예술계의 바람이 뜻하지 않은 국군서울지구병원 문제가 불거지는 바람에 또다른 난관을 맞고 있다. 서울 소격동 기무사 부지에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은 지난 1979년 10·26 당시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이 총격을 받고 옮겨졌던 바로 그 곳.현재도 대통령과 그 가족,차관급 이상 정부요원,군 장성,기무사 요원 등을 대상으로 특수진료를 하고 있다. 국방부는 기무사는 이전한다해도 이 병원 만큼은 국가원수와 관련된 극도의보안을 요하는 만큼 현재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이 건물이 유지되면,일부 공간에 기무사 서울지구사무소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이런 내용의 국방부 보고를 이미 받았다.김대통령은 그러나 정부 차원의 시설유지 당위성에는 긍정하면서도 대통령 주치의가 30분 거리에 대기하고 있고 청와대에도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시설이 꼭 필요한지에는 개인적인 의문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면서대통령만을 위한 특수시설이라면,기무사 이전이 국민적 여망인 만큼 대안을강구하는 것이 옳다는 뜻을 밝혔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문화예술계는 이런 상황에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다.무엇보다 국방부가 기무사 신축계획을 들고 나왔을 당시 삼청동길가에 있는 병원부지를 미술관으로내주겠다고 발표했었다.그러나 이제 큰길에 접해 있는 서울지구병원을,그것도 기무사 서울사무소 기능까지 포함시켜 남겨둔다면 오히려 당초 계획 보다도 후퇴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국방부가 그동안 기무사 이전을 전향적으로 검토한데 대해 온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고 전제하고 “국민들의 여망이 기무사이전으로 모아진 상황에서 다시 병원 건물이라도 살리겠다고 나섰다면 크게실망스러운 일”이라면서 “작은 것에 집착하려다 큰 것을 잃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기사 하루 124건 삭제 당했다

    80년 신군부의 5·17조치 이후 당시 계엄당국의 언론검열로 보도되지 못했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사들이 한 언론학자의 노력으로 20년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12일 순천향대학교에서 열리는 언론학회(회장 박영상) 2000년 봄철 정기 학술발표회에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이민규(40)교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언론보도 분석:검열 삭제된 기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당시 신군부의 언론검열과 이로 인해 보도되지 못한 기사들의 실상을 심층적으로 분석,발표한다. 이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당시 계엄당국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서명한 ‘5·17 계엄지역 확대조치 및 포고령 제10호에 의한 보도통제지침’에 의거,언론매체에 ‘칼질’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논문은 광주항쟁 발발 다음날인 5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2주 동안의 검열삭제된 기사를, 매체별로는 신문 7,통신 2,방송국 5개 등 총 14개의 언론매체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한편 10·26사건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79년 10월 27일부터 계엄이 해제된81년 1월 24일까지 총448일간의계엄기간 동안 계엄당국이 검열한 기사는 모두 27만7,906건으로 하루평균 620건을 검열한 것으로 나타났다.이 가운데 전면삭제 1만1,033건(4%)과 부분삭제 1만6,023건(5.8%)을 포함해 총 2만 7,058건의 일부 또는 전체가 검열로 잘려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매체별로는, 전체 27만여건 가운데 검열빈도는 11만 6,000여건으로 통신이가장 높았다.그러나 삭제건수는 총2만7,000여건 가운데 신문이 1만1,485건(43%)으로 가장 높았고 방송(26%),통신(25%)순이었다.계엄발표 이후 날짜별 검열·삭제비율은 80년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전후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특정일의 경우 검열기사 대비 삭제기사 건수가 54%에 달하기도 했다.검열기사의 절반이 삭제된 셈이다. 한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검열 건수는 총1만1,616건. 이 가운데 삭제된기사는 모두 1,739건으로 검열대비 삭제 비율은 15%로 전체평균인 9.7%를 웃돈다.구체적으로는 하루평균 829건의 기사를 검열했고,124건이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서 이 교수는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광주항쟁 당시 진실을 보도하려 했던 언론인들의 노력을 곳곳에서 발견했다”며 “당국의 검열조치앞에서도 직필을 굽히지 않았던 투철한 기자정신이 오늘의 언론자유를 쟁취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밖에도 ▲광주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는 5·17포고령 직후인 18일 새벽 교내에 진입한 계엄군을 피해 달아나다 추락사한 전북대생 이세종군(당시 20세)이며,▲국제통화기금(IMF) 협의단이 이 기간중 방한,정부 관계자들과 경제정책에 대해 협의한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정운현기자 jwh59@
  • 에이즈 전세계 확산 비상/ 감염자 급증…지구촌 위협

    *감염실태와 대처현황. 아프리카단결기구(OAU) 50개 회원국 보건장관들은 오는 7∼9일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에서 에이즈 대책회의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총 3,340만명으로 추산되는 전세계 에이즈바이러스(HIV) 감염자중 70% 가량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국제기구들은추정하고 있다. 1983년 미국에서 첫 보고된 뒤 20여년 만에 에이즈는 아프리카,남아시아 등곳곳에서 지구촌 주민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최악의 질병으로 창궐하고있다. 에이즈의 위험이 임계치에 이르자 국제사회도 여기저기서 유례없는 경고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다. 1월의 유엔 안보리회의에서 앨 고어 미국부통령의 발의에 따라 에이즈는 유엔 창설 이래 보건문제로는 최초로 안보리 안건으로 상정됐다.고어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에이즈 확산방지를 위해 예정액의 두배가 넘는 2억 5,000여만달러 예산을 책정하겠다고 공언했다.4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례총회는 에이즈를 세계경제성장의 장애물로 꼽고 확산방지를 위한 무제한의 자금지원 원칙을 확인했다. 미행정부는 에이즈가 특히 저개발지역에서 국가 전복,민족전쟁 촉발,자유시장경제 마비를 가져와 국가안보를 위협할수 있다고 규정,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동원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1996년 세계은행-세계보건기구(WHO)는 에이즈 사망자가 2006년 170만명으로최고치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으나 지난해 이미 26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90년 1,000만명이던 보균자 역시 98년 3,340만명으로 기하급수적 증가추세다. 특히 위생시설이 형편없고 보건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이 속수무책 강타당하고 있다.최악의 천형지대인 아프리카 동남부는 성인의 10∼26%가보균자로 추산되고 있다.이에 따라 고아가 급증하고 GDP가 10∼20% 감소하는등 극도의 사회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아·태지역은 에이즈가 뒤늦게 출현했으나 어느 지역보다 가파른 확산속도로 위협중이다.최근 1∼2년새 인도,중국 등에서만 500만명 이상의 에이즈 감염자가 보고된 가운데 2010년 무렵이면 보균자 누계가 아프리카를 능가하리라는 전망이다. 러시아에서는 에이즈 양성반응자가 2000년말 100만명,2년만에 두배가 될것으로 예측돼 보건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에이즈가 지구촌 개발시계를 10년이상 거꾸로 돌리고 있음에도 국제사회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가장 심각한 것이 예산문제. 에이즈 퇴치를 위해 매년 10∼30억달러씩 필요하지만 실제 투입비용은 1∼2억 달러 안팎에 그치고 있다.교육을 통한 성생활 개선과 AZT 등 복합치료약보급으로 90년대 중반 이래 주춤하는 듯했던 미주,서유럽 등의 에이즈 증가율도 내성을 갖춘 HIV 등 변종의 등장으로 도전에 직면했다. 올초 미 중앙정보국은 낙관적으로 봐도 향후 10년간 에이즈 확산세를 막을수 없으며 향후에도 국제사회가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하리라는 우울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손정숙기자 jssohn@. *아프리카 실태. 아프리카에서 에이즈(AIDS)는 이제 질병이 아니라 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큼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유엔 안보리가 올초 에이즈 문제를 의제로채택한 것도 아프리카 에이즈는지구촌 안보를 위협하는 공적(公敵)이라는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에이즈로 사망한 260여만명 가운데 85% 가량인 220여만명이 아프리카에서 사망했다.지난해 새롭게 에이즈에 감염된 560여만명중 67%인 380만명도 아프리카 지역 국민들이다. 전문가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의 평균 수명이 5∼10년쯤 뒤에는 59세에서 45세로 단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특히 짐바브웨·보츠와나·나미비아·잠비아·케냐·탄자니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해 평균수명이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통계청도 10년 뒤에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국가에서 7,10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중세시대 전유럽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페스트 사망자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같은 사정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에이즈 대처능력은 제로에 가깝다.에이즈 책임자를 비전문가로 채용하는가 하면 에이즈의 효과적인 억제제인 ‘AZT’의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확산되는 이유를 행정력 부재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근본적인 이유는 빈곤과 무지에 있다.또 아프리카 국가의 매춘부중 90%가 에이즈 감염자임에도 성(性)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꺼리는 것도 에이즈 확산의 또다른 요인이다. 아프리카가 에이즈를 퇴치하는 데 들이는 비용은 1억6,500만달러에 불과하다.물론 이 비용은 서방선진국에서 전액 기부된다.하지만 아프리카 에이즈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올초 제임스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가지적했듯 매년 23억달러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결국 전세계가 아프리카 에이즈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않는다면 앞으로 새천년에 거는 부푼 희망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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