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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③-현대·기아차 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③-현대·기아차 그룹

    정몽구(67^MK)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격의없이 지내는 지인들은 정 회장을 이렇게 평가한다. “곰같은 외모에 뱀같은 머리를 지녔으며 여우같은 행동가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현대의 한 고위임원은 서슴없이 정 회장을 ‘지략가’라고 정의했다. “현대차는 현대차, 기아차, 현대정공, 현대차써비스 네 집안이 합쳐진 회사다. 그런데도 큰 잡음이 없다. 카리스마만 갖고서는 이렇게 이끌 수가 없다.MK가 대단한 지략가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햇볕도 잘 들지 않는 땅(서울 원효로)에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만든 이가 MK다. 다른 아들들이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한테 기업을 물려받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사실상 창업자나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그룹의 비약적인 성장이 결코 요행이나 우연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 정 회장은 2000년 9월 그룹에서 독립한 지 불과 4년만에 현대차를 세계 6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독립 당시 10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으며, 종업원 수도 10만명을 넘는다. 총자산 규모 67조원(3월14일 현재)에 올해 매출목표액 85조원, 재계 서열 3위다. ‘싸구려 현다이’라고 비웃던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제 현대차를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한다. ●갤로퍼 신화에서 품질경영까지 서울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나온 정 회장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현대자동차써비스(74년)와 현대정공(77년)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일찌감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이후 기아차를 인수해 자동차 전문그룹을 만들기까지 평생을 차(車)와 함께 했다. 그를 가까이서 본 고위임원의 얘기다.“세상 사람들은 보여지는 외모와 어눌한 말투만 보고 MK의 저력을 더러 간과한다. 그러나 현대정공 시절, 그는 일일이 차를 뜯어보고 조립하면서 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냈다. 차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전문가다.” 그런 정 회장이 충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98년 미국 JD파워의 신차 품질조사에서 현대차가 꼴찌를 한 것이다. 이듬해, 그 이듬해에도 꼴찌권을 맴돌았다. 엄청난 모멸감에 휩싸인 그는 “이제부터 등수는 잊어라. 대신 무조건 품질을 끌어올려라.”라고 일갈했다. 현대·기아차의 보도자료에서 ‘세계 톱5 진입’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품질본부가 즉각 하나로 합쳐지고,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품질 회의가 꾸려졌다. 올초 쏘나타는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컨슈머 리포트지)됐다. 몇년 전의 수모를 보기 좋게 설욕한 것이다. ●부인 이정화여사 실질적 맏며느리 정 회장은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딸(이정화·66)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다. 고향이 이북인 부인 이씨는 손위동서인 이양자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자 이때부터 집안의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 했다. 시아버지 생전에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3시30분이면 청운동 시댁으로 달려가 아침을 준비하곤 했다. 시어머니(변중석)가 이 무렵 거동이 불편해져 병원 신세를 졌기에, 대식구의 아침 준비는 오롯이 며느리들 몫이었다. 틈날 때마다 현대아산병원을 찾아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도 맏며느리인 그의 몫이다. 시어머니가 그랬듯,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이렇다할 직함도 없다. 굳이 찾자면 그룹 계열사인 ‘해비치 리조트’(제주도 다이너스티 골프장과 콘도 등을 운영하는 회사)의 개인 대주주라는 정도다. ●외아들 의선… ‘ES 시대’ 개막 그룹의 핵심인 자동차는 정 회장의 막내 외아들이자 현대가의 종손인 의선(35·ES)씨가 한 축이 돼 이끌고 있다. 이달초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 겸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자동차부품 전문회사) 부사장도 맡고 있다. 본텍·글로비스·엠코 등 비상장 계열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오너 3세’의 프리미엄만을 업고 사장에 오른 것은 아니다.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정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는 ‘현대정공 자재부’에 94년 과장으로 입사, 현장감각을 익혔다. 이후 기아차 슬로바키아공장 건설 등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서 차세대 리더로서의 잠재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마전 기아차 수출 500만대 돌파 기념식때는 임원들의 넥타이를 기아차 상징색인 빨간색으로 즉석에서 통일시켰을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과 감각이 남다르다. 자기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상대에게 겸손하다는 느낌을 준다.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스갯소리도 곧잘 해 평이 좋다. 생전에 정주영 회장이 지선(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장남)씨와 더불어 가장 예뻐했던 손주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의 사촌여동생이 미국에 유학을 오자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 95년 결혼에 성공했다. 훗날(2000년) INI스틸에 흡수된 당시 강원산업 정도원 부회장의 딸 지선(32)씨가 부인이다. 스물다섯, 스물둘의 나이에 일찌감치 결혼한 두사람은 딸 진희(9)양과 아들 창철(7)군을 두고 있다. ●의사집안 대 잇는 큰사위 정 회장의 큰딸 성이(43)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전문의 고 선호영 박사의 둘째아들 두훈(48)씨와 결혼했다. 역시 의사인 두훈씨는 현재 대전 선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목동 선병원, 중촌 선병원, 선치과병원, 건강증진센터, 유성 선병원 등이 모두 같은 계열이다. 서울집(한남동)과 대전을 오가며 병원 일을 보고 있다. ●금융 사업 이끄는 둘째 사위 93년 현대차 원효로 사옥에서 프로젝트팀 형태의 현대오토파이낸스㈜로 출발한 현대캐피탈은 우리나라에 자동차할부 금융업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카드 사태’ 등으로 현대카드가 어려워지자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가 정태영(45)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이다.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이자 MK의 둘째딸 명이(41)씨의 남편이다. 한 임원의 얘기다.“그 분(정태영 사장)은 스스로를 오너의 사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아깝다며 골프조차 안친다. 회사가 안정될 때까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골프에 할애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식이다.”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착실히 손실을 털어낸 덕분에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올해 ‘동반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궁금한 게 있으면 실무자에게 직접 휴대폰을 걸어 물어봐 직원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현대차 근무시절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제갈걸(53) 부사장, 옛 현대그룹 문화실장을 지낸 김상욱(52) 전무 등이 그와 함께 금융소그룹을 이끄는 핵심 브레인들이다. ●꿈의 철강 라인업 셋째 사위-조카 한보철강(현 당진공장) 인수를 계기로 그룹은 열연(당진공장)-냉연(현대하이스코)-스테인리스(INI·BNG스틸)로 이어지는 철강 풀라인업을 달성했다. 이 꿈의 라인업에 정 회장의 셋째 사위와 조카들이 포진하고 있다. 김원갑(53) 부회장과 함께 현대하이스코(옛 현대강관)를 이끌고 있는 신성재(37) 사장은 현대정공에 근무하던 시절, 정 회장의 동갑내기 셋째딸 윤이씨를 만나 결혼했다. 미국 페퍼다인대학 MBA 출신이다.98년 현대하이스코로 옮겨 수출부장, 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이달초 사장으로 승진했다. 영업본부장 시절에 1조원대에 머물던 연간 매출액을 2조 3000억원대로 끌어올려 ‘장인’의 인정을 받아냈다. 김 부회장은 78년 현대건설 경리부로 입사해 건설과 자동차에서 잔뼈가 굵은 재무 전문가다. 이계안 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1년 7월 현대차에서 물러날 때 함께 사표를 냈지만 정 회장이 다시 발탁했다. INI스틸(옛 인천제철) 김무일(62) 부회장도 빼놓을 수 없는 철강 인맥이다. 정통 철강맨은 아니지만 취임하자마자 한보철강 인수를 보기좋게 성공시켜 정 회장의 신임을 확실하게 굳혔다. 지난해 4월 현대·기아차 구매총괄본부장(부사장)에서 사장을 거치지 않고 곧장 INI스틸 부회장으로 승진 이동했다.‘수처위주 입처개진’(隨處爲主 立處皆眞·언제 어디서건 그 곳의 주인이 돼라)이 좌우명이다. 김 부회장이 지인에게 털어놓은 현대차의 타이어사업 진출 무산 뒷얘기가 재미있다.90년대 초반 현대차는 현대정공을 통해 타이어사업 진출을 모색했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이 “공예산업(타이어에 홈을 파는 작업을 공예에 비유)은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막판에 철회했다고한다. ●LS전선·김&장과의 혼사 BNG스틸은 젊은 나이에 타계한 동생 몽우씨를 생각해 MK가 조카들에게 대부분 맡긴 회사다. 몽우씨의 세 아들이 모두 이 회사에 있다. 큰아들 일선(35)씨가 대표이사 사장이다. 그룹이 2000년 말 삼미특수강(BNG스틸의 전신)을 인수할 때 실무를 맡아 내부사정에 밝다. 철강의 꽃으로 불리지만 유통구조는 낙후된 스테인리스 업계에 서비스센터(코일센터)를 도입해 새 바람을 일으킨 이도 그다. 운동을 워낙 잘해 그룹사 축구시합때면 직접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사촌인 의선씨와는 생일이 일주일 밖에 차이 나지 않아 어려서부터 유난히 친했다. 유학중에 ‘어린 신부’를 만난 것도 똑같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일선씨는 같은 대학 심리학과로 갓 유학온 여섯살 연하의 구은희씨를 만나 96년 결혼했다. 현대가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과 처음 혼사를 맺는 순간이기도 했다. 은희씨는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로, 구태회 LG전선(현 LS전선) 명예회장의 손녀이다. 결혼할 때 스무살이었다. 지금은 세 아이(창현·진주·창민)의 엄마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31)씨도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김&장 법무법인 김영무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31)씨가 부인이다. 재정부에서 이사로 근무하다 미국 연수길에 올라 현재 미시간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올 연말에 귀국한다. 미국 버클리대학 회계학과를 나온 막내 대선(28)씨는 지난해 11월 품질혁신부 대리로 BNG스틸에 합류했다. 아직 미혼이다. ●MK의 용병술 현대차그룹의 인사 시스템은 ‘예측 불허’다. 그런데도 떠난 사람들 가운데 그룹을 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 전직 고위임원의 분석이다. “MK는 아버지를 몹시 어려워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 아버지와 몹시 닮았다. 우선 그룹내에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현대차그룹에는 2인자가 없다. 웬만한 간부는 회장에게 모두 직접 보고한다. 충성 경쟁을 유발하는 셈이다.” 그는 “빈번한 패자부활과 적절한 견제도 MK 용병술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를 그룹내 파벌싸움의 산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지 않는 MK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더 많다. ●자동차 전문인맥 ‘탱크 박사’ 김동진(55) 현대차 부회장이 단연 눈에 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의 전문 엔지니어로 국방연구소에서 ‘K1탱크’ 국산화를 주도하다가 78년 정 회장에 영입됐다. 정의선 사장과도 가깝다. 중국시장을 거의 개척하다시피하고 있는 화교 출신의 중국통 설영흥(60) 부회장과 ‘갤로퍼 신화’의 숨은 조력자 전천수(59·생산노무담당)사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정·재계에 발이 넓은 채수일(52·방송인 이숙영씨 남편) 고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사대우 5년 만에 사장이 된 MK의 대학후배 최한영(53·전략조정실장겸 마케팅총괄본부장)사장은 한때 ‘MK의 입’으로 불렸었다. 본인은 “99년 해외출장중에 갑작스럽게 홍보실 컴백 명령이 나 사표쓸 생각까지 했었다.”그렇지만, 곧이어 터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누구보다 MK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내 파격 승진을 거듭했다. GE캐피탈과의 자본제휴, 글로비스 지분 매각 등을 주도한 재무통 채양기(52·기획총괄부본부장)부사장도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다. 그가 쓴 ‘채권관리 실무교본’은 지금도 채권 전문가들 사이에 필독서로 꼽힌다. 그룹 ‘암행어사’ 인 이전갑(58·감사실장)사장, 품질경영 전도사인 서병기(58·품질본부장)사장, 신차 기술개발 주역인 김상권(59·연구개발본부장)사장, 미국시장 공략의 중책을 맡고 있는 최재국(57·국내외 영업기획담당)사장, 김수중 전 사장의 계보를 잇는 ‘영업의 귀재’ 이문수(57·내수영업본부장)부사장, 치밀한 홍보맨 이용훈(55)부사장 등도 현대차를 이끄는 중추세력이다. 기아차의 선두주자는 단연 김익환(55) 사장이다.‘오너 아들’과 대표이사를 같이 맡고 있어 적잖은 부담이지만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영업·수출·홍보를 두루 거쳐 실무에 밝다. 외모만큼이나 선이 굵다. 양쪽 날개로는 구태환(50·재경본부장)부사장과 김용환(49·해외영업본부장)부사장이 있다. ●‘오랜 동반자’ 정공 인맥 현대·기아차 출신들이 ‘신측근’으로 분류된다면, 현대정공과 현대차써비스 인맥은 ‘전통가신’으로 분류된다. 유홍종-박정인-김동진-김익환으로 이어지는 정공 인맥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 한토막. 언젠가 MK가 해외출장지에서 뜬금없이 막걸리를 찾았다. 현대차 출신들은 난색을 지었다. 정공 출신들은 “어떻게든 구해보겠다.”며 나가 정말로 막걸리를 구해왔다. 유홍종(67) BNG스틸 회장은 MK와 양궁 신화를 함께 써내려간 정공 인맥의 대부다. 그 뒤를 잇는 박정인(62) 현대모비스 회장은 현대차써비스가 일개 사업소(현대차 원효로사업소)에 불과했던 72년,MK를 처음 만났다. 이후 자재부장과 경리담당 대리로 황금콤비를 이루면서 30년 넘게 MK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인터넷 화상회의·전자결재 등을 정착시킨 ‘스피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맹꽁이”가 부하직원들을 나무라는 가장 심한 욕일 만큼 점잖지만 허점이 너무 없어 오히려 겁날 때도 있다는 게 아랫사람들의 얘기다. 서울 양재동 사옥을 사들일 때 점쟁이까지 불러 감정한 것으로 유명한 이중우(57) 다이모스(자동차부품회사) 사장, 등산 마니아인 김평기(60) 로템·위아 사장, 이여성(55) 서울시메트로 구호선 사장, 정석수(53) 현대파워텍 사장 등도 정공이 ‘뿌리’다. 서비스업체(해비치리조트) 사장에서 하루아침에 그룹의 신생 건설사업을 책임진 김창희(52) 엠코 사장도 시선이 쏠리는 인물이다. hyun@seoul.co.kr ■ 인간 정몽구회장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아침 꼭 라면으로 해장하는 버릇이 있다. 폭탄주 20잔도 끄떡없을 만큼 주량이 세지만 절제력이 강해 실수하는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폭탄주보다 소주를 즐긴다. 해외출장길에 수행원들이 맨먼저 챙기는 것도 소주와 라면이다.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를 닮아 먹성이 소탈하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는 서울 양재동사옥의 지하2층 중역식당을 애용한다. 임원들의 구내식당행도 개의치 않는다. 이는 아버지와 다른 면이다. 왕 회장은 임원들이 구내식당에 나타나면 “밖에 나가 사람들 만나라고 접대비를 줬더니 기껏 안에서 먹는다.”며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 가정적인 면모도 아버지와는 딴판이다. 주말이면 아들딸 사위들과 함께 곧잘 산을 찾는다. 대신 골프는 별로다. 좋아하지 않다보니 실력도 그저 그렇다. 여느 현대가 사람처럼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을 먹고 6시30분쯤 출근한다. 대신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는 “겉 인상과 달리 마음이 매우 여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잘 자르지 못한다. 현대차는 한때 이사만 100명에 이르렀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러서야 MK는 “진급한 숫자만큼 자르라.”며 지난해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어눌한 말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처음 그를 접하는 사람들은 말뜻을 해석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해석이 쉬워질 때쯤이면 “참모들보다 서너배는 빠르다.”는 그의 머리회전에 진땀을 흘리게 된다고. 어떤 이는 이를 “아버지의 ‘방목’과 형제간 경쟁과정에서 터득한 본능적인 생존지수”로 해석했다. 효심도 남다르다. 한 현직임원의 얘기다.“일을 하다 보면 종종 과거에 잘못 벌여놓은 일과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면 MK는 ‘이거 참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고 잘했다고도 할 수 없고‘하며 말을 흐린다. 한번도 대놓고 선친때 일을 지적한 적이 없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섭섭한 감정이 남아 있을 텐데도 말이다. 형제들 일도 마찬가지다. 장남으로서의 원초적 책임감 내지 부담감을 늘 갖고 있는 느낌이다.” 경영권 분쟁때 동생(정몽헌)과 그토록 부딪쳤건만, 그 동생이 2003년 8월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졌을 때 맨먼저 사고현장에 달려가 시신을 수습한 이도 그였다. 한 전직 임원은 “빈소 뒤에서 나를 붙잡고 우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3)세계지도서 사라진 이름 ‘동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3)세계지도서 사라진 이름 ‘동해’

    세계지도의 90% 이상이 동해(East Sea) 대신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고 있다.‘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불러왔는데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란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지금 한국의 관심은 온통 독도로만 쏠려있을 뿐, 정작 동해에 관해서는 독도에 쏟는 관심의 1할도 주지 않는다. 이런 작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이전의 대다수 외국지도는 ‘동해’‘한국해’‘조선해’‘오리엔탈해’ 등으로 표기했다. 문제는 1929년에 발간된 국제수로기구(IHO: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의 ‘해양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에 일본해로 등재되면서 발생했다. 몇십 쪽에 불과한 얇은 책자가 동해의 운명을 바꿔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까. ●세계지도 90%이상 일본해 표기 국제수로기구는 국제간 수로 부문 협력체제를 모색하고, 수로 관계자료의 국제적 조정을 수행하는 기구. 바다 지명에 관한 건도 수로기구 관할이다.1921년 설립된 이래 74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한국은 1957년, 북한은 1987년에 가입했다.‘해양의 경계’는 세계 해양지명의 표준화 교본으로 지명에 관한 한 ‘바이블’과 같다. 이 책에 기초하여 세계 각국이 자체 해도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 관광지도·특수지도 등 2차 지도들을 만들어 낸다. 이 영향력은 교과서는 물론 신문·방송에까지 확대된다.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 뜻과 무관하게 여기에 ‘일본해’로 등재됐고, 그 명칭이 전 세계에 유포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전에도 16세기 이래 일본을 찾은 서구인들에 의해 일본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한국해, 동해 등과 혼용됐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쓰는 일본해 명칭은 국제기구의 공인을 받아 이전과는 격이 다른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식민지의 또 다른 아픔이다. 일제는 물리적인 영토 탈취에 머물지 않고 지명에까지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한반도 곳곳에서 창씨개명이 자행돼 마을, 도읍, 거리 이름이 모조리 바뀌어 오늘날까지 잔재를 남기고 있으니 일본해의 세계화도 제국주의 음험한 유산에 다름 아니다. ‘해양의 경계’는 1929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3판이 1953년, 그리고 거의 반백년 만인 2007년에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다. 문제는 3판까지 전부 일본해로 명기되어 있다는 점. 주권을 강점한 일본이 제국의 힘으로 이를 관철시켰으며,1953년 한국전쟁의 와중에 3판을 밀어붙였다. 제국주의가 힘으로 관철시킨 명백한 과오이다. 당시 세계수로국을 지배하던 영국, 러시아,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열강의 입김이 책자 곳곳에 강하게 배어 있다. 문제는 냉엄한 국제법의 현실이다. 한국인이 한반도에서 수천년간 동해로 불러왔다고 아무리 증거물을 내밀어도 제국주의적 패권에 의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른 국제적 힘의 질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2007년 개정판 동해 부분 ‘공란’ 고구려 호태왕 비문에 동해가 분명히 적시되어 있으니, 이것만 해도 서기 414년의 일이며, 삼국사기에는 이미 BC 37년에 동해가 등장한다. 우리 옛 지도나 외국인이 그린 옛 지도에 등장하는 무수한 증거들, 그리고 풍부한 서지학적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으나 현실은 여전히 1929년의 표준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제 아비를 아비라 못 부르는’ 현실이 바로 국제 해양질서다. 우리끼리야 영구히 동해로 부를 것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일본해가 공용화되다시피 하고 있으니 ‘식민의 바다’는 아직도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통상적인 한국인들의 정서와 국제질서 사이에는 극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아직도 바다는 제1세계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동해 표기는 1965년의 한·일어업협정에서도 문제가 됐다. 한국측에서 ‘수준 낮은’ 협상단이 파견됐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을 빚은 끝에 각자 명칭으로 쓰기로 합의하였다. 이때에도 동해표기는 합의를 보지 못한 어정쩡한 단계로 남아 지금의 분란을 예고했다. 한국 정부는 1992년에 동해 영문표기를 ‘East Sea’로 결정하고, 국제사회에 대해 단일명칭으로 합의할 때까지 ‘동해/일본해’의 병기를 요구하고, 그 해 유엔지명표준회의 및 97년 제15차 IHO총회에서 동해 표기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2007년판 ‘해양의 경계’ 를 준비하면서 2002년에 초판본을 회람시켰는데 한·일간에 이견이 팽팽하자 동해 부분은 아예 백지인쇄를 했다. 즉, 국제법상 동해 표기문제는 아직도 미완의 장인 셈이다. 우리의 입장은 당연히 동해 단독 표기이다. 그러나 국제기구에서는 양국간에 논란이 있는 지명에 관해서는 병기를 권장한다. 가령 영국명으로만 표기되다가 프랑스에서 논란을 제기한 영국해협(English Channel)을 ‘La Manche’로 병기하여 해결한 사례도 있다. 동해 단독표기가 정답임은 분명하지만 지명 분규에 관한 양국의 협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잠정적으로 ‘동해/일본해’ 병기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일본이다. 일본은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일본해’를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다. 병기는커녕 오로지 일본해 단독표기만을 고수한다. 독도의 예에서 보이는 염치 없고, 전례도 없는 후안무치한 밀어붙이기를 동해 명칭에서도 자행하는 중이다. 일본학 석학으로 지난해 영면한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같은 이도 ‘일본’이라는 명칭 자체가 가상의 전제로부터 출발했음을 비판하면서, 일본해 따위의 명칭이 성립할 수 없음을 역설하지 않았던가. 일본해 명칭은 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 ‘Mappamondo’에 처음 등장한다. 한국인들이 동일 해역을 동해라 부른 지 1600년 후에야 사용한 이름이다. 세계 지리학계에서는 ‘역사성과 대표성’을 지명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일본은 2000년 이상을 사용해 온 동해를 밀어내고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로 밀어붙여 일본해를 세계 만방에 선전하는 중이다.17세기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일본에서도 조선해라는 명칭이 다수 쓰였다. 일인 학자 카스노의 ‘일본해연구’(1975)에 의하면 1815년 경부터 서양인들이 일본해를 많이 썼으며,19세기까지 일본서해, 타라해, 조선해 등 다양한 이름이 존재했다고 밝힌 바 있다. ●1602년 세계지도 일본해 첫 등장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 국제적 외교야 외교통상부 관할이지만 동해 연구·조사자료의 축적과 실제적으로 국제수로기구를 상대하는 중추는 해수부 해양조사원이다. 이곳 곽인섭 원장은 “쉽게 해결될 싸움이 아니므로 체계 있고 일관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분쟁 현장에서 뛰어온 오순복 과장도 “경험으로 미뤄 일본의 대응은 전 세계적이며 국제사회 로비도 엄청나다.”며 고개를 젓는다. 동해 표기 해도를 만들어 전 세계에 뿌리내리게 하는 이들이야말로 한·일간 새로운 영토싸움의 주역들이다. 길거리에서 고함 지르고 일장기 태운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싸움판의 예산이 얼마냐고 물으니 연간 1억원 내외란다. 고작 1억원! 세금은 제대로 쓸 데 써야하지 않을까. 독도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자료축적도 돼 있고 이론적 기반도 갖춰 가지만 동해는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다. 작금의 시마네현 폭거로 빚어진 독도에 대한 열정의 반의 반이라도 동해에 쏟아야 한다. 독도와 동해문제는 별개이지만 긴밀한 내적 연관성을 지니며, 일본의 해양침탈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양자는 불가분이다. 동북공정이 문제되니 고구려재단을 만들고, 독도 문제가 불거졌다고 대뜸 독도특별법이니, 독도재단 만들기 따위의 단말마적 대응이 이어지는 현실을 보노라면 도대체 동네싸움을 하려는 것인지, 원대한 국가정책적 대응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일본의 논리는 어떨까. 일본측은 일본해 명칭이 일본의 확장주의와 식민화의 결과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한국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한 사안을 두고 강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한반도를 강점한 가운데 시마네현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일본의 일처리 방식은 이렇듯 식민지배에 관한 뉘우침이나 반성 없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상생의 사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北 ‘조선해’ 주장… 남북공동대응 필요 이 문제가 불거지면 일본은 예의 1602년판 마테오리치 지도 등을 증거로 제시한다.‘일본해/동해’ 병기 주장도 세계 해양명칭의 혼란을 이유로 거부하는 그들 아닌가. 관계국의 합의를 얻을 때까지 과거의 합의를 답습해야 하므로 일본해 명칭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은 계속된다. 동해는 한반도의 남해, 서해, 동해의 연속선상에 있는 방향 표시이므로 국제 명칭으로 부적당하다는 주장이다. 심지어는 우리가 황해를 ‘West Sea’로, 동중국해를 ‘South Sea’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일본해만 문제 삼아 ‘East Sea’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만을 고의로 ‘표적삼았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도 말하는 그들이다. 희망은 없는가. 우리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관되게 ‘조선해’나 ‘조선 동해’를 주장해 온 북한의 줄기찬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 남북 공동대응이야말로 둘이 아니라 셋도 되고 넷도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간의 힘이다. 전 세계 사이버 전장에서 동해되찾기, 독도영유권, 역사교과서 왜곡시정 등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사이버 독립군’ 반크(www.prkorea.com) 같은 존재가 유독 빛나 보인다. 일본해만 쓰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동해 병기로 돌아선 것도 이들의 공로다. 사재를 털어 동해표기 옛 지도를 전 세계에서 수집해 온 이들의 희생도 기려야 한다. 일본의 국가팽창주의가 아무리 힘으로 밀어붙인다 해도 시민의 힘을 꺾을 수는 없는 일. 갈등이 심해지면서 불행하게도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국가주의의 병폐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양국의 양심적인 시민들이다. 을사늑약 100주년에 과거 반성은커녕 해묵은 갈등이 동해에서 재연되고 있으니 한·일 양국의 선량한 백성에게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번 시마네현 폭거를 계기로 독도뿐 아니라 동해표기, 나아가서 예상되는 중국과의 갈등까지 먼 바다를 내다보는 대응책으로 해양전략의 차원을 끌어올릴 것을 국가 및 우리사회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3)인하대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3)인하대

    인하대 법대의 역사는 짧다.1977년에 개설됐으니까 사람에 비유하면 20대 후반의 나이다. 벌써 환갑을 훌쩍 지나버린 일부 사립대 법대와 비교하면 연륜면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인하대 법대는 지적재산권과 물류분야에 대한 특화를 명분으로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장점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패기 가득찬 청년으로 봐달라는 것이 학교측 설명이다. ●전문변호사 양성하는 로스쿨 인하대 법대가 추진 중인 로스쿨은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반적인 민·형사 사건을 전담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면 인하대가 아닌 다른 대학의 로스쿨에 입학하라는 것이다. 인하대 법대가 지적재산권 분야에 주안점을 두려는 것은 교수진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지적재산권을 담당하는 6명의 교수 가운데 실무경험을 갖고 있는 전임교수만 3명에 달할 정도다. 1998년 제13대 특허청장을 지냈던 김수동 교수는 변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행정고시 7회 출신인 김 교수는 상공부와 특허청에서 30년 가까이 근무, 이론과 실무를 모두 갖췄다. 저작권법을 가르치는 박익환 교수는 사법시험 32회 출신으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월드컵 주경기장 건축저작물 침해분쟁 사건’ 등 주로 저작권에 대한 소송을 맡았다. 특허법 전공자인 이대희 교수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다. 인하대가 추진 중인 로스쿨은 변리사 등 특허전문가 재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할 예정이다. 김민배 법대 학장은 “인하대가 지적재산권을 특화하는 로스쿨을 유치하면 변리사 등 특허전문가들을 끌어들여 종전의 기술적 측면에 법학 마인드까지 심어주는 재교육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과거부터 인하대가 이공계에 강세를 보였던 만큼 이공계 인재들도 로스쿨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물류전문가 배출 인하대 법대는 인천공항과 인천항이라는 물류기반을 기반으로 하는 로스쿨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인천자유무역지역 등에 필요한 물류전문 변호사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서해안이 동북아시아 물류의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생길 수 있는 각종 국제적인 분쟁에 대비하는 법조인을 키워낼 예정이다. 이대희 교수는 “기업간 국제적인 소송의 대부분은 물류와 연계돼 있지만 전문가가 부족, 대다수 국내 기업들이 다국적 기업들과의 소송에서 끌려다니게 된다.”면서 “물류전문 변호사가 배출되면 국제적인 소송으로 확대되기전 기업간 조정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소송용 변호사가 아닌 해외의 명문 로스쿨에서 배출되는 변호사를 상대하는 변호사 양성이 목표인 것이다. ●실질적인 국제화 대학으로 성장 인하대는 지난해부터 물류분야와 하이테크에 강점이 있는 세계 7대 대학과 실질적인 통합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U7 컨소시엄’이다. 미국 워싱턴대, 호주의 UMIT, 프랑스 르하브르대, 이스라엘 하이파대 등 7개 대학이 U7에 가입했다. 인하대는 이들 7대 대학과 체결한 복수학위제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현재 모든 과의 15%를 원어 강의로 진행하고 있다. 법대도 마찬가지로 최소 학기당 4개 원어 강좌를 개설할 계획이다. U7 컨소시엄에 따라 교수 및 학생들을 교류하고, 해외 인재들도 인하대 로스쿨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지역사회가 후원하는 것이 강점 인하대 법대가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지역사회와 대학재단인 한진그룹의 지원이다. 인천시장과 인천시의회는 물론 인천변협회장, 인천지역 국회의원 등이 인하대 로스쿨 유치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천지역 공단의 기업들도 로스쿨 유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하대는 인천지역에 반드시 로스쿨이 설립돼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인하대뿐만 아니라 인천대 등 인근 다른 대학과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로스쿨을 유치한다는 복안도 세워놓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물류전문변호사 양성 ‘밑거름’ 인하대 법대가 로스쿨을 유치하면 현재 구축하고 있는 국내 최고 수준의 수송·물류 및 지적재산권 데이터베이스(DB) 시스템과 연계돼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하대는 우선적으로 수송·물류에 대한 각종 정보를 DB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국내외 공항이나 항만의 시설 및 처리용량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에서부터 전세계 특정 도시에 설치된 각종 물류시설과 같은 세세한 정보까지 담게 된다. 물류와 관련된 논문 등 학술정보도 수송·물류DB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36만건의 정보를 구축했다. 장기적으로 200만건의 정보를 축적할 예정이다.DB구축에 책정된 예산은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40억원에 달한다. 특히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 다국어로 DB화해 외국 기업이나 학자들도 이용이 가능하다. 수송·물류DB가 구축되면 국내기업이 중국의 오지로 불리는 신장(新疆) 위구르족 자치구에 진출한다고 할 때 인하대 수송·물류DB를 통해 그 지역의 교통망·통신망·관련 법규 등을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다. 또 2003년 국내에 큰 파장을 불러왔던 물류대란의 원인과 피해상황, 법적인 분쟁사례 등도 수송·물류DB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하대에 개설된 국내 유일의 아태물류학부의 인적자원도 수송·물류DB를 구축하는 데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다. 김민배 법대 학장은 “수송·물류DB는 궁극적으로 인하대 로스쿨이 표방하는 물류전문 변호사를 양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77학번 안영근의원 법학과 1회 인하대 법학과는 지난 1977년에 개설됐다.1999년에야 법대로 승격돼 비교적 역사가 짧다. 하지만 법대 동문뿐만 아니라 이공계 출신 동문들도 로스쿨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점이 든든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법조인은 모두 13명이 배출됐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최고참 선배 법조인은 사법시험 38회 출신의 이종기(79학번) 변호사다. 이 변호사 다음으로는 법무법인 ‘덕수’ 소속으로 송두율 교수의 변론에 참여했던 사시 41회 출신의 송호창(85학번) 변호사와 박흥준(88학번) 변호사 등이 있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구설환(79학번) 변호사는 삼성전자에 재직 중이다. 재야 법조계에 포진하고 있는 동문들이 적고, 재조에는 동문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인하대 법대는 이공계의 사법시험이라고 불리는 변리사에는 비교적 많은 동문이 진출했다. 임훈빈(법대 85학번) 변리사 등 40명이 ‘인지회’라는 모임을 통해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법대를 키워나가고 있다. 인하대 법대가 지적재산권을 특화하려는 로스쿨을 설립하려는 이유도 이처럼 예전부터 변리사 등 지적재산권 분야를 선점해왔기 때문이다. 인하대 법대 동문들은 법조계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 진출했다. 법학과 1회 졸업생인 77학번부터 인재들이 배출됐다. 정계에는 열린우리당의 중도보수파의 핵심의원인 안영근 의원이, 재계에는 외국계 재보험회사인 ‘마쉬코리아’의 이상현 회장이 있다. 관계에는 김영렬씨가 인천 남동경찰서장으로 재직중이다. 1954년 공대로 개교한 인하대는 걸출한 이공계 출신들의 동문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인하대가 로스쿨을 유치하는 데 지원사격부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선봉장은 이기태(전기 67학번)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과 김정웅(토목 64학번) 한국중공업 대표이사 등이 맡고 있다. 그외에도 조현정(전자 78학번) 벤처기업협회장과 황철주(전자 78학번)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등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전미북한위원회’ 발족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워싱턴에 ‘진보적’인 한반도 전문가 단체가 구성됐다. 찰스 프리처드 전 대북특사 등 전직 외교관과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 등 한반도 전문가, 카린 리 등 시민단체 운동가 46명은 12일(현지시간) ‘전미북한위원회(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NCNK)’를 발족했다고 밝혔다. 회장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인 프리처드 전 특사와 오리건주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머시 코의 엘스워스 컬버 수석부회장이 공동으로 맡았다. 사무총장은 필립 윤 스탠퍼드대 교수가 담당하기로 했다. NCNK는 발족 취지문에서 “북·미간의 상호이해와 신뢰 구축을 통해 한반도 분쟁 방지와 평화 정착 및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을 돕겠다.”고 밝혔다.NCNK는 북한 내 식량·의료 지원과 농업 개선 등 북한의 장기발전 계획 수립 및 집행 등을 구체적인 행동 목표로 제시했다. dawn@seoul.co.kr
  • 문정희씨 동국대 석좌교수로

    시인 문정희(58)씨가 동국대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문 시인은 1969년 ‘월간 문학’으로 등단해 지난해 열 번째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를 내는 등 36년간 활발하게 시창작 활동을 해왔다. 1975년 현대문학상,2004년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뉴욕에서 영역시집 ‘Windflower’를 발간했다. 영역시가 국제무대에 알려지면서 지난해 레바논의 ‘나지 나만 문학상’과 마케도니아의 국제적 시축제 ‘나밋(Naimit)의 날’에서 최고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 LG, 휴대전화사업 ‘올인’

    LG가 24일 가진 서울 가산동 ‘LG전자 통합단말연구소’ 준공식에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들이 대거 참석, 휴대전화 사업 ‘올인’을 선언했다. 마침 삼성전자도 이날 수원의 ‘정보통신연구소’를 처음으로 언론에 개방,PTA(Push-to-All) 시연회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PTA는 일대 다자간 화상·음성 통화는 물론 데이터 파일 송수신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기술이다. 구 회장은 “김쌍수 부회장을 중심으로 LG전자가 휴대전화부문의 글로벌 톱3 목표달성을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지주회사는 LG전자가 목표를 달성하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휴대전화 사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10월 홍콩의 글로벌 이동통신사 허치슨 왐포아사를 방문해 리카싱(李嘉誠) 회장을 만나 3G(3세대)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협력관계를 논의하고, 지난 1월에는 LG전자 휴대전화가 전시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2005 CES’를 참관하는 등 휴대전화 사업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지난 2003년 4월 착공해 이번에 완공한 연구소는 기존 서울(CDMA), 평촌(GSM), 안양(WCDMA)에 흩어져 있던 연구소를 한곳으로 모은 것으로 연면적 1만 7000평, 지상 8층·지하 4층 규모다. 연구인력은 2500여명이다. 단말기 연구부문 외에 특허 및 규격 인증 센터, 품질 테스트 센터가 함께 입주해있다. 2001년 12월 완공된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는 지상 25층, 지하 4층 연면적 4만 200평 규모로 5400명의 연구인력(전체 6500여명)이 일하고 있다.2300명이 석박사급이며 외국인도 100여명이다. 두 회사의 연구소 행사가 공교롭게 겹친데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자는 방침을 정해 연구소를 언론에 처음 개방한 것”이라면서 “PTA기술 시연을 할 수 있는 곳도 연구소뿐이다.”고 말했다. 반면 LG 관계자는 “회장과 주요 CEO가 대거 참석하는 연구소 준공식 일정은 오래전부터 잡혀 있었는데 삼성측이 하필 오늘 연구소를 개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LG전자는 연구소 준공 기념으로 25일 허치슨, 오렌지,T모바일, 차이나유니콤 등 국내외 통신사업자와 장비업체, 네그로폰테 미국 MIT 미디어연구소장 등을 초청해 ‘LG 모바일 테크놀로지 포럼’을 개최할 계획이다. 수원 주현진·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민주사회는 ‘섬기는 지도자’가 필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섬기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시각장애를 딛고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재직하고 있는 강영우(61)박사가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 삼성컨벤션센터에서 ‘3C(Competence,Character,Commitment)를 갖춘 섬기는 지도자의 상’을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강 박사는 이날 4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섬기는 지도자가 되려면 전문성과 도덕성은 물론이고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헌신적인 마음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섬기는 지도자란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줘 결국 제자들의 마음을 얻은 것과 같이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을 갖춘 인물. 때문에 강 박사는 지도자에겐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연 내내 강조했다. 강 박사는 조지 H. 부시 전 미 대통령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책을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부시 전 대통령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마음’이 책 속에 묻어있다며 본인의 경험도 들려줬다는 것. 이런 인연으로 강 박사는 이주민이자 장애인으로 미 공화당 정부에 몸담고 있다. 강 박사는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영어나 피아노 학원에 보내 실력을 쌓게 하면서도 성품과 헌신을 가르치는 교육은 부족한 것 같다.”면서 “어릴 때부터 남의 아픔을 공감하고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박사는 중학교 1학년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76년 피츠버그대에서 한국인 장애인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8일 내한한 강 박사는 오는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저서 ‘도전과 기회’ 출판기념회를 열고 다음달 4일 출국한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로플린, KAIST교수진 혹평

    한국과학기술원(KAIST) 로버트 로플린 총장이 카이스트 교수진을 사실상 ‘잿밥에만 눈먼 연구인’쯤으로 비판해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17일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3기 정치아카데미의 강사로 나서는 로플린 총장이 사전에 작성한 강연 원고에 따르면 “카이스트 교수들은 연구 내용보다 정부 보조금 계약 크기에 관심 갖고, 또한 중요하지 않은 연구임을 알면서도 정부 보조금 획득을 위해 착수하고 있다.”고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이어 “연구계약과 연구절차가 정치적으로 이뤄지고 이 탓에 잘못된 투자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돼 있으며 이런 이유로 연구 경쟁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로플린 총장은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카이스트 설립시 특별법에 따르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는 규정은 인적 자원 양성을 뒤로 돌리는 본말의 전도”라고 지적하며 “카이스트 설립 특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자신의 부모와 형제, 자녀 등 가정사와 함께 버클리 대학,MIT 대학원 졸업, 벨 연구소 취업 등 개인적 경험 설명을 곁들인 강연 원고에서는 “정부의 국·공립 대학 공적 보조개념이 희박해지는 세계적 추세”와 “엘리트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학부모, 학생들에게 부과하는 추세”를 강조했다. 로플린 총장의 쓴소리는 정치권,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도 이어졌다. 그는 “카이스트를 세계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카이스트의 ‘굿 머니’ 예산증가에 관해 과학기술부와 복합적으로 협의중이지만 필요한 예산 인상안이 국회에서 채택될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면서 “투표에 의해 선출된 입법자들은 불공정한 것을 한다고 생각하면 투표자들로부터 제재를 받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비틀린 도덕률은 과학기술계통 학생들이 교수직을 취득하는 데 온 신경을 쓰도록 만든다.”고 꼬집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또 혼난 하버드大 총장

    |뉴욕 연합|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과 프린스턴, 스탠퍼드 등 미국의 3개 명문대학 총장들이 공동 칼럼을 통해 “여성은 선천적으로 수학과 과학 능력이 떨어진다.”는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의 발언을 공개 비판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고의 지성인 대학 총장, 그것도 명문대 총장들이 다른 대학 총장을 직접 겨냥해 비판하는 것은 학계의 관행에 비춰볼 때 다소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MIT의 수전 헉필드, 프린스턴대의 셜리 틸만, 스탠퍼드대의 존 헤네시 총장은 13일(현지시간) 보스턴 글로브지에 게재한 ‘여성과 과학:진짜 쟁점’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여성도 편안하게 수학과 과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서머스 총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선천적 차이가 중요한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추론은 오랜 통념을 되살아나게 하고, 부정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며 “대학의 목표는 여성들에게 이 분야의 전문지식을 추구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칼럼은 특히 “우리 학생들의 수학·과학 능력이 많은 나라 학생들에게 뒤떨어져 있는 가운데 미국은 경제의 가장 강력한 동력인 기술혁신에 있어 해외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며 “시급한 것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재능과 균형감각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클릭 이슈] 로플린 발언의 거짓과 진실

    ‘로플린 구상’은 언론이 만든 유령인가. 로버트 로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언론들이 거론했던 자신의 구상을 전면 부인하고 나서, 누구 말이 맞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구상은 로플린 총장이 지난해 12월 14일 열린 KAIST 비전 워크숍에서 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한 ‘KAIST 투자전략 제안서’에서 나온 것으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제안서에 로플린 구상으로 불리는 ▲학사와 석·박사를 합쳐 7000명 수준인 입학정원을 2만명으로 늘리고 ▲연간 600만원의 등록금을 받고 ▲의대·법대 예비반 및 경영대학원 예비반을 둔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로플린 총장은 이 제안서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 등을 예상하고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정책안으로 수정되길 바랐으나, 교수와 학생들은 ‘수장의 제안은 곧 실천’인 한국실정을 감안, 그대로 추진될 것을 우려해 반발했다. ●사립화의 진실 로플린과 기자들의 대화가 통역을 통해 이뤄진 것이어서 의사전달이 잘못됐을 수는 있다. 이 구상이 국립대보다 종합사립대 형태에 가깝지만 이것이 소유형태의 변화까지 의미했던 것인지, 운영만 사립대처럼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로플린 총장이 제안서나 각종 행사에서 KAIST 사립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제안서가 공식적으로 나오기 전인 지난해 11월 중순 총장공관 집들이에서 기자들이 로플린 구상을 어렴풋이 알고 통역인 수행비서를 통해 “사립화를 의미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이와 관련해 로플린 총장은 지난 3일 수행비서를 통해 “나와 일반인의 사립화 개념이 달라 혼동이 왔다.”고 전해왔으나 당시 발언이 학교 소유권의 변화까지 의미했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혼인 수행비서 이모(35)씨는 로플린 총장이 교수로 있던 스탠퍼드대학에서 잠시 공부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만든 인터넷신문 사이언스타임스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총장으로 선임된 로플린과 전화인터뷰를 많이 했다. 이런 인연으로 로플린 총장이 취임하면서 비서로 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언론과 접촉할 때 통역했지만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기자들이 “사립화를 뜻하느냐.”고 물으면 소유권 변화까지 뜻하는지 정확하게 따져 로플린 총장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사립화’란 용어만 전할 경우 로플린 총장은 ‘사립대처럼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이 커지자 이씨는 난감해하고 있다. 과학기술부 간부가 참여하는 KAIST 이사회는 최근 로플린 총장의 대외활동과 매끄러운 외부접촉을 도울 수 있는 비서실장 등을 보강토록 학교측에 권고, 이런 고민이 있음을 보여줬다. ●로플린 발언의 변화과정 로플린은 지난해 5월 말 KAIST 총장으로 선임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KAIST를 미래사회에 걸맞은 세계적 연구중심의 이공계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11월 3일 카이스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우리 학교는 경영 방식이 달라 스탠퍼드나 MIT와 같아질 수 없다. 일단 입학정원을 늘려 얼마나 학생이 오는지 보고 싶다.”고 말해 약간 입장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같은 달 각종 언론과 접촉에서 “KAIST 경쟁상대는 서울대가 아니라 (시장원리에 충실한) 연세·고려대 등 사립대다.”“내가 생각하는 KAIST 발전모델은 기업과 연계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MIT”라고 얘기하다 연구중심의 대학원이 아니라 학부중심 종합사립대 형태와 비슷한 구상을 내놓아 파문을 낳았다. ●사퇴발언에 대한 의문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플린 총장은 “나의 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I will return home‘(나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과 ‘I should go’(나는 돌아가야 한다.) 등으로 발언, 사퇴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KAIST 홍보실 관계자는 “KAIST를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키우려면 재정이 풍부해야 하는데 정부 지원도 충분치 않고, 등록금 인상 등 방법도 잘 안되자 하소연조로 말한 것이 문제가 불거졌다.”고 해명했다. 그는 “언론과 접할 때는 대부분 말이 공식적인 발언이 되는데 로플린 총장이 이 부분을 가볍게 여기는 성향이 있어 곤혹스럽다.”고 지적했다. 로플린 총장이 미국과 한국의 문화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그렇다 하더라도 그간의 발언은 내심 자신의 구상에 대한 추진의지가 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로플린 발언의 변화과정 ▲2004년 5월 29일(KAIST총장 선임후 언론과 인터뷰)=“KAIST를 미래사회에 걸맞은 세계적 연구중심의 이공계 대학으로 만들겠다.” ▲2004년 7월 15일(총장 취임연설)=“KAIST를 미국 스탠퍼드대를 비롯한 세계의 모든 대학이 본받고 싶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만들겠다.” ▲2004년 11월 3일(카이스트신문과 인터뷰)=“우리 학교는 학교 운영방식이 달라 스탠퍼드나 MIT와 같아질 수 없다.”“일단 실험적으로 입학정원을 늘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오는지 보고 싶다.” ▲2004년 11월 10일(각종 언론과 인터뷰)=“KAIST의 경쟁상대는 서울대가 아니라 (시장원리에 상대적으로 충실한) 연세대나 고려대 등 사립대다.” ▲2004년 12월 14일(2004년도 KAIST 비전 워크숍)=등록금 대폭 인상, 입학정원 증원, 의대·법대 예비반 설치 등 연구중심의 대학원이 아닌 학부중심의 종합사립대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KAIST 투자전략 제안서’(로플린 구상) 발표.
  • [클릭이슈] 로플린총장 개혁은 개선? 개악?

    [클릭이슈] 로플린총장 개혁은 개선? 개악?

    국내 최고의 과학영재 교육요람을 자부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노벨상 수상자 출신인 로플린 총장이 던진 개혁 방향을 놓고 새해 벽두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로플린 구상’이란 로플린 총장은 지난해 12월14일 300여명의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KAIST 투자전략 제안서’를 발표했다. 핵심은 ▲학사와 석·박사를 합쳐 7000명 수준인 입학정원을 2만명으로 늘리고 ▲연간 600만원의 등록금(현재 학부의 경우 80만원 수준)을 받고 ▲의·법대 예비반과 경영대학원 예비반을 두는 것이다. 로플린은 “탈산업화 현상으로 이공계 기피는 당연한 추세로 시장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자신의 구상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 경쟁력을 높이고 인재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등록금을 인상, 재정을 확충해 자립기반을 마련, 창의적 연구가 가능케 하고 대학도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로플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퇴” 대다수 교수들은 이에 대해 한국의 현실을 도외시한 ‘미국식 방안’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당장은 비현실적이지만 20년 후 한국상황을 예상하면 이를 검토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교수도 물론 존재한다. 로플린 총장을 데려오는 데 실무를 맡았고, 최근 보직을 사퇴하면서 그의 구상을 비판한 박오옥 기획처장은 “취임하자마자 사립화를 누누이 강조해 한국실정을 설명하면서 설득을 계속해 왔지만 갑자기 이를 발표했다.”고 말했다. 최근 KAIST이사회가 “현재 대학원 연구중심 및 정부지원 체제를 유지하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지만 로플린 총장은 “내 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맞서 이번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교수들은 기금 등 학교재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로플린 구상은 실패한다고 말한다. 전자전산학과 A교수는 “미국 사립대는 기여입학이 가능해 학교재정이 풍부하고 이것이 명문대가 되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기여입학이 가능해지면 자식을 명문대에 못 보내 안달인 이들이 줄을 서 수조원을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반문했다. 이 학교 기금은 5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원자력양자공학과 장순흥 교수도 “포항공대가 지방사립 명문대로 계속 유지되는 기반은 많은 기금”이라고 맞장구쳤다. 포항공대는 포스코가 준 7000억여원의 기금에서 나온 이자수입 등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 등 기업에서 지원도 받는다. 등록금이 연간 450만원에 이르지만 대부분 장학금으로 되돌려 받고 있다. 박 기획처장은 “포항공대는 연간 학생 1인당 교육비로 4800만원을 투입하지만 KAIST는 2400만원에 불과하다.”면서 “학생수가 늘면 지출도 늘어나는데 등록금을 올린다 해도 정부지원 없이는 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며 “결국 우수 학생들이 기피, 보통의 지방 사립대로 전락한다.”고 강조했다. ●학생 80%, 대학원중심대학 희망 KAIST신문사가 실시중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9일까지 응답한 학생 325명 가운데 79.9%가 대학원 중심 대학이 되어야 한다고 답했고,68.9%는 정부지원을 중심으로 재정이 확보돼야 한다고 했다.88.3%는 등록금 도입에 대해 반대하거나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였다. 학생들은 학생수를 2만명으로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학생수준 하락 등으로 좋지 않다.’(37.8%) ‘시설 등 사전 준비없이는 좋지 않다.’(24.6%) ‘이공계기피 등으로 가능성 낮다.’(25.2%)고 반감을 드러냈다. 교수들의 반발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니냐는 물음에 박 처장은 “제일 잘나가는 전자공학과 교수들이 먼저 반발했고 학부모들도 ‘뭐 우리 애가 실력이 없어 여기에 온 줄 아느냐.’고 말하고 있다.”며 학교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모델은 미국의 명문대학 박 처장은 “총장이 말을 자주 바꾸고 구상이 명확하지 않아 특별한 모델도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안팎에서는 미국의 MIT대 등이 로플린 구상의 모델인 것으로 보고 있다. MIT는 사립대로 학생수가 2003∼2004년 기준으로 1만 340명으로 학부와 대학원생이 4대 6 비율의 대학원 중심 대학. 등록금은 연간 2만 9600달러(달러당 1040원 기준 3078만원)이지만 예산에서 등록금 비중은 10.1%이다. 로플린 총장이 교수를 지낸 스탠퍼드대도 사립으로 학생수는 학부 6654명과 대학원 7800명 등 1만 4454명으로 대학원생이 좀더 많다. 등록금은 2만 8563달러로 전체 예산의 14%를 이룬다. 기부금이 많다. 비록 주립대이지만 톱클래스 사립대와 같은 수준인 버클리는 학부 2만 3206명, 대학원 9870명 등 3만 3076명으로 학부중심이라는 측면만 보면 로플린 구상에 들어맞는 학교다. 하지만 등록금이 2만 2912달러로 전체 예산의 16%를 차지한다. 주 지원 예산은 30%를 차지,KAIST와 비슷하다.KAIST는 학부 2978명과 대학원 4328명으로 대학원 중심 대학이다. 연간 기성회비만 내고 있으며 이는 전체 예산의 4.8%에 불과하다. ●기부금 적고, 학생은 수도권에 몰려 한국은 기부문화가 발달돼 있지 않다. 기부금이 학교운영에 큰 도움을 주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대학기부금이 적고 지방 사립대는 기부금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사회는 또 수도권 중심이다.MIT와 스탠퍼드 등 도시마다 명문대가 있는 미국과 또 다른 점이다. 대학진학자들도 서울로 몰리고 있다. 많은 지방 사립대들이 위기에 빠져 있다. 지방에선 대부분 국립대들이 주요대로 대접받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통합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로플린 총장의 지방 사립대 전환과 관련, 자녀가 KAIST 2학년에 재학중인 김은희(50)씨는 “KAIST 출신들이 국가성장 원동력인 삼성전자 등 한국의 첨단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로플린 총장의 구상대로 학교가 사립화됐다면 질이 떨어졌을 것이고, 내 아들도 서울로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안에 반영될지 주목 포항공대 홍기상 교무처장은 “KAIST의 소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사립화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박 처장은 “로플린 총장이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데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강박관념 때문에 성급하게 이를 발표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학교 평교수 등 18명으로 구성된 ‘KAIST 비전 임시위원회’가 다음달 학교장기발전 계획을 만든다. 이때 로플린 구상을 반영할지, 아니면 아예 무시할지, 또 로플린 총장이 이 계획서를 받고 자기 구상을 넣을지, 아니면 그대로 3월 중순 열리는 이사회에 제출할지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KAIST 어떤 학교인가 KAIST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71년 서울 홍릉동에서 개교했다.1989년 7월 대전으로 이전했다. 한국과학기술원법에 따라 국내 최초로 설립된 연구중심 이공계 특수대학원이다.‘산업화를 뒷받침할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이 학교의 정체성이다. 별도 학교법인을 둬 운영되고 있고, 교육부가 아니라 과학기술부 산하 교육기관으로 전국 과학고에 재학중인 우수 2년 수료생을 데려올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총장은 이 학교 이사회에서 선출된다. 그동안 내국인을 총장으로 뽑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199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플린 스탠퍼드대 교수를 선발, 지난해 7월 취임했다. 로플린 총장은 1억 2000여만원을 받는 내국인 총장보다 훨씬 많은 6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영어능통한 비서가 별도로 채용돼 교내 공관에 함께 머물면서 24시간 보좌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촘스키등 9000명 反부시 성명 발표

    |워싱턴 이도운 특파원|“우리 이름으론 안돼.(Not in our name)”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반대하는 진보단체 인사 9000여명이 국민적인 저항을 촉구하는 ‘반(反)부시 성명’을 발표했다.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교수를 비롯한 반전·환경단체 인사들은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내고 “미국이 부끄러운 전쟁과 탐욕, 불관용의 대관식을 묵묵히 받아들였다고 우리 이름으로는 말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8년까지 기다릴 수 없고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라며 “집권 2기의 부시 정권에 대한 투쟁은 지금 시작돼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부시는 우리를 위해 말하지 않고 우리의 대표가 아니며 우리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어떤 선거도 불법적인 전쟁과 고문, 인권 침해, 과학과 이성의 종식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또 “북한이나 이란·시리아에 대한 침공, 유엔 탈퇴,‘평생구금’ 등 미국이 세계 패권국이 되기 위해 다른 국가나 개인들에게 행할 범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반부시 운동을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이름으로 안돼.’라는 웹 사이트(www.nion.us)를 통해 지지 서명을 받고 있다. 성명은 촘스키 교수 이외에 램시 클라크 전 법무장관, 진보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 제임스 아부레즈크 전 상원의원, 마이클 애버리 전국변호사연맹 회장 등의 공동명의로 발표됐다. dawn@seoul.co.kr
  • 세계각국 로봇 개발 어디까지

    미국과 일본 등을 중심으로 인간에 더 가까운 로봇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제작기술을 부문별로 알아본다. ●로봇이 야구를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개발한 ‘제리’는 인간의 눈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물을 본다. 제리는 먼 쪽에서부터 가까운 쪽으로 차례로 인식하며, 주변의 장애물을 구별해낸다. 일본 도쿄대학의 ‘베스보루’는 야구선수가 던진 공을 방망이로 때려낼 정도로 정확한 시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과학자 사와다 히데유키가 실리콘을 활용해 만든 로봇 입 ‘KRT-V3’는 인간과 비슷한 소리를 낸다. 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합성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구강구조와 비슷한 기계구조에 의해 만들어진다. 일본 와세다대학의 ‘로비타’는 청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소리 가운데 자신이 듣고자 하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모내시대학의 ‘스멜봇’은 프로그램된 특정 냄새를 좇아 미로를 탈출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후각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걷기는 기본, 달리기는 선택 일본의 ‘아시모’(혼다)와 ‘큐리오’(소니)는 인간과 가장 비슷하게 걸을 수 있는 ‘2족 보행형’ 로봇이다. 아시모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으며, 큐리오는 달리기도 한다.MIT 인공지능연구소의 ‘트루디’는 표면이 고르지 않은 곳에서 중심을 유지한 채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의 ‘ACT 핸드’는 손가락 뼈대와 움직이는 각도 등이 인간의 손과 비슷하며, 동작은 인간의 신경처럼 만들어진 컴퓨터 신호에 따라 이뤄진다. 미국의 섀도로봇사는 인간의 손 동작 가운데 25가지를 따라할 수 있는 ‘섀도 핸드’도 개발했다. ●무표정한 사람보다 감성적인 로봇 일본 와세다대학이 제작한 ‘WE-4R’는 공포와 놀람, 기쁨 등 7가지의 인간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WE-4R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인간과 감정까지 공유할 수 있는 셈이다. 독일 페스토AG사의 ‘트론X’는 압축공기를 이용한 실린더 200개를 이용, 근육처럼 움직이도록 제작됐다. 트론X의 인조근육은 섬세한 공기 압력 조절을 통해 얼굴 표정을 바꾸거나 다양한 손 동작을 만들 수 있다. 일본 첨단통신연구소의 ‘로보비’는 외부의 접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부를 갖고 있으며, 미국 텍사스대학 연구팀은 사람의 피부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실리콘 인조피부를 개발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학교소식]

    ●현직 중학교장 경험 담은 책 출간 성산중학교 정근화 교장은 가정교육 지침서 ‘아이의 공부를 방해마라’를 펴냈다.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을 단 한번도 보내지 않고 두 아들을 미국 MIT와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전액 장학금 박사로 키운 경험담을 담았다. 자녀들의 학습 의욕을 높이기 위한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부모들의 역할을 강조해 자식 교육에 고민이 많은 부모들에게 바람직한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지성사.1만 5000원. ●초등생 46명 2주간 영어체험캠프 대모초등학교(www.daemo.es.kr)는 24일(월)∼2월5일(토) 서울시학생교육원 가평수련원에서 ‘제2회 대모영어체험캠프’를 연다. 이번 캠프에는 대모초등학교 재학생을 포함해 일원·방배·대방·개포·원묵·원촌초등학교 3∼6학년 학생 64명이 참여한다. 캐나다·미국·아일랜드 출신 원어민 교사들과 2주일 동안 수련원에 함께 머물며 영어권 국가의 문화를 체험한다. 영어 연극(Drama Festival), 용산 미군기지 방문하기, 학생 스스로 영어방송 진행하기 등 다양한 체험 이벤트도 마련돼 있다. 캠프가 끝나는 날에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부모들에게 발표할 수 있는 ‘학부모 방문의 날’행사도 열린다. ●3개 박물관 견학 이색문화 체험 구로초등학교(www.guro.es.kr)는 18일(화)·20일(목)·27일(목) 사흘에 걸쳐 박물관 체험행사를 연다.18일에는 종로구 와룡동 떡·부엌살림박물관(www.tkmuseum.or.kr)을 방문해 우리나라 전통떡을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시간을 갖는다.20일과 27일에는 종로구 삼청동 부엉이 박물관(www.owlmuseum.co.kr)과 종로구 소격동 티벳박물관(www.tibetmuseum.co.k)을 찾아 이색 문화체험 행사를 경험한다. 1∼3학년 120여명이 3차에 걸쳐 참여한다. 이번 행사에는 구로초등학교 어머니 봉사회원 12명도 함께 참여해 어린이들의 체험 활동을 돕는다. ●수학·과학·컴퓨터 심화 수업 연지초등학교(www.yonji.es.kr)는 21일(금)까지 수학·과학·컴퓨터를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겨울방학 테마캠프를 연다. 수학은 5∼6학년 25명, 과학은 4∼6학년 61명, 컴퓨터 4∼6학년 19명이 참여해 매일 4∼6시간의 심화 수업을 받는다.18일(화)에는 테마캠프 참가자 모두가 남산 탐구 학습관과 안중근기념관 등을 방문하는 체험활동 시간도 갖는다. ●청소년 가치관정립 길잡이 펴내 중동고등학교(www.joongdong.hs.kr) 교사 5명은 청소년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바람직한 가치관 정립을 돕는 대안교과서 ‘Who am I?-나는 내가 만든다’를 냈다. 정창현·안광복·한채영·강동길·최원호 교사가 2년 동안 기초연구과정을 거쳐 3년 동안 수학·철학·국어·영어·과학 과목의 실제수업에 활용한 체험기를 담았다. 사계절 출판사.8500원.
  • [MD의 훈수-네비게인션]초행길도 든든한 길라잡이

    [MD의 훈수-네비게인션]초행길도 든든한 길라잡이

    몇년 전까지만 해도 GPS(위성항법장치)를 이용해 도로정보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은 가격이 비싸 고급차를 구입할때 TV 등과 함께 옵션으로 장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30만∼50만원대의 대중적인 제품이 등장하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등장한 보급형 네비게이션은 메모리카드를 사용하는 ‘GPS 일체형’이다. 메모리카드 방식은 CD방식에 비해 지도정보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CD를 구입해서 교체해야 할 필요가 없어 간편하고, 속도·용량 면에서도 더 뛰어나다. 일반 PDA처럼 게임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제품도 있지만, 네비게이션용 PDA이기 때문에 다른 기능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모니터 크기에 따라 3.5인치·5인치·7인치형으로 나뉜다. 메모리카드의 용량은 128MB·256MB가 대부분이다. 정확도에는 차이가 없지만, 지번·명칭검색 등 부가기능에서 차이가 나므로 256MB의 메모리카드를 사용하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MP3플레이어 등의 부가기능을 활용하려면 512MB나 1GB의 메모리카드를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 네비게이션의 가장 중요한 점은 지도정보의 정기적인 업데이트다. 도로개통 등으로 지도가 매우 빠르게 변경되므로 그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네비게이션에 탑재된 지도 데이터를 제작한 회사가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가능한 곳인지 고려해야 한다. ●지도 자동 확대·축소… Mio 138 (MITAC/중국 OEM) 일본 NEC사의 3.5인치 TFT LCD 터치스크린을 채용한 작고 깜찍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도의 축적이 자동으로 조정돼 큰 길이나 다리를 건널 때는 지도가 축소돼 넓은 지역을 보여주고, 좁은 길이나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는 저절로 지도가 확대돼 자세한 지리 정보를 보여준다. 추천경로·최단거리·고속도로 위주로 검색하는 고속우선, 일반 도로를 위주로 검색하는 일반우선 등 4가지 경로탐색이 있다.PC를 통해 쉽게 업데이트할 수 있고 연간 4회 정기 무료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거치대에서 분리하면 등산이나 도보로 이동할 때에도 사용할 수 있다.MP3·차계부·게임·윈도 등을 사용할 수 있지만,MP3플레이어는 네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할 때는 작동할 수 없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글자가 작을 수도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49만 9000원. ●4주마다 업데이트… 폰터스 이지 (㈜현대오토넷/한국) 3.5인치 컬러 LCD모니터·본체·GPS 안테나 일체형으로 거치대를 부착하고 전원을 꽂으면 끝나기 때문에 설치가 간편하다. 지도 정보 50만건, 안전운전 정보 2만건, 지번정보 1300만건 등을 담은 CD를 제공해 권역별로 필요한 정보를 다운 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4주 간격으로 업데이트되는 정보도 다운받을 수 있다. 리모컨을 이용해 쉽게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며, 현대오토넷 직영 대리점 및 전국 현대 지정 AS센터에서 1년간 무상 AS를 받을 수 있다. 가격은 39만 9000원이다. ●지번 정보 1700만건… 아이나비 프로(팅크웨어/한국) 네비게이션 전문 업체 제품으로 지도품질이 우수하다. 주소지번 1700만건, 안전운행 준수구간 7700건, 테마검색 3592건, 주변검색 75만건 등이 256MB CF메모리에 수록돼 있다. 여행 시에 활용할 수 있는 추천맛집, 관광명소, 드라마·영화속 그곳 등 테마별로 연락처, 주소, 주차시설 정보 등을 상세히 제공한다. 고속·추천·일반 등 4가지 검색모드가 있으며, 안전운행 구간과 고속도로 분기점·주유소 등을 음성으로 안내해 준다. 주행속도에 따라 지도가 확대 및 축소되고, 교차로를 안내할 때도 지도 레벨이 자동으로 변경돼 복잡한 교차로에서 길 찾기도 편리하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삼성 TFT LCD 채용해 화면을 바로 누르거나 원터치 단축키를 이용해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자판도 커서 손가락으로도 쉽게 누를 수 있는 것이 장점. 각종 동호회와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홈페이지를 통해 수시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 가격은 59만 4000원. CJ홈쇼핑 임태환
  • 삼성, 455명 사상최대 임원 승진

    삼성은 12일 삼성전자 디지털솔루션센터장 권희민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등 창사이래 최대규모인 총 455명에 대한 임원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였던 지난해(448명)보다 7명이 많은 것으로 지난해에 이룬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을 반영한 것이다. 직급별 승진자는 부사장 26명, 전무 69명, 상무 124명, 상무보 236명 등이다. 삼성은 향후 경영을 이끌어갈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을 두껍게하기 위해 부사장·전무 승진자를 최대규모인 95명으로 확대했다. 이와함께 신규 임원(상무보) 수도 삼성전자 등 경영실적이 좋은 계열사를 중심으로 지난해 대비 11명 늘렸다. 승진자 중 조기 승진한 ‘발탁’의 경우 82명으로 늘려 근무기간과 연공서열보다 실적과 능력이 인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임을 분명히 했다. 외국인 직원 중에서는 미국현지법인 메모리 마케팅·영업 책임자인 토머스 퀸(42)이 정규임원으로 선임돼 4년 연속 외국인 임원이 배출됐다. 지난 2002년 외국인으로 최초로 본사 정규임원이 된 데이비드 스틸(38) 상무보는 3년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삼성은 또 삼성SDS 웹서비스추진사업단 윤 심(41) 단장과 ‘배터리와 결혼한 여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삼성SDI 2차전지 개발팀 김유미(46) 부장을 상무보로 승진시킨 것을 비롯해 신규임원 3명과 기존임원 3명 등 총 6명의 여성을 승진시켰다. 이로써 삼성내 여성임원은 모두 14명으로 늘어났다. 삼성가에서는 지난해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이 회장의 맏딸 이부진(35)씨가 1년만에 발탁인사로 상무로 승진하고 남편 임우재(36)씨도 삼성전기 상무보로 나란히 승진해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 미주법인 소속이었던 임씨는 최근 미 MIT에서 MBA과정을 이수했다. 둘째딸인 제일모직 이서현(32) 부장도 상무보로 승진했으나 장남 이재용(37) 삼성전자 상무는 전무승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2005 문화코드] ③ 미래담론

    [2005 문화코드] ③ 미래담론

    ■ 석학3인의 미래 진단 앨빈 토플러가 35년 전 ‘미래의 충격’에서 예측했던 사회의 모습은 더이상 충격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웃과 도구가 되어있다. 그가 25년 전 내놓은 ‘제3의 물결’은 이미 전 지구를 뒤덮고 있으며,15년 전 지은 ‘권력이동’의 핵심 키워드 ‘지식정보사회’는 지금 절정에 와있다. 1952년생으로 미래학자 중에선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하는 일본계 미국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어떤가. 그는 1992년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완승을 선언한 ‘역사의 종언’에 이어 1999년 ‘대붕괴’란 역작으로 세계 미래학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대붕괴’는 전제봉건주의와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로 남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회 내부에서 사회질서의 대붕괴가 시작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대붕괴를 불러올 도덕적 해체현상으로 그가 꼽은 것들이 한국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범죄율 증가, 상호 신뢰의 약화, 이혼율 증가와 사생아 증대였다. 최근 10여년간 지적되어온 한국 사회의 부정적 현상들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미래담론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경계와 준비의 계기를 제공한다. 전 지구적 대재앙과 함께 시작한 새해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안전과 생존, 그리고 행복을 위한 미래담론이 무성할 것이다. 앨빈 토플러와 대니얼 벨,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 미래학계의 석학 3인의 미래담론을 통해 2005년 이후의 사회모습을 들여다본다. ●앨빈 토플러 토플러는 1970년 ‘미래의 충격’을 시작으로 10년 간격으로 ‘제3의 물결’(1980),‘권력이동’(1990) 등 대표적 역작을 냈다. 이같은 세 저작의 핵심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지식정보사회’를 꼽을 수 있다. 물론 ‘미래의 충격’이나 ‘제3의 물결’에선 이같은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저작의 전체를 아우르는 미래상은 지식정보사회의 모습이었다. 지식정보사회의 모습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어서 그 자체의 현상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 안에서의 권력의 움직임을 다룬 ‘권력이동’(1990)은 여전히 유효한 관심사이며, 좀 더 앞서가기 위한 국가나 기업, 개인들은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권력이동은 전통적인 권력의 3요소, 즉 강제력(폭력), 돈(자본), 지식 중 그 비중의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전제봉건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강제력은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상당부분 돈으로 대체되었고, 지식정보사회로 넘아가면서 돈은 지식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권력의 저울추는 폭력이나 돈을 넘어 이미 기술력과 아이디어, 마케팅, 경영역량, 즉 지식정보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업계에서 벌어지는 정보전쟁은 그야말로 지식정보사회 권력투쟁의 가장 전형적인 표본이다. 지구상으로 볼 때도 세계는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부국 대 빈국으로 분할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자’대 ‘느린 자’의 새로운 양극으로 나뉜다.21세기의 새로운 경제는 ‘실시간 속도’로 작용하며, 거대한 정보지식의 흐름을 끊임없이 교환하는 가운데 새로운 부가 창출되는 체제다. 이같은 체제는 그 자체로서 권력의 원천이며, 그것과의 단절은 미래로부터의 탈락일 뿐이다. ●대니얼 벨 미국 사회학자 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대니얼 벨은 일찍이 ‘이데올로기 종언’(1960)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실질적 삶의 개선 문제라고 정확히 예견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체적 모순을 지닌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예측했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부의 끊임없는 자기 축적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정책적) 개입을 통한 재분배가 없게 되면 어떤 사람은 최악의 경우 굶어죽을 수도 있는 모순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는 지식정보가 핵심 권력화하는 ‘후기산업사회의 도래’(1999)에서 이같은 점을 분명히 하고 ‘‘공공가계’란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공공가계는 가계와 시장경제를 포용하는 개념으로, 사회적 목적의 틀 안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아이디어다. 즉, 공익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분배에 우선 순위를 매겨주는 공공철학의 개념을 담고 있다. 토플러가 지식정보사회에서 권력의 이동을 분석하면서도 권력의 흐름에서 도태된 이들을 위한 방안 제시에 소홀한 반면, 대니얼 벨은 이들을 함께 아우르며 갈 수 있는 사회체제에 큰 관심을 둔 것이 특징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앞서 이야기했듯이 후쿠야마는 20세기 최후의 승자인 자유민주주의가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다고 파악했다. 일과 소비자 중심의 사회에서 서구사회의 전통적인 도덕적 유대가 심각히 타격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적 뼈대 자체도 위협받고 있으며, 서로 협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가치체계가 마구 동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붕괴를 막기 위한 대안은 없는가. 후쿠야마는 인간에게 자기 생존을 위해 서로 의존하고 협동하게 하는 어떤 천성적 능력이 있다는 데 위안을 찾는다. 인간의 자발적 질서의식이 복원될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신뢰와 협동이 있는 사회질서 재구축, 요컨대 사회자본 복원을 위한 정치적 노력과 도덕적 시도가 필요하다.19세기 영국에서 선교운동을 통해 ‘빅토리아적 가치’를 불어넣었던 것처럼, 메이지(明治)시대 일본에서 천황숭배론을 활용했던 것처럼 유사한 정치적·도덕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올 출간될 미래서 올해는 1990년 ‘권력이동’ 이후 뚜렷한 저작을 내지 않았던 앨빈 토플러를 비롯해 미래학계 석학들이 앞다투어 역작을 내놓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에따라 미래담론이 한층 활기를 띨 전망이다. 토플러는 10년마다 주요 저작을 내던 관례대로 2000년 책을 내려고 했으나 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출판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후 2002년 9·11테러가 터진 후 정세가 급변하면서 저작을 상당 부분 수정한 것으로 전해진다.30% 정도를 다시 썼다고 한다. 토플러의 책은 이르면 오는 4월쯤 나올 예정. 내용은 아직까지 극비에 부쳐지고 있다. ‘Being Digital’로 라이프스타일의 대 혁신을 내다보았던 미국 MIT대학 교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도 올 상반기 중 중요한 저작을 낼 계획이다. ‘To Be One’, 혹은 ‘Geo Digital’이라는 제목이 될 것이라고. 여기서 네그로폰테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몇몇 나라에서 나타난 의지가 오늘날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창조해내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창의적이고 활기찬 사회를 이끌어낼지 모른다는 것, 혁신과 리더십은 구경제의 틀에 의하면 개도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을 것으로 알려진다. 기업경영 분야에서 미래학자로 성가를 드높이고 있는 피터 드러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은 비즈니스 리더로 꼽히는 잭 웰치,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스티븐 코비 등도 올해 주요 저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하인호 미래학硏소장이 본 2005 한국 “올해는 ‘열린통일’로의 행보가 본격화하는 해가 될 겁니다. 개성공단이 활성화하면서 남북간 왕래가 자유로워지고, 북핵 문제도 비교적 순조롭게 풀려나갈 것으로 봅니다.” 국내의 몇 안되는 미래학자 중 한 사람인 하인호 미래학연구원장은 올해 경제 전망이 잿빛 일색인 것은 사실이지만 개성공단이 본격 가동되고 남북교류가 활성화하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4·19혁명 이후 태어난 세대가 점차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추로 자리잡고 있다며 이들은 상당수가 국제적 감각을 갖춘 고학력층으로, 격변하는 국제질서를 해쳐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2005년을 21세기의 특징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는 시기로 보았다. 즉 21세기는 지식문화, 지식산업, 지식기업, 지식코드가 중추가 되는 사회이며, 올해부터 이같은 경향이 더욱 조밀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 결국 이같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개인이 도태되는 현상도 눈에 띄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이같은 흐름 속에서도 ‘정신문화’,‘웰빙 소사이어티’가 각광받을 것이며, 서양에서도 정신 중심의 ‘동양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친화적·환경친화적인 삶이 보다 중시되고, 사회봉사 등 정신적 건강이 비중있게 여겨지며, 이에따라 행복관이나 인식의 세계도 점차 변화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국제적으로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매우 힘겨운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2004년은 미국의 부시, 중국의 후진타오, 일본의 고이즈미, 러시아의 푸틴 등 주변 열강의 정상들이 등극 또는 재등극한 해로서, 올해는 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국제외교정치를 펼쳐나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 원장은 장기적으로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경제권, 즉 투더블유(WW)권이 21세기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즉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한국, 일본, 중국, 인도를 연결하는 경제권이 글로벌 구매시장으로 자리잡으면서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되리라는 것. 이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중심의 시각도 점차 엷어지게 되고, 특히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지역의 맹주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주역으로 자리잡는다는 전망이다. 다만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세계화를 성취하는 일, 투더블유권 내의 보건과 환경문제 해결 등 적지않은 과제도 안고 있다고 분석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뉴스위크 ‘2005년 이끌 10인’ 선정

    흑인 상원의원 당선자, 스페인어 전용 라디오 방송국 운영자, 화장품업체 여성 총수 등 10명이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12월27일자)의 ‘2005년의 주목되는 주역’으로 선정됐다. 케냐 이민자와 백인 교사 사이에서 태어난 바락 오바마(43·민주당) 상원의원 당선자를 표지모델로 내세운 뉴스위크는 그가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점치면서 청색(민주당)과 적색(공화당)의 정치적 통합을 이끌어낼 실용적 인물로 추켜세웠다. 또 “2008년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세워야 한다는 논의가 벌써 일고 있다.”고 치솟는 그의 주가를 설명했다. 공화당 차기 대권 후보로 급부상 중인 릭 센토럼(46·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도 오바마와 함께 선정됐다. 센토럼은 32세에 하원의원,36세에 상원의원에 각각 ‘최연소’로 당선된 기록도 갖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낙태 및 동성애자의 결혼 인정 반대 등 확실한 보수적 입장에 서 있다. 내리막길에 있던 화장품업체 에이본의 전성시대를 다시 연 여성 최고경영자(CEO) 앤드리어 정(46), 정보기술(IT)업계의 기대주로 인터넷 게시판사이트 크레이그스리스트(www.craigslist.org)를 운영하는 크레이그 뉴마크(52)도 선정됐다. 스페인어 전용 라디오 방송국 운영자 톰 카스트로(50)는 올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의 재정부문 부책임자로 활동하며 미국 내 가장 영향력있는 히스패닉계 인사임을 과시했다. 남성복 디자이너 톰 브라운(39), 여배우 미셸 모나건(27),MIT 최초 여성 총장 수전 호크필드(53), 에티오피아 출신 여류화가 줄리 메리투(34), 테니스선수 도널드 영(15)도 2005년에 새바람을 일으킬 주역으로 뉴스위크는 꼽았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한·미장관 성향·경력 비교] 美는 멀티플레이어·韓은 단일경력자

    [한·미장관 성향·경력 비교] 美는 멀티플레이어·韓은 단일경력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마이클 리비트 환경보호국 국장을 보건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2기 정부의 인선이 거의 마무리됐다.‘내니(유모) 스캔들’로 전격 낙마한 버나드 케릭 국토안보부 장관 지명자의 후임 인선이 남았지만 부시 2기 정부의 면면은 대체로 드러난 셈이다. 한국의 각료들과 경력, 출신지 및 대학 등을 비교 분석해본다. ●부시와 코드 맞고 충성심 강해 부시 내각 각료들의 특징은 ‘멀티 플레이어’가 많다는 점이다. 장관 및 지명자들의 경력을 보면 대부분이 정부와 기업 및 학계에서 두루 일해본 경험을 갖고 있다. 경제학 박사인 존 스노 재무장관의 경우 경제학 교수, 정부부처 차관보, 대기업 회장 등 ‘3박자’를 갖춘 뒤 장관에 취임했다. 장관에 임명되기 전 한가지 경력만 쌓아온 인물은 켈로그 회장 출신인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 지명자뿐이다. 다양한 경력을 쌓아온 장관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해하고, 해당 부처뿐만 아니라 백악관과 언론, 시민단체, 다른 부처 등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당사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장관들은 대부분 ‘단일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관료나 교수로만 일해온 인물이 많다. 특히 학교에서만 머물러온 인물들은 ‘온실 속의 화초’가 되기 쉬워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직업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경향을 보여왔다. ●‘기업 마인드’로 무장 부시 2기 각료 및 지명자 14명 가운데 12명이 기업이나 법률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정부 조직이 ‘기업적 마인드’를 갖고 운영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은 다국적 제약회사인 ‘설’과 정보통신(IT) 기업인 제너럴인스트루먼트 회장으로 업계에서 ‘최고의 경영자’상까지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은 월스트리트 출신으로 미국 역사상 최고, 최장의 호황을 이끌어낸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영향으로 금융계 출신 인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부시 2기 내각에서도 럼즈펠드(투자은행), 일레인 차오(뱅크아메리카캐피털마켓그룹), 새뮤얼 보드먼(피델리티 투자), 마이클 리비트(보험사) 등이 금융계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업계 출신은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유일하다. 한국과 미국의 정부 시스템에 밝은 전문가는 “한국의 경우 그동안 정경유착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특정기업 출신을 내각에 등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점이 있었다.”면서 “진 장관 등의 공과에 따라 향후 기업인 출신 장관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전국적 ‘스타’ 거의 없어 부시 2기 내각의 또다른 특징은 ‘전국적인 거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게일 노튼 내무장관(전 콜로라도주 검찰총장)이나 알베르토 곤살레스 법무장관 지명자(전 텍사스주 대법관), 마거릿 스펠링 교육장관 지명자(전 텍사스주 교육정책 자문관) 모두 지역사회에서만 알려졌던 인물이다. 럼즈펠드 장관 정도가 거물이지만 72세인 그의 ‘정치적 미래’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동영 통일·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이른바 ‘차기 대권주자’들이 포진해 있는 한국의 내각과는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관들이 조직을 장악하고 소신있게 정책을 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소한 4년에서 8년의 임기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부시 2기도 15명 가운데 6명이 유임돼 대부분 8년 동안 임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 많아 부시 대통령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내각에는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이 많다.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구티에레스 상무장관 지명자, 니컬슨 보훈장관 지명자 등의 성공담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여성이나 아시아계, 히스패닉계가 많아 배려나 조화 차원의 임명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도 몸담았던 차오 장관은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을 위해 가장 많은 선거자금을 모금했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다.2004년 대선 때도 지방을 돌며 부시 대통령의 치적을 올려세우고 뉴욕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연설했다. 여성 내무장관인 게일 노튼은 “북극을 원유탐사지로 개방해야 한다.”는 등 보수적 환경관을 지닌 인물이다. 알래스카의 유전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부시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것이다. 흑인인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와 히스패닉인 곤살레스 법무장관 지명자, 여성인 스펠링 교육장관 지명자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부시 집안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다. 구티에레스도 켈로그 회장 시절 본사가 있는 미시간주에서 히스패닉을 상대로 부시 당선운동을 벌여왔다. 충성심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dawn@seoul.co.kr ■ 텍사스·지방大출신 많아 부시 2기 내각 각료들의 출신지를 살펴보면 역시 텍사스 출신이 가장 많다. 곤살레스 법무장관 지명자, 스펠링 교육장관 지명자, 알폰소 잭슨 주택장관 등이 텍사스 출신이다. 그밖에는 럼즈펠드 장관과 보드먼 에너지장관 지명자가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일 뿐 출신지가 겹치는 장관은 없다. 차오 노동장관은 타이완계이며 노먼 미네타 교통장관은 일본계이다. 출신학교는 매우 다양하다. 하버드대(차오, 곤살레스)와 덴버대(라이스, 노튼) 출신이 2명씩이고 나머지는 모두 출신학교가 다르다. 또 MIT(새뮤얼 보드먼)나 프린스턴대(럼즈펠드),UC버클리(미네타), 컬럼비아대(짐 니컬슨)와 같은 명문대 출신도 있지만, 지역의 소규모 대학을 나온 인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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