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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rld 특파원 블로그] ‘공안 통치’에 폭발하는 中 민심

    지난해 5월 중국 헤이룽장성 칭안현 열차역에서 한 남성이 공안(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경찰관은 대합실에서 어린 딸에게 손찌검하고 노모를 괴롭히던 이 남성이 자신의 곤봉까지 빼앗으려고 하자 발포했다. 노모는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국은 “적법한 총기 사용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이 남성의 행패 장면을 집중 보도했다. 정확히 1년 뒤인 지난 7일 베이징 공안국은 “마사지 업소 성매매 단속 현장에서 체포한 레이양(雷洋·29)이 조사를 받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짧게 발표했다. 유족들은 머리에 난 상처, 입가의 혈흔 등을 근거로 공안의 가혹행위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안은 성매매 사실만 부각시키려고 했다. 레이의 아내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남편이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남편이 죽었느냐는 것”이라고 외쳤다. 민심이 들끓었다. 웨이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인권과 생명이 지푸라기처럼 가벼운 사회에서는 모두 다 레이양이 될 수 있다”는 글이 폭주했다. CCTV도 1년 전과 달리 유족의 입장을 적극 보도했다. 이 와중에 한 대학생이 공안에게 맞아 시퍼렇게 멍든 허벅지를 인터넷에 올렸다. 폭력 혐의로 끌려온 이 청년은 공안에게 대들다가 폭행을 당했다. 해당 공안국은 공무집행 방해를 부각시켰으나, 민심은 “공안이 함부로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지난 12일에는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철거민이 철거 담당 공무원 3명을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현장에 출동한 공안은 철거민을 총으로 쏴 죽였다. 지난해 열차역 사건보다 훨씬 흉악한 범인을 사살했지만, 여론은 “그래도 죽이지는 말아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안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 20일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하지 말라”며 공안을 질책했다. 화들짝 놀란 궈성쿤(郭聲琨) 공안부장은 “법 집행 시 주석과 인민의 요구를 충실히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공안은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형사사건 처리는 물론 내국인 거주 관리, 외국인 출입국 관리, 도·감청 등으로 모든 내외국인을 감시·통제해 왔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2016년 공안 예산만 1668억 위안(약 30조 3000억원)이다. 일각에서는 국방예산(9543억 위안)보다 많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숨막히는 ‘공안 통치’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중국, “92공식 인정 없이 대화 없다” 차이잉원 압박

    중국, “92공식 인정 없이 대화 없다” 차이잉원 압박

    중국이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사진) 신임 총통을 향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도 없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22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대만사무를 총괄하는 국무원 대만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주임은 전날 성명을 통해 “향후 대만과의 협의 시스템 가동 여부는 대만이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의미를 각자 해석하고 명칭도 각자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인정할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92공식’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마 주임은 “지난 2년간 양안 핫라인 등 긴밀한 소통기제를 가동해오면서 양안의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고 오판과 불일치를 관리해왔으며, 이해와 신뢰증진을 통해 정상회담 등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 일도 현실로 만들어왔다”고 덧붙였다. 민간기구이지만 대만과의 협상을 주도해온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도 이날 성명에서 “대만측 파트너인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가 ‘92공식’을 인정해야 연락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 같은 반응은 차이 총통의 지난 20일 취임사가 ‘92공식’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1992년 양안 간 상호 이해와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먼저 찾는 것)라는 정치적 사유, 소통과 협상을 통해 약간의 공통인식과 양해에 이른 것을 역사적 사실로 존중한다”라고만 말했다. 대만의 대륙사무위원회는 “차이 총통은 최대한의 선의로 대화를 유지할 뜻을 밝혔다”면서 “중국의 압박은 양안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0.1cm크기 기생충마저…암수 뇌 구조 다르다(연구)

    0.1cm크기 기생충마저…암수 뇌 구조 다르다(연구)

    남녀는 신체는 물론 사고방식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심지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그 차이는 분명하다. 과학자들은 이런 차이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연구해 왔지만, 쉽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뇌의 구조 및 기능에 따른 차이 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교육적 요소가 남녀 간의 차이를 만드는 데 관여해서 순수하게 생물학적 차이만 구분해서 연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보다 단순한 동물 모델에 비춰보면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 예쁜꼬마선충 (Caenorhabditis elegans)은 몸길이가 1mm가 조금 넘는 작은 토양 선충이다. 다행히 사람에 기생하지 않아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단순한 구조와 키우기 쉬운 특징 때문에 생물학자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실험동물이다. 특히 이 선충의 뇌는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여러 가지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7000 개에 불과한 신경세포(뉴런)를 가진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행동 및 인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 뇌 연구에 동물 모델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단순한 뇌를 가진 생물에서조차 암수 뇌 구조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미 국립의료원(NIH) 산하의 국립신경장애및뇌졸중연구소(NINDS)의 올리버 허버트(Oliver Hobert) 박사와 동료 과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의 뇌가 암수별로 다르게 발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최근 이를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에 의하면 예쁜꼬마선충은 성충이 되기 전에는 혼합형의 뇌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성충이 되어 번식이 가능한 시기가 되면 서로 다른 뇌 구조를 발달시키게 된다. 이는 발달 과정에서 성별에 따라 다른 신경 시냅스의 가지치기와 암수 성에 특화된 특수 신경 세포를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왜 이런 단순한 생물체에 성 분화가 필요할까? 그것은 성공적으로 자손을 남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예쁜꼬마선충의 PHB 뉴런은 암수 모두에서 발견되나 그 기능이 암수에 따라 달라져 수컷에서는 화학 수용체로 암컷의 신호를 발견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암수에서 이 신경의 구조와 기능이 같다면 암수 선충 모두 암컷과 짝짓기를 시도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런 신경이 성별에 따라 분화된다는 것은 예쁜꼬마선충의 생존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뇌 구조를 가진 동물 모델에서 성에 따른 뇌 구조의 분화를 매우 구체적으로 밝혀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더 복잡한 생물에서 성에 따른 뇌의 기능 및 구조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오리버 허버트 박사/NIH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특파원 칼럼]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1992년 중국과 수교하기 전까지 한국과 대만은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군사정권 아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업화에 나섰고, 값진 민주화도 이루었다. 그때 우리는 지금의 중국을 ‘중공’이라고 불렀고, 대만을 ‘자유중국’이라고 불렀다. 국호 앞에 ‘자유’까지 붙여 주며 극진하게 대접하던 한국은 1992년 8월 24일 중공과 수교하면서 자유중국을 대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전 양해나 한마디 설명도 없는 매몰찬 단교였다. 이후 한국은 오직 중국에 ‘올인’했다. 베이징에선 한국 식당들이 제 살 깎기 경쟁을 하고 있는데, 타이베이에는 변변한 한식당 하나 없을 정도다. 그사이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25%에 이르렀고, 중국 투자액이 전체 해외 투자액의 40%를 차지하는 상황이 됐다. 공산당이라면 치를 떨던 보수 정객들이 한 달에 서너 번씩 중국 공산당 간부를 찾아와 기념 촬영을 하며 ‘친중파’임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에 목매기는 대만도 마찬가지였다. 1971년 유엔이 타이베이 정부 대신 베이징의 공산당 정부를 유일한 중국으로 인정하면서 대만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됐다. 대만은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그 결과 대만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40%, 해외투자 중 중국 투자 비중은 70%에 이르렀다. 20여년을 잊고 지냈지만, 한국과 대만은 요즘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중국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과 올해 초 중국 증시 폭락과 환율 급변동의 충격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한국과 대만이었다. 중국의 경기 침체와 중국 기업의 성장으로 중국 시장에서 보따리를 싸는 기업도 대부분 한국과 대만 기업이다. 내부 사정도 비슷하다. 청년실업률이 10.9%에 이른 한국에서 ‘88만원 세대’가 불안에 떨고 있듯이 청년실업률 12%를 찍은 대만에서도 ‘22K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이 절망하고 있다. 22K는 대만 청년들의 초임 2만 2000대만달러를 나타내는데, 우리 돈으로 80만원 정도다.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이 20일 취임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대만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온당한 지적이다. 차이잉원은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는 ‘신남향 정책’을 발표했고, 자유무역협정(FTA) 및 국제 경제협력체 가입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선포한 상태여서 한국과 경쟁하고 협력할 여지가 많아졌다. 노골적으로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에 맞설 카드로 민진당 정권을 활용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다’라고 외치는 젊은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 독립의 꿈을 버린 적이 없다. 국장급 이상 공무원의 교류조차 금지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당장 대만과 관계 개선에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중국 눈치만 살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로 머릿속에서 지워진 사이이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대만 수출액은 150억 달러나 된다. 독일과 영국에 수출하는 금액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차이잉원 정권의 탄생을 계기로 대중국, 대대만 관계를 재정립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선택의 기준은 중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양안(중국과 대만)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window2@seoul.co.kr
  • ‘하나의 중국’ 없었다… 양안 격랑 예고

    차이 “1992년 양안회담 사실 존중… 기존 대화 시스템은 계속 유지할 것 中 의존 탈피… FTA 등 적극 가입” 中 “독립 주장 땐 양안관계 재앙될 것” 대만 첫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이 20일 취임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취임사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합의한 이른바 ‘92공식’(九二共識)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1992년 양안이 회담을 통해 몇 가지 공통된 인식에 다다른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고 천명했다. 중국이 집요하게 요구해 온 92공식을 신임 총통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양안 관계는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92공식은 1992년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해석하고 명칭도 각자 쓰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차이 총통의 취임사에 대해 “명확하게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고, 양안 관계 개선의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지 않은 미완성 답안”이라면서 “평화의 길을 갈지 대립의 길을 갈지 명확히 하라”고 압박했다. 이어 “대만이 독립을 주장하면 양안 관계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차이 총통이 “기존 대화 시스템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해 양안 관계가 파탄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0.75%에 불과한 대만이 당장 중국 시장을 버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중국도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긴장 속 교류’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만사무판공실의 반응도 ‘강력한 반발’이라기보다는 ‘촉구’에 가까웠다. 차이 총통은 “1992년 중국과 대만을 대표하는 양안 기구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다양한 공감대를 갖고 합의를 이뤘다”면서 “이는 상호 이해와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먼저 찾는 것)의 정신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1992년 이후 상호 교류와 협상을 통해 거둔 성과를 소중히 여겨야 하며 양안의 평화 발전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 성향의 차이 총통은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우선 “청년 세대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경제 구조의 전환이 가장 큰 사명”이라면서 “중국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무역협정과 경제협의체 가입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민당 계엄 시기의 민주화 탄압과 관련해 “‘진상과 화해위원회’를 구성해 과거의 잘못을 기록하겠다”고 덧붙였다. 차이 총통은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이래 중화권 최초의 여성 지도자라는 기록도 남기게 됐다. 취임식은 19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의 저항 가요였던 ‘메이리다오’(美麗島)를 합창하는 것으로 끝났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대만 차이 정부 출범… ‘하나의 중국·92공식’ 수용하나

    대만 차이 정부 출범… ‘하나의 중국·92공식’ 수용하나

    55개국 200명 외국 사절 참석 中, 퇴진 마잉주 찬사하며 압박 대만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정부가 20일 공식 출범한다. 차이 당선자는 20일 오전 타이베이 총통부 앞 광장에서 제14대 총통 취임식을 갖고 대만 사상 첫 여성 총통이자 중화권 첫 여성 지도자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대만으로선 세 번째 정권교체다. 입법원(국회)에서도 과반 의석을 차지해 의회 권력까지 안정적으로 확보한 민진당 정부는 이로써 8년 만의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대만 독립 성향의 노선을 재추진할 수 있게 됐다. 차이 당선자는 지난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압승한 이후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의 임기만료 시한인 지금까지 정권 인계와 함께 각료 인선, 정책 검토 작업을 진행해 왔다. 취임식에는 대만과 수교한 22개국 중 파라과이, 스와질란드, 마셜군도 등 6개국 원수를 포함해 55개국에서 온 200여명의 외국 축하 사절을 비롯해 입법위원, 정부각료, 시민 1만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대만과 국교를 끊은 한국에서는 국회 차원으로 한·대만 의원친선협회 회장인 조경태 새누리당 의원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참석자는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 당선자는 취임사에서 중국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이나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수용할지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취임식 참석자들은 19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의 금지가요로 대만의 민주와 독립을 상징하는 곡이었던 ‘메이리다오’를 ‘대합창’하는 순서로 취임식을 마치게 된다. 차이 당선자의 출신 부족인 파이완족 어린이들로 구성된 핑둥현 디마얼초등학교 학생들도 참석해 대만 국가를 부를 예정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19일 ‘마잉주는 할 수 있는 모든 긍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사설을 통해 마잉주의 최대 성과는 “천수이볜(陳水扁) 정권 시기 거의 양안 간 전쟁 위기로까지 내몰렸던 긴장 국면을 바로잡고 양안 관계 평화발전의 새로운 국면을 가져온 점”이라고 평가했다. 대만 독립을 표방했던 천수이볜 집권 시기에 양안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았으나 마잉주의 집권으로 위기를 해소하고 발전을 이뤘다는 찬사인 셈이다. 이는 차이 당선자와 민진당의 독립노선에 대한 우려감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대만 신정부를 압박한 모양새가 됐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1㎜ 선충도 암수의 뇌 구조가 다르다”

    “1㎜ 선충도 암수의 뇌 구조가 다르다”

    남녀는 신체는 물론 사고방식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심지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그 차이는 분명하다. 과학자들은 이런 차이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연구해 왔지만, 쉽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뇌의 구조 및 기능에 따른 차이 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교육적 요소가 남녀 간의 차이를 만드는 데 관여해서 순수하게 생물학적 차이만 구분해서 연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보다 단순한 동물 모델에 비춰보면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 예쁜꼬마선충 (Caenorhabditis elegans)은 몸길이가 1mm가 조금 넘는 작은 토양 선충이다. 다행히 사람에 기생하지 않아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단순한 구조와 키우기 쉬운 특징 때문에 생물학자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실험동물이다. 특히 이 선충의 뇌는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여러 가지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7000 개에 불과한 신경세포(뉴런)를 가진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행동 및 인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 뇌 연구에 동물 모델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단순한 뇌를 가진 생물에서조차 암수 뇌 구조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미 국립의료원(NIH) 산하의 국립신경장애및뇌졸중연구소(NINDS)의 올리버 허버트(Oliver Hobert) 박사와 동료 과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의 뇌가 암수별로 다르게 발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최근 이를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에 의하면 예쁜꼬마선충은 성충이 되기 전에는 혼합형의 뇌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성충이 되어 번식이 가능한 시기가 되면 서로 다른 뇌 구조를 발달시키게 된다. 이는 발달 과정에서 성별에 따라 다른 신경 시냅스의 가지치기와 암수 성에 특화된 특수 신경 세포를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왜 이런 단순한 생물체에 성 분화가 필요할까? 그것은 성공적으로 자손을 남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예쁜꼬마선충의 PHB 뉴런은 암수 모두에서 발견되나 그 기능이 암수에 따라 달라져 수컷에서는 화학 수용체로 암컷의 신호를 발견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암수에서 이 신경의 구조와 기능이 같다면 암수 선충 모두 암컷과 짝짓기를 시도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런 신경이 성별에 따라 분화된다는 것은 예쁜꼬마선충의 생존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뇌 구조를 가진 동물 모델에서 성에 따른 뇌 구조의 분화를 매우 구체적으로 밝혀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더 복잡한 생물에서 성에 따른 뇌의 기능 및 구조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오리버 허버트 박사/NIH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홍콩 온 中 서열 3위 장더장 경찰 8000명 反테러급 경호

    중국 권력 서열 3위이자 홍콩 사무를 책임지는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홍콩 방문을 계기로 홍콩 곳곳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18일 장 상무위원장이 기조연설을 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서밋’이 열린 완차이 컨벤션전시센터 외곽에서는 100여명이 ‘독재 중단’ ‘홍콩 내정 개입 중단’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컨벤션센터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에 막혔다. 독립에 가까운 홍콩 자치를 주장하는 범민주파 입법회의원(국회의원 격) 22명은 렁춘잉 행정장관의 퇴진과 정치 개혁 재개를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앨런 렁 공민당 주석 등은 이날 저녁 리셉션에서 청원서를 장 위원장에게 건넸다. 홍콩 경찰은 완차이에 경찰관 8000명을 동원해 장 위원장을 경호했다. 이는 리커창(李克强) 당시 부총리가 2011년 방문했을 때 2000명의 경찰관을 배치하고 2012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방문했을 때 3000명을 배치한 것보다 크게 늘린 반(反)테러급 보안 조치다. 앞서 사회민주연선 회원 4명은 전날 오전 공항 부근에 ‘중국 공산당 독재 중단’이라고 쓴 펼침막을 내건 뒤 “홍콩인이 두려우면 홍콩에 오지 마라”고 외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사회민주연선 회원 50명은 또 렁 장관 주최의 환영 만찬이 열린 행정장관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홍콩 사자산 정상에는 ‘진정한 보통선거를 원한다’라는 글이 쓰인 초대형 펼침막이 걸렸다가 2시간 만에 철거됐다. 장 위원장의 이번 홍콩 방문은 서밋 기조연설보다 홍콩 행정장관 등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 언론들은 ‘방문’이 아닌 ‘시찰’(視察)로 표현하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美 교묘한 ‘양안 줄타기’

    20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신임 총통의 취임을 앞두고 미국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며 중국을 안심시키는 반면 미국 의회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듯한 신호를 보내며 차이잉원 총통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18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6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한 것은 이 원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차이잉원 총통의 취임에 앞서 미국이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게 단속하려는 중국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었다. 미국 국방부도 최근 의회에 제출한 ‘2015년 중국의 군사활동’ 연례보고서에서 “양안의 현재 상태에서 어떠한 일방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반대하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케리 장관과 왕이 부장이 통화하던 날 미국 하원은 ‘6항보증’(六項保證)이 미국과 대만 관계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확인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대만 지원에 대한 원칙을 구두로 제시한 6항보증이 처음으로 서면 형태로 공식화됐다. 6항보증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 주장을 지지하지 않으며 ▲중국이 대만에 압력을 행사하는 한 무기 판매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6가지 약속을 말한다. 이 결의안은 미국 행정부의 ‘하나의 중국’ 확인, ‘대만 독립’ 반대 입장과는 배치돼 당장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미국이 진정 바라는 게 대만의 안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패권 유지라는 걸 입증했다”면서 “그러나 미국이 일방적으로 대만해협의 상황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하루 지나… 문혁 50년 논평 낸 인민일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문화대혁명(문혁) 개시 50주년을 하루 넘긴 17일 새벽 0시에 “문혁과 같은 역사적 과오가 절대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논평을 냈다.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도 20분 뒤에 총편집인 칼럼을 통해 “문혁은 이미 철저하게 부정됐다”고 선언했다. 인민일보 4면에도 게재된 평론의 제목은 ‘역사를 거울 삼아 더욱 전진하자’였다. 인민일보는 평론을 통해 “문혁은 중대한 굴곡이었다”면서 “공산당은 1981년 ‘제11기 6중전회’에서 채택한 ‘건국 이후 발생한 당의 일부 역사적 문제에 관한 결의’를 통해 문혁을 철저히 부정했다”고 밝혔다. 덩샤오핑(鄧小平) 주도로 채택된 이 결의는 “(문혁은) 지도자(마오쩌둥)의 착오로 일어났으며, 반혁명 집단(4인방 등)에 이용돼 엄중한 재난을 가져온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개인과 중국공산당 지도이념으로서의 마오쩌둥 사상은 구별해야 하며, 마오의 공은 70%, 과오가 30%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인민일보는 이어 “역사는 이미 문혁이 이론과 실천에서 완전히 잘못됐다는 점을 증명했다”면서 “문혁이 재연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혁 50주년에 즈음해 계속 침묵을 유지하던 당 기관지가 뒤늦게 입장을 표명한 것은 중국 공산당의 문혁에 대한 고민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 매체는 물론 금지령에도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도 문혁 논쟁이 쇄도해 끝까지 침묵했다가는 자칫 현 지도부가 문혁을 긍정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었다. 다만, 시진핑(習近平) 지도부는 ‘1981년 평가’를 절대 넘어서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문혁 평가는 필연적으로 마오쩌둥에 대한 재평가를 불러 공산당의 통치 기반을 약화시킨다”면서 “공산당은 시간이 흘러 문혁이 잊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황학동 벼룩시장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황학동 벼룩시장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다. 실은 이 문구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테오도르 로스케(Theodore Roethke.1908~1963)’의 시구다. 꽃할배 열풍이 불기 전에도 그 곳에는 ‘늙음’이 있었다. 모름지기 벼룩시장을 말하고자 한다. '황학동 벼룩시장(Flea Market)'이다. ● 황학동 벼룩시장 1장 1절 - 가라사대 태초에 골동품이 있어라. 일요일 아침이 적당하다. 지하철 6호선 신당역 11번 출구로 나와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 뒤쪽 골목으로 돌면 1970년대 서울 뒷골목이 영화 세트장처럼 펼쳐진다. 실제 황학동 벼룩시장이라고 하면, 황학동 주방거리 옆 골목만을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동묘(東廟) 옆 구제시장과 신설동역 9번 출구앞 서울 풍물시장을 통칭해서 이 세 곳을 그냥 ‘벼룩시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땅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편하다. 숭신초등학교와 동묘,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와 신설동역 9번 출구. 수많은 골목을 돌고 돌다 보면 제각각 까닭을 숨긴 물건들의 사연들이, 지나는 걸음마다, 발끝 마디마디 채인다. 그러다 보면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어느새 쪼그리고 앉아 그 사연을 어루만진다. 감정이입이다. 물건만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이보다 더한 곡절이 있다. 우선 황학동의 어원부터 살펴보자. 원래 조선시대 성저십리(城底十里)의 취락지구였던 이곳에 황학(黃鶴)이 자주 날아왔다 해서 황학동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선시대 후반기, 즉 18세기 이후 뚝섬과 왕십리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이 곳에 시장이 만들어진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황학동이라는 이름은 1911년 일본 총독부에 의해 경성부 두모면 황학동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6.25 동란 이후, 점유주가 불분명한 청계천변에 거주하던 피난민을 중심으로 미군 군수물자와 전쟁 통에 흘러들어오는 각종 내력 가득한 골동품들을 취급하는 노점상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의 시장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때는, 1983년 6월 장안평에 고 미술품 집단상가가 조성되면서였다. 많은 점포들이 그곳으로 옮겨감에 따라 청계천을 중심으로 하나, 둘 자연스럽게 외지 상인들이 모여 들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된다. 뜬금없이 2004년 초 동대문축구장으로 축구선수들 모으듯이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이라는 축구팀 같은 노점상 모임이 결성(?)된다. 그 후, 또 다시 노점상들은 ‘이적(?)’이 되는 데, 현재의 동대문구 신설동(옛 숭인여중 부지)에 서울풍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노점 894개소를 2008년 4월 26일개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 가게에 입주하지 않은 수많은 원래의 벼룩시장의 상인들과 비디오테이프 영상물 판매 노점상들이 영도교를 건너게 된다. 원래부터 가게가 삼삼 오오 모여 있던 동묘와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 주변에 터를 다시금 다지기 시작했다. 바로 현재 점포수 1000여개에 달하는 거대한 벼룩시장 지구가 형성되게 된 까닭이다. 취급하는 상품은 골동품을 비롯, 의류, 중고가구, 가전제품, 시계, 보석, 피아노, 카메라및 각종 기계, 공구류 및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한 때 명칭도 불분명해서 황학동 중고품시장, 만물시장, 벼룩시장 또는 도깨비시장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퉁'치게 되었다. 덧붙여 황학동 벼룩시장의 면적을 살펴보면 약 37,000㎡(약 1만 1000평)이며, 동서방향이 150m 정도 되고, 남북방향이 250m 정도 되는 얼추 정사각형의 정방형 모양을 하고 있다. 서쪽으로흥인동, 동쪽으로 왕십리, 남쪽으로 신당동, 그리고 청계천로 맞은편 북쪽으로는 종로구 숭인동과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4대문의동쪽 관문인 흥인지문 (동대문)과는 직선거리로 약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지리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아주 훌륭한 셈이다. ● 골동품NO, 빈티지YES! ? 그러나… ‘동묘 스타일’이라고 해서 2013년 방송인 지드래곤과 정형돈이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개그맨 김숙, 윤정수마저 방송에 소개한 뒤로 지금 황학동 벼룩시장은 꽃할배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이태원이나 홍대의 젊은 벼룩시장과는 사뭇 풍광이 다르다, 아니 다르시다. 그만큼 세월의 손길이 물건 켠켠마다 묻어 있는 늙은 곳이다. 이곳에서 1980년대 물건들은 거의 신제품 코너에 앉아 있다. 적어도 6.25동란 때 사이렌소리 한 번은 들은 흔적이 묻어 있어야 좌판 앞줄에 앉을 수가 있다. 그러하니 내공이 튼튼 탄탄하다 못해 눈물겹다. 모든 물건들이 연대기순으로 다 그러하다. 제각각 비밀스러운 전 주인의 사연 하나는 덤으로 가지고 있다. 비록 지금은 1000원짜리 구제옷으로 보푸라기 가득한 늙은 옷이었지만, 한때는 백화점 쇼윈도우 앞줄에 앉아 먼지 한 톨 떨어질 틈 없이 보살핌 받던 ‘패션’들이 동묘 구제시장 골목마다 줄줄이 걸려 있다. 옷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 그러하다. 저마다 'made in 옛날'이다. 이빨 하나는 빠져 삐그덕거리는 맛이 있어줘야 이 골목에서는 대접받는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늙는다는 것이, 늙어간다는 것이, 늙었다는 것이 큰 불편이 되지 않는 거리이다. 항상 시뻘건 애나멜 네오사인톤으로 번쩍이는 서울 도심이 이 골목에서는 전부 파스텔톤으로 채색된다. 모든 것이 희미하다. 희미해서 물건의 모서리마다 모지라져 둥글둥글하다. 세월이 만든 넉넉함처럼 마음도, 물건도, 다 둥글어진다. 바로 일요일 아침 황학동, 신설동, 동묘 주변의 광경이다. 벼룩시장 입구를 돌면 만날 수 있는 시계 골목, 우선 놀라고 본다. 왜냐하면, 진품 롤렉스와 피아제가 조촐한 유리 상자 안에 있다. 분명 정품이다. 순간, 만만히 보았던 이 거리가 실상은 가벼운 만 원짜리 몇 장으로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빈티지이다. '썩어도 롤렉스'다. 가격이 210만원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서울 풍물시장에 접어들면 에디슨이 만들었다고 끝끝내 우기면 믿을 듯한 나팔꽃 축음기, 지금은 상표명도 가물한 골드스타 흑백TV, 10원짜리 동전을 한 손 가득 쥔 채 연인과 밀어 실어 나르던 그 시절의 공중전화기, 공병우 선생이 만들었다 자부심 가득한 세벌식 한글 타자기가 오가는 손님의 손길을 잡아챈다. 한 때는 박수 무당들 손에 쥐어져 생사업보를 달래주던 방울칼, 유통기한 겨우(?) 석 달 밖에 지나지 않은 허쉬 초콜렛, 1986년 아시안게임 임춘애 금메달 획득 기념 삼성 Kappa 시계 등등 그 면면들 역시 화려하고 무궁하고 애잔하다. 비록 지금은 만원짜리 중국산 효도 라디오 뒷전으로 자리 밀려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모 있어 이렇듯 인력사무소 봉고 기다리듯이 동묘 주변 한 자리 차지함도 대견하다. 인생사도 매 한 가지. 늙음은 이야기를 지니어 간다는 것이다. 슬픈 일은 아니다. 갖은 사연 제각각 숨긴 골동품,구제옷,전자제품 들이 골목마다 그득그득하다. 아마도 물건들이 품은 내력을 다 글자로 적자면 원고지 높이가 에베레스트는 고작 발목 언저리에서 발돋움할지 모른다. 원고지 길이 지구 600바퀴를 돌아야 할 듯하다.진짜다. 황학동 벼룩시장(Flea Market)은 인생이다. 나이든 삶이다. 그리고 생의 지혜다. 누구든 골목 골목 발길 내딛을 때마다 몸속으로 잊었던 예전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그 시간을 따라가다보면 골목은 늘 앞으로만 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에서 샛길로 빠지는 맛도 있음을 가르쳐 준다. 사잇길로 빠져도 다시 큰 길과 합쳐지는, 사잇길에도 삶은 건강히 자리잡고 있다. 산다는 것이란 그런 것이다. 어영차 다시 새로운 길로 나선다. 길거리 한 구석 홍동백서 따르듯 자리잡은 옛 물건들 바라보면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고작 한 두 해 전의 일을 이야기하는 인간들이 우스운 듯, 황학동이 뿜는 시간은 늙음이 젊음보다 활기차다. 황학동의 학은 흰 색이 아니라 누런 색이 맞다. 백학동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황학동은 이름도 시간을 따라 석양녘으로 누렇게 물든다.어울린다. <황학동 벼룩시장에 대한 여행 20문답> -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2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요? -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한 번은! 서울의 대표적인 벼룩시장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기 때문에 동선을 미리 생각하고 가자. 2. 누구와 함께 가면 좋을까요? - 나이가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정말 좋다. 20세미만은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나이에 비례하여 여행 재미가 있다. 연인들도 좋다. 삶에 지친 직장인들도 주말에 휘휘 길 거닐며 콧바람 불어 넣길 강추함! 3. 교통편은 어때요? - 대단히 편리하다. - (황학동 벼룩시장) 지하철 6호선 신당역 11번 출입구.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가 오른편에 있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 뒤쪽 골목이다. 142, 163, 2013번 버스 이용 성동공업고등학교 하차. - (동묘구제시장)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에서 내려 3번 출구. - (서울풍물시장) 지하철은 신설동역 1호선 6 번출구, 신설동역 2호선 9번, 10번 출구에서 100m이내 / 버스는 하정로 : 303,370,721,2112, 2219,2221,2230,9403 청계천로 : 2230,300,2013 4.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요 ? - 서울풍물시장 정문 공영주차장 이용 가능 / 이용료 : 10분에 300원 / ※ 서울풍물시장 방문 확인 시 1시간30분 면제. 물론 시장 인근이기 때문에 주차시설이 불편하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낫다. 5.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어때요? - 유명할만하다. 그러나 세련된 도심이나 수려한 자연 풍광이 주는 감동으로 만든 유명세는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자연스레 생긴 입소문이다. 6. 직원이나 주변 상인들의 여행객 응대 수준은 어떤가요? - 40년 노점 흥정의 관록을 지닌 상인들. 섣부르게 가격을 깎으려다가 핀잔 맞기 일쑤이다. 주인 동의없이 사진 함부로 찍다가 평생을 넘어 내세까지 얻어먹을 욕은 다 먹게 된다. 그러했다. 7. 여행지가 지니고 있는 전문성은 어떠한가요?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 하나요? 조심할 것이 있나요? - 그냥 시장이다. 굳이 공부를 하고 갈 필요는 없이 시간만 넉넉히 가지고 가면 된다. 소매치기 관련 사건은 꾸준히 있으니 참고할 것! 8. 전체 여행 경비는? - 대개는 현금 거래를 하니 만원짜리와 천원짜리를 넉넉히 가져가면 좋다. 충동 구매를 하는 것도 괜찮다. 이런 맛의 거리이다. 9. 가장 감탄하는 점은 어떤 것인가요? - 생각보다 훨씬 벼룩시장이 크다는 사실. 동묘에서 황학동까지 일요일은 별천지가 열린다. 주머니가 얇은 자취생이나 학생, 알뜰한 신혼부부, 패션 아방가르드를 꿈꾸는 미래의 패션 디자이너, 특색있는 가게를 꾸미려는 카페 창업자에게는 보물 창고이다. 시간이 훌쩍 지난다. 10. 아쉬운 점이 있다면? - 구획정리가 좀 되면 좋을 듯. 벼룩시장의 범주에 넣지 않아야 할 업종(?)들이 있어서 단속이 필요함. 11. 운영진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 주차단속, 구획정리,동선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필요합니다. 12. 홈페이지 주소는? - 서울 풍물 시장 http://pungmul.seoul.go.kr/ 13. 꼭 추천하고픈 공간이나 체험활동은? - 수입식품코너. 가격이 정말 저렴하다. 14. 여행을 비추하고픈 사람과 이유는? - 지저분한 거리 자체를 싫어하는 몇몇 마나님들. 생활의 냄새가 너무 강한 곳이다. 15. 먹거리 정보와 식당 정보는? - 애당초에 맛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곳으로 승부를 거는 동네다. 시장 특유 주전부리, 국수 등 가벼운 먹거리는 괜찮다. 굳이 맛집을 찾으라면 늦은 시각 황학동 포장마차의 곱창을 추천하다. 가장 황학동다운 음식이자 마장동 바로 옆동네여서 곱창의 맛도 서울 내에서도 훌륭한 편에 속한다. 혹여 낮술로 인해 불콰해지더라도 흉이 되지 않는 곳이다. 16. 어떤 코스를 도는 것이 좋을까요? 추천코스는? - 동묘 구제시장→서울 풍물시장→황학동 벼룩시장 17. 도움되는 사이트? - 청계천의 옛 풍경이 가득 있다. 감동적이다. http://blog.naver.com/ohyh45/220650436712 18. 서울에 다른 벼룩시장도 있나요? - 규모면에서는 황학동이 압도적이지만, 젊은 감각은 아니다. 아래 벼룩시장도 적극 추천한다. - http://www.flea1004.com/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 - http://www.seocho.go.kr/site/fm/index.jsp 서초토요벼룩시장 - http://www.freemarket.or.kr/ 홍대 프리 마켓 - http://mapotourism.blog.me/220081215182 마포희망시장 - http://dailyprojectsseoul.blogspot.com/search/label/Sunday%20Flea%20Market 선데이프리마켓 19. 숙소정보는? - 서울 도심 여행이어서 지하철 연결되는 곳은 어디든지. 20. 총평 및 당부사항 - 황학동 벼룩시장은 분명 프랑스의 “생투앙 벼룩시장”, 영국의 “포토벨로 마켓”, 뉴욕의 "브루클린 벼룩시장"처럼 한 도시의 관광명소가 되기에는 무언가의 불편함은 분명히 존재하는 곳이다. 남대문이나 인사동과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훌륭한 조각상과 한국의 대표적인 하회탈 옆에는 의류수거함에서 갓 꺼내온 옷 뭉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도 하다. 분명히 벼룩시장의 상품이 아니라 물건더미인 것이다. 어느 정도의 구획정리와 경계가 이루어 진다면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시진핑 中경제 직접 지휘… “부양 환상 깨어나 구조조정”

    “빚으로 지탱하는 정책은 끝내야… 좀비기업 퇴출 첨단산업에 집중” 기업 은행 빚 4조 6000억 위안 중국 경제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는 누구인가? 지난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서방 투자자들이 끊임없이 묻는 이 질문에 종지부를 찍는 기사를 계속 내보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라는 것이다. 인민일보는 지난 9일자 1면과 2면에서 ‘권위 인사’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빚으로 부양하는 정책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 인사는 “경제 정책을 입안하는 간부들도 부양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질타했다. 경기부양과 구조개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관료들에게 확실한 방향을 정해준 것이다. 다음날 인민일보는 시 주석의 ‘공급 측 개혁’ 발언을 2면과 3면에 걸쳐 2만자 분량으로 실었다. 이 발언은 시 주석이 지난 1월 장관급 간부 회의에서 한 것이었다. 시 주석은 “우리 소비자는 세계 최고급을 요구하는데, 공급 측면에선 화장실 비데조차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팔리지 않는 걸 습관처럼 만들어 과잉의 위기만 키우지 말고 우리가 만들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이어 지난 13일 시 주석이 공급 측 개혁 모델로 삼은 징둥팡(京東方)그룹을 소개했다. 기술혁신으로 8.5세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생산하는 업체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6일 “경기부양 대신 구조조정을 택하고 구조조정의 방식으로 공급 측 개혁을 설파한 인민일보의 기사는 곧 시 주석의 의중”이라면서 “신문에 등장하는 ‘권위 인사’는 시 주석의 경제 책사인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으로 보이고, 기사는 시 주석이 직접 승인한 뒤 보도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SCMP는 “지난 1월의 발언을 지금 공개한 것은 집권 후 2년 동안 추진해온 신용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더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기업의 은행권 부채는 3월 말 현재 4조 6000억 위안으로 2009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6000억 위안이나 더 많다. 신용 공여를 통한 부양책을 계속 썼다가는 구조조정은커녕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다. 시 주석이 부양 대신 구조개혁을 택한 이상 앞으로 상당한 고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권위 인사’는 “침체 국면이 장기화하는 ‘L자형’ 성장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를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업률과 사회적 불안이 따르더라도 석탄·철강 등 한계 산업을 확실히 구조조정하고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을 과감히 퇴출하는 한편 첨단산업에 역량을 집중해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中 최고 명주 ‘마오타이주’

    [글로벌 인사이트] 中 최고 명주 ‘마오타이주’

    1년 동안 9번 끓이고 8번 발효 7번 걸러내 ‘탄생’ 닉슨·김일성도 ‘건배’… 中 역사의 순간마다 등장 구이저우성의 마오타이주(茅台酒) 마케팅 전략은 신비주의이다. 가짜가 많기 때문에 진짜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마오타이진으로 몰려오지만, 양조장만큼은 좀처럼 개방하지 않는다. 지난 10일 구이저우성 고위층의 협조로 우여곡절 끝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술문화박물관단지 ‘국주문화성’(國酒文化城) 내에 있는 양조장을 견학했다. 양조장 문이 열리자 된장 또는 간장을 빚는 듯한 특유의 장향(醬香)이 코끝을 찔렀다. 중국 바이주(白酒)의 향은 농(濃), 장(醬), 청(淸), 미(米) 등 12가지로 분류되는데 마오타이주는 장향형에 속한다. 1862년에 지어져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에선 20여명의 기술자들이 대장간을 방불케 하는 열기 속에서 수수(가오량·高糧)와 누룩을 뒤섞고, 발효된 수수를 가마솥에 올려 증류시켜 햇술을 뽑아내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작업장 구석에 있는 수도꼭지로 마오타이 원액이 졸졸 흘러나왔다. 양조장 관리자인 쩌우리구이(鄒立貴) 부주임이 건넨 원액을 한 모금 마시자 목구멍과 가슴으로 불덩이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듯했다. 원액은 7차례 걸러져야 비로소 마오타이주가 된다고 했다. 마오타이주가 천하제일의 바이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의 수수와 츠수이허(赤水河) 강물 덕택이다. ‘붉은 수염’으로 불리는 이곳 수수는 작고 껍질이 단단하며 알맹이가 차져 최상의 원료로 꼽힌다. 마오타이진을 휘감고 흐르는 황톳빛 츠수이는 광물질이 풍부해 술맛을 깊게 한다. 마오타이주의 생산 주기는 1년이다. 중양절(음력 9월9일)에 시작해 1년 동안 아홉 번 끓이고 여덟 번 발효시킨 뒤 일곱 번에 걸쳐 햇술을 걸러 낸다. 공정별로도 수십 개의 비법이 숨어 있다. 병입·포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정이 사람 손에 의존하는 전통 방식 그대로다. 마오타이주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1915년 11월 ‘파나마 태평양 국제박람회’부터다. 당시 관람객이 없던 중국 전시관에서 술병이 깨지는 사고가 났는데, 마오타이주 향기가 장내에 퍼져 관람객이 구름처럼 모였고, 마오타이주는 수많은 출품작을 제치고 금상을 차지했다. 국주문화성에는 마오타이주가 빛낸 역사적 사건이 빠지지 않고 기록돼 있다.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국공합작, 마오쩌둥·스탈린 회동,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등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중요 회담엔 반드시 마오타이주가 있었다. 북한 김일성과 중국 지도자들이 마오타이주로 건배하는 장면도 네 번이나 등장했다. 보통 마오타이주는 5년간 숙성된 뒤 시장에 나오지만, 30년산과 50년산도 있다. 50년산의 맛은 독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웠고, 향기는 투박하면서도 달콤했다. 빈 잔을 휘감은 장향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마오타이진(구이저우성)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마오를 따라, 마오에 취해… 중국의 자부심과 만나다

    [글로벌 인사이트] 마오를 따라, 마오에 취해… 중국의 자부심과 만나다

    광장에 어둠이 깔리자 집집마다 걸어 놓은 붉은 별이 하나둘씩 불을 밝혔다. 1935년 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던 2층 건물 옆에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서 있었다. 81년 전엔 묘목에 불과했던 이 나무를 중심으로 ’홍군(紅軍) 거리’가 뻗어 있고, 거리에는 ‘혁명’의 상징을 파는 가게가 길게 이어졌다.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시. 해발 2000m의 첩첩산중에 형성된 이 도시는 홍군(인민해방군 전신)의 고향이자 중국식 사회주의 무장투쟁이 발원한 곳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이른바 ‘쭌이회의’로 불리는 1935년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소련 볼셰비키파를 누르고 당권과 군권을 장악해 특유의 게릴라전을 펼치며 북방 옌안(延安)을 향해 대장정을 이어갔다.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한국의 한·중문화우호협회와 구이저우성 초청으로 쭌이 유적지와 쭌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마오타이진(茅台鎭·한국의 읍에 해당)을 찾았다. 마오타이진은 국주(國酒)이자 홍군의 술인 마오타이주의 원산지이다. 이 기간에 ‘포스트 시진핑’으로 불리는 천민얼(陳敏爾) 구이저우성 서기가 마오타이진에서 세계 각국의 관광업계 큰손들을 초대해 ‘구이저우여행산업발전대회’를 개최했다. 요즘 구이저우 발전의 3대 원동력으로 꼽히는 쭌이, 마오타이, 그리고 천민얼을 동시에 관찰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특히 문화대혁명 개시 50주년을 맞은 요즘 중국에선 ‘홍색 관광’을 통한 혁명 역사 배우기가 한창이다. 극좌사회주의 운동으로 중국을 10년 동안 암흑기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의 비극도 혁명 역사를 바로 알아야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홍’(紅·혁명유적지)과 ‘주’(酒·마오타이주)를 적절하게 버무린 구이저우성의 홍색 관광이 주목을 받고 있다. 쭌이회의가 열렸던 2층 건물에는 펑더화이(彭德懷)와 양상쿤(楊尙昆)이 나란히 누워 자던 침대와 대장정의 향방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던 탁자, 마오쩌둥의 친필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루 3만여명이 이곳을 찾는다. 회화나무 건너편에는 지난해 1월 쭌이회의 80주년을 맞아 건립된 거대한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관을 찾는 이들 중에는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노인들이 많았다. 쓰촨성에서 온 82세 노인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손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 온 가족이 함께 왔다”고 말했다.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쭌이회의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3D 홀로그램 영상이었다. 장제스(蔣介石)의 토벌작전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당시 총서기였던 소련파의 핵심인물 보구(博古)와 마오쩌둥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자아비판을 하고 장원톈(張聞天)·주더(朱德)·류사오치(劉少奇) 등이 마오쩌둥을 지지했다. 이 회의에서 ‘적이 진격하면 도망친다. 적이 멈추면 교란한다. 적이 피로하면 공격한다. 적이 퇴각하면 추격한다’는 마오의 유격전술이 채택됐고 군사지휘권도 마오가 움켜쥐게 됐다. 기념관에서 30여분을 걸어가면 홍군산(紅軍山) 열사묘역이 나온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쓴 ‘홍군 열사는 영원하다’는 비문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60대 관광객은 “내가 쭌이 출신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면서 “쭌이회의와 우강 도하작전이 없었다면 신중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이저우의 홍색 관광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 주석은 쭌이회의 80주년이던 지난해 이곳을 찾아 “우리 당이 어떻게 지나왔는지 쭌이가 앞장서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도 홍25군 사령관으로 쭌이회의에 참석했다. 기념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마오타이주를 특별히 보호하라’는 홍군 사령부의 군령장이다. 굳이 이 군령장을 부각시킨 것은 홍군과 마오타이주를 연계해 관광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처럼 보였다. 당시 홍군은 소독약 대신 마오타이주를 사용한 것을 제외하곤 함부로 마오타이 양조장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도 마오타이진의 500여개 양조장은 전통 기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마오쩌둥 등 1세대 지도자들은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쭌이에서 마셨던 마오타이주의 향을 잊지 못했다. 1949년 10월 1일 신중국 건국일 만찬에서 마오타이주를 마셨고, 그때부터 마오타이주는 중국의 국주이자 보배가 됐다. 구이저우성의 홍색 관광과 마오타이주 마케팅은 해외로 확대되고 있다. 쭌이시는 아예 홍색 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그룹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마오타이진에 국제공항이 생긴다. 성도인 구이양과 쭌이에 이미 공항이 있는데도, 마오타이주 특화 공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이 주요 타깃이다. 구이저우여행산업발전대회에서 만난 천민얼 당서기는 “마오타이주와 생태 관광을 매개로 양국이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멍치량 구이저우성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은 “양국의 항공 합작과 관광회사 교차 설립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쭌이(구이저우성)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당 지시로 썼지만 후회는 없다”

    “당 지시로 썼지만 후회는 없다”

    “마오쩌둥에 이용당한 것 아냐” ‘10년 동란’으로 불리는 중국의 문화대혁명(문혁)은 1966년 5월 16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5·16 통지’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확대회의 마지막날인 5월 25일 오후 2시쯤 베이징대 학생식당 동쪽 벽에는 ‘쑹숴, 루핑, 펑윈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베이징시위원회 대학부 부장, 베이징대학 당위원회 서기, 베이징대학 당위원회 부서기를 직접 겨냥한 도발적인 대자보였다. ‘당중앙을 보위하자, 마오쩌둥 사상을 보위하자, 무산계급 독재를 보위하자’로 끝을 맺은 대자보의 작성자는 베이징대 철학과 여성 강사인 녜위안쯔(聶元梓·95)였다. 공격을 받은 루핑 등은 당 조직을 동원해 1000장이 넘는 반박 대자보를 붙여 녜위안쯔를 궁지로 몰았다. 하지만 6월 1일 마오쩌둥의 개입으로 상황은 단번에 반전됐다. 마오쩌둥은 라디오방송을 통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나온 마르크스·레닌의 대자보”라며 “파리코뮌의 대자보보다 훌륭하다”고 극찬했다. 이후 녜위안쯔는 홍위병 조반파(造反派·혁명파)의 5대 영수로 불렸다. 올해 95세가 된 녜위안쯔는 문혁을 어떻게 생각할까. 15일 문혁 50년을 맞아 홍콩 명보와 인터뷰를 한 녜위안쯔는 “나는 후회할 일은 하지 않았다”며 “당시로서는 대자보의 주장이 정당했고, 당의 요구를 마땅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문혁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발전해 나 역시 본의 아니게 역사의 풍운아가 됐다”고 회고했다. 녜위안쯔의 대자보는 문혁을 이끈 4인방 중 한 명인 캉성(康生)의 지시로 작성된 것이었다. ‘마오쩌둥에 의해 이용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녜위안쯔는 “누구한테도 이용당하지 않았다”면서 “5·16 통지 정신에 입각해 쓴 것”이라고 밝혔다. 홍위병이 인민해방군까지 약탈하고 조반파가 둘로 나뉘어 무력 투쟁을 벌이자 마오쩌둥은 1968년 7월 조반파 5대 영수를 불러 질책했다. 그해 10월 녜위안쯔는 감금됐다. 문혁이 끝난 1978년 중국 공산당은 그녀의 당적과 공직을 박탈하고 17년형을 선고했으나 1986년 보석으로 풀려났다. 녜위안쯔는 “마오쩌둥의 과오를 내가 평가할 수는 없다”며 “평가는 총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복권을 바라느냐는 질문에는 “이미 다 지난 일이라 별로 개의치 않는다”면서도 “항일 무장투쟁 경력만큼은 인정받고 싶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우주를 보다] 토성의 ‘검은 눈동자’ 거대 폭풍의 눈 관측

    [우주를 보다] 토성의 ‘검은 눈동자’ 거대 폭풍의 눈 관측

    태양계의 거대 가스 행성은 지구와는 달리 단단한 지표가 없고 표면이 가스로 되어 있다. 이 가스는 가만히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속도로 이동하면서 태양계에서 가장 큰 폭풍을 일으킨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목성의 대적점이다. 하지만 사실 폭풍보다는 고리로 더 친숙한 토성 역시 지구보다 거대한 강력한 폭풍이 나타나는 곳이 있다. 바로 토성의 극지방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의 카시니 탐사선은 2008년 토성의 남극에서 39만 2,000km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했다. 이때 탐사선은 토성의 남극 부근에 있는 거대한 육각형 모양의 폭풍을 확인했다. 이 미스터리 폭풍의 생성 원인은 토성의 자전과 토성 가스 내부의 대류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 최근 ESA가 공개한 사진은 이전에 공개된 것보다 10배 정도 더 선명한 것으로 해상도가 픽셀 당 2km 수준이다. 여기에는 이 폭풍의 눈 부분이 확대되어 있다. 토성의 검은 눈동자(‘dark’ eye)라고 표현한 이 구조의 지름은 대략 8,000km다. 이 미스터리 폭풍의 구조와 생성 원인에 의해서 조사하는 것은 앞으로 발사될 다른 탐사선의 몫이다. 카시니 우주선은 이제 퇴역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NASA는 근미래에 윈드봇(windbot)이라는 로봇 탐사선을 이 폭풍 속으로 보내 그 구체적인 모습을 연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이 미스터리 폭풍은 우주의 신비로 남을 것이다. 사진=NASA/JPL/Space Science Institute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中 양극화의 늪서 어슬렁거리는 ‘문혁의 망령’

    中 양극화의 늪서 어슬렁거리는 ‘문혁의 망령’

    인민대회당서 홍위병 노래 합창… 극단 평등 주장 ‘新마오’ 목청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을 암흑세계로 밀어 넣었던 ‘문화대혁명’(문혁)의 그림자가 50년이 지난 요즘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정치적 보수화와 사회통제 강화, 경제적 양극화 심화가 문혁의 망령이 어슬렁거릴 공간을 열어 놓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선 문혁의 잠재된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한 합창 공연이 펼쳐졌다. 중국의 56개 민족을 대표하는 56명의 소녀로 구성된 걸그룹 ‘56송이의 꽃’은 문혁 당시 홍위병들이 불렀던 ‘조타수에 의지해 대해를 항해하자’는 노래를 합창했다. 무대 스크린에는 ‘전 세계 인민이 단결해 미국 침략주의자와 주구를 처단하자’는 구호가 나부꼈다. ‘문혁 기념 공연’이라는 논란이 일자 당국은 한 민간단체가 ‘중앙선전부 사회주의 핵심가치관 선전교육판공실’ 명의를 도용해 공연을 열었다고 해명했다. 혁명 원로인 마원루이(馬文瑞)의 딸 마샤오리(馬曉力)는 당 중앙판공실에 공개서한을 보내 “이번 콘서트는 문혁을 재현하기 위한 행사로, 시진핑 주석의 앞길에 수렁을 파는 일”이라며 개탄했다. 문혁을 반성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박물관은 사실상 폐쇄됐다. 광둥성 산터우시는 최근 문혁박물관의 비석, 제문 등을 사회주의 선전포스트로 전부 가리고 박물관 내 문혁 요소들도 모두 제거했다. 문혁의 과오를 반성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박물관이 문혁 시작 50주년을 맞아 관심이 쏠리자 급히 취한 조치이다. 이 박물관은 문혁 당시 반혁명집단으로 몰려 박해를 받았던 펑치안 전 산터우시 상무부시장이 퇴임 후 문혁 때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산시성의 극좌파 인사들은 지난 8일 시안에서 ‘문화혁명 5·16통보 발표 50주년 좌담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동지”로 부르며 “미완의 혁명을 완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혁의 과오와 반성으로 특집을 꾸민 개혁잡지 ‘염황춘추’ 5월호 발간은 돌연 중지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성장이 둔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극단적 평등을 주장하는 신(新)마오쩌둥주의자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전했다. BBC는 “아버지 시중쉰은 물론 본인 역시 문혁의 피해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문혁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 때문에 문혁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마오쩌둥처럼 강력한 권위를 갖고자 하는 시진핑으로선 문혁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대 법학과 장첸판 교수는 “지금 지도자들도 문혁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현재 누리는 특권에 비하면 그 고통은 지극히 하찮은 것”이라면서 “문혁의 최대 피해자는 일반 민중이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문혁이 단죄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정말로 고통받은 이들의 입이 여전히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용어 클릭] ■문화대혁명 1966년 5월16일 중국공산당 정치국회의가 발표한 마오쩌둥(毛澤東)의 ‘5·16통지’에서 시작됐다. 무산계급의 새로운 사회주의 문화운동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마오쩌둥이 극좌적 계급투쟁을 빌려 라이벌인 류사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 등 실리파를 몰아낸 권력투쟁이다.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 기간 최소 100만명이 반동분자로 몰려 처형됐다. 중국공산당은 1981년 “당과 국가, 인민에게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안겨준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라고 문혁을 평가했다.
  • “헤어진 연인과 친구 하자는 사람, 이기적 성향 강해”(연구)

    “헤어진 연인과 친구 하자는 사람, 이기적 성향 강해”(연구)

    주위를 보면 헤어진 연인과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경우는 대개 한 사람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주변 사람들이 안타깝게 보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심리학자들이 시행한 연구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오클랜드 대학 심리학과 리사 웰링 박사팀이 남녀 총 861명을 대상으로, 이별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만약 친구로 지내고 있다면 이유는 무엇인지를 조사했다. 또한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병원에서 쓰이는 전문적인 성격 진단 검사를 받게 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이 전 연인과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의 성격 특성에 주목한 결과, 특정 경향이 두드러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경향은 심리학에서 ‘어둠의 3요소’(dark triad)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과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anism, 목적 달성을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태도), 사이코패스(Psychopathy,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3가지를 나타낸다. 나르시시즘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자기애 성향이 강한 것을 말하며,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말한다. 또한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갖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세 가지 경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전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와 계속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이 이번 연구로 밝혀졌다. 이전 연구에서도 이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전략적인 이유로 친구를 선택할 가능성이 컸고 우정 관계도 단기간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이별 후 우정에 관한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연인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친구로 지내는 것은 자비의 정신이나 상대방에 관한 배려가 아닌 것 같다”면서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해도 상대방이 가진 사회적 지위나 금전, 정보, 그리고 육체적 관계 등에 진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성격과 개인차 저널’(Journal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최신호(4월 8일자)에 실렸으며,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과 메트로 등 외신을 통해 소개됐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세계서 가장 오래된 ‘5만 년 전 돌도끼’ 공개

    세계서 가장 오래된 ‘5만 년 전 돌도끼’ 공개

    1990년대에 호주에서 발견됐던 오래된 돌도끼가 무려 약 5만 년 전 선조가 만들고 사용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의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돌도끼의 조각은 1990년대에 윈드자나 협곡 국립공원(Windjana Gorge National Park)에서 발견됐지만, 전문가들은 정확한 용도나 형태를 가늠하지 못하고 그저 수 천~수 만 년 전 선조에게 중요한 용도로 사용됐을 거라는 사실만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호주국립대학의 수 오코너 교수 연구진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이 돌 조각이 돌도끼의 일부이며 이것의 역사가 일본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돌도끼로 기록돼 있는 유물보다 1만 여 년 더 앞선 4만 6000~4만 9000년 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결과는 무려 약 5만 년 전 인류가 호주대륙에서 생존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중대한 근거로 제시됐다. 오코너 교수는 ”우리는 이 돌도끼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전까지 호주 북부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손도끼가 발견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약 5만 년 전 인류는 호주 대륙에 발을 딛었으며, 이들이 사용한 도구를 토대로 봤을 때 당시 이곳에 거주했던 인류는 매우 혁신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돌도끼는 지금까지 다른 대륙에서 발견된 그 어떤 돌도끼보다 더 긴 역사를 자랑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돌도끼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사암(沙巖)과 같은 비교적 무른 돌을 잘게 부수거나 모양을 내는데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베거나 찌르는 용도로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는 호주 북부에서 발견된 이것이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돌도끼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돌도끼의 역사가 약 5만 년 인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것을 직접 사용했던 것은 구석기시대인 4만~5만년 전 지구상에 생존했던 호모 사피엔스일 것으로 추즉된다.   이와 관련, 자세한 연구결과는 호주 고고학 저널(Journal Australian Archaeology)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朴대통령 “마스크 쓴 모습에 답답…꽁꽁 묶인 규제에 답답”

    朴대통령 “마스크 쓴 모습에 답답…꽁꽁 묶인 규제에 답답”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미세먼지로 뿌연 도시를 볼 때나 국민께서 마스크 쓰고 외출하는 모습 볼 때면 제 가슴까지 답답해지는 느낌”이라면서 “미세먼지 문제는 국민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문제로 국가적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관계부처에서 미세먼지 특별관리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국민이 체감하기에 아직 미흡하지 않느냐. 한·미 대기질 연구 협력 프로젝트에 따라 미국항공우주국과 국내 연구원이 합동으로 한반도 대기질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런 과학적 조사활동을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하고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종합 마스터플랜 등의 대책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자동차 매연도 미세먼지의 원흉으로 분석된다고 전하면서 “자동차 문제도 신에너지 시대를 맞이해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로 바꿔나가고 자동차 회사에서도 시대에 맞는 차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동시에 빨리빨리 이뤄져야만 미세먼지를 해결할 수가 있다”면서 “미세먼지는 우리가 매일매일 겪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 이제는 온실가스 감축목표(INDC)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미래세대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그래서 이것도 이루고 저것도 이뤄야 하는 그런 시대”라고 강조했다. 규제개혁과 관련, 박 대통령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다 풀려서 없는 규제들이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꽁꽁 묶여 있는 것을 비교할 때 정말 답답한 마음이다. 이래 놓고서 어떻게 우리가 경제 성장하겠다고 할 수 있는지…”라면서 “다음주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신산업 분야에 대한 규제철폐가 혁신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논의의 장이 펼쳐질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국제기준 정도까지는 규제가 혁파돼야지 이것도 못하면서 이 시대에 성장과 일자리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각 부처는 공공기관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공정한 보상 시스템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서 120개 공공기관 모두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적극 독려해주길 바란다”면서 공공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도 표명했다. 북한의 7차 노동당대회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 있는 변화는 보여주지 못한 채 핵보유국이란 억지 주장과 함께 핵 능력 강화를 밝히는 등 국제사회 경고를 무시하면서 도발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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