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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외교부장 11월 방한/한중 외무회담… 조기 수교 전망

    ◎아태 각료회의 가입 확정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이 오는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아태각료회의(APEC)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외교부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한다. APEC 중국측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전외교부장은 방한때 노태우대통령을 예방하며 이상옥외무장관과 만나 한중수교및 경제협력방안,APEC 발전문제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여 한중수교시기는 크게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부장의 방한은 APEC 12개 회원국대표들이 28일 경주에서 열리고 있는 APEC 고위실무회의에서 중국·대만·홍콩등 「3중국」의 APEC가입을 11월 APEC회의에 권고키로 결정,중국등의 가입이 사실상 확정됨에 따른 것이다. 이날 고위실무회의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중국및 대만의 국호와 관련,중국은 중화인민민주주의 공화국(PRC·People’sRepublicofChina)으로,대만은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Teipei)로 사용하기로 하고 『수석대표는 회원국이 주권에 따라 결정한다』고 합의했다.
  • 아태지역 냉전종식의 징표/유엔가입 각국의 반응

    ▷미국◁ 미국정부는 8일 유엔안보리가 남북한가입권고결의안을 통과시킨데 대해 이를 기쁘게 생각한다고 논평했다. 국무부의 한 관리는 이날 미국정부가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지지해왔음을 지적하면서 9월17일 46차 총회개막과 더불어 유엔총회에서도 만장일치로 남북한의 유엔가입안이 통과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 일본 외무성은 9일상오 유엔안보리가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권고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을 환영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외무성은 이 담화에서 『남북한의 동시 유엔가입은 매우 기쁜 일로 일본으로서도 환영하는 바』라고 밝히고 『일·북한간의 국교정상화 교섭에도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소련◁ 소련은 유엔 안보리의 남북한 유엔가입 권고 결의를 한반도에서 해빙과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냉전종결에 있어서 「필요하고 동시에 구체적인 일보」라며 환영하고 있다고 일 요미우리신문이 9일 소련 외교소식통들을 인용,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중국◁ 국영 신화통신은 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남북한 유엔가입을 총회에 권고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사실을 뉴욕발 기사로 논평없이 보도했다고 일 교도통신이 전했다. 신화통신은 한국에 대해 종래의 「SOUTH KOREA」(남조선)가 아니라 「REPUBLIC OF KOREA(ROK)」(대한민국)이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했다고 교도통신은 덧붙였다.
  • “소 국호 3개 거론 연내 개명 가능성”/최고회의 의장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의 새로운 국가이름으로 25일 3개가 제의되었으며 이중 2개에는 「소비에트」라는 말조차 제외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련 중앙정부 당국과 15개 공화국간에 작성되고 있는 연방조약에 관한 의회 토론에서 주권사회주의국연방(Union of Sovereign Socialist States),소비에트주권공화국연방(Union of Soviet Sovereign Republics) 및 유로­아시아공화국연방(Union of Euro­Asian Republics) 등 3개의 새로운 국가명이 제의됐다고 소련 최고회의 양원 가운데 한 의장인 라피크 니샤노프가 밝혔다. 니샤노프 의장은 국가명 변경이 금년말 이전에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연방조약의 일부로서 승인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 통일「예멘공화국」출범/살레 초대대통령취임… 5인평의회 구성

    ◎“국방비가 경제피폐 주인”인식… 이념벽 넘어/81년 협정체결,동서화해무드 타고 급진전 아라비아남단에 위치한 중동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예멘이 꾸준한 노력끝에 마침내 22일 통일을 선언,단일국가인 예멘공화국(Republic of Yemen)을 수립했다. 통일예멘의 통치기구는 지난 4월 22일 양국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헌법초안에 따라 앞으로 30개월의 과도기간동안에는 인구비례에 의해 북예멘 3명,남예멘 2명으로 구성된 5인대통령회의가 구성돼 합의제로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과도기간이 지나면 선거를 통해 행정부수뇌와 입법부를 구성한다. 입법권은 북예멘 국가자문평의회 의원 1백59명과 남예멘 인민의회의원 1백11명에다 대통령회의가 주로 야당인사로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명직 31명의 의원을 합한 3백1명 정원의 통일의회가 행사한다. 대통령회의는 양국간 사전 합의에 따라 알리 압둘라 살레 현북예멘대통령을 통일예멘의 새대통령으로,남예멘 집권 사회당 사무총장 알리살렘 알바이드를 부통령으로 선출했으며 하이데르 아부 바크르 알아타스 현남예멘대통령이 총리에 임명됐다. 헌법초안은 21일과 22일 양국의회에서 통과됐으며 오는 11월 30일 국민투표로 확정되게 된다. 친서방 자본주의 회교국가인 북예멘과 친소 사회주의 세속국가인 남예멘이 급속하게 통일을 이루게 된것은 통일을 향한 꾸준한 노력과 동서화해무드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예멘은 15세기이래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 이후 승전국 영국이 패전국 오스만터키로부터 이 지역을 분리시키면서 북예멘만 독립시키고 남예멘은 「남아라비아연방」에 편입,계속 지배해 왔다. 남예멘지역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중심이 돼 67년 독립했다.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지 50년만에 남예멘이 독립하자 곧 통일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양국은 같은 민족,같은 언어,같은 종교(수니파 이슬람교)를 갖고 있었지만 이데올로기 차이는 현격했다. 동서대결무드가 고조됐던 79년에는 국경분쟁으로 전쟁도 치렀다. 그러나 이 전쟁도 양국민의 드높은 통일열망으로 한달만에 휴전에 이르렀고 81년에는 통일을 목표로 한 아덴협정이 체결돼 양국통합의 기본원칙이 천명되기에 이르렀다. 81년 11월 북예멘 살레대통령이 남예멘을 방문,통일노력을 본격화시켰고 83년 예멘최고평의회가 구성돼 통일방안을 구체화시켰다. 86년 남예멘에서는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려는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득세하기도 했으나 고르바초프등장이후 새로운 평화공존시대가 열리면서 다시 통일노력이 기울여졌다. 당초 오는 11월 30일로 예정된 통일이 5월 26일로,또 다시 22일로 6개월이나 앞당겨진 것은 외세의 개입,북예멘 북부지역의 시아파 원리주의자와 남예멘 극좌파의 반통일움직임을 조속히 배격해야 한다는 양국지도자들의 공통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도 양국의 정치ㆍ경제사정도 통일을 촉진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북예멘은 독립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고 쿠데타도 빈발해 왔다. 아직도 북예멘 사회는 부족중심적이며 중앙정부의 행정이 지방에서 잘 집행되지 않고 있다. 1인당 GNP도 6백50달러,총 GNP57억달러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국방비가 5억3천만달러나 이르는 등 경제사정도어렵다. 남예멘도 86년 내전을 겪는 등 정정이 불안하며 총 GNP 10억달러,1인당 GNP 4백30달러에 국방비는 2억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어 통합의 필요성이 절실한 형편이다. 더욱이 양국 국경지역에서 84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유전의 공동탐사필요성과 공동탐사경험도 통일에 일조했다. 시바여왕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예멘땅에 통일이 옛날의 영화를 한꺼번에 가져다주지는 않겠지만 양국은 이미 양국국민의 자유왕래를 보장하고 있고 20일 군통합도 완료한 터라 통일에 큰 어려움은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서독통일과 함께 남북예멘의 통일은 동서화해시대를 확인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 과소비의 역사적 교훈/강석진 국제부 기자(오늘의 눈)

    로마시 남쪽에는 아직도 카라칼라 대욕탕이 남아 있다. 3세기 카라칼라 황제때 지어진 이 욕탕은 당시 로마의 대욕탕들과 마찬가지로 냉온탕 한증실 경기장까지 갖추고 한번에 1천6백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 사교장이었다. 대욕탕은 후세 사람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를 남겼지만 그로 인해 「로마는 목욕탕에서 망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시민에게 과중한 세금부담과 물가고를 안겼다. 근대 중국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는 오욕의 역사를 겪었다. 바로 그 19세기를 맞이하기 직전 청조 태평성대 때인 건륭제시절 총신 화신의 호사는 유명한 이야기. 화신이 날마다 복용한 영약은 한 알에 백은 1만양에 해당됐으며 결국 사사된 그가 남긴 재산은 당시 청나라 20년분의 세수와 맞먹는 액수였다 한다. 또 하북성 회유땅의 학씨는 어느날 황제를 초대,한끼 식사를 대접하는 데 백은 10만냥을 소비했다고 전한다. 중국요리의 명성과 특권계급의 호사의 뒤에는 수백만 수천만에 달하는 농민들이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유랑생활을 해야 하는 참혹함이 있었고 이것이 근대 중국이 오욕의 나락에 떨어진 배경의 하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과소비와 사치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 일부에서는 마약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밖에서 보는 눈도 곱지 않다. 지난해말 프랑스의 르 피가로지는 한국경제가 아시아 4용이 아닌 「지렁이」로 전락했다고 보도,지렁이론을 회자시키더니 지난 9일에는 또다시 한국경제가 전례없는 곤경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그 원인으로 여러가지를 들면서 재벌의 족벌체제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지도 한국내 일부 부유층의 사치ㆍ과소비 풍조가 계속될 경우 경제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치ㆍ과소비에 대한 우려와 경제위기론이 점고되고 있는 이때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던 이 나라의 상부층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불어에 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귀족은 평소 명예와 이익을 누리는 대신 피와 땀이 요구될 때에는 희생의 선봉에 서야 하는 의무를 뜻한다. 족벌체제와 사치ㆍ과소비의이야기 대신 국민들의 희생과 인내에 상응하는 Noblesse Oblige이야기가 듣고 싶다. 이 「위기」를 진정 벗어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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