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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평가종합] “반기문, 놀라울 정도로 유명무실한 인물”

    [외신평가종합] “반기문, 놀라울 정도로 유명무실한 인물”

    영국 경제 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를 통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역대 최악’이라고 혹평하면서 국내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반 총장의 대권 출마설이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과거 외신의 평가를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유명무실한 인물”이라는 악평까지 나온다. 그간 반 총장에 대한 주요 외신 평가를 종합했다. ●이코노미스트 “최악의 총장” 이번에 이코노미스트는 파리기후 협정 합의를 이끌어낸 반 총장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평소 “절차에 집착하며 사안에 대해 즉각적이고 자연스러운 대응을 하지 못하고 업무수행에 깊이가 없다. 9년이라는 임기를 지냈으면서도 모로코와 서사하라(West Sahara)간 문제를 언급함에 있어 ‘점령’이라는 문제적 어휘를 사용하는 등 중대한 실수를 쉽게 저지른다”고 평가하고 “반기문은 최고로 아둔한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라고 전했다. 이어 반총장이 코피 아난 등 전임 총장들에 비해 강대국에 맞서는 것을 기피한다고 지적하고, 그가 지난 10여 년간 재직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5개국이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무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2009년) “강자에 대한 진실성, 3점” 이코노미스트의 이번 평가는 지난 2009년 반기문 총장의 첫 임기 상반기에 내렸던 것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반 총장의 업무 능력을 세부 항목들로 나눠 각각 10점 만점 척도로 평가했는데, 기후변화 협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업적을 근거로 ‘큰 그림 그리기’에 8점을 부여한 반면 ‘강자에 대한 진실성’ 항목에서 3점, ‘조직 운영’ 측면에서 2점을 매겼다. ●포린 폴리시(FP) “유엔을 ‘무의미한’ 단체로 만든 총장” 2009년 보수 언론인 ‘제이콥 하일브룬’은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낸 기고문에서 “반기문이 아프가니스탄 재건, 핵확산, 난민 문제 등의 해결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서 유엔을 ‘무의미한’(irrelevant) 단체로 만들었다”며 반총장의 소극적 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유엔의 투명인간” 2009년 보수 언론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FP의 관점에 힘을 실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엔의 투명인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반기문이 국제 문제에 있어 두드러지는 행보를 보이는데 번번히 실패했다고 논평했다. ●워싱턴포스트 “반 총장이 이끄는 유엔은 무너지고 있다” 2010년, 당시 유엔사무국 감사실(OIOS) 사무차장을 지내고 퇴임한 잉아브리트 알레니우스가 내부적으로 남겼던 50쪽짜리 메모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반 총장의 업무수행능력에 대한 회의적 우려가 크게 확산됐던 바 있다. 이 메모에서 알레니우스는 “반 총장이 이끄는 유엔은 단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을 넘어 총체적으로 무의미한 집단이 되고 있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가디언 “유엔을 심각하게 약화시킨 사무총장” 2010년 영국 가디언 또한 유엔 내부 소식통의 증언을 인용, 반 총장의 측근들조차 그의 성실성과 인품은 인정하면서도 국제적 사안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반 총장이 유엔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즈 “놀라울 정도로 유명무실한 인물” 반 총장 임기 6년 반에 접어드는 시점인 2013년에도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총장’이라는 안타까운 평가는 계속됐다. 당시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의 조나단 테퍼먼 편집장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 뉴욕타임즈에 “반기문,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반기문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유명무실한 인물로 남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총장이 시리아 대학살, 스리랑카 유혈사태 등 중대 사건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했으며, ‘무력한 관찰자’(powerless observer) 혹은 ‘어디에도 없는 자’(nowhere man)등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테퍼먼은 반 총장의 ‘무능력’에는 유엔 주변의 조건에 일부 원인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유엔 총장은 이른바 ‘세계 지도자’ 중 하나로 여겨지면서도 실제로는 의지를 관철시킬 실질적 힘을 부여받지 못한다는 것. 더불어 외신들이 반복적으로 반 총장과 비교하는 전임 총장 코피 아난 역시 총장직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무력한 자리’(the world’s most impossible job)라고 언급했던 바 있다. 이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범세계적 단체의 수장이더라도 사실상 세계 주요 분쟁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 정부라는 막강한 권력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과도 맥이 닿아 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오바마 “트럼프가 외교 문외한? 세계 미녀 다 만나”

    “내년에는 ‘she’ 이 자리에…”트럼프 비꼬며 클린턴 힘 실어줘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 걱정이 많다고 하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전 세계 리더들을 만나며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바로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미스 아제르바이잔이다.” 평소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민주·공화당 대선주자, 언론인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풍자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WHCA) 연례 만찬’에서다. 해마다 4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이 행사는 백악관 출입기자와 할리우드 스타,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대통령의 ‘뼈 있는 농담’을 즐기는 자리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중 마지막으로 가진 만찬에서 2600여명의 청중에게 작심한 듯 유머 감각을 뽐내며 ‘원맨쇼’를 펼쳤다. 그는 “8년 전 내가 정치의 ‘색조’를 바꿀 때라고 말했는데 당시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2009년 2월 백악관에 처음 입성했을 때보다 흰머리가 크게 늘어 이제 반백이 다 됐다”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내년 2월 새 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하는 것에 대해서는 “6개월 안에 정말로 레임덕이 될 것”이라면서 “(이는) 의회가 나를 무시하고 공화당 지도부가 내 전화도 받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양당 대선주자들에 대해서도 웃음 담긴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민주당 경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해서는 “내년 만찬에는 다른 누군가가 바로 이 자리에 서 있을 거다. 그녀(she)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겠지만”이라며 은근한 지지를 표했다. 하지만 클린턴의 고액 강연에 대해서는 “오늘 만찬사가 성공적이라면 내년 (퇴임 후) 골드만삭스에서 이를 써먹을까 한다. 그러면 상당한 ‘터브먼’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해리엇 터브먼은 미 재무부가 새 20달러 지폐의 인물로 쓰겠다고 발표한 19세기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다. 만찬장에 참석한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에 대해서는 “동지”(comrade)라고 부른 뒤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지라는 호칭은 급진적 경제정책으로 그가 사회주의자로 비유되는 상황을 비꼰 것이다. 그는 이날 식사 메뉴가 ‘고기와 생선 요리 가운데 택일’인 점에 착안해 “공화당 지도부의 많은 이들이 선택 메뉴로 (고기나 생선 대신) ‘폴 라이언’이라고 적었더라”라고 꼬집었다. 공화당 경선에서 1, 2위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를 배제하고 경선에 참가하지도 않은 라이언 하원의장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려 중재 전당대회를 추진하는 움직임을 풍자한 것이다. 지난해 정계를 떠난 자신의 옛 정적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공화)이 영상을 통해 “어제는 오전 11시 30분에 맥주를 마셨어. 요즘은 맥도날드 아침 메뉴를 하루 종일 주문할 수 있더라”라며 ‘은퇴 뒤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언하자 “언젠가 힐러리가 내게 ‘새벽 3시에도 전화를 받을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는데, 이제 난 (나이가 들어) 새벽에 화장실을 가야 해서 (그 시간에) 늘 깨어 있다”고 응수해 폭소를 자아냈다. 마지막 만찬사를 끝맺는 말은 두 마디였다. “오바마는 떠난다.(Obama Out)” 그는 유명 가수들처럼 마이크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무대를 내려왔다. 1920년 처음 시작된 WHCA 연례 만찬은 1924년 캘빈 쿨리지 전 대통령이 처음 참석하면서 대통령의 임기 중 1회 이상 만찬 참석이 정례화됐다. 1960년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자신의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드러낸 뒤로 ‘정치 풍자 행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1981년 연례 만찬 직전 총격 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전화로 “옆 사람이 빨리 차에 타라고 하면 당장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한 농담은 품격 있는 대통령의 만찬 유머로 지금도 회자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주말 영화]

    ■엔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EBS1 토요일 밤 11시 45분)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영화라는 예술로 승화시킨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작품이다. 노동자, 사회 약자 등의 이야기를 일관되게 다루고 있다. 각종 국제영화제 단골손님이다. 특히 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 작품을 포함해 심사위원상과 비평가상만 각각 세 차례 받았다. 2006년에는 ‘보리밭을 흐르는 바람’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올해도 최신작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 등과 수상을 다툰다. 스코틀랜드의 청년 백수인 로비(폴 브래니건)는 우연히 자신에게 위스키 감별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친구들과 상위 1%만 맛볼 수 있다는 최고급 위스키를 강탈하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2012년 작. ■지옥의 7인(OBS 토요일 밤 10시 10분) 베트남 참전 군인이 겪는 전쟁 트라우마와 이들을 냉대하는 미국 사회를 그린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람보’(1982)로 스타가 된 캐나다 출신 테드 코체트 감독이 여세를 몰아 만들었던 전쟁물. 이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의 ‘람보2’(1985)에 모티프를 준 것 같은 느낌이다. 1972년 베트남 전선에서 실종된 프랭크의 아버지 로즈 대령(진 해크먼)은 아들이 포로로 생존해 있다고 굳게 믿으며 구명운동을 펼친다. 역시 아들이 실종된 한 기업가의 지원을 받고, 아들의 옛 전우들을 모아 구출 작전에 나서는데…. 1983년 작.
  • [모바일픽]美 해군 위용 과시하는 항공모함 사진 21장

    [모바일픽]美 해군 위용 과시하는 항공모함 사진 21장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의 위용을 보여주는 사진이 대거 공개됐다. 미국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18일(현지시간) 미 해군이 사진공유 사이트 플리커(Flickr)의 공식 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니미츠급 이상의 항공모함 사진 21장을 선정해 소개했다. 사진 속 항공모함은 저마다 임무 등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매체는 “항공모함은 미 해군 능력의 초석”이라면서 “항공모함은 지리적인 기지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공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실제로 항공모함은 엄청나다”면서 “축구장 3배에 달하는 전장 332.8m의 USS 조지 H.W. 부시(CVN-77)호는 니미츠급 항공모함 가운데 가장 크다”고 전했다. 이어 “미 항공모함이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면 아래 사진들을 보라”고 덧붙였다. 1번 사진=2011년 10월 1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칼 빈슨(CVN-70)호가 출항하고 있다. 당시 USS 칼 빈슨호는 샌프란시스코(SF) 지역 경비를 맡고있는 해군·해병대 등을 격려하기 위해 개최되는 지역 축제 SF 플릿위크(Fleet Week·함대주간)에 참여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렀다. USS 칼 빈슨호는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제3번함이자 미 해군 제7함대에 배속돼 있다. 함명은 미국 상·하원의원을 50년간 지낸 칼 빈슨의 이름을 땄다. 칼 빈슨은 1914년 조지아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26번 당선됐다. 칼 빈슨은 나이 31세에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기록과 1980년 칼 빈슨호가 진수할 때 생존 인물로는 최초로 항공모함에 이름을 붙인 기록을 갖게 됐다. - 취역 1982년 3월 13일, 퇴역예정 2032년(US Navy photo by Lt.j.g. Pete Lee/Released) 2번 사진=2013년 12월 7일, 태평양에서 제11항공모함비행단(CVW-11)이 항공모함 USS 니미츠(CVN-68)호에 이른바 타이거 크루즈(tiger cruise)로 불리는 가족 초대 여행 목적으로 탑승한 승조원과 그 가족들을 위해 접근 비행 공연을 선보였던 모습이다.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제1번함(네임십)이다. 함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선을 승리로 이끈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해군의 소수정예화 계획에 따라 건조된 니미츠급 항공모함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며, 니미츠급 중 1977년에 준공된 USS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CVN-69)호에 이어 2번째로 완성됐다. - 취역 1975년 5월 3일, 퇴역예정 2025년(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Seaman Aiyana S. Paschal/ Released) 3번 사진=2011년 2월 1일 대서양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항공모함 USS 해리 S. 트루먼(CVN-75)호의 비행갑판에서 한 항공기 이륙 감독이 F/A-18C 호넷전투기를 사출기(캐터펄트)로 안내하고 있다. USS 해리 S. 트루먼(CVN-75)호는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제8번함이자 중동 지역을 담당하는 미 해군 제5함대에 배속돼 있다. - 취역 1998년 7월 25일, 퇴역예정 2048년(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2nd Class Kilho Park/Released) 4번 사진=2012년 2월 16일 아라비아해에 진입한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칼 빈슨(CVN-70)호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USS 칼 빈슨호와 제17항공모함비행단(CVW-17)은 미 해군 제7함대 관할해역(AOR)에 진입했다. – 취역 1982년 3월 13일, 퇴역예정 2032년(US Navy/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3rd Class John Grandin/Released) 5번 사진=2012년 7월 2일 태평양에 머물고 있는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CVN-73)호의 승조원들이 비행갑판을 청소하고 있다. 이 항모는 니미츠급의 6번함이자 미 해군 7함대의 핵심전력이었지만 현재 정비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 있는 상태다. 함명인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지난 1992년 실전 배치된 이후 2008년 8월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영구배치돼 일본은 물론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작전임무를 수행해왔다. - 취역 1992년 7월 4일, 퇴역예정 2042년(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3rd Class David A. Cox/Released) 6번 사진=2015년 8월 31일 미 샌디에이고에 있는 코로나도 해군기지(NBC)를 출항하고 있는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로널드 레이건(CVN-76)호의 난간에 승조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USS 로널드 레이건호는 그해 10월 1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해군기지로 입항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호가 정비를 위해 5월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투입됐다. USS 로널드 레이건호는 니미츠급 제9번함으로 현재 미 해군 제7함대의 핵심 전력이다. - 취역 2003년 7월 12일, 퇴역예정 2052년(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3rd Class Nathan Burke/Released) 7번 사진=2013년 11월 24일 대서양에서 혼성부대훈련(COMPTUEX)를 수행 중인 항공모함 USS 조지 H.W. 부시(CVN-77)호가 항해하고 있다. USS 조지 H.W. 부시호는 니미츠급 제10번함이자 마지막함이다. 함명은 미국 해군 항공모함의 조종사이자 제41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의 이름을 땄으며, 아들이자 제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자신의 아버지 이름으로 항공모함 이름을 정했다. - 취역 2009년 1월 10일, 퇴역예정 2059년(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Seaman Brian Stephens/Released) 8번 사진=2013년 10월 11일, 미국 버지니아주(州) 동남부 뉴포트 뉴스 조선소의 12번 건조독에 항공모함 USS 제럴드 R. 포드(CVN-78)호가 진수식을 갖고 있다. USS 제럴드 R. 포드호는 포드급 제1번함으로 미 해군의 차기 항공모함이다.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기본 선체 설계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새로운 A1B 원자로를 사용해 소음을 줄였다. 증기 캐터펄트에서 전자기식 캐터펄트로 바꾸었다. 착륙장치를 개선했고 자동화와 최신 첨단 장비를 통해 승무원수를 줄였다. 애초 일정보다 6개월가량 늦게 오는 9월에 취역한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1st Class Joshua J. Wahl/Released) 9번 사진=2014년 12월 10일 미 해군 특수비행팀 ‘블루 엔젤스’의 호넷(F/A-18) 전투기 편대가 대서양을 항해 중인 항공모함 USS 조지 H.W. 부시(CVN-77)호 위를 비행하고 있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1st Class Terrence Siren/Released) 10번 사진=2015년 5월 1일, 제14해상전투헬기비행대대(Helicopter Sea Combat Squadron 14·HSC-14)에 소속된 MH-60S 시호크 중형 헬기 1대가 태평양에 있는 항공모함 USS 존 C. 스테니스(CVN-74)호 근처에서 플레인 가드(plane guard)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니미츠급 제7번함인 USS 존 C. 스테니스호의 함명은 미시시피의 정치가 존 C. 스테니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소속항은 워싱턴 주의 브레머턴이다. 다수의 미국 영화와 게임등에서 공격당하거나 반파, 대파되는 항공모함으로 나오는 이색적인 이력이 있다. 직접적인 항모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나 항모의 번호 ‘74’가 노출됐다. - 취역 1995년 12월 9일, 퇴역예정 2045년(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Seaman Matthew Martino/Released) 11번 사진=2013년 12월 3일 진주만에 입항한 항공모함 USS 니미츠(CVN-68)호의 비행갑판 난간에 승조원들이 서 있는 모습이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Seaman Apprentice Kelly M. Agee/Released) 12번 사진=2014년 12월 8일 아라비아해에 진입한 항공모함 USS 칼 빈슨(CVN-70)호가 페르시아만을 통과하고 있는 모습이다. USS 칼 빈슨호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퇴치하는 미군 주도의 연합군 작전 ‘타고난 결의 작전’(Operation Inherent Resolve) 지원하고 있는 미 해군 제5함대 관할해역(AOR)에 진입했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2nd Class Alex King/Released) 13번 사진=2015년 5월 5일 대서양에서 항공모함 USS 로널드 레이건호의 승조원들이 USS 존 C. 스테니스(CVN 74)호를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2nd Class Jacob Estes/Released) 14번 사진=2013년 11월 28일 필리핀해에서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CVN-73)호와 조지 워싱턴 항모타격단, 그리고 일본 해상자위대의 함선들이 미일 합동해상훈련(AE 13)에서 전술기동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3rd Class Ricardo R. Guzman/Released) 15번 사진=2012년 1월 9일 미 워싱턴주(州) 키트삽 해군기지로 입항하고 있는 항공모함 USS 로널드 레이건(CVN-76)호의 모습이다. USS 로널드 레이건호 샌디에이고 코로나도 해군기지에 있던 승조원들과 그들 차량 모두를 수송했다. 항공모함 건조 비용 약 5조1000억 원에 해당하는 주자창을 이용한 셈이다. 예상 낭비 같지만 자동차를 일일이 해상이나 육로로 옮기는 것보다 훨씬 싸다고 한다. 이후 USS 로널드 레이건호는 키트삽 해군기지 조선소에서 유지·보수 작업을 받았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s Specialist 3rd Class Shawn J. Stewart/Released) 16번 사진=2012년 7월 8일 대서양에서 항공모함 USS 해리 S. 트루먼(CVN-75)호가 시험 운항하는 동안 최대 출력으로 키 조작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이다. (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3rd Class Kristina Young/Released) 17번 사진=2013년 4월 24일, 태평양에서 톱해터스 제14전투비행대대(VFA-14)의 F/A-18E 슈퍼 호넷 전투기 2대가 항공모함 USS 존 C. 스테니스(CVN-74)호의 공군력을 선보이는 모습이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Seaman Apprentice Ignacio D. Perez/Released) 18번 사진=2012년 3월 10일 항공모함 USS 칼 빈슨(CVN-70)호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3rd Class John Grandin/Released) 19번 사진=2012년 3월 22일 대서양에서 항공모함 USS 엔터프라이즈(CV-6)호와 엔터프라이즈 항모타격단이 함께 항해하고 있는 모습이다.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은 원래 6척이 계획됐으나 제1번함인 CVN-65 엔터프라이즈호만 건조됐다. 세계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재래식 동력 항공모함이었던 CV-6 엔터프라이즈의 함명을 계승했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Seaman Harry Andrew D. Gordon/Released) 20번 사진=2012년 2월 17일 항공모함 USS 존 C. 스테니스(CVN-74)호가 하와이 진주만-히캄 합동기지(JBPHH)로 되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USS 존 C. 스테니스호는 지난 7개월 간 미 해군 제5함대의 관할해역(AOR)에서 활동했다.(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2nd Class Daniel Barker/Released) 21번 사진=2012년 1월 19일 아라비아해에서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CVN-72)호가 그동안 임무를 수행해 온 USS 존C.스테니스(CVN-74)호와 임무 교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USS 에이브러햄 링컨호는 니미츠급 제5번함이다. 함명은 미 남북전쟁에서 북군을 지도해 점진적인 노예 해방을 이룬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 취역 1989년 11월 11일, 퇴역예정 2039년(US Navy photo by Chief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Eric S. Powell/Released)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주말 영화]

    25년 전 살인사건과 어두운 정치사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EBS1 토요일 밤 11시 45분) 2010년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쥔 아르헨티나 작품이다. 미스터리와 로맨스가 어두운 정치사가 얽힌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아르헨티나 최고 배우들의 열연을 볼 수 있다. 전직 검찰 수사관 에스포지토(리카르도 다린)는 소설이 잘 써지지 않자 옛 상관인 여검사 헤이스팅스(솔레다드 빌라밀)를 찾아간다. 소설의 모티프를 얻었던 25년 전 사건의 자료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갓 결혼한 여성이 참혹하게 강간 살해당한 사건이다. 숨진 여성의 남편 모랄레스(파블로 라고)의 지독한 사랑에 감명받은 에스포지토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헤이스팅스의 도움으로 끝까지 범인을 추적해 사건을 해결한다. 하지만 범인은 반정부 게릴라 소탕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풀려나게 되는데…. 2009년 개봉작. ■피스메이커(OBS 토요일 밤 10시 5분) ‘ER’ 등 TV 드라마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했던 여성 감독 미미 레더가 역시 ER로 스타덤에 오른 조지 클루니를 앞세워 만든 첫 영화 연출작이다. 러시아 탄광촌에서 돌연 핵폭발 사건이 일어나 전 세계가 긴장한다. 핵무기 탈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미 백악관 자문인 핵물리학자 줄리아(니콜 키드먼)와 미 육군 특수 정보국 토머스 대령(조지 클루니)이 팀을 이뤄 급파되고, 둘은 행방이 묘연한 핵탄두를 추적한 끝에 미국 뉴욕으로 돌아오는데…. 1997년 개봉작.
  • [금요 포커스] 정부 신뢰, 관리가능한가/정윤수 한국행정연구원 원장

    [금요 포커스] 정부 신뢰, 관리가능한가/정윤수 한국행정연구원 원장

    신뢰, 곧 믿음은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그 정의에 관계없이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 신뢰의 확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나라를 이루는 세 요소가 군사와 식량과 백성의 믿음이며, 이 중 둘을 버리고 하나를 남긴다면 그것은 백성의 믿음)이라며 국가는 백성의 신뢰 없이는 성립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정신은 드라마틱한 우리 역사의 한 대목인 고려 말·조선 초 시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라는 백성으로 보전되고, 백성은 믿음으로 보전된다’(정몽주),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그들은 따를 것이고, 얻지 못하면 떠날 것이다’(정도전) 모두 국민의 신뢰가 곧 나라를 유지하는 힘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경구들이다. 같은 생각으로 통하는 두 말씀의 주인공이 고려조의 존폐를 놓고 대립한 정몽주와 정도전이라는 사실은 국민의 신뢰가 국가 성립과 존속의 핵심가치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왕조시대의 정부가 그러할진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신뢰가 갖는 중요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세계 각국 정부의 화두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07년에서 2012년 사이에 전 세계 주요 41개국 가운데 정부에 대한 신뢰수준이 하락한 나라(26개국)가 상승한 나라(13개국)의 두 배에 이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시행하는 사회통합조사에서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5점 만점에 3점을 넘지 못하고 몇 년째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사회갈등 해소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집단으로 ‘정부’가 매년 1위에 꼽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가 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부문에서 지난 시대 압축성장의 부작용인 부실과 비효율 그리고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국민들은 이를 선도적으로 해결할 책임이 바로 정부에 있고 그럴 역량도 정부가 충분히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국의 성장과 세계화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이뤄졌다. 급속한 변화는 정책 문제들의 속성과 구조도 바꾸어 놓았다. 이를 흔히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라 일컫는다. 이는 이해 자체가 어렵고 다른 부문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해결책 간에 옳고 그름도 없는, 이전과 다른 독특한 문제들을 말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대두된 정책 난제들은 사실상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정부 특정 부서의 관할권·정책·규제의 범위와 일치하지 않는 사회문제이거나 다양한 조직과 이해관계자의 지지와 자원을 동원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사회 문제, 그리고 문제의 범위가 넓어 어느 한 행위자의 정보·자원·권한으로는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이른다. ‘사악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다. 당면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함으로써 정부의 권위를 스스로 세워야 하고, 다양한 시각들이 자유로이 경쟁하고 또 협력하도록 조율해야 하며, 정보공개와 소통을 통해 시민들을 실질적으로 정책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정부가 ‘믿을 만한 존재’라는 국민 인식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다. 정부가 문제를 잘 알고 제대로 해결하리라는 믿음, 정부가 국민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고 어떤 부분에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의 통합은 어디에서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관리체계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많은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이 정부 역량을 측정하기 위해 국제경영개발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지수 같은 하드웨어적인 지표 외에도 부패, 민주화, 전자정부, 지속가능발전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지표를 조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신뢰, 행복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다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 정부도 전문성과 도덕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지표를 세워 신뢰받는 국정운영을 위한 잣대로 삼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자치단체장 25시] 현장에서 답 찾는 ‘나찾소’… “중랑코엑스 동력 삼아 일자리 창출”

    [자치단체장 25시] 현장에서 답 찾는 ‘나찾소’… “중랑코엑스 동력 삼아 일자리 창출”

    “서울시가 어떤 곳인지 알아? 거긴 절대 가지 마.” 36년 전인 1980년, 패기 넘치던 한 신입 사무관이 배치 희망 부서를 말하자 선배들은 깜짝 놀랐다. 28살 된 새내기 공무원은 서울시에서 일해 보겠노라고 말한 터였다. 선배들은 “복마전 같은 곳”이라고 했다. 당시 시 공무원이 각종 청탁을 받은 대가로 수사기관에 끌려가는 일이 흔했으니 당연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사무관의 생각은 달랐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중앙부처보다 현장에서 시민과 몸 부딪치는 시청 일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만류의 손길을 뿌리치고 발들인 서울시 청사에서 그는 꼬박 30년을 일했다. 15명의 시장을 모셨고 서울올림픽 개최, 지하철 2~9호선 완공, 청계천 복원과 버스 준공영제 도입,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 조성 등 역사적 사건과 함께했다. 서울시정의 산증인인 나진구(64) 서울 중랑구청장의 이력서다. 2010년 6월 행정1부시장 직을 끝으로 시청에서 나온 그는 행정 노하우를 쏟아붓고 싶어 2014년 6월 구청장 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구청장 생활 2년째, 그의 시선은 여전히 ‘현장’에 꽂혀 있다. 구민과 직접 만나는 ‘나찾소’(나진구가 찾아가는 소통현장)를 15차례 열어 2000여명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정책을 내놨다. 나 구청장은 4일 구청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랑코엑스와 면목패션특정개발진흥지구를 동력 삼아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면서 “서울장미축제도 올해 업그레이드해 관광객 30만명이 찾게 하겠다”고 말했다. ●민선 시장 4명 모시며 행정 노하우 쌓아 나 구청장은 10·26사태로 정국이 얼어붙었던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속한 행시 23회는 관운 넘쳤던 기수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정복 인천시장, 기재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등이 동기다. 그는 “장차관급을 지낸 동기만 50명이 넘을 정도로 인물이 많았다”고 했다. 나 구청장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력을 키웠다. 현장에서 답을 찾는 나 구청장의 스타일은 젊은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실상을 알려고 화장실을 순례했던 일화도 있다. 시 기획관리실 계장으로 일할 때 “시내 공동화장실 실태를 조사하라”는 상부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집에 변소가 없는 서민층은 공동으로 화장실을 설치하고 한 번 쓸 때마다 요금을 내 청소와 분뇨 처리를 했었다. 그는 ‘달동네’였던 금천구 시흥동 일대 이주민 거주지를 돌며 실태를 살폈다. 아침 녘 풍경은 비참할 지경이었다. 한 중년 남성은 화장실을 차지하려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왔고 어느 여성은 긴 줄 뒤에 울상 지었다. 나 구청장은 “대한민국 수도에서 시민들이 배변욕조차 해결 못 하는 현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후 일대 모든 공동화장실을 일일이 돌며 이용자 수와 이용료, 평균 대기 시간 등을 샅샅이 조사했다. 오후 늦게서야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직원들이 일제히 인상을 구겼다. 몸에 밴 심한 악취 탓이다. 목격담을 토대로 작성한 현장감 있는 보고서는 시장에게 보고돼 서울의 공동화장실을 공중화장실로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서울시 대중교통시스템 전면 개편과 서울형 복지 체계 수립 등 시정의 큰 방향을 움직이는 정책도 만들어 봤지만 서민의 기본적인 어려움을 덜어준 게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감사관과 경영기획실장, 행정1부시장 등을 지낸 나 구청장은 민선인 조순·고건·이명박·오세훈 전 시장과 함께 일했다. 각자 다른 색채의 정치 거물과 호흡을 맞춘 경험은 행정가로서 큰 도움이 됐다. 나 구청장에게 각 시장의 장점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는 “조순 전 시장은 영등포 OB맥주 공장 등을 공원화해 어메니티(삶의 쾌적성)의 중요성을 일깨웠다”고 평가했다. 고건 전 시장에 대해서는 “소통법을 알던 리더였다”면서 “정책 추진 때 주민과 갈등이 생기면 당사자를 만나 30분 이상 듣기만 했다. 상대도 말하다 보면 억울함이 누그러져 꼬였던 상황이 자연스럽게 풀렸다”고 말했다. 나 구청장의 간판 사업인 ‘나찾소’도 고 전 시장에게 배운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해서는 청계천 복원과 버스 준공영제를 추진한 집념을 높게 평가했고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시라는 거대 도시에 디자인을 입힌 젊은 시장이었다”고 평했다. ●“올 핵심 정책 궤도에 올려놓을 것” 나 구청장은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올해 핵심 정책을 궤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 목표는 일자리 만들기다. 지역 최대 개발 프로젝트인 ‘중랑 코엑스’ 사업이 일자리 창출의 엔진으로 역할을 한다. 중랑 코엑스 조성은 지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상봉·망우역 일대를 상업·문화·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집중된 복합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의 하나로 지어진 41층 건물인 상봉동 ‘듀오트리스’가 지난 1월 완공돼 멀티플렉스 상영관과 쇼핑센터, 식당가 등이 들어서고 있다. 중랑구는 CGV, 한샘, 이랜드 등 듀오트리스 입주 기업과 협약을 맺고 중랑구민이 이곳에 우선 채용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지난달 쇼핑몰 판매직, 시설관리직 등으로 구민 100여명이 채용됐다. 나 구청장은 “현재 지역 내 호텔 2~3곳이 조성되고 있거나 건설 계획 중인데 이런 곳에 필요 인력을 발굴해 일자리가 필요한 지역 주민과 연결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봉제업 천국’이었던 지역의 옛 명성을 회복시킬 ‘면목패션특정개발진흥지구’ 계획을 추진한다. 봉제·패션산업은 여전히 중랑구 제조업의 70%를 차지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인건비가 높아지고 중국·베트남 등으로 생산 공장이 옮겨 가면서 경쟁력을 잃어 왔다. 나 구청장은 “정책자금을 투입해 봉제·패션업체를 교육하고 지원할 센터 등을 짓기 위해 서울시에 특정개발진흥지구 지정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특정개발진흥지구가 되면 업체들이 세제 지원과 용적률 완화 등 혜택을 보게 된다. 서울의 대표적 봄축제로 자리잡은 서울 장미축제에 매력을 더해 보령머드축제나 화천 산천어축제처럼 국가대표급 행사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나 구청장은 취임 후 첫 축제 때였던 지난해 유명 행사 기획자를 총감독으로 영입하는 등 공들여 전년보다 30배 이상 많은 관광객 15만 5000명을 끌어모았다. 그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는 5월 20~22일 장미축제가 열리는데 관광객 30만명이 찾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너무 큰 꿈 같아 보이지만 그만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세계적 장미축제를 여는 불가리아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려고 불가리아 대사관과 협력하기로 했고 불가리아 출신 유명 셰프인 미카엘 아시미노프 등도 축제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또,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시내 대학의 한국어학당 등을 찾아 홍보할 계획이다. 가난한데도 충분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빈곤층을 위한 중랑형 복지정책도 계속 추진한다.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가 있는 나 구청장이 미는 대표 정책은 ‘행복중랑플러스 통장’ 사업이다. 중위소득 80%(4인 가족 기준 351만원) 이하인 저소득 가구가 3년 동안 매달 10만원씩 통장에 저금하면 구가 민간후원금을 재원 삼아 매달 10만원씩 추가로 입금해 주는 사업이다. 나 구청장은 “예산이 한정된 탓에 공공재정으로는 빈곤층을 충분히 돕기 어려웠다”면서 “지역민과 기업 기관 등을 상대로 벌써 1억 6000여만원을 모았는데 연말까지 3억 5000만원을 모아 구민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대학 특집 - 경희대학교] 지제크·터커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하는 서머스쿨

    [대학 특집 - 경희대학교] 지제크·터커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하는 서머스쿨

    북핵·美전략·동아시아 앞날 전망 NGO의장 활동 상황 직접 강연 자본주의와 문명사적 전환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세계적 철학자 류블랴나대 슬라보이 지제크 교수,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우주론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예일대 메리 터커 교수, 북핵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프린스턴대 존 아이켄베리 교수 등 세계적 석학이 올여름 경희대를 방문해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강좌를 연다. 경희대 미래문명원은 오는 7월 4일부터 29일까지 4주간 ‘경희 국제협력 하계프로그램(Global Collaborative Summer Program·GC) 2016’을 개최한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GC는 매년 30여개국 5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국제 프로그램이다. 수강 신청은 홈페이지(gafc.khu.ac.kr/gep)를 통해 4월 30일까지 할 수 있다. ‘인간, 문명, 글로벌 거버넌스’(Humanity, Civilization and Global Governance)를 주제로 개최되는 특별 강좌에는 다양한 분야의 권위자들이 참여한다.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펜실베이니아대 램 크난 교수, 다이어트와 식품영양학의 관계를 고찰하는 옥스퍼드대 멜러니 웽거 교수를 비롯해 국제기구 임원도 동참한다. 유엔 아카데믹 임팩트의 다모다란 의장, 유엔 비영리단체협의체(CoNGO) 시릴 리치 의장,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ESCAP) 직원 등이 강단에 선다. 세계적 석학과 활동가들의 강의와 병행해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한국을 방문한 학생들을 위해 방송국 견학, 음악방송 방청, 경희대 동문 연예인 팬미팅, 비무장지대·공동경비구역(DMZ·JSA) 방문, 난타 등 문화공연, 한국민속촌 방문, 한강 크루즈 등이 진행되며 수강생을 대상으로 국내 기업과 NGO 기구의 인턴십 기회도 제공한다. 경희대는 2006년부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상호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류의 공동가치와 보편지식을 모색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08년 GC로 개칭됐고 이후 교육, 연구, 실천이 조화된 대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고 있다. 정종필 경희대 미래문명원장은 “미래사회는 다양성과 보편성의 조화로운 결합을 모색해야 한다”며 “국제사회의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문화의 다양성과 지속성, 관용과 평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GC를 통해 더 나은 미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 탐색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프로그램의 의의를 밝혔다. 주요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슬라보이 지제크(류블랴나대) 라캉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대중문화에서 드러나는 쾌락의 원리를 분석하고 문명사적 전환기에 놓여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점검한다. 딱딱한 이론의 해설에 머물지 않고 실제비평을 통해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한다. ●메리 터커(예일대) 우주의 발생 과정과 기원을 고찰함으로써 인류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산업의 대두로 인한 인간의 위기와 그 해결책에 대한 거시적 전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아이켄베리(프린스턴대) 국제관계와 정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강좌를 맡는다.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한 미국과 한국의 관계 그리고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논함으로써 향후 전개될 국제관계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램 크난(펜실베이니아대) 비영리단체와 사회혁신 그리고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각국의 사례 연구와 향후 전망을 점검한다. 비영리단체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리를 제공하고 어떻게 비영리단체가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논의한다. ●멜러니 웽거(옥스퍼드대)음식과 건강 문제에 대해 인류학적으로 접근한다. 음식을 단순히 육체적 건강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련한 문화적 건강성의 지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시릴 리치(유엔 비영리단체협의체 의장)유엔과 비영리 단체에 대해 소개하고 다양한 활동 상황과 전망을 알려준다. 유엔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각국의 비영리단체와 접촉하고 매개하는지에 대해 실질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장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씨줄날줄] 잊힐 권리와 표현의 자유/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잊힐 권리와 표현의 자유/강동형 논설위원

    학계와 정치권에서 최근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개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잊힐 권리’는 옥스퍼드대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가 2009년 펴낸 삭제(Delete)라는 책이 우리나라에 ‘잊혀질 권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면서 비롯됐다. 최근에는 우리말 ‘잊다’의 피동형이 ‘잊혀지다’가 아니라 ‘잊히다’이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 보다는 ‘잊힐 권리’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는 삭제의 권리(The Right to delete), 망각권(The Right to oblivion) 등과 같은 개념이다. 개인의 기본권의 성격을 갖는 ‘잊힐 권리’는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인 ‘표현의 자유’와 상충된다. 따라서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은 나라마다 다르다.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받드는 미국에서는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그러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유럽에서는 잊힐 권리를 법제화하거나 법제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은 법제화 대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개인이 생성한 정보가 사라지게 하는 기술을 페이스북 등에 적용하는 등 기술 발전으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록이 사라지는 ‘스냅챗’ 등 다양한 뉴미디어가 생겨나는 이유다. 그러나 기술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캡처·복제해 놓은 개인 정보는 어떤 기술로도 삭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5월 방송통신위원회 주관으로 ‘잊힐 권리 보장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잊힐 권리 법제화를 놓고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입법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정보 삭제 요구권’이 있어 법제화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잊힐 권리 보장을 위한 법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보호의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고, 정보 삭제 대상 제외 항목에 종교와 정당 등 예외 조항이 많아 잊힐 권리의 취지를 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의 삭제 요구권은 서비스의 이용자가 작성한 정보에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으로 제한돼 있어 과거의 모든 기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잊힐 권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방통위가 법제화에 앞서 잊힐 권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다음달 중에 발표하기로 해 그 결과가 궁금하다. 공인이나 신문기사 등은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신상털기용 개인정보 등은 잊힐 권리에 포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판 이외의 방식으로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했으면 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일본 블랙기업이 만연한 근본 원인

    일본 블랙기업이 만연한 근본 원인

    “365일, 24시간 죽을 때까지 일해” 대형 음식체인점, 와타미 그룹의 기업방침에 들어 있는 이 말은 ‘블랙 기업’(번역자 주: 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비합리적인 노동을 직원에게 강요해 노동착취를 조직적으로 행하는 기업을 지칭하는 일본식 조어)을 상징하는 것으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이 회사는 나중에 이 문구를 철회했지만 마치 일하는 사람을 노예로 취급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준법경영 의식이 결여된 경영자가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구도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격차’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블랙 기업이라는 괴물들이 먹이로 삼은 것은 일본인의 평등의식이다. 블랙, 격차라는 단어는 평등의 대칭점으로 느끼겠지만 사실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개별 기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아  블랙 기업이란 말은 2000년대 후반, IT기업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회사의 가혹한 노동 상황을 자학하는 형태로 쓰인 인터넷 은어였다. 현재도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 있기 보다는 이미지만 앞서 있는 경향이 있다. 장시간 근무와 가혹한 할당, 직장 내 괴롭힘 등이 횡행하고 불법 노동이 만연한 기업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외식이나 소매, 간호, IT등 노동집약형 서비스업에 많다. 새봄을 맞아 취업 준비도 본격화된 가운데 관심을 가진 회사가 블랙 기업인지 여부는 대학생에게도 큰 관심사이다. 언론도 개별 기업의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사카경제대학 이토 다이치 부교수는 “블랙 기업의 출현은 일본형 고용 시스템이 가진 ‘그림자’ 부분을 가장 ‘검게’ 물들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개별기업의 근로조건의 가혹함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일본의 고용 시스템은 세계에서도 매우 특수한 형태임을 우선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입사 전에는 직무 내용이나 근무지 등을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거나, 입사 후에도 언제 다른 직무를 시킬지 모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한 법정근무 시간인 ‘오전 9시~오후 5시’를 넘어서 퇴근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야근이 필요하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상식이다. 한편 유럽의 일반적인 고용 계약은 그렇지 않다. ‘보험상품 판매 업무’,’섬유가공기계의 조작’이라는 구체적인 직무(작업)이 먼저 존재하고, 요구되는 기술이나, 직책이 특정되어 있다. 직무의 구체적 내용과 평가 방법도 정해져 있어서 업무내용이 무한정이지 않다(성과로 평가되는 화이트 컬러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일의 범위를 넘어 남의 일을 하는 것은 직역을 침범하게 되므로 금기이다. 일본에서도 비정규직의 경우 이같은 인식이 들어맞는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직무를 하는데, 공장 노동이나 파견 업무를 떠올리면 알기 쉽다. 반면 정규직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은 소수 정예로 채용된 경영 간부 후보라는 미명하에 직무 대상은 원칙적으로 무제한이다.  회사의 근로자에 대한 명령은 거의 무제한  직무가 무한정이라고 하는 것은 유럽, 미국의 일반적인 고용 형태와 달리 자기 일과 남의 일의 구별이 없고, 어떤 업무도 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일이 빨리 끝난 경우 솔선해서 다른 사람의 일을 돕거나, 본래 자기가 해야 할 업무 이외의 것도, 상사로부터의 부탁을 받으면 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직무 내용뿐 아니라 근로 시간에 대해서도 회사는 강한 권한을 갖는다. 노사협정만 체결하면 초과근로 시간의 상한은 거의 없다. 노동자들이 잔업을 거부하면 해고도 유효하다고 판례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소수 정예로 채용된 이상, 업무가 늘어난 경우 그 인원의 범위 중에서 대응하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일을’,’얼마나’ 지시받는가, 여기에는 거의 제한이 없다는 게 일본 기업에서 노동의 특징이다. 노동자는 배치 전환에 의한 신규 업무에 빨리 적응하는 능력과 사생활을 희생하더라도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생활태도까지도 요구된다. 그 모든 것이 회사의 평가대상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장시간 노동과 그 결과로서 우울증이나 과로사를 낳고, 이미 1970년대부터 일본형 고용 시스템의 ‘그림자’로서 문제시되고 있었다. 다만 소수 정예, 직무가 특정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자쪽에서 봤을때 유리한 측면도 있다. 이것이 블랙 기업이 감추려하는 일본형 고용 시스템의 ‘빛’의 부분이다. 소수 정예이고, 회사가 자유롭게 노동자의 직무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종사하는 직무가 사라졌다고 해도 사내의 다른 일에 배치 전환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정적인 장기고용이 가능하며, 안정적인 장기고용이 있기에 근속 연수, 즉 연공에 따른 임금의 상승도 이뤄졌으며, 앞을 내다본 인생 설계가 가능했다. 즉, 잔업과 배치전환 등에 대해서는 회사의 강한 구속을 감수하면서도, 그 대가는 제대로 존재하고 균형이 있었던 것이다. 업종이나 회사의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지속 가능한 업무와 안정된 고용,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보수가 근로자의 대가로 인식됐던 것이다. 사법도 기업의 강력한 업무 명령권을 인정하고 판례로 해고권 남용 법리를 확립함으로써 정규직의 지위를 보호해 왔다.(현재는 조문화되어 있다) 고도경제성장기를 배경으로 이같이 불문율이라고 할 수 있는 규칙이 확립되면서 일본 사회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됐다. 기업은 한번 정규직으로 고용한 이상 그 사람을 돌보고 능력개발을 실시하며, 안정적인 장기 고용을 전제로, 가족을 꾸리는 ‘보통의 생활’을 보장해준다. 그 대신 일하는 입장에선 “사회인으로 살아가기가 간단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생활을 희생해서라도 분골쇄신하는 것을 당연시하라는. 그러나 블랙 기업은 일본형 고용 시스템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역이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일본형 고용 시스템을 운용하는 기업에서 블랙 기업이 물려받은 것은 “종업원의 조직에 대한 공헌은, 무한정”이라는 의식뿐이다. 그들은 일본형 고용 시스템의 최대의 메리트인 ‘광범위한 지휘 명령권’만을 누린다. 한편, 그에 대한 대가로 존재하는 안정적인 장기 고용과 근로 시간에 걸맞은 보수에 대해서는 “경영자 수준의 눈높이가 없으면 노동자도 살아남을 수 없다”,“보수는 고객의 웃는 얼굴이다”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면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인식을 시킨다.  안정 고용 없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을 목표로 그들은 근로자 모두를 장기로 안정 고용할 의도는 애초부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노동은 대전제이다. 10만엔대 전반까지 기본급을 낮춘 다음 수십시간 분량의 고정 초과 근무 수당 제도를 도입하거나 소액의 수당을 줌으로써 겉으로는 ‘보통수준의 금액’의 급여로 위장한다. 게다가 노무관리를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정확한 근무 시간을 불명확하게 처리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러한 탈법적인 테크닉을 구사해서 실질적 시급이 최저 임금을 밑도는 수준까지 내려갔다. 노동 문제를 다루는 NPO법인, POSSE의 대표 곤노 하루키는 “노동 집약형 서비스업은 현실에선 직무가 규정된 업무에 가깝다. 정사원이라고 해서 전원이 경영간부 후보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무수행 방법, 업무량, 성과의 평가 방법에 대해서는 무한정”이라고 지적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형 고용 시스템의 그림자만이 남게 되어, 말 그대로 시커먼 블랙 기업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블랙 기업을 뿌리째 퇴치하려면 어떤 처방전이 있을까. 곤노는 뜻밖에도 일본에도 ‘계층’이 존재함을 명확히 하자고 제안한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고, 쓰다버려지는 일이 없는 ’보통 사람’의 근로 방식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살려서 큰 수익을 노리는 ‘엘리트 경영자’의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사회에서도 현실적으로 계층이 존재하지만 감춰져 있는 게 실정. 이런 사회에선 입장에 따른 정치적 이해조정이 기능하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은 어렵다. 계층의 존재를 인정하고 각각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격차를 축소하게 된다”(곤노) 솔직히 일본에서 계층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그동안 금기였다. 평등의식이 특별히 강한 일본에서는 곧바로 받아들여질 일은 아닐지도 모르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블랙기업은 그런 ‘누구나 노력하면 남다른 생활을 보낼 수 있다”라는 환상을 이용하고 노동자를 핍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토 교수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휴일엔 쉬고 싶어’,‘초과근무수당이 필요해’라는 것은 노동자에게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다. 이것이 경영자에게 ‘어리광’으로 인식되는 것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울타리가 희미해져서 본래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 개념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지휘 명령에 근거해 시간을 파는 노동자와 회사의 소유권인 주식을 소유하고 보수 외에도 주식 배당에서 막대한 수익을 취할 가능성이 있는 오너 경영자는 근본적으로 의견이 다르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대립 축을 명확히 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경영자는 이를 자각하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고, 노동자도 같은 입장에서 연대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분명히 주장해야 한다.  계층에 대한 무자각은 자기 책임론을 만연시킬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계층을 인정하지 않는 생각은 일본인의 무의식에 깊게 드리워져 있다. ‘1억 총중류’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평등의식은 듣기에는 좋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도 있다. 다양한 입장의 사람에 대해서 과도한 ‘자기책임론’의 강요로 이어지면서 결국 많은 사람의 목을 조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블랙기업에 대해 불평할 시간이 있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창업하면 된다”는 발언들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저명 인사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누구나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리스크를 헤쳐나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노동에 의해서만 생계를 세울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세상에서는 압도적 다수인 것이다. 일본에서 계층에 대한 무자각은 엘리트로서 본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고귀한 자의 의무)를 가져야 할 인간이 ‘보통 사람’의 입장을 상상할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를 장기판의 말로 밖에 생각하지 않고 쓰고 버리는, 블랙기업의 오너나 경영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곤노의 지적대로 계층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격차를 인정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고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고 최대한 지원하는 한편, 표준적인 행복을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근로 환경은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블랙 기업의 부조리한 폭주를 멈추는 발판이 되고, 나아가서 일본 사회 전체의 블랙화를 멈추는 길을 열지 않을까.  기사:세키타 신야 도요케이자이 온라인편집부 기자번역:서울신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이 기사는 일본의 경제전문주간지 도요케이자이의 온라인에 2016년 2월18일 게재된 것으로 저작권은 도요케이자이에 있습니다) 
  • 알 자지라, ‘한국은 세계 최악의 음주국가’

    알 자지라, ‘한국은 세계 최악의 음주국가’

    설연휴로 술자리가 더욱 많아진 이때 우리나라가 '세계 최악의 음주 문제를 가진 나라(The country with the world's worst drink problem)'로 소개돼 주목된다.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지난 7일 이같은 제목을 단 기사에서 우리나라의 음주문화와 문제점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이 뉴스는 5일 '101 EAS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된 '만취 한국'(South Korea's hangover)이라는 2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재구성됐다. 이번 알자지라의 방송과 뉴스는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히 봐왔던 장면으로 구성돼 더욱 민망했다. 뉴스는 서울의 한 카페에서 술에 취한 젊은 여성이 변기를 부여잡고 정신을 잃어 경찰이 출동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리서치 회사 유로모니터의 조사를 근거로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술을 많이 마신다고 소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과 러시아인이 일주일 평균 각각 3잔, 6잔을 마시는 데 비해 한국인은 14잔의 술을 마셨다. 뉴스는 이어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알콜중독자가 많고, 술과 관련된 사회비용이 연간 2억 달러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술자리에 있던 한 시민이 "스트레스를 풀거나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술을 마신다"며 "음주가 사회에 유익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인터뷰를 통해 밝혔지만 뒤이어 "음주가 큰 문제인 것 같다"는 경찰의 코멘트를 넣었다. 또 다른 경찰은 "최근 술에 취한 사람들과 관련된 전화가 늘었다며 특히 여성들의 과음을 더 많이 목격하고 있다"면서 "경찰이 개입하려하면 과격해지는 경우가 종종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술에 취해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한 시민, 경찰서에서 난폭하게 구는 시민 등의 모습이 나온다. 뉴스는 또한 대중 건강 전문가들은 과음을 제한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일부라고 입을 모은다면서 대한보건협회 관계자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20년간 주류 가격을 올리거나 광고를 제한하는 등 술 소비를 줄이는 정책들을 제시해왔지만 국회에서 통과된 적이 없다"며 "정치인들이 주류회사로 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주류 광고에 연예인들을 기용하는 회사들을 상대로 집단소송 중인 시민과도 인터뷰했다. 그는 유명인이 주류 광고에 등장하면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더 술을 마시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술 때문에 병원에 신세지게 되고 이혼까지 하게 된 사연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한 여대생은 일주일에 5일은 술을 마시러 나간다면서 공부하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된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술을 덜 마시게 되는 날이 올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는 "술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나누는 무언가"라며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윤나래 중동 통신원 ekfzhawoddl@gmail.com
  • [볼만한 공연] 흥이 나는 무대

    [볼만한 공연] 흥이 나는 무대

    새해를 맞아 뮤지컬, 연극, 국악, 무용 등 다양한 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설 연휴를 맞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은 어떤 게 있을까. 추억 돋는 옛 가요 ‘꽃순이를 아시나요’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설을 맞아 기획된 공연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열아홉 살에 상경한 순이와 그녀의 첫사랑이자 고향 오빠인 춘호의 삶을 담았다. 순이와 춘호의 10대부터 60대까지 50년의 삶을 통해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 나간다. 김국환 ‘꽃순이를 아시나요’, 이미자 ‘동백 아가씨’, 남진 ‘님과 함께’, 심수봉 ‘그때 그 사람’, 이선희 ‘인연’,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등 당대 주옥같은 30여곡이 극 중 내용과 어우러져 옛 향수를 자극한다.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엘림홀, 3만~4만원. 1566-5588. 무대 밑 오케스트라를 보니 ‘오케피’ 뮤지컬 ‘오케피’도 온 가족이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오케피(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애환을 조명한 작품이다.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5만~14만원. (02)2005-0114. OB vs YB ‘날 보러 와요’ 연극 ‘날 보러와요’도 여러 연령층을 포괄하는 대표작이다. 1986~1991년 10명이 숨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 원작이다. 1996년 초연 이후 20주년을 맞아 특별 기념공연으로 꾸려졌다. OB팀과 YB팀으로 나뉘어 공연한다. OB팀은 권해효, 김뢰하, 유연수, 류태호 등 초연 배우들이, YB팀은 손종학, 김준원, 이현철, 우미화 등이 출연한다. 21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1만~6만원. (02)391-8223. 어르신들을 모실 공연으로는 마당놀이 구경이 제격이다.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는 10일까지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 한 판이 벌어진다. 손진책 연출, 배삼식 작가, 김성녀 감독이 뭉친 ‘춘향이 온다’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이 시대의 사랑과 정치, 사회에 대한 해학과 풍자를 펼쳐 낸다. 3만~7만원. (02)2280-4114~6. 아이들에게는 신명나는 국악 장단이 어우러진 ‘마당을 나온 암탉’을 추천할 만하다. 출간 이후 15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해금과 소금, 판소리 등의 국악 선율을 타고 흐르며 가족 음악극으로 새 옷을 입었다. 3만~4만원. (02)3272-6652.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란의 다음 목표 ‘이라노포비아 해제’

    이란의 다음 목표 ‘이라노포비아 해제’

    10년 만의 경제제재 해제로 국제사회 복귀를 꾀하는 이란이 ‘이라노포비아’(Iranophobia·반이란 정서)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신정일치의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뒤 미국 등 서방국가들에 의해 ‘악의 축’으로 각인돼 왔다. 핵 위협과 더불어 다양한 테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았고, 종교가 우위를 차지하는 정치제도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란 배경도 작용했다. 이런 이란이 반이란 정서를 불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AP 등 외신들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라노포비아 해소를 위한 집착은 열악한 경제 사정 탓이다. 이란은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차 제재 이후 물가 상승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려 왔다. 세계은행(WB)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선 118위로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데다 제재 해제 이후 이란에 투자 의사를 밝힌 해외 유수 기업도 독일의 다임러(벤츠) 정도다. 외교 관계 정상화로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려야 한다는 강박감도 작용하고 있다. 포문은 이란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환경부 장관인 마수메 에브테카르가 열었다. 에브테카르 부통령은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정식 회담을 열 것을 제안했다. 회담이 성사된다면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점거 사태 이후 처음으로 이란에서 열리는 고위급 회담이 된다. 미 대사관을 점령한 과격파 시위대는 444일간 미국인 인질 53명을 억류하다 풀어 줬다. 당시 대사관 점거 학생들의 대변인을 맡았던 이가 에브테카르 부통령으로, ‘결자해지’ 차원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에브테카르 부통령은 “이란이 외교적 승리인 핵 협상을 발판으로 시리아, 예멘 사태에서 중재자 역할을 떠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불거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갈등과 관련이 깊다. 중동의 ‘맞수’로,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제재의 봉인을 풀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한 당사국이다. 그는 “시리아와 예멘에서 극악한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사우디의 책임”이라고 비난했다. 핵 협상을 이끈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이날 국영 프레스TV에 출연해 “사우디가 유력 시아파 성직자 처형과 유가 폭락을 주도하면서 이라노포비아를 조장해 왔다”고 비판했다. 최근 걸프 지역을 위협한 이란·사우디 충돌의 책임을 사우디에 돌리고, 이란은 싸울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한 셈이다. 하지만 서방의 경계심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제제재 해제 하루 만에 미국이 지난해 11월 이란의 신형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이유로 이란 기업들에 신규 제재를 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과 이란 간 상대국 억류자 석방을 놓고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이라노포비아 해소의 가장 큰 장벽은 이란 내 강경파다. 온건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신정체제를 흔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혁명수호위원회는 다음달 총선을 위한 후보 자격 심사에서 중도·개혁파 후보의 99%를 탈락시키는 촌극을 벌였다고 AP는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런 이유로 이라노포비아 불식의 전제 조건이 종교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이란의 정치·안보체제의 정상화라고 못박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예견된 北 수소폭탄, 손 놓고 있었던 정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예견된 北 수소폭탄, 손 놓고 있었던 정부

    북한이 새해 벽두를 기습적인 핵실험으로 장식하면서 남북 관계가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6일 오전 10시 30분경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기습적인 핵실험을 강행하고 당일 정오에 조선중앙TV 특별 중대발표를 통해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급작스런 ‘수소탄 실험 성공’ 소식에 정부 당국은 패닉에 빠졌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유관기관은 핵실험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한다는 미국조차도 불과 수 시간 전에야 감청을 통해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확인을 위해 급하게 정찰기를 띄웠지만 결국 사전 첩보 입수와 경보에는 실패했다. 북한의 핵실험 사실을 가장 빠르게 파악한 곳은 안보 관련 기관이 아닌 ‘기상청’이었다. 정부는 핵실험 직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예상치 못했던 북한의 기습적인 ‘수소탄 실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가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을 정말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北, 핵탄두 보유는 90년대에 달성 북한이 이번에 ‘완전 성공’했다고 발표한 실험은 수소탄, 즉 일반적으로 수소폭탄(Hydrogen bomb)으로 불리는 폭탄이다. 보통 원자폭탄으로 불리는 핵무기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분열을 통해 파괴력을 얻는 것과 대조적으로 수소폭탄은 핵분열-핵융합 다단계 과정을 통해 파괴력을 얻기 때문에 원자폭탄과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갖는다. 핵분열 방식의 원자폭탄이 작게는 1kt(TNT 1000톤) 안팎의 위력부터 크게는 100~200kt(TNT 10만~20만톤) 정도의 폭발력을 발휘하는 것과 달리 핵융합 방식의 수소폭탄은 작게는 200~300kt 수준의 위력부터 크게는 50Mt, 즉 TNT로 환산하면 5000만 톤에 달하는 위력을 갖는다. TNT 5000만 톤이면 미국이 6.25 전쟁 당시 3년여 간 한반도 전역에 퍼부었던 폭탄의 83배에 달하는 폭탄이 동시에 터지는 위력이다. 이처럼 강력한 위력 때문에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현재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이른바 ‘핵클럽’ 국가들은 모두 수소폭탄 개발에 일찌감치 성공해 실전에 배치했고, 관련 기술의 확산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그러나 만들지 말라고 해서 말을 들을 북한이 아니다. 북한은 1950년대 핵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하고, 1970년대 중반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을 위한 전문가와 기술자들을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핵개발은 플루토늄(Pu-239)과 고농축우라늄(HEU : High-Enriched Uranium)을 이용한 핵분열 무기, 즉 원자폭탄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북한은 핵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20여 년 만에 플루토늄을 이용한 내폭형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고,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우리나라와 미국을 기만한 뒤 곧바로 파키스탄과 접촉해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라 불리는 압둘 아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는 이른바 ‘칸 네트워크’를 통해 파키스탄이 1982년 중국으로부터 넘겨받은 우라늄 핵탄두인 CHIC-4의 설계도와 관련 부품을 각국에 팔았고, 이 설계도는 지난 2003년 리비아 핵 사찰 당시 발견된 바 있었다. 북한도 이 설계도와 관련 부품 확보를 시도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얼마 전 사망한 전병호 前 노동당 군수담당비서가 1998년 칸 박사에게 보낸 편지와 칸 박사의 증언에서 드러난다.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에 이어 칸 박사의 도움으로 손쉽게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북한의 다음 수순은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궁극의 핵무기, 바로 수소폭탄 개발이었다. 수소폭탄은 그 자체로도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지만, 이 기술을 응용할 경우 증폭핵분열탄(Boosted fission weapons)을 개발해 핵분열 무기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반드시 개발해야 할 기술이었다. 문제는 북한이 핵융합 무기 개발을 위한 관련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이 10년이 훨씬 넘었고,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 6년 전이지만, 관계 당국은 “그럴 리 없다”며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심지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기까지 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소폭탄 개발 징후는 6년 전 이미 포착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나섰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실제로 수소폭탄 실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국내외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제기해 왔다. 오랫동안 북핵 문제를 연구해 이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이 2012년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고, 북한에서 핵 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온 세계적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 역시 2013년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가능성은 이미 2010년에 북한 스스로 대내외에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 있었다. 북한은 지난 2010년 5월 12일자 노동신문에서 ‘방안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을 실현시키는데 성공’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핵융합 기술을 연구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사실 북한이 발표한 ‘방안온도에서의 핵융합 반응’ 즉, 상온핵융합은 미국조차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2005년에서야 성공한 기술이다. 관련 기술 개발에 뒤늦게 뛰어든 북한이 그 많은 핵물리학 선진국을 제치고 2010년에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핵융합과 관련된 모종의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증거가 과학계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우선, 방사성 원소인 제논(Xenon)이 포집됐다. 북한이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2010년 5월 12일에서 불과 이틀 뒤인 5월 14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운영하는 강원도 고성군 소재 거진측정소에서 측정소 설치 이후 사상 최대치의 방사성 원소를 발견한 것이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선동(서울 도봉을) 의원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자료를 근거로 “거진측정소의 핵종탐지장비가 제논-135를 2007년 측정소 설치 이후 최대치인 10.01mBq/㎥을 탐지했고, 제논-133 역시 2.45mBq/㎥를 탐지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방사성 원소는 거진관측소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탐지됐는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 Comprehensive Nuclear-Test-Ban Treaty Organization)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보고 받은 것이 스웨덴 국방연구소 대기과학자 라스 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 박사가 세계적 군사과학저널인 과학과 세계안보(Science & Global Security)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확인됐다. 대기 중에서 이 같은 수치의 제논 원소가 발견되려면 측정소 근처에 제논을 사용하는 방사성 의료기기를 운용하는 병원을 설치해 운영하거나 인접 국가에서 핵실험을 해야만 한다. 거진 측정소 인근에는 방사성 의료기기를 운용하는 병원이 없기 때문에 당시 인접 국가에서 모종의 핵실험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방사성 원소 검출 외에도 지진파도 감지됐다. 중국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은 2014년 11월 지구물리학 국제학술지인 지진학연구소식(Seismological Research Letters)에 게재한 논문에서 2010년 5월 12일 풍계리에서 소규모 핵폭발이 있었다고 보고했고, 미국 프린스턴대 마이클 쇼프너(Michael Schoeppner) 연구원과 독일 함부르크대 율리히 쿤(Ulrich Kühn) 연구원 역시 미국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진파 분석결과를 토대로 2010년 5월 소규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했다. 즉, 북한은 2010년부터 자기 입으로 핵융합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이를 응용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한 과학적 근거들도 국내외 과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왔었다. 그러나 북한의 발표와 과학계의 이러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을 일관되게 취해왔다. 안보에서의 ‘아전인수’는 곤란 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을 지속적으로 평가절하하면서 쉬쉬하는 이유는 시쳇말로 ‘아전인수(我田引水)’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현 정부 들어 계속된 대북정책의 성격을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다. 상황을 입맛대로 해석하고, 입맛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DMZ 지뢰 도발 사건으로 긴장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와의 협상에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청와대에 돌아와서는 “북한으로부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았다”고 발표했다가 북한으로부터 “사과와 유감의 뜻도 구분 못하는 남조선 당국은 조선말 공부부터 다시 하라”는 모욕적인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물론 황병서와 김양건은 협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김정은으로부터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았다. 이 같은 정책 실패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한 결과였다. 북한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남한이 대북 강경 정책을 펴든 햇볕정책을 펴든 북한의 국가정책은 핵무기 개발과 실전배치라는 일관된 것이었고 지난 40여 년간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북한 정권의 핵은 체제 유지를 위한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보수 그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북한 핵무기 보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경우 정치·경제적으로 몰아칠 후폭풍을 감당하지 않으려 했고 “그럴 리 없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폭탄 돌리기를 계속 해왔다.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구소련 KGB 문서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미국의 영변 폭격을 가로 막았고,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이 파키스탄의 칸 박사와 접촉해 우라늄 핵무기 관련 기술을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던 그 시기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북한에 핵개발 자금으로 쓰일 수도 있는 달러 지원을 계속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북한의 1차 핵실험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공론화되었음에도 ”북한 핵실험 징후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며 북한의 핵개발 지속 사실을 애써 외면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연속된 핵실험을 지켜보면서도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할 단계는 아니며, 실전배치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 중동에서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이란 등 여러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지만 일찌감치 좌절된 것은 이들 국가가 핵무기를 가졌을 경우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당사국인 이스라엘이 외교적 압박과 공습, 심지어 테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핵 위협의 직접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공습이나 전방위적인 제재와 압박을 주도하기는커녕 핵개발 자금으로 쓰일 수도 있는 현금을 지원하거나 국제 제재를 반대하고 북핵 위협을 외면하는 등 북한의 핵개발을 오히려 돕고 있는 정책 오류를 이어가고 있다. 역대 모든 정권이 북한의 핵개발을 돕거나 방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어느 한 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외교·경제적 제재와 더불어 군사적 압박이라는 카드를 함께 쓰는 투-트랙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국가의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하자니 진보 성향의 야당이 반발하고 있고, 군사적 압박을 취하자니 그러한 능력을 갖추는데 막대한 국방예산 추가 투자가 부담되니 제재와 압박은 미지근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군사적 압박은 아예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사국이 이런데 북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국가들이 북핵 제재에 관심을 갖고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실제로 UN 안보리에서 그동안 3차례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고 193개 회원국에게 이행 제재 실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193개의 UN 회원국 가운데 보고서를 제출하는 나라는 전체 회원국의 19%인 35개국에 불과하며, 중국은 원유부터 식량, 군용차량, 심지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차량까지 북한에 제공하며 안보리 결의를 비웃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북한 스스로 개발한 것이지만, 그들의 핵 능력이 수소폭탄을 운운할 수준까지 고도화될 수 있도록 온실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무책임한 폭탄 돌리기 덕분에 국민들은 이제 터지기 직전의 북핵이라는 폭탄을 손에 받아들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과연 이 폭탄 돌리기를 끝낼 수 있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시론] 한·일 재무당국 정경분리 전통 되살려야/최중경 동국대 석좌교수·동국정경연구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시론] 한·일 재무당국 정경분리 전통 되살려야/최중경 동국대 석좌교수·동국정경연구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1999년 1월 1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재무장관회의가 열렸다. 외환위기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때라 이규성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은 유럽의 재무장관들을 상대로 한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음을 알리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여기서 이 장관은 국제금융시장 분위기를 바꾸는 회심의 한 방을 터트렸다.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재무상과 함께한 자리에서 당시로서는 꽤 큰 액수인 50억 달러 규모의 한·일 통화 스와프(맞교환) 협정 타결을 발표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기극복 능력을 평가하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고, 아시아 국가 간 최초의 통화 스와프 협정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한·일 통화 스와프는 훗날 아시아 국가 간 통화 스와프 네트워크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씨앗이 됐다. 이렇게 탄생했던 한·일 통화 스와프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아이디어를 내고 실무협상을 담당했던 필자가 느끼는 감회는 크다. 그때에도 한·일 어업협상의 여파로 한·일 간 정무적 분위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양국 재무관료들 사이에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다. 정경분리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실무협상 파트너인 마루야마 준이치 당시 재무성 외환과장에게 통화 스와프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했을 때 “재무당국 간 실무적 합의만 이뤄지면 별다른 장애는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일본의 우경화와 일부 정치인들의 언행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경색됐지만 정경분리의 전통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외환보유고가 국제 기준에 비춰 아직도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통화 스와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통화 스와프가 필요한지의 여부에 관한 기술적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통화 스와프 중단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한국이 어려울 때 일본이 외면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는 부담 요인이 된다. 한국의 자신감 표현이라고 이해한다면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외환위기 다음해인 1998년 일본수출입은행에서 10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우리에게 제공하자 유럽계 은행에서 신용공급을 조심스럽게 재개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유럽계 은행 관계자의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은 유럽이 한국을 들여다보는 창이기 때문에 일본이 신용공급을 재개하면 한국의 상황이 좋아졌다는 시그널로 이해한다”는 취지였다. 이제 17년이 지났고 1인당 국민소득, 외환보유고, 대외채무(외채), 경상수지 등에서 큰 진전을 이뤘으니 더이상 유럽이 일본을 통해 한국을 들여다보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과 척지고 사는 것을 경제, 금융의 시각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외환위기는 주요 7개국(G7)인 영국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관련 경제지표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숙명이고 경제대국 일본도 100% 장담은 금물이다. 외환위기 방어망은 두터울수록 좋은데 통화 스와프를 굳이 걷어 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통화 스와프야말로 인출 전에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양질의 방어망’ 아닌가. 통화 스와프 협정 폐지가 정무적 관계 경색에 따른 한·일 재무 당국 간 자존심 싸움 때문이라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한·일 양국은 산업적으로 서로 얽혀 있고 경쟁하면서 협력도 해야 하는 관계에 있다. 정경분리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한·일 양국 모두에 손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 한·일 재무 당국 간에 감정적인 틈이 생기는 것은 결코 환영할 일이 못 된다. 한·일 재무 당국 간에 실무급부터 고위 레벨까지 스킨십을 쌓는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무 당국 간 연례 축구 경기도 재개하고 퇴직관료(OB)끼리 만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일 정상이 만났으니 이제 재무 당국 간에 실마리를 풀 때다.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공격용 헬기 타고 다니는 푸틴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공격용 헬기 타고 다니는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1999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실각과 함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권좌에 오른 이후 16년째 장기 집권하며 21세기의 짜르(Czar·황제)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다. 그는 악명 높은 구소련 정보기관 KGB 요원으로 냉전시기 최전선이던 동독에서 활약했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KGB에서 분리되어 국내 보안 업무를 담당하던 조직인 연방보안국(FSB)의 장관으로 일하는 등 정치보다는 첩보와 정보전에 정통한 관료였다. 이러한 이력 때문인지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색 행보를 이어갔다. 라이플 한 정만 들고 혈혈단신 사냥터로 나서는가 하면, 급류가 흐르는 계곡에 몸을 던져 수영을 즐기고, 수송기를 직접 조종하거나 심지어 정상회담 일정을 펑크내가면서까지 폭주족들과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기도 했다. 이러한 괴짜 성향 때문인지 그는 대통령 전용헬기조차 평범함을 거부했다. 크렘린 상공의 공격헬기 지난 2015년 연말, 모스크바의 대통령궁인 크렘린 영내에서 육중한 체구의 공격용 헬기 2대가 이륙하는 장면이 행인의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이내 화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청와대 헬기장에서 코브라 공격용 헬기가 떠오른 셈이니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궁 앞마당에서 공격용 헬기가 떠오른 것을 놓고 SNS에서는 푸틴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느니 쿠데타가 발생했다느니 다양한 ‘카더라’ 통신이 난무했지만, 이 공격용 헬기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모든 오해가 풀렸다. 바로 푸틴의 새로운 전용헬기였던 것이다. 크렘린궁에서 이륙한 헬기는 러시아 공군의 주력 공격용 헬기인 Mi-24 하인드(Hind)의 최신 개량형인 Mi-35M 공격용 헬기를 개조한 VIP 전용헬기 Mi-35MS였다. 외관만 놓고 보면 공격용 헬기와 거의 차이가 없었으니 오해가 있을 법 했다. Mi-35MS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공격용 헬기 개조 VIP 전용헬기다. 일반적으로 공격용 헬기는 적진 상공을 휘저으며 공격을 퍼부어야 하기 때문에 적의 대공포에 피격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덩치를 줄여 설계된다. 일반적인 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병력 탑승용 공간은 없애고, 조종사(Pilot)와 무장사(Gunner)를 제외한 추가 병력 탑승 기능은 모두 삭제하여 오로지 무장 탑재와 운용에 최적화된 형상으로 개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Mi-24는 태생부터 이러한 공격헬기와는 다른 설계 사상을 가지고 개발됐다. 소련군은 월남전에서 미 육군이 UH-1 휴이(Huey·병력수송헬기)와 UH-1 건십(Gunship·무장헬기)를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병력수송헬기와 무장 헬기의 기능을 하나로 합칠 것을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 조건에 따라 밀(Mil) 설계국은 Mi-24라는 물건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형상의 Mi-24는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은 대규모 기갑부대와 공수부대로 순식간에 주요 도시를 점령했지만, 산악 지역을 거점으로 저항하는 이슬람 반군 무자헤딘(Mujahidin)의 치고 빠지기 식 전술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도 이 무자헤딘의 일원이었는데, 이들은 전투 중 노획한 소련군의 장비에 의존하는 소규모 게릴라로 활동하다가 사우디 등 이슬람 국가들, 심지어 미국까지 나서서 자금과 무기를 지원함에 따라 지역을 통째로 점령한 군벌 형태로 발전해 각지에서 소련군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이에 소련은 산악 지형에서는 전차나 장갑차보다는 공격용 헬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Mi-24 공격용 헬기를 대규모로 투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무자헤딘의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산은 울창한 숲이 아닌 바위산인 경가 많아 숨을 곳이 없었고, 변변찮은 대공 무기가 없던 게릴라들에게 하늘에서 기관포와 로켓탄을 퍼붓는 공격용 헬기는 문자 그대로 사신(死神)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위력을 떨친 Mi-24는 공산권 주요 국가에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동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은 물론 남미 지역까지 50여 개 국가에 수출된 Mi-24는 냉전 시기 미국의 AH-1 코브라(Cobra)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산권의 표준 공격용 헬기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는 냉전 붕괴 이후 Mi-28이나 Ka-50과 같은 신형 공격용 헬기를 개발해 배치했지만, 병력 수송 임무와 공격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Mi-24의 전술적 이점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Mi-24의 엔진과 무장, 전자장비를 대폭 개량한 Mi-35를 내놓았는데, 푸틴은 이것을 가지고 자신의 전용 헬기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21세기 짜르’가 탈 전용 헬기인 만큼 Mi-35에는 환골탈태에 가까운 수준의 대대적인 개조가 이루어졌다. 기체를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값비싼 복합 소재를 대폭 사용했고, 속도 성능과 민첩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메인 로터를 유리섬유 소재 신형 로터로 바꾸고 엔진도 교체했다. 갑작스럽게 미사일이 날아올 경우에 대비한 방어 장비는 물론 전자전 장비까지 탑재했다. 또한 VIP 탑승 공간에 대한 방탄 처리와 더불어 추락하더라도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랜딩기어도 완전히 새로 설계했다. 8명이 탑승할 수 있는 병력 탑승 공간 역시 푸틴을 위해 호화롭게 개조됐다. 실내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게 바뀌고 널찍한 좌석과 회의용 테이블도 추가됐다.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시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푸틴의 성향을 반영해 창문도 커졌다. 지상 공격과 병력 수송 등 순전히 군사 작전을 위해 개발된 공격 헬기가 최고의 생존성과 안락함을 자랑하는 VIP 전용 헬기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공격형 VIP 헬기, 푸틴의 취향? 일반적으로 대통령 등 국가수반이 타는 VIP 전용 헬기는 생존성과 안전성을 강화하고, 대통령뿐만 아니라 참모진도 동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큼직한 중대형 헬기를 기반으로 개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S-92를 비롯해 미국의 마린 원(Marine One), 프랑스와 독일(EC-725) 모두 10톤급 이상의 중대형 헬기이다. 이러한 케이스는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래 러시아는 대통령 전용헬기로 자국의 베스트셀러 중형 헬기인 Mi-8을 개조한 중형 VIP 전용헬기인 Mi-8MTV를 운용하고 있었다. 공산권 국가의 표준 수송헬기로 대량 보급된 Mi-8은 우리 군의 UH-60 블랙호크에 비견되는 중형 헬기이지만, 훨씬 더 대형의 기체로 내부에 최대 24명이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 헬기를 VIP용으로 개조, 내부에 고급 좌석과 회의용 테이블, 위성통신시스템 등 다른 나라의 대형 VIP 헬기 못지않은 설비를 탑재해 대통령 전용 헬기로 운용하고 있었다. 푸틴은 이 헬기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고, 지방 시찰 시 종종 이 헬기를 이용했는데, 헬기 이용 횟수가 점차 많아지면서 지난 2013년에는 비좁은 크렘린궁 안에 아예 헬기장을 따로 만들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헬기 이용 횟수가 잦아지면서 경호 및 의전을 담당하는 부서는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러시아는 체첸 등 소수 민족에 의한 독립운동으로 인해 치안이 불안한 상태였고, 최근 푸틴 대통령이 IS와의 전쟁을 선포함에 따라 국내의 체첸 반군과 IS의 연계 테러에 의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분실된 무기가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고, 퇴역 군인과 폭력조직에 의한 무기 암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전체 국경선 길이만 62,269km에 달해 국경을 통해 밀반입되는 불법 무기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나라이다. 즉, 푸틴이 타고 있는 대통령 전용 헬기가 러시아 영공을 비행하는 중이라도 언제 어디서든 지대공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에서 푸틴을 암살하기 위해 전용 헬기를 공격할 세력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푸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90%에 육박할 정도로 절대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측의 러시아 경제 제재가 장기화되어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던 고유가 상황도 무너지면서 푸틴의 리더십과 지지율은 오로지 선전전에만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황까지 악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초 유력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Boris Nemtsov) 피살 사건으로 인한 러시아 내 반 푸틴 세력의 결집, 크림반도 무력 침탈로 인한 우크라이나와의 긴장 고조, 시리아 내 IS 공격으로 인한 이슬람 세력과의 충돌과 러시아 내 무슬림 세력의 동요 등 불안 요소가 하나 둘씩 고개를 들고 있다. 푸틴의 ‘공격형 VIP 헬기’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Mi-35MS VIP 전용 헬기는 그 태생이 강력한 방호력을 가진 공격용 헬기인 만큼 푸틴과 경호당국이 우려하던 대부분의 위협으로부터 푸틴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헬기이고, 이제 푸틴은 러시아 영내 어디라도 이 헬기를 타고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반대파와 정적, 그리고 주변 국가들을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장기 철권통치를 이어가면서 적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값비싼 전용 헬기는 애초부터 만들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특별 기고] 美 의존도 높았던 안보 정책 유럽의 힘으로 재편 나설 듯

    [특별 기고] 美 의존도 높았던 안보 정책 유럽의 힘으로 재편 나설 듯

    국제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가 향후 국제 질서와 유럽, 미국 등 관련국 정치·경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최고의 유럽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종서(중원대 교수) 한국외대 EU연구소 초빙연구원이 이 부분을 조망했다. 그는 ‘유럽연합 A to Z’, ‘유럽연합의 정체성’, ‘유럽연합의 대외정책’ 등을 저술했다. 그리스 긴축재정 부담 완화에 합의한 후 최근까지 유럽의 정치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최대 화두는 ‘어렵지만 그래도 낙관적인’ 유럽 통합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시리아 난민 사태를 둘러싼 회원국 간 이해관계의 난립에도 불구하고 ‘난민 할당제’라는 공동 합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럽의 낙관적 미래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시리아 전체 난민 숫자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유럽연합(EU)은 독일이 주도한 온정주의 정책으로 난민 할당제 통과라는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번 이슬람국가(IS)가 주도한 프랑스 파리 테러는 난민 할당제 실행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유럽 통합의 미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유럽의 분열과 이슬람 결집 노리는 IS 파리 테러로 시작된 IS의 첫 번째 목표는 난민 수용 정책에 반대하는 극우 세력 결집을 통한 EU의 분열이다. 유럽 통합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개방된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면, 극우 세력의 등장은 민족주의라는 울타리를 친 ‘닫힌 사회’를 지향한다. 유럽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유럽화’(Europeanization)를 통해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유럽의 극우 세력은 민족 정체성과 배타성을 강조하면서 유럽화에 저항하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판이하다. EU가 극우 세력을 ‘유럽의 파괴자’로 규정한다면, 극우 세력은 EU가 ‘민족의 혼’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IS의 두 번째 목표는 유럽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혐오증) 확산을 빌미로 한 전 세계적 이슬람 세력의 결집이다. 이번 파리 테러의 일부 용의자들이 시리아 난민 틈에 섞여서 프랑스에 들어온 것이 밝혀지면서 난민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이미 더이상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헝가리 역시 기독교에 기반을 둔 유럽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무슬림 이민자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난민 수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독일 내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온정주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의 이러한 이슬람 혐오 현상의 증가는 IS가 목표한 것과 일치하고 있다. IS는 파리를 공격함으로써 무슬림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감을 키우고, 이를 계기로 분열돼 있는 이슬람 세력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 파리 테러로 인해 내년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도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IS 척결을 위해 미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감행한다면 중동에서 무슬림 국가들 간 결집이 종파를 초월해 이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반세기 이어진 화해·협력 방해 못 해 그럼에도 이번 파리 테러가 지난 반세기 유럽 통합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화해와 협력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독일 주도의 유럽 통합에는 변화가 예상된다.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프랑스의 입김이 한층 강화될 것이며, 유럽 안보 방위 정책은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유럽 안보의 주도권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아래에 두려는 미국과, 공동 외교안보 정책을 근간으로 유럽의 독자 방위 체제를 구축하려는 EU 회원국들 간에 이견이 좁혀질 것이다. 유럽 안보 방위 정책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에서 나토와 EU 간 의견의 불일치가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EU 신속대응군 증강하고 새 질서 모색 이와 같이 EU 회원국들이 공동 안보 방위 정책에 동의하고 의견 일치를 본 것은 유럽 방위산업의 재편성 및 구조조정이 절실했기 때문이고, 코소보 사태 등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었다. 이번 파리 테러 사태로 ‘유럽의 안보는 유럽의 힘으로’라는 모토가 다시 내걸릴 것이고, 그동안 미국 군사력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에 대한 비판이 확대될 것이다. 그 결과 현재 6만명인 EU 신속 대응군 수를 늘리는 전력 증강이 이뤄질 것이다. 이처럼 이번 사태는 EU의 공동 외교 안보 정책 전반에 걸친 개혁의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파리 테러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유럽 질서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유럽 안보에 대한 대외적 정체성과 미국과의 관계 재설기 논의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자율주행 버스’ 시민 태우고 쌩쌩...그리스, 운행 시작

    ‘자율주행 버스’ 시민 태우고 쌩쌩...그리스, 운행 시작

    그리스에서 운전기사 없는 ‘자율운전 버스’가 수개월 동안의 주행시험 끝에 실제로 승객을 나르는 본격적 운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그리스 트리칼라 시에서는 올해 여름부터 자율운전버스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 동안에는 주로 인간을 태우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실시했는데, 이제부터는 실제 시민들이 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 프로그램의 기술 담당자인 그리스 ‘정보통신 컴퓨터시스템 연구소’(ICCS)의 안젤로스 암디티스는 “완전 자동화 된 차량을 실제 교통체계에 편입시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안 그리스 내 자율운전 차량들은 별도의 도로 및 전시장에서만 주행이 허가됐으며 항상 유사시에 대비해 인간 운전 전문가가 그 운행을 감시해야만 했다. 반면 앞으로 운용될 자율운전 버스 6대는 인간의 도움 없이도 차량, 자전거, 보행자들 사이로 주행할 수 있다. 한 번에 12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으며 이용요금은 없다. 그러나 안전상의 이유로 많은 제한사항 또한 존재한다. 우선 버스의 최대 속력은 시속 12㎞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 버스의 주행 차선에 다른 차량이 끼어드는 것은 허락되지만, 반대로 자율버스는 차선 변경을 시도 할 수 없다. 또한 이들 버스는 U턴도 불가능하며 오로지 정해진 순환 노선만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만약 버스의 진행로 상에 장애물이 등장할 경우 버스는 운행을 즉각 멈추고 해당 물체가 사라질 때까지 대기해야만 한다. 암디티스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차량과는 달리 자율운전 버스가 사고를 낸다면 사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율운전 버스들은 내년 3월까지 운행을 계속한 뒤 평가점검 기간을 거칠 예정이다. 이 때 과학자들은 자율버스들이 보여준 성능 및 성과, 시민들의 반응, 도시 경영 담당자들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추후 활용을 계속할지 논의하게 된다. 이번 프로그램은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중소도시 대중교통 혁신 프로젝트인 ‘시티모빌2’(CityMobil2)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는 각 도시 통근자들 및 노약자들의 이동 편의를 증진시키기 위한 새로운 대중교통수단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암디티스는 다른 도시들이 트리칼라 시의 프로그램 시행 결과를 참고해 자체적인 자율버스 생산 및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 활용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도 내년 2월부터 고속도로와 국도 일부 구간에서 자율주행 자동차가 시범 운행된다. 정부는 최근 ▲경부·영동고속도로 서울요금소~신갈~호법 구간 41km ▲일반 국도 수원, 화성, 용인, 고양 지역 등 320km 구간을 자율주행 자동차 시험운행 구간으로 확정했다. 또한 현대는 다음달 출시할 제네시스 대형 세단 EQ900(해외에선 G90으로 출시 예정)에 부분 자율주행 기술인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을 탑재할 예정이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운전기사 없는 ‘자율운행 버스’ 그리스서 본격 운행 시작

    운전기사 없는 ‘자율운행 버스’ 그리스서 본격 운행 시작

    그리스에서 운전기사 없는 ‘자율운전 버스’가 수개월 동안의 주행시험 끝에 실제로 승객을 나르는 본격적 운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그리스 트리칼라 시에서는 올해 여름부터 자율운전버스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 동안에는 주로 인간을 태우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실시했는데, 이제부터는 실제 시민들이 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 프로그램의 기술 담당자인 그리스 ‘정보통신 컴퓨터시스템 연구소’(ICCS)의 안젤로스 암디티스는 “완전 자동화 된 차량을 실제 교통체계에 편입시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안 그리스 내 자율운전 차량들은 별도의 도로 및 전시장에서만 주행이 허가됐으며 항상 유사시에 대비해 인간 운전 전문가가 그 운행을 감시해야만 했다. 반면 앞으로 운용될 자율운전 버스 6대는 인간의 도움 없이도 차량, 자전거, 보행자들 사이로 주행할 수 있다. 한 번에 12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으며 이용요금은 없다. 그러나 안전상의 이유로 많은 제한사항 또한 존재한다. 우선 버스의 최대 속력은 시속 12㎞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 버스의 주행 차선에 다른 차량이 끼어드는 것은 허락되지만, 반대로 자율버스는 차선 변경을 시도 할 수 없다. 또한 이들 버스는 U턴도 불가능하며 오로지 정해진 순환 노선만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만약 버스의 진행로 상에 장애물이 등장할 경우 버스는 운행을 즉각 멈추고 해당 물체가 사라질 때까지 대기해야만 한다. 암디티스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차량과는 달리 자율운전 버스가 사고를 낸다면 사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율운전 버스들은 내년 3월까지 운행을 계속한 뒤 평가점검 기간을 거칠 예정이다. 이 때 과학자들은 자율버스들이 보여준 성능 및 성과, 시민들의 반응, 도시 경영 담당자들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추후 활용을 계속할지 논의하게 된다. 이번 프로그램은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중소도시 대중교통 혁신 프로젝트인 ‘시티모빌2’(CityMobil2)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는 각 도시 통근자들 및 노약자들의 이동 편의를 증진시키기 위한 새로운 대중교통수단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암디티스는 다른 도시들이 트리칼라 시의 프로그램 시행 결과를 참고해 자체적인 자율버스 생산 및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 활용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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