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달린다 일류를 향하여/전자업계 ‘글로벌 합종연횡’
‘2,3등은 소용없다.1등만 살아남는다.’
전자 및 정보기술(IT)업계만큼 치열한 ‘1등싸움’이 벌어지는 산업계도 드물다.기술의 발전속도가 빠르고,기술력이 없으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대부분의 사업영역에서 1등이 아니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도 없다.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업을 흔히 볼 수 있는 곳이 전자 및 IT업계다.1등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까닭이다.
●피말리는 생존경쟁
얼마전까지는 대부분의 업종에서 ‘3강’에만 들면 안정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이른바 ‘솥발(鼎)’처럼 시장을 3등분하면서 쉽게 사업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미국 자동차업계를 빅3(GM,포드,크라이슬러)가 지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차츰 이런 3강체제가 무너지고 ‘막강한’ 최강과 ‘고만고만한’ 2중 체제로 바뀌고 있다.1위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메모리반도체 D램 시장에서 최강인 삼성전자와 2,3위 기업과의 점유율 차이는 10%포인트나 된다.휴대전화 시장에서도 1위 노키아는 2,3위인 모토로라,삼성전자에 비해 갑절 이상 많이 팔고 있다.그만큼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글로벌 경쟁은 결코 외형 위주의 경쟁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수익위주 경영을 하기 때문에 1위 기업과 기타 기업간에는 외형뿐 아니라 수익에서도 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2003년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에서 2조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과 대조적으로 2,3위 기업인 인피니온과 마이크론은 각각 수억달러씩 영업손실을 냈다.1위 기업을 따라잡기가 갈수록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로
이처럼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지면서 글로벌 기업간의 이합집산도 빈번해지고 있다.어제의 ‘적’을 동지로 삼아 동맹을 맺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선전이 두드러지면서 사업의 파트너로 삼으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손짓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2003년에만 일본 업체와 합작사 설립 2건,전략적 제휴 5건을 맺었다.소니와는 차세대 TV용 LCD를 생산하는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합작사,도시바와는 광스토리지 분야의 합작사를 세웠다.NEC,산요,마쓰시타 등과도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다.
LG전자도 2000년 히타치와 공동출자 형태로 광스토리지 합작사를 설립한데 이어 2003년에는 프랑스 톰슨과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분야에서의 공동 연구·개발(R&D)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했다.
●“1등 제품 선정·투자 집중”
그렇다면 2004년 현재 우리 기업들의 ‘성적표’는 어떨까.
국내의 전자 및 IT기업중 확실한 ‘글로벌 톱’ 제품을 갖고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정도다.물론 중소기업인 레인콤이 MP3플레이어(브랜드명 아이리버) 하나만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사례도 있지만 이는 극히 이례적이다.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글로벌 1등에 올려놓은 품목은 반도체 D램을 포함,모두 10개.LG전자는 에어컨 등 4개 품목이다.
삼성전자는 D램이 92년 이후 1위를 고수중이고,S램,난드(NAND·데이터저장)형 플래시메모리,LDI(디스플레이구동칩) 등의 반도체 품목과 TFT-LCD,CDMA(코드분할다중접속) 휴대전화,컬러모니터,VCR,전자레인지,컬러TV 등이 1995∼2002년에 1위에 올랐다.
LG전자는 2000년부터 연속으로 에어컨이 1등에 오른 것을 비롯,광스토리지와 CDMA WLL(광대역무선가입자망)단말기,전자레인지 등이 세계 시장을 뚫고 1위에 올랐다.전자레인지는 삼성과 LG가 각각 25%대의 점유율을 보여 세계 가구의 절반이 우리 제품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두 기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삼성은 2010년까지 월드베스트 제품을 26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고,LG는 디지털TV(PDP,LCD 포함)와 이동단말 등을 ‘승부사업’으로,디지털가전,디지털AV 등을 ‘주력사업’으로 선정,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