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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기습남침 저의 다시 입증/제4땅굴발견 계기로본 속전속결 전략

    ◎시간당 수만명 후방 침투 가능/거의 대규모… 20여개 모두 DMZ에 판 듯 동부전선에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이 또하나 발견돼 우리 국민은 물론,온세계에 다시한번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잇단 무장공비의 침투,휴전선에서의 충격,푸에불로호의 납치,판문점에서의 도끼 만행 등 갖가지 도발을 일삼았고 그들이 판 땅굴 또한 이미 3개나 발견돼 우리들의 감각을 상당히 무디게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6∼7년동안은 눈에 두드러진 도발 행위가 별로 없었고 때마침 공산권의 개혁바람을 타고 동서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우리 또한 북방정책의 성공적 진전으로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에 엉뚱하게도 제4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북한의 제4땅굴은 지금까지의 3개와 마찬가지로 병력과 장비 이동을 위한 남침용 땅굴로 북한군의 기습 침략 작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방당국은 이같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1백55마일에 걸친 휴전선 남쪽 2㎞ 안에 모두 20여개가있는 것으로 추정,그동안 탐색작업을 꾸준히 벌여오다 이번에 하나를 찾아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남방 한계선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판다음 그곳에서 여러갈래로 분산시켜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땅굴은 차량ㆍ탱크ㆍ야포 등 중장비까지도 통과시킬 수 있으며 중무장한 전투병력이 3∼4열로 행군할 수 있는 규모이다. 특히 철원의 제2땅굴은 한시간에 3만명의 무장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규모이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것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대화가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71년 9월 김일성은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에게 기습 남침용 땅굴을 파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이른바 「9ㆍ25교시」를 통해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법을 도입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하라』고 지시,1대에 40억∼1백억원에 이르는 스웨덴제 고성능 암반굴착기 16대를도입,72년 5월부터 각 군단별로 2∼3개의 땅굴을 파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남침용 땅굴을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음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중국산 고성능 폭약을 사용하기도 하고 콤프레셔 등으로 바위를 깨뜨려가며 굴을 뚫었다고 한다. 땅굴을 파면서 나온 흙과 바위 등은 야간에 포장트럭으로 운반,아군측의 SR71이나 U2기 등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땅굴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초 전방의 일산ㆍ문산ㆍ판문점ㆍ철원 부근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나 민통선 북쪽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땅속에서 대포소리가 나며 화약연기와 안개 등이 피어오르는 등 비무장지대안 땅속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하면서 였다. 이때부터 우리군은 북한군측과 지상및 지하의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그 정체를 밝히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때만해도 우리 군에는 굴착기나 착암기 등 제대로 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장병들은 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땅에 대고 소리를 듣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탐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침용 제1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15일 상오 7시35분 경기도 고랑포 동북쪽 8㎞ 지점에서 였다. 휴전선 군사분계선 남쪽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던 국군 민경대원들이 지상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어나는 것을 보고 구멍을 통해 46m 아래 지하에 거대한 땅굴이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어 제2ㆍ제3의 땅굴이 잇따라 발견됐고 마침내는 3일 네번째 땅굴이,그것도 내외신기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북한측의 기습남침 의도가 다시한번 폭로되기에 이른 것이다.〈김원홍기자〉 □남침용 땅굴 관계 일지 ▲74년11월15일=중서부 전선 고랑포 동북쪽 8㎞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1땅굴 발견 ▲74년11월19일=국회,비무장지대 땅굴발견과 관련 북한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결의문과 대유엔 메시지를 만장일치로 채택. ▲74년11월20일=유엔군,비무장지대 감시조가 북한 터널 정밀탐색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폭발. 김학철해병소령과 벨린저미해군중령 사망 ▲75년3월19일=중부전선 철원 북쪽 13㎞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2땅굴 발견 ▲75년3월21일=귀순용사 김부성씨(전 남파간첩 호송원)와 류대윤씨(전 북한군 소위)가 육군회관 기자회견에서 북한 땅굴공사 전반에 걸친 진상 폭로 ▲75년4월1일=제2땅굴 내부전모 내외보도진에 첫 공개 ▲78년10월17일=판문점 남쪽 4㎞에서 제3땅굴 발견 ▲88년9월8일=한미합동 탐사팀이 7개 지역에서 땅굴 징후를 발견 시추를 했으나 자연동굴로 밝혀짐 ▲90년1월=동부전선 양구지역에 땅굴 징후 발견 ▲90년3월3일=국내외 보도진 참관아래 제4땅굴 발견
  • “한국측 DMZ에 장벽은 없었다”/홍콩 기자 「휴전선 시찰기」

    ◎“장벽속엔 미 핵무기” 북측,억지 되풀이/영 네스호 「괴물 출몰설」처럼 가공 선전 북한은 지난 15일 서방기자들에게 한국이 쌓았다는 비무장지대의 콘크리트장벽을 보여주려 했으나 기자들의 눈에는 아무런 장벽도 보이지 않았다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가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의 외신부장 리처드 바인스가 북한쪽 비무장지대 부근인 평화리발로 쓴 「평양,한국의 장성수수께끼를 푸는데 실패하다」란 제하의 기사에 따르면 홍콩의 서방 외신기자 25명을 인솔한 북한의 홍순금 중령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며 쌍안경을 통해 한국이 쌓았다는 장벽을 보라고 했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북한의 초청을 받아 홍콩∼평양 정기 전세기 취항에 앞선 시험비행으로 지난 13일 평양에 갔었다. 북한측은 기자들을 평화리로 데려가는 동안 한국이 지난 76년 8월부터 콘크리트장벽을 쌓기 시작,79년 완공했으며 높이 5m 폭 10m의 이 장벽을 설치하는 데 80만t의 시멘트,20만t의 철근,석회 1백50만t이 소요됐다는 거짓선전을 했다는것이다. 또 미국측이 이 장벽의 철문속에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핵무기를 숨겨놓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 기사는 전했다. 북한의 홍중령은 기자들을 6개의 쌍안경이 놓여있는 관측소로 안내했고 이들에게 『몸을 너무 노출시키면 남한측 병사로부터 사격을 받는다』고 경고까지 했다는 것. 모닝 포스트지의 리처드 바인스부장은 홍중령이 『저기 장벽이 있다』는 말에 따라 쌍안경을 건네받고 살펴보았으나 도로로 보이는 희미한 선과 흔히 있는 구릉밖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있지도 않은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김일성의 주장은 『영국 스코틀랜드 네스호에서 괴물을 보았다』는 격이며 전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트지는 바인스부장이 이 기사를 평화리에서 보내고 평양에 돌아와 보니 어떤 침입자가 그의 호텔방을 뒤져 2통의 편지를 뜯어 본 흔적이 있었으며 현금과 귀중품들이 없어졌다고 폭로했다. 또 홍콩주재 로이터통신기자는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는 건물의 사진을 찍었다고 2시간동안이나 감금당했다가 홍콩기자들의 북한방문을 알선한 관계자가 현장에 달려와 교섭한 끝에 사과를 하고서야 석방됐다고 덧붙였다. 이들 평양 방문기자단은 17일 하오 홍콩으로 돌아왔으며 포스트지의 바인스 외신부장은 홍콩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우리들이 다른 장소로 옮겨 장벽을 자세히 볼수 있게 해줄 것을 북한측에 요청하자 그들은 위험해서 안된다며 꽁무니를 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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