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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마틴 루터 Martin Luther 독일의 성직자, 교수. 르네상스와 모더니즘의 방아쇠를 당겼다. 학자들은 그를 두고 마지막 중세를 살았던 인물로 평가한다. 당시 그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스타 종교인이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지 500년이 되는 2017년까지 루터도시 곳곳에서는 그의 정신을 기리는 축제를 만날 수 있다. 신에서 인간으로 관점의 변화를 가져온 루터의 자취를 좇는 루터도시 순례에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시공간을 찾아갔다. 중세와 근대의 경계를 고스란히 간직한 독일 소도시 여행에서 구도자의 삶을 엿본다. 내가 찾아간 독일은 다시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의 시대였다. 루터가 살았던, 죽었던, 설교했던, 공부했던, 결혼했던, 세례를 받았던 독일의 튀링겐주와 작센안할트주 일대는 아예 루터도시Lutherstadt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2017년이면 루터가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성당에 못 박은 지 500년이 된다. 독일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한창이다. 500년이 흐른 지금도 루터가 부지런히 상기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여정의 끝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루터로의 시간여행은 시작됐다.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 각 나라 언어로 제작된 박물관 안내서가 구비돼 있다 ●아이슬레벤Eisleben 루터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도시 본격적으로 루터의 자취를 좇는 여행은 그가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시작됐다. 인구 2만5,000명이 사는 아이슬레벤은 우리나라 폐광촌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구리 채굴로 번성했던 도시의 과거 영화는 시민 계급의 주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지금은 한적하기만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매년 찾아오는 50만명의 관광객으로 그리 외롭진 않다. 루터가 태어난,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프로테스탄트의 성지라는 점이 그들의 발길을 이끈다. 걸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도시 곳곳에서 루터를 만날 수 있다. 루터는 티셔츠에 머그컵에 부지런히 등장하는 체 게바라처럼 인기 있는 혁명가 아이콘이다. 루터는 갤러리에 걸린 팝아트에도 등장하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종이 인형의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루터 시대 먹었던 음식을 재연한 이색적인 레스토랑도 인기다. 도시 광장 한복판에 성서를 들고 있는 루터 동상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객의 사진 포인트.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알았던 소수의 전유물이던 성서를 독일어로 최초 번역한 그의 업적을 기렸다. ‘소수자’로 태어난 루터는 대중의 언어인 독일어를 일부러 배우고 익힌 후에야 번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시대 계층간의 단절이 새삼 놀랍다. 그가 번역한 성서는 당시 1,000만권 정도 복사된 최고의 밀리언셀러였다. 지식을 독점하면서 우위를 누렸던 성직자들이 루터를 고운 눈으로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루터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깊어 갔다. 화답이라도 하듯 루터는 현 루터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한다. 그가 마지막 설교를 했던 상트 안드레아스 키르헤 교회도 예전 그대로다.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단상에 올랐을 노성직자가 아른거린다. 교회를 나와 세상에서 첫 번째 박물관으로 탄생한 루터의 생가로 향한다. 루터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 복원돼 있다. 방명록에는 심심치 않게 한글이 눈에 띈다. 한국인 성지 순례자가 꼭 들르는 관광지다. 생가 이층에서 창문을 열면 루터가 세례를 받은 상트 페트리 바울리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가톨릭 세계관에서 세상에 태어난 생일은 중요치 않았다. 세례를 받은 후에야 그 삶에 비로소 의미가 있었다. 종교인으로서 시발점이자 종결점이 된 이 도시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이기도 했다. 교회에는 아기 루터의 머리를 적신 성수가 담겼던 세례 그릇이 복원돼 있다. 새겨진 문구는 마태복음 28장 19절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말씀을 실행한 루터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독일인이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에서 만난 루터 동상. 이곳은 세계 최초의 박물관으로 지정됐다 2 루터를 종이인형으로 형상화한 그림. 루터는 아이슬레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콘이다 3 루터가 마지막으로 설교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른 신랑, 신부 ●비텐베르크Wittenberg 근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되다 루터의 본류를 좇으려면 비텐베르크가 빠질 수 없다. 이곳은 500여 년 전 지구상에서 가장 사상적으로 치열했던 땅이다. 중세 학문의 중심지였던 비텐베르크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여들었고 수준 높은 학문이 교류됐다. 루터는 이곳에서 생애 가장 많은 시간, 가장 치열한 한때를 보냈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으로 향했다. 시청에 내걸린 거대한 루터 현수막 아래로 진짜 루터가 등장했다. 은발의 노신사가 루터와 같은 수도복을 입고 추종자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닌다. 독일식 코스튬플레이인가 싶어 절로 웃음이 났는데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비텐베르크 시민들도 이제는 그냥 그를 루터라고 부른다는 말에 뒤집어졌다. 당시 루터는 중세의 아이돌이었다. 동경하고 추종하는 자도 많았으니 내가 루터라고 주장하는 가짜 루터들도 출몰할 법했다. 루터가 1511년부터 거주한 수도원은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돼 ‘루터하우스’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다량의 루터 초상화다. 젊은 루터, 늙은 루터, 박사모를 쓴 루터, 수도복을 입은 루터 등등 화가들은 쉴 새 없이 화폭에 루터를 담았다. 그를 스타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조목조목 따지고 든 95개 조의 반박문을 1517년 성교회Castle Church에 못 박은 일이었다. 루터는 거침없었다. 교회의 처사에 부글부글 끓던 사람들에게는 통쾌한 대자보였던 것이다. 가장 강력한 권력 대한 반박문은 종교개혁에 소중한 첫걸음이 됐다. 루터하우스에서 성교회까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은 도보로 20여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중세의 매듭이 묶이고 근대라는 시간이 스멀스멀 탄생한 것이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루터는 근대의 불을 인간에게 안긴 프로메테우스가 됐다. 그리고 그는 설교로 계속 그 불의 온기를 유지해 나갔다. 그가 최초로 또 2,000회 이상 독일어로 미사를 올렸던 성 마리아 교회의 첨탑이 광장 동쪽으로 삐죽이 솟아 있다. 거칠게 생각해 보면 루터는 역사책 안의 인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와는 상관도 인연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엔 교회 대신 백화점으로 향하는 내게도 크리스마스는 가장 신나는 ‘빨간 날’일 뿐이다. 그럼에도 종교를 개혁한 마틴 루터에게 우리는 분명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우리의 관심사를 신에서부터 인간으로 되돌린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건 거창하다. 다만 구시대의 모순에 하나둘 반기를 들었던 행동들이 모여 역사가 흘러갔다는 것.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의 용기 덕분에 근대의 수혜를 입었다는 것. 그게 제일 크겠다. 이제 세상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과학적인 합리성에 의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과학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새 질서를 꿈꾸는 이때 독일인은 부지런히 루터를 소환하고 있었다. 다시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루터도시는 희망의 증거를 내준다. 4 비텐베르크 광장.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걸개가 걸려 있다 5 맥주는 빠질 수 없는 독일인의 문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을 정도로 루터 역시 맥주를 즐겼다 6 비텐베르크는 루터로 꽉 찬 도시 같다 ●밤베르크Bamberg 천년의 낙차를 여행하다 루터가 살았던 중세를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밤베르크만한 곳이 없다. 이름도 생경한 이 도시에 들어서려면 다소 긴 관문을 통과한다. 뮌헨 공항에 내려 세 시간여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이 도시에 다다르면 여독보다 더 강렬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이동의 피로감은 뒷전이 된다. 밤베르크는 수로를 따라 발달한 도시다. 볕에 대기가 달궈지기 전 찬 공기와 만난 수면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니 그 운치는 몇 곱절로 늘어난다. 시간이 흐르자 밤베르크에는 볕이 가득하다. 조도가 높았다. 워낙 일조량이 적은지라 아이가 태어나면 항우울성 예방주사부터 맞힌다는 독일에서 운 좋은 시작이었다. 골목골목 독일 특유의 목조건물이 즐비하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담장을 넝쿨이 따라간다. 약속이나 한 듯 건물 위에 얹은 빨간 지붕 옆으로 너른 포도밭이 펼쳐져 있어 건물과 자연의 보색대비가 도드라진다. 느릿한 걸음으로도 두 시간 남짓이면 도시를 크게 한 바퀴 휘감을 수 있다.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 간 덕분에 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는 1993년 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인리히 2세 황제가 신성로마제국 중심지로 가꾼 밤베르크는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 때문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수고쯤은 감내해야 한다. 황홀한 낙차를 즐기며 걸음걸음을 옮기다 보면 밤베르크가 살아있는 고도古都라는 데 공감이 간다. 레그니츠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업을 잇던 어부들의 집 주변으로 상가가 조성돼 있다. 지금도 그곳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고 아기자기한 기념품점이 늘어섰다. 꽤나 낡아 보이는 집들도 아직 짱짱한 현역이다. 밤베르크 사람들은 고작 몇백년 된 건물이라고 받아친다. 우리 같았으면 당장 ‘진입금지’를 뜻하는 펜스부터 둘렀을 법한데 10세기에 조성된 이 도시는 현대적인 기능까지 돋보인다. 겹겹이 쌓인 지층처럼 천년의 시간 위에 현재의 삶이 덧입혀진 모습이 아름답다. 과거를 기억하는 건 비단 도시만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선조의 문화를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이들이 밤베르크 여행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가장 유명한 곳은 슈렝케를라Schlenkerla로 불리는 양조장. 밤베르크에 있는 8개의 맥주 양조장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다.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비틀 걷는 모양이라는 뜻의 의태어가 가게 이름이 됐다. 지금도 아버지의 아버지가 마시던 맥주를 마시려는 애주가들로 슈렝케를라 앞은 북적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맥주 맛은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훈증을 거친 몰트로 맥주를 빚기 때문에 ‘훈제맥주’로 불리는 맥주는 구운 치즈와 같은 향을 가졌다. 짙은 훈제맥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건 밤베르크 여행의 색다른 묘미다. 6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현 주인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 훈제맥주는 ‘적어도 세 잔은 마셔야 진가를 알 수 있다’며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안주를 공수한다. 맥주는 인류가 천년을 이어온 고급문화의 정수라며 문명이 있는 곳에 술이 있다고 한다. 옛 맛을 기억한 손님이 다시 찾아와 줄 때 가장 행복한 것은 물론이다. 그의 말처럼 이곳의 맥주는 마시자마자 기억을 환기시키는 ‘리퀴드 타임머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했다. 덕분인지 밤베르크 성인의 맥주 섭취량은 독일 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성인 한 명이 연중 288L의 맥주를 마신다고 하니까. 중세부터 지금까지 밤베르크 사람들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다”라고 외쳤던 루터의 ‘명언’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밤베르크의 맥주로 미각을 깨웠다면 이제 영혼을 깨울 차례다. 밤베르크의 역사는 건축물로 상징된다. 구시가지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노란빛 구시청사가 위태롭게 자리했다. 반면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황제의 대성당Imperial Cathedral과 성미카엘교회St.Michael’s Church는 위풍당당하다. 이 건축물들의 대비가 정치와 종교의 투쟁을 겪어 온 유럽의 역사를 드러낸다고 하면 오산일까. 지금도 밤베르크 시민의 90%는 가톨릭을 믿고 있을 만큼 구교의 위세는 예부터 대단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시선이 맞닿는 곳에 대성당과 교회를 지었고 교회 내부 또한 화려하게 꾸몄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천국임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금은보화로 교회를 치장하는 것이었다. 밤베르크 교회는 더 나아가 그 당시 가장 희귀했던 식물 578가지를 천장에 수놓았다. 중세 유럽에 처음 전파된 토마토도 보인다. 값지고 아름다운 모든 것은 교회에 있었다. 종교는 교회만큼 아름다운 사후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장했다. 하지만 교회의 절대적인 권력에 슬슬 금이 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시청사 부지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주교는 한뼘의 땅도 허락하지 않았던 탓에 시민들은 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 한복판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주교의 소유권이 강을 경계로 끝난다는 데 착안한 묘수였다. 조금씩 눈뜨기 시작한 시민의식이 한데 모아져 보란 듯이 인공섬 위에 시청을 세웠던 것이다. 그제야 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의 구시청사를 아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싸워서 얻어낸 성지와도 같았다. 그래서 지금껏 밤베르크의 랜드마크는 교회와 성당이 아니라 낡은 시청사다. 절대적이었던 명령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라….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 있는 도시 어디에서든 루터의 흔적이 보였다. 껑충 시간을 뛰어넘은 여행자에게 밤베르크는 루터 여행을 매듭짓기에 완벽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모던 아트와 결합된 황제의 대성당 2 실제로 운행되는 증기기차. 밤베르크와 쌍둥이 도시인 퀘들린부르크에서 탑승할 수 있다 3 7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 천천히 골목골목을 걷기 좋다 4 슈렝케클라에서 훈제 맥주와 맛보는 전통음식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독일관광청 www.germany.travel/kr 02-773-6430 ▶travie info 밤베르크 비어 투어 맥주가 없는 밤베르크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비어 투어는 가이드와 함께 도시 내 양조장을 돌며 밤베르크의 맥주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 2013년 12월까지 운영된다. 밤베르크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한다. 비용 1인당 20유로 문의 0951-2976-200 홈페이지 www.bamberg.info ●Travel to Lutherstadt 루터 도시 기행 루터를 더 깊숙이 체험할 수 있는 루터의 도시들 아이제나흐Eisenach 루터가 학생 시절 머물렀던 아이제나흐에는 1483년부터 1501년까지 루터가 살았던 집이 남아 있다. 루터의 집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 멋진 담장이 인상적이다. 학창시절을 보여 주는 전시품을 통해 루터의 과거를 엿볼 수 있을 뿐더러 현대적인 전시관에는 멀티미디어 기술로 종교개혁을 재현해 놨다. 에어푸르트Erfurt 독일의 중부지방에 위치한 에어푸르트는 오늘날 튀링겐주의 주도다. 중세 도심 가운데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시가가 인상적. 구불구불한 골목과 광장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마리아 성당과 세베루스 교회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돋보인다. 중세시대 종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글로리사’도 볼 수 있다. 매년 11월10일 수천명의 에어푸르트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대성당 광장에서 마틴 루터의 생일을 축하한다. 슈말칼덴Schmalkalden 섬세하게 복구된 중세 목조 건물들과 뾰족한 계단 모양 지붕이 있는 석조 건물들, 후기 고딕 양식의 성게오르그교회, 르네상스 시대의 빌헬름스부르크성이 도시의 역사를 전해 준다. 슈말칼덴의 군주였던 필립 폰 헤센은 최초의 개신교 선제후 중의 한 사람으로, 카를 5세에 맞서던 인물. 16세기 독일 및 유럽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도시다. 토어가우Torgau 마틴 루터는 “토어가우의 건축물들은 그 아름다움에서 모든 고대 건축물들을 능가한다”고 평했다. 토어가우에는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옛 건물들이 500여 곳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수많은 문화유산 건축물들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술을 보여 주고 있다.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의 무덤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루터 도시로 Rail & Fly 밤베르크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뮌헨공항, 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에서는 베를린공항이다. 루프트한자가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 각각 주 6일, 주 7일 운항하고 있다. 베를린까지는 루프트한자 국내선을 이용할 수 있다. 루프트한자 국제선과 독일철도를 연계해 사용할 수 있는 Rail & Fly 티켓 서비스도 편리하다. 독일 내 모든 기차역에서 독일 국제 공항까지 이동하는 티켓이 편도 25유로, 왕복 50유로부터 제공된다. 루프트한자 한국어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www.lufthansa.com 1 밤베르크에 있는 어부들의 집. 중세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2 성당에 현대적인 조각을 함께 설치한 독일인들의 부러운 감각 3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중세 독일 기행. 골목길마다 작은 탄성이 이어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변화와 개혁 반드시 이루겠다” 대국민 약속으로 첫발

    “변화와 개혁 반드시 이루겠다” 대국민 약속으로 첫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박 당선인의 첫날 행보는 선거운동 일정만큼 분주했다. 선거 기간 함께했던 인사들과 잠시 소회를 나눈 뒤 하루 만에 주한 4강 대사를 모두 만나며 본격적인 외교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도 통화하며 문 후보를 위로했다. 박 당선인은 오전 8시 45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나섰다. 자택 주변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에게 “안녕하세요.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나오셨어요.”라고 인사했다. 박 당선인은 청와대 경호처에서 제공한 방탄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유세를 다니며 이용했던 승합차를 탔다. 오전 9시쯤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도착한 박 당선인은 기다리고 있던 선대위 관계자들과 나란히 참배했다. 황우여·김성주·정몽준·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해 100여명의 선대위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박 당선인은 헌화 및 분향을 마친 뒤 방명록에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박 당선인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박 당선인은 오전 10시쯤 새누리당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 도착해 당선인 신분으로 첫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비전 등을 전달했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첫날 대규모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진 것과 대비됐다. 기자회견을 마친 박 당선인은 비공개 일정으로 선거 유세를 수행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진 이춘상 보좌관과 김우동 홍보팀장의 납골묘를 찾았다. 오전 10시 50분쯤 정치 여정 15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이 보좌관의 납골묘가 마련된 경기 고양시 하늘문공원을 먼저 방문했다. 박 당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진 납골묘에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며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낮 12시 박 당선인은 여의도 근처에서 선대위 관계자들과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당선인은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을 믿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국민을 믿으려면 진실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은 그에 소박하게 보답하고, 은혜를 주고받으며 국민과 정이 생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오후 문 후보에게도 전화를 걸어 “앞으로 국민을 위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이에 문 후보는 “박 당선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제가 당을 책임지고 끌어갈 수는 없겠지만 민주당이 정파와 정당을 넘어서 국정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고 김현 민주당 대변인이 전했다. 이후 오후 2시 30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도 박 당선인은 관계자들에게 노고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 당선인은 해단식에서 “우리의 승리가 정말 값진 것이지만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잘 챙기고 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면서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해서 국정운영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은 오후 8시부터 10분 남짓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전화통화를 했다. 박 당선인과 메르켈 총리는 이공계 출신의 보수정당 여성 당대표를 지낸 공통점 등으로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고 박 당선인이 지난 8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을 때 메르켈 총리가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내년 한·독 수교 130주년을 맞아 박 당선인에게 독일 방문을 초청했다. 이어 오후 8시 30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전화통화로 유엔과의 협력, 남북관계 개선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박 당선인의 첫날 행보는 역대 대통령들의 일정에 비해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당선 9일 만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회동했다. 박 당선인이 이날 오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 대사를 차례로 접견했지만 2007년 이 당선인은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4강 대사를 만났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모든 지역·성별·세대 골고루 등용”

    “모든 지역·성별·세대 골고루 등용”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면서 “모든 지역과 성별, 세대의 사람을 골고루 등용해 대한민국의 숨은 능력을 최대한 올려 국민 한 분 한 분의 행복과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소망”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당선 첫날인 이날 오전 새누리당 당사에서 발표한 대국민 인사에서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박 당선인은 “과거 반 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 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신 문재인 후보님과 그 지지자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국정운영에서 국민을 위한 이 마음을 늘 되새기겠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은 경제 위기에 대해 “다시 한번 ‘잘살아 보세’의 신화를 만들어 국민 모두가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청년들이 즐겁게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면서 “추운 겨울에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국민 한 분, 한 분의 생활을 챙기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인사에서 화해와 대탕평,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상생과 공생, 국민행복시대, 튼튼한 안보와 신뢰외교, 올바른 역사인식 등을 국정 키워드로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박 당선인은 당선 후 첫 공식 행보로 성 김 미국대사와 장신썬(張?森) 중국대사, 벳쇼 고로 일본대사,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대사 등 4강 대사를 잇따라 접견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리더십 교체와 이로 인한 주변 정세 급변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일정이었다. 성 김 대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안부와 축하의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다. 당선인 뵙기를 무척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박 당선인은 “조만간 두 분을 뵙고 양국 간 미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 대사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시진핑 차기 주석의 친서를 각기 전달하면서 “당선인이 중국의 오랜 친구여서 어제 중국방송에서 톱뉴스가 됐다.”고 말했고 박 당선인은 두 주석과의 인연 등으로 덕담을 건넸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편견을 부수는 이름 D [detroit]

    편견을 부수는 이름 D [detroit]

    편견을 부수는 이름 D[detroit] 포드, 크라이슬러, GM 등 소위 미국 자동차의 빅3라 불리는 자동차 메이커가 한데 모인 곳. 덕분에 굳어진 공업도시라는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디트로이트는 미국만의 문화, 음악, 스포츠, 음식까지 결합된 ‘스위트 아메리카’ 그 자체였다. ●City Scope 흐르는 낭만을 느끼다 처음에는 워낙 자동차가 유명하다 보니 디트로이트의 어디를 가도 공장 굴뚝의 연기가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은 기분 좋게 망가졌다. 세련된 도시의 멋, 야구의 열기, 공연의 절정, 인기 뮤지션의 추억, 쇼핑의 흥분까지 담고 있어 심드렁했던 기분이 한껏 들떴으니. 분야별로 디트로이트의 자랑거리를 살펴봤다. baseball 펄떡이는 미국 야구의 진수 코메리카 파크 디트로이트에도 호랑이가 산다. 이 호랑이에게 지난 가을 전세계가 열광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를 맞아 4승 전승을 거두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올 시즌 28년 만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지만 강호들을 상대로 포효하던 위엄은 여전하다. 코메리카 파크Comerica Park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홈구장이다. 한 발을 들고 덮칠 듯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상이 인상적인 코메리카 파크는 야구 외에도 미식축구, 콘서트 등의 여러 이벤트가 열리며, 경기가 있을 때면 주변 술집은 열성적인 야구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좋아한다면, 아니 야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꼭 한 번 들러 보길 추천한다. 주소 2100 Woodward Avenue, Detroit, Michigan 4820 문의 313-471-2283 theater 10달러로 즐기는 공연 폭스 씨어터 폭스 씨어터Fox Theatre는 디트로이트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다. 내부로 들어가면 찬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화려한 부조, 금빛색채의 인테리어와 넓은 실내는 밖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 1928년 폭스 씨어터 체인 중에서도 최고의 시설로 완성된 이곳은 당시 영화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고 처음으로 유성영화를 위한 사운드시스템을 구비했다. 무대 주인공마저 압도할 듯한 내부 디자인은 중국, 인도, 페르시아 등 동양적인 색깔을 가미해 신비롭고 오묘한 분위기를 담았다. 모두 5,132개의 객석에 1년에 상영되는 공연만 250여 개에 달한다. 입장료는 공연과 좌석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최저 10달러부터 시작한다니 저렴한 비용으로도 고품격 문화생활을 맛볼 수 있는 셈. 특이한 점은 결혼식, 리셉션 등 개인적인 이벤트도 열 수 있다는 것. 당신이 폭스 씨어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소 2211 Woodward Avenue, Detroit, MI 48201 문의 313-471-6611 홈페이지 www.olympiaentertainment.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studio 세계적인 뮤지션의 산실 모타운뮤지엄 마이클 잭슨,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너무나도 유명한 이들의 음악은 모두 모타운Motown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된다. 모타운뮤지엄Motown Museum은 앞서 열거한 뮤지션들을 길러낸 모타운 레코드사가 만든 박물관으로 창립 초기의 사무실과 스튜디오를 그대로 사용했다. 1968년 12월28일 주에는 빌보드 Top10 중 1~3위를 포함해 5곡이 모타운레코드의 곡이었을 정도다. 이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뮤지션들이 직접 녹음했던 녹음실, 옛날 앨범 커버, 사진, 레코드 등의 전시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도 기쁘지만 곳곳에 담긴 옛 이야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다. 레코드에 찍힌 라벨은 모타운 외에도 고디, 타믈라, 소울 등의 이름이 사용됐는데 모타운의 인기를 시샘하는 다른 제작자의 견제를 피하고자 뮤지션별로 각기 다른 라벨을 사용했을 정도라니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10대 시절의 스티비 원더가 자주 이용하던 녹음실 앞의 자판기나, 마이클 잭슨이 기증한 검은색 모자와 보석이 박힌 장갑 등을 보노라면 아련한 기억의 흑백사진을 다시 꺼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주소 2648 W. Grand Boulevard, Detroit, Michigan 48208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월·일요일 휴관, 7~8월에는 일요일만 휴관) 홈페이지 www.motownmuseum.com outlet 고민없이 지른다 그레이트레이크스 크로싱아웃렛 미국에서 쇼핑할 것이 있을까? 환율이나 A/S 등을 고려하면 큰 장점이 없어 보였던 것이 사실. 하지만 그레이트레이크스 크로싱아웃렛Great Lakes Crossing Outlets에 도착한 순간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매장 크기에 놀라고 너무나 다양한 브랜드가 갖춰진 것에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미시간주에서도 가장 큰 아웃렛 쇼핑몰이며 185개의 각종 브랜드 제품은 물론 식당, 1,000석 규모의 푸드코트, 25개 스크린의 극장 등이 들어서 있다. 코치, 폴로, 랄프 로렌, DKNY, 게스 등의 직영 매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가격 또한 국내에 비해 저렴한 것도 많다. 실제로 A브랜드의 경우 한국에서는 1개 구입할 금액으로 후드티와 스웨터 등 3가지 옷을 살 수 있었다. 평소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던 제품을 마음껏 비교하고 입어 볼 수 있는 쇼핑의 천국이 바로 여기다. 홈페이지 www.greatlakescrossingoutlets.com 구름에 가까운 레스토랑 코치 인시그니아┃GM 글로벌 르네상스 센터의 72층에 자리한 코치 인시그니아Coach Insignia는 디트로이트와 강 건너 캐나다가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한다. 눈이 시원한 곳에서 세계적인 와인을 즐기며 맛보는 요리는 최고의 궁합을 선사하며, 개인 맞춤 서비스로 불편함 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이 레스토랑은 <디트로이트뉴스> 등의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전망을 가진 식당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평가도 매우 우수한 편. 주소 Renaissance Center 72nd Floor Detroit, MI 48243 가격대 스프 6달러, 샐러드 8달러부터, 스테이크 28달러부터, 와인 9달러부터(글래스) ●Classic Cars 디트로이트는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가 모인 곳답게 흥미로운 자동차 박물관도 필수적인 방문코스다. 지금도 통할 것 같은 매력적인 디자인의 클래식 카부터 시대마다 혁신의 종을 울린 성능을 갖춘 제품까지 가득하다. 거대한 자동차 박물관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모델들을 모아 봤다. 시대별로 눈에 띄는 자동차를 만나 보자! 1986 헨리 포드의 첫 작품 Runabout 미국 자동차 역사의 중요한 획을 그은 자동차. 헨리 포드가 만든 첫 번째 자동차이며 단 13대만이 제작됐다. 시속 20km의 속도와 4마력의 힘을 가진 이 차의 변속기는 가죽벨트와 체인 드라이브의 조합. 원래 공기 냉각 방식이었지만 너무 뜨거운 관계로 실린더에 물 재킷을 추가하기도 했다. 1909 꼬마자동차가 아닙니다 Hudson Roadster 1909년 설립된 허드슨 모터카에서 제작한 차. 고전 레이싱카를 보는 듯한 이 자동차의 판매가격은 900달러였으며, 발매 첫해에만 4,000대가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제작사인 허드슨 모터는 1954년에 내시Nash사와 아메리칸모터스로 합병했으며, 이 회사는 1987년에 크라이슬러에 인수됐다. 1915 영화 속 차가 그대로 Dodge Touring Car 최대의 자동차 부품 공급 업체였던 닷지 브라더스사는 1914년 11월 최초로 자신들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차는 1915년에만 4만5,000대가 판매됐고 그해에 3번째 자동차 제조사로 자리잡았다. 정품 가죽 시트 장착, 전기 조명, 전기시동, 접이지붕, 속도계 등이 장착됐고 당시 판매가격은 785달러였다. 1924 크라이슬러 최초 자동차 Chrysler B70 Phaeton 1924년 뉴욕 자동차 쇼에서 공개된 이 차는 중급 수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6기통 엔진과 록히드사의 휠 유압 브레이크를 장착해 전례가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판매가격은 1,350달러. 저렴하다고? 당시 미국 가정의 평균 연수입이 1,244달러 수준이었다. 1928 가난한 자의 벤틀리 Chrysler Model 72 Le Mans 1928년 실시된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했던 크라이슬러 자동차 중 하나. 크라이슬러는 당시 자사 자동차 4대를 시합에 내보냈는데 이 차는 3위를 기록했고 곧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대량생산에 의한 합리적인 가격까지 더해지면서 영국에서는 ‘가난한 자의 벤틀리’라 불리기도 했다. 기본 판매가격은 1,500달러였다. 1934 이렇게나 스타일리시한 트럭이라니 Dodge Series KC 닷지 브라더사가 만든 트럭은 두 개의 시리즈로 분리돼 있었다. 표준 모델은 4기통이나 6기통 엔진을, 대형 모델은 6기통 엔진만 사용했다. 앞만 봐서는 도저히 트럭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특징인 이 차의 스타일링은 닷지의 승용차 라인에서 차용했으며, 일명 글래머러스 시리즈라고 명명됐다. 판매가격은 480달러. 1939 핫도그를 팔 것 같은 차 Dodge Airflow Tank Truck 언뜻 보기에 소방차나 놀이공원에 있는 핫도그 판매 트럭처럼 생긴 이 차는 사실 일종의 급유 탱크 역할을 했다. 1940년대 중후반에 등장했으며 미국 정유회사 TEXACO가 정제한 제품을 각 주유소에 공급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941 자동차에 나무를 더했다? Chrysler Town & Country Station Wagon 언밸런스하다는 느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차체에서 목조로 구성된 부분에는 이제는 벌목이 금지된 고급목 온두라스 마호가니 등이 쓰였는데, 비에 따른 뒤틀림을 방지하고자 니스를 발라 방수처리를 해 변형을 막았다. 웨건과 세단의 크로스오버 차량 중 하나. 판매가격은 1,500달러. 1953 이탈리아의 감성이 녹다 Chrysler Special 1940년대 후반에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사의 초청을 받아 제조기술에 대한 조언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의 주문제작형 기술과 기타 여러 유용한 팁을 배웠고, 몇년 후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의 감성이 듬뿍 서린 이 자동차를 생산했다. 1955 오직 여성을 위해! La Femme 핑크빛과 크림색이 어우러진 차로 여성을 위해 설계됐다. 달콤한 외관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이 차는 1차 대전 이후 여성 운전자의 급증에 따라 마케팅 측면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전통적 성 역할의 약화와 이혼률 상승 등의 변화에 따라 여성들이 직접 운전할 차가 필요해졌다는 것도 주요 등장 배경. 여성을 고려한 만큼 금장로고에 더해 내부도 핑크빛으로 칠했고 조수석 뒤에 특별한 칸을 만들어 가방을 넣을 수 있게 했다. 또한 핑크색 어깨 가방과 함께 우산, 라이터, 립스틱, 콤팩트, 담뱃갑 등을 함께 구매자에게 제공했다. 기본 판매가격은 2,600달러. 1961 슬픈 역사를 담은 차 Lincoln(Kennedy Car)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당했던 1963년 11월22일 당시 타고 있던 리무진. 헨리 포드 뮤지엄에는 아이젠하워, 루즈벨트, 레이건 등 다른 대통령이 탔던 차가 전시돼 있으나 관람객들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는 것은 케네디의 비극이 담긴 바로 이 리무진이다. 사람이 아닌 역사를 싣고 박제처럼 멈춘 그의 리무진은 그 시간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Motor Museum 앞서 소개한 독특한 디자인의 차들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헨리 포드 뮤지엄과 크라이슬러 뮤지엄은 디트로이트의 대표적인 자동차 박물관으로 초기 모델부터 현재의 콘셉트카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포드의 열정을 한자리에 헨리 포드 뮤지엄 헨리 포드는 20세기의 자동차 시대를 이끈 혁신적인 인물 중 하나다. 1908년 헨리 포드는 새로 개발한 모델T를 선보였는데 저렴하고 효율적인 이 자동차는 50만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 모델의 성공으로 그는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갖게 됐고 이후 역사, 독창성, 지혜, 혁신을 보여 주는 제품들을 수집했다. 헨리 포드 뮤지엄Henry Ford Museum은 이러한 포드의 열정으로 모은 수만점의 전시물로 채워져 있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옛날 자동차 외에 농기구, 발전기, 기관차, 비행기 등이 원형 그대로 전시돼 진귀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실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를 이용해 주위의 그린필드빌리지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역사 테마파크라 할 만하다. 입장시간 매일 오전 9시30분~오후 5시 입장료 성인 17달러, 어린이 12.5달러(5~12세) 홈페이지 www.thehenryford.org 자동차 마니아라면 크라이슬러 뮤지엄 이름 그대로 자동차 메이커 크라이슬러가 만든 자동차 박물관. 헨리 포드 뮤지엄과 달리 자동차에만 집중해 전시한다는 점이 다르다. 1920년대 최초의 크라이슬러 자동차부터 미래지향적 콘셉트카까지 어느 하나 놓치기 힘든 모델들로 가득하고, 자동차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유혹할 만한 멋진 디자인의 차가 곳곳에 놓여 있다. 부작용이라면 신차를 구매하려던 이라도 방문 이후 옛날 클래식 카를 찾아 헤맬 수도 있다는 점. 입장시간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일요일 오후 12시~오후 5시(월요일은 휴무) 입장료 성인 8달러, 어린이 4달러(6~12세) 홈페이지 www.wpchryslermuseum.org 글·사진 김명상 기자 취재협조 디트로이트 메트로컨벤션www.detroit3point0.com 델타항공 www.delta.com ★포드의 최신 자동차는 어떨까? 올-뉴 이스케이프All-New 2013 Ford Escape 북미 베스트셀링 SUV 이스케이프가 새로운 기능들과 최고의 연비로 새롭게 탄생했다. 날렵한 외관, 동작 인식으로 열리는 핸즈프리 리프트게이트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한 올-뉴 이스케이프는 에코부스트 엔진(1.6L/2.0L)을 탑재해 연료 효율성도 보완했다. 2012년 9월 출시. ●Travel to Detroit ▶항공 디트로이트 하늘길, 델타항공으로 간다 델타항공이 매일 인천에서 출발하는 디트로이트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약 13시간이 소요되는 긴 여행길에서 델타항공이 제공하는 좌석은 비즈니스엘리트, 이코노미컴포트, 일반석(이코노미) 등 3개로 나뉜다. 보다 럭셔리하게 간다 비즈니스 엘리트Business Elite 비즈니스엘리트는 180도 완전 침대형 좌석이다. 모든 좌석은 통로와 바로 연결돼 다른 승객을 방해할 필요가 없고, 110볼트 범용 전기 콘센트, USB 포트, 개인용 LED 독서조명을 장착했다. 각 좌석에는 15.4인치 와이드 스크린 모니터가 설치됐고 1,00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제공으로 타 항공사들과 차별화했다. 긴 비행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는 말씀. 부담은 줄이고 편안함은 더하고 이코노미컴포트Economy Comfort 이코노미컴포트 좌석의 경우, 좌석간 거리가 기존 35인치에 최대 4인치가 추가되며 등받이는 50% 더 눕힐 수 있다. 비즈니스엘리트는 부담스럽고, 장시간 여행에서 일반 이코노미석은 다소 불편한 여행객이라면 적극 검토해 볼 만한 옵션인 셈이다. 아울러 이코노미컴포트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먼저 탑승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비행하는 동안 기본 서비스에 더해 다양한 주류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이용을 원한다면 먼저 일반석 항공권을 구매하고 델타항공 홈페이지나 공항의 셀프 체크인 기기에서 추가 비용을 지불 후 업그레이드를 하면 된다. 델타의 실버회원 이상은 할인이나 무료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니 혜택을 확인해 볼 것! 나는야 합리적인 여행객 일반석Economy Class 현재 델타항공은 일반석 승객들에게 최대 2인치의 여유 공간을 추가 제공하는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완료시 넓고 편안한 비행의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각 좌석에는 날개, 높이, 기울기가 조절되는 머리받침대, USB 파워, 9인치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장착, 비즈니스엘리트에서 제공되는 것과 같은 개인 주문형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1 완전 침대형 좌석인 비즈니스엘리트석 2 비즈니스엘리트의 기내식 3 일반석에 비해 좌석 거리가 최대 4인치 긴 이코노미 컴포트 ▶날씨 디트로이트의 여름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덥다. 하지만 한국처럼 습한 더위가 아니라, 건조한 편이다. 10월부터 쌀쌀해지기 시작하는데 일교차가 심하다. 12월 최고 평균기온은 영상 1도, 최저는 영하 4도 정도이며 4월부터는 최고 12도, 최저 3도 정도로 온화해진다. ▶교통 미국은 자동차 없이 여행하기 힘든 나라다. 디트로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내 주요 지점은 경전철로 이동이 가능하다. 완전무인운전으로 움직이는 이 열차는 총 13개 정거장을 순환하며 최대 새벽 2시까지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단, 평일은 오전 6시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운영된다. 단, 헨리 포드 뮤지엄 등은 경전철이 닿지 않는 교외에 자리하고 있으니 유의할 것. www.thepeoplemove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주먹만한 알밤 쥐여주시던 국민들 성원 못 잊어”

    12월 19일 오후 6시 정각.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 발표 순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는 환호성에 휩싸였다. 박근혜 당선자가 오차 범위이긴 하지만 경합우세로 나오자 기대감이 한껏 고조됐다.  김용준·황우여·정몽준·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서병수 사무총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등과 선대위 관계자들은 당사 2층에 마련된 대선 상황실에 일찌감치 모였다. 당사는 낮부터 몰려든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9대의 TV 모니터에 ‘50.1% 대 48.9%’로 박 당선자가 앞서고 있는 수치가 표시되자 선대위 관계자들과 당직자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를 연호했다.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감격에 겨워 서로 얼싸안았다.  일부 방송 조사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다소 앞서는 결과가 발표되자 당직자들은 속속 전해지는 개표 현황에 긴장을 풀지 못했다. 황우여 공동선대위원장은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아직 이르다.”며 말을 아꼈다.  안형환 대변인은 오후 8시 출구조사 관련 브리핑에서 “격차가 작기 때문에 개표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겠다.”면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개표 과정에서 한 점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밤 11시가 넘어야 당락이 확실해지리라는 예상을 깨고 초반부터 표차가 점점 커지자 환호는 커졌다. 방송을 지켜보던 선대위 관계자들은 “부산에서 60%가 됐다.”, “전북이 10%를 넘었네.”, “제주도가 이번에는 괜찮네.” 등 기대감에 부풀었다. 투표율이 높았던 게 새누리당에 그리 나쁠 게 없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밤 9시를 전후해 ‘당선 유력’이 ‘당선 확실’로 바뀌면서 당사는 축제의 도가니로 변했다. 당사 바깥은 태극기를 든 지지자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소리 높여 외쳤다.  박 당선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서 홀로 개표 방송을 시청하다 밤 10시 40분쯤 자택을 나서 당사로 향했다. 검정색 패딩 점퍼에 빨간 목도리를 두른 박 당선자는 환호하는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손을 흔들며 100여m를 걸어 차량에 올랐다. 집 앞 골목은 발디딜 틈이 없어 수행차량이 겨우 빠져나올 정도였다.  밤 11시 10분쯤 당사에 도착한 박 후보를 황우여·정몽준·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뜨겁게 맞았다. 김성주 위원장과는 포옹을 나눴다. 당직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박 당선자를 맞았다. 이들과 함께 잠시 TV방송을 지켜본 박 당선자는 4층 기자실에 들러 사례를 했다. 선대위 관계자들을 향해 “힘들고 어려운 선거였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셔서, 진심을 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짧게 밝혔다.  선거기간 동안 밀착취재했던 기자들에게도 “그동안 추운 날씨에도 취재하고 보도해 주느라 애써 주신 언론인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한 뒤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이후 박 당선자는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해 당선소감을 밝혔다. 선거 전날인 18일 마지막으로 유세 연설을 했던 그곳이다. 더없이 환한 표정으로 박 당선자는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특별무대에 올랐다.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선거기간 중 만나뵜던 많은 국민 여러분”이라면서 “제 주먹만 한 알밤을 들고 와 손에 쥐여 주신다든지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하시던 모습들이 많이 생각난다. 다시 뵙고 싶고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를 여러분께서 열어주실 수 있도록 해 주신 것, 보내주신 신뢰의 뜻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국민 여러분 모두가 꿈을 이루고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선거운동 중 큰 사고가 났다. 저를 돕던 소중한 분들을 떠나보내야 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며 교통사고로 숨진 고 이춘상 보좌관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앞서 이날 오전 8시쯤 삼성동 자택 인근 언주중학교에서 투표를 마친 박 당선자는 “선거 기간 함께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현명하신 국민들께서 우리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실 거라고 믿는다.”면서 “날씨는 춥지만 꼭 투표에 참여하셔서 국민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좋은 꿈을 꾸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들며 엷은 웃음만 지었다. 투표소 주변에선 지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박근혜, 美 타임지 아시아판 표지모델… ‘독재자의 딸’ 번역 논란에 제목 수정

    박근혜, 美 타임지 아시아판 표지모델… ‘독재자의 딸’ 번역 논란에 제목 수정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미국 유력 주간 타임지 아시아판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타임지는 오는 17일자 최신호 인터넷판에서 ‘독재자의 딸’(The Dictator’s Daughter)이라는 제하의 커버스토리를 통해 박 후보가 살아온 역정과 주변 인사들의 평가, 정치 비전 등을 소개했다. 또 ‘역사의 후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만약 박 후보가 12월 19일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최소한 한 가지 면에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다.”고 썼다. 타임지는 박 후보가 어머니인 고(故)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점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휴전선은 안전한가요.”라고 첫 반응을 보였던 점을 함께 기사에 담았다. 당초 타임은 주간지 표지 제목에서 박 후보를 ‘더 스트롱맨스 도터’(The Strongman’s Daughter)라고 표현했으나 해석을 놓고 한국에서 ‘실력자의 딸’이냐, ‘독재자의 딸’이냐 하는 논란이 일자 7일 저녁 인터넷판 제목을 ‘더 딕테이터스 도터’(The Dictator’s Daughter)로 바꿔 의미를 분명히 했다. 앞서 새누리당은 타임지가 박 후보를 ‘강력한 지도자의 딸: 역사의 후예’라는 제목으로 커버스토리에 게재했다고 발표했다. ‘스트롱맨’(strongman)이란 단어는 ‘실력자’ ‘강력한 지도자’라는 뜻도 있지만 ‘독재자’라는 뜻도 갖고 있다. 많은 외신들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하는 단어로 ‘strongman’을 사용했고 타임지도 지난 4일 독재자란 뜻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strongman’으로 지칭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미얀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되어

    미얀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되어

    인레호수는 소수민족의 젖줄이다 Myanmar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되어 미얀마라 쓰고 ‘버마’라 읽었다. 민주화가 움트지 못한 서슬 퍼런 나라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황금빛 자유를 만끽했다. 타나카를 바른 수줍은 미소 1962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봄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미얀마 양곤 공항에서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여사의 사진이 새겨진 기념품을 발견했을 땐 불필요하게 심장이 뛰었다. 독재를 글로 배운 나에게 미얀마는 쉬운 나라가 아니었다. 미얀마인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고 일그러져 있겠거니. 마음이 불편한 여행을 마치고 무기력하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여행 전부터 엄습해 왔다. 그때까지 나는 미얀마를 몰랐다. 아뿔싸, 그들은 너무 쉽게 웃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엷은 미소를 던지거나 “안녕하세요, 니하오, 곤니찌와.” 3개 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며 까르르 자지러졌다. 수십년간 군부의 그늘에서 살아 온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영국이 통치한 시간까지 합하면 억압당한 세월은 더 길고 길 터인데, 어찌 저리도 해맑을 수 있나. 마음이 짠해지는 분노가 일렁였다. 그들이 방긋방긋 웃을 때마다 분을 바른 듯 뽀얗게 물든 두 볼이 도드라졌다. 얼굴을 도배한 희뿌연 것의 정체는 타나카였다. ‘타나카’는 나무를 갈아 만든 미얀마표 ‘천연 화장품’으로 자외선을 차단해 준다고 했다. 기능도 기능이지만 ‘멋’을 내는 데도 한몫했다. 광대 주변에 살짝 바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 전체에 골고루 펴 바른 사람도 있었다. 바간의 쉐지곤 파고다Shwezigone Pagoda에서 한 번, 양곤의 보족 아웅산 시장Bogyoke Aung San Market에서 또 한 번 타나카를 바르고 있는 어린 소녀를 만났다. 엄마의 화장품을 훔쳐 바르는 사춘기 소녀의 표정이 저러할까. 거울 속에 비친 소녀의 손동작은 어설프면서도 진지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2 그들이 웃을 때마다 두 빰을 물들인 타나카가 도드라졌다 3, 4 타나카를 바르던 소녀 롱지를 두르고 신발을 던지다 미얀마에서 파고다는 기도하는 ‘카페’다. 무섭게 세포분열 중인 도시의 카페와 미얀마의 파고다는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것마냥 닮았다. 일단 둘 다 명당을 꿰차고 앉은지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찾아갈 수 있다. 파고다에서 미얀마인은 친구를 만났고, 주전부리를 먹었으며, 잠을 자기도 했다. 한쪽에선 엉덩이를 드러낸 갓난아이가 바닥을 기어 다녔지만 다른 한쪽에선 언제 신의 부름을 받을지 모르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곳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경계가 묘연한 중간지대였다. 4박 5일간 10여 개가 넘는 파고다를 찾을 예정이었다. 미얀마의 파고다가 조건을 제시했다. “긴 하의를 입으시오, 신발과 양말은 벗으시오.” 그동안 내가 알던 ‘입기’와 ‘벗기’라는 행위는 이글거리는 욕망의 징표였다. ‘무엇을 걸치느냐’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사회에서 매일매일 옷 입기를 고민했고, 타인의 맨몸을 보고 싶은 원초적인 자아를 발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미얀마의 파고다에선 입는 것도 벗는 것도 욕망을 지우는 과정이다. 끝까지 반바지와 신발을 고수한다면, 여행은 뒤틀리고 말 터. 급한 대로 바간의 냥우 시장NyaungU Market에서 산 ‘롱지Longyi’를 반바지 위에 둘렀다. 미얀마의 전통의상인 롱지는 사실 옷이라기보다 그저 길고 넓은 천 조각에 가까웠다. 천을 허리에 대고 몇 번을 칭칭 감은 후, 천 끝에 매달린 긴 끈으로 고정하자, 비로소 롱지가 제 모습을 갖췄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을 불문하고 롱지를 착용했다. 고작 천 하나 둘렀을 뿐인데 ‘먼 나라 이방인’이라는 흔적이 지워졌다. 신발과 양말까지 벗자 파고다의 신성한 기운이 맨 발을 에워쌌다. 풀 한 포기며 개미 한 마리며 아랑곳하지 않고 쿵쾅쿵쾅 밟았을 두 짝의 무기는 미얀마의 사원에선 온순해졌다. 까끌까끌한 모래가 발바닥을 간질였고, 자글자글한 나뭇잎까지 말을 걸어 왔다. 1, 4 미얀마의 파고다에선 신발과 양말을 신을 수 없다. 일정 내내 맨발로 돌아다녔건만 오히려 평소보다 몸과 마음이 더 편해졌다 2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쉐산도 파고다에 앉아 미얀마를 내려다보면 인간세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3 양곤의 ‘보족 아웅산 시장’에서 만난 승려 인형 5 해질녘의 파고다가 마음을 어루만졌다 작은 수레바퀴 아래서 괴로움을 끊다 자꾸만 나풀거리는 롱지를 잡고, 두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미얀마의 파고다Pagoda로구나. 미얀마 인구의 약 89%가 불교 신자라 했다.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바닥에 몸을 바짝 붙였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가…. 같은 동작을 쉼 없이 되풀이하는 저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한때 가톨릭 신자였던 적도, ‘종교는 아편’이라는 말에 감동하며 <만들어진 신>과 같은 책을 뒤적인 적도 있다. 결론은 원점. 결국 종교에 속하지도 벗어나지도 못했다. 나 같은 사람이 과연 삶이 곧 종교인 미얀마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사원을 돌고 또 돌며 미얀마를 관통하는 ‘불교’를 이해하려 애썼다. 소승불교상좌부불교를 믿는 미얀마인은 ‘작은 수레바퀴 아래서’ 살고 있다. 파고다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내 눈에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로 보였다. ‘큰 수레 안에 중생을 싣고 극락으로 간다’는 대승불교이건 개인의 해탈을 중시하는 소승불교이건간에 ‘열반’을 꿈꾸는 마음만은 같았다. 열반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깨우친 경지, 불이 꺼진 상태를 일컫는다. 무작정 미얀마 신도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았다. 세상이 일순간 캄캄하게 방전됐다.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미얀마어로 내 옆에서 기도하던 이의 목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주술이 되어 돌아왔다. 불심은 삶의 ‘괴로움苦’에서 출발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미얀마인은 더 으리으리하고 더 화려하게 사원을 짓고 꾸몄다. 현세에서 불심을 증명해야 지금의 고통을 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중얼중얼 기도하면서도 얇은 금박지를 덕지덕지 불상에 발랐다. 사람들의 금박지 세례 때문에 불상의 몸집은 날로 거대해졌다. 1, 3 미얀마 인구의 89%가 불교 신자다. 기도하는 그들은 열반을 꿈꾼다 2 쉐지곤 파고다 귀퉁이에 ‘황금 꽃’이 피었다 4 괴로우니까 사람이다. 미얀마인이 불교를 믿는 이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미얀마의 갠지스강, 인레 호수 미얀마 고원지대인 헤호에 다다르자, 끝없이 펼쳐지던 파고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대신 헤호에는 신비로운 인레 호수Inle Lake가 흘렀다. 호수의 크기는 여의도의 10배가 넘는 수준. 그곳엔 갠지스 강의 신성함과 메콩 강의 건강함이 동시에 요동쳤다. 여기가 ‘극락’이로구나. 인레 호수는 온몸으로 자비를 베풀었다. 특히 호수 한가운데 떠 있던 파고다는 육지의 파고다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파고다를 에워싼 강물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레테의 강에서 흘러든 것인지도 모른다. 인레 호수는 삶의 현장이었다. 샨족, 인타족 등 미얀마의 소수민족이 호수를 끌어안고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물은 집이고 밭이고 학교다. 그들은 물 위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을 건져 올렸다. 물풀, 갈대, 흙 등을 뒤섞어 근사한 밭을 일구었다. 여기서 생산된 토마토, 양파 등은 만달레이, 양곤 등 미얀마 전역으로 유통되고 있다. 한쪽 발로 노를 젓고 통발을 내려 물고기를 잡는 인타족의 몸짓도 아름다웠다. 장대를 수없이 툭툭 내리쳐야 물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다. 또 다른 소수민족은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실과 면을 만들어 냈다. 심지어 그들의 손이 닿으면 연꽃의 뿌리조차 가느다란 실이 됐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곳을 4~5인승 보트에 앉아 1시간 가까이 유람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보니, 하늘과 강물이 하나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시골 아궁이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희뿌연 물안개가 조용히 피어올랐고, 소나기가 그친 후 무지개도 반원을 그렸다. 그곳에서 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었다. 1 인레 호수에서 탈 수 있는 4인승 보트 2 누군가에게 호수는 집이고 밭이고 학교였다 3 미얀마에서 극락을 만났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베트남항공 www.vietnamairlines.com PAGODA ▶Bagan바간 정신을 잃게 만드는 황금 언덕이여 쉐지곤 파고다Shwezigone Pagoda 그늘진 사원의 복도를 관통하면, 일순간 시력을 잃을 것만 같은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쉐지곤 파고다는 농후하게 익은 샛노란 과일처럼 불탑 전체가 황금빛으로 타오른다. 부처의 치아 사리를 등에 업은 코끼리가 멈춰선 명당이기도 하다. 파고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물 웅덩이 하나가 있는데 웅덩이 앞에 앉으면 파고다 꼭대기가 물속에 비쳐 들어온다. 미얀마의 ‘마추픽추’라 부르겠소 쉐산도 파고다Shwesandaw Pagoda 일행 중 한 명은 ‘페루의 마추픽추보다 쉐산도 파고다가 아름답다’고 탄식했다. 쉐산도 파고다에 오르면 바간을 수놓은 파고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5층짜리 건물과 맞먹는 높이를 자랑하지만, 여행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맨발로 파고다의 계단을 오른다. 후들후들 흔들리는 다리를 다독이며 파고다에 오르면 붉은 토양을 뚫고 불룩불룩한 솟아오른 수천개의 파고다가 걸어온다. ▶Yangon 양곤 최고 중의 최고, 파고다 대표선수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 미얀마를 소개하는 사진에는 응당 쉐다곤 파고다가 주인공을 차지한다. 세계 불자의 성지순례지인 이곳은 규모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으뜸이다. 높이가 100m, 둘레가 426m에 달해 도는 데 족히 30분은 걸린다. 이 파고다는 낮에 가도 좋지만 해질 무렵, 혹은 해가 진 이후 방문하길 추천한다. 맨발로 조용히 걷다가, 기도하는 미얀마인 옆에서 함께 명상을 해보자. 거대한 쉐다곤 파고다의 신성한 기운을 온몸이 흡수하는 것만 같다. 영롱한 촛불이 켜져 있어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Heho 헤호 사원을 점령한 고양이 군단 점프하는 고양이 사원Jumping Cat Monastery 사원의 이름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진다. 고양이가 점프를 한다고? 아니나 다를까. 사원 입구부터 고양이가 여행객을 반긴다. 사원에서 사는 지체 높은 고양이신지라 사람이 다가가도 전혀 겁내지 않는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 한가운데 벌러덩 드러눕는 건 기본이다. 이 사원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고양이의 묘기를 볼 수 있는 ‘쇼’가 열리기 때문이다. 스님이 굴렁쇠를 높이 들면 그 안으로 ‘폴짝’ 뛴다. 그러나 현재는 정부에서 쇼를 금지한 상태라 쉽게 쇼를 볼 수는 없다. 여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파웅도우 파고다Phaungdawoo Pagoda 인레 호수에 떠 있는 파웅도우 파고다에는 눈길을 사로잡은 경고문이 하나 있다. “Ladies are prohibited.” 아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가! ‘남자’만 접근할 수 있는 ‘그것’은 축구공을 닮은 불상 5개. 불상을 둘러싼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1965년 마을 축제 기간에 복을 빌기 위해 불상을 배에 싣고 떠났는데 그만 물속에 불상이 빠져 버렸다. 4개의 불상을 찾고 1개의 불상은 포기했는데…. 사원에 돌아오고 나니 불상이 떡 하니 기다리고 있었다고. 5개의 불상을 여자 여행객은 만질 수 없지만,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 ▶Travel to Myanmar 항공 인도차이나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 베트남항공은 인천과 부산에서 베트남 하노이와 호치민으로 직항편을 운영 중이다. 12월1일부터 오후 6시5분 인천에서 출발하는 하노이행 비행기가 기존 주 4회에서 주 7회로 증편된다. 동계 스케줄을 기준으로 하노이에서 양곤으로, 호치민에서 양곤으로 각각 주 7회(오후 4시35분 출발→오후 6시10분 도착), 주 4회(11시40분 출발→오후 1시25분 도착)운항한다. 스케줄 인천-하노이 VN417편(오전 10시35분 출발→오후 1시45분 도착), VN415편(오후 6시5분 출발→오후 9시10분 도착), 인천-호치민 VN409편(오전 10시15분 출발→오후 1시45분), 부산-하노이 VN427편(오전 10시30분 출발→오후 12시45분 도착), 부산-호치민 VN421편(오전 10시 출발→오후 1시 도착) 문의 02-757-8920 www.vietnamairlines.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인타족은 한 발로 노를 젓고 통발을 내려 물고기를 잡는다 2 알려주기 싫은 비밀의 공간, 인레 리조트 숙소 바간 트리파이차야 생추어리 리조트Bargan Thiripyitsaya Sanctuary Resort 이 리조트는 미얀마 스타일을 자랑한다. 멀리서 보면 ‘리조트가 아니라 파고다 아냐?’ 하고 착각할 정도로 고풍스럽다. 키 큰 나무가 쭉쭉 뻗어 있는 정원의 사이사이로 독립된 객실이 마련돼 있다. 객실의 수는 총 76개. 객실 입구에는 몸을 누이기 좋은 넓은 의자가 있다. 이 의자에서 낮잠을 청해도 좋고 책을 한 권 읽어도 좋다. 리조트의 압권은 야외 수영장. 수영할 때마다 이라와디 강이 보이기 때문에 마치 강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다. 로비에서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진다. 문의 +95-61-60048 www.thiripyitsaya-resort.com 주소 Bagan Archeological Zone, Old Bagan, Mandalay Division, Union of Myanmar 인레 리조트Inle Resort 남들에게 알려주기 싫은 ‘아지트’ 같은 곳이다. 인레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면 리조트가 나온다. 인레 호수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리조트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저녁 무렵, 야외 테라스에서는 앉아 있으면 호수 속으로 고개 숙이는 해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인레 리조트는 자연 친화적이다. 수풀이 우거진 리조트를 걷다 보면 피곤함이 순식간에 달아난다. 문의 +95-9-521-4655 www.inleresort.com 주소 Inlay Lake, Nyaung Shwe Township Southern Shan State, Myanmar 수도 미얀마의 수도를 ‘양곤Yangon’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현재 미얀마의 수도는 네피도Naypyidaw다. 2005년 말 미얀마 군사정부가 수도를 양곤에서 핀마나Pyinmana로 이전했으며 1년 뒤 핀마나라는 도시명을 네피도Naypyidaw로 변경했다. 통화 & 시차 미얀마의 공식 화폐 단위는 차트Kyat. 달러를 받는 가게가 있긴 하지만 극히 드물다. 달러는 공항이나 호텔 등지에서 환전할 수 있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2시간 30분 늦다. 날씨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므로 우산이나 우의 준비는 필수다. 12월은 미얀마 여행의 적기다. 비가 적게 내릴 뿐더러 기온도 20~30도 선을 유지한다. 사전준비 미리 해외로밍을 하지 않으면 미얀마에선 원시인이 될지도 모른다. 자동 해외로밍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자, 전화 모두 쓸 수 없다. 출국 전 미리 로밍을 신청하라. 또한 파고다에선 짧은 반바지나 치마를 입을 수 없으니 미리 긴 옷을 준비하자. 현지에서 미얀마 전통의상인 롱지를 사 입어도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FRANCE 메독 와인과 사랑에 빠지다

    FRANCE 메독 와인과 사랑에 빠지다

    WINE FRANCE 메독 와인과 사랑에 빠지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그리고 붉은 빛 가득한 레드 와인의 향연. 메독의 가을은 마녀가 빚어낸 사랑의 묘약처럼 유혹적이고 향기로웠다. 메독의 8개 아뺄라씨옹으로 떠난 일주일의 여정 동안 매일 조금씩 다채로운 메독 와인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1 수확을 모두 마친 포도밭. 하나둘 낙엽이 지고 있다 2 중세시대 고성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샤또 라스꽁브 3 전통과 현대 기술을 조화롭게 이어가는 샤또 씨싹 4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의 숙성고. 오크통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고품격 스펙트럼을 지닌 와인 성지 프랑스 보르도Bordeaux의 북쪽, 지롱드Gironde 강 서쪽 하구에 형성된 메독 지역Medoc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 가운데 하나다. 보르도 공항을 벗어나 처음 만난 메독의 첫인상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 이었다. 이미 수확을 마친 포도밭은 무척 한가로워 보였고 듬성듬성 낙엽마저 지고 있었다. 포도밭 너머로 드문드문 서 있는 고성古城들이 그나마 심심한 풍경에 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메독은 원래 중세시대 귀족들의 사냥터로 숲과 늪지대, 거칠고 메마른 황야가 펼쳐진 별 볼일 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토양은 포도를 재배하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고 16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그 가치를 알아본 귀족과 상인들이 하나둘씩 포도원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포도 재배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점차 고품질 와인들이 생산되었고 1855년 등급 제정과 해외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메독 와인은 단번에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샤또 마고, 무똥 로칠드 같은 스타급 와이너리들이 이 지역에 속해 있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숨겨진 보석 같은 와이너리도 수없이 많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메독 와인이 월드 클래스 와인으로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메독와인협회의 까뜨린 블리망Catherine Vlimant은 무엇보다 ‘포도 재배에 적합한 모래와 자갈, 점토질이 고루 섞인 특별한 떼루아’를 그 비결로 꼽았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경작하는 품종은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yvignon으로 메독의 척박한 토질에 완벽히 적응해 그 어느 곳보다 수확량이 높고 품질 좋은 열매를 생산해 낸다고. 진한 색상과 약간 떫은 맛이 특징인 까베르네 쇼비뇽은 메독 와인의 특징 중 하나인 풍부한 타닌과 꽉 짜인 구조감을 만드는 데 주효하게 쓰인다. 특히 숙성 잠재력이 뛰어나 빈티지(생산년도) 높은 와인을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품종은 메를로Merlot로 부드럽고 풍부한 과일향이 까베르네 쇼비뇽과 조화를 이루며 강한 타닌 맛을 좀더 편안하고 온화하게 순화시켜 준다. 두 품종을 주원료로 와이너리마다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까르므네르Carmenere 등을 소량 블렌딩하는데 그 비율과 양조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와인이 탄생된다. 몇몇 와이너리에서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이용해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로 메독에서는 100% 레드 와인을 빚어내고 있다. 메독 와인이 오랜 세월 명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건 물론 ‘떼루아Terroir, 포도 재배의 모든 조건’ 덕이 크지만 그 뒤에 감춰진 1%는 바로 ‘사람’이다. 몇 세대에 걸쳐 대물림되어 온 숙련된 양조 기술과 최상급 와인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메독 와인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또 다른 공신이다. 까다로운 규제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지켜 나가고 있는 AOC원산지 통제 명칭를 토대로 메독의 와인은 와이너리마다 서로 다른 스펙트럼으로 다양성을 추구한다. 메독의 8개의 AOC가 닮은 듯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1, 2, 3 와인 시음을 통해 각 와이너리 특유의 향취와 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시음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와인과 와인잔 4 샤또 오브르똥 라리고디에르에서는 시음 후 바로 구매가 가능하다 5 뽀이약 마을의 포도밭 전경 6 포도밭을 누비며 가는 기계차 7 포도밭 토양에 따라 재배되는 포도 품종이 달라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메독을 대표하는 와인 마을 마고 Margaux 뽀이약 Pauillac 언젠가 한껏 분위기를 낸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한 적이 있다. 와인 이름도 빈티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단어 하나가 ‘마고Margaux’다. 와인에 대해선 생초짜였던 시절, 그래도 유명한 와인 한번 마셔 보자고 고른 게 바로 마고 와인이었던 거다. 마고는 메독에서 가장 유명한 AOC이다. 최상급 와인에 주어진 그랑크뤼 끌라쎄 등급을 획득한 와이너리가 21개로 가장 많다 보니 자연히 메독을 대표하는 와인 마을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마고 하면 많은 이들이 샤또 마고Chateau Margaux만을 떠올리는데 이곳에는 약 74개의 와이너리가 운영되고 있다. 샤또 마고가 톱클래스 와이너리이긴 하지만 이 이외에도 가볼 만한 와이너리가 많다는 이야기다. 특히 샤또 라스꽁브Chateau Lascombes는 중세시대 지어진 아름다운 고성에서 숙박하며 그랑크뤼 끌라쎄 2등급에 빛나는 고품격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특별한 와이너리다. 마고에서는 드물게 메를로 비율이 까베르네 쇼비뇽보다 더 높은 와인을 선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매년 가을 100~150명 정도 인부들이 일일이 손으로 포도알을 따는데 방문했을 때엔 이미 수확을 마친 터라 그 장관을 놓친 게 못내 아쉬웠다. 대신 성에서 보낸 하룻밤은 그야말로 특별했다. 새벽녘 창문을 열고 내려다본 이슬에 촉촉이 젖은 포도밭 전경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니 말이다. 합리적 가격대의 마고 와인으로 샤또 오브르똥 라리고디에르Chateau Haut-Breton Larigaudiere도 가볼 만하다. 다만 지갑 단속은 단단히 해야 한다. 와인 테이스팅 후 바로 구매가 가능해 몇 번 시음하다 보면 자꾸만 지갑이 열린다. 일행 중 4명이나 지갑을 연 것이 비단 분위기 탓만은 아니었을 거다. 메독 중앙부에 있는 뽀이약에도 마고와 견줄 만한 걸출한 와이너리들이 많다. 그중 샤또 랭츠 바즈Chateau Lynch-Bages는 1855년 등급 제정 당시 그랑크뤼 끌라쎄 5등급을 받았지만 2등급에 비견할 만한 품질을 갖춘 와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미리 예약하면 가이드가 동행해 와이너리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고 시음도 준비해 준다. 연간 48만병의 와인을 생산하는 대규모 와인 양조장과 저장고도 볼 만하지만 옛 양조 도구들을 빠짐없이 전시해 놓은 박물관 같은 공간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와이너리 투어 후 주변 바즈 마을Village de Bages을 산책하는 즐거움도 꽤나 쏠쏠하다. 예쁜 카페에서 식사하고 앙증맞은 소품들이 가득한 기념품 숍에서 쇼핑하는 동안 여행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1 샤또 퐁레오에서 생산된 와인들 2 비밀 창고처럼 꾸며진 양조장 입구 3 닭고기 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 레드 와인 4 신식 스테인레스 큐브를 이용하는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 5 나폴레옹 3세 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멋진 샤또 건물 반짝반짝 빛나는 메독의 보물 리스트락 Listrac 물리스 Moulis 생줄리엥 Saint-Julien 리스트락에 있는 샤또 퐁로Chateau Fonreaud와 레스따즈Lestage는 와인도 와인이지만 나폴레옹 3세 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름다운 고성에서 빚어낸 와인은 어떨까. 자신을 ‘포도 농사꾼’이라 소개하는 오너는 정말 평범한 시골 아저씨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와인은 결단코 평범하지 않았다. 입 안 가득 상큼함이 퍼지면서 남아 있던 아침잠을 한달음에 모두 날려 버렸다. 이런 와인이라면 아침부터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이날 점심은 물리스 AOC에 속한 두 명의 여성 와이너리 오너와 함께했다. 샤또 라 갸릭Chateau La Garricq의 마르띤느 까즈뇌브Martine Cazeneuve와 샤또 뒤쁠레스Chateau Duplessis의 마리로르 뤼르똥Marie-Laure Lurton 두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 여성 와이너리 오너 가운데서도 여러모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른바 ‘메독의 여인들’이다. 음식에 곁들여 나온 두 종류의 샤또 와인은 부드럽고 향긋한 풍미에 갖가지 아로마를 쏟아내는 것이, 식사 내내 끊임없이 수다를 풀어내는 두 여인과 꼭 닮았다. “물리스 와인은 구조감이 강해 양조 과정이 좀 까다롭죠. 와인이 너무 무겁지 않도록 발효부터 숙성, 블렌딩 비율까지 늘 신경써야 하거든요. 대신 나이가 들수록 마시기 좋은 와인이랍니다. 안타까운 건 와이너리 규모가 작아 브랜드화 시키는 게 늘 어려운 숙제죠.” 마르띤느 까즈뇌브 오너의 설명에 마리로르 뤼르똥씨는 작은 끄덕임으로 동조했다. 아닌게아니라 물리스는 메독에서도 가장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없는 물리스의 와인은 알고 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을 자랑하는 메독의 숨은 보석이다. 사실 이번 와인 여행에서 큰 수확을 꼽자면 물리스 와인의 발견이다. 샤또 브라나스 그랑 뿌조Chateau Branas Grand Poujeaux에서 맛본 와인은 물리스 와인의 매력을 확실히 느끼게 했다. 소박한 여주인처럼 어떤 꾸밈이나 장식도 하지 않은 단아한 여인네 같은 느낌이었다. 반면 깔끔하게 떨어지는 뒷맛에는 마치 포인트를 준 듯 작은 반짝거림이 느껴졌다. 이곳은 포도를 발효시킬 때 뭉쳐진 껍질을 위에서 눌러 으깨 주는 전통적인 방법을 쓴다는데 이런 양조 기술의 차이가 모두 맛으로 연결되는 게 아닐까. 물리스 와인의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생줄리엥에 있는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에 닿았다.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Chateau Leoville Poyferre는 루이 13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와이너리다. “포도알을 알콜 발효시키기 전 일정 기간 저온 상태에서 유지시켜 둡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진한 색과 풍부한 과일향을 얻을 수 있지요.” 오너인 디디에 꾸블리에Didier Cuvelier씨가 자신있게 설명했다. 직접 시음을 해보니 과연 자랑할 만했다. 와인에서 품격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안쪽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만든다고 하니 앞으로 더 재미난 와이너리 투어가 기대된다. 1 크뤼 브루주아인 샤또 뚜르 까스띠용의 2009년산 와인. 맛이 아주 부드럽다 2 음식을 곁들인 특별한 시음회 3 오크통에서 햇 와인을 뽑아내고 있다 4 먼 옛날 역사를 되짚어 보게 만드는 허물어진 망루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전원 풍경에 담긴 뜻밖의 선물 생떼스떼프 Saint-Esteph 메독 Medoc 오메독 Haut-Medoc 크뤼 아르띠장은 메독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와인 명칭이다. 소유주가 와인의 전 과정을 모두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운 좋게도 여정의 마지막 즈음 생떼스떼프에 있는 크뤼 아르띠장 와이너리인 샤또 라 뻬르Chateau La Peyre를 방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크뤼 아르띠장이 그렇듯 이곳도 가족이 경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다.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마침 바람결에 실려 시큼한 향이 코끝으로 전해져 왔다. 햇와인이었다. 이제 막 발효를 마친 2012년 산 와인이 아담한 저장고 안에 꽉꽉 채워져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규모가 큰 와이너리에는 없는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시음을 마쳤다. 와인은 산도가 좀 높은 편이었다. 신기한 건 같은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빈티지에 따라 신맛의 정도가 달랐다. 와인 애호가들이 왜 그토록 빈티지에 열을 올리는지 직접 체험해 보니 그 차이가 느껴졌다. 메독 와인은 장기 숙성이 가능한 덕에 오래 둘수록 더 깊은 맛이 난다. 알수록 더 매혹적인 와인이다. 메독과 오메독은 서로 반대쪽 끝에 자리해 있다. 지롱드강 상류 지역에 펼쳐진 광활한 오메독에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와이너리들이 많다. 샤또 씨싹Chateau Cissac도 그중 하나. 전통적인 방법과 현대식 양조 기술을 적접히 배합한 이곳의 운영 철학은 와인에서도 그대로 배어난다. 입 안을 꽉 채우는 구조감과 그 위에 덧입혀진 다양한 향미가 메독 와인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도 멋스럽다. 메독에 있는 샤또 뚜르 까스띠용Chateau Tour Castillon은 이번 여행길에 방문한 마지막 와이너리. 가이드인 송현주 선생이 “지금까지 본 풍경보다 훨씬 시골 같을 거예요” 하고 미리 귀띔했다. 정말 그러했다. 시골스럽다 못해 야생의 언저리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거칠 것 없는 시야, 거리감 없는 강가, 언덕 위로 넘어가는 포도밭…. 시골집 식탁에서 이뤄진 와인 시음은 오히려 만찬(?)에 가까웠다. 와인은 음식과 궁합을 맞춰 봐야 한다며 몇 가지 음식이 푸짐히도 차려졌다. 와인에 취한 건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한 건지, 이제껏 쥐고 있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려 나갔다. 와인을 테마로 피크닉, 산책, 콘서트 등 여러 가지 투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니 이를 어쩐다. 여행의 마지막에 메독을 다시 와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정은주 취재협조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 www.sopexa.co.kr ▶Travel to Medoc 항공 에어 프랑스(www.airfrance.co.kr)를 이용해 파리를 거쳐 보르도 공항까지 이동할 수 있다. 인천에서 파리까지는 약 11시간, 파리에서 보르도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린다. 또는 파리에서 보르도까지 기차(www.raileurope-korea.com)도 운행된다. 약 3시간 30분 소요. 보르도에서 메독까지는 택시를 이용한다. 숙소 메독에서 묵어 갈 만한 숙소로는 골프 뒤 삐앙 메독Golf du Pian Medoc과 를레 드 마고Relais de Margaux, 꼬르데이양 바즈Cordeillan Bages를 추천한다. 골프 뒤 삐앙 메독과 를레 드 마고 두 곳은 골프 코스 안에 자리한 호텔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샤또 랭츠 바즈에서 멀지 않은 꼬르데이양 바즈는 외관은 오래된 고성 느낌이지만 심플하면서도 세련미 넘치는 인테리어가 특히 인상적이다. 외부에 야외 풀장과 사우나,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spot 또넬르리 나달리에 Tonnellerie Nadalie 메독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크통 제조회사로 1902년 설립돼 5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프랑스 산림청 나무 경매를 통해 참나무를 공수해 오며 미국산 참나무도 소량 사용한다. 오크통에 사용되는 나무는 오랜 기간 젖고 마르고를 반복하게 되는데 이 작업만 2년 넘게 걸린다. 또넬르리 나달리에는 메독 지역을 비롯해 보르도 등 프랑스 전역과 해외 유명 와이너리에 오크통을 공급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예약하면 일반인 방문도 가능하며 가이드 안내에 따라 오크통 제작 과정을 둘러볼 수 있다. www.nadalie.fr spot 라 와이너리 La Winery 프랑스 와인은 물론 전세계 와인을 취급하는 숍과 전문 시음 공간, 레스토랑, 피크닉과 공연장 등을 갖춘 와인 예술의 메카다. 와인셀러에는 보르도 지역이 50%, 프랑스산이 40%, 세계 와인이 10% 비율로 진열되어 있다. 1년에 5만5,000명 정도 방문하는데 그중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로 메독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와인을 사거나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않아도 야외 피크닉 공간을 이용할 수 있어 메독에 가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www.winery.fr 와인 등급 그랑크뤼 끌라쎄 메독 와인은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메독을 포함해 보르도 최고급 와인에게 주어지는 그랑크뤼 끌라쎄(1등급부터 5등급까지 나뉜다)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메독에는 60개의 그랑크뤼 끌라쎄 와이너리가 있으며 이 등급 순서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딱 한 번 1973년 샤또 무똥 로칠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바뀐 적이 있다). 이에 반해 크뤼 부르주아는 매년 심사를 통해 품질 좋은 와인들을 선별해 등급을 매긴다. 가장 독특한 카테고리는 크뤼 아르띠장. 아르띠장Artisan이란 우리로 치면 ‘장인匠人 정도 되는데 이 명칭을 단 곳은 소유주가 포도 재배부터 양조, 판매까지 직접 맡아서 해야 한다. 크뤼 아르띠장 와이너리는 메독에서도 44곳밖에 없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대선 첫 TV토론] 새누리 “文, 시종일관 답답” 민주 “상생통합, 朴과 차별”

    [대선 첫 TV토론] 새누리 “文, 시종일관 답답” 민주 “상생통합, 朴과 차별”

    18대 대선 첫 TV토론회를 둘러싼 각 당의 반응은 뜨거웠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가 야권 후보들과의 2대 1 대결 구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정책을 잘 설명했다고 자평했다. 안형환 선대위 대변인은 “박 후보는 토론에서 준비된 여성 대통령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동안 꾸준히 국정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해 온 결과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희 막말로 토론회 품격 떨어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토론회에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고 박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사이에 끼어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지 못한 채 자신없는 모습과 답답함만을 보여줬다.”면서 “게다가 자신의 정책에 대해 충분히 숙지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같은 야권 후보인 이 후보에게조차 밀리는 모습이어서 안타까웠다.”고 지적했다. 당내에서는 특히 박 후보에게 집요한 공세를 펼친 이 후보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안 대변인은 “전체적으로 토론의 격을 떨어뜨렸다.”면서 “시종일관 예의 없고 인신공격만 퍼부어 이 후보는 물론 통합진보당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또 “박 후보에게 조롱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아닌 욕설을 계속해 과연 다음에도 이런 후보가 토론에 나와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했다.”고 덧붙였다. 문 후보 측은 이날 대선 후보 TV토론에 대해 “대통령감으로서 문 후보가 가장 돋보였다.”고 자평했다. 특히 ‘안정감’에 무게를 뒀다. 박광온 대변인은 “문 후보는 국정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적 수권 능력을 가진 후보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박 대변인은 “문 후보가 박 후보에게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는 등 상생 통합의 정치를 내세우며 박 후보와 명확하게 차별됐다.”면서 “겸손한 자세로 소통하는 새 시대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높은 점수를 매겼다. 그는 “문 후보는 전반적으로 품격을 지키면서 상대 후보를 배려하며 책임감 있는 대안, 균형감각 있는 정책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다.”고도 했다. ●“朴·李 대결 구도로 문재인 손해” 그러나 당 내부적으로는 첫 TV토론이 박 후보와 이 후보 간의 설전 양상으로 이어진 데 대한 불만도 적잖게 흘러나왔다. 문 후보 측은 박 후보를 대척점에 두고 이 후보와 함께 2대1 구도로 진행될 것으로 내다보긴 했으나, “이 후보가 이처럼 강경하게 나올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탓에 “이 후보가 박 후보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다 보니 마치 이 후보의 ‘원맨쇼’처럼 진행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박 후보와 이 후보 간의 대결 구도로 진행돼 문 후보의 발언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문 후보가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기 위해 네거티브보다는 정책적인 부분에 중점을 뒀고 토론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朴 “통합 대통령” 文 “상생 대통령”

    朴 “통합 대통령” 文 “상생 대통령”

    18대 대통령 선거 첫 TV토론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4일 열린 가운데 정치·외교·안보·통일 문제와 대통령 자질론 등을 놓고 대선 후보들 간 공방이 펼쳐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번 선거는 준비된 미래로 가느냐, 실패한 과거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선거로,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통합의 대통령이 필요하다.”면서 “중산층 복원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중산층 70%의 시대를 여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상대를 실패시켜 성공하려는 정치, 서로 싸우는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면서 “싸우지 않고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두 후보는 6∼7%에 이르는 ‘안철수 부동층’을 견인하려는 듯 노골적인 네거티브는 자제했지만 권력형 비리 등 특정 이슈와 관련해서는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팽팽한 기싸움을 연출했다. 안보와 관련해 문 후보는 “이명박 정부는 안보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보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휴전선 ‘노크 귀순’ 등 안보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느냐.”면서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두 차례 서해교전에서도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했고, 참여정부 때는 단 한 건도 군사 충돌이 없었다. 아예 도발을 할 수 없게끔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 후보는 “진짜 평화와 가짜 평화는 구분해야 한다. 퍼 주기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면서 “확고한 안보 바탕 위에서 ‘도발하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강력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한편 신뢰 구축 노력을 병행해 얻어지는 평화가 진짜 평화”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새누리당 재집권은 절대 허용하지 말자.”면서 “민주정부의 부족함을 넘어서는 진보적 정권 교체, 노동자·농민·서민을 살리는 정권 교체를 이뤄 내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에서 박 후보와 이 후보가 충돌하면서 ‘박근혜-이정희’ 대립 구도가 더 부각됐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세 후보는 오는 10일과 16일 선관위 주최 TV토론을 두 차례 더 갖는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지방시대] 전국의 폐선철도를 푸른길로/임낙평 광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지방시대] 전국의 폐선철도를 푸른길로/임낙평 광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광주광역시에 독특한 도시공원이 있다. 과거 철도가 있던 곳을 그대로 활용해 조성한 ‘푸른길 공원’이다. 이 공원은 광주역에서 옛 남광주역을 거쳐 효천역에 이르는 8㎞, 약 10만㎡의 부지에 만들어진 선형 공원이다. 지금 옛 남광주역 부지의 푸른길 공사가 마지막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0년 폐선된 이후 10여년 동안에 도심철도가 도시의 훌륭한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공원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 시민들이 이 공원을 통해 출퇴근하거나 학생들이 통학하고, 지역민들이 휴식하거나 조깅이나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탄다. 사실 이 공원은 지역민들에게 보석 같은 존재다. 광주시에서도 자랑스럽게 여긴다. 시민들의 만족도도 크고, 도시 재생의 수범적인 사례이며 또한 독특하게 주민, 시민환경단체와 협치(Governance) 과정을 거쳐서 조성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푸른길은 폐선 철도를 재활용한 모범적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철도의 폐선이 계속되고 있다. 경부선, 호남선, 경원선, 중앙선, 장항선, 전라선 등 국가 주요철도망에서 약 370㎞가 폐선이 됐거나 폐선이 예정돼 있다. 자동차 교통량의 증가, 도시의 확장, 철도의 복선화 추진 등의 요인 때문에 이설하거나 신설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폐선이 발생한다. 이런 철도 폐선 부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시지역이나 목 좋은 곳은 개발용지로 매각하고 도시 외곽은 방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광주 푸른길의 사례를 토대로 도시에는 공원으로, 도시 외곽은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오솔길을 만들어야 한다. 폐선이 발생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푸른길 조성 방침을 정하더라도 막대한 예산으로 부지를 매입해야 하고, 조성비를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폐선 부지 활용에 대한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이다. 전국적 차원에서 철도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듯이 이제 폐선 부지 활용정책도 가져야 한다. 지방정부에 푸른길 공원 추진을 유도하고, 적극적인 정책적·재정적 지원도 필요하다. 철도도 중요하지만 폐선 부지도 그만큼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광활한 국토를 가진 미국은 지금 ‘폐선 철도를 이용한 오솔길’(Rail to Trail) 혹은 푸른길(Greenway)을 2만 마일(3만 2000㎞) 이상 가지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건설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건설 중이다. 이 길을 따라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출퇴근·통학을 하며, 보행과 자전거를 타고 있고, 특히 도시 외곽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나 승마 등 여가를 즐기고 있다. 주정부나 지방정부가 조성에 축이 되고 민간조직들이 적극 참여했으며, 연방정부가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해 왔다. 미국의 오솔길, 광주의 푸른길처럼 이 공간을 가꿔야 한다. 이곳은 환경 생태의 공간으로서 시민들의 건강을 함양해 주고,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주며, 도시교통의 통로로서 또한 문화와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총체적으로 지역공동체의 공간이다. 전남 여수와 순천, 광양에서 나아가 전국적으로 철도의 폐선 부지가 이런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되지 않겠는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생명의 공간으로 다시 탄생하기를 기원해 본다.
  • 이재오 “정권 재창출에 힘 보탤것”… 朴 지지 선언

    이재오 “정권 재창출에 힘 보탤것”… 朴 지지 선언

    비박(비박근혜)계 대표 주자였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2일 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 의원은 오후에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책무”라면서 “저 또한 어떤 위치에서든 작은 힘이나마 힘껏 보태겠다.”고 밝혔다. 성명서는 측근인 김해진 전 특임차관이 대신 낭독했다. 이 의원의 입장 발표로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내 계파 갈등도 모두 봉합되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 의원은 친이명박계 좌장으로 2007년 대선 경선 이후부터 박 후보와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이 의원은 지난 6월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가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등 경선 규칙 개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출마했고 이후에는 분권형 개헌 추진을 주도하며 박 후보를 압박해 왔다. 당내에서도 이 의원이 선거에서 박 후보를 지원하느냐가 통합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관측했었다. 이 의원은 “정권 재창출로 국가의 발전적 흐름이 중단되지 않아야 하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을 한층 더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선택 2012 D-20] 朴 “文이 집권하면 나라 두쪽” 文 “朴, 빵점정부 공동책임자”

    [선택 2012 D-20] 朴 “文이 집권하면 나라 두쪽” 文 “朴, 빵점정부 공동책임자”

    ■“무책임한 변화땐 국민 혼란 文 집권땐 국제사회 고아될 것” 文 직접 지칭 비판 강도 높여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28일 이틀째 충남 지역에 머물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향한 공세를 이어 갔다. 특히 문 후보 역시 이날 충청에서 유세를 펼치는 것을 의식한 듯 비판의 강도를 더 높였다. 지금까지 문 후보를 “야당 후보”라고 지칭했지만 이날은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라며 정면으로 부딪쳤다. 전날 ‘준비된 미래’ 대(對) ‘실패한 과거’ 구도를 내놨던 박 후보는 이날은 ‘책임 있는 변화’ 대 ‘무책임한 변화’로 문 후보를 공격했다. 박 후보는 오후 태안읍에서 가진 유세에서 “선거 때마다 누구나 변화를 얘기하지만 무조건 바꾼다고 국민의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다.”면서 “무책임한 변화는 오히려 국민을 더 혼란스럽고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쇄신도 이뤄지고 발전도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으로 변화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문 후보와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전날에 이어 “자신들의 코드에 맞게 나라를 뒤엎는 데만 온 힘을 쏟았다.”고 참여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국민이 준 기회를 다 놓쳐버리고 이제 와서 다시 정권을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천안에서는 참여정부를 “역대 최악의 양극화 정권”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또다시 민생과 상관없는 이념에 빠져 나라를 두 쪽으로 만들고 갈등과 분열만 증폭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후보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일, 도박이 되지 않겠느냐.”, “문 후보와 그 세력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한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고아가 될 것”이라는 등 비판의 수위도 매우 높아졌다. 박 후보는 “저는 만사 제쳐 놓고 무엇보다 민생을 챙길 것이고 국민대통합으로 모두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하며 ‘준비된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박 후보는 이날 충남 홍성, 예산, 서산, 태안, 당진, 아산, 천안 등 7곳에서 유세를 펼치고 “충청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리고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고 나라를 지켜 주었다.”면서 “실패한 과거 정권의 부활을 막아주시고 책임 있는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박 후보는 오후에는 경기 평택, 오산, 수원으로 이동해 지지를 호소했다. 29일에도 서울 서부권, 경기 김포, 인천 등에서 유세를 이어 가며 최대 부동층으로 꼽히는 수도권과 젊은 층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예산·태안·천안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朴의 새누리, 세종시법안 발목” ‘정권심판론’으로 친노프레임 극복 “과학벨트 예산 국고 지원” 약속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28일 ‘이명박 정부 빵점론’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맹공을 퍼부으며 충청 민심에 호소했다. 새누리당의 ‘친노(친노무현) 프레임’ 대응 전략으로 ‘이명박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박 후보에 대한 공격 포인트도 ‘유신 독재세력 잔재의 대표’에서 ‘MB정권 공동 책임자’로 바꿨다. 선거 구도가 자칫 ‘박정희 대(對) 노무현’ 구도에 갇힐 경우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를 지지했던 중도·무당파 층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문 후보는 이날 대전역, 신탄진을 비롯해 세종·당진·아산·천안시를 돌며 ‘중원유세’를 펼쳤다. 대전역 앞에서 가진 유세에서 문 후보는 박 후보가 자신을 “실패한 정권의 핵심 실세”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잘한 것 하나도 없는 빵점 정부”라고 전제한 뒤 “박 후보는 빵점 정부의 공동 책임자”라고 맞대응했다. 그는 “참여정부가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 한계에 대해 저희도 성찰 많이 한다. 그러나 잘한 것도 많았다는 게 국민들의 평가다.”라면서 “참여정부 성적을 100점 만점에 짜게 줘서 70점 어떤가.”라고도 했다. 연설 서두에서 “참여정부가 못다 이룬 꿈을 마저 이루기 위해 제가 나왔다.”고 밝힌 문 후보는 안철수 지지층을 겨냥해 “안 전 후보가 흘렸던 눈물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의 미안한 심경부터 드러냈다. 그러면서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겠다.”고 거듭 밝힌 뒤 “결승에 나갈 후보를 후보 간 협상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겠다.”고 역설했다. 결선투표제 공약을 이번 대선의 핵심 화두로 삼아 개헌 논의를 선점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 충청 지역민들의 숙원 사업인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예산 전액을 국고로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세종시로 자리를 옮겨서도 문 후보는 박 후보에 대한 비판 강도를 낮추지 않았다. 그는 “박 후보가 세종시는 본인의 신념이자 소신이라고 주장했는데, 새누리당은 얼마 전 국회 행안위에서 세종시 특별법 개정안을 무산시켰다.”면서 “박 후보는 겉과 속이 다른 후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종시 특별법을 원안대로 연내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면서 “세종시를 사실상의 행정수도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당 쇄신 차원에서 지난 18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해찬 의원도 참석해 문 후보 지원 유세를 펼쳤다. 문 후보는 아산시 온양온천역 앞에서 가진 유세에서 충남 논산 출신인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 띄웠다. 그는 “안 지사가 차세대 국가 지도자로 전국에서 기대를 받고 있다.”면서 “전국적 정치지도자로 커 갈 수 있도록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세종·아산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글로벌 시대] 다문화로 아름다운 사회를/장수영 코트라 뉴질랜드 오클랜드 무역관장

    [글로벌 시대] 다문화로 아름다운 사회를/장수영 코트라 뉴질랜드 오클랜드 무역관장

    글로벌화의 진척이 가져온 수많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은 또 다른 형태의 과제들과 맞닥뜨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다문화 사회가 점점 더 확대되면서 생기는 갈등들은 결코 대처가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포용력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조차 이민자 그룹이 일으킨 소요사태를 겪으면서 과거의 정책들을 송두리째 재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으니 다른 나라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이런 점에서 다문화 선진국 뉴질랜드의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한 참고가 될 것 같다. 다문화 사회가 겪는 갈등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경제문제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가 실업률이 증가하고 소득이 감소하는 침체기가 찾아오면 인내심을 잃은 사람들이 경쟁의 판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짜고 싶어 한다. 이때 약자인 소수 이민족이 희생양이 되기 쉽다. 심지어 일부 표에 눈먼 정치인들이 이런 심리를 이용한 득표 전략을 펴면서 갈등을 더 부추기기도 한다.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950년대 말부터 피지, 사모아, 통가 등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뉴질랜드로 건너왔다. 이들은 당시 제조업이 활발했던 뉴질랜드 산업계의 노동현장에 투입되었는데, 1973년 오일쇼크가 발발하자 일자리를 가로채서 실업률을 높인 주범으로 취급받았다. 게다가 각종 도시 문제와 범죄 증가의 책임까지 떠안았으니 이들 입장에서는 억울했을 것이 분명하다. 뉴질랜드에서 이민자 그룹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아시아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부터이다. 주로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아시아 이민자들은 교육수준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자금을 보유한 투자 이민인 경우가 많았다.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경제 활성화를 꾀했던 뉴질랜드 정부의 의도에 딱 맞는 이민자였던 셈이다. 이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이민자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도 크게 개선되었다. 그래서 이민정책은 뉴질랜드의 주요 경제 정책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문화 문제를 경제적 이해관계로만 판단해서는 물론 안 된다. 불황기를 거칠 때마다 똑 같은 갈등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문화는 기본적으로 인류 공통의 보편적 가치인 인류애(愛)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이다. 이와 관련, 뉴질랜드는 훌륭한 자산을 하나 가지고 있다. 1840년 2월 영국에서 온 총독과 원주민 마오리족 추장들 사이에 체결된 ‘와이탕이(Waitangi) 조약’이 그것이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어 보이는 이 조약으로 뉴질랜드는 두 인종의 평화로운 공존을 택했다. 영국인은 통치를, 마오리족은 안전을 확보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약 15%가 원주민인 마오리족이고 이들은 사회 각층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주류를 이루는 유럽계 현지인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가졌음에도 원주민 비중이 채 1%가 되지 않는 이웃 나라 호주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런 배경 때문일까? 인구 150만명이 사는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서는 이민족 축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뉴질랜드 정부가 적극 지원함은 물론이고 해당 이민족, 현지인,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모두의 축제’이다. 다문화 덕분에 오클랜드가 훨씬 다채롭고 평화로운 도시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우리 역시 다문화 사회로 아주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지방에서 온 우리 중소 수출기업 관계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는 단 하루도 공장을 돌릴 수 없다고 한다. 농촌 총각들과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결혼이주여성들은 또 어떤가? 이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제 이들과 아름다운 다문화 사회를 만드는 과제가 우리에게 던져졌다. 반만년을 단일민족으로 살아 온 우리이기에 더더욱 단단한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
  • [‘빅2’ 후보등록 기자회견… 대선 진검승부 돌입] 朴 “비례대표 의원 사퇴” 배수진

    [‘빅2’ 후보등록 기자회견… 대선 진검승부 돌입] 朴 “비례대표 의원 사퇴” 배수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25일 후보 등록과 동시에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하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는 뜻까지 밝히며 배수진을 쳤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로 지난 15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눠 왔던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며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저의 정치 여정을 마감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가 이 같은 각오를 밝히면서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은 우선 지지층의 결집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계 은퇴라는 카드를 통해 지지층을 긴장하게 하고 스스로도 퇴로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승부수로 보인다. 동시에 야권의 단일화 효과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조기에 막아 내겠다는 뜻도 담은 것으로 관측된다. 의원직 사퇴를 두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의 차별화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일 선대위 대변인은 “문 후보가 의원직을 움켜쥐고 있는 것과 관련, 대선에 떨어질 것을 대비해 의원직을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21차례나 사용했다. “위기와 고비를 맞을 때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믿고 힘이 되어 주셨고, 이번 대선이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박 후보는 오후 당사에서 중앙선대위 회의를 주재하며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안 후보가 지지를 받은 것은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 때문이었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새 정치를 선도하고 실천하는 새누리당이 되기 위해 더욱 각오를 다지고 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 지지층의 표심이 문 후보 쪽으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이번에 우리 손으로 국민행복시대를 만들지 못하면 영원히 만들 수 없다. 우리가 해야만 책임 있는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 도중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는 말을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잘못 말하는 실수를 해 회견장에 모인 측근들이 당황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내내 굳은 표정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박 후보는 말실수를 한 뒤에도 “제가 뭐라고 말했습니까.”라고 되물으며 실수한 내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곧바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고 다시 말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②이탈리아 파르마, 친퀘테레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②이탈리아 파르마, 친퀘테레

    글·사진 최승표 기자 ●Italy Parma파르마 베르디와 토스카니니를 낳은 음악도시 프랑스에서 혹은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할 때, 여행객이 관문도시로 선택하는 곳은 십중팔구 북부의 밀라노다. 또 다른 경우의 수가 있다면 토리노 정도일 것이다. 허나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더 남쪽에 위치한 파르마Parma까지 내려왔다. 친퀘테레Cinque Terre로 가기 전 가까운 거점이 필요했고, 소문난 파르마의 미식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소담스런 분위기의 중심가에는 예술사에 있어서 기억될 만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파르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필로타 궁전Palazzo della Pilotta,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했다는 그의 두 번째 아내인 마리 루이즈Marie Louise를 기리기 위한 글라우코 롬바르디Glauco Lombardi 박물관, 그 맞은편에는 음악을 지독히 사랑한 루이즈가 건립한 왕립극장이 한데 몰려 있다. 그녀는 가난한 음악도들을 위해 학교도 세웠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작곡가 베르디, 지휘자 토스카니니 등 이탈리아 음악의 거장들이 파르마에 많은 것도 그녀 덕분일 것이다. 파르마를 예술도시라 이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파르마 돔성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최초 건립된 성당의 외관은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다양한 건축양식들이 포개진 모습이었다. 성당 내부는 단촐한 외관과는 상반되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프레스코 벽화 중에는 성경의 내용과 무관한 그림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당시 화가들이 자신을 후원하던 재력가들의 얼굴을 곳곳에 새겨 준 것이다. 파르마 미술의 혁명가라 불리는 안토니오 코레지오Antonio Correggio가 돔 천장에 그린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 그림은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보다 뛰어난 묘사력을 보인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성당 한켠에 자리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를 묘사한 조각품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 그러니까 두 개의 예술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숨을 거둔 예수, 십자가 곁에서 예수를 지키는 천사, 예수의 옷을 받아든 로마 군인, 심지어 스승을 잃은 제자들까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심각한 국면을 묘사한 것 치고는 너무 우스꽝스러운 묘사라고 느껴졌다. 이는 1178년, 당시 성도들과 이교도의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며 세련미를 극대화한 고딕 회화의 특징적 묘사라고 한다. 파르마의 중심가, 필로타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들의 모습 햄과 치즈, 파르마의 자존심이자 신앙 인구 17만명의 소도시 파르마는 낙농업, 식품제조업이 발달한 도시다. 특히 파르마산 치즈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 Reggiano’와 햄 ‘프로슈토Prosciutto’는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파르마는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평야지대와 목초지가 나타나는데 바로 이 비옥한 땅이 치즈와 햄 맛의 비결이라 한다. 밀라노의 고르곤졸라, 나폴리의 모짜렐라, 시칠리아의 리코타 등 이탈리아 지역별로 명성 있는 치즈는 가공 방식뿐 아니라 그 지역의 토질과 물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고 한다. 최근 파르마산 치즈로 둔갑한 ‘아르헨티나산 치즈’가 많은데 파르마 사람들만은 ‘짝퉁의 맛’을 정확히 변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파르마 사람들의 치즈에 대한 애착은 깊고도 유별나다. 파르마에서는 프로슈토 햄 생산을 위해 돼지에게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장’과 밤을 먹인다고 한다. 돼지고기 중에서도 뒷다리 부위를 소금에 절여져 9개월부터 최대 24개월간의 숙성기간을 거쳐 햄으로 만들어낸다. 치즈를 먹은 돼지의 살이어서일까? 파르마산 치즈와 햄에서는 닮은 향기와 맛이 난다. 파르마에서의 저녁 식탁에서는 치즈와 햄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은 레스토랑. 애피타이저는 송로버섯Truffle이 곁들여진 으깬감자 수프, 메인 요리로는 볼로니즈 파스타를 주문해 치즈를 듬뿍 얹어 먹었다. 파스타도 좋았지만 내가 가진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향의 송로버섯은 흡사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내 미각과 신경을 몽롱한 상태에서 오래도록 놓아 주지 않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필로타 궁전Palazzo della Pilotta 16세기 파르마 지역을 통치하던 파르네제가家에서 만든 건물로 나폴레옹 전쟁, 2차 대전을 거치며 파괴되었다가 복원돼 지금은 공연장, 고고학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 Reggiano 파르마 전통 치즈로 6개월에서 최대 36개월까지 숙성시킨 것으로 다소 딱딱한 촉감에 누린내가 강하지 않고 고소한 뒷맛을 낸다. 와인과 함께 즐기거나 파스타나 샐러드에 가루로 뿌려 먹는다. ●Italy Cinque Terre친퀘테레 보물이 되어 버린 오색빛깔 바다마을 프랑스의 론알프스와 이탈리아의 파르마까지 주로 소도시를 다니며, 감춰진 진주같은 풍경들을 보았고, 세계 3대 진미라는 송로버섯까지 맛보았으니 유럽 여행에 대한 욕구는 웬만큼 해소된 상태였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뜨고 있는 이탈리아 여행지 친퀘테레Cinque Terre로 향하는 길, 여행의 피로가 쌓여 가면서 부푼 기대감도 사그라든 상태였다. 이런 심드렁한 태도는 리구리아해에서 불어온 바람을 맞은 순간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5개의 마을’이라는 뜻의 친퀘테레는 이탈리아 서북부 해안, 리구리아주에 속해 있다. 성수기에는 숙소 잡기가 어려운 탓에 밀라노, 피렌체, 파르마, 피사 등의 주변 도시에서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많이 찾는다. 파르마에서 기차로 약 2시간. 친퀘테레로 가기 위한 관문도시인 라스페치아La Spezia에 닿았다. 친퀘테레를 제대로 즐기려면 가장 남쪽에 위치한 리오마조레Riomaggiore부터 북쪽의 몬테로소Monterosso까지,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소담스러운 마을의 풍경과 리구리아 해변의 정취를 만끽하는 것이 좋다. 하루 만에 13.5km의 해안길을 걷기란 다소 버거운 일. 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2~3개의 마을을 구경하고 해안선을 따라 보트크루즈를 타기로 결정했다. 처음 도착한 마을 마나롤라Manarola의 풍경은 제주도와 흡사했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과 쪽빛바다도 그렇지만 마을 안쪽, 그러니까 낮은 돌담벽이 엉성하게 줄지어 있고 농부들이 밭을 갈며 일상을 사는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마을을 연상시켰다. 유네스코는 친퀘테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각별히 보존에 힘쓰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계단식 다랑이논 같은 포도농장을 개척하고, 올리브나무를 길러낸 주민들의 일상을 침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곳의 화이트 와인 맛은 이탈리아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데 가파른 산비탈에서 농부들이 허리를 로프로 묶고 한 송이 한 송이 따낸 포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친퀘테레 하이킹 코스 중 가장 유명하다는 ‘사랑의 길Via dell’ Amore’로 향했다. 리오마조레와 마나롤라, 두 마을을 잇는 1km 남짓한 해안절벽길은 여느 로맨틱한 관광지가 그런 것처럼 사랑을 다짐하는 연인들이 채워 놓은 자물쇠와 이름을 새겨 놓은 흔적들로 도배돼 있었다. 거리의 악사가 아코디언으로<여인의 향기> OST를 연주하자 주위의 연인들은 프렌치키스를 나누며 행복에 겨워했다. 리오마조레에서 몬테로소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역에 내리자마자 맞닥뜨린 몬테로소의 풍경은 다른 4개 마을과는 전혀 달랐다. 백사장 해변에는 원색의 파라솔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마을 안쪽 레스토랑과 카페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해변 휴양지였다. 한 레스토랑에 들러 파스타와 해산물 요리로 허기를 달랬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양한 파스타를 먹어 왔지만 가장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한 맛이었다. 홍합, 오징어 등 해산물로 우려낸 파스타 소스가 개운한 맛을 낸 덕이었다. 몬테로소에서 라스페치아로 가기 위해 보트에 몸을 실었다. 보트는 5개 마을 항구에 차례로 정박하며 관광객을 싣고 내렸다. 두 개의 마을, 베르나차Vernazza와 코르니글리아Corniglia는 항구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먼발치서 바라본 두 마을은 나머지 3개 마을에 비해 규모가 작아 보였을 뿐 별다른 특징은 없어 보였다. 허나 나중에야 알았다. 친퀘테레 마을 중에서도 관광객이 덜 북적이면서 호젓하게 휴식을 즐기기에는 베르나차와 코르니글리아가 좋다는 사실을. 보트는 친퀘테레를 지나 라스페치아로 가기 전, 마지막 항구인 포르토베네레Porto Venere에 잠시 정박했다. 해가 수평선 근처로 내려오면서 더 따뜻해진 볕을 쬐며 바닷가로 걸어갔다.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잠시라도 이방인의 때깔을 벗고 싶어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보았다. 지중해와 짧은 해후를 뒤로하고 결별할 생각에 밀물 같은 아쉬움이 살포시 밀려와 발목을 적셨다. 1 ‘사랑의 길’에서 흔적을 남기는 연인 2 친퀘테레 다섯 마을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리오마조레Riomaggiore의 항구 풍경 3 바닷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 4 마나롤라Manarola 마을, 한 카페에서 작렬하는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행객 취재협조 레일유럽 www.raileurope.co.kr, 시크아울렛 www.chicoutletshopping.com/ko ▶travie info 친퀘테레 카드 친퀘테레에서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이용하려면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한 마을 내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친퀘테레 카드로는 하이킹코스 외에도 마을 내 대중교통, 지역 박물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성인 기준, 1일권은 주중 5유로, 주말은 12유로이며, 날짜와 연령대, 단체 규모에 따라 요금이 다양하다. 마을을 연결하는 친퀘테레 기차카드도 있다. 성인 기준 1일권은 10유로. 카드는 각 마을의 관광안내센터나 기차역에서 구매할 수 있다. www.cinqueterre.com ▶Travel to France & Italy 유럽 기차여행, 실속 있게 준비하는 법 이번 여행은 이동의 90%를 기차에 의존했다. 유럽 첫 기착지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작해 친퀘테레를 여행하고 밀라노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다양한 기차를 이용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였다. 유럽을 자유여행으로 가는 이들이 늘면서 실속 있게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정보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방문 국가와 도시, 체제 일수를 확정했다면 가장 적합한 철도 상품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이용한 철도 상품과 주요 열차의 간략한 정보를 정리해 봤다. 유럽 철도 예약은 대부분의 국내 여행사에서 다루고 있으며, 레일유럽 웹사이트(www.raileurope.co.kr)를 이용할 수도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프랑스패스 프랑스를 3일 이상 여행한다면 프랑스패스를 구매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프랑스패스 소지자는 파리와 런던을 연결하는 유로스타Eurostar, 암스테르담, 브뤼셀 등과 연결되는 탈리스Thalys 등의 초고속 열차와 야간열차 등을 할인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각종 지방 관광열차를 할인받을 수 있으며, 파리 세느강 크루즈, 국립 박물관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유의할 점은 패스 소지자라 할지라도 TGV, 탈리스 등은 반드시 추가요금을 내고 좌석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 이는 여러 나라를 한번에 여행할 수 있는 유레일패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유레일 셀렉트패스 인접한 3~5개국 이상을 선택적으로 여행한다면 유레일 셀렉트패스Select Pass가 적합하다. 물론 2개국을 여행할 수 있는 리저널패스Regional Pass도 있지만 모든 나라들이 조합돼 있는 것은 아니기에 셀렉트패스가 편리할 수도 있다. 가령 유레일 2개국 패스 중에는 스위스-이탈리아패스가 없기에 셀렉트패스를 선택하는 게 낫다. 한편 2013년부터 프랑스가 셀렉트패스에서 제외되고, 터키가 추가될 예정이다. ▼이번 여정에 이용한 기차들 ·탈리스Thalys 브뤼셀에서 파리까지 1시간 25분 만에 연결하며, 하루에 30편으로 운행 간격이 촘촘하다. 1등석을 이용할 경우, 와인을 포함한 음료와 디저트류를 무료로 제공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쾰른 등의 도시로도 연결된다. 각종 패스 소지자는 추가 요금을 내고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TGV 국내선 프랑스 초고속 열차인 TGV는 독일 방향으로 가는 동부선과 스위스쪽으로 가는 TGV리리아, 국내선 등으로 이뤄져 있다. 파리에서 리옹까지 약 2시간이 소요되며, 2층에는 음료와 디저트를 구매할 수 있는 라운지 바가 있다. 패스 소지자는 추가 요금을 내고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TER 한국의 새마을열차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안시에서 샤모니로 이동하면서 이용한 기차는 관광열차가 아님에도 천장 일부가 유리로 돼 있어 이동 중 알프스 산맥을 관람하기 좋았다. 패스 소지자는 좌석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 ·Trenitalia 친퀘테레 여행을 마치고 라스페치아La Spezia에서 밀라노Milan로 돌아가는 길에 이용했다.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추가 요금을 내고 좌석 예약을 해야 한다. 1 브뤼셀과 파리를 연결하는 탈리스 열차. 1등석 탑승객에게는 음료와 다과가 제공된다 2 샤모니 몽블랑으로 가는 길, 커다란 유리창 너머 알프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SHOPPING OUTLET 유럽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쇼핑 시크아울렛 유럽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는 쇼핑이다. 이번 여행에는 유럽 내 9개 도시에 아울렛을 운영 중인 시크아울렛Chic Outlet 중 벨기에 브뤼셀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스메켈렌 빌리지Maasmechelen Village와 이탈리아 밀라노, 파르마에서 가까운 피덴자 빌리지Fidenza Village를 방문했다. 아울렛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가격.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국내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최대 70%까지 저렴하다. 9곳의 빌리지(시크아울렛은 ‘아울렛’보다는 ‘빌리지’라는 표현을 좋아한다)는 면세 혜택을 제공하며(총 구매 금액의 약 10%를 출국시 공항에서 환급받을 수 있다), 도심부에서 아울렛까지 리무진버스인 쇼핑익스프레스를 운영한다. 국내 주요 여행사를 통하면 쇼핑익스프레스 할인권, 10%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VIP 쿠폰 등을 얻을 수도 있다. 각 빌리지는 지역색을 반영한 레스토랑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방문객 개개인에게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을 제안하는 ‘퍼스널 쇼퍼 서비스’도 제공한다. 어린이 놀이방은 모든 빌리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빌리지도 있어 쇼핑뿐 아니라 유럽의 라이프스타일까지 체험할 수 있다. 마스메켈렌 빌리지에서는 벨기에의 고급 초콜릿은 물론 지역 특산물인 다이아몬드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고, 피덴자에서는 파르마의 수준 높은 요리와 함께 디저트로 젤라또까지 즐길 수 있었다. 유럽 아울렛까지 갔는데 명품 백이나 수트 한 벌쯤 사지 않았냐고? 독자들께 죄송하지만 본 기자는 명품 취향이(단지 취향의 문제일까?) 아닌 탓에 생생한 쇼핑 리스트를 제공할 수 없게 됐다. 단, 샘소나이트 캐리어를 국내 소비자가의 3분의 2 수준에 득템한 것은 두고두고 자랑하고 있다. www.chicoutletshopping.com/ko 1 이탈리아 밀라노와 파르마, 볼로냐 등에서 가까운 피덴자 빌리지.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를 최대 70%까지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2 시크아울렛의 각 빌리지에서는 수준 높은 지역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있다 ▼그 밖의 시크아울렛 빌리지 런던 비스터 빌리지 영국 런던에서 약 1시간 거리의 옥스포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시크아울렛 쇼핑의 본사가 위치한 곳으로 빌리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막스마라, 던힐, 페라가모 등 약 100여 개의 명품 부티크 숍들이 있다. 더블린 킬데어 빌리지 가장 최근에 들어선 빌리지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인기있고 고급스런 패션 및 가정 용품을 판매하는 쇼핑의 중심지로 급성장했다. 더블린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 파리 라 발레 빌리지 프랑스 패션계의 중심지인 파리와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35분 거리이며, 파리 디즈니랜드 리조트 옆에 위치해 있다. 약 90여 개의 명품 브랜드 부티크들이 입점해 있다. 바르셀로나 라 로카 빌리지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코스타 브라바Coasta Brava 해변 도로에 위치해 있으며, 스페인의 파루트스Farutx와 로에베Loewe 등의 제품을 한국의 절반가에 구입할 수 있다. 마드리드 라스 로사스 빌리지 마드리드 중심에서 외곽으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스페인의 유명 디자이너인 안토니오 미로Antonio Miro, 안드레 사르다Andre´s Sarda, 로에베Loewe 등의 브랜드가 유명하다. 프랑크푸르트 베르트하임 빌리지 프랑크푸르트 도심에서 약 1시간 거리, 로맨틱가도Romantic Road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그너Bogner, 발리Bally, 라코스테Lacoste 등의 실용적인 패션 브랜드 제품들이 많다. 뮌헨 잉골슈타트 빌리지 독일 바이에른주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뮌헨에서 50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저먼 스트렌세German Strenesse, 아이그너Aigner, 엠씨엠MCM 등 100여 개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비우티풀Biutiful>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뷰티풀Beautiful을 스페인식으로 받아 적은 것이다. 다른 유럽과는 달리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발달해 온 스페인 사람들의 직관성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역사를 관통하며 무엇이든 스페인식으로 소화해 버리는 그들의 당당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800년 이슬람이 남긴 것 Sevilla 세비야 Cordoba코르도바 Granada그라나다 유럽에서 몇년을 살 수 있다면 그 선택은 당연히 스페인이다. 언젠가 긴 여행의 중반에서 스페인에 눌러 앉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당시 스페인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한달 반 정도였지만 마드리드 이남의 도시들은 가보지도 못했었다. 어느 도시를 가도 그대로 머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회가 왔을 때, 선택은 당연히 스페인의 남쪽이었다. 세비야Sevilla, 코르도바Cordoba, 그라나다Granada. 이슬람 세력이 지배했던 800년 동안 가장 번성했던 도시들, 스페인 친구들도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했던 그 도시들이었다.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이 태양인지 파란 하늘인지 알 수 없었다. 세비야의 강에 뜬 유람선도 오후의 난반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도시의 유람선이야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풍경이지만 세비야는 내륙으로 무려 87km나 들어와 있는 과달키비르강江의 상류 도시다. 그래도 배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강이 깊고 넓었기 때문에 도시는 중요한 무역항으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강변 산책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 눈에 띄는 황금탑Torre del Oro도 13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시작한 기점도 이곳이었고, 콜럼부스가 머물면서 항해를 준비했던 곳도 세비야였다. 그렇게 중요한 도시를 이슬람에게서 되찾은 스페인은 그 세를 과시하고 싶었다. 1248년 모든 부와 권력을 집중해서 지은 세비야 대성당은 지금도 세계에서 3번째로 크고, 고딕양식의 성당으로는 가장 크다. 성당에 안치된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무덤은 그 어떤 왕의 무덤보다 화려하다. 에스파냐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의 네 모서리를 메고 있는 모습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평생 아버지의 업적을 정리하고 연구했다는 아들 페르난도 콜럼부스의 무덤도 성당 안에 있다. 고딕양식,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을 헤아려가며 성당을 둘러보느라 지친 사람들은 오렌지 나무가 도열한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 모스크의 연못이 있던 곳이었다. 아직 여력이 남은 사람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이슬람 사원의 탑을 개축한 히랄다 종탑Torre de la Giralda에 올라갔다. 땀 흘려 쟁취한 98m 높이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은 그만큼 달콤했다. 세비야 대성당에 비하면 코르도바의 대성당Cordoba Mezquita은 모스크의 원형에 더 가깝다.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은 이슬람 제국은 6세기에 지어진 성 빈센트 바실리카를 허물고 그 자리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모스크 ‘메스키다’를 세웠다. 4,000여 개의 기둥이 시야를 가리고 천장도 낮지만 사실은 세비야 대성당보다 면적이 넓다. 한번에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성당으로 용도가 바뀐 이후에도 큰 훼손 없이 사용되다가 카를로스 5세에 이르러 200개의 기둥을 뽑아내고 돔을 설치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정교한 아랍 문양에 푹 빠져 있다가 뒤로 돌아서면 화려한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이 펼쳐진다.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거점은 그라나다였다. 알바이신의 언덕 위에 거대한 아랍인 주거지역이 먼저 형성되었고 1238년에 왕과 귀족들의 거주지로 아람브라Alhambra궁전이 만들어졌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도 한 아람브라궁전은 아랍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되는데 이름만 듣고 우아한 하나의 건물을 기대했다가는 낭패를 맛보게 된다. 평균 관람 시간만 무려 3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은 요새이자 수천명의 귀족들이 살았던 주거지였다. 아람브라는 사실 건축학적인 가치보다는 치수의 지혜, 높은 지대까지 물을 끌어 사용했던 아랍인들의 발달된 관개 기술이 돋보이는 장소다. 지금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궁전 곳곳의 분수와 샘, 연못은 이슬람세력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람브라를 찾는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나스리드 궁전Nasrid Palaces은 재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일행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다 보니 군주의 별장이자 정원인 헤네랄리페Generalife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칠 때로 지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꽃향기가 전달되는 높이까지 계산해서 디자인했다는 그 정원에서 아름다운 알바이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언젠가 스페인에 살게 된다면 바로 저 마을을 선택하게 될 것만 같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람브라 궁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관개기술의 발달이다. 고지대에 세워진 요새임에도 항상 물이 풍부했다 2 <아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고 있던 코르도바의 거리 음악가 3 투우와 플라멩고로 유명한 세비야의 투우장 돈키호테로 살어리랏다 Toledo톨레도 Consuegra 꼰수에그라 성서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은? 답은 우기기 나름이다. <이솝우화>, <그림 형제 동화집>이 단골로 언급되고 <안네의 일기>나 <영웅문>도 유력한 후보인데다가 지인 중 한 명은 쥘 베른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페인에 오니 그 ‘정답’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1547~1616년가 지은 <돈키호테Don Quijote>로 모아지고 있었다(원제는 <재기 발랄한 향사鄕士 라만차의 돈키호테>다). 그러면 또 하나의 질문. <성서>와 <돈키호테>의 공통점은? 끝까지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캐릭터 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탐독하던 ‘키호테’라는 사람이 급기야 자신을 기사라고 착각하며 볼품없는 말 로시난데, 시종 산초 판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그의 착각 속에서 벌어지는 일.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슈렉>처럼 반전의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유쾌한 풍자소설이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사실 52장의 전편 중에서 초반에 불과하고 속편까지 출판됐다. 저자 세르반테스의 삶은 키호테의 ‘착각일지라도 행복했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레판토 해전에 참가해 부상을 입은 그는 귀국길에 해적에게 잡혀 5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우여곡절 끝에 마드리드 근처의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1605년 소설 <돈키호테>를 발표했다. 작품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인세 계약을 하지 않아 돈을 벌지 못했다. 후에 그는 74장 분량의 돈키호테 속편을 발표했으나 이듬해인 1616년에 기구한 생을 마쳤다. 그가 죽은 4월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인데 우연히도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같은 날 사망했다. 소설 <돈키호테>의 주 무대는 지금의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이다. 도시를 이동하다 보니 우연히도 ‘루타 데 돈키호테’, 즉 ‘돈키호테의 길’이라는 테마여행코스를 지나가게 되었다. 푸른 기와를 이고 있는 하얀 회벽집들이 인상적인 작은 마을 푸에르토 라피세Puetro Lapice에는 돈키호테가 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던 여관 ‘벤타 델 키호테Venta del Quijote’가 있다. 벽에는 ‘돈키호테가 이곳에서 묵고 나서 투구와 갑옷 차림으로 만족스럽게 걸어 나왔다’라는 구절이 붙어 있었다. 돈키호테는 이곳에서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동물의 내장을 넣은 달걀부침’를 시켜 먹었다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라만차 와인을 즐긴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바닥을 깊게 판 넓은 저장고와 대형 와인통을 발견할 수 있다. 더 이상 묵어 가는 손님은 없지만 돈키호테에 대한 팬심으로 기념품을 구입하는 손님들로 마을 전체의 생업은 세르반테스에게 단단히 빚을 지고 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해서 싸움을 벌였던 그 풍차들은 콘수에그라Consuegra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낡은 풍차일 뿐이지만 주변의 광활한 평원과 어우러져 스페인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풍경이다. 실제로 돈키호테 소설의 배경이 된 풍차는 다른 곳에 있다고 했지만 풍차의 모양은 거기서 거기인 반면, 풍경은 콘수에그라가 최고인지라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훼손된 상태로 오래 방치된 듯한 이슬람의 콘수에그라 성은 한창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더 멋진 그림을 기대해도 좋다. 돈키호테가 로시난데를 타고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그 ‘카스티야라만차’주의 주도는 톨레도다. 우리로 말하면 경주쯤 될까, 8~15세기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던 도시다. 현대식 건물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는 아랍 군주의 거주지였던 알카사르를 정점으로 고깔 모양으로 층층이 퍼져 있고, 타호 강Rio Tajo이 그 주변을 휘감아 돌면서 천연의 요새를 만들고 있었다. 도시로 들어가기 전 멈춰선 전망 포인트에서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풍경에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고딕성당이라고 불리는 톨레도 대성당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종교를 강요하거나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톨레도는 ‘스페인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유적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성당은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귀중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했던 엘 그레코의 작품은 물론 고야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으며 화려한 제단 장식이나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성체현시대는 이미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새로운 스페인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갱신되는 흥분이 모험에 나선 돈키호테의 마음이었을까. 끝없는 메세타이베리아 반도 중앙부의 대고원를 원 없이 달리고 싶은 충동이 더 깊어지기 전에 라만차를 떠나야 했다.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도시 톨레도 ▶travie info 벤타 델 키호테 세르반테스가 이용했던 여관으로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가 됐다. 소품과 인테리어 등으로 당시 분위기를 재현했고, 직접 만드는 와인과 돈키호테 관련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2층은 객실이었지만 지금은 투숙객을 받지 않는다. 주소 EI Molino, 4 Puetro Lapice(Autovia de Andalucia) 문의 926-57-6110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1시(바), 오후 1시∼오후 5시, 오후 8시∼밤 12시(레스토랑) 찾아가기 마드리드 남부 버스 정류장 Estacion de Autobus Sur 역(지하철 Mendez Alvaro 역)에서 Jaen 방면으로 가는 버스 이용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Puetro Lapice에서 하차. 버스 시간 문의 91-530-4800 1, 5 돈키호테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관 ‘벤다 델 키호테’의 오래된 나무 대문과 와인저장고가 있는 바bar 2 푸에르토 라피세 마을에서는 다양한 돈키호테 기념품을 구입 할 수 있다 3 톨레도 대성당의 성모상 4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소 모양의 대형 간판들을 종종 스쳐 지나간다 6 돈키호테가 괴물로 착각하고 결투를 벌였던 꼰수에그라의 풍차들 고야의 빛과 그림자 Madrid마드리드 Zaragoza 사라고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허락된 시간은 단 한 시간. 마치 단거리 경주에 나서듯 신발끈을 동여매고 속사포로 설명을 난사하는 가이드 수피아씨를 따라다녀야 했다. 그곳의 수많은 보물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년의 <개The dog>였다. 고야의 다른 그림과는 다른 화풍으로 의혹을 사기도 했던 이 그림에는 모래 언덕 위로 목만 빼꼼이 내놓은 휑한 눈의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마치 노년의 고야 그 자신처럼 말이다. 최후의 고전주의 작가이자 최초의 현대작가로 불리우는 그의 예술적 전이는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 민군을 총살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1808년 5월3일The Third of May 1808>에서 시작된다. 초상화를 잘 그려서 왕실 화가로 이름을 날린 고야는 이 작품을 계기로 민중 화가로 추앙받게 된다. 하지만 노년에 고야의 삶은 암울했다. 마흔 중반에 청각을 상실했으며 노후에 마드리드 근처의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고야가 자신의 집에 그린 벽화들은 마치 귀신을 본 듯 공포에 질린 표정의 검은 군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블랙 페인팅’이라고 불리는 그림들이다. 그중에서도 <자기 아들을 먹어 치우고 있는 새턴Saturn devouring his Child>은 끔찍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후기 작품 중 가장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고야의 고향이 바로 사라고사다. 사라고사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돌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태풍이라도 왔나 싶을 만큼 퍼붓던 비는 10분 후 거짓말처럼 개이더니 하늘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고야의 삶처럼 빛과 어둠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그런 날씨였다. 사라고사에 있는 고야의 생가, 사라고사 뮤지엄, 이베르카 카몬 아즈나르 뮤지엄Ibercaja Camon Aznar Museum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거대한 바로크 스타일의 필라르 대성당Basilica del Pilar에 있는 레지나 마티럼Regina Martyrum돔의 천장화 역시 고야의 작품이다. 이 성당에는 기도를 이루어 준다는 옥으로 된 성모상이 있는데, 그 앞에서 깊은 슬픔에 잠긴 한 노부부를 만났다. 그 처연한 표정은 사연 모르는 이방인들까지 숙연하게 만들 만큼 날카로운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 감정이 지금 내 방에 걸려 있는 고야의 <개>를 볼 때마다 오버랩되곤 한다. 사라고사의 랜드마크이자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가톨릭 순례지 중 하나인 필라르 대성당. 고야가 그린 천장화를 볼 수 있다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 산 Montserrat 몬세라트 Barcelona 바르셀로나 누군가 볼 때마다 시루떡이 연상된다고 했던 몬세라트Tot Montserrat는 톱니바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바위산이다. 4,000만년 전에 융기된 해발 1,200m 산의 모습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바위투성이 산의 정상부에 베네딕트수도원이 만들어진 이유는 이곳이 유서깊은 기도장소였기 때문이다. 1,000년 전부터 시작된 순례의 행렬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검은 성모상 ‘라 모레네타’가 발견되면서 더욱 길어져서 지금까지도 끊어질 줄 모른다. 두어 시간 거리인 바르셀로나에 살았던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 Cornet, 1852~1926년도 틈만 나면 모세라트를 찾아왔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몬세라트에 와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아예 바르셀로나의 중심에 몬세라트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바로 바르셀로나의 명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족대성당 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다. 스페인 교회 건축 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폴라 델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1년 반 후에 안토니 가우디의 손에 넘겨진다. 그후 43년 동안 가우디는 역사에 길이 남을 독창적인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일생을 쏟아 부었다.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 내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마치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로 뻗어 올라간 듯한 모습의 기하학적인 기둥들이다. 직선이 아니라 자연물의 형상, 그 곡선만을 사용한 가우디 원칙들이 반영된 결과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 구엘 공원Pavellons Guell 등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에서 그 고집스러운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기업체의 도움 없이 오로지 신자들의 헌금으로만 세우기 원했기에 재정 문제는 언제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고로 죽고 말았지만 성당은 아직도 그의 청사진에 따라 무려 130년 동안 여전히 ‘공사 중’이다. 전체 공정 중 절반 정도가 완성되었을 뿐이라지만 몇년 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면 내부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어 지난 2010년 7월에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모시고 축성식을 가졌다. 15년내에 완공하는 것이 바르셀로나 시의 계획이다. 1 가우디는 직선을 배제하고 자연물의 형상과 곡선만을 사용했다.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구엘 공원 2 몬세라트 산에서 내려온 기운이 한데 모여 정점을 이룬다는 성당 안뜰 3 가우디는 몬세라트의 기괴한 모습에서 착안해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디자인했다 취재협조 에미레이트항공 www.emirates.com 페가수스 코리아 02-733-3441 ▶travie info 1 아람브라 안에 있는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 2 스페인식 애저 바비큐 요리 ‘코치닐요’ 몬세라트Tot Montserrat 몬세라트로 올라가는 꼬불꼬불 산악도로의 전면 도로는 10km, 후면도로는 13km다. 주말에는 주차장이 만원이 경우가 많으므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 수도원에는 뮤지엄, 레스토랑과 기념품점 그리고 호텔까지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에스꼴라니아라는 소년합창단Cor de I’Escolania으로도 유명한데 미사 시간을 맞춰서 가면 합창을 들을 수 있다. 문의 (0034)93-877-77-77 www.montserratvisita.com Travel to Spain 항공편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하면 두바이를 경유해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지로 여행할 수 있다. 인천-두바이 구간을 운행하는 에어버스 A380 기종은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최첨단, 초대형 기종. 인천-두바이 구간은 9시간 30분, 두바이-마드리드 구간은 8시간, 두바이-바르셀로나 구간은 7시간 가량 걸린다. 문의 02-2022-8400 www.emirates.com 두바이 시티투어 두바이에서 스톱오버를 신청해서 두바이 시티 투어(42달러), 사막 투어(99달러) 등을 경험하는 것도 색다른 여행이 된다. 에미레이트항공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정보와 스톱오버 안내책자를 다운받을 수 있다. 투어 문의 아라비안 어드벤처 +971-4-303 4888 aadops@emirates.com 스페인 일주상품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하는 ‘스페인·포르투갈+바르셀로나 일주 10일’ 여행패키지 상품이 10월부터 10개 여행사 연합으로 시판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출발하는 이 상품은 11월 말까지 239만원의 특가로 한진관광, 투어2000, 레드캡투어, 투어몰, 자유투어, 노랑풍선, 참좋은여행, 하나투어, 온라인투어, 롯데관광에서 예약할 수 있다. 야디네스 알베르토Jardines alberto 그라나다의 유서 깊은 카르멘(정원과 채소밭이 있는 별장식 하우스)을 개조한 레스토랑으로 야외 테이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다. 커피 한잔과 함께 피오노노Pionono라는 그라나다의 전통 디저트도 별미다. 아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 헤네랄리페 입구 쪽에 위치해 있다. 3가지 코스에 와인이 곁들여 나오는 세트메뉴는 30~45유로. 주소 Paseo de la Sabika nº 1, 18009 Granada 문의 (0034) 958-221-661 www.jardinesalberto.es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Parador de Granada 그라나다의 아람브라 궁전 안에 있는 성프란치스코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로 스페인 국영 호텔 중 최고로 알려져 있다. 그라나다 수복 후 세워진 수도원 건물의 고풍스러운 멋과 특별한 위치 때문에 여행자들이 꿈꾸는 숙소지만 객실이 40여 개밖에 되지 않아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아람브라와 그라나다의 야경을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주소 Real de la Alhambra, s/n, 18009 Granada, Spain 문의 (0034) 958-22-1440 www.parador.es 팔라시오스Palacios 5kg 정도의 크기으로 자란 새끼 돼지로 만드는 애저 바비큐 요리 코치닐요Cochinillo를 먹을 수 있는 곳.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다. 팔라시오스는 레스토랑뿐 아니라 호스텔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싱글 요금은 30~45유로, 더블룸은 50~80유로 사이다. 주정강화와인인 셰리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고 남은 계란 노른자를 이용한 디저트인 플란Flan도 맛볼 수 있다. 주소 C/Navarro Ledesma, 4 45001 Toledo 문의 (0034) 925-28-0083 www.hostalpalacios.net 안달루 라 토레 데 오로Andalu la Torre de Oro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 있는 투우 테마의 바Bar. 가게 안에는 스타 투우사들의 사진과 희생된 소의 머리 박제 그리고 스페인 생햄인 하몬이 같이 걸려 있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 주소 Er 26 de la Plaza Mayor Calle del Arcode Triunfo, 28012 Madrid 영업시간 오전 10시∼새벽 2시 문의 (0034) 913-66-5016 La Torre del Oro 타블라오 엘 팔라시오 안달루스Tablao El Palacio Andaluz 세비야 최고의 플라멩고 디너쇼를 감상할 수 있는 곳. 공연은 하루 두 차례, 매일 저녁 7시와 7시30분에 시작되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며 와인이 곁들여진 코스 정찬이나 타파스를 선택할 수 있다. 오페라 카르멘의 일부 장면도 플라멩고로 선보인다. 문의 (0034) 954-534-720 www.elpalacioandaluz.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①프랑스 리옹, 안시,샤모니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①프랑스 리옹, 안시,샤모니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파스텔톤 건물들, 벽돌 깔린 좁다란 골목길, 1년 내내 보수 공사 중인 중세 성당. 유럽의 흔한 마을 풍경이다. 허나 그 안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삶의 결은 가지각색이니, 그 틈 속을 유영하며 각 도시의 매력을 탐닉하는 것이 유럽 여행의 매력일 터. 프랑스의 론알프스, 이탈리아의 파르마와 친퀘테레에서 먹고 마시고 풍경을 만끽하는 여행을 즐겼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France Lyon리옹 프랑스의 풍요로운 식탁을 엿보다 프랑스 동남부 론알프스Rhone Alpes 지역을 여행한다면 파리가 아닌 리옹Lyon을 기점으로 잡는 게 좋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산동네로 가기에 앞서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서 파리 못지않은 문화유산과 세련미를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파리에서 리옹까지 TGV를 타고 온 2시간 기차길이 피곤치 않았던 이유도 미식의 나라에서도 으뜸간다는 미식의 도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리옹 파르디외Part Dieu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수백년의 역사를 겹겹이 머금고 있는 역사지구로 향했다. 먼저 가파른 산턱을 오르는 푸니쿨라 열차를 타고 해발 281m 높이의 푸르비에르 언덕으로 향했다. 비잔틴 양식의 탑이 견고히 버티고 있는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은 여느 유럽의 성당이 그러하듯 내부공사가 한창이었다. 성당의 오른쪽에는 론강과 손강이 사이좋게 흐르는 도심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맑은 날이면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까지 보인다고 한다. 언덕 비탈길 중턱에는 4세기 로마극장의 뼈대가 남아 있다. 과거 로마의 식민도시였으며 갈리아 지방의 수도로 명성을 떨친 리옹의 옛 흔적으로 중세시대를 거치며 파괴됐던 극장은 20세기 들어 원형을 복원해 축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평지에 이르자 수세기 동안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리옹의 면면을 볼 수 있는 역사지구 골목길이 나타났다. 기뇰 인형극이나 리옹이 낳은 스타 생떽쥐베리와 뤼미에르 형제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것을 포기하고 리옹의 미식을 즐기기 위해 벨르꾸르 광장Place Bellecour 쪽으로 들어섰다. 좁다란 골목은 찬란한 햇볕을 맞으며 리옹의 가정식, 부숑Bouchon을 즐기는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기뇰 인형으로 실내를 꾸민 한 식당에서 한국에서도 친근한 재료로 만든 푸짐한 음식들을 즐겼다. 채소와 계란 반숙, 햄이 어우러진 리옹식 샐러드, 와인과 치즈로 버무린 소곱창, 매콤한 해산물 찜, 소발바닥 무침, 피스타치오가 곁들여진 소시지, 여기에 하우스와인까지. 프랑스 음식은 너무 창의적이어서 도전하기 힘들다는 이방인의 편견은 리옹에서 보기 좋게 무너졌다. 1 리옹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대표적인 미식 도시다. 가정식 레스토랑을 일컬어 부숑Bouchoun이라 한다 2 푸르비에르 언덕에서 내려다본 리옹의 도심 풍경. 리옹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기뇰Guignol 끈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극으로 리옹 곳곳에서 인형을 볼 수 있고, 라 메종 드 기뇰La Maison de Guignol 등에서는 인형극을 무료로 관람할 수도 있다. 부숑Bouchon 리옹의 전통 가정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채소와 소시지, 오리, 돼지고기 등 현지에서 생산된 재료를 활용하며 다소 기름진 것이 특징이다. 리옹관광청 웹사이트에서 부숑을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다. www.en.lyon-france.com ●France Annecy안시 산과 호수가 껴안은정겨운 마을 안시Annecy는 2018년 동계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고배를 마신 도시다. 그러나 고작 겨울스포츠의 도시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도시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서정적인 도시로 꼽는 안시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안시호수와 알프스 산맥이 조화를 이룬 호젓한 풍경에 더해 중세 건축물과 고요한 운하까지 있어 느긋한 휴식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스키 브랜드 살로몬Salomon,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Millet, 주방기구 테팔Tefal 등이 안시에서 시작됐다 하니 어딘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국경 없는 자본 세계에서 우리는 이런 식의 소통에 익숙해져 있다). 안시에 도착한 것은 태양이 호수 반대편 산봉우리를 붉게 색칠하고, 상점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잠들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호텔 잠자리가 아닌 ‘잠자리Libellelue’라는 뜻을 지닌 디너크루즈에 탑승하기 위해 항구로 갔다. 안시성을 뒤로하고, 호수 위를 유유히 흐르며 낭만적인 음악과 함께 정찬을 즐기는 크루즈였다. 달콤한 프랑스식 와인 칵테일 키르Kir부터 애피타이저로 나온 달팽이 요리, 대구살과 튀김이 곁들여진 메인코스, 여기에 프랑스 시골동네여서 더 어울리는 흘러간 미국 팝송을 들으며 달빛이 흐르는 호수의 정취를 만끽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구시가지 산책길에 나섰다. 마침 매주 세 번씩 서는 장이 펼쳐졌고, 집에서 만든 소시지와 치즈, 신선한 야채를 가지고 나온 상인들과 장바구니를 들고 모인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아침의 선선한 공기에 싱싱한 야채, 과일 냄새, 짭쪼름한 치즈 냄새에 사람 사는 냄새까지 더해진 풍경은 정겹고 따뜻했다. 안시에는 대형 슈퍼마켓도, 유명한 체인 빵집도 없다. 그저 농부들과 상인들이 애정과 자존심을 담아 길러내고 만들어낸 사람 냄새 나는 먹거리와 생활용품들이 또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북적이는 시장통을 벗어나 안시의 상징 ‘팔레드릴Palais de l’isle’로 향했다. 호수 위에 반영된 모습이 더욱 아름다운 이 건물은 12세기 성주의 집이었다가 이후 행정관청, 감옥 등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꾸며진 실내에 들어가 보니 약 10도 정도 기울어진 침상이 있었다. 불과 지난 세기까지 프랑스인들은 심장이 발과 같은 높이에 있으면 죽을까 봐 이렇게 잠을 청했다고 한다. 자는 순간까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습속은 어디 간들 닮아 있는 것이다. 안시를 둘러본 여행자들은 구시가지 건물들과 산과 호수로 어우러진 도시의 풍경이 스위스나 이탈리아의 소도시를 닮았다고 말하곤 한다. 15세기부터 프랑스 혁명때까지 약 3세기 동안 사보이가Saboy家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의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으니 당연하다. 3 운하 위에 비친 팔레드릴의 모습이 신비감을 일으킨다 4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오르는 안시호수 주변의 평화로운 풍경 5, 6 안시에서는 수시로 시내 중심가에 재래시장이 펼쳐진다. 신선한 야채, 가정에서 만든 치즈, 소시지 등을 구입할 수 있다 ▶travie info 사보이Savoy 11세기를 전후해 지금의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 북부, 스위스 제네바 등을 통치했던 왕가. 알프스 이남 지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디너 크루즈 안시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품위 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메뉴 종류에 따라 50유로(메인 요리+디저트 혹은 애피타이저)부터 82유로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www.annecy-croisieres.com ●France Charmonix샤모니 산을 동경하는 이들의 궁극의 성지 스쳐가기엔 아까운 도시 리옹과 안시를 거쳐 유럽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이 있는 산악마을 샤모니Charmonix로 향하는 길, 기차 속에서 설렘과 기대감은 더욱 높아져 갔다. 샤모니로 가는 관문, 생제르베 레 벵Saint Gervais les Bains 역에서 널찍한 창으로 알프스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지역열차로 갈아탔다. 자전거를 타거나 혹은 몸체만한 등산배낭을 멘, 혹은 암벽등반용 로프를 어깨에 짊어진 여행자들이 하나둘 기차에 올라타자 유럽의 지붕으로 향하는 흥분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마치 메카로 몰려가는 비장한 무슬림의 틈에 끼인 이교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샤모니몽블랑역에 도착하자마자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나는 ‘그저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산꾼은 아니기에 몽블랑(4,810m)에서 가장 가까운 봉우리 ‘에귀 뒤 미디Aguille du midi’에 올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겹겹의 봉우리를 볼 요량이었다. 50명을 빽빽히 채운 케이블카는 순식간에 3,842m 정상으로 치달았다. 전망대에는 어린이부터 휠체어를 탄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 다국적 관광객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알프스 봉우리와 그 위를 개미떼처럼 오르고 있는 산악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스위스 쪽의 알프스와 캐나다 로키산맥을 올랐던 경험을 떠올리며 몽블랑을 비교해 보니 풍경 그 자체보다도 빙하 위를 걷는 산꾼들이 많다는 것이 달라 보였다. 정상에 오르니 이 ‘성스러운 산’을 그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휙 보고 내려가기 아깝다는 생각이 밀려 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왔다는 30대로 보이는 등산객에게 물었다. “몽블랑은 어떻게 오게 됐지?” “평소에 등산을 좋아했고 몽블랑을 오랫동안 동경해 오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왔지.” “그럼 이제 돌아가는 길인가?” “아니 오늘까지 4주째인데, 일주일 더 있을 계획이야. 몽블랑은 지독한 매력을 가진 산이거든.” 부럽기 그지없는 답이 돌아온다. 나름 ‘아웃도어맨’을 자처하는 나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탓에 아쉬움을 무릅쓰고 샤모니 마을로 돌아왔다. 4주 휴가는 없었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몽블랑에서 불어오는 공기를 쬐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샤모니에서 빙하 트레킹, 패러글라이딩, 스키와 같은 거친 아웃도어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길 만한 ‘소프트한’ 아웃도어도 많다. 샤모니 마을을 순회하는 꼬마열차를 타고 관광을 즐기거나 루지, 미끄럼틀 등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는 샤모니 레저파크도 있다. 물론 국내 테마파크나 디즈니랜드 수준을 생각하면 실망할 것이다. 유럽 최고봉 몽블랑을 바라보며 아기자기한 재미를 누린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게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샤모니 몽블랑은 산악 여행자들의 성지다. 다른 여느 알프스 산보다 등산가들이 많은 것은 최고봉 몽블랑이 있기 때문이다 2 한여름에도 설산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의 샤모니 마을 3 샤모니 몽블랑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가파른 능선을 타고 몽블랑 꼭대기까지 올라 볼 수도 있다 ▶travie info 아귀 뒤 미디Aguille du midi 케이블카 샤모니에서 아귀 뒤 미디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는 성인 기준 왕복 31.40유로다. 이외에도 해발 1,913m의 몽땅베르Montenvers로 가는 산악열차, 생제르베Saint Gervais에서 출발해 해발 2,372m의 에이글Nid d’Aigle로 향하는 열차, 길이 20km에 달하는 빙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까지 가는 기차도 있다. www.chamonix.com 취재협조 레일유럽 www.raileurope.co.kr, 시크아울렛 www.chicoutletshopping.com/ko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朴 “국회의원 후보선출 경선 법제화”

    朴 “국회의원 후보선출 경선 법제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6일 오전 발표 전까지 수위를 놓고 밀고 당겼던 ‘박근혜표 정치 쇄신안’은 국민의 눈높이와 실천 가능성을 절충한 방안으로 볼 수 있다. 국민 눈높이와 ‘안철수 현상’을 고려하면 더 강력한 개혁안을 내놓아야 하지만 실천을 담보하자니 ‘깜짝 카드’를 제시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내용 파괴력에서는 약하고 오히려 시간을 끌다가 정치 개혁 주도권을 야권에 빼앗긴 ‘타이밍 실기’만 더 도드라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야권 단일화의 ‘맞불 카드’로 만지작거렸던 개헌론도 ‘집권 후 4년 중임제 논의’라는 원칙만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은 “분권 없는 4년 중임제는 임기 연장이며 장기 집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가 실망스럽다고 해도 정치를 없앨 수 없다.”면서 “(정치 쇄신은) 정치를 복원하고 정치가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와의 차별을 시도했다. 박 후보는 정치 쇄신의 큰 줄기로 정당 개혁과 국회 개혁, 민주적 국정 운영, 깨끗한 정부를 꼽았다. 정당 개혁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 후보의 ‘낡은 정치’ 공격에 대한 반론 성격이 엿보인다. 박 후보는 국회의원(지역구) 후보를 여야가 동시에 국민 참여 경선으로 선출하는 방안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야권의 ‘늑장 후보’ 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대선 후보는 선거일로부터 4개월 전, 국회의원 후보는 2개월 전까지 확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기득권 내려놓기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일정 부분 수용했다.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 폐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제한과 불체포 특권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치쇄신특위가 지난달 25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중앙당의 권한 축소와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특권 폐지에 관한 내용 등이 쇄신안에 빠져 기득권 내려놓기에 대한 개혁 의지가 다소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른 개헌에 대해 박 후보는 “대통령 선거용의 정략적 접근이나 내용과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시한부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이(친이명박)계 비주류인 이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쓴 글에서 “정당과 국회, 선거, 검찰, 경제 등의 개혁은 현행 헌법으로는 불가하다. 현행 헌법은 5년 단임제만 빼면 유신헌법의 아류”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내려놓는 권력 구조의 변화가 시대의 흐름”이라면서 “(박 후보와 내가) 갈수록 생각의 차이가 많아진다.”고도 했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JTBC에 출연해 “1987년 이후 25년이 지났는데 근본적으로 내각제로 간다거나 하면 모를까 대통령제에서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가자는 것 자체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朴 “개헌 포함 정치쇄신안 곧 발표”

    朴 “개헌 포함 정치쇄신안 곧 발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일 정치권의 핫이슈로 부각된 개헌론을 포함한 정치쇄신안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내용에 따라 40일 남짓 남은 18대 대선판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박 후보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사회 통합을 위한 하나로 정책포럼’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개헌 질문과 관련해 “정치쇄신안에 대해 제가 곧 발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 내용을 포함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쇄신에 관한 모든 것을….”이라면서 “조만간 하겠다.”고 밝혀 입장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났음을 시사했다. 박 후보는 전날 기자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고 “(개헌 문제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한발 비켜섰다. ●한광옥 “대통령중임·정부통령제 검토를”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은 “이르면 내주부터 정치쇄신안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것”이라면서 “박 후보가 직접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안 위원장은 마라톤 회의를 거쳐 지난달 25일 박 후보에게 4년 중임제 개헌을 포함한 정치구조개혁과 권력기관 신뢰회복 방안 등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가 일주일 이상 고민했다는 점에서 어떤 카드가 나올지 관심이 모인다. 만약 개헌 카드가 제시되면 대선판의 개헌 논의는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박 후보도 국가 정책의 연속성과 책임정치 구현, 부패방지 등을 위해서는 ‘5년 단임제’보다 ‘4년 중임제’가 더 낫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대통령 중임제와 정·부통령제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개헌을 대선 공약에 담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재오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서 “지금의 시대정신은 분권이고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분권형 개헌”이라면서 ‘분권형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이재오, 분권형 개헌 대선공약 채택 촉구 그러나 아직까지 박 후보와 캠프는 개헌에 부정적인 분위기다. 야권이 개헌 이슈를 선점해 주도권을 빼앗긴 데다 개헌 논의가 이뤄질 경우 모든 이슈들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최근 ‘준비된 후보’로서 박 후보가 강조하고 있는 여성 대통령론과 경제·민생 챙기기 행보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얘기다. 한편 국민행복추진위원회는 일자리 대선 공약으로 주요 기업체와 공공기관에 대해 정규직 채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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