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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 발목잡는 카스트로/나윤도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쿠바의 미국 민간비행기 격추사건은 휴일인 25일 백악관을 어느때보다도 긴장되고 바쁜 날로 만들었다.최근 예비선거에서 공화당 대통령후보들의 혈전을 다소 느긋한 기분으로 감상하며 보스니아에서의 미군 사망자에만 신경을 쓰던 클린턴 대통령은 갑작스레 허를 찔린 기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사건 직후 쿠바를 강력히 비난한데 이어 이날 상오9시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페리 국방장관,도이치 CIA국장,셸리캐슈빌리 합참의장,레이크 안보담당보좌관등 안보관계자와 페나 교통장관을 소집,긴급 안보회의를 주재했다.3시간동안의 긴 회의를 마친후 그는 구체적 제재발표는 미룬채 유엔 안보리 이 달의 의장인 올브라이트 유엔주재 미대사에게 안보리 소집을 지시하고 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도 정확한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이날 밤 8시에 긴급 소집된 안보리에서는 여전히 쿠바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대표 세르게이 라프로프대사만 신중한 반응을 보였을뿐 다른 대표들은 쿠바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특히 중국의 진화손대사는 『1983년민항기인 KAL기 격추때는 냉전체제 때문에 소련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며 쿠바의 행위에 강력한 비난을 퍼부었다.그러나 안보리 역시 26일 다시 회의를 열어 부재중인 쿠바대사의 경위설명을 듣기로 하고 구체적 결론은 유보했다. 한편 27일 예비선거를 앞두고 아리조나주에서 유세중인 뷰캐넌,돌 등 공화당후보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쿠바에 대한 유화정책을 비난했다.그러나 당장 침공하는등 무력을 사용하자는 얘기는 아니라며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사실 미국은 쿠바에 대해 62년 미사일 위기이래 강력한 경제제재조치를 계속해오고 있으며 최근 미국내 쿠바인의 송금 해제,쿠바에 대한 여행규제완화,장거리 직통전화 개설 등 부분적인 완화를 해오고는 있지만 사실상 무력제재 이외에 더이상 쿠바에 가할 제재는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쿠바내 10억달러 이상을 들여 건설중인 핵발전소에 대한 북한식 해결을 바라고 있는 카스트로의 미국관심을 끌기 위한 도박이라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선거를 목전에둔 클린턴 대통령에게 강하게 나갈수록 득을 볼수 있다는 카스트로의 계산 때문이라는 것이다.왜냐하면 카스트로에게 클린턴은 아이젠하워부터 이미 9번째 상대하는 대통령이며 나름대로 미국대통령 다루기에는 일가견이 섰을테니 말이다.
  • 구소 격추 KAL기 생존자 한명도 없다/러 외무부 논평

    【모스크바 연합】 지난 83년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된 KAL 007기에 탑승했던 승객 중 일부가 생존해 있다는 일부 국내언론의 보도와 관련,러시아 외무부는 25일 KAL기 승객 중 생존자는 없다고 밝혔다.
  • 파월/「KAL기 격추」 배경 분석/자서전서 밝혀

    ◎구소장교 융통성 없는 법적용 탓/미대응 놓고 국방·국무 강온 대립 지난 83년 발생한 KAL기 격추 사건은 당시 소련지도자 유리 안드로포프가 엄격한 「국경에 관한 법」을 공포하는 등 해이한 군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것을 두려워한 소련군 장교들이 사고력이 없는 로봇처럼 법이 요구하는 바를 수행하려 한데서 출발한 것 같다고 콜린 파월 전미합참의장이 분석했다. 차기 미대통령 후보감으로 부상중인 파월은 최근 출간된 자서전 「나의 미국여행」에서 소련측이 민항기를 격추한 배경을 이같이 분석하면서 당시 와인버거 국방장관과 슐츠 국무장관은 KAL 007기 격추 사건의 대응 방식을 놓고 강온 정책상의 대립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KAL기 격추 사건을 자행한 소련을 악의 화신으로 규정한 와인버거 장관은 권선징악적 접근 방식을 취해 슐츠 장관에게 그로미코 소련외무장관과 예정되어 있던 마드리드 외무장관회담을 취소하도록 요구했다』면서 그러나 슐츠 국무장관은 소련을 진정으로 비난할지언정 KAL기 사건 때문에 미·소 공동이해 증진을 위한 협상에 차질을 빚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파월은 또 『단지 쿠바와 북한만이 정치적 이념적으로 죽은 시체(공산주의를 지칭)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그들 역시 역사의 조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구소외교문서를 보고/“러시아는 당·군문서도 내놔야”/이명영(기고)

    ◎「김일성 정체」 규명할 귀중한 사료 6·25남침전쟁과 관련된 구소련의 외교문서가 드디어 공개됐다. 러시아 외무부의 대외관계문서중 6·25관련 문서만 추린 것으로서 시기적으로는 1949년1월부터 1953년9월까지의 해당문서라고 하니 전쟁발발 1년반전부터 휴전이 성립한 두달후까지에 걸친 문서들이다.전쟁준비를 위해 북한과 소련과 중공이 어떻게 협력하며 움직였는가,또 그들이 일으켜놓은 전쟁의 진행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어떤 경위로 중공으로 하여금 참전케 했는가.그러고도 전선이 교착되자 어떤 순서로 휴전에 도달했는가 등이 소상히 기록된 문서의 공개였다. 이 문서들 속에서 우리는 몇가지 의미있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새로운 기록들을 찾을 수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문서들이다.그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는 내용들은 이미 모스크바의 신문이나 단행본으로 밝혀진 것들이다.그 기사나 논문들이 의거했던 출처가 바로 이번에 우리가 접한 문서들인 것이다.이 문서들로써 6·25전쟁이 남침이었다는 사실은 더이상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어졌다는 말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으나 그것은 단견이다.남침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면 북한의 당·정·군의 제1차 자료를 구사한 일본공산당의 기관지 적기의 평양특파원이었던 사람이 쓴 「조선전쟁」이란 책이 더 웅변으로,더 감동적으로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그는 워싱턴의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6·25때 미군이 북한지역에서 노획한 1백60만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통독한 사람이다. 여기 우리는 하나의 침통한 사실에 직면한다.6·25는 어느 한 사람이 숨어서 당한 일이 아니다.우리 국민 모두가 다 같이 한꺼번에 당한 일이다.6·25세대의 그 엄청난 역사적 재난의 증언이 바로 사실이며 그들의 머리속에 있는 기억이,그들이 남겨놓은 글들이 바로 역사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역사가 부정되고 역전되기 시작했다.새로 자라나는 세대들이 부형들의 역사를 믿지 않게 된 것이다.아들딸들에게 거부당한 천하의 어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한국이다.자식들에게 불신당하는 기성세대의 초췌한 모습을 보라.자기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남침을 입증해주는 외국의 자료들을 찾아헤맨 허무한 세월이 거기에 있지 않은가. 그래서 소련 외교부의 문서는 더욱 반가운 것이리라.그러나 그래도 끄덕하지 않을 젊은 세대는 얼마든지 있다.「남침이면 어떠냐,해방전쟁이면 그만이지」하는 논리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당파성의 원칙에 따라 조선노동당이 만들어낸 허위이론이 그만큼 깊이 젊은 세대 속에 침투되어 있는 것이다.김일성이 자기권력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남한을 「미제의 식민지」로,남한정부를 「미제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해놓고 해방과 혁명을 정당화해온 그 당파성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젊은이들이 있다.그 평양바람에 놀아난 사람들이 자라서 교수 국회의원·작가·신부·목사·기자,심지어는 정부관리까지 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이들을 재교육시키는 데는 6·25남침문서만 가지고서는 아니된다 함을 이 나라는 하루 속히 깨달아야 한다. 거기에 필요한 문서를 러시아는 가지고 있다.그것을 공개해야 한다.그것을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모두 외교부 문서인데 러시아과학 아카데미 산하 외교아카데미의 서고에 가면 다 볼 수 있는 것들이다.당문서와 군문서는 아직도 깊은 데 숨겨져 있다.이것이 공개되어야 한다.그래야만 동북항일연군시절의 북한 김일성의 정체가 규명되며,스탈린의 지령으로 김일성이 조국을 분단하던 상황이 밝혀진다.그래야만 6·25남침의 원설계자가 스탈린임이 밝혀진다.이번 문서는 교묘하게도 소련의 책임을 희석시킨 것들이다.마치 김일성이 스탈린이나 모택동과 동급으로 논 것같이 되어 있는데 어림없는 일이다.이미 모스크바에서는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남침결행을 독촉한 사실들이 밝혀져서 중대한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전에 옐친은 노태우대통령에게 귀중한 선물이랍시고 KAL기 격추에 관한 블랙박스란 것을 선사한 일이 있다.열어봤더니 별것이 아니었다.우리는 중대한 모욕을 당한 것이다.이번엔 또 6·25문서란 것을 받았다.별것이 아니었다.진짜 별것은 딴데 있는 것이다.또 우리는 모욕을 당했음을 알아야 한다.왜 옐친대통령은 한국을 깔보는 것인가.우리가 제대로 요구할 줄모르기 때문이다.정부의 역사의식이 천박하고 관계정보가 미숙하기 때문이다.평양바람에 놀아나는 사람들은 김일성의 혁명역사가 출중하고 조국분단도 「미제와 이승만역도」들이 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사실은 그 정반대임을 입증할 문서들이 러시아에 있는 것이다.
  • 김정일의 과격성 잊지말자/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대북정책 새접근)

    ◎대남정책 수정 약속때 대화해도 안늦어 우리 민족사에서 사상 유례없는 불행을 초래케한 장본인­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정권이 출현했다.이로써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통일의 최대 장애요인의 하나가 제거된 셈이다. 이제 북한에서 김일성의 권위때문에 표출하지 못했던 여러의견이 분출될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것이다.그렇다고 당장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왜냐하면 새로 등장한 김정일정권의 본질적 특성으로 보아 우리가 바라는 변화를 기대할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누구보다 강하게 「일당독재,중앙집권적 사회주의·계획경제를 개혁하는 것이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는 요인」이라고 주장해 왔다.따라서 김정일정권도 지금까지 선대가 추진했던 대내외 정책,대남전략을 계승·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김정일정권은 사라진 김일성정권처럼 여전히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통일의 새로운 장애물일 따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없다. 또 한가지유념할 것은 김정일정권의 장래문제이다.물론 앞으로 당분간 김정일체제는 유지될 것이다.과거 20년동안 김정일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전력했던 지원세력들은 계속적인 충성을 서약하고 있다.그러나 이들이 앞으로 변함없이 김일성생존때처럼 그를 지지할 것인가는 확실치 않다.정권인수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침체된 경제를 회생시키자면 개혁·개방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선대의 정책노선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그 과정에서 반드시 정책대결이 일어날 것이며 그것은 새로운 권력투쟁을 유발할 것이다. 아직 환영할 만한 정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정책을 변경할 것이라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특히 김정일정권의 장래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미리부터 정부가 김정일정권을 환영할 만한 정권으로 보는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환영할 수 있는 정권은 개혁·개방으로 전환하는 정권이어야 하며 핵개발을 중지하고 대남전략을 수정하여 남북관계를 확실하게 개선시킬 것을 확약하는 정권이어야 한다.과거 그가 자행한 대남도발(판문점 도끼만행,아웅산묘소 폭발테러,KAL기 격추,최은희·신상옥 부부납치등)로 보나 그의 이론과 정책으로 보나 선대정권에 못지않은 과격주의 경향을 지닌 정권이다.우리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유화적인 양보로 반대급부를 기대할수 있다는 확증은 전혀 없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 신중을 기하면서 상대방 정책이 밝혀질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김일성과 약속했던 남북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재개해야 한다는 생각도 성급한 것이다.상대가 바뀌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또한 장차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하여 할말도 하지못하는 유약성을 보여서는 안된다.무엇때문에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뭣이라는 것을 당당히 말해야 한다.어차피 남북관계는 밟아야 할 과정을 밟고 나야 해결될 것이다. 정부는 신중하면서 명백한 태도를 보여주기 바란다.특히 정치인들의 신중한 태도가 긴요하다.일부 야당국회의원들의 「김일성 조문」발언에서 우리사회의 대북인식이 얼마나 혼란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혼란된 대북관을 시정하지 않고는 본질상 전정권과 다름없는 김정일정권과 대응할수 없다.가장 위험스러운 것은 감상적 낙관적 자세이다.김정일개인의 성격으로 보나 권력구조 안정성여부로 보아 선대정권보다 김정일정권이 더욱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정부는 신중하고도 단호한 원칙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 “북핵관련 「최고급정보」 들었다”/김 대통령,한국특파원과 일문일답

    ◎대북한 무기판매 중단 결정 옐친의 결단/사할린동포 영구귀국 희망자 모두 수용 김영삼대통령과 모스크바 주재 한국특파원과의 3일 조찬 간담회 내용을 다음과 같다. ­이번 러시아 방문 성과를 어떻게 보는지. ▲이번 러시아 방문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한­러 관계는 외무부등을 통해서 잘 진행되고 있지만 정상외교를 통해서 해결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이번 방문에서 그러한 성과를 얻었다고 본다. ­북­러 군사동맹조약에 대해 옐친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계획인가. ▲옐친 대통령은 이 조약의 기한이 만료되는 2년후에는 갱신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뿐만 아니라 조약 폐기후에도 유사한 어떠한 동맹관계나 조약도체결하지 않겠다고 명백히 말했다.따라서 자동군사개입조항이 들어있는 이 조약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다.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무기 공급 문제에 어떠한 합의가 있었는가. ▲러시아는 지금까지 돈을 받고 북한에 무기와 부품 등을 판매해왔다.북한 무기의 80%가 러시아제이기 때문에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옐친 대통령에게 한반도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북한에 대한 무기와 부품 판매를 중단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이에 대해 옐친 대통령은 처음에는 다소 주저하는 빛이 있었으나 결국은 결단을 내려 앞으로 판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핵문제와 관련,북북한 제재에 관한 러시아측 입장은 무엇이고 향후 남북한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옐친 대통령은 제재가 금방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엔안보리의 결정,몇차례의경고 등 수순을 밟아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특히북한문제에 관한한 러시아는 가장 중요한 나라다.나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북한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북한이 도발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으며 분쇄할 준비를 완전히 갖췄다.북한은 현재 착각속에 살고 있다고 본다.남북한간에는 현재 어떠한 내밀한 교섭창구도 없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측으로부터 북한핵에 관한 정보를 들었는가. ▲최고급 비밀을 들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를 밝힐 수 없다.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대외정보처장을 접견할 예정인데 그로부터도 이와 관련한 얘기를 들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벌목공 처리에 관해 옐친 대통령의 견해는. ▲이 문제는 정상간 회담에서 완전히 매듭을 지었다.옐친 대통령은 본인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한국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한국행 출국은 자유라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나왔다. ­야쿠트 가스전개발에 관해 러시아측과의 합의내용은. ▲에너지 문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양국은 우선 각각 1천만달러 씩을 투자,예비타당성 조사를 착수키로 했다.야쿠트 가스전개발에 중요한 문제는 가스관이 북한을 경유하는 것이다.이에 대해 옐친 대통령은 북한과 이미 합의가 이뤄졌으며 따라서 가스관의 북한경유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잘 진행될 것으로 본다. ­KAJ기 보상 문제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은. ▲옐친 대통령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배상 책임이 항공사측에 있다고 한 것은 원칙적인 얘기다.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의 의의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두만강을지척에 두고 있으며 과거 우리 동포들의 연고지이기도 한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특히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선상에 오르는 것도 또다른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또한 연해주에 대한 한국 기업의 투자를 원활히하기 위한 법률적 준비를 해달라고 옐친 대통령에게 요청했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우리도 투자 장애가 되는 요소가 있으면 풀겠다. ­사할린 교포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한인 문제도 우리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는데. ▲사할린 교포중 모국으로의 영구 귀국을 원하는 사람은 모두 받아들이겠다.중앙아시아 한인문제에 관해서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에게 특별 배려해 줄 것을 요청하겠다. ­국내에서 러시아의 현 상황만을 보고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는데. ▲나도 우리나라에서 러시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에 대해 문제라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잠재력이 워낙 큰 나라다.또 통일이 되면 국경을 접경하는 국가이기도 하다.따라서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내가 보기에 뉴스보도에 있어서도 러시아는 워싱턴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스크바대 연설문 요지 나의 러시아방문은 이번으로 세번째 입니다.나는 러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모스크바대학을 방문했습니다.오늘 수여받은 명예박사학위로 모스크바대학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을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1년동안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을 방문했습니다.그 나라 지도자들과 새로운 세계질서와 21세기의 문명적 변화에 대하여 그리고 나의 조국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하여 진지하게 협의했습니다. 이제 나는 같은 목적으로 그리고 21세기를 향한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러시아연방을 공식 방문하고 있습니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한국전쟁과 1983년 KAL기 격추사건 등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습니다.그러나 오늘날 두나라 국민은 어두웠던 과거에 집착하기 보다는 밝은 미래를 여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관계가 정상화된지 4년도 안되었지만 두나라 사이의 교류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급속하고도 광범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분명한 것은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는 민족은 시대의 패배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말 바로 모스크바로부터의 개혁과 개방에서 비롯됐습니다.민주주의와 탈이데올로기가 돌이킬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으로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자원고갈시대의 자원부국이며 기술전쟁시대의 첨단기술대국입니다.그리고 무한한 잠재력과 불굴의 정신을 가진 위대한 국민이 있습니다.세계와 인류는 강력한 러시아,안정된 러시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러시아가 한국과 더불어 서로 협력하면서 아시아·태평양시대를 함께 열어 나갈 것을 제의합니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한국은 한 세대안에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모두 성취했습니다.한국의 민주주의는 30여년만에 출범한 문민정부와 더불어 본궤도에 들어섰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한국은 조선 자동차 전자 철강 등 주요산업에서 선진국과 경쟁할수 있는 세계 유수의 공업국가가 되었습니다.한국의 독특한 발전경험은 러시아에게 유익한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그것은 새로운 한·러관계,새로운 아시아의 평화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나는 북한이 개혁과 개방이라는 세계사의 큰 길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또한 시베리아개발등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번영을 위한 양국간의 경제협력과 기술협력도 필요합니다.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유라시아 협력의 아름다운 가교가 될 것입니다.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동서문명을 창조적으로 융합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21세기 평화의 세계문명 창조를 위한 역사적 도정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한국의 청년들과 우정과 협력의 아름다운 꿈을 키워 나가기를 바랍니다.한국인과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문화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랍니다. 나와 한국정부는 한국과 러시아간의 학술문화 교류에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나는 러시아와 한국의 청년들이 동과 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 외교가의 사람들/노진환지음(화제의 책)

    ◎취재기자가 본 5공 외교비사 지난 83년7월부터 2년반동안 외무부를 전담취재했던 일간지 기자가 밝히는 5공 외교비사. 그 당시가「아웅산묘소 참사」「옛소련의 KAL기 격추」「김만철일가의 귀순」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랐던 때였던데다 신군부세력과 집권자의 친인척들이 국정 각부문에서 갖은 물의를 일으키던 시절이어서인지 그만큼 뒷얘기가 푸짐하다. 또 노신영·이범석·이원경·최광수등 당시 외교수장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외교철학,우리 외교의 성공 또는 실패담도 적나나하게 그려져 있다. 이밖에 「버마정부의 아웅산사건 유엔보고서」「KAL기 피격시의 음성기록장치 해독내용」「역대 외무부장관 명단」등 관련자료들이 덧붙여졌다. 서울미디어 5천8백원.
  • KAL기 “소,간첩활동 안한것 알고 쐈다”/미 작가 세일리 주장

    ◎“안드로포프 사실은폐 참여/조종사 방심으로 항로이탈” 10년전인 83년 9월1일 대한항공(KAL)007기가 항로를 벗어나 소련령공에서 소련 제트 전투기에 격추당한 것은 꾸벅꾸벅 졸면서 방심한 조종사에게 대부분의 잘못이 있다고 그동안 이 사건을 면밀히 추적해온 미국 작가 머레이 세일리가 6일자 뉴요커지에서 주장했다. 세일리는 그러나 이 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문제의 KAL기가 소련정부의 공식발표처럼 간첩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음을 소련군 관계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은폐하는데 당시의 소련 공산당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가 참여했다고 결론짓고 있다. 세일리는 최근에 공개된 KAL007기의 비행기록과 조종석 대화테이프를 소련의 뉴스보도와 함께 인용해 이 여객기의 피격 및 폭파를 초래한 사건들을 순서대로 엮고있다. 세일리의 기사는 『KAL기가 단순히 항로를 이탈하는줄도 모르고 항로에서 벗어났으며 승무원의 반은 잠자고 있었다.소련측이 이 여객기가 군사목표가 될수 있다고 확신했다는 흔적은 전혀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 “KAL기 공해서 피격 가능성”/ICAO 전국장

    ◎보상문제에 새영향 예상 지난 83년 9월 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승객 2백69명이 희생된 대한항공 여객기 KE007기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소련상공이 아닌 공해상에서 격추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그동안 격추여객기가 승무원들의 부주의로 항로를 이탈,소련영공을 침범했고 따라서 소련전투기가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기존의 통설을 뒤엎는 것으로 보상문제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밀데 캐나다 맥길대 항공우주법연구소장(전국제민간항공기구 법률국장)은 2일 상오 공군사관학교 주최로 열린 제6회 항공·우주법 학술세미나에서 「항공기사고에 대한 법과 사례의 조사(KE007 10년후)」라는 논문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1993년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보고서를 인용,『피격후 승무원은 비행기에 대해 제한된 제어만을 할 수 있었고 비행기내부의 압력손실에 비상대처했으며(레이더의 기록에 따르면)피격후 비행기는 최소한 9분동안 나선형으로 추락하다가 바다에 침몰했다』고밝혔다.
  • “83년 KAL기 격추 미 첩보기로 오인탓”/러 신문 보도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모스크바 이즈베스티야지는 8일 지난 83년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된 KAL007기와 관련,진상조사에 참여한 러시아측전문가의 말을 인용,『당시 소련 방공군 전투기는 KAL007기를 미첩보기 RS135기로 오인,격추시켰다』고 보도했다. 이즈베스티야지는 루돌프 테무라조프 러시아 국제항공조사위원장의 말을 인용,『당시 소련 방공군이 사할린 상공에서 2대의 비행기를 잇따라 발견,그중 한대가 RS135기의 재급유기임을 확인했으며,따라서 앞서 지나간 KAL007기를 미첩보기 RS135기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 “KAL기 첩보기 아닌줄 알았지만 상부 질책 두려워 격추 명령”

    ◎당시 소 반공군 근무자 폭로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지난 83년 사할린 상공에서의 KAL기 격추 당시 소련방공군 근무자들은 이 비행기를 격추할 경우 국제적인 문제가 발생될 것을 알면서도 상부의 질책이 두려워 격추명령을 내렸다고 당시 사건 관련자가 25일 일간 「트루드」지 기고를 통해 밝혔다. 당시 소련방공군에 근무했고 KAL기 사건 직접 관련자중의 한 사람인 세르게이 벨랴츠키는 이 기고를 통해 『당시 우리 방공군 근무자들은 격추 여부를 결정해야할 순간에 처해 있었으며 격추할 경우 국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나 격추하지 않으면 상부의 질책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그의 이같은 증언은 당시 소련군당국이 KAL기가 첩보기가 아니었음을 알고서도 격추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서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및 러시아정부의 공식조사발표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KAL격추로 미·소 핵전쟁 위기”/워커 전특파원 영지 기고

    ◎미 핵배치계획에 소군기 경계령/61년 쿠바미사일위기 보다 심각 【런던 로이터 연합】 지난 83년에 터진 구소련의 KAL기격추사건때문에 당시 세계는 전면적인 핵전쟁에 휩싸일 뻔한 위기를 겪었었다고 영국 가디언지의 전모스크바주재 특파원이자 작가인 마틴 워커씨가 13일 밝혔다. 워커씨는 이날 가디언지에 실린 국제냉전사에 관한 기고문을 통해 구소련의 극비 전통문을 인용,『냉전기간중 모스크바의 소비밀경찰(KGB)이 서방국수도에서 암약중인 자체요원들에게 공격임박에 대비,안전조치를 강구토록 하라는 내용의 급전을 보낸 경우는 딱 2차례밖에 없었다』면서 이 중에서도 83년 구소련공군기의 KAL기격추사건은 냉전30년역사를 통틀어 동서양진영을 핵전면전 일보직전까지 몰고간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워커씨는 『세계를 핵전쟁 문턱에까지 몰고갔던 첫번째 사건은 바로 지난61년에 발생한 쿠바 미사일위기였다』면서 그러나 『거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바로 지난83년9월에 발생한 KAL기피격사건으로 인해 세계가 쿠바위기때보다 한층심각한 상황을 맞이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83년에 들어서면서 당시 미레이건행정부가 유럽에 신형핵미사일을 배치키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우주핵방위전략인 이른바 「스타워즈」구상을 발표함으로써 모스크바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기 시작했고 모스크바의 긴장은 그해 9월1일 소련공군기들의 KAL­007기격추사건이 터지면서 절정에 달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지도자들은 핵공격능력을 갖춘 소련항공기들이 경계태세에 돌입하고 동독의 기지들이 보강된 사실을 탐지한 후 소련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는점을 간파했으며 이에따라 레이건대통령이 기존 입장에서 후퇴,동­서진영의 긴장이 완화됐던 것이라고 워커씨는 회고했다.
  • 초라한 KAL기 희생자 추모비/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KAL 007기 격추 10주년을 맞아 러시아 당국 주관으로 희생자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된 1일 상오 사할린섬 남서부의 네벨스키시 행사장에 나온 한국측 유가족일행은 눈앞에 벌어진 기막힌 장면에 모두들 말들을 잊었다. 러시아당국이 세운 KAL 추모비는 1백평 남짓한 크기의 일본군 전몰자위령탑 경내 한구석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었다.높이 10m에 달하는 일본군 전몰자위령탑에 비해 높이 1m,가로 1m,세로 70㎝의 KAL추모비는 볼품도 없었고 황량하기까지 했다.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그토록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민간 여객기 격추행위에 대한 사과·애도의 뜻으로 세운 추모비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제막식이 끝나자 유족들은 러시아당국자들에게 거센 항의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정부대표와 추모비건립을 주관한 사할린주정부측의 설명은 유가족들이 추모비건립 일체를 자기들한테 일임했고 그래서 「관리하기 쉬운 장소라고 판단」,그곳에 세웠는데 무슨 소리냐는 식이었다. 추모비 자체에도 유족들의 항의가 뒤따랐다.유족들에 따르면 당초 지난 3월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러당국과 유가족대표자간 회의에서 러측이 8개의 석주로 받쳐진 대형건조물을 세우겠다며 설계도면까지 보여줘 합의해줬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분개해했다.그러나 러시아측은 『그렇게 합의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안중에 하나를 택해 제작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확한 경위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당국의 처사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KAL기 사고 10주년을 맞으며 러당국은 크게 두가지 조치를 취했다.대통령직속으로 설치된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최종 조사보고서를 발표한게 하나고 또 하나가 추모비건립이다.그리고 이 두가지 조치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쯤해서 「사건을 종결짓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러정부는 위령비건립에 보다 신경을 썼어야 옳다.결국 이런 식으로 한다면 사건의 종결은 더욱 어려워지고 새로운 문제만 만들어 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사건을 빨리 마무리짓고 잊고 싶은 쪽은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유골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고국땅에다 묻고 이제 잊고 싶다』며 추모제에 참석한 한 가족은 울먹였다.그리고 이를 위해선 유해발굴과 송환,배상문제등에 러당국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러당국은 그러나 배상문제에 대해서도 『군사영공을 침범한 여객기의 격추는 국제법상 정당하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배상금액의 과다를 떠나 이 문제에 대한 러시아측의 도덕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KAL기 배상 강력 촉구/오호츠크해 조업 협조도

    ◎한외무,방한 러외무차관 접견 한승주외무장관은 31일 방한한 러시아 게오르기 쿠나제외무차관의 예방을 받고 KAL기 배상,대러시아 경협차관 상환및 추가지급 동결,구제정러시아 정동대사관 부지 문제등 양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한장관은 이 자리에서 KAL기 격추사건 10주기 추모행사에 러시아측이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사의를 표명한뒤 『유족들에 대한 배상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사건이 해결된다』면서 러시아측에 배상을 촉구했다. 한장관은 오호츠크해역의 조업과 관련,『오는 10월까지는 조업을 중단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북단 경제수역에서 조업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고 쿠나제차관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양국 외무차관은 이와함께 대러시아 차관의 추가지급 중단문제는 다음달 양국간 실무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 KAL기 사고 유가족 2백명 대한항공에 74억 손배소

    ◎“조종사 과실로 항로이탈” 주장 지난 83년 9월1일 구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KAL 007기에 탑승했다 사망한 박홍순씨의 유가족 홍현모씨(서울 종로구 인사동9)등 사망자 49명의 유족 2백명은 31일 대한항공을 상대로 74억6천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홍씨등은 소장에서 『당시 사고는 기장등이 관성항법장치 대신 나침반으로 비행한 과실로 비행기가 항로를 6백60㎞나 이탈,소련 영공을 침범해 격추당한만큼 사망자 2백69명의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측은 이에대해 『사고 직후 유가족들이 향후 사고원인이 어떻게 밝혀지든지 법률적으로 문제삼지 않는다는데 합의해 사망자 1인당 10만달러씩 보상금을 지급했다』면서 『10년이 지난 이제 와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입장을 밝혔다.
  • 러시아,KAL기격추 책임없다니(사설)

    승객과 승무원 2백69명을 태운 대한항공(KAL)747 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옛소련 전폭기에 격추당한지 오늘로 꼭 10주년이다.민간여객기를 격추하는 행위를 서슴지않았던 공산독재의 옛소련은 이미 붕괴되고 이를 승계한 러시아는 오는 30일로 우리와의 수교 3주년을 맞는다. 상식적으로 지금쯤 양국관계는 모든 문제를 해소하고 순조로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KAL기사건의 깨끗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차관상환문제와 관련된 러시아의 의무불이행으로 우리정부의 차관제공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우리는 이같은 상황전개의 주된 책임이 러시아측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KAL기사건의 경우 블랙박스를 조사한 국제민항기구(ICAO)의 지난 6월 최종보고서 결론은 사고 KAL기 항로이탈및 영공침범 책임은 조종사들에게 있으나 이를 요격한 옛소련전투기들은 민항기여부 식별에 대한 충분한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바 있다.사실이 그러하다면 그 처리와 청산의 방향은 분명하다.공동책임의 보상밖에 없는 것이다.따라서 우리정부가 러시아에 배상을 요청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반응은 그런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었다.의도적으로 KAL조종사들의 책임만 강조한 러시아정부 자체조사보고서는 배상책임의 전가에만 급급한 인상을 주고있다.뿐아니라 10주년 추모행사도 의도적으로 격하하는등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물론 1차적 원인제공은 KAL측 조종사들에게 있다고 할수도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민간여객기에 대해 충분한 식별노력이나 강제착륙등 인도적 노력을 전혀 외면한채 무자비하게 격추시켜버린 만행의 책임이 면제되는것은 아니다. 특히 러시아는 사건이 냉전의 고조기에 발생한 것으로 옛소련 공산정권이 책임져야할 일이며 러시아가 배상할 성질이 아니라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러시아는 이미 옛소련의 계승자로 모든 국제적 권리와 의무의 승계를 선언한 바 있다.이제 러시아는 권리만 계승하고 책임은 외면하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차관문제에 대한 대응도 그런 비난을 면키어려울 것이다. 러시아는 당장의 어려움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여 보다 크고 장기적인 국가이익을 희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것이다. KAL문제에 대한 대응은 민주러시아의 국가적 체면과 양심을 시험하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다.뿐아니라 한국은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극동우방이 될수있는 잠재국의 하나다.우리는 양국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을 희망한다.러시아의 현명한 대응이 있어야 할것이다.
  • 러,KAL격추 조사결과 발표/배상거부 강력 시사

    ◎조종사 과실 중점 부각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러시아정부는 30일 상오(모스크바시간)지난 83년 사할린 상공에서 구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KAL기 사건에 대한 러시아측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러시아 KAL사건 조사위원장인 세르게이 필라토프 대통령행정실장은 이날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측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구소련의 격추행위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필라토프위원장은 이날 ▲KAL기 비행승무원들이 앵커리지공항 이륙뒤 항로이탈 6시간이 지나도록 잘못 입력된 비행자료들을 검토치 않았고 ▲요격에 나선 구소련공군기의 수차례의 교신노력에 응답치 않았으며 ▲미사일 발사전 수차례의 경고사격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등을 들어 격추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러시아측의 조사결론은 대체로 지난 6월 발표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최종보고서와 유사한 것이나 KAL측 과실을 보다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필라토프위원장은 당시 KAL기의 소련영공 침범은 국제법상 위법이었다면서 격추행위 자체를 옹호하는등 지금까지와는 달리 강경한 태도를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 배상책임 회피 사전포석/러 KAL기사건 왜 꽁무니 빼나

    ◎구소문제 치부 논의자체 거부 시각도/위령탑건립 등 난제 산적… 마찰 불가피 지난 83년의 대한항공(KAL)기 격추사건에 대해 「유족들에 대한 애도」및 「정부차원의 배상협의」 운운하던 러시아가 30일 종래의 신축적인 입장에서 후퇴,책임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도 배상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지난 16일 외교경로를 통해 정식으로 배상을 요구해놓고 있는 한국과 러시아간에 KAL기사건의 처리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이날 발표한 내용은 그러나 ICAO가 KAL승무원들의 과실에 이어 두번째 주요 사고요인으로 지적한 민간항공기여부를 식별하기 위한 소전투기의 노력 결여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은 배상문제와 관련,자국측에 불리한 책임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시하려는 러시아의 사전포석으로 보여 앞으로 한·러간의 KAL기사건 논의에서 핵심관건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는 이달 초 KAL기 격추 10주년인 9월1일 사할린섬에서 추모판 제막식을갖기로 하고 한·미·일 3개국의 정부대표및 유족대표들에게 참석을 요청했다.하지만 배상문제가 제기되자 제막식에서 추모사를 낭독할 러시아정부 대표의 지위를 격하시키는가 하면 참석자들에게 항공료·숙박비 등 비용 일체를 부담시키는 태도변화를 보였다. KAL기사건의 사후처리에는 배상문제 외에도 희생자 2백69명의 유해및 유품 회수문제,유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위령탑 건립문제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모스크바의 서방외교관들중에는 러시아의 이같은 태도변화가 최근 체코의 「프라하의 봄」 유혈진압,소련군의 리투아니아 강점 등을 모두 구소련의 행위라며 책임을 회피한 사례에서 보듯 종국적으로는 KAL기사건이 구소련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기 위한 사전단계로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 러에 배상책임/정부,거듭 확인

    정부는 30일 러시아정부가 KAL기 격추사건과 관련,불가피하고 적법한 행위였다고 주장한데 대해 『엄연한 국제법 위반이므로 러시아측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거듭 확인했다. 외무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날 『당시 항로를 이탈한 KAL기의 과실도 분명히 인정된다』고 말하고 『그러나 민간항공기인줄 알고서도 이를 요격한 것은 별개의 문제로서 잘못된 행위』라고 강조했다.
  • “KAL희생자 유해·유품 공개”/「러」정부,“한국과 반환협상용의”

    ◎새달 피격10주기 맞아 사할린서 추모행사 러시아정부는 KAL 007기 격추사고 10주기를 맞아 다음달 1일 사할린 네벨리스크시 현지에서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갖는등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모비는 석재로 크기와 비문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정부는 또 그동안 수거해 놓은 유해와 유품을 유족들에게 최초로 공개하는 한편 유족들이 원할 경우 반환을 위한 한·러시아 실무협의를 개최할 용의가 있음을 우리정부에 알려왔다. 정부는 이에따라 추모행사에 참가한 유족대표들이 귀국하는 대로 이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유해및 유품반환협상을 벌일 방침이다. 러시아정부는 이와함께 KAL기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유감을 표시하는 뜻에서 오는 31일 부산항에 입항할 예정인 러시아함대에 조기를 게양하고 8백명의 선원이 일제히 묵념을 올리기로 했다. 정부는 그러나 러시아측의 이같은 조치를 외교적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우리측이 요구한 배상문제와는 별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알려졌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당국자는 28일 『정부는 지난 19일 주러시아한국대사관을 통해 우리의 배상요구를 공식 전달한 바 있다』면서 『다음주중으로 러시아측의 공식답변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현재 우리측의 입장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최종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라 구소련측이 민간항공기에 대한 적절한 요격절차를 생략한 만큼 책임이 있다는 입장인 반면 러시아측은 KAL조종사의 과실이 인정됐으므로 KAL측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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