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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 통가맨·12세 탁구신동… 도쿄 새 역사 만들 마이너들

    평창 통가맨·12세 탁구신동… 도쿄 새 역사 만들 마이너들

    올림픽은 몸값이 하늘을 찌르는 ‘월드 스타’들의 각축장만은 아니다. 눈길 한 번 받지 못했던 ‘마이너’의 무대가 올림픽이다. 리우데자네이루와 평창에서 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근육맨’ 피타 타우파토푸아(38)가 도쿄에서도 통가의 선수단을 이끈다. 그는 2016년 리우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 모양의 전통 복장에 기름을 발라 번쩍거리는 상체 근육을 뽐내며 통가 국기를 들고 입장했다. 태권도 선수로 리우 대회에 나섰던 타우파토푸아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변신했다. 평창의 강추위는 아랑곳없는 듯 그는 리우 때와 같은 모습으로 개회식에 다시 등장했다. 당초 카누 선수로 도쿄 올림픽에 출전할 계획이었던 그는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해 지난해 2월 태권도에서 티켓을 따냈다. 그는 21일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올림픽 기적이 필요하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1984년 LA 대회를 통해 올림픽에 첫 출전한 통가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복싱 은메달이 유일한 입상 성적이다. 호주 승마 선수 메리 해나(67)는 도쿄 대회 최고령 선수다. AP통신은 “손자까지 있는 그는 이번이 6번째 올림픽 출전”이라고 소개했다. 2008년 베이징만 거르고 애틀랜타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한 해나는 그러나 올림픽 메달은 한 개도 없다. 12세의 시리아 ‘탁구 신동’ 헨드 자자는 최연소 (여자)선수다. 그는 지역 예선에서 42세의 ‘베테랑’ 마리아나 사하키난(레바논)을 꺾고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그는 국제탁구연맹(ITTF)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연습 때 자주 정전이 돼 힘들었다. 라켓과 공을 구하기도 어려웠다”고 자신의 처지를 밝히기도 했다. 역도에 출전하는 뉴질랜드의 로럴 허버드(43)는 성전환 선수로는 최초의 올림피언이다. 2013년 수술을 받고 여자로 성을 바꾼 그는 2017년 뉴질랜드 국가대표가 돼 그해 12월 세계선수권에서 인상·용상 합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 고원도시 태백에서 은하수 만나기

    고원도시 태백에서 은하수 만나기

    열대야가 없는 고원도시 강원 태백시가 ‘은하수 투어’ 등 여름도시 브랜드 마케팅을 본격 추진한다. 태백시가 추천한 은하수 투어 장소는 모두 7개소다. 빛공해지수 0.87의 함백산(1573m)을 비롯해, 오투리조트(996m), 탄탄파크(742m), 당골광장(865m), 추전역(851m), 스포츠파크(812m), 용연동굴(890m) 등이다. 태백시 관계자는 “평균 해발고도 902m로 국내 도시 중 가장 높고 빛공해지수가 낮아 별 관측에 최적지”라며 “코로나19 시대의 소규모, 소도시 여행 패턴에도 잘 맞는 곳”이라고 말했다. 7개소는 모두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어 안전하게 별을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은하수 여권’ 인증 이벤트도 진행한다. 장소별 은하수 사진과 스탬프 인증 등으로 여권을 완성하는 이벤트다. 은하수 전문 사진작가를 초빙해 별 사진 촬영법 등 강연도 벌일 예정이다. 태백시청 누리집(www.taebaek.go.kr) 참조. 한국에서 은하수를 관찰하기 좋은 시기는 7월말~8월 둘째 주다. 그믐날(8월 8일) 가장 선명하고, 전후 일주일이 사진 찍기에 좋은 시기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창작·번역 이중주로…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 지휘한다

    창작·번역 이중주로…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 지휘한다

    곽효환 시인은 우리 시단에서 ‘북방’이라는 상징적 키워드를 발굴하고 개척해 온 선구자로 유명하다. 그동안 펴낸 네 살 터울의 4형제 시집 ‘인디오 여인’(2006), ‘지도에 없는 집’(2010), ‘슬픔의 뼈대’(2014), ‘너는’(2018)에서 그는 인류의 시원(始原)을 찾아나서는 기행과 편력을 통해 이면의 역사를 탐구했고, 서정과 서사의 균형적 결속을 통해 궁극적 자기 긍정의 주제를 담아 왔다고 할 수 있다. “저는 북방을 단순한 심상지리 차원이 아니라 기원, 사랑, 존재 등과 동의어로 생각해 왔습니다. 북방을 통해 역사적 개인과 공동체의 삶 그리고 그 밑바닥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주변인들의 비극성을 두루 천착해 온 것이지요.”#북방의 시인이 맞은 구체적 확장의 순간 그는 우리 시단의 공백 지대였던 이른바 탈경계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민중성을 탐색해 보려 했다고 한다. “이때 민중성이란 백지 상태에서 바라본 민중 서사를 함축한다”는 그는 “가는 곳마다 펼쳐져 있는 이산(diaspora)과 울음의 흔적을 수습하면서 제 가슴도 한없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북방은 이제 한국문학번역원장이라는 직책에 맞게 더욱더 구체적인 확장의 순간을 맞을 것 같다. 북방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최전선에 그가 서게 된 까닭이다. “그동안 해 왔던 일의 연장선에 있으니 낯설지는 않아요. 그러나 보다 공공성을 갖추어 효율성과 절차적 합리성을 동시에 추구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 얼마 전 곽효환 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임기 동안 추구해야 할 목표와 전략을 정성 들여 소개했다. “제가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상황은 어느 때보다 가능성으로 충일합니다. 임기를 마칠 즈음에는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의 기초를 확실히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귀에 익숙한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아닌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라는 표현에서는 번역원의 임무가 단순한 해외 소개를 뛰어넘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그는 “세계화라는 말은 한국문학을 바깥에서 알아 달라고 애원하던 시대의 술어”라면서 “세계문학, 출판시장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그 위상과 가능성을 3년 임기 동안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으로 귀착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 개척 작업은 곽 원장이 30년 가까이 대산문화재단에서 지속적으로 해 왔던 일들과 그대로 연동된다. 그는 1999년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교류의 담론장으로 서울국제문학포럼을 기획했고, 프랑스를 방문해 르 클레지오, 이스마엘 카다레 등 프랑스의 주요 문인들을 만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때 만남을 인연으로 2001년 르 클레지오를 서울에 초청했고, 이후 지속적 교류를 통해 르 클레지오는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주요 참석자이자 세계적인 지한파 작가가 됐다. 2000년에는 피에르 부르디외, 월레 소잉카, 개리 스나이더 등 세계적 문호들을 초대한 2000년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실무를 맡았다. 이후에도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조직위원 겸 집행위원장을 맡아 세계문학의 상호 교류와 새로운 담론 생산을 담당하는 허브 역할을 했다. 2008년에는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을 통해 첫 동아시아문학포럼의 서울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오랜 기초공사를 통해 이제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구축하고 확장해 가는 지휘자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곽 원장은 한국문학 저작권 상시 거래 온라인 플랫폼 운영, 번역대학원대학 설립 추진, 한국어 콘텐츠 번역 지원 및 번역 인력 양성, 한국문학 해외 소개 맞춤형 전략 수립 및 시행 등을 세부적인 중점 추진 과제로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국학 열풍을 제때 활용해야 하는데, 특별히 번역대학원대학 같은 사업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시인 곽효환의 기원과 궁극 곽효환 시인은 196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잠업검사소 소장으로 재직해 유복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거듭된 사업 실패로 집안은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끝내는 서울 사당동 달동네로 이사해 그곳에서 6개월여를 살았다. “이후 어머니는 낮에는 건강식품 외판원, 밤에는 재봉 공장 미싱사 등을 하며 놀라울 정도로 집안을 일으키셨어요. 반면 아버지는 친구와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내며 집에선 점점 폭군이 돼 가셨어요.”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인생의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처럼/쉽게 흔들리지도 그렇게/일찍 지지도 그렇게/흘러가지도 않을 것이다’(‘늙은 느티나무에 들다’, ‘슬픔의 뼈대’에 수록)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은 시인에게 이처럼 분명한 역상(逆像)으로 존재했다. ‘사당동 산 17번지. 78년은 몰락한 소시민의 피난처이자 안식처. 거듭되는 사업 실패로 추락한 아버지의 종착지’(‘물 길러 가는 길’, ‘인디오 여인’에 수록), ‘삼십 주기 기일을 며칠 앞두고 낡고 해진 아버지의 사진첩을 편다’(‘아버지의 사진첩’, ‘지도에 없는 집’에 수록)라는 표현도 한없이 이어져 간다. 불우하고도 애틋한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다시 떠올리며 그는 자신만은 단단하고도 오랜 시간으로 깃들이고 말 것이라고 다짐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시인 곽효환’의 허기와 총기와 결기는 모두 아버지라는 그리움의 수원에서 나온 것들인지도 모른다.대학에 들어간 청년 곽효환은 최서해의 소설을 읽으며 밤새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자유의 정의를 향한 퓨리턴의 초상과 부정한 시대에 응전하는 불온성에 매료됐다고 한다. “대학신문 주간 조남현 교수의 균형 있고 깊이 있는 글과 시선,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평생의 스승으로 삼을 것을 결심했다”는 그는 지금도 자신의 문학적 스승으로 조남현 선생, 언제나 학문적 지남이 돼 준 유종호 선생, 대학원 지도교수인 최동호 선생을 꼽는다. 세 사람의 문학적 편폭이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갈무리돼 지금까지 시 쓰기와 연구와 문학행정을 두루 감당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짧은 언론사 생활을 마치고 대산문화재단에 들어가 30여년의 시간을 문화사업 기획과 실천에 쏟았다. 그러는 동안 꾸준히 습작도 했다. “신춘문예에 투고했는데 번번이 본심 진출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 조용호 기자의 권유로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을 발표했습니다. 공식적인 첫 지면이었지요.” 그 후 2002년 계간 ‘시평’에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곽효환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곽효환의 시는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비속하고 남루하며, 그 어딘가에는 그 비속함과 남루함을 벗어난 신성하고 근원적인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시를 써 간다. 이때 우리는 그가 세상살이의 신산함에 내던져진 채 비극적 삶을 살아갔던 “그들이, 그들의 삶이 시라고 믿는”(‘지도에 없는 집’ 뒤표지 글) 시인이라는 점을 소중하게 기억하게 된다. 그것이 그의 시가 가지는 기원과 궁극일 테니까 말이다.#머나먼 시간과 공간으로의 세계 곽효환은 여전히 완강하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세계를 하염없이 형상화해 간다. 옹색한 한반도를 떠나 북방을 찾아 나서면서 그는 시대와의 불화를 방법론적으로 확산해 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인간의 순수 원형이 존재하거나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다녔어요. 길과 여행이야말로 현실 원리가 지배하는 시공간으로부터의 과감한 탈주를 수행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시가 역사의 비주류 정서가 숨쉬고 있는 북방에 대한 경험 및 상상을 취하고 있음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 그러한 속성이 그로 하여금 더욱 성숙한 시인의 존재론적 기반을 갖추게끔 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시집 ‘너는’에서 그는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탈환하는 사랑의 대상으로 친근하고도 머나먼 ‘너’를 호명했다. 여기서 ‘너’란 시인의 말을 빌리면 “시원이면서 궁극”이고 “끝내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타자”다. 그 ‘너’를 찾아 그는 앞으로도 머나먼 시간과 공간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쳐 갈 것이다. 창작과 번역이라는 이중 범주를 한몸에 안고 그가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오롯이 착근시켜 가기를 함께 희망해 본 한여름의 만남이었다.
  • 57년 전 ‘원자 보이’처럼… 희망 전할 최종 성화 주자 누구

    역대 올림픽이 그랬듯이 1년 미뤄져 개막하는 도쿄대회 성화 최종 주자도 마지막 순간에 베일을 벗을 전망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이 전후 부흥을 내세우며 아시아 처음으로 여름 올림픽을 개최한 1964년 도쿄올림픽 성화 점화자는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피폭지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당시 19세의 사카이 요시노리였다. 와세다대 육상부원이었던 사카이는 올림픽에 출전할 기량은 부족했지만 태생 이력과 ‘전후 재건’을 기치로 한 첫 도쿄올림픽 콘셉트에 딱 들어맞았다. 높이 32m, 163개 계단을 오른 뒤 성화대에 불을 붙인 그를 외신들은 ‘원자 보이’라고 불렀다. 57년 만에 다시 도쿄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도 ‘부흥’이라는 관점에서 그때와 흡사하다. 이번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재건·부흥에다 코로나19 극복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따라서 자연재해와 감염병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올림픽 성화 점화자도 1964년의 사례를 원용할 수도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 중에서는 여자 레슬링의 요시다 사오리와 피겨 스케이팅의 하뉴 유즈루, 남자 유도의 노무라 다다히로 등이 성화 점화자의 주요 후보군이다. 요시다는 2012 런던 대회까지 여자 레슬링 55㎏급을 3연패하고 세계선수권을 13차례나 제패한 스타다. 하뉴도 2018 평창까지 남자 피겨 싱글을 2회 연속 우승한 일본 피겨의 상징이다. 일본의 유도 영웅 노무라는1996 애틀랜타부터 2004 아테네 대회까지 남자 60㎏급을 3회 연속 우승했다.
  • ‘X파일 스컬리’ 질리언 앤더슨 ‘노브라’ 선언…“너무 불편해!”

    ‘X파일 스컬리’ 질리언 앤더슨 ‘노브라’ 선언…“너무 불편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X파일’의 ‘스컬리 요원’ 역을 맡았던 배우 질리언 앤더슨(52)이 ‘노브라’ 선언을 해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앤더슨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의 자택에서 인스타그램 실시간 영상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근황을 전하던 중 “나는 브라를 더 이상 입지 않는다. 입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대화 도중 브래지어 착용과 관련해 “너무 불편하다”면서 “설사 가슴이 배꼽까지 내려간다고 해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1968년 미국에서 태어난 앤더슨은 1993~2002년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X파일’에서 FBI 특수요원 데이나 스컬리 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1996~1997년 이 드라마로 골든글로브, 에미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엔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 역을 맡아 호연을 펼치면서 2021년 골든글로브 등에서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앤더슨의 노브라 선언은 소셜미디어에서 지지와 공감을 끌어모았다. 해당 영상 조회 수는 43만회를 넘어섰다. 댓글에는 “골든글로브, 에미상을 여러 번 받은 배우가 ‘더 이상 브라는 없다’고 그러는데 우리 중 누가 반대하겠나”라며 지지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 [서울광장] ‘귀족노조’의 각자도생과 사회적 배려/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귀족노조’의 각자도생과 사회적 배려/전경하 논설위원

    지난 6일 소방공무원 노조 두 개가 생겼다. ‘국제노동기구(ILO) 3법’ 중 하나인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이 이날부터 시행돼 소방공무원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 전국소방안전공무원노조다. 이날 출범한 노조들이 밝힌 목표는 인력 확충, 노후 장비 개선, 구급대원 방어권 등이다. 소방공무원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조건들이 노조 출범 이후에야 조직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노조는 이래서 필요하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최근 파업을 결의했으나, 실행 여부가 남아 있다. 임금단체협약에서 회사 제시 사항은 호봉승급분을 포함해 기본급 월 5만원 인상, 성과급 100%+300만원, 품질향상 격려금 200만원, 10만원 상당 복지 포인트 등이었다. 노조 요구는 정기·호봉승급분을 제외한 기본급 9만 9000원 인상, 성과급 30%, 최장 만 64세로 정년 연장, 국내 공장 일자리 유지 등이다. ‘철밥통’인 공무원 정년이 60세다. 2016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1996년 이후 공직을 시작한 공무원은 내년부터 연금 수령이 2~3년마다 1년씩 늦춰져 2033년부터는 65세에 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 수령과 같다. 연금 수령과 연계된 현대차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는 회사가 쉽게 결정할 수 없지만, ‘귀족노조’인 현대차노조는 거침이 없다. 현대차 직원의 지난해 평균 근속연수는 19년, 평균 연봉은 8800만원이다.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에는 노조원이 줄어든다는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현재 5만명인 현대차노조는 생산직, 특히 50대가 절대 다수다. 이들의 정년퇴직으로 노조원이 당분간 매년 2000명가량 줄어든다. 노조원 감소라는 고민에서 국민은행노조는 자유롭다. 국민은행은 관리자급인 부지점장이 노조에 가입한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다. 전체 노조원을 1만 4000명 정도로 유지한다는 노사 합의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2019년 1월 8일 파업을 했다. 경영진이 비상 인력을 투입하며 정상 운영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지만 대출 등 일부 업무를 제외한 많은 고객은 별 불편을 겪지 않았다. 자동입출금기(ATM), 인터넷뱅킹 등 디지털화가 많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해서 그 파업은 많은 은행원이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 준 역설적 파업으로 평가된다. 파업 당시 요구 사항은 성과급 300%와 전환정규직(L0)에 대한 처우 개선. 성과급은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 합의했고, L0 처우 개선은 아직도 논의 중이다. 올 초에도 같은 문제로 파업 직전까지 간 국민은행 직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원이다. 현대차와 국민은행은 좋은 일자리의 정점에 있다. 현대차노조와 국민은행노조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중요한 조직이다. 현대차노조가 속한 금속노조(18만명)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전까지 민주노총의 핵심 노조였다. 국민은행노조가 속한 금융노조(10만명)는 한국노총의 최대 계파다. 금융노조위원장 출신 이용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등이 그 세를 보여 준다. 박홍배 현 금융노조위원장은 2019년 국민은행 파업 당시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이었다. 좋은 직장에서 많은 연봉을 받아도 노조는 필요하다. 문제는 보편성이다.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은 생계를 위협받지만 통장에 월급 찍히는 직장인은 그 고통을 알기 어렵다. 미래 노조원인 청년(15~29세)의 체감 실업률인 확장실업률은 지난 5월 기준 24.3%다. 4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 상태라는 뜻이다. 해당 산업의 ‘1등 기업’ 노조라면 선결제, 인턴 채용 등으로 코로나로 고통받는 자영업자, 청년 등을 배려할 여유가 있을 법한데 각자도생이라 내 지갑 말고는 관심이 없는가. 한 은행장은 “노조 조직률이 올라가 근로자들이 더 나은 대접을 받았으면 싶다가도 파업을 빌미로 내세우는 조건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고 했다.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2.5%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달 발표한 국가경쟁력에서 우리나라는 64개국 중 23위지만 노동시장은 37위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순위도 141개국 중 13위지만 노동시장은 51위다.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노조도 가입했다면 노조에 부정적 이미지를 더하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래야 사회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줄어들고, 국민도 기업도 노조를 긍정적으로 대할 거다. 양대 노총은 조직 확대뿐만 아니라 이런 사회적 배려를 위해 경쟁할 생각은 없는가.
  • 도쿄올림픽 안 가는 바이든, 영부인이 개회식 참석

    도쿄올림픽 안 가는 바이든, 영부인이 개회식 참석

    질 바이든 여사, 첫 단독 외국방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행하지 않는다. 백악관 영부인실은 1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질 바이든 여사가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다고 전했다. 미 대통령이 외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석했던 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처음이었고, 이후로는 없었다. 질 여사로서는 영부인이 된 이후 첫 단독 외국 방문이다. 지난달 유럽 방문은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였다.도쿄올림픽 개회식 참석, 열흘 전 공식 발표 질 여사의 참석은 개회식 열흘 전인 이날에야 발표됐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메신저 역할을 해온 질 여사가 이번 올림픽 참석을 통해 위상을 더 높이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질 여사는 2010년 부통령으로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석한 바 있다. 앞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내 로라 여사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도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미국 대표단장이었다. 2018년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때는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 부부가 개회식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폐회식에 참석한 바 있다.
  • 양천구,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복지보건대상 수상

    양천구,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복지보건대상 수상

    서울 양천구는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주최하는 ‘2021년 제26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공모에서 기관종합평가 ‘복지보건대상’을 수상했다.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은 1996년 민선 시작과 함께 실시해 이번에 26회를 맞이하는 상이다. 혁신적 조직 운영과 효율적인 정책 추진으로 주민 삶의 질 향상과 지역발전에 기여한 지방자치단체와 공직자의 업적을 평가하고 시상한다. 평가 부문은 ▲행정혁신 ▲문화관광 ▲복지보건 ▲지역개발 ▲산업경제 ▲환경안전 등 7개 분야다. 1차 서류심사, 2차 인터뷰 심사, 3차 주민 만족도 조사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구는 ‘복지보건 분야’에서 세계보건기구(WHO)고령 친화도시 조성, 건강도시학교 운영, 백세건강돌봄사업, 건강힐링문화관 개관, 장애인평생학습센터 설치, 우리동네 키움센터 확충 등 성과를 인정 받았다. 특히 복지환경 분야 스마트시티 특구로서, 고독사 예방을 위한 스마트플러그, 장애인전용 주차구역 지킴이, 발달장애인 실종안전지킴이 등 스마트기술을 활용해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형 스마트서비스를 추진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수영(사진) 양천구청장은 “코로나 19로 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 기쁘며, 앞으로도 아이와 여성, 장애인, 어르신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친화도시 양천으로 발전시키는 데 더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11m 앞에다 두고… 빗장 친 이탈리아, 가슴 친 잉글랜드

    11m 앞에다 두고… 빗장 친 이탈리아, 가슴 친 잉글랜드

    이탈리아가 잉글랜드를 잡고 웸블리 구장을 ‘아주리(푸른색)’로 물들였다. 승부차기 골문을 굳게 지킨 잔루이지 돈나롬마는 골키퍼로는 유로 대회 사상 처음으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이탈리아는 1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축구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결승에서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다 승부차기에서 잉글랜드를 3-2로 제압했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자국에서 열린 1968년 대회 이후 53년 만에 유럽축구 정상을 탈환했다. 2000년대 2차례(2000년·2012년)나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에 실패했던 이탈리아는 기어코 세 차례 도전 끝에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A매치 34경기 연속 무패(27승7무) 행진도 이어갔다. 특히 월드컵 4회 우승에 빛나는 이탈리아는 4년 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유럽지역 플레이오프에서 스웨덴에 져 60년 만에 본선 진출 실패의 쓴맛을 봤었다.이후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을 사령탑에 임명한 뒤 니콜로 바렐라(인터밀란) 등 그동안 대표팀에서 주목받지 못한 선수를 중용해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강팀의 면모를 되찾았다. 반면 대회 첫 결승에 진출, 안방에서 ‘무관’의 한을 풀려던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무실점을 비롯해 총 4골의 ‘짠물 수비’를 펼친 이탈리아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66년 월드컵 우승 뒤 웸블리에서의 두 번째 메이저 우승컵도 물거품이 됐다. 잉글랜드는 역대 최다 시간인 경기 시작 1분 57초 만에 키이런 트리피어의 크로스를 받은 루크 쇼가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선제골을 성공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후반 22분 레오나르도 보누치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췄다. 연장까지 이어진 120분간의 접전에도 가리지 못한 우승컵의 주인은 이탈리아의 선축으로 펼쳐진 승부차기에서 결정됐다. 두 번째 키커 안드레아 벨로티의 슈팅이 픽퍼드에 막히면서 1-2로 끌려가던 이탈리아는 그러나 잉글랜드의 세 번째 키커 마커스 래시퍼드의 슈팅이 골문을 벗어나고 네 번째 키커 제이든 산초의 슈팅마저 돈나룸마의 선방에 막히면서 3-2로 리드를 잡았다. 이탈리아는 마지막 키커 조르지뉴의 슈팅이 불발됐지만 이어진 부카요 사카의 슈팅도 돈나룸마의 손에 걸리면서 우승을 확정했다. 결정적 역할을 한 돈나룸마는 MVP 격인 ‘플레이어 오브 더 토너먼트’에 선정됐다. 1996년 제정된 이 상을 골키퍼가 받은 건 돈나룸마가 처음이다. 나란히 5골을 넣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와 파트리크 시크(체코)는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 1세대 전자상거래업체 ‘인터파크’ 팔린다

    1세대 전자상거래 업체 인터파크가 경영권 매각을 추진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인터파크의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이기형 대표는 NH투자증권을 매각자문사로 정하고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매각을 검토 중이며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회사 지분 28.41%를 확보하고 있다. 이날 코스닥 시장 종가(5650원) 기준 인터파크의 시가총액은 4587억원으로, 이 대표의 지분가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외하고 1284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가 경영권을 매각하고 나선 것은 최근 이커머스 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서다. 네이버와 쿠팡, 신세계, 롯데 등이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인터파크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했다. 인터파크의 지난해 매출액은 3조 1692억원으로 전년보다 7.1% 줄었고, 1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올 1분기에도 61억원의 적자를 냈다.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해 100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를 3조 4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전자상거래 기업의 몸값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인터파크는 이 대표가 데이콤 재직 당시 사내 벤처로 시작된 회사다. 1996년 6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쇼핑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회사 G마켓을 이베이코리아에 매각한 뒤로는 공연 티켓, 여행 쪽으로 특화했다. 현재 공연 예매 쪽에서는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보통신(IT) 업계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유통업계에선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물러났던 롯데가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 용산, 자매도시 베트남 퀴논에 한옥 건물 건립

    용산, 자매도시 베트남 퀴논에 한옥 건물 건립

    서울 용산구가 해외 자매도시인 베트남 퀴논시에 우호 교류 25주년을 기념하는 한옥 건물을 세운다. 구는 전북대, 효성중공업과 손잡고 정자, 정원, 한국 홍보관으로 구성된 한옥 건축물을 퀴논시에 건립한다고 11일 밝혔다. 앞서 구는 지난해 전북대와 ‘한옥 세계화를 위한 건축한류 공동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양 기관은 한옥 부흥을 위한 협력, 한옥 건축 및 기술력 수출 등을 소재로 한 지역 및 해외 봉사활동 협력 등을 약속했다. 효성중공업은 전북대에 한옥건축 건립기금 2억원을 기탁했다. 한옥 건물 부지는 퀴논시 안푸팅 신도시(국제무역지구)에 200㎡ 규모로 마련했다. 건물과 정자 설계는 전북대 한옥건축기술인력양성사업단이 주관한다. 퀴논시는 베트남 중부 빈딘성의 성도로 최근 뜨는 국제 관광도시다. 1996년 용산구의원으로 활동했던 성장현 구청장이 구 대표단으로 퀴논시를 처음 찾으면서 우호 교류의 물꼬를 텄다. 성 구청장은 민선 5기 취임 후 2011년부터 퀴논시 우수 학생들이 숙명여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12년부터 이어 온 ‘사랑의 집짓기’ 사업도 호응을 얻고 있다. 2018년에는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성 구청장이 한국 기초단체장 최초로 베트남 주석 우호훈장을 받았다. 성 구청장은 “새롭게 한옥 건축물을 세우고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관계를 더 깊이 다져 나가겠다”고 말했다.
  • 반세기 전 유행한 ‘스윗 캐롤라인’ 어쩌다 잉글랜드 대표팀 응원가 됐나

    반세기 전 유행한 ‘스윗 캐롤라인’ 어쩌다 잉글랜드 대표팀 응원가 됐나

    반세기 전에 유행했던 미국 팝스타 닐 다이아몬드(80)의 노래 ‘스윗 캐롤라인’이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20 결승에까지 오른 잉글랜드 대표팀의 비공식 응원가가 된 것은 조금 의아하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덴마크를 연장 끝에 2-1로 물리친 대회 준결승 킥오프를 앞두고는 물론, 경기가 끝난 뒤 웸블리 구장을 가득 메운 6만여 관중이 한데 어울려 55년 만의 메이저 대회 결승 진출의 감격을 담아 이 노래를 불렀다. 왜 전 미국 대통령의 딸에 관한 사연을 담은 이 노래가 잉글랜드 팬들의 응원가가 됐는지 BBC가 8일 소개해 눈길을 끈다. 유명 해설위원 개리 네빌 등도 이런 풍경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잉글랜드의 대회 결승 진출보다 모든 관중이 어깨를 결고 구르며 이 노래를 한데 어울려 부르는 모습에 더 얼떨떨해 하는 것 같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사우스웨일즈 대학의 대중음악 분석과 교수인 폴 카는 최근 신문 기사를 통해 1969년에 발표된 다이아몬드의 이 노래가 “부르는 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되살려내기 때문”이라며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는 멜로디가 단순하고 가사에 뭔가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가사 중에는 “좋은 시절은 결코 좋게 여겨지지 않았어요” “손을 뻗어 날 만져요 당신을 만져요”가 있는데 다음 구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며 차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는 것이다. 일년 넘도록 봉쇄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힘든 시간을 보낸 이들이 주먹을 공중에 휘저으며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라고 ‘떼창’을 불러댄다. 물론 감염병 확산 우려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다이아몬드는 부인 마르시아를 떠올리며 가사를 썼다고 말했는데 캐롤라인이란 이름은 잡지에서 읽었던 캐롤라인 케네디, 즉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재클린 여사 사이의 딸 이름을 따왔다고 했다. 나중에 그녀는 주일 미국대사를 지냈다. 이 노래는 미국 차트에서 4위, 영국 차트에서는 8위에 그쳤는데 1990년대 말 미국프로야구(MLB)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의 한 직원이 새로 태어난 딸 이름을 캐롤라인으로 지은 뒤 경기장에서 울려퍼진 것이 스포츠 응원가로 변신하게 됐다. 이상하게도 이 노래가 홈 구장에 울려퍼지기 시작한 뒤부터 구단의 성적이 좋아져 2013년에는 매주 흘러나왔다. 다이아몬드는 그 해 한 경기에 앞서 마운드에 올라 이 노래를 불러 미래의 충직한 레드삭스 팬들 앞에서 보스턴마라톤 폭탄테러 희생자들을 돕는 기금을 모금했다.미국프로풋볼(NFL) 캐롤라이나 팬더스와 북아일랜드 프로축구 리그도 이 노래를 응원가로 채택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도 2017년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준결승 승리 후 이 노래를 함께 불렀고, 아스턴 빌라와 캐슬퍼드 타이거스 럭비 구단도 이 노래를 들려줬다. 잉글랜드 크리켓 대표팀이 2019년 월드컵 승리 후 이 노래를 불렀고 복싱 선수 타이슨 퓨리도 응원이 필요할 때 이 노래를 찾았다. 이 노래가 스포츠 경기에서 새로운 유행을 일으킨 첫 노래도 아니었다. 리버풀 구단의 응원가는 일찍이 뮤지컬 ‘캐루젤’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을 썼고, 스코틀랜드 축구팬들은 1977년 히트곡 ‘예써 아이 캔 부기’를 채택했다. 독일에 55년 억눌려왔던 열등의식을 해소한 준준결승 직후 웸블리 구장의 디스크자키 토니 패리는 원래 1998년 월드컵 응원가였던 팻 레스의 빈달루(Vindaloo)를 틀려던 것을 갑자기 이 노래로 바꿨다. 그는 토크스포츠 인터뷰를 통해 “감이 딱 왔다. 나중에는 독일 팬들까지 목청껏 불러제쳤다. 모든 팬들이 좋아할 수 있는 노래다. 경기 감독관이 이어폰을 통해 내게 ‘세상이 18개월 동안 닫혀 있었잖아. 이제 마음껏 놀아보자구’라고 속삭이더라’고 털어놓았다.유로 1996에서 공식 채택된 뒤 잉글랜드 대표팀의 경기 직후에는 늘 ‘삼사자(Three Lions)’가 불렸는데 이제 이 노래로 대체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삼사자’ 작사자인 프랭크 스키너는 “그 노래가 내 노래보다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대표팀은 독일을 물리쳤고, 난 연장전에서 다이아몬드에게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다이아몬드는 독일과의 준준결승 직후 자신의 노래가 떼창으로 불린 것에 전율을 느꼈다며 덴마크와의 준결승을 앞둔 잉글랜드에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하겠다고 밝혔단다. 25년 전 독일과의 대회 준결승 승부차기 실축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현 잉글랜드 감독은 덴마크와의 준결승을 앞두고 ITV 인터뷰를 통해 “닐 다이아몬드를 물리치긴 어렵다. 정말로 즐거워지는 노래다. 내 생각에 이 노래는 사람들을 한데 묶어준다”고 말했다.
  • 축구 종가 ‘마지막 종’ 가능할까

    축구 종가 ‘마지막 종’ 가능할까

    잉글랜드가 연장 혈투 끝에 덴마크의 돌풍을 잠재우고 사상 처음 유럽 국가대항전 결승에 올랐다. 잉글랜드는 8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로2020 4강전에서 덴마크와 전후반 90분을 1-1로 비긴 뒤 연장전에 터진 해리 케인의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이겼다. 잉글랜드가 축구 종가이자 강호이기는 하지만 1960년 출범한 유로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다. 1968년 이탈리아 대회와 1996년 자국 대회 4강이 그동안 최고 성적이었다. 잉글랜드는 월드컵에서도 1966년 자국 대회에서 딱 한 번 결승에 올라 우승했다.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심정지로 쓰러져 이탈하는 아픔을 겪은 덴마크는 1992년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잉글랜드는 12일 웸블리에서 A매치 33경기 연속 무패 행진하며 유로1968 이후 53년 만에 정상을 노리는 이탈리아와 격돌한다. 코로나19 여파에도 웸블리는 이탈리아-스페인 4강전부터 관중석의 75%를 개방했고 이날 6만명이 몰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부부도 있었다. 대부분 잉글랜드를 응원했다. 경기도 잉글랜드가 다소 우세했으나 선제골은 덴마크 몫이었다. 전반 30분 미켈 담스고르의 무회전 프리킥이 잉글랜드 골망에 비수처럼 꽂혔다.잉글랜드는 그러나 9분 뒤 상대 자책골을 이끌어냈다. 부카요 사카가 문전 쇄도하던 라힘 스털링을 향해 깔아찬 패스가 상대 수비에 맞고 골문으로 향했다. 덴마크 수문장 카스페르 슈마이켈의 선방에 번번히 막히던 잉글랜드는 연장 전반 막판 기어코 승부를 뒤집었다. 스털링이 박스 오른쪽을 파고들다 요하킴 메흘레에 밀려 넘어졌다. 다이빙으로 보이기도 해 비디오판독(VAR)까지 거쳤지만 결국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케인의 킥이 슈마이켈에 막혀 잉글랜드 팬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도 한순간 튀어나온 공을 케인이 재차 슈팅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뽑았다. 조별리그에서 침묵하던 케인은 16강전부터 3경기 연속 득점에 4골을 뽑아내며 부활했다.
  • 이봉주, 수술 후 재활 근황…휠체어·지팡이 없이 자력 기립

    이봉주, 수술 후 재활 근황…휠체어·지팡이 없이 자력 기립

    희귀질환을 앓고 수술을 받았던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의 최근 재활 근황이 공개됐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지난 6일 페이스북에 “한국 마라톤의 영웅 이봉주 선수가 지난 6월 7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척추 낭종 제거 수술을 받은 이후, 현재는 수원에 있는 모 병원에서 재활 중이어서 한남교 천안시 체육회장과 함께 다녀왔다”고 밝혔다. 박 시장이 공개한 사진에는 환자복 차림의 이봉주 선수가 박 시장과 한 회장의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수술 전 허리와 등이 굽고 통증을 겪었던 이봉주 선수는 사진 속에서 조금 더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지팡이에 의지하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던 것과 달리 혼자 힘으로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박 시장은 “수술 경과가 좋아 허리, 머리에 있던 통증이 사라졌다고 해서 천안 시민분들의 안부와 격려 말씀을 전하고, 앞으로 개최할 이봉주 기념 마라톤 코스도 설계해보라며 격려하고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이봉주 선수는 근육긴장이상증으로 1년 6개월 동안 극심한 허리 경련과 통증에 시달리고, 허리와 등이 굽는 등 불편함을 겪어왔다. 결국 지난달 7일 이봉주 선수는 지난달 ‘척수지주막낭종’(흉추 6~7번 사이 낭종) 제거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병원을 옮겨 재활에 힘을 쏟고 있다. 이봉주 선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0년 일본 도쿄 국제마라톤에서는 2시간7분20초의 한국 기록을 작성하며 ‘국민 마라토너’로 불린다.
  • 이철희, ‘박성민 비판’ 국힘 보좌진에 “너희들은 시험으로 뽑혔냐”

    이철희, ‘박성민 비판’ 국힘 보좌진에 “너희들은 시험으로 뽑혔냐”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임명 당시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가 공개 비판한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7일 유튜브 채널 JTBC 인사이트에서는 ‘신예리의 밤샘토크’ 두 번째 에피소드 영상이 공개됐다. 이날 이 수석은 “제가 보좌관 출신이지 않나. 보좌관은 시험으로 뽑는 게 아니고 그냥 의원이 마음에 들며 쓰는 것”이라며 “그런데 특정 정당의 보좌진협의회에 있는 친구들이 ‘왜 비서관을 그렇게 뽑느냐’고 말하길래 ‘너희들은 시험으로 뽑았냐’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시험을 안 보고 보좌관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수석은 “‘여성이라 (이런 논란이 생기는) 그런 건가’라는 생각을 해봤다”며 이러한 논란에 대해 “부당하다고 느껴졌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마냥 1급(공무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잠시 있다가 가는 것인데 그걸 마치 고시 붙은 사람들 자리를 뺏은 것처럼 말했다. 정상적인 문제 제기는 아니다”라며 “우리가 어른으로서 청년 문제를 못 풀어줬으니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게 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청년비서관은 청년이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지난달 21일 임명된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은 1996년생 대학생으로, 최연소 민주당 지도부에 이어 최연소 청와대 비서관 타이틀을 따면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후 박 비서관의 발탁에 대해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지난달 22일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국보협)는 “격을 깨뜨리는 것이 파격이다. 이번 인사는 아예 ‘격’이 없는 경우”라며 “파격이 아닌 코미디”라고 공개 비판했다. 국보협은 “이런 인사는 청년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분노만 살 뿐”이라며 “일반적인 청년들은 몇 년을 준비해 행정고시를 패스해 5급을 달고 근 30년을 근무해도 2급이 될까 말까 한 경우가 허다하다. 수많은 청년이 이번 인사에 성원을 전하겠는가, 박탈감을 느끼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비서관에 대해서는 “최고위원 지명 당시에도 파격으로 주목받았으나 그가 내놓은 청년 정책·메시지는 한 건도 없었다”며 “실질적으로 임기가 9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임명이 기사화된 이후, 앞으로는 기사에 등장할 일이 거의 없는 자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인사에 대해 이 수석은 지난달 24일 JTBC ‘썰전’에 출연해 “청년들이 갈증을 느끼고 ‘우리가 하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워낙 강했다”며 “청년들의 목소리에 호응하기 위해서 당사자를 (비서관) 지위에 앉힌 거고, 또 박 비서관은 정치권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며 검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너무 일찍 고위직으로 간 것 아니냐는 비판도 겸허히 듣겠다”면서도 “당분간만이라도 지켜보고 그 친구가 (비서관을) 시킬 만한 사람인지 제대로 보고 평가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주시면 좋겠다. 그때 만일 실망시켜드리면 제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 발가벗음이라 쓰고, 인간 아름다움의 본질이라 읽는다

    발가벗음이라 쓰고, 인간 아름다움의 본질이라 읽는다

    “자신의 몸을 마주하는 것이얼마나 큰 위안 주는지 모른다 ”“인간의 몸은 그 사람의 나이, 성격과 습관은 물론 욕망까지 배어 있는 그 자체로서 완성된 ‘나’가 아닐까요. 발가벗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민망함은 찰나의 감정일 뿐이죠. 인간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직접 이끌어 낸다는 자부심이 더 큽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밝히고 활동한 누드모델인 하영은(53) 한국 누드모델협회장이 33년 모델 인생을 집약한 첫 에세이 ‘나는 누드모델입니다’(라곰출판사)를 냈다. 지난 2일 서울신문사에서 만난 하 회장은 “왜곡된 시선에 맞서는 것은 물론 내 육체를 마주 보는 것이 얼마나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지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 회장이 누드모델을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때인 1988년이다. 낮에는 무역회사 경리로 일하고 밤에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월급이 들어 있는 핸드백을 통째로 도난당하면서 생계가 막막했다. 마침 레스토랑 단골인 사진작가가 누드모델 일을 제의해 마음이 흔들렸다. 당시 보수적 분위기에서, 특히 부모님께 죄를 짓는 기분이었지만, 딱 한 번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한 달치 월급(15만원) 3분의2에 달하는 모델료도 받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모델 일도 하다가 1995년부터 전업으로 활동하게 됐다. “작품이 된 내 모습을 볼 때 희열이 컸다”는 그는 “작가들이 제 덕분에 작품에 몰입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말할 때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누드모델은 허리 디스크 등 직업병이 따르고, 일부 작가들의 성추행·성희롱에 시달리기도 한다. 1996년 협회를 설립한 것도 모델들이 떳떳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다. 하 회장은 “최근에도 한 여성 모델이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원로 화가에게 성추행을 당해 고소를 진행 중”이라며 “몇 년 전엔 미대 실습실에서 남학생이 누워 있는 제 몸 위를 넘어가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델들에게 작업 외 시간에는 절대 나체를 노출하지 말고, 작업자와는 대화를 금하고 개인적 친분을 쌓지 말 것을 당부한다.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면 모델로서 자존감을 지킬 수 없다는 게 이유다. 하 회장은 “모델 지망생들은 20·30대 여성이 주축을 이루지만, 은퇴한 남성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입시 학원 원장이 도전과 성취로 자신감을 찾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한 목사님은 누드모델을 하면서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뿌듯해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자기 몸을 사랑하고 아낀 흔적이 남은 몸은 그렇지 않은 젊은 몸보다 훨씬 아름답다”며 죽을 때까지 누드모델로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그러면서 “모두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아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 첫 에세이 낸 누드모델 하영은 “몸은 완성된 ‘나’...본질적 美에 대한 자부심 크죠”

    첫 에세이 낸 누드모델 하영은 “몸은 완성된 ‘나’...본질적 美에 대한 자부심 크죠”

    “인간의 몸은 그 사람의 나이, 성격과 습관은 물론 욕망까지 배어 있는 그 자체로서 완성된 ‘나’가 아닐까요. 발가벗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민망함은 찰나의 감정일 뿐이죠. 인간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직접 이끌어낸다는 자부심이 더 큽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밝히고 활동한 누드모델인 하영은(53) 한국 누드모델협회장이 33년 모델 인생을 집약한 첫 에세이 ‘나는 누드모델입니다’(라곰출판사)를 냈다. 지난 2일 서울신문사에서 만난 하 회장은 “왜곡된 시선에 맞서는 것은 물론 내 육체를 마주 보는 것이 얼마나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지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 회장이 누드모델을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때인 1988년이다. 낮에는 무역회사 경리로 일하고 밤에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월급이 들어있는 핸드백을 통째로 도난 당하면서 생계가 막막했다. 마침 레스토랑 단골인 사진작가가 누드모델 일을 제의해 마음이 흔들렸다. 당시 보수적 분위기에서, 특히 부모님께 죄를 짓는 기분이었지만, 딱 한 번만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한 달치 월급(15만원) 3분의2에 달하는 모델료도 받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모델 일도 하다가 1995년부터 전업으로 활동하게 됐다. “작품이 된 내 모습을 볼 때 희열이 컸다”는 그는 “작가들이 제 덕분에 작품에 몰입해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말할 때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누드모델은 허리 디스크 등 직업병이 따르고, 일부 작가들의 성추행·성희롱에 시달리기도 한다. 1996년 28세의 나이에 협회를 설립한 것도 모델들이 떳떳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다. 협회는 대부분 사비를 털어 운영하고 있다. 하 회장은 “최근에도 한 여성 모델이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원로 화가에게 성추행을 당해 고소를 진행 중”이라며 “몇 년 전엔 미대 실습실에서 남학생이 누워있는 제 몸 위를 넘어가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델들에게 작업 외 시간에는 절대 나체를 노출하지 말고, 작업자와는 대화를 금하고 개인적 친분을 쌓지 말 것을 당부한다.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면 모델로서 자존감을 지킬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작업 의뢰인들에게는 작업 공간은 24도 이상으로 따뜻하게 하고, 별도의 난방기구를 갖춰줄 것과 모델을 만지거나 사적 대화를 시도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하 회장은 “체온이 떨어지면 모델의 몸이 경직돼 장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모델에는 매우 무리가 된다”면서 “수강생들의 요구로 수업 도중 에어컨을 트는 경우가 있는데 모델에 대한 최소한의 환경과 예의도 갖추지 않고서 예술을 논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누드모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30여 년 전에 비해 요즘에는 모델을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는 추세”라면서도 “그럼에도, 모델료는 많이 오르지 않아 모델에 대한 경제적 대우는 옛날보다 못하다”고 덧붙였다. 하 회장은 “모델 지망생들은 20·30대 여성이 주축을 이루지만, 은퇴한 남성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입시 학원 원장이 도전과 성취로 자신감을 찾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한 목사님은 누드모델을 하면서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뿌듯해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자기 몸을 사랑하고 아낀 흔적이 남은 몸은 그렇지 않은 젊은 몸보다 훨씬 아름답다”며 죽을 때까지 누드모델로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그러면서 “모두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아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 길 위의 삶과 예술… 생태·환경, 경계를 넘나들다

    길 위의 삶과 예술… 생태·환경, 경계를 넘나들다

    폐현수막 옷 입고 광장 걷는 퍼포먼스 등중앙아시아·유럽서 ‘실크로드 프로젝트’해양 쓰레기 다룬 ‘블루오션 프로젝트’도여행·예술·일상이 하나로 통했던 삶 반추노란색 바탕에 빨간색과 파란색 패턴이 큼직하게 박힌 화려한 의상을 입은 한 남자가 캐리어를 끌며 공항을 걸어가고 있다. 화면이 바뀌면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을 비롯해 유럽의 광장을 가로지르는 남자의 모습이 잇따라 나온다. 마치 거리 패션쇼를 하듯 도심을 누비는 이 남자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작가 정재철(1959~2020)이다. 그가 2010년 제작한 7분 분량의 영상 ‘광장’은 폐현수막으로 만든 옷을 입고 광장을 걷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작품이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한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하나다. 중국, 파키스탄, 인도, 네팔 등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3차례 여행하며 현지인들에게 폐현수막을 전달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기록했다. 장소를 이동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생태와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했던 작가의 수행적이고 참여적인 미술 작업을 대표하는 프로젝트다.●서울 아르코미술관서 새달 29일까지 길 위에서 삶과 예술을 펼쳤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서울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 ‘정재철: 사랑과 평화’가 지난 1일 개막했다. 전시 제목은 ‘실크로드 프로젝트’ 마지막 여행지였던 런던 팔러먼트 광장의 반전 시위대 천막에 한글로 적은 문구다. 작가가 지난 20여년간 경계를 넘나들며 추구했던 가치와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다양한 형태로 남았다.폐현수막으로 만든 햇빛 가리개, 현지어 안내문, 설치 과정을 담은 사진과 영상 등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방문 여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루트맵 드로잉은 여행과 예술, 일상이 하나로 통했던 작가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영상감독 백종관·연구자 이아영 참여 정재철은 2013년부터 전국 해안가를 다니며 해양 쓰레기 문제를 다룬 ‘블루오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신안군, 제주도, 새만금 등 동서남북 해안가를 답사한 뒤 해양 쓰레기의 이동 경로를 담은 루트맵 드로잉 ‘북해남도 해류전도’, ‘제주일화도’ 등을 제작했다. 전시장 바닥에 놓인 병뚜껑, 낚시도구, 장난감, 술병, 어망 등 해양 쓰레기 더미는 인류의 공유지인 바다에서 벌어지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러 준다.2018년 개인전 ‘분수령’에서 선보였던 과천 갈현동 가루개마을에서 채집한 씨앗과 돌, 화분 등도 자리했다. 재개발로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버린 꽃과 나무를 통해 지역 공동체가 일궈 온 장소와 시간의 흔적들을 탐구한 작업이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나온 정재철은 중앙미술대전 대상(1988), 김세중 청년조각상(1996) 등을 받으며 촉망받는 조각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뉴욕 등 해외 레지던시 참여를 계기로 사진, 드로잉, 오브제 같은 다양한 매체로 눈을 돌렸다. 작품 주제도 사회참여적이고 실천과 대안을 모색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환경 위기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장소특정적 설치와 공공미술 작업을 활발히 펼쳤던 그는 지난해 초 간암 발병으로 생을 마쳤다. 이번 전시에선 영상감독 백종관과 연구자 이아영이 정재철의 작품을 재구성하고, 예술 세계를 탐구한 결과물을 함께 선보인다. 백종관은 작가가 촬영한 영상, 사진 기록 등을 자신의 시선으로 엮은 영상 ‘기적소리가 가깝고 자주 들린다’를, 이아영은 작가노트 58권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모아 ‘사유의 조각들’을 펴냈다. 전시는 오는 8월 29일까지.
  • “사업실패·사기·노숙… 살 이유 없던 날 일으킨 건 가족”

    “사업실패·사기·노숙… 살 이유 없던 날 일으킨 건 가족”

    유도 영웅서 추락… 정신적 압박 커져위기 때 가족·지인에게 손 내밀어야“한국 유도계의 전설로 불리던 나도 한때 노숙 생활뿐 아니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가족이 나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면 지금 김재엽 교수는 없었을 겁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재엽(58) 동서울대학 경호스포츠학과 교수는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청소년과 사회지도층의 ‘극단적인 선택’ 관련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부모님과 가족 등이 자녀에게 더욱 관심을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4 LA올림픽 남자 60㎏급에서 은메달,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1987 세계선수권대회, 1988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등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대한민국 유도계의 전설인 김 교수도 한 번의 실수로 깊은 수렁에서 헤매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1988년 올림픽 이후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1996년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제자에 대한 부당 판정에 거칠게 항의했던 그는 결국 연금 중단 등의 중징계를 받고 유도계에서 퇴출당했다. 유도계를 떠난 이후 파란만장한 삶이 이어졌다. 1998년 당시 20억원 정도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었고, 지인들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그 충격과 방황은 이혼으로 이어졌다. 대인기피증이 생겨 노숙 생활을 하면서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 가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것에 대한 정신적 압박이 심했다. 더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고 털어놨다. 죽음의 문턱까지 추락하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와 가족이었다. 김 교수는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이 아니다’며 삶의 의지를 심어 주고, 믿어 줬던 어머님이 나를 수렁에서 건졌다”고 말했다. 4년여 방황을 마친 김 교수는 2002년 38살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운전기사를 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공부해 2006년 늦깎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 교수는 2004년부터 동서울대학에서 18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 교수는 “누구나 살면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영원히 갇혀 있을 것 같은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위기에 처하기 마련”이라면서 “이런 때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부모님이나 주변 지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면 한 줄기 빛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도계의 전설로 불리던 나도 이런 불행하고 암울한 시기를 겪었다”면서 “힘들고 고난에 빠진 청소년들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나를 보며 용기와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한국, 57년 만에 ‘개도국→선진국’ 인정 받았다

    한국, 57년 만에 ‘개도국→선진국’ 인정 받았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지위 변경은 1964년 UNCTAD 설립 이래 한국이 처음이다. UNCTAD는 지난 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 폐막 회의에서 한국의 그룹A(아시아·아프리카)에서 그룹B(선진국)로의 지위 변경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외교부는 “이번 UNCTAD 선진국 그룹 진출은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게서 한국의 선진국 위상을 명실상부하게 확인하고, 한국이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가교 역할이 가능한 성공사례임을 인정받은 계기”라고 설명했다. UNCTAD는 개도국의 산업화와 국제무역 참여 증진을 지원하기 위해 1964년 설립된 유엔 산하 정부 간 기구다. UNCTAD의 회원국은 총 195개국으로, 아시아·아프리카 99개국의 그룹A, 선진국 31개국의 그룹B, 중남미 33개국의 그룹C, 러시아·동구권 25개국의 그룹D로 구분됐었다. 회원국 중 7개국은 네 그룹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 2일부로 한국이 그룹B에 포함됨에 따라, 그룹B는 32개국으로 확대됐다. 다만 UNCTAD 내 실질 협상은 개도국 77개국 그룹(G77)+중국, 한국·미국·일본·캐나다 등 유사입장국 그룹(JZ),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유럽연합(EU), 영국, 교황청 등 정치 그룹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국은 1964년 UNCTAD 가입 당시 G77에 속했으나, 1996년 OECD 가입 후 G77을 탈퇴한 뒤 지난 1월 JZ에 정식 참여해 활동 중이다. 이태호 주제네바 대사는 “앞으로 한국이 주요 공여국으로서 선진국 그룹B 이동을 통해 UNCTAD 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가교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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