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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주·만화 등 단어 살려… 원작 정신 충실”

    “소주·만화 등 단어 살려… 원작 정신 충실”

    해외서 한강 작품 치밀한 구조 등 주목 최고의 번역도 작품 좋아야 유의미 영국인들 한국 소설 관심 크게 늘어 “저의 ‘채식주의자’ 번역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성은 번역가가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추구하는 가치이죠. 전 ‘채식주의자’에 쓰인 소주, 만화 등을 코리안 보드카, 코리안 망가 등으로 번역하자는 의견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소주는 ‘Soju’로, 만화는 ‘Manhwa’ 등 한국의 일상적 단어들을 원문대로 썼어요. 스시라는 일본 단어를 영국인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더 많은 한국 문학이 소개될수록 한국식 표현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문으로 번역해 지난달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공동 수상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는 15일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초청 한국 문학 세계화 포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해외에서 한강 작품의 치밀한 구조와 강렬한 이미지, 시적인 문장에 주목하며 뛰어난 작가로 인정한 것이 정말 기쁘다”면서 “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강의 다른 작품을 읽을 날을 고대하고 있으며, 한국 소설에 새로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이어 “‘채식주의자’는 연작 소설이라는 개념이 없는 영국에는 매우 신선한 시도였고, 애뜻함과 공포의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잘 통제된 문체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스미스는 “항상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려고 하며 가능한 한 훼손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언어 선택에 충실하려고 한다. 나 역시 다른 번역가와 마찬가지로 원작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부실한 번역은 우수한 작품을 훼손할 수 있지만,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의 번역이라도 보잘것없는 작품을 명작으로 포장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 문학의 노벨상 수상 전망에 대한 질문에는 “사실 한국에서 노벨상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obsessed)이 약간 당황스럽다”며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잘 감상하고 즐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에겐 충분한 보상이 된다. 상은 그저 상일 뿐이다”라고 못 박았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까지 번역 출간된 작품이 많지 않은데 이제 번역이 늘고 있어 앞으로 많이 알려질 것이다. 앞으로 한국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답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2010년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에서 한국학 석사, 한국문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집에서 홀로 한국 문학 번역 작업을 했다. 스미스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안도현의 ‘연어’도 번역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배수아의 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 ‘올빼미의 없음’도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또 올해 ‘미국 문학 번역가 협회’의 연례회의에 배수아 작가와 함께 참석해 미국 뉴욕 등지에서 낭독 행사를 연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스페인에서 제13회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 열려

    스페인에서 제13회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 열려

    지난 10일과 11일, 스페인 발렌시아에서는 ‘제13회 WCDN 스페인 콘퍼런스’가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개최국인 스페인을 비롯해 미국, 러시아,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이스라엘 등 30개국 300여 명의 의료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스페인 멜리아 발렌시아 호텔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한국에 본부를 둔 WCDN(World Christian Doctors Network)은 다양한 영역의 의학 세미나를 통해 세계 각국 기독의사들의 의견교환과 원활한 협력활동을 도모하는 모임으로, 지난 2004년 서울을 시작으로 매년 세계 각국을 돌며 콘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개최된 올해 행사에서는 총 10가지의 치유사례가 발표돼 눈길을 모았다. 또한 WCDN 부회장 황준하 박사(신경생리학)는 ‘창조와 과학’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특강을 통해 여러 학자의 견해와 실증 자료를 통해 진화론의 허구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WCDN을 설립한 이재록 목사는 “국제 기독의학 컨퍼런스는 영적인 치유(Divine Healing) 사례에 대한 기독의사들의 발표와 논의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행사”라며 “해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해 여러 치유 사례를 발굴하고, 의학적으로 검증하며 전 세계인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행사를 개최한 WCDN은 내년에는 러시아에서 콘퍼런스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내 최대 책잔치 보러 오세요

    국내 최대 책잔치인 ‘2016 서울국제도서전’이 15일부터 19일까지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책으로 소통하며 미래를 디자인하다’를 주제로, 20개국 346개 출판사가 참가해 인문사회, 과학, 문학, 예술, 아동 등 다양한 도서를 선보인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개정판을 최근 출간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가 패널로 초대되고, 신달자 시인이 홍보대사로 참가한다. 고영수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책과 디자인을 콘셉트로 한 다양한 출판문화 행사를 준비했다”며 “저자와의 대화를 비롯해 출판 관련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컬로퀴엄 등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올해 도서전은 주빈국이 없는 대신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각각 ‘컬처 포커스’, ‘스포트라이트 컨트리’로 선정됐다. 프랑스문화원은 ‘한·불 상호교류의 해’ 행사의 하나로 앙투안 로랑, 세바스티앙 팔레티, 앙투안 세페르스 등 소설, 수필, 요리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를 한국에 알린다. 이탈리아는 아동 도서와 일러스트레이션 책을 집중적으로 홍보한다. 이와 함께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을 맞아 ‘1446년 한글, 문화를 꽃피우다’ 특별전과 ‘구텐베르크’ 특별전이 마련된다. 또 이문열, 윤대녕, 정유정 등 소설가와 신병주, 명로진 등 인기 작가와의 대화 시간도 준비된다. 외국 작가로는 노르웨이 니트 디자이너인 아르네와 카를로스, 이스라엘 출신 예술가인 하노흐 피벤, 오스트리아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페트라 하르틀리프가 도서전을 찾는다. 아울러 제3회 디지털북페어코리아 행사도 함께 열린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제10의 예술’ 그림책협회 출범

    그림책 작가, 디자이너, 출판사·연구 교육자 등으로 구성된 그림책협회가 13일 서울시민청에서 출범했다. 동화로 분류되고 있는 그림책을 독자적인 장르로 독립하고, 새로운 예술로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그림책협회는 이날 제8의 예술 ‘사진’, 제9의 예술 ‘만화’에 이어 그림책을 제10의 예술로 선언했다. 회장은 한성옥 작가, 부회장은 신혜은 교수, 문승연 작가가 맡았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책은 얼어붙은 마음 깨는 ‘도끼’… 하루 두 쪽만 음미해도 많이 남아”

    “책은 얼어붙은 마음 깨는 ‘도끼’… 하루 두 쪽만 음미해도 많이 남아”

    카피라이터 박웅현(55)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CCO)가 2011년 ‘책은 도끼다’ 출간 5년 만에 후속작 ‘다시, 책은 도끼다’(북하우스)로 돌아왔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제목에 썼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 버린 바다를 깨뜨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다른 제목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책은 ‘도끼’라는 의미를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게 그의 말. 지난 10일 서울 강남 가로수길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박웅현은 “지난 20년 동안 책을 읽을 때마다 필사하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메모들”이라며 서랍에 고이 모셔진 메모장들을 보따리 풀듯 기자 앞에 펼쳐 놓았다. 수십권이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곽재구의 ‘길귀신의 노래’, 김사언의 ‘시를 어루만지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등을 읽을 때마다 ‘전기 충격을 맞은 듯 감정이입’돼 써 내려간 메모들이다.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진심이 짓는다’ 등 그가 남긴 카피들과 그가 직접 쓴 메모들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응축돼 있다는 점에서 쏙 빼닮았다. 이번 책도 전작 못지않게 ‘박웅현스럽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문서 강독회 강연을 엮은 책 ‘여덟 단어’(2013년)와 ‘책은 도끼다’는 각각 100쇄를 넘기며 30만부 이상 팔렸다. “전작이 책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삶의 태도를 관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책은 책을 읽는 법, 저만의 ‘독법’과 ‘해석하는 법’을 말하고 있어요.” 그의 독법은 봄바람을 만끽하듯 천천히 읽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심사(深思·깊이 생각하기)하자는 게 핵심이다. #그의 메모 1 읽었으면 느끼고, 느꼈으면 행하라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다. 똑같은 문장도 3만명이 읽으면 3만개의 해석이 나와야 한다. 스마트폰 같은 개떼들이 쫓아오니까 어디로 뛰는지도 모르고 뛰는 게 현실이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온갖 정보만 쌓고 있는 건 용량이 무한정한 ‘알파고’와 싸우자는 미련한 짓이다. 스마트폰을 끄고, 접속을 멈추고, TV 앞에 앉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자. 인풋도 아니고 아웃풋도 아니고 노풋(no-put) 상태로 있는 거다. 읽고, 느끼고, 행하자. 그래야 내가 담쟁이의 도종환이 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며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낀 김훈이 될 수도 있다.” #그의 메모 2 욕망의 최대치와 나의 비루한 현실을 비교하며 애써 불행해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이것저것 정신없이 살면 답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나. 앞으로 40~50년 동안 힘이 될 만한 것을 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건 스펙이 아니다. 스펙으로 취업되는 게 불행의 시작 아닐까. 나도 신입사원 면접을 한다. 나 같은 경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책을 읽어 봤고, 어떤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켜 왔는지를 주로 본다. 영화, 음악, 책, 트렌드를 질문해 보면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다. 흥행하는 영화만 보는 친구와 생전 들어보지 못했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든 영화를 본 친구가 있다면 난 무조건 후자다. 무엇을 하든 자신만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의 메모 3 세상사에 시선이 따뜻한 사람이 시인이다.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카피와 시(詩)는 태생이 다르다. 카피는 마케팅이 핵심이다. 근데 왜 시인의 감성과 비슷하냐면 카피에는 ‘시적인 압축미’가 들어가 있다. 카피가 마치 시처럼 읽히는 이유다. 김사언은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남프랑스에 대해 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자. 햇볕이 찬란하고, 키 큰 나무가 있고, 바람이 불면 그 나뭇잎들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상상하게 된다.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밀어 본다. 그리고 한 줄,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시를 4D영화처럼 읽게 되면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그의 메모 4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 “빨리 이 책을 끝내야지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나는 책을 읽을 때 이게 내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읽는다. 천천히 음미하듯 읽다 보면 하루 종일 2페이지를 읽어도 남는 게 많다. 내 인생의 8할은 책과 ‘촉수’(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였다. 책에 감정이입하는 훈련, 메모하고 필사하는 훈련을 몸에 익히면 같은 문장을 적어도 3번은 읽게 된다. 내 머릿속에 문장이 들어오게 되는 심사와 시습(時習·배운 대로 익히기)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함석헌사상 깊이 읽기’ 시리즈 3권 15일 출간

    ‘함석헌사상 깊이 읽기’ 시리즈 3권 15일 출간

    20세기 대표적인 사상가인 함석헌(1901∼1989) 선생의 사유를 풀어 쓴 ‘함석헌사상 깊이 읽기’ 시리즈가 15일 출간된다. 함석헌학회장인 김영호 인하대 명예교수가 함석헌 선생의 저술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해설한 이 책은 ‘사상의 형성과 전개’, ‘생각과 실천’, ‘생명 평화 같이 살기’ 등 시기와 주제별로 묶어 한길사에서 펴낸다. 3권을 합해 2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한길사는 출간을 기념해 14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다시 함석헌을 생각하는 밤’ 행사를 열고 저자 강연과 독자 낭독을 진행한다. 함석헌 선생은 기독교에 뿌리를 두면서도 한국 전통사상과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사람을 ‘씨알’에 빗대 역사·사회적 주체성을 강조한 ‘씨알사상’을 발전시켰다. 씨알사상을 처음 주창한 사람은 그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1890∼1981) 선생이다. 한길사는 “이번 행사는 불의에 항거한 비판적 지식인이자 극한 상황에서 사상과 지혜를 날카롭게 닦은 선각자의 사상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책이란 우리 안에 꽁꽁 얼어 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

    “책이란 우리 안에 꽁꽁 얼어 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

     카피라이터 박웅현(55)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CCO)가 2011년 ‘책은 도끼다’ 출간 5년 만에 후속작 ‘다시, 책은 도끼다’(북하우스)로 돌아왔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제목에 썼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 버린 바다를 깨뜨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다른 제목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책은 ‘도끼’라는 의미를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게 그의 말.  지난 10일 서울 강남 가로수길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박웅현은 “지난 20년 동안 책을 읽을 때마다 필사하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메모들”이라며 서랍에 고이 모셔진 메모장들을 보따리 풀듯 기자 앞에 펼쳐 놓았다. 수십권이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곽재구의 ‘길귀신의 노래’, 김사언의 ‘시를 어루만지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의 ‘섬’, 괴테의 ‘파우스트’, 마르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 등을 읽을 때마다 ‘전기 충격을 맞은 듯 감정이입’돼 써 내려간 메모들이다.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진심이 짓는다’ 등 그가 남긴 카피들과 그가 직접 쓴 메모들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응축돼 있다는 점에서 쏙 빼닮았다. 이번 책도 전작 못지않게 ‘박웅현스럽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문서 강독회 강연을 엮은 책 ‘여덟 단어’(2013년)와 ‘책은 도끼다’는 각각 100쇄를 넘기며 30만부 이상 팔렸다.  “전작이 책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삶의 태도를 관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책은 책을 읽는 법, 저만의 ‘독법’과 ‘해석하는 법’을 말하고 있어요.” 그의 독법은 봄바람을 만끽하듯 천천히 읽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심사(深思·깊이 생각하기)하자는 게 핵심이다.     #그의 메모 1 읽었으면 느끼고, 느꼈으면 행하라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다. 똑같은 문장도 3만명이 읽으면 3만개의 해석이 나와야 한다. 스마트폰 같은 개떼들이 쫓아오니까 어디로 뛰는지도 모르고 뛰는 게 현실이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온갖 정보만 쌓고 있는 건 용량이 무한정한 ‘알파고’와 싸우자는 미련한 짓이다. 스마트폰을 끄고, 접속을 멈추고, TV 앞에 앉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자. 인풋도 아니고 아웃풋도 아니고 노풋(no-put) 상태로 있는 거다. 읽고, 느끼고, 행하자. 그래야 내가 담쟁이의 도종환이 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며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낀 김훈이 될 수도 있다.”    #그의 메모 2 욕망의 최대치와 나의 비루한 현실을 비교하며 애써 불행해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이것저것 정신없이 살면 답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나. 앞으로 40~50년 동안 힘이 될 만한 것을 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건 스펙이 아니다. 스펙으로 취업되는 게 불행의 시작 아닐까. 나도 신입사원 면접을 한다. 나 같은 경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책을 읽어 봤고, 어떤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켜 왔는지를 주로 본다. 영화, 음악, 책, 트렌드를 질문해 보면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다. 흥행하는 영화만 보는 친구와 생전 들어보지 못했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든 영화를 본 친구가 있다면 난 무조건 후자다. 무엇을 하든 자신만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의 메모 3 세상사에 시선이 따뜻한 사람이 시인이다.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카피와 시(詩)는 태생이 다르다. 카피는 마케팅이 핵심이다. 근데 왜 시인의 감성과 비슷하냐면 카피에는 ‘시적인 압축미’가 들어가 있다. 카피가 마치 시처럼 읽히는 이유다. 김사언은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남프랑스에 대해 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자. 햇볕이 찬란하고, 키 큰 나무가 있고, 바람이 불면 그 나뭇잎들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상상하게 된다.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밀어 본다. 그리고 한 줄,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시를 4D영화처럼 읽게 되면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그의 메모 4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  “빨리 이 책을 끝내야지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나는 책을 읽을 때 이게 내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읽는다. 천천히 음미하듯 읽다 보면 하루 종일 2페이지를 읽어도 남는 게 많다. 내 인생의 8할은 책과 ‘촉수’(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였다. 책에 감정이입하는 훈련, 메모하고 필사하는 훈련을 몸에 익히면 같은 문장을 적어도 3번은 읽게 된다. 내 머릿속에 문장이 들어오게 되는 심사와 시습(時習·배운 대로 익히기)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책] ‘욕 킬러’ 남철이가 ‘칭찬 스타’ 되기까지

    [이주의 어린이책] ‘욕 킬러’ 남철이가 ‘칭찬 스타’ 되기까지

    우리 반 욕 킬러/임지형 지음/박정섭 그림/미래엔 아이세움/140쪽/1만원 아이들이 하는 욕을 듣고 있으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요즘 아이들은 욕을 잘해도 너무 잘한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인지…. 화가 날 때, 게임이 잘 안될 때, 친구와 싸울 때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어른이 된 것 같은 우쭐함을 느끼고 싶을 때, 심지어 친근함을 표현할 때도 서슴없이 욕을 한다. 아이들은 욕이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언어 폭력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멋있어 보이니까, 힘세 보이니까, 친구들이 많이 쓰니까 욕을 따라 한다. 이 책은 소문난 ‘욕 킬러’인 남철이가 욕 때문에 친구한테 상처를 준 경험을 계기로, 욕을 하지 않는 아이로 거듭나 ‘칭찬 스타’ 후보가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아이들은 학급회의에서 ‘욕을 사고판다’는 기발한 생각을 모아 자발적으로 ‘매일 자기가 하고 싶은 욕을 돈 주고 사는 규칙’을 정한다. 욕 한번의 가격은 초등학생에게는 큰돈인 500원이다. 반에서 가장 욕을 잘하던 남철이는 하루 종일 욕을 참는 게 힘들어 잠결에 욕을 하기도 하고, 욕을 떨치기 위해 스스로 운동장을 달리기도 한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하면서 자신은 욕보다 칭찬을 더 잘한다는 것을 그리고 칭찬은 칭찬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아이들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아이들의 변화를 전한다. 욕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모욕하는 나쁜 일이니, 응당 그 책임과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돈’을 매개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특히 욕을 잘하는 남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10세 이상.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축구의 DNA는 제의성과 공격성

    축구의 DNA는 제의성과 공격성

    축구 종족/데즈먼드 모리스 지음/이주만 옮김/한스미디어/356쪽/2만 5000원 1차 세계대전 때인 1916년 7월 1일 영국군 ‘이스트 서리’ 연대는 프랑스 솜 지역에 있는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윌프레드 네빌 대위가 지휘하는 중대가 선봉에 섰고, 그는 4개 소대에 축구공을 하나씩 나눠줬다. 2㎞ 떨어진 적 진지까지 축구공을 차며 돌격하는 전술이었다. ‘축구 종가(宗家)’인 영국군의 발상치고는 무모하기조차 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경기였다. 선봉에 선 네빌 대위는 기관총 세례를 받아 쓰러졌고, 대원들은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렸다. 마침내 골라인 독일군 진지를 백병전으로 함락했다. 전투가 끝나고 독일군 참호에 떨어진 축구공 2개가 발견됐다. 영국군은 그 축구공들을 킹스턴의 연대본부에 승리의 트로피로 영구 보존했다. 축구는 현대사회에서 종교 그 자체다. 승리를 향한 광신은 열광과 환희, 숭배와 폭력까지 낳는다. 전 세계 국가들이 맞붙는 월드컵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는 축구 축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축구를 다룬 책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구라는 놀이 행위를 문화인류학적으로 들여다본 책은 드물다.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도발적으로 다룬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인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펴낸 ‘축구 종족’은 축구의 인류학적 DNA부터 각종 의례와 절차, 의복과 장신구, 언어까지 축구를 고대 부족들 간의 ‘제의’행위로 접근해 분석했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여러 행동 가운데 축구를 가장 독특한 활동으로 꼽는다. 축구 활동의 중심을 차지하는 각각의 ‘축구 클럽’이 하나의 부족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빗댄다. 각각의 부족(축구 클럽)들 안에는 각 부족의 영토(스타디움)가 있고, 수뇌부에는 부족 원로(클럽 이사회)와 주술사(감독 및 코칭스태프)가 존재하며, 부족의 전사들(선수)과 그들을 따르는 신봉자들(서포터스)이 존재한다. 각 축구족에 스타디움은 거대한 신전이며 축구 규칙은 경전이다. 저자에 따르면 축구는 원시시대에서 기원한다. 전략과 전술을 쓰고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며 추격전을 위한 단단한 신체와 특별한 기술, 냉정한 판단력 등이 모두 원시시대 사냥 과정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1만년 전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인류는 ‘용맹한 사냥꾼’ 기질을 잊지 못해 사냥 활동을 오락거리로 삼았고, 축구라는 유사 사냥 행위가 인류의 스포츠가 됐다는 설명이다. 거기에 더해 축구는 거대 비즈니스로 스캔들의 대상이기도 하다. 모리스의 이런 독특한 시각에 더해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조제 모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쓴 서문도 인상적이다. 그는 “22명의 남자들이 공을 다투는 것만 보는 사람들은 축구에 내재된 기하학, 발레의 미학, 심리적 깊이,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인간 본성을 가장 충실하게 대변하는” 스포츠로 축구를 지목한다. 평생 축구 인생을 살아온 승리자의 자부심이 한껏 드러난다. 축구는 온갖 술수와 폭력이 난무하는 ‘두뇌 게임’이자 고도의 심리전이다. 폭력에 가까운 반칙이 비일비재한 현대 축구에서 저자는 폭력성을 축구의 속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축구 전술사 100여년을 돌아볼 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극단적인 ‘공격 전술’에서 강력한 ‘수비 전술’로 바뀌게 된 점을 꼽는다. 축구 초창기에 선수들은 상처뿐이더라도 승리하는 게 중요했다. 상대에게 득점을 많이 허용하더라도 더 많은 득점을 올리면 이기는 전략이었다. 모두가 공격수이고, 전사들의 모든 전력은 공격을 위해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 와서는 전사들보다 주술사인 감독의 역할이 더 커졌다. 감독들은 이중 삼중으로 골문을 차단하는 수비 전략에 치중했고, 축구는 과거보다 심심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190여장의 사진을 통해 생생한 경기 장면과 축구 종족들의 모습을 격정적으로 전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저자의 인류학적 보고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정부 “위작 논란 미술 시장에 특별사법경찰·거래이력 신고제 추진”

    정부 “위작 논란 미술 시장에 특별사법경찰·거래이력 신고제 추진”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개최한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미술품 유통업(화랑, 경매 등) 허가·등록 기준 마련 ▲미술품 거래이력 신고제 ▲미술품 유통단속반 운영 ▲특별사법경찰 도입 ▲위작 유통 관련 범죄 처벌 명문화 등 위작 방지를 위한 강경 대책을 제시했다. 신은향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은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 전체 의뢰품의 31%가 위작으로 판정됐고 천경자,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이우환 등 주요 작가들의 위작 논란이 지속되면서 미술 시장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경매회사의 위작 판매 논란, 가격 부풀리기 등 시장 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처벌 근거가 미비하다 보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정부 인식이다. 이에 대해 미술계는 이날 토론회에서 미술품 유통의 투명화와 활성화 등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추진을 검토하는 세부 방안들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을 나타냈다. 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은 “미술계가 자정 능력이 있느냐는 의심을 받는 게 현실이지만 미술 영역에 대해 존중해 주고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화랑협회는 미술품 판매 시 자체적인 보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이를 모든 작품으로 확대하는 등 자정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는 “국내 미술 시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고민도 있다”면서도 “거래이력 신고제의 경우 정부가 유통되는 모든 작품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것인데 실제로 위작 여부 판단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시장이 실패했다고 볼 수 없으며, 정부가 국내 미술 시장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을 직접 해결하겠다고 칼을 휘두르는 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이어 “위작이 매일 수십 건씩 나오는 것도 아닌데 특별사법경찰을 도입하는 게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국내에 짝퉁 미술 시장이 용산, 장안평, 청계천 등지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박수근 그림이 1000만원에 팔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위작을 중벌에 처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강화하고, 문화사범에 대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특별사법경찰을 도입해 위작을 철저히 단속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도 “미술품 등록과 거래이력 신고제는 국세청에 구매자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기 때문에 미술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서는 이 밖에 양도차익 과세 최저한도를 기존 6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인상하는 방안과 개인의 미술품 구입에 대한 특별세액공제, 중저가 미술품 구입에 대한 무이자 대출 지원 등 일반 국민들의 미술품 유통 활성화 방안도 제시됐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300여년 전 뉴턴의 삶, 구글 검색해 끝까지 추적”

    “300여년 전 뉴턴의 삶, 구글 검색해 끝까지 추적”

    “마치 로마군이 공성전을 펴듯 인터넷을 통해 17~18세기의 문화를 차근차근 공략하다 보니 아이작 뉴턴(1642~1727)의 생애가 보이더군요. 200자 원고지 7000여장 분량을 번역하는 데 최고의 무기는 구글 검색이었지만 뉴턴이 남긴 메모는 해독 불가능한 내용투성이였어요.”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상에 알린 뉴턴의 전기 ‘아이작 뉴턴’을 번역한 김한영(53)씨. 그가 번역한 책은 미국 과학사학자인 리처드 웨스트폴이 20여년 동안 쓴 평전(원제 Never at Rest)으로, 출판사 알마가 1200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총 4권으로 묶인 1500여쪽의 번역본을 내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국내 과학 전문 번역자로 2004년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던 김씨가 구글까지 이용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뉴턴이 살았던 17~18세기 영국의 문화들은 구글을 검색해 관련 문건을 일일이 읽어 보지 않으면 도저히 고증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장례 반지’(funeral ring)라는 단어가 원문에 나오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결국 구글에서 찾아 확인할 수 있었죠. 장례 반지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친구나 친척들에게 만들어 준 반지예요.” 하지만 구글 검색으로 이해할 수 없는 뉴턴의 친필 메모는 그 자체가 난해한 기호학 같았다. 미분학부터 천체, 물리학, 광학, 역학, 연금술 등 그가 관심을 가진 지적 대상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뉴턴이 자의적으로 만든 실험 기호와 연금술 기호들에는 천문학과 고대 신화, 화학적 지식이 동시에 담겨 있어 ‘은유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 같았다는 게 김씨의 평가다. 특히 뉴턴이 실험을 하면서 쓴 메모들은 뉴턴 본인만 이해할 수 있도록 축약하다 보니 그 메모들을 그대로 인용한 원문을 번역하는 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것 같았다고 한다. 원서의 난해한 수학적·물리학적 부분을 번역하기 위해 물리학 전공 출신의 번역가인 김희봉씨가 중간에 투입돼 협업을 하기도 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번역했던 수학자 이무현씨가 번역본을 세심하게 감수한 끝에 “뉴턴 스스로도 뿌듯해할 전기”라는 평가를 받는 책이 탄생했다. 김씨는 “번역을 하다가 지쳐 6개월간 손도 대지 않은 적도 있다”며 “그냥 직역해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말로 재창조하는 과정 자체가 원서 제목처럼 결코 멈출 수 없는 도전이 됐다”고 회고했다. 뉴턴의 생애를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들여다본 김씨에게 뉴턴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지난 2년간 동거한 천재 과학자로 나를 고단하게 만든 사람”이라면서 “처음에는 과거의 유명한 인물 정도로 봤는데 번역을 하다 보니 경외감을 느낄 정도로 위대한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과학은 수학·철학과 분리되지 않았다. 뉴턴을 가리켜 ‘과학의 거인’이나 ‘근대 물리학의 시작과 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책은 뉴턴의 창조적 활동이 50대 초반부터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1690년대 그가 쓴 편지들에는 불면증·기억상실·망상·신경쇠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실제로 학계에는 “뉴턴이 미쳤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뉴턴은 말년에 영국 조폐국 관리로 다시 한번 명성을 떨치며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립학회장을 맡았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뉴턴이 남긴 메모는 해독 불가능해 구글 도움 받았죠 ”

    “뉴턴이 남긴 메모는 해독 불가능해 구글 도움 받았죠 ”

     “마치 로마군이 공성전을 펴듯 인터넷을 통해 17~18세기의 문화를 차근차근 공략하다 보니 아이작 뉴턴(1642~1727)의 생애가 보이더군요. 200자 원고지 7000여장 분량을 번역하는 데 최고의 무기는 구글 검색이었지만 뉴턴이 남긴 메모는 해독 불가능한 내용투성이였어요.”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상에 알린 뉴턴의 전기 ‘아이작 뉴턴’을 번역한 김한영(53)씨. 그가 번역한 책은 미국 과학사학자인 리처드 웨스트폴이 20여년 동안 쓴 평전(원제 Never at Rest)으로, 출판사 알마가 1200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총 4권으로 묶인 1500여쪽의 번역본을 내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국내 과학 전문 번역자로 2004년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던 김씨가 구글까지 이용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뉴턴이 살았던 17~18세기 영국의 문화들은 구글을 검색해 관련 문건을 일일이 읽어 보지 않으면 도저히 고증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장례 반지’(funeral ring)라는 단어가 원문에 나오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결국 구글에서 찾아 확인할 수 있었죠. 장례 반지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친구나 친척들에게 만들어 준 반지예요.”  하지만 구글 검색으로 이해할 수 없는 뉴턴의 친필 메모는 그 자체가 난해한 기호학 같았다. 미분학부터 천체, 물리학, 광학, 역학, 연금술 등 그가 관심을 가진 지적 대상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뉴턴이 자의적으로 만든 실험 기호와 연금술 기호들에는 천문학과 고대 신화, 화학적 지식이 동시에 담겨 있어 ‘은유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 같았다는 게 김씨의 평가다.  특히 뉴턴이 실험을 하면서 쓴 메모들은 뉴턴 본인만 이해할 수 있도록 축약하다 보니 그 메모들을 그대로 인용한 원문을 번역하는 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것 같았다고 한다. 원서의 난해한 수학적·물리학적 부분을 번역하기 위해 물리학 전공 출신의 번역가인 김희봉씨가 중간에 투입돼 협업을 하기도 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번역했던 수학자 이무현씨가 번역본을 세심하게 감수한 끝에 “뉴턴 스스로도 뿌듯해할 전기”라는 평가를 받는 책이 탄생했다. 김씨는 “번역을 하다가 지쳐 6개월간 손도 대지 않은 적도 있다”며 “그냥 직역해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말로 재창조하는 과정 자체가 원서 제목처럼 결코 멈출 수 없는 도전이 됐다”고 회고했다.  뉴턴의 생애를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들여다본 김씨에게 뉴턴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지난 2년간 동거한 천재 과학자로 나를 고단하게 만든 사람”이라면서 “처음에는 과거의 유명한 인물 정도로 봤는데 번역을 하다 보니 경외감을 느낄 정도로 위대한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과학은 수학·철학과 분리되지 않았다. 뉴턴을 가리켜 ‘과학의 거인’이나 ‘근대 물리학의 시작과 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책은 뉴턴의 창조적 활동이 50대 초반부터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1690년대 그가 쓴 편지들에는 불면증·기억상실·망상·신경쇠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실제로 학계에는 “뉴턴이 미쳤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뉴턴은 말년에 영국 조폐국 관리로 다시 한번 명성을 떨치며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립학회장을 맡았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1930년 경성·2016년 서울 ‘주거난 평행이론’

    “요즈음 물가는 천정이 업시 앙등 또 앙등하야서 봉급생활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생활고의 구렁으로 모라넛는 이때에 작금의 경성은 사글세집이 다 나가고 업서서 전세가 엇지나 빗싸젓는지 주택난과 아울너서 이중 고통을 밧고 잇는 현상이여서 이대로 방님아얏다가는 중대한 사회문제를 야긔할 염녀가 잇다 하야…집주인들은 물가가 앙등한다는 것을 핑계삼어서 인위적으로 집세를 올려가지고 하급 쌀라리맨을 궁핍한 구렁으로 노라너헛슬뿐만 아니라….”(매일신보 1937년 5월 20일자 기사) 80여년 전인 1930년대 일제 치하 경성 시대에서도 지금의 서울처럼 극심한 주거난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임대 방식도 전세에서 월세로 대거 전환돼 지금과 꼭 닮은꼴이었다. 7일 이승일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의 논문 ‘1930∼1940년대 경성 거주 급여 생활자의 주거 생활’에 따르면 1939년 경성부(京城府)에는 77만 4286명, 15만 4223가구가 살았지만 가옥 수는 8만 5464동에 불과했다. 본인 소유 가옥이 없는 부민들은 집세를 지불하고 거주(借家·차가)하거나 방 한두 칸을 빌려 셋방살이(間借·간차)를 했다. 당시 신문기사 등을 종합하면 경성 인구 70여만명의 60%인 42만명이 자기 집 없이 차가 등으로 생활했다고 논문은 분석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발표한 서울시민의 자가주택 보유비율 41.2%와 거의 비슷한 비율이다. 경성 시대에는 주택임대 방식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당시 전세는 가옥 소유자가 돈을 빌리면 채권자는 이자를 받지 않고 가옥에 거주하는 형태로 ‘전세가율’은 50∼70% 정도였다.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게 된 데는 매일신보가 지적하듯 물가상승의 영향이 컸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임차 기간이 긴 전세가 불리했다. 일본인들이 서울의 가옥을 대거 사들이면서 일본의 월세 관행이 유입된 탓도 있었다. 중산층인 당시 공무원들도 월급의 4분의1를 주거비로 지출하며 팍팍한 생활을 했다. 조선후생협회가 1940년 3월 조선총독부·경기도청·경성부청 직원 1953명의 주거 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선인은 월평균 61.59엔을 벌어 14.12엔(22.9%)을 차가 등 주거비로 지출했다.반면 일본인 직원의 수입은 127.78엔으로 조선인의 2배에 달했다. 주거비로는 평균 23.84엔을 썼는데 그만큼 넓은 집에 살았기 때문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트럼프의 막말은 계산된 ‘정치 거래’

    트럼프의 막말은 계산된 ‘정치 거래’

    거래의 기술/도널드 트럼프 지음/이재호 옮김/살림/448쪽/2만 2000원 막말을 일삼는 허세 가득한 사기꾼일까 아니면 치밀하고 대담한 협상가일까. “당신은 해고야”(You’re fired)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연말이면 미국 백악관의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남자. 바로 부동산 재벌에서 사실상 미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입지를 굳힌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얘기다. 그는 유세마다 “무슬림 입국을 전면 통제하겠다”, “중국이 미국(경제)을 성폭행하고 있다”, “나랏빚은 달러로 찍어 갚으면 된다”, “한국은 방위비를 100% 부담해야 한다” 등의 폭탄 발언을 쏟아내며 친정인 공화당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정작 트럼프 본인은 “단지 제안일 뿐”이라고 쿨하게 말을 바꾼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미국 역사상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쏟아져 나올까. 그는 인종차별과 고립주의 발언 등으로 격렬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국 내에서도 기이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트럼프 현상’(Trumpism)을 이어가고 있다. 재미있는 건 지지자들조차 트럼프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민주당 버니 샌더스 후보만큼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지지 세력인 ‘앵그리 화이트’들은 그를 주류 백인의 대변자로 치켜세운다. 영어 원제와 같은 ‘거래의 기술’이라는 제목에 ‘트럼프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한국식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트럼프가 1987년에 쓴 자서전이다. 30년이나 묵은 회고록이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트럼프의 대선 전략과 실체를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지목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책은 트럼프가 막말을 던지며 좌충우돌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야비할 정도로 냉정하고, 사려 깊으며 철저히 계산된 전략으로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트럼프는 삶과 거래의 지침으로 삼아온 11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크게 생각하라”,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 “지렛대를 사용하라”, “입지보다 전략에 주력하라”, “언론을 이용하라”,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라”, “희망은 크게, 비용은 적당히”, “사업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라” 등이 그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크게 생각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실제로 그가 지은 트럼프타워 등 건물들은 화려하고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그는 사람들이 ‘장관’(spectacle)에 매혹되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그는 “환상을 팔고 있다”고 말한다. ‘크게 생각하기’와 기삿거리에 굶주린 언론을 철저히 이용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는 비법은 막말이다. 그의 막말은 연극 무대에서 자신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의도된 연출 같다는 점이다. 신시내티 촌사람인 그가 뉴욕 맨해튼에 그랜드 하이엇 호텔을 세우고, 출입구와 내부를 황금색으로 치장한 68층짜리 주상복합 트럼프타워를 짓고, 카지노 사업으로 부를 거머쥐기까지 그는 거래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먹잇감을 낚아채는 뛰어난 전략가 자질을 드러낸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치밀하고 냉정하며 세상 물정에 해박하면서 정치적 내공이 상당한 트럼프의 본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트럼프는 책 제일 마지막 구절에 “나는 다시 거래, 큰 거래를 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것도 불철주야로”라고 썼다. 30년 전부터 이미 대선 출마라는 인생 최대의 거래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226,495,969字 ‘이야기보따리’ 풀리면 제2·3의 명량 뜬다

    226,495,969字 ‘이야기보따리’ 풀리면 제2·3의 명량 뜬다

    지난해 개봉작 ‘사도’에서 영조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다. 영조 17년(1741) 6월 22일 오후 1~3시의 풍경은 훗날 부자간 비극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영조가 경덕궁 경현당에서 사도세자에게 동몽선습을 읽게 하는 장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보면 영조는 영락없는 ‘아들 바보’였다. 박필간: 어떤 자가 ‘귀’(貴)자입니까? 세자: (글자를 가리키며) 이 자. 박필간: 어떤 자가 ‘친’(親)자입니까? 세자: 이 자. 영조: ‘보’(輔)가 어려울 것 같으니, 한번 물어보라. 박필간: 어느 자가 ‘보’자입니까? 세자: (책장을 한 줄 한 줄 자세히 보더니 이내 손으로 가리켜 말하였다) 이 자. 영조: 배운 지 여섯 달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았구나. 사도세자의 나이는 일곱 살. 영조가 총명한 세자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꺼워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국보 303호로 조선의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승정원일기가 없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역사의 한 장면이다. 1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울린 영화 ‘명량’에 등장하지 않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도 승정원일기에서 확인된다. 인조 9년(1631) 4월 5일 노대신 이원익은 경덕궁 홍정당에서 인조와 대화를 나눈다. 이원익: 고 통제사 이순신 같은 사람은 얻기 어렵습니다. 요즘에는 이순신 같은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인조: 왜란 당시에 인물이라고는 이순신 하나밖에 없었다. 이원익: 왜란 때에 이순신이 죽음에 임박하자 이예(이순신의 아들)가 아버지를 안고서 흐느꼈는데, 이순신이 적과 대치하고 있으니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예는 일부러 죽음을 알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전투를 독려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 격인 승정원이 편찬한 승정원일기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0여년이 흘렀지만 완역까진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올해는 승정원일기가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지 15주년이 되는 경사스러운 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단일 기록으로 세계 최대 분량인 2억 2649만자(3243책)의 승정원일기 완역 시점을 단축하기 위해 땀을 쏟고 있다. ●조선왕조실록보다 4.5배 많은 분량 서울대 규장각 지하서고에 보관된 국보급 문헌 중 가장 방대한 분량으로 ‘조선왕조실록’보다 4.5배나 많은 승정원일기는 임금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기록한 문서다. 왕의 전교나 조정 문서, 상소문뿐 아니라 왕과 신하의 대화, 왕의 용변이나 몸 상태 등 일거수일투족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지난해 12월 국사편찬위원회가 승정원일기 원문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작업을 15년 만에 끝냈는데, 이 때문에 한국고전번역원의 승정원일기 번역 작업의 효율성도 높아지게 됐다. 1994년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승정원일기의 전체 완역 예상 기간은 당초 100년에서 70년으로 단축돼 2060년을 완역 목표 시점으로 잡고 있다. 현재와 같은 번역 속도라면 앞으로 45년 뒤에는 승정원일기 완역본을 우리 국민 모두가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김태훈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장은 “고종대 210책과 인조대 76책, 순종 6책의 번역 작업이 끝났다”면서 “현재 영조대 798책 중 164책까지 번역됐고 승정원일기 전체의 공정률은 약 20%”라고 말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번역자 1인당 매일 8시간 420자, 전체 56명이 연간 43책으로, 매년 총원문의 1%씩 번역되는 ‘세월과 마주하는 인고의 작업’이다. 승정원일기 완역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탈초(脫草)된 승정원일기 원문을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번역 인력이 국내에 희귀하기 때문이다. 승정원일기 역자 1명이 탄생하는 데 최소 10년의 세월이 걸린다. 석·박사를 거쳐 시험에 합격하고도 최소 3년 이상 실무 경험을 쌓아야 번역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국내 한문 번역자의 처우도 그리 좋지는 않다. 번역자 1명이 1년간 꼬박 번역하는 양은 200자 원고지로 1800장, 번역료는 장당 평균 1만 6000원이다. 1년 내내 해도 수입은 3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김 팀장은 “국내 전통 한학의 맥은 이미 끊어졌다”며 “역자들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고전번역교육원을 대학원대학교로 바꾸고, 번역료를 인상하는 등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임진왜란 등으로 조선초 ~ 광해군 분량은 소실 현재의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으로 조선 초기~광해군 분량이 소실된 채 인조 원년(1623)부터 순종 4년(1910)까지 288년간의 기록이다. 만약 소실되지 않았다면 조선 전 시기에 걸쳐 6300여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강성득 선임연구원은 “같은 역사적인 기록이라도 승정원일기가 조선왕조실록보다 어떤 기사는 20배까지 더 자세한 경우도 있다”면서 “조선왕조실록에는 1637년 1월 30일 병자호란에서 패한 인조가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1차례 한 것으로만 기록돼 있지만 승정원일기에는 황제가 있는 곳에 도착해 1번, 의식이 진행될 단상에 오르기 전에 다시 1번을 한 것으로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인조가 단상에 좌정했지만 청 태종이 갑자기 단에서 내려가 소변을 보자 인조는 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다. 삼배구고두례를 두 번 하고 의식 도중 황제가 소변을 보러 가는 황당한 일을 겪은 인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승정원일기 번역은 국내 웬만한 한자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도전이다. 하지만 이 기록 유산이야말로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의 보고다. 매일 기록한 조선의 날씨와 천문 자연현상, 영조 이후 170년간 승지들이 담은 강우량 측정 통계, 왕과 신하가 눈앞에서 얘기하듯 생생한 대화 내용, 각종 질환과 사건·사고 기록들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 역사가뿐 아니라 수많은 창작자가 승정원일기 완역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해외여행 | 맥주, 여행의 주인공이 되다①San Diego 샌디에이고의 바람에는 맥주 향기가

    해외여행 | 맥주, 여행의 주인공이 되다①San Diego 샌디에이고의 바람에는 맥주 향기가

    CRAFT BEER SAN DIEGO & PORTLAND맥주, 여행의 주인공이 되다 미국 지도를 펼쳐 놓고 아무 곳이나 찍어 보라. 거기에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가 있을 것이다. 도심의 번화가, 작은 시골 마을, 황량한 사막, 어디를 가든 브루어리Brewery가 있고 맛있는 맥주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 미국은 ‘맥주를 위한 여행’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 목적지가 ‘미국 크래프트 비어의 수도’라 불리는 샌디에이고San Diego, 미국에서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가장 많은 포틀랜드Portland라면 더할 나위 없다. 왜 크래프트 비어인가 본격적 맥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왜 크래프트 비어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미국 전역에는 4,000개 이상의 크래프트 비어 양조장이 있다. 2012년에 대략 2,500개로 집계됐으니 3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왜 이렇게 많은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있는 것일까. 미국은 1920년대 금주법을 통해 모든 양조장에서의 술 제조를 금지했다. 당시 이민자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양조장이 문을 닫게 됐다. 약 10년 후 금주법은 사라졌지만, 이후에는 밀러, 안호이저-부시 등과 같은 대형 맥주 회사가 미국 맥주 시장 전체를 점령했다. 이들이 내놓는 맥주는 ‘맛없는 한국 맥주’의 롤모델에 가까운 가벼운 라거 맥주들이다. 이렇게 미국인의 맥주 입맛은 몇몇 대형 회사의 맥주에 의해 길들여지게 됐다.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미국 각지에서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형 양조장의 획일화된 맥주 맛에 반발해 영국 이민자들의 전통 맥주인 ‘에일 맥주’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에일 맥주를 비롯해 포터, 스타우트, 인디아페일에일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만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 크래프트 비어 양조자들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미국식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냈다. 새로운 맥주 맛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크래프트 비어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 크래프트 비어는 전체 맥주 시장의 1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한다.고작 10%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수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왜냐면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태생적으로 규모가 작은 양조장을 일컫기 때문이다. 미국양조협회American Brewers Association가 밝히는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정의를 보자. ‘Small, Independent, Traditional’이다. 즉, 소규모 생산을 하며, 독립된 자본으로 경영해야 하고, 맥주 제조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일정 생산량(연간 7억 리터) 이상을 제조하면 더 이상 크래프트 비어로 취급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니까 지금 미국은 작은 비주류들이 모여 주류 시장을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San Diego 샌디에이고의 바람에는 맥주 향기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샌디에이고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봄날을 연상케 하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쬔다. 연 평균기온 13~20도의 샌디에이고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가, 도심 속 거대한 공원, 그 안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휴양도시로 샌디에이고가 각광받는 이유다.그러나 나에게는 해변이나 공원보다 먼저 가야 할 곳이 있었다. 하루에 2번 진행되는 ‘발라스트포인트 브루어리Ballast Point Brewing Co.’의 R&D* 투어를 예약해 놨기 때문이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향긋한 꽃내음을 실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치 에일Ale 맥주에서 나는 홉Hop 냄새 같다. 이미 맥주를 위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R&D(Research & Development) 신제품 개발, 기존 제품 개선 샌디에이고 페일에일의 전설스톤 브루어리 조금 먼 길을 나설 채비를 하자. ‘스톤 브루어리Stone Brewing Company’는 샌디에이고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도시 에스콘디도Escondido에 위치해 있다. 간밤에 양조장 투어를 하느라 이미 다녀왔지만, 꼭 낮에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한 터였다. 스톤 브루어리의 펍은 벽 한 면이 천장까지 이어지는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그 아래서 햇살을 받으며 스톤 맥주를 마시는 건 여기서만 가능한 사치다. 외곽을 향해 얼마나 달렸을까. 내비게이션에 ‘잠시 후 도착’이라는 문구가 뜨자 어디선가 맥주 끓이는 냄새가 나는 듯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주차장에서부터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한 냄새가 났다. 홉Hop! 맥주에 쓴 맛과 향긋한 향을 주는 홉 끓는 냄새였다. 샌디에이고의 맥주를 얘기할 때 홉과 IPAIndia Pale Ale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제다.홉은 무엇이고, IPA는 무엇일까. 크래프트 비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경계심 중 절반은 이런 용어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이런 용어를 모르면 맥주를 즐기기 어려운가? 대답은 ‘그렇다’. 맥주는 아는 만큼 맛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맥주는 맥아보리, 홉, 효모, 물로 만든다. 맥아와 물이 주원료고, 효모가 이를 알코올로 만들어낸다. 홉은 없어도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맥주의 쓴 맛을 줄 뿐만 다양한 맛과 향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IPA는 맥주의 종류다. 한국 맥주 ‘카스’나 ‘하이트’를 ‘라거Lager’라고 부르듯, 영국식 전통 맥주를 ‘에일Ale’이라고 하며, IPA는 에일 맥주에서 파생된 맥주 종류다. 19세기 영국에서 인도로 맥주를 보낼 때 맥주가 상하지 않도록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홉을 많이 넣어 방부제 역할을 하고 알코올의 맛을 쓴 맛으로 가린 것이 이 맥주의 시작이고 그리하여 ‘인디아 페일에일IPA’이라 불린 것이다.중요한 건, IPA가 미국에 정착되면서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크래프트 비어 초창기를 선도하던 캘리포니아주의 ‘앵커Anchor 브루어리’,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등이 미국 내에서 재배한 홉을 사용하며, 다량의 홉을 투입해 IPA를 만든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 후 두 배로 홉을 넣은 더블Double IPA가 등장했고, 샌디에이고의 양조장들은 경쟁적으로 홉을 많이 넣은 IPA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중 스톤 IPA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샌디에이고의 IPA다. “스톤 브루어리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바로 ‘스톤 IPA’입니다. 총 매출의 40% 이상입니다. 2위는 ‘아로간트 바스타드 에일Arrogant Bastard Ale’이며, 3위도 IPA 계열인 ‘고 투Go to IPA’죠.” 지난밤 양조장 투어를 진행한 제스Jesse의 말이다. 이처럼 스톤 브루어리 IPA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스톤은 계속 해서 새로운 IPA를 생산하고, 전 세계 크래프트 브루어리 팬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이 판다. 2014년 스톤 브루어리는 미국 전체 크래프트 브루어리 중 판매량 9위를 기록했다. “사실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IPA만 생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스톤은 꾸준히 다양한 맥주들을 만들고 있죠. 그게 바로 크래프트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스톤 브루어리뿐만 아니라 샌디에이고의 다른 양조장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스톤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루어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2013년 스톤 브루어리는 미국 일간지 <USA Today>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크래프트 브루어리 2위로 선정된 바 있다.투어가 끝난 후 가볍게 고 투 IPA를 한 잔 마셨다. 한 모금 머금으면 다채로운 열대과일의 풍미와 향이 먼저 다가온다. 꿀꺽 넘기고 나면 입 안에 쌉쌀한 맛이 남는다.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왠지 또 한 모금 마시게 되는 맛이다. 이것이 홉의 맛이고 IPA의 매력이다. 홉은 마치 중독과도 같아서 IPA에 빠진 사람은 점점 더 강한 홉의 맛을 찾게 된다. 고 투 IPA는 평균적인 IPA에 비해 도수는 높지 않고4.5% 홉의 특징은 잘 살아 있기 때문에 IPA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단, 주의할 점. 당신도 홉 중독자가 될지 모른다. 맥주와 음식의 페어링스톤 브루어리의 펍에서는 맥주와 함께 훌륭한 요리를 제공한다. 특히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페어링 해놓았는데, 맥주 선택이 어렵다면 원하는 음식에 맞춰 추천 맥주를 마셔 보는 것도 좋다. 또 채광이 좋으므로 가능하다면 낮 시간에 들러 쏟아지는 햇빛 아래서 낮술을 즐기기를. 낚시광이 만든 물고기 맥주발라스포인트 브루어리 ‘발라스트포인트Ballast Point’의 대표 맥주 ‘스컬핀Sculpin’을 처음 봤을 때 잠시 눈을 의심했다. 맥주병에 눈을 부라리는, 심지어 못생긴 물고기가 그려져 있었다. 물고기와 맥주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오히려 눈길을 끌었다.발라스트포인트의 모든 맥주에는 물고기 혹은 낚시나 항해와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실제 양조장에 방문했을 때도 이와 관련된 벽화와 회화 작품이 걸려 있었다. 이러한 취향은 발라스트포인트의 창업자인 잭Jack과 요세프Yuseff에게서 나왔다. 이들이 처음 회사를 창립할 때의 철학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고. 두 말할 것 없이 맥주와 낚시였다.낚시에 관해선 모르겠으나, 맥주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했음은 분명하다. 발라스트포인트는 2010년, 세계맥주대회에서 3개 부문의 금메달을 획득하고 그해의 양조장으로 선정되면서 급성장하게 된다. 현재 샌디에이고에 총 4군데까지 양조 설비를 확장했으며, 맥주뿐 아니라 증류주도 만들고 있다.4군데 양조장 중 미라마Miramar에 위치한 양조장에 갔다. 이곳은 가장 최근에 지어졌으며 규모도 가장 크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펍엔 빈 좌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 이곳은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브루어리 중 하나다.일반 투어는 낮 12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하루 4회, R&D 투어는 하루 2회 진행된다. 투어가 끝나고 발라스트포인트의 간판 맥주인 스컬핀을 산지에서 바로 맛보는 기분도 놓칠 수 없다. 스컬핀은 ‘독을 가지고 있지만 맛은 최고’인 물고기의 이름이다. 자몽을 갈아 넣은 듯 씁쓸한 맛의 이 맥주에 가히 어울리는 이름이다. 9045 Carroll Way San Diego, CA 92121 11:00~23:00(일요일 21:00 마감) 맥주의 변신은 무죄샌디에이고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리틀 이태리 지구에 간다면 ‘발라스트포인트 펍 & 키친’에 들를 것을 추천한다. 발라스트포인트에서 실험 중인 다양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R&D 양조장이다. 투어 중 각기 다른 재료를 넣은 맥주 2가지를 비교 시음하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빅토리앳씨Victory at Sea’ 맥주에 피넛버터를 넣어 양조한 것과, 체리와 초콜릿 등을 넣어 오크통에 숙성한 맥주를 비교 시음할 수 있었다.2215 India St San Diego, CA 92101 매일11:00~23:00 라이프 스타일을 말하는 맥주세인트 아처 브루어리 발라스트포인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세인트 아처 브루어리Saint Archer Brewing Co.’로 향했다. 세인트 아처의 첫인상은 꾸미지 않은 민낯이다. 건물 안을 보면 더 확실해진다. 양조장 절반은 양조설비로 가득 차 있고, 그 옆으로 몇 개의 테이블과 바, 그리고 기념품 매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간의 구분 없이 모두 한자리에 들어차 있다. 양조장과 펍 사이를 가로막는 건 허리 높이의 바뿐이다. 이곳에선 말 그대로 눈앞에서 양조장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것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오감의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양조장 기계가 내는 크고 작은 소리, 맥주 끓일 때 나는 단내, 신선한 홉의 향기까지도 생생하게 전달된다.따로 음식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맥주 맛만 보기로 했다. 작은 잔에 제공되는 샘플러로 맥주 3가지를 주문했다. 질소로 서빙해 조밀한 기포가 잔 안에서 춤을 추는 영국식 브라운 에일, 시큼한 맛과 쿰쿰한 향을 내는 독일식 고제 등 기본 스타일에 충실한 좋은 맥주들이다. 양조장의 대표 맥주인 블론드 에일, 페일 에일, IPA는 테이크아웃이 가능한데, 특이하게도 세인트 아처의 맥주는 캔맥주로만 제작되고 있다. 야외 활동에 편리하게끔 제작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세인트 아처 홈페이지에는 몇 개의 흥미로운 영상이 있다. 서프보드를 만드는 남자,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의 영상이다. 감각적이고 재미있기는 하나, 얼핏 봐도 맥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들의 정체는 앰배서더Ambassadors, 일종의 세인트 아처 홍보대사다. 세인트 아처는 이 자리에 서퍼, 스케이트보더, 사진가, 필름 메이커 등을 빼곡히 앉혀 놨다. 이 자유분방하며 창의력 넘치는 집단이 세인트 아처를 대표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쯤 되면 세인트 아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맥주 그 자체가 아니라, 맥주를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전략은 신생 브루어리였던 세인트 아처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좋은 맥주를 만들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인트 아처의 화이트에일은 2014년 미국 맥주축제The Great American Beer Festival에서 금상을 받았다.세인트 아처를 떠나면서 캔 맥주 몇 개를 샀다. 샌디에이고를 떠나기 전 해변가에서 일몰을 보며 마실 생각이었다. 해변에서 음주가 금지되어 있다는 건 라호야 해변가에 도착하고 난 후에 알게 됐지만 말이다. 9550 Distribution Ave. San Diego, CA 92121월~목요일 15:00~21:00, 금요일 13:00~21:00, 토요일 12:00~21:00, 일요일 12:00~18:00 해변 음주는 코로나도섬에서해변가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코로나도섬의 ‘코로나도 브루어리Coronado Brewing Co.’를 추천한다. 로고에 맥주잔을 들고 있는 인어가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추천 맥주는 ‘이디엇Idiot IPA’. 도수는 좀 센 편이나 샌디에이고 스타일의 맥주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170 Orange Ave, Coronado, CA 9211810:30~21:00 (금, 토요일은 22:00까지) 글·사진 Travie writer 전은경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로그 브루어리 rogue.com
  • 해외여행 | Healing Alberta 알버타②Banff 한 달쯤 살고 싶은 동네, 밴프

    해외여행 | Healing Alberta 알버타②Banff 한 달쯤 살고 싶은 동네, 밴프

    ●Banff 한 달쯤 살고 싶은 동네, 밴프 시차 탓인지 새벽 5시도 안 돼 잠에서 깼다. 동이 틀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른 새벽의 밴프 타운과 로키를 보고 싶었다. 아침 7시, 어둠이 걷히자마자 동네 산책을 나선다. 어제 스키를 타다 탈이 난 다리를 어기적어기적 끌고 가듯 걸으면서도 설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진다. 밴프는 언젠가 한 달쯤 살아 보고 싶은 동네다. 해발 1,583m의 밴프 타운은 로키의 동쪽 비탈면에 위치한다.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참여한 인부 세 명이 우연히 밴프 인근의 설퍼산Sulphur Mountain에서 온천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밴프는 1885년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자연 원시림의 장엄한 풍광을 가진 밴프국립공원은 로키의 심장이다. 시간이 없어 미처 가보지 못했지만 밴프 스타벅스에서는 커다란 흑곰을 볼 수 있고, 머그컵You Are Here Collection에는 그리즐리곰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스타벅스다. 세계적인 관광지 로키산맥 여행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라 북적북적한 분위기와 세계적인 브랜드 호텔 등을 떠올리겠지만 밴프 타운은 아주 소박하다. 흔하기 짝이 없는 브랜드 호텔 하나 없다. 메인 도로에서 부러 한 블록을 벗어나 걸었다. 관광지가 아닌 로컬의 일상적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언뜻언뜻 보이는 로키산의 모습이 아니라면 여느 캐나다의 작은 타운과 다를 게 없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걷다 보니 밴프 기차역이 나왔다. 1885년 완공된 대륙횡단철도 구간의 한 기차역이다. 철로 끝에 로키산이 눈부시게 하얗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밴프와 인근의 레이크 루이스 국립공원을 방문하기 시작한 지 어느 새 백년이 훌쩍 더 지났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밴프와 레이크 루이스의 명성은 전혀 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해만 간다. 여름철에 밴프에서 방을 구한다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로키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와 알버타주 경계에 위치한다. 만년설이 쌓여 있는 로키의 준봉들은 가슴이 서늘해질 만큼 아름답다. 간단히 말하면 로키는 돌산이다. 로키의 90%는 퇴적암이다. 의문이 든다. 로키에서 자라는 수많은 나무들은 뭔가? 놀랍게도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들이다.북미대륙의 줄기라 할 수 있는 캐네디언 로키의 길이는 1,500km, 너비는 80km에 달한다. 대자연의 파노라마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호수와 빙하, 폭포를 만날 수 있는 캐네디언 로키 안에는 4개의 국립공원과 3개의 주립공원이 있다. 천여 마리의 그리즐리곰과 흑곰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로키 여행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로키를 따라 남에서 북으로, 또는 북에서 남으로 이동한다. 캘거리에서 서쪽으로 100km, 1시간 30분 거리에 자리한 밴프국립공원은 로키 최고의 관광지다. 면적은 6,600km2, 우리나라 충청남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작다. 1985년 유네스코는 밴프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큰 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아웃도어 액티비티의 파라다이스가 밴프다. 여름철에는 1,500km에 달하는 밴프국립공원의 온갖 트레일을 걸으며 엘크와 무스, 곰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로키를 또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곳은 밴프 온천Banff Upper Hot Spring이다. 철도 인부들이 발견한 밴프 온천은 설퍼산 중턱에 위치한다. 로키를 바라보며 1년 내내 온천욕을 즐긴다. 이 세상 온천 중에서 이보다 더 좋은 뷰를 가진 곳이 있을까? 로키의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로키의 스펙터클한 풍경을 보려면 낮에 가야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여행자들은 온천치료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른 새벽 밴프를 산책하는 동안 내 눈을 확 잡아 끈 정보가 있다. 밴프 인터내셔널 호스텔 현관에 붙어 있던 메모다.‘당신을 위한 특별한 요금, 1주일 숙박은 CAD185, 한 달은 CAD600(세금 포함), 아침식사와 와이파이 포함.’ 날이 따뜻해지자마자 밴프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밴프 온천Banff Upper Hot Springs10:00~22:00 연중 개방 어른 CAD7.5, 아이 CAD6.3 +1 403 762 1515 www.hotsprings.ca ●Spring Ski3월에 떠난 스키 여행샴페인 같던 꿈의 스키장 여기는 어디일까? 전나무, 가문비, 소나무숲 사이 새하얀 눈밭에 나 홀로 서 있다. ‘말로만 들었던 ‘샴페인 파우더’ 눈밭이다. 주변에는 어떤 인적도 없다. 내가 캐나다의 스키장에 있다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밴프의 노퀘이 스키장Mt. Norquay Ski Resort 슬로프에는 오직 나뿐이었다. 이런 순간이 또 올까 하는 황홀한 기운에 홀려 발목 위가 푹 패일 정도로 부츠에 짓눌리고, 넘어져 눈밭을 구를 때조차 화상을 입었는지도 몰랐다. 두터운 양말을 빼먹은 거야 경솔했다 해도 부츠가 꽉 끼는지는 왜 알지 못했을까. 나는 로키에서 정신이 나갔던 게다. 그만큼 이곳은 꿈의 스키장이다. ‘황제 스키’ 같은 세속적인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내가 노퀘이를 ‘꿈의 스키장’이라고 한 건 스키장을 독점해서가 아니라 설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스키장에서 로키라는 위대한 자연과 교감하는 순간이 황홀했기 때문이다. 아, 정말 좋아! 스키를 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이렇게 내뱉곤 했다. 노퀘이 스키장은 밴프에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이다. 차로 10분 정도 걸린다. 28개의 슬로프를 갖고 있다. 로키의 여느 스키장이 그렇듯 11월부터 장장 5월까지 스키를 탈 수 있다. 노퀘이는 흔히 밴프에서 가장 좋은 ‘가족 스키장’이라고 불린다. 밴프국립공원에서 유일하게 야간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스키장에서 스키어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리프트 대기 시간’ 같은 말이 이곳에는 없다. 스키를 타지 못하는 이들은 스노튜빙을 즐길 수 있다. 스노튜브파크에서 커다란 튜브를 타고 슬로프를 빠르게 내려오는 액티비티다. 밴프 노퀘이9:00~16:00리프트 종일권 어른 CAD65, 청소년 CAD50, 아이 CAD25, 스노슈즈 일일 대여 어른 CAD15, 아이 CAD10(야간 스키는 1~2월 금, 토, 일요일만 운영) +1 403 762 4421 winter.banffnorquay.com 탐험가처럼 걷기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는 밴프에서 북쪽으로 56km 떨어져 있다. 보우 밸리Bow Valley를 거쳐 차로 4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빙하호인 레이크 루이스는 캐나다의 영원한 보석이란 찬사를 받아 왔다. 호수 너머 빅토리아 빙하Victoria Glacier는 로키의 보석이다. 느닷없이 시야 안으로 들어온 거대한 빙하산의 위용은 보고 또 보아도 대단하다.호수 인근의 레이크 루이스 스키장Lake Louise Ski Resort은 로키산맥 최고의 하이킹 및 크로스컨트리 스키 장소이자 북미에서도 가장 넓은 스키 리조트 중 하나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스키가 아니라 스노슈잉Snowshoeing을 하기 위해서다. 아직 많은 사람에겐 낯선 말이지만 리프트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 누구나 곧바로 즐길 수 있는 게 스노슈잉이다. 마치 서부 캐나다를 찾아온 초기 탐험가들의 흉내를 내는 것 같은 액티비티다. 순록이나 토끼, 스라소니 같은 동물의 발은 넓적하다. 스노슈잉 때 신는 신발은 이들의 넓적한 발과 닮았다. 깊은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것을 막아 주기에 손쉽게 눈길을 헤쳐 갈 수 있다. 스노슈잉을 할 때 방수신발은 필수다. 스노‘슈즈’라고 했지만 원래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스노슈즈를 신는 게 아니라 신발 위에 납작한 스노슈즈를 끼워 넣기 때문이다. 스노슈즈를 신자 내 발은 크고 넓적한 발바닥으로 변신했다. “이제 곧 문을 닫을 거예요.” 스키장 직원이 말했다. 스노슈잉을 본격적으로 즐기려던 참에 나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레이크 루이스 스키장은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야생동물이 출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야간 스키’라는 말은 낯설다. 낮이 아닌 어두운 밤에 위험하게 스키를 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스키에 관한 한 캐나다는 파라다이스다. 스키루이스9:00~16:00 리프트 종일권 어른 CAD92, 청소년 CAD72, 아이 CAD35, 가이드 투어, 스노슈즈 렌탈, 리프트권이 포함된 2시간짜리 스노슈잉 패키지는 CAD69 +1 403 497 6932 www.skilouise.com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어캐나다 www.aircanada.co.kr, 캐나다 알버타관광청 www.travelalberta.kr
  • 조선시대도 싱크홀 있었다

    조선시대도 싱크홀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지반침하 현상인 ‘싱크홀’을 문자 그대로 땅이 꺼졌다는 뜻의 ‘지함’(地陷)으로 불렀다. 조선왕조실록에 하늘이 무너졌다는 기록은 없어도 땅이 꺼졌다는 기록은 종종 보인다. 세종 18년(1436년) 12월 황해도 황주에서 발생한 지함은 너비 1m, 깊이 21m였고, 세종 21년(1439년) 5월 해주에서 보고된 지함은 너비 1.5m, 깊이 9m에 달했다. 지함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 수령은 조정에 보고하고, 국왕은 괴이한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지내는 ‘해괴제’라는 제사를 통해 천지신명의 분노를 달래도록 했다. 사관의 눈에 조선 시대의 싱크홀은 어떻게 보였을까. 명종 11년(1556년) 11월 대동강 근처 큰길에서 너비 7자(2.1m), 깊이 8자(2.4m)의 지함이 국왕에게 보고되자 사관은 임금과 신하를 다음과 같이 직설 화법으로 비판했다. “천재지변이 닥치자 임금과 신하가 그럴 듯한 말을 하며 서로 경계하기는 했지만 형식적으로 옛일을 따라한 것일 뿐이다. … 임금과 신하 모두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덕을 닦아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느니 두려워하고 반성하겠다느니 하는 공허한 말만 하면서 재변이 사라지기를 바랐으니, 참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조선 시대 사관들의 주관적인 논평인 ‘사신왈’(史臣曰) 혹은 ‘사신논왈’(史臣曰) 등으로 시작하는 사론(史論)을 읽기 쉽게 풀어 쓴 ‘사필-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이 한국고전번역원에서 30일 출간됐다. 사론은 조선 전기 실록에만 3400여건이 실렸는데 절반 이상인 약 57%가 인물에 대한 논평이었다. 정종 1년(1399년) 1월 지경연사 조박은 “사관은 임금의 선악을 기록하여 영원히 남기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아뢸 정도로 국왕으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의견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학자 8명이 쓴 이 책은 실록 속에 다양한 사안을 논평한 사론들을 주제별로 나눠 38건을 싣고, 편마다 관련 배경과 사건, 삽화를 현대적으로 구성해 재미를 더했다. 한편 한국고전번역원은 다음달 1일부터 우리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고구마’(고전에서 구하는 마법 같은 지혜)를 무료로 배포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조선시대에 ‘싱크홀’이 발생하면 사관은 임금에게 어떻게 했을까

    조선시대에 ‘싱크홀’이 발생하면 사관은 임금에게 어떻게 했을까

     조선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지반침하 현상인 ‘싱크홀’을 문자 그대로 땅이 꺼졌다는 뜻의 ‘지함’(地陷)으로 불렀다. 조선왕조실록에 하늘이 무너졌다는 기록은 없어도 땅이 꺼졌다는 기록은 종종 보인다. 세종 18년(1436년) 12월 황해도 황주에서 발생한 지함은 너비 1m, 깊이 21m였고, 세종 21년(1439년) 5월 해주에서 보고된 지함은 너비 1.5m, 깊이 9m에 달했다. 지함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 수령은 조정에 보고하고, 국왕은 괴이한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지내는 ‘해괴제’라는 제사를 통해 천지신명의 분노를 달래도록 했다.  사관의 눈에 조선 시대의 싱크홀은 어떻게 보였을까. 명종 11년(1556년) 11월 대동강 근처 큰길에서 너비 7자(2.1m), 깊이 8자(2.4m)의 지함이 국왕에게 보고되자 사관은 임금과 신하를 다음과 같이 직설 화법으로 비판했다.  “천재지변이 닥치자 임금과 신하가 그럴 듯한 말을 하며 서로 경계하기는 했지만 형식적으로 옛일을 따라한 것일 뿐이다. ? 임금과 신하 모두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덕을 닦아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느니 두려워하고 반성하겠다느니 하는 공허한 말만 하면서 재변이 사라지기를 바랐으니, 참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조선 시대 사관들의 주관적인 논평인 ‘사신왈’(史臣曰) 혹은 ‘사신논왈’(史臣論曰) 등으로 시작하는 사론(史論)을 읽기 쉽게 풀어 쓴 ‘사필-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사진)’이 한국고전번역원에서 30일 출간됐다.  사론은 조선 전기 실록에만 3400여건이 실렸는데 절반 이상인 약 57%가 인물에 대한 논평이었다. 정종 1년(1399년) 1월 지경연사 조박은 “사관은 임금의 선악을 기록하여 영원히 남기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아뢸 정도로 국왕으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의견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학자 8명이 쓴 이 책은 실록 속에 다양한 사안을 논평한 사론들을 주제별로 나눠 38건을 싣고, 편마다 관련 배경과 사건, 삽화를 현대적으로 구성해 재미를 더했다.  한편 한국고전번역원은 다음달 1일부터 우리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고구마’(고전에서 구하는 마법 같은 지혜)를 무료로 배포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성장에 밀려 쫓겨난 그들… 약탈적 자본주의의 민낯

    성장에 밀려 쫓겨난 그들… 약탈적 자본주의의 민낯

    축출 자본주의/사스키아 사센 지음/박슬라 옮김/글항아리/332쪽/1만 8000원 자본주의는 성장의 신화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자본주의 밖으로 축출한다? 세계적 석학인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이 신간 ‘축출 자본주의’를 통해 조명하는 ‘약탈적 자본주의’의 실체다. 그의 이론인 ‘세계도시론’이 금융자본과 초국적 기업의 집중을 통해 글로벌 경제 질서를 지배하고, 세계도시 내부에서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을 예측했다면 이번 책은 생생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자본주의의 축출 행태를 입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축출 자본주의란 무엇일까.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1980년대 이후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이들을 쫓아내고 몰아내는 ‘약탈적 동력’에 의해 유지되는 자본주의를 가리킨다. 이른바 ‘자본의 기획된 퇴출’이다. 인간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가 소외를 낳는다는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다. 사센은 한발 더 나아가 오늘날 자본주의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노동자 및 소비자로서의 가치를 잃고 사회적으로 배제되며 궁핍해지는 극단적 양상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축출이 지탱하는 세계경제는 ‘이상 징후’를 보이는 사람과 기업, 그리고 장소를 주요 질서로부터 퇴출시키고 있다. 그리스의 국가 구조조정을 보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유럽중앙은행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의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2013년 1월 밝혔다. 하지만 그 회복세가 그리스 노동인구의 3분의1을 퇴출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취약한 노동인구를 경제에서 배제시킴으로써 경제가 회복됐다고, 체제에는 이상이 없다고,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게 바로 오늘날의 자본주의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의 포착 지점은 바로 이러한 현상이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지배 계층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약탈적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데 있다. 거대한 부의 극단적 편중 현상은 후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퍼져 가는 글로벌한 현상이 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 상위 1%의 재산은 50% 증가했다. 2012년 한 해 동안에만 세계 100대 부자들의 재산은 2400억 달러가 늘었고, 이는 전 세계 빈곤을 네 번 퇴치할 수 있는 액수다. 다국적기업과 부유 계층에 대한 세금은 반대로 점점 줄고 있다. 문제는 부의 축적에 개인의 능력이 아닌 부가 편중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센은 전 세계적인 불평등 심화 현상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벗게 하는 축출의 한 형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감옥에 수감되는 인구의 증가는 자본주의의 축출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수감 인구는 600%나 증가해 230만명에 달한다. 그 배후에는 민영 교도소가 있다. 수익 창출을 위해 경범죄에도 가혹한 판결을 내리도록 사법 제도를 악용하고, 노인과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수감하는 등 ‘더 많은 죄수’를 ‘더 오랜 기간 가둬 놓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수감 인구의 폭증은 러시아(81만명), 중국(165만명)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민영 교도소는 서유럽뿐 아니라 호주와 이스라엘, 아시아 등 모든 대륙에서 보편적인 축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럽에서의 주택 압류 비율 증가도 전형적인 자본주의 축출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줄곧 성장해 왔는데도 많은 가구의 삶이 파괴되고, 노숙 인구는 빠르게 는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은 2011년 4200만명을 돌파했다. 선진국의 수감 인구 증가와 후진국의 난민 증가 현상, 가계 빚에 시달리며 집에서 쫓겨나는 선진국 중산층과 막대한 부채로 신자유주의적인 체제 개편을 압박받는 개도국 국민 등 사센은 둘 사이의 체제적 유사성을 지목하고 있다. 바로 축출은 국가와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 역시 체제의 변두리가 중심 공간보다 더 넓은 국가가 되고 있다. 가계 부채 1200조원으로 상징되는 빚진 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결정권을 박탈당하고, 양극화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한국에선 이제 시대의 흐름으로 느껴질 정도로 ‘축출의 구조적 징후’는 농후해지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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