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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황속 희망 찾는 70년대 생활체험

    불황속 희망 찾는 70년대 생활체험

    살림살이가 IMF 외환위기 때 못지 않게 어려워진 요즘, 불황의 고통을 향수로 달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EBS ‘리얼실험 프로젝트 X’는 6일부터 3주간 매주 화요일 오후 7시50분 ‘그때 그 시절, 다시 보는 1970년대’를 방송한다. 2009년 서울에서 참가자 9명이 1970년대 생활 체험에 도전했다. 제작진은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1970년대 생활을 체험해 보면서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지만 정이 있었던 그때를 돌아보고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2009년 서울에서 1970년대를 재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재개발 열풍으로 대부분의 1960~1970년대 가옥들이 철거된 데다, 남아 있다 해도 내부를 양식으로 개조한 곳이 적지 않아 마땅한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제작진은 서울 구석구석을 10여일을 헤맨 끝에 마포구 염리동에서 적합한 장소를 발견했다. 이후 1970년대식 각종 소품과 의상 등을 준비하는 데 또 다시 2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윤화섭(48)·우상문(50)씨 부부는 1970년대 초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든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고생스러웠지만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된 그 시절을 경험하고 싶어 실험에 지원한 이들 부부는 1970년대식 생활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둔 정영진(42)·진은자(35)씨 부부는 어렴풋이 1970년대를 기억한다. 이들은 방학을 맞은 두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실험에 지원했다. 하지만 석유 화로에 밥을 해 먹는 데서부터 손빨래까지 모든 것이 불편하다. 실험을 시작하며 학원을 가지 않게 된 아이들도 처음에는 놀 수 있다며 좋아했지만 컴퓨터와 게임기가 없는 생활에 점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또한 대학생 염가혜(22)씨와 김은주(22)씨는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를 경험해 보고 싶어 실험에 참가했다.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한 방을 쓰기로 한 두 사람은 옛날식 집 구조와 각종 소품 등 1970년대식 생활이 모두 신기하고 재밌을 뿐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1970년대로 변신한 이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추운 마당에서 밥을 해 먹고 씻어야 하는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최근 1970년대에 대한 향수가 늘고 있는 것은 경기 침체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인간미가 살아 있던 따뜻한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녹색 일자리’ 근로자 서울 남산서 재기의 첫발

    ‘녹색 일자리’ 근로자 서울 남산서 재기의 첫발

    5일 서울 남산에서는 녹색일자리 근로자로 선발된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한 시무식이 열렸다. 이들은 서울시와 북부지방산림청에서 선발한 숲가꾸기 근로자들. 그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업자로 생활해 왔다. 녹색일자리 발대식은 정부부처 중 산림청이 처음 시작하는 일자리사업으로 근로자들은 안전교육을 받은 후 남산에서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이날 행사는 신림청이 올해 계획한 대규모 녹색일자리 창출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산림청은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에 걸쳐 순차적으로 녹색일자리 발대식을 가질 예정이다. 산림청은 올해 숲가꾸기에 2만 3000명,병해충·산지사방 등 산림보호 사업에 4780명 등 산림분야에서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2만 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녹색일자리 근로자는 각 분야별로 10~12월간 산림현장에서 근무하며 1일 3만 5000~4만 5000원의 임금과 5000원의 부대비를 지급받는다. 녹색근로자로 참여한 김모(35)씨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녹색 일자리를 갖게 됐다.”면서 “이를 기회로 삼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림청은 IMF 외환위기인 지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숲가꾸기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연평균 1만 30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바 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미네르바 사과글 진위 논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과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자산 설계에 참여, 1997년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방관하고 최근의 금융 위기를 불러왔다는 내용의 사죄 글을 올려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이 평소 미네르바에 대해 알려졌던 정보와 다르고,글 형식 역시 과거와 달라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미네르바는 5일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올린 ‘마지막에 기댈 것은 결국 희망입니다’라는 글에서 “30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기업 인수·합병과 서브프라임 자산 설계에 발을 담그면서 일반 가계대출 수익 모델링, 환율에 따른 주가 모델링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1997년과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CNN 등을 통해 보면서,수많은 자살자가 난 경제 위기를 방관한 채 외국에서 제3자로 있었다.”면서 “조국에 비수를 꽂은 외국 사람들 한가운데 섞여서 본분을 망각하고 있었던 게 후회스럽고 죄스럽다.”고 말했다.또 “파생상품을 만들어내 그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미국 세계 금융자본 시스템의 틀 속에서 뻔히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방관자로서 분명 피할 수도 있었던 이 비극적 현실을 돕지 못한 점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글의 내용대로라면 미네르바는 그동안 정보당국 등에 의해 알려졌던 대로 50대 초반 증권사를 퇴직한 직원이 아닌 80대 전후의 노인이 된다. 또한 1990년대 초 60대 초반의 노인이 서브프라임의 구조를 짰다는 점도 납득하기 힘들고, 기존 논리 정연한 미네르바의 글과 달리 과도하게 감성적인데다 띄어쓰기가 들쭉날쭉하고 맞춤법도 틀린 부분이 많다는 점 등에 따라 진위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네티즌들은 “미네르바를 판단력이 흐린 노인으로 보이게 하려고 다른 사람이 쓴 계략적인 글”이라는 음모론도 제기하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공중전화가 본 세상

    [뉴스 다큐 시선] 공중전화가 본 세상

    ‘시선(視線)’은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달부터 화요일마다 기존의 ‘라이프&’과 격주로 연재될 ‘뉴스다큐 시선’ 역시 누군가의 ‘눈이 가는 길’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수없이 많고 서로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그 가운데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시선들을 표현할 것입니다. 한순간을 포착하기보다는 뉴스다큐라는 이름처럼 오랜 시간을 지켜보며 충분한 사실·느낌·생각을 전달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세상의 많은 시선들과 함께 긴 여운을 느껴 보세요. ‘뉴스다큐 시선’의 첫 주인공은 공중전화가 들려주는 세상이야기입니다. 휴대전화에 밀려 늘 퇴출될 위기 속에 있지만 묵묵히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공중전화는 경기침체의 터널을 지나야 하는 우리네 처지와 비슷합니다. 새해 첫날과 이튿날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촌, 서울역, 영등포경찰서 민원실에 있는 공중전화를 통해 본 사람들은 저마다 아련한 사연을 안고 있었으며,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에게 공중전화는 차가운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정감어린 소통의 수단이었습니다.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를 많이 찾아요. 불황이 심각해지면서 휴대전화나 집전화 요금이 버거워진 사람들이 주로 저를 이용하죠. 수입은 월 20만원이 넘고요. 사람들은 늘 저를 필요로 하지요. 항상 바쁘지만 사라질 염려가 없어 맘이 편해요.”-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촌 공중전화 “저는 ‘신상’ 공중전화기랍니다. 휴대전화처럼 문자메시지까지 보낼 수 있는 최신형이죠. 제 옆에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까지 있어요. 하지만 첨단이면 뭐합니까. 제 발밑에는 항상 노숙자들이 자고 있어요. 저에게 들인 돈이 아까워 당장 철거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없어지겠죠.”-서울역 최신형 공중전화 “월 1000원도 못 번답니다. 회사는 늘 저를 퇴출시키려고 노려보고 있죠. 하지만 경찰서 안에 있기 때문에 버틸 만해요. 공공성 때문에 섣불리 저를 제거할 수 없답니다. 동료 전화기들은 저를 철밥통이라고 부러워하지만 매일 외줄 타는 기분이에요.”-영등포경찰서 민원실 공중전화 ●불황에 중국 가족에게 전화 횟수도 뜸해져 중국동포 밀집지역인 서울 가리봉동 시장 입구에는 공중전화 3대가 나란히 있다. 이 전화기들은 매일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국의 가족들과 나누는 애틋한 대화를 엿듣는다. 1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30여명이 공중전화를 찾았다. 중국동포 박모(52)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새해 안부를 전했다. 박씨의 눈은 전화기 액정화면에 뜨는 전화카드 잔액에 고정돼 있었지만 귀는 가족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하고 싶은 듯 수화기에 꼭 붙어 있었다. 그는 “요금을 못내 두 달 전에 휴대전화가 끊겨 공중전화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2007년말 한국에 와서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박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과 1년에 두세 번밖에 통화하지 못 한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100만원을 보내면 8000위안은 됐는데, 지금은 몇달을 모아 200만원을 보내도 1만위안밖에 안 돼 전화비도 부담스럽습니다.” 중국 옌지에서 온 성모(36)씨는 중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일자리가 여의치 않아 다시 들어가야 할지 상의했다. 그 역시 요금이 부담돼 휴대전화는 쓰지 않았다. “이 동네 공중전화는 외로움을 달래는 소중한 수단이죠. 전화를 걸러 나왔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전화부스가 약속장소가 되기도 하지요.” ●전화기 앞에서 고개 숙인 사나이 1일 오전 7시 이경수(46·일용직근로자)씨는 가리봉동 시장 공중전화기의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정작 전화는 걸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1988년 결혼했지만 경마에 빠져 전 재산 3억 5000만원을 탕진했고, 2001년 이혼하고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이씨는 “새해 첫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할까 망설였는데, 7년이 지났지만 아직 전화드릴 면목이 없어서 그냥 끊었다.”고 힘없이 말했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알뜰족도 눈에 띄었다. 이해중(55·회사원)씨는 “휴대전화가 있지만 요금을 아끼기 위해 일반전화번호로 걸 때는 공중전화를 고집한다.”고 말했다. “겨울이라 춥다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다 낭비죠.” 이씨가 자리를 뜨고 30여분이 지나자 한 할아버지가 전화기를 일일이 수색(?)했다. 자세히 보니 카드투입구나 동전반환구에 쓰다 남은 카드나 동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할아버지 바로 뒤에 전화기를 쓴 김모(24·여)씨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결제하느라 휴대전화 요금이 49만원이나 나왔는데, 이 돈을 결제하지 못해 결국 휴대전화가 끊겨 어쩔 수 없이 공중전화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외화내빈 공중전화의 고민 서울역 광장에 있는 공중전화는 현금자동입출금기와 나란히 서 있다. 빨간색 가로기둥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 공중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하루 종일 지켜봐도 이 전화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만 오후 5시가 되자 노숙자 3명이 전화기 밑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밤이 깊어지면 노숙자들의 잠자리가 됐다. 서울역 광장 종합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직원마저도 신형 공중전화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주위 상인들은 “기능과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유동인구도 별로 없는 곳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김포 해병대 2사단에 근무하는 김모(23) 병장은 부산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병 때는 부대 내 공중전화를 아예 붙잡고 살았다.”면서 “군대 오기 전에는 공중전화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부대 안에서는 정말 소중하더라.”고 말했다. 엄경헌(22) 상병은 “공중전화를 쓰면서 잊어버렸던 전화번호를 많이 외우게 됐다.”면서 “편리함은 종종 사람의 능력을 퇴화시킨다.”고 말했다. ●수익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지난 2일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 영등포경찰서 민원봉사실에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KT링커스측은 “월 1000원 미만의 수익을 내는 곳으로 공중전화 한 대당 연간 관리비가 10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효율성이 최악인 전화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서 측은 공공성을 위해 이 전화기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등포경찰서 경무계장은 “노인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왔거나 배터리가 떨어진 민원인들, 정액제 요금을 다 사용해 휴대전화가 먹통인 중고생들에게는 이 전화가 없어서는 안 된다. ”면서 “수익성을 따지자면 당연히 수지가 안 맞겠지만 한 명의 민원인이라도 전화가 필요하다면 전화기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경찰은 “요즘 유행하는 구조조정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으로만 보면 세상에 남아날 것들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치안서비스처럼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평생에 단 한 번 필요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세상에는 정말 많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경주 김민희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석춘호씨의 80년대 공중전화 추억 “구멍가게 번성 일등공신… 시위학생 방패막이였죠” “1980년대에는 상점마다 공중 전화를 서로 가까운 데 놔달라고 전쟁을 벌였죠.” 1983년 10월에 입사해 2000년까지 서울 영등포구, 동작구 등지에서 공중전화 설치, 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담당한 KT링커스 총무팀 석춘호(44) 팀장은 5일 ‘공중전화 전성시대’였던 80년대를 추억했다.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기계식 전화는 요금조절 장치가 너무 조여지면 동전을 넣어도 통화가 안 되고 느슨하면 돈을 넣지 않고도 무료로 통화가 가능하기도 했다. 석씨는 “상점 주인들은 공중전화가 주위에 있어야 장사가 잘된다고 서로 가게 가까이 놔달라고 졸랐다.”고 회상했다. 요즘은 가게 앞에 공중전화를 설치하면 가게 출입문을 가리니 옮겨달라고 항의한다. 그래도 아직 보람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비상수단으로 공중전화를 찾는다는 것. 하지만 도서지역이 아닌 경우에는 공공성을 명목으로 설치하기가 힘들어 늘 안타깝다.1987년 서울대 공중전화를 관리하러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가다가 급작스럽게 터진 최루탄에 잔디밭을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데모를 하던 여학생들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남학생들은 정문 쪽에 있던 전화부스를 눕혀 바리케이드로 사용했다. 석씨는 “데모가 끝나면 전화기를 전부 수리하고 교체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회상했다. 80년대 여의도 국회의사당 1층에 있는 공중전화는 흥행의 보증수표였다. 특히 국정감사 시기가 되면 1층에 공중전화를 쓰려는 공무원들과 기자들이 긴 줄을 섰다. 석씨는 “당시에는 비상근무조가 있어 24시간 근무했지만 요즘은 아예 당직도 없어졌다.”면서 “공중전화가 추억이 되는 것을 보면서 말 그대로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워싱턴 입성 오바마 출발 전부터 삐걱 역술인 이철용 “흙기운 센 해…무리하면 불벼락” 박근혜 “국민에 고통”에 “그동안 뭘했다고” 미네르바 “난 악마의 도구…IMF때 도움 못 돼 조국에 죄송”
  • [CEO 칼럼] 글로벌 경제 위기 속의 기회/캔더스 김 할씨언 써치 인터내셔널 대표

    [CEO 칼럼] 글로벌 경제 위기 속의 기회/캔더스 김 할씨언 써치 인터내셔널 대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이제 막 터널에 들어선 것 같다.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부족과 리스크 관리 실패,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은 경기침체 공포를 심화시키고 있다.국내외 경제 분석기관들은 한결같이 새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전망치를 내놓았다.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환위기(IMF),신용카드 사태와 같은 굵직한 경제위기들을 슬기롭게 극복한 저력을 갖고 있다.위기는 곧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한다는 사실도 경험했다.한 글로벌 컨설팅회사 중역은 “이 위기는 향후 50년간 오지 않을 엄청난 위기”라고 했다.하지만 필자는 이 글로벌 위기가 만들어낸 기회는 향후 50년간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위기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찾아온 기회를 잡는 데 경쟁국에 뒤처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때이다. 국제 금융위기 속에서 매물로 나온 월스트리트 부실 금융기관을 일본이 어떻게 신속하게 낚아챘는지 지켜봤다.얼마 전 노무라증권은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 부문을 환상적인 조건으로 인수했고,미쓰비시UFJ도 모건스탠리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다. 리먼브러더스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접근방식을 비교할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한국이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포기하자마자 일본이 달려들어 아시아부문에 대한 인수 기회를 잡았다.이런 인수 방식은 아마도 한국 금융산업을 격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우리가 부담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좋은 조건으로 부분 인수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현재의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상황과 비슷한 기회를 여러 번 더 만나게 될 것이다.우리가 글로벌 메이저 투자은행을 통째로 인수하기에는 무리뿐만 아니라 위험도 따른다.하지만 우리가 글로벌 금융회사를 부분 인수하는 것은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탈바꿈하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기회가 온다면 인수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동시에 어떤 회사가 국내 금융기관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같은 방식의 접근을 다른 산업에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포스코가 해외 제철소 건설 계획을 철회하고 헐값에 나오는 우량 제철소를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그래서 매우 시기적절하고 슬기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우리에게 기회로 다가오는 것은 향후 원화 대비 엔화와 위안화의 상대적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엔·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일본의 수출경쟁력은 갈수록 나빠질 것이다.세계 최강의 도요타 자동차가 창사 이래 70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중국 또한 지금 현재 계속되는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고 있으며,미국 섬유산업연합회(NCTO)에서 중국에 대해 반덤핑 불공정 무역으로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보호무역체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오바마 정권이 출범하면 중국이 받는 압력은 더욱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중국의 저임금에 쫓기고,일본의 브랜드 파워에 치였던 한국에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고도 볼 수 있다.글로벌 경제 위기가 심화될수록 그 안에서 기회를 찾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말아야겠다. 캔더스 김 할씨언 써치 인터내셔널 대표
  • 미네르바 “난 악마의 앞잡이였다.죄송하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의 경제토론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이버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5일 새벽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미네르바는 이날 새벽 0시48분 띄운 글을 통해 “젊었을 때 집을 나와 사기를 당했고 머슴살이도 해봤다.”면서 “32살에 배고파서 미국으로 건너가 금융계에 몸을 담그고 파생상품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시골의 한 요양원에 있으며 몸이 안 좋다고 밝힌 미네르바는 “IMF 외환위기가 왔을 때 조국에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괴로웠다.”면서 그동안 경제관련 글을 써 온 이유를 간접적으로나마 밝혔다.  마지막으로 미네르바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면서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원했다.  5일 오전 10시50분 현재 이 글에는 533건의 댓글이 달려 있는데 대부분 “미네르바 힘내라.”는 응원성 글이다.  다음은 미네르바의 글 전문.감정에 복받친 듯 오타가 많지만 글의 느낌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그대로 싣는다.    안녕 하십니까.  늙고 초라한 노인네가 이제 제 이야기 하나를 하고자 합니다. 제목이 결국 마지막에 기댈 것은 희망이라는 단어라고 적었습니다.  사람이란 샐노병사라는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의 굴레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젠 의사가 술은 그만 마시라고 하는데 사람이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는 것이란 본능적으로 아는 법.  그것은 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 할수 없는 영역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신체적 나이라는 걸 본인 스스로 체감하게 되지요. 한 마디로 사람이라는건 나이가 먹으면 자신이 대략 언제쯤 인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네...................그렇습니다. 전 치열하다면 치열하게 비겁하다면 비겁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젊을 때는 고 정주영 옹께서 하신 것처럼 집에서 소를 훔쳐 온것 가지는 아니여도 젊은 혈기에 집에 있는걸 들고 도망치다 시피 나와서 말 그대로 서울땅에 올라 와서 사기라면 지금의 펀드를 날려 먹었다는 그런식의 사기를 당하고 나서 제 아버님으로부터...어머님으로 부터 다리 밑에서 빌어 먹을 놈이라는 모욕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네..... 그 시절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후에 나중에 머슴살이라는 것도 했습니다. 머슴살이라는것이 예전 조선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젊은 친구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50년대...그리고 60년대 까지도 집 안에서 식모 살이 비슷한 그렇게 사는 머습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후 50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분들은 절대로 이해 할수 없는 지옥의 끝이라는 것을 직접 뼈를 깎는다는 처절한 인간의 마음 속 절망과 좌절의 시간들이 이 한국이라는 땅에 존재 했습니다.  전후 50년대. 전쟁은 53년 후에 끝나고 말 그대로 미군정이라는 것이 세워질 그 당시 서울의 모습이라는 것은 처참함. 그리고 아이들의 울부짓음.  공중 폭격이라는 것이 지금 영화나. 저도 봤습니다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고하나요?. 그런것과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참담함....... 그 말로 밖에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그런 시간들이였습니다. 그 때는 미국의 식량 원조로 살았습니다. 말 그대로 메이드 인 유에스 에이 라는 스탬프가 찍힌 것이 인천항에 미군 화물선에 양키 애들이 선적해다 주는 걸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 시절이였죠.  저희 같은 늙은이들은 그런 시간을 전후 53년 이후............ 말 그대로 10년여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지방의 땅을 가진 지주들이나 원래 에전에 돈을 가진 그룹을 제외 한다면 거의 대부분 저와 같은 참담한 그 저주 받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과연 어떤 생각과 고민들을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전 그때 오로지 살아 남아야겠다는 그 생각 밖에 안들더군요. 생존.... 그 생각 뿐이였습니다. 그 때는 서울에 3층 이상 건물이라는 것이 공중 폭격으로 없었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래서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등 지고 독일로 미국으로 독일에는 그 당시 남자는 광부로 가서 지하 몇 백미터..아니면 노천 탄광이라고 땅을 안 파고 가는 프랑스 접경 지역의 알자스 지방으로 가서 달러 벌이를. 한국계 간호사로는 여성 분들이 무수히 가서 일을 하고 달러로 고국에 송금을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네..... 그렇죠.. 그 전까지는 20대 까지는 군대에.. 흔히 예전 분들이 말하는 머슴살이라는 걸로 들어 가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전 학위라는 것도 30살이 넘어서 흔히 미국 유학 가셨다는 그 분들이 말하는 쌔 빠지게 고생 했다는 그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그런 류의 고생이라는걸 해서 학사 석사 과정을 밞아 가면서 말 그대로 학위라는걸 30대 중반이 넘어서 받은 비천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말하는 그 말로 맞는 말입니다. 그 후에 전 그 당시로는 미국에서 성공 그 단 하나의 절대 명제 하에 돈이 안 되는건 가차 없이 짜르고 조립하고 M&A 라는 기업 인수 합병에 지금 이 저주 받은 굿판이라는 서브 프라임의 자산 설계라는데 발 담그면서 일반 가계 대출 수익 모델링...거기에 환율에 따른 주가 모델링까지.  말 그대로 워렌 버핏이 말하는 그 파생 상품이라는 시함폭탄에 발을 담군 쓰레기라면 역사의 쓰레기가 저란 인간의 실체입니다. 97년 그 당시도 제 마음속에 남은 1%의 애국심이라는 것이 너무나 뻔히 월스트리스의 석양 저무는 마천루에서 티비 뉴스를 보면 너무나 뻔하고 당연하고.  그리고 같은 한국인으로써 저래서는 절대 안 될 국부 유출과 외국에게 유린 당하는 창.녀와 같은 조국의 현실이라는걸 보면서 ..........   한국에 와서............. 다 접고 단 하나의 회사라도 너무나 잘 아는 그 IMF 와 외국인 투기 자본과 그 저주 받은......그리고 그 저주 받은 악마의 도구라는걸 만든 그 장본인으로써..  지금 와서는 비명과 눈물로 이....나라는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해 준 이 나라에 사죄하고 용서를 하고 이 통한의 지금도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저 자신에 대해 ............  97년.........98년 당시 저는 ...CNN과 블름 버그......일반 매체로 그 비명의 97년 IMF 라는걸 다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   단 하나의 회사라도 살릴 수 있었음에도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모든 걸 방관자로써 ....그것도 외국에서 제 3자로써 있었던 제가............진짜 저 자신이 이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저라는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해 준 이 나라에 씻을 수 없는 잘못 아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수 많은 자살자들........한강에서 시체를 건져 올린다는 말 그대로 저주 받은 6.25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라는 그 순간을 외면하고.  조국이라는 곳에 비수를 꼽은 그 외국 애들....그 양키들이라는 애들 한 가운데 섞여서.........  저는... 제 본분을 망각했던 것입니다....지금 이 찟어 지는 마음의 후회와 죄스러움이라는건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런 사죄의 마음이겠죠.  그래서......  그래서...... 그 워렌 버핏이 말한 그 악마의 병기.....그 타로 카드에 그려진 사신이라 불리는 그 악마의 병기의 파괴적인 무서움과 허리케인의 무서움이라는걸 가장 잘 아는 제가 피가 터지도록.  욕을 하면서 말을 했지만 이젠 되돌릴 수가 없는 시간적인 ......... 너무나 당연한 예상한 결과라는 것이 이제 현실화가 되는걸 두 눈으로 이 눈 내린 요양원에서....  늙과 비루한 ......이젠 얼마 안 남은 이 늙은 몸으로 보면서........  제발...............분명 피할수도 있었던.......  아니면 최소한 이 악마의 병기라는 이 글로벌 월 스트리트 미국 세계 금융 자본의 시스템이라는 틀 속에서 뻔히 어떻게 될 거라는걸 알면서 방관자로 이 촌구석 시골에서 이젠 아무 도움도 못 되는..  이 늙은이가 해 줄 말은..오로지 이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보다 더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었고 각자의 가정을 지키면서 가정 파괴의 수순을 밟지 않고 그 고결한 인간의 존엄성을 단지 돈이라는 그 불로 태우면 타는 그 종이 쪼가리에 파괴 되는 이 실체화 되는 비극적 현실에 도와 드리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와 더불어 간곡하게 말씀 드릴 것은..... 피를 토하면서 말씀 드릴 것은.....  나이라는 숫자에 구애 받고 속박 받으면서 자기 자신의 미래 가능성을 포기 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제 인생에서 몇 번 안 되는 감명 깊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 절대......절대 미래 가치를 지금 현재 기준으로 평가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나이라는 것에 구애 받지 마시고 개인의 미래를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저도 32살에 미국이라는 이 기회의 땅에 건너 왔습니다.  온 이유는 간단 합니다..... 너무 배고파서........그리고 그 젊은 나이에 단 1%의 희망....  없어도 좋으니까.........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쌀 한톨의 희망이라도 좋으니까 그 희망이라는 걸 나도 꿈꿀 수 있다면 살아갈 희망이라는 것이...존재감이라는 것이있지 않을까 하고 와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연명하며 그렇게 살아 이젠 인생의 그 우여 곡절과 그 긑자락에 서 있습니다.  나이에 구애 받지 마십시요..  그리고 나이 때문에........ 단지 그것때문에 포기 하지 마시고....  희망...... 안 되도 좋으니까...... 단 1%........아니면0.1%..........의 희망이라도 가지시고 이 시간들을 이겨 내시기 바랄 뿐입니다.  97년..................  그 당시...... 전 방관자였습니다.........  98년 그 당시 마천루 한 가운데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 보면서 한국의 뉴스를 보면서 .......  그리고 옳지 못한 선택을 한 한명의.....부질없는 한명의 인간으로써.....그때 조금만 더 일찍 한국에 와서 도움의 손길을 내 뻗지 못한 한 명의 노인으로써........  사죄 드립니다.........  그리고 제발 미리 선제 대응으로 이 위기를 피해 가길 간절히 기도 했지만 이젠 현실이 되 버린 이 현실....  부디....... 희망이라는걸 포기 하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결정적인 시간에.............. 나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와...부모의 나라와....... 나 자신의 영혼까지 져 버린..  역사의 죄인...........  사죄드립니다...........사죄드립니다........전 이제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시스템적 경제 순환 구조라는걸........... 그걸 설계 하고 악마의 병기라는걸 만들어 내고 그 누구다 잘 이해 하고 있었으면서도 외면하고 져 버린 인간으로써...........  백번 무릎 꿇고 .........사죄 드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건.......... 오로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사죄....... 사죄입니다...........그 죄스런 생각과 방관자로써의 97년을 보낸 그 저주 받은 시간을 보낸 이 나라에.  제 조국에 제 이 늙은이가 할수 있는건......이것뿐입니다....  지금 그 죄스럼에......죄송합니다.......다만....이 죄 많은 늙은이가 할 말은....... 저와 같은 후회스런 저주 받은 인생은 없도록 예배당에 나가서 .,...  간절하게 기도 드리는 것 뿐........ 그것 뿐입니다........ 부디.........가정과 가족들을 각자 ..그 소중한 가치라는걸 지켜 내시기를 ......  백번...천번.......간절하게 기도 드릴 뿐입니다......죄송합니다.........  이 죄스러운 마음.......씻을 길이 없어서 술을 다시 마셨습니다.  후회와 번민...  자만과 오만의 굴곡질 .......  자기 자신마저 속여야만 했던 그 시간들...나 자신까지 속여야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말 그대로의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 꿈뜰대던 그 젊은 나날들의 시절들...  후회와 번민.... 자만과 오만...... 자기 기만과 번뇌........  그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의 끝으로 몰아 넣은 최일선에 있으면서도 방관자였던 한 비천한 늙은이의 생애 마지막 자기 반성과 사죄.  전........... 결과적으로는.........저 자신까지 속였던..........자기 기만이라고 불리는 삶을........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오로지 .........성공........전 성공이라는 그 단 두 글자에 전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비천하고 비루한 늙은이입니다.  이젠..... 이 나라는..... 재생과 희망.......재건과 생존이라는 걸 다시 일어서서 .....  나라를...경제를....... 망가진 이 나라를 재건할...........그 시간이 다시..또 다시 왔습니다......  그건........여러분의 몫입니다.....저와 같은 얼마 안 남은........ 비겁자이자 방관자적인 늙은이의 몫이 아니겠지요.  오늘도 눈 밭을 밟으며 전 기도 드리겠습니다...... 제발 돈이라는 악마의 요물과 이 저주 받은 시스템적인 악마의 금융 자본주의에..  부디......부디 가족들이.........이 불에 태우면 한 줌의 재로 밖에는 가치가 없는 이 돈이라는 것 때문에.  인간이라는.....저와 같은 삶을 살지 마시고..... 가족과 개인의..인간의 고결함을 각자 지키실수 있도록....  죽는 그 날까지.....사죄 드리는 이 마음............ 간절히 기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모든 인생의 업보를 등에 이고...악마의 무간지옥을 걸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반드시.....그 어떠한 댓가를 치루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한국 경제는 재건 되야 합니다.  이건 거론할 가치가 없는 절대 명제겠지요............ 지금 이 나라............이 불쌍하고....안타깝고....애증과 애욕이 교차하는 이 나라..  이 나라 경제는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  포기 하고 자포자기 하기에는 이 나라는.....너무나 안타깝고.......지금도 박스를 주으면서...... 아니면 가스비가 밀려서 추위와 굶주림의 공포 속에서 사는 노인들과 젊은 애 아빠들.........애 엄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반드시.........반드시 다....... 지금 이 나라에서 최상위....2% 가 말하는 예전 말 그대로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그 말로 치부하기에는........  이 사회가.......이 나라가 다 끌고..데리고 가야 할 이 나라의 국민들이고 우리 이웃의 가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는 아직은....... 아직은 포기라는 단어는 너무나 사치 스러운 단어가 지금의 우리 현실입니다.  다만......  시간에 대한 잘못된 선택에 대한 그 결과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대 자연과 인간 세상사의 당연한 순리.  이제 시간적 선택에 대한 결과론적인 대가.... 대가라는걸 치룰 시간이 왔을 뿐입니다........  다만............저는 그로 인한 그 고통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왜냐하면 그 추위와 배고품이라는 그 뼈에 새겨지는 가난의 공포라는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떄문입니다.  한 겨울...... 창문으로 매서운... 살을 도려 내는 듯한 추위........ 굶주림..... 도저히 잠이 안 오는........ 잘 수가 없는..그래서 그 다음 날이 밝아 오는......  그 기분과 심정이라는걸 이해 하는...단지 소설책에서 보는 활자로써의 감정적인 체험이 아닌...  실제로 경험적인 그 생각조차 하기 싫은 가난의 공포와 뼈에 새겨지는 추위와 굶주림의 공포라는걸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제 시작입니다.......... 그 시작의 스타트에 이제 여러분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제발..........제발 그 희망의....... 사람이 사람으로써 살아 갈 수 있는 그 마지막....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속여야 할 정도의 그 비참하고 참담함으로 부터 빠져 나와.....  사람으로써의 존귀함고 고결함을 단지 종이와 잉크로 아로 세겨진 돈이라는 ...그 저주 받은쓰레기로부터 지키시길 바라며.....기도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술을 마시고 쓴 늙은이의 자기 푸념입니다......  부디........부디......... 간절히 기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사죄 합니다...... 죄송합니다...... 진짜로 죄송합니다................다시 말해도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글로벌 시대] 기본에 충실한 새해가 되기를/박현정 크레디트 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글로벌 시대] 기본에 충실한 새해가 되기를/박현정 크레디트 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선연한 색깔의 잉크 한 방울이 물에 번지는 모양이 그럴까. 사방팔방으로 확산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생생히 목도했던 한 해였다. 연신 쏟아지는 암울한 경제뉴스는 날이 갈수록 비관의 강도를 더해갔고,명동거리가 출렁일 정도로 갑자기 불어난 일본인 관광객들은 요동친 환율을 실감케 했다. 단골 국수집 가격표도 예외 없이 껑충 올라 있었고 온 국민을 들쑤신 재테크 열풍의 끝자락도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는 여전히 안쓰러웠다. 일자리를 가진,일하는 이들 다수도 고용의 불안정으로 수시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무엇보다도 2008년은 우리의 삶이 글로벌화된 세상 구석구석과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감했던 한 해였다. 일개 소시민일지라도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예전과는 다른 차원의 삶의 파고와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라도 해일처럼 덤벼들어 내 삶의 질서를 흔들 수 있는 불가항력의 시대변화를 우리는 앞으로 수도 없이 겪어야 할 것이다. 이젠 일상의 희로애락조차 전세계적으로 전염되는 시대 같다. 흡사 끝이 안 보이는 거대한 도미노에 모두 위태롭게 몸을 기댄 형국이다. GM은 바로 오늘의 미국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개탄하는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최근 칼럼을 읽고 있자니 우리의 지난 IMF 경제위기 때 기억이 수시로 교차한다. 위기는 반복된다. 하지만 꼭 미국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위기는 어느 나라도 예외 없이 나름의 위기의 몫과 동시에 각자의 위기극복 능력을 시험할 기회를 주었다. 위기는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하게 만든다. 앞으로 오랫동안 한국인의 트라우마로 남을 IMF 위기는 한국이 대대적 변혁을 시도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도 글로벌화의 문제점을 환기시키고 보다 바람직한 자본주의의 진화를 모색하는 성찰의 계기가 되고 있다. 2009년이 고통스러운 한 해가 되리란 건 자명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IMF 위기 때보다 더 하다.’고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그래도 새해가 왔다. 무력감에 시달렸던 한 해를 보내고 맞은 새해다. 정말이지 해라도 바뀌지 않았으면 모두가 희망을 결심하는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을까 싶어 새해가 너무 반갑다. 한국인은 자기평가에 인색한 민족이다. 우리의 만성화된 비관주의는 치열한 반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다소 비생산적인 비관주의 정서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 한국이라는 울타리 밖을 더 많이 눈동냥 ,귀동냥할수록 깨닫는 것이 있다면 한국은 결코 작은 나라도,만만한 나라도 아니라는 점이다.한국의 현대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많든 수많은 신화로 이루어져 있다.이미 지구촌의 있는 자 대열에 있는 한국은 글로벌화의 대표적인 수혜자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대의 격랑 속에 몸을 맡긴 이상 우리는 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새해를 맞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한 대학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올해 미국인들의 새해 결심 순위 상위엔 ‘살빼기’, ‘담배끊기’, ‘절약하기’ 등이 올랐다고 한다. 특히 ‘절약하기’는 예전엔 볼 수 없었던 항목이라니 미국인들이 느끼는 경제적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어려울수록 우리는 기본으로의 회귀를 지향한다. 생활의 거품을 빼고 삶의 본연적 가치에 밀착된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새해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성공지침이나 거창한 결심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일상이 필요한 해다. 자신의 내면을 더 돌보고, 열심히 일하고 건전하게 소비하며, 소중한 이들에게 더 많이 웃기를 실천하는 그런 담담한 일상 말이다. 박현정 크레디트 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 [대한민국 극&극] 96세 안금림 할머니 vs 12세 양선희양, 소띠들의 ‘세대 소통’

    [대한민국 극&극] 96세 안금림 할머니 vs 12세 양선희양, 소띠들의 ‘세대 소통’

    서울신문은 이달부터 ‘대한민국 극(極)과 극(極)’이라는 기획을 매주 월요일자에 연재합니다.대척점에 선 인물이나 사건 등을 넓은 스펙트럼에서 접근해 독자 여러분에게 균형잡히고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드리기 위함입니다.상위는 잘났고 하위는 못났다는 것도,‘없는 자’가 떳떳하고 ‘있는 자’가 구린내난다는 식의 극단적인 측면을 부각해 미화하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려는 뜻도 물론 아닙니다.우리사회의 여러 분야에 상존하는 꼭대기와 밑바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시 한번 재조명해보자는 것입니다.때로는 엉뚱하거나 재미있는 우리 사회 현상들을 비교함으로써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해소해드리려 합니다.기축년을 맞아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장수촌으로 소문난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서 함께사는 ‘최고령 소띠와 최연소 소띠’를 선정했습니다.1913년 태어나 올해 아홉번째로 소의 해를 맞이하는 안금림(96) 할머니와 1997년 태어나 두번째로 소의 해를 맞이하는 최연소 소띠 양선희(12)양을 만났습니다.안 할머니보다 12세 많은 1901년생도 79명이 있었지만 인터뷰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찾다보니 안 할머니를 만나게 됐습니다.같은 이유로 새해벽두에 태어난 ‘진짜 최연소 소띠’들도 배제됐습니다.띠가 같다는 것 말고는 할머니와 소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일제 식민통치가 본격화되던 한일합병 3년째 태어나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안 할머니와,IMF 위기 중에 태어났지만 ‘오 필승 코리아’를 들으며 세계 속의 당당한 한국을 경험한 신세대 양양의 세대차는 84년 나이차 그 이상이었습니다.이들간의 세대차는 우리의 어제이자 오늘이고,또 미래입니다. 글 사진 순창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새해 첫날 아침.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는 흰 눈이 소담하게 내렸다.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안은 산 꼭대기에도 설탕가루 같은 눈이 흩뿌려져 있다. 남도의 산은 높고 가파르지 않다. 대신 나지막하면서도 단단하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붉은 흙을 일궈 평생을 우직하게 살아가는 농민 같은 인상이다. 산 허리에 난 길을 달리다 보면 순창군 최고령 소띠인 안금림 할머니가 살고 있는 구미리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겨울 바람이 얼굴에 확 들어온다. 힘껏 청명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머리속이 맑아진다. 이곳이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수마을인지 이해되는 순간이다. 안 할머니와 최연소 소띠인 양선희(동계초등학교 5학년)양은 같은 동계면에 산다.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선희 양은 엄마 정은경(36)씨,동생 윤선(5)양과 함께 안 할머니 댁을 찾았다. 방으로 들어가자 분홍색 퀼트 재킷을 단정하게 입은 안 할머니가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기억력은 어릴 때 그대로다. 기력도 왕성해서 혼자 산책도 하고 목욕도 할 정도다. 선희 양은 처음 뵙는 할머니가 낯선지 쭈뼛거린다. 지척에 살지만 만난 적은 없다. 그래도 엄마가 “너와 같은 소띠”라고 말하자 배시시 웃는다.때마침 안 할머니의 맏며느리 이이순(71)씨가 집에서 직접 만든 엿을 내왔다. 순창은 고추장뿐 아니라 엿으로도 유명하다. 쌉싸래한 콩가루에 묻힌 엿이 다디달다. 선희와 윤선 자매는 엿을 오물오물 먹으며 안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안 할머니는 1913년 2월23일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0대 때 구미리로 시집왔다. 시집온 이후 쭉 이곳에서 살았다.1913년은 한일합병이 된 지 3년째 되던 해로, 일제의 식민통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때였다.할머니는 5살 많은 할아버지(1977년 작고)와 벼농사를 지었다.그나마 할아버지 소유의 논 2마지기(200평·661㎡)가 있어 소작농 신세는 면했다.소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소처럼 밥먹고 일만 할 팔자를 타고 난다.’는 속설이 있다.안 할머니도 소띠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 궁금했다.며느리 이씨는 “아버님의 천성이 부지런해 어머님이 그렇게 고생하시진 않았다.논일은 거의 안 하셨고,길쌈을 주로 하셨다.”고 말했다. 2남3녀를 낳고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살던 안 할머니 가족은 1942년쯤 함경북도 은덕군 아오지로 이주를 했다. 돈 벌어 식구들 먹여 살리겠다는 할아버지의 결단이었다. 맏아들 양금섭(74)씨는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간 기억이 난다.”고 했다. 3년쯤 그곳에서 살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가족은 구미리로 돌아왔다. 이후 ‘빨갱이’와 ‘반동분자’ 사이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던 서민들에게 북쪽에서 살고 왔다는 경험은 지워 버리고 싶은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때 얘기는 별로 들은 적이 없다. 그 다음에 불이익을 당했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며느리 이씨는 말꼬리를 흐렸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구미리 같은 심심산골에도 참화를 몰고 왔다. 빨치산이 내려와 동계면 전체에 불을 질렀다. 안 할머니 가족은 이웃 마을인 적성면으로 피란을 가야 했다. 돌아와 보니 집이고 학교고 죄다 재로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우두커니 강변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해 겨울은 혹독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굶주리고 또 굶주렸다. 안 할머니는 “나락으로 죽을 쒀 먹곤 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얘기를 듣는 선희 양의 눈썹도 덩달아 꿈틀거린다. 1980년엔 이웃 광주에서 변이 났다. “대통령이 광주 사람들을 다 때려 죽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당시 67세이던 안 할머니는 가족 중에 광주에 사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불똥이 이곳 구미리에까지 튈까봐 할머니는 노심초사했다고 한다.세상이 뒤집어질까 싶어 무섭기도 했단다. 아들 양씨는 지금도 술 한 잔을 할 때마다 그때의 울분을 토한다. 안 할머니의 인생은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사연도 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게을리하지 않아 90 평생 사는 동안 2마지기 남짓 했던 땅은 10마지기로 늘어났다. 슬하의 5남매가 각각 자손도 여럿 낳았고 자신을 극진히 모시는 아들과 며느리 내외는 주위로부터 효자효부라는 칭찬도 듣는다. 안 할머니는 “자식들이 나에게 아주 잘 한다.”고 했다. 할머니의 얘기를 전부 들은 선희 양은 폭 하고 한숨을 쉰다. 할머니가 겪어온 세월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선희 양은 “내가 1913년에 태어났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그도 그럴 것이, 1997년생인 선희는 별로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 집안 형편도 넉넉한 편이긴 하지만 안 할머니가 겪었던 것 같은 ‘국민적 고통’을 선희 양은 치러본 적이 없다. 1961년 20억달러였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는 2007년 8000억달러로 400배 늘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었던 ‘오 필승 코리아’의 추억은 선희 양에게 세계 속에서 당당한 한국의 이미지를 체화시켰다. 선희 양에게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 10대 강국’으로 각인돼 있다. 선희 양은 “할머니가 사셨던 때보다 지금 우리나라가 훨씬 강해진 것 같다.얼마 전 이소연 언니가 우주선을 탔을 때 우리나라가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선희 엄마 정은경씨에게 맏딸 선희는 ‘복덩어리’다. 정씨는 1997년 대학을 갓 졸업한 선희양 아빠와 결혼을 하고 곧바로 선희를 낳았다. “모은 돈은 없어도 둘이서 벌면 생활이 빨리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결혼을 하고 정씨 부부는 소를 기르기 시작했다. IMF환란 때문에 한 마리에 200만원 가까이 하던 소값이 50만원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20마리로 시작해 지금은 50마리를 키우는데, 돈벌이가 쏠쏠해 살림이 많이 불었다. 정씨는 “소띠 해에 선희를 낳고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많이 안정을 찾았어요. 선희가 우리 집에 복을 갖고 왔어요. 저희는 여러 모로 소하고 인연이 깊은 집이에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엔 순창군에서 열린 영어말하기 대회에 동계면 대표로 나가 2등을 차지했다는 선희 양의 장래 희망은 변호사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고 싶어서”가 이유일 정도로 속이 깊다. 선희 양은 “2009년이 나의 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기대돼요. 6학년 올라가면 부모님 실망시키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싱긋 웃는다. 굶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생을 살아온 안 할머니는 10대 때 시집온 일과 하루 종일 길쌈질을 한 것 외에는 이렇다할 어린 시절 추억이 없다. 학교는커녕 서당 근처도 가본 적이 없다. 글을 모르지만 집안의 제삿날과 손자·손녀 생일까지 기억해 내고, 여전히 된장찌개와 숙주나물을 제일 좋은 음식으로 친다. 할머니의 가장 큰 시련이 6·25전쟁이었다면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하는 선희 양의 시련은 앞으로 치를 대학입시였다. 독서와 인터넷 서핑이 취미인 선희 양의 올해 목표는 시험 성적을 평균 90점에서 95점으로 올리는 것이다. 안 할머니는 건강하게 살다 남편 곁으로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서로의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84년 나이차를 뛰어 넘은 안 할머니와 선희양은 툇마루로 나와 얼굴을 맞대고 사진을 찍었다. 지나온 세월만큼 한 가닥씩 파인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이제 여드름이 오소소 돋기 시작한 선희 양의 밝은 얼굴은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이뤘다. 대한민국의 20세기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했다.할머니의 검버섯이 늘어난 만큼 우리나라는 진화해 왔고, 선희 양의 해맑은 웃음이 계속될수록 우리나라는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소의 해를 맞아 만난 할머니와 어린 소녀는 그렇게 서로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 새해에는 이런 뉴스만 들렸으면 ③국제

    한국시간으로 4일 새벽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진입,박격포로 응사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와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2일 제가 써놓은 기사는 정반대 상황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의 신년 기획 ‘새해에는 이 뉴스만 들렸으면③ 외신’을 정리하면서 전 가자지구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어줍잖은,서푼짜리 희망을 드러내 보였습니다.기사를 쓰면서도 내내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고 어지러웠던 것은 간단찮은 현실 때문입니다.사실 이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31일이었습니다.하지만 나날이 전달되는 참상은 제가 이런 희망을 품는 일조차 하릴없는 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아침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직전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고 로켓포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해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국제사회는 연일 목소리를 높여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력 동원을 규탄하는데 미국과 이스라엘만 외통수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이스라엘은 즉각 지상작전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아예 쇠귀에 경읽기 식입니다.  이런 상황 인식에도 저의 이 ‘작문성’ 기사 하나가 차갑고 냉엄한 국제사회 힘의 논리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현실을 바꾸는 데 자그마한 힘이라도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기사를 띄웁니다.제발 이런 꿈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하나로,우리 언론도 제발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고취시켜 인류가 그래도 21세기에 살면서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를 얻었다는 얘기를 후세에 들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간이 무한정 주어지는 게 인터넷의 특성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양적인 적절성이 확보되어야 하겠기에 ‘희망뉴스’는 세 건으로 그치고 나머지는 표제 정도로만 가는 점 양해바랍니다.  다시한번 강조드리지만 오늘의 참담하고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뒤집으면 희망뉴스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 3년 연장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대대적 공습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사태가 극적으로 타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5일부터 중동을 방문하면서 이 지역 실세 정치인들을 연쇄 접촉해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10일 이스라엘 정부와 가자지구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무장단체 하마스가 지난해 6월부터 실시해온 6개월 한시 휴전을 2011년까지 3년 연장하는 협정문에 11일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이날부터 하마스는 로켓포 공격을 중단하고 지난 3일 가자지구에 진입했던 이스라엘군의 지상전력과 탱크 등은 일제히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 주목할 것은 양측의 공격행위가 일절 중단되는 것은 물론,이 지역의 평화 정착을 항구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이-팔 협의체를 출범시키도록 했다는 것이다.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을 비롯한 이스라엘 정부 요원 10명과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비롯,하마스 최고지도자 등 팔레스타인 지도자 10명이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중재 아래 다음달 2일부터 일주일 동안 회담을 갖고 가자 주민들의 이스라엘 출입을 무제한 허용하고 하마스를 무장해제하는 방안 등을 강구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로 6개월 임기의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 임기를 마친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번 협정이 발효되면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로 인해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등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래 또다시 이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앞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프랑스는 앞으로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며 국제 이슈에 개입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당시 르몽드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라는 나라가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에는 너무 작다고 생각하는 야심가”라며 “자신이 주창한 신 브레튼우즈 체제와 지중해연합을 본격 가동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 미대통령 집속탄 금지협약 가입하기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말 93개국이 서명했지만 미국과 중국,러시아 등 강대국이 서명을 거부해 빈껍데기 조약이란 비난을 들었던 집속탄 전면 금지를 위한 오슬로 협약에 가입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취임식을 마친 뒤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심 끝에 이 협약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cnn이 전했다.  집속탄의 사용과 생산, 이동, 비축을 금지하고 피해자 지원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오슬로 협약에는 지난해 말 93개국이 서명했다.30개국 이상의 비준을 받으면 효력을 갖게 되는데 미국과 중국,러시아 등이 서명을 거부하면서 서명을 마친 국가들마저 이 협약을 발효할 만큼 비준 국가를 채울 수 있을지가 불투명했는데 미국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각국 비준 일정이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기로 투하하거나 포로 발사하는 집속탄은 공중에서 8㎝ 크기의 자탄 수백개를 터뜨리며 불발탄으로 남아 있던 자탄도 시간이 지난 뒤 터져 아프가니스탄,라오스,레바논 등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불러왔다.  미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라오스에 2억 6000만발의 집속탄을 투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짐바브웨 경제 몰라보게 안정,콜레라 차단에도 성공 물가가 한해 동안 23만배가 오르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던 짐바브웨 경제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미국의 경제전문 블룸버그 통신이 (9월)3일 보도했다.  짐바브웨를 29년간 통치해온 로버트 무가베(84) 대통령이 지난 3월 미 달러로 500억달러에 이르는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뒤 새로 집권한 모건 츠방기라이 정부가 경기부양과 적정한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국가신인도도 상승했다.  츠방기라이 정부는 자신이 이끄는 민주변화운동(MDC)과 종전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연맹·애국전선’(ZANU-PF)의 연립정부로 출범한 지 6개월 만에 정국 안정을 바탕으로 살인적인 물가 인상 압력을 잡아냈다고 IMF는 평가했다.  지난해 1월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렸다가 한해 무려 23만배로 물가가 뛰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던 짐바브웨 경제는 올 1분기에는 물가상승률이 1000%로 진정되더니 2분기 100%를 거쳐 3분기 10%로 안정됐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경제가 안정되고 유엔 등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에이즈 감염 상황도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지난해 말 200만명에 이르렀던 감염자 수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오히려 환자들의 사망 또는 완치 등으로 150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아울러 지난해 8월 시작돼 50만명 이상이 감염됐던 콜레라도 완벽히 통제 수준에 이르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지난해 말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는 짐바브웨의 콜레라 사망자가 1518명으로 보고됐으며, 감염의심 환자도 2만 6497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콩고 키부호 북부에서 지난 2007년 발생한 내전으로 난민으로 전락했던 30만명이 모두 고향으로 되돌아갔다고 유엔콩고감시단(MONUC)이 전했다. ●이밖에 올해 들렸으면 하는 희망뉴스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 경기부양과 재정 지출에 힘입어 8% 성장에 성공했다는 뉴스  인도와 파키스탄이 오랜 국경 분쟁을 마감하고 화해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뉴스  소말리아 해적이 완전 소탕됐다는 뉴스  이란 핵문제가 완전 해결됐다는 뉴스 등을 ‘상상’해볼 수 있겠네요.물론 중국 경제의 안정은 세계경제를 위기에서 탈출시키고 우리 경제 회복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 건 다들 잘 아시겠지요.  이상 ‘희망 뉴스’였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09 이슈] 체육계도 경제 한파

    ‘경제한파’로 2009년 체육계가 혹독한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1998년 위환위기(IMF) 당시 팀 연쇄 해체 등을 경험한 학습효과 때문.사실 국내에서 재정 자립을 이룬 프로·실업팀은 없다.기업 이미지 제고 등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단은 모기업의 지원에 철저하게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대기업과 금융권에 의존하는 각종 대회의 스폰서도 마찬가지다. ●야구 9년·축구 7년 후원 재검토 삼성은 1999년 프로농구를 시작으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 주요 종목의 타이틀 스폰서를 도맡아 왔다.특히 프로야구는 2000년 이후 9년 연속,프로축구는 2002년부터 7년 연속 스폰서를 맡아왔다.지난해 스폰서 금액은 프로야구가 50억원,프로축구는 34억원이었다.최근 삼성에서 양대 프로스포츠의 타이틀스폰서를 포기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 나온다.삼성그룹 관계자는 “올해 광고·홍보비를 대폭 줄이는 상황이고,그 일환으로 타이틀스폰서 재계약 여부도 검토는 하고 있다.하지만 결정된 것은 전혀 없다.일부에서 거론된 (타이틀스폰서) 포기설 등은 그쪽(프로야구·축구)에서 우려를 드러낸 게 와전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로골프는 아직 구체적인 투어 축소 움직임은 없다.다만 여자프로골프 ‘KB 국민은행 스타투어’가 1개 정도 축소될 것으로 알려졌다.물론 경기 악화가 본격화되면 금융권에서 타이틀스폰서를 맡고 있는 대회 중 일부는 열리기 힘들 전망이다. ●일부구단 전훈비용 축소 등 허리띠 졸라매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실업 및 프로팀들의 해체도 뒤따랐다.진로·나산·골드뱅크·대우증권·신세기통신·나래이동통신·삼보컴퓨터·기아·현대(이상 남자농구),코오롱·태평양화학·한국화장품·현대산업개발(이상 여자농구),한일합섭·효성(이상 여자배구),일양약품·삼익가구·한보·LG·청구(이상 씨름) 등 탄탄한 기업들이 운영하던 스포츠단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다. 당장은 해체 도미노가 재연될 조짐은 없다.하지만 올해부터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는 만큼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이미 프로축구 인천은 ㈜메트로코로나와 GM대우의 자금지원이 지난해보다 대폭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프로야구 구단들도 해외 전지훈련 비용 축소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돌입한 상황.국내 최대 격투기 단체인 스피릿MC 역시 연 1억원에 해당하는 닷지(다임러크라이슬러 계열)의 지원이 유보된 데다 방송중계권도 난항을 겪어 연 5회 이상 열리던 대회 개최가 불투명하다. ●체육 단체들도 구조조정 진행형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시킨 뒤 체육회를 국민생활체육협의회와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KOC를 분리·독립시켜 스포츠 외교력을 강화하고,체육회는 국체협과 통합해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것.하지만 체육회는 ‘대한올림픽체육회’로 완전 통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정부 안에 따를 경우 왜곡,갈등이 증폭되고 분리로 인한 인력 및 예산의 이중구조가 초래된다는 주장이다.체육회가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누적된 피해의식 때문이다.1989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족하면서 올림픽기금을 상실했고,91년 국체협이 탄생하면서 생활체육 분야를 떼어줬다.체육단체의 구조조정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현재 진행형이다.따라서 정부와 체육회의 힘겨루기는 올해도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대기업 CEO 신년비전 “위기때 생각하자”

    기축년 새해를 맞이한 대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이 2일 신년사를 통해 불황의 위기를 타파할 비전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으로 ‘생존’을 부르짖고 ‘상생’을 강조했다. ‘숨은 고객’을 찾아 나서고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전략도 내놨다.고객의 요구를 파악해 판매망을 확충하고 과감하되 선별적 투자를 강조했다.10년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때보다 더한 위기의식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음이 반영됐다. 삼성그룹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은 사내방송을 통해 “10년 전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각오로 IMF 위기를 극복했고,올해 우리는 다시 한 번 변화와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면서 “이제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IMF 당시 이건희 전 그룹 회장이 “대나무는 마디를 맺으면 더 강해지고 연은 바람이 거셀수록 더 높이 난다.”고 했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은 수원사업장 디지털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올해를 ‘바닥 다지기 해’로 정하고 기본으로 돌아가 비효율 등을 제거하자.”고 했다.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양재동 본사에서 시무식을 열고 “판매확대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포스코 이구택 회장은 “올해 국내에만 사상 최대 규모인 6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면서 “포스코의 성장에 동참해 온 공급사와 외주 파트너사,고객사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말고 상생 프로그램을 계획대로 추진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속도와 유연성,실행력을 경영 화두로 제시했다.최 회장은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열린 신년교례회에서 “지난 10년이 준비하고 훈련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실전의 시간이 시작됐다.”면서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우리가 함께하는 한 우리 모두의 행복창출기반이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은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위기국면 속에서만 찾아오는 절호의 기회를 과감히 포착해야 한다.”면서 “기발한 전략이나 방안보다 실행력이나 실천의지가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으니,제대로 실행해 보고 집요하게 끝까지 승부를 겨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성수 홍희경기자 sskim@seoul.co.kr
  • “21세기 희망 채워 다시 올게요”

    “21세기 희망 채워 다시 올게요”

    뮤지컬 ‘지하철1호선’이 지난달 31일 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가 독일 그립스극장의 작품을 번안,연출해 1994년 처음 공연한 이래 15년 만이다. 마지막 4000회 운행은 정원을 초과한 객원 승무원(특별출연 배우)과 무임승차한 승객(초청 관객)들로 떠들썩한 잔칫집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초연 당시 주연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오프닝곡 ‘6시9분,서울역’으로 힘차게 시동을 건 공연은 방은진,황정민,장현성 등 스타 배우들의 깜짝 등장으로 열기를 더해갔다.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 있던 그립스극장 단원들과 설경구,김윤석 등 역대 출연진·스태프 100여명이 모두 무대로 나와 작품 속 노래를 합창하는 것으로 고별무대는 마무리됐다. 국내 최장기 공연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새롭게 올라갈 21세기 버전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1000회 공연 때 방한한 이래 매번 축하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온 폴커 루드비히 그립스극장 대표는 “서울의 ‘지하철1호선’은 더 이상 내 작품이 아니다.이 작품을 멋있게 만들어준 김민기씨에게 고맙다.”면서 “하루빨리 새로운 버전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덕담했다.그립스극장의 ‘지하철1호선’은 1986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1400회를 공연했다. ‘지하철1호선’의 시계는 지난 10년 동안 ‘1998년,서울’에 멈춰 있었다.하룻밤 첫사랑을 찾아 서울에 온 연변 아가씨 ‘선녀’의 눈에 비친 도시는 청량리 588 윤락가,노점상,외국인 노동자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밀려난 빈민층이 IMF 외환 위기 속에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그늘진 풍경이었다.‘지하철1호선’은 그러나 단순히 절망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밑바닥에서 희망의 빛을 건져올림으로써 한국 소극장 뮤지컬의 전범을 창조해냈다. 지난 시절을 배경으로 했어도 결코 낡은 풍경이 아니었던 ‘지하철1호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제2의 IMF가 불어닥친 2008년 끝자락에서 운행을 멈췄다.‘이방인의 눈으로 본 서울’이란 기본 틀만 남고 몽땅 새 것으로 바뀔 21세기 버전은 이르면 2010년쯤 선보일 예정이다.소처럼 우직하게 한 길을 걷는 김민기 대표의 뚝심이 2000년대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낼지 기대를 모은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소띠 공무원들의 새해 희망 들어보니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새해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보다 힘들 것이라고 한다.이런 때일수록 희망의 불씨가 필요하다.특히 공직자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국민들이 희망의 불꽃을 피워 올릴 수 있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소띠 해를 맞은 소띠 공무원들의 새해 소망과 포부를 들어 봤다. ● 류경기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 부본부장 소띠 해를 맞아 중책을 맡았다.소가 가져다준 ‘선물’이 아닌가 싶다.새 업무를 맡은 만큼 소처럼 열심히,우직하게,부지런히 뛰겠다. 우선 디자인총괄본부의 주요 시책인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나 남산 르네상스,공공디자인 개선 등을 중점 추진할 생각이다.서울시는 21세기를 ‘감성을 파는 디자인의 시대’로 보고,문화와 디자인이 중심이 된 소프트시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살린 건강한 생태도시,유구한 역사가 숨쉬는 문화도시,세계 첨단의 IT 인프라를 활용한 역동적인 첨단도시를 세우는 것이 바로 ‘디자인 서울’의 비전이다.이런 비전을 살려 누구나 찾고 싶고,살고 싶은 명품 수도를 건설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마지막으로 올해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그저 송아지처럼 건강하고 성실하게 자라주길 빌어 본다. ● 김기래 충북도청 정책기획관실 며칠 전 우연히 읽은 주철환 OBS 사장의 글 중에 “내 목표는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는 구절이 있었다.‘앗! 내 인생의 목표랑 같은 사람이 있었네.’ 하는 생각에 새삼 놀랐다.차이라면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라는 것뿐이다. 1973년 소띠 해에 태어난 여자 아이는 열두 해가 지난 1985년에 열세살 소녀가 되었다.그해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나의 꿈을 적는 곳에 ‘선생님’이라고 썼지만 마음속에는 ‘귀여운 할머니’라고 새겨넣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당장 제출해야 할 업무보고에 몸 달아 하는 12년차 공무원이다.동심으로 무장한 귀여운 할머니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듯하다.그렇지만 또다시 맞이한 소띠 해,‘귀여운 할머니’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도민들에게 행복을 주는 얼룩배기 소가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 남기남 경남도청 관광진흥과 1996년 1월 9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여자로서는 흔치 않은 토목직 공무원이다.경남 의령군 칠곡면엔 직접 측량·설계·시공한 주차장에서 작은 교량에 이르기까지 나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경남도 관광진흥과에 근무하며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복원하는 토목 일을 하고 있다.10년 남짓한 공직기간 동안 사직서를 만지작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8급,7급으로 승진하는 기쁨도 있었다. 새해 첫날,남편에게 올해 목표를 얘기했다.우리집 책꽂이에 꽂힌 영어 동화책을 다 외울 만큼 영어 공부를 하겠노라고.그것이 올 한해 내가 키워나갈 ‘희망의 소’다. 옛날 시골에서 소 한 마리는 주인의 희망이었다.논밭을 일궈야 하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소는 희망 그 자체였다.소값이 좋으면 재산도 불었다.올 한해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희망의 소’ 한 마리씩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 최근실 강원도립대 조교 올해는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다.경제난이라는 우울한 소식에 함몰돼 푸념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다. 경제위기는 잠시 겪는 어려움쯤으로 여기겠다.생사를 넘나들고 배고픔을 견뎌내며 험난하게 살아 온 우리 부모님들의 굴곡진 삶보다야 더 어렵겠는가. 소띠 처녀답게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인생을 살아가야겠다.호랑이처럼 밝은 눈과 소처럼 우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호안우보(虎眼牛步)’를 가슴에 새삼 새겨본다.‘행운’을 상징하는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이라는 의미의 세잎 클로버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 개인적으로 항상 자식부터 챙기시느라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새해에는 자식들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삶의 여유를 누리며 더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신년사설] 함께 가는 희망의 사회 만들자

    새해 아침이다.희망과 소망을 담은 덕담을 나누며 활기찬 한 해를 다짐할 때다.하지만 올 새해는 좀 유별나다.무거운 마음으로 새해 아침을 맞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지난 연말 역시 연말다운 들뜬 분위기는 없었다.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몰아닥친 경제 한파의 한가운데로 내몰렸거나,심리적으로 위축된 이들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정부나 기업,가계 모두 힘든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고,더 이상의 추락은 없을지 걱정하고 있다. ●생존이 지구촌 화두가 됐다 요즘 통계를 들여다보면 모든 경제지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지난 연말 이미 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IMF는 얼마 전 ‘제2의 대공황’ 진입 가능성까지 전망했다.이제 어느 나라 가릴 것 없이 화두는 생존 그 자체가 됐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어쩌면 우리는 내년 1·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이 될지도 모를 위기에 있다.”고 했다.위기 탈출의 단초가 보이지 않는 세계 경제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의 지난 4·4분기 성장률이 -6%로 예상됐던 상황이었다.올해 역시 마이너스 성장 전망이 나오고 있다.대통령 발언 얼마 전 내놓았던 정부의 4% 성장 목표가 얼마나 공허하고 장밋빛이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실물경제의 침체 역시 빠르고 엄혹하게 우리 곁에 다가왔다.그 골이 얼마나 더 깊어질지 예측조차 어렵다.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 1분기 기업경기전망은 심각했다.1분기 경기실사지수(BSI)는 전분기 79보다 무려 24포인트나 급락한 55였다.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3분기의 6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경제 현장의 불안감의 정도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수출을 주도했던 컴퓨터·TV 휴대전화의 12월 매출이 전년에 비해 반토막 났고,각종 제조업체의 감산 도미노가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올해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무너지고,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가게가 문을 닫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방황하며 절망속에 살아갈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특히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요즘 젊은 세대는 지상의 방 한 칸 못 찾아 떠돌아다니는 피란민 정서가 있다.”는 소설가 김애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자신감·위기극복 의지가 중요 하지만 새해 아침부터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절망만 할 수는 없다.어려울수록 단결된 힘과 돌파력을 발휘하는 저력을 보였던 우리가 아닌가.외환위기 극복 등 과거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비상한 각오로 지금의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다질 때다.모든 경제주체가 힘을 합치고 때론 조금씩 양보하면 헤쳐나가지 못할 난관은 없다.자신감과 위기극복 의지가 중요하다.신빈곤층이 양산되고,양극화가 심화되고,갈등과 분열의 골이 심화돼서는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어려운 상황일수록 낙오자,이탈자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함께 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집권 2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다.지난 1년은 촛불시위 여파와 갖가지 갈등과 정쟁으로 허송하다시피 했다.정부의 리더십 부재,신뢰 상실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공직사회 쇄신,공기업 개혁,공무원연금 개혁 등 어느 하나 순조롭게 처리된 게 없었다.과속,조급증 때문에 낭패를 겪은 정부다.이제라도 국민과 함께 가는 정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특히 정부와 정책의 신뢰회복이 우선이다.지난해처럼 정부 부처간 엇박자가 거듭되고,말만 앞서는 행태로는 이 정권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일자리 지키기와 창출은 우리 모두의 최대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일자리야말로 최선의 복지다.정부는 지난 연말 대규모 재정투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 확대를 예고했다.예산만 쏟아붓는 어리석음을 최소화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아울러 신뢰를 잃은 내각과 청와대팀의 인사쇄신을 어떤 방향으로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개각이나 청와대 비서팀 개편은 정파나 코드를 뛰어넘는 위기 극복,국민 화합의 인사가 되길 주문한다.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복지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최근 작태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딴 세상을 사는 듯한 한심한 행태는 국민들의 혐오증을 부추기고 있다.연말 극한 대결구도 속에서도 대타협의 마무리를 기대했으나 허사였다.국회 무용론이 나온 지 오래다.국민과 함께 가는 국회의 모습을 찾기 위해 여야 가릴 것 없이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다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세계 경제의 빙하기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걱정해주고 도와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함께 손잡고 가는 희망의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 가자.
  • [수출이 살 길이다] 불황 속 희망기업 ‘연호전자’

    [수출이 살 길이다] 불황 속 희망기업 ‘연호전자’

    광주 평동산단과 하남산단 등지에서 전자부품인 커넥터를 제조하는 연호전자.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인 1997년까지만 해도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156억원 정도였다.10여년이 지난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10억원이 됐다.올해 매출목표는 2300억원이고,조정 중이지만 당초 내년 매출 목표를 3000억원으로 잡을 정도로 급격한 성장세를 탔다. 기자가 평동산단에 위치한 프레스 공장과 도금 공장 등을 찾은 지난달 18일 연호전자의 기계들도 산단의 이웃 공장들처럼 절반 이상이 멈춰 있었다.평소에는 기계의 열기로 겨울임을 잊을 정도로 후끈하던 공장 안에 한기가 돌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 직원들의 얼굴에서는 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서로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직원들끼리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바로 전날 이 회사 최연학 대표가 직원들에게 한 약속 때문에 공장 직원들끼리의 술렁거림이 멈췄다고 신삼수 전무가 귀띔했다.최 사장의 약속은 2가지.연초에 계획한 그대로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것과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는 것이다.10월까지 오전 9시부터 12시간 이상씩 가동하던 384개의 사출기와 그만큼의 프레스기 대부분이 가동을 멈춘 지 한 달만에 최 사장이 전격 약속을 한 것이다. “38년 사업을 해 오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그렇지만 지금의 위기는 일종의 ‘천재지변’과 같습니다.그동안처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최 대표는 그동안 이어온 체질강화 노력과 수출선 강화 전략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가짓수가 3000개가 넘는 부품을 생산할 만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했고,세계시장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납품하는 부품량을 각각 20%로 맞추고 나머지 60% 정도를 수출한 전략도 앞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수출 비중 확대→기술력 강화→국내 완성제품 업체들로부터의 인정→완성제품 업체들의 국산 부품 비중 확대→국내 업계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실제로 연호전자는 일본의 소니와 후지쓰,니덱,히타치와 타이완의 AUO,CMO 등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올 가을 수출기업들이 환헤지 통화상품인 키코(KIKO) 피해를 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수출기업들일수록 환 리스크 등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 최 대표는 여유를 보였다.그는 “80년대 중반 사업을 하면서 엔화자금을 한 번 빌려 썼는데,환율이 두 배로 뛰어 아주 고생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개인적인 경험도 이유가 되겠지만 최 대표가 무차입경영을 실천한 보다 큰 이유는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천재지변과 같은 불황이 끝나기를 바라는 최 대표처럼 직원들도 공장 청소와 교육 등을 받으며 일이 없어도 꾸준히 공장에 출근하고 있다.언젠가 세계 어느 곳부터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하면 호황의 분위기를 선도할 수 있다는 게 수출기업의 직원들이 불황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광주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문화 살리기’ 전문가 제언]“창의적 콘텐츠 지원… 글로벌 경쟁력 갖춰야”

    [‘문화 살리기’ 전문가 제언]“창의적 콘텐츠 지원… 글로벌 경쟁력 갖춰야”

    경제위기 속에서 2009년 우리 문화가 살길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문화예술인들은 일단 경제와 문화는 사회 발전의 두 축인 만큼 정부가 눈앞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돌파하겠다며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줄여 그 한 축을 허물어뜨려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한편으로는 국민에게 환영받는 콘텐츠,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경제 위기를 오히려 우리 문화 예술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적극적인 목소리도 많았다. ■ 문화ㆍ예술 가장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분야는 문학이었다.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분야가 문학이었다는 과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시조시인인 이근배 예술원 회원은 “우리나라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문화 콘텐츠가 크게 발전했다.”면서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문학을 저비용 고효율의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발상의 전환을 통한 정부의 적절한 지원을 요구했다.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도 “최근 정부는 문화 예산의 축소를 추진하고 있어서,가뜩이나 위축된 문화 산업이나 활동의 행로가 불투명해졌다.”면서 “어느 나라나 문화는 어떤 경제적 가치보다 장기적이고 호환불가능한 고유의 가치라는 점에서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화 산업에 강력한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거들었다. 공연기획제작사 이다엔터테인먼트의 손상원 대표는 “지금 대학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만큼이나 힘들다.”면서 ‘경기가 어려울수록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그래야 10년 뒤 또다시 경제위기가 온다고 해도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고흥식 출판문화협회 상무는 “출판은 모든 콘텐츠의 원형”이라면서 “정부가 영화와 만화,게임을 산업화하고자 민관합동펀드를 조성하는 것처럼 출판계에도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교섭 북섬 출판사 주간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좋은 책은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면서 “더 이상 출판계가 독자를 계몽하기보다는 독자들이 요구하는 재미있는 책들을 출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내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술품 경매회사 인터알리아의 이진숙 큐레이터는 “작가들이 더 이상 좁은 국내 시장을 겨냥하지 말고 국제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밀도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국내 추상화단의 대표적인 두 작가인 이우환과 박서보의 그림값이 국제적인 컬렉터들의 선호도에 따라 엄청나게 차이가 벌어졌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같은 크기의 그림이라도 국제적으로 성가가 높은 이우환 것이 5억원이라면 그렇지 않은 박서보는 1억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그는 “같은 차원에서 강형구와 형경택,김동유 작가도 글로벌한 관점에서 경쟁력 있는 미술인이 됐다.”면서 “이번 기회에 국내 경매시장에서 거품을 키운 작가의 작품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래식음악평론가 정만섭씨는 “그동안의 대형 연주회는 해외 연주자의 명성에 기대 흥행으로 연결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껑충 뛰어버린 환율로 유명 연주자를 불러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연주자를 찾아내고 기획력을 발휘해 관객을 불러모을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점에서 경제위기는 오히려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라고 기대했다. 류태형 월간 객석 편집장도 “올해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이 줄어든 것은 경기 침체와 환율 상승의 영향도 있지만 기획사끼리 경쟁하면서 해외 연주자의 개런티를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결과”라면서 “경제 위기는 그동안의 ‘이름잔치’를 청산하고 공연예술계의 밑바탕을 탄탄히 다지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공감했다. 문소영 최여경 박록삼기자 symun@seoul.co.kr ■ 영화 충무로에 2009년에는 해가 뜰까.좀처럼 경기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때,올해 영화계 전망도 밝지 않다.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본 궤도에 오르기 위한 정확한 현실 파악과 방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2008년 1~11월 상영작 가운데 서울관객수를 기준으로 한 한국영화의 점유율(한국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은 39%.2006년 같은 기간 61.2 %,2007년 46.8%보다 크게 하락했다. 더불어 같은 기간 한국영화 개봉작 편수는 모두 100편으로,관객 200만명을 넘긴 영화는 10편도 채 되지 않는다.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질적인 면에서도 부진이 뚜렷했다.해외 영화제 진출 소식이 줄어든 것에서 드러난다.베니스 영화제에 10년만에 처음으로 초청작을 내지 못했고,영화 마켓에서도 100만달러 이상에 팔린 한국 영화가 2~3편에 머물 만큼 실적이 부진했다. 전문가들은 침체의 원인으로 좋은 작품이 부족한 것을 꼽는다.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문화콘텐츠연구가 고정민(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박사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영화계에 열정과 창의력이 뛰어난 감독·작가가 많았지만,최근 들어 매너리즘에 빠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시장이 정체돼 있는데,영화제작 편수만 무리하게 늘리다 보니 수요·공급의 밸런스가 무너졌고,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악한 제작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관건.이와 관련,현재 7000~8000원인 영화관람료를 물가인상률에 맞게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관람료는 2001년 1000원을 인상한 뒤로 변화가 없다.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인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수익분배율 조정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그는 “현재 수익분배는 극장이 ‘6’을 갖고,나머지 ‘4’를 제작·투자·배급 측이 나눠갖는 방식”이라면서 “제작환경을 실질적으로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수익분배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불법 다운로드를 뿌리 뽑는 것도 중요하다.극장 관객수의 가격 탄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 다운로드는 영화산업을 위축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같은 맥락에서 수익채널 다변화도 함께 도모해야 한다.인터넷에서도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도록 유료화 비즈니스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어려운 시기지만 다양한 영화에 투자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투자가 적으면 결국 안전한 상업영화에만 돈이 몰리고,그러면 또다시 뻔한 영화들만 양산될 것이므로 신예 감독과 작가를 발굴하는 데 과감히 나서라고 주문한다. 더불어,드라마에서부터 일고 있는 출연료 상한가 지정,배우들의 개런티 재투자 움직임 등도 제작 거품을 빼는 긍정적 대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감독 및 배우들의 해외 진출 활성화,2006년 축소된 스크린쿼터의 원상 회복 등도 한국영화살리기에 일조할 수 있는 과제들이라는 지적이다. 강한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불황일수록 저렴한 오락거리를 찾게 되지 않겠느냐.”면서 “2009년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잘만 하면 영화계에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조선이 병자호란을 맞아 일방적으로 몰리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청군이 조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강적이었다는 점이다.청군은 병력의 수,무기 체계,전략과 전술,사기 등 모든 면에서 조선군을 압도했다.그들은 교전 경험도 풍부했다.1618년 무순성(撫順城)을 점령했던 이래 수많은 공성전(攻城戰) 경험을 갖고 있었다. 남한산성 공성은 1631년 홍타이지가 주도했던 대릉하(大凌河) 공략전과 흡사했다.대릉하전 당시 청군은 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산해관 쪽에서 몰려오는 명 지원군의 접근을 차단했다. 남한산성을 고립시키기 위해 판교와 광주 쪽에서 삼남으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한 것과 똑같다.외부와의 연결을 끊고 성 내부의 식량이나 연료가 떨어지는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수시로 투항을 권유하는 심리전을 폈던 것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 청이 이미 조선이 사용할 ‘카드’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그들은 조선 조정이 유사시 강화도로 들어갈 것이라는 점도 1627년 정묘호란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청군은 그 때문에 서울을 신속히 점령하고 인조를 사로잡는 것을 전략 목표로 삼았고,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군의 청야견벽 작전을 무시하고 서울로 치달리는 속전속결 전술을 구사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면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저지른 실책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드러난다.우선 오랫동안 막대한 물력을 기울여 강화도를 정비했으면서도 정작 청군의 침입이 시작되자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은 명백한 과오였다.만약 인조와 조정이 강화도로 들어갔다면 전쟁의 양상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 해로를 통해 삼남 지방과 연결됨으로써 물자 조달이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또 김경징 같은 용렬한 인물에게 섬의 방어를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삼남 지역의 수군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청의 배후에는 엄연히 명이 있었다.청은 ‘뒤를 돌아보아야 할(後顧)위험’ 때문에 속전속결 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만일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갔다면 조선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후금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러면 설사 강화(講和)를 맺더라도 훨씬 완화된 조건으로 화약을 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는 것이다.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내몰린 것은 결국 인조와 조선 조정의 실책이었다.적은 나를 아는데,나는 적을 모르고 거기에 안일하기까지 했던 정황이 불러온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1623년 3월 김류가 이끄는 인조반정의 거사군이 창덕궁으로 들이닥쳤을 때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반문했다.“지금의 거사가 종사(宗社)의 미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대들의 영달을 위한 것인가?” 반정세력은 거사가 성공하던 당일에는 그 뜻을 잘 몰랐을 것이다. 인조반정은 분명 나름대로 명분과 정당성이 있는 정변이었다.그 주도 세력들이 광해군 집권기에 자행된 실정과 난맥상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도 인정할 수 있다.하지만 거기까지였다.반정공신들을 비롯한 주도 세력들은 집권 이후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광해군대의 부정과 비리’를 소리 높여 질타했으되,자신들 또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반정 이후 영달한 공신들 가운데 최명길과 이귀 정도를 빼면 나머지 사람들은 무능하고 문제가 많았다.나아가 공(公)과 사(私)를 제대로 분별하지 않았다.청군의 침략 소식을 제때 보고하지 않고 저항마저 포기함으로써 청군의 신속한 남하를 방조했던 김자점,강화도 검찰사라는 감투를 자기 집안의 식솔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남용했던 김류와 김경징 등의 행적은 그 상징이었다. 인조는 그럼에도 김류와 김자점 등 공신들을 끝까지 편애했다.종묘사직을 도탄에 빠뜨리고,수많은 생령들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그들을 처벌하려 들지 않았다.청은 달랐다.그들은 전승국임에도 병자호란이 끝나자마자 ‘과거 청산’을 철저히 시도했다.조선의 전장에서 과오를 저지르거나 태만했던 지휘관들을 가차없이 군율로 처벌했다. 사정(私情)에 눈이 멀어 공신들을 끝까지 비호한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훗날 인조 정권과 효종 정권을 뒤엎으려는 역모를 시도했던 심기원(沈器遠)과 김자점이 모두 공신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너무 역설적이다.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7년의 병자호란을 돌아보면 오늘이 보인다.1627년은 상대하기 버거운 청의 전면 침략을 미봉책으로 잠시 멈춰 놓았던 해였다. 이후 10년은 당연히 ‘외양간을 고쳐야 했던’ 시간들이었다.하지만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와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총론’의 목소리는 높았다.그러나 그들의 침략을 막아낼 방도에 대한 ‘각론’은 존재하지 않았다.그 귀결이 처참한 항복이었고 수많은 환향녀와 ‘안추원’,‘안단 ’ 등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역사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고 있을까? 1997년 혹심한 외환위기를 겪었음에도 10년 만에 경제가 휘청대는 상황을 다시 맞은 것을 보면 도무지 그런 것 같지 않다. 1627년과 1637년,1997년과 2008년.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 숫자들을 보면서 생각해야 한다.“역사를 두려워하고,역사 앞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추위와 굶주림 속에 절망과 슬픔을 곱씹으며 심양으로 끌려가야 했던 수많은 선인들의 고통을 추념(追念)하며 글을 마친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 ■ “지금의 경제위기도 10년 전 IMF 원인 규명 미흡했기 때문” 연재 마치는 한명기 교수의 소회 “병자호란(1636)은 10년 앞서 일어난 정묘호란(1627) 당시 조선에 주어진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뼈아픈 결과입니다.지금의 경제난국도 10년 전 IMF 외환위기 때 책임 소재와 원인에 대한 규명이 부족했기 때문에 되풀이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한명기(46) 명지대 사학과 교수가 서울신문에 매주 연재한 기획시리즈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가 31일자로 마침표를 찍었다.2007년 1월11일 첫 회를 시작으로 꼬박 2년간 모두 104회에 걸쳐 철저히 사료에 입각해 병자호란에 얽힌 이야기를 꼼꼼히 풀어낸 한 교수는 “비극의 역사인 병자호란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의 잘못을 뿌리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위기는 언제든 반복된다는 교훈을 새삼 되새겼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 교수는 수많은 민초의 죽음과 10만명이 넘는 포로를 발생시킨 병자호란의 원인이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무책임에 있다고 지적한다.정묘호란의 굴욕을 겪고도 이들은 명·청 교체기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신속히 대처할 방법을 강구하기는커녕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위정자들의 이같은 안이한 태도는 병자호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인조는 청태종에게 세 번 큰절을 하는 치욕을 겪었지만 잘못된 정책 판단으로 환란을 자초한 정책담당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소홀히 했다.일례로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인 김류는 아들 김경징의 안일한 처신으로 강화도가 함락돼 비난이 들끓는데도 자리를 보전했다. 반면 백성들의 고통은 극심했다.청으로 끌려갔다 탈출한 포로들은 다시 청으로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을 당했다.안추원과 안단은 무려 28년,37년 만에 탈출에 성공했지만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조선으로 되돌아온 포로 여자들(환향녀)은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았다. 한 교수는 “청에 항복한 이후에도 오랑캐라고 혐오하기만 했지 왜 당해야 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위기의 원인을 찾아 철저히 반성하고,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결여됐던 것이 조선이 동아시아 3국 가운데 근대화가 가장 늦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분석했다.그러면서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확실히 극복하는 DNA가 부족한 것 아닌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자호란의 전말을 학술논문이 아닌 대중적인 글로 집대성해서 풀어쓴 사례는 드물다.한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을 기본으로 병자호란에 관한 모든 자료를 취합해서 철저히 사료에 근거해 글을 썼다.”고 밝혔다.‘임진왜란과 한중관계’‘광해군’ 등의 저서를 쓴 한 교수는 앞으로 임진왜란에 관한 대중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했던 조선의 운명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때문에 현재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다시 읽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길이라고 한 교수는 강조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사설] 국민연금 마구잡이 동원 안 된다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운용되는 국민연금기금이 올해 주식투자로 원금의 41.2%나 까먹는 바람에 전체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됐다고 한다.주식 평가손만 19조 7550억원에 달해 채권과 부동산 등에서 올린 투자 수익을 감안해도 1조 7580억원의 적자로 잠정 집계됐다.국민연금기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인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시절에도 없었으며,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이같은 기금운용 결과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주가폭락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국민의 노후 보장과 관련된 종잣돈 229조원을 허술하고 안이하게 관리해 빚어진 결과라고 우리는 판단한다.민간 출신인 박해춘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주식투자 비중을 40%까지 높여 수익률을 높이겠다며 공격적 투자를 주도한 결과이기도 하다.국민연금은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사회보험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국민들의 소득 재분배로 사회통합에도 기여해야 한다.그럼에도 오는 2047년 기금이 바닥날 우려가 대두되자 지난해 7월 급여 수준을 33%나 깎았다.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군인연금 등에 비해 국민연금 가입자가 수령액면에서 크게 불리하게 됐다.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자칫 ‘용돈 연금’으로 전락할 우려를 낳고 있다.우리는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복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한 기금운용의 원칙에 충실할 것을 주문한다.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도 엄정한 토의를 거쳐 손실발생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일부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재정여건을 들어 국민연금의 활용을 요구하고 있다.마구잡이식 국민연금의 동원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 신흥국 내년 자금줄 위기

    2009년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선진국들이 발행하는 국채가 급증해 신흥국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9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발행하는 국채가 내년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그 충격으로 신흥국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신문은 선진국이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대대적으로 투입함에 따라 국채 발행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내년 발행될 국채는 올해보다 3배 이상 더 늘어난 3조달러(약 3750조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미국만 해도 내년 한해동안 2조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발행할 것으로 보인다. RBC 캐피털 마켓의 닉 채미 신흥시장분석 담당자는 FT에 “단순히 따져봐도 내년에는 제한된 자본을 놓고 발행자들간의 싸움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선진국과 신흥국이 불꽃튀는 차입 경쟁을 벌일 것으로 내다봤다. 또 ING 홀세일 뱅킹의 분석에 따르면,내년은 신흥시장국이 모두 6조 8650억달러의 채무를 상환하거나 리파이낸싱(차환)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최악의 리파이낸싱 위기를 겪게 될 전망이다.신흥시장국을 담당하는 ING 관계자는 “주요 신흥국들이 국가부도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채무 구조조정이나 불이행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국가나 기업 모두 높은 이자로 채권 매수자들을 유혹할 수는 있겠지만,그만큼 이자 부담이 높아질 것은 확실하다.”고 경고했다. 브라질과 러시아,인도,중국 등 이른바 ‘브릭스(BRICs)’가 내년 채무 상환 및 리파이낸싱해야 할 액수는 각각 2050억달러,6050억달러,2570억달러,2조 437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따라서 채권 발행이 여의치 않으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꺼내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아르헨티나와 터키도 내년에 각각 640억달러와 360억달러의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신문은 헝가리와 우크라이나가 이미 채무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 및 유럽중앙은행(ECB)의 구제를 받은 사실을 함께 지적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친환경 R&D로 불황 이후 대비”

    “친환경 R&D로 불황 이후 대비”

    “2012년까지 하이브리드차 부품 개발에만 총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하이브리드차 연구개발 관련 인원을 현재 60여명 선에서 200여명 수준으로 확충하겠다.” 자동차 업계가 극심한 불황에 빠진 가운데 현대·기아차 그룹 내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는 29일 오히려 인원 보강과 투자 확대에 대해 언급했다.지난 10월 그룹 내 자동차용 전장부품 생산업체인 현대오토넷을 흡수 합병한 뒤 자동차 전자화 사업에 나설 뜻도 분명히 한 상태다.10여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았던 것처럼 이번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다. 불황 속에서 올린 올해의 실적은 현대모비스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근거가 됐다.지난 10월 현대모비스는 올해 3·4분기 경영실적으로 1조 9787억원의 매출과 239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세웠다.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6%,16.8% 증가한 수치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006년 말부터 시동을 건 경영 혁신의 도움이 컸다고 자평했다.당시 현대모비스 본사 조직 안에 설립한 경영혁신팀의 활동이 지난해 11월부터 본격화됐고,1년이 지난 현재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특히 작업자가 3차원 입체화면 속에서 부품 상자들을 활용 빈도에 따라 배열시키는 물류창고 최적화시스템(WOS)을 적용하는 식으로 물류 프로세스를 개선,올해 5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냈다고 한다. 현대·기아차 공장이 있는 지역마다 부품공장을 설립한 것 역시 현대모비스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현대모비스는 지난해 4월 중국 베이징에 2공장을 가동시키면서 중국에서 모듈 100만대 생산 시대를 열었다.11월에는 체코 공장을 본격 가동,기존의 슬로바키아 공장과 함께 유럽에서 모듈 60만대 생산체제를 완성했다.내년에는 미국 조지아 공장,2011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완공이 예정돼 있다. 해외공장을 통해 양적인 성장 기반을 닦은 현대모비스는 차세대 기술 개발을 통해 질적인 성장 동력을 찾아가는 중이다.내년에 현대모비스가 하이브리드차 부품을 비롯해 전자제어기술 등 멀티미디어와 메카트로닉스(기계공학,전기·전자공학을 복합적으로 적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공학) 분야의 첨단기술 개발에 투자할 금액은 2000억여원으로,올해보다 60%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정석수 현대모비스 사장은 “자동차에서 전자장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30%에서 2010년 40% 수준으로 늘어나고,이에 따라 시장도 2010년에 1400억달러,2015년에는 192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 뒤 “기존 핵심부품과 모듈 제품을 지능화시킴으로써 현대·기아차 외 다른 해외 완성차 업체로의 수출을 30%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현대모비스는 현재 하이브리드차와 연료전지차(FCEV) 등 미래 친환경차에 적용할 수 있는 구동모터와 통합패키지모듈(IPM) 양산 준비에 돌입했다.구동모터는 일반 차량의 엔진처럼 차량을 움직이는 동력원이 되고,IPM은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제어하는 기능을 한다. BNP파리바증권은 최근 ‘생존기업과 번영기업’이라는 보고서에서 현대모비스를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초우량 기업으로 선정하며 현대모비스의 과감한 투자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국내 기업 중에서는 현대모비스 외에 삼성전자와 포스코,SK텔레콤 등이 선정됐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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