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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미니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안보 공백 우려 없앤다

    한·미 ‘미니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안보 공백 우려 없앤다

    MDL 적대행위 종식 ‘판문점 선언’ 이행 해병대·공군, 소규모 연합작전 계획대로 을지연습, 한국 단독 ‘태극연습’ 연계 검토 국방부 “훈련 상황 등은 비공개로 진행”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문의 부속합의서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군사합의서)를 체결함에 따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할지 관심이 쏠린다. 육·해·공에서 군사분계선(MDL) 인근의 적대행위를 종식하면서 실질적 불가침 조치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일각에선 안보 약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군은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을 진행하며 ‘준비된 평화’를 추구할 계획이다.국방부 관계자는 30일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대규모 훈련과 2건의 한·미 연합 해병대 훈련(KMEP)은 지난 6월 한·미 국방장관의 협의에 따라 유예됐지만 이외의 훈련은 예정대로 실시된다”고 밝혔다. 재개되는 첫 한·미 연합훈련은 해병대와 주일 미 해병대가 진행하는 KMEP 훈련이 될 전망이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열릴 가능성이 크다. 한·미 양국이 지난 6월 UFG 훈련과 함께 8월과 9월분 KMEP 훈련을 유예했지만 대대급 이하 훈련이어서 사실상 유예 대상이 아니라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군 관계자는 “미국은 회계연도가 10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이번 훈련은 2019년 첫 훈련이 된다”며 “훈련은 주로 후방인 포항 인근에서 이뤄지지만 서북도서 방어훈련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군사합의서에서 남북은 11월부터 동·서해의 최대 135㎞ 구역에서 해안포·함포의 포문을 닫기로 했다. 다만 국방부 관계자는 남북 평화 분위기와 북·미 비핵화 협상을 감안해 훈련 재개 여부 및 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로키’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미 공군의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 훈련도 오는 12월 실시가 확정적이다. 통상 200대 이상의 한·미 군용기가 참가하는 대규모 훈련으로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의 전략자산인 스텔스 전투기인 F22 및 F35A 등이 동원됐다. 다만 올해는 북측이 민감해하는 전략자산 동원은 삼갈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 한·미 양국은 공군의 연합 훈련인 ‘쌍매 훈련’, 특수부대 연합 훈련 등 소규모 훈련은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역시 연말과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관건은 내년 3~4월에 열리는 대형 연합훈련인 키리졸브 및 독수리 연습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결과에 따라 유예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는 지난 8월 UFG의 유예로 함께 진행하던 정부의 을지연습을 잠정 유예하고 내년부터 한국군 단독군사훈련인 태극연습과 연계해 ‘을지태극연습’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 역시 한반도 평화 구축 여부에 따라 실시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北 “일방적 비핵화 없다”… 상응조치 힘겨루기

    종전선언 ‘카드’ 없으면 협상 난항 예고 이달 폼페이오 4차 방북이 분수령 될 듯 美국무부 “6·12회담 합의 이행 논의 중”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유엔총회를 기점으로 상응 조치를 둘러싼 2라운드 힘겨루기에 들어선 모양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등 체제 안전보장에 대한 구체적 행동 없이 절대 비핵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북·미 협상에서의 치열한 수싸움을 예고했다. 남북 정상의 9·19 평양공동선언과 2차 북·미 정상회담 타진 등 남·북·미 3국 정상들의 담판이 이뤄지는 가운데 북한이 국제 무대를 통해 공개적으로 내놓은 메시지라는 점에서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북·미 협상의 향배는 이르면 10월 초로 전망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쇄·검증에 대한 상응 조치로 종전선언이나 제재 완화 로드맵 등의 카드를 제시할지, 아니면 기존의 ‘선(先) 비핵화’ 기조로 재압박에 나설지가 관건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비핵화를 향해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이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협상은 제자리를 맴돌 수 있다”고 짚었다. 미국 CBS방송도 전날인 28일 ‘폼페이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 가능성을 내놓다’라는 기사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다가오는 북한과의 협상을 준비하면서 종전선언 가능성이라는 하나의 도구를 눈에 띄게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양국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북한 카운터파트 간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실무 협상,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등 동시다발적인 치열한 줄다리기를 염두에 둔 입장 표명으로 해석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0일 인천공항 입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북·미 신뢰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 리 외무상의 연설에 대해 “오랜 세월의 적대를 해소하고 관계를 개선하면서 비핵화를 끌어나가는 데 있어서 한 단계 한 단계가 다 신뢰 구축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남북 ‘경의·동해선 연결’ 연내 착공 기대감

    “한·미 정상 공감대… 실무협의 작은 문제” 지난 28일 열린 청와대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과 관련해 10월 중 현지조사에 착수키로 하면서 연내 착공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는 향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경협을 위한 인프라이자 향후 동아시아철도공동체로도 발전할 수 있는 시발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동·서해선(경의선) 철도에 대한 남북 공동 현지조사와 관련해 유엔사와의 협의를 거쳐 구체적인 일정을 마련할 것”이라며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남북은 지난 8월 경의선 철도의 북측 구간을 공동 조사하려다 유엔사의 반대에 가로막혀 계획이 무산됐다. 이에 대해 제재 문제로 유엔사가 반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 두 정상 간에 큰 틀에서 방향이 정해졌으니 실무 협의는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월 현지조사에서는 동해선 철도의 금강산~두만강 구간, 경의선의 개성~신의주 구간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철로, 교각, 터널 등의 상태를 살펴 공사의 윤곽을 잡고 예산 등을 산정하는 과정이다. 시간적으로 10월 현지조사가 진행되면 연내 착공이 가능하다. 다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으면 착공식은 해도 공사 진척은 쉽지 않다. 유엔 안보리 결의(2397호)에 따르면 철도·궤도용 기관차, 신호 설비, 차량 등 품목의 대북 반출은 금지된다. 이에 대해 한 대북 소식통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모멘텀이 기대되니 도로·철도 연결 사업도 신중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 아니겠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외교라인 물갈이… 다자·통상외교 강화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외교부 1차관으로 조현(61·외시 13회) 2차관을, 2차관으로 이태호(58·외시 16회) 대통령비서실 통상비서관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으로 정승일(53·행시 33회)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각각 임명했다. 또 특허청장에는 박원주(54·행시 31회)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을, 국립외교원장에는 조세영(57·외시 18회) 동서대 국제학부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을 임명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미국 뉴욕 방문을 마치고 귀국 중인 문 대통령이 차관급 5명에 대해 인사를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외교부는 차관급 자리 3개 모두 주인이 바뀌었다. 이례적으로 1·2차관이 각각 ‘다자·통상통’으로 임명됐고 북·미 외교라인은 제외됐다. 양자관계를 책임지던 전임 임성남 1차관은 대표적인 북·미, 북핵통이었다. 청와대의 이번 차관 인사는 외교부 조직 혁신과 외교통상 강화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윤 수석은 조 차관 임명과 관련해 “외교부 혁신 강화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文 “평화 동분서주” “전쟁종식 절실”… 500일의 반전

    文 “평화 동분서주” “전쟁종식 절실”… 500일의 반전

    지난해 5월 “여건 되면 평양도 가겠다” 올 신년사 “한반도 평화 새로운 원년”5월 “남북은 친구처럼 이렇게 만나야”문재인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내용이 포함된 기조연설을 한 것을 계기로 문 대통령 취임 후 급변한 한반도의 ‘반전 드라마’가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문 대통령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도발적 행동을 해 온 북한의 자발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호소했다.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다”며 워싱턴, 베이징, 도쿄행을 언급했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도 가겠다고 말했다. 이 약속은 지난 18~20일 열린 평양 남북 정상회담으로 완성됐다. 지난해 7월 신베를린 선언으로 알려진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는 “먼저 쉬운 일부터 시작해 나갈 것을 북한에 제안한다”며 꽉 닫힌 북한을 노크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9월에도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이제라도 역사의 바른 편에 서는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는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어졌다. 올 들어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의 문을 열었다. 신년사에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원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여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 로드맵이 시작됐음을 세계에 알렸다.4월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우리는 주도적으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 나가되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5월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만남으로 북·미 간 교착국면이 뚫리면서 6월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의 화두는 ‘평화가 경제’였다. 정치적 통일은 멀지만 경제공동체를 이루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는 데 합의했다. 이렇게 그간 북한의 변화를 이끌었다면 이번 유엔총회에서는 국제사회의 화답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전쟁 종식은 매우 절실하다.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이 올바른 판단임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진전에도 문 대통령은 아직 시작이라고 했다. 연말까지 3개월간은 결정의 순간이 될 전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과의 실무협상 개최를 제안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도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연내에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때 종전선언을 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3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3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조선에 와서 베델 등을 취재해 쓴 이 소설에는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최근에야 알려진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3회>내가 점심을 먹으러 애스터하우스 호텔(지금의 서대문역 농협중앙회 터)로 돌아오자 하기와라(훗날 조선의 2대 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의 부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가 내 앞으로 보낸 메모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빌리씨,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오늘 저녁 시간되실 때 제물포로 내려가실 수 있으세요? 모험을 좋아하는 내 친구들이 옌타이에서 요트를 타고 서울로 온답니다. 호랑이 같은 맹수를 사냥하고 싶어해요. 대한제국의 무시무시한 세관 규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밤이나 내일 아침 일찍 제물포로 올 것 같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이 나라의 정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총을 들고 오다가 자칫 조선왕실을 위협하려는 것으로 의심받을까 크게 염려하고 있어요. 당신은 대한제국 세관을 지키는 중요한 관리시니까 이 분들이 문제 없이 통과시켜 주실 것으로 기대하겠습니다. P.S. 참, 그들은 당신과 함께 배를 통해 한강을 타고 서울로 오고 싶어하더라구요. 작지만 즐거운 소풍이 되실 듯합니다.” 참으로 뻔뻔한 소녀였다. 이미 하기와라의 부하들이 이 글을 다 봤을텐데...중국에서 온 이들을 잡아 가라고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지시를 하셨구만...나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물론 여기에 적힌대로 보트를 이동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자칼(하기와라)은 고종 망명 시도가 마무리된 뒤 이 쪽지를 복기하며 소녀에게 크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나는 그녀의 요구대로 제물포로 내려갔다. 그리고 만조가 되자 길게 잘 빠지고 매끈하게 생긴 요트가 속도를 내며 들어왔다. 얼간이 하기와라는 소녀에게 홀딱 빠져 이 요트가 제물포항을 잘 통과시키라고 인천해관에 지시까지 내렸다. 이 사실을 내가 안 순간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라. 소녀의 일하는 방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정교했으니까. 나는 부두에서 요트에 탑승한 뒤 소녀의 편지를 금발 머리를 한 잘생긴 젊은 프랑스인 몬샤르 레이나드에게 보여줬다. 그는 황제 납치 프로젝트의 지휘관이었다. 그와 함께 온 두 명의 프랑스인 일행도 있었다. 이들 말고도 승무원 5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내 편지를 주자 이들은 굳이 나에 대해 물을 필요가 없었다. 레이나드씨와 나는 공동으로 여기에 적힌 사냥 여행에 관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 말고 또 뭔가 다른 모험이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사람의 지시에 대해 둘 다 아는 바가 없었기에 우리는 다음날 다함께 한강을 거슬러 서울 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나는 오랫동안 도요새 사냥을 해왔기 때문에 한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양주(번역자주:원본에는 angjou로 돼 있지만 yangjou의 오기로 보임)와 서울 성곽 벽이 있는 곳의 중간쯤(과거 경기 양주군에 속해있던 광진이나 뚝도진으로 추정)에 닻을 내렸다. 강물이 구부러져 흘러 시야가 가려져 있고 북문(숙정문·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소재)에서 큰 길로 나가면 10㎞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지휘관인 프랑스인(몬사르 레이나드)은 “바로 이곳이 도요새를 사냥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같다”고 운을 띄웠다. 나 역시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조선 황제로 이곳으로 데려오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들과 잠깐 사냥을 같이 한 뒤 거사일을 확정하고 그들과 헤어졌다.나는 레이나드와 약속할 때 그의 눈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미신에 푹 빠져 있다고 소문이 난 조선 황제가 엉뚱한 이유로 계획을 취소시키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 같았다. 나는 정오쯤 서울로 돌아왔다. 그날 밤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과 함께 민영환 대감의 집으로 갔다. 민 대감은 황제를 태울 보트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매우 흥분했다. 혹시라도 누가 엿듣고 있지 않은지 문을 열어 밖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야 지난 며칠간 궁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14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Q&A]입국장 면세점, 담배는 안 되고 양주는 된다

    [Q&A]입국장 면세점, 담배는 안 되고 양주는 된다

    정부가 국내 소비를 늘리고 해외여행객을 불편을 줄이고자 국제공항 입국장에 면세점을 도입하기로 했다. 관련 법이 순조롭게 개정된다면 내년 5월 말에서 6월 초면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한 뒤 면세품을 쇼핑할 수 있다. 다만 면세품 구입 한도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600달러다. 또 담배와 과일·축산가공품 등의 판매는 금지된다. 정부는 27일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입국장 면세점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자세한 내용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풀어본다. Q: 정부가 15년 동안 입국장 면세점 도입을 미뤘다고 하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2003년부터 입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하자는 법안들이 국회에 수차례 발의됐지만 통과된 적은 없다. 국민들은 찬성했지만 정부가 부작용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면세점 쇼핑으로 입국장이 혼잡한 틈을 타 우범 여행자가 잠적해버리거나 마약이나 금괴 등 불법 물품을 주고받는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반입 금지 동식물에 대한 검역, 소독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기내면세점을 운영하는 대형항공사와 출국장에 면세점을 둔 대기업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Q: 정부가 입장을 바꿔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기로 한 이유는. A: 크게 두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첫째,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국민 1000명의 의견을 조사해본 결과 81.2%가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찬성했다.해외여행객은 지난 10년 동안 매년 7.1% 이상 증가해 지난해 기준 2650만명에 달했다. 그런데 입국장 면세점이 없다보니 출국할 때 면세품을 사서 여행 기간에 계속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컸다. 유리로 된 주류, 화장품, 향수 등의 경우 불편이 더했다.입국장 면세점이 생기면 여행을 마친 뒤 쇼핑을 할 수 있다. 또 해외소비를 국내로 전환하는 효과도 생길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입국장에서 주류를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해외 소비가 줄면서 여행수지 적자 폭도 다소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Q: 해외공항들도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하나? A: 전세계 88개국에 333개 공항이 있는데 이 가운데 73개국, 149개 공항에서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인천공항의 경쟁 상대인 홍콩 첵랍콕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일본 나리타공항, 중국 베이징 공항 등에는 입국장 면세점이 있다. Q: 입국장 면세점은 언제 어디에 생기나. A: 정부는 우선 인천공항에 우선 도입하고 효과가 크면 김포공항과 대구공항 등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입국장 어디에 면세점을 설치할 것인지는 연구용역을 걸쳐 결정할 예정이다. 입국 후 거치는 입국심사, 검역, 수화물 찾기, 세관 등 동선에 혼잡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입국장 면세점을 만들려면 먼저 관세법과 시행령 등을 개정해야 한다. 이후 내년 3~5월 사업자를 선정하고 사업을 준비해서 내년 5월 말에서 내년 6월 초에 첫 면세점을 열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Q: 입국장 면세점에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은. A: 담배는 내수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판매하지 않는다. 이건 싱가포르와 홍콩공항도 마찬가지다. 과일·축산가공품 등 검역 대상 품목도 취급하지 않는다. 마약 탐지견의 후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향수 등은 밀봉해서 판매할 수 있다.국민의견 조사에서 높은 구매 의향을 보인 화장품과 향수(62.5%), 패션 및 잡화(45.9%), 주류(45.5%) 등이 주로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 Q: 입국장 면세점 구매 한도는 얼마인가. A: 1인당 면세품 구매 한도는 600달러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까 출국장 면세점, 다른 나라 면세점, 입국장 면세점에서 구매한 합계가 600달러를 넘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Q: 입국장 면세점에서는 중소기업 제품만 판매한다던데? A: 그렇지 않다. 면세점 운영업체를 선정할 때 중소·중견기업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대기업 계열사인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등은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할 수 없다.정부는 입국장 면세점 매장 면적의 2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 제품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소기업 명품관 등을 설치하겠다는 뜻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文대통령의 북핵 해법 파격 구상 셋

    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북핵 문제 해법 중엔 새롭고 다소 파격적인 구상들이 꽤 많이 포함돼 있었다. ‘영변 핵시설 폐기 참관(사찰) 계기 미국의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북한이 약속을 어기면 미국의 종전선언 취소 가능’,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 필요’ 등이다. ① 대사관 전단계 연락사무소 문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초기 비핵화 조치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로 영변 핵사찰 계기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시했다. 그동안 언론은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정도만 예상했는데, 문 대통령은 그뿐 아니라 제재 완화, 인도적 지원, 예술단 교류, 경제시찰단 상호 교환, 미국의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등도 제시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가 눈에 띈다. 평양과 워싱턴의 교차 연락사무소 설치는 향후 대사관 설치 등 국교 수립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시발점이다. 기존의 비핵화 로드맵에서 연락 사무소 설치는 비핵화에 따른 후순위 보상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파격적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앞당겨 북·미 관계 개선을 급속히 견인하는 식으로, 연락사무소를 조기 개설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묵은 비핵화 협상 틀을 깨고 후순위를 선순위로 앞당김으로써 불가역적인 관계 개선을 이끌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의 ‘핵신고-폐기’ 구도가 아니라 ‘폐기-검증’으로 속도를 내려는 게 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② 北 변심하면 종전선언 취소 문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하는 미국 일각의 여론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건, 북한이 취하는 비핵화 조치는 불가역적인 반면 미국의 상응조치는 언제나 거둬들일 수 있어 미국이나 한국이 손해 볼 게 없다”고 단언했다. 즉,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및 발사대, 영변 핵시설,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 등을 폐기한 뒤 나중에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돼 다시 복구하는 것은 금전적·시간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반면 한·미 양국이 취한 군사훈련 중단은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고, 종전선언도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 취소할 수 있으며, 제재 완화 문제도 언제든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현찰을 주고 미국은 어음을 준다’는 비핵화 협상의 차별적 본질을 직설적으로 밝힌 셈이다. 다시 말해 ‘손해’에 민감한, 즉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여론을 향해 ‘ 일이 잘못됐을 때 미국이 잃을 건 별로 없으니 걱정말라’는 메시지를 거침없이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③ 동북아 평화 위한 주한미군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물론 남북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 주둔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는데, 그보다 더 나간 것이다. 종전선언이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이어질 거라는 한·미 강경 보수층의 의구심을 일축하는 발언인 셈이다. 주한미군 문제는 무관하니 종전선언을 해도 걱정할 게 없다는 얘기다.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은 미래의 일을 단정적으로 말했다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이 문제에 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남북 정상 모두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문 대통령은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통일 후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2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2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조선에 와서 베델 등을 취재해 쓴 이 소설에는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최근에야 알려진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2회>소녀는 키 작은 일본인(훗날 2대 조선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의 말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제가 서울에 도착한 첫날 밤에 스파이를 보내 제 트렁크를 뒤졌잖아요?” 질문을 던지는 소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분노와 떨림이 있었다. 자신의 훼손된 존엄성을 보상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었다. “나는 몰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하기와라는 놀란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아니면 이 조선에게 누가 저에게 사람을 보내겠어요. 사실대로 말씀하세요. 하기와라씨!” “아...그건 정말 실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을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이 혹시라도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몰라서 무서웠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델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람을 보내 조사해보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바보짓이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사실을 털어놓게 돼 지금 제 마음이 무척 홀가분합니다.” 하기와라는 거의 절망적으로 소녀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집우재(경복궁에 있던 왕실 도서관)에 있던 나는 소녀의 혼을 담은 연기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사과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게요.” 그녀의 목소리가 실크처럼 부드러워졌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당신에게 사과를 구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하기와라의 눈에 이슬방울이 맺혔다. 그제서야 ‘때가 됐다’는 듯 그녀가 마음속에서 하려던 말을 꺼냈다.“하기와라씨, 그러면 좀 더 이야기를 드릴게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며칠간 황제 폐하(고종)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분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온 정신을 쏟고 있어요. 하기와라씨는 그 시간에 우리와 같이 있고 싶다고 고집하시고요. 하지만 당신도 아시겠지만 폐하는 당신을 매우 두려워하십니다. 이 때문에 그분이 초상화 작업에 몰입하시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제대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저에게도 몰입을 힘들게 만들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당신이 나를 감시하려고, 최소한 내가 저 불쌍한 노인(고종)과 무슨 계략이라도 세울까봐 거기에 계셨던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달콤함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기와라는 그 말에 안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녀의 언어는 주저함없이 겸손한 어조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기와라 씨. 이제부터는 폐하와 제가 단 둘이서만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약속해 주십시오. 그러면......“ “음....그러면요?” “그렇게 해 주시면 하기와라씨와 단 둘이서만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볼게요.” 소녀는 짧게 웃으며 유혹하듯 말했다.다시 그녀의 스커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렸다. 나(빌리)는 발코니 가장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길게 늘어진 소나무 줄기를 통과한 햇빛이 반사되어 나부끼는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를 보았다. 그녀의 어깨가 부드러운 리듬을 타며 움직이는 것도 보았다. 키작은 하기와라가 그녀 옆을 성급히 따라갔다. 그녀는 편안한 보폭으로 오래된 아치형 다리를 건너 궁궐(경운궁 금천교로 추정)로 이어지는 길로 나갔다. 마침내 그녀가 자칼(하기와라)의 턱에 재갈이 물린 것이다. 13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1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1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조선에 와서 베델 등을 취재해 쓴 이 소설에는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최근에야 알려진 극비 내용도 담겨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1회>   나는 어둠을 뚫고 상하이에 도착했을 전보 메시지를 떠올렸다. 소녀가 보낸 3개의 단어(“초상화 성공. 만세!”)가 저쪽에 전달됐을 것이고 이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직접 보고 싶어졌다. 상하이에 있는 러시아 외교의 달인(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 낡은 나라(청나라)에 몰래 묻어둔 보트를 출발시키라는 요청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옌타이의 어느 항구로 또 한 번 전보를 보내 발해만에 정박해 있던 배에게 돛을 올려 빠르고 비밀스럽게 서울로 가 조선의 황제를 데려오라고 명령할 것이다. ‘국제정치’라는 이 민첩하고 정교한 기계를 제대로 움직이고자 ‘외교’라는 이름의 엔진 속의 톱니 바퀴와 피스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나는 이 차가운 밤하늘 속 별빛을 보며 두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나의 머리는 저 멀리 30㎞쯤 떨어진 어둠의 도시(서울)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빛나는 금발 머리와 보랏빛 눈을 가진 한 여성이 약탈자(일제)의 계략에 맞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제물포에서 첫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돌아왔다. 세관 문제에 대해 일본 탁지부 고문(메가다 다네타로)과 회의를 하려고 궁으로 갔다. 연로한 조선 황제(고종)의 고문관인 메가타 역시 국제정치라는 기계를 돌리고자 톱니의 나사를 조이는 일에 가담하고 있었다. 회의 시작을 기다리며 나는 내가 조선에서 가장 좋아하는 경복궁 뜰을 걸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근정전과 법궁을 보며 이 궁의 모습이 지금의 조선 왕조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이 왕궁이 어떤 이유로 이 찬란한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게 됐을까를 곰곰 생각해봤다.그 때였다. 시베리아 전나무 그늘에 놓인 왕실 도서관(집옥재) 발코니에 앉아 있었는데,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였다. 그리고 명쾌하고 리듬과 운율이 잘 맞아들어가는 그녀의 말솜씨에 곁들여 무겁고 둔탁한 악센트를 구사하는 남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하기와라(훗날 2대 조선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였다. 그들은 내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도서관 발코니 바로 아래 멈춰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졸지에 남의 말을 엿듣는 사람이 돼 버렸다. “아니요. 하기와라님” 소녀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렇게 세심한 관심을 써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저는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당신이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다 들었으니까요.” ”잠깐만요. 마담“ 하기와라가 성급히 소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이상하고 음흉한 음색이 느껴졌다. ”잠깐만요...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나는 통...모르겠습니다.“ ”아...네...그러시겠죠.“ 소녀가 일부러 상심한 척 그를 애태우려는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떤 여자라도 당신이 자신을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죠. 여자들은 그런 식으로 자기가 관심이 대상이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여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즐거워하죠.” 소녀의 목소리에는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기운이 있었다.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있는 하기와라의 심장 박동수를 높이려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하기와라님, 당신도 늘 내 뒤를 따라 다녔고 단 한가지 이유로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잖아요...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이 사실을 부정하실 수 없으실 거에요.”“그게...그 이유는...그 이유는 당신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나는...나는 당신을...” 하기와라가 부끄러운 듯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했다. “그만하세요!” 짧은 말 속에 어떤 명령과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소녀의 눈에서 불꽃이 번득였다. “하기와라씨, 당신은 내가 스파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바른대로 말씀하세요!” 이 일본인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당황해서인지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울먹이고 있었다. “절대로...절대로...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어떻게 그런 일이...말도 안됩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12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베델의 ‘젠틀맨 정신’ 실천에 감명…20년 연구 매달려”

    “베델의 ‘젠틀맨 정신’ 실천에 감명…20년 연구 매달려”

    영국서 일본 거쳐 한국까지 온 베델 나와 비슷하다는 작은 호기심서 시작 베델 주인공 소설·첫 통신기사 찾아내 연구한 내용 출판 통해 알리고 싶어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항일 언론 투쟁을 펼쳤던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을 20년 가까이 연구한 영국인이 있다. ‘베델 연구가’ 에이드리언 코웰(62)이 주인공이다. 지난달 2일 싱가포르 노베나 인근 카페에서 만난 코웰은 “업무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 우연히 베델을 알게 됐고 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까지 흘러온 삶의 궤적이 저와 비슷했다”면서 “간단히 알아보려고 했던 게 계속 이어졌다. 진실된 마음과 용기, 분명한 옳고 그름. 베델은 영국의 ‘신사’(젠틀맨) 정신을 삶에서 실천하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비즈니스 컨설팅 사업을 하는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베델을 연구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당시 아마추어 연구가로서 어려움이 많았다. 베델 자료가 많지 않은 데다 영국과 일본, 한국, 중국 등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상 해외 출장이 잦은 그는 틈날 때마다 출장지에서 도서관을 다니며 베델과 관련된 자료를 닥치는 대로 모았다. 끈질긴 추적 끝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910년대 소설을 발굴했고<서울신문 8월 15일자 6면>, 베델이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 통신원으로 활동할 당시 처음으로 썼던 기사<8월 17일자 28면>를 새로 찾았다. 모두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그는 “아직 찾지 못한 자료가 더 있을 것 같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코웰은 “베델 연구가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지 세상의 관심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다만 지금껏 연구한 자료를 책으로 내놓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는 “2~3년 뒤 출판할 생각을 갖고 있다”며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정작 베델의 조국인 영국에선 그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며 “책으로 베델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베델 생가 英서 첫 확인 성과… 반세기 지나 ‘영원한 한국인’ 부활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베델 생가 英서 첫 확인 성과… 반세기 지나 ‘영원한 한국인’ 부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의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1909년 세상을 떠난 뒤 일제의 왜곡과 날조 등으로 한국인의 기억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반세기가 지나자 우리에게 남은 것은 베델이라는 이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부 수립 뒤 국가 재정비에 정신을 쏟느라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를 챙기지 못한 우리 자신의 책임이 컸다. 대한민국이 베델을 다시 찾은 건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독립된 정부가 세워진 지 20년이 지난 뒤였다.●베델 며느리가 손주 데리고 한국대사관 찾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학생과 근로자가 중심이 된 사회변혁운동)이 들불처럼 유럽 전역에 번지던 1968년 7월 15일. 영국의 ‘더타임스’ 16면에 조그마한 안내 광고 하나가 실렸다. 확대경을 대지 않으면 글자를 읽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1905년 서울에서 신문을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이라는 분께 훈장을 드리려고 합니다. 연고자는 런던의 한국대사관으로 연락 바랍니다.” 한국과 영국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대영(大英) 남자’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베델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다 돼서였다. 하루 종일 신문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광고의 존재조차 파악하기 힘들 만큼 작게 게재돼 아무 반향도 없었다. 사실 우리 정부는 정말로 그의 후손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영국 최고 권위지 가운데 한 곳에 광고를 내 독립운동가를 찾으려 나름 노력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의도가 더 컸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반응이 나왔다. 신문 광고의 크기가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력을 반영하는 것 같아 측은해 보였던 것일까. 더타임스가 이 광고를 근거로 이튿날 ‘한국이 한 영국인에게 감사를 표하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쓴 것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대통령 훈장과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과거 한국의 국민 영웅이던 영국인 후손을 기다린다. 1905년 신문을 창간해 일본의 한국 지배에 저항하다가 1907~1909년 사이에 추방당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다.”더타임스 기사는 오류가 많았다. 그때까지 우리가 아는 베델에 대한 정보가 이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신문에 그의 이야기가 실리자 후손에게서 연락이 왔다. 베델의 며느리인 도러시 메리 베델(당시 52세·2002년 작고) 여사가 딸 수전 제인(당시 12세)과 아들 토머스 오언(당시 9세)을 데리고 한국대사관을 찾은 것이다. 베델 사후 반세기가 넘어 그의 가족과 한국이 다시 만난 순간이었다.●베델, 전 재산 한국에 쏟아 가족들 곤궁한 삶 도러시의 입을 통해 들은 베델 가족의 이야기는 한 편의 가슴 아픈 소설 같았다. 베델의 부인 메리 모드 게일(1873~1965)은 남편 사망 뒤 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을 데리고 결혼 전 살았던 영국 런던으로 돌아갔다. 베델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며 모은 재산 대부분을 대한매일신보 발간에 쏟아부어 영국에서의 삶은 힘들고 곤궁했다. 도러시가 한국대사관을 찾아왔을 때도 이들은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 영국의 이웃들은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 가며 아무 이해관계도 없던 한국을 도운 베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메리 여사는 그런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며 홀로 아이를 키웠다.한국 정부가 베델의 연고자를 찾았을 때는 그와 조선에 함께 살던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다. 1964년 아들 허버트가 63세에 사망했고 이듬해에는 베델의 부인 메리 여사도 92세로 숨을 거뒀다.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할아버지(베델)는 아버지(허버트)가 9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 역시 내가 10살도 되기 전에 떠났다. 할머니(메리 여사) 역시 말년에 치매 증세를 보여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베델의 후손들은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꾸준히 한국을 방문해 그를 기린다. 베델이 “영원히 살아남게 해 한국 동포를 구해 달라”고 당부한 신보는 어떻게 됐을까. 베델의 비서였던 영국인 알프레드 매넘이 신보사의 2대 사장이 됐지만 1910년 영국 정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일본에 신보사를 팔고 떠났다. 이후 신보는 ‘매일신보’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했다. 조선인들의 신뢰도 사라졌다. 매일신보는 해방 뒤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꿨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 정권을 지지하다가 1960년 4·19 혁명 당시 시위대가 사옥과 시설을 파괴해 희귀 자료 대부분을 잃어버리기도 했다.●베델 다시 살려내는 데 정진석 교수 역할 커 대한민국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베델의 발자취를 찾아내 ‘영원한 한국인’으로 부활시킨 이는 정진석(79)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였다. 1976년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영인 작업에 참여하면서 그의 삶에 매료된 정 교수는 영국 런던정경대(LSE)에 수학하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베델 관련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냈다. 베델이 태어난 영국 브리스톨과 1888~1904년 무역업을 했던 일본 고베 등을 돌며 베델 기록 대부분을 바로잡았다. 지금 우리가 교과서 등을 통해 배우는 베델의 생애는 그가 일생을 바쳐 찾아낸 것들이다. 서울신문 역시 ‘조선을 사랑한 英 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기획을 통해 몇 가지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우선 언론학계의 주요 과제였던 베델의 영국 브리스톨 생가를 확인했다. 그간 베델 생가를 찾으려는 노력은 관훈클럽 창립자인 최병우(1924~1958)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 등에 의해 1950년대부터 수차례 시도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정 교수는 베델의 출생지 주소(Egerton villa, Egerton Road, Horfield)를 구했지만 지금의 영국 주소체계와 달라 생가를 특정하지 못했다. 국가보훈처는 서울신문이 찾아낸 베델 생가(현주소 54 Egerton Road, Bishopston, Bristol)를 검증한 뒤 현충시설로 지정해 역사적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베델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던 베델 관련 자료도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전시하기로 했다. 여기에 서울신문은 베델의 가족관계 일부를 새로 발굴해 그가 왜 일본을 통해 조선에 오게 됐는지를 좀더 명확히 밝혀냈다. 해외 기사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해 베델이 통신원으로 조선에 와서 쓴 첫 번째 기사(전통놀이 석전)도 소개했다. 이밖에도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910년대 미국 작가의 역사소설 두 편(황제 납치 프로젝트·황제의 옥새)을 찾아냈다. 베델의 열정에 반해 러시아 기밀문서 등을 찾아내 독학으로 연구하는 외국인을 만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베델의 생애를 소개하며 그의 이름을 알리는 해외 네티즌도 확인했다. 베델의 발자취 찾기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뉴스 분석] 文대통령·김정은 ‘사상 초유 시리즈’…70년 냉전의 땅에 평화 새 미래 열다

    [뉴스 분석] 文대통령·김정은 ‘사상 초유 시리즈’…70년 냉전의 땅에 평화 새 미래 열다

    김정은 내외 영접…각하 칭호로 軍 사열 두 정상 동반 카퍼레이드 상상 못했던 일 文, 인파에 90도 인사 이례적 친주민 행보 15만 군중들 앞에서 한반도 비핵화 역설 金 올해안 답방 약속…종전선언 가능성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비핵화 합의를 담은 9월 평양공동선언, 북 최고지도자의 연내 답방, 남측 대통령의 평양시민 접촉, 백두산 동행 방문 등 행보 하나하나가 사상 초유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남북의 주민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빠르게 전개된 새로운 ‘평화 패러다임’은 1948년 분단 이후 70년간 이어진 냉전구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0일 “70년 만에 전쟁을 끝내고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평가했다.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함께 오른 백두산 천지에서 김 위원장이 “천지 물을 다 담가서 앞으로 북남 간에 새로운 역사를 또 써 나가야겠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이 “제가 오면서 새로운 역사를 좀 썼지요.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도 다하고”라 답한 것에서 보듯 두 정상은 역사에 남을 새로운 평화의 미래를 열었다. 지난 18일 평양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북한 최고지도자 내외의 영접과 함께 ‘각하’라는 칭호로 인민군의 사열·분열을 받았다. 두 정상은 무개차를 이용해 카퍼레이드를 했다. 모두 최초였다. 남측 대통령의 친주민 행보는 강한 지도자상에 익숙한 북한 주민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으로 다가왔음 직하다. 문 대통령은 평양 공항에서 자신을 환영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거의 90도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고, 20일 백두산 인근 삼지연 공항에 나온 환영 인파와는 10명 넘게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또 문 대통령은 평양 현지 주민이 애용하는 식당인 대동강수산물식당에서 지난 19일 저녁 북한 시민과 격의 없이 담소를 나눴다. 같은 날 5·1 경기장에서는 남측 대통령 처음으로 북한 대중을 상대로 연설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15만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김 위원장과 나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며 북 주민에게 비핵화를 역설하는 대담한 파격을 보였다. 특히 평양공동선언문에는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 등 북 비핵화 합의가 최초로 담겼다. 남북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처음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약했다. 또 남북은 군사적 적대관계의 종식을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담은 ‘판문점선언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사실상의 불가침 합의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이 주변 참모들의 반대에도 서울 답방을 선언문에 명시한 것은 하이라이트였다. 연내 방문과 함께 종전선언이 이뤄질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문 대통령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내 김 위원장이 방문한다고 설명했는데, 향후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미”라며 “연내 종전선언이 성사되면 냉전체제가 완전히 끝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정부는 왜 평양선언을 ‘실질적 불가침·종전선언’이라 부를까

    정부는 왜 평양선언을 ‘실질적 불가침·종전선언’이라 부를까

    평양선언에 군사종식 담아 ‘사실상 불가침 합의’ 미국에 종전선언 나서라는 메시지라는 분석도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9월 평양공동선언’이 사실상의 종전선언 및 불가침 합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근거는 선언문에 모든 적대적 군사 행위의 종식이 담겼다는 점과 함께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합의문의 성격을 높게 평가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청와대의 생각은 그대로 참모들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9일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남북 간의 군사적 신뢰를 넘어 지상, 해상, 공중에서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화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합의했다”며 “이것은 ‘사실상 남북 간에 불가침 합의’를 한 것으로 저희는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최종건 청와대 평화군비통제비서관도 판문점선언 이행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해 “정부 입장에서는 ‘사실상 불가침 합의서’로 규정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청와대의 이런 평가와는 별개로 남북이 먼저 사실상의 불가침 및 준종전에 준하는 평화 국면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 종전선언을 포함해 군사긴장 완화 노력을 해달라는 메시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즉, 적대적 군사행위의 종식이 내용상 실질적 불가침 조약이자 실질적 종전선언이라는 의미다. 특히 청와대가 최근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를 추동할 수 있다고 반복해 언급한 것도 미국에 사실상 종전선언을 포함한 상응 조치를 요청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20일 “남북이 실질적인 종전 선언을 했다는 분위기를 띄워 남·북·미 간에 연내 종전선언을 이루려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남북 사이의 사실상 불가침 및 종전은 지지부진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는 유인책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불가침은 궁극적인 목표인 평화협정의 내용에 담길 부분이기 때문에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문법대로 마지막까지 불가침 부문의 진전이 없다면 북이 비핵화에 나설 동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윤영찬 청와대 홍보수석도 지난 19일 “이번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1953년부터 65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 정전 상태를 넘어 ‘실질적 종전을 선언’하고 그를 통해 조성된 평화를 바탕으로 공동번영으로 가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남북이 북·미 관계보다 너무 크게 앞서면 한·미 공조 균열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곧 남북 간 군비 통제 수준과 북·미 비핵화 협상의 속도에 균형을 맞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김정은, 서울 온다…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 제시

    김정은, 서울 온다…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 제시

    金 “연내 답방”… 北최고지도자 첫 남한 방문 육성으로 비핵화 첫 언급… 美 상응 조치 요구 트럼프 “北 핵사찰 허용 합의” 북·미회담 청신호 靑 “실질적 종전선언”… 文·金 오늘 백두산 방문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이틀째 정상회담을 갖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을 담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남한 방문이 이뤄진다면 분단 이후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이날 공동선언에는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도 담겼다. 선언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올해 안’을 의미한다”면서 “남북 관계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답방을 기정사실화했다. 선언문에서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의 참관(사찰) 아래 영구 폐쇄키로 했다. 또 미국이 향후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를 계속 진행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남북은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도 합의했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위협을 없애기로 합의했다”며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수십 년 세월 지속돼 온 처절하고 비극적인 대결과 적대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며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고자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밝혔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김정은 위원장이 핵사찰을 허용하는 데 합의했다”며 “그러는 동안 로켓과 핵실험이 더는 없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한·미 정상은 24일(현지시간) 유엔총회를 계기로 뉴욕에서 만나 비핵화 문제를 협의할 계획이다. 양 정상이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로광철 북 인민무력상은 부속합의서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체결했다. 육지는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총 10㎞ 범위에서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고 군용기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다. 동·서해의 최대 135㎞ 구역에서는 해안포·함포 포문을 닫기로 했다. 윤영찬 청와대 홍보수석은 “1953년부터 65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 정전 상태를 넘어 실질적 종전을 선언했다”고 평가했다. 또 남북은 2032년 공동으로 올림픽 개최를 신청키로 했으며,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상시화 방안을 마련했다. 조건이 마련되면(제재가 해제되면)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20일 남북 정상 최초로 백두산을 함께 방문한다. 평양공동취재단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北매체 ‘金 일정’ 파격 예고… 정상 만남 생중계는 안 해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 순안공항에서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 남측에 생중계로 전달됐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생중계되지 않았다. 다만 노동신문 등 다수의 북 매체는 문 대통령의 방북 당일 소식과 함께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내부 주민에게 전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역사적인 북남수괴상봉(남북정상회담)을 위하여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의 이행으로 되는 이번 평양수괴상봉은 새로운 역사를 펼쳐가는 북남관계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중대한 계기로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조선중앙통신, 라디오인 조선중앙방송 등은 이날 오전 6시부터 문 대통령의 평양 도착을 이례적으로 예고 기사로 전했다. 특히 …사전에 지도자의 일정을 극비로 삼는 북 매체가 김 위원장이 공항에서 직접 맞는 문 대통령의 방북 일정을 먼저 보도한 것은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남측에 생중계된 문 대통령이 도착한 순안공항의 현장 화면에 ‘중앙텔레비죤’이라고 적힌 중앙TV의 대형 중계차와 취재진이 분주하게 촬영 준비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지만 생중계는 하지 않았다. 남북이 양 정상의 첫 만남과 정상회담의 주요 일정을 생중계하기로 사전 합의한 만큼 북한도 주민에게 두 정상의 첫 만남을 TV 생중계로 보여 주는 ‘파격’을 선택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북측은 돌발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정상회담을 생방송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예고 보도 등을 통해 주민에게 평화 분위기를 전달했다”며 “남측 대통령이 방문할 정도로 전쟁 위협이 줄어들고 있으니 안정적으로 경제에 매진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北, 다함께 차차차·만남 등 90분 공연… 南, 대동여지도 선물

    北, 다함께 차차차·만남 등 90분 공연… 南, 대동여지도 선물

    평창 왔던 삼지연관현악단 화려한 무대 대극장 시민 900여명 기립 박수로 환영 文 “겨레 위하여” 건배사… 金 “길 열릴 것” 北 ‘두 정상 유화’ 답례… 음식 13종 나와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18일 평양대극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와 함께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했다. 이후 문 대통령 내외는 김 위원장 부부와 함께 북한의 국빈용 고급 연회장인 목란관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이날 오전 평양에 도착한 후 두 정상이 사실상 하루 대부분을 함께 지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시작된 첫 정상회담을 마치고 부인 김정숙 여사와 삼지연악단의 공연 관람을 위해 평양대극장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은 저녁 6시 15분 극장에 도착해 10분 후에 도착한 문 대통령을 맞았다. 대형 한반도기 앞에 마련된 객석 2층의 특별 좌석으로 양 정상이 모습을 드러내자 대극장을 가득 채운 평양 시민 900여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영했다. 삼지연관현악단은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흑산도 아가씨,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소양강 처녀, 다함께 차차차, 만남, 아침이슬 등의 곡을 1시간 30분가량 선보였다. 문 대통령 내외는 공연 직후 목란관으로 자리를 옮겨 김 위원장 내외가 주최한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남측이 선물로 준비해 온 대동여지도(420X930㎝)가 목란관 1층 로비에 전시됐다. 북측은 풍산개 사진과 함께 지난 5월 2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백두산 그림을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을 유화 그림으로 그려 선물로 준비했다. 음식은 칠면조말이랭찜, 상어날개 야자탕, 숭어국 등 13가지가 나왔다. 김 위원장은 환영사에서 “우리의 전진 도상에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고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북과 남이 서로 손을 맞잡고 뜻과 힘을 합쳐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때 길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며 “우리의 협력은 대륙을 가르고 러시아와 유럽에 이르고 바다를 건너 아세안과 인도에 이를 것”이라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또 “백두에서 한라까지 남북 8000만 겨레의 모두의 하나 됨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잔을 들어 건배를 청했다. 평양공동취재단·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文, 환호하는 시민과 악수하고 허리 숙여 90도 인사

    文, 환호하는 시민과 악수하고 허리 숙여 90도 인사

    文 “기내서 北 산천·평양 시내 보니 갈라진 땅이라고 전혀 느낄 수 없어”18일 오전 10시 15분쯤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걸으며 평양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돌연 시민에게 다가가더니 악수를 건넸다. 갑작스러운 문 대통령의 악수 세례에 시민들은 당황스러운 표정과 함께 얼떨결에 웃으면서 손을 잡았다. 잠시 스쳐 간 장면이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남측의 대통령이 북한 주민과 신체적 ‘접촉’을 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뿐 아니라 이번 문 대통령의 방북에서도 그런 장면은 누구도 상상치 못했다. 김 위원장도 문 대통령의 파격을 예상치 못한 듯 뒤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문 대통령은 악수를 건넨 것뿐 아니라 차량에 탑승하기 전 시민을 바라보며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여 평양 시민에게 인사했다. 최고지도자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북한 주민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문 대통령은 19일 환송만찬을 일반 북한 주민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가졌으면 한다는 희망을 북측에 이미 밝혀 놓고 있다. 북한 정치인이 아닌 일반주민에 대한 문 대통령의 ‘평화 공세’가 남북 관계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순안공항 도착 직후 항공기에서 내리기 직전 문 대통령이 밝힌 소회에도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고 실현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문 대통령은 “비행기에서 육지가 보일 때부터 내릴 때까지 북한 산천과 평양 시내를 쭉 봤다”며 “보기에는 갈라진 땅이라고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역시 우리 강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나는 백두산에 가긴 가되 중국이 아닌 북쪽으로 올라가겠다고 그동안 공언해 왔다”며 “중국 동포가 백두산으로 나를 여러 번 초청했지만 내가 했었던 그 말 때문에 늘 사양했었는데 그 말을 괜히 했나 보다 하고 후회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은 처음이지만 북한은 5번째 방문이다. 금강산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이산가족 상봉을 했고, 개성을 방문했고,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 통일각에서 2차 회담을 했다”며 “판문점 1차 회담 때 ‘깜짝 월경’까지 하면 모두 다섯 번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깜짝 월경은 문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1차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군사분계선(MDL)을 10초간 넘어갔던 것을 말한다. 이날의 격식 파괴는 5월 양 정상이 갑작스레 만난 2차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이때 문 대통령은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방북을 위해 청와대를 나서면서 참모에게 “남북이 자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정례화를 넘어 필요할 때 언제든 만나는 관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평양공동취재단·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文 “결실 맺자” 金 “더 큰 성과”… 비핵화 의지 강했다

    文 “결실 맺자” 金 “더 큰 성과”… 비핵화 의지 강했다

    2박 3일 평양 정상회담 시작 김정은 부부, 파격적 공항 영접 오늘 두 번째 ‘한반도 평화 담판’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노동당사)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북한 정상이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노동당사로 남측 대통령을 초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오후 3시 45분부터 시작된 정상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이 됐다. 다섯 달 만에 세 번을 만났는데 돌이켜보면 평창동계올림픽, 또 그 이전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있었고, 그 신년사에는 김 위원장의 대담한 결정이 있었다”며 “(지금까지) 과정은 김 위원장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김 위원장의 결단에 사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지고 있고 져야 할 무게를 절감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8000만 겨레에 한가위 선물로 풍성한 결과를 남기는 회담이 되길 바란다. 전 세계인에게도 평화와 번영의 결실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제 감정을 말씀드리면 ‘우리가 정말 가까워졌구나’ 하는 것”이라며 “(그간) 큰 성과가 있었는데 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 때문”이라고 사의를 표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큰 성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개선이라고 언급하며 “조·미(북·미) 상봉의 역사적 만남은 문 대통령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주변지역 정세가 안정되고, 앞으로 조·미 사이에도 계속 진전된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양 정상은 비핵화, 남북 관계 진전, 군사 긴장 완화 방안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현재 보유한 핵물질과 핵시설,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면 종전선언 등 미국의 ‘상응 조치’를 끌어내겠다며 구체적인 중재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19일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전향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긍정적 결론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군사 분야에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 조성,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가동 등을 담은 ‘포괄적 군사분야 합의’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방문단, 화상상봉, 서신교환 등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및 상시화를 놓고 양 정상은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심도 있는 협의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협 분야는 대북 제재 국면을 감안할 때 양측이 가시적인 합의를 내기보다는 일단 향후 대북 제재 해제 상황에 대비한 협력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이날 오후 만수대의사당에서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과 만날 계획이었지만 만남이 불발됐다. 북측 관계자들은 1시간가량 기다리다 돌아갔고 여야 3당 대표는 숙소인 고려호텔 로비에서 남측 취재진과 만나 “일정에 착오가 있었다”고 밝혔다. 평양공동취재단·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文, 환호하는 시민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허리 숙여 90도 인사

    文, 환호하는 시민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허리 숙여 90도 인사

    18일 오전 10시 15분쯤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걸으며 평양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돌연 시민에게 다가가더니 악수를 건넸다. 갑작스러운 문 대통령의 악수 세례에 시민들은 당황스러운 표정과 함께 얼떨결에 웃으면서 손을 잡았다.잠시 스쳐 간 장면이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남측의 대통령이 북한 주민과 신체적 ‘접촉’을 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뿐 아니라 이번 문 대통령의 방북에서도 그런 장면은 누구도 상상치 못했다. 김 위원장도 문 대통령의 파격을 예상치 못한 듯 뒤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문 대통령은 악수를 건넨 것뿐 아니라 차량에 탑승하기 전 시민을 바라보며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여 평양 시민에게 인사했다. 최고지도자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북한 주민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문 대통령은 19일 환송만찬을 일반 북한 주민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가졌으면 한다는 희망을 북측에 이미 밝혀 놓고 있다. 북한 정치인이 아닌 일반주민에 대한 문 대통령의 ‘평화 공세’가 남북 관계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순안공항 도착 직후 항공기에서 내리기 직전 문 대통령이 밝힌 소회에도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고 실현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문 대통령은 “비행기에서 육지가 보일 때부터 내릴 때까지 북한 산천과 평양 시내를 쭉 봤다”며 “보기에는 갈라진 땅이라고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역시 우리 강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나는 백두산에 가긴 가되 중국이 아닌 북쪽으로 올라가겠다고 그동안 공언해 왔다”며 “중국 동포가 백두산으로 나를 여러 번 초청했지만 내가 했었던 그 말 때문에 늘 사양했었는데 그 말을 괜히 했나 보다 하고 후회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은 처음이지만 북한은 5번째 방문이다. 금강산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이산가족 상봉을 했고, 개성을 방문했고,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 통일각에서 2차 회담을 했다”며 “판문점 1차 회담 때 ‘깜짝 월경’까지 하면 모두 다섯 번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깜짝 월경은 문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1차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군사분계선(MDL)을 10초간 넘어갔던 것을 말한다.  이날의 격식 파괴는 5월 양 정상이 갑작스레 만난 2차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이때 문 대통령은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방북을 위해 청와대를 나서면서 참모에게 “남북이 자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정례화를 넘어 필요할 때 언제든 만나는 관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평양공동취재단·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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