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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맞수 CEO]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vs 신헌철 SK 사장

    [우리는 맞수 CEO]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vs 신헌철 SK 사장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과 신헌철(60) SK㈜ 사장은 국내 정유업계를 이끌고 있는 ‘산증인’이다. 허 회장은 LG그룹 구씨 집안의 동업자였던 고 허만정 회장의 손자로 GS칼텍스의 CEO를 12년째 맡아 오고 있다. 허 회장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평생을 에너지업에 종사하며 한길을 걸어오고 있다. 반면 신 사장은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해 영업전선을 두루 누빈 뒤 SK가스와 SK텔레콤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친정인 SK㈜ 사장에 취임한 정통 ‘정유맨’이다. 현재 정유업계의 시장점유율은 SK㈜가 33%,GS칼텍스가 31%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최근 SK㈜가 인천정유를 인수, 사실상 두 회사가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해외 자원개발에 매진 허 회장과 신 사장은 앞으로 에너지 산업이 IT나 전자산업을 넘어 국가경쟁을 좌우하게 되는 핵심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중남미·아프리카 등 자원 보유국들이 자원개발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직접 관리하고 있어 정유업계가 적극적인 해외자원 개발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견해다. 신 사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자주 원유공급률이 3.8%에 불과하다.”며 “이는 일본의 11.5%와 비교할 때 미약한 수준”이라며 해외 유망 광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SK㈜는 12개국 20개 광구에서 원유 및 천연가스 탐사·생산을 하고 있으며, 연간 국내 원유 소비물량(약 7억배럴)의 40%에 해당하는 3억배럴의 보유매장량을 확보하고 있다. 허 회장도 “우리나라가 에너지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원유에 대한 안정적인 확보가 중요하다.”며 “2010년까지 원유 도입량의 10% 이상을 자체적으로 개발한 유전에서 원유를 확보할 계획”이라며 해외 유전개발 사례를 들었다.GS칼텍스는 캄보디아 블록A광구에 대한 탐사작업을 비롯해 중동, 동남아시아, 러시아 등에서도 탐사작업을 검토하고 있다. 이밖에도 두 CEO는 석유와 석유화학사업은 물론 도시가스,LNG, 전력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신재생에너지 개발에도 적극 나서는 등 세계적인 종합에너지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는 경영철학 허 회장과 신 사장의 경영철학과 스타일이 무척 닮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허 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정도경영’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활동으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라며 “사람이나 조직이나 기본이 잘 돼 있으면 커다란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라톤 경영’의 전도사인 신 사장도 허 회장의 철학에 동감한다. 신 사장은 “마라톤에서 너무 욕심을 내고 달린 사람은 절대 결승점을 통과할 수 없다.”며 “기업도 마라톤처럼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투자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며 ‘성실경영론’을 피력했다. ●적이자 동지 신 사장과 허 회장은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남달랐다. 시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 경영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신뢰감과 존경을 표시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허 회장은 신 사장에 대해 “지난해부터 SK㈜를 이끌며 소버린 사건 등 어려운 난제 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며 굵직한 현안들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뛰어난 CEO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라톤을 즐기는 신 사장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역경을 잘 헤쳐 나가리라 생각된다.”며 덕담을 잊지 않았다. 신 사장도 “전문경영인에 불과한 나와 정유업계에서 30년 이상을 재직한 허 회장을 비교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소탈한 모습으로 늘 밝게 웃으며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 주는 허 회장을 늘 존경하고 있다.”며 치켜세웠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새방송 자본금 규모 얼마될까

    새방송 자본금 규모 얼마될까

    지난해 방송이 중단된 경인방송(iTV) 후속대책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번 주부터 본 궤도에 오른다. 방송위원회는 iTV를 이을 새방송 사업사 선정 과정에 필요한 세부적인 선정 기준을 마련,11일 의결하는 데 이어 이 의결안을 가지고 14일 공청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방송위는 최준근 연구센터장을 중심으로 경인방송 후속대책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팀도 구성해둔 상태다. 일단 관심은 방송위가 제시한 세부적인 선정 기준에 쏠리고 있다. 선정 기준이나 배점 기준은 방송위가 그리고 있는 새 방송사업자에 대한 그림의 일단을 내비쳐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11일 의결 뒤 공개할 것으로 보이는 새 사업자의 자본금 규모가 초미의 관심사다.iTV 실패의 주된 원인이 경영난이었기 때문이다. ●방송권역 확대, 약일까 독일까? 방송위가 지난달 7일 새 방송사업자 선정 일정을 공개했을 때 ‘약’과 ‘독’이 함께 들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특히 경기 북부지역까지 방송권역을 확대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약’으로 보는 쪽은 iTV 당시부터 숙원이 해결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쨌든 방송권역 확대는 안정적인 경영기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독’이라 보는 쪽은 덩치가 커질수록 ‘힘의 논리’가 관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든다. 이미 방송위가 새 방송사업자의 선정 기준으로 ‘초기 자본금 2000억원 이상’을 제시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기본 비용 1000억원대에다 2∼3년간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비용까지 계산해 보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 비용을 생각했기에 권역확대가 결정됐고, 그 결정의 커튼 뒤에서는 누군가 웃고 있다는 ‘음모론’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제2의 SBS 창사는 안된다” 이 음모론이 현실화될 경우 방송계는 또 한번 회오리에 휘말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SBS 창사 때처럼 시청률 경쟁이 격화되고 방송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언론노조,KBS·MBC·SBS·EBS노조,PD연합회·아나운서협회·방송기술인협회 등 거의 모든 방송 관련 단체들이 iTV노조를 이어받은 새방송창사준비위원회에 대한 지지선언을 낸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준비위측은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사업 참여를 준비해 왔지만, 거액의 자본 유치는 쉽지 않은 실정. 따라서 자본금 덩치가 지나치게 커지지 말아야 준비위쪽은 ‘불리한 자본력’이란 핸디캡에서 벗어나고, 다른 방송사들은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측면이 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제2의 SBS화 ▲외주 중심 채널화 ▲재벌과 족벌신문 우회 참가 등 3가지 반대사항을 내걸었다. 준비위 노중일 언론홍보국장은 “SBS가 개국할 때 자본금 800억원으로 시작한 것에서 보듯 자본금이 1000억∼1500억원이면 탄탄한 기반 위에서 출발할 수 있다.2000억원 이상으로 넘어가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는 ‘SBS창사 때와 같은 무분별한 시청률 경쟁’을 들었다. ●물밑 작업의 결론은 대타협? 방송위는 구체적 액수는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자본금이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iTV의 실패 원인이 만성적인 적자구조였던 만큼 “어쨌든 또 망하게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본금의 규모와 주요 배점 기준이 공개되면 각 사업자들간 물밑 작업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CBS는 이미 ‘공익적 민영방송’을 컨셉트로 내걸고, 종교방송이라는 색채를 벗기 위해 법인명도 ‘기독교방송’에서 ‘시비에스’로 바꿨다. 지난 5일 이사회를 통해 사업 참여를 공식선언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역시 구체적인 사업계획서 작성에 들어갔다. 이와 동시에 탐색전도 한창이다.‘방송철학이 없이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거나 거꾸로 ‘돈 없이 철 지난 방송철학만 내밀고 있다.’는 식의 상호비방전도 있지만 ‘막판 대타결’ 가능성 때문에 공개적인 언급은 없다. 여기서 방송위가 생각 외로 ‘큰 액수’를 흘리고 있다는 점을 유심히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큰 자본금을 명분으로 다양한 사업자들을 끌어들일 경우 방송위로서도 특혜시비를 피할 수 있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 “한국IT분야 등 화상 투자 최적지”

    中 “한국IT분야 등 화상 투자 최적지”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한 상호발전만이 상생할 수 있는 길입니다.”10일 제8차 세계화상대회 IT 포럼에 참여한 한·중 업계 대표들은 양국의 협력 의지를 확인하는 데 중점을 뒀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디지털 신성장동력과 한·화교권 국가간 협력방안’을 주제로 열린 IT 발표에는 류촨즈(柳傳志) 롄샹그룹 회장, 왕동성(王東升) 비오이(BOE)그룹 회장,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 이희국 LG전자 사장, 이철상 VK 사장 등 발제자를 비롯해 400여명의 IT 관계자들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中의 해외M&A 부정적 인식 해소 노력 중국 대표들은 중국의 해외기업 인수·합병 사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불식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2004년 중국 IBM의 PC부문을 인수하며 중국 IT기업 2위로 부상한 롄샹그룹의 류촨즈(61) 회장은 “명확한 목적과 전략으로 문제에 대처할 때 기업간 인수·합병은 성공할 수 있다.”면서 “롄샹은 중국 IBM PC사업부문 인수뒤 기업간 융합과 핵심인재 이탈을 막는 데 총력을 쏟은 결과 업계 우려와 달리 인수 이후에도 연 6%의 성장률을 보이며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동성(47) 비오이(BOE)그룹 회장은 ‘중·한 협력을 통한 미래창조’란 주제의 발표에서 지난 2003년 현대 하이닉스의 디플레이부문 자회사인 하이디스 인수 경험을 사례로 들면서 “중국의 자본, 노동력과 한국의 노하우 및 기술이 결합해 하이디스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수 있었다.”면서 “한국으로부터 5억 5000만달러에 달하는 수입이 유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적자원, 연구개발(R&D)환경, 브랜드와 물류인프라 등 한국은 화상 투자의 최적지”라면서 “명확한 전략을 수립해 중·한간 상호보완적 이점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중 상생만이 살 길” 국내 인사들은 협력 의지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황창규(52) 삼성전자 사장은 “한국의 경쟁력인 상용화기술과 중국의 우수분야인 기초과학이 함께 시너지를 낼 때 미래 IT를 이끌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면서 “삼성전자는 중국의 우수 인력을 끌어들일 계획이 있고 그 일환으로 오는 11월 베이징대에서 특강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IT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향후 한·중 윈-윈 모델을 발굴하고 실천하는 일이 관건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의 사업이 나날이 발전하고 우의가 영원하길 바란다.”며 중국어 실력을 발휘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희국(53) LG전자 사장은 ‘한·중 전자산업간 협력 기회’란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그는 “한국과 중국이 공동 연구개발, 정보교류, 국제인턴십 프로그램 등 상호 협력채널 구축을 통해 선진국들의 기술 장벽에 공동 대응하며 협력 관계를 열어나가야 한다.”면서 “차세대 기술표준에 대한 협력을 통해 비용이 아닌 가치경쟁으로 함께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밖에 LG는 이미 중국에서 1만 4000명에 달하는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한편 베이징·칭화대 등과 3세대 휴대전화 표준을 공동 연구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철상(38) VK 사장은 ‘한·중 모바일산업협력 방안’을 주제로 ▲한·중 이동통신사업자간 공동서비스개발을 통한 아시아지역의 단일 모바일서비스▲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특허공유▲한·중간 선행기술의 과감한 채택을 통한 표준화 등을 제안했다. ●BT분야…성과 도출 한편 같은 시간 열린 BT(생명공학) 포럼에서는 한·중 양국간 협력 가능성이 높은 유망바이오 분야에 대한 협력 모델이 집중 제시됐다. 특히 이 포럼을 통해 국내 바이오벤처기업인 라이프코드인터내셔널㈜과 중국 베이징대학 웨이밍 바이오테크 그룹이 조직공학 및 유전자약물 분야의 사업화를 위해 200만달러를 공동투자키로 합의했다. 최수환 라이프코드인터내셔널 사장은 “국내 바이오벤처가 중국내 법인을 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면서 “이를 계기로 한·중 기업간 바이오산업분야의 실질적인 협력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효성가(家)의 2세 경영이 닻을 올린 지 30여년. 선친인 만우 조홍제 회장의 ‘유훈 경영’ 방침대로 효성은 내실과 외양을 조화시키며 튼튼한 중견 그룹으로 커왔다. 대신 2세들의 분가와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축소된 사세(社勢)는 아직 옛 영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3세들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효성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안정 지향의 경영 색깔에서 도전과 진취가 ‘경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효성은 올해를 ‘뉴스타트의 해’로 삼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 선두주자에 효성의 3세 경영인들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의 성공적인 착근이 ‘신(新) 효성’의 성공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세 분가 효성가(家)의 2세 분가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만우 회장이 3형제(조석래-양래-욱래)에게 일찍이 효성의 주력 기업을 하나씩 떠맡기면서 독립 경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우 회장은 “3형제가 장성했고, 기업의 경영책임자로서 제몫을 다하는 만큼 앞으로 지켜볼 따름”이라며 1978년 사실상 기업경영에서 손을 뗐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은 70년대부터 주력 기업인 효성물산과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4개사 모두 ㈜효성으로 통합) 등을 맡았다. 차남인 조양래(68) 회장은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았다. 성격이 활달한 3남 조욱래(56)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전피혁 사장에 올랐다.3형제는 이후 분리 경영을 해오다가 1980년부터 주거래 은행까지 달리할 정도로 철저한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83년 그룹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제2의 창업’을 선언, 화섬과 중전기, 화학, 건설, 정보통신 등으로 효성을 키워오고 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한국타이어와 한국전지, 한타M&B 등을 통해 타이어사업의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반면 3남 조욱래 동성개발 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효성기계 부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권토중래를 모색 중이다. ●만우 회장과 4자성어 2세 경영의 특징은 선친의 ‘유훈 경영’과 밀접하다. 만우 회장이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다. 그는 세 아들에게 ‘항상 가까이 두고 뜻을 새기라.’는 차원에서 각각 휘호를 하나씩 줬다. 장남인 효성 조 회장에겐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라는 뜻에서 ‘숭덕광업(崇德廣業)’이란 글귀를 남겼다. 차남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쉬지 말고 힘을 길러라’라는 뜻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글귀를 받았다. 막내인 동성개발 조 회장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4자성어를 받았다. 자식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우 회장의 일종의 ‘자식 사랑’인 셈이었다. 2세들도 선친의 뜻에 따라 지금껏 경영을 해오고 있다. 효성 조 회장은 화학과 정보통신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갔고, 특히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문어발식 기업 확장 대신에 타이어 ‘한우물 경영’에 충실했다. ●학자풍의 조석래 회장 조 회장은 학구적이며 논리적이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가끔은 융통성이 없다거나 보수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조 회장은 조씨가(家)의 학자풍 스타일 면에서 선친을 가장 많이 닮았다. 만우 회장과 조 회장 모두 젊은 시절엔 기업인보다 대학 교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조 회장의 이런 학자적 소양은 경영에 발을 내디딘 초기부터 많은 빛을 봤다.74년 초 오일쇼크의 여파로 나일론 원자재가 품귀 현상을 빚었을 때 슬기롭게 넘긴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 회장은 나일론의 원자재인 ‘카프로락탐’ 구입난에 직면하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완성품인 카프로락탐의 직접 구입보다 매입이 더 쉬운 기초 원자재를 구입해 카프로락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조 회장의 광범위한 정보 획득과 주도 면밀한 연구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던 착상이었다. 조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해 홀로 고군분투를 하던 선친의 부름을 받고,1966년 효성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나일론 원사사업을 세계 4위까지 육성시켰으며,1975년엔 폴리에스터 공장을 준공해 효성을 명실상부한 화섬업계의 리더로 이끌었다. 또 한·미 재계회의와 한·일 경제인 회의,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등의 리더로서 국제 협력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길경영’과 ‘권토중래’ 조양래(67) 한국타이어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하고,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조 회장은 5년 전에 산 국산 브랜드의 구두를 여태껏 신고 다닌다. 아직 쓸 만하다는 것이다. 조 회장이 하루는 직원들과 식당에 밥먹으러 갔는데 너무 구두가 낡아서, 직원들이 회장 구두를 찾지 못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언론에 얼굴 내밀기를 싫어하는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 사장 시절에 딱 한 번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 사진 기자가 인터뷰용 사진을 여러 장 찍는 것을 본 조 회장은 “무슨 전문가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가. 전문가이면 사진을 한 번만 찍으면 되는 것을. 필름만 그저 아깝게….”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해외 출장에 수행원을 두지 않고 다닌다. 또 숙소도 일반 출장자들이 주로 머무르는 2급호텔에 투숙한다. 그의 이런 검소함과 치밀함은 한국타이어 경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이후 조 회장은 줄곧 타이어사업 하나만 매진해 세계 9대 타이어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조 회장은 1988년 “경영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은 현재 한국타이어 복지재단 회장직을 맡아 ‘미신고 복지시설’ 지원 등에 앞장서고 있다. 3남인 조욱래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대전피혁 사장에 취임,10년만에 대성과 효성알미늄, 효성금속, 효성기계, 동성, 동성개발 등 총 8개 계열사로 늘리는 경영 수완을 보였다. 특히 일본 스즈키사와 제휴해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효성기계를 설립, 한때 대림산업과 함께 국내 오토바이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책임·내실 경영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한파는 효성기계를 어렵게 했다. ●효성가 3세 효성가 3세(조현준-현문-현상)들은 경영수업의 첫발을 모두 외국 회사에서 내디뎠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모건스탠리를 거쳐 97년 부친인 조 회장의 부름을 받고,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효성에 입사했다. 차남 조 전무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99년 효성 경영전략 2팀장으로 합류했다. 막내 조 상무는 세계적 경영컨설팅사인 베인&컴퍼니와 일본의 세계적인 통신사인 NTT도코모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효성에 입사했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미국의 명문고인 세인트 폴 고교를 나와 예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효성맨’이 된 조 부사장은 효성의 독특한 사업구조인 퍼포먼스유닛(PU)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섬유·산업자재·무역·정보통신 등 주요 사업군을 ㈜효성의 우산 아래로 모으면서 효성T&C(옛 동양나이론)·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을 합병시키는 등 굵직한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차남인 조 전무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했다. 고교 시절 조 전무의 별명은 ‘바야바’. 큰 키에 모범생인 그를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다. 그는 98년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99년 효성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조 전무는 국제 변호사로서 큰 역할을 해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온 것.99년 닷컴 도메인을 선점한 사이버 ‘스쿼터(도메인 매점매석 행위자)’가 수억원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 도메인등록협회와 미 법원에 제소,‘효성닷컴’을 찾아왔다. 미국 브라운대 출신인 3남인 조현상 상무는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오랜 직장 경험을 쌓았다. 그는 사내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다. 조 상무는 현재 그룹의 핵심 현안인 성장엔진 발굴을 위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으며, 그룹 장기전략 수립과 기업이미지 개선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3세들의 역할이 날로 확대되고 있지만 3세들의 경영 승계 시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 회장이 아직 정정한 데다 3세들이 배울 것이 많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타이어의 3세 경영도 관심이 쏠린다.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업무 권한을 팀장들에게 대폭 위임,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덕장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차남인 조현범 상무는 치밀한 분석력과 폭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스타일.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3세 혼맥 조씨가(家)의 3세 혼맥도 국내 명망가와 혈연으로 잘 엮여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두환 전 대통령가(家)와 ‘사돈의 사돈’이라는 것과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이라는 점이다. 또 권노갑 전 의원과도 ‘사돈의 사돈’이다.2세 혼맥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家)와 통혼으로 이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조씨가는 국내 내로라하는 정치 가문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만우 회장이 일부러 정치권을 기피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는 매우 뜻밖의 사실이다. 조석래 회장과 송광자(61) 여사는 슬하에 3남을 뒀다. 장남인 조현준(37) 효성 부사장은 2001년 11월 한국제분 이희상 회장의 3녀인 미경(29)씨와 결혼했다. 양가가 서로 안면이 있는 데다 미경씨의 형부가 적극 나서면서 서로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 테니스와 연주회 등을 관람하면서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결혼식은 조 부사장의 모교인 세인트 폴 고교에서 했다. 현재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조 부사장의 처가인 이희상가(家)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간이다. 한국제분 이 회장(60)은 부인 정영화(59)씨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인 윤혜(34)씨가 전 전 대통령의 3남인 재만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부사장과 재만씨는 동서간이다. 차남 조현문(36) 효성 전무는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 여진(31)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진씨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거쳐 뉴욕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재원. 노무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다가 지금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조 회장과 송 여사가 이어줬다. 시부모와 며느리간 첫 만남은 2001년 6월 한·미 재계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진씨는 당시 미국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로, 한·미 재계회의엔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연례회의에서 조 회장 부부와 여진씨는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됐다. 인연은 다음해에 또 이어졌다.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 세 사람은 같은 일정을 보내게 됐다. 당시 장남인 조 부사장이 막 결혼을 한 시기여서 주변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던 송 여사는 이렇게 화답했다고 한다.“아직 두명을 더 보내야 한다.”고. 이후 조 회장은 조 전무에게 여진씨를 소개해줬고, 두 사람은 3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조 회장과 여진씨의 부친인 이 전 청장과는 서로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으며, 조 전무의 동생인 조현상 상무와 여진씨의 오빠는 미국 브라운대의 선후배 사이일 정도로 양가는 사돈으로 맺어지기 전부터 가까웠다.3남 조 상무(34)는 아직 미혼이다. 효성가의 방계 3세들의 혼맥도 화려함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홍문자(64) 여사는 2남2녀를 뒀다. 미국 뉴욕의 FDU대 수학과 교수인 맏딸 희경(39)씨는 연세대 법대 교수인 노정호(43)씨와 혼례를 치렀다. 차녀 희원(38)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장남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차동완 카이스트 교수의 딸인 진영(28)씨와 인연을 맺었다. 진영씨의 모친은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차녀인 설영자씨다. 차남 조현범(33) 상무는 2001년 9월 이명박 서울시장의 3녀인 수연(30)씨와 결혼했다. 최근에 보기 드문 정치인과 재벌의 혼사였다.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의 자제는 모두 2남 1녀. 장남인 현강(30)씨는 삼정KPMG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차남 현우(22)씨는 미국 TUFTS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장녀인 윤경(27)씨는 홍준기 삼공개발 회장의 아들인 석융씨와 혼인했다. 홍 회장의 딸인 지연씨가 권노갑 전 의원의 아들인 정민(35)씨와 결혼해 조씨가는 권 전 의원 가문과 한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효성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이상운(53) ㈜효성 사장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전문경영인. 경기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76년 효성물산에 입사했다. 중동 등에서 ‘섬유수출의 귀재’라는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효성물산 기획실과 시장개척실, 사업개발실 등을 거치며 업무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외환위기 때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효성그룹의 주력 4개사를 통합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송형진(62) ㈜효성 건설PG장은 건설 경력 35년이 넘는 전문 경영인이다.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강조한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는 팀워크를 중요시해 건설PU장 시절, 사업이 진행중인 현장을 한 번 이상은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어울리곤 했다. 경기고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왔다. 김재학(57) ㈜효성 중공업 PG장 겸 전력PU장 사장은 기계공학 전공자답게 정확함과 세밀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경영은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조직력 결속을 중시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최병인(44) ㈜효성 정보통신PG장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효성의 전문경영인(CEO)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다.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며,2000년 효성에 합류했다.2002년 그룹 정보통신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체인 효성데이타시스템과 효성컴퓨터를 합병해 노틸러스효성㈜을 출범시켰다. 우신고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나왔다. 유효식(58) ㈜효성 지원본부장 부사장은 1974년 동양나이론에 입사한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외환위기 때에는 ‘책임 경영’ 체제 구축을 위해 경영 시스템을 ‘PU체제’로 전환시켰다. 인천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정윤택(50) ㈜효성 재무본부장 전무는 종합조정실과 재무본부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급 재무 전문가다. 추진력이 탁월하고, 금융 및 산업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다. 서울 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류필구(60)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95년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의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10년째 경영하는 국내 IT업계 최장수 CEO다.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안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조충환(63) 한국타이어 사장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말단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전형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64년 삼성물산에 입사, 도쿄 지사장 등을 거친 ‘상사 수출맨’이다.83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기획과 재무 등을 거친 뒤 97년 12월 한국타이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golders@seoul.co.kr ■ 바깥활동 활발한 며느리들 효성가(家) 며느리들은 세련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커리어 우먼’쪽에 가깝다. 경영수업을 쌓고 있지는 않지만 바깥 활동엔 꽤 적극적이다. 흔히 며느리들은 안으로 돌리고, 딸들은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는 국내 재벌가(家) 문화와 거리가 있다. 딸이 귀한 가문이어서 시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의 여성 후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조석래 회장의 부인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송광자(61) 여사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들의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여성도 일을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 후회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심지어 며느리들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보약을 다려줄 정도다. 아들만 있는 송 여사는 며느리가 모두 딸 같다고 한다. 장남인 조현준 부사장의 얘기다.“지난달 제수씨가 북핵 6자회담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가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열심히 하고, 꼭 좋은 결과를 갖고 오라고 북돋워주더라고요.” 송 여사가 그렇다고 며느리 뒷바라지나 집안 살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와 종교 활동을 통해 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다.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의 모임인 서울 가든클럽에서 봉사 활동도 한다. 또 미대 출신으로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미술관 지원사업이나 일반인에 대한 현대미술 교육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3세 며느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어머니께서 무척 배려를 해주신다.”면서 “일이나 공부 때문에 늦게 귀가하면 어깨도 주물러주고, 저녁도 대신해 때로는 당황스럽고,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송 여사의 이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영향이 크다. 당시 재계에서 엘리트였던 만우 회장은 며느리들에게 평생 교육을 강조했다. 예컨대 며느리들에게 앞으로 자가용 시대가 온다며 면허증을 따도록 했으며, 연료로 연탄을 주로 쓰던 시절 차세대 연료인 LPG(액화석유가스)에 관한 공부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 미술을 전공한 맏며느리인 송 여사에겐 신혼 초에 살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전시회를 열어 줄 정도로 미술 공부를 독려하곤 했다. 며느리 건강을 위해 보약을 챙겨주기도 했으며, 훗날 맏며느리가 그림 공부를 그만두자 만우 회장이 이를 가장 애석해했다. 조석래(70) 회장의 맏며느리인 이미경(29·조현준 부사장 부인)씨는 서울대 음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대학에서 음악(피아노)을 전공했지만 다른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다.”면서 “이번엔 한국 전통음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했다. 둘째 며느리 이여진(31·조현문 전무 부인)씨는 1997년 외무고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을 거쳐 현재 국가안전보장회(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조 전무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절제가 뛰어난 것이 와이프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golders@seoul.co.kr ■ 재주꾼인 3세들 효성가(家)의 3세들은 재주가 다양하다. 취미와 스포츠, 외국어 모두 수준급이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딴따라’ 기질도 있어 보인다. 장남 조현준(37) 부사장의 설명은 이렇다.“부친과 조부는 뭐든 하려면 제대로, 일정 수준 이상까지 요구했었습니다. 덕분에 운동도 종목을 바꿔가며 취미 이상으로 실력을 키웠고, 다른 분야도 비슷했었습니다. 특히 외국어는 영어, 일본어는 기본이었고, 제3외국어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조 부사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미국의 세인트 폴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야구부 주장을 맡았다. 미식 축구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경영수업 틈틈이 사내 야구팀과 직장인 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스키와 스쿼시, 테니스는 선수급 기량이다. 그는 한때 건축학과 교수가 꿈이어서 건축과 미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탈리아의 바티칸박물관 복구 작업에 참가한 특이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한옥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재 보호단체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운영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는 소믈리에(와인감별사) 자격증을 따로 취득할 정도로 와인 전문가이다. 차남 조현문(36) 전무는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다. 대학 시절엔 가수 신해철 등을 비롯한 중·고교 동창들과 어울려 보컬그룹 ‘무한궤도’를 결성,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피아노 뿐 아니라 작곡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그의 곡들은 ‘무한궤도’ 1집에 수록돼 있다. 조 전무는 또 축구 마니아다. 미국 유학 시절에 축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스키와 테니스 실력은 형인 조 부사장에 못지 않다. 3남 조현상(34) 상무도 스포츠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 그는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축구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브라운대 아카펠라 그룹에 가입해 밴드 리더로 활동했다. 아카펠라 해외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조 상무도 형들과 마찬가지로 ‘공 운동’은 모두 좋아한다. 축구와 스키, 스케이트 등은 한때 교내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종합상사도 “블루오션”

    종합상사도 “블루오션”

    ‘만물상’ 종합상사가 환골탈태를 선언하고 나섰다. 돈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출입에 관여했던 종합상사들이 이제는 회사마다 ‘블루오션(남과 경쟁하지 않는 거대 신시장)’을 선정, 시장 창출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들어 5개 종합상사들은 업체마다 특성이 있는 특화사업에 치중하는 색깔경쟁이 한창이다. ●‘비빔밥’식 경영에서 ‘따로 국밥’체제로 삼성물산은 정보기술(IT) 프로젝트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외국기업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IT 프로젝트 사업이라고 보고 이 분야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03년 1억 2000만달러 규모의 인도네시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프로젝트를 수주한데 이어 10월에는 1억달러 규모의 필리핀 등기전산화 프로젝트를 따냈다. 최근에는 동유럽지역의 IT 관련 프로젝트에도 국내 통신사와 공동으로 수주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 정부 전산화 프로젝트 등 동유럽, 중국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는 등 IT분야의 프로젝트 수출 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인터넷 전화사업 등 IT관련 프로젝트에 매진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LG상사는 해외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 수주사업을 미래 집중 육성사업으로 선정하고 블루오션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LG상사는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단순한 계약 주선 단계를 넘어 회사의 해외마케팅을 비롯해 제품판매와 금융자원 등의 능력을 총동원해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LG상사는 최근 오만 아로마틱스 플랜트 수주를 성공적으로 마친데 이어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사업을 러시아,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SK네트웍스는 에너지판매사업과 패션사업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SK네트웍스는 최근 중국 선양시에 이어 단둥시에도 복합주유소 사업권을 획득함으로써 주유소를 포함한 에너지 판매망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됐다. 패션사업도 스마트, 카스피, 아이겐포스트, 타미힐피거,DKNY, 엑조 등 자체 브랜드와 수입 브랜드망을 확충, 글로벌 패션브랜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선사업까지 눈독 대우인터내셔널은 해외 에너지 개발사업을 꾸진히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미얀마 A-3광구 탐사를 위해 공동 투자자인 인도국영석유공사(ONGC), 인도국영가스공사(GAIL), 한국가스공사와 공동 투자유치 서명식을 가질 정도로 이 사업분야만큼은 다른 종합상사는 물론 대기업들을 능가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올해 오만 LNG프로젝트와 페루 8광구에서 1800만달러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으며 한국 컨소시엄 일원으로 참여 중인 베트남 11-2광구 가스전에서도 내년 말부터 본격적인 상업생산을 예상하는 등 부푼 꿈에 빠져 있다. 현대종합상사는 전통적으로 무역업과 자원개발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들어 조선사업과 유통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상사업계 최초로 조선업에 진출한 현대종합상사는 지난해 중국 칭다오에 조선소를 설립하고 유럽으로부터 중소형 선박을 수주받아 조선사업에 기치를 올리고 있다. 여기에다 내수시장에 눈을 돌려 식료ㆍ산업자원의 수입 및 유통에 매진하고 있다. 회전초밥 체인점 ‘미오젠’과 맥주집 ‘미오센’을 운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종합상사들은 그동안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라면 앞다퉈 진출해 국내외에서 업체간 출혈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며 “이제는 해외 에너지 개발에서 복합터미널 건립사업에 이르기까지 업체의 역량에 따라 특화사업을 통해 수익 극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실업高 첫 유학반 ‘출사표’

    실업高 첫 유학반 ‘출사표’

    수재,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엄청난 사교육비, 미국 아이비리그를 지망하는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유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진 학생들이 있다. 실업계로는 처음 유학반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선린인터넷고 유학준비반 학생이 그들이다. ●민사고·특목고 빼곤 처음 운영 민족사관고와 외국어고를 제외하고는 첫 유학반인데다, 실업고의 특성을 살린 기술자격증으로 입학전형의 가산점을 노리는 색다른 유학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SAT를 보지 않는다. 대신 국제공인 기술자격증을 땄다. 시스코, 선 등 세계적 IT(정보기술) 기업의 특정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자격증이다.IT분야 특성화고인 만큼 자격증은 손쉽게 해결했다. 한국에 다양한 수시모집 전형이 있듯이, 미국의 대학들도 이런 자격증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준다는 것을 겨냥했다. ●컴퓨터 범죄수사등 전공 다양 목표는 학비가 저렴하면서도 탄탄한 교육과정을 갖추고 있는 미국 50∼150위권의 주립대다. 전공은 컴퓨터범죄수사, 컴퓨터 보안, 네트워크 관리 등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분야다. 현재 3학년 16명을 비롯해 30여명의 학생들이 ‘세계적 기술 인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들이 처음 유학에 눈을 돌린 것은 2003년 초.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컴퓨터 보안 등의 분야를 국내에서는 가르치는 대학이 거의 없었다. 준비가 시작된 것은 하인철(41) 교사를 산학겸임교사로 초빙하면서부터다. 실업계고 관련교사들을 교육하는 강사로 참여했다가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던 하 교사는 처음엔 콧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보고는 마음을 고쳤다. 상고를 나와 미국에서 13년간 고학 끝에 석사학위를 받고 IBM 협력업체 연구소장으로 있던 그는 “컴퓨터에 빼어난 열의와 특기를 가진 아이들의 재능을 살려주는 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당 6시간씩 심화과정 수업을 받으며, 자격증 준비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 내신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토플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녔다. 중학교때 중위권을 맴돈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이었지만, 목표가 생기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컴퓨터를 좋아하고, 인문계고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기 힘들다고 판단해 실업계고를 선택했다.”는 3학년 서동철군은 “강요하는 사람이 없지만 하루 4시간씩 자며 어느때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美 50~150위권 주립대가 목표 어려운 가정형편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2학년 김진수군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이지만 자격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할 각오를 하고 있다.”면서 “네트워크 관리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하 교사는 “유학은 돈이 많이 들고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면서 “실업계에서도 얼마든지 특기를 살려 세계 무대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일리노이, 캔자스, 오리건주립대 등 10여곳에 원서를 낸 학생들 가운데 12명은 합격이 확실시되고 있다. 소신을 갖고 ‘실속’을 택한 이들의 꿈이 영글고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국가경쟁력 12단계 ‘껑충’ 117개국중 사상 첫 17위

    국가경쟁력 12단계 ‘껑충’ 117개국중 사상 첫 17위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지난해보다 12단계나 올라 사상 처음으로 17위를 기록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비영리연구기관인 세계경제포럼(WEF)은 28일 발표한 ‘2005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성장경쟁력 지수를 조사대상 117개국 중 17위로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지수 상승폭은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크다.WEF가 경쟁력 지수를 발표한 것은 올해가 26년째다. 우리나라의 평가 순위는 지난 2003년에는 18위까지 올랐으나 지난해에는 29위로 떨어졌다. 재정경제부 이성한 경제협력총괄 과장은 “WEF 경쟁력지수는 2000년 28위,2001년 23위,2002년 21위였다.”면서 “지나치게 떨어졌던 작년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지난해 WEF 경쟁력 지수가 발표되자 항의했고 이후 WEF에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등 체계적인 대응을 했다.WEF가 경쟁력 지수를 조사한 시점은 지난 4월로, 지난해에는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정치적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던 반면 올해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한 시기였다는 점도 경쟁력 향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WEF는 한국 경제가 신용카드 사태에서 벗어났고, 원화가치 절상 추세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안정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했다. 낮은 이자율, 높은 저축률 등 거시경제환경 지수가 지난해 35위에서 25위로 상승, 종합평가 순위를 올리는데 기여했다. 기술지수는 여전히 높이 평가됐다. 반도체,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IT) 상품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혁신을 이뤘고,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거듭 세계를 놀라게 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공기관지수는 42위로 지난해보다 한단계 떨어졌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관료의 편향성이 지난해 49위에서 올해에는 26위로 올라 크게 개선된 것이 눈에 띈다. 일본은 우정개혁 실패, 더딘 경제회복 등으로 지난해 9위에서 올해에는 12위로 떨어졌다. 홍콩은 해적판 난무 등 지적재산권보호 미흡으로 지난해 21위에서 28위로 떨어졌다. WEF의 경쟁력 지수는 공공기관, 학계, 업계 등 1만 1000명에게 160개 항목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된다. 국내에서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연구원에서 조사를 맡는다. 거시경제환경과 공공기관 지수가 각각 25%, 기술지수가 50%의 가중치를 적용받는다. 국가경쟁력지수와 별도로 발표되는 기업경쟁력 지수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29위를 기록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로봇·요리에 빠진 아이 실업계고 보내볼까

    로봇·요리에 빠진 아이 실업계고 보내볼까

    실업계 고등학교가 변신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도 많은 졸업생들이 우량기업에 입사하고 동일계 특별전형 등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특화된 교육과정을 갖춘 곳은 2∼3대 1의 경쟁을 거쳐야 입학할 수 있을 만큼 인기있는 실업고도 있다. 더 이상 인문계나 대학에 갈 성적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는 아니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막연히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진학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름과 학습 내용을 바꾸며 변모하고 있는 실업계고를 둘러본다. 실업계고의 ‘변신’은 교육당국의 특성화고 육성, 특화·세분화된 전공, 대입 수시모집의 동일계전형 실시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이에 따라 대학진학자 수가 취업자 수를 앞설 뿐 아니라 서울 상위권대에 입학하는 학생도 계속 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지원자가 줄어 미달 사태가 속출하던 실업계고는 이제 학교에 따라서는 2∼3대 1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다양한 전공, 특성화고 양성 실업계고는 컴퓨터·IT분야에서부터 상업, 관광, 미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공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특히 내실있는 실업교육을 위해 각 시·도교육청이 지정하고 있는 특성화고는 실업계고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01년 선린인터넷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한 이래 7개교를 특성화고로 운영하고 있다. 강남공고에서 이름을 바꾼 서울로봇고는 자동차로봇과, 로봇재료과 등을 신설했다. 서울관광고는 관광이벤트과, 관광조리코디과 등을 개설해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한다. 전통의 명문 실업고인 서울여상의 금융정보과, 국제통상과 등도 초급 수준의 특화된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지방 실업계고도 화려한 면면을 자랑한다. 가장 먼저 특성화고 사업을 시작한 부산은 동래원예고의 생활원예, 환경조경과, 부산산업과학고의 신발관련학과, 해운대관광고의 관광조리과, 레저스포츠과 등이 있다. 광주 서진여고는 고등학교로는 유일하게 간호학과를 설치하고 있고, 경기 한국도예고의 도예고도 특색있다. 이외 피부미용, 축산, 바이오생명과학, 골프관리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특성화고들이 전국에 64개교가 있다. ●진학 62.3%, 취업 32.9% 지난해 전국의 실업계고 졸업생의 진학률은 62.3%로 취업률 32.9%를 크게 앞섰다. 대학진학률은 2002년 49.8%에서 2003년 57.6%로 처음 절반을 넘기는 등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4년제대학 진학자도 2002년 전체의 14.1%에 불과하던 것이 2003년 20.0%, 지난 해에는 23.7%를 기록했다. 물론 산업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실업계고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실업계고의 설립 취지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21세기 무한 경쟁의 지식정보화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전문기술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진학과 취업을 동시에 이룰 수 있도록 교육목표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다양한 실업계고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교육부, 산자부, 노동부가 공동으로 20개 시범실업고에 40억원을 지원하는 등 산학협력 지원도 늘리고 있다. ●동일계 특별전형 대학진학률이 급등한 것은 각 대학이 실업계 졸업자들에게 동일계열에 한해 정원의 3% 내에서 정원외로 뽑는 ‘실업계고교 동일계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다. 현재 특별전형의 계열은 농업·공업·상업·수산해운·가사실업 등 5개 계열로 나눠져 있으며, 실업계고 학생은 세부전공에 관계없이 동일 계열의 학과를 둔 대학에 특별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 실업고가 대입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실업계고에서 3년 동안 해당 전공을 82단위 이상 이수한 학생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요 상위권 대학들도 동일계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고려대는 수능 2개 영역이 2등급 이내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연세대도 수능 2∼3개 영역이 2등급 이내인 실업계고 동일계열 졸업자를 선발한다. 수능의 직업탐구영역 신설도 실업계고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올해 실업계고 신입생 선발은 11월 15∼21일 특성화고 원서를 먼저 접수한 뒤 12월 5∼7일 일반 실업계고 원서접수에 들어간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졸업생 3인이 말하는 “실업계고 이래서 좋다” 실업계고 지원을 놓고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졸업 후 진로다. 취업, 진학, 그리고 창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졸업생 3명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길을 엿본다. 올해 서울여상 인터넷비즈니스과를 졸업한 강수연(19·여)씨는 포스코건설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굳이 대학에 갈 필요성을 못느껴 일찍 취업할 생각으로 실업계고를 택한 강씨는 재학중 내신성적 관리는 물론 워드, 정보처리 등 3개 자격증을 차근차근 준비해 대졸자들도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팀내 행정업무나 용역비 정산 등을 담당하는 강씨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실무적인 부분에서 크게 도움이 되고,3년간 ‘취업 마인드’를 키워왔기 때문에 회사생활에 적응도 빠르다.”고 말한다. 다만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내년쯤 야간대학에 진학해 보충할 생각이다.“중3시절 중상위권 성적이었지만 좋은 대학 갈 자신은 없어 고민 끝에 실업계고를 선택했고, 후회가 없다.”며 만족해했다.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 기계공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박재홍(21)씨는 실업계고에서 특기를 한껏 살려 명문대 진학까지 거머쥔 케이스. 어릴 때부터 발명을 유난히 좋아하던 박씨는 그러나 당초 실업계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중3 때 우연히 발명동아리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도공고에 구경하러 갔다가 단숨에 마음을 정했다. 전기과에 다니며 발명동아리에서 꾸준히 아이디어를 개발했고, 전국학생발명 창작경진대회, 국제로봇 올림피아드, 전국 학생창의력 올림피아드 등에서 상을 휩쓸며 수시모집 특기자전형으로 연세대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상위 40% 정도의 평범한 성적이었던 박씨는 “개개인의 소질을 적극 개발해 주는 수업 방식이 재능을 살렸고, 진학으로까지 이어졌다.”면서 “대학 입학 직후에는 영어·수학에서 부족함을 느낀 부분이 없지 않지만 노력에 따라 극복할 수 있으며, 오히려 물리 등 과목은 훨씬 수월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나 ‘성적이 안좋으니 한번 가볼까.’ 하는 경우라면 실업계고 진학을 권하고 싶지 않다.”면서 “먼저 자신의 재능과 희망을 꼼꼼히 살펴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취업과 진학의 두갈래길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경우도 있다. 올해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 입학한 김가영(19·여)씨는 주식회사 2개를 운영하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 전교 10등 내외의 우수한 성적이었지만, 인문계고의 일률적인 생활이 싫었고 좋아하는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터넷고를 택했다. 입학한 뒤 친구들과 창업동아리를 만들었고,2학년 때 ‘이누스’라는 교육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설립했다.3년간 청소년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 신기술 콘퍼런스, 여성창업 경진대회 등에서 상을 휩쓴 끝에 동일계전형 혜택을 보지 않고도 수시모집 특수재능보유자 전형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직원 10명의 월급을 주고도 일반 중소기업직원의 연봉 정도를 번다는 김씨는 “학교에서 컴퓨터 기술을 배우면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고 ‘기술을 통해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씨는 “막연하게 진학의 요행을 바라는 경우라면 실업계고에 가지 마라.”고 잘라 말한다. “확고한 뜻이 있어야 하며, 입학해서도 학교 공부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능력을 개발하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취업이든 진학이든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고유가 딛고 하늘길 개척 ‘선두다툼’

    고유가 딛고 하늘길 개척 ‘선두다툼’

    ‘창 VS 방패’ 국내 두 항공업계 사령탑의 경영스타일을 이르는 말이다. 대한항공 이종희(63) 총괄사장은 과감한 결단력으로 강한 추진력을 발휘, 업무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 박찬법(60) 사장은 ‘합리와 순리에 의한 고도의 설득작업이 최선의 리더십’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현장 경영이 최고 이처럼 두 사람의 경영스타일은 대조적이지만 현장을 중시한다는 점에는 궤를 같이한다. 이 사장은 지난 69년 대한항공 설립과 동시에 공채 1기 정비분야로 입사했다.30여년간 정비, 운항, 자재, 기획, 영업 등 각 분야를 섭렵했다. 특히 여객영업 분야에서만 20여년간 몸담아 아직도 신규 노선 개척 및 세계 항공사와의 제휴 업무를 직접 챙기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력 기업인 ㈜금호의 영업담당이사를 거치는 등 ‘영업통’으로 잔뼈가 굵은 박 사장도 현장을 누비는 체험 경영에 대해서는 누구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박 사장은 “항공사는 조종사, 정비, 캐빈서비스, 예약, 발권, 공항서비스, 화물, 시스템, 케이터링, 영업 등 다양한 직종과 부문에 따른 업무와 특성을 갖고 있어 CEO가 현장체험에서 배어 나오는 각 부문별 특성을 조율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시장이 블루오션 요즘 세계적으로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는 죽을 맛이다.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 대형 항공사들이 고유가 등의 여파로 줄줄이 파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7대 항공사 중 델타, 노스웨스트, 유나이티드, 유에스에어웨이 등 4개 항공사가 이미 파산보호 중인 상태다. 그러면 이들보다 규모가 작은 국내 항공사들의 생존책은 뭘까. 실제로 지난해 사상 최초로 매출액 7조 2100억원을 달성한 대한항공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1382억원으로 전년대비 281억원이 줄었고, 아시아나도 상반기 매출실적은 전년도에 비해 936억원(6.8%)이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이 404억원이나 감소했다. 두 사장은 모두 중국이라는 신시장을 개척하는 것으로 위기를 돌파한다는 전략을 내비쳤다. 이 사장은 “세계 항공업계가 불황을 겪고 있는 중에도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의 항공 수요는 꾸준한 증가하고 있다.”며 “2014년까지 중국시장에서 매출 2조원을 달성하고, 취항도시를 30여개로 확대하겠다.”고 비전을 밝혔다. 박 사장도 “중국의 경우 연간 대략 1200만명이 넘는 신혼여행객이 생겨나고 있다.”며 “아시아나항공 출범 이후 해왔던 대로 중국과 일본시장 개척에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저가항공 아직은 신경안써 국내 항공시장도 한성항공과 제주에어가 영업을 시작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등 저가항공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이를 바라 보는 두 CEO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이 사장과 박 사장은 저가항공사의 등장은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자연스러운 추세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 사장과 박 사장은 상대 회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비결도 공개했다. 이 사장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A380을 비롯해 B787,B777 등 차세대 첨단 항공기 도입, 기내 서비스 향상, 기내 IT투자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박 사장은 “대한항공에 비해 열세인 노선망 확보를 ‘스타 얼라이언스’라는 세계 최대의 항공네트워크를 활용함으로써 극복해나갈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좌우명을 마음에 새기고 다닌다는 이 사장은 등산·골프가 취미다. 골프 라운딩이 없을 때는 서울·경기 일원의 산들을 찾는 걸로 건강을 관리한다. 삼시 세끼 거르지 않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걸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박 사장은 틈틈이 골프로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 핸디캡 10개 정도의 수준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국내 10대 그룹이 대부분 1930∼1940년대 출범한 것과 달리 동부는 이보다 한 세대가량 늦은 산업화시대인 1969년, 대학생인 김준기 회장이 세운 후발기업이었다. 선발 창업 기업은 사업참여 기회가 많았지만 동부는 후발기업이어서 사업참여에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율산 등 60년대 말을 전후해 함께 등장했던 기업들이 부실 문제로 몰락한 것과 달리 동부는 성장과 안정을 기치로 삼아 꾸준히 사세를 키워 현재 재계 순위 12위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 최초·최대의 사업단지인 주베일에서 신화를 창조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죄스러운 마음에서 눈앞이 깜깜했다. 중동 진출 꿈은 날아가고 동부건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양주를 한병이나 마셨다. 이 탑에 올라가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니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탈리아 말도 모르면서 이탈리아 귀신들 속에서 고생할 것 같다는 쓴웃음도 나왔다. 그리고 죽더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죽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죽기로 마음 먹으니 다시 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가 섰다.” 1974년. 동부의 중동 진출 시발탄인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를 내정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입찰받자 회사와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게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유복한 집안에서 고생 없이 자란 덕에 김 회장의 창업은 밥벌이와 무관했지만 그렇다고 그룹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죽는 대신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발주처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재입찰을 성사시키면서 동부의 중동시대를 본격 개막했다. 김 회장이 현장 반장이 되어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을 전세 택시로 오가며 말뚝을 박고 공사를 지휘했다. 사우디 최대의 산업단지인 주베일에 한국 건설 업체로서는 최초로 동부건설이 대형 복합공사(4800만달러)를 따냈고, 그 이후 1억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사우디 제다 해군기지, 사우디 국방부 청사, 리야드 국제공항 등 중동지역 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그 때 벌어들인 돈이 오늘날의 동부를 일군 종자돈인 일명 ‘오일 머니’다. 건설사 창업 10년도 안돼 도급 순위가 1978년 6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부강한 미국에서 착안한 기업가의 길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직원 셋을 데리고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다. 군제대 후 선진국 시찰단의 일원으로 40일간 미국을 돌아보고 그는 자본주의의 위대성과 시장경제체제의 합리성에 눈뜨게 된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젊은 포부에서 동부의 창업 이념은 ‘좋은 기업’이다. 건설업은 리스크가 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나 설비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창업 업종으로 삼았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미륭’. 오늘날 동부의 전신이다. 창업자금 2500만원은 여러 친지들을 설득해 간신히 꾼 돈이다. 아버지 김진만(87) 전 의원은 대학 재학중인 어린 아들이 사업하는 것을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아버지 김 전 의원은 김 회장이 창업한 1960년대 후반, 여당의 당 4역으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동부의 창업 과정에 아버지의 후광 이야기가 운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7선 의원인 김 전 의원은 지금도 민족중흥동지회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동부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정치는 후광으로 가능하지만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말한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항명파동으로 당권의 핵심에서 멀어져 간 인물이고, 오늘날 동부그룹을 이룬 결정적 기반은 1975∼1983년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였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군부 정권은 권력에 의존해 축재 혐의가 있는 정치인을 조사, 재산을 몰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의원으로 인해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연루된 적도 있다. 아들인 김 회장은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직면한 일대 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동부의 창업 과정과 김 전 의원이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당시 미륭)를 창업한 1969년 당시 이미 600여 선발 업체들이 포진한 상태였고 도급 순위에 따라 수주 한도가 정해졌기 때문에 미륭은 정부 발주 공사는 넘보지도 못했다.”며 후광설을 일축했다. 그는 또 “그래서 요즘 말로 우리만의 틈새시장인 이른바 ‘블루오션’을 개발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국대사관·독일문화원·용산미군기지와 같은 주한미군 공사·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외국인 및 민간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이는 국제적인 공사 표준이 엄격하게 요구되던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계획된 사업다각화로 재계 10위권 진입 5남3녀 가운데 장남인 그는 서울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 회장 일가는 경기고와도 인연이 깊다. 광복후 청년운동을 펼쳤던 그의 숙부 고 김진팔씨가 경기고 27회, 김 회장이 60회, 그의 아들 김남호(30)씨가 90회 졸업생으로 3대가 경기고를 졸업했다. 지난 6월 말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에는 김 회장 재학 당시 화학 선생님이자 남호씨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송길상씨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사업을 가장 크게 하고 있는 사람 역시 김 회장이다. 동창들은 김 회장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도 잘했지만 술·담배는 물론 주먹도 무지 센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동창 중에는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원정일 전 법무차관, 송옥환 전 과학기술부 차관, 양수길 전 OECD 대사, 한남규 전 중앙일보 부사장, 손욱 전 삼성SDI 사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부행장 등 쟁쟁한 유명인사가 많다. 동부그룹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일밖에 모르는 탁월한 기업가” 라고 정의한다. 일을 위해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끊고 걸음걸이까지 바꿨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서를 즐기고 골프는 거의 치지 않는다. 주요 사업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을 때까지 임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벌인다. 논리에서 밀리지도 않고 지독하다 싶을 만큼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뤄내고 마는 성격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건설·운송사업에 머물던 동부가 10위권 그룹으로 거듭난 것도 동부가 중동신화를 창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집념, 탁월한 전략, 추진력, 리더십의 결과라는 평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실 기업들을 속속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 회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다각화는 초기부터 큰 밑그림을 갖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예컨대 1984년 ‘장영자 사건’ 여파로 부도가 난 일신제강을 인수,4000여억원을 투입해 민간 최대의 냉연강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1998년 1조 3000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 냉연공장을 건설, 오늘날 동부제강을 세계적인 냉연철강회사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에는 울산석유화학·영남화학을 인수, 양사를 합병해 동부화학(현 동부한농화학)으로 출범시켰고,1983년에는 만년 적자인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오늘날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로 거듭나게 했다.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일에 대한 열정만큼 극진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어머니 고 김숙자씨의 묘소 옆에 별장을 지어놓고 수시로 다녀가고 있다. 사업 구상이나 고민에 빠질 때도 그가 찾는 곳은 늘 어머니 곁이다. 어머니 김씨는 서울 명성여학교에서 유학, 일제시대 삼척 송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최초의 여교사다.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 평이다. 동부는 80년대 중동 경기가 악화되기전 이미 중동에서 철수했다.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회사를 속속 설립, 인수하면서 그룹 시대를 열었고 몇 안 되는 친인척들은 이무렵 동부그룹에 들어왔다. 정치인 아버지 슬하에서 이뤄진 혼사들이라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연애 결혼도 이외로 많다. 누나인 김명자(63)씨의 남편인 임주웅(65)씨는 결혼과 함께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해 한국자동차보험 이사, 동부생명보험 사장 등을 지냈다. 누나 김명자씨는 김 회장을 대신해 가족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매형인 임 전 사장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치약 제조회사였던 동아특산약화학의 창업자인 고 임형복씨다. 임 전 사장의 형인 임주용(71)씨는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의 막내 동생인 장복혜씨와 결혼했으며 중앙투금 부사장을 지냈다. 임 전 사장의 아들 준석(37)씨의 장인 윤호중씨는 흥아해운 창업주인 고 윤종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큰 동생이자 김진만 옹의 차남인 김택기(55)씨는 90년대 동부화재 사장을 지내면서 만년 적자이던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흑자 전환시켰다.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해 사표를 내고 2000년 4월 16대 민주당 의원(강원 태백 정선)으로 당선됐다.17대 총선에는 낙선했지만 그룹으로 돌아올 계획은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요즘은 강원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버지의 정치가 피를 이어받은 사람은 동생 택기씨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부친과 절친했던 이철승(83) 전 의원의 딸인 이양희(49)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김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김무기(52)씨는 80년대 초반 동부그룹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상무,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1990년대 말 벤처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IT전문 경제지인 서울디지털경제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약 중이다. 성격이 호방한 데다 주량이 세고 입담이 뛰어나 그룹 내에서는 일명 ‘핵무기’로 통했다. 자유연애로 만난 부인 이지은(46) 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낸 고 이종진씨의 딸이다. 친구의 소개로 만났으며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재계 정상에 오르다 동부는 창업에서부터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사업을 했고, 창업자 단독으로 그룹을 일궈낸 보기 드문 사례다. 그룹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때 일했던 매형과 동생들은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김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동서지간인 윤대근 동부아남반도체 부회장과 제조부문 회장을 지낸 외삼촌 김형배(71) 고문 둘뿐이다. 김형배 고문은 상공부(현재의 산업자원부 전신)에서 기획관리실장, 경공업 차관보를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거쳐 1994년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동부한농화학, 동부전자 등 동부 주력 제조업체들의 경영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인 윤 부회장은 문교부(현재의 교육부 전신) 장관과 서울대 총장을 지낸 고 윤천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부인인 김정희(57) 여사의 여동생 김정림(56)씨의 남편이다.70년대 초반 미국 유학 당시부터 그룹 일을 도와 가장 먼저 그룹에 참여한 친·인척으로 꼽히기도 한다. 측근들은 김준기 회장과 윤대근 부회장은 코드가 통해 지금도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소머리 국밥집에서 냄비에 눌어붙은 누릉지를 긁어먹길 좋아하는 등 두 사람의 소탈함이 닮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윤 부회장에 대해 “인척관계를 떠나 사업상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이 돈독하다. 김 회장과 윤 부회장의 장인은 고 김상준 삼양염업사 명예회장이다. 고 김 명예회장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형이다. 고 김 명예회장의 2남3녀 중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나란히 김 회장과 윤 부회장에게 시집간 것이다. 지난 7월 김 회장의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 당시 식장 맨 앞에 있던 신랑 가족석 옆에 삼양그룹 사람들을 위한 별도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9월 고 김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두 사람이 시종 빈소인 고려대병원을 지키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결혼은 친지의 중매로 이뤄졌다. 동부 관계자는 “창업 이후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던 김 회장에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신부 후보가 알고 보니 김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기인 김병휘(현 한양대 수학과 교수)씨의 동생이었다.”면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인지 자연스런 만남이 지속됐고 혼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악과 출신의 김정희(57)씨는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2남3녀 중 차녀다. 주례는 당시 동아일보 고재욱 사장이 맡았다. 이밖에 다른 형제들은 그룹에 관여한 경험조차 없다. 여동생 김명희(58)씨는 ‘여성의 전화’ 창립맴버로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성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평우(60) 변호사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김 변호사의 양친 모두 유명한 소설가인 고 김동리 선생과 고 손소희 여사다. 김평우 변호사는 김준기 회장과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김흥기(46)씨는 여동생인 희선(45)씨의 소개로 이화여대 수학과 출신인 오남선(46)씨를 만나 연애 결혼했다. 흥기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가방을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희선씨는 농심 신춘호(75) 회장의 둘째 며느리이자 신동윤(47) 율촌화학 사장의 아내다. 이화여대 음대 재학시절 자신이 소개해 오빠의 부인이 된 오남선씨의 주선으로 남편 신 사장을 학교 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 막내인 김현기(39)씨는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상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아직 미혼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 동서인 윤 부회장과 외삼촌인 김 고문 이외에 다른 어떤 친인척도 동부그룹에 몸담고 있지 않다.” 면서 “다른 재벌들과 달리 동부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핵심경영인들 김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김준기 회장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묘비명에 적힌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리다가 간 사람, 여기 누웠노라.” (Here lies a man who was able to surround himself with men far cleverer than himself.)를 자주 인용한다. 대학 시절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읽고 그의 경영철학과 인재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묘비명이 자신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경영자의 참모습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철학 및 인재관에 관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도 이를 실천할 것을 독려한다. 2001년 입사한 이명환(61) 현 ㈜동부 부회장의 경우 김 회장이 여러 차례 만나 자신의 기업관 등을 설명하며 동부 합류를 끈질기게 설득해 영입한 케이스. 이 부회장은 67년 삼성에 입사해 삼성전자 종합기획실장, 삼성 비서실 인사담당, 삼성SDS 사장 등을 지냈다. 효성 생활산업 사장, 현대건설이 출자한 인천국제공항철도사업단 사장도 역임했다. 이미 70년대부터 김 회장과 손발을 맞춰 온 백호익(62·건설·물류분야) 부회장, 윤대근(58·소재분야) 부회장은 물론 90년대 말 이후 합류한 장기제(금융분야) 부회장, 신영균(61·화학분야) 부회장 등 오늘날 동부를 이끄는 핵심 전문경영인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밖에도 2004년 6월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전 삼성화재 부사장), 같은 해 12월 임종성 동부아남반도체 부사장(전 삼성전자 전무), 지난 2월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전 삼성SDS 사장) 등이 삼성에서 영입됐고, 지난 3월 GS건설 출신의 황무성 부사장이 동부의 토목부문 사장으로,4월 GS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을 지낸 김용화씨가 개발부문 사장이 됐다. 이어 5월에는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 대림산업 부사장 출신인 하진태 동부건설 부사장, 대림산업 출신인 김용식 동부건설 부사장 등이 영입된 바 있다. jhj@seoul.co.kr ■ ’후계자’ 김남호씨 MBA 유학중 동부의 후계구도는 단순 명확하다.김준기 회장의 승계자가 1남1녀 중 아들인 김남호(30)씨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이다.180㎝나 되는 건장한 체구에 겸손한 태도가 눈에 띈다. 남호씨는 최근 부인 차원영(26)씨와 함게 미국으로 건너갔다.내년 1월부터 뉴욕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기 위해서다.원영씨는 차경섭(86)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차광열 포천중문의대 교수 딸)로 지난 6월 남호씨 누나인 주원(32)씨 후배의 소개로 만난지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남호씨는 MBA과정을 끝낸 뒤에도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한동안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귀국해 군복무를 마쳤고 지난 2002년부터 외국계 경영 컨설팅 그룹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다. 서울예고 출신의 원영씨는 영국에서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수학과를 나온 재원.그룹의 예비 안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향후 남호씨 뒷바라지에 전념중이다. 2,3세에 대한 지분 이양 과정에서 ‘편법 증여’ 등 의혹이 제기되는 일부 재벌들과 달리 동부의 경우 온전히 증여세를 내고 정당하게 지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분 이양은 대부분 이뤄졌지만 남호씨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그룹측에선 진단한다. 동부그룹측은 “남호씨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다 김 회장도 평소 남호씨에 대해 국내외 경제 흐름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국제적인 안목을 쌓길 바라고 있다.”면서 “경영 참여는 전혀 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진작에 끝났다.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아들 남호씨에게 꾸준히 지분을 넘겼고,그 결과 지난 2002년 10월 남호씨가 동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 최대주주가 됐다.동부화재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인 동부생명,동부증권,동부저축은행,동부투신운용 등 금융계열사들과 동부건설 및 동부아남반도체의 경영권도 확보하고 있다. 또 2004년 8월 김 회장이 아들 남호씨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증여함으로써 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동부증권,동부제강 등 주요 계열사에서 개인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사실상 지분 승계 작업을 마무리했다. 딸 주원씨는 동부화재,동부정밀화학,동부제강 등에 대한 지분을 일부 갖고 있으나 경영 참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룹측 설명이다.친구 소개로 만나 1997년 9월 당시 해동화재 김동만(96)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3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지금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김주한씨는 메릴린치증권 애틀란타 지사에서 자산운용가로 일하고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MS 부문별사장제 도입

    MS 부문별사장제 도입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제조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20일(현지시간) 조직을 전면 개편했다. 이번 조직 개편은 외부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조직 통합 및 사업부문별 사장제 도입, 온라인 사업 강화로 요약된다. 특히 이번 조직개편으로 MS는 인터넷 기반 서비스 제공을 확대할 전망이다. ●조직개편 배경 및 효과 창사 30년을 맞은 MS는 직원 6만명을 거느린 대기업. 앞선 기술력과 고객서비스를 통해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온 MS는 최근 들어 온라인을 활용한 구글과 리눅스 등 정보기술(IT) 벤처기업들의 맹추격을 받아왔다. 특히 조직이 커지면서 관료주의 때문에 의사결정이 더뎌 환경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내년 새 윈도 운영체제 ‘비스타’와 사무용 소프트웨어 오피스 업그레이드, 게임 콘솔 X박스 등 잇단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이에 대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MS는 현재 7개인 사업부문을 ▲플랫폼 제품 및 서비스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및 장비 등 3개로 통합했다.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조직개편으로 의사결정 능력을 강화하고 정책의 수행 속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MS는 지난 3월 그루브 네트워크를 인수할 때 영입한 소프트웨어 전문가 레이 오지(49)에게 인터넷 기반 서비스의 중책을 맡겼다. ●40대 사장들 전면배치 CEO 발머는 3개 사업부문에 자신의 측근들인 40대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들은 발머에게 직접 보고한다. 윈도 데스크톱 OS, 서버 소프트웨어,MSN 온라인 등을 관할하는 플랫폼 제품 및 서비스 부문은 케빈 존슨(44)이 짐 올친(53)과 공동으로 관할한다. 오랫동안 윈도 운영체제를 관장해온 올친은 내년 은퇴할 예정이다.MS 오피스와 서버 소프트웨어를 관장하는 비즈니스 사업부문은 제프 레이크스(47)가 맡았다.X박스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및 장비는 로비 바흐(43)가 맡았다. 올친이 내년에 은퇴할 경우 사장들은 모두 이례적으로 마케팅 전문가들로 바뀌게 된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김인 삼성 SDS 사장 vs 정병철 LG CNS 사장

    김인 삼성SDS 사장과 정병철 LG CNS 사장은 ‘관리형 CEO’라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시스템통합(SI) 업계 1,2위를 다투는 경쟁자로서의 ‘자존심 대결’도 치열하다.‘재무통’인 정 사장이 정적이고 선비적이라면 ‘인사통’인 김 사장은 역동적이어서 일을 만들고 나서기를 좋아한다.‘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스타일’은 비슷한 편이다. 김 사장과 정 사장은 각각 삼성과 LG에서 30년 넘게 재직했다. 두 사람은 2003년 1월 CEO로 임명됐다. 그룹에서 취임 당시 경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재무·관리분야 베테랑인 두 사람을 ‘관리형’ 사장으로 앉혔다. 그동안 ‘내실 다지기’에 주력해 왔으나 최근에는 ‘외연 넓히기’에도 나서고 있다. ●‘수익성 강화’ 대 ‘매출 극대화’ 매출액에서는 삼성SDS가 업계 1위다. 반면 LG CNS는 ‘서비스 등에서의 진짜 1위’를 주장한다. 따라서 삼성SDS는 매출에다 수익성을 강화하는 것이고,LG CNS는 수익성에다 매출액을 올려야겠다는 것이다. 삼성SDS 김 사장은 “올해 첫 매출 2조원시대를 열고. 지난해 7%였던 영업이익률도 처음으로 10%대를 달성하자.”고 밝혔다. 이에 LG CNS 정 사장은 “그룹 계열사 외 부문에서 경쟁물량 확대를 최대한 확보하자.”며 독려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1등은 일시적 매출이나 규모의 우위가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매출을 지난해보다 13.5%가량 늘어난 1조 8000억원으로 잡아 규모면에서도 삼성SDS와 나란히 가겠다는 의도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시의 교통체계 개편의 근간인 ‘서울시 교통카드 시스템’을 성공리에 구축,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에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단지내 부지에 LG CNS IT센터 기공식을 가졌다. ●감동 경영은 ‘스킨십’ 두 사장은 유독 사내 커뮤니케이션과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론 ‘수평적 경영’이 경쟁력의 기반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이벤트로 언론에서도 많이 소개된다. 정 사장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직원들의 소리를 듣는다. 사내 주니어 보드도 만들고 ‘카페 경영’도 하고 있다. 또 가족 사보에 편지 칼럼을 모은 ‘사랑의 우체통’도 운영 중이다.2년여전 여기에 한 직원의 딸이 올린 ‘첫째딸의 새해 소원’을 읽고 호텔 뷔페권을 사들고 간 사실은 아직도 직원들에게 회자된다. 김 사장도 매주 월요일 7000여명의 직원에게 ‘월요 편지’란 이메일을 보낸다.120회를 넘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보내는 편지에는 회사 소식은 물론 책 이야기, 출장 중 경험한 일, 직원들의 건강 걱정 등 다양하다. 두 사장은 또 책을 가까이하고 스포츠를 무척 즐긴다. 정 사장은 다독가(多讀家), 스포츠 마니아다. 프로야구팀 ‘LG트윈스’의 구단주 대행을 맡고 있다. 임·직원과 함께 야구경기장을 찾아 ‘노사 화합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야구 경영론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김 사장도 책이라면 정 사장 못지않다.‘책 마니아’로 꽤 소문나 있다. 한 달이면 5권이상 책을 읽는다. 그를 만나면 독서 예찬론까지 나온다. 김 사장은 또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서울 테헤란로 사옥에 도착,24층 집무실 계단을 걸어서 올라간다.2003년 취임 이후 2년 6개월을 줄곧 해왔다. 그는 “걷기운동에 관한 책을 읽고 시작했다.”고 밝혔다. 걷다 보면 잡념이 생기지 않아 생각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U-비즈니스’에서 한판 붙는다 김 사장은 유비쿼터스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이미 밝혔다.2007년까지는 기술개발 등 기본역량을 강화하고 2008년부터 신규 사업, 해외 사업 등에 본격 진출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오는 2010년 세계 10대 회사로 성장하겠다는 게 목표다. 정 사장도 ‘U-비즈니스’를 기치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상암IT센터’ 건립을 위한 첫삽을 떴고 ‘송도 U-라이프 유한회사’(가칭) 설립도 준비중이다. 두 CEO는 최근 전통의 내수시장(주로 그룹내 전산 지원)에서 중국, 일본, 브릭스(BRICs) 등으로의 해외사업 진출에도 주력하고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김인 사장 ▲1949년(56) 경남 창녕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84년 삼성물산(주) 프랑크푸르트지점 부장 ▲91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인사팀 이사 ▲94년 삼성물산(주) 상무 ▲98년 삼성전관(주) 영업본부 전무 ▲2002년 (주)호텔신라 부사장 ▲2002년 서울 신라호텔 총지배인(본부장) ●정병철 사장 ▲1946년(59) 경남 하동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69년 LG화학 재경실 예산과 입사 ▲78년 LG화학 자금부 부장 ▲86년 LG화학 인사 총무 IT담당 이사 ▲89년 LG반도체 재경담당 상무 ▲96년 LG상사 경영지원담당 부사장 ▲97년 LG전자 대표이사
  • 스타 브랜드 창업에 활용 ‘연예인 마케팅’ 전성시대

    스타 브랜드 창업에 활용 ‘연예인 마케팅’ 전성시대

    최근 집으로 배달된 홈쇼핑 책자를 들춰 보던 주부 박경(35)씨. 톱탤런트 황신혜가 모델로 나온 속옷 광고면에서 한참동안 고개를 갸웃거렸다. 속옷 차림으로 전신을 과감히 노출한 황신혜. 자타가 인정하는 ‘몸짱’ 실루엣이라지만, 속옷 광고에 그토록이나 몸바쳐(?) 매달리는 톱스타는 드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황신혜가 언더웨어 및 주얼리 패션브랜드 ‘엘리프리’의 창업 주역으로 맹렬히 뛰고 있다는 사실! ●‘사업가 연예인’ 봇물 부업전선에 뛰어드는 연예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웬만큼 대중적 인기를 확보한 스타라면 최근 앞다퉈 CEO 선언을 하고 나서는 분위기이다. 황신혜는 그들 가운데서도 최근 가장 사업행보가 돋보이는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9월 국내 홈쇼핑을 통해 처음 소개된 이 브랜드는 연말쯤엔 일본으로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가수 출신 탤런트 이혜영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연일 화제의 주인공이다. 타고난 패션감각으로 일찍부터 끼를 발산했던 그는 그동안 굳혀온 감각적 이미지를 패션 브랜드 ‘미싱 도로시’로 연결시켰다.100억원대의 연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통에 ‘똑순이’로 소문이 짜하다. 세련된 이미지로 손쉽게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감안, 패션업계 쪽으로 시선을 돌린 스타들이 특히나 많다. 가수 구준엽은 자신의 전공(디자인)을 살린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어 재미를 보고 있는 경우. 캐주얼 브랜드 G-LIMIT가 그의 상품이다. 지난 2002년 캐주얼 의류 브랜드 ‘팻독’을 론칭한 가수 이현우도 있다. 모델 겸 탤런트 변정수의 ‘엘라호야’도 지난 8월 선보인 새 패션브랜드. ●‘장르’불문 경영마인드 최근 ‘딴주머니’를 찬 연예인들은 일일이 꼽기가 숨이 찬다.“누가 누가 사장이 됐다더라.”는 소식이 한달에 한두건씩 새로 들려오고 있을 정도이다. 한달전쯤엔 코요태의 신지와 그룹 NRG의 이성진이 동업으로 여의도에 한우전문 식당을 차렸다. 인기가 한창 물올라 있을 때 미리미리 ‘인생보험’을 들어놓는 시도에 성공한 사례로는 그룹 HOT 출신의 가수 토니안도 빼놓을 수 없다. 연예기획사 티엔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그는 교복회사 스쿨룩스의 공동대표를 맡아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실질적 자본투자를 한 것은 아니어도 강력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며 사업을 성공시키고 있는 야무진 스타로 꼽힌다. 업종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호텔 경영인으로 나선 배우 정준호,‘더 김치’라는 김치회사 CEO로 변신해 ‘사업 대박’을 터뜨린 홍진경, 지난 8월 강남에 종합스포츠센터를 오픈한 탤런트 이훈 등이 그들. 미용이나 패션 쪽으로만 눈돌리던 과거와는 달리 사업장르를 따지지 않고 왕성한 경영의욕을 자랑하는 것이 요즘 스타 사업가들의 특징이다. ●동대문 시장에도 스타들이? 스타 투잡스 붐에서 새로 잡히는 트렌드는 단순히 ‘업종 다양화’뿐만이 아니다.‘럭셔리’ 패션리더들만 상대하겠다는 고집을 버리고 동대문 등 강북 상권을 부지런히 노크하고 있는 점도 새로운 경향이다. 지난 4월 탤런트 이승연은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지하매장에 ‘어바웃 엘’이라는 작은 옷가게를 냈다. 새벽이면 내로라 하는 패션모델들까지 즐겨찾기로 소문난 그곳에서 지난 14일 만난 대학생 구은의(23·동대문구 휘경동)씨는 “이승연씨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살 수 있다기에 친구들과 함께 왔다.”면서 “오늘 이승연씨를 만나진 못했지만,TV에서만 보던 톱스타가 공들여 만든 옷을 입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고 말했다. 10∼20대가 즐겨찾는 쇼핑몰 두타에는 가수 김완선이 ‘카멜리아 S’라는 의류매장을 열어 성업 중이다. 한 상가에 스타들이 무더기 입점해 ‘연예인 사업가 시대’를 한눈에 입증해 보이기도 한다.9월 초 문을 연 서울 은평구 불광역 ‘팜스퀘어’ 매장에는 여성그룹 SES의 유진, 댄스그룹 DJ DOC의 김창열, 탤런트 이의정, 모델 홍진경 등이 줄줄이 입점했다. ●짧아지는 인기수명…‘투잡스 스타’ 늘 수밖에 7년째 연예인 매니저로 일해온 김모(32)씨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홈쇼핑에 물건을 파는 게스트로 출연한 연예인들은 대부분 주류무대에서의 활동을 반쯤 접은 경우였다.”면서 “연예인 평균연령이 갈수록 어려지는데다 인기수명도 눈에 띄게 짧아지는 추세여서 일찌감치 미래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연예인 브랜드 붐 현상은 이미지 자체를 즐기려는 현대인들의 소비욕구와 잘 맞아떨어진 결과로도 풀이된다. 바야흐로 스타가 일상 속 소비욕망의 분화구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 시대이다. 이래저래 스타의 힘이 갈수록 생활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는 얘기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홈쇼핑채널서 ‘돈줄 캐기’ 경쟁

    스타에게 이미지는 돈이다. 안방 시장을 무차별 공략하는 홈쇼핑에서도 스타의 이미지는 그대로 ‘돈’으로 연결된다. 스타들의 ‘이미지 팔기’가 갈수록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TV 홈쇼핑 채널들이 스타를 내세운 판매경쟁에 불꽃을 튀기고 있는 것. 홈쇼핑 출연이 전성기 지난 한가한(?) 연예인들의 궁여지책으로 통하던 얘기는 옛말이다.‘파워 스타’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해 아예 쇼핑방송의 문화를 바꿔놓고 있는 분위기이다.“스타가 직·간접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이른바 ‘연예인 브랜드’가 잇따라 선보이면서 젊은 세대들이 홈쇼핑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혜영의 패션 브랜드 ‘미싱 도로시’(CJ홈쇼핑), 변정수의 여성 캐주얼 브랜드 ‘엘라호야’, 황신혜의 속옷 브랜드 ‘엘리프리’, 구준엽의 캐주얼 브랜드 ‘G-LIMIT’(현대홈쇼핑) 등이 홈쇼핑의 구매고객 연령대를 크게 낮춘 인기상품으로 우선 꼽힌다. 또 중견 탤런트 김영애의 ‘황토 솔림욕’은 GS홈쇼핑에서 최고 매출액을 올려주는 간판 브랜드로 자리잡았다는 것도 소문난 사실. 가수 김흥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필리오’도 지난 4월 론칭한 뒤 현대홈쇼핑을 통해 빠르게 호응을 얻는 스타 브랜드로 통한다.스타들 쪽은 막강 유통망을 업어서 든든하고, 홈쇼핑들 쪽은 힘 안들이고 스타의 이미지를 상품에 실어 안정적 매출을 기대할 수 있으니 양쪽이 ‘윈-윈’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 ‘연예인 브랜드 마케팅’의 실체를 따져 보면 스타들의 이미지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된다. 최근 부각된 대부분의 연예인 브랜드는 스타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해 이름만 빌려준 경우.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직접적인 자본투자보다는 상품 기획단계에서부터 제품의 전체 컨셉트와 세부 디자인 등에 관여하는 역할을 한다. 스타들은 이미지를 빌려주는 대가로 매출액의 일정 지분을 받게 되는 셈. 변정수, 이혜영, 황신혜 등이 모두 그런 사례들이다. 디자인 등 제품의 세부 내용에까지 의견이 반영되는 만큼 스타들의 홍보작업은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3일 방송분에서 현대홈쇼핑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변정수는 방송세트 꾸미는 작업에까지 신경을 썼다.그 자신이 해당 의류상품을 직접 입고 나와 코디네이션까지 꼼꼼히 귀띔해준 것은 물론. 덕분에 첫날 1시간 50여분의 방송분에서 무려 6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홈쇼핑 주요 소비자층과 한참 거리가 멀던 20대∼30대 초반 여성들이 움직였다는 분석이다.업체 관계자는 “오랫동안 홈쇼핑 제품이 중저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최근 스타들의 대거 참여로 순식간에 시장 이미지의 고급화에 성공했다.”고 말했다.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혁신 공기업탐방]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혁신 공기업탐방]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주말마다 제주도에 진풍경이 벌어진다. 대규모 아웃렛 매장에는 세계 유명 메이커 제품과 제주도 특산품을 싸게 사려는 내·외국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제주도 생태·신화·역사공원과 중문관광단지를 1박2일 일정으로 돌아보는 관광상품은 제주 첨단과학단지에 입주해 있는 정보기술(IT) 기업 직원들이 꼽는 최고의 주말 여행상품이다.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이 추구하는 2011년 제주도의 청사진이다. 이를 입증하듯 얼마 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대도시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제주도의 휴양형 주거단지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진 이사장은 19일 “제주도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일 뿐 아니라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으로 국제자유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서 “7대 선도프로젝트가 1차적으로 마무리되는 2011년에는 제주도가 꿈의 도시로 발전할 기틀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제주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JDC 이사장에 취임해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진 이사장을 만났다. ▶JDC의 설립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설립됐나. -DJ 정부 시절,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도를 관광·휴양 중심지로 개발하면서 비즈니스·첨단지식산업 등의 기능을 갖춘 국제자유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2001년 12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인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제정됐고, 이듬해인 2002년 4월부터 이 법이 시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제자유도시 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는 7개 선도프로젝트를 선정해 이 중 5개 프로젝트를 전담할 전문성과 자율성을 갖춘 기관으로 JDC가 설립된 것이다. ▶JDC가 맡고 있는 주요 업무는 무엇인가. -제주국제자유도시 선도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제주국제자유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토지를 매입해 관리하는 것이다. 또 과학기술단지와 투자진흥지구를 조성·관리할 뿐만 아니라 제주국제자유도시와 관련된 국내외 투자유치와 이를 위한 마케팅 및 홍보, 제주도민의 소득 향상을 위한 지원사업도 맡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재원조달을 위해서 내국인 면세점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JDC가 주력하고 있는 5대 선도프로젝트는 무엇인가. -5대 선도프로젝트는 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사업, 생태·신화·역사공원 조성, 서귀포관광미항개발, 휴양주거단지 조성사업, 쇼핑아웃렛사업 등이다. ▶5대 선도프로젝트의 사업진척도는 어떤가. -첨단과학기술단지는 지난 6월 기공식을 거행했다. 현재는 전체사업 면적 중 55% 정도의 부지를 확보했다. 휴양형주거단지 조성사업은 현재 부지 매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 사업에는 홍콩 투자회사인 AL사가 오는 2009년까지 14억 80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국제자유도시 출범이후 최초의 외자유치 성공사례가 될 것이다. 또 생태·신화·역사공원 조성사업은 전체 123만평 가운데 66.7%인 83만평의 부지를 이미 확보해 놓고 있다. 연말까지 투자자들의 사업계획을 반영한 마스터플랜을 완성시킴과 동시에 사업에 대한 통합영향평가 협의도 끝낼 계획이다. 쇼핑아웃렛사업은 사업자 공모를 한 결과 1개 업체가 신청을 했으나 부적격업체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앞으로 민간사업자 공모의 평가결과를 건설교통부와 제주도, 지역상권과 긴밀히 협의한 뒤 쇼핑아웃렛 사업의 추진상황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나갈 예정이다. 서귀포관광미항 개발사업은 해양수산부나 문화재청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완료된 후에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5개 선도프로젝트에 대한 총 투자금액은 어느 정도이고 조달계획은 어떤가. -총 투자규모는 3조 2000억원이다. 공공부문에서 7900억원, 민간부문에서 2조 4000억원을 투자하도록 돼 있다. 사업의 성패는 얼마나 성공적으로 국내·외 민간자본을 유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업들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자금이 차질 없이 조달될 수 있도록 중·장기 재원조달 로드맵을 조속히 만들어 실행해 나갈 것이다. 로드맵에 따라 국비 및 지방비 확보, 내국인 면세점 수익확대를 위한 제도개선 등 공공부문에서의 재원조달에 힘쓰는 한편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수익모델을 제시해 민자자본 유치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사업을 진행할 때 부지 확보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애로사항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부지확보는 개발사업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항이다. 제주발전이라는 총론에서 보면 지주들도 사업추진에 공감을 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이해문제인 보상가 때문에 사업을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사익과 공익을 조화시켜 나가는 것은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렇다고 공익을 앞세워 과거처럼 강제적으로 수용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익을 중시하면서도 사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주들과 대화하고 협의하며 용지보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5대 선도프로젝트 사업이 완료되면 제주도가 어떻게 달라지나. -선도프로젝트가 1차적으로 완료되는 2011년쯤이면 제주로 향하는 국·내외 관광객은 1000만명 정도로 늘어나게 돼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이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가 크게 해소될 것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제주도민 개인 소득이 올라가게 돼 지역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또 공항이나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도 개선돼 제주를 기점으로 한 항공노선과 크루즈 노선이 발달돼 세계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제주도가 명실상부한 관광·휴양의 국제자유도시로서 대한민국 경제의 한 몫을 담당해 나갈 것이다. ▶제주개발사업의 모델이 있나. -제주도는 앞으로 ‘평화의 섬’ 이미지를 구현하면서 국제자유도시의 비전을 실현시키는 특별자치도를 지향해야 한다. 이 세가지가 조화를 이뤄 발전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경쟁력이 없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고 제주도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들, 즉 관광·휴양을 중심으로 교육, 의료 등의 분야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관광, 휴양, 교육, 의료분야에 대해서는 규제완화, 세제혜택, 인센티브 제공 등 다른 지역이나 외국과는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도록 관련 법이나 제도 등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조건들을 제시해 나가야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로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한다면 홍콩이나 싱가포르, 아일랜드 같은 국가들이 제주도의 모델이 될 것으로 본다. 제주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진철훈 이사장은 진철훈 이사장은 도시개발전문가로 통한다. 서울시에서 25년 동안 건설·개발업무만 맡았다. 서울시 신청사 기획단장, 서울월드컵 주경기장 건설단장, 도시계획국장, 주택국장 등이 그가 맡았던 보직이다. 서울시 공무원이 선정하는 ‘가장 일 잘하는 간부’와 ‘함께 일하고 싶은 간부’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제주지사 재선거에 나와 분루를 삼켰다. 진 이사장은 지역밀착경영을 강조한다.‘제주도민과의 공감대 형성’,‘사익과 공익의 조화’,‘친환경 정책’이 바로 그가 말하는 지역밀착경영이다.JDC 사업의 성패는 부지매입에 달려 있다.JDC가 민간인들로부터 부지를 원활하게 매입하지 못하면 사업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 이사장은 제주도 출신이라는 점과 지역밀착경영을 최대환 활용, 부지매입을 속속 성사시키고 있다. 지주들을 ‘삼촌’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면서 설득한 것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진 이사장의 노력으로 JDC는 휴양형 주거단지는 54%, 생태·신화·역사공원 조성사업은 67%의 부지매입을 끝냈다. ▲제주시(51) ▲제주오현고·한양대 건축공학과 ▲기술고시 14회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시설관리과장 ▲서울시 신청사기획단장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주택국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첨단과학단지 사업은 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사업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추진하고 있는 5대 선도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중 하나다. 지난 6월11일 기공식을 가진 첨단과학기술단지는 제주시 아라동 33만평에 조성될 예정이다. 현재 JDC는 33만평의 55%인 17만평에 대해 토지매입을 끝냈다. 투입되는 예산은 4001억원에 달한다. 제주도의 다양한 생물자원과 청정환경을 활용해 연구·교육·주거·창업기능이 결합된 친 환경적인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이 JDC의 복안이다. 때문에 JDC가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유치할 업종은 전자부품, 영상, 음향, 컴퓨터, 정보처리, 섬유제품, 식음료 제조업 등 정보기술(IT)·생명기술(BT)·환경기술(ET) 업종 등이다.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입주하는 기업에는 엄청난 혜택이 뒤따른다. 우선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취득세·등록세가 면제되고,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는 5년 동안 50%가 감면된다. 또 국가균형발전정책에 따라 공장 및 본사를 이전한 기업에 대해서는 기존의 부동산 양도차익에 대해 특별혜택을 받는다. 법인세는 향후 5년 동안은 100%, 그 후 2년 동안은 50% 감면받는다. 산학협동 등 주변시설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산업단지에 입주하는 기업은 인근 제주대와 제주정보산업대, 제주대 부속병원 등의 각종 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다음달 산업시설 용지를 분양할 예정이지만 벌써부터 상당수 기업들이 입주를 희망하고 있다. 최근까지 IT업종 29곳,BT업종 14곳, 교육 관련업종 4곳,ET업종 3곳과 국책기관 1곳 등 모두 61개 업체가 입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IT 업체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JDC 관계자는 “오는 11월 중순쯤에는 서울에서 사업설명회도 열 예정”이라면서 “2011년에는 국제적 수준의 관광인프라와 첨단기술이 결합된 휴양형과학기술단지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국내 가전1위 쟁탈 ‘루키 힘겨루기’

    [우리는 맞수 CEO] 국내 가전1위 쟁탈 ‘루키 힘겨루기’

    전자업계의 국내 영업 부문은 이른바 ‘총성없는 전쟁터’다. 신경전이 난무하며, 얼굴도 붉히고, 때로는 험악한 성명전도 오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정된 파이에서 내가 살자니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국내 영업을 책임지는 장창덕(55) 부사장과 LG전자의 국내 마케팅을 맡고 있는 강신익(51) 부사장. 이들은 영업 최전선을 누비며, 칼끝을 경쟁사에 겨누고 있지만 의외로 공통점이 적지 않다. 장 부사장과 강 부사장은 올해 처음으로 국내 영업의 수장이 된 ‘루키’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영업 노하우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해외에서 한가닥씩 해본 솜씨들이다. 장 부사장은 노키아와 모토롤라가 꽉 잡은 러시아 시장에 ‘애니콜 신화’를 심어놓은 장본인이다. 삼성전자를 러시아의 국민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강 부사장도 미국에서 ‘Life’s good’ 등으로 LG 브랜드를 키워놓은 ‘아이디어맨’으로 통했다. 때로는 양사의 자존심과 과욕이 관계를 삐걱거리게도 했다. 진정한 라이벌로서 서로를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꼭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대목이 올 상반기에 적지 않았다. ●치열한 1등 경쟁 올 초반엔 장 부사장의 공격에 강 부사장의 수비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상반기를 지나면서 강 부사장의 공격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장 부사장의 올해 영업 목표는 매출 10조원 돌파와 가전 시장에서의 선두 탈환.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지난 2·4분기 가전 실적에서 3년 만에 분기 매출 1조원을 달성했으며,5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삼성전자의 상반기 국내 영업 매출은 4조 1000억원 수준.LG전자 매출과 비교하면 1.5배 가량 많다. 장 부사장은 “삼성이 국내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특히 에어컨은 80%, 지펠과 드럼세탁기 등 프리미엄 생활가전은 30%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엔 PC 교체 수요로 노트북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휴대전화시장점유율도 50% 이상 확보를 자신한다.”면서 올해 목표치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의 약진에 LG전자도 전열을 가다듬었다. 강 부사장은 지난 7월 한국마케팅 부문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또 휴대전화의 영업 강화를 위해 ‘싸이언팀’을 신설했고, 유통 현장과 마케팅 조직의 유기적 연결을 위해 ‘마케팅 전략지원실’도 만들었다. 최근엔 프리미엄 가전시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존 양문형 냉장고 브랜드인 ‘디오스’를 주방가전 통합브랜드로 내놓기도 했다. 강 부사장은 “올 상반기 실적은 고객관리 강화와 매장 확대 등에 힘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성장했다.”면서 “제품별로는 에어컨이 77%, 냉장고 6%,TV 11%,PC는 94%나 늘었다.”고 설명했다.LG전자가 생활가전 부문에선 여전히 1등이라 것이다. 지난 2·4분기 LG전자의 가전 매출은 1조 6211억원, 영업이익은 1621억원을 올렸다. ●날카로운 신경전은 여전 장 부사장과 강 부사장이 보는 경쟁사는 어떨까. 둘 다 부담스러운지 직접적인 답변은 피했다. 강 부사장은 다만 “삼성전자에 대해 뭐라고 직접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 “LG전자와 삼성전자 모두 내수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덕분에 세계 가전과 IT 시장을 이끌어 가는 업체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장 부사장과 강 부사장은 그룹에서 알아주는 기획 및 전략통이다. 다만 장 부사장이 철저한 현장주의자로 유명한 반면 강 부사장은 튼튼한 기본기를 강조한다. 또 장 부사장이 삼성 문화와 달리 밀어 붙이는 추진력이 대단하다면 강 부사장은 친근하고 세련된 스타일이다. 장 부사장의 주량은 소주 1병. 골프 핸디는 14 수준이다. 일주일 가운데 3일은 1시간씩 조깅하는 것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강 부사장은 술을 썩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맞출 수 있는 수준. 시간이 나면 수영과 테니스, 골프, 스키 등을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LG전자 강신익 부사장 ▲1954년 경북 봉화생 ▲1972년 경동고 졸 ▲1977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 ▲1976년 효성 입사 ▲1986년 LG전자 입사 ▲1992년 그룹 회장실 V-추진본부 과장 ▲1995년 제니스 지원팀 부장 ▲1996년 캐나다 법인장 ▲1998년 미국 시카고 제니스 재무담당(상무) ▲2001년 미국법인 브랜드 담당(상무) ▲2005년 한국마케팅부문장(부사장) ■ 삼성전자 장창덕 부사장 ▲1950년 서울생 ▲1969년 중동고 졸 ▲1974년 성균관대 사학과 졸 ▲1976년 삼성전자 입사 ▲1997년 전자소그룹 기획팀장 ▲1998년 정보가전 영상사업부장 ▲2000년 디지털미디어총괄 디지털영상사업부장(전무) ▲2001년 독립국가연합(CIS) 총괄(전무) ▲2004년 독립국가연합(CIS) 총괄 본부장(부사장) ▲2005년 국내영업사업부장(부사장) 겸 삼성전자 스포츠구단 구단주 대행
  • 방송시장 지각변동 신호탄

    방송시장 지각변동 신호탄

    ‘요즘 방송가가 참 어지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니 인터넷프로토콜TV(IPTV)니 하는 것들을 둘러싸고 웅성대더니 ‘지역MBC들의 종합편성PP’에다 ‘방송위원회의 경인방송 후속대책’이란 것이 나와 시끌시끌하다. 앞의 것이 뉴미디어라면 뒤의 것은 올드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앞의 것이 기존 매체에 대한 도전이라면, 뒤의 것은 기존 매체의 응전이라고 보는 축도 있다. 도전과 응전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으니 당분간은 소란스러움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종합편성PP, 경인방송 후속대책?-지상파방송 늘어난다 경인방송 후속대책과 종합편성PP설립, 이 두 가지는 간단하게 말해 새로운 지상파방송사가 생긴다고 요약할 수 있다. 지역MBC계열사들이 설립하겠다고 나선 종합편성PP는 각 지역 방송사의 작품들 가운데 우수한 것들을 뽑아 따로 편성해 방송하겠다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케이블 채널이지만, 지상파채널도 케이블을 통해 시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상파방송과 맞먹는 효과를 낳게 된다. 여기에다 종합편성 프로그램프로바이더(PP)는 케이블·위성방송이 의무적으로 재전송한다. 지역MBC가 서둘러 뭉친 배경에는 지역민방의 등장과 뒤이어 선보인 뉴미디어들 때문이다. 뭔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정파된 경인방송의 후속 사업자는 연내 선정될 예정이다. 이 방송 사업자는 인천·경기 전역에 방송을 내보내고 서울에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통해 재전송한다. 서울지역SO와 연계만 잘 이뤄진다면 재전송채널도 본방송 채널과 같은 채널번호를 쓸 수 있다. 그리고 꼭 재전송이 아니더라도 인천·경기 전역을 대상으로 방송전파를 쏘아올리면 전파가 서울로 넘지 않게 막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 때문에 ‘사실상 제2의 SBS 허가’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사안들은 방송시장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경인방송, 벌써부터 說 說 說…… 경인방송 후속대책을 두고는 벌써부터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방송권역 확대 결정에 대한 의혹이 거둬지지 않고 있어서다. 방송권역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옛 iTV관계자들조차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새 방송사업자 자리를 탐내고 있는 일부 업체들이 열심히 뛰지 않았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몇몇 회사와 그 배경에 있는 모 재벌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는 말도 나돈다. 동시에 이미 사업자 선정에 강한 의지를 내보였던 CBS와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는 특혜시비를 잠재울 수 있는 명분 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중기협은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라는 명분에 방송경험 부족을 메울 수 있는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CBS는 ‘특정종교’라는 핸디캡을 벗기 위해 다른 종교와의 컨소시엄 구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당사자는 부인하는데 업계에서는 진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MBC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도 2·3대 주주로라도 참가할지 주목거리다. ●종합편성PP? MBC 제2TV? 종합편성PP 설립문제는 훨씬 더 심한 강력한 견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우선 지역MBC들끼리 하는 것이라 지역민방과 지역KBS와의 관계설정이 모호하다. 동시에 케이블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케이블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을 얘기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지상파계열 케이블들의 독주가 확연하다.”면서 “지상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상파방송의 영향력을 또 한번 키워줄 종합편성PP 허용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다른 지상파방송사들 역시 지금은 잠잠하지만 ‘제2의 MBC냐.’라는 불편한 시선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당장 지난 2일 열린 토론회에서도 이와 같은 반대논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역MBC의 주식 대부분을 MBC가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MBC에만 종합편성PP를 허용하는 것은 지나친 특혜가 아니냐는 반론들이었다. 그 가운데 종합편성PP 인가권을 가진 방송위 김동균 채널사용사업부장의 반론이 눈길을 끌었다. 김 부장은 “원래 방송위가 논의했던 종합편성PP 허가 문제는 문화관광부의 외주제작채널 추진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있었고 보도기능 허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방송위가 종합편성PP를 거론했던 이유를 똑바로 이해하라는 말이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월드이슈] 30년새 허리케인 위력3배…무분별한 개발의 ‘역습’

    [월드이슈] 30년새 허리케인 위력3배…무분별한 개발의 ‘역습’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후진국에나 있을 법한 최대 1만명의 인명피해,100조원의 재산 피해를 남긴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씨름하느라 비틀거리고 있다. 카트리나 같은 허리케인, 태풍, 홍수, 가뭄 등의 기상 재해는 흔히 ‘천재지변’으로 치부되지만 인적·물적 피해를 키운 것은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이 기상학자들의 중론이다. 대피나 구호체계 미비와 같은 ‘사후적 인재’는 차치하더라도 원천적으로 참화를 키운 것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이라는 논리다. ●지구 온난화가 재앙의 대형화 초래 유엔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4∼2003년 전세계에서 홍수와 지진, 허리케인 등 자연 재해로 피해를 입은 이들은 25억명 이상이다. 지난해 말 동남아를 휩쓴 쓰나미(지진해일) 사망자 18만명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이는 그 전 10년간에 견줘 60% 늘어난 수치다. 카트리나는 특이하게도 플로리다주를 거쳐 멕시코만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위력이 5등급으로 커져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앨라배마 등 3개 주를 할퀴고 지나갔다. 미국의 석유 정제시설 중 30% 이상이 자리잡고 있는 멕시코만 일대에서 수증기를 얻어 카트리나의 위력이 커진 것이다.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환경의 응징을 당했다는 주장은 위르겐 트리틴 독일 환경장관이 처음 주장했다. 그는 “카트리나 같은 자연 재해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인간들이 야기한 지구 온난화로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트리틴 장관은 독일이 지난 90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을 18.5% 줄였는데, “미국인들은 유럽인에 비해 2.5배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연중 8∼10차례 발생하는 허리케인 건수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화석연료가 소비되고 이를 채굴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 악순환으로 인해 (허리케인의) 위력이 커졌다는 것이 기상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기상물리학자 케리 이마누엘은 지난 1970년 이래 허리케인은 3배, 태풍의 위력은 2배 커졌다고 분석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지난 30년간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는 섭씨 0.5도 올랐지만 열대성 폭풍우의 위력은 갑절로 커졌다고 분석했다. ●무분별한 습지 개발이 재앙 키워 지난해 자연 재해로 인한 전세계 보험사 지급액은 400억달러 이상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이는 플로리다주를 연타한 허리케인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지니를 비롯, 모두 4개의 허리케인이 44억달러부터 70억달러까지의 재산 피해를 남겼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연재해에 취약한 플로리다, 대서양과 멕시코만 연안, 캘리포니아 등에 몰리는 것도 재해 피해 증가와 관련,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진 전문가인 로버트 해밀턴은 지적했다. 1969∼89년 상대적으로 허리케인이 잠잠할 때 플로리다 등 남부 해안지대의 무분별한 개발이 강행됐다. 습지에는 호텔과 콘도가 들어섰고 방조제 역할을 하던 모래섬과 삼나무, 층층나무 등 휴양림은 베어졌다.1930년 이래 제방과 운하가 건설되면서 무려 5000㎢의 습지가 사라졌다. 제프리 마운트 캘리포니아대 지질학과 교수는 “5㎢ 습지가 파괴될 때마다 태풍 파고는 60㎝씩 올라간다.”고 짚었다. 습지를 고갈시키고 구릉지대를 불도저로 밀어버림으로써 생태계와 물의 흐름 등 지표 환경이 교란돼 재해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뉴올리언스를 침수케 한 것은 폰차트레인 호수에 가까운 제방 붕괴였지만,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제방은 그 자체로 재앙을 불러들인 원인이다. 미시시피강에서 밀려 내려오는 토사의 흐름을 차단, 결과적으로 멕시코만 연안에 퇴적돼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환경사학자인 시어도어 스타인버그 교수는 “65년 허리케인 벳시가 덮쳤을 때보다 뉴올리언스는 훨씬 더 멕시코만에 가까이 다가서 있다.”고 말했다. 이젠 만 자체가 도시가 됐다는 얘기다. 루이지애나 주정부는 더 튼튼한 제방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더 훌륭한 제방을 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 장관이 5일 뉴올리언스시의 복구보다는 이전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발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상 최악의 재앙이 수습되는 대로 부시 행정부는 교토의정서 비준과 같은 또 하나의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환경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대성 폭풍 어떤것들이 있나 바다가 만들어내는 ‘핵폭탄’인 열대성 폭풍은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북미 대륙을 강타하는 허리케인, 동북아시아의 태풍, 인도양의 사이클론, 호주의 윌리윌리 등으로 이름은 다르지만 생성과정은 모두 같다. 이들은 연간 80회쯤 발생하는데, 태풍이 20∼30회로 가장 많다. 허리케인은 8∼10월에 많이 생기며, 한해 평균 10회쯤 나타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허리케인은 1900년 텍사스주 갤브스톤에서 발생한 것으로 최소 8000명이 숨졌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태풍 가운데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것은 1936년 8월 발생한 태풍. 사망자 1232명, 실종자 1646명에 이른다. 재산피해가 가장 컸던 것은 2002년 8월 강원도를 강타했던 루사로 무려 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사이클론은 1년 평균 5∼7회 발생하며, 규모는 태풍이나 허리케인보다 작다. 하지만 피해는 만만치 않아 1991년 발생한 사이클론은 14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지구온난화론 부정하는 세력들 전세계 과학자들이 대형화된 기상재해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지목하고 있음에도 상당수 미국인들은 이같은 현실을 잘 모르고 있다고 보스턴 글로브가 지난달 30일자에서 신랄하게 지적했다. 이 신문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석탄과 석유 회사들이 온난화 이슈를 희석시키기 위해 수백만달러의 홍보비를 지출해 왔다면서, 미국민 다수가 온난화의 심각성을 외면하게 된 데는 언론도 공동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미 언론은 이 문제를 다룰 때도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만 조명할 뿐 농업과 환경·기후 등에 미치는 영향에는 무심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995년 미네소타주 공공설비 청문회는 석탄업계가 네 명의 과학자에게 100만달러 이상의 뒷돈을 대 지구온난화 논리를 깨려고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세계 최대의 정유업체 엑손모빌은 1998년부터 1300만달러 이상을 지구온난화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한 언론 홍보와 로비에 지출해 왔다. 마침내 이들 업계는 지난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당선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기후 및 에너지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이듬해 미국이 국제적 기후변화협약인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한 것이 정점이었다. 백악관 고위관리가 지구온난화와 온실가스 배출의 상관관계를 다룬 보고서를 직접 조작한 일도 있다. 백악관 환경회의 수석보좌관 필립 A 쿠니는 2002년과 2003년 기후보고서의 초안을 수정해 사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려 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 6월7일 보도한 바 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다날 박성찬사장 “휴대전화 결제서비스 글로벌화”

    다날 박성찬사장 “휴대전화 결제서비스 글로벌화”

    “올해부터 해외시장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성공의 길만 생각하렵니다.” 다날 박성찬 사장은 최근 동남아지역 사업으로 무척 바빴다.8월 한달간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를 휴대전화 결제사업, 벨소리 사업 협의차 두루 다녀왔다. 다날은 휴대전화 결제 및 컬러링 사업으로 잘 알려진 업체다. 지난해 매출액 528억원에서 올해는 63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올 2·4분기엔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0%나 늘었다. “어떤 회사입니까. 결제 회사라니요.” 다날이 그동안 컬러링 전문업체로 알려진 터라 ‘사업의 컬러’가 궁금했다. 그만큼 다날의 사업 모델은 휴대전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해 응용분야가 다양하다. 그는 최근 들어 동남아 등 외국에 사업차 자주 나간다. 지난달엔 20일을 동남아에서 지냈다. 국내 대표 컬러링 회사이지만 회사 덩치도 커졌고, 국내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로 해외 시장을 뚫겠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 중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의 휴대전화 결제 계약을 맺은 데 이어 동남아, 중남미 등을 공략 중이다. 중국시장은 전역에서 서비스한다는 점에서 ‘대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박 사장은 “지난해에 코스닥 진출이 최대 과제였다면 올해는 사업을 글로벌화하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2∼3년 안에 모바일 콘텐츠와 휴대전화 결제를 내세워 전 세계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다날의 서비스를 이용토록 하겠다는 게 그와 회사의 목표다. 딱 10년 전, 그는 변화가 무쌍한 IT업체 사장이 아닌 굴뚝산업인 건설업체의 사장이었다. 지난 82년 고교를 졸업, 서울 마아리에서 건설업(빌라)에 뛰어들어 90년대 중반쯤에 큰 돈을 벌었다. 이를 기반으로 97년 다날이 설립됐다. “사기(땅)를 많이 당했죠. 제 사업은 운이 8할인 것 같습니다.” 8할의 운 때문인지 벤처사업가로의 변신은 성공작이었다. 그는 튀는 용모에다가 정(情)이 많다.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쉽게 믿다가 사기도 많이 당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지근 사람들은 결정이 매우 빠르다고 귀띔했다. 스스로 사업 아이디어를 내놓고 구상이 서면 곧바로 결정을 하는 스타일이다. 한발 앞서는 ‘감’이다. 그래서 박 사장은 “지난 일이 아닌 앞만 보고 성공만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 세대, 즉 20대는 꿈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지난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며 이것이 다날의 사업 ‘방향타’라고 말했다. 회사이름도 이런 이유로 ‘다가오는 날은 다 좋은 날’이란 뜻으로 다날로 지었다. 박 사장은 다날을 ‘꾸준히’ 성장해 가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은 게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는 그의 나이가 아직 젊은 40대 초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 사장은 지난해 초부터 한국콘텐츠산업연합회 의장을 맡아 업계에서의 보폭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1)-창업주 박인천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1)-창업주 박인천회장家

    “잠깐이면 될 것이다. 아주 잠깐. 이 쇳줄을 넘어 몸을 던지면 될 것이여. 눈 깜짝할 사이면 저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 아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잉게.” 문화부장관을 지낸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창동씨가 지은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朴仁天) 일대기인 ‘집념-길위의 길’에는 1923년 당시 23세이던 박씨의 실패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2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박씨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장사에 손을 댔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일본 오사카에 돈을 벌러 갔지만 일주일만에 빈손으로 돌아오며 자살을 염두에 뒀을 정도로 그의 젊은 시절은 상처투성이였다. 이창동씨는 박씨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묘사하면서 “박인천의 일생은 우리 역사의 엄정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택시 2대로 운수사업 시작 박씨는 나이 30세를 넘어 정규 교육을 이수하지 못했으면서도 독학으로 지금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는 등 놀랄 만한 집념으로 인생의 반전을 이뤘다. 이런 그의 의지는 해방 이후 당시로선 노인 취급을 받고 은퇴할 만한 나이인 46세에 광주에서 미국산 중고택시 두 대로 회사를 차려 광주고속이라는 고속버스 회사를 출범시킨다. 박 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삼양타이어(현재의 금호타이어), 석유화학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현재 재계서열 10위 그룹으로 키워 냈다. 특히 금호그룹은 5공시절 예상을 깨고 제2민항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며 대표적인 호남재벌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박씨가 택시 두 대에서 아시아나항공까지 키워온 대재벌의 창업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뼈아픈 실패들이 밑거름이 되었다. 남달리 고집이 세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 오늘날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박씨의 삶은 좌절과 성공을 향한 몸부림, 해방 후 맨주먹으로 출발해 한국 굴지의 재벌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킬 만큼 극적이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과 닮은꼴이라는 평가가 많다. 아호가 ‘금호’(錦湖)인 박인천 회장은 1901년 7월5일 전남 나주군 죽포면 동산부락 일명 신기(新基)마을에서 태어났다. 빈농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열 살이 될 때까지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당에 다녀야 했다. 또래들보다 늦게 시작한 한학이지만 열다섯살 때 팔현강당에서 개최된 강경(講經)시합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곧 한문공부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자동차가 신작로 위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시대에 한문 공부를 해서 뭘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열일곱살 되던 해 지금의 초등학교격인 나주 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식공부에 대한 열의도 2년을 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녀야 하는 나이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애늙은이’ 취급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접어 버리고 열아홉살 때부터 면화수집상, 대금업, 싸전업 등의 장사를 했지만 손을 대는 족족 손해만 입었다. 이처럼 실패만 거듭해온 박씨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일본으로 건너간 직후였다. 일본 오사카에서 보았던 어마어마한 공장 굴뚝 앞에서 조선 사람으로서의 무력감과 좌절감이 그를 바꿔 놓았다.“일본놈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공장을 짓는지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일본 순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 뒤 5년 만인 1929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이후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이순정 여사를 배필로 맞았다. 박 회장은 8·15 해방을 맞자 택시 두 대를 구입해 운수사업에 뛰어들었다.17만원(圓)의 자본금으로 포드 디럭스 세단 5인승 택시 두 대를 사들였다. 그때 이 돈은 80㎏들이 쌀 44가마를 살 수 있는 액수였다.3남인 삼구 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창업주의 집념, 도전, 개척정신을 본받는다는 취지로 그룹 창업의 모태가 됐던 택시와 똑같은 모델을 구입해 용인 금호아시아나 인재개발원 1층 로비에 전시하고 있다. 사업수완이 있었던 박 회장은 2년여의 짧은 기간에 어느 정도 자본을 축적,48년에 광주여객을 세워 버스운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박 회장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50년대에 광주여객을 전라남도 최대의 여객운송업체로 키워냈다. 이 과정에서 이순정 여사의 내조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 올해 95세인 이 여사는 아직도 광주여객을 운영하던 광주시 금남로 212번지에 거주하고 있다. 광주여객을 경영하던 당시 ‘안집’이라고 불렸던 이 집에서 친척, 조카, 버스 차장과 정비공 등 50명의 식솔을 손수 챙길 정도로 남편의 사업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1984년 남편과 사별한 이후에도 이 여사는 900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매년 1억원 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불우이웃을 돕고 봉사단체를 육성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이 여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민간부문 최고 권위의 ‘적십자 박애장 금장’을 받기도 했다. ●제2민항 선정 ‘제2 도약´ 광주여객을 업계 최고의 반열위에 올려 놓은 박 회장은 이후 방적회사인 전남제사, 고려도자를 비롯해 금호타이어(전 삼양타이어)를 설립,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그러던 박 회장은 1972년 어느 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큰 아들 성용에게서 중대한 제안을 받는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던 사무실로 찾아 온 아들은 “경영성과를 높이고 효율적 운영을 위해 지주회사 설립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다. 박 회장은 이를 받아들였고, 같은 해 10월 10일 박성용 교수 등 7명이 발기인으로 참석해 지주회사인 ‘금호실업’ 설립을 결의했다. 박 회장은 또 박 교수를 금호실업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1973년 1월1일 금호아시아나는 박 회장이 초대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출범시켰다. 금호는 그룹체제 출범과 함께 계열사별로 경영관리체제를 정비했다. 금호실업은 장남인 성용, 광주고속은 2남인 정구, 금호타이어는 3남인 삼구, 삼화교통은 첫째 사위인 배영환에게 경영을 책임지도록 했다. 1984년 6월6일 타계한 박인천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인 박성용 부회장이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서강대 교수 재직시절부터 자문역으로 그룹경영을 도와온 박 회장은 금호실업 사장과 그룹 부회장을 거쳐 10년 만에 2세 경영시대를 연 것이다. 박성용 회장은 88년 정부로부터 제2민항 설립업체로 선정되는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계열사간 합병과 비수익 사업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해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박성용 회장은 1996년 4월 바로 아래 동생인 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 주었다. 형제간 친족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작금의 경영계에 교훈이 될 ‘형제간 화합경영’의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박정구 회장이 2002년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뜨자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 4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박인천 회장은 슬하에 5남3녀를 두었다. 성용, 정구, 삼구에 이어 4남 찬구 금호석유화학부회장,5남 종구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 등이다. 딸은 경애, 강자, 현주씨 등 3명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혼맥은 박인천 회장이 생전에 아들딸의 혼사에 매우 신경을 썼기 때문에 정·관·재계 유력 집안과 화려한 혼맥을 맺고 있다. 박 회장은 직접 유력 집안에 줄을 넣어 “사돈을 맺자.”고 청한 적도 있을 만큼 자식들의 혼사를 중요시했다. 특히 호남재벌이면서도 정구, 삼구, 찬구 3형제를 모두 영남 유력 집안에 장가 보냈다. 3세들 결혼도 삼성,LG, 대우그룹과 사돈을 맺는 등 화려한 혼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박 회장이 자식들의 결혼을 직접 챙기는 등 혼사를 중요시 여겼지만 유독 큰아들 성용은 부친의 뜻을 어기며 연애결혼을 강행했다. 큰 아들 성용은 미국 예일대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미국인 마거릿 클라크를 만나 열애 끝에 1964년에 결혼했다. 박성용 회장은 클라크 여사와 1남 1녀를 뒀다. 장손녀 미영(39)씨는 아직 미혼으로 캐나다에서 머물며 불교 관련 일을 보고 있다.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있는 재영(35)씨는 구자훈 LG화재 회장 3녀인 구문정(30)씨와 결혼해 1남을 두고 있다. 창업주의 큰딸인 경애(71)씨는 제헌의원 출신 배태성씨의 장남 배영환(72) 삼화고속 회장에게 시집을 갔다. 슬하에 배정철·승현·동철·홍철 등 4형제를 낳았다. 2남인 정구 회장은 경북 안동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익기 전 국회의원의 딸 김형일(59)씨를 배필로 맞았다. 김익기씨는 해태그룹의 창업주였던 박병규씨와 사돈관계이고, 박병규씨는 민병권 전 교통부 장관과 사돈이기도 하다. 정구 회장은 슬하에 은형·은경·은혜씨 등 세 딸과 외아들인 철완씨를 두고 있다. 세 딸은 모두 시집을 갔는데, 재계 유력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장녀 은형(35)씨는 김우중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포천아도니스CC 사장)씨와 결혼했고, 은경(33)씨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차남인 장세홍(한국특수형강 이사)씨와,3녀 은혜(29)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재명(일진경금속 영업담당겸 누브인터내셔널 대표)씨와 혼인했다. 아들 철완(27)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금호미술관장으로 있는 2녀 강자(64)씨는 대한전자재료 회장인 강대균(64)씨와 결혼했다. 강씨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LSE대 출신인 아들 재원(25)씨와 지은과 지영 등 두 딸이 슬하에 있다. 3남인 삼구 회장의 부인 이경결씨는 한국은행·산업은행 총재, 재무장관을 지낸 이정환씨의 둘째 딸이다. 이정환씨는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삼구 회장의 장남 세창(30)씨는 2003년 3월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현정(29)씨와 결혼했다. 세창씨는 지난 6월 MIT공대 MBA 과정을 졸업한 뒤 미국 회사에 취직했고, 딸 세진씨는 유학 중에 있다. 4남 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위창남 전 광주투금 사장 딸인 위진영씨와 결혼했다. 장남 준경(27)씨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중동 관련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 주형씨는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3녀 현주씨 삼성과 사돈 금호가(家)의 화려한 혼맥은 3녀인 현주(52)씨에서 절정을 이뤘다. 현주씨는 대상그룹 임창욱(56)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현주씨는 1998년 큰딸 세령(28)씨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동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37)와 결혼시켜 삼성가와 사돈 관계로 맺어졌다. 세령씨와 이 상무가 만나게 된 것은 두 사람의 어머니인 현주씨와 홍라희 여사가 불교신도 모임인 ‘불이회’에서 친하게 지낸 게 계기가 됐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세령씨는 결혼과 함께 휴학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남편을 따라 유학길에 올랐다. 세령씨는 유학 중 2000년 장남 지호를 얻었고, 이듬해 귀국해 이건희 회장 부부와 함께 살면서 지난해에는 딸 원주를 낳았다. 둘째 딸 상민씨는 이화여대를 나와 미국 유학 중이다. 특히 현주씨는 대상그룹의 계열사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지분 75%를 갖고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딸 상민씨를 2대 주주(17%)로 편입시켜 눈길을 끈다. 5남 종구(47)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은 ㈜삼흥복장 사장 이명선씨의 장녀 이계옥(47)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건호, 도윤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박씨는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 1998년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별정직 2급)으로 공직을 시작했다.2002년 수질개선기획단 부단장으로 자리를 잠시 옮겼다가 2003년부터 국무조정실 1급인 경제조정관으로 재직 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을 펼치면서도 유독 종구씨만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점도 재계에 비상한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박씨는 막내 아들이지만 경제를 전공한 전문가로서 그룹 일에 뜻을 두기보다는 공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으로 집안 내에서도 정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벽안의 맏며느리’ 클라크 여사 ‘벽안(碧眼)의 재벌 며느리’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마거릿 클라크 박 여사는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에 가까웠다. 보수적인 재벌가에서 조용히 남편을 도우며 맏며느리로서 시동생과 동서들을 챙기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예일대 수학중 만나 교제 마거릿 클라크 여사는 남편인 박 전 명예회장을 1963년 미국 예일대에서 만났다. 그녀는 대학원 경제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박 전 회장을 눈여겨봤다. 동양인이면서도 이지적인 이미지에 항상 ‘제니스’ 라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클래식 음악을 듣던 박 전 회장에 대한 호감이 컸다는 게 박 전 회장의 이종 사촌인 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 등 친인척들의 전언이다. 박성용 전 회장도 미국인이지만 키도 그리 크지 않고 조신하게 생긴 클라크 여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커갈수록 고통이 더했다. 당시로선 유교적 전통이 강한 밀양 박씨의 장손으로 외국인을 맏며느리로 들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번민의 세월을 보내던 박 전 회장은 아버지에게 클라크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그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동봉했다. 그러나 아버지 박인천 회장은 그 사진을 둘로 찢어서 봉투에 넣어 아들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그것이 박 회장이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단호한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부모에게 효자로 소문난 박 전 회장은 난생 처음 부모의 뜻을 거역했다.1964년 둘이서 법적 절차만을 갖춘 최소한의 결혼식을 올리고 아버지와 사실상 ‘의절’ 상태에 들어갔다. 물론 박 회장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도 않았고,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 박 회장은 큰 아들 성용이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때에 둘째딸 강자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자 아들 집을 방문하게 됐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예일대경제학박사를 받은 뒤 클리블랜드시에 있는 케이스 공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박인천 회장은 클리블랜드 공항에 마중나온 파란 눈의 며느리와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장손녀 미영씨를 맞닥뜨린 뒤 얼었던 마음이 녹아 내렸다. 미국인이었지만 수수하면서도 정이 가는 인상을 가진 맏며느리를 보고는 굳게 닫혔던 마음을 2년반 만에 연 것이다. ●자녀들에 한국식 교육 서구 고문은 “성용 형님이 결혼한 뒤 페기(마거릿 클라크의 애칭) 형수에게 집안의 법도 등 예절교육을 많이 시켰다.”면서 “아버님에게 며느리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의 며느리가 지켜야할 예절에 대해 귀가 닳도록 얘기를 했다는 말을 형님으로부터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클라크 여사는 미국인이지만 미영씨와 재영씨를 이화여고와 구정고까지 졸업시킨 뒤에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을 정도로 한국식 자녀교육을 고수했다. 그녀의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상대방이 하는 얘기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클라크 여사는 박 전 회장 사후에 미국 친정에 기거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에 있는 미영씨와 재영씨를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미국에서 달려와 직접 챙기는 등 아직도 맏며느리로서의 소임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박인천 회장도 한국 집안에 시집온 뒤로 별 탈 없이 큰 며느리의 역할을 해내는 미국 며느리에 대해 뒤늦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작한 탄생 100주년 기념 영상물에서 한 지인에게 “우리 큰 자부(며느리)가 미국 여자입니다. 나도 잘 이해를 하고 또 역시나 데리고 있어 보니까 똑같아요. 한국 며느리나 외국 며느리나. 그리고 이해심도 있어요. 자기들끼리 좋으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창업주 父子 ‘금연 전도사’ ▲ 창업주의 도전정신을 기리기 위해 용인 인재개발원에 전시된 ‘1933년형 포드 딜럭스세단 5인승’ 옆에서 박삼구(왼쪽) 회장과 박찬구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연운동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1986년 금연 캠페인을 시작해 1991년부터는 자체 사업장뿐만 아니라 일선 영업장에까지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이런 금연 노력은 창업주와 2세 경영인들의 건강과 무관하지 않다. 박인천 회장은 1938년 심한 폐병을 앓아 2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했다. 지금이야 폐병이 심한 병이 아니지만 당시 폐병을 앓는 환자는 세 명 중 두 명이 죽어나갔다. 경찰이었던 박 회장은 요양을 위해 순천경찰서에서 보성경찰서로 직장을 옮기고, 몸에 좋다는 각종 약과 치료를 받았지만 별반 차도가 없었다. 결국 경찰서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목포에서 개업 중이던 김보형이라는 한의사로부터 1년 동안 녹용을 복용한 이후에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이후 장수를 누려 84세에 별세했다. 박성용 명예회장도 폐가 좋지 않았다.1985년까지 하루에 담배 두갑을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다. 그러나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여 흡연운동을 전사적으로 전개했다. 1986년 8월 박 회장을 비롯한 142명의 임직원들이 금연운동에 동참해 매일 담뱃값 대신 푼돈을 모아 만든 ‘금호건강복지기금’을 조성해 금연 캠페인을 시작했다. 1991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던 그룹 본사 사옥인 아시아나 빌딩을 포함한 전 사업장에 완전금연을 실시했다. 박 명예회장은 이런 공로로 1991년 8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금연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박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딱딱한 단화를 신지 못하고 스폰지 단화나 등산화 등을 신고 다녔다. 박정구 회장도 폐병으로 2년여 투병생활을 했다.2001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MD앤더슨암센터에서 폐기종 치료를 받아 한때 건강을 되찾아 경영 일선에 복귀했으나 2002년 7월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그룹 관계자는 “창업주를 비롯한 2세 경영인들이 공교롭게도 폐가 좋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가족병이라기보다는 경영인으로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최종건 SK그룹 선대회장과 최종현 회장, 양회문 대신증권 회장 등이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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