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자 상대로 15연패 공포… 마음 훈련해서 극복”
오유진(23) 9단에게 최정(25) 9단은 한때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다. 지난달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기까지 무려 15연패에 빠졌을 정도로 최정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늘 최정에게 당하면서 바둑기사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다 겪은 끝에 오유진이 얻은 것은 ‘부동심’(不動心).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은 반상 위에서 오유진이 국면을 주도하게 했고, 결국 최정을 넘게 하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오유진은 지난달과 이달 열린 여자국수전과 여자기성전에서 최정을 연달아 꺾으며 ‘최정 왕국’이던 여자 바둑계에 균열을 냈다. 상대 전적이 6승 26패로 절대 열세인 탓에 안 봐도 뻔한 결과가 예상됐던 두 기사의 대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오유진이 패권 탈환에 성공할지 바둑계의 관심이 비상하다.
지난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난 오유진은 “가장 고민이 됐던 상대인데, 그런 선수에게 결승에서 두 차례나 승리한 게 엄청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오유진은 “여자국수전을 치를 때 우승보다 1승이 더 간절했는데 1국에서 승리하니까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결과도 좋게 나왔다”면서 “여자기성전에서는 ‘결승에만 온전히 집중하자’는 생각에 몰두했고, 덕분에 내 바둑을 잘 보여 줄 수 있었다”고 웃었다.마음이 곧 수로 나타나는 바둑의 세계에서 마음을 흔드는 상대를 만나 마음을 다잡기란 쉽지 않다. 오유진이 “너무 많은 패배를 해서 더 느낄 감정이 없을 정도였다”면서 “중학생 때부터 같은 도장에 있었고 기숙사도 같아 정말 친했는데, 자꾸 지다 보니까 ‘친하게 지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별생각을 다 했다”고 털어놨을 정도로 최정은 어려운 상대였다.
그러나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감정은 오히려 오유진을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었다. 오유진은 “대결할 때 긴장하고 흥분해서 결정적인 실수가 나왔었는데 이번엔 마음 훈련을 계속한 덕분에 마음이 단단해졌고, 계속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바둑을 뒀다”고 말했다.
최정에게 막혀 2016년 궁륭산배 우승을 끝으로 성장이 멈췄다고 평가받은 오유진은 이번 우승을 계기로 한 단계 성장할 미래를 그렸다. 국수전 우승으로 9단으로 특별 승단한 그는 “맥심배가 9단만 나갈 수 있는데 거기 나갈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지금이 전성기 아니냐고 하는데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랭킹 50위 안에 들고 싶고 오청원배는 물론 삼성화재배, 맥심배, LG배까지 다 욕심난다”는 말로 포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