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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독 반려캣] 유기된 아기 고양이 ‘쓰담쓰담’ 반려견 영상 감동

    [반려독 반려캣] 유기된 아기 고양이 ‘쓰담쓰담’ 반려견 영상 감동

    목욕하는 유기묘인 아기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반려견 동영상이 데일리메일등 외신에 소개되어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반려견은 올해 5살 된 블러드 하운드 종인 루비 제인, 아기 고양이는 이제 4주된 아메리칸 와이어헤어 종인 유기묘 버디다. 유기묘 버디는 유기묘 보호일을 5년째 해오고 있는 동물병원 보조사 스테파니 바이스(36)와 그녀의 남편 매튜(47)의 107번째 아기 고양이이다. 이들이 사는 곳은 미국 플로리다 주 레이클랜드.스테파니와 매튜가 동물보호소에서 다른 2마리 형제 고양이와 함께 동물보호소에서 버디를 데려온 날. 스테파니가 싱크대에서 버디를 목욕 시키려는 순간 반려견 루비 제인이 다가왔다. 한발을 싱크대에 올려논 루디 제인은 다른 앞발로 조심스럽게 아기 고양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를 쓰다듬는 반려견 루디 제인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정말 엄마가 아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모습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스테파니도 루디 제인에게 “너의 아기인거야?”, “아기를 쓰다듬어 주는 거야?”, “목욕하는 거라고 말해줘, 괜챦다고 말해주렴” 이라고 대화를 할 정도였다. 스테파니는 “루디 제인은 모든 유기묘들과 잘 지내는데, 특히 버디에게 처음 온날부터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반려견 루비 제인도 스테파니가 블러드 하운드 종 반려견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친구가 전해준 유기견 이라고 한다. 반려견 루비 제인과 유기묘 버디의 종을 초월한 모성애 모습은 스테파니의 SNS에 소개된 후 800만의 조회수를 올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gmail.com
  • 이혼의 아픔 이후, 신작 ‘터부요기니-스칼렛’ 개인전으로 돌아온 낸시랭

    이혼의 아픔 이후, 신작 ‘터부요기니-스칼렛’ 개인전으로 돌아온 낸시랭

    팝아티스트 낸시랭씨가 이혼의 아픔을 작품으로 극복하고 새롭게 돌아왔다. 낸시랭은 오는 14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AB갤러리에서 ‘터부요기니-스칼렛(Taboo Yogini-Scarlet)‘란 이름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그녀는 지난해 12월 개인전에 이어 올해 7월 싱가포르 컨번션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아트페어 개막 오프닝에서 단독 퍼포먼스 ‘스칼렛 싱가포르’란 행위예술과 작품들을 소개했다. 또한 지난 9월 11일 터키에서 열린 제14회 컨템포러리 이스탄불 아트페어에서도 ‘터부요기니-스칼렛’ 오일페인팅 시리즈를 발표하고 갈라타 타워광장에서 ‘스칼렛 이스탄불’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최근 선보이고 있는 그녀의 작업에는 스칼렛이란 이름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녀는 “롤랑 조페 감독의 ‘주홍글씨’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주홍글씨가 ‘낙인’(Stigma)을 의미하듯 ‘이혼녀’라는 낙인의 의미로 ‘스칼렛’이라는 이름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스칼렛’ 작품 시리즈는 그녀가 작품을 만들어 나가면서 개인적인 삶의 여정속에서 직접 체험하고 겪은 일들을 강력한 모티브로 삼고 있다. 물론 작품을 제작해 나가면서 그녀 스스로가 감내해야만 했던 일련의 상처와 아픔 또한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있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약자의 입장에서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면서 ”나와 같은 경험을 겪고 있는 세계 여성들의 다양한 문화적 시각, 여성이 갖는 삶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의문을 ‘스칼렛(Scarlet)’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 개와 산책하다 벼락 맞는 남성 CCTV 생생 포착 (영상)

    개와 산책하다 벼락 맞는 남성 CCTV 생생 포착 (영상)

    미국의 한 남성이 개 세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다 벼락을 맞는 생생한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미국 ABC13 뉴스에 의하면 이 사고는 지난 3일 목요일 저녁 7시경(현지 시간) 텍사스 주 스프링 지역에서 발생했다. 당시 알렉산더 꼬레아스는 독일산 세퍼드 소피, 허니, 헤이즐 3마리를 데리고 메이어 개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갑자기 날씨가 변하고 번개와 천둥이 칠 조짐을 보이자 꼬레아스는 개들을 데리고 대피할 마음을 먹었다. 공원을 벗어나 자신의 차로 향하던 순간 벼락이 꼬레아스를 향해 내리 쳤고 꼬레아스는 마치 통나무가 쓰러지듯 시멘트 바닥으로 쿵하고 쓰려졌다.벼락에 깜짝 놀란 세 마리 개들은 줄행랑을 쳐버렸다. 꼬레아스가 벼락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당시 주변 스튜브너 에어라인 동물병원의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다행히 동물병원의 기능직 직원인 빌이 당시 상황을 목격하고 병원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빌이 도착했을 당시 꼬레아스는 심정지 상태였다. 꼬레아스의 양말과 신발은 벼락의 전류가 흘러 나가며 폭탄을 맞은 듯이 터져 있었고, 시멘트 바닥에는 구멍이 나있을 정도였다. 빌과 클리닉 직원인 크리스티 미틀러가 즉시 꼬레아스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였고, 마침내 꼬레아스의 맥박이 다시 돌아왔다.응급차가 오고 병원으로 실려간 꼬레아스는 갈비뼈 골절, 관자놀이뼈 골절, 근육파열, 눈 부종, 피부상처가 있었지만 다행이 목숨은 건졌다. 꼬레아스의 가족은 “그를 도와준 의인들이 아니었으면 그는 지금 여기에 없을 것”이라며 “그가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은 정말 신의 가호로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꼬레아스는 상당 기간 병원 치료를 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고펀드미를 통해서 병원비 도움을 받고 있다. 당시 벼락에 놀라 도망간 개들은 인근 숲속에서 안전하게 발견돼 가족에게 인도 됐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gmail.com
  • ‘불후의 명곡 2관왕’ 이봉근 소리꾼과 떠나는 판소리여행

    ‘불후의 명곡 2관왕’ 이봉근 소리꾼과 떠나는 판소리여행

    경기 광명문화재단이 10월 문화가 있는 날 국악의 맛 소리꾼 이봉근의 ‘소리 위를 걷다 with 적벽’ 공연을 개최한다. 공연은 오는 29일 오후 7시 30분 광명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진다. 광명문화재단의 ‘마주보는 콘서트 국악의 맛’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공연산책사업이다. 재단은 국악을 주제로 새로운 시도와 해석으로 주목받고 있는 우수한 국악단체와 아티스트를 초청해 우리 전통문화 예술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젊은 소리꾼 이봉근과 하우스 밴드 적벽이 함께 무대에 올라 특별한 무대를 선사한다. 이봉근은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두 번이나 우승을 거머쥐며 한국 전통 판소리를 대중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이봉근은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을 넘나들며 재즈와 소울· 팝 등 다양한 장르들과 협업해 관객들에게 다채롭고 참신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아쟁과 호흡이 일품인 춘향가 중 ‘돈타령’과 화려한 재즈 연주가 접목된 빠른 템포의 곡 ‘사랑가’, 경기민요 ‘흥타령’을 현대적인 선율로 재해석한 ‘눈 먼 사랑’ 등 다양한 곡을 만날 수 있다. 특히, KBS 불후의 명곡 우승곡 노사연의 ‘돌고 돌아가는 길’을 선보여 다시 한 번 콘서트 열기가 기대된다. 또 ‘GMC 초이스’ 공연 관람 후에는 현장에서 GMC 관람카드 이벤트를 진행한다. 공연 3회 관람 시 장바구니를, 5회 관람 시 티켓북을 증정한다. 관람 카드는 공연 당일 광명시민회관 1층 서비스플라자에서 수령할 수 있다. 또 광명문화재단 홈페이지(www.gmcf.or.kr) 공연 후기를 남기면 추첨을 통해 디자인 침구와 대선참기름 세트 등 상품을 준다. 자세한 사항은 광명문화재단 예술기획팀(02-2621-8845)으로 하면 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내 가발 돌려줘!’ 생방송 중 기상캐스터 가발 벗긴 원숭이

    ‘내 가발 돌려줘!’ 생방송 중 기상캐스터 가발 벗긴 원숭이

    생방송 중 미국 여성 기상캐스터의 가발을 벗겨내는 여우원숭이의 모습이 방송돼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WALB 방송국은 미국 조지아 주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방송국. WALB 방송국 여성 기상캐스터인 욜란다 아마데오는 지난 3일(현지시간) 지역 페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지아 국립 박람회를 취재 하는 중이었다. 박람회에 참가한 유도라 팜스 패팅 동물원 사육사와의 인터뷰는 호기심 많은 여우원숭이가 아마데오의 어깨에 올라서는 귀여운 모습을 연출하며 훌륭한 인터뷰가 되는 듯 싶었다.하지만 기상캐스터의 머리를 앞발로 잡고 서있던 여우원숭이가 그녀의 머리 부분을 넘어가 사육사로 옮겨가려는 순간, 생방송 인터뷰를 위해 곱게 단장했던 아마데오의 머리카락이 훌러덩 벗겨졌다. 아마데오의 머리카락은 사실 본인의 것이 아닌 가발 이었던 것. 너무나 당황한 기상캐스터가 가발을 다시 고쳐 쓰려는 순간 사육사한테 건너간 여우원숭이가 다시 아마데오의 머리쪽으로 건너 오면서 2차 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기상캐스터는 인터뷰를 포기하고 가발을 움켜지고 화면 밖으로 나가는 방송 사고가 발생했다. 여우원숭이를 잡고 있는 사육사는 미안함에 난감한 웃음만을 지을 뿐이었다. 가발을 고쳐쓴 기상캐스터는 다시 인터뷰를 이어갔고 그녀의 인터뷰는 무사히(?) 마감됐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gmail.com
  • LG화학, 美 GM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후보군에

    LG화학, 美 GM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후보군에

    GM, 전기차 배터리 공장 신설 추진파업 중인 노조가 반대하면 물거품 LG화학이 미국의 완성차 업체 GM(제너럴모터스)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파트너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이름을 올린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중국의 CATL과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2차전지 업계에 따르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GM에 배터리를 공금하고 있는 LG화학이나 중국 CATL이 합작 파트너로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앞서 GM은 파업 중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측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신설안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폐쇄 예정인 오하이오주 로즈타운 조립공장 주변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신설해 인력을 신규로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GM은 배터리 제조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게 된다면 배터리 제조사와 합작법인을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LG화학은 2009년 출시된 쉐보레의 전기차 ‘볼트’의 배터리를 공급하며 GM과 협력관계를 이어왔다. 다만, 노조 측이 GM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GM의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은 물 건너 간다. LG화학 측은 “GM과의 합작법인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임지연의 내가 갔다, 하와이] 1등도 꼴찌도 없는 ‘이상한’ 훌라 축제를 가다

    [임지연의 내가 갔다, 하와이] 1등도 꼴찌도 없는 ‘이상한’ 훌라 축제를 가다

    연간 평균 온도 26도의 온화한 날씨 덕분일까. 하와이 거주민들의 성격과 그들의 생활 방식 역시 이곳의 날씨를 닮아 온화하다는 것이 정평이다. 실제로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을 떠올리며 이곳을 찾아오는 여행자들 중 다수는 푸른 바다보다 더 인상적인 하와이의 특징으로 거리에서 마주치는 하와이안의 온화한 성품을 꼽을 정도다. 필자의 생각 역시 여행자들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도시라면 으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교통 신호 위반 문제와 무수한 여행자와 차량이 뒤섞여 만드는 소음 등을 이곳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호놀룰루 시는 미국에서도 제법 큰 규모의 대도시로 꼽힌다. 여기에 더해 하와이에는 매년 약 990만 명에 달하는 서로 다른 국적의 여행자가 찾아오는 지역이다. 더욱이 올해에는 그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배려가 상식인 이곳에서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빠르게 달리는 운전자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하와이 현지 문화의 성숙도를 가늠하기에 좋은 부분일 것이다.그리고 이 같은 하와이 현지 원주민들이 만들어 내는 눈에 띄는 행사가 바로 ‘1등’과 ‘꼴찌’를 선발하지 않는 ‘훌라’ 대회다. 매년 한 차례 성대하게 치러지는 ‘프린스 랏 훌라 축제'(prince lot hula festival)는 하와이 원주민들이 주축으로 진행하는 대표적인 훌라 축제다.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호놀룰루 시 중심지에서 진행되는 프린스 랏 훌라 페스티벌의 가장 큰 특징은 경연을 목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훌라’를 즐기는 이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공연을 일반인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인 셈. 매년 이올라니 궁전에서 개최되는 이날 축제에는 약 20개의 팀과 개인 자격의 훌라 공연자들이 참여 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 20여개의 팀과 개인 참여자들에 1등부터 20등까지 점수를 매겨 서열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눈이 띄는 특징인 것이다.축제 현장의 분위기는 토~일요일 양일간 진행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무대 위를 오르는 참여자들의 공연을 여유롭게 즐기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현장에는 먹고 마실 수 있도록 각종 현지 음식 부스가 마련돼 있는 덕분에 현지를 찾은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셈이다. 이 같이 1등부터 20등까지 서열화 하지 않고, 공연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려는 행사의 전통은 프린스 랏 훌라 대회가 처음 개최됐던 지난 4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와이 원주민의 전통을 기념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이 대회는 훌라를 배우는 학교나 단체라면 누구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의 문을 열어뒀던 것. 특히 이는 곧 앞서 총·칼을 앞세웠던 서양 문화가 강제로 유입됐던 하와이 원주민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서방 세력이 하와이 섬을 점령한 이후 줄곧 섬 원주민들은 누구도 전통 언어인 하와이어와 문화를 자유롭게 교육하거나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주민에 대한 강압적인 금지정책은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원주민 고유의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왔는데, 지난 1978년 무렵에 이르러 훌라 춤에 대한 정부의 금지 정책이 풀리자 ‘훌라’에 대한 대중화 운동 분위기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급격하게 확산됐다.이 시기 가장 먼저 실시된 대회가 바로 프린스 랏 훌라 축제다. 축제 명칭 역시 카메하메하 왕 5세(1863~1872)로 재위했던 ‘랏’ 왕자에서 유래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랏’ 왕자 또는 프린스 랏 카푸아이와로 불리는 인물은 카메하메하 5세로 약 9년에 걸쳐 하와이 전역을 통치했던 왕이다. ‘랏’ 왕자는 하와이 주민들 사이에서도 유독 서구 문화가 범람하는 혼란 속에서도 하와이 전통 문화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창 서양 세력의 난입으로 인해 혼란했던 당시, 그는 훌라 춤을 수호하는 것이 하와이 원주민의 의식을 지켜내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 본래 훌라는 하와이어로 ‘춤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와이 섬을 지켜온 원주민들이 고대시기부터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독특한 무용이었던 셈. 당시 불의 여신 펠레를 위해 언니 피아카 여신이 춤을 춘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특히 훌라가 처음 발생했을 당시에는 종교적인 의식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주로 남자들을 위한 춤으로 전승됐는데, 서양 세력에 의해 성격이 변질되면서 최근에는 일반적인 오락 무용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처럼 1등을 뽑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훌라’ 축제에는 하와이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는 셈이다. 특히 올해 축제의 주제는 ‘오 젊은이들이여, 앞으로 가자’였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하와이 현지 세대들에게 훌라 전통 의식의 의미를 전달하자는 뜻을 담았다는 후문. 더욱이 대회 참여자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운영되고 있는데, 하와이 전통 춤인 훌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라면 그가 누구든 경연을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전통 문화를 함께 한다는데 의의를 두고 운영되고 있는 것. 실제로 행사 현장은 매우 여유롭게 진행된다. 이른 오전부터 저녁 시간대까지 양일간 끊임없이 진행되는 축제 현장에는 먹거리와 마실거리 등이 마련돼 있고, 이곳을 오고가는 관람객들은 현장에 배치된 좌석 또는 잔디 위에서 대회 참여자들의 경연을 자유롭게 관람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자유로운 참여 분위기 덕분에 프린스 랏 훌라 대회에서는 이제 막 훌라춤을 습득한 유치원생 참여자부터 수 십 년 경력의 베테랑까지 한 곳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올해 역시 현장에 함께한 관람객들 누구도 섣불리 참여자의 공연에 점수를 매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전통 문화를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고 함께 관람하는 문화를 지켜나가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모습이었다. 호놀룰루=임지연 통신원 808ddongcho@gmail.com   
  • 라스베이거스 총격 2주기에 MGM 유족 등에 9000억원대 배상 합의

    라스베이거스 총격 2주기에 MGM 유족 등에 9000억원대 배상 합의

    미국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가운데 한 개인이 저지른 범행으로 역대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낳은 2017년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 2주기 이틀 뒤 부상자와 희생자 유족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은 참사 발생 2주기였다. 범인 스티븐 패덕(64)은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지역 만델레이베이호텔 32층 객실에서 길 건너편 루트 하베스트 91 콘서트장에 모인 청중을 향해 자동소총으로 1000여 발을 발사해 58명을 숨지게 하고 500여명을 다치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과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2년간 수사를 진행하고 범인의 뇌 분석을 연구기관에 의뢰하기도 했지만 패덕의 범행 동기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이런 가운데 3일 AP통신과 폭스 뉴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만델레이베이호텔을 소유한 MGM리조트는 희생자 유가족과 부상자 및 가족에 대해 7억 3500만(약 8871억)~8억 달러(약 9650억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배상액은 얼마나 많은 원고가 나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BBC는 전했다. 또 이번 합의안이 회사의 최종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MGM리조트는 패덕이 호텔 스위트룸에 23정의 중화기류와 수천발의 탄약을 반입하는 과정에 검문검색을 제대로 하지 않아 투숙객과 관광객의 안전을 해쳤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를 전향적으로 인정하고 배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MGM리조트를 상대로 소송을 낸 유가족을 대리하는 로버트 이글렛 변호사는 AP통신에 “잃어버린 생명과 그날 밤 참혹했던 기억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번 합의가 수천 명의 유가족 및 부상자들에게 공정한 배상이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MGM리조트는 라스베이거스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합의를 이뤘다”라고 말했다. 원고 측 대리인은 정확한 피해액 산정을 위해 별도의 조사 작업이 필요하고 배상액을 조달할 기금 조성에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최종적인 배상 절차는 내년 말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조트는 배상액의 80%를 보험사에서 조달하고 나머지 20%는 자체 재원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전직 세무회계사 출신인 패덕은 네바다주 리노에 주택을 소유하는 등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었으며,특별한 총기 관련 전과가 없어 범행에 사용된 화기류를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패덕은 범행 직전 필리핀으로 떠난 여자친구에게 1만 5000 달러를 송금하는 등 미심쩍은 행적이 포착됐지만 경찰 조사 결과 여자친구는 범행에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구보씨, 오늘도 명동을 거닌다 - 서울 명동(明洞) 거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구보씨, 오늘도 명동을 거닌다 - 서울 명동(明洞) 거리

    #소설가구보씨의일일 #박태원 #봉준호 “대낮에도 이 거리는 행인이 많지 않다. 참 요사이 무슨 좋은 일 있소. 맞은편에 경성 우편국 3층 건물을 바라보며 구보는 생각난 듯이 물었다. 좋은 일이라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 1934> 작품 속 구보(仇甫)는 일제 강점기 경성부에 살고 있는 26살 소설가 청년으로 등장한다. 사실 구보는 바로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이다. 왜냐하면 그의 호(號)가 ‘구보’이기 때문이다.또한 구보 박태원은 영화 ‘살인의 추억’, ‘괴물’,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인 박태원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명치정(明治町:지금의 명동)을 걷고 또 걸어 다니는 무기력한 지식인 ‘구보’를 통해, 손자인 봉준호는 2000년대 서울의 한 대저택 지하실에 숨어 들어간 자본주의 시대의 무능력한 가장 ‘기택’(송강호 분)을 통해 살고 있던 시대의 뒤안길을 각자의 예술적 방식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구보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다. 서울의 명동(明洞)이다.명동은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행정동이자 서울의 대표적인 금융, 서비스, 관광 산업의 밀집지역으로 전국 최고의 상권을 자랑한다. 이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9년 기준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데 명동 8길(충무로 1가)의 한 화장품 가게의 ㎡당 가격이 1억8300만원으로 단연 전국 최고가를 기록했다. 참고로 공시지가의 가격이 이러하니 실거래가는 일반인의 어림으로는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금싸라기 땅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곳이 명동이다. #명례방 #남산골샌님 #전국공시지가1위그러나 예전의 명동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원래 이 지역은 조선 시대 한성부 5부 49방 중 명례방(明禮坊)이라 불린 곳으로 남산(南山)의 북사면에 위치해 있기에 금싸라기는커녕 하루종일 해도 잘 들지 않는 땅이었다. 그러하니 주거지로서는 서울 5촌 중에서도 최악인 땅으로 권력을 잃은 남인세력들이 이곳에 주로 터를 잡고 살았다. 말 그대로 꼬장꼬장하면서도 양반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쳐,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던 ‘남산골 샌님’들이 살았던 곳이 바로 명동이다.그러다 명동이 지금과 같은 번성기를 맞기 시작한 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기부터다. 명동을 명치정(明治町)이라 불렀는 데, 메이지(明治)라는 표현이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표현이 일치하였기에 일본인들은 명동을 ‘메이지초’라 불렀으며 각종 고급 상점 및 은행, 식당 등이 본격적으로 명동에 들어선다. 구보가 차를 마시던 옛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 백화점)을 비롯하여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경성우편국(현 서울중앙우체국 터), 명동성당, 메이지좌(明治座: 현 명동예술극장), 식산은행 (현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조선저축은행(구 제일은행 본점), 경성전기주식회사(현 남대문 한국전력공사) 등은 여전히 명동의 주요 근대 역사 흔적으로 남아 있다.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명동에는 1960년 때까지 다양한 예술인들이 모여 토론하고 작업하는 다방문화가 유행하였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히피문화가 유행하여 ‘쎄시봉’이나 ‘쉘부르’와 같은 통기타 생음악 카페들이 명동 골목마다 들어선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강남권 개발과 여의도 금융지구의 발전으로 인해 명동지역은 한때 침체기를 맞는 듯 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필수 방문 거리가 되어 여전히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명동(明洞) 거리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근대 역사 투어를 목적으로 가면 꽤나 의미있는 여행이 된다. 2. 누구와 함께? - 반드시 문화해설사님과 함께. 서울 중구청에서는 4인 이상 단체의 경우 문화 해설프로그램 운영(중구청 문화관광과 3396-4623(02)) 3. 가는 방법은? - 지하철 4호선 명동역이나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역 하차 4. 명동 여행의 특징은? - 1930년대 우리나라 근대 문화의 시발점이자 해방이후 80년대까지 한국 소비 문화의 중심지. 역사적 의미가 의외로 짙은 곳이다. 5. 유명도는? -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것이 좋다. 6. 명동 관광 순서는? - ①명동문화공원→②명동성당→③윤선도 집터→④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 → ⑤장악원터(동양척식주식회사터, 나석주의사 동상) → ⑥경성주식현물취인소 터 → ⑦한국전력 사옥 → ⑧남대문로 → ⑨중국대사관거리, 한성소학교 → ⑩한국은행 앞 광장(신세계백화점, 한국은행, 서울중앙우체국) → ⑪대연각 뒷골목 → ⑫중앙로(옛 문화명소인 명동아동공원터, 오비스케빈터, 쉘부르터 등) → ⑬명동예술극장 → ⑭유네스코회관(문예서림터, 은성주점터)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백년식당이 남아 있는 곳. 명동 대표 식당 리스트다. 곰탕 ‘하동관’, 꼬리곰탕 ‘은호식당’과 ‘진주집’, 한식 ‘잼배옥’, 서울식 추어탕 ‘용금옥’, 평양냉면 ‘우래옥’, 이북식냉면 ‘강서면옥’, 함흥냉면 ‘오장동 함흥냉면’,‘명동할매낙지’, 설렁탕 ‘문화옥’, 비빔밥 ‘전주 중앙회관’, ‘고려삼계탕’, 콩국수 ‘진주회관’ 8. 홈페이지 주소는? - 명동 여행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http://www.junggu.seoul.kr/tour/ 으로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남산 주변, 광화문, 남대문 시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명동은 너무 유명해서 외국인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해야 하는 역사적 증거들의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명동(明洞)을 쇼핑 공간이 아닌 역사 공간으로 접근한다면 여행의 발걸음이 깊은 의미가 있을 듯 하다. 명동 여행 전 서울 중구청 홈페이지 방문은 필수!!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한국당 문체위, 與 나경원 딸 의혹제기에 “반인륜적 행태”

    한국당 문체위, 與 나경원 딸 의혹제기에 “반인륜적 행태”

    ‘조국 게이트 물타기’ 비난자유한국당 소속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이 2일 더불어민주당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딸 관련 의혹 제기에 “장애를 극복하는 피나는 노력을 ‘특권’으로 인신공격하는 반인륜적 행태를 엄중 경고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문체위 위원들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나 원내대표의 딸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활동에 참가하는 등 비장애인들을 능가하는 피나는 노력으로 국내외 장애인 활동에 참여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민주당은 이러한 장애인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활동을 ‘조국 게이트’ 물타기에 악용하기 위해 인격 살인에 가까운 거짓과 허위 주장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임위를 원만한 진행을 이끌어야 할 위원장 역시 진실은 외면한 채 일방적인 자료 요구로 편파적인 회의 진행을 하고 있다”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위원들은 나 원내대표의 딸이 2011년 아테네스페셜올림픽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표회의에 참석해 적극적인 참여 활동을 바탕으로 세계청소년회의 의장으로 선출됐고 이후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국제스페셜올림픽본부로부터 글로벌 리더로 선임됐다고 설명했다. 또 연이은 보도자료를 통해 나 원내대표 딸의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 글로벌 메신저(IGM) 선발 관련 의혹, 이병우 교수 스페셜올림픽 연출 총감독 특혜 논란, 스페셜올림픽 법인화 쪽지 예산 주장,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 법인화·사옥 구입 및 재산 증식 주장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이들은 “IGM의 해당 요건을 갖춘 후보군이 극소수여서 공모가 불필요했으며, 나 원내대표의 딸이 객관적으로 가장 많은 활동 경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단독 추천을 거쳐 선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가 스페셜올림픽의 연출 총감독을 맡았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 국민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매우 의미 있는 헌신이자 재능 기부”라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치러진 2018년도 평창올림픽 음악감독이 이 교수”라고 지적했다. 한국당 문체위 위원들은 또 “정부의 체육단체 법인화 방침에 따라 장애인 단체도 법인화를 추진한 것”이라면서 “SOK는 기존 사무실 임대료를 절감하기 위해 법인화 지원금과 자체 예산을 합쳐 사옥을 마련했다. 법인화 기금을 까먹거나 손실을 만든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앞서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 원내대표의 딸 김모양이 스페셜올림픽 관련 활동이 의아하게 많다”며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Allure of High Wage, Shadow of Harsh Work

    Allure of High Wage, Shadow of Harsh Work

    [The 2019 Migrant Report]For the past 10 years, suicides in Nepali migrant workers working at farms and factories in South Korea have continued. In recent years, labor and medical groups in the country have begun to pay close attention to figure out why they are particularly at risk. “It cannot be explained by a single factor. Instead, there is a web complex reasons to trap migrant workers towards an extreme choice,” said Jeong Young-seob, Co-director of Migrants Act. In August, the Seoul Shinmun in collaboration with Green Hospital‘s Labor, Environment, Health Research Center and the Migrants Trade Union conducted a survey titled ’Stress and Mental Health Status‘, in which 141 migrant workers from Nepal took part. The survey was done through a paper and face-to-face interview. We also analyzed existing reports authored by the Government of Nepal “Labor Migration for Employment?A Status Report for Nepal: 2018” as well as by the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When the safety of Nepali migrant workers fails (2016)”. We also studied additional statistics on migrant workers’ suicide published by the Embassies of Vietnam, Nepal, Thailand and Myanmar. As a result, we found that there are four major factors that make Nepali migrant workers in South Korea more vulnerable: ▲gap between expectation and reality ▲ lack of exit ▲high expectations from loved ones ▲ ruined relationships at home. When these four factors are mixed with one another, they could lead to a whirlwind consequence. # Great Expectations = Great Disappointments The first risk factor is Nepali migrant workers’ high expectation of South Korea. To aspiring Nepali migrant workers, South Korea is a land of opportunity, where they could earn five to eight times more monthly income than what they could earn in their home country. For this economic advantage, even highly educated young Nepalis including university-degree holders strive to get an E-9 visa to South Korea. When they finally come, however, they often struggle with harsh labor conditions and dehumanizing discrimination. According to the survey mentioned earlier, 28 percent of the respondents cited a huge gap between the reality of their work in Korea and the expectation they had in Nepal as the biggest source of frustration. A couple of Nepali migrant workers shared their experience with the Seoul Shinmun. Surendra(28·fake name) has been working at a mushroom farm for three years in Korea. He graduated from Tribhuvan University, one of the top universities in Nepal. “Before I came here, I was just excited about being able to earn 2 to 3 million won a month. I did not have a clear understanding of working and living conditions here. The reality, however, is very different from my imagination.” He then added, “Working for straight 12 hours without any real break is something that we rarely experience in Nepal. Nevertheless, I would feel much more satisfied if I were at least learning some skills. But all I have been doing here is simple manual labor.” According to our status survey, nearly 45.6 percent of the respondents answered that they work longer than 52 hours a week. 19.1 percent even said they work more than 60 hours a week, which is counted as one of the criteria for chronic overwork. Among the respondents, only 26.1 percent could take advantage of a 5-day workweek. # No Exit After working in South Korea for 16 months, Nepali migrant worker Shrestha(27) jumped from the rooftop of his company dorm building in June 2017. He had been suffering from serious insomnia as he struggled to adjust himself to alternating shifts between day and night. Before he committed suicide, Shrestha left a note. He wrote: “I have been seeing doctors for health problems and sleep disorders. It did not improve. I wanted to quit and find another work but the company did not allow it. I wanted to go back to Nepal for recovery, but the company said no.” Similar stories have been confirmed through the status survey. 71.1 percent of the respondents answered they have tried to find another workplace. Their reasons for wanting to find new work was similar to that of Shrestha. 36.4 percent cited long working hours and dangerous working conditions. Migrant workers who come to South Korea under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are allowed to change workplaces up to three times within a three-year period. But it requires permission from their current employer. Lawyer Choi Jeong-Kyu said, ”If an employer gives permission to one worker, then he or she has to do the same for the others. For small-sized factories and farms depend on migrant workers, and employers are reluctant to let go of their labor force. Thus, the system inherently makes it difficult for migrant workers to find new employment, even after serious abuses, unless they could find assistance from labor unions or migrant organization.“ # Heavy Shoulders No matter how harsh and hostile it is, returning to Nepal is not an option for many of them. It had not been easy for them to come to Korea in the first place. But as long as they carry the weight of their family‘s expectation on their shoulder, it’s even more difficult to go back. This emotional burden coming from the family and community pressure is a significant factor. According to the report by the Nepali government, all 17 people who committed suicide between 2008 and 2014 were bearing the responsibility to provide for their families. ”People in Nepal don‘t pay much attention to the stories about wage theft or workers getting beaten up. If migrant workers go back, the villagers would criticize them for forsaking a great opportunity to earn 3 million won a month. People will laugh at their failure and brand them weak. Caught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many Nepali migrant workers end up with suicide,“ explained Udaya Rai, head of the Migrants Trade Union(MTU), who is also from Nepal. Gokul Sharma(21) said he came to Korea for the happiness of his family. Yet, he was afraid of getting disapproving looks from his neighbors. Most of the people in Nepal agree with this analysis. In addition, Nepali youths invest a lot of time and money to make their ’Korean Dream‘ come true. ”In order to come to South Korea, many of us first have to borrow some money and take the Test of Proficiency in Korean“ added Sunita(41), who has been running a resting place for Nepali migrants for 10 years in Cheongju City. # Ruined Relationship What sustains migrant workers despite their harsh labor is their family and loved ones. However, when the relationship collapses, it shakes up all the rest. Tej bahadur Gurung(29) had two friends who chose suicide due to relationship problems. One person’s case involved family issues while the other one involved a romantic relationship. Khan Bahadur Gurung(45·fake name) recalled his experience, too. ”I had to deal with a family issue while I was working non-stop in Korea. I couldn‘t afford to go back to take care of the problem. That really tormented me.“ Dr. Kapil B. Dahal from the Department of Anthropology at Tribhuvan University underlined relative naivety and lack of experience of Nepali youths. Dr. Dahal said he was also aware of the suicide problem of Nepali migrant workers in South Korea. Meeting with the Seoul Shinmun at his house in Kathmandu on August 29th, he explained how it is a huge pressure for them to go abroad and make money for the family, especially considering how young they are. Dr. Dahal pointed out that there have been little studies dedicated to Nepali migrant workers’ suicide. In fact, the Korean Ministry of Justice keeps a track record of low-skilled migrant workers‘ deaths in Korea country by country. But its focus is on numbers, not the causes of their deaths. It means we do not have sufficient data to comprehend their unexpected deaths. ”Perhaps not as many as in South Korea, but Nepali migrant workers in the Middle East and Europe also commit suicides. Yet the Nepali Government and politicians don’t do anything. Nepali migrant workers make a great contribution to the country‘s economy. However, their health conditions are overlooked and their suicides are ignored,“ said Dr. Dahal as he criticized the indifference of the government. An official at the Nepali Embassy in Seoul told the Seoul Shinmun that they had made a request to their government for a research subsidy but there had been no progress. The person said, ”Yet, we do offer counseling services for migrant workers’ mental health.“ Udaya Rai of the MTU questioned its effectiveness. He said, ”You know they are not interested in addressing the fundamental problem of these deaths and suicides. They only fear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might slash quota for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if we start to speak up about these problems. That‘s why they stay silent and hurriedly send bodies back to Nepal.“ Kathmandu·Dong kharka·Pokhara Ki Mindo key5088@seoul.co.krEnglish Translation: Lee Myungju ana.myungjulee@gmail.com ▶The Seoul Shinmun plans to cover more in-depth stories involving migrant workers, marriage migrants and migrant children in South Korea. If you have experienced or witnessed wage theft, uncompensated workplace injuries, verbal and/or physical abuses, we are waiting for your news tips. Email: key5088@seoul.or.kr Also, get in touch with more news tips and stories on bullying and any form of discrimination against marriage migrants and migrant children. Your news tips will strictly remain anonymous and protected.
  • Shattered ‘Korean Dream’… Overlooked suicides of Nepali migrant workers in S Korea 

    Shattered ‘Korean Dream’… Overlooked suicides of Nepali migrant workers in S Korea 

    [The 2019 Migrant Report]In the past 10 years(2009-2018), 43 people out of 143 Nepali migrants who died in South Korea took their own lives- meaning 3 out of 10 deaths involved suicides. The Seoul Shinmun confirmed the figure through the Embassy of Nepal in Seoul and found out most of the cases involved migrant workers who entered the country with E-9 visa. Yet, a bigger tragedy lurks behind their unsung deaths as neither the Government of South Korea nor the Government of Nepal pays much attention to these recurring problems. In 2018, Nepal sent the largest number of non-professional or low-skilled migrant workers(8,404) to South Korea. Obviously, they come to this country for the so-called ‘Korean Dream’. But then, why did so many of them have to die on South Korean soil? From August 26th to September 2nd, the Seoul Shinmun met with some forty people in cities throughout Nepal -such as Kathmandu, Dong Kharka and Pokhara. These people included family members of migrant workers as well as Nepali youths who were dreaming of coming to South Korea to work one day. Three Stories of Betrayed Korean Dreams #Kedar Timalsina(28) An adult-size coffin wrapped with cardboard boxes and plastic tapes was carried out of the Tribhuvan International Airport in Kathmandu. Inside the coffin lay a 28-year-old man named Kedar Timalsina. When his body was found around midnight on July 20th in Saha District, Busan, he was already dead as he apparently hanged himself in the storage of a seafood processing factory. Waiting for him at the airport arrival site were some men from Kedar’s family. “This paper doesn‘t say anything about why Kedar killed himself,” they mumbled among themselves while sifting through the pages of the simple document sent from South Korean police. Kedar’s family said they did not understand why he had to make such an extreme choice to kill himself. It had been only 25 days since his wife Bandana Timalsina gave birth to their first son. The newborn looked like his father. “You know, I even heard Kedar threw a big party to celebrate the birth of this baby. Why would such a man kill himself? It doesn’t make any sense,” said Bandana’s older brother. Besides, Kedar had an aging mother who just turned 60 and would need his care more than before. What further frustrated the grieving family was the abhorring silence and indifference. Neither South Korea nor Nepal provided an adequate explanation. The Embassy of Nepal in Seoul and South Korean police seemed they were done with the case since they had returned the body to his family. South Korean police never investigated surveillance cameras installed in the factory or carried out forensics on Kedar’s mobile phone. The police said, “We found no evidence of murder on his body. Moreover, we understand he had a clear motivation to commit suicide.” “How can they not even review the CCTV and mobile phone? Is this how South Korea handles things?” Bandana‘s older brother asked a Korean reporter sitting in front of them. According to South Korean police, on the other hand, Kedar’s family was the “clear motivation” behind his suicide. Citing a statement made by Kedar’s co-worker, the police explained that Kedar had recently purchased some land, which turned out to be a fraud. “It’s a lie!” Listening to the Korean reporter relaying what he had heard from the police, Kedar’s family got furious. They insisted, “He bought the land a year ago for 2.90 million rupees (roughly 30 million Korean won) but now the price has gone up to 4.35 million rupees (roughly 43.5 million Korean won).” None of Kedar’s personal belongings were returned to his family. The police said, ”The Nepali Embassy told us that his family did not want his items back.“ The family‘s account was different. They said they had never communicated with the Embassy about Kedar’s personal belongings. ”We are responsible for confirming the identity and death certificate in order to promptly return the body back to his family in Nepal. The Embassy does not send back items unless they are important,“ the Embassy of Nepal replied when asked about it. On the day of the arrival, the family took Kedar’s body to the Bagmati River, an important tributary of the Ganges. When Bandana opened the cover of the coffin to see her husband for the last time, she burst into tears caressing his face. ”Why… What should I do with our baby?“ Kedar’s family moistened his mouth with water from the Ganges and put fire into the mouth to cremate. It took 4 hours for the fire to consume his body. With Kedar’s ‘Korean Dream’, all was gone.# Bal Bahadur Gurung(32) ”He really loved the children. These kids remind me of my husband every time I see them,“ said Lili Maya Gurung(28) thrusting a tissue under her sunglasses. The Seoul Shinmun met her in Pokhara in central Nepal. Lili Maya‘s husband Bal Bahadur Gurung forced himself off the Wolleung Bridge in Jungnang District, Seoul, on June 12th, 2018. He died immediately after being hit by a passing vehicle. CCTV footage showed Bal Bahadur walking back-and-forth over the bridge several times. He seemed nervous. He hesitated. But nothing would change the fact that he had just become an ‘unregistered’ migrant two days ago. He feared deportation. Bal Bahadur entered South Korea with a proper work visa in October 2017. In the following March, however, he left the company and registered himself at the Ministry of Labor to find another work. Migrant workers automatically lose their right to stay in the country if they fail to secure employment within three months. Bal Bahadur went back to Nepal to spend a short time with his family then came back to South Korea. Unfortunately, he had no luck in finding work. Time marched on inexorably until his three months were up. He became an unregistered or illegal migrant. That night, Bal Bahadur had no money. Later, a message found on his mobile phone showed that he had been trying to borrow some money from his co-worker. ”Had he owned some money, do you think he could have been able to get a taxi to go home in Suwon and lived?“ Lili Maya came to South Korea to take care of the remains of her husband by herself. “Unfortunately, many people in Nepal can’t afford to come to Korea even if a family member dies here. Still, the Nepali Embassy does nothing about it,” sighed another Nepali, Lama Dawa Pasang(43), who had been helping Lili Maya during her visit. Lili Maya’s neighbors often ask her, “Your husband looked so happy when he was visiting you two months before he passed away. What happened to that happy man? What happened in South Korea?” Shocked by his youngest son’s tragic death, Bal Bahadur’s father -a former soldier- is suffering from amnesia. In Nepal, when a family member dies, they make an altar at home to display a photo of the deceased and burn incense every morning and evening. ”Mom, we only do this for dead people. Did Daddy die?“ Lili Maya’s seven-year-old daughter asked. “No, your father has gone abroad to work,” replied Lili Maya. But that did not stop Lili Maya from crying. “I want to die, too. But when I think of these poor children, I can’t.”# Dhan Raj Ghala(40) “I am enocent. I have no mistake. Company cheating me. I am no crazy […] company take my signiture [...] please investigation please” This is part of Dhan Raj Ghala’s letter, hand-written in English. He apparently died as a result of a suicide by hanging in June 2011 while working at a futon factory in Dalseo District, Daegu City. Dhan, who first came to South Korea in September 2010, even had a plane ticket booked to go back to Nepal. But, for some reason, he still ended up with the same tragic choice. Upon seeing a Korean reporter on August 31st in their home in Pokhara, Dhan’s wife Man Maya Ghala(48) and Dhan’s younger brother Bhim Raj Ghala(36) began talking about what had happened 8 years ago. Bhim said he had to go to South Korea because he could not let his brother go without knowing why he had to die there. To Bhim, his older brother was a man who loved his family more than anything and a hard-working person. “After seeing the letters, I thought Dhan must have been bullied at work,” Bhim explained. “He could have suffered from depression after learning he had signed something without knowing what it was. In the letter, he was worried that the company did something bad.” Dhan left another short letter written in Nepali, as well. He wrote, “I’ve done nothing wrong. I once fought with another worker from Mongolia. I don’t know what that Mongolian guy told Korean people… (The company) is cheating me.” Similar letters had also been sent twice to a manager of the company, in which Dhan wrote, “We used to talk to each other. But you don’t talk to me these days. I don’t understand. Please tell me why.” The company, however, denied the claims made by Dhan. They insisted that there was no bullying and that Dhan had never signed any document. It’s been told Dhan found Korea’s alternating shifts between day and night extremely difficult. Since mid-April, Dhan had been only given night shift for two months until his death. “My husband told me he could not sleep when he was working night shifts,” Man Maya explained. A source at a labor union said, “Dhan could have been very stressed due to night shifts and workplace bullying. When the company sounded as if they were to fire him, he must have felt extremely pressured.” In Nepal, when fathers bring gifts from overseas, they share it with neighbors. “When my children received their portion, they looked rather sad. They must have thought of their late-father,” Man Maya’s voice trembled as she recalled how it wounded her children. Her daughter and son were ten and five, respectively, at the time of their father’s death. Now they’ve grown to become a college student and a middle school student. ”I will never forgive those people who did wrong things to my father,“ Dhan‘s son vows to take revenge whenever the absence of his father strikes him. The siblings made a promise to each other not to go abroad no matter what. Nevertheless, Man Maya and Bhim said they did not hate Koreans. “You see in South Korea, as well as in Nepal, there are good people and bad people. Sadly, my husband met bad people. I don’t want to blame all Koreans because of them. Still, I want those bad ones to be punished.” Kathmandu·Dong kharka·Pokhara Ki Mindo key5088@seoul.co.krEnglish Translation: Lee Myungju ana.myungjulee@gmail.com ▶The Seoul Shinmun plans to cover more in-depth stories involving migrant workers, marriage migrants and migrant children in South Korea. If you have experienced or witnessed wage theft, uncompensated workplace injuries, verbal and/or physical abuses, we are waiting for your news tips. Email: key5088@seoul.or.kr Also, get in touch with more news tips and stories on bullying and any form of discrimination against marriage migrants and migrant children. Your news tips will strictly remain anonymous and protected.
  • The 2019 Migrant Report : Betrayed Korean Dreams

    The 2019 Migrant Report : Betrayed Korean Dreams

    Unusually high 30 percent suicide rate ofNepali non-skilled migrant workers in South Korea...“Fallen to the lowest rung of the workforce ladder,the highly educated are frustrated by harsh labor conditionsand discrimination” Migrants. Are they a solution to smooth out the approaching demographic cliff or are they a problem to exacerbate already tough employment and marriage prospects? Currently, there are 2.42 million migrant workers, marriage migrants and migrant children living in South Korea. This number has grown by 1.25 million in the past 10 years. In reality, local farms and factories cannot function without migrant workforces. Yet, many still brand migrant workers as “job snatchers”. Also, the so-called “multicultural family”, which consists of a Korean local married to a foreign spouse, makes up about 2 percent of the total population, with the number of individual family members surpassing one million. Nevertheless, many people still stigmatize marriage migrant women with scam marriages and view them with contempt. The Seoul Shinmun‘s Special Feature Reporting titled ’The 2019 Migrant Report: Betrayed Korean Dreams‘ will bring you a series of articles on ▲migrant workers ▲marriage migrant women ▲migrant children as we have been working to expose the discriminatory reality and debunk some of the groundless blames against them. The first episodes will shed light on systematic loopholes as they focus on young migrant workers who came to South Korea with their hearts filled with ’Korean Dreams‘ but ended up committing suicide.Suicides of Nepali migrant workers particularly deserve attention. According to the data that the Seoul Shinmun obtained from the Embassy of Nepal in Seoul, from 2009 to 2018, there were a total of 143 deaths of Nepali people on South Korean soil. Among them, 43 people committed suicides, accounting for 30.1 percent. Most of these deaths involved E-9 non-professional employment visa holders who had been employed at farms and factories that suffer a chronic labor shortage. While these tragic deaths repeat every year, the South Korean government does not have a clue why so many migrant workers make such an extreme choice. In contrast, when we looked at the cases of migrant workers from other countries such as Myanmar, there was a total of 51 deaths and 4 involved suicide, from 2011 to August 2019. Suicides rate is relatively low among Vietnamese migrant workers. There was zero suicide out of the 14 deaths from 2017 to August 2019. All these numbers have been confirmed with respective embassies. Seo Seonyoung, a Sociology researcher at Yonsei University says, “Nepali migrant workers who come to South Korea under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tend to be highly educated.” Seo also notes how their families have great expectation for them. “But as soon as they step into the workplace, they would find themselves fallen to the lowest rung of the workforce ladder and the unbearable stress could eventually force them to commit suicide.” There are growing voices calling for a systematic improvement to end the vicious cycl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been endeavoring to strengthen ties and cooperation with ASEAN countries as part of its ’New Southern Policy‘. Also, migrant workers are needed to compensate for the labor shortage. Hong Sung Soo, Law professor at Sookmyung Women’s University says, “Discrimination and xenophobic reactions towards migrants are not only inappropriate but also not clever at all if we consider our industrial and demographic realities.” Kathmandu·Dong kharka·Pokhara Ki Mindo key5088@seoul.co.krEnglish Translation : Lee Myungju ana.myungjulee@gmail.com ▶The Seoul Shinmun plans to cover more in-depth stories involving migrant workers, marriage migrants and migrant children in South Korea. If you have experienced or witnessed wage theft, uncompensated workplace injuries, verbal and/or physical abuses, we are waiting for your news tips. Email: key5088@seoul.or.kr Also, get in touch with more news tips and stories on bullying and any form of discrimination against marriage migrants and migrant children. Your news tips will strictly remain anonymous and protected.
  • ‘쇼미더머니8 우승자’ 펀치넬로, “현실 아닌 듯” 꿈이 이루어졌다 [종합]

    ‘쇼미더머니8 우승자’ 펀치넬로, “현실 아닌 듯” 꿈이 이루어졌다 [종합]

    ‘쇼미더머니8 우승자’는 펀치넬로였다. 27일 오후 11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된 Mnet ‘쇼미더머니8’에서는 세미파이널 진출을 확정 지은 BGM-v 크루의 서동현, 영비, 펀치넬로와 40크루의 타쿠와가 우승을 놓고 최종 대결을 펼쳤다. 먼저 세미파이널 1라운드에서는 BGM-v 크루 영비와 서동현이 대결을 펼쳤다. 영비는 ‘소년’이라는 곡으로 자신의 꿈과 포부를 노래했다. 서동현은 ‘전화번호’라는 곡으로 본인의 특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2라운드에서는 40크루 타쿠와 대 BGM-v 크루 펀치넬로의 무대가 이어졌다. 타쿠와는 ‘갈래’ 무대로 거칠고 시크한 스타일의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펀치넬로는 안티팬들에게 전하는 경고 메시지를 담은 곡 ‘정글’로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투표 결과 결승 진출 래퍼는 BGM-v 크루 영비와 펀치넬로로 압축됐다. 펀치넬로는 10cm의 권정열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미안해서 미안해’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진심을 담은 가사로 관객에게 감동을 준 펀치넬로는 울먹거리기도 했다. ‘쇼미더머니8’ 최종 우승자로는 BGM-v 크루 펀치넬로가 호명됐다. 그는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생각치못한 부분이라 현실감이 없는데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파이널에 올라 펀치넬로와 대결을 펼친 영비는 ‘노 캡’으로 무대를 꾸몄다. 영비는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랩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편 펀치넬로는 28일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팬들에게 “정말 뜻깊고 배워가는 것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으로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다들 사랑하고 우리 BGM-V , 그리고 40 형들 너무 고생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마지막 대형서점’ 마저 사라지나…존폐 위기감 확산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마지막 대형서점’ 마저 사라지나…존폐 위기감 확산

    하와이 호놀룰루 도심에 자리한 오프라인 대형 서점 ‘반스앤노블'(Barnes&Noble)이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반스앤노블은 북아메리카의 초대형 서점 체인 업체로 한 때는 미국 전역에서 총 439곳의 체인점을 운영하는 등 대형 서점의 입지를 굳건히 해온 바 있다. 특히 하와이 소재 해당 서점은 오랜 기간 동안 운영되어 온 대표적인 오프라인 서점이라는 점에서 하와이인들에게 서점 그 이상의 의미로 존재했다는 평가다. 그렇기에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존폐 위기’ 논란은 반스앤노블에 대한 향수를 가진 하와이 주민들에게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 무엇보다 해당 오프라인 매장이 가진 하와이의 ‘마지막’ 남은 대형 서점이라는 명칭 덕분에 존폐 논란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초까지만 해도 하와이 주 전역에 크고 작은 약 200여 곳의 오프라인 서점이 활발하게 운영돼 왔다. 하지만 9월 현재 남아 있는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반스앤노블이 유일한 상황.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는 사이 하와이의 중대형 서점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각종 서적이 유통되는 온라인 서점이 장악에 성공한 셈이다. 특히 이번 오프라인 서점의 폐점 여부 논란은 지난 2011년부터 줄곧 제기돼 왔다는 점에서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큰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매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해당 서점의 존폐 논란은 경영상의 이유에 기인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기준, 온라인 유통 업체 ‘아마존’이 북아메리카 서적 유통 시장의 약 84%를 장악한 반면 같은 기간 반스앤노블의 점유율은 2% 수준에 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반스앤노블의 저조한 시장 장악력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마존의 시장 상한가 대비 반스앤노블의 가치가 0.05%를 밑돌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온라인 대세와 오프라인 서점의 몰락 오프라인 서점의 몰락은 2010년대에 들어와 꾸준하게 목격돼 왔다. 지난 7년 동안 반스앤노블 본사는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운영됐던 자사 오프라인 서점의 수를 기존 439개에서 90여개로 크게 감축했다. 아마존 등 온라인 서점의 득세 앞에 지난 1873년 일리노이주를 기반으로 설립된 유서 깊은 오프라인 서점 역시 경영상의 이유로 한 오프라인 매장 폐점 기조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하와이 호놀룰루 중심에 소재한 매장만큼은 폐점 위기를 버텨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해당 매장은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대형 쇼핑몰 알라모아나(Alamoana)에 입점, 만만치 않은 임대료 부담에도 불구하고 하와이에 남은 마지막 대형 서점으로의 입지를 굳건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것. 그러나 매년 존폐 논란에 휩싸인 해당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찬반 의견은 올해도 피해가지 못한 형편이다. 때문에 현지에 거주하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마존 등 온라인 서점 대비 비교적 높은 가격대에 판매되는 해당 오프라인 서점의 서적 판매가에도 불구하고, 의무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서 책을 구매하자는 유의미한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하와이 주립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수업 중 해당 논란에 대한 토론이 자유롭게 진행됐을 정도다. 해당 수업에 참여했던 담당 교수와 재학생 중 다수는 오프라인 서점이 존립할 수 있다면 비교적 고가의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서점에서 직접 각종 연구 서적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오프라인 서점의 존재 이유에 대해 힘을 실어주는 이들의 입장은 자녀와 함께 서점을 찾아서 시간을 보내는 등 온라인 서점이 대체할 수 없는 오프라인 서점이 가진 ‘특별한 의미’에 주목하고 있는 것. 특히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지지를 보이는 이들의 경우, 온라인 유통 시장의 득세가 전 세계적인 추세라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서도 ‘서점’ 만큼은 이 같은 현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하와이 오아후 섬에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이현정 씨(39)는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각국에서 오프라인 대형 백화점 등의 체인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서점의 경우에는 일반 백화점이 사라지는 추세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서점은 일반 상점과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많은 수의 서점 애호가들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는 등 하와이 현지 서점에는 공동체적인 문화가 내재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서점에서 자녀들 숙제에 필요한 워크북을 구매하거나 구경하는 것이 큰 재미였는데, 점점 이런 재미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일리마 양(14)은 “도서관이 문을 닫는 휴일에는 서점에서 다양한 자료를 읽어가며 숙제를 하는데 도움을 받았었다”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차례 이상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해왔다. 만약 서점이 폐점된다면 어디에서 책을 사고 친구들과 책을 나눠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현지 중학생 카일라 양(13) 역시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서점을 가는 것도 좋아했었다”면서 “언론과 SNS 등에서는 오프라인 대형 서점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두고 마치 하나의 당연한 현상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지 주민들의 오프라인 서점 운영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에도 불구, 폐점 위기에 대한 논의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앞서 하와이가 마주하고 있는 유사한 상황이 미국 대륙 곳곳에서 발생한 바 있었다는 점에서 마지막 남은 대형 오프라인 서점의 폐점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앞서 2010년대 중반 미국 메릴랜드(Maryland) 베데스다(Bethesda) 고층 건물에 입점해 있던 반스앤노블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아마존 북스 매장이 들어선 것을 회상할 때 최근 제기되고 있는 하와이 오프라인 서점의 위기설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호놀룰루=임지연 통신원 808ddongcho@gmail.com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 국립광주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 국립광주박물관

    #빗살무늬토기 #국립광주박물관 #중흥산성쌍사자석등 “빗살무늬토기에는 금이 패어져 있었다...(중략)...예쁘라고 팠다. 금이 있어야 사람이 쓰는 물건이다라고 아빠는 그랬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김훈, 1995, 문학동네> 정말 우리 조상님들은 빗살무늬토기의 금을 예쁘라고 팠을까? 명쾌한 상상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빗살을 그었으리라.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한 소방대원과 맹인안마사의 죽음을 통해 신석기 시대의 농경문화와 현재의 기술 문명을 잘 잇고 있다. 더 이상 빗살무늬토기는 품질이 투박하고 조악한 토기가 아니라 문명의 시원(始原)을 증명하는 도구이자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 문명이라고 작가는 에둘러 말한다. 너무도 오래되어 어쩌면 잊혀진 시간들, 그러기에 더더욱 낯설게 남겨진 갈돌, 돌칼, 돌도끼, 빗살무늬토기를 만나러 간다. 빛고을 광주(光州)국립박물관이다.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이미 훌쩍 넘어가버렸다. 그러하기에 국립광주박물관 나들이는 ‘딱’ 제철을 맞았다. 광주체고 길로 올라가도 되고, 매곡동을 지나 직진해도 된다. 국립광주박물관은 광주 도심 안에 적당히 붙어 있으면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시간도, 풍경도 충분히 여유롭게 흘러가는 듯 모든 것들이 평화롭다.국립광주박물관은 지역박물관으로서는 단연 맏형이라고 불러도 된다. 왜냐하면 광복 이후에 우리 손으로 지은 최초의 지방 국립박물관이 바로 국립광주박물관이기 때문이다. 1978년 12월 6일에 개관한 국립광주박물관은 광주와 전남지역의 오랜 농경문화와 전통문화의 흔적을 잘 간직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박물관의 규모도 상당하다. 대지면적이 82,993㎡에 달하고 연면적은 15,127㎡, 건축면적 5,575㎡에 이르며 소장품만 120,000여점이 넘는 곳이다. #강진고려청자 #1975년신안해저유물 #광주나들이장소현재 국립광주박물관은 1층과 2층, 그리고 옥외전시실로 크게 구획이 나뉜다. 우선 박물관 로비로 들어서면 국보 제 103호인 ‘중흥산성 쌍사석등’이 보이고 이를 지나면 ‘선사, 고대문화실’이 바로 나온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신석기시대의 덧무늬토기, 청동기시대 간돌검을 비롯하여 국보 143호로 지정된 청동기시대의 화순 대곡리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1층에는 ‘농경문화실’도 있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농경유적인 광주 신창동 유적과 아울러 철기 시대의 다양한 농사도구들도 볼 수 있다.박물관 2층에 올라가면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불교미술, 도자, 서화 등 다양하면서도 진귀한 유물들도 만날 수 있다. 2층 전시관에는 수준 높은 불교 미술을 증명하는 사리장엄구, 불교 의식구, 불상 등도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청자의 본향인 강진에서 만든 세련된 청자와 조선의 분청사기, 백자 등도 보존 전시되어 있어 선조들의 수준 높은 미의식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2만 4천여 점의 진귀한 유물들 중 13세기 후반 중국 원(元)나라 도자기와 연적 등도 전시되어 있어 14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동북아 국제교류의 양상도 이곳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또한 박물관 옥외 전시실은 편안한 휴식과 나들이 공간이자 광주 주변 지역 옛 절터, 유적 등에서 옮겨 온 문화재들도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전남 고흥의 고인돌 무덤방과 강진의 청자가마터, 광주 장운동의 오층석탑 등이 복원 전시되어 있어 가족 단위의 가을 나들이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국립광주박물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편안한 공원 같은 곳이다. 가을 나들이 공간으로는 제격이다. 2. 누구와 함께? - 연인끼리 조용한 데이트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 공간. 3. 가는 방법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430번지) - 버스 : 송정 29, 송정 33, 문흥 53, 상무 63, 용전 84, 용전 85, 첨단 95번 광주박물관 하차. 4. 특징은? - 호남 문화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 광주를 넘어 호남 전역의 농경문화의 시작점을 확인.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산한 편이다. 가족 단위로 다녀오면 좋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1층 선사고대문화실, 2층 신안해저문화재실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매곡동 주변으로 가면 맛집들이 많다. ‘전승규의 감자탕이야기’, ‘윤씨네돼지갈비’, 돌솥밥 ‘넝쿨채’, ‘돼지전설’, 칼국수 ‘달자네집’ 8. 홈페이지 주소는? - 요금 및 운영 관련 자세한 내용은 https://gwangju.museum.go.kr/kor/index.do 으로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광주시립미술관, 중외공원, 광주어린이대공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국립광주박물관은 광주 안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덜 붐비는 곳이지만 소장품이나 박물관 연혁으로 보아서는 국내 최고 수준의 박물관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까지 너끈히 아우를 정도의 박물관이 바로 국립광주박물관이다. 격(格)을 제대로 갖춘 정통 박물관.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2021년부터 군산에서 전기차 SUV 생산

    오는 2021년부터 전북 군산에서 전기차 SUV가 생산된다. 지난 6월 한국GM 군산공장을 인수한 명신 컨소시엄은 2021년부터 전기차를 만들어 납품하기로 하는 내용의 첫 계약을 했다고 26일 밝혔다. 명신은 이날 전북 군산공장에서 다국적 전기차업체 퓨처모빌리티와 연간 5만대 이상의 전기차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퓨처모빌리티는 2015년 설립된 다국적 전기차 개발회사로, 2020년부터 중국 난징 공장에서 연간 30만대의 전기차를 양산할 예정이다. 명신은 2021년부터 연간 5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해 퓨처모빌리티에 납품하며, 이 차량은 중국을 거쳐 유럽과 미국에 수출된다. 명신이 만드는 전기차는 첨단 기술을 탑재한 스포츠 유틸리티(SUV) 전기 차량 ‘바이튼 엠바이트’(BYTON M-Byte)다. 명신은 올해 말부터 전북도와 함께 자체 전기차 모델 연구개발에도 나서 장기적으로는 군산공장에서 연간 20만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명신은 지난 6월 2550억원을 들여 한국GM 군산공장 부지(124만㎡)와 생산라인을 인수했다. 전북도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었던 군산공장에서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게 돼 전북이 전기차 생산기지로 첫발을 뗐다고 설명했다. 도 관계자는 “명신이 군산에 안착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관 부품기업과 동반 성장하도록 연구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성추행’ 레바인은 해고했는데…도밍고 출연 앞둔 메트는

    ‘성추행’ 레바인은 해고했는데…도밍고 출연 앞둔 메트는

    LA 등에서 성추행 의혹 제기 후 뉴욕 메트 오페라에서 첫 미국 무대내부 단원 간담회서 ‘레바인 해고’ 때와의 형평성 문제 제기 연이은 성추문에 휩싸인 성악계 거장 플라시도 도밍고(78)가 논란 속에 세계 오페라계의 정점에 서 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 무대에 선다. 과거 부적절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폭로가 이어진 진원지 대부분이 미국 단체들로 나타난 가운데 폭로 이후 처음 서는 미국 무대다. AP통신은 23일(현지시간) 도밍고가 뉴욕 메트 오페라에서 25일 공연하는 베르디 ‘멕베스’에 출연한다며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오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작품에서 도밍고는 25일 첫 공연을 비롯해 두차례 무대에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호흡을 맞춘다. 새 시즌 시작과 함께 세계 성악계의 가장 ‘핫’한 신구 스타들을 캐스팅한 작품을 준비했지만, 메트 오페라의 고민은 깊어 보인다. 당장 안팎에서는 불명예 퇴진한 제임스 레바인 명예 음악감독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메트는 2017년말 과거 10대 소년을 성추행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된 레바인을 정직처분한데 이어 해고했다. 레바인은 메트의 수석지휘자와 음악감독을 거치며 이 단체에 40년간 몸담은 상징적인 인물이었지만, 단체의 자체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되자 결국 해고통보를 받았다. 피터 겔브 메트 오페라 총감독은 지난 21일 리허설을 마친 뒤 단원들로부터 ‘도밍고 파문’에 대해 1시간 가량 의견을 들었는데, 이 자리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AP는 “일부 참석자가 레바인 사례를 언급하며 단체가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도밍고의 출연에 반대하는 일부 단원은 건강 등 개인 사정을 이유로 이번 작품에 함께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바리톤으로 음역을 내린 고령에도 여전한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도밍고의 파문을 놓고 세계 성악계는 찬반으로 갈린 모습이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댈러스 오페라 등 영미권 단체들은 도밍고와의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는 등 선을 그었다. 미국 오페라노조(AGMA)는 자체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반면 유럽은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도밍고의 예정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르디 오페라 ‘루이자 밀러’ 무대에 출연한 도밍고가 당시 박수를 받은 모습은 유럽 공연계와 관객들의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네트렙코, 소냐 욘체바 등 동료 가수들은 도밍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AP는 도밍고가 2003년부터 총감독을 맡은 로스앤젤레스(LA) 오페라와 1999/2000 시즌 워싱턴오페라에서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도밍고는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V라인 다이어트 ‘세리번나이트’, 토스 행운 퀴즈 등장

    V라인 다이어트 ‘세리번나이트’, 토스 행운 퀴즈 등장

    헬스케어 브랜드 세리박스(SERY BOX)가 토스 행운 퀴즈에 등장할 예정이다. 오늘 오전 11시에 공개되는 퀴즈에서는 ‘세리번나이트 V라인 다이어트 보조제’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며, ‘세리번나이트 V라인 다이어트’ 검색 시 답을 확인할 수 있다. 세리박스는 토스 행운퀴즈와 더불어 오전 11시부터 오후 23시 59분까지 ‘V라인 다이어트 세리번 나이트 오늘만 반값’ 이벤트를 진행한다. 홈페이지 회원가입 시 1만 원 쿠폰을 제공하고, 세리박스의 인기 제품을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선보인다. 스타들의 패션을 책임지는 ‘슈스스’ 한혜연이 선택한 다이어트 잇템으로 알려진 ‘세리번 나이트’는 국내 최초 V라인 다이어트 보조제로, 체지방 감소 기능성 인정을 받은 건강기능식품이다. 브랜드 관계자는 “세리박스 판매 1위 제품인 세리번 나이트는 체지방, 스트레스, 피로와 얼굴, 체형을 한 번에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템이다. V라인을 꿈꾸는 분과 스트레스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분, 회식과 야식에 부담을 느끼는 분에게 세리번 나이트를 권할 수 있다”라며 “잠들기 전 1포만 섭취하면 상쾌한 아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세리박스는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가장 효과적이고 건강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브랜드로, 안전성 검사와 GMP 인증 공정을 거쳐 안전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더불어 초임계 추출법과 합성첨가물 배제 등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섭취해도 안전하고 건강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채굴 서비스 기반 암호화폐거래소…일일 거래량 9000억 달성

    채굴 서비스 기반 암호화폐거래소…일일 거래량 9000억 달성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면서 암호화폐 거래소에 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부산광역시가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최종 지정되면서 블록체인 기반의 미래 성장전략을 위해 암호화폐 특구 및 암호화폐 거래소를 중심으로 경제체제를 바꿀 계획이다. 물론 유재수 부시장의 언급처럼 “현재 부산은 블록체인 특구지, 암호화폐 특구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암호화폐 공개(ICO)를 정책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ICO를 활용하면 민간에서 혁신성을 스스로 판단하고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해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혁신정책의 발표가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이에 따라 본지는 호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인 BW Exchange Platform(BW.com)의 캐시 주 대표(CEO)의 인터뷰를 통해 암호화폐 거래소의 미래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BW는 어떠한 거래소인가. “BW.com은 2014년 비트코인 채굴자들을 위한 마이닝 풀로 시작했다. BW 마이닝 풀에서 현재까지 30만 비트코인, 150만 이더리움, 그리고 300만 개의 라이트코인을 채굴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8년에는 채굴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를 시작했다. BW에는 6가지 주요 서비스가 있다. 현물 거래, 옵션 거래, P2P/C2C 거래, OTC 거래, 토큰 런치패드 IEO/To-The-Moon 상장 프로그램, 그리고 유동성/시장조성 서비스가 있다. BW.com에는 100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있으며 최근 일일 거래량 9000억 이상을 달성하고 있다. 일일 실사용자는 대략 4만명이며 BW.com 도메인 자체만으로 100억 이상의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 -BW가 한국에서 이룬 성과는 무엇이고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처음으로 제 관심을 이끈 프로젝트는 GMB다. GMB는 Gold Master&Branch의 약자로 마스터 코인과 브랜치 코인, 두 개의 코인으로 이중 암호화폐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빠른 속도의 TPS로 기존 블록체인 한계점을 해결하고 쇼핑몰 및 카드와 결합하여 실생활에서 사용이 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라 앞으로 기대가 크다. 또한 GMB는 BW에 처음으로 상장한 한국 프로젝트다. 그 다음 프로젝트는 Grabity이다. Grabity는 공개형 블록체인이며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들이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운영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Grabity의 SDK는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90% 이상의 앱 서비스에 적용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ZikTalk 직톡이다. 직톡은 국제 시장을 대상으로 한 언어 학습 공유 플랫폼이다. 플랫폼에 1600명 이상의 강사들이 등록되어있으며 학생들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직톡은 또한 국제 프리랜스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법률과 마케팅 등 산업 분야를 불문하고 전문가를 찾아서 서비스를 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마지막으로는 최근에 런치패드를 통해 상장한 LC+코인이다. 실제 병원도 방문해 보았고, 의료강국인 대한민국의 병원에서 사용될 토큰이라고 하니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해외에 많은 관광객이 의료투어를 한국으로 가곤 한다.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확실한 토큰 이코노미가 결합된다면 세계를 대표하는 의료코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 -한국 프로젝트들의 대한 BW 시각은 어떤가. “다양한 산업에서 많은 프로젝트들이 생겨나고 있다. BW는 한국 프로젝트들이 중국에 원활히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단순 거래소 역할이 아닌 특히 한국 프로젝트 개개의 프로젝트들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통해 BW의 중국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의 리소스를 공유하고 있다. 많은 한국 프로젝트들이 BW를 찾아주시고 선호해주시고 있다. 일단 한국 프로젝트들은 아이디어가 굉장히 참신하고, 커뮤니티가 활발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에서 BW의 운영 정책이나 로드맵은 무엇인가. “BW는 한국 시장에서 매우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시장은 저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BW에 상장된 한국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20개가 넘는다. 또한, 현재는 한국에서 BW IEO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가 많다. 한국 시장 내 가장 중요한 다음 행보는 BW 원화 마켓 오픈이다. 이외에도 한국 시장 내에서 준비하고 있는 획기적인 두 가지의 목표가 있지만 아직은 밝힐 수 없다. BW는 곧 빗썸과 업비트와 함께 한국 내 3대 거래소가 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다.” -BW 글로벌 CEO와 거래소의 관점에서는 토큰 경제와 블록체인 기술이 얼마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블록체인 기술과 토큰 경제는 동등하게 중요하며 서로 상호 간에 중요하게 적용된다. 기술에만 집중을 하고 토큰 경제를 방치하면, 기술이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어렵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토큰 경제에만 신경을 쓴다면 프로젝트가 사기가 될 가능성이 있고 프로젝트 자체의 보안성과 내구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토큰 경제는 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의존을 해야 된다. 우수한 블록체인 기술은 좋은 토큰 활용도를 개발해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할 수 있다.” -한국 블록체인 산업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무엇인가. “블록체인 산업의 미래는 두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바라볼 때에는 한국에서 개발되고 있는 다수의 좋은 메인넷 프로젝트들이 있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한국이 블록체인 기술 산업에서 선두 주자로 발돋움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한국의 다수의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해 생태계를 변화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대다수의 한국 유저들은 기술에 빠르게 적응을 하고 있다. 포괄적으로 한국의 블록체인 산업은 잠재성이 굉장히 많지만 발전의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BW 거래소가 원화마켓을 개장하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원화 마켓이 가장 핵심적이다. 한국에서는 원화 마켓이 가장 활발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원화 마켓 없이는 거래소로서 선두 주자가 되기 매우 어렵다. 지금 가장 핫 한 해외 거래소인 BW.com이 한국의 3대 거래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원화 마켓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BW.com 포함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BW는 상품, 보안, 고객 서비스, 사용자 경험에 항상 집중을 할 것이다. BW는 BitBank의 지갑 기술을 이용해서 암호화폐 자산들을 보호한다. BW는 꾸준히 거래소 자체의 서비스들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더 좋은 프로젝트들을 많이 상장 시키고, 장외 거래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옵션 거래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BW는 IEO 시장에서 인기가 매우 좋다. 최근에, To-The-Moon 프로그램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또한, BW는 8개 국어의 커뮤니티가 있다. 항상 BW는 고객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고 있다.” -BW는 향후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위해 한국 회사들과 어떻게 협업할 예정인가. “저희는 항상 한국에서 개발된 좋은 암호화폐들을 상장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저희 자원 내에서 한국 프로젝트들이 중국, 러시아, 터키, 아세안 시장 등에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있다. BW는 한국 프로젝트들이 계속 해외로 진출을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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