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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한국 가곡의 거장’ 김동진 예술원 회원 하늘로

    [부고] ‘한국 가곡의 거장’ 김동진 예술원 회원 하늘로

    ‘가고파’의 작곡가이자 한국 가곡의 거장인 김동진 예술원 회원이 31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96세.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교회에서 찬송가를 들으며 서양음악을 접했다. 평양 숭실중에 진학해 바이올린과 피아노, 화성학, 작곡을 공부했다. ●숭실중 5학년때 ‘봄이 오면’ 첫 작곡 숭실중학교 5학년(현 고교 2학년)이던 1931년에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봄이 오면’을 처음 작곡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이은상 작사의 가곡 ‘가고파’를 비롯해 ‘발자욱’, ‘뱃노래’ 등을 만들었다. 이 곡들은 널리 애창되며 가곡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1936년 일본고등음악학교로 유학가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1939년에는 만주 신경교향악단에 입단해 제1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6·25 전쟁 때에는 육군 종군작가단 단원, 해군정훈음악대 창작부장 겸 지휘자로 활동하며 수십곡의 군가를 작곡했다. 이후 서라벌예술대학 음악과 교수를 거쳐 경희대 음대 교수, 학장, 명예교수 등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목련화’는 경희대 재직시 개교 25주년 기념 칸타타로 발표한 곡이다. ●판소리·서양음악 접목 ‘신창악’ 창안 ‘가고파’, ‘봄이 오면’ 뿐만 아니라 ‘진달래꽃’, ‘내 마음’, ‘못잊어’ 등 다양한 가곡을 작곡한 고인은 우리 귀에 친숙한 작품으로, 가곡의 대중화를 이끈 한편 한국 가곡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1979년부터는 판소리 창법과 서양음악 기법을 접목한 ‘신창악’을 창안해 ‘심청전’, ‘춘향전’ 등을 가극으로 만들어 보급에 힘썼다. 한국의 음악 예술에 다양한 가능성을 발굴하고 활발한 활동을 한 공로로 부일영화음악상(1962·1970), 서울시 문화상(1967), 국민훈장 모란장(1973), 3·1문화상(1974), 대한민국예술원상(1982), 은관 문화훈장(2000)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보림씨와 신영(사업), 신원(경희대 예술디자인대 교수), 신화씨 등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발인은 3일 오전 7시. (02)958-9549.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김중문 선생

    항일운동을 위해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했다 옥고를 치른 애국지사 김중문 선생이 30일 별세했다. 96세. 김 선생은 1932년 3월 중앙일보 봉화지국을 경영하던 김창신의 집에서 김중헌 김덕기 선생 등과 모여 일제를 타도하고 사유재산제도를 없앤 새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로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인 흑색청년자유연합회를 조직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호상씨 등 1남2녀. 발인은 8월1일 오전 6시30분. 빈소는 분당 제생병원. (031)781-7682.
  • 엄마의 엄마의 엄마랑 함께 살아요

    엄마의 엄마의 엄마랑 함께 살아요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이강훈 정진희 씨네 집에는 도깨비가 산다. 오늘은 아들 덕영이의 안경이 사라졌다. “너는 엊저녁에 벗어둔 안경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그게 발이 달렸어, 날개가 달렸어. 잘 찾아봐.” 애타게 찾아 헤매던 덕영이의 안경은 재활용 폐지 봉투에서 발견되었다. 과연 안경 도깨비의 정체는? 올해 96세 되시는 진희 씨의 외할머니 고쌍금 씨다. 읽지도 않은 조간신문을 매번 폐지함에 넣는 사람도 할머니다. 물론 식구들은 열 번도 더 넘게 물었지만 그때마다 할머니는 “내가 안 치웠어야. 내가 그걸 뭐하러 만지냐” 하셨다. 식구들이 나갔다 돌아오면 물건들이 자리 이동을 해 있지만, 할머니는 모르는 일이다. 진희 씨네 집은 모녀 4대가 함께 산다. 고3인 딸 선영이부터 진희 씨, 어머니 이기순 씨, 외할머니 고쌍금 씨까지. 진희 씨의 친정 동생인 용선 씨도 같이 산다. 엄마의 엄마는 외할머니다. 그럼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증조 외할머니’가 떠오르지만 증조외할머니는 엄마의 엄마의 시어머니를 이르는 말이다. 부계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엄마의 엄마의 엄마를 이르는 호칭은 없다. 그렇다면 선영이와 덕영이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를 어떻게 부를까?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럼 외할머니와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귀가 어두우신 할머니는 큰 목소리로, 외할머니는 보통 목소리로 부르면 된다. 처음부터 진희 씨가 친정어머니와 외할머니를 함께 모시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5년 전 진희 씨의 남편이 일 때문에 중국으로 가게 되면서 혼자 계신 친정어머니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런데 1년 반 전, 큰외숙모가 건강상의 이유로 외할머니를 모시기가 힘들어지면서 외할머니도 함께 살게 되었다. 원래는 요양원으로 모실 계획이었지만, 선영이와 덕영이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같이 살면 안 되냐고 진희 씨, 외할머니 기순 씨를 설득한 것이다. 진희 씨네 집은 늘 시끌벅적하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사니 온 식구들 목청이 커진 탓도 있지만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하루는 진희 씨가 퇴근해 돌아오니 온 식구들 입이 이만큼 나와 있었다. 고쌍금 할머니 왈. “오줌소태 때문에 소메(소변)가 나 죽겠는데 니네 어메는 밥 먹으라고 소리만 지르고, 설거지하면 한다고 뭐라 하고 성가셔 죽겠다.” 깔끔한 성격의 기순 씨 왈. “니네 할머니 때문에 못 살겠다. 밥도 안 먹고 니네 아빠가 사준 그릇은 다 깨놓고. 오늘은 니 아들까지 말을 안 듣는다.” 덕영이는 “할머니는 괜히 짜증만 내요. 학원은 5시까지만 가면 되는데 4시부터 빨리 안 간다고 소리 지르고”라며 울먹이고, 선영이는 숙제가 많아 밤을 새야 한다며 울상이다. 할머니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드리고, 어머니는 마사지를 해드리고, 두 아이는 잘 달랬다. 그래도 진희 씨는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단다. 외할머니가 아직 건강하셔서 빨래도 개키고, 설거지도 해서, (물론 진희 씨가 다시 해야 하지만) 집안일을 덜어주시니 감사하고, 아이들이 학교 갔다 돌아오면 집에 늘 어른이 계시니 마음이 놓인다. 어느새 아이들의 말투도 달라졌다. “셔츠 어디 있어?” 묻지 않고, 할머니처럼 “웃옷 어디에 있어?” 한다. 덕영이는 고쌍금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외삼촌은 선영이의 든든한 빽이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가 진희 씨 손에 파스 봉투를 쥐어주시더란다. 그 안에는 진희 씨에게 주는 용돈이 들어 있었다. 돈을 봉투에 넣어서 주는 건 봤는데, 마땅한 봉투를 못 찾으신 모양이었다. 그 얘기를 하는 진희 씨 눈가가 촉촉하다. 진희 씨가 선영이를 혼낸 날이면, 어머니 이기선 씨는 선영이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사온다. “선영아 삼겹살 사왔는데, 너 좋아하는 새우젓도 꺼낼까?” 그러면 잔뜩 부어 있던 선영이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돈다. 오늘도 식구들은 도깨비가 언제 나타날지 잔뜩 긴장하며 살지만, 그 도깨비는 물건은 숨기는 대신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모양이다. 진희 씨네 집에선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이달의 가족 소개 노 할머니 고쌍금(96세) : 연세는 많지만 항상 집안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도와주십니다. 가끔은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도 깨시고요. 그럴 때면 외할머니가 짜증을 내시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스케키 사 먹어라 하시면서 1,000원을 주시기도 하거든요. 외할머니 이기순(70세) : 몸이 편찮으신데도 옷가게를 하십니다. 수영을 아주 잘하시고요, 언제나 예쁘게 화장을 하고 계세요. 항상 엄마와 노 할머니와 티격태격하시지만 마음이 따뜻하십니다. 엄마 정진희(43세) :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이십니다. 왜냐하면 아빠가 중국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요리도 잘하세요. 요즘엔 바쁘셔서인지 스파게티도 잘 안 해주고 주먹밥도 안 만들어주시지만 그래도 항상 고생하셔서 죄송스럽습니다. 누나 김선영(19세) : 매일 절 괴롭히지만 공부도 잘하고요, 특히 영어를 아주 잘해요. 하나밖에 없는 자랑스런(?) 누나입니다. 누나 이제 나 좀 괴롭히지 마. 나 김덕영(15세) : 건담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사고뭉치랍니다. 건담에 색칠한다고 거실 소파에 얼룩도 만들었고요, 나무젓가락으로 칼 만든다고 온 집 안을 어지럽혀서 엄마에게 눈물이 날 만큼 혼나기도 해요. 특히 씻는 것을 싫어해서 할머니 엄마 누나가 단체로 잔소리를 해요. 그래도 머리 감는 건 귀찮아서 싫더라고요. 아빠 김경철(44세) : 중국 상해에서 사업을 하십니다. 바쁘셔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언제나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삼촌 정용선(38세) : 셋째 외삼촌입니다. 엄마가 물장수라고 불러요. 삼촌 회사에서 해양심층수라는 물을 팔거든요. 살이 쪄서 곰이라고 놀리기도 하고요. 요즈음은 다이어트 중이고요, 예쁜 여자 친구도 있어요. 이달의 가족 소개는 이 댁의 막내인 김덕영 군이 해주었습니다.
  • [대한민국 극&극] 96세 안금림 할머니 vs 12세 양선희양, 소띠들의 ‘세대 소통’

    [대한민국 극&극] 96세 안금림 할머니 vs 12세 양선희양, 소띠들의 ‘세대 소통’

    서울신문은 이달부터 ‘대한민국 극(極)과 극(極)’이라는 기획을 매주 월요일자에 연재합니다.대척점에 선 인물이나 사건 등을 넓은 스펙트럼에서 접근해 독자 여러분에게 균형잡히고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드리기 위함입니다.상위는 잘났고 하위는 못났다는 것도,‘없는 자’가 떳떳하고 ‘있는 자’가 구린내난다는 식의 극단적인 측면을 부각해 미화하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려는 뜻도 물론 아닙니다.우리사회의 여러 분야에 상존하는 꼭대기와 밑바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시 한번 재조명해보자는 것입니다.때로는 엉뚱하거나 재미있는 우리 사회 현상들을 비교함으로써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해소해드리려 합니다.기축년을 맞아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장수촌으로 소문난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서 함께사는 ‘최고령 소띠와 최연소 소띠’를 선정했습니다.1913년 태어나 올해 아홉번째로 소의 해를 맞이하는 안금림(96) 할머니와 1997년 태어나 두번째로 소의 해를 맞이하는 최연소 소띠 양선희(12)양을 만났습니다.안 할머니보다 12세 많은 1901년생도 79명이 있었지만 인터뷰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찾다보니 안 할머니를 만나게 됐습니다.같은 이유로 새해벽두에 태어난 ‘진짜 최연소 소띠’들도 배제됐습니다.띠가 같다는 것 말고는 할머니와 소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일제 식민통치가 본격화되던 한일합병 3년째 태어나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안 할머니와,IMF 위기 중에 태어났지만 ‘오 필승 코리아’를 들으며 세계 속의 당당한 한국을 경험한 신세대 양양의 세대차는 84년 나이차 그 이상이었습니다.이들간의 세대차는 우리의 어제이자 오늘이고,또 미래입니다. 글 사진 순창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새해 첫날 아침.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는 흰 눈이 소담하게 내렸다.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안은 산 꼭대기에도 설탕가루 같은 눈이 흩뿌려져 있다. 남도의 산은 높고 가파르지 않다. 대신 나지막하면서도 단단하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붉은 흙을 일궈 평생을 우직하게 살아가는 농민 같은 인상이다. 산 허리에 난 길을 달리다 보면 순창군 최고령 소띠인 안금림 할머니가 살고 있는 구미리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겨울 바람이 얼굴에 확 들어온다. 힘껏 청명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머리속이 맑아진다. 이곳이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수마을인지 이해되는 순간이다. 안 할머니와 최연소 소띠인 양선희(동계초등학교 5학년)양은 같은 동계면에 산다.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선희 양은 엄마 정은경(36)씨,동생 윤선(5)양과 함께 안 할머니 댁을 찾았다. 방으로 들어가자 분홍색 퀼트 재킷을 단정하게 입은 안 할머니가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기억력은 어릴 때 그대로다. 기력도 왕성해서 혼자 산책도 하고 목욕도 할 정도다. 선희 양은 처음 뵙는 할머니가 낯선지 쭈뼛거린다. 지척에 살지만 만난 적은 없다. 그래도 엄마가 “너와 같은 소띠”라고 말하자 배시시 웃는다.때마침 안 할머니의 맏며느리 이이순(71)씨가 집에서 직접 만든 엿을 내왔다. 순창은 고추장뿐 아니라 엿으로도 유명하다. 쌉싸래한 콩가루에 묻힌 엿이 다디달다. 선희와 윤선 자매는 엿을 오물오물 먹으며 안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안 할머니는 1913년 2월23일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0대 때 구미리로 시집왔다. 시집온 이후 쭉 이곳에서 살았다.1913년은 한일합병이 된 지 3년째 되던 해로, 일제의 식민통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때였다.할머니는 5살 많은 할아버지(1977년 작고)와 벼농사를 지었다.그나마 할아버지 소유의 논 2마지기(200평·661㎡)가 있어 소작농 신세는 면했다.소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소처럼 밥먹고 일만 할 팔자를 타고 난다.’는 속설이 있다.안 할머니도 소띠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 궁금했다.며느리 이씨는 “아버님의 천성이 부지런해 어머님이 그렇게 고생하시진 않았다.논일은 거의 안 하셨고,길쌈을 주로 하셨다.”고 말했다. 2남3녀를 낳고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살던 안 할머니 가족은 1942년쯤 함경북도 은덕군 아오지로 이주를 했다. 돈 벌어 식구들 먹여 살리겠다는 할아버지의 결단이었다. 맏아들 양금섭(74)씨는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간 기억이 난다.”고 했다. 3년쯤 그곳에서 살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가족은 구미리로 돌아왔다. 이후 ‘빨갱이’와 ‘반동분자’ 사이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던 서민들에게 북쪽에서 살고 왔다는 경험은 지워 버리고 싶은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때 얘기는 별로 들은 적이 없다. 그 다음에 불이익을 당했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며느리 이씨는 말꼬리를 흐렸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구미리 같은 심심산골에도 참화를 몰고 왔다. 빨치산이 내려와 동계면 전체에 불을 질렀다. 안 할머니 가족은 이웃 마을인 적성면으로 피란을 가야 했다. 돌아와 보니 집이고 학교고 죄다 재로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우두커니 강변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해 겨울은 혹독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굶주리고 또 굶주렸다. 안 할머니는 “나락으로 죽을 쒀 먹곤 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얘기를 듣는 선희 양의 눈썹도 덩달아 꿈틀거린다. 1980년엔 이웃 광주에서 변이 났다. “대통령이 광주 사람들을 다 때려 죽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당시 67세이던 안 할머니는 가족 중에 광주에 사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불똥이 이곳 구미리에까지 튈까봐 할머니는 노심초사했다고 한다.세상이 뒤집어질까 싶어 무섭기도 했단다. 아들 양씨는 지금도 술 한 잔을 할 때마다 그때의 울분을 토한다. 안 할머니의 인생은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사연도 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게을리하지 않아 90 평생 사는 동안 2마지기 남짓 했던 땅은 10마지기로 늘어났다. 슬하의 5남매가 각각 자손도 여럿 낳았고 자신을 극진히 모시는 아들과 며느리 내외는 주위로부터 효자효부라는 칭찬도 듣는다. 안 할머니는 “자식들이 나에게 아주 잘 한다.”고 했다. 할머니의 얘기를 전부 들은 선희 양은 폭 하고 한숨을 쉰다. 할머니가 겪어온 세월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선희 양은 “내가 1913년에 태어났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그도 그럴 것이, 1997년생인 선희는 별로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 집안 형편도 넉넉한 편이긴 하지만 안 할머니가 겪었던 것 같은 ‘국민적 고통’을 선희 양은 치러본 적이 없다. 1961년 20억달러였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는 2007년 8000억달러로 400배 늘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었던 ‘오 필승 코리아’의 추억은 선희 양에게 세계 속에서 당당한 한국의 이미지를 체화시켰다. 선희 양에게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 10대 강국’으로 각인돼 있다. 선희 양은 “할머니가 사셨던 때보다 지금 우리나라가 훨씬 강해진 것 같다.얼마 전 이소연 언니가 우주선을 탔을 때 우리나라가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선희 엄마 정은경씨에게 맏딸 선희는 ‘복덩어리’다. 정씨는 1997년 대학을 갓 졸업한 선희양 아빠와 결혼을 하고 곧바로 선희를 낳았다. “모은 돈은 없어도 둘이서 벌면 생활이 빨리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결혼을 하고 정씨 부부는 소를 기르기 시작했다. IMF환란 때문에 한 마리에 200만원 가까이 하던 소값이 50만원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20마리로 시작해 지금은 50마리를 키우는데, 돈벌이가 쏠쏠해 살림이 많이 불었다. 정씨는 “소띠 해에 선희를 낳고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많이 안정을 찾았어요. 선희가 우리 집에 복을 갖고 왔어요. 저희는 여러 모로 소하고 인연이 깊은 집이에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엔 순창군에서 열린 영어말하기 대회에 동계면 대표로 나가 2등을 차지했다는 선희 양의 장래 희망은 변호사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고 싶어서”가 이유일 정도로 속이 깊다. 선희 양은 “2009년이 나의 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기대돼요. 6학년 올라가면 부모님 실망시키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싱긋 웃는다. 굶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생을 살아온 안 할머니는 10대 때 시집온 일과 하루 종일 길쌈질을 한 것 외에는 이렇다할 어린 시절 추억이 없다. 학교는커녕 서당 근처도 가본 적이 없다. 글을 모르지만 집안의 제삿날과 손자·손녀 생일까지 기억해 내고, 여전히 된장찌개와 숙주나물을 제일 좋은 음식으로 친다. 할머니의 가장 큰 시련이 6·25전쟁이었다면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하는 선희 양의 시련은 앞으로 치를 대학입시였다. 독서와 인터넷 서핑이 취미인 선희 양의 올해 목표는 시험 성적을 평균 90점에서 95점으로 올리는 것이다. 안 할머니는 건강하게 살다 남편 곁으로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서로의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84년 나이차를 뛰어 넘은 안 할머니와 선희양은 툇마루로 나와 얼굴을 맞대고 사진을 찍었다. 지나온 세월만큼 한 가닥씩 파인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이제 여드름이 오소소 돋기 시작한 선희 양의 밝은 얼굴은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이뤘다. 대한민국의 20세기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했다.할머니의 검버섯이 늘어난 만큼 우리나라는 진화해 왔고, 선희 양의 해맑은 웃음이 계속될수록 우리나라는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소의 해를 맞아 만난 할머니와 어린 소녀는 그렇게 서로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 [부고] 北 ‘혁명 1세대’ 박성철 정치국 위원 사망

    북한의 박성철 정치국 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28일 ‘오랜 병환’으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96세. 경북 경주 출신인 박성철은 ‘혁명 1세대’로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투쟁을 하다 광복 후 북한에 들어가 인민군 15사단장, 노동당 국제부장, 외무상, 정무원 총리, 국가 부주석 등을 지냈다. 김 주석의 유일사상체계 및 노동당 유일지도체계 구축에 기여한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성사의 주역으로 참여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에 이어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서울을 방문, 이 부장과 회담했다. 특히 7·4공동성명에 따라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인 김 부장 대신 같은 해 12월 서울을 다시 비공개로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했다. 1994년 7월 김 주석이 사망했을 때 국가장의위원회 서열 5위, 이듬해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사망 때는 서열 4위에 오를 정도로 최고위직을 역임했다.1998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사실상 은퇴했다.‘공화국 영웅’(1992년) 칭호와 ‘김일성 훈장’(1993년)을 받았다. 1989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을 때 “이제는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힘을 써야 할 때”라며 행사 개최에 불만을 표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북한은 박성철의 장례를 30일 국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김 위원장이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출판계 거목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별세

    출판계 거목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별세

    60여년간 출판 외길을 걸어온 한국 출판 역사의 산증인 은석(隱石) 정진숙 을유문화사 대표이사 회장이 22일 오후 3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96세. 고인은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그해 12월 평소 친분이 있던 조풍연, 윤석중, 민병도 등 4인과 함께 동인체제로 을유문화사를 창립했다. 을유문화사란 이름은 1945년 을유년에 세웠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해방과 함께 국학 진흥의 기치를 내걸고 ‘출판보국’의 길을 걸어온 고인은 6·25전쟁의 와중에 창립동인들이 흩어지는 위기를 극복하고 ‘1인 대표체제’로 전환해 오늘의 을유문화사를 일궜다. ●한국사·우리말 큰사전 등 펴내 1912년생인 고인은 최근까지도 어김없이 회사로 출근하는 등 출판 현장을 지켜온 국내 최고령 현역 출판인으로 출판계 안팎의 존경을 받아왔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나와 보성전문학교에서 수학한 고인은 무엇보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데 앞장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이 한국 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한국사’와 우리말 보존을 위한 ‘우리말 큰사전’(전6권)이다. 각각 10여년 각고 끝에 완간한 이 역사적 간행물은 단절된 우리 역사와 언어를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인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전병석(70) 문예출판사 대표는 “오랜 일본강점 과정에서 짓눌린 우리 얼을 되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출판사를 차린 뒤 처음 펴낸 책이 바로 ‘한글 글씨본’이었다.”면서 “그만큼 우리말글에 대한 애정이 컸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을유문고’의 출간을 통해 교양학술서의 문고본 시대를 열며 지식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특히 ‘세계문학전집’‘구미신서’ 등을 펴내면서 일본판을 중역하던 기존 출판 관행에서 탈피, 철저한 원어 중심의 완역주의 원칙을 세우는 등 국내 출판 역사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1955년에는 외국영업부를 신설, 한국학 관련 도서를 세계 주요 대학 등에 공급하는 등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기여했다. ●상업주의 철저히 배제한 애국지사 ‘한국 단행본 출판의 대부’로 불린 고인은 출판상업주의를 철저히 경계한 ‘지사형’ 출판인의 면모를 보였다. 책을 낸 뒤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부수적으로 돈이 들어오면 좋지만 돈벌이를 위해 책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라는 게 그의 지론. 날로 가벼워지기만 하는 요즘 출판계가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고인은 1960년대와 70년대 세 차례에 걸쳐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사단법인 한국출판금고 이사장, 출판저널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출판 분야외에 중앙박물관협회 회장,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등도 지냈다. 이같은 다양한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02-2072-2091).26일 오전 8시 발인하며, 장지는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월문리 선영. 유족으로는 아들 낙영·필영(을유문화사 이사)·무영·해영씨와 딸 지영(을유문화사 대표이사)씨가 있다. 한편 고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백석기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과 이기웅 파주출판문화산업단지 이사장, 박맹호 민음사 회장 등 출판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MB “北, 인도주의 문제 적극 협력을”

    MB “北, 인도주의 문제 적극 협력을”

    이명박 대통령은 6일 “북한도 인도주의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적극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53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통해 “국군포로와 이산가족 문제, 납북자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남북이)함께 추진해야 할 교류와 협력 사업에 대해 남북간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대통령이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국민과 함께’‘한마음 한 뜻으로’‘힘을 모으고’와 같은 표현을 여러차례 사용하면서 민심과의 거리를 좁히고 국민과 한 뜻이 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우선 과거 국가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단합된 힘으로 이를 극복한 선조들의 뜻을 이어받아 당면한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1970년대 석유위기와 90년대 금융위기 사례를 들면서 “정부와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합한다면 지금의 어려움도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를 사랑하는 일에 너와 내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우리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쇠고기 파동에 따른 여론 악화를 염두에 둔 듯 ‘소통의 의지’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드리는 데 최우선으로 정책을 펴나가겠다.”면서 “더 낮은 자세로 귀를 열고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있는 보훈병원을 찾아 입원중인 6·25참전용사 등을 위문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분이 지켜준 덕에 나라가 이만큼 됐다. 보훈가족이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춘생(96세)씨를 만나 쾌유를 빌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고] 천주교 최재선 주교 선종

    천주교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낸 최재선 주교가 3일 오후 4시46분 노환으로 선종했다.96세. 고인은 한국 천주교 성직자 중 최고령이었다.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8년 사제로 서품됐다.1957년 초대 부산교구 교구장에 임명되어 1973년 은퇴했다.1975년 한국외방선교회에 이어 1984년 한국외방선교수녀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빈소는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6일 열린다.(051)629-8750.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美경제학자 머스그레이브 별세

    공공재정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머스그레이브가 96세로 별세했다. 부인 페기 브루어 머스그레이브는 남편이 지난 15일 캘리포니아주 샌타크루즈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21일 밝혔다. 고인은 독일에서 태어나 1933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주,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존스 홉킨스, 프린스턴 등 여러 명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위해 일했다.샌타크루즈 UPI 연합뉴스
  • 인스턴트 라면 개발 안도 닛신식품 회장 별세

    |도쿄 이춘규특파원|‘즉석(인스턴트) 라면’을 세계 처음으로 만든 안도 모모후쿠 일본 닛신식품 회장이 5일 오사카부 이케다시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96세. 즉석 라면은 현재 전세계에서 한 해 857억개나 팔리는 대중소비식품. 1910년 타이완에서 태어난 안도 회장은 1933년 일본으로 건너왔다. 대학시절 타이베이와 오사카에 의류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2차대전 종전 직후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던 일본 국민을 위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1948년 닛신식품의 모태를 설립했다. 전후 자신이 이사장을 하던 신용조합이 도산, 한때 무일푼의 나락에 빠지기도 했으나 추운 밤 라면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것을 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라면을 개발하기로 작심했다. 이런 배경에서 자택 실험실에서 1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3∼4시간씩 실험을 계속한 끝에 48세이던 1958년 즉석라면인 ‘치킨라면’ 만들기에 성공했다. 59년에는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판매한다는 미쓰비시상사와 판매제휴에 성공, 당시 부상하던 슈퍼를 통해 즉석라면을 판매하며 불티나게 팔려나가 ‘식품대량소비시대’를 열었다. 무일푼에서 성공한 경험을 토대로 ‘기상천외의 발상’이란 책을 내 새롭게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미국 출장 중 자신의 즉석라면을 미국인이 종이컵에 넣은 뒤 물을 부어 먹는 것을 보고 착안,1971년에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안도 회장은 닛신식품을 매출 27억달러(약 2조 5000억원)의 회사로 성장시켰으며 200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05년에는 주위에 “올해 골프 라운딩을 100회 하겠다.”고 다짐,101회나 소화했을 정도로 건강체질이었다고 주치의가 밝혔다. 타계 전날인 4일에도 회사 신년회에서 30분간 신년사를 하기도 했다.taein@seoul.co.kr
  • [공연+새앨범]

    ■ 부활 ‘11번째 사랑 록그룹 부활의 11번째 앨범발매 기념 콘서트. 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무대로, 새로운 신곡들과 히트곡 들로 구성했다. 총 6회의 공연동안 한 회당 170명씩 한정 인원만으로 함께한다.2007 년 1월3∼7일. 대학로 상상 나눔 씨어터(02)2057-2606. ■ 임재범 ‘2006년 마지막 비상(飛上)!’ ‘사랑보다 깊은 상처’,‘너를 위해’등의 노래로 사랑받고 있는 가수 임재범이 오는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비상’의 앙코르 공연을 갖는다.‘비상’ 전국투어 콘서트는 임재범의 음악인생 20년을 정리하는 내용을 2부로 나누어 진행한 바 있다.1544-1555. ■ 심수봉 ‘2006 SINA 송년 페스티벌’ 트로트의 여왕 심수봉이 한해를 정리하는 콘서트를 벌인다.‘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사랑밖에 난 몰라’,‘미워요’ 등의 히트곡들로 최고의 무대를 꾸밀 예정. 오는 27일 서울 올림픽 공원 올림픽홀.(02)595-2535. ■ 인큐버스 Light Grenades 힙합과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펑크와 하드 록에 이르기까지.6인조 록밴드 인큐버스의 치열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6번째 새앨범. 빌보드 모던 록 차트 2위에 오른 ‘애나 몰리’ 등 총 13곡 수록.SonyBMG. 클래식 ■ 플루트 앙상블 피리 창단 콘서트-플루트 나르시시즘 22일 4시·8시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리더 김대원, 이윤영 이주희 김소연 박민상 이인.2만∼4만원.(02)888-2698. ■ 경기필하모닉과 금난새의 크리스마스 초대 24일 4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소프라노 박미자, 메조소프라노 양송이, 테너 류정필, 바리톤 우주호, 대학연합합창단. 크리스마스 캐롤과 베토벤 ‘환희의 송가’.1만∼5만원.(031)230-3200. ■ 예술의전당 성탄음악회-송영훈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23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첼리스트 송영훈과 기타리스트 제이슨 뷔유 등 음악친구들이 꾸미는 보사노바와 탱고의 향연.2만∼5만원.(02)580-1300. 미술 ■ 나의 인생, 나의 사랑;윌리 로니스전 23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 올해 96세인 프랑스 사진작가가 포착한 보통 사람들의 일상 풍경.(02)724-6322. ■ 섬웨어 인 타임 내년 4월1일까지 아트선재센터. 미술과 사회가 소통하는 접점을 국내외 작가 19명의 노래하고, 외치며, 속삭이는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선정 한국종합예술학교 미술이론과 교수가 오랜만에 기획한 전시회다.(02)733-8945. 연극 ■ 라이어 1월1일∼3월4일 화∼금 7시30분, 토요일 4시·7시, 일요일 3시·6시 서울 강남 동양아트홀. 대한민국 최장기 흥행 연극 라이어를 강남에서 만난다. 완벽한 희극성과 빈틈없는 구성이 주는 연극 보는 즐거움. 최성신 연출, 조정래 김태신 등 출연.2만∼2만5000원.(02)515-6510. ■ 강철 1월28일까지 화·목·금 7시30분, 수·토 4시·7시, 일요일 4시 아룽구지 소극장. 배우 윤소정이 창조하는 만고의 모정. 교도소라는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기억의 충돌. 한태숙 연출, 윤소정 서이숙 등 출연.3만∼4만원.(02)764-8760. 뮤지컬 ■ 크리스마스캐롤 25일까지 수∼금 3시·7시30분, 토∼월 3시·7시 서울열린극장 창동. 서울예술단이 혼혈아동, 체코 작곡가 및 의상디자이너와 함께 선사하는 감동의 가족뮤지컬. 시각장애인 윤선혜양의 천사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1만 5000∼3만 5000원.(02)523-0986 ■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2월4일까지 월∼금 8시, 토요일 4시·8시, 일요일 2시·6시 코엑스 오디토리움.35년 동안 공연된 록 뮤지컬의 고전. 로커 김종서가 유다 역으로 뮤지컬 신고식을 한다. 김재희 임태경 강필석 출연.3만~9만원. (02)501-7888
  • ‘불교미술 거장’ 손에 붓 쥔 채 열반

    한국 불교미술의 거장 만봉(萬奉·속명 이치호·신촌 봉원사) 스님이 17일 오전 0시10분 봉원사 운수각에서 노환으로 열반했다. 세수 96세, 법랍 80세. 최근까지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고인은 작업에 전념하던 중 붓을 손에 쥔 채로 입적했다.1910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나 1917년 단청장 김예운 스님에게 사사한 고인은 1926년 봉원사로 출가해 금어(金漁·불교에서 불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스님에게 주는 칭호) 자격을 취득했다.1971년엔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고인의 작품은 금강산 표훈사, 유점사, 장안사, 마연사, 서울 봉원사, 도봉산 도선사, 백련사 등 전국 주요 사찰과 문화재에 고루 남아있다. 고인은 1978년 세계불교도 우의회 동경총회 기념 전시회를 시작으로 2005년 6월 모란갤러리에서의 마지막 개인전을 열기까지 수많은 전시회를 열어 한국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불교 태고종 서울교구 종무원장, 봉원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1988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만봉 이치호 단청전 작품집’이 있다. 빈소는 봉원사에 마련되어 있으며, 영결식은 21일 오전 10시 봉원사에서 태고종 종단장으로 엄수된다. 다비식은 이날 오후 전남 순천 태고총림 선암사 연화대에서 열린다.(02)-392-3007.
  • 전세계 돌며 나치 1200명 적발

    2차대전 당시 유대인 포로수용소의 생존자로 나치 전범을 처벌하고 ‘홀로코스트’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던 사이먼 위젠탈은 96세의 나이로 9월20일 빈에서 사망했다. ‘나치 사냥꾼’‘유대인의 영웅’으로 불렸던 위젠탈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1200여명에 이르는 나치 전범을 찾아내는 데 반평생을 바쳤다. 특히 유대인 학살계획안을 입안했던 아돌프 아이히만과 안네 프랑크를 체포한 독일 비밀경찰 칼 실버바우어를 찾는 데 결정적 증거를 제공해 유명해졌다. 190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위젠탈은 건축가로 일하다 2차대전 발발후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다. 전쟁이 끝나 운좋게 살아난 뒤 미군 전범 수사팀에 열성적으로 자료를 제공했으며, 오스트리아에 전범 재판을 대비해 유대 자료 센터를 세웠다. 1977년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그의 이름을 딴 사이먼 위젠탈 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센터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아 한국인에게도 낯익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데스크시각] 다인종·다문화 시대를 내다봐야/박정현 정치부 차장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가 지난달 11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무렵에 이민자들이 일으킨 프랑스의 소요사태는 마무리돼가고 있었다. 드러커 교수가 남긴 지식 격언 가운데 하나가 ‘미래는 현재에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예측했던 옛 소련의 붕괴나 정보화시대의 도래같은 일도 정확한 현실 분석과 진단을 토대로 가능했다는 얘기다. 드러커 교수가 남긴 격언은 프랑스와 한국에서도 적용될 법하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이나 길거리에 앉아있던 노숙자들이 한때 낭만으로 비쳐졌던 시절이 있었다. 기자는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던 회사원이 어느날 갑자기 노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던 프랑스인들의 얘기를 ‘선진국병’쯤으로 흘려들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낭만이 냉혹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환위기에 이어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한파는 회사원들을 서울의 지하도로, 공원으로, 산으로 내몰았다. 프랑스의 현실이 우리의 미래라는 점을 알아차리지도, 예측하지도 못했을 뿐이다. 프랑스의 소요사태도 어쩌면 노숙자처럼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소요사태의 주역은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2세인 젊은이들이고, 그 이민자들은 프랑스 경제가 활황이던 1960∼70년에 프랑스로 넘어와 프랑스인들이 기피하던 허드렛일을 도맡아왔다.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된 지 오래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조선족을 비롯한 중국 국적 외국인은 25만여명, 필리핀·베트남·태국 출신은 10만여명에 가깝다고 한다. 세계화 추세에 맞물려 우리나라도 국적을 초월한 인구이동이 이뤄지면서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이 겪는 차별문제나 인권문제는 시민사회단체나 제기할 뿐이고, 큰 사회적 관심을 모으지는 못하고 있다. 신혼부부 네 쌍 가운데 한 쌍은 국제결혼인 게 우리네 현실이다.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은 지난해 2만 5000건이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이후 프랑스는 저출산의 대명사로 불려왔지만 10여년 뒤에는 우리나라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로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출산율은 1.1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치를 밑돌고 있어 국가적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에 영국의 연금개혁 추진을 들면서 “2030년이면 연금이 고갈된다는 계산을 하지만 우리는 아직 국가계획으로 세울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나타낸 것도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연금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병을 뒤쫓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데도 정작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북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이 필요없게 된 요즘에 프랑스인들의 생각은 ‘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많이 낳는 그들이 사회보장금을 많이 타가면서 사회보장제도가 휘청거리고 있다는 프랑스인들의 생각은 프랑스인과 이민자 사이의 인종과 종교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프랑스 소요사태에 인권국가인 프랑스에서 톨레랑스(관용정신)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거나 파시즘의 부활이라는 등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머나먼 남의 나라 일처럼 내놓는 진단들은 한가해 보인다. 외국인 문제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와 2세들이 프랑스를 불태웠듯이 외국인 근로자들이 서울시내 자동차를 불태울 수 있다는 생각은 한낱 기우일까?프랑스의 소요사태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다가올 다인종·다문화 시대의 문제점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프랑스 소요사태 같은 일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왔을 때에야 대책을 세우면 우리 사회가 지출하고 감당해야 할 비용은 너무 크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야말로 프랑스가 주는 교훈이다. 박정현 정치부 차장 jhpark@seoul.co.kr
  • [부고]

    ● 노벨평화상 수상 英 로트블래트 |런던 연합|반핵 운동에 앞장선 공로로 199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영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로트블래트 박사가 1일 “잠자던 중 평화롭게” 숨졌다고 그가 설립한 민간단체 ‘과학·세계문제에 관한 로트블래트 퍼그워시 연맹’이 밝혔다.96세.1908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로트블래트 박사는 1950년 영국 리버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런던대학 물리학 교수로 일하면서 핵무기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확산을 저지하는 운동에 앞장섰다. ●우영정(자영업)상정(〃)득정(서울신문 논설위원)씨 모친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3410-6911 ●도갑수(청룡환경·한국환경시스템연구원장)씨 별세 준상(MIT 공대 박사과정)나리(마이애미 박사과정)씨 부친상 윤환식(오하이오 박사후과정)씨 빙부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02)3010-2265 ●백승룡(전 고려대 의무부총장·단국대 의료원장)씨 별세 송애완(송소아과 원장)씨 상부 백종륜(고려대 의과대학 안암병원 정형외과 임상조교수)혜정(가천의대 길병원 안과 부교수)혜선(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씨 부친상 윤문정(추계예대 강사)씨 시부상 서한규(다사랑이비인후과 원장)나경욱(인제대 일산백병원 정형외과 조교수)씨 빙부상 1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929-4099 ●한준수(삼성테크윈 관리팀 차장)지수(이건창호 직원)혁수(성남고 야구부 코치)씨 부친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8 ●문광진(국제라이온스협회 354-C지구 지도위원)광현(자영업)광삼(부산대 법대 교수)광균(국민은행 기업금융부 차장)씨 모친상 홍성호(자영업)이태성(〃)홍성범(농업진흥공사 충남대전지역본부 설계팀장)씨 빙모상 3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02)3410-6919 ●최영복(전 경희대 아태대학원 부처장)씨 별세 박영의(전 경희대 재무처 부처장)씨 상부 31일 경희의료원, 발인 2일 오후 1시30분 (02)958-9546 ●김용현(로이코전자 과장)용민(사업)씨 부친상 김광희(새한신용정보 성남지점장)씨 빙부상 3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2)3010-2268 ●김경수(삼성증권 부장)흥수(스웨덴대사관 서기관)씨 부친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10시 (02)3410-6905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우리는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 좌로, 우로 한(恨)도 많다. 그래서 목놓아 ‘저편의 너를’ 부르고 그리움으로 손을 뻗는다. 광복 60년이 됐지만 분단의 노래는 여전히 단장(斷腸)의 메아리다. ‘봉선화’(1919년) 이후 한국 가곡 86년사(史)에서 가장 애창된다.‘그리운 금강산.’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켜켜이 담아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소설보다 더 감동으로 승화시킨 악상(樂想)이다.‘통일 주제가’로 ‘민족 가곡’으로 사랑받는다. 들을수록 애틋하고 향수가 있고 경건하다. 옛날이었다. 한 시인이 음악가를 꿈꾸는 중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닌다. 시인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켠다. 시인은 “이봐, 한 수 읊을 테니 적어봐.”라고 했다. 그러곤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라고 소리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성질 급한 학생은 “다음은요?”라고 했다. 시인은 다시 술을 마시며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라고 했다. 학생은 또다시 “다음은요?”라고 보챘다. 시인은 또 목구멍으로 술을 꼴깍 넘기며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학생은 이튿날 가곡을 만들어 화답했다. 1954년 어느 날이었다.25살의 젊은 청년이 처녀가곡집을 냈다. 그러자 서울신문 문화면 전체에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 게재됐다.‘악보 출판치고는 사상 최악이다. 그러나 이 청년의 장래를 정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의 시인은 2003년 작고한 조병화씨. 해방 직후 경복중학에 다니는 최영섭 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닐며 ‘추억’이라는 시를 발표했을 때의 상황이다. 두번째는 청년 최영섭이 가곡집을 내자 당시 작곡가 나운영씨가 주저없이 나서 역설적으로 호평했던 일화다. 최영섭(77)씨.‘한국의 슈베르트’라고 한다. 샘솟듯 넘쳐 흐르는 악상과 특유의 직감으로 무려 2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중 ‘누구의 주재런가∼’로 시작되는 ‘그리운 금강산’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민족의 송가(頌歌)로 널리 애창된다. 이 노래가 탄생된 지 올해로 45년째.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최씨를 만났다.“희수(喜壽)가 됐으면 다 평화로워야 하는데….”라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지난 4월에 막내아들을 잃었다.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4년 동안 온 집안 식구가 백방으로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가슴에 못질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 최씨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 한 주택가에서 반지하 월세방을 얻어 혼자 쓸쓸히 지내고 있다. 원래 세 아들을 낳은 본처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참 동안 혼자 살다가 모 방송국 PD의 중매로 둘째 부인을 만나 살았지만 1997년 뜻하지 않은 이유로 헤어졌다. 평생 살려고 약속했던 부인에게 재산을 다 주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됐단다. 그룹 ‘들국화’ 멤버였던 큰아들이 경기도 과천 집에서 함께 살자고 원하지만 집에 쌓인 책이며 음악자료들이 정들어 아직은 혼자 지내기로 했다. “평생 가곡을 만들면서 살아왔어요. 올해가 광복 60년이고 분단 60년이 됩니다.‘그리운 금강산’을 만들 때는 곧 통일도 될 것 같았는데. 솔직히 더 이상 ‘그리운 금강산’이 불려져서는 안됩니다. 세월이 지난 뒤 ‘아, 옛날 그런 노래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면 족하지요.” ‘올해의 의미’에 대해 오는 11월11일이 제1회 가곡의 날로 선포된 점을 강조했다. 최씨 등 가곡인들의 오랜 노력 끝에 얻어진 결실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9월8일부터 매주 목요일 가곡 연주회를 갖는다. 아울러 전야제 행사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옛 중앙기상대 건물 바로 옆 홍난파 선생이 살던 집에서 ‘봉선화의 집’이라는 현판식을 갖는다. 최씨는 “난파 선생이 돌아가시기 1∼2년 전 협박에 못이겨 일본군가를 편곡했는지는 모르지만 생전에 민족 가곡 100여개를 작곡할 만큼 우리들에게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준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냐.”고 강조했다.‘봉선화’를 작곡하는 등 평생의 95%는 우리 가곡과 동요에 헌신하고 독립을 간절히 원하며 살았는데 왜 그가 친일파로 매도돼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운 금강산’의 탄생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1961년 8월이었다.KBS(남산 시절)에서 ‘남산에 올라’‘한강의 노래’‘낙동강 칠백리’‘백두산은 솟아있다’ 등 정열적인 작곡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길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다루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하는 거요.”라고 불쑥 말했다. 아차, 무릎을 탁 친 최씨는 그 길로 시인 한상억(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숨가쁜 목소리로 “한 선생님, 여태껏 금강산이 없습니다.”고 했다. 한씨는 “허허, 나는 이미 다 써놓고 있었네. 안그래도 줄 참이었지.”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벽 2시까지 ‘콩나물’과 씨름했다. 다른 곡 같으면 며칠이 걸렸을 법한데 ‘그리운 금강산’은 4∼5시간 만에 완성했던 것.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곧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인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6·25전쟁 발발 12주년 때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아름다운 내강산’이란 주제로 KBS교향악단·합창단 등의 협연으로 ‘최영섭 가곡특집’을 발표했다. 이때 받은 30만원(당시 집 한채 값)으로 둘째 아들의 병원비를 충당했다. 생애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리운 금강산’은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 50여명의 CD에 담겨 있다. 조수미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소프라노 홍혜경, 그리고 세계적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월드(My World)’에도 ‘그리운 금강산’이 포함돼 국내외에서 애창된다. 최씨는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여섯살 때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다. 또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뱃노래’에 매료됐다. 초등3학년 때 호르겔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천부적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다. 인천중학 재학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웠다. 서울 경복중학으로 전학한 후 이화여대의 임동혁 교수한테 작곡수업을 받았다.49년 경복중학 6년(당시 6년제)때 첫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음대 시절에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올해 김성태 선생한테 세배를 갔더니 세뱃돈 3만원을 주더군요. 그분은 96세의 나이에도 동요를 작곡하고 있어요.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아요.” 최씨는 지금까지 가곡 외에 편곡 1600여곡, 기악곡 40여곡을 만들었다. 미발표된 것도 수십곡에 이른다. 재산은 하나도 없지만 가득 쌓인 문학책과 음악자료들을 볼 때마다 남부럽지 않게 여긴다. 혼자 맥주 마시며 책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올 가을에 발표될 신곡 20곡을 기대해 달라며 식지 않은 창작열을 과시했다. 오래전부터 ‘고운산’이란 필명으로 작사도 한다. 건강유지 방법을 물으니 “지하철이 곧 헬스클럽이다. 음악이 있어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며 웃었다. 생활비는 저작권료로 받는 월 200만∼300만원으로 충당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강화 출생 ▲49년 경복고 졸업, 제1회 작곡 발표회, 임동혁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54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재학시절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원 석사 ▲61년 ‘그리운 금강산’ 작곡 ▲62년 6·25 12주년때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최영섭 특집 가곡 발표회’ 개최. 이후 작곡발표회 5회. ▲76년 드라마 주제가 ‘아, 이조 오백년’ 작곡 ▲95년 광복50주년 기념교성곡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전 24장 발표. ▲가곡 ‘모란이 피기까지’‘추억’‘망향’ 등 200여곡 작곡. ▲인천여중고·인천여상고·이화여고·한양대·상명여대·세종대 등에 출강. ▲현재 작곡가회 부회장, 한국예술가곡진흥회 회장. ■ 상훈 인천시문화상(59년), 경기도문화상(61년),MBC방송대상(87년), 대한민국 방송대상(92년),MBC가곡 공로대상(94년), 한국음악상(96년), 세종문화상(98년), 서울시문화상(2001년)
  • [Check Check 책] 말 잘하면 말로 받는다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미국의 영화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75)는 “아직도 일한다는 게 기쁘다. 내겐 96세인 어머니가 계시다. 나의 젊은 유전자에 감사한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만약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식의 상투적인 소감을 밝혔다면, 그의 말은 우리에게 어떤 마음의 물결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 다른 일화 한 토막.‘처세술의 천재’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제 대륙을 공격해야 합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상관인 오다 노부나가의 비위를 맞췄다. 도요토미는 훗날 정권을 잡은 뒤 의미없는 대륙 출병을 감행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자신이 평소 떠들어대던 말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말이란 때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말하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매력적인 말하기’(도서출판 원앤원북스)라는 책을 펴낸 강미은(41·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무엇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떻게 설득력 있는 키 메시지로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말을 매력적으로 하는데 참신한 시각이 필요함은 물론. 진부한 소재라도 새로운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달변을 자랑하는 CNN의 토크쇼 사회자 래리 킹도 ‘새로운 시각’을 말 잘하는 사람의 첫째 덕목으로 꼽은 바 있다. 설교조나 훈계조의 말은 경계해야 한다. 강 교수는 미국의 잡지 편집자 케이트 화이트의 저서 ‘착한 여자가 아니라 용기 있는 여자가 성공한다’를 인용하며 용기있는 여성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 제1호는 ‘원치않는 조언’임을 분명히 한다. 1만 1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는 이스트우드를 선택했다

    제77회 아카데미는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75)의 손을 들어줬다.28일(한국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올해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유력한 경쟁작이었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에비에이터’를 따돌렸다.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에비에이터’가 5개부문 수상으로 최다 부문 수상의 영광을 안긴 했지만,4개의 주요부문 수상은 ‘밀리언‘에 돌아감으로써 주연과 감독을 맡은 이스트우드가 올해 아카데미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됐다. 아카데미의 꽃으로 불리는 작품상·감독상을 모두 휩쓴 데다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두번째로 감독·작품상 수상 이번 수상으로 이스트우드는 1993년 ‘용서 받지 못한 자’에 이어 두번째로 감독·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71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한 뒤 ‘앱솔루트 파워’‘미스틱 리버’등 지금까지 20여편의 영화를 만들어 온 그는, 동년배들이 현역에서 물러났을 때부터 오히려 빛을 발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제 아무도 그를 서부영화의 아이콘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그는 시상식장에 올라 96세인 어머니를 소개하며 “유전자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밀리언‘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늙은 트레이너 프랭키와 여성 복서 매기의 가족보다 진한 교감을 그린 영화. 가족주의와 휴머니즘을 넘어선 삶을 관통하는 깊이있는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삶을 비관하지 않는 승리자의 태도가 아카데미의 손을 들어주게 만든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아카데미가 사랑한 배우들 이스트우드뿐만 아니라 ‘밀리언‘에서 여성 복서 역을 맡은 힐러리 스왱크(31) 역시 아카데미와 두번째로 인연을 맺게 됐다.2000년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남장여자 역에 이어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내가 무슨 착한 일을 해서 이렇게 상을 받게 되는지 모르겠다.”며 감격해했다. 남우주·조연상은 ‘흑인들의 잔치’였다. 레이 찰스를 완벽하게 연기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이’의 제이미 폭스(38)는 수상 소감에서 “어려서 연기 지도를 해주신, 지금은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감사드린다.”며 울먹였다.1963년 ‘들에 핀 백합’의 시드니 포이티어,2002년 ‘트레이닝 데이’의 덴젤 워싱턴 이후 흑인 배우로는 세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이다. 남우조연상은 은퇴한 복서 역을 맡은 ‘밀리언‘의 모건 프리먼(68)이 아카데미에 4번째로 도전한 끝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카데미가 ‘인종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는 증거다. 여우조연상은 ‘에비에이터’에서 캐서린 햅번을 연기한 케이트 블랜쳇(36)이 차지했다. ●‘몰아주기’ 없었던 시상식 올해 아카데미의 가장 큰 특징은 ‘몰아주기’가 없었다는 것.‘에비에이터’(5개),‘밀리언‘(4개)에 이어 ‘레이’와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각각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편 아카데미 사상 한국인(호주 교민)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단편 애니메이션부문 후보에 올랐던 박세종 감독의 ‘버스데이 보이’는 ‘라이언’에게 밀려 수상의 영광을 놓쳤다. 이순녀 김소연기자 coral@seoul.co.kr ●부문별 수상자(작) ▲작품상 밀리언 달러 베이비▲감독상 클린트 이스트우드(밀리언 달러 베이비)▲남우주연상 제이미 폭스(레이)▲여우주연상 힐러리 스왱크(밀리언 달러 베이비)▲남우조연상 모건 프리먼(밀리언 달러 베이비)▲여우조연상 케이트 블랜쳇(에비에이터)▲각색상 사이드웨이▲각본상 이터널 선샤인▲촬영상 에비에이터▲편집상 에비에이터▲장편 애니메이션상 인크레더블▲단편 애니메이션상 라이언▲미술상 에비에이터▲음향편집상 인크레더블▲음향상 레이▲시각효과상 스파이더맨2▲의상상 에비에이터▲분장상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작곡상 네버랜드를 찾아서▲주제가상 모터사이클다이어리▲장편 다큐멘터리상 본 인투 브라델스▲단편 다큐멘터리상 마이티 타임스▲외국어영화상 시 인사이드(스페인)▲단편영화상 WASP ■ 이모저모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아카데미의 악연은 올해도 이어졌다.2년 전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단 한개의 상도 수상하지 못한 ‘갱스 오브 뉴욕’에 비한다면 5개 부문 수상이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스코시즈는 6번째로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도 고배를 마시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5년 만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나란히 오른 아네트 베닝과 힐러리 스왱크의 남다른 인연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00년 ‘아메리칸 뷰티’로 여우주연상을 노렸다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신인 힐러리 스왱크에게 오스카상을 뺏겼던 아네트 베닝은 ‘줄리아 되기’로 권토중래를 꾀했으나 또 한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두 명의 한국교포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카메라에 잡혔다.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가 안타깝게 수상을 놓친 ‘버스데이 보이’의 호주 교포 박세종 감독과 ‘사이드웨이’의 여배우이자 캐나다 교포인 샌드라 오가 그 주인공. 특히 샌드라 오는 ‘사이드웨이’를 만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아내로, 페인 감독은 각색상 수상소감에서 “내 아내 샌드라는 대단한 배우다. 아내에게 감사한다.”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 [씨줄날줄] ‘노동생명’/육철수 논설위원

    향도효과(嚮導效果)라는 게 있다. 행군이나 구보때 맨 앞에서 대열의 보조를 맞추고 길잡이 역할을 하면 자기 페이스 조절이 가능해 오랜 시간 걷거나 달려도 피곤하지 않다는 뜻이다. 많은 지도자들이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데는 일정부분 향도효과에 기인한다는 가설은 흥미롭다. 아홉 번이나 구청장을 해서 ‘직업이 구청장’이 된 정영섭(73) 서울 광진구청장은 공직자로서의 장수비결을 곧잘 ‘향도효과’에 비유한다. 그런 측면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일을 사랑하고 행정가로서 탁월한 능력이 그를 오래도록 현직에 붙들어 놓은 요인일 것이다. 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노동생명표’는 정 구청장 같은 이에게는 해당사항 없겠지만 일반 직장인들에겐 심각하게 다가온다. 현재 25세인 남성 직장인의 ‘노동생명’(임금근로자가 앞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평균기간)은 20.8년이라고 한다. 지금의 40∼50대는 운 좋으면 몇년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20대는 45∼46세가 되었을 때 실직자가 무더기로 나온다는 얘기다. 이들이 ‘사오정’이 되어 새 직업을 찾을 경우 ‘노동기대여명’은 36.2년이 돼 61세까지는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더라도 한국 남성의 평균수명이 73.4세인데 40대에 퇴직한 뒤 새 돈벌이를 찾지 못한다면 국가적·사회적 노동력의 낭비가 너무 심할 것 같다. 사실 노동생명이란 개인이 하기 나름이며 천차만별일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은 국민이 준 노동생명을 산다고 볼 수 있겠다. 시한부이지만 잘하면 얼마든지 노동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공무원들은 법적으로 일정 연령까지 노동생명이 보장된다. 고위직의 경우 퇴직 후에 2∼3년 더 노동생명을 늘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능력과 노력만 있으면 노동생명에 제한이 없는 학자·의사·변호사·예술가들은 가장 복받은 노동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젊은 퇴직자들이 쏟아지는 요즘,96세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와,70년째 소아과 의사로 일하는 경북대 의대 최정헌(93) 명예교수가 새삼 돋보인다. 보람된 삶과 가치 있는 노동의 의미를 이들은 일깨워주고 있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부고]

    ■ 中 8대 원로 쑹런치옹 |홍콩 연합|중국을 막후에서 주물러온 공산당 ‘8대 원로’ 가운데 1명인 쑹런치옹(宋任窮)이 8일 숨졌다.96세. 중국 신화통신은 “위대한 공산주의 전사며 혁명가인 쑹이 베이징(北京)의 한 병원에서 이날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중국 8대 원로 가운데는 보시라이(薄熙來·55) 상무부장의 부친인 보이보(薄一波·97) 전 부총리 1명만이 남게 됐다.8대 원로는 덩샤오핑(鄧小平)과 천윈(陳雲), 펑전(彭眞), 양상쿤(楊尙昆), 완리(萬里), 쑹핑(宋平) 등이다. 쑹런치옹은 지난 1982년부터 1987년까지 공산당 정치국 위원을 역임했으며 중요 국가 정책과 인사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앙고문위원회 부주석을 지냈다. ■ 케네디대통령 여동생 로즈메리 |워싱턴 연합|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여동생인 로즈메리 케네디가 7일 숨졌다고 가족들이 밝혔다.86세. 케네디 전 대통령보다 한 살 아래인 로즈메리는 출생 당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뇌손상으로 정신 지체 장애를 앓아왔다. 그녀는 23세이던 지난 1941년 뇌 전두엽 제거수술을 받았으나 수술후 상태가 더 나빠졌다. ●문형국(에이스테크놀로지 대표)형권(부강공고 교사)형진(캐츠아이커뮤니케이션 이사)씨 모친상 8일 대천 보령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41)934-3499 ●박영배(㈜인포니아 이사)씨 모친상 이연원(전한국신문편집연구원 원장)씨 빙모상 8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 (02)392-0499 ●장선도(한국기독교장로회 대구노회 은퇴목사)씨 별세 성덕(사업)인덕(서울 일원동 대청교회 담임목사)수덕(대전 혜천대 교수)순덕(사업)씨 부친상 윤정배(여명건설 대표이사)씨 빙부상 9일 대구 동구 신암동 파티마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53)957-4442 ●이헌상(사업)헌협(현대증권 법무실 부장)헌대(경기대 교수)헌필(모빌탑 상무이사)씨 모친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02)3410-6917 ●우성익(다진에이스 이사)씨 부친상 이봉선(서광사 대표)황윤재(자영업)전병관(다우엔텍 대표)씨 빙부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10시 (02)3410-6906 ●이철수(서울시 경영기획실장)씨 부친상 9일 경남 마산의료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55)249-1462) ●김상은(선민침례교회 담임목사)상훈(MS 대표)상률(숙명여대 교수)씨 부친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3010-2294 ●김태양(창대산업 대표이사)영승·용석(자영업)영균(在 호주)택(왕성ENG 대표)씨 모친상 권정택(리브로 경영지원실장)이영식(在 호주)씨 빙모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02)3010-2293 ●채규범(전 주식회사 파리크라상 이사)현숙(서울아산병원 수간호사)혜숙(영란여자정산고 교사)씨 부친상 조재표(대우버스주식회사 상무)심충보(대신증권 강북지역 본부장)씨 빙부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2 ●송장원(인천세관 조사관)씨 부친상 조규호·김문태(사업)씨 빙부상 9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30분 (02)2650-2749 ●배정욱(전 기업은행 지점장)씨 부인상 성훈(재미 한의사)성민(극동정보대 교수)성화(관악중 교사)씨 모친상 한기성(사업)이익상(삼성생명 부장)씨 빙모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10시30분 (02)3410-6748 ●고소웅(연세대 영문학과 교수)씨 별세 용민(재미 유학)화경(재불 유학)씨 부친상 9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392-3299 ●서상현(주택은행 지점장)씨 별세 병우(전 삼성생명 이사)병삼(삼성전자 전자렌지 사업팀장)병규(사업)씨 부친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10시 (02)3410-6915 ●안광현(현대자동차 대리)형영(한국일보 사회부 기자)씨 부친상 9일 전남 장흥 우리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61)864-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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