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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책꽂이]

    네 건의 역사 드라마(정진석 지음, 소명출판 펴냄)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가 1904년부터 1910년까지 발행된 항일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둘러싸고 한국과 영국, 일본이 관련된 4건의 국제재판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각국의 외교 기밀문서와 통감부 비밀 기록, 당시 신문기사까지 방대한 자료를 발굴해 국제관계 사법사, 외교사, 의병 투쟁사, 국채보상운동 등 역사의 흐름을 정리했다. 580쪽. 4만 3000원.아무도 죽지 않은 밤(프랭크 하일러 지음, 권혜림 옮김, 지식서가 펴냄) 응급의학 전문의로 25년간 일한 저자가 응급실에서 만난 수많은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 등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이들의 삶을 투명하게 비춘다. 다양한 사연을 지닌 환자들의 아픔을 포함해 의료진의 책임감과 피로감 등을 냉철하게 풀어내며 삶의 숭고함을 일깨운다. 324쪽. 1만 6500원.地오그래피(남영우 지음, 푸른길 펴냄) 땅 위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을 지형·대륙별로 정리해 지리와 역사의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중위도의 잘생긴 땅, 해안선의 만입 상태가 풍부하고 평지와 산악의 굴곡이 다양한 땅에서 걸출한 문명과 문화가 꽃피웠다는 사실은 인류가 아무 땅에서나 살지 않았고, 역사와 함께한 모든 땅에 이유가 있음을 알려 준다. 352쪽. 2만 5000원.기적의 와인(미엔코 마이크 그르기치 지음, 박원숙 옮김, 가산출판사 펴냄) 1976년 와인 시음회 ‘파리의 심판’에서 우승한 ‘샤토 몬텔레나’를 빚어낸 미국 양조업자의 자서전이다. 크로아티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과 조국의 공산화 위기를 넘기고 건너간 미국에서 일궈 낸 ‘기적’의 순간들을 되돌아봤다. 384쪽. 2만원.호수의 일(이현 지음, 창비 펴냄) 성장하는 이들의 마음을 세밀히 살펴 온 작가의 성장소설. 열일곱 살 주인공 호정이 은기와 만나 경험하는 설렘과 사랑, 각자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담았다. 혹독한 사춘기를 보낸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키며 치유의 순간을 길어 올린다. 360쪽. 1만 4000원.일회용 아내(세라 게일리 지음, 안은주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2018년 휴고상 수상 작가의 SF소설. 여성과학자 에벌린 콜드웰은 자신을 닮은 복제인간과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혼란에 빠진다. 작가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가정폭력과 가스라이팅, 인간 사이의 통제와 지배를 조명한다. 404쪽. 1만 5800원.
  • 밸러드·대시너…마니아 설레게 할 해외 유명 작가 SF소설 잇달아

    밸러드·대시너…마니아 설레게 할 해외 유명 작가 SF소설 잇달아

    설 연휴를 맞아 해외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SF 작품이 잇달아 출간돼 SF 마니아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문학은 영국 작가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1930~2009)의 17번째 장편소설 ‘밀레니엄 피플’(2003)을 번역 출간했다.밸러드는 1960년대 인문학의 관점에서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 과학소설을 쓰자는 ‘SF 뉴웨이브 운동’을 이끌었던 작가로 꼽힌다. 더 타임스 선정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가운데 한 명인 그는 고도의 상징적이고 디스토피아적 예지로 가득 찬 작품들로 현대에 대한 세계인의 관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밀레니엄 피플’은 폭탄 테러에 휘말려 사망한 아내의 살인범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어느 심리학자의 행보를 그렸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컴이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출발하려던 중 폭탄 테러로 전처 로라가 희생됐다는 뉴스를 접한다. 그는 런던의 호화로운 동네 첼시마리나에서 실마리를 찾고, 중산층을 일깨워 혁명을 일으키려는 무리를 발견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억압받은 노동 계층이 봉기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 중산층 계급이 반란을 도모했다는 데 있다. 작품 속 혁명가들은 “중산층이 모든 선의를 거두면 사회는 붕괴한다”는 계급투쟁의 의미를 과격하게 실천해 보인다. 작가는 외부 환경과 인간 내면에 펼쳐지는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춰 현대적 안온함의 허상을 들춰냈다.문학수첩은 영화로도 제작된 ‘메이즈 러너’ 시리즈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제임스 대시너(50)의 새 소설 시리즈 ‘죽음의 법칙’ 3부작을 펴낸다. 지난달 1부 ‘마음의 눈’에 이어 최근에는 2부 ‘생각의 법칙’까지 출간했고, 다음 달 중 3부 ‘생존 게임’을 낼 예정이다.게이머이자 해커인 10대 청소년 마이클, 세라, 브라이슨이 가상공간 버트넷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이버 테러 사건에 뜻하지 않게 관여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빠른 전개와 반전으로 몰입감을 높인다. 마이클은 낯선 소년의 몸으로 깨어나고, 이 소년의 이름이 ‘잭슨 포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낯선 사내들이 강압적으로 자신을 끌고 가려고 하고 겨우 도망쳐 나왔지만, 잭슨 포터가 중대한 범죄에 연루됐다는 뉴스에 충격을 받는다. 첨단 디지털 문명에 바탕한 SF적 상상력과 10대들의 감성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서사가 돋보이는 이 책에 대해 미국 서평전문매체 커커스 리뷰는 “디지털 세대를 열광하게 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 ‘눈요기’ 전락한 디스토피아

    ‘눈요기’ 전락한 디스토피아

    유독 물질 유출됐던 마을 관광재난의 타자화에 일종의 경고“시간 흐르면 죽음도 투어 대상”잔혹한 참상이 일어났던 비극의 장소를 여행하는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다시는 이런 고통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이뤄진다. 하지만 여행객은 자신에게 직접 닥치지 않은 재난에 대해 그 고통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재난의 피해를 직접 겪은 이들은 이 같은 외지인의 방문을 접하고 어떤 심정을 느낄까.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 이후 한국 문학의 미래를 여는 젊은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초엽의 신작 SF소설 ‘므레모사’는 출입이 금지된 재난 지역에 감춰진 진실과 예상을 뒤엎는 결말로 독자들을 전율케 한다.가상의 국가 이르슐에는 유독성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마을 므레모사가 있다. 이르슐 정부는 사고 이후 수십 년이 지나 재난지역인 므레모사 관광을 허용하고,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어 기계 다리를 착용한 무용수 유안을 비롯한 6명이 추첨을 통해 관광에 참가하게 된다. 유안은 여행 첫날밤 다른 방문객들로부터 끔찍한 참사를 겪은 뒤 므레모사로 귀환한 사람들의 신체가 ‘좀비’처럼 변했다는 소문을 듣는다. 하지만 실제 만나 본 귀환자들은 겉보기에 멀쩡했고, 므레모사는 오염된 땅처럼 보이지 않았다. 방문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에 홀린 듯 저마다 여행 목적도, 돌아갈 생각도 잊은 채 므레모사에 머물게 되고 유안이 홀로 분투하는 과정에서 귀환자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작가는 전작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독성 먼지에 고통받는 세계 속에서 고립된 공간 프림빌리지를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제시했었다. 이번엔 지구 전체가 아닌 특정 지역에만 닥친 재난으로 범위를 축소하며 재난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내 재앙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할 수 있다’며 남의 재난을 눈요깃거리로 삼는 세태도 꼬집었다. 유안을 제외한 므레모사 방문객들은 아무에게도 공개된 적 없는 이곳을 자신들이 최초로 방문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때로는 주민들을 도우러 왔다는 시혜의식을 내비치기도 한다. 끔찍한 비극 이후에도 기이하게 이 죽음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이목을 끄는 가장 큰 이유다.하지만 방문객들이 기억을 잃고 의식을 장악당하는 것은 재난을 타자화하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고로 여겨진다. 이와 함께 주목할 만한 것은 주인공 유안이 기계 다리에 의존해야 하는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다리를 절단한 뒤 환지증에 시달리고 무용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재활훈련을 거듭 했다. 이런 유안에겐 오히려 남을 의식하며 살 필요 없는 므레모사라는 기형적 공간이 더욱 편안하게 여겨진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일본 후쿠시마나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연상케 하는 므레모사에서 발생한 재난이 그려 내는 풍경은 재난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와 함께 ‘왜 우리는 재난을 그토록 재현하며 반복하려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시간이 흐르면 어떤 죽음은 투어의 대상이 된다. 여행자는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이면서 침범하고 훼손하는 존재”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SF소설이지만 미스터리와 공포, 판타지적 상상력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 어우러진다는 점이 이 소설의 묘미다. 디스토피아를 인간사의 다양한 풍경과 결합해 인상적으로 부각시킨 이 작품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이 말을 건다면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이 말을 건다면

    숲속을 거닐다 보면 한번쯤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무와 수풀이 엿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에 빠질 때가 있다. 실제 우리가 식물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SF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천선란 작가의 신작 장편 ‘나인’은 이처럼 우연히 식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 인물이 진실을 좇는 여정을 그렸다. 열일곱 살 ‘나인’은 이모와 단둘이 살아가는 고등학생이다. 어느 날부터 나인에게 주변 나무와 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손톱 사이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혼란에 빠진 나인에게 이모는 나인이 ‘아홉 번째 새싹’이며 특별한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나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괴로워하지만, 여전히 곁에 있어 주는 친구 ‘현재’와 ‘미래’ 덕분에 전과 같은 삶을 유지한다. 아울러 식물과 교감하는 능력을 통해 2년 전 자취를 감춘 학교 선배 박원우 실종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고,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로 마음먹는다.이 책은 청소년 성장소설의 형식을 띠면서도 서스펜스와 추리, 판타지가 공존한다. 나인과 친구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종 사건으로 포장된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흥미로운 여정이 덩굴처럼 엮이며 뻗어 나간다. 작가가 ‘천 개의 파랑’에서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휴머노이드’라는 낯선 존재를 내세워 인간의 탐욕과 광기를 꼬집었다면, 이번에도 이방인이 된 나인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상의 부조리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나인의 집주인 할머니가 식물을 지칭하며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흙을 뚫고 올라와 전부 견디며 버티는 거잖아. 저렇게 강한 생명이 어디 있어”(380쪽)라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작은 진실을 지나치지 않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10대 청소년의 열정을 보여 주는 듯하다. 나인은 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청소년을 대변하지만, 나인이 현대사회라는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게 한 것은 나인의 과거를 개의치 않는 친구 미래와 현재 덕분이다. 진정한 친구 없이 죽어간 원우와 대조적으로 10대 청소년들에게 우정과 신뢰를 쌓는 일이 우선순위임을 일깨운다. 작가는 부모 세대의 과보호와 허영심이 청소년들의 미래에 미치는 암울한 영향도 지적했다. 나인과 대척점에 서 있는 ‘도현’이 극단적 상황에 처했을 때 그의 부모는 도현의 행위가 자신들의 명성에 어떤 흠을 내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며 살다가 결국 주체성을 회복하게 되는 도현의 모습에서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오늘날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귀 기울여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된다. 작가는 “뒤틀린 어른이 뒤틀린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가 자라 뒤틀린 어른이 돼 다시 뒤틀린 아이를 만드는 세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상처와 슬픔이 무기가 돼 또 다른 출혈을 일으키는 세상으로 향하지 않도록, 그런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나인이 겪는 성장통과 정체성 사이의 고민, 친구들의 남다른 우정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흡입력 있는 서사와 식물에도 영혼이 깃들 수 있음을 보여 준 참신한 상상력, 속도감 넘치는 서스펜스가 돋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도 ‘용기’라는 풀잎이 자라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 [달콤한 사이언스] 화성에서 감자 뿐만 아니라 네잎 클로버도 키운다

    [달콤한 사이언스] 화성에서 감자 뿐만 아니라 네잎 클로버도 키운다

    SF소설가 앤디 위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2015년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로 나온다. 화성 탐사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홀로 화성에 남겨진 와트니는 구조대가 올 때까지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식물학자인만큼 식량 확보를 위해 기지 내에 화성의 흙을 깔고 인분으로 거름을 만들어 감자를 심고 로켓연료와 촉매로 부족한 물을 만들어 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미세중력, 진공상태, 우주방사선, 토양성분 등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영화에서처럼 감자 키우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궁굼해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 과학자들이 화성의 흙과 똑같은 성분을 이용해 식물을 키우는데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농업생물학과, 산림학과, 토양작물과학과 공동연구팀은 화성의 흙에서도 지구에서처럼 식물을 키울 수 있으며 질소고정 박테리아를 이용할 경우 훨씬 더 안정적으로 식물 재배가 가능하다고 2일 밝혔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9월 30일자에 실렸다. 현재 많은 나라들과 민간우주기업들이 화성탐사에 도전하는 이유는 화성에 대한 과학적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화성에 인간을 정착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다. 지구의 흙 속에는 대기 중 질소를 고정시킬 수 있는 박테리아가 존재하지만 화성이나 달과 같은 천체의 토양 성분은 대부분 돌가루 모양의 흙인 ‘표토’(regolith)이기 때문에 질소 고정 박테리아가 존재하지 않아 식물 생장에 필요한 질소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 많은 연구들에서는 표토에서도 식물이 자랄 수 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식물 생장에 필요한 질소가 화성 토양에서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연구팀은 화성의 흙과 똑같은 성분을 만든 인공 표토에서 클로버로 불리는 토끼풀 재배 실험을 했다. 한쪽은 인공 표토에 토끼풀을 심었고, 다른 한쪽은 인공 표토에 지구의 흙 속에서, 특히 식물의 뿌리혹에 붙어 기생하는 질소고정 박테리아(Sinorhizobium meliloti)를 주입한 뒤 생장관찰을 했다. 관찰 결과 질소고정 박테리아를 주입한 쪽 토끼풀은 그렇지 않은 쪽에 비해 새싹이 돋는 정도와 뿌리 및 줄기 생장이 75%가량 더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화성의 토양에서도 식물이 자라기는 하지만 지구에서와 같은 수준으로 재배를 위해서는 질소 공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영화 마션에서 감자를 키울 때 인분을 뿌리는 것은 화성 토양에서 부족한 질소성분을 공급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를 이끈 농업생물학과 제인 스튜어트 교수(식물병리학)는 “이번 연구는 인간 정착을 위해 화성의 표토를 지구의 흙과 비슷하게 만드는 테라포밍을 위해서는 식물과 토양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요즘 과학 따라잡기] 메타버스와 메트로버스/국동학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메타버스’는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이다. 1992년 미국 SF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현실과 똑같이 구성한 3차원 가상세계에서 자신의 아바타가 사회·경제·문화 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언택트가 주류로 자리잡은 요즘 5G 기술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을 지나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차원의 영역을 열어 주고 있다. 메타버스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대도시 시민의 발이 돼 주는 ‘메트로버스’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름은 비슷해 보이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확실히 이질적이다. 도시 통근자를 가득 태운 메트로버스와 사람 대신 아바타가 출퇴근하는 메타버스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의 확연한 대비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SF영화 ‘매트릭스’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수시로 오가는 세상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지털 메타버스의 핵심도 결국엔 사람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과학적 발견의 끝에는 언제나 인간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도 결국 기술적 편리함뿐만 아니라 기술을 통한 더 끈끈한 정서적 연결이 아닐까 싶다.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통한 연결의 중심에 사람이 놓인다면 메타버스는 우리의 일상에 녹아드는 새로운 메트로버스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국동학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 뱀파이어는 왜 외로운 사람을 찾아왔나

    뱀파이어는 왜 외로운 사람을 찾아왔나

    치매와 불구 환자들이 대부분인 인천 철마재활병원에서 자살 사건이 네 차례나 연이어 발생한다. 우연이라기엔 수상한 낌새에 형사 수연은 수사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만난 의문의 여성 완다는 자신이 ‘뱀파이어 헌터’라며 이 사건이 뱀파이어의 소행이라고 말한다. 이 병원 간호사 난주는 빚 독촉에 시달리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허덕대며 고단한 삶에 절망한다. 어느 날 나타난 뱀파이어는 자신이 구원해 주겠다고 손을 내밀고, 난주는 그의 손을 잡고 싶어 한다. SF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혜성처럼 떠오른 천선란 작가의 신작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애증을 세 여성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작가가 창조한 뱀파이어는 외로운 사람들의 피 냄새를 맡고 그들을 찾아 헤매면서도 아름답고 로맨틱한 존재로 나타난다. 수연은 경찰 생활을 통해 고독에 무감각해졌고, 완다는 어렸을 때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외로운 이방인이다. 착한 딸이었던 난주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사람에게서 치유받지 못하고 사람 때문에 거듭 고통을 당했던 이들이 뱀파이어에게 끌리는 것은 필연적 흐름이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끔찍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안온한 피난처이자 완벽한 구원이죠.”(272쪽) 사람을 죽인 뱀파이어의 항변은 우리 주변 이웃들을 외롭게 방치해 둔 인간 사회에 대한 질타로 풀이된다. 아울러 작가는 뱀파이어가 견뎌야만 하는 현실과 시간을 통해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은유적으로 지적했다. 생존을 위해 피를 마셔야 한다는 이유로 배척당해야 했던 존재,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면서도 존재를 숨겨야 하는 고통을 감내할 이들을 무작정 배제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는 섬세한 시선이 엿보인다. 이야기의 흐름을 좇으며 읽다가도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인간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 [우주를 보다] 거대 성운을 움켜쥐는 ‘우주의 손’…초신성 폭발이 창조하다

    [우주를 보다] 거대 성운을 움켜쥐는 ‘우주의 손’…초신성 폭발이 창조하다

    거대한 유령 같은 손이 심우주에서 발견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거대한 ‘우주의 손’은 길다란 손가락으로 뜨겁게 빛나는 구름을 막 움켜잡으려 하고 있다. SF소설처럼 들리지만 이건 현실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찬드라 X-선 망원경이 심우주에서 건져올린 현실 그대로의 이미지이다. 찬드라 팀의 설명에 의하면, ‘우주의 손’은 거대한 별의 죽음인 초신성 폭발로 생겨났으며, 이 폭발로 인해 별의 중심부에 ‘펄서’라는 빠르게 회전하는 초밀도의 별 시체가 남았다. 펄서는 주위에 고에너지 입자로 이루어진 거품들을 날려버렸고, 이것이 초신성 폭발에 의해 뿜어져나오는 별의 잔해와 결합되어 무려 150광년 길이의 손 같은 구조를 만든 것이다. ‘우주의 손’이 움켜쥐려는 빛나는 구름은 RCW 89로 알려진 거대한 성운이다. 손의 중심부에 남아 있는 초신성 MSH 15-52는 지구에서 약 1만7000광년 거리에 있다. 천문학자들은 폭발로 인한 빛이 약 1700년 전에 우리에게 도달했으며, MSH 15-52를 우리 은하계에서 알려진 가장 젊은 초신성 잔해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찬드라 망원경은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우주의 손’ 이미지를 포착한 바 있으며 이를 통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지난해 6월 ‘아스트로노미컬 저널 레터’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손끝에 있는 초신성 폭발의 파가 시속 1450만㎞로 이동하며, 손바닥에 가까운 물질은 그보다 빠른 시속 1770만㎞로 움직이고 있음을 밝혀냈다. 한편 20년 이상 X선으로 우주를 관측해온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은 1999년 7월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를 타고 지구 궤도로 발사되었으며, 1990년과 2003년 사이에 발사된 NASA의 ‘위대한 천문대’ 4개 중 하나이다. 다른 셋은 지금도 여전히 활약하는 허블 우주망원경, 1991년에 발사되어 2000년에 임무를 종료한 콤프턴 감마선 천문대(CGRO)가 있으며, 적외선에 최적화된 스피처 우주망원경은 2003년에 발사되어 작년에 퇴역했다. 
  • 내 우주만큼 넓은 타인의 우주 얘기…어리고 젊고 늙은 ‘김지영’들의 얘기

    내 우주만큼 넓은 타인의 우주 얘기…어리고 젊고 늙은 ‘김지영’들의 얘기

    타인의 집/손원평 지음/창비/272쪽/1만 4000원우리가 쓴 것/조남주 지음/민음사/368쪽/1만 4000원 국내외에서 모두 주목받은 베스트셀러 소설 ‘아몬드’의 손원평과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가 각각 첫 소설집을 들고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두 작가는 부동산 대란, 저출산 고령화와 외국인 혐오, 청년 세대의 박탈감에서부터 가부장제와 여성의 삶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펼쳐 보이며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손 작가의 ‘타인의 집’에 실린 단편 8편의 등장인물들은 송두리째 흔들리는 삶을 한순간 일그러지는 얼굴을 통해 그대로 내비친다. 표제작 ‘타인의 집’의 ‘나’는 아파트 전셋집 셰어하우스에 불법 월세 입주자로 들어가 이를 숨기고자 집주인에게 어설픈 연극을 시도한다. 하지만 집주인이 집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비참한 청년층 주거 현실을 체감한다. SF소설 ‘아리아드네 정원’의 민아는 노인 수용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이민자 청년들에게 의존하지만, 이들이 “모든 건 그들(노인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생긴 일”(131쪽)이라며 세금을 좀먹는 고령자 시설의 폐지를 주장하자 배신감을 느낀다. ‘상자 속의 남자’의 주인공은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하려다 식물인간이 된 형을 보고 어떤 호의도 세상에 베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작가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확장되는 풍경들을 통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독자를 마냥 절망 속에 가둬 두지는 않는다. 형의 희생이 쓸모없었다고 생각한 ‘나’(상자 속의 남자)는 결국 형이 살려낸 소녀와 함께 다른 사람을 살렸고, 세상을 유지하는 힘은 다름 아닌 서로의 존재와 인류애라는 믿음을 보여 줬다.손 작가는 “획일성의 기조가 한층 더 두텁게 사람들을 잠식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리 사회의 맹목적 집단주의, 편 가르기의 폭력성을 비판했다. 이어 “나와 남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며 “나의 우주가 그렇듯, 타인의 우주 안에도 다양한 작동원리가 있다”고 강조했다.조 작가의 ‘우리가 쓴 것’에는 ‘여자아이는 자라서’, ‘매화나무 아래서’ 등 청소년에서 노년에 걸친 다양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는 단편 8편이 실렸다.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 돌봄 노동, 여성의 노년 등 그동안 천착해 온 페미니즘 화두를 끌어안고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는 수많은 ‘김지영’을 다시 소환한다. 예컨대 오래 사귄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청혼을 거부하는 여성이 쓴 편지(‘현남 오빠에게’)를 통해 남녀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남편이 죽은 이후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오로라의 밤’)에서는 수직적 고부 관계가 인정과 양보를 전제로 한 수평적 관계로 바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자전적 성격을 띤 ‘오기’에서 ‘82년생 김지영’ 이후 겪은 악플과 고통스러운 나날을 표현했다. 그는 첫 소설집을 낸 소회를 “다시 읽고 쓰며 그동안 무엇이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며 “약간 멋쩍고 매우 귀한 경험이었다”고 풀어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우리 일상을 술술 읽히는 쉬운 문체로 압축해 보여 준 두 작가의 축적된 경험과 사유, 고민이 한여름 더위를 식혀 줄 듯하다.
  • [책꽂이]

    [책꽂이]

    임진왜란(김영진 지음,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펴냄) 국제정치학자의 시각으로 16세기 한중일 3국이 유일하게 전면전을 벌인 임진왜란의 전개 과정과 국제 관계의 변화상을 펼쳐 냈다. 임진왜란이 ‘7년 전쟁’으로 알려졌지만, 저자는 대마도주의 조선 방문부터 명나라 군대 철수까지 12년간 지속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동아시아 국제질서 차원에서 바라본다. 948쪽. 4만 3500원.하늘의 과학(장조원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30여년간 항공 과학 인재들을 길러낸 장조원 한국항공대 교수가 비행기, 로켓, 인공위성처럼 하늘을 나는 모든 장치가 따라야 하는 수학·과학 법칙을 한 권에 담았다. 여객기를 설명하는 대목에선 승객 탑승 전부터 진행되는 운항 브리핑 등 현장감이 묻어나는 이야기도 가득하다. 612쪽. 2만 5000원.해양세력 연대기(앤드루 램버트 지음, 박홍경 옮김, 까치 펴냄) 영국 해군사학자인 저자가 고대 아테네, 카르타고, 베네치아, 네덜란드, 영국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해양 국가들이 어떻게 국제 질서를 만들어 왔는지 톺아봤다. 이들 국가는 패권 국가의 등장을 경계하며 세력 균형을 이루고자 했고, 무역 활동을 위협받지 않는 한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542쪽. 2만 5000원.木의 건축(배기철·이도형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건축 전문가인 두 저자가 환경친화적 목조 건축의 발전 가능성을 짚어 보고 국내외 주요 목조 건축물 현황을 소개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콘크리트 건축의 내구성이 크지 않고, 국토의 65%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목조 건축물도 건강하고 쾌적한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16쪽. 2만 3000원.놀이터는 24시(김초엽 외 6인 지음, 자이언트북스 펴냄) 김초엽·배명훈·편혜영·장강명·김금희·박상영·김중혁 등 인기 작가 7명이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와 손잡고 즐거움을 주제로 펴낸 앤솔러지. SF소설 ‘글로버리의 봄’, ‘수요 곡선의 수호자’ 등과 같이 여행과 소비, 일과 놀이에서 즐거움을 각자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단편 7편이 실렸다. 288쪽. 1만 4000원.한글빅뱅(금해랑 지음, 해랑한국어 펴냄) 금해랑 시인이 내외국인 수백 명을 직접 가르치며 완성한 한글 교육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학습지 회사 경력 20년인 저자는 글자를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닌, 소리와 의미를 연결해 쉽게 기억하도록 하는 독특한 교육법을 강조한다. 168쪽. 1만 5900원.
  • [열린세상] 구태의연함에 대하여/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

    [열린세상] 구태의연함에 대하여/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

    SF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작가이자 화학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다. 이미 1940년대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게 해서는 안 되며, 이에 반하지 않는 인간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두 가지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로봇이 따라야 할 규칙 3가지를 정리했다. 영화 ‘바이센터니얼맨’과 ‘아이 로봇’에도 나오는 것으로 지금까지도 로봇 개발의 기본 원칙으로 통한다. 그는 1984년 한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2019년에 아이들이 가정에서 컴퓨터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아시모프는 한 인터뷰에서 미래를 배경으로 SF소설을 쓰면서 왜 역사적 사건을 이용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기자 양반, 당신은 이유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쓸 수도 없을 거요. 구태의연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는 인간의 역사가 구태의연한 것들을 그럭저럭 이어 놓은 것과 같다고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환경이 바뀌어도 인간의 태도와 사회제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과거의 선택이 관성 때문에 쉽게 변화되지 않는 현상으로 ‘경로 의존성’이라고도 한다. 손쉽고 익숙함이 오히려 능률을 저하시키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그렇게 구태의연함이 뿌리박혀 ‘꼰대’로 전락하고 마는가 보다. 북한이 지난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당규약이 최근에 입수되자 언론과 전문가들이 경쟁적으로 분석을 내놓았다. 이미 1월 북한이 ‘조선로동당 규약 개정에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통해 내용을 밝혀 어느 정도 변화를 예상했었기에 그렇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니었다. 이번 당규약 관련 기사를 처음 보도한 신문이나 이어 후속 보도한 매체를 보면 그 내용과 입수 절차, 형식 등 모든 면에서 현재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관한 취약성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언론의 구태의연한 보도 형태도 문제지만 우리의 희망적 사고나 기대감이 낳는 오독과 억측도 있다. 마치 지금도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대화하자는 신호로 해석하는 구태의연함과 다르지 않다. 우리측 정책 결정자들 역시 김정은 시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김일성ㆍ김정일 시대 사람들과 이야기하려는 것 같아 보인다. 문구를 바꾼 것에만 의미를 두고 따라가면 북한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없다. 당규약이 바뀌어서 북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하고 북도 변했으니 당규약도 바뀐 것이다. 마치 우리의 표준어가 바뀌듯이 말이다. 큰 틀에서 보면 기존 당규약의 문구는 현실과 많이 다르니 이번 변화는 그걸 현실에 맞게 바꾼 것이다. 당규약을 현실에 맞게 수정했다고는 하지만 북한 노동당의 존립 근거와 목표, 이상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북한 역시 여전히 이상과 현실에 차이가 있다. 당규약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삭제한 것을 두고 남한 혁명통일론 폐기, 통일 포기 후 두 개의 조선(Two Korea) 지향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무의미한 이유다. 오히려 남북 관계나 미국과의 협상 방식이 아니라 국방력을 통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해외 동포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이제 남북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통일의 개념과 경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고민이다. 북한은 바로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를 통해 ‘통일포기론’에 대해 반박하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고 있다. 이는 우리의 오독에 대한 불편함도 있겠지만 자기 스스로의 합리화도 있다. 아시모프는 “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때 듣게 되는 가장 흥분되는 구절은 ‘유레카’가 아니라 ‘거 참 희한하군’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다음에 또 당규약을 개정하든 또 다른 중요한 무언가를 발표한다고 해도 이번처럼 내가 다 아는 것처럼 서둘러 유레카를 외치는 성급함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해 본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북한은 내게 희한한 존재다. 더이상 북한 문제에 대해 눈에 띄는 이야기를 선점해 내 영역 확보에 매진하려는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내가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북한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북한이 뭐를 해도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성숙한 북한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북한에 대해 익숙하지만 구태의연한 지금까지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 한반도 평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방 탈출하며, 재활용 작품 보며 생각했지… 오늘 나 분리수거 잘했던가?

    방 탈출하며, 재활용 작품 보며 생각했지… 오늘 나 분리수거 잘했던가?

    코로나19로 환경과 생태 파괴에 대한 경각심은 커졌지만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나란히 열리는 ‘시간 여행사 타임워커’와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기획전은 관람객이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한 독특한 생태환경 전시로 눈길을 끈다. ‘시간 여행사 타임워커’(8월 29일까지)는 젊은층에서 인기 있는 방 탈출 게임을 접목한 체험형 전시다. 시간 여행이 자유로운 2031년 을숙도가 배경이다. 관람객은 타임머신 ‘TW07´호를 타고 이동하던 중 과거와 미래 틈새 공간에 불시착하게 되는데, 7개의 방에 숨겨진 비밀들을 차례로 풀어야 귀환할 수 있다. 미술관이 자리한 사하구 을숙도는 1990년대 후반까지 쓰레기 매립지였다. 2005년 철새공원으로 변모하기까지 을숙도는 생태환경 이슈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방 탈출을 위한 단서를 찾는 과정은 곧 을숙도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여정이다. SF소설가 심너울이 전시의 틀거리인 소설 ‘시간 방랑자’를 집필했고, 이를 기반으로 건축가 정이삭, 미술가 김진휘, 몰입형 미디어아트를 연구하는 중앙대 FMA연구소 등 다방면 예술가들이 협업했다.‘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9월 22일까지)은 미술 작업 과정 및 미술관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해외에서 작품을 운송할 때 선박을 이용하면 항공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분의1로 줄일 수 있지만 비용은 4배가 더 들기에 대부분 미술관이 항공 운송을 선호한다. 전시는 이러한 자기비판에서 출발해 미술관이 환경 오염을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한다. 버려진 마스크 수천장으로 만든 스툴(김하늘 ‘스택 앤 스택’), 강변에서 주워 모은 각목과 나뭇가지를 활용한 설치작품(바깥미술회 ‘호흡’)을 비롯해 미술과 환경의 관계를 짚는 90여점의 작품이 관객을 맞는다. 부산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방 탈출 게임·쓰레기로 만든 작품…부산현대미술관, 이색 환경전 눈길

    방 탈출 게임·쓰레기로 만든 작품…부산현대미술관, 이색 환경전 눈길

    코로나19로 환경과 생태 파괴에 대한 경각심은 커졌지만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나란히 열리는 ‘시간 여행사 타임워커’와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기획전은 관람객이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한 독특한 생태환경 전시로 눈길을 끈다. ‘시간 여행사 타임워커’(8월 29일까지)는 젊은층에서 인기 있는 방 탈출 게임을 접목한 체험형 전시다. 시간 여행이 자유로운 2031년 을숙도가 배경이다. 관람객은 타임머신 ‘TW07‘호를 타고 이동하던 중 과거와 미래 틈새 공간에 불시착하게 되는데, 7개의 방에 숨겨진 비밀들을 차례로 풀어야 귀환할 수 있다. 미술관이 자리한 사하구 을숙도는 1990년대 후반까지 쓰레기 매립지였다.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로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1987년 낙동강 하굿둑 완공으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옛 모습을 잃고 방치됐다. 2005년 철새공원으로 변모하기까지 을숙도는 생태환경 이슈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방 탈출을 위한 단서를 찾는 과정은 곧 을숙도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여정이다. SF소설가 심너울이 전시의 틀거리인 소설 ‘시간 방랑자’를 집필했고, 이를 기반으로 건축가 정이삭, 미술가 김진휘, 몰입형 미디어아트를 연구하는 중앙대 FMA연구소 등 다방면 예술가들이 협업했다. 방 탈출 게임은 기본적으로 기록 게임인 만큼 단점도 있다. 빨리 문제를 풀어서 시간을 단축하는 데 몰두하다 보면 작품 하나 하나에 담긴 메시지를 곱씹기 어려울 수 있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적절한 시간 안배가 필요한 전시다.‘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9월 22일까지)은 미술 작업 과정 및 미술관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해외에서 작품을 운송할 때 선박을 이용하면 항공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분의1로 줄일 수 있지만 비용은 4배가 더 들기에 대부분 미술관이 항공 운송을 선호한다. 전시는 이러한 자기비판에서 출발해 미술관이 환경 오염을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한다.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전시장 가벽은 석고 대신 재사용 가능한 나무 패널로 대체하고, 항공 운송을 최소화하고자 일부 작품은 설명서를 전송받아 현지에서 다시 제작했다. 버려진 마스크 수천장을 의자로 탈바꿈시킨 김하늘의 ‘스택 앤 스택’, 강변에서 주워 모은 각목과 나뭇가지를 활용한 바깥미술회의 야외 설치작품 ‘호흡’, 국제 운송업체인 페덱스 상자를 재료로 작품이 전시장에 도착할 때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월리드 베시티의 ‘24인치 구리(페덱스 대형 크래프트 박스)’ 등 미술과 환경의 관계를 짚는 90여점의 작품이 관객을 맞는다. 부산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지갑 속으로 얼씬도 안 하시는 세종대왕님

    지갑 속으로 얼씬도 안 하시는 세종대왕님

    2011년 4월 전북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마늘밭에서 5만원권 현금다발이 무더기로 발견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40대였던 이모씨 형제가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으로 벌어들인 범죄 수익금을 땅속에 묻어 둔 것을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이 발견했다. 이들이 플라스틱 통 24개에 나눠 마늘밭에 숨긴 현금은 무려 110억 7800만원이나 됐다.종이돈 시대가 점차 저물어가면서 이 같은 일도 사라질 전망이다. 밀레니엄 세대인 대학생 A(20)군의 지갑에는 현금이 없다. 그의 안주머니에는 카드만 넣을 수 있는 작은 지갑이 전부다. 그마저 집에 놓고 나오곤 한다. 휴대전화만 들고 나와도 일상생활에 전혀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식사, 대중교통 이용, 생필품 구매, 이체 등 모든 금융거래를 휴대전화에 저장된 신용카드와 모바일 뱅킹 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아예 지갑을 소지하지 않는 게 트렌드가 됐다. 이런 현상은 30~40대 직장인들에게도 일반화됐다.자영업자들도 현금을 만져 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소액 결제를 하는 편의점과 커피숍 등에서도 점차 현금 거래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금이 사라지면서 걸인도 동냥 깡통 대신 카드 단말기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의 걸인은 동냥을 받을 때 QR코드나 바코드로 받는다. ●코로나에 현금기피 현상 더 두드러져 신용카드부터 직불카드까지 각종 ‘플라스틱 머니’가 현금 거래를 대체한 지 오래다. 모바일 결제 솔루션까지 가세하면서 현금 수요는 급격히 줄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현금 실종을 가속화했다. ‘바이러스가 지폐에서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면서 현금 기피 현상이 두드러졌다. 현금 뭉치가 두둑한 지갑이 부의 상징이던 시대는 흘러간 옛 노래가 됐다. 계산대 앞에서 뭉칫돈을 세면, 한 세대 전에서 온 사람이거나 뒤가 구린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광풍까지 몰아쳐 종이돈 시대의 종말을 예고했다.지갑 속 현금은 나이와 반비례한다. 디지털 시대를 앞서가는 젊은층일수록 현금을 적게 가지고 다닌다. 반면 장년과 노인들은 여전히 현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이는 화폐가 시대상을 반영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9세 이상 성인남녀 2650명을 대상으로 한 ‘2019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형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소 국민이 가지고 다니는 현금은 5만 3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7년 8만원에 비해 2만 7000원이 줄어든 것이다. 나이별로는 50대가 평균 7만 1000원을 가지고 다니지만 20대는 2만 5000원으로 3분의1 수준이다. 화폐는 역사의 변천에 따라 변해 왔다. 물물교환을 했던 원시시대는 곡식이나 가축이 화폐 구실을 했다. 이후 소금이나 옷감, 가죽 같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물 다음으로 발전한 화폐는 금속이다. 청동기시대는 청동검이, 철기시대는 철전이, 그 뒤에는 금·은이 사용됐다. 이후 지폐가 발명·통용됐다. 지폐 역시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미 현금보다 디지털 화폐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동전이 먼저 퇴출당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은 ‘2015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향후 추진 과제의 하나로 ‘동전 없는 사회’를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이를 위해 거스름돈을 카드에 충전하거나 계좌로 이체해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충격을 줄이기 위한 과도기적 방안일 뿐, 결국 동전은 물론 종이돈도 사라질 것이라는 예고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언이다.●유럽 ‘현금 없는 국가’로 진일보 실제로 유럽 여러 나라는 ‘현금 없는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2014년부터 지폐와 동전을 발행하지 않는 대신 최소의 필요량만 위탁 생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문가들은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현금 없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종이돈 없는 세상이 SF소설 속에 나오는 얘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게 한다. 그 하나가 모든 거래가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화폐로 거래되는 세상이다. 여러 국가는 투명성과 정확성 때문에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 디지털 화폐는 거래내용만 추적하면, 그 돈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디지털 화폐를 쓰면 탈세와 뇌물 공여 등 뒷거래가 불가능하다. 사실상 화폐 개혁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반면 국가가 모든 개인의 거래를 파악할 수 있어 국가 권력이 미치는 영향력과 범위가 급격히 증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 화폐는 디지털 거래 기록을 남기면서도 익명성을 보장한다. 비트코인은 중앙의 서버 없이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곳에서 사용 가능하기에 국경도 없다. 국가가 관리할 수 없는 디지털 화폐인 셈이다. 현금 이후 시대인 디지털 화폐 세상을 예고하는 두 개의 화폐 체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 기반의 디지털 화폐와 익명의 개인 네트워크로 이뤄진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화폐가 그것이다. 이제는 동전(coin)의 시대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동전은 금속으로 만든 돈이 아니라 네트워크 속에서 진화하는 화폐들이다. 지갑에서 사라진 현금들이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현금을 세거나 카드로 계산하는 대신 암호화폐로 결제하는 시대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인간의 경계는 어디까지… 주인 살해로 법정 선 안드로이드

    인간의 경계는 어디까지… 주인 살해로 법정 선 안드로이드

    인간의 법정 조광희 지음 솔/248쪽/1만 4000원 백 년 뒤 세상에서 인간과 유사한 인공지능(AI) 안드로이드 인간이 영혼까지 갖게 된다면, 이는 인간일까 기계일까. 2018년 추리소설 ‘리셋’으로 주목받은 조광희 작가가 최근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두 번째 장편 소설 ‘인간의 법정’을 펴냈다. 변호사이자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작가는 이번 SF 철학소설을 통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인간과 생명의 본질에 대해 독자에게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22세기는 자신과 똑 닮은 안드로이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안드로이드 인간은 내 말벗이 돼줄 수 있고, 아침상을 차려줄 수 있다. 인공언어 개발자 ‘시로’는 자신과 정말 잘 맞는 안드로이드 동료를 갖고 싶어 자신과 동일하게 제작된 ‘아오’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아오를 마주하자 잘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존재하지만, 인공지능에는 없는 ‘의식’을 심어주게 되고, 아오는 주인에게 복종하게 돼 있는 알고리즘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오와 같이 의식을 얻은 안드로이드들은 인간 중심 사회에서 연대를 시도한다. 이런 와중에 아오가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법정 다툼으로 번진다. 변호사 윤표는 아오의 폐기 처분 취소 소송을 통해 “의식이 있는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서 인간에게 적용되는 형사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소설에서는 미래 SF 판타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예측적 풍경을 통해 우리 사회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묘사한다. 법정에선 대법원 서버와 연결된 AI 판사가 기계적으로 형량을 산출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다움의 영역이 점차 사라져 가는 미래 법 체계와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통렬히 꼬집는 우화를 펼쳐낸다. 아울러 AI가 이야깃거리로서 무궁무진한 소재가 될 수 있음도 보여준다. 방민호 문학평론가는 “자아인식에 관한 ‘고전적 질문’의 경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던지면서 한국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소설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놀라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소설의 묘미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인간의 선택에 의해 의식을 갖게 된 안드로이드가 약자로써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목소리를 드러냈다는 데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동물·식물을 포괄하는 모든 생명체의 완전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안전과 자유를 존중하며, 종의 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편으로 모든 생명체와 공생을 꿈꾸는 작가의 고민은 현실에서 인간임에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수많은 약자의 목소리도 함께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프랭크 허버트·문윤성, SF소설 거장의 재발견

    프랭크 허버트·문윤성, SF소설 거장의 재발견

    국내외 옛 SF 거장들의 고전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열렸다. 황금가지는 프랭크 허버트(1920~1986)의 장편소설 ‘듄’을 20년 만에 신장판 전집(6권)으로 재출간했다.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된 ‘듄’은 같은 해 제정된 네뷸러상의 첫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지금까지 2000만부 넘게 판매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SF 소설이 됐다. 국내에선 2001년 첫 번역본이 출간된 이후 20년 만에 다시 나왔다. ‘듄’은 허버트가 기자로 활동하던 1950년대 후반 미국 오리건주 해안의 모래언덕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이를 조사하며 시작됐다. 모래언덕의 장대한 풍광에 매료된 허버트는 이를 바탕으로 6년간 원고를 집필한다. 소설은 사막 행성 ‘아라키스’를 배경으로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와 그의 자녀 레토와 가니마가 다른 정치세력들과 벌이는 권력투쟁을 그리고 있다. 1984년에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듄’을 영화로 제작했고, 오는 10월에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도 개봉될 예정이다.아작 출판사는 국내 최초 장편 SF 소설을 쓴 문윤성(1916~2000·본명 김종안) 작가의 첫 작품집 ‘월드컵 특공작전’을 사후 약 20년 만에 펴낸다. 문 작가는 1967년 국내 최초의 성인용 SF 장편소설 ‘완전사회’를 출간해 한국 SF 문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이번 소설집에는 작가가 장년기에 쓴 수십 편의 중·단편 가운데 표제작 ‘월드컵 특공작전’을 포함한 8편을 엄선해 실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1980년대 냉전 당시 양대 초강대국이던 미국과 소련의 과학기술을 한국이 앞선다는 상상력이 작품 전체에 깔렸다는 점이다. 예컨대 1983년 소련의 대한항공(KAL) 007 여객기 격추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련 공습’에서는 한국이 당시 미지의 스텔스 기술을 활용해 소련에 복수한다. 또 ‘덴버에서 생긴 일’은 한국인이 미국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자 물질에서 기억을 뽑아내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오해를 푸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차별금지법, 동성결합, 동성결혼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차별금지법, 동성결합, 동성결혼

    얼마 전 대학생 딸이 물었다. 아빠는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해? 난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탕수육을 예로 들어 보자. 아빠는 소스를 부어서 먹고 너희는 찍어서 먹지? 하지만 취향이 다르다고 서로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니? 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빠가 성소수자들을 비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딸아, 아빠도 네게 편견이 없어서 기쁘단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지인이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였다. 한 노인이 한참 성소수자를 맹비난하더니 지인에게 이렇게 묻더란다. “당신 자식이 호모라면 좋겠우? 솔직히 싫잖아?” 지인은 노인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물론 제 아들이 동성애자가 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제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손가락질하는 놈이 있으면 가만 두지 않겠습니다.” 정의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2007년 참여정부에서 ‘차별금지법안’이 보수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이후 벌써 발의만 여덟 차례라는데 이번에도 통과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과 오해, 편견이 여전한 탓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며 퍼포먼스까지 펼쳤던 미래통합당도 성소수자 조항을 빼고 논의하자며 한발 빼고 있다. 미국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은 2012년 TV 토론에 나가 동성결혼의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누굴 사랑합니까? … 결혼 당사자가 레즈비언이든 게이든, 남녀든 상관없습니다.” 조 바이든에게 선수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버락 오바마 역시 재선을 앞두고 동성결혼의 정당성을 받아들였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누구나 공정하고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그는 성소수자 공동체를 위해 보다 광범위한 평등이 필요하며 동성결합(civil union)을 넘어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그 고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동성결합’이다. 미국은 대부분 주에서 동성의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동성결혼까지는 아닐지언정 동성 부부의 권리를 거의 모두 법으로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대만 등이 지역별로 동성결합을 법으로 인정한다. 우리는 차별금지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2013년 네뷸러상을 수상한 SF소설 ‘2312’는 흥미로운 전망을 내놓았다. ‘2312’는 2312년 즈음 지구와 우주의 생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운영될 것인가를 과학적, 사회적으로 추리한 이른바 ‘하드SF’다. 저자 킴 스탠리 로빈슨에 따르면 미래 세계에서는 수명 연장, 질병 치료 등의 이유로 성 이미지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는 선택 가능한 범주를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여성, 남성, 자웅동체, 암수모자이크, 남녀추니, 양성애자, 혼성애자, 간성애자, 무성애자, 거세자, 비성애자, 미분화자, 게이, 레즈비언, 호모, 성도착자, 동성애자, 다성애자, 복합성애자, 변성애자, 버다치, 히즈라, 두 개의 영혼….” 동성애를 인정하는 순간 나라가 큰일날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많이 여유로워졌다. 우리는 TV에서 홍석천, 하리수를 스스럼없이 만나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열광했다. 미국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은 동성결혼을 인정하자는 오바마, 바이든이 아니라 오히려 극심한 차별주의자인 트럼프다. 비록 가설이지만 킴 스탠리 로빈슨의 미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미 성전환 수술이 가능하지 않은가. 세상은 이렇게 미래와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건만 우리는 여전히 답답한 인습과 편견과 남녀차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속된 말로 후지다.
  • 과학&SF소설분야 역대 최다 판매

    과학&SF소설분야 역대 최다 판매

    과학, SF소설 분야의 올해 서적 판매량이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교보문고가 밝힌 1~7월 도서 판매 집계에 따르면, 과학 분야 서적 판매량은 전년 대비 47% 늘었고, SF소설 분야는 지난해 대비 12% 신장했다. 두 분야 모두 10년 전인 2011년과 비교해 판매량이 두 배 가까이 많아졌다. 과학 분야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관심이 크게 늘었다고 교보문고는 분석했다. 바이러스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관한 교양 과학서는 물론, 학교를 가지 못한 학생들이 수학 관련서를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책소개 TV프로그램에 소개된 책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코스모스’(사진)가 1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2위, ‘이기적 유전자’가 3위를 차지하는 등 고전 반열에 오른 책들이 이에 힘입어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포진했다. 이밖에 ‘위험한 과학책’ 시리즈, ‘바디’, ‘이상한 수학책’ 등 올해 나온 책들도 인기를 끌었다. SF소설 분야는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비롯해 베르나르 베르베르, 테드 창의 소설들이 순위권에 올랐다. 과학과 SF소설 분야 모두 여성 구매 비중이 크게 확대됐다. 5년 전인 2015년과 비교할 때 과학 분야는 여성 비중이 47%에서 50%로, SF소설은 54%에서 63%로 뛰었다. 2015년에는 40대가 과학과 SF소설 분야 서적을 가장 많이 구입했지만, 올해는 30대의 비중이 가장 많았다. 교보문고 측은 “과학이 어려운 분야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해당 분야의 판매량이 계속 신장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과학 분야를 교양습득, 혹은 취미로 생각하는 성인 독자들이 많이 늘어난 게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1~7월 교보문고 과학, SF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 <과학> 1.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알마) 3.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4. 더 위험한 과학책(시공사) 5. 바디: 우리 몸 안내서(까치) 6. 이상한 수학책(북라이프) 7. 이해하는 미적분 수업(바다출판사) 8.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앤파커스) 9. 바이러스 쇼크(매일경제신문사) 10. 떨림과 울림(동아시아) <SF 소설> 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 기억. 1(열린책들) 3. 숨(엘리) 4. 죽음. 1(열린책들) 5. 당신 인생의 이야기(엘리) 6. 돌이킬 수 있는(아작) 7. 아들 도키오(비채) 8. 종이 동물원(황금가지) 9. 고양이. 1(열린책들) 10. 파피용(열린책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안개와 갈대숲… 老작가를 따라 ‘나와 너의 무진’을 필사하다

    안개와 갈대숲… 老작가를 따라 ‘나와 너의 무진’을 필사하다

    나에게 ‘무진’은 첫 필사(筆寫)의기억이 각인된 장소다. 언어영역의 지문으로나 보던 소설 원문을 통째로 베껴 쓰는 일이 대학에 입학한 첫 학기의 중간고사 리포트였다. 문학평론가 서영채 교수가 강의하던 현대한국문학사 시간의 일이었다. 소설 ‘무진기행’의 전문을 보는 것도 처음인데 필사라니. 처음에는 정직하게, 중간쯤에는 발랄한 필기체로 쓰다 종내에는 나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문장들을 베껴 나갔다. 단편소설은 생각보다 길었고, 분명 한글인데 이상하게 그림들 같았다. 놀다가 졸다가 연애를 시도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맥주나 마시자는 심정으로 소설을 옮겨 그렸다. 여귀(鬼)의 입김이 우리에게도 옮겨 온 것 같이 추운 밤이었다. 에어컨의 전원을 끄며 건너다본 교수 연구실의 불빛은 그날도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함께 고되게 벼락 필사를 하던 동기이자 이 여행에 동행하게 된 석양정에게 내가 물었다. “근데 교수님도 필사를 다 하셨을까?”전남 순천 무진길. 4월답지 않은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군락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순천문학관이 나온다. 순천시가 2010년에 개관한 이곳은 김승옥관과 정채봉관으로 나뉘어 있다. 도로를 벗어나 얼마를 더 달렸는데도 갈대숲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디쯤에 김승옥 선생께서 미리 도착해 계신다고 했다. 2003년 이문구 소설가의 장례식에 가던 차 안에서 쓰러진 뒤로 언어 능력을 많이 상실한 까닭에 일상적인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선생께서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지 않은 지도 오래였고, 공개적인 자리에 서는 일도 드물다고 했다. 선생의 건강 상태에 따라 준비해 간 질문의 답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말도 전해져 왔다. 코로나19 탓에 문학관은 잠정적으로 폐쇄된 상태였다. 선생께서 직접 순천문학관 내에 있는 김승옥관의 문을 열어 줬다. 지그려 둔 사립문을 여는 손끝이 매우 활기차 보였다. 그날 오후 우리는 내내 선생의 손끝만 따라다녔다. 음성 대신 그려 주는 손말을 해석해 가며 선생의 지난 시간을 듣는 갈대숲 속이라니. 어떤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닫힌 문을 여는 시간이면 충분했다.선생의 안내로 김승옥 전시관을 둘러봤다. 전시물들과 우리 사이에는 유리관이 있었고, 선생께서는 그 유리관에 대고 손끝으로 단어를 하나하나 써 가며 우리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줬다. 동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던 ‘국민학생’ 때의 일부터(선생은 1941년생이다.) 서울대 불문과 재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김이구’라는 이름으로 만화 연재를 시작한 일화, 단체 사진 속에서 선생의 친구들을 찾아 이름을 알려 주는 손끝을 따라가고 있자니 병색은 간데없고 활기차고 옛이야기 해 주기를 좋아하는 어른 한 분이 오롯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선생의 활기찬 손끝 따라 거닐다 질문마다 선생은 품에 꼭 지니고 다니던 메모지에 단어와 그림을 그려 가며 대답을 했다. 곁에 있던 에세이스트 석양정과 박진규, 김경희 소설가가 선생의 ‘새로운 창작물’에 해석을 곁들여 줬다. 선생의 근황을 여쭙자 “서울에서 3일, 순천에서 사나흘 정도를 지낸다”고 했다. 4월에는 그림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순천시청에서 ‘무진기행’ 관련 그림 30부를 요청해 5월 전시를 준비하고 있지요.”혹 엿보기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 작업 진행 여부를 물었는데 “이제부터…”라며 말끝을 흐렸다. ‘역시 작가를 움직이는 건 마감 시간인 건가’라는 동의였는지 동석한 작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작가 “순천문학관이 2010년 개관된 이래 계속 이곳에서 생활을 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곳 자랑 좀 해 주세요.” 김 선생 “순천은 갈대가 유명하고요. 포구에 들어오는 배와 철새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순천만 갈대 습지의 탐방로를 따라가면 용산전망대가 나오는데, 그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순천만의 노을이 매우 일품입니다. 그리고 순천문학관에는 정채봉과 김승옥이 있지요.” 이 작가 “이곳 풍경은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무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시대적·개인적 슬픔이 무진기행 쓰게 만들어 김 선생 “무진은 평양과 서울, 부산 등 한반도의 모든 지명을 포함한 이름이에요. 이곳이기도 하고, 이곳이 아니기도 하죠. 신과 악마가 남녀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어머니와 태중의 아기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섞인,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장소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신과 악마의 사이에서 급기야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소설 ‘무진기행’의 맨 마지막 문장)고 토로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쓰던 당시에는 제게 어떤 슬픔 같은 것이 컸어요. 외교관이 되려던 꿈이 좌절됐고, 두 살 연상의 연인과 결별을 겪었지요. 시대적 아픔도 컸고요. 가족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 슬픔이 내게 그 소설들을 쓰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작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소설을 한 번쯤 필사하거나 문장을 외워 가면서 습작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도 일어나고, 교과서에도 실리고, 언어영역의 지문으로도 활용됐는데, 그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 선생 “제가 소설을 쓴 것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아주 짧은 시기입니다. 그 이후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제 작품을 읽어 주고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려고 노력해 줘서 매우 고맙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더 큰 말을 찾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제 소설로 된 문제를 풀어 본 적은 없습니다. 하하.”이 작가 “아까 전시관에서 유독 친구분들과의 사진을 오랫동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쭤도 될까요?” 김 선생 “김현, 최하림, 김치수, 최인훈, 최인호, 박태순, 이문구…. 친구들이 다 먼저 갔어요. 그중에 김현은 가끔 꿈에도 나와요. 많이 보고 싶어서 그렇죠.” 이 작가 “올해 선생님의 SF소설 ‘2020년, D9 기자의 어느날’(동아일보 1970년 4월 1일자, 창간 50주년 특집호)이 발표된 지 50주년이 됐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선생님 소설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앤솔러지 한 권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김 선생 “후배들이 좋은 소설을 쓰고 있다니,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저도 천천히, 조금씩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끝내 그럴 겁니다.”●선생의 크고 단단한 발음으로 “좋다” 인터뷰는 오랜 시간에 걸쳐 띄엄띄엄 건네 오는 단어로 진행됐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건넨 시간이었다. 선생께서는 그림과 단어들에 어떤 한계가 있다고 느꼈던지 우리에게 다시 ‘인터뷰 답변지’를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내 사정을 알고 있던 김경희 작가가 ‘이 작가가 지금 첫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말을 전하자 막 걸음을 떼려던 선생은 나를 돌아보며 “좋다”고 크고도 단단한 발음으로 말씀해 주셨다. 그날 내가 들은 선생의 언어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도 호쾌한 발음이었다. 인터뷰를 위한 현장에서는 ‘김승옥 다큐’ 작업이 한창이었다. 4년 전부터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에 담고 있는 김병수 PD(아르띠잔)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로 그날도 선생의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옛날 선생께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영화 연출을 하던 시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와 ‘겨울여자’, ‘영자의 전성시대’를 비롯해 16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썼고, ‘감자’는 시나리오는 물론 직접 연출까지 한 이력이 있는 선생에게는 오히려 영상에 담기는 것보다 영상 밖에서 ‘김승옥’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선생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TV와 영화로 상영될 예정이란다. 거장의 옛날을 예우하는 사람들의 혼신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무진’의 갈대숲이었다. 월요일이 됐지만 약속한 답변지는 도착하지 않았다. 화요일이 돼도, 금요일까지도 답변지는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갈대숲에서의 대화를 하나씩 곱씹던 나는 급기야 선생이 답변지를 한 30년 정도 늦게 줘도 괜찮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고야 말았다. 선생은 다시 ‘다음 월요일까지 답변지를 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따름이었다.●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하는 삶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돼 보니 스무살 적에 도서관에서 가졌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굳이 몰라도 될 것만 같다. 세상에는 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를 하는 삶이 있기 마련이고, 게다가 그 시간은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우주선들의 도킹 같은 것이니 말이다. 누군가를 무진으로 초대하는 일은 한 세계가 다른 세계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우리는 김승옥 선생과 그의 소설로부터 꽤 괜찮은 시간을 부여받은 셈이라고, 무진이라는 시공간 안에서는 어떠한 해석도 무방하다고 여기면 어떨까. 나는 훗날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너의 출생을 축복해 준 안개와 갈대숲의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리라 마음먹었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줄 답변지를 고르느라 갈대숲 속에서도 아주 많이 바쁘시다고, 무진의 안개를 그려 낼 시간조차도 답변지를 작성하는 데 쓰고 계시다는 사실도 넌지시 전해야겠다. 내 아이는 언제쯤 소설을 필사하고, 삶과 시간이 주는 비의에 기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 그곳과 여기 그리고 나와 너의 무진에서.
  • 광화문 상공에 UFO 띄울까…우리네 일상이 담긴 생활SF

    광화문 상공에 UFO 띄울까…우리네 일상이 담긴 생활SF

    ‘한국 SF계의 핵심 부품’(정세랑 작가), ‘2000년대 한국의 SF에서 가장 주목받을 만한 젊은 작가’(복도훈 문학평론가). 동료 작가와 평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배명훈(42) 작가가 데뷔 15년, 출간 11년 만에 첫 소설집 ‘타워’(왼쪽·문학과지성사)를 복간했다. 첫 에세이집 ‘SF 작가입니다’(오른쪽·문학과지성사)의 출간과 함께다. 최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대뜸 “표지가 예쁘게 나와서 좋다”며 싱글벙글했다. “표지가 예쁘려면 편집자가 중간에서 조율을 잘해야 하고 제가 생각했던 메시지가 디자인으로도 잘 소화가 돼야 하죠.” ‘표지가 예쁘다’는 것은 그의 말처럼 편집자와 디자이너 모두와 ‘통했다’는 방증이지만, 2005년 데뷔한 이래 배명훈의 행보는 한국 SF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수순이었다. 그래서 그의 에세이집 ‘SF 작가입니다’의 주된 주제는 ‘한국에서 SF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일단 ‘과학 소설’ 앞에 ‘공상’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붙이는 데서 알 수 있듯 SF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그의 책에 따르면 SF는 ‘과학 소설’(Science Fiction) 또는 반드시 과학에만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의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에서 온 말이다.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려 봄’을 뜻하는 공상(空想)을 과학 소설과 함께 쓰는 건, 판타지와 SF를 함께 다룬 미국 잡지를 번역하며 쓴 일본식 조어다.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당신 직업이나 단체 이름 앞에 공상을 붙여 보시라. 공상서점, 공상출판사, 공상신문사, 공상기획팀.’(87쪽) SF를 쓰는 소설가로서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과연 ‘광화문 상공에 UFO를 띄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거대 우주선이 난무하는 SF는 제국의 장르이고 그래서 한국인의 공간에는 우주가 없다. 우주적 스케일의 일에 한국인이 능동적 주체가 되리라는 기대감이 한국 독자들에겐 많지 않다. “아직도 한국 작가의 SF에 미국 국적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요. 거대 우주선이나 로봇이 나와야 ‘진정한 SF’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쓰는 글은 ‘소소한 일상이 담긴 생활 SF’라고 하면서 ‘우리랑은 다르다’고 하는 거죠. 근데 저는 그게 중요했어요. SF로 우리 삶을 다루는 거요.” 그렇게 2009년, 당시 한국 현실에 대한 은유가 담긴 인구 50만명을 수용하는 초고층 초대형 빌딩 ‘빈스토크’의 서사, ‘타워’가 탄생했다.으레 SF 작가들은 과학 전공이겠거니 싶지만 배 작가는 서울대에서 외교학을 전공했다. 그때 배운 국제정치학 개념들은 뜻밖에도 SF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가령 ‘현실주의’는 국제 정세가 철저히 파워 게임이라는 주장이며, 대안으로 등장한 ‘구성주의’는 ‘그 같은 현실은 당신이 구성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작가가 보기에 리얼리즘을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삼는 순문학에는 실제 정보기술(IT)의 발전 양상 같은 것들이 더디게 반영된다. “지금보다 앞선 시대 삶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이게 리얼한 거야’라고 구성주의식으로 말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리얼리즘에 대한 열등감이 없고요. 상상의 지위가 절대 낮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에서야 한국 SF는 해외에 판권이 팔리고, 전문 무크지가 생겨나는 등 집중 조명받고 있다. 일찍이 SF계에 투신(?)한 작가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볼까. “2년 전쯤부터 이른바 순문학을 하는 출판사에도 SF 투고가 많이 들어온다는 얘길 들었어요. 저변 확대가 돼 있었던 거죠. 기성 작가도 SF를 많이 쓰고, 지망생도 많아지고요. 자화자찬을 하자면 제가 한 15년 동안 보여 줬기 때문이 아닌가. 하하.” 그간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넘나든다’는 소리를 들어 온 작가에게 그러한 수식어는 오히려 즐거운 작가 생활을 뒷받침한단다. “양쪽에 시민권이 있다,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좀더 자유롭게 쓸 수 있죠.” 말마다 쾌활한 느낌이 묻어나는 게 ‘SF 작가입니다’의 노란색 표지가 그냥 나온 건 아니지 싶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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