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신생 케이블채널 엑스포츠 이희진 사장
조금 부풀려 이야기하자면, 그가 없었으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은 성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활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함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생 스포츠전문 케이블 채널 엑스포츠(Xports)의 이희진(40) 사장.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그는 KBS MBC SBS 등 국내 지상파 3사를 제치고,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직접 중계권을 사려 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 부담이 문제였다.FIFA와 작성해 나가던 계약서를 그대로 지상파 3사에 넘기고 말았다.
이 계약서에는 ‘퍼블릭 뷰잉(Public Viewing)’이라는 추가 권리도 담겨 있었다. 이는 전광판이나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경기를 옥외에서 내보낼 수 있는 권리. 이 조항이 국내 기업의 홍보 마케팅, 한국대표팀의 선전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서울 광화문을 포함해 전국 방방곡곡을 붉은 물결로 물들인 길거리 응원이라는 월드컵 사상 초유의 역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일본은 어땠을까. 이 권리가 FIFA측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처럼 대대적인 길거리 응원이 생겨나지 못했다.
“계약이 2006년까지 유효하기 때문에 내년에도 대대적인 붉은 악마의 물결이 재현되지 않을까요?”
●돈키호테 또는 봉이 김선달?
이 사장은 올해 초 스페인 한국 교포 기업가의 지원을 받아, 지상파 3사를 따돌리고 4년 동안의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을 따냈다. 가격은 약 4800만 달러(약 470억원) 정도. 지난해 박찬호를 비롯, 한국 메이저리거들과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박으로 여겼다.
한편으로는 중계권료를 높였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 사장을 두고, 돈키호테 또는 봉이 김선달이라는 말도 일었다. 원래는 지상파와 케이블 등에 재판매할 계획이었지만, 지상파에서 중계를 꺼려하자, 자체 채널인 엑스포츠를 덜컥 만들게 됐다.
이제 케이블 신규 채널로 개국한 지 한달 반이 조금 넘은 상태. 벌써 가입자 수가 1000만(총 가입자 약 1200만)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시청률도 200여개 케이블 채널 가운데 최고 2위까지 뛰어오르는 등 당초 예상을 깨고 고공 비행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박찬호와 최희섭의 상승세가 이러한 비상에 뒷바람이 된 것은 사실. 하지만 이 사장은 “지난해 한국 메이저리거들이 바닥을 쳤을 때도 메이저리그 국내 중계는 이윤을 남겼다.”면서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사업상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환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환차익을 고려하면 중계권료를 턱없이 비싸게 주고 산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 중계만 밀고 나갈 생각은 없다. 앞으로 지상파를 비롯해 DMB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메이저리그 경기를 전달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또 다매체 시대를 맞아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품질을 높이는 것만이 호황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달 말부터 세계 3대 메이저 종합격투기대회의 하나로, 미국에서 열리는 UFC(Ultimate Fight Championship)도 방송, 콘텐츠의 다변화를 꾀한다. 또 연말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을 초청, 국내 프로야구 올스타팀과 경기를 벌이는 이벤트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내년 3월 예정된 야구 월드컵의 국내 방송 배급권을 따낸 상태.
그는 “올해에는 1·4분기 영업이 없어서 적자가 나겠지만, 채널 영업으로 2년 만에 흑자를 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좌충우돌 스포츠 마케팅 수업
배구 농구 등 스포츠를 즐겼지만, 처음에는 스포츠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딘 것도 91년 KBS영상사업단을 통해서다. 원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해외로부터 영화나 만화, 다큐멘터리 등을 사들여 편성하는 일을 맡았다. 스포츠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은 97년. 박찬호가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승격했고,KBS가 독점 중계했다. 그리고 이 계약을 이 사장이 담당했다. “스포츠 마케팅이 막 움트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이 때부터 이력서가 화려하게(?) 채워졌다. 다국적 스포츠 마케팅사인 IMG에 들어가 이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수업을 쌓기 시작했다.IMG 한국 지사장까지 지낸 뒤에는 미국에 모기업을 둔 Sports.com이라는 인터넷 미디어 회사로 옮겼다. 이후 그의 발걸음은 홍콩 NBA지사를 거쳐, 창업의 길로 이어지게 된다.
“주변에서 너무 쉽게 직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냐고 말리기도 했지만,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여러 가지를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프로축구 K-리그를 일본 등 해외에 판매하기도 했고, 국내 종합 격투기대회 스피릿MC도 만들어 내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어려웠던 시절도 많았다.2000년 한 때 나스닥에 상장되기도 했던 Sports.com에서는 모기업의 지원이 끊어지며, 자신이 직접 채용했던 직원들을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또 2003년 3월에는 브라질 축구올스타팀을 초청, 경기를 벌였지만 관중 동원에 실패하며 목돈을 까먹고 휘청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스포츠마케팅을 해보자는 일관된 생각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사실 운이 좋았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경험을 시작으로 다양한 곳에서 감각을 키울 수 있었으니까요. 구매자로, 때로는 판매자나 개인 사업자 등 여러 관점에서 스포츠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 사장은 국내 인구의 70∼80% 이상이 케이블 등을 접하는 상황에서 지상파도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물론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큰 대회는 지상파가 담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미디어가 속속 출현하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가 타 매체에 대한 도움을 꺼리는 등 오히려 각 매체 사이의 벽이 견고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사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포츠와, 이를 방송하는 채널, 그리고 기업으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한국 기업들이 스포츠를 징검다리 삼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꿈을 두고 있다.
■ 이희진사장 프로필
●1965년 서울 출생 ●서울 문창초-신림중-문일고-한국외대(영어과)졸업 ●부인 임지희(36)씨와 1녀 ●1991년 KBS영상사업단 입사 ●1997∼2000년 IMG 한국지사 근무 ●2000년 미국프로농구(NBA) 홍 콩 지사, 인터넷미디어사 Sports.com 근무 ●2001년∼ 스포츠마케팅사 SNE 사장·2005년 스포츠전문 케이블 채널 Xports 및 스포츠마케팅사 IBsports 사장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