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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통실태와 좋은 쌀 고르기 요령(현장경제)

    ◎경기특미 요즘 팔리는 것 대부분이 “가짜”/한해 시판물량 1백74만섬 불과/서울사람 79일 먹을 양… 이미 바닥/백화점ㆍ슈퍼등서 파는 것도 “엉터리”/맑고 윤기 흐르며 딱딱한 느낌 들어야 좋은 쌀 경기특미ㆍ저공해쌀등 이른바 특산미의 상당량이 정부미나 경기지역이외의 일반산지미가 혼합된 가짜 경기미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난 일이다. 최근에도 경제기획원ㆍ농림수산부ㆍ국세청ㆍ치안본부 등 4개 부처 합동으로 서울소재 주요백화점과 슈퍼ㆍ쌀도매상 등을 대상으로 정부미 유통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가짜라는 것이 또 확인됐다. 경제기획원등 관계부처는 경기특미는 이미 지난 6월에 출하가능량이 바닥이 났기 때문에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경기특미는 대부분 가짜일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시중에 가짜 경기미가 나돌고 일반미보다 비싼 값에 팔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경기미가 미질이 뛰어나 이를 찾는 소비자층이 많기 때문이다. ○여주ㆍ이천쌀은 1.8% 여기에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농산물에 대한 중금속오염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값이 비싸더라도 저공해쌀을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경기특미나 저공해쌀은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생산되고 어떻게 유통되고 있을까. 지난해 전국에서 생산된 생산된 쌀 4천95만8천섬중 경기도에서 생산된 이른바 경기미는 11.9%인 5백94만1천섬이며 이 가운데서 여주ㆍ이천ㆍ김포ㆍ강화ㆍ안성ㆍ용인ㆍ화성ㆍ평택산인 경기특미는 4백31만9천섬에 불과하다. 더욱이 특미중에 특미로 꼽히는 여주ㆍ이천쌀은 73만섬(전국 쌀생산량의 1.8%)이 생산됐다. 이같은 생산량중에 시중에 출하될 수 있는 쌀은 전체 경기미중 농가소비를 제외한 4백26만6천섬(경기특미 3백10만2천섬) 정도이다. 시중에 출하될 수 있는 경기미를 유통경로로 보면 시장판매가 2백39만8천섬으로 가장 많고 친척등 연고를 통한 증여나 판매가 1백20만섬,정부수매가 66만섬으로 추산되고 있다. 경기특미는 출하가능량 3백10만2천섬중 시장판매가 1백74만4천섬이며 나머지는 연고미가 87만2천섬,정부수매 48만6천섬으로 사실상 1백74만4천섬정도가 시중에 상품으로 나올 수 있는 전부이다. ○한가마 4만원 더받아 서울에서만 하루 소비되는 쌀 2만2천섬(80㎏들이 4만가마)으로 계산하면 79일 정도면 바닥이 나버리는 물량이다. 최고의 품질로 평판이 있는 여주ㆍ이천쌀은 지난해 생산량 73만섬중에 시중에 출하될 수 있는 물량은 30만섬에 불과하고 이를 서울의 하루소비량으로 나누면 14일이면 다 소진돼 버리는 셈이된다. 물론 통일계 정부미등이 함께 소비되기는 하지만 이달말이면 첫햅쌀이 등장할 예정이기 때문에 시중 상가등에서는 경기특미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농림수산부가 지난달초에 전국 농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지난해산 쌀재고량은 4백97만6천섬이며 이중 출하가능량은 2백30만섬이며 이 가운데 경기특미는 40만섬이하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 아직까지 경기특미라는 이름으로 8㎏당 일반미보다 2천∼4천원 비싼 1만2천∼1만4천원에 버젓이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경기특미는 따라서 대부분 정부가 찧지않고 벼상태로 방출하는 조곡이나 다른 지역의 벼를 여주나 이천등지에서 도정해 경기특미로 둔갑시킨 것이 아니면 정부미등이 혼합된 가짜일 수밖에 없다. 또 휴전선근방에서 생산되는 DMZ쌀등 소위 저공해쌀도 농약을 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조사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고 또 그 생산량이 극소수이기 때문에 이 역시 유통업체들이 공해없는 농산물을 선호하는 소비심리를 악용해 대부분 다른지역 쌀을 속여 판매하는데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저공해쌀도 가짜 많아 전북 부안의 계화도와 전남 해남 등의 간척지쌀도 토양이 좋아 미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연간 전체 생산량이 10만섬 이하로 미미하다. 경기특미도 같은 지역의 논에 따라,또는 품종ㆍ기상ㆍ병충해 여부ㆍ수확방법에 의해 미질이 달라질 수 있으며 다른 지역의 일반미와 식별이 어렵다. 양질미의 대명사로 「아끼바리」라고 불리는 「추청」벼도 외형상 낱알이 길쭉한 통일계와 달리 둥근편이지만 전문가들도 다른 일반미와 구별하기가 힘들다. 추청벼의 지난해 재배면적은 경기 11만2천2백63㏊,충남 4만5천5백77㏊ 등 모두 24만2천5백36㏊로 전체 벼 재배면적의 19.3%에 달했다. 이에 따라 경기특미등 특정지역 쌀을 선호하는 것보다는 질좋은 쌀을 고르는 것이 지혜로운 쌀구매 방법이다. 질좋은 쌀은 씨눈이 약간 있는 것으로 ▲맑고 윤기가 있고 ▲쌀 고유의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한다. 또 ▲쌀알이 여물고 고르며 금이 가지 않았고 ▲깨물어서 딱딱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싸래기와 쭉정이가 없고 ▲도정한지 한달 이내의 것을 고르는 것이 무난하다.
  • DMZ등 20억평 「용도지역」지정/건설부,추가 고시

    ◎다도해등은 환경보전지역으로/전국토 이용계획 수립… 군사지역은 개발제한 건설부는 4일 휴전선의 우리측 비무장지대 전역,독도를 포함한 일부 섬등 지금까지 국토이용계획상 용도가 정해져있지 않았던 6천6백35㎢(약 20억7백만평)의 용도를 지정,고시했다. 이와 함께 해상국립공원인 다도해지역등 일부해면에 대해 용도를 부여,해면으로는 처음으로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번에 국토이용계획상 용도가 지정된 곳은 그동안 조사보호구역이거나 토지이용도가 매우 낮아 국토이용계획의 수립이 유보되어 왔던 지역들로 정부의 북방정책추진,지역개발욕구증대등 국내외 여건변화와 함께 개발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지역실정에 알맞는 용도가 부여됐다. 이들지역의 토지는 앞으로 국토이용계획법상의 용도에 따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군사보호구역 등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은 용도만 정해져 있을 뿐 안보상의 제한조치가 풀릴 때까지 계속 개발이 제한된다. 이번 지정으로 9만9천2백37㎢에 이르는 전 국토에 대한 국토이용계획이 수립돼 토지의용도를 높이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개발하거나 보전할 수 있게 됐다.
  • 고위회담 성사를 통일 성사로(사설)

    그 가능성 예측대로라면 오는 9월초 어느날 서울에서는 남북한 총리급고위회담이 열리게 된다. 지난번 예비회담에 이은 몇차례 실무접촉에서 양쪽은 의외롭다 할 정도로 별 이견없이 본회담 개최에 따른 실무사항에 합의했다. 오는 26일의 예비회담에서 합의문서가 서명된다면 서울과 평양의 길은 다시 이어지게 된다.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바람직한 일이고 통일이전 분단해소 노력에 발전적인 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남북 고위급예비회담 실무접촉에서 논의된 대로 남북한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항공기편으로 오고감을 상상해볼 수 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상공으로의 직항이 쌍방에 의해 허용된다면 분단이후 허가에 의한 첫 여객기 왕래가 될 것이다. 분단된 민족과 갈라진 국토의 통합이란 무엇인가. 비행기와 기차·자동차로 오고가고 이윽고는 단절됐던 문화와 풍속이 다시 이어지고 통화와 생활권이 묶어지는 것 아닌가. 동독과 서독이 그러했고 남북예멘이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남북대화와 교류가 가는 길이 바로 그래야 한다는것이다. 아직은 그 길이 멀고 험하겠지만 최소한도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우리 당국은 제1차 남북 총리회담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통일주간」을 선포할 방침이다. 또 마침 그 기간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발표(9월11일) 1주년을 전후하는 기간이다. 우연의 일치일는지는 몰라도 최근 전해지기로는 북한이 그들의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고 서방 자본국들과의 유대를 도모하기 위해 남방정책을 추구할 것이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남방정책이 우리의 북방정책에 대응하는 정책입안이라고만은 여기지 않는다. 북방정책이든 남방정책이든 그것은 이제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이며 냉전지대인 남북한이 그들 자신을 위해 취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이며 시대의 추세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를 포착하고 정책수단을 선택하는 판단의 차이였던 것이다. 북방정책과 「남방정책」이 만나는 곳에서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족적 의지가 집결되고 민족적 통일의식의 공감대가 이뤄진다면 한반도문제는 궁극적 해결의 단초가 잡히고 기초가 놓이는 것이다. 물론 최근 남북한 양쪽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통일의 방법론은 아직 기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크게 보아 남쪽은 통일민주공화국이라는 통일국가 형태에 이르기 위해 중간단계로 체제연합의 성격을 갖는 남북연합을 상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통일국가 그 자체의 성격을 띠는 이른바 「고려연방제」를 내세운다. 어느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가는 양쪽 당사자의 시각과 인식에 따라 다르겠으나 국내외적으로 이미 객관적인 평가는 나 있다. 남북한 총리회담에서는 북쪽이 주장해왔던 정치·군사문제가 토의될 것이고 교류와 협력을 위한 제반 구체적인 문제가 협의될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소홀히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전부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대화에는 상호 신뢰와 이해 양보이외에 협상의 기본원리에 대한 동의가 앞서야 한다. 그것이 명분과 형식이다. 그 모두에 충실할수록 대화의 실효는 클 것이다.
  • 남북 고위급회담 합의문 12일 확정/대표단 DMZ 직항등 포함

    ◎어제 예비회담 실무대표 판문점서 접촉 남북 고위급회담 예비회담 실무대표들은 6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비공개접촉을 갖고 본회담 개최에 관한 합의서 문안작성작업을 벌여 기본적인 합의를 보고 오는 12일 2차 실무접촉에서 최종 확정키로 했다. 우리측의 신성오(외무부 정보문화국장) 김보현(국무총리 행정조정실심의관)대표와 북측의 최우진(외교부국장) 최성익(조평통 서기부국장)대표는 이날 접촉에서 전문과 19개항에 걸친 합의서 문안에 대해 기본적인 합의를 보았다고 남북대화사무국이 발표했다. 대화사무국은 또 『양측 대표들은 이날 조정된 합의서안을 최종 확인하기 위해 오는 12일 제2차 실무접촉을 갖기로 했으며 여기서 마련된 최종 합의서를 오는 26일 제8차 예비회담에서 서명·교환할 것』이라고 밝히고 『이제 남은 문제는 서울·평양중 어느 곳을 먼저 쓰느냐 하는 등의 아주 사소한 표현상의 문제들뿐』이라고 덧붙였다. 대화사무국은 이어 『3시간반동안 계속된 작성작업에서 양측은 지난번 제7차 예비회담에서 쌍방이 각각 제시했던 합의서안을 토대로 별다른 이견없이 순조롭게 절충작업을 벌였다』고 밝혔다. 남북 양측이 최종합의서에 서명하게 되면 본회담은 자동적으로 1개월이내(8월25일 이전)에 서울에서 열리게 된다. 양측이 이날 최종 확인한 19개항의 합의사항은 ▲회담명칭은 남북 고위급회담으로 하고 ▲대표단은 총리를 수석대표로 모두 7명으로 하되 대표는 장차관급으로 하고 군대표는 참모총장급 1명을 포함,2명이내로 하며 ▲수행원 33명·기자 50명에 ▲의제는 남북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문제로 하자는 내용등이다. 이날 접촉서 양측은 그동안 이견을 보여온 ▲회담의 주체및 합의서명자의 명칭표기시 국호사용문제 ▲대표단의 항공기 수송 ▲기자들의 취재활동 관련조항을 놓고 집중적인 논의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은 회담주체와 국호표기도 서로 편리할 대로 하고 북한대표단의 항공기를 이용한 비무장지대 직행비행도 허용한다는 선에서 거의 모든 사항을 양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북한대표단은 사상 처음으로 공로로 서울에 올 것이 확실시된다.
  • 새 실록 6ㆍ25 김학준:하

    ◎“핵투하도 불사”… 미 으름장에 DMZ설정 동의/“휴전 지체할 수 없다”… 투르먼,맥아더 해임/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 방위조약약 가조인/아이크 대통령 당선ㆍ스탈린 사망후 「정전협상」급진전 ▷제4기◁ 중국군의 남진이 계속되자 맥아더는 과감한 보복조치를 마련했다. 그는 50년 12월30일 본국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해 ①중국해안의 봉쇄 ②중국본토의 군수산업시설 폭격 ③장개석 군의 파한 ④장개석 군의 중국본토에 대한 견제공격을 건의했다. 그는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면철수한다면 중국군의 침공위협은 보다더 중요한 지역에 대해 가중될 것이며 그 결과 보다 많은 전력의 투입이 요청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합참은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 보존에 주로 유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축차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하라』고 답변할 뿐이었다. 맥아더는 이 답변을 「명백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국련군의 전면철수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든지,아니면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보존을 위해 한반도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51년 1월13일 『공산군의 침략행위가 시정될 때까지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침략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세계에 밝혀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최악의 경우 국련군은 제주도와 같은 남한 연안의 섬으로 철수해 전투를 계속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후임에 리지웨이대장 맥아더와 본국정부 사이에 이견이 오가는 사이 국련군은 전세를 수습하고 공세로 돌아섰다. 그리하여 국련군은 51년 3월 초순 이후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3월30일께까지는 38도선까지 밀고 올라갔다. 이로써 한국전쟁을 국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전황이 국련군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전개되고 무엇보다 전전원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이면서 국련에서는 다시 휴전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서방진영의 국가들도 국련군의 38도선 재북상에 반대하면서 만일 미군이 단독으로라도 재북상하기로 결정한다면 자신들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마저 나타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트루먼은 중국과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휴전을 성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3월20일 맥아더에게 그러한 취지의 성명이 가까운 장래에 발표될 예정임을 통고했다. 맥아더는 트루먼의 이 결정을 좌절시키기로 결심하고 3월24일 본국정부와의 아무런 협의없이 중국에 대한 공식성명을 발표했는데 중국대륙에의 전면적 확전으로써 한반도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트루먼이 추구하려는 중국과의 협상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이 성명에 뒤이어 맥아더는 4월5일 하원 공화당 원내총무 조세프 마틴의원이 자신에게 보낸 3월2일자 편지에 대한 답장을 공개하여 트루먼을 더욱 격분시켰다. 아시아 중시정책을 강조하면서 논평을 요구한 마틴의 서한에 대한 이 답장에서 맥아더는 우선 트루먼의 유럽 중시정책을,그리고 유럽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시아를 경시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결론적으로그는 『우리는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맥아더의 3월24일자 공식성명을 보고 그의 해임을 결심했던 투르먼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4월10일 라디오방송을 통해 맥아더의 해임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제한전에 의한 제3차대전의 방지』라고 선언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는 8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이 임명됐다. 맥아더의 해임은 미국이 휴전을 향해 움직인다는 명백한 의사의 표시였다. 한편 공산군은 51년 4∼5월 춘계대공세를 폈으나 인명의 큰 손실을 겪었을 뿐이고,이 시점에서 전선은 완전히 교착됐다. 전선이 교착된 51년 5월 중순부터 미국과 국련에서 휴전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특히 5월17일 에드윈 존슨 미국 상원의원이 국련이 휴전을 이끌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이 제의가 소련의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된 것을 계기로 휴전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예컨대 국련에서 리 사무총장과 캐나다의 레스터 피어슨 외무장관 및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각각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선에서의 휴전안을 제의했다. 소련도 드디어 6월23일 국련대표 말리크의 연설을 통해 휴전에 동의했다. 통일을 염원하던 남­북의 한인들에게는 유감스런 일이었지만 쌍방의 참전국가들의 거의 예외없이 휴전을 바라고 있었다. ▷제5기◁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과 소련이 정전의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7월8일 개성의 중심지 북방에 있는 지난날 유명했던 유곽에서 국련군쪽과 공산군쪽의 연락장교단에 의한 예비회담이 열렸다. 이어 7월10일 개성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국련군쪽의 수석대표는 미해군 극동사령관 조이 제독이었다. 리지웨이 총사령관이 직접 뽑았다. 정전회담에서 공산군 대표들이 국련군 대표들을 자극해 국련군 대표들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화를 내게 하여 회의장을 뛰쳐나가게 만드는 「충동작전」을 쓰거나 정반대로 몇시간씩 끌면서 지치게 만드는 「권태전술」을 쓸 것이라고 계산한 리지웨이는 따라서 국련군 수석대표는 어떠한 도발적 언동에 대해서도 침착하면서도 강경하게 맞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판단했다. 즉 『6시간정도 앉아 있으면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오줌누러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협상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리지웨이에게 조이는 적임이었다. 조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많은 훈장을 받았고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적을 굴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ㆍ소에 “전면전”통첩 조이 수석대표를 보좌할 대표로 리지웨이는 2차대전의 베테랑들로부터 뽑았다. 유럽전선에서 보병연대를 지휘했었고 이때 미8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호지스 소장,북아프리카에서 공중전을 지휘했었고 이때 미극동군 부사령관으로 있던 크레이기 소장,태평양전쟁에서 구축함전투를 대담하게 지휘해 용맹을 떨쳤었고 이때 미극동해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버크제독이 선발됐다. 한국군으로부터는 제1군단장 백선엽소장이 선발됐다. 공산군쪽 수석대표는 남일중장이었다. 남일중장을 보좌하는 북한군대표는 전선사령부 총참모장 이상조 육군소장이었다. 정전회담에서 그는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 않고 앉아 「강철같은 자기억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또 한 사람의 북한군 대표는 북한 육군 제1군단 총참모장 장평산 소장이었다. 중국군에서는 사방 소장과 등화 중장이 대표로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 사방이 사실상의 수석대표였고 남일은 이름이 수석대표였지 실제에 있어서는 사방의 지휘를 받는 것 같다고 국련군 쪽에서는 보았다. 회담도중 그는 동료 대표들과의 상의없이 발언했고 선전적인 문구 같은 것도 사용함이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양쪽 대표단들은 신경전을 거쳐 7월26일 다음과 같은 의제에 합의했다. ①전투행위를 정지하는 기본조건 아래 양군 사이에 비무장 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는 문제. ②정전감시기구의 구성과 권한 및 기능을 포함하여 정전을 성립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들을 결정짓는 문제. ③포로에 관한 결정. ④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에 권고하는 문제. 의제에 대한 합의와 더불어 7월28일 첫번째 의제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합의가 쉬울 것 같아 버크 제독 같은 이는 본국의 아내에게 『가을이 되어 사과가 익었을 때는 나는 과수원이 있는 이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회담은 길어지면서 10월25일부터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긴다는 것 정도에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회담이 이렇게 길어지면서 서방 참전국들은 초조해졌다. 이점을 간파한 공산군쪽은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자신감에서 국련군쪽 대표들에게 모욕적인 용어마저 썼다. 호지스 소장을 「거북이 알」이라고 불렀고 조이 수석대표에 대해서는 『이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수석대표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지웨이는 견디기 어려웠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나오는 적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비단보다 강한 쇠가 필요하다』라고 본국정부에 호소했다. 이에 미국은 소련에게 『공산군쪽이 협상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만주의 공산기지를 폭격하고 중국의 해안을 봉쇄하여 필요하다면 소련과 전면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공갈」을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트루먼은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쓰는 문제를 검토했다. 미국의 이와 같은 강경한 자세를 보면서 공산군쪽은 한발 물러서 『현재 쌍방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는다는 원칙아래 앞으로 체결될 정전협정이 지정하는 시간에 쌍방은 이 분계선으로부터 2㎞씩 철수하여 그 지역을 정전 동안 비무장화 한다』는 국련군쪽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52년 1월27일이었다. 이처럼 군사분계선에 관한 합의가 일단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전체 흐름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사분계선 문제에 매듭이 지어지면서 쌍방은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들에 권고하는 문제」를 다뤄 나갔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게 이뤄졌다. 즉 정전회담 발효 3개월 안에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사이에 「고위 정치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다. 정전의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52년 5월2일 양쪽은 스웨덴ㆍ스위스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의 네 나라로써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공산군쪽은 소련을 중립국이라고 우기면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포함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나머지 문제는 포로교환의 문제였다. 정전이 성립되면 포로교환은 당연히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이 마당에 이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져 정전협정이 곧 체결될 것으로 기대됐다. ○2년 1개월만에 매듭 국련군쪽은 우선 「자발적인 송환」의 원칙을 제의했다. 국련군에 포로로 잡힌 공산군에게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군쪽은 「자동송환」의 원칙을 내세웠다. 모든 포로들은 포로 개개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송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공산군쪽은 이 원칙을 관철시켜야 국련군쪽에 잡혀 있는 자신들의 장병들이 서방세계를 선택하지 않고 전원 돌아올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협상이 오래 끌면서 공산군쪽은 국련군쪽이 세균전을 펴고 있다는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포로들이 포로수용소 사령관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이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련군쪽은 북폭을 강화하기도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52년 11월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조기정전」을 내세운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이로써 53년 1월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으며,휴전협상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소련에서는 53년 3월 스탈린이 죽으면서 정전을 향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정전협상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자 이대통령은 통일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실망감 속에서 6월19일 국련군에 수용되어 있는 공산포로들 가운데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5천여명을 극비의 작전을 통해 과감하게 석방했다. 이대통령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은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을 대통령 특사로 파한했으며 이대통령이 요구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게 했다. 한­미간의 합의가 성립됨으로써 정전협정의 체결을 위한 길은 완전히 열렸다. 그리하여 7월27일 휴전협정은 판문점의 「평화의 천막」안에서 조인됐다. 2년 1개월 여의 긴 시간동안 5백75회의 공식회의를 갖고 1천8백여만 단어를 소비한 다음에야 매듭지어진 것이다.
  • 북한의 DMZ 핵기지 건설(사설)

    지난 2월 서울을 방문했던 체니 미 국방장관은 귀국직후 미 의회증언에서 북한의 핵개발계획이 동아시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 무렵 동구권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민주화 개혁추세에 따른 국제적인 화해와 군축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동서의 모든 국가들이 전후 냉전체제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난해부터 국제적으로 검증되고 있었던 북한의 핵개발은 이같은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는 무모한 전쟁대비책동으로 보여졌던 것이다. 북한이 이번에는 한반도의 휴전선 비무장지대(DMA) 부근에 새 탄도미사일의 발사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발사대 2기를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이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개량하여 자체개발한 이 새 탄도미사일은 그 사정거리가 5백 내지 6백Km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돼 남한전역이 그 사정권에 들며 핵 또는 화학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한반도 안전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특히 미국의 첩보위성에 의해 이미 이달초에확인됐다는 점에서 매우 심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나 핵운반수단의 확보 내지 실전배치는 크게는 국제정세의 신데탕트 분위기와 군축정책에 역행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한반도의 군사균형을 근본적으로 깨고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에 또다시 긴장을 고조시키는 실질적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휴전선 일대에 그들 전병력의 70%이상을 전진배치하고 있다. 특히 전쟁상황 또는 기습공격시 전후방 이동 등 기동이 자유로운 자주포를 비롯하여 대공포ㆍ견인포와 주력 전차,장갑차등 모든 공격 전력을 휴전선 북방한계선에 은폐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제적인 추세발전에 힘입어 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 또는 군축논의가 활발해질 계제에 이른 것도 사실이다. 또 우리쪽의 대화노력과 방안 가운데에는 구체적인 군축협상도 포함돼 있다. 북한 당국 자신도 최근에는 남북한 군축문제와 관련하여 몇개의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전해진 바로 본다면 북한의 태도는 실제와 다른 것이드러났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겉고 속이 다르다면,더구나 그것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직접 관련되는 군사적 사항이고 보면 우리로서도 만반의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미소를 비롯한 국제여론의 권유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국제핵안전협정(IAEA)에 서명하기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그들의 그같은 거부자세가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의 핵기지 설치와 관련됐다면 이번에는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소 정상회담 이후에도 미ㆍ북한이 북경등지에서 접촉했다고 하나 그 역시 이 핵안전협정 서명과 관계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선 북한이 핵무기 개발내지 새 미사일기지 설치설과 관련하여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본다. 북한이 그동안 한반도의 비핵화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해 왔다는 사실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그들이 현명치 못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 솔로몬 미 국무성 차관보 1문1답

    ◎“미­북한 관계개선은 남북대화가 전제”/대북관계 진전되면 접촉경로 확대/한반도문제 자결에 미­소 의견일치 ­노­고르바초프회담으로 상징되는 한소 관계개선에 대해 미국은 터트와일러 국무부대변인을 통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에서 미의 이익과 상충되는 것이 아닌가. ▲솔로몬차관보=한소 정상회담은 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공산주의는 대내외정책에서 실패했다. 그들은 지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아울러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국 모두가 지금 자유세계국과의 긴장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이번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을 통해 이 변화를 아시아로 끌어들였다. 우리는 노대통령의 소련과의 건설적인 대화노력이 아시아의 긴장완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 부시대통령은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지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물론 두 나라 국교정상화의 절차가 아직 완전히 매듭지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완전정상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노­고르바초프회담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 회담은 회담에 임한 두사람 스스로가 말했듯이 두 지도자가 서로의 의중을 헤아려보는 기회였다. 나의 느낌으로는 노대통령이 북한이 남북대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하지 않는데 대해 큰 실망을 전달한 것 같았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들을 철회하거나 미ㆍ북한간의 관계개선으로 내세우고 있는 전제조건들을 완화할 방침인가. ▲미국은 지난 88년 북한과 직접대화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회담들은 남북대화처럼 별로 생산적이지 못했다. 북한은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과 대화하겠다면서 선거에 의해 선출된 관리가 아니라 반정부세력을 포함한 비민선관리들과 상대하겠다고 고집한다. 한미 안보관계의 종결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것은 모두 건설적이지 못한 주장들이다. 우리는 남북한관계뿐 아니라 미ㆍ북한관계도 개선되기를 바란다. 2주전에 북한은 한국전 실종미군유해 5구를미측에 반환했다. 이것은 54년 이후 첫 유해송환이다. 우리는 이것을 긍정적인 조치로 본다. 미ㆍ북한관계는 하룻밤사이에 개선될 수는 없고 단계적으로 진전돼야 한다. 북한이 계속 긍정적인 조치들을 취해주기 바란다. 우리도 이에대해 반응을 보일 것이다. 우리가 소련이나 북한과 만날 때 반드시 강조하는 핵심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문제를 둘러싼 우리와의 관계개선은 남북대화에 기초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외교접촉 수준을 격상할 것과 외교관 접촉장소를 유엔으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북한의 제의를 미국은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현재 유지하고 있는 북경에서의 접촉창구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물론 미ㆍ북한관계나 남북대화에 진전이 있게 되면 현재의 접촉경로를 확대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먼저 현시점에서 무엇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검사규정에 조인해야 한다. 이는 미ㆍ북한관계개선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한소접근을 계기로 미국이 주한미군철수를 가속화할 가능성은 없는가. ▲미군이 한국에 가 있는 주된 이유는 북한의 위협 때문이다. 북한이 소련과 같이 소위 「방어에 충분한 수준」으로 병력을 감축한다면 미국은 주한미군 추가철수시 이점을 고려할 것이다. 최근에 발표한 주한미군의 약 10%감축은 한국군 자체의 군사력 증강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미군이 보완역할을 하고 한국군이 주도적 역할을 맡도록 할 계획이다. ­북한의 핵개발계획과 잠재력은 어느 수준으로 평가하나. 또 미국은 핵무기의 한국내 보유여부를 시인 않는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북한은 자국내 핵무기가 없고 개발할 계획도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NPT(핵확산방지조약) 가입국이다. 그러면 핵분야에서 위협을 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도 한국과 같이 IAEA로 하여금 국내핵발전소 시설의 안전검사를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만일 북한이 NPT를 탈퇴한다면 한반도의 안정을 깨뜨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선 상호신뢰회복을 먼저 이룬 다음 DMZ양편군사력을줄이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미소 정상회담에서 한반도문제는 얼마나 논의됐는가. ▲한반도의 장래는 남북한 국민과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데 입장의 일치를 보았다. 이 과정에서 미는 북한의 핵개발가능성,소련의 대북한 최신예 항공기ㆍ미사일공급이 한국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킨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이 시베리아개발에 미일과 공동참여하는 방안을 비췄는데. ▲좋은 방법이지만 소련경제구조자체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수용할 만큼 변화되기 전에는 어렵다고 본다.
  • 남북 「유럽식 군축」추진/정부/군비통제 앞서 신뢰구축안 곧 마련

    정부는 남북한 군비통제문제에 적극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에 따라 본격적인 남북군비통제에 앞서 군사적 신뢰구축방안(CBM) 마련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정부가 검토중인 신뢰구축방안은 유럽식 군비통제방식을 참고해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 하고 ▲남북한 상호훈련참관단의 초청을 의무화하며 ▲주요 군사기지와 교통중심지에 감시반을 상주시키는등 초보적인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 북한 기습남침 저의 다시 입증/제4땅굴발견 계기로본 속전속결 전략

    ◎시간당 수만명 후방 침투 가능/거의 대규모… 20여개 모두 DMZ에 판 듯 동부전선에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이 또하나 발견돼 우리 국민은 물론,온세계에 다시한번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잇단 무장공비의 침투,휴전선에서의 충격,푸에불로호의 납치,판문점에서의 도끼 만행 등 갖가지 도발을 일삼았고 그들이 판 땅굴 또한 이미 3개나 발견돼 우리들의 감각을 상당히 무디게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6∼7년동안은 눈에 두드러진 도발 행위가 별로 없었고 때마침 공산권의 개혁바람을 타고 동서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우리 또한 북방정책의 성공적 진전으로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에 엉뚱하게도 제4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북한의 제4땅굴은 지금까지의 3개와 마찬가지로 병력과 장비 이동을 위한 남침용 땅굴로 북한군의 기습 침략 작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방당국은 이같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1백55마일에 걸친 휴전선 남쪽 2㎞ 안에 모두 20여개가있는 것으로 추정,그동안 탐색작업을 꾸준히 벌여오다 이번에 하나를 찾아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남방 한계선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판다음 그곳에서 여러갈래로 분산시켜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땅굴은 차량ㆍ탱크ㆍ야포 등 중장비까지도 통과시킬 수 있으며 중무장한 전투병력이 3∼4열로 행군할 수 있는 규모이다. 특히 철원의 제2땅굴은 한시간에 3만명의 무장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규모이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것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대화가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71년 9월 김일성은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에게 기습 남침용 땅굴을 파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이른바 「9ㆍ25교시」를 통해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법을 도입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하라』고 지시,1대에 40억∼1백억원에 이르는 스웨덴제 고성능 암반굴착기 16대를도입,72년 5월부터 각 군단별로 2∼3개의 땅굴을 파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남침용 땅굴을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음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중국산 고성능 폭약을 사용하기도 하고 콤프레셔 등으로 바위를 깨뜨려가며 굴을 뚫었다고 한다. 땅굴을 파면서 나온 흙과 바위 등은 야간에 포장트럭으로 운반,아군측의 SR71이나 U2기 등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땅굴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초 전방의 일산ㆍ문산ㆍ판문점ㆍ철원 부근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나 민통선 북쪽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땅속에서 대포소리가 나며 화약연기와 안개 등이 피어오르는 등 비무장지대안 땅속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하면서 였다. 이때부터 우리군은 북한군측과 지상및 지하의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그 정체를 밝히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때만해도 우리 군에는 굴착기나 착암기 등 제대로 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장병들은 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땅에 대고 소리를 듣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탐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침용 제1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15일 상오 7시35분 경기도 고랑포 동북쪽 8㎞ 지점에서 였다. 휴전선 군사분계선 남쪽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던 국군 민경대원들이 지상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어나는 것을 보고 구멍을 통해 46m 아래 지하에 거대한 땅굴이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어 제2ㆍ제3의 땅굴이 잇따라 발견됐고 마침내는 3일 네번째 땅굴이,그것도 내외신기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북한측의 기습남침 의도가 다시한번 폭로되기에 이른 것이다.〈김원홍기자〉 □남침용 땅굴 관계 일지 ▲74년11월15일=중서부 전선 고랑포 동북쪽 8㎞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1땅굴 발견 ▲74년11월19일=국회,비무장지대 땅굴발견과 관련 북한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결의문과 대유엔 메시지를 만장일치로 채택. ▲74년11월20일=유엔군,비무장지대 감시조가 북한 터널 정밀탐색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폭발. 김학철해병소령과 벨린저미해군중령 사망 ▲75년3월19일=중부전선 철원 북쪽 13㎞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2땅굴 발견 ▲75년3월21일=귀순용사 김부성씨(전 남파간첩 호송원)와 류대윤씨(전 북한군 소위)가 육군회관 기자회견에서 북한 땅굴공사 전반에 걸친 진상 폭로 ▲75년4월1일=제2땅굴 내부전모 내외보도진에 첫 공개 ▲78년10월17일=판문점 남쪽 4㎞에서 제3땅굴 발견 ▲88년9월8일=한미합동 탐사팀이 7개 지역에서 땅굴 징후를 발견 시추를 했으나 자연동굴로 밝혀짐 ▲90년1월=동부전선 양구지역에 땅굴 징후 발견 ▲90년3월3일=국내외 보도진 참관아래 제4땅굴 발견
  • “한국측 DMZ에 장벽은 없었다”/홍콩 기자 「휴전선 시찰기」

    ◎“장벽속엔 미 핵무기” 북측,억지 되풀이/영 네스호 「괴물 출몰설」처럼 가공 선전 북한은 지난 15일 서방기자들에게 한국이 쌓았다는 비무장지대의 콘크리트장벽을 보여주려 했으나 기자들의 눈에는 아무런 장벽도 보이지 않았다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가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의 외신부장 리처드 바인스가 북한쪽 비무장지대 부근인 평화리발로 쓴 「평양,한국의 장성수수께끼를 푸는데 실패하다」란 제하의 기사에 따르면 홍콩의 서방 외신기자 25명을 인솔한 북한의 홍순금 중령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며 쌍안경을 통해 한국이 쌓았다는 장벽을 보라고 했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북한의 초청을 받아 홍콩∼평양 정기 전세기 취항에 앞선 시험비행으로 지난 13일 평양에 갔었다. 북한측은 기자들을 평화리로 데려가는 동안 한국이 지난 76년 8월부터 콘크리트장벽을 쌓기 시작,79년 완공했으며 높이 5m 폭 10m의 이 장벽을 설치하는 데 80만t의 시멘트,20만t의 철근,석회 1백50만t이 소요됐다는 거짓선전을 했다는것이다. 또 미국측이 이 장벽의 철문속에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핵무기를 숨겨놓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 기사는 전했다. 북한의 홍중령은 기자들을 6개의 쌍안경이 놓여있는 관측소로 안내했고 이들에게 『몸을 너무 노출시키면 남한측 병사로부터 사격을 받는다』고 경고까지 했다는 것. 모닝 포스트지의 리처드 바인스부장은 홍중령이 『저기 장벽이 있다』는 말에 따라 쌍안경을 건네받고 살펴보았으나 도로로 보이는 희미한 선과 흔히 있는 구릉밖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있지도 않은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김일성의 주장은 『영국 스코틀랜드 네스호에서 괴물을 보았다』는 격이며 전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트지는 바인스부장이 이 기사를 평화리에서 보내고 평양에 돌아와 보니 어떤 침입자가 그의 호텔방을 뒤져 2통의 편지를 뜯어 본 흔적이 있었으며 현금과 귀중품들이 없어졌다고 폭로했다. 또 홍콩주재 로이터통신기자는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는 건물의 사진을 찍었다고 2시간동안이나 감금당했다가 홍콩기자들의 북한방문을 알선한 관계자가 현장에 달려와 교섭한 끝에 사과를 하고서야 석방됐다고 덧붙였다. 이들 평양 방문기자단은 17일 하오 홍콩으로 돌아왔으며 포스트지의 바인스 외신부장은 홍콩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우리들이 다른 장소로 옮겨 장벽을 자세히 볼수 있게 해줄 것을 북한측에 요청하자 그들은 위험해서 안된다며 꽁무니를 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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