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AP통신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이진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날씨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종결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채용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387
  • 정부 진상조사 착수

    정부는 30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한국양민 학살사건을 전한 AP통신의 보도 내용과 관련해 미국측과 협의,보도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우선 AP통신 보도내용에 대한 진위여부를 가린 뒤 사실관계에 따라 정부차원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만기자 oilman@
  • [사설]‘노근리恨’풀어 줘야

    미국의 AP통신이 30일 확인해준 미군에 의한 세칭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반세기전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아픔과 이데올로기 대결의 비극성을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우리를 구하러온 미군이 공산군 아닌 남한의 양민을 집단학살했다는 사실,그 끔찍한 사건이 49년이 지난 이제야 세상에 속살을 드러내게 된 현실,그것도 한국 아닌 미국 언론의 노력으로 확인되게 된 경위 등이 하나같이 이 사건의 비극성을 적나라하게 재조명해주고 있다. AP통신은 미군 제1기갑사단과 제25사단이 지난 50년 7월26일,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서를 예하부대에 하달했음을 공식문서로 확인했고 당시 이들 부대에 근무했고 지금 생존해있는 몇몇 군인들은 이 명령에 따라 민간인에게 발포했으며 또 일부는 대량학살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은 잊혀졌다기보다 일종의 ‘없었던 사건’이었다.피해자 유족들은 그동안 발을 구르며 억울함을 호소해 왔으나 어느 누구도 인정해 주려 하지 않았다. 피해 마을은 민주당정권이 들어선 60년부터 미국정부와 관계기관에 수없이탄원서를 냈고 97년에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보기도 했으나 아예 무응답이거나 ‘증거가 없다’,‘시효가 지났다’ 등의 이유로 기각되는 속에 반세기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노근리 사건이 얼마전 비밀해제된 미군문서에 의해 이제야 다시 드러나긴 했으나 모든 진상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우선은 진상규명부터 해야 한다.정부는 정부대로,국회는 국회대로,또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미군이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들을 적으로간주하게 된 경위,학살현장의 시말,피해규모 등이 정확하게 규명돼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날 노근리에서 있었던 진실을 토대로 미국으로부터 정당한수준의 사과를 받아내야 하고 적법한 배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전시의민간인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은 전쟁당사국은 민간주민과 전투인,민간물자와 군사목표를 엄격히 구별하고 작전은 군사목표물에 대해서만 행하도록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인도주의에 관한 범죄,집단학살에 대해서는 시효를적용하지 않는 것이 국제법상의 원칙이다. 이런 사건이 드러날 때마다 곤혹스러운 것은 우리사회의 모호한 태도다.이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인식도 변해야 한다. 거창 양민학살사건,제주 4·3사건도 규명이 돼있지 않은 상황이다.이러한 반인륜적인 사건들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도 기필코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그리고 제2,제3의 노근리 사건은 또 없는가도 살펴야 한다.우리가이런 사건들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 있을 것인가.
  • 美행정부‘양민학살사건’확인 거부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국무부 등 행정부는 29일 한국전쟁 초기 미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보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실이어서 답변이 불가능하다”며 논평하지 않았다. 제임스 폴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AP통신이 비밀해제된 문건과 참전용사들의 인터뷰를 근거로 제1기갑사단이 50년 7월 한국인 피난민 400명을 학살했다고 보도한 내용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전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폴리 대변인은 미국이 전쟁에서 양민을 군사적인 목표로 정한 정책을 세운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전쟁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고 “코소보전쟁 당시 미사일이 엉뚱한 데 떨어졌듯이 의도하지 않은 민간인 희생자는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hay@
  • 중국 건국50돌…32년간 취재 AP기자가 본 두거목

    [베이징 AP 연합] 지난 30년대 중반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大長征)이 끝난뒤 옌안(延安)에서 7개월 동안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지내는 등 이후 32년 동안 중국을 취재한 AP통신의 존 로드릭 기자가 중국 건국 50년을 맞아중국을 다시 찾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鄧小平) 두사람을 비교하는 기사를보내왔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살아가는 방식은 달랐지만 10월1일 건국 50주년을맞는 공산주의 중국을 상징하는 두 거목이다.지난 76년 타계한 마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아버지였다면 97년 서거한 덩은 중국 근대화의 어머니였다.이들은 전우였으나 마오가 수정 자본주의와 제한 민주주의를 통해 중국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저버리자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나는 중국을 취재하면서 두사람 모두 알게 됐다.두사람은 한때 추앙을 받다가 비판을 받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냉혹하고 계산이 치밀했던 마오는 53세때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렀으며 20년 이상 무수한 분쟁에 개입했다.옌안 시민들처럼 평범하게 생활했지만 화려한 황제,황후 의상을 차려입은 베이징 오페라를 좋아했다. 마오는 중국을 근대화 물결에 편승할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다만 너무 낭만적 몽상가여서 중국을 강력하고 자족이 가능한 고대 중세왕국으로 간주,조공을 받을 순 있지만 외국의 지원이나 유대는 필요없다는식의 사고를 가진 게 문제였다. 반면 덩샤오핑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마오의 공산주의 관념에서 탈피,각종 유인제도와 정치적 개방성으로 부(富)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덩은 16세부터 5년 동안 유럽에서 지낸 탓에 경제적 마인드와 세계지향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를 79년 처음으로 만났다.당시는 덩이 마오의 사망 직후 권력을 장악하고 개혁·개방정책을 거세게 밀어붙일 시점이었다.키가 작고 까다롭고시원한 눈매를 가졌던 덩은 마오와는 체질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었다.유머감각이 뛰어났고 얼버무리는 대화술도 능란했다.마오가 낭만적이고 의심이 많으면서도 아첨을 수용할 줄 아는 편이었다면,덩은 냉정하면서 조심성있고 자신감이 강했다. 덩은 나에게 중국 지도자들은 임기가 있어야 한다고했다.특히 정치 또는행정분야중 하나를 택해야지 모두 차지해서는 안된다고 했다.그는 자신이 도입한 자유시장경제를 사회주의자나 자본주의자 모두에게 ‘정당한 도구’라고 생각했다.덩의 명예에 누를 끼친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었다.3번이나 실각하고 다시 살아나 ‘부도옹(不倒翁)’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였지만 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때 두려움 때문에 군에 발포를 지시했다.이발포 명령은 그의 명예에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기 전까지 자신의 개혁정책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중국을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시킨 20세기 영웅으로 남게 됐다.
  • 6·25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 새 전기

    6·25당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미군이 주민을 학살했다는 이른바 ‘노근리 사건’의 일단이 드러날 것 같다. 미국의 AP통신이 최근 비밀이 해제된 미군의 기밀 서류와 당시 참전했던 미군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보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대책위원회’ 정은용 위원장(76·대전시 가수원동)과 노근리지역 주민들은 AP통신 취재진이 보도에 앞서 29일 충북 영동의 사건 현장을 찾아 취재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전날 ‘노근리 사건’을 200자 원고지 40장으로 기사화해 30일 오전 2시(한국시간) ‘노근리의 다리’라는 제목으로 타전하겠다고 예고했었다. 지역 주민들은 한국전쟁 초기인 50년 7월26일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노근리 경부선 철로 위에 영동읍의 주곡·임계리 주민 400여명을 “피난시켜 주겠다”며 모아 놓고 전투기로 기총 소사해 120여명을 숨지게 했다고 주장해왔었다. 영동 김동진기자 kdj@
  • [외언내언] 케네디家 비극

    한 장의 가족사진을 들여다본다.막내아들을 무릎에 앉힌 아버지를 중심으로어머니와 9명의 자녀가 포즈를 잡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는다. 케네디가(家)가 1940년 하이아니스 포트의 집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지난 60년대 후반AP통신이 엮은 책 ‘케네디가의 승리와 비극’(서울신문 외신부 번역·발간)에 실린 이 사진에는 비극의 그림자가 없다.다복한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 있을 뿐이다.그로부터 4년후 가족사진 속의 맏아들이 죽는다.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언젠가는 미국대통령이 되겠다고 장담했던 조지프 패트릭이 2차대전중 연합군의 베를린 공습에 참여했다가 피격당한다. 그로부터 다시 4년후 9남매중 넷째인 딸 캐슬린이 비행기 사고로 또 죽는다. 이어 케네디 집안 영광의 정점(頂點)에 섰던 둘째아들 존 F 케네디 대통령(63년)과 일곱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68년)이 잇달아 암살당함으로써 케네디가의 비극은 미국의 비극이 되기에 이른다.이제 사진속의 가족 가운데 남은 사람은 막내아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4명의 딸뿐이다. 케네디가의 비극적 죽음은 3대까지 이어져 로버트의 두 아들 데이비드(84년)와 마이클(97년)이 각각 약물 과다복용과 스키사고로 숨진데 이어 케네디대통령의 아들 존 F 케네디 2세와 그의 부인 캐롤라인이 함께 탄 비행기가 17일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났다.공교롭게도 실종된 비행기는 케네디일가가 가족사진을 찍었던 하이아니스 포트를 최종목적지로 하고 있었다. 케네디가의 비극에는 운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미국 대통령 1명과 대통령 후보 3명(상원의원 3명),하원의원 3명을 배출한 미국 최고의 정치 명문으로 왕실이 없는 미국에서 로열 패밀리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 집안에 드리운 운명의 그림자는 영광이 빛이 밝은 만큼 더 어둡게 보인다.워싱턴포스트는 케네디2세의 비행기 실종사고를 보도하면서 “미국에 셰익스피어가있다면 케네디가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셰익스피어는 야망,부(富),정열,권력,섹스,사랑 그리고 죽음등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초대형 인생의 모든것이여기에 들어 있음을 즉각 간파했을것”이라고 쓰고 있다. 이 가문의 이야기에는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 것이라며 호머의 ‘오디세이’에 비유한 국내 번역가도 있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30대에 백만장자가 되고 영국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조지프 케네디로부터 시작된 케네디가의 신화가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주목을 끈데는 이 비극의 그림자도 크게 기여했다.그러나 단란한 가족사진을 망가뜨린 비극은 너무 처절하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원했듯이케네디 2세의 실종이 케네디가의 마지막 비극이 되길 바란다.
  • 13살소년 ‘입’에 놀아난 美언론

    13살짜리 온두라스 출신 소년의 거짓말에 미 사회가 한바탕 법석이다. 주인공은 에드윈 다니엘 사빌론.지난해 가을 허리케인‘미치’로 가족을 잃고 하나 남은 혈육인 아버지를 찾아 온두라스에서 뉴욕까지 37일 동안 5,000여㎞를 혼자서 여행했다는 이 소년의 소식이 전해진 29일 미 전역은 감동에휩싸였다.뉴욕타임스, CNN 등 대부분의 언론들은 에드윈의 사진과 함께 소년의 사연을 대서특필했다.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도 나서 아버지가 불법체류자이면 이민국에 선처를 호소할 것이라며 아버지 찾기를 도왔다. 아버지와 만나기로 했다는 소년의 말만 믿고 공항에 태워준 택시운전사에의해 27일 경찰에 인계된 에드윈은 이틀만에 뉴욕의 꼬마 저명인사가 됐고천진한 얼굴과 극적인 스토리에 감명받은 뉴욕시민들의 선물이 쇄도했다. 그러나 온두라스 주재 AP통신이 29일 밤 에드윈이 허리케인으로 인한 산사태로 죽었다고 밝힌 그의 외할머니 폴라 헤르난데스(65)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거짓말이 드러났다.에드윈이 죽었다고 밝힌 어머니도 비록 에드윈이 태어난 지 10달만에 집을 나가긴 했지만 온두라스에 살고 있으며 정작 뉴욕 라과디아 공항 입구에서 만나자며 편지를 보냈다던 아버지는 지난해 10월 온두라스에서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것.할머니는 에드윈이 아버지가 숨진뒤 지난 3월부터 미 플로리다 고모집에서 생활해왔다면서 “아마 미국에서 살고 싶어그런 거짓말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금세기 10대 히트상품 선정

    뉴욕 AP 연합 20세기 제조업은 쓸모없는 상품들을 양산했다.하지만 20세기는 간단하고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생활의 질을 높인 뛰어난 발명품들이돋보인 시대이기도 했다. 다음은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의 10대 히트상품. ■종이 클립 20세기초 독일에 거주하던 노르웨이인 요한 바알러는 구부러진 철사를 이용해 종이를 묶음으로써 종이가 흩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아이스크림 콘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에서 식품업자인 아놀드 포나초와 어니스트 함위가 아이스크림과 달콤한 식용과자를 함께 출품한 것이효시. ■네온 1909년 프랑스 물리학자 조지 클로드는 오렌지빛 유리 튜브에 가스를모으는데 성공했다. ■셀로판 파리시내 카페의 테이블보에 와인과 커피 얼룩이 지는 것을 막으려던 자크 브란덴버거가 1912년 발명했다. ■지퍼 1913년 지든 선드백이 “Z-z-zip”라는 간단한 디자인에 대한 특허를받았으며 이후 굿리치사가 고무 덧신을 죄는데 이를 사용하면서 지퍼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회용 반창고 붕대회사에 목화를 납품하던얼 딕슨이란 사람이 결혼후 신부가 작은 상처를 입자 조그만 무균 붕대조각을 만들어 붙여준 것이 시초였다. ■사진복사기 체스터 칼슨이 가루 잉크를 사용하는 정전식 복사기를 개발한것이 효시였다. ■볼펜 2차대전중 헝가리 발명가 라즐로 비로가 발명했으며 1943년 아르헨티나에서 특허권을 얻은 뒤 상품화됐다. ■프리스비(놀이기구 원반) 20세기 중반 미국 뉴햄프셔의 빌 로브스와 LA의프레데릭 모리슨이‘우주 비행접시’와 ‘프루토 접시’란 이름으로 각각 상품화했다. ■접착 메모지 1973년 3M사 직원 스펜서 실버가 발명했고 그의 동료 아서 프라이가 이를 응용 발전시켰다.
  • [제2공화국과 張勉](25)-장면의 정치역정·생애(上)

    1950년 6월24일 오후9시쯤(이하 현지시각)워싱턴의 장면(張勉)주미대사는 모처럼 토요일 밤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신생 대한민국의 초대 주미대사로서 매일 저녁 칵테일파티니,디너파티니 두세 군데를 쫓아다니며 바쁘게 외교활동을 벌이다 이날은 오랜만에 관저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참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AP통신의 해리스기자였다.해리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북한군이 전면 남침했다는데 아느냐”고 물었다.장면은 “흔히 있는 산발적인 전투일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응답했다.이어 UP통신도 같은 내용의 전화를 해 장면은 미 국무부로 급히 연락하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밤10시30분쯤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이승만(李承晩)대통령은 “북괴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밀고내려오니,장대사가 빨리 행동해 주어야겠소”라고 말했다.전화를 넘겨받은 임병직(林炳稷)외무장관은 “당신 한사람의역량에 국가 운명이 달렸소”라고 목이 메어 우는 소리를 했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갓 세운 조국,대한민국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빠진 순간이었다. 장면은 곧바로 미 국무부로 달려가 딘 러스크 극동담당차관보 등을 만났다. 장면과 러스크는 한국사태를 25일 열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기로 하고 이를 휴가중인 트루먼 대통령,애치슨 국무장관에게 알렸다. 일단 관저로 돌아온 장면은 부랴부랴 짐을 꾸린 뒤 바로 비행장으로 나가 군용기 편으로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 갔다.오후2시 개막한 안보리에서 장면은 연설 기회를 얻었다.“유엔 승인을 얻은 대한민국은 북괴군의 불법공격을 받고 있다.이 공격은 인도(人道)와 민심을 거슬리는 죄악이자 국제평화·안보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다”라면서 지원을 호소했다. 안보리는 미국이 제안한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9대0으로 통과시켰다.결의한내용은 ▲북한군은 전쟁을 중지하고 38이북으로 철수할 것 ▲유엔한국위원단이 이를 감시할 것 ▲유엔회원국은 북한에 일체의 원조를 하지 말 것 등이었다.북한을 침략국으로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는 이처럼 6·25발발 50여시간만에 이루어졌다. 안보리 결의가 나온 다음날 장면은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다.“너무도 황급해서 국가원수에 대한 예모도 차릴 겨를이 없이”(회고록에서의 표현)장면은트루먼에게 “6개월전 요청한 무기원조를 왜 해주지 않았느냐,이제 우리나라 운명이 당신 손에 달렸으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마구 항변했다. 이 자리에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트루먼은 27일 낮 해·공군을 한국에 파병한다고 발표했다.이날 유엔 안보리도 ‘북한의 공격을 격퇴하고 한국의 안전보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라고 권고하는’결의문을 추가로 채택했다.30일에는 미국이 육군을 출동시켰다. 6·25가 발발하자마자 유엔 안보리 결의,미국의 파병을 이끌어낸 이 며칠은한국이 적화(赤化)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나날이었다.그 결실은 장면의 초인적인 노력 덕에 맺어졌다고 할 수 있다.장면은 훗날 “본국으로부터의 지시나 의논할 사람이 없어 고군분투하며 우방 제국(諸國)의 대표들에게 눈물의 호소를 했다”면서 당시를 “한 시간이 일년만큼이나 귀중했다”고 회고했다. 장면정부를 ‘실패’라고 규정하고 장면 개인을‘무능하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가 건국 초기에 두가지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한다.하나는 6·25직후 미국 및 유엔의 군사적 지원을 즉각 이끌어낸 점이고,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법 정부’임을 유엔에서 승인받은 일이다. 장면은 48월 5월10일 제헌의회 선거에서 서울 종로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당선함으로써 정치의 장(場)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정부 출범 며칠뒤 장면은 9월 파리에서 열리는 제3차 유엔총회에 참가하는 한국대표단의 수석으로임명받았다.그와 함께 대표단으로 참가한 이들은 조병옥(趙炳玉)정일형(鄭一亨)장기영(張基永)김활란(金活蘭)모윤숙(毛允淑)전규홍(全奎弘)김우평(金佑枰)김준구(金俊九)등이었다. 한국의 법통(法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막중한 회의에,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장면이 수석대표로 임명된 사실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특히 조병옥을 앞섰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조병옥은 독립운동 경력이 화려한데다 한민당 창당에 한몫 했으며 미군정 때는 경찰총수인 경무부장을 지냈다.더욱이 대통령 이승만에게서 미 유학시절부터 상당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반면 장면은 주요 경력이 동성상업학교 교장,입법의원 정도였다.이승만과도 해방공간에서야 처음 만난 사이다. 그런데도 당시 ‘국가 승인’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승만이 장면을 수석대표로 선택한 것은 그만큼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단을 이끌고 파리에 도착한 장면은 바티칸을 비롯한 가톨릭 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그해 12월12일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내의 유일·합법정부임’을 승인받는다.장면은 “쉬는 시간에도 혼자서 한국승인 문제를 위해 천주교인을 만나러 다녔고”(장기영의 회고담),그토록 과로한 탓에 쓰러져 입원한다.이때 병원에서 주사를 잘못 맞아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바람에 생을 마칠 때까지 간질환으로 고생하게 된다. ‘유엔의 한국 승인’에 성공한 장면은 대통령 특사로서 바티칸에 가 교황을 알현했다.귀국길에 미국에 들른 그는 그곳에서 초대 주미대사로 임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짐은 이미 집으로 부친 뒤였다. 장면은 다음날부터 각국 대사를 찾아다니며 대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먼저 공부했다.한편으로는 사무실과 사람을 구하는 등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갔다.1년반 동안 노력한 끝에 주미대사관이 궤도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듯 6·25가 터졌고,장면은 그에게 부여된 국가적 과제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그해 11월 이승만은 장면을 제2대 국무총리로 지명했고 국회는 23일 이를 인준했다.그러나 장면은,유엔이 51년 2월1일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것까지를 지켜본 뒤에야 귀국해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용원기자ywyi@
  • 아버지 영정 든 네살배기 5·18묘역 관리원으로

    “어렸을 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척 원망스러웠지만 이젠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80년 5·18의 참상을 상징했던 사진 속의 꼬마 조천호(曺天鎬·당시 4세)씨가 또다시 그날이 다가오자 역사의 현장에서 아픈 상흔(傷痕)을 추스르고 있다.그는 올해 23세로 지난해 5·18묘지 관리사무소 공무원으로 특채돼묘역 이곳저곳을 안내하고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상복을 입은 꼬마가 초점없는 눈동자로 아버지 영정을 품에 안고 입술을깨물며 앉아있는 모습’ 이 사진은 국내 보도가 통제되던 그당시 외신기자(AP통신)의 타전으로 전세계 신문과 방송에 오르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조씨의 아버지 사천(四天·당시 34세)씨는 그해 5월 21일 오후 1시쯤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처참한 모습으로 숨졌다. “아저씨가 저 꼬마예요,아저씨랑 많이 닮았네요”우르르 몰려든 초등학생들이 사진앞에 서 있는 천호씨를 찬찬히 뜯어 보면서 물어봤다.“그래,맞아”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뒤편에서 이 말을 들은 아주머니들이 조씨의 등을 두드리며격려했다.“이렇게 당당한 청년으로 자라줘서 고맙네,아버지 없이 고생은 얼마나 했을까…” 조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88년 이 사진을 5·18관련 책자에서 우연히 확인했다.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할머니는 87년 선거용 팸플릿에서 이 장면을보고 쓰러져 사흘만에 돌아가셨다고 가슴아파한다.조씨는 “이제는 아버지도편안하실 겁니다.제가 이렇게 옆에서 매일 돌보고 있으니까요”라며 웃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사설] 한국축구의 가능성

    통쾌하다.10년 묵은 체증(滯症)이 내려간 듯 시원하다.28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브라질 축구대표팀 경기에서 한국 축구가 세계 최강브라질 축구를 꺾은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아래 주눅든 우리 국민에게 모처럼 짜릿함을 안겨준 쾌거였다.“이 경기가 월드컵 본선경기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까지 갖게 한 멋진 승부였다. 한국 축구가 브라질의 ‘삼바축구’를 거꾸러뜨렸다는 것은 한국 축구사에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지난 64년 도쿄 올림픽에서 0대 4로참패한 이후 한국 축구는 국가대표팀은 물론 청소년대표팀도 브라질을 이겨본 적이 없다.따라서 35년만의 첫 승리가 감격적일 수밖에 없다. 비록 친선경기였지만 두 팀은 프랑스 월드컵 출전선수들을 포함한 주전급선수들을 모두 스타팅 멤버로 기용해 최선의 경기를 펼쳤다.한국팀은 ‘볼의 마술사’로 불리는 히바우두,세계최고의 수비수 카푸가 포진한 브라질을 상대로 당당히 싸웠고 끝내 1대 0으로 승리했다.절묘한 선수 기용과 작전으로AP통신으로부터이번 한국축구의 승리가 ‘전술의 승리’라고 평가받은 허정무감독과 김도훈을 비롯한 대표선수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투혼(鬪魂)이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었다.해외활동 선수들의 풍부한 경험도 승리의 밑거름이었다. 사실 우리 대표팀은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절감하고 좌절했다.잇따른 참패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우물안개구리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이번 승리는 한국 축구가 다시 일어설 수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한 것이다.이제 우리 선수들은 세계 어느 나라와 맞붙어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그 자신감으로 2002년 서울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에서도 승리를 일구어내기를 기대해 본다.이번 승리를 맛보기 전까지는 우리 안방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에우리 팀은 들러리가 되고 남의 나라끼리 잔치를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이번 경기에서 꽃샘추위를 녹인 축구팬들의 열기가 보여주었듯이한국 축구는 지금 중흥기를 맞고 있다.이 상승세를 계속 유지시켜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할 것이다.월드컵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다.대표팀의 전력 강화에 더욱 힘쓰는 한편 축구장 건설 등 모든 준비에만전을 다해 한국 축구가 다시 일어서듯 한국 경제도 다시 일어서도록 우리모두 힘을 모아야겠다.
  • 싱겁게 끝난 ‘세기의 주먹대결’ …헤비급 통합타이틀전

    ‘금세기 마지막 빅카드’로 전세계 복싱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헤비급통합타이틀전이 판정 시비만 남긴 채 싱거운 무승부로 끝났다. 14일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 특설링에서 열린 에반더 홀리필드-레녹스 루이스전은 1971년 무하마드 알리-조 프레이저전 이후 첫 헤비급 통합타이틀전으로서 지대한 관심을 모았으나 시종 무기력한 경기 끝에 1-1 무승부를 기록,복싱팬들을실망시켰다. 이로써 세계복싱협회(WBA) 및 국제복싱연맹(IBF),세계권투평의회(WBC) 등헤비급 3대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어 누구도 시비걸지 못할 진정한 최강자로서의 통합챔피언 탄생의 꿈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이날 경기에 대해 3명의 심판 가운데 미국의 진 윌리엄스(여)는 115-113으로 홀리필드의 승리로 판정했고 남아공의 스탠리 크리스토도루는 116-113으로 루이스의 승리라고 판정했다.그러나 영국의 래리 오코너는 115-115 무승부 판정을 내렸다. 한편 AP통신은 자체 집계에서 117-111로 루이스가 승리한 경기라고 보도했다.AP는 루이스가 모두 613차례 주먹을 내밀어 348회를성공시켜 57%의 적중률을 보인 반면 홀리필드는 385번 주먹을 뻗어 130차례 성공시켜 34%의 적중률에 그쳤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펀치의 대부분이 잽 수준을 넘지 못했을 만큼 소극적인 경기를 펼침으로써 파이팅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홀리필드 역시 장담했던 “3회 KO”는 커녕 큰 키와 긴 리치를 이용한 루이스의 견제에 밀려 제대로 접근조차 못한 채 12라운드 내내 상대를 쫓아다니기만 해 결국 거짓말장이가 되면서 실망감을 안겨줬다.
  • 3·1절에 보는 베델의 한국사랑

    1904년 창간된 순수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의 사장 베델(裵說)과 신채호등 항일언론인들이 펼친 구국운동이 TV영상을 통해 조명된다.3·1절 80주년을 맞아 KBS 1TV ‘역사스페셜’(토 오후 8시10분)은 ‘3일간의 재판-영국인 베델을 추방하라’를 특집으로 내보낸다.재판은 AP통신에서 특파원을 보낼정도로 국제적 화제를 모았다.이 프로는 90여년 전 서울 정동 주한 영국총영사관에서 3일동안 계속된 공판장면을 재현함으로써 시작된다.‘국내 최초의국제재판’이었던 당시 재판의 피고는 베델이었고 죄목은 ‘한국민 선동죄’였다. 이에 앞서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11월20일 을사보호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된 직후 황성신문에 장지연의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이 실리자 같은달 27일 이를 영문으로 번역,호외를 발행하는 등 민족의 소리를 대변했다.당시 1만 3,256부로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했고 영문판까지 있어 국내는 물론 국제여론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베델은 영국인이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신문의 치외법권적 지위를 확보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베델이 한국에 온 것은 1904년 2월.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자격이었다.‘경운궁의 화재’를 특종보도했던 그는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등 지사적 언론인들과 자주 접촉하다 스스로도 항일 정신을 갖게 됐다. 이런 사실은 일본과 영국의 외교문서에 기록된 베델의 흔적을 추적한 결과확인됐다.자료들은 베델의 ‘처리’를 놓고 영·일 간에 빚어진 외교적 마찰과 베델의 한국 밖 추방결정 과정 등을 알려준다. 담당연출자 김형석PD는 취재과정에서 베델의 한국사랑과 선각자들의 활동에 “감탄했다”면서 “프로그램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프로제작 때 가장 신경을 기울인 부분은 법정의 재현 장면.법정에서 시작해 법정에서 끝나기 때문에 자칫 ‘재미’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였다. 이를 위해 버츄얼 스튜디오(가상공간)에서 진행자가 3자적 관점으로 재판을지켜보는 연극적 방식을 채택,시청자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피고석의베델은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연기자 대신 확대한 사진을 활용했다. 베델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도 공개된다.1909년 베델이 서울에서 숨지자 한국인들이 보낸 조문편지 묶음 등이 그 것.편지에는 유림과 농부,동경유학생 등 각계각층의 애통해 하는 마음이 절절이 배어있다. 취재 뒷이야기도 많다.베델의 며느리 도로시여사(82)는 시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도로시여사는 당초 ‘촬영 절대불가’를 조건으로 취재에응했다. 이에 따라 김PD는 카메라 뚜껑도 열지 못했으나 이튿날 도로시여사의 자녀들이 찾아와 “할아버지를 많이 알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도로시여사를 설득해 비로소 촬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PD는 “베델은 ‘한국의 쉰들러’라는 표현외에 달리 형언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許南周yukyung@
  • 영문전기‘김대중’한글판 출간

    미국에서 발간된 인물전기 ‘金大中’이 취임 1주년을 맞아 다음달 중순쯤한글로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미국 대형출판사인 첼시 하우스 퍼블리셔스에서 지난 12월초 발행한 이 책은 세계 지도자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단행본이다.현재 이책은 미국 초·중·고에서 교재로 채택,위인전으로 읽히고 있으며 미국내 각 학교와 도서관에 보급됐다. 저자인 AP통신 기자 골드스틴은 이 책에서 金대통령의 삶의 역정을 ▒감격의 승리 ▒꿈 많았던 청년 ▒정치입문과 민주화투쟁 ▒사형집행을 앞두고 ▒다시 날아오른 불사조 등으로 나눠 그리고 있다.이 책은 서문에서 金대통령을 경제난국,남북대치 상황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을 불굴의 정신과 탁월한 위기 극복 능력으로 이끌어가는 민주적인 지도자로 소개했다.崔光淑 bori@
  • 잭 니클로스 ‘마스터스 40년개근’ 스톱

    ‘황금 곰’ 잭 니클로스(58)의 마스터스골프대회 40년 개근 행진이 막을내리게 됐다. AP통신은 15일 지난 시즌 중반 이후 엉덩이에 이상을 보였던 니클로스가 오는 27일 왼쪽 엉덩이에 인공뼈(고관절)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함에따라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출전이 불가능해졌다고 전했다. 이로써 지난 59년 19세의 아마추어로 첫발을 내디뎌 지난해까지 40년간 이어졌던 니클로스의 마스터즈 개근행진이 끝나게 돼 마스터스 연속 출장 기록 경신도 불가능해졌다.마스터스 연속 출장 기록은 아놀드 파머와 샘 스내드가 지니고 있는 44회 연속 출장이다. 그러나 니클로스는 마스터스와는 6차례의 우승을 포함,4차례의 준우승,10차례의 톱10 등 가장 많은 인연을 맺어왔다. 니클로스는 앞서 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도 엉덩이 이상으로 출전을 포기한바 있으며 그 이전까지 메이저대회에만 146회 연속으로 출전했었다. 올시즌 들어 마스터카드챔피언십과 시니어스킨스게임 등 시니어투어 초반 2개 대회에도 불참한 니클로스는 이날 수술 결심을 발표하면서 “지금으로서는 경기를 하기 힘든 상태다.경기를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힘을 회복하게 되면 다시 투어에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곽영완
  • “박세리가 다시 그린에 왔다”

    지난시즌 미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신인왕 박세리(22)가 올시즌에도 세계적인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AP통신은 15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그랜드사이프레스골프장(파 72)에서 개막된 99헬스사우스이너규럴대회 개막에 맞춰 박세리(22)의 시즌 준비 상황을 비중있게 다뤄 눈길을 끌고 있다. AP통신은 이너규럴대회 개막 예고기사에서 박세리를 앞머리에 올려 ‘박세리가 세계 정상의 목표를 안고 마침내 골프세계로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기사는 ‘박세리가 시즌 뒤 힘겹게 고향을 다녀왔고 개인매니저 경질,전담코치교체,매니지먼트 계약 등 어지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녀의 목표만큼은분명하다’고 덧붙였다.그러나 통신은 ‘지난해에 경험했듯이 애니카 소렌스탐이 버티고 있는 한 박세리의 정상도전이 결코 쉬운 목표는 아니다’고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박세리가 시즌 첫 출전하는 그랜드사이프레스골프장은 작은 그린과 워터해저드가 많고 페어웨이가 좁아 장타보다는 정교한 샷이 요구된다.박세리는 거리보다는 샷의 정확도를 높이데 주력할 계획이다. 한편 3라운드 54홀 스트로크플레이로 펼쳐지는 이번대회는 박세리와 함께김미현,재미교포 펄 신도 출전했다.곽영완kwyoung@
  • AP 선정 10대 뉴스,클린턴 탄핵 1위에

    【워싱턴 AP 연합】 AP통신은 39개국의 84개 회원언론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의 10대 국제뉴스를 선정했다. 조사는 회원사 편집인들이 순위를 정해 제출한 10대 뉴스들을 취합,1위 10점에서 10위 1점까지 점수를 부여하고 총점으로 순위를 가렸다. 1위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탄핵조사’가,2위는‘아시아 경제위기’가 차지했다. 아시아 경제위기는 작년에도 10대 뉴스에 포함됐으며 올해에도 1위로 꼽은 응답자 수는 클린턴 탄핵뉴스보다 더 많았다. 10대 뉴스순위(괄호 안은 총점과 1위로 꼽은 응답자수)=①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조사(638·23) ②아시아 경제위기 확산(561·28) ③인도와 파키스탄 핵실험(288·4) ④허리케인 미치와 조지(282·4) ⑤북 아일랜드 평화협정(276·3) ⑥러시아 위기(271,2) ⑦칠레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체포(244·5) ⑧코소보사태(243·1) ⑨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사임과 정정불안(229·­) ⑩무기사찰을 둘러싼 유엔과 이라크의 대치 (195·­)
  • 金 대통령 傳記 美서 출간

    ◎학생용 위인전 시리즈… 112쪽 1만부 초쇄 金大中 대통령의 전기가 미국내 초·중·고교에서 위인전 시리즈로 읽히는 영문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지난 66년 설립된 미 뉴욕의 대형출판사인 첼시아 하우스가 이달초 ‘세계의 지도자,과거와 현재’라는 제하의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112쪽 분량의 金대통령 전기를 1만부 출간했다고 청와대 공보수석실이 20일 밝혔다.이 전기는 현재 AP통신 기자로 활동중인 럼 골드스타인씨가 집필했으며,내년 1월부터 출판사 자체 보급망을 통해 미국내 학교와 도서관에 보급될 예정이다. 전기에는 50년만에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당선된 金대통령을 경제난국과 남북관계를 해결해 나가는 유능한 지도자로 소개하면서 30여장의 사진도 함께 실었다.일대기는 유년기와 학창시절에서부터 정치입문 및 민주화 투쟁과정,투옥·망명생활,도쿄 납치사건과 사형선고,미국의 구명운동,정계은퇴 및 복귀,대통령 당선,성공적인 미국방문 등의 순으로 구성됐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동해항 이모저모

    ◎“평생 그리던 북녘 맘껏 관광”/97세 최고령 한마디/최연소 6살짜리 동승/鄭 회장 3등칸 이용 18일 오후 5시44분 수십발의 축하 폭죽이 하늘을 수놓고 뱃고동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현대금강호가 역사적인 첫 출항에 나서자 동해항은 환호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분단 이후 순수 관광목적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나 환송객 모두 흥분과 설레임으로 들뜬 모습이었다. ●탑승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됐으며 97세로 최고령자인 沈在鱗옹(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165)은 오후 4시40분쯤 가수 현숙씨의 도움을 받으며 출입수속대를 통과해 탑승했다. 沈옹은 “평생 그리던 북한 땅을 밟아 본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세월의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모든 관광 코스를 돌아볼 생각”이라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10여분 후인 4시50분쯤 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이 측근들의 부축을 받으며 터미널 귀빈실을 통해 금강호에 올랐으며 5시쯤 최연소 관광객인 강한별군(6)이 아버지와 함께 탑승한 것을 끝으로 승선은 마무리됐다. ●금강호가 출발한동해항 여객터미널에는 많은 출영객들과 동해시민들이 나와 역사적인 관광에 나서는 관광객들의 장도를 축하했다. 금강산 관광에 참여한 어머니 秦蔡玉씨(84·충북 청주시 봉명동)를 환송하기 위해 동해항에 나온 金鍾淑씨(47·충북 청주시 봉명동)와 金鍾姬씨(39·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동) 자매는 “금강호 첫 출항에 어머니를 보내드리게 돼 기쁘다”면서 “우리의 명산 금강산을 마음껏 구경하고 돌아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은 금강산관광선의 출항 직전 관광을 신청한 통일부 관계자 및 일부방송사와 신문사 보도진의 입북을 거부한다는 방침을 전해왔다. 북한은 이날 낮 현대측을 통해 “순수 관광 이외의 목적으로 금강산을 방문하려는 사람이 많다”면서 모두 19명의 입북 불허 방침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현대측 관계자는 “북한측과 끝까지 협상을 계속해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입북이 거부된 일부 보도진 등은 현대측의 협상을 지켜보고 북한이 끝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북한땅에 내리지 않는다는 계획으로 일단 관광선에 올랐다. ●현대금강호 출항장에는 국내외 신문·방송은 물론 미국 CBS와 AP통신,일본 NHK,TBS,TV동경,요미우리신문,동경 신문 등 외국 보도진들이 대거 몰려와 뜨거운 취재경쟁을 벌이며 역사적인 출항을 지구촌 곳곳에 전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장인 모리치하루기자는 “현대금강호의 출항으로 동해가 남북한의 전진기지로 세계에 소개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환동해권의 물류 전진기지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4시10분부터 30분동안 진행된 출항식에서 鄭 명예회장은 기념사를 통해“민족의 염원을 담은 금강산행 뱃고동은 남북경협의 첫 결실이자 민족화해와 평화시대의 기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鄭명예회장은 최고급 객실을 사용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9개 등급의 객실 가운데 3등급에 해당하는 ‘만다린 스위트’실을 이용했다.
  • 流星雨에 위성안전‘비상’/혜성 템플터틀 지구옆 지나며 流星 쏟아

    ◎위성 컴퓨터 마비 등 우려… 美·러 촉각 【로스엔젤레스 뉴욕 AP 연합】 지구가 17일과 18일 사자자리 유성군(群)과 만남에 따라 600여개의 위성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AP통신은 32년이나 33년 주기로 지구궤도를 지나는 혜성 템플 터틀 꼬리의 먼지 입자들로 구성된 유성군은 시간당 5,000개 내지 10만개의 유성을 쏟아부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혜성 꼬리에 있는 먼지 입자들이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이들 유성들은 비록 크기는 모래 알갱이만큼 작지만 시속 15만5,000㎞이상의 초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어 위성과 부딪힐 경우 전자기파 등을 일으켜 컴퓨터를 마비시키는 등 큰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유성우로 위성이 고장난 것은 93년 5월 미국의 갤럭시 4호가 유일하지만 지금은 당시보다 밀집도가 3,000배나 높아 결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민·관 위성 사업자들은 “작은 입자들이 위성에 손상을 줄 확률은 1,000분의 1내지 2만분의 1로 대단히 낮다”면서도 “기당 수억달러가 나가는 위성이 있는 만큼예방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은 허블 망원경의 렌즈표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궤도를 수정했으며 항공우주국(나사)은 항공기 2대를 발진,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했다. 러시아는 미르 우주선 승무원들이 비상탈출선에서 유성우가 끝날때까지 대기하도록 지시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