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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별 굵직한 조직개편 사례

    김대중, 재정경제원 해체 노무현, 상시적 기능 조정 이명박, 정원 3427명 ↓ 박근혜, 미래부 새로 출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70년 동안 정부조직은 모두 61차례 변화를 거듭했다. 정부조직의 개편은 당시의 국내외 상황과 정권의 지향성을 반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속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에 성공했던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7부·2처·16청·1외국·1위원회로 출범한 이후 두 차례 개편을 거쳐 18부·4처·16청·1위원회로 막을 내렸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대대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나선 김대중 정부 조직 개편의 특징은 정부 기능을 축소하고 재정경제원을 해체한 것이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18부·4처·17청·1위원회로 출범해 5차례 개편을 거쳤으나 비슷한 골격을 유지했다. 조직 자체의 개편보다는 상시적인 기능 조정에 초점을 맞췄고, 특정 정부조직이 전담하기 어려운 어젠다를 수행하는 각종 위원회를 뒀다. 분권을 지향한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도 꾀했다. 이명박 정부는 15부·2처·17청·3위원회로 조직을 크게 바꿔 출범했고, 4차례 개편을 거쳐 임기를 마칠 때는 15부·2처·17청·4위원회 체제였다.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기획재정부로 통합하고 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해양수산부를 폐지했다. 대신에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었다. 역대 정부 최대 규모로 조직을 축소·통폐합한 결과 정무직 16명과 3427명의 정원이 감축됐다.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17부·3처·17청·4위원회 체제로 닻을 올렸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과 외교와 통상의 기능 분리 등이 큰 특징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안전행정부가 행정자치부·국민안전처·인사혁신처로 나뉘는 개편이 이뤄져 지금은 17부·5처·16청·4위원회 체제다. 조직 확대와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등으로 현 정부 들어 공무원 수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대통령의 딸 → 첫 탄핵대통령… 몰락한 20년 정치인생

    대통령의 딸 → 첫 탄핵대통령… 몰락한 20년 정치인생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대통령’이라는 오명의 주인공이 됐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에서 ‘대통령’까지 올랐던 화려한 정치 인생을 마감하고 쓸쓸하게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박 전 대통령은 1952년 2월 2일 경북 대구 삼덕동의 한 셋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당시 35세였던 아버지 박정희는 육군본부 정보국 제1정보과장이었고, 27세의 어머니 육영수는 중등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그녀의 평범한 삶은 10세가 되던 1961년 5월 16일 완전히 달라졌다. 아버지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일으키면서 제5대 대통령이 됐고,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 영애(令愛)가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은 1974년 또 한 번 뒤바뀌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육 여사가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해 서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비극의 첫 시작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영문도 모른 채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 등을 통해 “온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고 당시 심정을 회상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이 된 최태민씨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였다. 최태민은 당시 ‘구국여성봉사단’ 활동에 주력하던 박 전 대통령에게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근혜양을 도와주라고 했다”는 편지를 쓰며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10월 26일, 이른바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그녀는 또다시 비극을 맞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피 묻은 아버지의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직접 빨면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 재임 당시 측근들이 하루아침에 자신과 동생들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적은 일기들에는 특히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언급이 많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1981년 8월)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에 대해 ‘절대 배신하지 않을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40년 가까이 자신의 곁에 두고 의지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님이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굉장히 강한 분이었기 때문에 제게 많이 의지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대국민 담화에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순식간에 ‘야인’이 된 박 전 대통령은 18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 이후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한다. 1998년 4월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여의도로 입성했으며 19대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박 전 대통령은 2년 3개월 동안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며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했다. 또 대표 시절 치른 거의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직전 서울 신촌에서 유세를 하던 중 습격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이 의식을 회복한 직후 꺼낸 “대전은요?” 발언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우뚝 선 박 전 대통령은 16대 대선과 17대 대선에서 두 차례 대권에 도전했지만 매번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며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2007년 당내 경선 과정에서 ‘최태민 스캔들’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18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25일 야심 차게 임기의 첫발을 뗐다. 하지만 임기 내내 끊임없는 대내외 악재에 시달리며 국정운영에 수차례 위기를 겪었다. 취임 첫해에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사퇴하거나 낙마하면서 ‘인사 난맥’을 겪었다. 같은 해 5월 미국 순방 도중 벌어진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문 사태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는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번 탄핵 사유에도 포함된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비롯해 정부의 무능한 대처는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11월에는 최씨의 전남편인 정윤회씨의 비선 실세 의혹이 터진 데 이어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논란이 불거졌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찌라시’ 수준으로 규정했지만 파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2015년 온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위기대응능력 부재로 질타를 받았다. 또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가 형성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도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를 방문해 ‘개헌 카드’까지 꺼내며 국면 전환을 노렸지만, 비선 실세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총 세 차례 대국민 담화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 왔다”면서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받게 됐고 왕래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풍문으로 나돌던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가 최씨의 태블릿PC 등으로 드러나는 등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적 퇴진 요구에 직면했다. 야 3당은 지난해 12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국회 본회의에서 234표로 가결됐다. 박 전 대통령은 관저 칩거 생활 속에서 명예 회복을 위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별검사 수사에 총력 대응했다. 탄핵 소추 의결 이후 92일 만에 열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 파면’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총 5년의 임기 중 1년에 조금 못 미치는 351일을 남겨두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됐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영애 18년, 야인 18년, 정치인 19년…박근혜 전 대통령 일대기

    영애 18년, 야인 18년, 정치인 19년…박근혜 전 대통령 일대기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됐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영애’ 시절부터 청와대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박 전 대통령은 ‘40년 지기’ 최순실(61) 게이트에 발목이 잡히며 19년 정치인생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 ‘영애’와 ‘퍼스트레이디’로서의 18년…은둔생활 18년 1952년 2월 2일 육군 소령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교사 출신 육영수 여사의 2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난 박 전 대통령은 이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버지에 의해 1963년 2월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후 18년간을 박 전 대통령은 영애와 퍼스트레이디로서 청와대에 지내게 된다.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4년 2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박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암살당하며 급거 귀국길에 올랐다. 이후 그는 22세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이어 1979년 10월 26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면서 이후 1개월 만에 서울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이후 18년간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재 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긴 했으나 언론에 일제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 ‘정치인’ 박근혜의 19년이지만 한동안 칩거를 이어가던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대중 앞에 나선 것. 이후 ‘정치인’ 박근혜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4월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여의도로 입성했으며 19대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박 전 대통령은 미래연합 창당 등 혼란기를 거쳐 2004년부터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키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부터 2년 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이라는 완승을 거두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됐다. 유력 대 주자로 발돋움한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패배했다. 이때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연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와 함께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를 토대로 2012년 대선에 승리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제18대 대통령이 됐다.그러나 집권 4년 차인 2016년에 최순실 파문이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인생도 뿌리째 흔들렸다.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이 지난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됨으로 끝났다. 풍문으로 나돌던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와의 관계가 드러나고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적 퇴진 요구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는 수모를 겪었다.박 전 대통령은 관저 칩거 생활 속에서 명예 회복을 위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별검사 수사에 총력 대응했다. 19년 관직 생활이 끝났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지난해 끝난 셈이다. 그러나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으며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받아들이면서 박 전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와 ‘법적 투쟁’의 길을 가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세훈 기자의 정치샤워]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장세훈 기자의 정치샤워]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국제화와 세계화의 차이가 뭐꼬?”(김영삼 전 대통령) “국제화를 세게 하면 세계화입니다.”(YS 정부 청와대 참모) “세게 하래이.”(김 전 대통령) 1990년대 서점가를 휩쓸었던 풍자 유머집 ‘YS는 못 말려’에 나올 법한 얘기처럼 보이지만, YS 정부 시절 청와대에 몸담았던 한 참모가 전한 실화다(물론 세계화라는 정책 어젠다는 치열한 고민과 논의 끝에 채택됐으며, 이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이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2000년대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상징되는 세계화가, 2010년대 들어서는 세계화를 기반으로 국가 위상과 국민 소득 향상에 초점을 맞춘 선진화가 각각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그러나 세계화나 선진화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쳤을지는 몰라도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세계화와 선진화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로 대표되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이 치유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적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생겨난 반면 빚에 허덕이는 영세 자영업자들도 수두룩하다. 사회적으로 양극화 문제는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난제로 자리잡고 있다. 개인의 삶 측면에서도 직업 안정성에 기반한 ‘평생 직장’ 개념은 희석되고 은퇴 후에도 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평생 노동’ 개념이 득세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과제를 매개로 한 대립과 반목, 분열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화산처럼 분출되고 있다. 현 상태로라면 차기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우리의 대통령’은 없고 지지 여부에 따라 ‘나의 대통령’과 ‘너의 대통령’으로 나뉠 판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시대정신이라는 표현이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된다. 여야 대선 주자들의 캠프에서도 국민들이 무릎을 칠 수 있는 시대정신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시대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이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이 거론하는 시대정신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1960~1970년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궁핍의 문제를 해결하자 1980년대 산업화 시대가, 1970~1980년대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에 맞선 결과 1990년대 민주화 시대가 각각 열렸다. 2017년 지금 사전적 시대정신이 우리 사회를 옥죄는 수많은 갈등과 분열이라는 ‘편가름’이라면 정치적 시대정신은 이념·세대·계층·지역 등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이른바 ‘융화’가 아닐까. 화해와 상생의 융화 시대를 열 대선 주자가 등장하길 기대한다. 이런 대선 주자라면 진영 대표나 계파 수장을 넘어 비로소 정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입니까. 또 시대정신을 풀어낼 대선 주자는 누구입니까. shjang@seoul.co.kr
  • [수요 에세이] 희망과 긍정의 사회적 담론/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수요 에세이] 희망과 긍정의 사회적 담론/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음식에 대해 알고 그 음식과 관련된 문화, 역사, 맛 등을 얘기하며 먹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얘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정의로워지려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많이 논의해야 한다. 이를 우리는 통상 ‘담론’이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담론은 현재의 이야기이지만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활발히 논의하는 주제를 손꼽으라면 이것을 사회적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담론은 특정 시대 그 사회를 관류하는 사회구성원의 집단적 관심사의 표출이라고 보면 된다. 많은 경우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어 법제도의 개선과 예산의 투입으로까지 연결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담론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대부분의 신문에서 지속적으로 1면 머리기사나 사설의 주제로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요즈음 들어서는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언론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표출된 어휘의 반복 정도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뽑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담론은 우리에게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사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을 뛰어넘어 중요한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회적 담론에는 우리 사회가 장차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구성원의 염원이 함께 담겨 있기 있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담론이 무엇인지를 보면 5년이나 10년 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미래 모습은 네가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달렸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처럼 사회적 담론은 사회 구성원의 현재 행위를 유도함으로써 미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매우 중요한 사회적 담론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표출된다. 첫째는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우려나 정부 대응의 부족에 대한 비난의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이다. 둘째는 문제의 폭로나 비난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이나 희망까지 포함하는 긍정의 담론으로 승화되는 경우이다. 첫 번째의 표출방식이 무엇을 담론으로 할 것인가 하는 주제 선택의 문제라고 한다면 두 번째 표출방식은 선택된 주제를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에 대한 방식의 문제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부정과 좌절만을 얘기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를 뛰어넘는 긍정과 희망까지 얘기할 것인가이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던 사회적 담론은 문제의 제기로 끝나지 않고 이를 극복해야 하고 또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과 희망의 담론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온 국민이 “우리도 잘살 수 있다”고 얘기하곤 하던 그 담론으로 우리는 반만년에 걸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 1980년대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민주주의 담론은 끝내 정치 민주화를 이끌어 냈다. 이어 1990년대 우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쳤고 지방자치를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관리를 받던 이른바 외환위기 때는 우리가 뭉쳐서 기필코 극복해야 한다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담론을 통해 전 국민을 아우르는 ‘금반지 기부 열풍’을 이끌어 냈다. 지난 1년간 월례조회 특강 등을 통해 시·군의 일선 공무원들을 많이 만났다. 그럴 때마다 복도와 식당에서 주로 무슨 말들이 넘쳐나느냐에 따라 여러분과 여러분 조직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얘기했다. 만일 자기만 편안하려는, 쩨쩨하고 이기적인 얘기가 복도에 난무하는 직장이라면 5년 뒤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시·군은 쩨쩨해질 것이다. 반면 주민들의 만족도를 다른 시·군보다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해 보자는 긍정과 희망의 말은 반드시 여러분의 미래를 훌륭하게 만들 것이라고. 되짚어야 한다. 지금 국가 사회의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는 무슨 담론을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것은 진정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적절한 문제이고, 또 그 논의 방식은 갈등과 분열의 방식인가, 아니면 희망으로 가는 화해와 긍정의 방식인가. 지금 많은 담론이 우리 사회에 흘러넘치고 있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사회적 담론을 슬기롭게 형성하는 유전자를 입증해 왔다. 부디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유전자가 또다시 발현되어 우리의 사회적 담론이 잘못을 지적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열과 갈등의 담론에 그치지 말고, 문제를 인정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화해와 긍정, 그리고 희망의 담론으로까지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 [사설] 中 옹졸한 사드 보복,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

    중국 랴오닝성 검역국이 수입된 한국 식품에 대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통관을 거부했다고 한다. 중국이 5월 개최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 경제권) 정상회의에 60여개국 정상·각료급 인사를 초청했으나 한국은 아직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한국은 일대일로와 밀접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출자액 규모 5위인 주요 창립 회원국인데, 우리 측을 초청하지 않는다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보복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고들 한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의 전체 수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6.0%이고 수입은 20.7%이다. 중국의 전체 수출 중 한국의 비중은 미국, 홍콩, 일본에 이어 4.4%, 수입은 10.9%로 1위이다. 이런 수치로 미뤄 대중국 의존도가 높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중 경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협조체제로 얽혀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중국이 사드 보복으로 한국 경제를 옥죄려 하면 중국 경제도 타격을 받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2012년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이) 국유화 파동 때 중국이 일본에 각종 보복 조치를 가했을 때 일본은 꿋꿋이 버텨 냈다. 중·일 무역이 동시에 줄고 일본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동남아로 이전하면서 1년 만에 위기를 넘긴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측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롯데슈퍼가 고용한 현지인이 2만명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2만 5000여개가 고용한 중국인은 수백만명이다. 자국민을 볼모로 한 중국의 옹졸한 보복을 지나치게 겁내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불안해하는 우리 모습은 중국 측 보복의 강도를 높일 뿐이다.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인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중국 측 보복의 물결을 이겨 낼 체력이 충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도, 2008년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도 이겨 낸 우리가 아닌가. 중국은 어제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6.5%로 제시했다. 지난해 6.7%에 이어 중속 성장에 들어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이 실행되고 한·중 무역이 축소되면 중국의 핵심이익인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리커창 총리가 전인대에서 “보호무역을 반대하고 이웃나라와 화목하게 지내겠다”고 강조했다는데, 말처럼 사드 보복은 대국답게 접어야 할 것이다.
  • 굿, 무대에 서다

    굿, 무대에 서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씻금’을 시작으로 굿을 연극으로 옮긴 ‘굿과 연극’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윤택이 쓰고 연출한 ‘씻금’(1~12일)은 진도 씻김굿의 마지막 무당 고 채정례씨와 악사 함인천씨 부부의 실제 삶을 극적 줄거리로 삼았다. 진도 씻김굿은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여 극락에 가도록 인도하는 천도의례로, 씻김굿이라는 이름은 죽은 사람이 생전에 풀지 못한 한을 씻어낸다는 데서 나왔다. 연극은 진도 민중의 개인사를 일제 강점기, IMF 경제 위기, 세월호 사태 등 한국 근현대사 수난사로 확장하며 죽은 자를 위로하는 동시에 산 자의 슬픔을 걷어낸다. 2010년 초연한 ‘씻금’은 지난해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30스튜디오’ 개관 공연에 이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는 연극인들이 지난달 초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운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잇따라 선보였다. 동해안 지역 마을굿인 동해안별신굿을 바탕으로 한 ‘오구’(3월 16일~4월 2일)는 무겁고 엄숙한 죽음의 가치를 익살스러운 재담과 몸짓으로 그려내며 망자에 대한 슬픔을 한국 특유의 해학적 정서로 승화한 작품이다. ‘초혼’(4월 20일~5월 7일)은 3대에 걸쳐 전개되는 한 집안의 수난사를 제주도 지역의 독특한 전통연희양식인 무혼굿으로 풀어낸 창작극이다. ‘초혼’에 배우로 출연하는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에 익숙한 요즘 시대에 굿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굿 역시 삶의 보편적인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면서 “소위 ‘판을 벌인다’는 말을 하는데, 굿을 하는 주체자와 구경하는 사람이 판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놀면서 아픔을 치유하는 동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3만원.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 1899-4368.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증시 위기 닥쳐도 돈 떼이지 않도록… ‘거래 증거금’ 9월 도입

    어느 날 A가 자신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50주를 B증권사를 통해 C에게 팔았다. C가 해당 주식 가격의 40%만 우선 내면 거래는 체결된다. 2거래일 안에 C가 나머지를 B증권사에 입금하면 A는 50주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다. 그런데 만약 2거래일 안에 2008년 리먼 사태처럼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고 가정해 보자. C뿐 아니라 대부분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져 나머지 돈을 못 낼 수 있다. 이럴 경우 B증권사의 결제불이행이 발생하고 중앙청산소 역할을 하는 한국거래소가 A에게 돈을 지급해야 한다. 거래소는 이런 경우 등을 대비해 오는 9월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 거래증거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21일 밝혔다. 거래증거금이란 증권사가 거래소에 예치하는 담보금이다. 증권 거래 체결 시점과 실제 결제 시점 간 가격변동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막기 위해 일종의 담보 형식으로 맡기는 돈이다. 시중은행들이 고객 예금을 내주지 못할 사태에 대비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돈(지급준비금)을 맡기는 것과 비슷하다. 거래증거금 제도는 해외 주요국 증시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증시에서는 결제시차(2거래일)가 짧고 증권사 부담이 크다는 점 등을 들어 도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의사결정 기구에서의 발언권 약화 등 상대적 차별을 받을 수 있어 도입하기로 했다고 거래소는 설명했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증시의 거래증거금 미비를 국제기준 미충족 사항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부과 대상은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상장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증권상품이다. 거래소는 증권사들의 하루 평균 거래증거금 규모를 2221억원으로 추산했다. 한 곳당 약 43억원 수준이다. 김도연 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장보는 “결제 안정성 강화와 한국 자본시장 신뢰도 제고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2017 공직열전] “작지만 강하다” 265명 초미니…금융정책 진두지휘

    [2017 공직열전] “작지만 강하다” 265명 초미니…금융정책 진두지휘

    금융위원회의 탄생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공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만수 사단으로 대표되는 이 당선자의 경제 브레인들은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3개로 나뉜 구조를 비효율적이라고 여겼다. 이듬해 조직 일원화 과정을 통해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기능과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정책 기능을 통합했다. 그렇게 해서 금융당국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금융위가 생겨났다.금융위는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을 합쳐도 직원 수가 265명인 초미니 부서다. 작지만 강하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 때문에 엘리트주의가 강하다는 시선도 있다. 금융 제도를 만들고 각종 인허가 및 제재를 담당하며 필요할 때 시장에 경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일상 업무다. 현직 관료 중 대표적인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로 통하는 임종룡 위원장 밑에서 일하는 업보(?)로 가뜩이나 높은 노동강도가 더욱 세졌다. 지난해 말 정부 1청사로 이사 온 뒤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부처다. 내년이면 10주년을 맞지만 조직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이 나뉜 현 경제부처 조직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금융위 넘버2인 정은보(55) 부위원장은 행정고시 28회 재경직 수석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선이 굵고 정책의 큰 방향을 잡는 데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옳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임 위원장이 경제부총리에 내정됐을 때 내부 직원들은 차기 위원장 1순위으로 꼽았다. 까칠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정이 많아 따르는 직원도 많다.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의 맏사위로, 방송인 강호동과도 친척이다. 김학균(53) 상임위원의 이력은 독특하다. 한국은행 정책부서에서 10년간 근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잘 아는 인물이라는 점이 발탁 이유로 꼽힌다. 영어에 능통하며 오랜 외국 생활로 매너가 좋다. 손병두(52) 상임위원은 누구보다 임 위원장의 신임이 두텁다. 금융위 핵심 현안인 조선·해운업 등 구조조정 업무를 손 위원에게 맡긴 이유이기도 하다. 합리적인 일 처리와 온화한 성격으로 기재부 시절부터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상사로 수차례 꼽혔다. 갈등 조정에도 능하다. 아버지가 손재식 전 통일부 장관이다. 유광열(52)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은 기재부에서 국제금융정책관부터 국제금융심의관, 국제금융협력국장을 거친 국제통이다. 다양한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 시야가 넓고 직원들과의 친화력도 좋다. 정완규(53) FIU 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금융협상, 저축은행 구조조정 등 금융 전반의 큰 틀을 많이 다룬 정통 금융 관료다.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할 줄 안다는 평을 듣는다. 젊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한다. 김용범(54) 사무처장은 정책에 대해 학구적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아이디어가 좋고 정책입안 과정에서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시장 및 소비자와 소통한다. 한때 재경부 ‘군기반장’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금융위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따뜻한 상사로 통한다. 임규준(53) 대변인은 오랜 기간 언론사 기자 생활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정부와 언론의 소통 방식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항상 새로운 방식을 연구해 정책홍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쇄신파다. 유재수(52) 기획조정관은 큰 그림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전반적인 금융정책 실무에 밝아 막혔을 때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어려운 정국 속에서도 국회 업무를 원만하게 추진했다는 평가다. 도규상(50) 금융정책국장은 금융위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별명만큼 전반적인 금융위 업무와 인사를 꿰뚫고 있다. 일을 미루는 법이 없는 부지런한 성격으로 업무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정이 많고 업무 능력만큼 패션 감각도 뛰어나다. 김학수(52) 금융서비스국장은 ‘통화계장’이란 옛 직함이 자랑스럽다. 재경부 금융정책과에서만 5년(1997~2002년)간 근무하며 외환위기를 온몸으로 겪었다. 대우그룹 구조조정에도 참여했다. 온화한 성격으로 직원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줄 아는 상사다. 김태현(50) 자본시장국장은 원칙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별명은 불도저. 업무에 대한 열정이 높고 추진력이 강해 붙여졌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부드러운 면도 있다. 술자리 등에서는 직원들과 격 없는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이다. 이명순(48) 구조개선정책관은 현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 멤버다. 금융위 내에서는 대책반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은행 민영화 등 어려운 사안들을 합리적으로 처리해 냈다. 임 위원장이 ‘사명감이 투철한 공무원’이라고 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 윤창호(49)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보살’로 통한다. 부하 직원이 큰 잘못을 해도 절대로 화내는 법이 없다. 카드 수수료 조정과 신용정보원 설립 등 갈등 현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이해관계 조정에 능하다는 평이다. 숫자에도 강해 업무보고 때 후배에게 의존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조직 내 소문난 주당이다. 박정훈(47) 금융현장지원단장은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던지고 직원들과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는 스타일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및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합쳐 5년간 외국 생활을 해 국제 감각도 뛰어나다. 서재홍(52) 국제협력관은 뛰어난 국제 감각과 세련된 매너로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소통을 중시한다는 평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기습 이자 폭탄은 ‘무효’ 선이자는 ‘불법’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기습 이자 폭탄은 ‘무효’ 선이자는 ‘불법’

    연 27.9% 넘는 이자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금리 변동 가능하나 예측 범위 내에서만 계약서 꼼꼼히… 피해 땐 금융당국에 신고직장인 A(30대)씨는 집안 사정으로 급전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가 기막힌 일을 당했습니다. 아파트 보증금을 담보로 900만원을 대출받고 7%의 이자율을 적용하기로 했는데요. 계약 시 3개월 분할 납부하기로 한 근저당설정비 45만원을 이자와 함께 약 20만원씩 부담하는 계약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대부업체로부터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번 달부터 이자를 27만원 넘게 내라는 겁니다. 깜짝 놀란 A씨는 바로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어 “갑자기 이자를 올리는 게 어딨냐”고 따졌습니다. 대부업체 직원은 “조달금리가 올라서 대출금리가 36%로 인상됐다”면서 “계약서를 보면 조달금리에 따라 이자율은 변동될 수 있다고 다 써있다”고 우기네요. A씨는 “도대체 조달금리가 얼마나 올랐길래 그러냐”고 물어봤지만 대부업체 직원은 “그건 외부에 알려줄 수 없다”고만 말합니다. 갑자기 ‘이자 폭탄’을 맞게 된 A씨는 정말 대부업체가 올린 이자를 다 내야 할까요? 17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A씨의 경우 대부업체의 요구대로 이자를 다 낼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서에 ‘이자율은 변동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더라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갑자기 이자율을 대폭 올리는 행위는 소비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어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효가 되기 때문이죠. 이성만 소비자원 서울지원 금융보험팀 부장은 “대부업체에서 계약서에 변동금리라고 써 놓으면 금리를 올릴 수는 있다”면서 “하지만 소비자가 예측 가능해야 하고, 금리를 올리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부장은 “IMF 외환위기처럼 국가적인 경제위기라면 몰라도 갑자기 이자율을 급격히 올린다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면서 “계약 당사자인 채무자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이자율 인상은 법에 따라 무효”라고 강조했습니다.현행 법정 최고금리는 연 27.9%입니다. 전국 시도에 등록이 안 된 대부업체의 경우 이자제한법 적용을 받아 최고금리가 연 25%죠. 즉 등록된 대부업체는 최대 연 27.9%, 개인 등 등록 안 된 대부업소는 최대 연 25%의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업체가 이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았다면 소비자에게 되돌려주거나 원금에서 빼줘야 하죠. 하지만 대부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받은 이자를 친절하게 돌려주는 일은 거의 없겠죠. 대부업체가 갑자기 이자를 터무니없이 올렸다면 소비자원이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에 신고하고 피해 구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성만 부장은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때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면서 “대부업체에서 말도 안 되는 변동금리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항을 숨겨 놓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일부 대부업체에서 선이자를 떼는 경우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1000만원을 빌려준다고 하고 선이자 100만원을 뗀 900만원만 주는 거죠. 소비자원에 따르면 선이자는 불법입니다. 만약 대부업체에서 선이자를 뗐다면 이자가 아니라 대출 원금에서 빼야 합니다. 즉 대부업체에서 처음부터 1000만원이 아닌 900만원을 빌려줬다고 보는 거죠. 최근 TV에서 ‘1개월 무이자’라는 대부업체 광고가 많이 나오는데요. 소비자원에 따르면 무이자라는 말만 믿고 덜컥 대출을 받았다가 낭패를 보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1개월 뒤에 이자를 조금이라도 갚지 못하면 높은 연체이자율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서죠. ‘1개월 무이자’라는 광고 뒤에 숨은 높은 이자율 등 계약조건을 잘 체크해야 합니다. 또 이자율이 낮은 대출을 중계해 주겠다면서 신용조사 비용 등 수수료를 받는 중계사들도 있는데요. 대출중계사가 수수료를 받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대출중계사는 대부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아야 하죠. 어떤 경우에도 소비자는 대출중계사에게 수수료를 줄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성만 부장은 “소비자가 대출 원금과 이자를 못 갚으면 전화 등으로 협박하는 일부 대부업체가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이럴 때는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esjang@seoul.co.kr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매일 600만 그릇 팔리는 ‘짜장면’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매일 600만 그릇 팔리는 ‘짜장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외식 메뉴는 아마도 짜장면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는 입학이나 졸업식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언제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국민 메뉴가 되었다. 짜장면은 원래 중국 산둥 지역의 작장면(炸醬麵)에서 유래하며, 우리나라에는 1900년대 초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짜장면은 6·25 전쟁 이후에 많은 양을 값싸게 제공할 수 있게 변형된 것이다. 우리식 짜장면은 춘장에 식은 면을 말아 먹는 중국식과는 달리 양파, 고기, 감자, 채소를 고루 넣고 볶은 뒤 전분을 풀어 묽게 끓여 뜨거운 면에 얹어 먹는다. 짜장 소스 위에 오이채나 완두콩을 얹고 입맛에 따라 식초, 고춧가루를 더하고 단무지, 양파를 곁들인다. 맛과 레시피가 우리 환경과 입맛에 맞게 놀라운 변신을 한 것이다. 짜장면에 얽힌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1997년 11월 IMF 경제위기로 치닫던 당시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의 직책에 있었다. 매일매일을 사투를 벌이다시피 하던 시절인데, KBS 9시 뉴스에서 우리가 일하는 현장을 국민에게 소개하겠다고 강권해서 할 수 없이 응했던 적이 있다. 녹화가 막 끝난 저녁 즈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동으로 미리 시켜 둔 짜장면이 배달되었다. 우리는 무심코 취재팀에게도 권하고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고 그대로 방송된 것이다. 참 계면쩍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TV를 보다가 갑자기 짜장면 생각이 나서 다음날 오랜만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는 인사를 도처에서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짜장면은 과거 정부 시절 물가관리 대표품목이 될 정도로 국민 메뉴여서 수준급 식당도 곳곳에 많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곳을 몇 군데 소개하려 한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이화여대 후문 쪽에 ‘효동각’이 있다. 메뉴는 짜장면뿐이다. 일·월요일은 휴무인 데다 평일에도 점심만 하고 그것도 3시까지만이다. 주인, 부인, 아들 세 사람이 하는 집이다. 주문 후 요리를 시작하므로 꽤 기다려야 한다.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짜장 소스에 버섯이 들어가 식감이 좋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순한 맛인데도 이 집만의 특유의 풍미가 가득하다.마포구 공덕동 효창운동장 뒷담 쪽에는 1981년에 문을 연 ‘신성각’이 있다.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집으로, 주방은 보조도 없이 주인 혼자서 하고 부인은 홀 담당이다. 메뉴는 짜장면 등 총 여섯 가지. 기다리는 동안 볼 수 있는 수타 모습은 감동마저 준다. 주인은 짜장면을 예술로 믿는다. 순수 그 자체의 맛이라는 것이다. 점심때 줄이 길다. 중구 명동 중앙우체국 옆에는 ‘개화’란 식당이 60년 넘게 자리잡고 있다. 화교가 하는 중국집인데, 다소 가는 면발에 걸쭉한 짜장 소스를 비벼 먹는다. 소고기를 다진 유니짜장을 많이 시킨다. 단맛이나 고소한 맛은 적으나 중독성 있는 특별한 맛이다. 마포 불교방송 건물 지하에는 1953년에 개업한 ‘현래장’이 있다. 인근 작은 건물에 있다가 재개발로 옆 건물로 이사했다. 이사 전에는 길에서 유리 너머로 수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수타의 원조 격이어서 맛볼 만하다. 용산 삼각지 전쟁기념관 옆에는 ‘명화원’이 있다.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점포로, 얼마 전 가게를 새로 단장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줄이 길어졌다. 메뉴는 짜장면, 탕수육 등 다섯 가지뿐이다. 탕수육과 군만두도 유명하다.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이 시절이면 가족들과 함께 즐기던 옛날의 그 짜장면 생각이 절로 난다. 얼른 가서 한 그릇 사 먹어야겠다.
  • 그리스 “IMF·獨, 유럽 미래 걸고 불장난”

    IMF “EU, 국가부채 먼저 줄여야” 총선 앞둔 독일 “부채 탕감 더 없다”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의 구제금융 집행 문제를 두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 당사국인 그리스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구제금융 지원 시기를 놓치면서 그리스의 국가 부도가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11일(현지시간) 아테네에서 열린 시리자당 회의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미래를 놓고 불장난을 벌이고 있는 IMF와 독일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채권단이 현재 진행 중인 3차 구제금융 심리는 긍정적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2010년 재정 위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리스는 IMF와 EU, 유럽중앙은행(ECB) 등 국제 채권단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아 연명하고 있다. EU가 주축이 된 채권단은 2010년에 1100억 유로를, 2012년 13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그리스에 지원했다. 하지만 EU가 주도하는 3차 구제금융(860억 유로·약 105조원)의 일부를 지원하기로 한 IMF는 국내총생산(GDP)의 175%에 달하는 그리스의 국가 부채를 EU 국가들이 줄여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제금융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리스의 부채를 이대로 놔두면 2060년에는 GDP의 275%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는 논리다. 반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 국가들은 그리스 부채 탕감에 소극적이다. 독일은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자국민의 세금이 그리스 부채 해결에 쓰이는 데 대한 여론의 반감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그리스에 또 다른 부채 탕감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3차 구제금융 지원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IMF 등 채권단은 이날 그리스가 연금 지출을 삭감하고 세수 기반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2018년까지 GDP의 1%에 해당하는 18억 유로 규모의 추가 긴축을 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0년 재정 위기 이래 그동안 11차례 연금 예산을 삭감한 “그리스 정부로서는 연금 추가 삭감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만약 그리스가 오는 7월 이전에 3차 구제 금융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면 당장 70억 유로에 달하는 만기 도래 국채를 상환하지 못하게 된다. 이 경우 2015년 8월에 이어 또다시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겪게 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美·中 화해무드 하루 만에… 트럼프, 환율조작 때리기

    미·일 정상 기자회견서 선전포고 본격적인 무역조치 단행 나설 듯 중국 보도 통제… 부정적 내용 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치고 빠지기식 협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무역 문제에 대해 “중국의 통화 평가절하에 대해 내가 그동안 계속 불평을 해 왔는데 우리는 결국 ‘평평한 운동장’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통화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할 것이란 의사를 밝혔고 “우리는(시 주석과) 지난밤에 아주,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다. 매우 훈훈한 대화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전화통화는 그동안 중국과 여러 가지로 ‘각’을 세우던 트럼프 대통령의 ‘변화’로 보였다. 하지만 하루 만에 ‘환율’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 때리기로 돌변했다. 국제 정치와 무역을 철저하게 분리하면서 실익을 얻겠다는 트럼프식 외교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과 다른 분야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려면 그것(평평한 운동장)밖에 없다”면서 “많은 사람이 이해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무역조치를 단행하겠다는 선전 포고인 셈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보게 될 세금 정책이 (평평한 운동장과) 관련이 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인센티브 기반 정책들을 도입할 것이며 현재 의회와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불균형한 무역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세금 등을 이용하겠다는 뜻이다.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이 도입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강한 압박 발언은 오는 4월로 예정된 미국의 환율조작국 발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의 공공 조달시장 입찰이 제한된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그 나라의 경제정책을 감시하는 족쇄도 채운다. 중국은 미·일 정상회담 결과와 여기서 나온 언급들을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통화로 모처럼 형성된 미·중 우호 분위기가 미·일 정상회담으로 희석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인지 관영 매체들은 정상회담 결과보다는 일본의 태도를 비판하는 데 열중했다. 중국 언론들은 이 회담에서 무역 불균형, 남중국해, 센카쿠 열도 등과 관련해 중국을 압박한 내용은 다루지 않아 당국이 보도통제를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대부분의 매체들은 “양국 정상 간 어색한 19초간의 악수가 화제가 됐다”거나 “일본어를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시통역을 위한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등의 부정적인 내용을 부각시켰다. 서울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시론] 트럼프발 글로벌 위기와 한국 경제/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시론] 트럼프발 글로벌 위기와 한국 경제/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지구촌을 혼란에 빠뜨렸다. 당선 이후 주가, 금리, 달러 상승으로 기대감을 드러냈던 전 세계 금융시장도 반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당선 연설의 안정감과 이후 행보가 시장에 긍정적으로 비쳤던 반면, 취임 이후에는 선거 기간에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에 따라 세계 경제는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트럼프의 취임 연설과 이후 일련의 조치를 볼 때, 트럼프 미국의 지향점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이른바 미국 최우선이다.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다. 이는 교역 상대국들의 ‘불공정한’ 저가 제품 탓에 자국의 산업과 기업이 손해를 입었고 일자리도 줄어들었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트럼프 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의 유입도 일자리 감소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불공정한 무역협정 및 상대국의 조치를 바로잡아서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이 급격히 바뀌고 있고 미국 실업률이 이미 완전 고용 수준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트럼프의 구상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하지만 취임 초기 미국 우선 대외정책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심각성을 넘어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 여전히 초강대국인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데서 오는 불안 때문이다. 헤게모니는 한 국가의 경제·군사적 우월성과 세계를 이끌려는 의지에서 나오는데 미국은 자국 최우선주의로 의지를 버렸고, 중국은 의지는 있지만 아직 능력이 없다.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찰스 킨들버거는 1920년대 말 전 세계 대공황의 원인을 헤게모니의 부재에서 찾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관세를 수단으로 한 극심한 무역전쟁을 치르며 제로섬도 아닌 공멸의 길로 들어섰다. 결국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 빠져들었다. 킨들버거에 따르면 당시 영국은 의지는 있었지만 능력이 없었고 미국은 능력은 있었지만 의지가 없었던 헤게모니의 부재 상태였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닮았다.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 국가의 역설적 상황을 표현한 트리핀 딜레마라는 게 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GDP의 24% 정도에 그치지만, 달러는 전 세계 외환 거래의 88%, 외환보유고의 64%를 차지한다. 미국 이외의 국가들은 경상·자본 거래를 위한 예비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실제보다 더 많은 달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끊임없이 달러가 공급돼야 유지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자국 상품보다 외국 상품을 더 많이 소비하는, 즉 경상 적자가 요구된다. 적자가 반가울 리 없는 기축통화 국가로서는 딜레마인 셈이다. 미국이 자국 최우선으로 적자를 해소하겠다고 나서면 현 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대안이 필요하다. 중국이 아직 미국의 대안이 아니라면, 그 대안은 2009년 중국이 제안했듯이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는 제2의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 가치의 하락을 유도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대안과 그 이행 과정은 G20, G7, 적어도 G2의 긴밀한 협력을 전제로 한다. 현재의 대립과 갈등을 감안할 때 매우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대외의존도가 가장 높은 편이다. 트럼프발 글로벌 위기가 현실화된다면 실물 및 금융 양 측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올해 1월 반도체, 석유화학 제품 등에 힘입어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했지만 추세 반전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회복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수출 제조업은 현지 생산 확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경제적 관점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추진되지 못했던 서비스업 육성을 통해 내수 기반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 “3분의 1 실직 위기”… 거리로 나선 그리스 소방관들

    “3분의 1 실직 위기”… 거리로 나선 그리스 소방관들

    그리스 소방관들이 8일(현지시간) 아테네 도심에서 정부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소방관들은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구제금융에 대한 반대급부로 실시하는 긴축정책에 그리스 정부가 합의해 3분의1이 실직 위기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그리스인들이 긴축정책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그리스의 채무는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아테네 EPA 연합뉴스
  • 고개 드는 ‘4월 위기설’… “불안심리가 더 큰 악재”

    고개 드는 ‘4월 위기설’… “불안심리가 더 큰 악재”

    국내외 금융시장 차분하지만 美 4월 보고서 ‘환율전쟁’ 예고 대우조선 회사채 만기도 부담 정부는 “근거 불확실” 불끄기중국 외환보유액 3조 달러가 무너지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드는 조짐이다. 4월에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와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만기 등이 맞물려 있는 점을 들어 ‘4월 위기설’마저 나온다. 정부는 “근거가 불확실한 시나리오”라며 오히려 과도한 불안 심리가 더 문제라고 경계했다. 8일 국내 금융시장은 예상과 달리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이날 위안화 가치는 전날 0.4% 떨어진 데 이어 0.1% 추가 하락에 그쳤다. 외환보유액 3조 달러 붕괴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역외 시장에서 보합세를 유지했다. 같은 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나스닥지수는 10.67포인트(0.19%) 오른 5674.22에 장을 마감하며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시장이 중국 문제(외환보유액 3조 달러 붕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안전자산 선호로 국제 주가가 하락하고 미국 달러는 강세로 돌아섰겠지만 아직 이런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도 전날보다 달러당 2.9원 오르는 데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이 자유변동환율제 및 전면적 자본 통제를 동시에 시행할 경우 적정 외환보유액을 1조 800억 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외환시장의 평균 예상은 이보다 높은 약 1조 8000억 달러 수준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3조 달러 붕괴가 어느 정도 예상돼 왔고 감소폭이 최근 둔화되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달러 기조에 따른 자연 감소분이 존재한다는 의견도 있다. 달러 가치가 오르는 과정에서 중국 외화 창고 속 엔화나 유로화 가치가 떨어졌고 이런 환산액(외환보유액은 달러화로 환산 표시) 감소분이 외환보유액 통계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자본 유출을 일정 수준 통제하고 있다”면서 “이런 배경에서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부족할 여지는 크게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달러당 7위안 선이 뚫리면 미국 트럼프 정부의 ‘환율 조작’ 공세가 더 거세질 수밖에 없어 불안감이 상존한다. 미국 재무부는 4월에 환율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한다.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일본, 독일 등은 이미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돼 있다. 일각에서는 4월 보고서에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4월에는 대우조선 회사채 만기 4400억원도 돌아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은 여전히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약 30%를 가진 나라로 일본보다 3배나 많고, 우리나라도 (외환보유액이) 3700억 달러를 넘는다”면서 “현시점에서 가장 큰 악재는 과도한 불안심리”라고 위기설을 일축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단독] 작년 임금 인상률 7년 만에 최저

    공공, 19년 만에 민간 첫 추월 지난해 국내 기업의 임금 인상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공부문의 임금 인상률이 통계 작성 이래 19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부문을 앞질렀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이면서 노사 협약으로 임금을 정하는 1만 571개 사업장(민간 및 공공부문)의 평균 임금 인상률은 3.3%로 조사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2009년(1.7%)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또 관련 통계가 작성된 첫해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외환위기 때인 1998년(-2.7%)과 그 이듬해(2.1%)에 이어 연간 단위로 네 번째로 낮은 것이다. 평균 임금 인상률은 2014년 4.1%에서 2015년 3.7%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또 1998년부터 2015년까지 18년 동안 항상 민간부문보다 인상률이 낮았던 공공부문(중앙 및 지방정부, 국공립 초·중·고교 제외)은 지난해 3.4%의 인상률을 보이며 미미하게나마 처음으로 민간부문(3.3%)을 역전했다. 민간부문은 2014년 4.2%, 2015년 3.7% 등 최근 3년간 하락세를 보인 반면, 공공부문은 같은 기간 1.9%, 3.3% 등 상승 곡선을 그려 왔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 외환보유고 3조 달러가 무너진 속사정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 외환보유고 3조 달러가 무너진 속사정

    중국의 외환보유고 3조 달러(약 3450조원)대가 맥없이무너졌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3조 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친 것은 2011년 2월 말 2조 9914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5년 11개월 만이다. 경제 성장세의 둔화로 자본유출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환율 개입(달러를 팔고 위안화를 사들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3조 달러 대가 끝내 붕괴된 것이다.7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 따르면 올 1월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전달(3조 105억 달러)보다 123억 달러가 줄어든 2조 9982억 달러를 기록, ‘3조 달러‘ 마지노선이 깨졌다. 이에 따라 중국 외환보유고는 2014년 6월 4조 달러에 육박하는 3조 9932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불과 2년 6개월 만에 무려 1조 달러나 급감했다. 지난 한해동안 중국에서 해외로 빠져 나간 자금도 전년보다 60% 이상 급증한 3000억 달러를 넘어선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보도했다. 중국이 매달 400억~ 500억 달러 규모의 무역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데도 중국에서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중국 경제성장 둔화세로 위안화 약세를 예상해 투자자들이 중국 내에서 돈을 빼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때문에 미국 자본이 되돌아가는 돈도 있고, 경기 불확실성에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자 중국 기업들이 외화 자산 확보 차원에서 해외 인수·합병(M&A)에 공격적으로 나선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여기에다 M&A 등을 통해 수출 기업들이 벌어들인 외화를 중국으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 보유한 것도 자본유출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닛케이는 분석했다.중국은 2005년 위안화 평가절상과 관리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자금유입이 확대에 힘입어 외환보유고도 해마다 2000억~5000억 달러가 늘어나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2005년 1조 달러(8188억 달러)를 밑돌던 외환보유고는 2006년 10월 1조 달러, 2009년 4월 2조 달러, 2011년 3월 3조 달러를 각각 돌파하며 자본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때문에 중국 외환 당국은 투기머니 유입과 위안화 강세를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시급한 과제가 됐을 정도다. 그러나 2015년 들어 경제성장률의 6%대 후반을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그해 8월 5%에 가까운 위안화의 급격한 평가절하 탓에 중국은 위안화 가치 하락과 자본유출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로 되는, 중국의 외환정책이 180도 변하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연초부터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환율 개입을 반복하면서 외환보유고 3조 달러 붕괴도 시간문제일뿐, 머지않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국제 외환 전문가들은 중국 외환보유고의 심리적 지지선은 3조 달러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못 미치면 위기 상황에 대비한 안전판이 부족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전문가들은 중국 외환보유고 투자 대상의 유동성이 낮은 점, 그 중 2조 8000억달러가 이미 다른 부채 충당에 쓰이고 있을 가능성 등의 이유로 3조 달러라 해도 실제 중국 정부가 쓸 수 있는 돈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으로 우려한다. 다일리 왕 루비니글로벌이코노믹스 전략분석가는 “3조 달러가 시장의 심리에 영향을 줄 임계점”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은행 소시에테제네럴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기준을 이용해 외환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중국의 적정 외환보유고 수준을 2조 7500만 달러로 추정했다. 3조 달러대가 무너졌지만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최근의 감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 우려된다. 이에 당황한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500만 달러 이상의 해외 송금과 환전, 해외 M&A에 대해 사전 심사에 착수하고 올해 1월부터는 은행들에 개인 외화로 환전할 때 용도를 자세히 보고하도록 지시하는 등 자본유출 막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본유출 막기에 두팔을 걷은 중국은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고 중 가장 환금성이 좋은 미국 국채를 내다팔고 있다. 중국은 주로 미 국채를 내다팔아 달러를 조달했으며, 이 달러로 위안화를 구매해 환율을 방어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08년 일본을 제치고 최대 미국 국채보유국에 올라섰던 중국은 중국은 이로 인해 최대 미국 국채보유국 자리를 일본에 내줬다. 지난해 10월에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는 전달보다 413억 달러가 줄어든 1조 1200억 달러로 내려앉으며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이 같은 수치는 2010년 7월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 제프리스의 토마스 사이먼스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달러화 자산 매도와 외환보유액 감소 추이는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라며 “일부 트레이더들은 중국 금융당국이 벨기에에 예치된 미국 국채를 트레이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중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미국 달러의 강세가 지속되면 상대적으로 위안화 평가절하가 지속되고, 자본유출도 한층 확대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위안화는 지난해 6월달만 하더라도 달러당 6위안대 초반까지 고공행진을 하며 5위안대로 진입할 기세를 보이는 초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위안화는 약세 기조로 돌아섰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견된 후 중국 본토에서 자금이 유출되기 시작하면서 위안화는 맥을 못췄다. 올해 들어서도 연초 6.5위안 선에 머물렀던 위안화 환율이 7일 현재 달러당 6.8604로 떨어져 7위안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위안화가 지속적으로 평가절하돼 올 1분기 말이면 7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무라증권의 경우 3개월후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7.1위안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루키르 샤르마 모건스탠리 수석 전략분석가는 “중국을 떠나기를 원하는 엄청난 자금의 대기수요가 있기 때문에 미국 금리인상의 최대 피해국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 약세는 수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급격한 통화가치 약세는 국가신인도 하락과 대규모 외자유출로 이어진다. ‘위안화 약세→ 자금 유출→ 외환보유액 감소→ 위안화 약세’의 악순환은 지난 1년동안 중국 당국을 간단없이 괴롭혀왔다. 지난해 1월 ‘헤지펀드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위안화 약세에 거액을 베팅하자, 중국 금융당국은 헤지펀드들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며 막대한 외환보유고을 동원해 위안화를 사고 달러를 팔면서 환율 방어에 나선 까닭이다. 그 결과 위안화는 급격한 평가절하 현상은 회피했지만, 그만큼 외환보유고는 쪼그라들 수 밖에 없었다. 7위안과 3조 달러. 중국 금융당국의 정신적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이미 3조 달러가 무너졌고 앞으로 달러당 위안화 환율마저 7위안을 넘어서면 중국 금융당국으로서는 악몽에 가까운 끔찍한 시기이다. 이 두가지가 동시에 붕괴되는 경우 중국 금융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질 공산이 크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스트롱맨’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파워에 밀리는 기색이 역력한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정치 행보에 보폭이 점점 좁아지는 2017년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위기의 한국경제, 답은 있다] 스웨덴·獨 ‘노동·복지개혁’-덴마크 ‘친환경 에너지’로 제2의 성장

    [위기의 한국경제, 답은 있다] 스웨덴·獨 ‘노동·복지개혁’-덴마크 ‘친환경 에너지’로 제2의 성장

    2002년 우리나라 현대중공업에 코쿰스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팔아넘겨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스웨덴의 남부도시 말뫼는 당시 조선소 폐업으로 도시 인구의 10%인 2만 7000명이 실직했다. 하지만 말뫼는 중앙정부로부터 2억 5000만 크로나(약 324억원)를 지원받아 공장부지를 사들이고 환경친화적인 미래형 도시를 만드는 데 투자했다. 조선업에 썼던 재원을 신재생 에너지와 정보기술(IT) 등 새로운 산업에 투자해 200여개의 새로운 기업과 6만 3000개의 일자리도 만들어 냈다. 23만명대로 줄어들었던 인구는 도시가 활력을 되찾으면서 다시 유입돼 2010년 이후 30만명을 돌파했다. 이렇듯 경제위기에서 탈출한 국가도 있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일자리 친화적 복지로 다시 일어선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제조업 강국 독일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덴마크도 빼놓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의 모범 사례로 자주 인용했던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단기직과 시간제 근무를 늘리고 실업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엄격하게 하는 등 고용시장 유연화에 초점을 맞춘 개혁이다. 1990년대 스웨덴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은 우리나라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에 봉착했을 때 참고했던 북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 사례다. 스웨덴은 1990년대 재정 적자와 자산 가격 거품이 급속히 꺼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금융기관 대출채권 부실화가 심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밖으로는 세계화, 안으로는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연대임금 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을 근간으로 하는 복지모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1991년부터 3년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이유다. 스웨덴이 3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에서 4% 성장(1994년)으로 극적 반등할 수 있었던 동인은 근본적으로 경제 체질을 바꾸려 했던 노력에 있다. 1994년 재집권한 사민당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반영한 복지모델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거시적 경제안정 정책과 미시적 구조개혁 정책을 동시에 진행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실장은 “거시적 안정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성장 둔화, 실업 증가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지만 유연성 제고와 구조조정 등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게 한다”며 “다만 사회안전망이 확립되지 않은 국가의 경우 위기로 인한 고용과 소득분배 구조 악화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지적했다. 2차 대전 후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 낸 독일(서독)이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1970년대 분배 중심의 복지정책이 실시되면서 서서히 침체해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3년 -0.7%까지 떨어졌다. 독일 정부는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 부양책을 내세운 게 아니라 실업률을 낮추는 데 주목했다. 미니잡 등 가벼운 일자리를 만들며 주부, 휴학생, 은퇴 노인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내줬다. 도철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하르츠 개혁이 미완이긴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종합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됐다는 점”이라며 “예컨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3년 전후(戰後) 최대 경제 구조개혁인 ‘어젠다 2010’을 발표하며 하르츠 개혁을 노동시장 개편을 위한 하나의 모듈로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사회보장제도, 세율 및 세제 개편, 노동개혁, 규제 철폐 등을 전방위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정책 연계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구조개혁을 패키지로 진행했다는 얘기다. 뒤이어 등장한 기민당의 앙켈라 메르켈 정부는 ‘하르츠 IV 지속발전법’을 통과시켜 슈뢰더 정부의 개혁정책을 계승했다. 정파의 이익에 관계없이 정책을 일관되게 장기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하르츠 개혁은 일방의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았다. ‘일하지 않으면 지원도 없다’는 워크페어(workfare) 정신에 입각해 실업자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구직 의무를 강화하는 등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도 고용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을 선행적으로 실시했다. 고용 서비스 체계를 간소화하고 맞춤형 서비스인 ‘잡센터’를 신설했다. 일자리 중개 기능의 인력알선사무소(PSA)도 설치했다. 도 연구위원은 “독일 위기 해결의 키워드 중 하나는 ‘타임 갭’을 극복한 지도자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정책 결실을 보는 데 3~4년이 소요되는 만큼 성과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것을 알면서도 정치인이 아닌 국가 지도자로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반대를 버텨 냈다는 얘기다. 하르츠 개혁을 강행했던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자신이 추진했던 개혁의 여파로 결국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여전히 독일 고용 확대의 기반을 다진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0위권인 덴마크는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다국적기업이 없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다. 공업의 다양성도 적다.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1밖에 안 되고 인구는 우리나라의 10분의1 수준인 570만명이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5만 3243달러로 우리(2만 7633달러)의 두 배에 이른다. 배경은 국가적 혁신과 복지, 높은 사회적 결속에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적으로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던 덴마크는 1973년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더이상 석유에 의존하지 않기로 하고 친환경 에너지 개발로 성장 전략을 세웠다. 또 1990년대 말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조선업의 기존 노하우, 인프라, 인력들을 풍력발전 산업에 재사용했다. 그 결과 덴마크는 풍력발전으로 자국 전기 수요의 14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덴마크 풍력회사 베스타스는 연매출 69억 유로, 고용인원만 2만 3000명으로 세계 풍력시장의 약 20%를 차지하며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재훈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에 관한 국내외 사례연구’에서 “1973~1990년 경제위기 속에서 덴마크 정부는 생산적이고 서비스 지향적인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숙제에 시간을 쓰기보다는 개인적인 소비를 위해 일하고 돈 벌 것을 권장했다”며 “이런 교육체계 등이 노동 현장까지 연장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경제가 가능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역시 철밥통이 최고” vs “칼퇴근은 다 옛말”… 댓글 수천개 ‘와글와글’

    “철밥통 공무원이 최고네!” vs “공무원 6시 칼퇴근은 다 옛말.” 6일 첫선을 보인 서울신문 ‘퍼블릭 IN’은 네티즌들 사이에 뜨거운 설전을 낳았다. 이날 각 포털사이트에서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102만 대한민국 공무원의 평균 상을 제시한 기사에 수천개의 댓글이 달려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공무원의 평균이 42세에 7급으로 연봉 5892만원이란 통계에 한 공무원은 “2004년 임용돼 44세의 7급 공무원이지만 세전 연봉은 5000만원 수준이고 실수령액은 4000만원입니다”라며 평균 연봉이 높다는 반응을 보였다. 5892만원은 1급 이상 대통령부터 9급까지 모든 공무원의 연봉을 평균한 금액으로 실제 7급 14호봉 공무원의 연봉은 4452만원이다. 평균 연봉에는 성과연봉, 성과상여금, 직무성과급, 시간외 근무수당, 야간근무수당, 휴일 근무수당, 연가보상비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공무원의 평균 초과근무 시간에 대해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공무원은 5급 이하만 하루 4시간, 월 57시간 한도 내에서 시간외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다. 네티즌들은 실리콘 손가락으로 지문 인식기를 속여 야근수당을 받은 공무원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수당 때문에 초과근무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공시 열풍에 대해서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의견과 정규직 일자리가 없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IMF 외환위기 전에는 공무원이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공무원이 좋은 직장인 나라는 발전이 없다”며 공시 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네티즌 최순옥씨는 “대한민국은 공무원들만 편하게 사는 나라가 아니라 공무원이 열심히 일해서 국민이 편안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퍼블릭 IN’에 대해 국민을 위해 공무원들이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도하는 기사를 바라는 주문도 잇따랐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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