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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문학 시초와 친일파, 그 사이… 춘원 이광수 전집 출간

    현대 문학 시초와 친일파, 그 사이… 춘원 이광수 전집 출간

    한국 현대 문학의 시초인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는 춘원 이광수(1892~1950) 전집이 출간된다.태학사는 춘원연구학회와 함께 춘원이 남긴 모든 글을 묶은 ‘춘원 이광수 전집’을 기획, 1차분 ‘무정’, ‘개척자’, ‘허생전’ 세 권을 선보인다고 15일 밝혔다. 춘원 전집은 1962년 삼중당(전 20권), 1979년 우신사(전 11권)에서 발간된 적이 있으나 당시 편찬자의 판단에 따라 배제·누락된 글, 이후 새로 발굴된 글들을 모두 모았다는 게 태학사 측 설명이다. 1차분 세 권에 이어 목록이 확정된 것은 근대 문학의 제1형식으로 불리는 ‘재생’, ‘흙’, ‘유정’ 등의 장편들과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단종애사’, ‘이순신’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에 이르는 역사 소설 등 총 25권이다. 이어 시, 산문, 평론 등을 모아 춘원 70주기인 내년 하반기까지 30여권으로 완간할 계획이다. 이번 전집에 새롭게 수록된 작품들은 25권 ‘사랑인가 외’에 수록된 일본어 소설 14편이다. 그들 중 단편 ‘아들의 원수’는 미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에 나머지 1회분을 찾아 완결된 소설임을 확인했고, ‘처’도 2회분을 더 찾아내 보완했다. 한국 최초의 현대소설인 제1권 ‘무정’에 이어 제2권 ‘개척자’는 한국 소설 최초의 여성독립선언에 가깝다. ‘무정’과 달리 ‘개척자’는 작중 주인공이 여성이다. “우선 딸이란 무엇인지, 아내란 무엇이요 지아비란 무엇인지, 시집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하겠고, 무엇보다도 사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중략) 내 두뇌로, 내 이성으로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이러한 주인공 ‘성순’의 선언을 두고 책 감수를 맡은 정홍섭 아주대 다산학부대학 교수는 “이 문장들이 매일신보에 실린 날은 1918년 2월 5일로, 여성 해방이라는 선구자적 의식을 담았던 나혜석의 ‘경희’가 같은 해 ‘여자계’ 3월호에 발표된 것을 보더라도 ‘개척자’의 선구자적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연암 박지원의 작품을 각색한 제3권 ‘허생전’은 순 한글의 언문일치체로 쓰여져 눈길을 끈다. 전집발간위원장이자 춘원연구학회장인 송현호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친일과 독립·민족운동 행적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논의를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출간 의의를 밝혔다. 2006년 창립된 학회의 명칭이 춘원학회가 아닌 춘원연구학회가 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춘원 전집 발간 작업은 2015년 9월 처음 중지를 모은 이래, 2016년 9월 발간위원회와 실무위원회가 구성되며 본격 추진됐으나 출판 경비와 출판사를 구하는 일로 한때 난항을 겪었다. 송 교수는 “옛날에 출간된 것들은 세로쓰기에 오늘날의 어법과는 달라 현대어로 만들어 학생들이 읽기 쉽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30~50대 젊은 연구자들이 여러 판본을 토대로 저본을 확정 짓고, 실명으로 해당 작품을 감수·해설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월드 Zoom in] 스웨덴, 핀란드 전쟁 땐 파병…러 맞서 ‘1차 방어선’ 지킨다

    [월드 Zoom in] 스웨덴, 핀란드 전쟁 땐 파병…러 맞서 ‘1차 방어선’ 지킨다

    러 전투기 잇단 영공 침범 등 위협 군사보복 우려에 나토 가입은 ‘주저’북유럽의 스웨덴이 인접국 핀란드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 핀란드군을 돕기 위한 지원병력을 파병하기로 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줄곧 군사적 중립국을 표방해 왔지만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거세지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협력해 사실상 동맹에 준하는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스웨덴 의회 국방위원회는 14일(현지시간) 발표한 국방계획에 따라 핀란드에 전쟁이나 지역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핀란드 내에서의 군사작전을 위해 여단급 병력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신화통신 등이 전했다. 스웨덴 국방부는 국방계획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위기 때는 스웨덴이 핀란드를 군사적으로 돕겠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고 명시했다. 핀란드 국방부도 이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1995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지만 나토에는 회원국으로 가입하지 않아 군사적 중립국으로 분류됐다. 특히 인구 1000만명의 스웨덴은 1814년 노르웨이와의 전쟁 이후 꾸준히 중립 전통을 유지해 왔다. 인구 550만여명의 핀란드가 중립국이 된 사정은 다르다. 서쪽으로 스웨덴, 동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 중 두 차례나 옛 소련과 전쟁을 치러 영토의 일부를 빼앗겼다. 핀란드는 이후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국 주도의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가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에 무력개입하고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러시아 전투기들이 핀란드 영공을 자주 침범하는 등 군사력을 과시하자 핀란드로서는 더이상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토 및 스웨덴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스웨덴도 러시아가 2013년부터 자국을 위협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을 배치하고 러시아 잠수함들이 스톡홀름 인근 해역에서 포착되자 경각심이 높아졌다. 이에 스웨덴과 핀란드는 2016년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하고 스웨덴과 핀란드 영토 안에서 나토군의 군사훈련을 허용하기로 했다. 특히 스웨덴은 2010년 폐지했던 징병제를 지난해 부활시켰다. 다만 양국은 미국의 ‘안보 우산’에 완전히 들어갈 경우 러시아를 자극해 군사 보복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나토 가입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스웨덴에 핀란드는 ‘순망치한’(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의 관계로 러시아군이 자국 영토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1차 방어선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타인 얼굴 보면 아픈지 안다?…“인간은 전염병 피하도록 진화”(연구)

    타인 얼굴 보면 아픈지 안다?…“인간은 전염병 피하도록 진화”(연구)

    사람은 다른 이의 얼굴을 보고 건강하거나 아픈지를 대체로 알아맞힐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아픈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 전염성 질병의 확산을 막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다양한 동물이 동료를 보고 아픈지 알 수 있다는 기존 연구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건강한 지원자 22명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눈 뒤 각각에 대장균과 위약(플라세보)을 주사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혈액 표본을 채취했다. 이는 감염으로 체내에서 면역반응이 시작됐는지 염증 지표 검사를 통해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두 시간이 지난 뒤에는 각 참가자에게 긴장을 풀고 편히 쉬도록 노력해달라고 요청하고 이들의 얼굴 사진을 촬영했다. 이렇게 마련한 각 사진을 또 다른 지원자 49명에게 보여주고 사진 속 인물이 얼마나 아파 보이는지 -5점부터 0점 그리고 5점까지 평가하도록 했다. 여기서 -5점은 ‘매우 아파 보인다’이며 0점은 ‘아프거나 건강해 보이지도 않는다’이다. 그리고 5점은 ‘매우 건강해 보인다’이다. 이 밖에도 이들 지원자에게는 사진 속 인물의 얼굴에서 행복이나 두려움 또는 분노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지를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놀랍게도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을 보고 실제로 누가 더 아픈지를 유의미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평가자들은 대장균 주사를 맞았던 참가자들에게서 창백한 피부와 입술 또는 처진 입꼬리와 눈꺼풀 등의 특징을 발견했다. 연구진 역시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대장균 주사를 맞았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입가의 처짐뿐만 아니라 눈꺼풀이 주사를 맞기 전보다 얼마나 내려왔는지 측정했고, 사람들의 평가가 유의미하게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대장균에 감염된 참가자들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슬픔이나 혐오 등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런 부정적 감정 상태와 연관성이 있는 염증을 유발하는 감염 때문에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은 회복을 위해 피로감 등 에너지를 비축하는 행동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연구진이 대장균 주사를 맞은 환자들이 혐오감 징후를 드러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더러운 변기 같은 역겨운 장면을 보면 사람의 몸에서는 잠재적인 감염을 대비하기 위해 면역체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 또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이런 부정적인 감정적 행동을 보이도록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도 연구진은 아픈 참가자들이 덜 놀란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특징도 발견했다. 이는 이들 대상자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거나 더욱 심한 혐오감 탓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생각한다. 끝으로 연구진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아픈 징후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피하도록 하는지를 알아내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이미 눈과 입이 처져 있을 수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미국 정신신경면역학 연구학회(Psychoneurolimmunology Research Society) 학술지 ‘뇌·행동·면역학’(Brain, Behavior and Immunity)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카롤린스카 연구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가짜뉴스 무기 삼아… 러시아, 美대선 이어 유럽의회 선거판 흔드나

    反이슬람 부채질 등 극우정당 지원 정황 “유포된 가짜뉴스, 美대선때와 패턴 비슷” 러 총리 “선거도 전에 의심… 터무니없다”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러시아가 이번에는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왜곡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복수의 서방 언론이 보도해 주목된다. 외신은 러시아가 이번 선거 국면에서 막대한 양의 ‘가짜뉴스’로 극우정당의 의회 진출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유럽을 분열시키려 한다고 우려했다. 5년 동안 각국을 대표해 유럽연합(EU)에서 정책을 제안할 의원 751명을 선출하는 유럽의회 선거는 오는 23~26일(현지시간) 28개 EU 회원국에서 열리는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미 사이버 보안회사 세이프가드사이버의 보고서를 인용해 “최대 유럽인의 절반인 2억 4000만명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러시아발 가짜뉴스를 접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세이프가드사이버는 러시아가 통제하는 수많은 SNS 계정들을 발견했다. 이 계정들은 독일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주장 및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의견 등을 확대해 퍼나르며 극단주의자들을 자극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지난 12일 EU 조사관과 학계, 시민단체 분석을 인용해 “러시아 또는 극우정당과 관계 있는 웹사이트, SNS 계정이 중도정당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면서 “최근 유포되는 가짜뉴스에서 2016년 미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것과 비슷한 패턴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 가짜뉴스의 진위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어 퍼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당시에는 비밀 이슬람 테러리스트 배후설 등을 확산시켜 반(反)이민 정서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러시아의 목표는 유럽 내부의 문제를 증폭해 민주적 제도를 무력화하고 내부 긴장을 조성해 궁극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아직 선거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우리가 잘못했다고 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은 편집증적이고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며 러시아의 유럽의회 선거 개입 의혹을 일축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함께 책임지려는데 혼인신고 퇴짜… 아이는 ‘법적 아빠’가 없어요

    함께 책임지려는데 혼인신고 퇴짜… 아이는 ‘법적 아빠’가 없어요

    어린 부모와 함께 한 일주일경제력이 없거나 육아 시간이 부족해 출산을 포기하는 성인 부부가 늘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정부가 키워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는 재촉이 담겼다. 하지만 연간 1만 4000여명의 아이를 낳는 청소년 부모들에겐 헛구호로 들린다. 어린 나이에 준비 없이 가정을 이룬 이들은 낡은 복지 체계 탓에 사각지대에서 생활한다. 서울신문 취재진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함께 생활하며 관찰한 김지은(16·여·이하 가명)·이서준(18) 커플도 복지망 밖에 있는 어린 부모다. 지난해 딸 소연이를 낳은 뒤 함께 책임지고 싶어 정식 부부가 되길 원했지만 정부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이들의 혼인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성인 부부나 싱글맘 등을 중심으로 짜인 지원체계 속에서 청소년 커플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일주일간 동행하며 살펴봤다.●법적 아빠의 부재 “소연이 보호자 김민철씨 맞죠?” 지난달 30일 딸 소연이(생후 9개월)의 폐렴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지은양은 현실을 재차 절감했다. 서류를 보던 간호사가 남편 대신 아버지를 찾았기 때문이다. 소연이에게는 법적으로 아빠가 없다. 지은양과 서준씨는 소연이를 낳은 뒤 독립해 세 식구만 살고 있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소연이를 가졌을 때 동 주민센터에 혼인신고를 하러 갔지만 “부모 동의를 받더라도 두 사람 모두 만 18세 이상이 돼야 신고할 수 있다”며 거절당했다. 지은양은 당시 만 15세였다. 이 때문에 지은양은 딸 소연이와 함께 아직 부모 호적에 들어 있다. 시청 관계자는 “현행법이 지은양 사례까지 살피지 못하는 건 사실”이라면서 “단서조항을 넣어 다양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법률혼 상태가 아니다 보니 지원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신혼부부가 누리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저리 전세자금대출 등 주거 지원 혜택은 신청 기회조차 없다.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고민은 딸이 이 상황을 어떻게 느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은양은 “호적등본에 소연이 아빠 자리가 비어 있어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아직은 소연이가 아기여서 체감하지 못하지만 어린이집에라도 보내면 아빠의 법적 공백이 더 커질까 두렵다. 전현정 법무법인 KCL 변호사는 “혼인신고 나이 제한은 너무 일찍 혼인을 허용하는 것이 미성년자의 성장에 좋지 않다는 취지 등이 담긴 것”이라며 “법정 혼인 가능 연령을 단순히 낮추기보다는 법률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다른 형태의 행정적·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거 커플의 딜레마 지은양이 동거 커플로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딜레마가 있다. 남편 없이 모녀만 산다고 하면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역설적 지원체계다. 정부가 한부모가정에 대해선 3년마다 실태를 조사할 만큼 신경 쓰지만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 부모(24세 이하)는 ‘복지 타깃’에서 빠져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지원하는 아동 양육비, 자립지원촉진수당, 검정고시비 등은 모두 저소득 한부모 가정에만 해당된다. 가정을 꾸려 책임지려 하면 오히려 지원에서 배제되는 아이러니는 지은·서준 커플을 9개월간 시험에 들게 했다. 서준씨는 “양육 지원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냥 아내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이라고 속이고 혜택을 받으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민간 지원도 마찬가지다. 유미숙 한국미혼모네트워크 사례관리팀장은 “커플이 민간 복지단체 등에 지원 신청을 하면 ‘멀쩡한 젊은 아빠가 있는데 지원이 꼭 필요하겠느냐’로 결론 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기존 가족 정책은 한부모, 다문화, 조손 가정 등에 혜택을 집중했기 때문에 청소년 부부는 제도에서 벗어나 있다”면서 “앞으로는 가족 경로 구분 없이 모두 포용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멀기만 한 복지정책 서준씨는 배달 대행업체에서 일하며 월 100만~200만원을 번다. 하지만 월세를 내고 분유와 기저귀, 간식 등을 사다 보면 금세 통장 잔고가 바닥난다. 지은양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서준씨는 “지원제도가 있는데도 몰라서 못 받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복지 시스템은 국가가 지원 대상을 찾아나서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알아서 신청해야 하는 ‘신청주의’다. 육아 지원 정보를 일일이 찾아 신청하는 것은 성인도 버거운데, 중학교를 졸업한 뒤 아이를 낳고 학교 밖으로 나온 지은양에겐 더욱 힘든 일이다. 모든 부모가 받는 아동수당(10만원)과 양육수당(20만원)조차 아이를 낳고 3~4개월은 몰라서 못 받았다. 행정기관의 감수성 부족도 지은양을 머뭇거리게 한다. 그는 “출산 뒤 지원 정책을 알아보려고 관청을 찾아 형편을 어렵게 털어놨는데 주민센터와 시청이 서로 ‘다른 곳으로 가라’고 떠넘겨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린 부모 중에는 학력이 낮은 이들이 많아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한다”면서 “정부 기관에서 이들을 찾아나서 양육자로서 권리를 누리고 적절한 양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은양은 온종일 9개월 된 딸과 붙어 있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한 엄마를 꿈꾼다. 하지만 앞으로 일자리를 구할 때 ‘중졸’ 학력이 장애물이 될까 봐 걱정이다. 청소년기에 학업을 중단한 학교 밖 청소년은 여가부의 ‘꿈드림’ 사업이나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등을 통해 학업 및 취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의지가 있어도 학업·취업 활동을 양육과 병행하는 것이 힘든 어린 부모를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수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팀장은 “청소년기는 성인기로 가는 과정으로 달성할 과업이 많은 시기”라며 “일찍 가정을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인 청소년 부모가 학업과 생계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트럼프, 유럽의 ‘반(反)이민 주축’ 헝가리 총리에 “당신은 존경받아”

    트럼프, 유럽의 ‘반(反)이민 주축’ 헝가리 총리에 “당신은 존경받아”

    “당신은 어쩌면 나처럼 다소 논란이 많지만 괜찮다. 훌륭하게 직무를 수행해왔고 당신의 나라를 안전하게 지켰다. 유럽 전역에서 존경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유럽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도자 중 한 명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의 회담에 앞서 이같은 찬사를 보내며 환대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은 양국 정상이 ‘브로맨스’를 과시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한 오르반 총리는 극우 민족주의·반(反)서구 성향의 인사다. 1998년 불과 35세 나이에 총리 자리에 오른 뒤 장기 집권하면서 정부에 비판적 언론을 측근이 인수하도록 돕고 법원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해 민주주의와 법치를 훼손했단 비난을 받아왔다. 유럽연합(EU)은 그에 대한 제재를 검토 중이며, 미국 내에서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헝가리가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대한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다. 2002년 실각한 후 2010년 2차 집권에 성공한 오르반 총리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당시 단 한번도 백악관으로 초청받지 못했다.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오르반 총리를 맞이한 트럼프 대통령은 오르반 총리의 집권으로 인한 헝가리의 민주주의적 퇴행 논란에 대해 “그는 존경받는 사람이다. 나는 그가 터프한 사람인지 알지만, 그는 존경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이민정책에 있어 올바른 일을 해왔다고 많은 사람이 전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에 오르반 총리는 “불법 이민 및 테리러즘과의 전쟁과 전 세계의 기독교 공동체 보호에 있어 미국의 대통령과 함께 서 있는 게 자랑스럽다. 우리는 일정 부분 비슷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AP통신 등은 트럼프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 모두 강경한 반(反)이민 레토릭을 지지해왔다고 보도했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오르반 총리의 백악관 초청은 미국이 헝가리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약화를 시도하는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백악관 회담을 둘러싼 미 의회와 언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부시, 오바마 전 대통령들의 냉대를 받았던 극우 지도자를 만났다”고 꼬집었다. 상원 외교위 여야 인사들은 앞서 공개서한을 보내 “오르반 총리에게 민주주의적 뿌리와 가치들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독 ‘스트롱맨’과 각별한 브로맨스를 나눠왔다. 지난 3월엔 일명 ‘열대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서로를 치켜세웠으며 같은 달 이스라엘 총선을 앞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위해 지원사격에 나섰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현대엔지니어링, EU 플랜트 시장 뚫었다

    국내 건설업체가 유럽연합(EU) 플랜트 시장을 뚫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폴란드에서 9억 9280만 유로(약 1조 2880억원) 규모의 ‘폴리머리 폴리체 PDH·PP 플랜트’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12일 밝혔다. 폴란드 폴리체 지역에 폴리프로필렌(PP) 생산시설 및 연관 인프라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공사 기간은 착공 후 40개월이다. 프로판가스에서 프로필렌을 생성하고 생성된 프로필렌을 에틸렌과 결합해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설비로, 폴리프로필렌 생산량은 연간 40만t에 이른다. 폴리프로필렌은 자동차 부품, 인공 섬유, 각종 생필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 이 사업은 폴란드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사업인 동시에 국내 건설사가 EU에서 수주한 역대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다. 그동안 EU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들은 주로 자동차, 타이어, 전기·전자 기업이 투자한 공장이나 업무용 건물을 짓는 공사를 수주했다. 특히 이 공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영업·기술력과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의 지분 투자를 통한 정책 지원이 더해져 수주에 성공하면서 해외건설 ‘팀코리아’의 역량을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달 러시아에서 메탄올 플랜트 기본설계 용역을 수주한 데 이어 한국 건설사들의 불모지였던 EU 플랜트 시장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신시장개척 전략이 본격적인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폴란드 슈체친에서 진행된 계약식에는 김창학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와다키 보이치에흐 아조티 그룹 회장과 베아타 시드워 폴란드 총리가 참석했다. 올해 한국·폴란드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경제, 정치, 문화 등 각종 분야에서 양국 간 교류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등 돌린 가족·학교, 출산 뒤엔 생활고… “이 굴레 대물림 두려워”

    등 돌린 가족·학교, 출산 뒤엔 생활고… “이 굴레 대물림 두려워”

    편견·가난과 싸우는 청소년 부모 심층조사 그림자 가족. 복지 현장에서 청소년 부모가 꾸린 가정을 부르는 표현이다. 어린 산모(24세 이하)가 한 해 낳는 아기는 통계상으로만 1만 4600명(2018년 기준)이나 되지만 주변에선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싸늘한 사회적 시선을 피해 숨어 지내는 가족이 많아서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부모 가정을 취재하기 위해 4~5월 서울, 여수, 부산, 광주, 강릉 등 전국을 돌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와 협업해 진행한 취재에서 100개 가정을 상대로 서면 또는 대면, 전화 인터뷰 등을 병행하며 심층 조사했다. 평균 19.3세에 출산한 100개 가정엔 각기 다른 사연이 있었지만 임신과 출산, 양육 때 겪는 공통적 패턴도 확인됐다. ▲임신과 동시에 주변의 지지가 끊기면서 산모는 홀로 고립됐고 ▲출산 후엔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으며 ▲가난과 편견의 굴레 속에 갇힌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분투했다. 김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박사는 “어린 나이에 출산을 택한 부모들은 무책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책임감이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어린 부모 스스로의 노력에 사회적 지원이 더해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청소년 부모 가정도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할 수 있다.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어린 부모들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 미래로 시점을 나눠 엮었다. 주위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사례자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다.# 과거 청소년 부모 대부분은 임신을 자각한 순간을 ‘악몽’으로 기억한다. 이성 간 교제 시기가 과거보다 빨라진 상황에서 성적 호기심 또는 상대방의 강압적 분위기 유도 탓에 성관계했다가 덜컥 아이가 생겼다는 사연이 많았다. 지난해 교육부 등의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는 중·고교생 비율은 5.7%였다. 해당 연령(13~18세)의 주민등록인구가 309만 6947명이니 성관계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7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른 임신 경험을 극소수의 이야기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조사에 응한 청소년 부모 중 41%는 ‘피임에 실패해 임신했다’고 답했다. 또, 67%는 ‘임신사실을 알았을 때 두렵고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아이를 낳아야 할까’, ‘부모나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학교는 다닐 수 있을까’ 등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청춘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채웠다고 했다. 태아를 품은 청소년들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었지만 주변의 지지는 기대할 수 없었다. 가족마저 우군이 돼 주지 않았다. 응답자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가족들의 태도를 1(부정)부터 10(긍정) 사이로 평가해 달라’고 했더니 평균 3.61점이 나왔다. 특히 청소년 부모 중에는 위기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 많았다. 응답자의 32%는 “부모로부터 가정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58%는 가출 경험이 있었다. 서울에서 만난 정유정(24)씨도 아버지에게 수시로 맞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둔 18살에 아들 정우(6)를 몰래 낳았을 때 부모는 정씨 모자가 지내던 모자원에 찾아와 “아이를 포기하라”며 행패를 부렸다. 하지만 유정씨는 아들을 입양 보낼 수 없었다. 지옥 같던 현실에서 탈출구를 열어 줄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유미숙 한국미혼모네트워크 사례관리팀장은 “청소년 부모 중에는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따뜻한 ‘진짜 가족’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나 친구도 울타리가 돼 주지 못했다. 임신 당시 33%만 학교를 다녔다고 응답했다. 학업을 중단한 이유로는 ‘출산과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해서’, ‘자녀 양육을 위해 복학하지 못해 자퇴 처리됨’, ‘임신으로 스스로 자퇴’ 등을 꼽았다. 학교에선 어린 부모의 임신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게 되더라도 돕기보다는 자퇴를 권유하거나 퇴학 처리했다. 강원도에서 만난 강예원(25)씨는 “출산을 결심했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아기 아빠에게 ‘학교에서 나가라’고 했다”면서 “이후 실업계 학교로 복학해 졸업장은 땄지만 크게 상처받았다”고 털어놨다. 친구들 사이에선 “죽은 것 아니냐”, “남자를 어떻게 만났기에 그러느냐”는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다.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이들이 출산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만든 존엄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유정씨는 “초음파 검사 때 들은 아기 심장 소리를 잊기 어려웠다”면서 “마치 ‘나 여기 살아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현재 초등학생부터 영유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자식을 키우는 응답자들이 꼽는 현재의 가장 큰 어려움은 ‘돈 문제’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부모들에게도 육아 비용은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이다. 수입이 적거나 고정 수입이 없는 청소년 부모들에겐 더 큰 어려움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커질수록 돈 앞에 더 좌절한다. 정민아(25)씨 부부는 딸에게 미안할 뿐이다. 올해 6살 된 아이는 “친구들처럼 태권도 학원이랑 발레 학원을 가고 싶다”고 조른다. 하지만 들어주기 어렵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남편 이지훈(24)씨의 한 달 벌이가 100만원대 후반 수준인데다 민아씨는 셋째를 임신해 일할 수 없다. 민아씨는 “아이가 유튜브를 보면서 태권도 동작을 따라 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생활고 탓에 아이와 생이별한 청소년 부모도 많았다. 전남 여수에서 만난 김이은(22)씨는 돈을 벌기 위해 아이와 떨어져 산다. 원래 집은 인천이지만 여수 펜션에서 일자리를 잡았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평일에는 두 살배기 아이를 친정 근처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긴다. 아이의 얼굴을 온종일 볼 수 있는 건 한 달에 한 번뿐이다. 이은씨는 “입양을 보내기 싫은 게 과도한 욕심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출산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 밖으로 쫓겨난 청소년 부모들은 “그 흔한 학사 학위도 없어 구직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뒤늦게 학교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8살 딸을 혼자 키우는 홍예슬(25)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생활고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어린 부모들은 아이에게 떳떳하고 싶어서(67%) 또는 예슬씨처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65%) 중단된 학업을 이어 가고자 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힘든 이들은 주로 ‘취업을 위한 기술교육을 받고 싶다’(27%)고 말했다. 문제는 뒤늦게 공부하려면 또 돈이 든다는 점이다. 예슬씨는 “학교에서 국가 근로로 일하면 1시간에 8350원씩, 매달 20만~40만원 정도를 번다”면서 “기초수급 등과 합하면 한 달에 100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데, 교재 비용과 공과금, 교통비, 식비로 쓰면 저축하는 돈은 한 푼도 없다”고 토로했다. 유미숙 팀장은 “현금 지원이 어렵다면 이들의 건강권과 관련된 지원이라도 부족하지 않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부모의 책임감은 다른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층조사에 응답한 어린 부모 중 48%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양육포기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부산에서 만난 김수연(17)양은 앳된 얼굴 때문에 두 살 난 딸의 언니로 오해받는다. 그럴 때마다 “제가 얘 엄마예요”라고 당당히 말한다.자신이 엄마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계기는 뜻밖에도 출산 후 감행한 가출이었다. 돈 문제로 다투는 집안 어른들의 모습에 지친 수연양은 산후조리도 못한 채 딸을 친정에 두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갓난 딸아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수연양은 “입양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딸이 너무 예뻐 떨어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 미래 청소년 부모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불행이 아이까지 덮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미래라도 준비하려면 다른 부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대학원생인 박은경(23)씨는 5년째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아들의 존재를 알리지 못했다. 미혼모에게 쏟아지는 질타를 겪을 만큼 겪었기 때문에 따가운 시선이 아들에게까지 향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은경씨는 “주변 사람들이 ‘이혼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는 연애하고 싶지 않다’거나 ‘사랑받지 못한 애는 티가 난다’고 얘기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면서 “내 아이에게 이런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가난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미래다.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딸(3)을 키우는 이민정(21)씨는 안정적인 새 직장을 구하려고 자격증을 10여개나 땄지만 취업이 쉽지 않다. 민정씨는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면서 “지금 사는 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5살 난 아들을 둔 엄마 이지혜(24)씨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을 여유가 없다”면서 “대우가 열악해도 채용해 주는 회사가 있으면 감지덕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부모 자립지원 단체인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는 “‘어린데 어떻게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느냐’는 등 대안 없이 비난하는 것은 어린 부모들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들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자신들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EU 플랜트 건설 시장 뚫었다

    국내 건설업체가 유럽연합(EU) 플랜트 시장을 뚫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폴란드에서 9억 9280만유로(1조 2880억원) 규모의 ‘폴리머리 폴리체 PDH·PP 플랜트’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12일 밝혔다. 폴란드 폴리체 지역에 폴리프로필렌(PP) 생산시설 및 연관 인프라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공사기간은 착공 후 40개월이다. 프로판가스에서 프로필렌을 생성하고 생성된 프로필렌을 에틸렌과 결합해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설비로, 폴리프로필렌 생산량은 연간 40만 톤에 이른다. 폴리프로필렌은 자동차 부품, 인공 섬유, 각종 생필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 이 사업은 폴란드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사업인 동시에 국내 건설사가 EU에서 수주한 역대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다. 그동안 EU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들은 주로 자동차, 타이어, 전기·전자 기업이 투자한 공장이나 업무용 건물을 짓는 공사를 수주했다. 특히 이 공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영업·기술력과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의 지분투자를 통한 정책 지원이 더해져 수주에 성공하면서 해외건설 ‘팀코리아’의 역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건설사들의 불모지였던 러시아 및 EU 플랜트 시장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신시장개척 전략이 본격적인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폴란드 슈체친에서 진행된 계약식에는 김창학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와다키 보이치에흐 아조티 그룹 회장과 베아타 시드워 폴란드 총리가 참석했다. 올해 한국-폴란드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경제, 정치, 문화 등 각종 분야에서 양국 간 교류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달 러시아에서 메탄올 플랜트 기본설계 용역을 수주한 데 이어 폴란드 플랜트 수주에도 성공해 유럽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게 됐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동영상] ‘유럽만이 희망’ 난민 보트 튀니지 연안에서 전복, 적어도 65명 사망

    [동영상] ‘유럽만이 희망’ 난민 보트 튀니지 연안에서 전복, 적어도 65명 사망

    적어도 65명의 난민이 지중해 튀니지 연안에서 타고 있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고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밝혔다고 영국 BBC가 10일(현지시간) 전했다. UNHCR은 이 배가 지난 9일 리비아의 주와라를 떠난 뒤 강한 파도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며 근처 낚싯배들과 튀니지 해군이 16명을 구조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이 사고는 올해 들어 단일 사고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사고로 보인다. 아울러 이 기구는 지난 4개월 동안 리비아와 유럽 루트에서 목숨을 잃은 이만 164명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튀니지 해군에 구조된 이들은 튀니지 연안 항구 근처로 옮겨져 입항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며 한 명은 긴급 치료가 필요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UNHCR은 밝혔다. 이 기구에서 일하는 빈센트 코체텔은 “지중해를 건너려고 시도하는 이들이 여전히 위험에 맞닥뜨린다는 사실을 비극적이며 끔찍하게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일부 보도는 배에 탄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을 수 있다며 희생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2017년 중반부터 이 위험한 여정에 나서는 사람들의 숫자는 현저히 줄었다. 이탈리아가 지원한 리비아 정부군이 단속을 철저히 하거나 공해 상에서 붙잡힌 이들을 다시 리비아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1만 5900명의 난민이 세 가지 지중해 루트를 통해 유럽에 도착했는데 이 수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17% 줄어든 것이다. 지난 1월 유엔은 지난해 지중해를 건너는 와중에 매일 6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집계했다. 아래 동영상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근처의 난민 캠프를 담고 있다. 근처에서 격렬한 총성이 연이어 들려 여인들이 비명을 지르는 등 암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한편 이탈리아 해군과 난민구호 비정부기구(NGO)가 지난 9일 리비아 연안에서 조난을 당한 난민 65명을 구조했는데 지난해 6월 출범한 포퓰리즘 정부의 반(反) 난민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해군 선박일지라도 난민을 태우고 있으면 이탈리아 항구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일메사제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탈리아 해군의 초계함정이 전날 리비아에서 75해리 떨어진 공해 상에서 위험에 처한 난민 36명을 구했다. 해군은 성명을 내고 구조된 난민 가운데 미성년자 8명과 여성 2명이 포함돼 있으며, 구조 당시 이들이 탄 허름한 배가 침수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와는 별도로 이탈리아 난민 구호 NGO가 운영하는 구조선 ‘마레 요니오’ 역시 같은 날 저녁 리비아에서 40해리 떨어진 지중해에서 임산부 1명, 한살 배기 아기 등 미성년자 5명을 비롯해 29명의 난민을 구조한 뒤 이탈리아 당국에 난민들을 하선시킬 항구를 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살비니 부총리는 “왜 그들이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구조 책임을 맡고 있는 해역에서 난민들을 구했는지 의문”이라며 구조된 난민들을 태운 배들에 입항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해군 초계함정이 지중해에서 해상 안전을 위해 펼치고 있는 공식 작전의 일환으로 난민들을 구조했는데도 “(난민을 태운) 해군 선박 역시 항구에 들어올 수 없다”고 못박아 국방부와의 갈등을 예고했다. 엘리사베타 트렌타 국방장관은 “우리 군인들을 믿는다”고 말해 해군이 공식 작전을 통해 난민들을 구조한 만큼 이들을 이탈리아 항만에 입항시켜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트렌타 장관은 살비니 부총리가 이끄는 극우성향의 정당 ‘동맹’에 비해 난민에 좀 더 관대한 집권정당 ‘오성운동’ 소속이다. 무사히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당도했거나 구조돼 유럽으로 옮겨진 난민들은 며칠 동안 정처 없이 바다를 떠돌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분산 수용 결정이 이뤄진 뒤에야 이탈리아나 몰타, 스페인 항구에 입항이 허용되는 실정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 아르헨 대선 개입 논란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 아르헨 대선 개입 논란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오는 10월 대선을 앞둔 인접 국가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아 마크리 대통령의 재선을 바란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내정 간섭 논란이 일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부적절한 지원 사격이 실제 대선에서 마크리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브라질 SBT TV와 회견을 통해 “아르헨티나는 유혈 사태를 겪고있는 베네수엘라보다 브라질에 더 중요한 국가”라면서 “10월 대선에서 좌파 진영이 재집권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는 10월 대선에서 좌파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면 아르헨티나는 또 다른 베네수엘라가 될 것‘이라며 “페르난데스는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베네수엘라, 쿠바와 연계돼 있다”고 경고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발언은 아르헨티나에서 마크리 대통령의 우파 정부가 재집권하지 못하면 남미 지역 내 우파동맹의 한 축을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절박한 위기의식을 표출한 것이나 아르헨티나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3월에만 4.7%를 기록했고 빈곤층 비율은 3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위기는 마크리 대통령의 재선을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적된다.페르난데스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아직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나 이번 대선에서 마크리 대통령과 맞붙게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 결과 양자 간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에서도 페르난데스가 다소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중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예상 득표율은 페르난데스 45%, 마크리 36%로 나왔다. 이달 초에 정부가 발표한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리 37%, 페르난데스 33%였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마크리 대통령의 재선을 측면지원하는 방안의 하나로 올해 상반기 중에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상 타결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뒤지는 상황에서 메르코수르·EU 자유무역협상이 타결되면 마크리 대통령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아르헨티나의 유명 변호사이자 반부패 전문가인 나탈리아 볼로신은 7일 브라질 매체 UOL 인터뷰에서 “보우소나루의 공격은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입후보를 돕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우소나루는 아르헨티나에서 이미지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공격은 페르난데스를 도와주는 꼴”이라면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보다 훨씬 더 자유주의 국가이며 강력한 인권운동 역사를 갖고 있어 보우소나루와 같은 네오파시스트적 사람은 아르헨티나 사회 전반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감당 못할 임신, 준비 없는 출산…아기는 화장실에 버려졌다

    감당 못할 임신, 준비 없는 출산…아기는 화장실에 버려졌다

    [열여덟 부모, 벼랑에 서다] <1> 축복받지 못한 출산버려진 아기 20명이 있다. 대부분 세상에 나온 지 하루도 안 돼 비극을 맞았다. 13명은 끝내 숨졌다. 범인은 엄마와 아빠였다. 부모는 모두 청소년 기본법상 청소년(24세 이하)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서울신문은 ‘열여덟 부모, 벼랑에 서다’ 연재를 시작하며 청소년 부모와 그 자녀들이 겪는 비극의 뿌리를 찾으려고 2016년 4월부터 2019년 4월 사이 판결이 난 영아유기와 유기치사, 살해 사건 등 20건의 판결문을 입수·분석했다. 모두 26명의 부모가 피고인으로 등장한다. 문서상 확인할 수 없는 정보는 담당 변호사나 전문가, 비슷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청소년 부모들에게 물었다. 이 과정에서 범행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키워드 5개를 확인했다. ‘화장실’, ‘무지’, ‘아빠’, ‘국선’, ‘장애’다. 동정할 수 없는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지만, 이들을 둘러싼 다섯 개의 요인 중 하나만 잘라냈어도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계속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한 해 1만 4600명(2018년 기준)의 생명을 낳는 다른 어린 부모들도 벼랑 끝에서 비극의 늪에 빠질 수 있다.① 화장실 판결문에 피고인으로 등장한 청소년 산모 19명 중 14명은 거주지 화장실이나 방에서 아이를 낳았다. 가장 축복받아야 할 순간을 가장 불결한 공간에서 맞았다. 화장실은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들의 정서·경제적 고립을 상징하는 곳이다. 산모들은 임신 사실을 가족 등 주변에 알리지 못했고 출산 직전까지 본인과 아이를 위해 어떤 적극적 조치도 하지 못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네트워크 대표는 “임신과 출산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청소년 중에는 가정의 온전한 돌봄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기뿐 아니라 본인도 혼자서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김가영(19·이하 모두 가명)양도 지난해 2월 집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다. 예정일보다 석 달 빨랐다. 갓 태어난 딸은 키 43㎝, 체중 1.3㎏이었다. 또래(평균 50㎝, 3.2㎏)에 한참 못 미쳤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임을 직감했을까. 아이는 울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작은 손과 팔을 들어봤지만, 미동조차 없었다. ‘죽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김양은 아이를 방에 내버려둔 채 허겁지겁 제 몸부터 씻어냈다. 그리고는 피붙이를 여행용 캐리어에 넣었다. 아이는 이름도 갖지 못한 채 10분 만에 숨졌다. 여자친구와 딸을 낳은 강동준(18)군도 정서·경제적 고립 속에 아이를 유기해 재판받았다. 강군의 아버지는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린 전과자였다. 강군은 고아처럼 자랐지만, 독하게 공부했고 장학금도 받았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여자친구가 예상치 못하게 아이를 낳았다. 뇌병변 장애아였다. 전문 마사지사가 정기적으로 몸을 주물러주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고 했다. 감당할 수 없었다. 강군은 어스름한 저녁녘 아이를 복지시설 앞에 버렸다. 이 사건 변호사는 “아버지가 된 강군은 경제 능력이 없는 학생이었고, 부친과도 교류가 없어 현실적으로 장애아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② 무지 정서적 고립은 무지(無知)로 이어진다. 처음 겪는 출산 상황에 대해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선이(18)양은 만삭이던 어느 날 복통을 느꼈다.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진진통(眞陣痛)인줄 몰랐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이를 악물고 있다가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 기절했다. 5분 뒤 정신을 차린 박양은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아기의 맥박은 이미 멈춰 있었다. 박양은 며칠 뒤 엄마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 10대에 출산한 한 청소년 엄마는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서 출산하면 병원에서 가족에게 알릴까봐 두려워서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오진성(19·남)·임지인(20) 커플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모텔에서 아기를 낳았다. 임신 35주도 안 된 조산이었다. 남자아기의 몸무게는 2.1㎏으로 미숙아였다. 긴급 의료조치가 필요했지만, 어린 부모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천에 싸서 모텔 침대에 뉘었다.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컸다. 엄마는 해산(解産) 뒤 곧바로 학교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빠가 홀로 남아 돌보다 잠이 들었다. 산후 조치 없이 침대에 뉘여진 아기는 결국 사망했다. 하정화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일·가족연구부장은 “청소년기에 부모가 된 아이들은 숨어서 나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지원 체계로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고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③ 아빠 20건의 판결문에 등장한 피고인 중 아빠는 드물다. 책임과 처벌은 대부분 엄마의 몫이었다. 처벌받은 피고인 26명 가운데 19명이 여성 청소년이었고, 남성은 7명이었다. 양희진(19)양의 남자친구는 임신 사실을 안 뒤 도망치듯 군에 입대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양양 곁엔 아무도 없었다. 홀로 남은 그는 낙태도 출산 준비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여성 피고인 19명 중 8명은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지인 소개,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만나 임신해서다. 성지원(23)씨는 클럽에서 만난 남성과 관계 후 임신했다. 원래는 아이를 낳으면 보육원에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예정보다 3주나 일찍 나왔다. 성씨는 자신의 방에서 출산하고 아기를 동네 골목에 버렸다.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는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윤지 사단법인 비투비 대표는 “청소년기에 임신한 이들 중 상당수는 깨진 가정에서 자랐다”면서 “가정폭력 때문에 밖으로 떠돌다 임신하게 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임신 자체를 애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김 대표는 “성관계나 임신을 통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청소년도 많다”고 덧붙였다. ④ 국선 변호사 청소년 피고인 26명 중 14명은 재판에서 국선 변호사를 썼다. 변호사가 없는 피고인도 2명이었다. 돈이 없다는 얘기다. 그들에겐 자신을 보호할 여력도, 보호할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영아유기 사건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국선 변호사의 상당수는 “이미 지난 사건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지혜(18·여)·고범준(20) 부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낙태를 알아봤다. 하지만 부르는 게 값인 비용 때문에 포기했다. 낳아 기를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낙태할 돈이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출산일이 왔다. 그날 또 한 명의 신생아가 거리에 버려졌다. 대다수 청소년 산모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출산 전에 의료기관에 가지 못한다. 준비 없는 출산은 조산으로 이어졌고, 청소년 산모에게 심리적 충격을 더했다. 이는 영아유기라는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졌다.⑤ 장애 법정에 선 어린 엄마 중 적지 않은 수가 사회에서 방치된 취약 청소년이었다. 김가온(20대 초반·여)씨의 모친은 생후 18개월 때 집을 나갔다. 6살 땐 아버지가 갑자기 죽었다. 할머니와 살며 학교에 다녔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적응이 힘들어졌다. 2016년부턴 일반학교 대신 대안학교로 등록된 A정신병원에 입원해 지냈다. 김씨가 출산한 건 이쯤이었다. 어느 날부터 배가 아파왔고 며칠 후엔 하혈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김씨는 “어른들에게 혼날까봐 무서워서 숨겼다”고 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출산한 김씨는 아기를 변기에서 건져 봉투에 담고는 자기 방 서랍에 숨겼다. 영아는 외상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은 박하은(여)씨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희귀병을 앓았다. 힘겨운 수술을 3번이나 받았다. 청소년기를 병원만 오가며 보낸 박씨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그러다 소개로 남자를 만났고 임신했다. 집 화장실에서 혼자 아기를 낳았다. 어릴 때부터 병 수발하느라 고생해 온 어머니에게 차마 임신 사실까지 말할 수 없었다. 흰색 수건으로 아이를 감싸 도로변 쓰레기통에 넣었다. 담당 변호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박씨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사건을 힘겹게 떠올렸다. 그는 “몸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성범죄에 쉽게 노출된다”면서 “법정에서 이런 사건의 상대방 남성은 대개 ‘여성이 저항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과 법정싸움을 벌이는 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유를 떠나 어린 생명을 유기하거나 사망하게 한 죄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또 다른 유기 범죄를 막으려면 비난하기에 앞서 이들을 둘러싼 구조적 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윤관 변호사는 “아이를 버렸다는 한 면만 갖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의 상황 이면을 깊이 봐야 한다”면서 “임신을 둘러싼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청소년 부모들이 임신 단계부터 출산 이후까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었다면 유기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들은 각자 사연을 가지고 힘겹게 이곳까지 온다”면서 “특히 청소년 중에는 자신의 부모가 임신·출산 사실을 인정하고 지지해주거나 사회가 조금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아기를 직접 키우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시기(24세 이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젊은 부모(또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나 미혼부)들의 사연을 취재해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당사자이거나 주변에서 젊은 부모들의 삶을 목격하신 분 중 이들이 겪는 어려움, 복지·행정 제도의 미비점 등 여러 사연을 알고 계시다면 제보(dynamic@seoul.co.kr) 부탁드립니다.제보해주신 분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집니다. 알려주신 내용은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애는 낳아야지” “인생이 불쌍해”…이중 시선에 우는 어린 부모

    “애는 낳아야지” “인생이 불쌍해”…이중 시선에 우는 어린 부모

    [열여덟 부모, 벼랑에 서다] <1> 축복받지 못한 출산일찍 아이를 낳은 청소년 부모들은 자신들의 임신 사실과 양육 능력을 마뜩잖게 보는 사회적 시선 앞에서 좌절한다. 정상적인 양육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편견은 ‘온 힘을 다해 남들처럼 아이를 품겠다’는 어린 부모들의 의지에 상처를 남긴다. 서울신문은 20세 이상 성인들이 청소년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고자 지난 2~6일 일반인 50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어린 부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18살에 첫째를 출산한 최연희(23·가명)씨는 아이를 키우며 늘 주변 시선을 의식한다. 몇 년 전 옆집 주민이 경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최씨를 신고하면서 생긴 트라우마 탓이다. 신고 이유는 단순했다. 누가 봐도 앳돼 보이는 최씨 부부의 외모, 종종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최씨는 “당시는 ‘고교생인 엄마가 아이를 모텔에서 낳고 도망갔다’거나 ‘신생아를 살해해 냉동실에 유기했다’는 등의 뉴스가 많이 나올 때였다”면서 “단지 우리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학대한다고 의심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최씨에겐 여전히 아이를 훈육하는 게 조심스럽다. 최씨는 “어려서 서툴 수는 있어도 우리도 부모로서 책임감이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어리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은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어린 부모들은 아이를 포기하면 “무책임하다”고 지탄받고, 아이를 품더라도 ‘부족한 양육자’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체 설문 응답자의 52.6%는 “청소년 부모가 정상적으로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청소년 부모’라는 키워드를 보고 떠오른 감정을 세 가지씩 고르라고 했더니 ‘걱정된다’(90.3%)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설문에 응답한 한 직장인은 “출산을 선택한 것은 부모의 의지이자 자유지만 경제·사회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를 준비가 돼 있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출산을 결심한 부모에 대해 “용감하고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로 살아갈 아이와 부모가 불쌍하다”는 등 청소년 가정의 미래가 불행할 것이라는 예단이 훨씬 많았다. 연희씨 역시 출산을 결심하고 나서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친오빠가 ‘네 나이에 아이를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냐’며 출산을 반대해 전국 각지로 도망 다녔다”고 했다. ‘어차피 제대로 키우긴 어렵겠지만, 임신했다면 그래도 낳아서 직접 길러야 한다’는 이중적인 인식도 나타났다. 많은 응답자들은 어린 부모들이 낙태를 선택하는 것을 부정적(52.8%)으로 봤고, 입양 보내는 것에도 회의적(73%)이었다. 키울 수 없는 아이를 종교 시설에 맡기고 가는 시스템인 ‘베이비박스’에 대해서도 ‘슬프다’(72.2%), ‘불쌍하다’(57.7%), ‘무책임하다’(55.4%) 등 부정적인 단어를 주로 떠올렸다. 해당 감정을 떠올린 이유에 대해 응답자들은 “베이비박스로 청소년 부모들이 죄책감을 덜 것 같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것은 도피이자 부모의 직무유기다” 등으로 설명했다. 어린 부모들은 일부가 저지르는 영아 유기 사건 등만 보고 전체를 매도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17살에 출산한 장예빈(25·가명)씨는 동갑인 남자친구와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이후 퇴학 위기에 몰렸다. 당시 다니던 학교의 교장은 “우리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장씨를 몰아세웠다. 가족이 모두 교장 앞에서 애원한 뒤에야 퇴학이 아닌 자퇴로 처리됐다. 장씨는 “우린 끝까지 아이를 책임지려 애썼는데 어른들은 ‘명예를 실추했다’고 여겼다”며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지만 출산을 결정한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는 우리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었다”고 말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어린 부모가 겪을 가장 큰 고충이 경제적 어려움(63.5%)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린 부모의 월평균 예상 소득액이 200만원 이하라고 보는 응답자가 10명 중 9명(94.4%)에 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대 여성 응답자는 “어린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의식주조차 해결할 만한 경제력이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은 정부가 어린 부모에게 돈을 쥐여 주기보다는 살아갈 힘을 키워 주는 방식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가 생계비나 양육비 등을 현금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는 의견은 22.4%였던 반면 직업훈련이나 학업, 취업 지원을 해 줘야 한다는 의견은 29.6%였다. 아이 돌봄 관련 서비스 지원(26.8%)을 꼽은 사람도 많았다. 이필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소장은 “아이를 낳고 양육하기로 결심한 어린 부모들은 용감한 양육자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가족의 한 모습으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양육을 선택한 사람들을 무조건 보호의 대상으로만 낙인찍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시기(24세 이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젊은 부모(또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나 미혼부)들의 사연을 취재해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당사자이거나 주변에서 젊은 부모들의 삶을 목격하신 분 중 이들이 겪는 어려움, 복지·행정 제도의 미비점 등 여러 사연을 알고 계시다면 제보(dynamic@seoul.co.kr) 부탁드립니다.제보해주신 분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집니다. 알려주신 내용은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385명 ‘릴레이 줄서기’ 퀴어축제 집회 신고戰

    퍼레이드 장소 뺏길까 한 달 줄서기 같은 날 반대 집회 열려 충돌 가능성 다음달 1일 서울 시내에서 열릴 성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앞두고 벌써 전운이 감돌고 있다. 5일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퀴어문화축제는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 등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특히 백미로 꼽히는 ‘퀴어퍼레이드’에서는 올해 처음 광화문 광장 앞 도로를 행진한다. 퍼레이드는 다양한 복장을 입은 참가자들이 거리를 줄지어 걷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최 측은 광화문 광장 인근을 선점하기 위해 축제 한 달 전인 지난달 25일부터 8일간 서울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 종로경찰서에서 지원자 385명과 함께 ‘릴레이 줄서기’를 했다. 다른 단체에 퍼레이드 장소를 빼앗길까 우려해서다. 퀴어축제 조직위는 매년 행사 때마다 장소 등을 두고 반대 세력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왔다. 언론 등의 주목을 받는 핫이슈가 되자 퀴어축제 현장에서 반대 측이 노골적으로 행사를 방해하거나 장소를 선점해 진행을 막으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올해도 집회 신고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난달 30일 남대문경찰서에서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집회신고 1순위 자리를 두고 물리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장소 신고를 위해 릴레이 줄서기 하던 축제 주최 측 인원끼리 교대하려는 순간 보수단체 회원들이 밀치고 들어온 것이다. 경찰의 중재로 주최 측이 1순위 자리를 지켰고, 계획했던 장소에서 축제를 진행하게 됐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올해 퀴어축제는 지난 20년간 우리가 한국사회에 끊임없이 평등을 요구하고 도전해왔다는 점을 총결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축제 당일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다음달 1일 퀴어축제 반대 측인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 역시 서울광장 근처인 대한문 앞에서 반대 집회와 퍼레이드 등을 연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충무공 이순신의 전설이 시작된다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충무공 이순신의 전설이 시작된다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신의 몸의 살아 있는 한 감히 적은 조선의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정유재란 때인 1597년 7월 15일에 벌어진 칠천량해전이다. 지금의 거제 앞바다에서 무패(無敗)의 긍지가 높던 조선 수군은 어이없이 무너진다. 이순신에 이어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 160여 척은 일본 장수 도도(藤堂高虎)와 가토(加藤嘉明)의 기습을 받아 불과 12척의 전선만을 남기고 괴멸된다. 이에 조정은 백의종군(白衣從軍)하고 있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그리고 다시, 조선 수군 무패의 전설은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이어진다.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자료가 가득한 창원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다.# 23전 23승 전설의 시작, 옥포해전을 치른 장소에 해군사관학교가 해군에는 공식적인 명칭으로서의 해군박물관은 없다. 육군의 경우 육군사관학교 내에 육군박물관이, 공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공군박물관이 있다. 하지만 해군의 경우 해군사관학교에 위치한 박물관을 해군박물관이 아니라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라 부른다. 이는 전시 소장품의 특성 때문이다.해군사관학교는 1946년 1월 17일 창설될 때부터 특별히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문헌자료를 발굴, 연구하기 위해 도서관 내에 문헌전시실을 임시로 운영하였다. 그 후 개교 30주년 기념일을 맞아 1976년 1월 17일에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창설되었는데, 이는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문헌 전시실을 좀 더 크게 확장한 것에 불과하였다. 이후 1981년도에 들어서면서 독립된 박물관을 해군사관학교 교내에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바로 이런 까닭을 모른 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육군이나 공군박물관의 규모에 비해 소박한 박물관 규모에 다소 아쉬운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시 소장품의 내실은 결코 소박하지가 않다.# 충무공 이순신의 기록 위주로 보관 전시. 실제 크기의 거북선도 승선 체험 우선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2층 건물과 3층 건물이 접합된 형태의 건물 구조를 갖고 있으며, 연면적은 2,865㎡이다. 전시실은 4곳(이충무공실, 해군역사실, 역대참모총장기념관, 해사역사실)이며 그 면적은 1,717 ㎡이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이충무공실에는 모두 212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그 자료들은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들이 기록한 공의 행장, 공의 초상화, 공에 관한 각종 문헌, 임진왜란 당시의 각종무기, 선박의 그림, 임진왜란 해전도, 공의 유품의 모조품 또는 복사물들로 구성되어 있다.또한 해군역사실에는 모두 319점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신안 해저에서 우리 해군의 지원으로 인양된 중국 원나라 청자, 조선시대의 무기, 지도, 한국 해군의 초대참모총장 손원일 중장의 유품, 해군사관학교 11기 출신으로서 월남전 영웅 이인호 소령의 유품, 그리고 퇴역 군함들의 모형과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다.이외에도 해군사관학교 역사를 알려주는 각종 자료들과 더불어 야외전시실도 운영되고 있다. 특히 박물관 옆 귀빈부두에는 1980년 1월 31일에 충무공 이순신이 창제한 거북선을 실물 크기로 복원하여 해상에 계류 전시하고 있다. 실제 크기의 거북선에 승선하는 것만으로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방문의 의의는 충분할 듯하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대한 방문 10 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추천하는 방문지야? - 드넓은 해군사관학교 교정을 방문한다는 것만으로도 방문의 의미는 충분하다. 2. 누구와 함께? - 어린 자녀들과 함께. 군인 혹은 해군의 꿈을 품는 청소년이 있는 가정이라면 3. 가는 방법은? - 미리 견학신청을 해야 한다. 당연히 무료.- 인터넷 홈페이지(www.navy.ac.kr) 에 접속한 후 “방문 및 견학” 메뉴를 클릭하여 견학 절차를 이용 4. 의미깊은 방문체험은? - 거북선 승선 체험. 거북선 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생각보다 관람객들이 많지는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거북선, 박물관 앞 매점내 기념품 판매점. 7. 관람시 주의사항은? - 군사 시설이어서 통솔자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museum.navy.ac.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벚꽃 축제의 시작점인 여좌천로망스다리, 창원 해양드라마세트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충무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뜻깊은 장소다. 충무공의 기상을 이어받은 해군사관학교 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의 풍광은 상당히 이국적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캠퍼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현대시작품상에 오은 시인

    현대시작품상에 오은 시인

    제20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자로 오은(37) 시인이 선정됐다. 월간 ‘현대시’는 1일 오 시인의 시 ‘O와 o’ 외 9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한 오 시인은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유에서 유’, ‘나는 이름이 있었다’, ‘왼손은 마음이 아파’를, 산문집으로 ‘너랑 나랑 노랑’을 썼다. 오 시인은 개성 넘치는 말놀이를 바탕으로 자아의 실존을 드러내며,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오은의 시는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밀고 가면서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방법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한 방향을 제시해왔다”고 평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이 지원된다. 시상식은 오는 3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다리’에서 개최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 대통령, 삼성 국내사업장 첫방문 “신산업 전폭 지원”

    문 대통령, 삼성 국내사업장 첫방문 “신산업 전폭 지원”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우리나라를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이 삼성전자의 국내 사업장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여진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인도 국빈방문 도중 삼성전자의 인도 현지 휴대전화 공장인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올해 1분기 실적이 10분기 만에 최악을 기록하는 등 난관에 부딪힌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를 비롯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행사에서 ‘대한민국 반도체 비전선포’ 발언을 통해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육성계획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목표는 분명하다.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하고, 팹리스(생산시설 없이 반도체 설계만 담당하는 업체) 분야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지금의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집중 육성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문 대통령은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도 분야별 혁신전략을 수립하고, 국민과 기업들이 과감하게 신산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는 보도자료에서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1.5배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고, 경기변동 영향도 적어 가격 안정성이 높다”며 “한국 경제가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비전선포 후에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팹리스 ▲파운드리 ▲생태계 ▲인력 ▲기술 등 5대 분야별 중점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로 도약하기 위한 삼성전자의 전략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반도체 경기가) 좋지는 않지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행사 종료 뒤 삼성전자 EUV동 건설 현장을 방문해 공정 진행 상황과 향후 투자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장 직원들을 격려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EUV 공정 7나노 시스템반도체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을 시작했다”며 “이를 통해 파운드리 미세화 공정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착공한 EUV동의 공사를 내년 2월까지 완료하고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삼성전자 외에도 SK하이닉스, DB하이텍, 실리콘웍스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 주요 42개 기업 관계자 및 현대모비스, LG전자, 한전, 현대로보틱스 등 10개 수요기업 관계자가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관련 국무위원이 참석했고, 이재명 경기지사와 서철모 경기 화성시장도 행사장을 찾았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과 한정애 정책위 수석부의장, 이원욱·홍의락·권칠승 의원 등이 참석했고, 김용학 연세대 총장, 정진택 고려대 총장, 신동렬 성균관대 총장 등 학계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축소·변질된 ‘미세먼지 감축’ 도마에…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범위도 확대 필요

    축소·변질된 ‘미세먼지 감축’ 도마에…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범위도 확대 필요

    노후석탄발전소 조기폐쇄 대신 한시 중단 추경편성엔 기대감… 구체적 시행이 관건 가습기 살균제 피해판정 특정질환에 국한 6384명 중 2750명만 피해 지원받아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 “미세먼지 걱정 없는 쾌적한 대기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체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은 듯하다. 실제 서울신문과 참여연대 평가단이 환경 분야 국정과제 세부항목 이행도를 평가해보니 미세먼지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대책은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단은 미세먼지 감축 과제를 두고 ‘축소·변질돼 이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석탄발전소는 봄철에만 가동을 한시 중단하는 등 일부 공약은 시행 중에 있지만,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폐쇄는 공약엔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 석탄화력 9기 건설 중단도 2기(당진에코파워 1·2호기)만 LNG 연료로 변경되고, 나머지는 그대로 진행됐다. 백명수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은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구체적 계획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가 최근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1조 5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을 두고는 기대감을 나타낸 위원도 있었다. 단순히 돈을 쏟아붓는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 시행으로 연결될지가 관건이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조기 폐쇄만큼이나 미세먼지의 국내 주요 배출원으로 지목된 산업체에 대한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탈원전 과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정부는 원자력 제로 시대를 위해 신규 원전 중단 및 건설 계획 백지화 방침을 밝혔지만,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공론화위원회 결정에 따라 재개됐다. 평가단은 “정부가 주춤한 사이 업계는 이미 백지화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및 재발 방지 과제는 피해자 인정 숫자가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 관련 예산이 대폭 늘었지만 4월 기준 신고 피해자 6384명(사망자 1403명) 중 2750명만 피해에 대한 지원을 받았다. 김기태 가습기넷 공동운영위원장은 “애초 취지와 달리 정부의 피해 판정이 폐질환, 태아 피해, 천식 등 일부 특정 병증 질환에만 국한돼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중소 팹리스에 자체개발 지식 공유… 삼성, 반도체 생태계 키운다

    중소 팹리스에 자체개발 지식 공유… 삼성, 반도체 생태계 키운다

    연구개발 73조·생산시설 60조원 투자 설계 업체들에 인터페이스 IP 등 지원 불량 분석 툴·소프트웨어 등 나눠 ‘상생’ 소량제품 생산·디자인하우스와 협력 “향후 화성캠퍼스 신규 EUV 라인 활용한 생산량 증대·신규 라인 투자도 지속 추진” 삼성 관련 반도체 클러스터 구체화 주목 업계들 “매출액 기준 현실성 있다” 진단 2030년까지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연구개발·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을 담아 ‘반도체 비전 2030’을 24일 발표하며 삼성전자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D램·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2030년까지 글로벌 1위를 달성하는 것이다. 가능할까. 반도체 업계에선 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현실성 있는 목표라고 진단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위탁생산)로 구분된다. 삼성전자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모두 한다. 팹리스·파운드리 양쪽을 더한 매출액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1위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의 설명이다. 팹리스로부터 설계 도면을 받아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는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시장 석권 여정 초반의 디딤돌이 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70조원 규모로, 대만의 TSMC가 1인자이지만 삼성전자가 치열하게 기술경쟁을 하는 중이다.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TSMC 48.1%, 삼성전자 19.1%, 글로벌파운드리 8.4%, UMC 7.2%, SMIC 4.5% 순으로 집계했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여전히 TSMC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 50% 이상을 넘었던 TSMC의 점유율 벽을 삼성전자가 공략하는 중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7~5나노 미세공정 기술에서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 왔다. 과거에는 팹리스와 파운드리 사업을 함께 하는 것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약점이 될 것이란 짐작이 있었다. 애플이 아이폰에 탑재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인 AP(스마트폰의 CPU) 생산을 경쟁 스마트폰 기업인 삼성전자에 선뜻 맡기긴 쉽지 않다고 보는 시각에서였다. 하지만 실제로 애플은 삼성의 반도체, 삼성의 OLED(올레드·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등 부품을 채택해 왔는데 이는 독보적 기술력을 보유하는 한 파운드리가 반드시 팹리스의 ‘을’(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비메모리 반도체가 실제 기기 안에서 고장 없이 순조롭게 가동되려면 설계역량뿐 아니라 구현능력, 즉 파운드리 기술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파운드리사업부를 설계사업(LSI 사업부)과 분리해 사업 전문성을 강화하고, 지난해부터 화성사업장에 극자외선(EUV) 라인을 건설하는 등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강화에 의지를 보여 왔다. 이날 발표 중 팹리스 육성 비전은 특히 삼성전자의 체질 변화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국내 팹리스 업체 지원 ▲중소 팹리스에 삼성전자 개발 인터페이스IP(지적재산권), 아날로그IP, 시큐리티IP 호혜적 지원 ▲삼성전자가 개발한 설계/불량 분석 툴과 소프트웨어 지원 ▲반도체 위탁생산 물량 기준 완화로 국내 중소 팹리스 업체의 소량제품 생산 지원 ▲디자인하우스(설계 서비스 기업)와의 외주협력 확대 등 상생 생태계 조성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문재인 정부가 꼽은 육성 산업과 일치하는 가운데 현 정부의 상생 기조를 적극 반영해 전략을 세운 삼성전자의 정치적 고려가 엿보이는 대목이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필연적인 선택으로도 평가된다. 업계 표준 제품을 빨리 대량생산해 가격 경쟁력을 갖춰서 잘 파는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과 다르게 제품, 기기별로 특화된 칩을 생산해 내는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운영된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비’(非) 자체가 저장 자치인 메모리 반도체를 뺀 모든 반도체를 의미하고, 그만큼 반도체의 종류가 다양한 것이다. 스마트폰, 5G,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동차부품,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력 부품, 이미지 센서 등 다양한 기술 분야마다 적합한 비메모리 반도체가 있고 브랜드와 제품 별로도 탑재되는 반도체가 다르다. 따라서 다품종 반도체 설계부터 양산까지 다수 기업이 제휴하고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성장의 필수 요소로 꼽힌다. ‘반도체 비전 2030’은 고용, 지역개발 측면에서도 직간접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전자는 이날 “향후 화성캠퍼스 신규 EUV 라인을 활용해 생산량을 증대하고, 국내 신규 라인 투자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신규 라인을 기존 캠퍼스 부지에 증설할지 새로운 부지를 물색할지 등에 대해선 미정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수도권 공장총량 규제 완화로 SK하이닉스 주도의 용인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이 확실시된 가운데 삼성 관련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도 구체화될지 주목된다. 삼성전자가 밝힌 “1만 5000명 직접고용, 42만명 간접고용 유발”의 영향력도 관심을 모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R&D) 및 제조 전문인력을 포함해 1만 5000명”이라면서 “R&D 인력은 석·박사 전문인력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고, 제조 인력 역시 숙련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반도체 육성 시절 고졸 생산직원이 대규모 고용됐던 것과 다른 형태의 인력 수급이 진행될 것이란 뜻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비메모리 ‘1위 로드맵’… 삼성, 133조원 승부수

    비메모리 ‘1위 로드맵’… 삼성, 133조원 승부수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육성에 133조원을 투자한다. 삼성전자는 24일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에 73조원, 최첨단 생산 시설 확충에 60조원을 투자하고, R&D와 제조 전문인력 1만 5000명을 채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발표가 “지난 1월 이재용 부회장이 밝힌 ‘2030년까지 비메모리도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이라고 설명했다. ●42만명 간접고용 유발 효과 대규모 R&D 투자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연구 인력 양성에 기여하고, 시설을 확충해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발전을 견인한다는 게 삼성전자의 구상이다. 삼성전자는 계획이 실행되면 2030년까지 연평균 11조원 투자가 집행되고,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42만명 간접 고용 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앞으로 경기 화성캠퍼스의 신규 극자외선(EUV) 생산라인을 활용해 생산량을 늘리고 국내 신규 라인 투자도 지속 추진한다는 계획이어서 국내 생산공장 추가 건립도 예상 가능하다. ●2030년까지 1만 5000명 채용 목표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고객들에게 자체 개발한 설계 관련 지식재산권(IP)을 지원하고, 설계·불량 분석 툴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로 했다. 위탁생산 물량 기준을 낮춰 중소업체의 소량 생산을 지원하는 등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축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이날 발표한 계획은 최근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비메모리 산업 육성과 궤를 같이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국무회의에서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높여 메모리 반도체 편중 현상을 완화하는 방안을 신속히 내놓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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