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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朴玉閏(조선대 명예교수)씨 상배 桓永(광주은행 화순지점장)晉永(광주 박치과 원장)씨 모친상 丁薰(서울시립 한남직업전문학교장)高正雲(군산 고피부과 원장)安秉烘(여수 안소아과 원장)申誠植(전남대 수의대 교수)씨 빙모상 19일 오후 8시30분 광주 조선대병원,발인 22일 오전 10시 (062)231-8903 ●徐英明(전 KBS LA특파원)씨 별세 寅竣(대한항공 한국지역 서비스센터 직원)秀卿(AP통신 서울지국 TV NEWS 프로듀서)씨 부친상 金孝相(자영업)千榮峻(엑센츄어 서울오피스 과장)씨 빙부상 20일 오전 2시45분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5시 (02)760-2018 ●延重熙(청주시 흥덕구청장)德熙(청주동부경찰서 공항파출소장)씨 부친상 20일 오전 2시30분 충북 청주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43)223-4522 ●張鎬相(자영업)翼相(연합뉴스 스포츠레저부장)德相(자영업)俊相(〃)씨 부친상 朴尙圭(애니텍스상사 대표)씨 빙부상 20일 오전 7시30분 대전 을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11-9821-5677 ●郭性勳(전 LG증권 감사실장)性竹(구로구약사회 감사)性仲(강동한국학원장)喜周(비금농협 감사)씨 부친상 丁海善(수원시 가톨릭약국 대표)씨 빙부상 20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1시 (02)3010-2294 ●李炳星(유창케미컬 대표)炳勳(조선일보 사진부 기자)炳舜(경기대 사회교육원 주임교수)씨 모친상 秦元錫(전 서라벌고 교사)全演旭(전 정원물산 대표)金東顯(항공데이타시스템 대표)씨 빙모상 20일 오전 1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5 ●金英在(진환운수 부장)씨 모친상 19일 오후 7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9 ●金完洙(전주 북부경찰서 경무과 공보담당)씨 부친상 20일 낮 12시 전북 부안장례식장,발인 22일 오전 10시 (063)581-8008 ●任興宰(정읍치과 원장)康宰(자영업)貴燁(안양시 제일방사선과 원장)씨 부친상 金吉洙(서울 길성의원 원장)朴鍾仁(자영업)姜大錫(서울고검 검사)金鍾淳(수성엔지니어링 이사)씨 빙부상 20일 오전 10시15분 전북 정읍시 수성동 자택,발인 22일 오전 10시 (063)535-3047 ●鄭相胤(명신비료 차장)相道(국제신문 생활과학부 차장)씨 조모상 20일 오전 5시 울산 중구 복산동 인산병원,발인 22일 오전 6시 (052)290-6411 ●吳奉錫(전남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씨 부친상 張治琬(서울 한산중 교감)씨 빙부상 20일 오후 4시 광주 전남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30분 (062)220-6983 ●권동영(김&장 법률사무소 공인회계사)인열(한국신용평가 연구원)씨 부친상 20일 0시5분 경북 안동시 북문동 안동의료원,발인 22일 오전 대전국립묘지 (054)851-5441 ●서재경(대한항공 수석사무장)태경(MBC 스포츠영상부 부장)씨 부친상 한중수(㈜래지스가드 상무)박종덕(SBS 미술부장)씨 빙부상 20일 오후 8시15분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02)760-2020
  • 지난달 30일 문 연 대전 을지대학병원 하권익 원장

    “그동안 대전이나 충남·북 등 중부권 지역의 많은 환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로 갔지만 앞으로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국내 스포츠의학계의 개척자로 알려진 하권익(64) 박사는 ‘병원 전문경영인’으로 유명하다.삼성서울병원의 2,3대 병원장을 연임하면서 400억원 적자의 재정구조를 단번에 흑자로 돌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중부권 최대의 을지대학병원장(둔산)을 맡으면서 ‘의료 지방화 시대’라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었다.의료계 안팎에서도 그의 출발을 놓고 의료계의 수도권 편중 현상을 어느 정도 해소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전체 면적 3만평에 1053병상의 시설로 중부권에선 최대 규모라는 상징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 원장은 “삼성서울병원 재직 당시 환자 통계를 내보면 90% 정도는 지역에서 치료가 가능한 환자였다.”며 “을지대학병원이 이같은 의료 편중화를 막고 지방화를 여는 선봉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프랑스와 스위스처럼 도시특화 전략의 개념으로 병원과 온천을 적절히 연계한 ‘온천병원호텔’ 프로그램을 실현할 계획”이라면서 국내 의료시장에서 ‘허브 도시화’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즉,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생겨날 ‘의료특구’를 의미한다. 하 원장은 이를 위해 의료진도 국내최고 수준으로 구성했다.뇌수술 분야의 김한규(고신대),폐·식도암 분야의 김길동(연세대),핵의학 분야의 양승오(울산의대) 교수 등을 초빙했다.뿐만 아니라 ‘페트시티(PET-CT)’나 사이클로트론,선형가속기 같은 초고가의 의료장비도 갖췄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검사 결과 등 의학정보를 디지털로 전달하는 PACS시스템이나 자동처방전전달시스템(OCS) 등 진료체계를 완전 디지털화함으로써 환자들의 편의성을 최대한 높였다고 자랑했다.또한 300여억원을 들인 국내 최첨단 암센터가 곧 들어설 예정이라고 했다.이밖에 골관절센터,척추센터,뇌신경 정신센터,소화기센터,심폐센터,불임 및 폐경기연구센터,모자보건센터 등 7개의 특성화 센터를 개설,진료-검사-결과확인 과정을 ‘원스톱’으로 서비스할 예정이란다. 하 원장은 196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74년 이 대학에서 의학박사(정형외과) 학위를 받았다.2년 동안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74년 대한배구협회 팀닥터를 맡으면서 우리나라 스포츠의학계를 이끌어왔다.이후 82년부터 연속 3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단 책임의무요원,LA와 서울올림픽 국가대표단 책임의무요원을 맡았다.또 대한스포츠의학회장·골절학회장·관절학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세계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즈 후’에 2차례 등재되는 등 세계 의학계에도 명성이 알려졌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이라크전 이끈 ‘네오콘’ 퇴조하나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면서 그 원인과 해법을 둘러싸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반(反) 부시 대통령 진영의 입장 차가 더 명확해지고 있다.이 가운데 이라크전을 주도했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는 힘을 잃고 있고 현실주의자들이 힘을 얻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이라크에서 부상한 군인들을 수용한 병원으로 떠나기 전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은 이라크에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라크에 정권을 넘기는 6월30일이 다가옴에 따라 저항세력들이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현 상태를 평가했다.따라서 미군의 통제력을 이라크인들에게 확인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 부시 진영,특히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뚜렷한 재건계획 없이 이라크전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현재의 어려움은 국제사회의 지지없이 일방적으로 행동한 대가라는 시각이다. 입장차에도 불구,이라크 상황이 심각하다는 현실인식은 똑같다.따라서 중동을 압제에서 구원하겠다는 메시아적 시각으로 이라크전을 주도한 네오콘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라크전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 자문위원은 얼마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외부로부터의 무력에 의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변화된 입장을 보였다.네오콘 대변지인 위클리스탠더드의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도 자신의 시각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대신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브랜트 스코크로프트 전 보좌관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딕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주요 상담자로 등장하고 있다.두 사람은 이념보다는 미국의 이익이 중요하다는 현실주의자라고 미국 민간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맨 연구원이 평가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우리 꽃 따라 30년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

    설악산 한계령 고갯마루,오전 11시.따뜻한 아침 햇살에 데워진 용담꽃이 천천히 봉오리를 연다.그러자,붓끝처럼 뾰족이 말린 자주색 꽃봉오리 안에서 커다란 호박벌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용담꽃이 매일 오후 2시쯤 꽃잎을 닫고 다음날 오전 11시쯤 봉오리를 여는 생태를 이용한 ‘얌체투숙객’이다. 그러나 용담꽃에 이보다 더 고마운 손님은 없단다.김태정(金泰正·62) 한국야생화연구소장은 “용담꽃은 수술과 암술이 길쭉한 몸통 안쪽 깊이 있어서 ‘밤손님’인 호박벌이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전해주지 않으면 수정이 불가능하다.”면서 “나 역시 그 호박벌처럼 우리 들꽃과 사람들 사이의 인연을 맺어주는 중매쟁이로 살고 싶다.”며 웃었다. ●목숨살린 이름모를 열매 찾으려 시작 그는 ‘국졸’이면서 ‘박사’다.‘걸어다니는 식물도감’ 김태정 소장은 학계에서도 “현장답사 경험만 놓고 보면 어떤 학자도 따르지 못한다.”고 한수 접어주는 인물.1971년부터 우리 들꽃을 카메라에 담고자 산과 들을 헤매고 다녔으니 벌써 30년이 넘는다.남녘끝 한라산에서 태백산 설악산 거문도 독도 백령도까지 휴전선 남쪽 땅은 밟아보지 않은 데가 거의 없단다.정부나 언론사가 민통선이나 휴전선,백두산 등지를 현장답사할 때면 으레 그에게 참가 요청 또는 문의가 들어온다. ‘한국의 자원식물’(전5권) 등 그동안 쓴 관련 서적이 60여권이고,찍은 사진도 100만컷을 넘는다.그 필름을 연결한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3번은 왕복할 양이다.이 사진자료들은 학계에서 식물도감 등을 만들 때 고스란히 사용되는 귀중한 자료다.지난 84년에는 LA국제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관련책 60여권·찍은 사진 100만컷 김 소장과 우리 들꽃과의 인연은 18세 때인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6세 때부터 앓던 간염이 악화해 당시 김 소장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서울 큰 병원에서도 고개를 내저을 때,그가 마지막으로 매달린 것은 미심쩍은 민간처방이다.한동네 할아버지가 전해준 이름모를 열매를 복용하자 병은 일주일 만에 나았다.완치의 기쁨도 기쁨이었지만,그 힘든 병을 조그만 열매 하나가 간단히 고쳤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김 소장은 이후 롯데 ‘고구마깡’ CM송 등 CM송 작곡가로 활동하면서도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했다.결국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우리 들꽃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 열매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지요.그러나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제 자리에 꿋꿋하게 핀 소담스러운 들꽃들을 보다가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웃음)” ●야생화 찍느라 왼쪽눈 머는 것도 몰라 작고한 송주택 전 전북대 농대 식물분류학 교수를 스승으로 모신 김 소장은 밤에는 개인강의를 듣고,낮에는 산속을 누비고 다녔다.“스스로 좋아서 미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적어도 3대의 카메라에 필름 100여통,침구·취사도구 등 30㎏에 이르는 장비를 짊어지고 길도 없는 들과 산을 며칠씩 헤매고 다녔다.“한창때는 일주일에 네댓새를 현장에서 살았습니다.3월부터 10월까지는 주로 산에,나머지 겨울철 4개월 동안은 남녘 섬에 가지요.” 암벽에 핀 꽃을 찍으려다 추락해 다리를 다쳐도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외롭고 힘든 일이다.“그래도 이산 가면 더 좋은 꽃이 있고 저산 가면 더더욱 좋은 꽃이 반기는데 어쩝니까.집에 하도 안 들어가다 보니 나중에는 아이들 얼굴도 생경해졌지요.그래도 별 수 없어요.속된 말로 마누라 도망가는 것 무서우면 이짓 못합니다.(웃음)” 김 소장이 우리 산들을 돌아다니며 찍은 필름 가운데 지금 남은 것만 100만여컷.하루에 평균 1000컷은 찍었단다.“나중에는 종로세무서에서 ‘무슨 필름을 이렇게 많이 쓰느냐.탈세수법 아니냐.’며 조사나온 적도 있지요.” 필름값뿐만 아니라 20대도 넘게 부서뜨린 촬영용 카메라,여행경비 등으로 빚도 많이 졌다.“지금껏 쓴 돈을 합하면 집 두세 채는 거뜬히 살 수 있을 겁니다.80년대 후반에 인세 등으로 생활이 조금 피기 전까지는 빚쟁이 피해 다니느라고 고생 많이 했지요.” 그러나 현장에 나가 꽃만 보면 모든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졌다.“산에 가면 잡념이 사라집니다.그럴 틈이 없어요.대부분의 꽃 촬영은 아침 한때 승부입니다.그 시간에는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합니다.다른 사람들도 ‘저이와 같이 현장 나가면 점심은 당연히 굶고 빨치산처럼 산만 타야 한다.’고 꺼리더군요.” 김 소장은 촬영에 너무 열중하다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87년 민통선 북방지역 종합학술조사단에 참가했을 때였습니다.직사광선 속에서 모자도 안 쓰고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다가 땀이 너무 많이 눈에 흘러들었나 봅니다.현재 왼쪽 눈은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그래도 카메라는 오른쪽 눈으로 찍으니 별 상관없잖아요?” ●미친듯 산속 누비고 다녀 ‘빨치산’ 호칭 그에게는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다.제 일을 누군가에게 물려줘야 할 텐데 아직 적임자를 찾지 못한 것.의욕적으로 덤비던 사람도 김 소장과 함께 3일만 현장 생활을 겪고 나면 도망가기 일쑤란다.“들꽃도 생명인지라 시시각각 변해요.내 뒤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찍어서 남겨야 하는데….”우리 식물이,번식력도 강하고 병충해에 강한 외국산에 밀려 점차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모두들 조금만 더 우리꽃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굳이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제발 꺾거나 밟지는 마세요.꽃이 꽃으로 피는 이유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어떻게든 자손을 이으려고 그렇게 고생하는,우리와 같은 생명체입니다.” 김 소장은 오는 18일부터 7월 중순까지 전국 초·중·고 교사들이 주로 참여하는 300명 규모의 ‘우리들꽃사랑 가족교실’을 준비중이다. “애정을 가지려면 먼저 관심을 가져야지요.이름부터 알고 어떤 꽃인지를 알고….그것을 조금이라도 돕는 것이 제 일입니다.내 발로 돌아다닐 수 있는 한 이 중매쟁이 노릇을 계속할 겁니다.” 글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 약력 1942년 충남 부여 출생 55년 부여 양화초등학교 졸업 71년 한국야생화연구소 설립 84년 LA국제대학 명예박사 85년 제10회 서울시발전상 은상(서울시) 87년 민통선 북방지역 자연생태 학술조사단 참가 88년 서해 외연열도 자연실태 학술조사단 참가 89년 영광 안마군도 자연생태 학술조사단 참가 90년 스포츠서울 백두산 야생화 학술탐사단 단장 90∼91년 서울신문·스포츠서울 국토종단 야생화 대탐사단장 91년 제9회 과학기술도서상 저술부문 수상(과기처장관·출판문화협),제19회 세계환경의날 환경보존 유공포상(국무총리상-환경처) 97년 제37회 한국출판문화상 사진부문 수상(한국일보),MBC 대학생 백두산 자연생태 탐사단장 2000년 환경보전 표창(환경부장관),환경부 환경홍보사절 위촉 01년 KBS 북한지역 백두고원 탐사단 ˝
  • [삶과 경영 이야기 ④] 삼성생명 23년연속 ‘보험왕’ 송정희 팀장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힘든 게 비즈니스 세계의 현실이다.23년 연속 보험왕 수성(守城)과 14년 연속 100만달러 판매기록 유지는 그래서 더 빛난다.송정희 팀장은 “아무리 높이 쌓은 탑도 단 한번의 방심에 무너져 내린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평범한 전업주부에서 최고의 보험세일즈맨이 되기까지 지독한 자기수련과 자기최면 등 험난했던 과정을 들어봤다. ●‘사모님’에서 ‘보험아줌마’로 -1980년 1월은 정말 추웠다.남편 사업(건축업)이 폭삭 망했다.남부럽지 않던 48평 큰 집에서 3평 남짓 월 3만원짜리 단칸 사글세 방으로 내려앉았다.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은 평생 일해도 못갚을 것 같았다.죽을 결심도 해봤지만 그러기엔 여덟살과 여섯살 난 아이들이 가여웠다. -쌀 한 톨이 아쉽던 때,현실은 절망에 취해 있을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이웃의 권유로 보험을 시작했다.그해 2월이었다.우선 발이 넓었던 남편 친구들과 친척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다.난생 처음 내 손으로 번 돈이었다.액수에 상관없이 너무 기뻐 잠자리에서 몰래 1000원짜리 돈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2개월째 들면서 “돈버는 게 별 것 아니구나.”하는 우쭐한 생각까지 들었다.하지만 그것은 자만이었다.보험을 부탁할 친구와 친척들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3개월째로 접어들자 더 이상은 문 두드릴 데가 없었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이 시작됐다.문제는 내 속에 있었다.납입기간이 길고 끝까지 돈을 부어야 하고,해약하면 큰 손해를 보는 상품들.나라면 이런 상품에 선뜻 가입할까.그런 상품을 왜 들어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대답은 ‘노(No)’였다.“보험계약 한 건 하면 수당이 얼마냐.”고 묻는 고객에게 “그런 거 계산할 줄도 모르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고 쌀쌀맞게 대꾸하던 나였다.알량한 자존심.그때까지도 내 안의 나는 ‘사장부인’이었지 ‘보험아줌마’가 아니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청량리부터 제기동,동대문을 거쳐 종로5가까지 그냥 걸었다.다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인데,왜 나는 사람들 만나기가 두려운 걸까.작은 수첩을 샀다.청량리와 종로5가 사이에 있는 모든 상점의 이름들을 적어갔다.한 번 방문할 때마다 ‘바를 정(正)’을 한 획씩 그어나갈 심산이었다.한 상점에 正자 두 개씩 10번을 채우자는 목표였다. -“개시도 하기 전에 아침부터 재수없게 보험쟁이가 왔느냐.” 처음 들어간 청량리의 한 약국에서 나는 약사의 욕설과 함께 물벼락을 맞는 기가 막힌 봉변을 당했다.시계를 봤다.오전 10시였다.열정만 있었지 전략이 없었다.그때부터 방문시간을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맞췄다.오전에는 방문대상의 성향을 파악하고 실제 방문은 오후 1시에 시작했다.오뉴월 땡볕은 온몸을 때렸다.부르트고 물집 잡힌 발은 감각이 없었다.불과 몇달 전의 ‘사모님’은 흔적도 없었다.열흘째 되던 날,아홉번째 방문했던 식당주인 아주머니가 “눈빛이 선해 보인다.”며 보험을 들어줬다.첫 수확이었다.자신감이 붙었다.동대문∼종로5가 상점이름 옆에는 더욱 빠르게 ‘正’자가 쌓여갔다. -월 보험료 1만 2500원을 받기 위해 7∼8시간 걸리는 지방까지 다니기도 했다.81년에는 군부대 지역인 경기도 연천군 대광리에 수금하러 갔다가 갑작스러운 군작전으로 통행이 금지됐다.날은 어둑어둑해지는데 아이들과 남편은 어떻게 하나.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었다.용기를 내어 이장 아주머니를 찾아갔다.집집마다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스무 집을 방문해 여섯 건의 보험계약을 따냈다.하지만 신출내기 보험사원을 더 기쁘게 한 것은 ‘용기’라는 선물이었다. -이듬해 초에 신입직원에게만 주는 영업사원상을 탔다.그런데 3등이었다.억울했다.누구보다도 많이 뛰었는데.“왜 내가 1등이 아니냐.”고 선배에게 따졌다.그는 부잣집 딸들은 노력을 안해도 된다고 했다.‘나의 환경이 안 좋으니까,스스로 좋은 환경을 만들도록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게으른 사람은 돈 만지려고 해선 안된다.”는 어릴 적 아버지 말씀을 되새겼다.주말에도 출근했다.나의 월요일 실적은 남들과 비교가 안됐다.통상 월요일은 주말에 쉬는 탓에 계약실적이 떨어진다.실컷 놀고서 다른 사람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가봐야 얻을 것은 허탈함밖에 없다. -약속장소에는 반드시 10분 일찍 나갔다.상대방이 나를 기다리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후 대화에서 엄청난 손해를 본다.출근시간도 마찬가지다.당시 보험설계사들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나왔지만 나는 오전 8시 이전에 회사에 도착해 그날 할 일을 챙겼다.한때 동료들은 나를 ‘버스 차장’이라고 불렀다.서울시내 버스노선을 모두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고객을 방문할 때마다 나에게 몇번 버스를 타야 되느냐고 묻곤 했다.나는 고객들의 전화번호도 다 외웠다.자나 깨나,앉으나 누우나 오직 고객 생각뿐이었으니 안 외워지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투자도 적지않이 했다.제주산 갈치를 고객 가정으로 배달시켰고,때가 되면 인절미를 맞춰 보냈다.이러한 노력 덕분에 한꺼번에 120억원(보험료)짜리 계약을 성사시킨 적도 있다. ●“내 보험 들어야 당신 빚 갚는다” -생각을 바꾸면 모든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 수 있다.84년 어느날 퇴근을 했더니 집안이 온통 빨간 딱지투성이였다.살림이 좀 펴지자 사업을 재개한 남편이 다시 약속어음을 남발,차압이 들어온 것이었다.4년 전 아픈 기억이 떠오르며 왈칵 눈물이 솟았다.빚쟁이들을 만났다.“당신이 나에게 보험을 들어야 내가 당신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목 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병원을 내 텃밭으로 삼았다.의사와 간호사,심지어 옆 침대 환자까지 고객으로 만들었다.병원에 있는 한 달 동안 72건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부자는 부자를 몰고 다닌다.고객 한 명을 잡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개를 받는다.처음 VIP 고객 한 사람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만 두 번째는 쉬워지고 세 번째는 더 쉬워진다.한 사람에게 신뢰를 얻으면,그 사람이 협력자가 돼 또 다른 VIP 고객을 소개해 주기 때문이다.계약액도 크다.돈 2000원 내는 사람은 어렵게 내지만,3만원 내는 사람은 쉽게 낸다. -98년 외환위기 때였다.한 건물임대업자가 입주자들이 빠져나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그에게 “회장님,제가 입주자들을 몰아오겠습니다.하지만 제 보험을 큰 걸로 하나 들어주셔야 합니다.” 나는 고객 리스트와 삼성생명 본사를 총동원해 사무실이 필요한 사람들을 물색했다.10개층 사무실들이 대부분 채워졌다.임대업자는 고맙다며 무려 1200만원짜리 보험을 계약했다.그는 나를 ‘송팀장’이 아닌 ‘송선생’이라 부른다.“나는 이분 마음 속에서 컨설턴트로서 자격증을 땄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다.다른 고객들도 나를 단순한 ‘보험인’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주택 임대부터 자녀 혼사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의 모든 문제를 상담하러 온다.나 역시 그들과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다. -고객에 대한 친밀감이 전부는 아니다.영업의 통로가 열려야 한다.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상대방이 보험에 가입할 준비가 돼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나는 고객을 만나기 전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시간의 50% 이상을 투자한다.출근한 뒤 1시간 동안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잘 안풀릴 땐 무조건 활동량 늘려 -솔직히 한다고 하는데도 안될 때가 많다.명색이 ‘보험왕’인데 1주일에 한 건도 못할 때가 있다.이럴 때는 무조건 활동량을 늘린다.10건을 뛰어 1건을 성사시켰다면 100건을 뛰면 10건이 성사될 것 아닌가.반면 실패하는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길 꺼린다.대개 전화통을 붙잡는다.하지만 전화야말로 가장 거절받기 좋은 수단이다.내 진심이 상대방 가슴에 꽂히기 전에 끊겨버린다.한때 유명했던 보험왕들이 소리없이 사라져 버리는 가장 큰 이유다.한마디로 현실 안주다.계속 관리해야 할 고객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까. -고객들은 나에게 천사같은 존재다.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고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나는 송정희라는 이름 석자를 하나의 주식회사로 시장에 올리고 싶다.매일매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업그레이드되는 나 자신을 보고 싶다.객관적인 자료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내 자신의 주가가 올라가는 기쁨과 주가가 내려갈 때의 공포스러운 긴장감을 함께 느끼고 싶다. ■ 송정희 팀장은 송정희(宋貞姬·57)씨는 삼성생명은 물론 삼성그룹 내에서도 기록제조기로 통한다.우선 국내에 한 명뿐인 ‘100만달러 원탁회의(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종신회원이다.연간 보험계약 실적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인 사람들의 전세계 모임인 MDRT는 10년 연속 자격을 유지해야 종신회원이 될 수 있다.송 팀장은 1991년 이후 MDRT 자리를 지켜왔다.80년 보험업에 뛰어든 이후 지난해까지 단 한 차례도 사내 보험왕 타이틀을 놓치지 않은 것 역시 유일하다.올 1월 이건희 삼성 회장으로부터 받은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은 보험 세일즈맨으로 최초일 뿐 아니라 삼성그룹 정식 임직원이 아닌 사람 중에서도 처음이다. 공식직함은 삼성생명 서울 종각지점 수석팀장.현재 그의 고객은 1800명.지난해 300여건의 보험계약을 성사시켰다.연봉은 5억 7000만원.매월 250만원씩 연간 300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고 있다.연봉의 5%가 넘는다.지금까지 받은 2억원가량의 상금도 전액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다.나누고 베푸는 미덕도 지닌 아름다운 ‘철의 여인’이다. 정리 김유영기자 carilips@˝
  • 줄기세포로 심근경색 고친다

    국내 의료진이 줄기세포를 이용한 심근경색 치료법을 개발,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서울대병원 내과 심혈관센터 김효수·이명묵 교수팀은 환자의 몸 속 줄기세포를 이용해 수술 없이 중증의 심근경색증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고 최근 밝혔다. 의료진은 기존 치료법으로는 괴사한 심근의 재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중증 심근경색증 환자 27명에게 ‘백혈구 증식인자(G-CSF)’를 피하주사한 뒤 이 증식인자가 유인한 줄기세포를 간단하게 말초혈액에서 채취,이를 환자의 경색된 심근 부위에 직접 투여하는 방식으로 치료했다. 그 결과 심혈관 조영술 등으로 최근까지 예후가 확인된 환자 11명의 심장 수축기능이 크게 향상됐으며,괴사한 심근 부위의 혈관이 재생돼 미세혈류가 정상 수준으로 개선됨으로써 조깅은 물론 빠른 수영도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밝혔다. 심근경색증은 관상동맥이 막혀 피를 공급받지 못한 심장의 근육이 괴사하는 불치병으로,최근 한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줄기세포를 유인하는 G-CSF는 인체에서 소량 분비되는 백혈구 생성 촉진 단백질로 백혈병이나 빈혈환자 등에게 골수이식을 하거나 화학요법 치료를 할 때 백혈구가 부족할 경우 투여해 왔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저널 ‘랜싯(Lancet)’ 3월호에 게재됐다. 의료팀은 이와 함께 이번 연구 과정에서 말초혈관을 생성하는 줄기세포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단일세포가 아니라 각기 기능이 다른 2종류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규명,향후 허혈성 심장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신생 세포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흉부 절개나 골수 채취 등 기존의 수술적인 줄기세포 이식법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하는 등 이미 미국 등 선진국의 연구 성과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 [세상에 이러일이] 내, 猿참

    사람이 원숭이에게 치이는 곳이 있다.이슬람교를 믿는 방글라데시에서도 서쪽에 위치,회교도의 고향으로 알려진 케샤브푸르가 그곳이다.100년전쯤 원숭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원숭이들끼리 입소문이 도는지 한때는 수천마리가 이 곳에 살기도 했다.지금 원숭이수는 350마리 정도라고 영국 BBC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원숭이와 사람의 동거가 쉬울 리는 없다.한번은 무리를 지배하는 수컷을 마취시켜 마을 외곽의 숲에 갖다 뒀다.다른 원숭이들도 따를 것이라 기대했는데 마취에서 깨어난 수컷은 보무당당하게 돌아왔다. 이들이 좋아하는 곳 중 하나는 먹을 게 많은 부엌 지붕.수십마리의 원숭이는 병원 지붕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환자를 보러 온 사람들이 가져오는 바나나 과자 케이크 등이 이들의 목표물이다.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은 얼굴에 생채기가 나거나 옷이 찢기는 수모도 당한다. 이곳 주민들은 이 긴꼬리 원숭이를 원숭이신인 하누만의 화신으로 여겨 원숭이를 보면 운이 좋은 것이라 여긴다.또 원숭이를 용서할 때마다 원숭이신이 자신들을 용서한다고 생각한다.이들에게 하루 두번씩 바나나와 견과류를 주는 자선단체까지 있으니 원숭이 천국인 셈이다. 전경하기자 lark3@˝
  • 하마스 새 지도자 란티시 ‘무차별 보복’ 선언

    팔레스타인 무장저항단체 하마스의 새 지도자로 23일 뽑힌 압델 아지즈 란티시는 피격된 셰이크 야신의 오른팔로 그보다 강경한 인물로 알려졌다. 야신이 팔레스타인 지역 외에서 이스라엘 공격을 반대한 반면 란티시는 ‘모든 곳’에서의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하마스 지도자들 사이에서 논의됐던 이스라엘과의 잠정 휴전은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타협도 반대한다. 강경한 어조로 연설,하마스 요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 팔레스타인 대중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야신 다음의 2인자로 인식돼 왔다. 반면 야신이 가졌던 정신적 구심점과 카리스마는 없다.야신은 사지마비로 정상적 활동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이었지만 가자지구,요르단강 서안,그리고 해외에 이르기까지 하마스의 다양한 조직과 파벌을 통합해 왔다.란티시는 가자지구만 관할하며 통합 지도자는 시리아로 망명한 칼리드 마샬이다. 란티시의 사상적 배경은 이집트의 이슬람급진운동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다.카이로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 영향을 받았다.그가 야신 등 7명과 함께 만든 하마스의 뿌리도 무슬림형제단이다. 란티시는 1947년 텔아비브 남부 예브나에서 태어났다.48년 이스라엘이 세워지면서 예브나가 이스라엘에 편입돼 그의 가족은 가자지구로 떠났다.18살에 이집트로 건너간 그는 카이로 아인샴스 대학에서 소아과 의사 학위를 받았다.76년 가자지구로 돌아와서는 대학과 병원에서 일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발생한 87년부터 이스라엘 당국에 여러번 체포됐다.92년에는 416명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요원과 함께 레바논으로 추방됐다.이 과정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대변인으로 떠올랐다. 93년 오슬로협정 체결 후 가자지구로 돌아왔으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에 대한 비난으로 종종 팔레스타인 당국에 의해 구금됐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은 자폭테러를 부추기고 지시한다며 란티시 암살을 시도했으나 그를 부상시키는 데 그쳤다. 전경하기자 lark3@˝
  • ‘기업도시’ 가속

    재계가 추진 중인 ‘기업도시’ 건설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도시의 개념을 점차 구체화시키고 있고,정부도 기업도시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방안 마련에 착수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이헌재 부총리는 이와 관련해 ‘획기적인 프로젝트’(Landmark Project)를 마련할 것을 지시했고,논란이 되고 있는 수도권의 기업도시 건설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상태다. 재계는 기업도시가 건설되면 일자리 창출과 함께 경기부양 효과가 기대되고,교육·의료 등 서비스산업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1000만평 규모의 기업도시를 만들면 20만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기업도시 건설이 정부가 아닌,특정기업 주도로 이뤄질 경우 특혜시비가 일 우려가 있고 기업도시 건설에 따른 효과도 검증되지 않아 한차례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기업에 토지수용권까지 부여할 경우 사유재산권 침해 등도 시빗거리가 될 소지가 크다. ●전경련의 기업도시 구상은 전경련이 제시하는 ‘기업도시’는 단순히 기업과 협력업체들이 모여 생산단지를 중심으로 주거,교육,의료,상업 등 도시기능이 부가되는 형태의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기업에 특정지역의 토지수용권을 제공하고 주거,교육,의료 등에 대한 도시계획도 기업이 주도적으로 행사해 부동산 개발이익을 기업이 직접 챙길 수 있도록 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전경련은 기업도시 건설의 주체를 특정 기업 또는 기업들의 컨소시엄 등으로 하되,참여기업에는 배후도시 개발권까지 부여해 토지수용권을 주고 병원·학교 등 각종 공공시설 건설때 일정기간 운영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를 위해 건설산업연구원에 용역을 준 상태다. 이와 관련,전경련 현명관 부회장은 “도요타 자동차공장이 있는 일본 도요타시(市)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경련 강신호 회장은 “삼성이 기업도시에 관심이 많고,LG전자도 파주에서 필립스와 손잡고 전자타운을 만들고 있다.”며 “이같은 형태를 좀 더 발전시켜 나가면 기업도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G 파주와 삼성 탕정단지는 기업도시 전단계 LG필립스LCD는 100만평 규모의 파주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산업단지 조성에 착수했다.파주 LCD 산업단지는 LG필립스LCD의 7세대 생산라인이 들어설 50만평에 경기도가 국내외 협력업체들을 위해 별도로 50만평을 조성,총 100만평 규모로 조성되는 세계 최대의 디스플레이 산업 클러스터(중심지역)다.LG필립스LCD는 이곳에 향후 10년간 25조원을 투자하며,단지조성이 끝나면 2만 5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삼성전자는 최근 충남 아산시 탕정면 61만평 부지에 건설 중인 4개 LCD 생산라인에 이어 인근 100만평 부지에 LCD 라인 2개를 추가로 건설,최대 160만평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LCD복합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정부 방침은 정부는 재계가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는 것과 별도로 선진국들의 사례를 집중 연구 중이다.재계가 법적·제도적 개선을 요구해 온다면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올 상반기까지 전국의 ‘토지규제 개혁 로드맵’이 마련되고,올 9월부터 지역특구발전법이 시행되는 만큼 토지수용권 확대,학교·병원 설립 등 기업도시 건설에 따른 현행 법체계상의 한계는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특히 지역특구내의 학교 설립권한도 광역 시·도 교육감에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지자체와의 협의에 따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부동산 개발수요가 많은 지역에 기업도시를 허용할 경우 개발이익이 고스란히 특정 기업 또는 참여기업들에 돌아가고,토지수용권까지 부여할 경우 개인소유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의 토지수용권 확대,각종 토지규제,도로·철도 등 인프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가 기업도시 건설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철 김경운기자 bcjoo@seoul.co.kr˝
  • 타이완 野지지자 “부정선거” 시위

    타이완 전체가 20일 치러진 총통선거로 양분됐다.선거 결과에 불복,야당인 국민당 지지자 수천명은 21일 총통 관저 앞에서 재개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재선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국민들에게 자제를 촉구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관측통들은 이번 선거로 타이완 사회가 여·야 지지자간,대륙·타이완 출신간 사이가 더 벌어지고 갈등도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시위대·경찰 곳곳 충돌 야당인 국민당 롄잔(連戰) 후보는 21일 타이베이 총통부 앞 광장에서 열린 부정선거 규탄 항의 집회에 참석,재검표와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저격사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라고 요구했다.20일 밤 철야시위에 이어 이틀째다.총통부 경호실과 경찰 당국은 바리케이드로 통제선을 설치,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롄 후보의 러닝메이트인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후보도 집회에 참석해 부정선거를 규탄했다.전국의 국민·친민당 지지자 1000여명이 이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상경하는 등 항의시위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이날 새벽 제3의 도시인 중부 타이중시 지방검찰청 앞에서는 지지자들이 선거부정 조사를 요구하며 청사 진입을 시도,진압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빚었다.남부 항구도시 가오슝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천 총통,반쪽 승리 무효가 된 33만 7297표는 천 총통이 롄 후보를 누른 2만 9518표의 11배를 넘는 숫자다.무효표가 총 투표수의 2.5%로 지난 2000년 선거에서의 1%를 훨씬 넘는다.또 저격사건이 일어난 타이난은 다른 도시보다 무효표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의혹이 일고 있다. 무효표와 관련,‘100만표 무효연대’가 관심을 끌고 있다.이 단체는 상호비방과 중상모략으로 치닫는 이번 선거에 반대,유권자들에게 투표용지를 손상시키라고 촉구해왔다. 한편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졌으나 과반수 미달로 부결된 국민투표는 타이완의 첫 국민투표였다.야당은 이번 국민투표가 중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불투표 운동을 벌여왔다.최소한 국민투표에서는 야당이 이긴 셈이다.미사일 배치를 통한 국방강화안은 유권자의 45.17%,중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을 하자는 안은 45.12%만 투표했다. ●불복,그 이후 국민당은 26일로 예상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발표 15일 이내에 행정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소송이 접수되면 법원은 심의에 착수하고 법정 공방을 통해 ‘재개표’를 판정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개표가 강행돼도 선거 결과가 뒤바뀔 것으로 보지 않는다.적어도 타이완의 법원 수뇌부는 민진당에서 임명된 사람들인 만큼 여권 지향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봐야 한다.21일 고등법원이 내린 투표함 봉인 명령은 야당 지지자들의 분노를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격사건 수사도 변수다.전문가들은 야당 진영으로 흐르던 선거 판세가 저격사건으로 천 후보에게 동정표가 몰리면서 뒤집혔다고 보고 있다.저격사건이 선거를 10시간 앞두고 일어났고 사건 직후 타이난종합병원이나 청궁대학병원이 아닌 6.5㎞ 떨어진 치메이병원으로 간 점 등이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다. 타이완 보안당국은 키 170㎝의 중년 남성을 용의자로 쫓고 있다.현장에서 발사된 두 발은 각각 구리와 납으로 집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정보제공 대가로 1000만타이완달러(3억 4778만원)를 내놨고 선거에 진 야당 또한 같은 돈을 내걸었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서울 전경하기자 외신 lark3@seoul.co.kr˝
  • 스페인 열차테러 700여명 사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1일(현지시간) 출근시간대 세 군데 역에서 열차 4대를 겨냥한 동시 폭탄테러가 발생,최소 173명이 숨지고 600명 이상이 부상했다.중상자가 많아 사망자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 총리는 사고 직후 긴급내각회의를 소집,3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14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각 정당들은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스페인 정부는 이번 테러가 바스크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에 의한 것이라며 ETA를 “살인자들의 범죄집단”이라고 비난했고,12일 전국적 규모의 반(反)ETA 집회를 열기로 했다.ETA는 이를 즉각 부인했다.ETA와 연계된 바스크당은 “이번 테러는 ETA와 관련이 없다.”고 반박한 뒤 “아랍 저항세력”이 테러에 책임이 있음을 시사했다고 현지 통신 EFE가 보도했다. 스페인 정부는 이번 테러를 ETA에 의한 최악의 테러로 규정했다.스페인 경찰은 총선을 앞두고 ETA의 테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치안을 강화해왔다.지난 1987년 바르셀로나 슈퍼마켓에서 일어난 테러로 21명이 사망하는 등 60년대 이후 ETA의 테러로 인해 스페인 경찰과 바스크 분리독립을 반대하는 정치인 등 8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에 의해 강제 합병된 바스크족은 75년 프랑코 사망과 함께 자치권을 얻었지만,이후 ETA를 중심으로 독립국가 수립 투쟁을 해오고 있다. 목격자들은 오전 7시30분쯤 아토차역에 통근열차가 진입하는 순간 두 개의 폭탄이 폭발했다고 전했다.사망자는 대부분 통근열차 승객인 것으로 알려졌다.마드리드 중심부에 위치한 아토차역은 지하철 외에도 통근열차와 장거리열차가 출발하는 복합역이다.폭발이 일어난 다른 두 역인 마드리드 외곽의 엘 포조역과 산타 에우게니아역도 아토차역과 같은 통근선상에 있다. 테러를 당한 열차들은 곳곳이 찢겨져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드러냈다.병원들은 헌혈을 요청하고 나섰으며,현장에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사람들과 응급차들이 뒤엉켜 아비규환이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스페인 정부의 비난에도 불구,테러에 앞서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던 ETA가 이번에는 경고를 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다른 테러단체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한편 유럽 각국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등은 이날 테러 규탄과 희생자 추모의 메시지를 스페인측에 전달했다. 전경하기자 외신 lark3@˝
  • [발언대] ‘랑그’적 사고와 ‘파롤’적 사고/김명한 전주보훈지청 보훈과장

    연극이나 영화 등 대중매체를 비평할 때 기호학적 비평의 기법으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의 방법이 있다.나타난 그대로 일상생활을 표현한 것이 랑그이며,전혀 엉뚱한 표현이 파롤이다.즉 양식집에서 양주나 돈가스를 주문하는 것은 랑그적 표현이나,양식집에서 막걸리나 순두부찌개를 주문하는 것은 파롤적 표현이다.부모나 기성세대들은 파롤적 표현보다 랑그적 표현을 중시하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이를 강조한다.그러나 파롤적 표현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날 수 있다며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목소리가 전선을 타고 전달되는 전화를 발명한 벨 등은 평범한 사람이 느끼지 못한 의문점에서 시작해 인류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분들이다.바로 이러한 분들의 창조력이 랑그적 사고보다는,약간 현실에서 일탈한 파롤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최근 우리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다.한 영화를 100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면 국민 4명중 1명이 봤다는 계산이 나오며,영·유·노약자를 제외하면 성인 2∼3명중 1명이 관람했다는 결론이 나온다.대단한 성과여서 우리도 이제는 문화국민으로서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국은 자국의 우월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할리우드 영화 제작진에게 거액을 투자,영상매체를 통해 ‘팍스 아메리카나’문화를 수출하고 ‘세계경찰’이라는 역할 수행에 거부반응을 없앴다.일본은 애니메이션으로 ‘국수주의’와 ‘군국주의’문화를 은연중에 자국민에게 심어줌은 물론 세계에 ‘예스 재팬’문화를 수출한다.이를 볼 때 영상매체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다. 그러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단순히 애국이나 반공,나라사랑을 주제로 랑그적 표현을 하였다면 이러한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다만 이 영화와 관련해 우리 현실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는 있다. 남북간에 경협 등 화해무드가 조성되고는 있지만 엄연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어,휴전선에는 지금도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춥고 어두운 밤을 뜬눈으로 밝히는 군인들이 있다.또 6·25 당시 입은 상흔으로 50년 넘게 병원에서 신음하는 상이용사가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태극기‘를 보면서 단순히 파롤적 표현만을 볼 것이 아니라,한단계 더 나아가 ‘파롤의 파롤적’사고로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를 있게 한 전상용사와 참전용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자. 김명한 전주보훈지청 보훈과장˝
  • [인사]

    ■ 통일부 ◇4급전보△통일정책실 평화협력담당관 郭柄采 ▲공보관실 李相旻 ■ 행정자치부 ◇이사관 전보△정부청사관리소장 李炯求△한국행정연구원 黃寅秀◇부이사관 전보△대전청사관리소장 劉正基 ■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심의관 유영국△학교정책기획팀장 이경복△학교정책과장 김영윤△국가전문행정연수원 교육행정연수부 과장 손칠호△광주 쌍령중 교장 구강회△남양주 진건중 〃 석윤균△분당중 〃 최길시△전북교육청 교장 손준기△부산기계공고 교장 주삼남△전북기계공고 〃 박농순△강원도교육청 유치원장 신정숙△학교정책과 장학관 성기옥△교육과정정책과 〃 류연수△인천시교육청 실업교육담당 장학관 김동원△학교정책과 교육연구관 전병식 송석원△교원복지담당관실 〃 신병찬△교육과정정책과 〃 김라경△정책분석과 〃 김인숙△국제교육진흥원 〃 김명식△유아교육지원과 〃 권옥자△교육과정정책과 〃 박은영△학교정책과 〃 김차진△감사관실 〃 금용한△국가전문행정연수원 〃 이해룡△학교정책과 〃 김학일△공보관실 〃 권혁운△청량고 교감 서성진△직업교육정책과 교육연구사 송달용△감사관실 〃 김진태△학교정책과 〃 조철수△교원양성연수과 〃 김승오△교육과정정책과 〃 박종은△주 사우디아라비아 젯다한국학교 〃 김현진△교육과정정책과 〃 김순주△전북기계공고 교감 한송호△인천해사고 〃 이강복 ■ 헌법재판소 ◇임용△헌법연구관 鄭柱白 ■ 특허청 ◇서기관 승진△인력관리담당관실 金是亨△전기심사담당관실 鄭城泰 ■ 기상청 ◇국장급 임용△정보화관리관 李浣鎬 ■ 부산일보 △편집국장 朴炳坤△광고국장 朴昌浩 ■ CBS △경영본부장 겸 광고사업국장(상무) 金恒鎭△기획조정실장 겸 총무국장(상무) 趙榮勳△선교국장 朴大勝△창사50주년기념사업단장 겸 공연기획팀장 韓龍吉△편성국 방송위원 李泳宣△광주방송본부장 겸 전북방송본부장 魯炳裕△대전방송본부장 겸 청주방송본부장 趙春澤△영동방송본부장 겸 보도제작국장 尹基和△울산방송본부장 張昇哲 ■ 일간스포츠 △매거진본부 취재팀장 고강훈△매거진본부 편집팀장 김용진△편집국 정치사회부 정치팀장 정덕상△광고국 영업2부 부장 김지남 ■ 충북대 △대학원장 안길상△생활과학대학장 김영희△수의과학대학장 장종구△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장 박병우△사범대 부설 중등교육연수원장 양기석△교육개발연구소장 박재승△생활과학연구소장 김기남△정보기술·경영연구원장 이기영△국책대학추진사업실무단장 김영철 ■ 한국방송통신대 ◇지역대학장△서울제1 徐廷基△대구·경북 李東國△광주·전남 李亨根△대전·충남 白在旭△울산 鄭賢淑△경남 金鍾震 ■ 나사렛대 △교목실장 李會能△대외협력〃 姜三榮△대외협력단장 金俊淵△기획처장 金性源△입시홍보〃 李泫求△생활관장 李會能△신문방송실장 金俊淵△외국어교육원장 金京玲△나사렛학술〃 黃馥鮮△잠재력개발센터장 金善愛△재활공학·생활체육연구소장 金鍾忍△자립통합생활·진로직업개발〃 吳世哲 ■ 인하대 △교육대학원장 尹永川△경영〃 鄭在勳△국제통상물류〃 丁文秀△정보통신〃 裵海英△사범대학장 洪得杓△생활과학〃 鄭惠嫄△의과〃 禹濟弘△사무처장 姜福春△입학〃 李埈炯△전산정보원장 趙根植 ■ 동의대 △대학원장 張良守△상경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 盧玄守△영상정보대학원장 겸 방송아카데미소장 韓洙桓△외국어교육원장 權赫建△학생상담센터소장 柳根重△산업기술개발연구소장 겸 산학컨소시엄센터소장 尹泰慶△상경대학 교학부장 朴哲濟△경영대학원 〃 姜柄英△산업디자인학과 학과장 吳龍均△관리1과장 鄭贊朝△식당관리팀장 宋世哲 ■ 금오공대 △교육대학원장 李永淳△컴퓨터공학부장 金永學△인문사회과학〃 趙顯傑△신소재시스템공학〃 閔丙吉 ■ 서울대 △간호대학장 徐文子△생활과학〃 黃仁京△사범대 교무부학장 梁豪煥△〃 학생부학장 全泰源△생활과학대 부학장 朴貞姬△환경대학원 부원장 李榮寅 ■ 연세대 △대학원 교학처 차장 朴泰建△입학관리처 〃 李起虎△총무처 총무〃 李勝彦△〃 관재차장 서리 姜大淑△법무대학원 법과대학 사무과장 李存喆△체육부 체육지원〃 朴天祚△교무처 학적〃 金甲鍾△행정대학원 사무〃 金萬洙△연구처 연구진흥과 산학협력단 사무국〃 尹昌漢△학생복지처 장학복지〃 姜乙基△연구처 연구지원〃 李鍾浩△기획실 예산조정〃 鄭正來△정보통신처 정보통신지원〃 梁殷鳳△언어연구교육원 LA분원장 曺哲鉉△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장 朴敬子△연세교육방송국주간 金弘圭△방사성동위원소관리실장 李泰昊△국가고시정보센터책임교수 白泰昇△언어정보연구원장 李益煥△통일연구원부원장 李殷國△생명과학기술연구원장 金榮敏△단백질네트워크연수센터소장 金有三△생체인식연구센터〃 金在熹△신호처리연구센터소장 洪大植△미디어아트연구〃 朴仁哲△지식정보화연구센터〃 林春成△개인식별연구〃 金鐘悅△중등교육연수원장(원주) 池培善△원주여학생지도교수(원주) 金明苑△매지생활관장(원주) 李正子△성폭력상담소장(원주) 金明苑△생리활성소재연구소장(원주) 尹性植△근대한국학연구소(원주) 鄭顯琦 ■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장 尹鍾健△영어대학장 鄭國△서양어〃 韓國鉉△동양어〃 洪淳男△법과〃 崔完鎭△상경〃 李鍾旭△동유럽학〃 丁炳權△아시아·아프리카학〃 林八龍△경상〃 金政泰△정보산업공과〃 金次星△외국어종합연구센터원장 겸 외국어연수평가원장 吳明根△동유럽·발칸연구소장 朴秀永△법학〃 卞海喆△동남아〃 丁榮林△외국어교육〃 孟柱億△환경과학〃 姜求永 ■ 기능대학 ◇학사운영실장△서울정보기능대학 李壽淵△창원기능대학 崔鶴圭 ■ 속초시 △주민자치과장 姜珉基△상수도사업소장 金龍來△조양동장 직대 黃哲俊△환경보호과장 〃 權純一△자치행정과 漁基亨 張喆洙 金容元 ■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기획조정실장 金銑基△지역정책연구소장 金玄鎬 ■ 대한법률구조공단 △인천지부 구조부장 車美京△청주지부 〃 金炫雅△대구지부 〃 鄭鉉錫△울산지부 〃 安東澈△전주지부 〃 金奉俊△제주지부 〃 金振湳△본부 〃 金貞善△서울중앙지부 구조부장 金容震△〃 구조부 소속변호사 姜承熙 柳道潤△서울남부지부 구조부장 鄭宰旭△서울의정부지부 〃 元智愛△의정부지부고양출장소 〃 李蔓欽 ■ 서울우유 △감사 姜義雄 宋容憲 ■ 서울보증보험 ◇부서장 전보△전략사업팀장 高鉦坤△광주지점장 尹勝煥△CIC지원팀장 金鍾五 ■ 강릉아산병원 △병원장 崔允伯 ■ 을지대병원(둔산) △병원장 河權益
  • [인사]

    ■ 통일부 ◇4급전보△통일정책실 평화협력담당관 郭柄采 ▲공보관실 李相旻 ■ 행정자치부 ◇이사관 전보△정부청사관리소장 李炯求△한국행정연구원 黃寅秀◇부이사관 전보△대전청사관리소장 劉正基 ■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심의관 유영국△학교정책기획팀장 이경복△학교정책과장 김영윤△국가전문행정연수원 교육행정연수부 과장 손칠호△광주 쌍령중 교장 구강회△남양주 진건중 〃 석윤균△분당중 〃 최길시△전북교육청 교장 손준기△부산기계공고 교장 주삼남△전북기계공고 〃 박농순△강원도교육청 유치원장 신정숙△학교정책과 장학관 성기옥△교육과정정책과 〃 류연수△인천시교육청 실업교육담당 장학관 김동원△학교정책과 교육연구관 전병식 송석원△교원복지담당관실 〃 신병찬△교육과정정책과 〃 김라경△정책분석과 〃 김인숙△국제교육진흥원 〃 김명식△유아교육지원과 〃 권옥자△교육과정정책과 〃 박은영△학교정책과 〃 김차진△감사관실 〃 금용한△국가전문행정연수원 〃 이해룡△학교정책과 〃 김학일△공보관실 〃 권혁운△청량고 교감 서성진△직업교육정책과 교육연구사 송달용△감사관실 〃 김진태△학교정책과 〃 조철수△교원양성연수과 〃 김승오△교육과정정책과 〃 박종은△주 사우디아라비아 젯다한국학교 〃 김현진△교육과정정책과 〃 김순주△전북기계공고 교감 한송호△인천해사고 〃 이강복 ■ 헌법재판소 ◇임용△헌법연구관 鄭柱白 ■ 특허청 ◇서기관 승진△인력관리담당관실 金是亨△전기심사담당관실 鄭城泰 ■ 기상청 ◇국장급 임용△정보화관리관 李浣鎬 ■ 부산일보 △편집국장 朴炳坤△광고국장 朴昌浩 ■ CBS △경영본부장 겸 광고사업국장(상무) 金恒鎭△기획조정실장 겸 총무국장(상무) 趙榮勳△선교국장 朴大勝△창사50주년기념사업단장 겸 공연기획팀장 韓龍吉△편성국 방송위원 李泳宣△광주방송본부장 겸 전북방송본부장 魯炳裕△대전방송본부장 겸 청주방송본부장 趙春澤△영동방송본부장 겸 보도제작국장 尹基和△울산방송본부장 張昇哲 ■ 일간스포츠 △매거진본부 취재팀장 고강훈△매거진본부 편집팀장 김용진△편집국 정치사회부 정치팀장 정덕상△광고국 영업2부 부장 김지남 ■ 충북대 △대학원장 안길상△생활과학대학장 김영희△수의과학대학장 장종구△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장 박병우△사범대 부설 중등교육연수원장 양기석△교육개발연구소장 박재승△생활과학연구소장 김기남△정보기술·경영연구원장 이기영△국책대학추진사업실무단장 김영철 ■ 한국방송통신대 ◇지역대학장△서울제1 徐廷基△대구·경북 李東國△광주·전남 李亨根△대전·충남 白在旭△울산 鄭賢淑△경남 金鍾震 ■ 나사렛대 △교목실장 李會能△대외협력〃 姜三榮△대외협력단장 金俊淵△기획처장 金性源△입시홍보〃 李泫求△생활관장 李會能△신문방송실장 金俊淵△외국어교육원장 金京玲△나사렛학술〃 黃馥鮮△잠재력개발센터장 金善愛△재활공학·생활체육연구소장 金鍾忍△자립통합생활·진로직업개발〃 吳世哲 ■ 인하대 △교육대학원장 尹永川△경영〃 鄭在勳△국제통상물류〃 丁文秀△정보통신〃 裵海英△사범대학장 洪得杓△생활과학〃 鄭惠嫄△의과〃 禹濟弘△사무처장 姜福春△입학〃 李埈炯△전산정보원장 趙根植 ■ 동의대 △대학원장 張良守△상경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 盧玄守△영상정보대학원장 겸 방송아카데미소장 韓洙桓△외국어교육원장 權赫建△학생상담센터소장 柳根重△산업기술개발연구소장 겸 산학컨소시엄센터소장 尹泰慶△상경대학 교학부장 朴哲濟△경영대학원 〃 姜柄英△산업디자인학과 학과장 吳龍均△관리1과장 鄭贊朝△식당관리팀장 宋世哲 ■ 금오공대 △교육대학원장 李永淳△컴퓨터공학부장 金永學△인문사회과학〃 趙顯傑△신소재시스템공학〃 閔丙吉 ■ 서울대 △간호대학장 徐文子△생활과학〃 黃仁京△사범대 교무부학장 梁豪煥△〃 학생부학장 全泰源△생활과학대 부학장 朴貞姬△환경대학원 부원장 李榮寅 ■ 연세대 △대학원 교학처 차장 朴泰建△입학관리처 〃 李起虎△총무처 총무〃 李勝彦△〃 관재차장 서리 姜大淑△법무대학원 법과대학 사무과장 李存喆△체육부 체육지원〃 朴天祚△교무처 학적〃 金甲鍾△행정대학원 사무〃 金萬洙△연구처 연구진흥과 산학협력단 사무국〃 尹昌漢△학생복지처 장학복지〃 姜乙基△연구처 연구지원〃 李鍾浩△기획실 예산조정〃 鄭正來△정보통신처 정보통신지원〃 梁殷鳳△언어연구교육원 LA분원장 曺哲鉉△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장 朴敬子△연세교육방송국주간 金弘圭△방사성동위원소관리실장 李泰昊△국가고시정보센터책임교수 白泰昇△언어정보연구원장 李益煥△통일연구원부원장 李殷國△생명과학기술연구원장 金榮敏△단백질네트워크연수센터소장 金有三△생체인식연구센터〃 金在熹△신호처리연구센터소장 洪大植△미디어아트연구〃 朴仁哲△지식정보화연구센터〃 林春成△개인식별연구〃 金鐘悅△중등교육연수원장(원주) 池培善△원주여학생지도교수(원주) 金明苑△매지생활관장(원주) 李正子△성폭력상담소장(원주) 金明苑△생리활성소재연구소장(원주) 尹性植△근대한국학연구소(원주) 鄭顯琦 ■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장 尹鍾健△영어대학장 鄭國△서양어〃 韓國鉉△동양어〃 洪淳男△법과〃 崔完鎭△상경〃 李鍾旭△동유럽학〃 丁炳權△아시아·아프리카학〃 林八龍△경상〃 金政泰△정보산업공과〃 金次星△외국어종합연구센터원장 겸 외국어연수평가원장 吳明根△동유럽·발칸연구소장 朴秀永△법학〃 卞海喆△동남아〃 丁榮林△외국어교육〃 孟柱億△환경과학〃 姜求永 ■ 기능대학 ◇학사운영실장△서울정보기능대학 李壽淵△창원기능대학 崔鶴圭 ■ 속초시 △주민자치과장 姜珉基△상수도사업소장 金龍來△조양동장 직대 黃哲俊△환경보호과장 〃 權純一△자치행정과 漁基亨 張喆洙 金容元 ■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기획조정실장 金銑基△지역정책연구소장 金玄鎬 ■ 대한법률구조공단 △인천지부 구조부장 車美京△청주지부 〃 金炫雅△대구지부 〃 鄭鉉錫△울산지부 〃 安東澈△전주지부 〃 金奉俊△제주지부 〃 金振湳△본부 〃 金貞善△서울중앙지부 구조부장 金容震△〃 구조부 소속변호사 姜承熙 柳道潤△서울남부지부 구조부장 鄭宰旭△서울의정부지부 〃 元智愛△의정부지부고양출장소 〃 李蔓欽 ■ 서울우유 △감사 姜義雄 宋容憲 ■ 서울보증보험 ◇부서장 전보△전략사업팀장 高鉦坤△광주지점장 尹勝煥△CIC지원팀장 金鍾五 ■ 강릉아산병원 △병원장 崔允伯 ■ 을지대병원(둔산) △병원장 河權益
  • 日 진출 ‘발라드 여왕’ 이수영 “일본서도 최고가수 될게요”

    ‘발라드 여왕’ 이수영의 팬들은 한동안 그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올해에는 무대를 일본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오는 4월 선보일 첫 싱글 앨범 준비차 요즘 현해탄을 한강 건너듯 하고 있다는 그는 “몸을 두 개로 쪼개고 싶은 심정”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가수가 쉬고 싶다고 아무 때나 쉴 수 있나요?” 무리한 강행군을 걱정하니 오히려 이렇게 반문한다. 이수영은 소니뮤직과 손잡고 앞으로 2년간 일본에서 3장의 앨범을 낸다.4월에 이어 7월에 두번째 싱글이 나오고 11월에는 정규 앨범이 예정돼 있다.이에 앞서 새달 중순부터는 동남아 7개국을 돌며 쇼케이스를 펼친다.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거듭 다지는 각오에 자신감이 물씬 풍긴다.소니뮤직이 이수영의 독특한 음색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첫 싱글만으로 300억원대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을 정도다. 당분간 국내활동을 접어야만 하는 이수영은 아쉬워하는 팬들을 달래려 두 가지 선물을 마련했다.먼저 1960년부터 90년대까지의 노래들을 묶은 리메이크 앨범 ‘클래식’을 내놓았다.“40∼50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음반을 내고 싶었어요.” 10대 위주의 편향된 우리 가요계에 대한 근심이 묻어나온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배인순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 등 흘러간 히트곡들을 맛깔스럽게 불렀다는 평가다.“예전에는 제 음반을 어른들께 드리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달라요.”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지금까지 15만장 가량이 팔렸는데 침체에 빠진 음반시장에서 이 정도면 이른바 ‘대박’.“원곡을 망쳤다는 소리 들을까봐 걱정스러웠다.”는 그의 염려는 기우로 끝난 셈이다. 새달 7·8일 열리는 아듀콘서트는 이수영의 마지막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그런데 지난 연말에도 콘서트를 하지 않았던가? 이수영은 떠나기 전 “가수 생활을 총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콘서트의 이름 ‘메이드 인 발라드(Made in Balade)’ 그대로 1∼5집에 실린 애절한 발라드의 향연을 펼친다. 조금 늦었지만 연말 시상 건에 대해 물었다.노래 잘하는 가수로 인정받았지만 스타성에 있어서는 항상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다가 벼락처럼 주어진 최고가수상으로 ‘만년 2위’의 설움을 떨쳐냈던 그다.“5집을 낼 무렵 온갖 루머 탓에 너무 힘들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상을 받고 나니 모든 게 눈녹듯이 사라졌죠.” 어림짐작은 했지만 무대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사연이 확실해졌다.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대기실에 앉아 1시간 남짓 눈물을 쏟았단다. “이튿날 바닥까지 떨어진 몸을 가누고 16시간 녹음 작업을 했어요.” 결국 3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그토록 빡빡한 일정을 버텨내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새로운 도전이야말로 그를 지탱하는 ‘포도당’이 아닐까.지금 이수영에겐 ‘병’도 사치로 보인다. 글 박상숙기자 alex@ 사진 조경호기자 ckh@
  • 의사면허 5~10년마다 갱신 醫協 수용 의사

    정부의 의사면허 갱신제 도입 방침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 의사면허 갱신제 도입에 청신호가 켜졌다. 대한의사협회 김세곤 상근부회장은 25일 “의사 재교육은 의사와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만큼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의사면허 갱신제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시험보다는 연수교육이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김 부회장은 대변인도 맡고 있어 그의 발언은 의협 입장으로 봐도 무방하다. 의사면허 갱신제는 의사국가시험에 합격,자격을 취득한 의사들이 일정기간마다 시험이나 연수교육을 통해 면허를 연장하는 제도다.미국·캐나다 등 상당수 선진국들은 의학지식·기술의 발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면허 갱신 방법은 시험과 연수,두 가지가 거론된다.물론 일정요건에 미달하면 면허가 취소 또는 정지된다.현재 의사 수는 8만 1200여명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2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공청회를 열고 5년,10년 등 일정기간마다 시험을 보거나 재교육을 통해 의사면허를 연장하는 ‘면허 갱신제’(re-certification)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선 의사에 한해 면허 갱신제를 도입한 뒤 치과의사,한의사,약사 등 전문의료인 전체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사들을 관리하는 기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있지만,의사들이 청구한 과잉진료비를 삭감하는 등 기본적인 관리에 그치고 있을 뿐 사후관리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그동안 20대 중반에 의사면허를 취득,30세 전후에 전문의 자격을 받으면 평생 아무런 도전 없이 의사자격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의료계 안팎에서 비난 및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운전면허만 해도 일정기간마다 적성검사를 통해 면허를 재발급받는데 반해,하물며 생명을 다루는 의사면허가 평생 통용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컴퓨터 등의 발전에 힘입어 의학기술이 급변하고 있지만,재교육 없이 옛날 의술로만 진료를 하는 것에 대한 의료소비자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의협은 면허 갱신제를 비롯,의사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그러나 갱신제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더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면허 갱신 방법도 시험보다는 연수를 선호하고 있다.물론 의료계는 공정한 평가 잣대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걱정한다. 의사면허 갱신제가 도입되면 진료에는 뒷전인 일부 하위권 의사들과 의료사고를 많이 낸 의사들이 면허 연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료계의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력을 쌓고 있는 대다수 의사들은 별다른 불이익이 없을 것 같다. 김성수기자 sskim@ ■면허갱신제 추진 안팎 1980년대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다.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콩팥에 결핵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명백한 ‘오진(誤診)’이었다.결국 이 병원 의사는 형사입건됐다. 당시 의사는 자신의 의학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진단이 사실로 믿었다고 항변했고,‘허위진단’은 아닌 것으로 간주됐다.하지만 진단결과만 철석같이 믿고 불필요한 치료를 받았던 환자 아닌 환자들은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본 뒤였다. 의사가 새로운 의료지식의 습득은 뒤로 한 채 옛날에 배웠던 의학지식과 기술로만 진료하면,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방증해주는 사건이었다. 이는 의료계 안팎에서 활발하게 논의 중인 의사면허 갱신제(면허연장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사들을 제대로 관리하고,진료수준을 높이려면 면허 발급 후 사후관리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면허만 따면 영원한 의사? 우리나라에서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의사국가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고,여기에 합격하면 의사면허를 받게 된다.의사면허가 있으면 의사로서 모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월급쟁이 의사로 일하는 것도,개업을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의사 개인의 자유다. 20∼30대에 의사면허만 따면 70살이 넘어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의사자격에 대해 아무런 제약이 없다.말 그대로 ‘한번 의사면 영원한 의사’다. 하지만 급속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의학지식과 기술을 제대로 익히려면 의사의 재교육은 필수과제가 된지 이미 오래다.의학지식의 반감기가5년이라는 학설은 구문에 속한다.더구나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직접 다루는 의사들을 단 한번의 국가시험을 통해 면허를 주는 방법만으로 질 관리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의료수준 평가는 못해 의사들도 관련법(의료법)에 따라 지금도 보수교육(재교육)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하지만 교육을 안 받아도 아무런 제재수단이 없어 실효성은 크게 떨어진다. 그나마 의사들을 관리하는 기관으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있지만,의사들이 청구한 과잉진료비를 삭감하는 등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해놓은 정도다.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료행위의 수준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는 기관도 없고,제도도 없다는 게 문제다. 때문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환자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든가,제왕절개를 가장 많이 한다든가 하는 불명예스러운 통계가 양산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증진연구팀 송현종 책임연구원은 “의사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사면허 갱신제는 물론 전문의 시험제도 등 의료제도와 의료인력 재교육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면허갱신,어떻게 하나?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방법은 5년,10년 등 일정 기간마다 시험이나 연수교육을 통해 의사면허를 연장하는 것이다.물론 일정기준에 미달하게 되면,의사면허의 연장은 불가능하다. 보건복지부는 면허갱신제를 의사부터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할 계획이다.방법은 시험보다는 지금과 달리 상당수준의 내용을 갖춘 연수교육을 의무화하는 쪽이 유력하다.시험을 다시 보는 것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서다. 복지부 보건자원과 한익희 서기관은 “의사들에 한해 먼저 면허갱신제를 도입하고 이어 치과의사,한의사,약사 등 전문 의료인 전체로 (이 제도를)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먼저 변해야” 면허갱신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구체안이 논의되고 있다.예컨대 수십년 동안 대학에서 연구만 했던 의사가 개업을 해서 환자를 보려는 경우에는 별도의 시험을 의무화하자는 방안 등이다.‘장롱면허’를 갖고 있는 운전자의 운전능력을 믿을 수 없듯이,환자와 의사 양쪽을 위해 진료능력을 갖췄는지 따져보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의료사고를 많이 낸 의사라면,면허연장제의 기간을 줄여서 의사로서의 능력을 갖췄는지 자주 검증해보거나 또는 별도의 시험을 보도록 의무화하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의학지식만을 평가하는 현재의 의사 국가시험을 의사로서의 임상수행능력(skill)과 태도까지 종합 테스트하는 쪽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의대 의학교육실 이윤성 교수는 “의사면허갱신제가 논의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의사들 스스로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어차피 사회적 압력에 의해 타율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성수기자 sskim@ ■선진국선 어떻게 하나 외국에서도 한번 의사 면허를 따면 죽을 때까지 의사 지위가 보장될까? 우리나라와 달리 상당수 선진국들은구체적인 제도와 장치를 통해 의사들의 면허를 관리하고 있다. 의료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우선 ‘스텝 1,2,3’이라는 3단계의 어려운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의사면허를 딸 수 있다.이후 자신이 속한 주(州)의 의사로 등록하게 된다.면허를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자격이 만료되기 전 주 의료위원회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자격을 갱신해야 한다. 이 때 각 주마다 정하고 있는 보수교육(재교육)을 받고,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면허유효기간은 각 주마다 1∼3년으로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또 지난 1998년부터 면허사후관리체계(PLAS)를 만들어 면허의사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관리하고 있다. 이 체계는 크게 특수목적시험과 능력평가시험 두 가지다.특수목적시험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유효한 면허를 갖고는 있지만,주 의료위원회에 자신의 의학지식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는 의사들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다.면허를 처음 취득하고 수년이 지난 후에 (면허를) 확인하고자 할 때나,일정기간 전문적인 의료활동을 하지 않아 다시 면허를 회복하고자 하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능력평가시험은 특정 의사가 병원직원평가위원회나 다른 집단 등으로부터 진료행위 자질에 대한 의심을 받았을 경우,의사로서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치러진다.환자들이 불만을 제기할 때도 해당되며,2∼3일에 걸친 평가를 통해 의료행위를 지속하는 게 적정한지 최종 판단한다. ●캐나다 州의사위·의학회서 담당 캐나다도 주 단위에서 의사면허를 부여하고,각 주의 의사위원회나 의학회에서 면허의사를 관리한다.전문의 수련과 평가는 왕립의학회가 관장한다. 이들 평가기관은 의사면허를 주는 기능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행하는 진료행위의 수준을 감시하고,의사들에 대한 불만 등의 민원사항을 조사하는 역할도 맡는다. ●일본 5년마다 자격갱신 실시 일본은 평생 의학교육 강화 차원에서 일본의사회가 주축이 돼 기본적인 의료과제와 의학과제 등에 대해 공부하고 의사들이 스스로 학습결과를 신고하도록 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성과는 미흡한 수준이다.아울러 전문의 인정 갱신제도를 통해 5년마다 자격을 갱신하고 있다. 프랑스는 민간단체인 전국 의사위원회에서 전문의 면허를 관장하고 있고,의료행위의 질 관리,윤리교육 등도 함께 맡고 있다. 영국도 일정기간이 지난 후 면허를 재발급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히 기간의 경과에 따른 형식적인 면허 갱신이 아니라,반복적인 연수와 교육을 통해 의사들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익숙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성수기자
  • 메디칼 라운지

    전립선암 無흉터 냉동수술 기존 수술시간과 입원 기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면서 흉터를 남기지 않는 전립선암 냉동수술법이 국내에서 처음 선보였다.고대안암병원 비뇨기과 천준 교수팀은 지난해 12월부터 한달동안 5명의 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제3세대형 냉동수술법을 적용한 결과 부작용은 물론 흉터가 없어 치료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최근 밝혔다. 냉동수술법은 1.5㎜ 크기의 치료침을 암 부위에 고정한 뒤 아르곤 및 헬륨가스를 투입하는 방식이다.이때 투입된 아르곤가스는 암조직을 영하 40∼60도로 급냉시키며,이어 투입한 헬륨가스가 다시 이 세포를 급격히 녹이면서 세포를 괴사시키는 방식이다.현재 미국의 듀크·UCLA·버지니아대학병원 등에서 시행되는 최소침습적 치료법으로 지난해 미국에서만 2000명 이상이 이 방식으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최대 암치료센터 개소 서울대병원은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들이 힘들게 원내를 돌아다니지 않고도 예약과 수납,처방 및 항암주사 등 일련의 진료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도록한 암센터(소장 허대석 교수)를 최근 개소,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갔다. 소아 별관 2·3층에 500평 규모로 마련된 암센터는 하루에 약 500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할 수 있으며,150여명에게 항암주사를 투여할 수 있는 등 단일 항암치료 공간으로는 면적과 진료 건수 측면에서 국내 최대 규모이다. 허대석 소장은 “암센터 개설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훨씬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조만간 소수술실과 각종 검사실,재활치료실 등을 갖춘 유방센터도 신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인 종합검진비 40% 할인 을지병원은 이달말까지 60세 이상 노인이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경우 검진비의 40%를 할인해 준다.이에 따라 검진 비용은 35만원에서 21만원으로 낮아진다.검사는 기본항목 외에 각종 암검사가 포함돼 있다.검진은 매주 월∼토요일에 실시하며 전화(02-970-8181∼2) 및 인터넷(www.eulji.or.kr)예약도 가능하다. 딸기분말 ‘이롬비타민C' 출시 이롬라이프(www.eromlife.co.kr)는 동결건조한 딸기 분말을 넣은 ‘이롬비타민C’를 출시한다.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과즙분말과 달리 동결건조한 딸기 분말을 넣어 딸기 고유의 색상과 맛,향을 지녔으며,착즙 과정을 거치지 않아 비타민C의 파괴를 최소화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또 오렌지보다 천연 비타민C가 30∼40배나 많은 ‘아세로라’와 ‘까뮤까뮤’ 추출분말을 함유,한 알만 섭취해도 사과 5개나 키위 2.5개와 맞먹는 양의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어 피로회복,감기예방,피부노화 방지 및 면역력 강화에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성인은 1일 1∼3회,10세 미만 어린이는 1∼2회씩 매회 1정씩 씹어먹는다.90정 1병 2만 5000원,3병들이 세트 7만원.문의(02)1588-0008.
  • NBA도 남매선수 떴다/휴스턴 음폰 동생 레이커스 ‘대타’로

    미국 농구에도 남매 프로선수가 등장했다.화제의 선수는 미국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의 이메 우도카(26)와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휴스턴 카미츠의 음폰 우도카(27). 남매 프로농구 선수는 우연히 탄생했다.99∼00시즌부터 3연속 우승을 일궈낸 ‘영원한 우승 후보’ 레이커스가 샤킬 오닐,칼 말론,코비 브라이언트 등 주전들의 잇단 부상으로 ‘종합 병원’ 신세가 된 게 계기가 됐다.레이커스가 급한 김에 NBA의 하위 리그인 NBDL 찰스턴 로게이터스에서 포워드로 활약하고 있던 이메를 브라이언트의 ‘대타’로 영입한 것. 이메는 올 시즌 NBDL에서 한 경기 평균 14.7점 6.9리바운드로 두 부문 모두 6위에 오르며,언제든지 NBA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재목’으로 꼽혀 왔다. 지난 15일 꿈에도 그리던 첫 NBA 경기에 출전한 이메는 덴버 너기츠를 상대로 6분 동안 4점 2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산뜻한 출발을 했다.다만 10일짜리 단기 계약인 탓에 계속 NBA 무대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꿈의 무대’ 진출은 누나가 6년이나 빨랐다.누나 음폰은 지난 98년 디트로이트 쇼크를 통해 WNBA에 데뷔했다.그러나 3경기 동안 4점 3리바운드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둬 한 동안 WNBA의 하위 리그인 NWBL과 이스라엘리그를 전전해야 했다.지난해 복귀한 음폰은 한 경기 평균 3.2점 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두걸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4)한국인을 사랑한 사람, 무어 목사

    1898년 10월29일 종로 네거리 운종가 광장에는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었다.외세의 국권 침탈위기에 맞서기 위해 정부 대표자와 민간인 각 계층 대표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국정개혁 원칙을 민중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결정된 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다짐을 하자는 큰 모임이었다.이 모임은 거리에서 관민이 함께 참여하여 벌이는 한국 최초의 합동토론회였다. 오후 2시.광장에는 황국협회,황국중앙총상회,순성회,협성회,광무협회,진신회,친목회,교육회,국민협회,진명회,일진회,보신사 등 각 사회단체들이 모였다.순성회 부인들,각 학교 생도들,시전상인들,맹인,승려들,백정(白丁)들,정부부처 관료 및 신사들이 청첩장 받은 순서대로 참석해 있었다. ●무어에 세례받은 백정 만민공동회 연설자로 오후 3시.대회장인 윤치호가 먼저 만민공동회의 목적을 설명하고 인사말을 했다.곧이어서 군중은 만세를 불러 대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질서유지에 힘썼다.그런 다음 만민공동회의 개막연설자가 단상에 올랐다.회의장은 순간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해졌다.연단으로 올라서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개막 연설자로 지명된 사람은 놀랍게도 백정 신분이자 새뮤얼 무어 목사한테서 세례받은 곤담골교회 박성춘(朴成春)이었다.박성춘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서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이에 이국편민(利國便民)의 길인즉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야 가하다고 생각합니다.저 차일(遮日)에 비유컨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친즉 역부족이나 많은 장대를 합한즉 그 힘이 심히 견고합니다.원컨대 관민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적에 보답하고 국조로 하여금 만만세를 누리게 합시다.” 회중은 연설을 끝낸 박성춘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고,연단 아래 모였던 수십명의 백정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만세를 불렀다.이 광경은 여러 날을 두고 장안의 화제였다.박성춘,그는 이날의 연설로서 독립협회 주요인물인 안창호,서재필 같은 큰 인물들과 함께 국가의 독립과 민족자립을 논의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무어 목사는 한국에 온 이듬해인 1893년 지금의 조선호텔과 롯데호텔 중간쯤에 있었던 곤담골에다 교회를 열고 곤담골교회라 이름을 지었다.교회에는 마을 아이들을 위한 예수교학당을 함께 열었다.무어 목사는 늘 길거리에서 한국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아이들을 예수교학당에 보내라고 권했다.그 마을에 살던 박성춘이라는 백정도 무어 목사라는 사람의 진실된 성품이 싫지 않아서 그의 아들 박서양을 주일학교에 보냈다. 그후 박성춘은 발진티푸스를 앓아서 죽게 되었다.박서양은 주일학교에 나와서 아버지 병을 낫게 해달리는 기도를 하면서 울었다.이를 본 무어 목사가 그 까닭을 물었고 박서양은 아버지의 병환의 위급함을 말했다.무어 목사는 박서양을 돌려보낸 뒤 급히 다른 선교사를 만나러 갔다. 고종황제의 어의(御醫)인 에비슨(Oliver R Avison)을 만나 도와달라고 부탁했다.황제의 전문의사에게 천민보다 더 핍박받는 계급 백정을 진료해달라고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설혹 에비슨이 승낙한다 하더라도 그런사실을 정부 대신들이나 서울의 양반들이 알게 되면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에비슨은 무어 목사의 간곡한 청을 듣고 망설이지 않았다.무어 목사의 눈에 백정들의 참담한 생존이 가장 시급한 구원의 대상으로 비쳤듯이 에비슨의 눈에 비친 무어 목사의 행동은 천사로 비쳤기 때문이다. 두 명의 선교사들이 백정 박성춘을 찾아왔다.박성춘이 완쾌할 때까지 두사람의 발걸음은 계속되었다.박성춘은 임금님의 주치의가 자기 같은 천민을 치료해주기 위해 누추한 곳까지 와준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완치된 뒤 그의 자식들 모두를 주일학교에 보낸 그도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어 같이 설움받고 사는 백정들에게 전도를 시작했다.그런가 하면 큰아들 박서양이 의학을 공부하여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치료해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키웠다.박서양은 결국 1899년 제중원의학교(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면서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 무어 목사는 한국식 이름을 지었다.모삼열(牟三悅).소울음소리 모(牟)자를 즐겨 쓴 이유는 백정들의 애환과 고난을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1895년 박성춘은 무어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고,곤담골교회는 교인 20명의 제법 뜻있는 교회로 자리잡아갔다. ●“양반전도 어렵다” 선교사들 불평·비난 받아 그 무렵 첫 차별사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교회에 나오던 양반 신도들이 발길을 끊는 일이 생긴 것이다.사정을 알고보니 양반 신도들은 백정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심지어는 백정 같은 천민도 예수를 믿으면 죽은 뒤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백정이 가는 천당이라면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양반 신도도 있었다.백정이 믿는 하느님과 양반이 믿는 하느님이 동일하다는 것은 곧 양반을 능멸하는 짓이며,더욱이 한 교회 지붕 밑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천당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난 뒤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며 뉘우치는 이들이 생겼다.그들은 무어 목사에게 새로운 제의를 했다.자기들을 앞자리에 앉게 하고백정들을 뒷자리에 앉도록 좌석을 구별해준다면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무어 목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그후 1904년 지금의 인사동으로 옮겨 1905년 승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한국 기독교사상 가장 뜻깊은 역사를 간직한 교회의 하나가 되었다. 박성춘이 교인이 된 뒤 무어 목사는 에비슨 박사와 함께 뜻을 모아서 백정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1895년에서 189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조정에 탄원서를 냈다.이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졌다.비로소 백정도 한국의 국민 자격을 얻어 호적에 오를 수 있었고 일반인들처럼 갓도 쓰고 두루마기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백정들은 머리에 갓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외출할 때에는 패랭이를 쓰고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한 눈에 백정 신분임을 드러내도록 했다. 2차대전 이전 독일의 유태인들이 가슴에 노랑색 별을 달고다녀야 하듯 했고,인도의 최하층 노예신분인 수드라가 항상 황토색깔의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것과 같았다.그러다가 갓을 쓸 수있다는 법령이 공포되자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발표했을 때 기뻐했던 흑인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강도높은 기쁨이 한국 전역의 백정들을 울부짖게 만들었다.어떤 백정은 하도 좋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갓을 쓰고 살았던 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철도공사장 노동자 인권침해' 日에 항의 이와 같은 선지자적인 무어 목사의 행동은 많은 선교사들의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이들은,교회가 백정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면 양반들에게 전도하기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에는 교회가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는 불평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또한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양반들을 교인으로 전도해야만 교회의 위상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실익이 생길 수 있지만,백정 같은 천민들이 아무리 교인으로 많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은 별로 커지지 않는다고 했다.백정들의 인간해방 운동을 위하여 동료 선교사들과 아무 의논도 없이 임금에게 탄원서를 낸 것은미 국무부 정책을 위반하여 다른 나라 정치와 관습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899년 12월 무어 목사는 고종황제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알렌 공사로 하여금 주선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의 백정들에 대한 인권탄압 정책과 제도를 혁파해달라는 요구를 고종황제에게 해볼 결심으로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거절당한 뒤 할 수 없이 문제의 그 편지를 직접 고종황제에게 보냈고,그로하여 알렌 공사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무어 목사는 아내의 건강이 몹시 쇠약해져 1902년부터 1년 동안 미국의 고향에서 요양을 끝내고 1903년 9월 다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그 무렵 무어 목사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했다.알렌 공사와 다른 선교사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천민이나 서민들보다 양반과 부자,귀족들에게 주로 선교활동을 펴면서 백정선교에 집중하는 무어 목사를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는데 지쳐갔다. 그는 살림도 할 수 있는 작은 배 한 척을 장만하여 ‘기쁜 소식(The Glad Tidings)’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해안에 흩어져 있는 작은 어촌과 섬,그리고 한강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마음 속에서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런 중에 일본 군용철도 공사장에 강제로 동원된 한국 노동자들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일본영사관에 제기했다.일본영사관에서 아무런 반응을 안보이자 일본군의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성명서를 해외선교부에 보내 도와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1906년 전도여행길서 병얻어 46세로 사망 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인들이 일본군인들에게 그토록 짓밟히면서도 민중봉기가 없는 것은 한국인들이 수탈과 억압에 너무 익숙해져 인간의 혼이 죽어버린 탓이 아닌가 하고 통곡했던 적도 있었다.그때부터 평양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자유사상을 고취시켜 나간다면 장차 인간의 혼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한국인을 사랑하던 무어 목사는 1906년 전도 여행길에서병을 얻어 그해 12월2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4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의 백정을 사랑한 인권의 은인이자 인간해방의 참뜻을 가르친 위대한 사도였다.그의 인권사상은 그가 죽은 지 16년 뒤인 1922년 백정해방운동으로 되살아났다.
  • 이라크서 수포제함유 포탄 발견/80년대 이라크·이란戰 사용 추정

    이라크에서 수포제가 든 포탄이 발견됐다.이라크에 주둔 중인 덴마크군은 9일 남부 쿠르나 북쪽 20㎞ 떨어진 지점에서 수포제가 들어 있는 박격포탄 36발을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 덴마크군은 지휘사령부 웹사이트에 공개한 자료에서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폭약전문가들이 일상적인 폭약수거 작업 도중 액체로 가득찬 120㎜ 박격포탄을 말라버린 늪지대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현재 덴마크군은 영국군 주도의 다국적군 일원으로 남부지역의 안전 책임을 맡고 있다.발견된 포탄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통에 넣어져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10년이 지난 것으로 지난 80년대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 당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날 남부 아마라에서는 일자리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영국군과 이라크 경찰이 발포,6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병원 관계자들이 밝혔다. 그러나 이 지역을 관할하는 영국군 대변인 폴 와이트먼 준위는 5명이 죽고 1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영국군은 시위대 일부가 폭발물을 던지려고 해 방어 차원에서 이들을사살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목격자들은 연합군측에서 먼저 발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전경하기자·외신 la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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