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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핵개발 포기 유도 능동 포석

    ◎「한반도 비핵화 11·8선언」의 의미/사실상의 NCND 포기… 핵주권 확보/군축에 새 전기… 남북대화의 장애 제거 노태우대통령이 8일 발표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은 무엇보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개발을 포기토록 유도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핵위협을 제거하겠다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선언은 한국측의 일방적인 핵비무장 조치를 통해 북한의 핵개발의 명분과 이유를 말소시킨다는 뜻과 이로인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지역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선언은 최근들어 핵문제가 남북한 쌍방에 초미의 현안으로 부각됐고 대화진전에 결정적인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앞으로 한반도에서의 신뢰구축과 군비축소를 위한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부 당국은 노대통령의 비핵정책 선언으로 북한이 더이상 핵사찰을 거부할 수 없도록 국제적 여건을 조성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을 우선적인 효과로 꼽고 있다.북한은이제까지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인식아래 핵개발의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핵무기를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하지 않는다는 노대통령의 선언은 주한미군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완전히 철수토록 하겠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한국에 미국의 전술핵이 있다면 한미간 협의에 의해 조속히 철수될 것이며 완전철수가 이루어지면 비핵화선언의 조치가 구현됐음을 선언하는 절차가 한차례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범세계적인 NCND(확인도 부인도 않는다)는 정책에 맞추어 우리 정부도 핵문제에 있어 NCND의 입장을 취해왔던 기존의 방침이 핵부재쪽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즉,우리 정부의 NCND정책 포기를 시사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한다는 것은 강제사찰결행 등 국제사회의 엄청난 압력에 직면할 수 밖에 없으며 결국은 핵비확산조약(NPT)의 당사국으로서 핵사찰의무를 수용하고 이번 노대통령의 선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정부는 소련은 물론 중국까지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으므로 중소를 통해서도 대북한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노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오는 12월1일로 일정이 잡혔다가 취소된 부시미국대통령의 방한에 맞추어 발표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의 순방계획이 취소되고 오는 11일부터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접촉이 시작되는 정황을 고려해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이날 서둘러 발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북한측이 대표접촉에서 실현가능성이 없는 비핵지대화를 들고 나오며 논쟁을 벌일 소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정부는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지대화선언은 중국·소련등 주변의 핵보유국이 모두 합의하여 참여하는 절차를 필요로 하는만큼 비현실적인데다 미국의 핵우산보호제거 등 사실상 한미동맹관계를 약화시키려는 저의를 깔고 있어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노대통령의 비핵화선언은 1년반∼2년에 걸친 검토작업 끝에 결실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대통령은 올들어 두차례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대통령과 한반도의 비핵화문제에 대해 긴밀한 협의를 가졌다. 특히 지난 9월27일 부시대통령의 신핵정책이 발표된 이후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상황변화에 적절한 비핵화정책 선언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핵무기존재여부에 상관없이 한미간의 긴밀한 안보협력관계가 유지되는 한 재래식 전력으로도 북한의 전쟁도발가능성을 억제하는데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린데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지난 걸프전에서도 입증된 듯이 정밀유도무기의 위력을 감안할 때 통상적인 전력만으로도 우리의 안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특히 비핵화선언에도 불구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미국의 핵우산보호는 유효하다고 강조하고 있다.핵우산보호는 반드시 한반도내에 핵을 배치해야 가능한 것은 아니며 전폭기등 고도로 발달된 운반수단에 의해 역외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이는 물론 우리의 안보적 상황을 고려한 부연설명이다. 노대통령이 비핵화선언과 함께 화학·생물무기를 전면적으로 제거하자고 제의한 것도 남북한 상호군축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전향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의 비핵화선언으로 우리가 그동안의 특수한 안보상황에서 비롯된 제약을 벗어나 독자적인 핵정책을 이행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핵정책의 변화과정/75년 이후 NCND정책 일관/「11·8선언」으로 비핵시대 개막 노태우대통령의 8일 비핵·비화생정책 선언으로 한반도는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마침내 「비핵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반도의 핵정책 변화과정을 시기적으로 구분한다면 지난 75년 핵무기 비확산 조약(NPT)에 가입하기 이전까지의 핵정책 불재시대,NPT 가입이후 75년부터 노대통령의 이날 비핵화 선언까지 남한내 핵무기 존재여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다」는 소위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정책 시기로 나눌수 있다.따라서 노대통령의 비핵화 선언으로 인한 「비핵시대」는 한반도 핵정책변화의 제3기에 해당되며 91년은 비핵시대의 원년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의 핵정책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을 하기 시작한 것은 1년반 전쯤부터라고 정부의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이 시기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문제가 국제적인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하기 시작한 때이며 한미 양국은 이때부터 북한의 핵무기개발 저지를 위한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게 됐다.따라서 한반도의 핵정책은 북한의 핵무기개발 저지와 직결된다고 하겠다. 한미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포함한 한반도 핵정책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부터였다.북한의 한시해 조평통부위원장­솔로몬미국무부차관보 면담(미국·6월5일),진충국북한순회대사의 핵사찰수용발언(IAEA 이사회·6월7일),스틸웰전주한미사령관등 예비역 장성 8명 유해송환문제 협의 위한 평양방문(6월20일)등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상옥외무장관·바돌로뮤미국무부국제안보담당차관 회담(6월22일·서울),한·미·일 정책실무협의회(6월23일·워싱턴)등을 갖고 한미 양국은 긴밀한 협의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이어노대통령과 부시미대통령은 지난 7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핵정책에 대한 교감을 이룬뒤 외무부는 8월1일 「북한과 핵문제를 논의할수 있다」며 한국의 독자적인 핵정책 주도 원칙을 발표했었다. 한미 양국은 또 8월6∼7일 하와이에서 고위안보정책협의회를 갖고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입장을 구체화,9월 뉴욕 정상회담에서 이를 확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노대통령의 이날 발표는 당초 12월초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될 계획이었으나 부시대통령의 아주방문 무기연기로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으로 관측된다.노대통령의 비핵화선언은 한국이 한반도의 핵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고 분석된다. 정부의 궁극적인 한반도 핵정책은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철저히 저지,한반도에 핵이 전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한반도 핵정책의 변화 제1기 핵정책 부재시대(∼75년) 제2기 NCND정책시대(75∼91년) 제3기 비핵화시대(91년∼) 제4기 핵부재시대(?) 제5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시대(?)
  • 「작은주권」 모여야 「큰민주」가꾼다/김승희 시인(선택의날 아침에)

    ◎가시나무 심고 어떻게 장미꽃 기대하랴/마을살림 알뜰히 가꿀 참일꾼 가려내야 인생이 우리에게 커다란 환멸을 안겨주는 것은 자신이 기대한 이상치수와 현재 자신이 당면해 살고 있는 현실치수와의 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질 때가 아닌가 한다. 목숨을 지탱하고 있는 동안은 누구나 자신의 이상치수와 현실치수와의 괴리감을 느끼고 그 괴리 때문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그것은 그 괴리감이 너무나 커서 환멸이라는 차원조차 넘어선 지가 오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환멸 이후에 오는 밀랍인형 같은 차가운 무관심·냉담의 기류가 양식있는 시민들에게까지 무겁게 드리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꼭 그렇게 차가운 냉담의 한랭전선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문이나 TV뉴스를 보면 꼭 대권전쟁을 방불케 하는 정치선전이 요란하고 때아닌 나으리들의 화려한 지방나들이가 한창이고 그런 대형모임 때마다 손에 손에 들고 흔드는 깃발과 피켓들의 어지러운 몸짓이 뜨겁다 못해 화상을 입히는 것같아 역정이 난다. 국민대중을 한 사람의 인체로 비유할 때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은 너무 열하고 어느 부분은 너무 냉하다면 그건 정상적인 건강과 혈액순환이 이루어지는 정상상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뜨거운 선거열파에 휩쓸려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소속된,또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에 한표라도 더 표몰이를 하려고 그 욕망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고,환멸을 넘어 차가운 냉담의 한파에 냉각되어 있는 민심들은 「도대체 찍고 싶은 정당이나 사람이 없다」 「누구를 찍고자할 만큼 관심이 없다」라는 관심상실 내지 판단상실의 분위기이다. 5월부터 하도 극단적인,영화나 연극보다도 더 극적인 역사의 장면들을 많이 보고 놀라서인지 도대체 광역의회선거를 맞이해서도 감각의 고무줄이 그 탄력성을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그 동안 누적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또 오죽한가. 그러나 한 국가의,한 사회의 민주행정이 잘 운영되고 풀뿌리 민주주의가 착근되기 위해서는 참된 지역일꾼을 잘 뽑아야 하고 그 참된 일꾼들을 통해 우리들의 작은 주권들을 실현하여 자기가 몸담고 있는 작은 지역부터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민주마을」 「부정과 타락이 없는 알뜰한 살림살이」 「일상생활의 점진적 개선」 등을 점차로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풀뿌리가 없는 풀이 자랄 수 없고 풀뿌리가 없는 풀밭에 녹음이 들 리가 없다. 진실하고 탄탄한 풀뿌리를 심어놓아야 그 다음 커다란 민주사회,큰 대의정치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있어야 할 당위(Sollen)로서의 이상형과 현재 있는 현실로서의 우리 모습(Sein)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졸렌」과 「자인」 사이에 있는 커다란 격차 때문에 생긴 자포자기 심리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지지하고 싶은 사람·정당이 없다」라는 선거 허무주의를 만들기도 한다. 여야 정치인에 대한 양비론,여야 정당에 대한 양비론이 그것인데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무차별적으로 혐오해서는 지성을 갖춘 섬세한 판단력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위로서의 아름다운 민주사회의 이상향은 우리가 하루하루 물을 주며심고 가꿔나가야 이루어지는 것이지 당위명제를 견고하게 지니고 혐오만능주의로 현실에 도리질을 하고만 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선이 없을 때 그중에서라도 차선을 선택하는 것,그리하여 차선을 최선으로 천천히 높여가는 애정의 에너지를 가지는 것,그것이 슬기있는 용기이며 미래를 향한 한걸음이 되지 않을까. 돈을 뿌리는 후보는 찍지 말자. 아리송한 흑색선전으로 쟁점을 흐리거나 김빼기를 하는 사람은 찍지 밀자. 되지 않을 코묻은 휴지와 같은 공약을 남발하고 쓸데없는 과대약속을 하는 허풍선이를 찍지 말자.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지난번 온천여행 집단으로 보내준 그 후보 꼭 찍지 마세요. 일해온 사람,일하는 사람,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 후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리지 말고 사랑의 한 표를 던지자. 공익 개념이 있는 사람,공익개념으로 살아온 사람을 찍자. 그리고 아,이제는 제발 지역감정으로 찍지 말자. 입만 열면 민주니 개혁이니 외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응애응애 기저귀 차고 울던 갓난아이로 돌아가서원색적인 향토애에 젖어들어 지성을 상실하고마는 그런 소아병적 추태는 그만 부리자. 먹은 대로 찍는 파블로프의 개노릇도 그만 하자. 만일 광역의회선거에 잘못 찍고 안 찍고 은혜갚으려고 찍고 눈칫밥 먹고 찍었다면 그다음 수서특혜나 그 비슷한 부정비리 대형사건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한마디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가시를 심고서 장미꽃을 기대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그 보다도 빈땅에 아무것도 안 심고서 장미꽃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노릇인가? 그대가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린다면 장미꽃 뿌리를 심어야 한다. 같은 그것 뿐이고 인주빛 묻은 동그란 붓뚜껍을 눌러서 「역사에 나의 지문을 남긴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한표를 신성하게 행사해야 할 것이다.
  • 북의 「완전한 핵포기」 유도 포석/한·미 「IAEA결의안」추진배경

    ◎「재처리시설」등 언급 없어 실효성 의문/협상 때 「전제조건」 걸수 없게 제동 북한이 국제핵사찰 수용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핵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10일 하오(현지시간) 빈에서 35개 이사국과 남북한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한 가운데 14일까지 5일간의 일정으로 개막됨으로써 북한의 핵안전협정 체결문제는 국제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의 북한핵사찰 문제에 대한 입장은 대체로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이 핵안전협정 체결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IAEA이사회가 이번 회의중에 대북핵사찰 수용촉구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북한이 「7월 전문가회의를 거쳐 9월 차기 이사회에서의 협정서명」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들의 진의에 대해 신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협정서명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이제까지 그들이 협정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해온 미국의 핵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이 없고 협정단서조항의 삽입협상을 통해 또다시 지연전술을 구사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본래 핵안전협정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후 18개월 이내에 체결해야 하는 의무사항인데도 북한은 지난 85년 12월 NPT에 가입하고서도 지금껏 미뤄온 게 사실이다. 북한의 이번 핵안전협정체결 의사표명은 밑바닥에는 오는 9월 유엔가입을 앞두고 핵사찰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피하는 한편 특히 이번 이사회에서 채택될 것이 확실시되는 대북 협정체결 촉구결의문의 채택을 모면해보자는 시간벌기 속셈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핵사찰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물론 핵사찰이 일부라도 다른 이유로 유보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IAEA의 기본적인 사찰내용은 ①연 3∼4회 신고된 시설에 대한 일반사항 ②새로운 시설 등 변동에 대한 수시사찰 ③보고내용에 의혹이 있을 때 실시하는 특수사찰 등인데 북한이 이른바 「약간의 자구수정을 위한 협상」을 통해 이를 일부라도 회피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지난 7일 진충국 외교부 순회대사(전 제네바 대사)를 빈의 IAEA사무국에 보내 핵안전협정체결 의사를 표명하면서 「약간의 자구수정을 전문가들의 실무협상을 7월중에 갖자」고 제의했다. IAEA 북한의 핵관련기술자,관련법률전문가간의 협상이 핵안전협정의 골격을 흔드는 것이 될 수 없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협정의 표준문안 가운데 협정체결상대국(북한)의 특수상황에 따라 일부 문구를 조정할 수 있는 관례를 적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관계당국자는 그 동안 북한이 워낙 국제관행에 벗어나는 행동을 서슴지 않은데다 대외적인 신뢰가 쌓여있지 않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단서조항의 자구협상 과정에서 「남한에서의 핵철수 및 미국의 대북핵무기 불사용 천명」을 다시 들고나올 가능성도 완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북한은 그 동안 「핵보유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협정의 효력을 중단한다」는 것을 단서조항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이같은 종래의 주장을 철회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번 핵안전협정체결 의사표명 과정에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북한이 이를 묵시적으로 철회했다면 그것은 최근의 미·북한의 북경 비밀접촉에서 어느 정도 문제가 풀린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미국은 북경비밀접촉을 통해 「미국과 그 동맹국은 선제공격을 받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같은 원칙에 북한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비공식문서로 북한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제공격 없으면 핵사용 없다』는 「소극적 안전보장」은 이미 70년대말 카터 미 대통령 정부 때부터 천명해온 미국의 핵정책인데 이번에 『북한도 이 원칙에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해 문서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 동안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개별국가에 대한 핵사용 여부를 밝히지 않는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 셋째,대북 핵사찰대상에는 핵재처리시설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영변에 건설하고 있는 핵시설은 핵발전과는 관련이 없는 핵재처리시설로 판단되고 있고 이러한 핵재처리시설은 곧바로 핵무기제조로 전환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가입한다 해도 핵재처리시설은 일반 사찰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그 문제제기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소련,중국 등 한반도주변 핵보유국과의 연관관계를 도외시하고 남한에 있어 핵유무에 관해 논란을 하는 것은 오늘날 핵운반수단을 고려할 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핵이 남한의 육상에 있든 한반도 해역의 함정에 있든 오카나와 등 다른 기지에 있든 전략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이 핵개발을 명백히 포기할 경우 핵 유무에 대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ormed Nor Denied)정책에 신축을 보일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이나 상당기간 이같은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관측된다. 「상당기간」이 어느 정도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북한이 핵사찰협정에 서명하고 IAEA가 북한에 들어가 실질적으로 사찰을 실행하여 그들의 핵개발 포기가 확실히 입증될 때까지로 생각된다. 따라서 「상당기간」이 경과되면 NCND정책도 「현재 남한에는 핵이 없다」는 수준으로 핵정책을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핵정책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에서는 남북한간의 전반적인 군사신뢰 구축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다.
  • 노벨문학상 옥타비오 파스의 생애와 작품세계

    시각적 언어로 폭넓은 세계관 표현/20여년 외교관생활… 동양문학서 영향받아/“인간의 실존』에 관심,초현실주의 수법 구사 금세기 중남미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중의 한사람인 옥타비오 파스는 스웨던 한림원이 그의 노벨상 수상결정과 함께 밝혔듯이 넓은 세계적인 전망을 지닌 지성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멕시코 태생으로 스페인 내란때 직접 전쟁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20여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에서 프랑스 미국 영국 인도 일본 등 세계각지의 영사 및 대사로 근무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폭넓은 시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동양문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남미작가로 중국시나 일본시의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기도 했고 공간시ㆍ실험시로 불리는 시각적 이미지의 난해한 시를 쓰기도 했다. 멕시코 국립대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931년 바란달(Barandal)이라는 잡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여 시그룹 타예르(Tallero)를 주도하기도 했다. 1937∼1938년에는 스페인에 거주하면서 라파엘 알베르티,루이스 세르누다,기옌 데 카스트로,파블로 네루다,세사르 바예호 등 당시의 유명시인들과 교분을 맺었다. 그후 1943년에 구겐하임(Guggenheim) 장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공부한 파스는 파리 주재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초현실주의자 및 실존주의자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멕시코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정부의 유혈진압에 항의하여 외교관직을 사임한 후 귀국하여 오로지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제네바 주재 유엔대표 시절에 국제시상을 수상하였던 파스는 1985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옥타비오 파스는 외교관으로서의 공직생활과 시인으로서의 예술가생활을 조화있게 영위하였다. 그는 인도와 파리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으며 특히 인도에서의 장기간에 걸친 대사생활을 통해 결정적으로 동양적인 시세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모든 인간의 행위와 예술을 주재하는 것이며 시의 목적은 언어와 사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해방시켜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려보내는 것이다. 그가 시의 사회적ㆍ역사적 관점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현대의 시경향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초기작품 「언어밑에서의 자유」는 인간의 실존과 시간의 문제에 눈을 돌린 형이상학적인 시세계를 보여주며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시 「태양의 돌」이나 「독수리 혹은 태양」은 남미의 아즈텍 문명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초현실주의 수법을 드러낸다. 우리가 죽은 후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아있는 지금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인간실존의 절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시집 「불도마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꿈과 비논리의 세계를 들어가는데 언어사용의 새로운 국면을 시도한 이 작품집은 파스의 가장 난해한 시가 실린 책으로 꼽힌다. 이 시인의 시어탐구는 「동쪽기슭」에서 절정에 이르며 구조주의 언어학 연구에 영향을 받아 글자배치 및 시의 공간적인 표현방식까지 보인다. 파스의 가장 큰 관심은 시간으로 그의 모든 작품에서 시간에 대한 그의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시간적 이미지를 배치한 「토포에마스와 시간적인 음반」을 냈을 정도다. 이 시각시는 여러가지형태의 판독을 가능하게 할 뿐더러 독자가 직접 작품구성이나 창작에 참여하게 한다. 최근 그의 시는 회화적이고 음악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시의 본질은 잔치의 본질과 비슷한 것으로서 달력속에 들어있는 날짜와 달리 그것은 시간의 단계적인 진행을 깨뜨리는 한 파열이며 어제나 내일없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한 현재의 돌입이다. 모든 시는 잔치이며 순수한 시간의 응결이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이다. 그는 또 『역사 없이는 시가 있을 수 없으며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 이외의 시의 다른 사명은 없다』고 믿고 있다. 지난 85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국내에서도 그의 시선집 「태양의 돌」(민용태 옮김)이 발간됐으며 「문학사상」 「외국문학」 「작가세계」 등 문예지에 그의 시론 및 작품세계 등이 소개된 바 있다. □옥타비오 파스연보 ▲1914년 3월31일=멕시코 멕시코시 교외에서 출생. ▲1931년=아방가르드잡지 「바란달」을 창간,자작시를 발표하여 작품활동 시작. ▲1933년=첫 시집 「안개속의 달」 출판. ▲1937년=멕시코대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나 학위수여 거부. 스페인 내란당시 공화파 적극 지지. 초현실주의 입각한 제2시집 「인간의 기원」 출판. ▲1938년=문예지 「타예르」 창간. ▲1944년=미국 구겐하임 문학상 수상. ▲1946년=외교관 입문,파리에 첫 부임. 카뮈,사르트르,브레튼 등 실존주의 작가들과 교우. ▲1962∼68년=일본 등을 거쳐 인도대사 역임. ▲1971년 이후=미 텍사스대 하버드대 영 케임브리지대 등 객원교수 역임. ▲1981년=스페인어권의 최고권위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 수상. ▲1982년=미 노이스타트상 수상. ▲1985년=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름. ▲주요작품=「야생의 달」(1933) 「돌과 꽃 사이로」(1941) 「세계의 기슭에서」(1942) 「말 아래서의 자유」(1949) 「태양의 돌」 「격렬한 계절」(1958) 「불도마뱀」(1962) 「완전한 바람」(1965) 「공백」(1967) 「동쪽 산기슭」(1969) 「선회」(1976) 등 다수. ○독백 허무와 꿈 사이, 부서진 기둥들의 밑에서, 나의 불면의 시간을 가로질러 가는 너의 이름의 음절들 붉으레한 너의 긴 머리칼, 한여름의 번갯불이 밤의 등 뒤에서 달콤한 횡포의 불빛으로 떨리고 있다. 폐허에서 솟아나는 꿈의 어두운 물살, 허무로부터 너를 벼루어내는 물에 젖은 밤의 해변이여 거기 눈 먼 바다가 밀려와 미친 듯 후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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