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이 알려주신 세 가지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국민들이 드라마를 좋아하고, 드라마가 이렇듯 많이 만들어지는 나라에서 드라마 PD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해볼 만한 일이다. 드라마 PD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드라마를 만드는 일이 즐거워야 드라마 PD로 성공할 수 있다.
드라마 PD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능력이 있으니 바로 리더십이다. 현장에서 PD가 통솔해야 하는 스태프만 70~80명이고, 연기자까지 합치면 200명에 이를 때도 있다. 부장이 되고, 국장이 되면 통솔해야 할 사람들은 더욱 늘어난다. 내게 리더십을 가르쳐주신 분이 있다. 바로 전 MBC프로덕션 사장인 김성희 선배님이시다. 그분은 내가 사원일 때 부장이었고, 부장일 때 부국장이었고, 국장일 때 이사로 일하셨으며, 내가 국장에서 물러나 현장에서 연출을 할 때 전무로, MBC 프로덕션 사장으로… 줄곧 나의 상사로 계셨던 분이다.
원래는 라디오국에서 일하던 선배님이 1981년 내가 일하는 드라마국 담당 부장으로 오셨다. 그때 나는 드라마 <암행어사>를 만들고 있었다. 사실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별의별 사고가 다 일어난다. 촬영하다가 스태프나 배우가 다치기도 하고, 자동차 전복 사고가 나기도 하고, 스턴트맨이 죽기도 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부장은 행정적인 처리에서부터 프로그램 라인업 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
‘정말 못 해먹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선배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지 말고 아침 점심 저녁 먹는 것처럼 (일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사건이 없으면 밥 먹을 때가 됐는데 왜 일이 안 터질까 생각하고, 일이 터지면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생각해.” 이왕 견뎌야 할 것이라면 즐겁게 견디라는 말씀이었다. 리더는 늘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선배님의 지론이었다. 담당 PD나 부장이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두 번째 가르침은 “남의 이야기는 3분 듣고 내 이야기는 30초만 하라”는 것이었다. 리더에게 아랫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큼 큰일은 없다고 하셨다. 얘기를 잘 들어주기만 해도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반 이상은 해결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손해를 보라”는 것이었다. 돈, 시간, 명예… 모든 것이 다 해당된다. 공이 있으면 남에게 먼저 돌리고, 돈 쓸 일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내고, 귀찮은 일이 있으면 내가 더 많이 하라는 말씀이었다.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남을 지휘하려고 하느냐고도 하셨다.
실제로 선배님은 MBC에서는 전설 같은 분이다. 1987년 민주화 선언 이후 방송국 내부에서도 핵심 국장들에 대한 부서원들의 불신임 투표가 있었다. 그때 유일하게 재신임을 받은 국장이 바로 김성희 선배님이었다. 그분이 맡은 부서나 국은 늘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을 뿐 아니라 좋은 성과를 냈다. 아직도 방송국 후배들 사이에 ‘데스크는 김성희 사장처럼 하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선배님이 알려주신 세 가지는 모두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들이다. 사실 나는 부장과 국장 재임 시절 그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결국은 국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1998년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 세 가지 가르침을 실천하기로. 그래서일까? 지난 10년, 나는 참 행복했다. 일도 잘되었다. <허준> <상도> <대장금> <이산>…. 팀원 중에는 “다시 함께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해주는 이도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작년에 <이산> 종방 파티를 하던 날, 나는 선배님과 점심 식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그날 선배님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다. 1년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시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을 하신 상태다. 선배님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