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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 세계 알리는 대표작가 2인 릴레이 인터뷰] “나와 자연의 만남이 창작 모태”

    [한국미술 세계 알리는 대표작가 2인 릴레이 인터뷰] “나와 자연의 만남이 창작 모태”

    긴 생머리를 뒤로 질끈 매고 검은 옷을 입은 한국 여성이 걸어오는 대규모의 군중 앞에 그냥 서 있다. 시부야의 일본인들은 그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치지만, 델리와 카이로의 인도인들은 궁금해하며 그의 옷을 만져보기도 한다. ●신사동 에르메스 ‘지수화풍’ 3월28일까지 김수자(53)는 영상 작품 ‘바늘여인’에 대해 “아직 결정적인 완성작이 나오지 않았다.”며 “끝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수많은 인파 앞에서 김수자의 몸은 보따리가 되어 인간들을 싼다. ‘바늘여인’을 찍기 전에 도쿄를 한 시간 동안 끝없어 걸었던 김수자는 시부야에 도착하는 순간 ‘악’ 소리가 내부에서 났고 꼿꼿이 그 인파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많은 설명이 필요없는, 시적이면서 영감을 주는 미술 작품으로 지난 10년간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바빴던 ‘보따리 작가’ 김수자. 3월28일까지 서울 신사동 에르메스 매장 3층 아틀리에에서 열리는 ‘지수화풍(地水火風·Earth-Water-Fire-Air)’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한다. ●‘바늘여인’은 아직 미완… 시리즈 계속 지난해 스페인 카나리아 군도 란자로테 섬의 사화산과 과테말라 파카야 활화산을 촬영한 자연풍경은 그 자체로 관객을 압도한다. 파도가 절벽을 때리자 무지개가 생겨났다 사라지고, 부글부글 타는 용암은 서서히 회색의 재로 변한다. 그의 예술적인 강렬한 에너지의 근원은 “바늘 끝을 처음 천에 댔을 때”다. 어머니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고 우주적 에너지의 충격을 느꼈다는 김수자는 인간의 몸, 주변, 이불보, 보따리 등을 사용한 기존의 작업도 “나와 자연의 만남”이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에만 김수자는 모스크바 비엔날레, 후쿠오카 비엔날레, 그리스 테살로니키 비엔날레, 시드니 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이번 신작 역시 스페인 란자로테 비엔날레와 에르메스 재단이 공동 제작했다. 지난해 비엔날레를 너무 많이 해서 올해는 좀 쉬엄쉬엄할 생각이다. ●“검정 안에 있을 때 편해… 예술 자체가 철학”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전시회를 하지 못할 정도로 전 세계 비엔날레에서 앞다퉈 김수자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를 제작한 에르메스 재단 측은 “동양적인 것을 드러내지 않고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다른 방식으로 다루기 때문에 서구에서 김수자의 작업에 훨씬 흥미로움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철학적인 작업을 하지만 작가는 지난 10년간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는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본질적인 인간의 질문, 세계에 관한 질문을 하다 보니 스스로 나 자신의 ‘콘텍스트(문맥)’를 갖게 됐다.”며 “예술하는 자체가 철학의 행위와 분리하려야 분리할 수 없지 않을까요? 모든 것이 자신과 세계에 관한 질문이니까요.”라고 검은 옷을 입은 김수자는 수도자처럼 자근자근 말했다.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한 김수자는 “검정 안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수많은 원색이 섞이면 결국 검정이 된다고도 했다. 스님과 선문답을 하는 듯한 김수자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신사동 명품거리로 나서자 역설적이게도 ‘지수화풍’이란 뷰티숍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정가 빅7 새해승부수]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가 빅7 새해승부수]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매경한고 발청향(梅經寒苦 發淸香).’ 매화는 혹독한 추위의 고통을 이겨내야 맑은 향기를 풍긴다는 뜻이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새해 벽두에 부산 범어사 주지 정여 스님에게 받은 글귀다. 정 대표는 ‘정치 선진화’로 화답했다. 2010년을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차기 대선을 향한 의지도 담겼다. ●정무능력·리더십 한계 극복해야 정 대표는 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정치 변화의 계기를 놓치지 않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무소속 생활을 청산하고 입당한 지 1년6개월 남짓 만에 집권 여당의 리더가 된 정 대표의 고민이 묻어난다. 대표직을 승계한 지 120일을 넘기는 동안 국회 파행과 당내 계파 갈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정치문화를 바꾸는 데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당내 당헌·당규 특위가 더욱 속도를 내는 것도 정 대표의 의중에 따른 것이다. 정 대표에게 2010년은 정치적 명운을 건 ‘혹독한 추위’로 와닿고 있다. 격랑 속에 명실상부한 집권 여당 대표로서 무게중심을 잡느냐가 관건이다. 차기 주자로서의 입지 확보와도 직결된다. 하지만 ‘맑은 향기’를 기대하기엔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다. 새해 들어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현 지도부 체제로는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정 대표의 정무적 능력과 리더십의 한계도 거론된다. 지난해 말 대통령과 여야 대표간 3자회동을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제안했다가 자진 철회한 게 뼈아프다. 정 대표는 조기 전당대회와 관련해 “당원들의 뜻에 따라 필요하다면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직 대표로 거듭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숨가쁜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본인의 변화된 모습을 당 안팎에 각인시키기에 시간이 충분치 않다. 하지만 도전은 응전을 부르는 법이다. 새해 들어 정 대표는 더욱 보폭을 넓히고 있다. 1일 당 신년인사회를 시작으로 2일에는 정치적 고향인 울산을 방문하고, 3일에는 부산 범어사를 찾았다. ●당원 정기자원봉사 국민곁으로 지난 4일 새해 첫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또 그런 마음 자세를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 매월 둘째주 화요일 아침에 당원들이 자원봉사를 하자.”고 깜짝 제안했다. 조윤선 대변인은 “평소에도 ‘정치는 우리들만의 리그가 돼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 참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고 전했다. 범어사를 다녀온 뒤 정 대표는 ‘청정무애(淸淨無碍)’라는 4자성어를 제시했다. ‘깨끗한 사람만이 당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 대표는 “깨끗함을 유지해 정치가 좀더 당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부연했다. 정 대표가 본인의 정치적 한계를 떨쳐내고 정치 문화의 변화라는 묵은 숙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되는 한 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경남도학생교육원에 활짝 핀 ‘우담바라’ 발견

    경남도학생교육원에 활짝 핀 ‘우담바라’ 발견

    경남 의령군 가례면 경남도학생교육원에 3000년만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로 추정되는 꽃이 만개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30일 경남도학생교육원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계와 조경수를 관리하는 여태일(38)씨가 교육원 본관 계단 양쪽의 곰솔에 핀 2개의 우담바라를 우연히 발견했다.  본관 왼쪽 우담바라는 흰색이지만 오른쪽 것은 전형적인 우담바라라고 일컫는 보라색을 띠고 있다.우담바라가 핀 소나무 줄기부분은 2㎝ 정도이며,우담바라의 크기는 1㎝에 20~30여개의 줄기 꽃이 달려있다.꽃의 크기는 어른 엄지손가락 정도.무엇보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것과 달리 꽃송이처럼 동그랗게 피어 탐스럽게 보인다. 발견한 지 4일이 지난 30일 현재도 발견 당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도학생교육원은 우담바라를 사진으로 찍어 교육원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다.직원들은 말로만 듣던 우담바라를 보고 “신기한 일이 주변에서 일어났다.”며 흥분해 했다.  총무부 직원 박진호(34)씨는 “직원들이 포털 등에서 우담바라 관련 기사와 사진들을 본 뒤 이같이 선명하게 핀 것은 없는 것같다.”면서 “진짜 우담바라인지 전문가와 스님 등에게 진위 여부를 의뢰해 보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눈으로 보면 동그랗지만 사진을 확대해 보면 꽃모양으로 보인다.”면서 “고등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기관인데 교육원에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징조가 아니겠는가.”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그는 이어 “요즘 신종플루로 모든 학교가 비상”이라면서 “우담바라가 학생들이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게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밝혔다.  도교육원에서 근무하는 이종보(49·교사)씨도 “곰솔에 핀 우담바라를 처음 본 것도 행운이지만,아주 선명해 놀랍다.”면서 “학생교육원에 큰 행운이 올 것으로 직원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사진으로만 봐도 행운이 온다는 꽃인데 이번 휴일에 가족과 함께 직접 가서 보겠다.”고 기대했다.그는 “사진을 직접 찍어 컴퓨터 바탕화면에 올려 놓고 매일 보면서 행운을 찾겠다.”고 말했다.  우담바라는 불경에서 여래(如來)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나타나는 3000년마다 핀다는 전설의 꽃이다.이 꽃이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은 상서로운 징조라 일컫는다.식물학상으로는 인도 원산의 뽕나무과 상록교목 우담화를 말한다.  한편으론 학계에서는 가끔 발견되는 우담바라를 풀잠자리의 알이나 곰팡이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최영훈 기자의 ‘댓바람’ 자선냄비 체험기

    최영훈 기자의 ‘댓바람’ 자선냄비 체험기

    한해가 저무는 지난 19일,기자는 구세군측의 협조로 지하철 강남역 메리츠화재 앞에서 거의 한나절을 일일 자선냄비 활동에 나섰다.독자들에게 연말 나눔의 체험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전달해보자는 생각에서 였다.대로변에 서서 목청을 높여본 아주 소중한 체험이었다.이곳을 지났던 시민들은 기자의 엇박자 자선냄비 종소리에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르겠다.처음 체험하는 것도 그렇지만 최소한의 연습마저도 하지않고 댓바람에 나갔기에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아주 어설펐을 것도 같다.  ●구세군과 자선냄비에 대한 3가지 기대  자선냄비 체험 시작 전 기자는 무척 긴장되고 들떠 있었다. “자선냄비에 정을 담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겠지?”,“돈을 넣는 사람들의 표정은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울까.”,“온화한 미소의 중년 부인이 기부를 하면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이왕이면 스님이나 노숙인의 기부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품에 안은 채 아침 일찍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구세군 사관학교로 향했다.구세군 사관학교는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신학교다.군대와 비슷한 곳이라 들었기에 출발 전 열과 오를 맞춘 후 힘찬 구령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는 ‘행사’를 치를 것이라 예상했으나,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실망을 뒤로 한채 한참 수다를 떨다가 수고하라는 말을 끝으로 각자 팀대로 길을 나섰다.명동 삼성 등 목적지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차이가 나서 동시에 출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응당 펼쳐질 거라고 생각한 장면이 없어 아쉬워하는 기자의 뒤로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부르릉~’ 차 속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 가에 귀를 기울였다.평소에도 영혼이나 삶 등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나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예상도 보기 좋게 무너졌다.자식 얘기,유류환급금 얘기부터 “오늘은 좀 잘 돼야 할 텐데….”라는 소망까지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대화였다.점심으론 순대국밥을 먹고,칼칼한 목에 귤 하나,추운 날씨에 차 한잔에 고마워 하는 장삼이사들이다.  벌써 구세군 측에 대한 기대가 두 개나 깨졌다. 군대식 사열과 형이상학적인 대화가 없다니….  ●자선냄비 종소리는 ‘딸랑 딸랑’ 아니었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딸랑딸랑 ‘솔’음의 경쾌한 종소리가 강남역에 울려 퍼진 건 이날 낮 12시부터. “좋아.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해 글로 옮겨주겠어.”그러나 현실은 기대처럼 되지 않았다.‘떨렁떨렁’ 내게 맡겨진 구세군 종을 제대로 울리게 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처음 할 때는 다들 어려워 해요.” 옆에서 지켜보던 사관학생 임정환 팀장은 종 하나 제대로 딱딱 못 맞추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조금 더 가벼운 종으로 바꿔줬다.‘딸랑 딸랑’ 조금은 가벼워 약간 더 높은 음을 내는 종도 어렵긴 매한가지.쩔쩔 매는 기자에게 한 수 지도가 이어진다.“속으로 어떤 음악이나 노래를 부르면서 리듬을 타 보세요.그리고 조금 더 부드럽게 하면서 음의 여운을 살려내는 게 포인트입니다.”  기자 손에서 ‘딸랑 딸락 떨그럭’ 소리만 내던 종이 그의 손으로 옮겨지자 청아한 소리를 낸다.‘딸랑 딸라라랑~’,‘딸랑 딸라라랑~’ 처음 알았다.바로 옆에서 듣는 구세군 종소리에는 여운이 있다는 것을.이제부턴 ‘딸랑 딸랑’이라고 쓰지 않을 테다.  그렇게 한동안 종과 씨름하다보니 벌써 교대시간이 됐다.원래 2시간 간격으로 휴식을 하던 것을 ‘초보’인 기자를 생각해서 이날만 1시간 간격으로 교대를 하기로 했다. “어~전 괜찮은데 그냥 하던 대로 하시죠.”시작 전 내뱉은 이 말이 무색하게 기자는 교대를 원하고 있었다.  ●기부는 종소리를 춤추게 만든다 한 시간을 조금 넘게 쉰 뒤 다시 잡은 종.아까보다 리듬을 타서 종을 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좋아.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어.” 그러나 또 헛된 바람이었다.점심시간이 지난 후라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을 뿐더러,겨우 30분도 채 되지 않아 종을 치던 오른 팔과 손목,날갯죽지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교대 시간 언제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단다. “원래 종치는 게 그래요.처음엔 장단 맞추기가 어렵고 조금 더 지나면 팔이 아프고….저야 이제 익숙해져서 요령이 생겼죠.”  임 팀장이 알려준 요령은 손목을 사용하다가 아프면 팔 전체로 흔들고,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손가락을 움직여 소리를 내라는 것이었다.이처럼 종치는 방법을 달리 하니 훨씬 수월해지면서 기자가 내는 종소리도 왠지 한결 청량해진 듯 하다.  그런데 이번엔 거리에 사람이 너무 적다. “원래 점심때랑 저녁때 사람이 많고 오후 2~5시까지는 사람이 좀 드물죠.” 사람이 적어지니 경쾌하던 종소리도 풀이 죽는다. “이렇게 활동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지치고 힘들 때가 있어요.사람들 호응도 없고 기부도 잘 안 되면 원망스럽기도 하구요.그러다가도 동전 하나라도 주시는 분이 있으면 바로 기운이 납니다.종소리도 다시 커지고요.”  기부가 별로 없자 기운이 빠진다.리듬도 흐트러진다.청아하던 종소리가 풀이 죽는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관심 좀 가져주지.”  그런 찰나 ‘작대기 두개’를 단 군인이 다가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양손에 파지한 후 조심스레 냄비 속으로 투척한다.‘딸랑 딸라라랑~’ 풀 죽은 종소리에 다시 힘이 솟는다. “그래 이 맛이야.” 저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할 맛 난다.  ●난 기자가 아닌가봐~ 오후 4시엔 새침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고운 손을 보인 젊은 아가씨로 인해 흥이 났고,4시 40분엔 무가지를 배포하는 아줌마가 생긋 인사를 한다.5시가 넘자 바로 앞에서 양말을 파는 아저씨가 와 슬쩍 기부를 하고 간다.거의 매일 장사에 앞서 기부를 하는 ‘단골’이란다.  사람이 한껏 많아진 오후 7시에는 중학생 꼬마 숙녀 둘이 와 종을 쳐보겠단다.호기심이 발동했나 보다. “그냥요~저는요….재미있어 보여서 한건데요….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이 꼬마 숙녀의 목소리가 참 낭랑하다.  약 10분 후 중년 남성이 덜렁이며 걸어오더니 냄비 속으로 무언가를 집어 넣으려고 낑낑거린다.자세히보니 ‘지퍼백’에 한껏 담은 동전 수십개였다.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 “정말 감사합니다.복 많이 받으세요.” 종소리가 한층 더 빛난다.그런데 아차 싶다.저 동전들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이날 기자 신분으로 체험을 하고는 있었으나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구세군 일원이 돼 본분을 망각한 듯 싶다. “에이 뭐 글로 못 옮기면 좀 어때.그냥 고마우면 된 거지.”  ●’딸랑 딸라라랑’ 그리고 영원히… 이날 많은 사람들이 강남역에 출동한 ‘자선냄비 1-48호’에 따뜻한 온정을 베풀고 갔다.그런데 또 예상이 틀렸다.기자는 ‘기부하는 사람들이 온화한 인상으로 정중히 다가와 수고많으십니다란 인사와 함께 돈을 넣고는 뿌듯한 미소를 보이며 돌아설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하지만 이것은 책상 앞에서 상상하던 모습에 불과했다.이날 자선냄비를 보듬어 주고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느린 발걸음으로 주저주저하며 왔다가 돈을 넣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번개같이 사라졌다.  “아마 다들 쑥스러우셔 그런 것 같아요.기부가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죠.그냥 저희도 그렇고 자선냄비도 그렇고 편안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꼭 지폐가 아니더라도 주머니 속 1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도 소중하게 쓰일 곳이 많거든요.아니면 저희에게 눈인사 정도만 하고 가셔도 아주 큰 힘이 되죠.”  이날 기자는 집에 돌아온 후에도 ‘딸랑 딸라라랑’ 소리가 귀에 맴돌아 한참동안 잠을 청하지 못했다.새벽 3시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결국 생각해 낸 마지막 문장.  ‘김장훈·문근영만 기부를 하는 게 아니다.’   글 사진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동영상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 [주간HOT] 잘못 찬 ‘지만원’ 잘 찬 ‘한국축구’

    ●지관 스님,어청수 경찰청장 사과 받아들여  17일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이 마침내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어 청장은 ‘종교 편향 논란’으로 인해 불교계와 심한 갈등을 겪었었죠.  이날 지관 스님이 사과를 받아들이기까지 어 청장은 네 번이나 스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촉나라 유비가 ‘참모’인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세 번을 찾아갔다는 중국 고전 삼국지의 고사성어 ‘삼고초려’에 빗대 ‘사고초려’란 말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올해 청룡영화제 주역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스물아홉번째 청룡영화제가 올해도 아주 멋진 ‘가슴 라인’을 드러낸 김혜수의 사회로 20일 진행됐습니다.‘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됐습니다.  이 작품은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문소리·김정은 등의 연기는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같이 열연을 한 김지영은 여우 조연상을 거머쥐었네요.여우 주연상은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이 차지했습니다. ●문근영을 함부로 차지 마라  ‘국민 여동생’ 문근영을 둘러싼 설전이 격했던 한 주였습니다.  사건의 내용은 6년간 거액을 쾌척한 익명의 기부천사가 문근영인 게 밝혀진 뒤 시작됐습니다.그런데 일부 네티즌은 “착한 척은 혼자 다한다.”며 악플을 달았고,보수 인사 지만원씨는 ‘문근영의 가족사를 일부 언론에서 설명한 것을 들먹이며’색깔론과 음모론을 집요하게 제기해 사안이 커지게 됐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인용했네요.“문근영,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한국 축구 ‘제대로’ 살아났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0일 새벽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파드 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와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B조 3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한국은 19년 동안 사우디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니 얼마나 큰 수확을 거둔 것인지 짐작이 갑니다. 더 고무적인 소식은 한국팀이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평을 들은 것입니다.2002년 서울월드컵 때 ‘막내’였던 박지성은 주장 완장을 차고 이근호·이청용 등 ‘젊은 피’들을 훌륭히 진두지휘 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미래가 밝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동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지관스님, 어 청장에 “이제 다 없는 걸로…”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이 17일 ‘종교 편향 논란’을 불러일으킨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과를 받아들였다.이로써 경찰과 불교계간에 100여일간 지속됐던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어 청장은 이날 오후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부적절한 처사로 2000만 불자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다.”고 사과했다.지관 스님은 이에 “이제는 다 없는 것으로 하자.”며 “맡은 일을 잘 해서 국민을 편안하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어 청장은 지난 7월 말 경찰관 2명이 조계사에서 나오던 지관 스님의 차량을 과도하게 검문하는 등 불교를 차별했다는 이유로 인해 불교계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후 불교계는 8월 말 범불교도 대회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사과 ▲어 청장 사퇴 ▲ 시국 관련자 화합 조치 ▲종교차별 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종교 편향’에 강력히 항의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어 청장은 9월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대구 경북지역 불교도 대회에 참석한 지관 스님을 만나려 했지만 면담을 거부당하는 등 양측의 갈등은 오래갈 것으로 점쳐졌다.  불교계가 어 청장의 사과를 받아들임에 따라 이 사안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다. 불교계가 요구한 ‘4가지 요구 사항’이 대부분 해결됐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유감을 표명했고,조계사에서 농성을 하던 ‘촛불 시위자’들도 스스로 조계사를 빠져나와 잠적한 뒤 일부는 경찰에 체포됐다.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종교차별 금지법 제정’을 위한 여야간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3개월을 넘긴 이번 사태는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지관스님 “魚청장과 대학 선후배” 지관스님, 대구 동화사 찾은 어경찰청장 외면 서경석 목사 또 ‘佛 자극’      
  •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고초려’

    어청수 경찰청장은 ‘종교 편향 논란’과 관련,지관 스님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무려 네 번이나 스님을 찾았다.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촉나라 유비가 ‘참모’인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세 번을 찾아갔다는 중국 고전 삼국지의 고사성어 ‘삼고초려’에 빗대 ‘사고초려’란 말까지 만들어냈다. 어 청장과 불교계의 ‘악연’은 지난 6월 그의 사진이 전국 경찰 복음화 금식대성회 광고포스터에 실리면서 시작됐다.‘국가 수사기관의 수장’의 사진이 어떻게 특정 종교의 행사에 실릴 수 있느냐는 게 불교계의 입장이었다.당시 이명박 정부의 ‘불교 홀대’가 조금씩 사회문제로 부각될 때였다.  이후 ‘촛불 수배자’들이 조계사 내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7월 29일 조계사 주위에 배치된 경찰관들이 조계사에서 나오던 지관 스님을 과잉 검문을 하면서 3개월간의 사태는 촉발됐다.문제의 ‘지관 스님 차량 검문 사건’이다.불교계는 합동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함께 어 청장 파면을 요구했다.  이 같이 ‘종교 편향 논란’이 커지자 어 청장은 8월 20일 스님들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며 화해를 시도했다.당시 어 청장은 편지에서 경찰 복음화 포스터 및 차량 검문검색 등에 대해 “종교 편향 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널리 혜량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교계는 “진정성이 없다.”고 대응하며 31일 전국 1만여 개 사찰에서 ‘종교 편향 항의 법회’를 열었다.당시 지관 스님은 청와대와 여당에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사과,어청수 경찰청장 사퇴,종교차별 금지법 제정,그리고 시국관련자 화합조치 등 4대 요구조건을 제시하며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이에 9월 초에는 한승수 국무총리,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잇따라 조계사를 방문하며 ‘불심’을 잡고자 노력했다.이 대통령도 9일 오전 국무회의에 이어 밤에 있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종교편향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지시,불교계로부터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지관 스님은 어 청장과의 면담은 거부하며 앙금이 가시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어 청장은 10일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대구 경북지역 불교도 대회에 지관 스님을 만나러 갔다.어 청장은 당시 “큰 스님 저 왔습니다.”라며 두 손을 잡았으나,지관 스님은 별 응대없이 회의장으로 향하며 양측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점쳐졌다  이같이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어 청장은 지관 스님을 향한 ‘구애’를 멈추지 않았다.추석 이후 우이동 도선사와 정릉의 경국사를 찾아가 사과의 마음을 전달하려 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고 “내가 다녀갔다고 전해달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그러나 지관 스님이 최근 사과를 받아들이며 어 청장과 불교계간에 100여일간 지속됐던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추신수 “때가 되면 김경문 감독과 함께 하고파”

    한국 최고의 메이저리그 타자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김경문 감독(두산 베어스) 밑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추신수는 3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를 통해 “한국 프로 무대에서 뛴다면 김경문 감독과 함께 하고 싶다.”며 “선수를 많이 믿어주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한국 무대 입성 시기에 대해 “미국에서 후회 없을 만큼 활약을 펼친 뒤”라고 단서를 달았다.  추신수는 가장 눈에 띄는 타자로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을 꼽으며 “올림픽 등 국제무대의 주요 승부처마다 ‘한 건’ 하는 대단한 선수”라고 평했다. 베이징 올림픽에 극심한 타격부진에 빠져있던 이승엽은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역전 2타점 홈런을 쳐내며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추신수는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박찬호 선수 등이 맹활약을 펼치는 것을 보고 힘을 얻었다며 “당시의 힘든 생활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추신수는 올 시즌 94경기에 나서 타율 0.309(98안타)에 14홈런,66타점을 기록했다. 최희섭(KIA 타이거즈)이 2004년 세운 한국인 타자 최다 타점(46개),안타(86개) 기록을 깨뜨린 것이다. 또 추신수는 한국인 최초로 지난 9월 MLB 아메리칸리그 ‘이달의 선수’(Player of the Month)로 뽑히며 새 역사를 썼다.  한편 지난 28일 귀국후 고향 부산으로 내려간 추신수는 앞으로 20여 일 정도 한국에 머무를 예정이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黨·靑 “그래도 우리 만수는 ‘만수무강’” 조성민 “故최진실 재산 단1원도 관심없다” 사시 2차합격자 분석…여풍 더 거세지고 경찰대출신 약진 행시생들,로스쿨 쪽으로 ‘갈아타기’ 바람 별난 스님·괴짜 목사… 그들의 삶 이야기
  • 김동길 교수 “불교 배후세력 밝혀내야” 논란

    김동길 교수 “불교 배후세력 밝혀내야” 논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범불교도 대회 등과 관련한 배후세력을 색출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 교수는 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불교 승려들의 집단 시위에 배후세력이 있는지 없는지 당국은 만전을 기하여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이어 “이런 뜻밖의 집단행동이 전통종교인 불교와 신흥종교인 기독교 사이의 유례없는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김 교수는 또 “(기독교 신자들이 반발하게 된다면)유혈 종교분쟁이 벌어지고,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는 적화통일론자들은 만세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까지 논의를 확대시켰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에 대해서는 “나는 단 한 번도 불교를 탄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면서 “불교 당국자들이 ‘가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반성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김 교수의 이 같은 글에 대해 불교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발언들이 오히려 종교간 갈등을 유발한다.”며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네티즌들은 김교수의 이 같은 발언에 “경찰력을 무리하게 행사하는 등 종교 탄압이 분명했는데 배후세력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네티즌 ‘정명’은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에 “수행자가 어디 할 일이 없어 배후세력의 말을 듣고 수행처를 떠나겠느냐.”며 “그들은 한국의 정신이고 방향타로 이들이 바르지 않았다면 불교는 2500여 년을 지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외에도 “김교수 당신 치매에 걸린 것이냐.”,“무슨 배후 세력을 색출하라고 난리를 치는가.정신이 혼미한 것 아니냐.”는 등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도 있다. 한편 최근 서경석 목사와 장경동 목사도 각각 “불교계에 대한 좋은 인상이 훼손됐다.”,“스님들은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등 불심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 겨한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4)경남 하동군 화개면 호동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4)경남 하동군 화개면 호동마을

    바람이 불 때마다 함박눈처럼 흩날릴 꽃잎에 흠뻑 젖어보는 것도 좋고, 사람에 치이고 도로 정체에 시달려도 평생 한번, 딱 한 번만큼은 천천히 걸어볼 만도 할 화개 십리벚꽃길…. 사랑을 고백하면 이루어진다 하여 ‘혼례길’로 불리고 아무리 걸어도 길멀미가 나지 않는 곳.4월, 범왕리 호동마을로 가려면 절정기를 지나 폭탄처럼 내려앉는 이 벚꽃 가로수를 지나야 한다. 예부터 농악을 할 땐 호랑이가 놀라지 않도록 징을 치지 않았다는 호동의 총 가구수는 다섯 집. 차가 다닐 수 없는 산속 두 집은 스님들 공부하는 곳이고, 한 집은 아직 공사 중이니 결국 이집 저집 제하고 나면 실제 두 집뿐인 셈이다. 김옥곤(69) 할아버지가 이곳으로 들어온 건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대대로 선유동에 살다가 무장공비 사건 등으로 산중마을 대부분이 일괄 철거되던 시절 정부에서 지어준 집, 그러니까 범왕리 입구 신흥마을에서 몇 년쯤 살다가 호동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민가가 사라진 선유동엔 아직도 그때 심어둔 배나무며 감나무가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산중에 저절로 난 과실나무로 생각하고 따가버리는 터라 정작 주인인 김 할아버지는 마음먹고 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속상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깝거나 서운하지는 않은지 허허, 웃음을 보이신다. 장남이자 외아들 종복(43)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3년 전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 일을 돕고 있다. 산나물이나 매실은 먹을거리 정도로 조금 하고, 고로쇠와 녹차·송이 채취가 주 수입원이다. 직접 덖음차를 만들기도 하고 찻잎만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진즉에 무농약 인증을 받아놓은 상태지만 일손이 모자라 수확도 못하고 그냥 버려두는 잎이 허다하단다. “이런 산중에 누가 시집오겠습니까? 집도 허름하고요.” 종복씨는 아직 미혼이다. 회사가 어려워 겸사겸사 낙향했지만 그동안 여섯 명이나 되는 여동생들을 살뜰히 살펴온 믿음직한 오빠다. 중국으로 유학 간 두 동생도 종복씨의 도움을 받았다.“산 밑에 사는 사람은 도시로 나가기 힘들어요. 계산적이고 바쁜 서울 생활에선 맛볼 수 없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고된 걸로 따지자면 농사일 역시 만만치 않지만 그는 지금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김 할아버지댁 위쪽엔 황토집 공사가 한창이다. 경남 사천에서 이주해온 사내는(국수에 동동주까지 대접받았지만 끝내 이름은 알려주지 않는다) 10여년 전부터 지리산 일대를 다니며 살 곳을 알아보다 이 마을과 인연을 맺었다. 녹차작업장을 짓고, 흙과 볏짚을 섞어 벽을 바르고, 소나무와 대나무로 천장을 잇대어 모양새가 나는데도 입주 날짜는 기약없다. 설계한 사람도, 공사를 돕는 인부도 품앗이 개념이다.“집이 완성되면 맛있는 차를 언제든지 마실 수 있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게 전부라고.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 지리산 계곡수를 퍼다 당시 아파트에 살았던 아내에게 6년간 바친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산기슭 구석구석 숨어 있는 야생차밭에서 여린 찻잎을 따다 선물도 했다. 차를 좋아했던 아내는 사내의 정성에 마음줄을 놓았고, 이제는 돌을 갓 지난 딸까지 세 식구가 되었다. 김옥곤 할아버지는 이들 부부에게 고마운 존재다. 수년 전 처음 드나들 때부터 쌀, 감자, 과일까지 많은 지원을 받았다.‘평화공간 설정’을 모티브로 내건 이 댁의 분홍빛 벚나무가 이른 저녁 불 밝힌 가로등처럼 황톳빛 창틀을 살포시 비추고 있다. 새 이웃을 맞는 할아버지에겐 기다림마저 행복한 봄날이다. #가는 길 경남 하동군 화개면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을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남해고속도로 하동IC 등에서 구례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로 진입한다. 이후 쌍계사 방면으로 직진하여 10㎞쯤 달리다 칠불사 쪽으로 좌회전, 다시 곧바로 다리를 건너 우회전해서 길이 끝나는 곳까지 계속 올라간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www.emountain.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9) 경남 하동군 화개면 맥전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9) 경남 하동군 화개면 맥전마을

    화개면소재지에서 5㎞ 남짓 떨어진 맥전(麥田)은 ‘보리암’이라고도 불리는 모암마을에 편입된 곳이어서 보리 재배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화개면지’에 따르면 1936년 3월 큰 지진이 있었고, 같은 해 여름 홍수까지 덮치면서 산사태가 발생, 마을 전체가 흔적 없이 무너져 내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밀쳐 없어진 동네라 하여 ‘미라태’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도 얻었다. 산사태의 악몽을 걷어내고 한두 호씩 마을을 재건해 한때 40호쯤 되었던 것이 지금은 8가구만 남았고 그나마 원주민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 건너 구례에서 시집와 맥전 사람으로 60년을 넘게 산 박점순(84) 할머니가 뜨거운 물속에 자꾸만 찢어진 종이상자를 넣었다 빼낸다. 사찰 등에서 쓰고 남은 초를 녹인 물이라는데 이렇게 적셔서 말려두면 불쏘시개로 톡톡히 제 몫을 해낸다. 슬하에 자식도 없이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20년 넘게 홀로 사셨다는 박 할머니의 집은 아궁이 군불로 난방을 한다. 봄철엔 간간이 찻잎을 따지만 그것도 고질적인 관절 악화로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3대째 가업 잇는 ‘조태연가 죽로차’ 전에는 부식을 싣고 찾아온 용달차에서 찬거리를 사곤 했는데 요즘은 이 마을 사람들도 자가용을 타고 다녀 덩달아 부식차마저 들어오는 일이 드물어졌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쉬엄쉬엄 1시간 거리여서 시장에 나가는 일이 부쩍 힘에 부친다. 경치 좋고 조용한 이 마을도 박 할머니에겐 그저 적적하고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 ‘쌔고 쌨지만’ 할 수 없이 사는 곳에 불과한 모양이다. 맥전에는 하동군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녹차 명가가 있다.1962년 우리나라 최초로 녹차 상표를 낸 ‘조태연가(家) 죽로차’가 그곳. 녹차 재배는커녕 있는 차나무도 다 파내고 유실수를 심어댔던 반세기 전쯤 부산에서 차를 찾아 화개로 들어온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지금은 고 조태연옹의 손자 조윤석(37)씨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촉각, 후각, 미각, 거기에 손재주며 눈썰미까지 제다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데다 어려서부터 몸에 익은 환경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 어린 윤석에게 찻잎 따기는 용돈벌이였고, 찻물은 동상에도, 감기에도, 배앓이에도 빠짐없이 쓰이던 만병통치약이었다. 처음엔 편찮은 어머니를 위해 일손을 돕는 것으로 출발했다. 녹차 상품 포장만 2년을 하다 하나씩 작업 과정을 배워갔다. 녹차를 더 알고 싶단 생각에 식품공학을 전공했고, 요즘은 대학원에서 자원식물개발을 공부 중이다. 좋은 원료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란다. 젊은 후계자는 녹차가 생산되지 않는 달엔 쑥, 감잎, 뽕잎, 연잎, 국화(감국), 구절초, 겨우살이 등을 활용한 차 만들기에 전념한다. 이런 대용차들도 몇 년간 선방 스님들의 시음 의견을 수렴한 후에야 상품으로 내놓는다. ●한정된 수량 100% 수작업 조태연가의 모든 차는 한정된 수량에 한해 100% 수작업만 한단다. 대량 생산을 할 경우 품질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45년을 이어온 브랜드 인지도를 떨어뜨릴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고. 조윤석씨에겐 두 명의 어린 자녀가 있다. 내심 둘째딸이 가업을 이어주길 바란다는 그는 차의 생성부터 완성까지를 꼼꼼히 기록한다. 그가 젊은 시절 겪었던 시행착오를 아이들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두툼한 작업일지 속엔 3대를 지나 4대로 이어질 지리산 야생차 비법이 그득하다. 아직 찻잎을 덖으려면 두어 달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이 댁 다실엔 벌써부터 찻잔 가득 봄 향기가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서부 사상시외버스터미널 등에서 화개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의 중간 지점이므로 구례나 하동까지 온 다음 화개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이용해 화개로 간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로 바로 진입한다. 맥전마을은 화개장터 삼거리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진입해 5㎞쯤 직진해야 하는데 계곡 건너편 산기슭에 있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www.emountain.co.kr)
  • [산이좋아 산으로] 경북 봉화 청량산

    [산이좋아 산으로] 경북 봉화 청량산

    사통팔달 잘 뚫린 포장도로가 전국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요즘,‘오지’라는 단어조차 무색하지만 경북 봉화는 개발의 광풍을 살짝 비켜간 덕에 오히려 전통마을의 미덕과 청정한 자연을 오롯이 간직한 땅이다. 여기 청량산(淸 山·870m)이 있다. ●12개 빼어난 바위 봉우리가 인상적 경북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와 명호면 북곡리, 안동시 도산면, 예안면에 걸쳐있는 청량산은 1982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청량산 육육봉’이라 불리는 12개의 빼어난 바위 봉우리들 때문에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한국의 3대 기악으로도 불린다. 특히 낙동강이 휘감아 도는 바위 절벽에 어우러진 단풍빛이 고와 가을철 관람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청량산은 퇴계 이황의 산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산에 들어와 학문을 닦던 산으로 스스로 ‘청량산인’이란 호를 썼을 정도다. 훗날 그가 공부하던 자리에 제자들이 세운 청량정사를 ‘오산당(吾山堂)’이라 부르는 것도 퇴계가 ‘나의 산(吾山)’이라 부르며 사랑한 탓이다. 청량산은 규모와 높이만으로 따지면 별로 내세울 게 없다. 하지만 아담한 산세에 비해 독특한 모양을 자랑하는 12개의 봉우리와 봉우리마다 전망 좋은 대(臺)가 있고, 산자락에는 8개의 굴과 4개의 맑은 샘이 있다. 한때 3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는 산에는 현재 청량사와 청량정사만 남아있고 청량사에는 두 가지 보물인 공민왕의 친필 현판 ‘유리보전’과 종이 부처인 지불이 있다. 산행 들머리는 청량폭포, 선학정, 입석 세 군데. 선학정에서 청량사까지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힘에 부친다. 그 밖의 길은 대체로 편안하고, 안내판과 표지기가 많아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다. ●풍혈대·어풍대서 바라보는 절경 압권 산행 시작은 입석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편안하고 경치가 좋은 편이다. 각자의 산행 여건에 따라 짧게는 2시간, 길게는 7시간까지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입석에서 출발해 금탑봉∼경일봉∼자소봉을 거쳐 정상인 장인봉에 오른 후 병풍바위∼청량사에 들러 선학정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청량산의 면모를 두루두루 볼 수 있는 적당한 코스로 약 5시간 소요된다. 청량산 열두 봉우리 가운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경일봉, 자소봉, 연적봉, 장인봉, 축융봉 등. 그 중에서 자소봉, 연적봉, 장인봉은 철계단을 올라갔다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경일봉으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정상인 장인봉을 향하는 막바지 오르막은 가파르고 미끄러운 데다 낙석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청량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는 청량산의 이름난 기암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축융봉과 입석에서 금탑봉을 오르는 길의 풍혈대와 어풍대가 있다. 자소봉에서는 첩첩 산중인 봉화 일대의 동북쪽 산세를 볼 수 있다. 장인봉 정상은 수풀에 가려져 답답하지만 대신 정상 50여m 아래쪽에는 멋진 전망대가 숨어 있어 청량산 바위 벼랑 아래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다. # 청량산의 볼거리 ◇청량사 산사음악회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청량사 산사음악회가 10월6일 늦은 7시에 열린다. 연꽃의 수술 자리에 앉았다는 청량사, 봉우리들이 에워싼 도량 안 천연무대에서 ‘장사익의 별빛나들이’가 펼쳐진다.1986년 29세에 청량사 주지로 부임해 등짐을 나르며 절을 가꿔온 청량사 주지 지현스님은 최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도 길은 있다’라는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다.www.cheongryangsa.org ◇청량산박물관 봉화 지역의 역사와 전통 문화 속에서 청량산을 조명한 의미 있는 곳으로 청량산집단시설지구 내에 있다. 인근 지역의 향토역사자료와 민속자료,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료는 무료. ◇산꾼의 집 청량정사의 요사채 건물에 있는 산꾼의 집에서 주인 이대실씨가 무료로 제공하는 9가지 약초를 달여서 만든 구정차를 맛봐야 청량산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차를 마시고 찻잔을 씻어놓기만 하면 된다. 이대실씨는 달마를 그리고 도자기를 구우며 청량산 바람과 함께 대금과 가야금을 즐기는 예인. 글 정수정 남영호(월간 MOUNTAIN 기자)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고흥 천등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고흥 천등산

    전라남도 동남단에 위치한 한반도 속 또 하나의 반도 고흥.172개의 작은 부속섬을 가진 고흥에서 세 번째로 높은 천등산(天燈山·553.5m)은 남쪽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 바위산이다.‘봉우리가 하늘에 닿을 듯하다.’ 혹은 ‘스님들이 정상에 자주 올라 밤이면 수많은 등불이 켜져 있었다.’ 하여 ‘천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등산 정상에는 마복산과 연락을 주고받던 봉수대와 가뭄 때 기우제를 지냈다는 제단이 있다. 정상 아래 금탑사가 내려다보이는 너럭바위는 먼 옛날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신선대(선인대)라 불린다.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 모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는 의미일 것이다. 천등산과 임도로 갈린 남쪽의 딸각산(429m)은 바위를 밟고 오를 때마다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월각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천등산과 딸각산은 겨우 2㎞ 거리, 천등산 산행 코스를 잡을 때 딸각산과 이어보는 것도 좋다. 온통 바위더미로 이뤄진 딸각산에 서면 한적한 풍남항과 성벽처럼 견고한 천등산의 바위벽들이 잘 보인다. 두 산을 잇는 대표적인 코스는 송정마을∼딸각산∼천등산∼임도∼천등마을로 3시간쯤 걸린다. 두 산 사이 임도가 있어 차량 접근은 쉽지만 산행의 재미는 그만큼 덜하다는 단점이 있다. 임도를 거치지 않으려면 사동마을∼천등산∼헬기장∼딸각산∼송정마을 코스를 택하면 된다. 자가용을 가지고 갈 경우 원점회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사동마을에서 출발해 천등산과 딸각산을 거쳐 다시 사동마을로 내려오는 코스가 적당하다. 대신 딸각산 갈림길에서 사동마을까지 약 4.5㎞의 임도를 지루하게 내려서야 한다. ‘뱀처럼 생긴 계곡’ 사동마을의 사동저수지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저수지를 지나면 바로 천등산 산행 안내판이 나오고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의 좁은 흙길은 안지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 오른쪽 시멘트 도로는 정상 턱밑까지 이어지는 임도다. 어떻게든 정상에만 가겠다는 목적이 아니라면 임도로 갈 이유는 없다. 사실 퍽퍽하게 임도를 따라 걷는 일도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등 뒤로 따라오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걷노라면 산행 초입부터 높고 우거진 수풀이 앞을 가로막지만, 그쯤은 기꺼이 즐거운 푸념으로 넘겨야 한다. 인적 드문 천등산, 자연이 주는 천혜의 선물이니 말이다.30분 남짓 오르면 안지재에 닿고 이제 길은 나긋해진다. 안지재 지나 얼마 안 가 숨이 멎을 거처럼 빼곡한 숲에서 모처럼 시야가 트이고 뒤돌아보면 사동저수지 곁으로 벼락산(343.8m)이 보인다. 덩굴 무성한 암봉을 왼쪽으로 돌아서면 펼쳐지는 본격적인 바윗길. 정상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에 올라서면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선계가 따로 없다. 특히 정상에서 5분 거리 신선대에 서면 동쪽 비자나무숲 아래 금탑사와 남쪽으로 이어지는 안장바위능선이 장관이다. 딸각산으로 선을 잇기 위해서는 철쭉공원을 지나 내려선 임도를 20여분 따라 걷는 방법과 헬기장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양천잇재 임도에서 곧바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임도에서 겨우 15분, 딸각딸각 바위를 딛고 다다른 딸각산 정상은 자칫 다녀가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사방으로 펼쳐진 신록의 세상, 삐죽삐죽 솟은 바위와 남쪽으로 활짝 열린 남해바다 정경에 한여름 더위도, 일상의 시름도 싹 잊게 된다. 글 정수정 사진 진우석(월간 MOUNTAIN 기자) # 가볼 만한 곳 나로도 우주센터를 건립 중인 고흥에서는 7월28일∼8월6일 10일 동안 ‘2007 고흥우주항공체험전’을 연다. 블랙홀 체험, 우주인 훈련코스, 남극체험 등 우주항공 관련 체험행사와 자연사박물관 전시, 우주곤충 전시 등 다양한 전시가 마련된다. 우주캠프, 물로켓 발사대회 등 청소년 관련 행사가 많으니 자녀들과 함께 산행 후 들러보면 제격이다(www.spacegoheung.co.kr). 고흥에는 19개의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도 적당하다.
  • [산이 좋아 산으로] 충남 예산 가야산

    [산이 좋아 산으로] 충남 예산 가야산

    충남 예산과 서산에 걸쳐 있는 가야산(677.6m)은 경남 합천 가야산(1430m)에 비해 높이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주변 열 고을을 거느리며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 개심사·일락사·보원사지 등의 문화유산, 그리고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로 불리는 명당 남연군묘를 품고 있어 합천 가야산에 비해 무엇 하나 꿀릴 게 없는 명산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는 내포를 제일 좋은 곳으로 친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은 큰 바다요, 북쪽은 큰 만이고, 동쪽은 큰 평야, 남쪽을 그 지맥이 이어지는 바,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하면서 비옥한 평야 중심에 가야산이 놓여 있다고 적고 있다. 내포란 지금의 예산·서산·홍성·당진 지방과 태안·아산 일부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내포 지방이 배출한 인물에 주목했다.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충무공 이순신, 추사 김정희, 의병장 최익현,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개화당 김옥균, 남로당 박헌영, 만해 한용운…, 걸출한 이 모든 인물들이 놀랍게도 내포 출신이다. 저자는 그들이 충청도 특유의 느리고 온화한 성품이 아니라 소위 ‘깡’이 센 사람들로 가야산의 정기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가야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바다가 가까워 일단 능선에 붙으면 내륙의 1000m 넘는 산이 부럽지 않고, 석문봉에서 바라보는 서산 간척지 너머 서해안 일몰이 특별한 장관을 이룬다. 봄철이면 진달래가 지천이고,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도 아름답다. 산행 후에는 덕산면의 온천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이다. 가야산 들머리는 크게 예산 덕산면과 서산 운산면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덕산 상가리를 들머리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상가리∼옥양봉∼석문봉∼상가리 원점회귀 산행을 한다. 가야산의 최고봉인 가사봉 정상은 각종 중계기지가 들어차 출입금지 지역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꾼들은 가야산의 실질적인 주봉인 석문봉에 올랐다가 가사봉에 들르지 않고 하산한다. 서산 운산면 용현계곡을 들머리로 하면 마애삼존불∼수정봉∼옥양봉∼석문봉∼상가리 혹은 보원사∼일락산∼석문봉∼상가리 종주산행을 즐길 수 있다. 상가리 가야산 주차장은 국립공원만큼 넓지만 주차비를 받지 않아 좋다. 이곳에 차를 세우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주말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주차장이 가득 찬다. 예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가야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등산객은 중·장년층이 많은데, 산행이 어렵지 않고 산행 후에는 뜨끈한 온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가리∼옥양봉∼석문봉∼상가리에 이르는 약 7.5㎞ 코스는 3시간 30분이 걸리는 원점회귀 코스다. 가야산은 등산 시작 지점과 끝이 꼭 일치해 자가용을 이용해 접근할 경우 편리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석문봉은 가사봉에 비해 24.6m 낮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야산의 주봉 대접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남연군묘가 가사봉이 아닌 석문봉을 주봉으로 삼고 있었고, 지금은 가사봉이 출입통제 구역이라 역시 석문봉이 주봉이 되었다. 이영준 월간 MOUNTAIN기자 # 여행정보 운산면 용현계곡은 문화유산의 보고다. 국보 서산마애삼존불, 사적 보원사지 등이 대표적인데 예전에는 계곡 일대가 전부 보원사의 영역이었다고 한다. 절터에는 당간지주,5층 석탑, 법인국사보승탑과 비가 남아 예전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상가리 쪽에는 남연군묘를 빼놓을 수 없고, 주차장에서 오른쪽 길로 10분 걸리는 보덕사도 들러볼 만하다. 본래 남연군묘는 가야사의 자리였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 질러 스님들을 내쫓고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만들었다. 훗날 이 사건에 마음이 불편했던 대원군은 보덕사를 지어주었다. 비구니 사찰로 소담한 분위기가 좋다.
  • 실사단 가는 곳마다 환영인파

    실사단 가는 곳마다 환영인파

    11일 여수는 감동의 물결 그 자체였다. 형형색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수많은 시민들이 세계박람회 실사단을 맞았다. 여수시민들이 연출한 한 편의 드라마에 실사단 7명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날 오후 2시45분 여수공항. 카르맹 실뱅 세계박람회기구 집행위원장 등 실사단 7명은 국방부 취타대와 의장대의 도열 속에 트랩을 내린 뒤 조원빈(5)군 등 화동 7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We Love You’‘See You again in 2012’란 플래카드가 이들 앞에 펼쳐졌다. 공항 계류장까지 밀려든 환영 인파는 손에 손에 태극기와 박람회기구 실사단의 국기, 실사단 인물 그림이 든 피켓을 들고 환호했다. 공항 안팎에만 유치원생, 학생, 흥국사 스님과 신도, 마을주민 등 1000명이 넘게 나왔다. 공항에서 시청까지 오는 10여㎞는 시민 수만명이 나섰다. 도로변 마을 앞마다 주민들이 나와 실사단에 손을 들어 열렬히 환호했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와 지나던 시민들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시내로 접어드는 석창사거리에서 시청앞까지 1.5㎞는 환영인파로 절정을 이뤘다.4차로 중 3개 차로를 점령한 시민들은 목청이 터져라 실사단 버스를 환호했다. 시민과 학생, 직장인 등 수만명이 밀려들면서 차량이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시청 앞에서는 머리에 ‘Welcome to Yeosu’라는 머리띠를 한 유치원생 50여명이 율동에 맞춰 웰컴을 연발하자 실사단이 이들을 껴안으며 기뻐했다. 이어 환영 인파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시청이 떠나갈 듯 연호하자 손을 들어 답례했다. 오현섭 시장은 “실사단이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환영 인파는 시민들의 박람회 유치 의지이고 이 같은 모습이 실사단에 감동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석창사거리 500여m 구간에서는 실사단의 출신 국가별 전통복장을 한 100여명의 대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이 실사단과 사진을 찍으며 함께 어울렸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선상 환영 만찬도 실사단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환영리셉션은 신항 1부두에 정박한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4500t급) 갑판 위에서 열렸다. 국가정상이 오전에 이어 하루에 두 번이나 실사단과 식사를 같이한 것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시민 2만여명이 운집한 거북선 대축제는 실사단이 모습을 보이자 열광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민들을 헤치고 나온 실사단은 진남관 앞에서 판옥선을 타려다 내려 서서 삼도수군 통제영 길놀이와 용줄다리기에 동참, 시민들에게 화답했다. 해양공원으로 옮긴 실사단은 김규리·규란 쌍둥이 자매로부터 145만명의 지지 서명부를 전달받기도 했다. 거북선 대축제의 핵심인 불꽃대축제가 시작되자 여수의 밤하늘은 빛과 함성으로 가득했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개헌 정국 靑·與·野 세 기류

    개헌 정국 靑·與·野 세 기류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청와대 참모진들도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여론몰이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개헌추진에 부정적인 여론을 바탕으로 ‘무대응전략’으로 일관하며 재집권 음모 대응기구 발족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치권 기류를 정리한다. ■ 靑 “불씨 살려라” 참모진 ‘ON AIR’ 청와대가 개헌 여론몰이에 한창이다. 개헌 불씨를 키우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 참모들이 ‘올 코트 프레싱’에 나섰다. 노 대통령이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만나는 일정과는 별개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 다음날인 10일 참모 가운데 처음으로 개헌과 관련, 라디오에 출연했다. 김병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과 이정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11일 각각 정진석 추기경과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찾았다. 차성수 시민사회비서관은 MBC 100분 토론에 패널로 나섰다. 개헌 작업에 깊이 관여한 정태호 정무비서관은 12일 SBS라디오와 MBN 방송에 잇따라 출연, 노 대통령의 개헌 발의 시점에 대해 “다음달쯤”이라고 밝혔다.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은 CBS 시사프로그램에 나왔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與일부 “차기서” “대통령 탈당을” 4년 연임제 개헌을 적극 추진키로 한 열린우리당이 또다시 삐걱거리고 있다.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일부는 개헌 추진에 적극적인 반면, 일각에서는 개헌을 반대하거나 내각제를 주장하는 등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근태 의장 등 지도부는 12일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내주 중 당내 기구로 개헌 특위를 구성하키로 결정했다. 초·재선 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은 임기단축 공약을 제시하든지 아니면 주저없이 지금 개헌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다음 임기 중에 추진한다면 차라리 내각제 개헌을 공약하는 것이 더 좋다.”고 엇박자 주장을 펼쳤다. 희망21포럼, 실사구시, 안개모, 국민의길 등 통합신당파 4개 모임은 이날 오전 회동을 갖고 “대통령의 진정성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당적의 정리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한나라 “싸움판에 안말려들것” 한나라당은 12일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의에 대해 무시전략으로 일관하며 재집권 음모 대응기구를 추진하는 등 ‘반여 전선’ 형성에 진력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개헌을 할 적임자도 아니고 지금은 개헌 시기도 아니다.”면서 “노 대통령이 벌이고자 하는 싸움판에 결코 말려들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기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노 대통령의 개헌주장은 대통령 자신과 일부 청와대 참모진만을 위한 잔치일 뿐이다.”면서 “아무리 유명한 배우가 깜짝쇼를 멋지게 하더라도 관객이 외면하면 그 무대는 막을 내려야 하며 오지 않는 관객을 원망하거나 배우를 그만두겠다는 식의 협박은 안 된다.”고 힐난했다. 한나라당은 이를 위해 정부·여당의 정치공작 가능성에 대비한 대책기구를 이르면 다음주 중 구성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특위 형태로 발족되며, 위원장은 최고위원 가운데 한 명이 맡을 예정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충남 예산 덕숭산

    [산이 좋아 산으로] 충남 예산 덕숭산

    ‘산이 절을 만들고, 절이 산을 만든다’ 했던가. 그리 높거나 깊지도 않고 산세가 빼어난 것도 아닌 너무도 평범한 모습의 충남 예산의 덕숭산(495m). 이름 또한 낯설지만 천년고찰 수덕사를 품에 안고 있기에 찾는 이의 발길이 사철 끊이지 않는 곳이다. 덕숭산 찾아가는 길은 험한 산을 넘지도 않고 넓고 깊은 강을 건너지도 않는다. 온천으로 유명한 덕산을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가로지르는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그 곳에 덕숭산이 있다. 산행은 수덕사에서 시작한다. 주차장을 지나 5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일주문. 왼편 초가로 된 수덕여관은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이 살던 곳이다. 이 화백이 직접 써서 걸어놓은 현판과 뜰 앞 바위에 새긴 암각화를 볼 수 있다. 금강문, 사천왕문, 황하정루를 차례로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선다.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1308)때 건립된 것으로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묵직해 보인다. 국보라는 감투의 무게를 빼더라도 빛바랜 색깔, 기둥의 터진 자국 등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계단을 밟으며 호젓한 오솔길을 10여분 오르니 초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만공스님(1883∼1946)이 참선을 위해 거처하던 소림초당이다. 위로는 만공스님이 세웠다는 7.5m의 거대한 미륵불입상이 있다. 옆쪽 향운각 마당에 서면 여태 지나온 숲들이 수덕사 전경과 함께 내려다 보인다. 만공탑 왼편 길을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스님들의 참선도량인 정혜사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정혜사 앞마당은 덕숭산 제일의 조망터. 용봉산과 수암산이 보이고 저 멀리 해미읍내가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온다. 정혜사 기와지붕 뒤로 정상부 능선이 가깝게 다가서 있어 정상 바로 아래인 듯하지만 실제로 이곳은 덕숭산 7∼8부 능선이다.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바위와 흙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등산로. 정혜사를 출발한 지 10여분, 능선 갈림길에 이른다. 오른쪽 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오르면 정상. 북쪽 45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우람하게 솟은 가야산(677m)의 모습과 그 오른편으로 예당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어 수덕사로 내려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른 길을 원한다면 정상에서 동남쪽인 용봉산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설 수도 있다. 전월사라는 자그마한 암자를 거쳐 정혜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거리는 조금 멀지만 바위가 별로 없고 폭신한 흙길이라 걷기에 부담 없어 좋다. 정혜사에 이르러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게 싫다면 견성암을 거쳐 황하정루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른다. 시멘트포장길이라 산길의 맛은 없지만 중턱에서 수덕사를 조망할 수 있다. 총 산행 거리는 4.8㎞,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 여행정보 수덕사 입구에는 산채정식을 잘 하는 음식점이 많다. 재료가 비슷하고 별다른 양념을 첨가하지 않아 어느 음식점이나 맛이 비슷하다. 옛집(041-337-6101)은 이곳에서 영업한 지 30년이 넘은 음식점.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며느리가 운영한다. 더덕구이, 조기, 송이버섯, 도토리묵 등 푸짐한 반찬과 우렁된장찌개가 일품이다. 산채비빔밥 7000원. 글 김도훈(월간 MOUNTAIN 기자) www.emountain.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합천 가야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합천 가야산

    어느새 훌쩍 높아진 푸른 하늘, 유유히 떠도는 하얀 구름떼. 발악하는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마음은 벌써 가을로 줄달음친다. 어디 갈만한 데 없을까? 채 가시지 않은 무더위 땡볕에서 고행하듯 꾸역꾸역 산만 오르긴 싫다. 땀을 흠뻑 적신 후 시린 물에 발 담그고 풍류를 즐길 만한 곳은 없을까? 경남 합천 가야산. 천년고찰 해인사와 고운 최치원의 흔적이 서린 홍류동 계곡을 속 깊게 품고 불꽃처럼 솟은 석화성, 배낭을 메고 무작정 그곳으로 떠났다. #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산 ‘가야산 산신 정견모주가 하늘신인 이비하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아 형은 대가야국의 첫 임금 아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을 세운 수로왕이 됐다.’는 천년 전 가야국 건국설화를 간직한 경남 합천 가야산(1430m). 백두대간 줄기가 대덕산을 막 지나 덕유산에 이르기 전, 남동쪽을 향해 내달리던 수도지맥의 언저리에 크게 솟구쳐 오른 산이다. 산은 합천과 거창, 경북 성주에 걸쳐 장중한 덩치를 늘어뜨리고 경상도를 남북으로 가른다. 정상 상왕봉 주변으로는 해발 1000m가 넘는 여러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더할 나위 없는 경관을 연출한다. 가야산은 산도 산이지만 산자락에 품고 있는 천년고찰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으로 세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천년 노송과 활엽수가 멋스럽게 어우러진 홍류동 계곡길에 들어선다. 십리나 이어지는 구불구불 포장도로 곁으로 콸콸 물소리가 넘쳐날 듯 힘차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가을이면 단풍으로 계곡 물빛까지 온통 붉게 보인다는 홍류동 계곡. 여름의 끄트머리에 서서 군데군데 폭포와 옥빛 소를 그냥 지나치려니 여기 머물며 시를 읊던 신라 말 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떠올라 발길이 쉬이 떨어지질 않는다. 가자, 갈 길이 멀다. 그래도 해인사마저 그냥 지나칠 순 없는 노릇. 아름드리 전나무와 느티나무가 줄지어 선 해인사 입구를 따라 경내에 들어서니 단아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오래된 나뭇결에서 세월 지긋한 향이 피어오른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사찰 해인사. 의상대사가, 성철스님이 오래도록 머물다 떠난 자리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해인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홍제암, 용탑선원을 뒤로 밀어내며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극락골과 토신골 두 갈래 길에서 망설임 없이 오른쪽 극락골 등산로를 택한 이유는 마애불 입상을 지나기 위해서다. 계곡에 드문드문 놓인 아치형 나무다리를 건너 오솔길과 가파른 너덜지대를 번갈아 오르다 보면 서서히 시야가 트여온다.1시간 남짓 올라설 즈음 마주하게 되는 마애불 입상. 비바람에 잘 다듬어진 7.5m 자연 바위에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는 마애불은 꼭 다문 입술로 쉬어가라 손길을 내민다. 토신골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까지는 20여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늦더위와 싸우는 동안 답답하게도 산은 쉽게 정상부를 드러내지 않고 슬그머니 약을 올린다. 정상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파른 암릉구간에 간간이 놓인 철계단을 디뎌야 하고, 고정로프를 매어 놓은 바위를 타넘기도 한다. 어느 바위 틈새 맑게 흐르는 물줄기에 목을 축이고, 바위 사이 드문드문 박힌 이름 모를 노란 꽃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 마지막 철계단을 올라서는 순간 시야가 탁 트인다. 온전히 큰 바위 덩어리가 산 전체를 뒤덮고 있는 듯 불꽃처럼 솟아오른 석화성, 해발 1430m 상왕봉 정상이다. 토신골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약 1시간 걸린다. 소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옛 이름 ‘우두봉’이 새겨진 표지석 아래로 짙은 운무가 깔리기 시작한다. 정상에 서면 암봉 사이를 들락날락거리는 구름의 숨바꼭질과 함께 멀찍이 팔공산과 덕유산까지 조망된다. 하산은 상왕봉에서 동쪽으로 250m 떨어져 있는 칠불봉에 잠시 들렀다가 서성재를 거쳐 백운동 쪽으로 하면 되고, 약 2시간20분 걸린다. #여행정보 88올림픽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1033번 지방도로 4㎞ 가면 해인사 입구에 닿는다. 가야산에 관해서라면 뭐든 줄줄이 꿰고 있는 김형달씨가 운영하는 치인집단시설지구 내의 삼일식당(055-932-7254)은 해인사 스님 지정 식당. 마늘을 많이 사용하지 않은 담백한 사찰 음식이 유명하다. 산채한정식을 전문으로 40년 전통을 이어오는 백운장식당(055-932-7393)의 동동주도 일품이다. 글 사진 정수정(월간 MOUNTAIN 기자) www.emountain.co.kr
  • 동국대 ‘新세속오계’ 제정

    동국대 정각원(학내 법당)은 28일 오후 학교 본관 중강당에서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신(新) 세속오계 실천강령’을 발표했다.신 세속오계는 ▲생명을 사랑한다(不殺生·Life & Love) ▲살림을 절약한다(不偸盜·Economy) ▲욕심을 자제한다(不邪淫·Integrity) ▲말을 삼간다(不妄言·Praise) ▲마음을 맑게 한다(不飮酒·Enlightenment)로 구성됐다.정각원장 진월스님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건학 이념과 불교의 오계 정신을 바탕으로 인류가 보편적으로 실천해야 할 강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DMZ의 사계] 가을

    [DMZ의 사계] 가을

    비무장지대(DMZ)의 풍광은 달라져 있었다. 가을걷이에 바쁜 농부도, 낙수를 줍던 여름 철새들도 어느새 사라졌다. 추수가 끝난 논 둑을 따라 사람키만큼 웃자란 갈대만이 찬바람을 견디고 있다. 가을이 깊어진 탓일까. 이 곳의 명물 백로는 추운 겨울이 지나야, 다시 우아한 자태를 선보일 것이다. 비무장지대는 지난 60년 동안 인공(人工)이 미치지 못한 덕분에 자연의 변화무쌍한 면모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불과 며칠새 붉은 단풍이 고지를 울긋불긋 물들였다. 들판에는 겨울철새의 군무가 장관을 이룬다. 철책선을 지키는 병사들의 복장도 바람이 새어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두툼해졌다. 낡은 승복을 입은 채, 망원경으로 허공을 수놓는 철새의 비상을 살펴보고 있는 한 스님의 모습은 가을의 서정(敍情)을 한결 더해준다. 스님은 날개를 활짝 펼친 새들로부터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몇 년째 철원 들판에서 철새를 필름에 담고 있는 도현스님은 사람 대신, 자유를 만끽하는 새를 화두로 삼아 명상에 잠기고 있는 건 아닌지. 석양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 갈대밭 사이에 재두루미 무리가 조용히 잠자리를 준비한다. 동쪽 산등성이 위로 반달이 떠오르면 기러기 떼가 저녁 하늘을 가로질러 마을 건너편 저수지 옆에서 피곤한 날개를 접는다. 긴장감 넘치는 비무장지대의 가을밤은 한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자동차가 막 통과한 검문소 앞에 자동차 불빛 사이로 흰 분말이 어지럽게 날린다. 철새를 매개로 전파되는 조류인플루엔자(AI)를 예방하기 위해 주요 통로에 뿌려놓은 방역약품이다.AI는 비무장지대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비록, 예방약 가루가 옥의 티이기는 하지만, 비무장지대는 개발바람에 휘말린 우리 국토에서 천연의 허파로 남아 있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벼대는 소리는 귀로(歸路)에 한층 크게 들린다. 문득 스쳐가는 부처의 한마디.‘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했던가. 너와 나를 구태어 나누려는 세속의 분별심이 무색해진다. 글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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