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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뜨고도 현실 못보는 전쟁 당사국 향한 경고

    눈 뜨고도 현실 못보는 전쟁 당사국 향한 경고

    몽유병자들/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1016쪽/4만 8000원1911년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침공했다. 지금은 세계사에서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 이 전쟁에서 공중폭격이 처음 선보였고, 본격적으로 사용된 군용 탐조등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낸 당대의 첨단기술이었다.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인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저서 ‘몽유병자들’은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있었던 유럽 각 국가의 상황에 주목하며 전쟁의 원인을 파헤친다. 1차 대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20세기를 폭력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한 이 전쟁이 발발한 원인에 대해 유럽 역사학계에서는 개별 국가가 모두 책임이 있다는 집단책임론과 주요한 책임이 독일에 있다는 ‘피셔 테제’ 간 공방이 이어졌다. 이 같은 논쟁에 대해 저자는 전쟁 이전 일련의 사건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접근한다. 앞서 소개한 이탈리아의 리비아 침공은 발칸반도 국가들의 연이은 충돌로 이어졌고, 이는 1차 대전의 빌미가 됐다. 1차 대전은 삼국동맹(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과 삼국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 간 대결로 시작했다. 사실 독일에서는 러시아가 전쟁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 1914년 직전,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 편의 ‘난투극’이었던 1912~1913년 발칸의 상황, 발칸에 대한 통제가 약화됐던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정세 등을 보면 왜 이 같은 예상이 빗나갔는지 조금 이해하게 된다.이탈리아의 리비아 침공 사건에서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의 명분 없는 행동을 묵인했다. 결국 이들 동맹이 사실 내부적으로는 허술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탈리아에 맞선 리비아의 투쟁이 “현대 아랍 민족주의의 출연을 자극한 중요한 초기 촉매 중 하나였다”(395쪽)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1차 대전을 얘기하며 1914년 6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조피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테러를 당한 ‘사라예보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페르디난트 대공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조피는 대공비 칭호도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부분 누가 죽었는지보다는 사건 장소인 ‘사라예보’를 기억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죽음이 어떻게 당시 유럽의 여론을 바꿨는지를 설명한 저자의 서술도 흥미롭다. 1차 대전이 실제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이 같은 대규모 전쟁을 상상하지 못했다. 전쟁이 나더라도 1년~1년 6개월의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저자는 결국 당사국 모두가 눈을 뜨고도 눈앞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몽유병자들’이었다고 지적한다. 전쟁의 원인이 아닌 과정을 집요하게 연구한 저자의 접근방식은 전쟁 발발 100주년을 맞은 2014년 1차 대전을 조명한 많은 신간 가운데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이 책은 2017년 12월 북한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면담하며 건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몽유병자와 같은 행동에 불과할 것이라는 경고였겠지만, 이 책을 본 독자라면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국가가 몽유병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설지도 모른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로또842회당첨번호 ‘14, 26, 32, 36, 39, 42’…1등은 10명

    로또842회당첨번호 ‘14, 26, 32, 36, 39, 42’…1등은 10명

    제842회 로또 추첨 결과 ‘14, 26, 32, 36, 39, 42’가 1등 당첨번호로 결정됐다. 2등 보너스 번호는 ‘38’이다. 당첨번호 6개를 모두 맞힌 1등 당첨자는 10명으로, 각각 20억3547만5025원씩을 받는다. 당첨번호 5개와 보너스 번호가 일치한 2등은 42명으로 8077만2819원씩 받는다. 당첨번호 5개를 맞힌 3등은 2039명으로 166만3786원씩 받는다. 당첨번호 4개를 맞힌 4등(고정 당첨금 5만원)은 10만3190명, 당첨번호 3개가 일치한 5등(고정 당첨금 5000원)은 173만5911명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산모 2명 중 1명 “산후 우울감 경험”

    산모 2명 중 1명 “산후 우울감 경험”

    “우울해도 아무런 도움 못 받아” 22% 산후조리원 2주 이용시 221만원 지불 집에서 산후조리할 경우 평균 96만원산모 2명 중 1명은 산후 우울감을 경험했지만 이 중 22.0%는 주변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산모 10명 중 7명은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고 평균 2주간 머물면서 221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산모 2911명을 대상으로 산후조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17일 공개했다. 이 조사는 정책수립의 기초 통계자료로 쓰인다. 조사(중복 응답) 결과에 따르면 산모들은 자신과 영유아 건강을 위해 무료 산후진찰지원(37.7%), 산후우울 상담과 치료(32.8%)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산모의 50.3%가 산후조리 기간에 산후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이중 25세 미만 산모의 34.7%는 주변의 도움 없이 우울감을 겪었다고 밝혔다. 보건소에서 산후 우울증 검진과 상담을 하지만 정보 부족 등으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산모들이 선호하는 산후조리 장소는 산후조리원(75.9%), 본인집(17.7%), 친가(6.0%) 순이었다. 집에서 산후조리(평균 22.6일)할 때 든 비용은 평균 96만원으로 산후조리원 이용액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육아에 시달리지 않고 편하게 산후조리를 할 수 있다’(36.5%)는 이유 등으로 대다수가 출산 후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다. 실제 산후조리 기간은 평균 32.2일로 조사됐지만 산모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산후조리 기간은 평균 58.1일로 나타나 현실과 희망 사이의 괴리가 컸다. 만족스러운 산후조리를 위해 산모들은 1순위로 ‘산후조리원 경비 지원’(51.1%)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 확대’(27.2%), ‘배우자 육아휴직 제도 활성화’(23.4%) 등을 꼽았다. 산모와 영유아가 산후조리원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낸 시간은 하루 평균 4.2시간에 불과했으며 산후조리원을 이용했던 산모의 52.4%는 모자동실이 좀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집에서 산후조리할 때 산모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교육은 신생아 돌봄 교육(64.3%), 신생아 안전 교육(63.5%)이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말빛 발견] 말모이/이경우 어문부장

    ‘말모이’는 끝내지 못한 우리말 사전의 이름이다. 우리말에 우리 글자로 뜻풀이를 한 사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시작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었다. 사전을 만들려면 우선 말을 모아야 했다. 편찬자들은 ‘말을 모으다’는 뜻으로 사전 이름을 ‘말모이’라고 했다.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인 김두봉, 권덕규, 이규영이 ‘말모이’ 편찬에 함께한 이들이다. 그러나 원고가 거의 마무리되고 사전 출판을 앞둔 1914년 주시경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김두봉은 상하이로 망명하게 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사전은 끝내 출판되지 못한다. ‘ㄱ’부터 ‘걀죽’까지 원고 일부만 남아 있다. 한자어 앞에는 ‘+’, 외래어 앞에는 ‘×’를 붙여 구분했다. ‘말모이’는 우리말 사전의 기틀이 됐고, 이후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사전 편찬으로 이어진다. 조선어사전편찬회는 취지서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문화의 발전은 언어 및 문자의 합리적 정리와 통일을 말미암아 촉성되는 바이다.” 말들은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정리돼야 한다. 사전은 단순한 말의 기록이 아니다. 사전의 말 속엔 미묘한 원칙들이 있고, 풍속이 있으며, 모든 것들과의 관계가 있다. 더 섬세한 사전이 필요해지는 시대다. wlee@seoul.co.kr
  • 이 영화 실화였어? 게다가 작품성까지 갖췄잖아!

    이 영화 실화였어? 게다가 작품성까지 갖췄잖아!

    새해 극장가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대거 포진해 눈길을 끈다. 실화를 소재로 했지만,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일 개봉한 ‘리지’는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 폴 리버에서 일어난 ‘리지 보든 살인 사건’이 소재다. 대부호 보든가의 둘째 딸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가 도끼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 미국을 발칵 뒤집었다. ‘리지’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리지 보든과 보든 가문의 하녀인 브리지트 설리번(크리스틴 스튜어트 분)과의 관계에 집중했다.‘말모이’는 주시경이 1911년부터 제작에 나섰으나 미완성으로 남은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가 소재다. 1945년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한 2만 6500여쪽의 국어사전 원고를 모티브로, 13년 동안 조선어학회 사람들이 벌인 여러 노력들을 재구성했다. ‘택시운전사’ 각본을 쓴 엄유나 감독의 첫 영화로, 9일 개봉 이후 5일 만에 100만을 넘어서며 순항 중이다.9일 개봉한 ‘그린북’은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와 운전사이자 매니저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가 1962년 미국 남부로 콘서트 투어를 다니며 겪은 이야기가 바탕이다. 아프리카계 집배원인 빅터 휴고 그린이 펴낸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북 ‘그린북’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흑인 여행객들만 이용 가능한 숙박시설, 레스토랑, 주유소 등 정보가 적힌 책이 있었을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할 때였다. 두 배우가 당시의 상황 속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우정을 키우는 이야기다. 최근 골든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조연상, 각본상 3관왕을 받았다.다음달 14일 개봉하는 ‘그때 그들’은 섹스, 마약,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이야기를 다룬 블랙 코미디다. 베를루스코니는 마피아와의 결탁, 뇌물, 탈세, 여성편력, 망언 등 부정부패의 아이콘이지만, 1994년부터 2011년까지 3선 총리를 지냈다.16일 개봉하는 ‘쿠르스크’는 2000년 바렌츠 해에서 침몰한 쿠르스크함 사건을 영화화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국제사회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거절한 채 늦장 대응해 ‘생존자 0명’의 대참사를 빚었다. ‘더 헌트’로 칸 국제영화제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받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역사상 최악의 인재’를 그려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인촌로→고려대로’, ‘이승로 성북구청장, 항일단체로 부터 감사패 받아’

    ‘인촌로→고려대로’, ‘이승로 성북구청장, 항일단체로 부터 감사패 받아’

    서울 성북구는 이승로 성북구청장이 지난 7일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도로명을 개명, 친일청산에 앞장서고 국민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항일독립지사선양단체연합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민성진 항단연 사무총장은 “인촌로를 고려대로 바꾼 이 구청장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인촌로 주소 사용 주민 9000여명을 일일이 찾아가 도로명 변경 동의 서명을 받은 구청 지적과 직원에게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 구청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성북동 심우장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후 그를 따르는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성북구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만큼 인촌로 도로명 변경은 성북구의 당연한 노력”이라며 “특히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인 만큼 바른 역사 세우기에 적극 동참하신 성북구민과 고된 과정을 묵묵히 이행해 온 성북구 직원 모두에게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구는 지난 2월 항일독립지사선양단체, 고려대 총학생회와 인촌로 변경에 대한 법적인 절차들을 확인하면서 실무 논의를 했고, 8월엔 도로명 인촌로 직권변경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했다. 11월엔 성북구도로명주소위원회를 개최, 인촌로 명칭을 다수 주민이 선호하는 ‘고려대로’로 변경하는 내용을 의결했다. 이후 12월엔 인촌로 주소 사용자 9118명 중 5302명(58%)을 찾아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꾸는 데 대해 동의를 받았다. 구 지적과 전 직원과 조사요원들은 주민 동의를 얻기 위해 인촌로 주소 사용자 전 세대를 평균 5회 이상 방문, 도로명 변경 추진 배경과 필요성을 설명했다. 구 관계자는 “광주 서구가 주민 665명 중 460명 동의를 받아 백일로를 학생독립로로 변경한 사례가 있지만 인촌로의 고려대로 변경은 주민 9000여명의 의사를 확인해야 하는 대도시에서의 첫 사례인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인촌로는 6호선 보문역-고대병원-안암역-고대앞사거리 구간(약 1.2㎞)으로, 인촌로와 연결도로 27개의 도로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안내 시설로는 도로명판 107개와 건물번호판 1519개가 있다. 인촌 김성수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의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정부는 훈장을 취소하고 생가와 동상 등 5곳의 현충시설을 해제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팔아치우고 갈아치우고… ‘역시 포르쉐’

    팔아치우고 갈아치우고… ‘역시 포르쉐’

    2018년 사상 최다 판매 기록 또 경신신형 ‘파나메라’ 38%↑… 신기록 견인 포르쉐가 2018년 25만 6255대를 팔아치우면서 사상 최다 판매량을 또 경신했다. 2017년에 이어 2년 연속 신기록이다. 신형인 ‘파나메라’가 최다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파나메라는 전년 대비 38% 증가한 3만 8443대가 판매됐다. ‘911’도 지난 연말 8세대 911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10% 증가한 3만 5573대가 판매되며 두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포르쉐 AG 영업·마케팅 이사회 멤버인 데틀레브 본 플라텐은 “911의 매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으며, 포르쉐 아이코닉 모델로서 2017년보다 더 많은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마칸은 8만 6031대가 판매되며 포르쉐 ‘베스트셀링’ 모델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카이엔은 7만 1458대에 이르는 판매 실적을 올렸다.전 세계 지역별 판매량에서는 중국이 전년 대비 12% 증가한 8만 108대로 가장 큰 점유율을 기록했다. 미국이 3% 성장한 5만 7202대로 뒤를 이었다. 반면 유럽 시장 판매량은 전년 대비 소폭 하락했다. 데틀레브 본 플라텐은 “새롭게 도입된 국제표준시험방법(WLTP)과 가솔린 미립자 필터 기술 전환 등의 이슈로 유럽 시장은 지난해 4분기에 상당한 도전 과제에 직면했으며, 이는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한편 포르쉐는 지난해 2월 중순부터 디젤 모델을 생산하지 않았고, 같은 해 9월 더는 디젤 모델을 생산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전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가이드 폭행에 접대부 요구까지

    전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가이드 폭행에 접대부 요구까지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예천군의원이 해외연수에서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고 일부 의원은 접대부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종철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7명 등 예천군 소속 의원 9명과 의회사무국 직원 5명은 지난달 20일 7박10일 일정으로 6188만원의 예산을 들려 미국 동부와 캐나다 연수를 다녀왔다. 박 의원은 연수 나흘째인 23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박 의원이 가이드 A씨를 주먹으로 때려 상처를 입혔다. 가이드는 박 의원과 6000달러(약 671만원)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녁식사를 한 다음 남은 일정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런데 (의원들이) 술에 취해 일어날 생각을 안 하더라. 대화를 하는 도중 갑자기 일어나 내게 주먹을 날렸다”고 말했다. A씨는 예천군 의원 일행이 현지에 도착한 다음날인 21일부터 ‘여자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 ‘보도를 불러 달라’고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박종철 의원은 “때린 게 아니라 손톱으로 긁었다”고 방송에서 해명했지만, CCTV 영상을 통해 거짓임이 탄로났다. 영상에서 박 의원은 주먹을 쥐고 가이드의 얼굴을 내려쳤고, 가이드는 안경이 부러지면서 얼굴에 피를 흘려 911에 신고했다. 박 의원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빡빡한 일정 탓에 말다툼을 하다가 손사래 치는 과정에서 얼굴에 맞은 것”이라며 음주,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박 의원과 동료 의원들, 예천군의회 의원 전체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는 가운데, 국민청원 게시판을 중심으로 ‘정치인 해외연수 금지’, ‘기초의회 폐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 4일 부의장직에서 사퇴하고 자유한국당에 탈당계를 냈다. 예천군의회는 연수 경비 전액을 자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박 의원이 속했던 자유한국당은 해당 사건과 관련,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中의 우주굴기…美‘아폴로 11호’ 50주년에 달 뒷면 먼저 정복

    中의 우주굴기…美‘아폴로 11호’ 50주년에 달 뒷면 먼저 정복

    中전설 속 달에 사는 선녀 이름 딴 ‘창어’ 달의 양면 모두 정복… “역사 창조” 환호 뒷면 토양 더 오래돼… 달 기원 탐사 기대 1990년대 “중화민족 부흥 실현” 투자 확대 로켓 횟수도 미·러 추월… 우주 강국 우뚝중국은 우주개발 사업을 1950년대부터 차근차근 추진했지만 항상 러시아와 미국의 뒤만 쫓다가 3일 ‘창어 4호’의 달 뒷면 착륙 성공이라는 세계 최초의 성과를 거두면서 ‘우주굴기’를 통한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중국이 우주굴기에 나서는 이유는 세계에 국력을 과시하고 자국민에게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 실현의 꿈을 심어주기에 우주사업만 한 것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실제로 이날 관영 환구시보는 “인류의 첫 달 착륙인 미국의 아폴로 계획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서 시작됐지만 중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는 인류운명 공동체의 꿈을 안고 개방과 협력의 이념을 실천해왔다”고 평가하는 등 애국적 보도가 넘쳐났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창어 4호의 달 뒷면 착륙은 역사를 창조한 것”, “중국은 점점 강해지고 있어 중국 사람으로 태어난 걸 후회 안 한다”는 등과 같은 축하 댓글이 쇄도했다. 중국은 2018년 미국보다 많은 로켓을 발사해 처음으로 로켓 발사 횟수에서 미국을 추월했다. 중국이 지난해 발사한 로켓은 37대로 미국 35대, 러시아 19대의 로켓보다 많았다. 2017년에는 미국이 30차례, 러시아가 20차례, 중국이 18차례 로켓을 쏘아 올려 중국의 우주굴기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1950년대 이후 달에 착륙한 우주선은 100여 대가 넘지만 달 뒷면의 착륙에 성공한 것은 중국이 처음이다. 달의 뒷면에 있는 토양은 앞면에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창어 4호는 달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넓히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창어는 달에 산다는 중국 전설 속의 선녀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창어 4호가 착륙한 달 뒷면 남극 근처에 있는 폭 186㎞의 폰 카르만 크레이터는 달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에다 오래되고 깊은 운석 충돌구다. 창어 4호에 실린 독일산 전파 천문 측정장치는 달의 뒷면에서 지구의 전파 소음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최적의 관측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우주사업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지원 아래 미국에서 유학한 첸쉐썬(錢學森·1911~2009) 미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로부터 시작됐다. 첸 교수의 주도로 로켓 개발에 착수해 1970년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 4호’에 3단 로켓을 얹은 ‘창정 1호’ 개발에 성공한다. 창정 1호의 발사로 중국은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5번째 인공위성 발사국이 됐다. 이어 1990년대 들어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투자를 확대해 1999년 첫 우주선 ‘선저우 1호’를 발사했고, 2003년에는 중국 최초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가 탄생했다. 중국인 최초의 우주 비행은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였다. 영국 UCL대학 앤드루 코츠 교수는 BBC를 통해 “50년 전 인류 최초로 미 아폴로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데 이어 달 탐사의 임무는 이제 중국이 이어받았다”고 평가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소방공무원 올 5400명 신규 채용

    소방공무원 올 5400명 신규 채용

    소방청은 올해 소방공무원 4344명을 증원할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현장 부족 인력 3835명, 소방서 신설에 따른 증원 인력 385명, 보건안전과 장비를 책임지는 인력 124명 등이 포함됐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현장 부족 인력 1만 9871명을 증원하겠다는 공약에 따른 것이다. 소방청은 공약에 따라 2017년 1500명, 지난해 3431명 등 총 4831명의 현장 부족 인력을 충원했다. 올해 소방공무원 신규 채용 규모는 소방공무원 퇴직에 따른 충원 인력(약 1000명)까지 포함하면 5400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방공무원 채용 일정은 국가직 9급 공채 시험 일정에 맞춰 진행된다. 선발 인원과 일정은 이달 중 공고된다. 신규 인력이 현장에 배치되면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사람 수는 기존 1004명에서 925명으로 줄어든다. 이는 소방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911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동안 소방서가 없었던 강원 화천군, 전북 순창군, 수원 남부 등에 소방서가 신설된다. 서울 강서소방서를 비롯해 소방서 10곳에 새 119안전센터가 문을 연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2만명 부족한 소방관, 올해 4000명 이상 채운다

    2만명 부족한 소방관, 올해 4000명 이상 채운다

    소방청이 올해 부족한 소방관 4000명 이상을 충원한다고 2일 밝혔다. 소방서가 없던 강원 화천 등 4곳에 소방서를 짓고 10개의 119안전센터도 만든다. 소방청은 화재 현장 부족 인력 3835명과 신설 소방관서 증원 인력 385명, 보건안전 및 장비관리 담당인력 124명 등 4344명을 올해 증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하반기부터 오는 2022년까지 5년 동안 부족한 현장 소방인력 1만 9871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2017년 하반기에 1500명을 충원했고 지난해 3431명을 늘렸다.소방청은 강원 화천과 양구, 전북 순창, 수원 남부 등 4곳에 올해 새로 소방서를 짓기로 했다. 재난현장의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서울 마곡, 세종 장군, 달성 옥포 등 10곳에 119안전센터를 만들어 인력을 배치할 계획이다. 소방청은 올해 충원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가 1004명에서 925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인구는 일본 770명, 홍콩 787명, 미국 911명 수준이다. 소방청은 올해 신규채용은 퇴직인원 등 자연감소분 1000여명을 고려할 때 5400여명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채용 일정은 국가직 9급 시험 일정에 맞춰 진행된다. 1월 중 각 시도별로 채용 계획을 공고할 예정이라고 소방청은 설명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부고]

    ●안길섭(서울신문 대치지국장)씨 장인상 31일 강동성심병원, 발인 2일 오전 8시 010-3911-9164 ●이동주(건설근로자공제회 상임감사)씨 부친상 31일 고대구로병원, 발인 3일 오전 010-6252-9811 ●홍현칠(삼성전자 서남아총괄 부사장)씨 부친상 1일 서울 삼성의료원, 발인 3일 오전(02)3410-3151
  • “신파라 해도 상관없어요 그만큼 아픈 시대였으니”

    “신파라 해도 상관없어요 그만큼 아픈 시대였으니”

    처음부터 주인공 유해진 정해놓고 각본 써 최초 국어사전 만드는 이들 13년간의 노력 실제 사건 모티브… 자연스럽게 눈물 나죠 슬프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일제강점기, 그 서슬 퍼런 시대에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국어사전을 만드는 데에 함께했습니다. 그 사람들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오는 9일 개봉하는 ‘말모이’는 ‘택시운전사’ 각본을 쓴 엄유나(40) 감독 첫 영화다. ‘말모이’는 주시경 선생이 1911년 시작했지만, 미완성으로 남은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를 가리킨다. 1945년 9월 8일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2만 6500여쪽의 원고가 발견됐는데, 영화는 이전 13년 동안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노력을 재구성했다. “2년 전 EBS의 ‘지식채널e’에서 본 5분 분량 영상을 보고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는 엄 감독은 이후 관련 서적은 물론, 한글학회(구 조선어학회) 자료를 모두 읽고 직접 학회를 찾아 자문해 가며 각본을 썼다. 당시 조선어학회가 말을 모으려고 잡지에 광고를 내고, 전국에서 수많은 답장을 받은 일 등 역사적 사실에 인물과 이야기의 살을 붙였다. 엄 감독이 각본에 이어 메가폰까지 잡은 영화는 까막눈인 ‘김판수’가 조선어학회에서 일하며 겪는 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특히 주인공 판수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은 영화를 살아 있게 만든다. 낫 놓고 기역도 모르던 그는 사전 제작을 도우며 점차 바뀌어 간다. 능청스러운 연기부터 눈물 쏙 빼는 연기까지, 영화를 보다 보면 유해진이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유해진씨를 주인공으로 정해 놓고 각본을 썼어요. 배우를 정해 놓으니 각본 쓰기가 수월했을 정도였죠. 주인공 판수는 성장하는 인물이자, 변화의 폭도 큰 인물입니다. 배우 유해진의 힘을 믿었고, 그 결과 역시 만족할 만큼 나왔습니다.” 판수의 상대역으로는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 윤계상이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을 맡아 열연한다. 앞선 모습과 달리, 그는 영화에서 진중한 지식인으로 등장한다. “현장에서 윤계상씨에게 ‘실제 본인 모습대로만 해 달라’고 주문했어요. 계상씨는 실제로 선하고 예의 바르고, 끈기 있는 사람입니다. 굳이 센 역할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연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촬영 끝나고서도 ‘류 대표님’ 하고 부르고 있어요.(웃음)” 2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조선어학회 사람들, 판수의 가족들과 동료들이 영화에서 한데 어우러진다. 초반 웃음 가득한 장면이 이어지다 일제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며 막판에 눈물, 콧물을 쏙 빼놓는다. 앞서 택시운전사 때도 그랬듯 “너무 신파적이다”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엄 감독은 “신파라고 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자연스러운 결말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아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니 만큼, 오히려 울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격렬한 액션 없이,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없이 오로지 담백한 이야기만으로 관객에게 통할 수 있을까. 엄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온기가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②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상하이는 명나라 말기부터 성장해 1880년대에는 동북아시아의 최대 상업 도시가 됐다. 1910년 대한제국 국권을 빼앗긴 뒤로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주목받았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이 독자적 주권을 행사하는 ‘조계’(외국인 자치구역)를 설치해 일본을 비롯한 다른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간섭을 피할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는 외국인에게도 건국이념인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보장해 한국인에게는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민족의 두 번째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태동했다.●“첫 번째 ‘임정 터’ 못 찾아…대한민국의 숙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를 위해 지난달 중순 찾아간 상하이 최대 번화가 화이하이중루 일대. 사람과 차들로 거리가 넘쳐나고 전 세계 패션 브랜드가 건물마다 즐비했다. ‘자본주의 최전선’인 이곳이 정말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기자와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고층빌딩이 가득 찬 서금이로(옛 김신부로) 지역을 바라보며 “100년 전 이곳 어딘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상하이 임정 기념관은 ‘보경리 청사’로 1926~1932년에 썼던 곳이다. 이 작가는 “최근 중국인 학자가 첫 번째 임정 터를 찾았다고 간략히 발표했지만 이에 대한 고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1919년 3월 17일 러시아 고려인들이 프리모르스키(연해주)에서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를 선포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때마침 서울에서도 임정 수립을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같은 달 26일 프랑스 조계의 한 예배당에 모였다. “조선총독부에 맞서 서둘러 임시정부를 조직하자”는 의견과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국내 지도자들의 뜻을 들어 보고 정하자”는 반론이 맞섰다. 하지만 3·1운동 직후부터 중국과 러시아에서 거물급 인사들이 상하이로 모여들고 있어 정부 수립을 더는 늦추기 어려웠다. 앞선 노령정부에다가 서울에 임정(한성정부)이 또 생기면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4월 10일 이동녕(1869~1940)과 이광수(1892~1950), 여운형(1886~1947) 등은 우리 역사 최초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밤을 새워 토의하던 중 신석우(1894∼1953)가 “임시정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따오고 공화제 국가인 중화민국에서 ‘민국’을 가져온 것이다. 여운형이 “이 나라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의원 다수가 이에 공감해 상하이정부의 이름이 정해졌다. 다음날 이들은 국무총리에 이승만(1875~1965)을 추대하고 내무 안창호(1878~1938), 재무 최재형(1860~1920) 등 6부 총장(장관)을 임명했다. 우리가 국가기념일로 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은 여기서 유래됐다.●왕 아닌 인민이 주인인 민주공화정 첫 공식화 그렇다면 두 번째 임정은 왜 상하이에 세워졌을까.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최선화(1911~2003) 부부의 임정 기록을 외손녀 김현주씨가 정리한 ‘제시의 일기’(1999년)를 보면 여기가 왜 임정의 적지인지 잘 묘사돼 있다. “중일전쟁(1937~1945) 전 상하이는 서양 문물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와 똑같이 살 수 있도록 조계지로 분할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조계지가 시설이 가장 좋았다. 프랑스는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답게 망명객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조선에서 온 이들이 다른 조계지에 숨으면 곧 붙들려 갔지만 프랑스 조계지에서는 안전했다. 설사 끌려간다고 해도 프랑스 정부가 항의하면 다시 풀려나올 수 있었다.”(1946년 2월 21일) 상하이정부는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노령·한성정부와 달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명시하고 한국사 최초로 민주공화정 국가 건설을 공식화한 것이다. 새 나라가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3·1운동 전까지 이어져 오던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완전히 단절시킨 것이다. 다만 상하이정부가 추구한 ‘외교독립론’은 훗날 임정이 끊임없이 갈등과 내분에 빠지는 단초가 됐다. 외교적 방법론은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적 역량을 반영한 전략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기든 지든) 일본과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고 믿는 무장투쟁론자들을 설득하진 못했다.●쑨원의 부인 추모 능원에 신규식 등 만국공묘 상하이지하철 10호선 쑹위안루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말끔하게 정돈된 공원이 있었다. ‘중화민국의 아버지’ 쑨원(1866~1925)의 두 번째 부인이자 ‘중국의 국모’로 불리는 쑹칭링(1893~1981)을 추모하는 곳이다. 공원 한쪽에 외국인 묘지를 모아 놓은 ‘만국공묘’가 나타났다. 묘비를 하나씩 더듬다가 낯선 한국인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획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계자’로 인정받는 신규식(1880~1922)이었다. 나라를 위해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불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특히 한쪽 눈을 가린 채 카이저 수염을 기른 외모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그가 초기 임정을 상하이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충북 청원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채호(1880~1936), 신석우와 함께 ‘산동삼재’(산동신씨 가문의 3대 수재)로 불렸다. 대한제국에서 군 장교로 활동하다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첫 번째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가족에게 발견돼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눈 시력을 잃었다. 지인들이 ‘애꾸눈’이라고 놀리자 신규식은 스스로를 ‘예관’(睨觀·한쪽 눈으로 흘겨봄)으로 불렀다.●신해혁명 경험삼아 민주공화정 개념 전파 1910년 8월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두 번째로 집에서 독을 마셨다. 때마침 대종교 종사 나철(1863~1916)의 눈에 띄어 다시 한 번 구조됐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이듬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중국의 공화주의 노력을 한반도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에 쑨원과 천두슈(1879~1942), 천치메이(1878~1916) 등 혁명가 그룹과 친분을 맺었다. 쑨원이 이끄는 ‘중국동맹회’(1905~1912·중국 국민당의 전신)에 가입하고 청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에도 직접 참여했다. 1912년 국내 독립운동 세력을 결집하고자 ‘동제사’를 조직했다. 총재 박은식(1859~1925)을 비롯해 김규식(1881~1950), 신채호, 조소앙(1887~1958) 등 동제사 출신은 후일 임정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다. 이들은 1917년 7월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2년 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임정이 상하이에 자리잡은 건 신규식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제안한 신석우가 바로 신규식의 조카”라며 “신규식은 자신의 신해혁명 경험을 독립지사들에게 소개해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민주공화정 개념을 설파했다”고 설명했다. 1921년 11월 쑨원이 이끄는 중국국민당이 베이징 군벌정부에 대항해 광둥에 호법정부를 세웠다. 신규식은 국무총리·외무총장 자격으로 그를 찾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국가로 승인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쑨원은 혁명동지 신규식을 극진히 예우했다. 호법정부의 정치·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그의 부탁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는 국제적으로 정식 주권기구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임정이 국민당의 후원을 받아 다소나마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됐다. ●해외서 문전박대 뒤 임정 외교독립론 도마에 1922년 대통령 이승만이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고자 워싱턴회의에 갔다가 개최국인 미국으로부터 문전박대 당해 쫓겨났다. 임정의 외교독립론이 논란이 됐다. 신규식은 이런 임정의 처지를 비관해 25일간 단식하다가 같은 해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일각에서는 그가 1921년 쑨원을 만났을 때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만세’를 외친 것을 두고 사대적 자세를 지적한다. 하지만 대의명분을 누구보다 중시하던 신규식의 평소 성격에 비춰 볼 때 그런 굴욕을 참아내며 쑨원을 대한 건 오로지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으리라. 상하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1부>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①러시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우리는 헌법 전문을 통해 우리나라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통해 해방을 맞게 됐는지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 임정은 1919년 여러 정부가 하나로 합쳐져 세워진 뒤 끝없는 갈등과 내분으로 수차례 해체 위기를 맞았다. ‘식물정부’로 전락해 명맥만 유지하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임정은 우리 역사 최초로 근대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27년간 외교 노력과 전쟁을 병행한 독립 운동의 총괄체였다. 왕족이나 정부 계승자도 아닌 이들이 민중의 뜻으로 임시정부를 세워 30년 가까이 제국주의 국가와 투쟁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에 있는 임시정부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임정의 역사와 인물, 이슈 등을 망라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을 12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 역사 탐구에는 김원봉(1898~1958년)과 김산(1905∼1938년), 조봉암(1898∼1959년) 평전을 쓴 이원규(72) 작가와 독립운동가 김연방(1881~1919년)의 증손자 김주용(53)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가 함께했다.●신한촌碑, 고려인 독립운동 중심지 일깨워 지난달 초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강추위가 몰려왔다. 서울보다 기온이 10도 가까이 낮았다. 기자를 안내한 교포2세 권세라(27) 가이드는 “그래도 여기는 연해주 다른 도시보다는 따뜻한 편”이라며 “러시아에는 ‘40도 이하 술은 술이 아니다. (영하) 40도가 안 되는 추위는 추위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며 웃었다. 공항에서 남부 루스키섬 쪽으로 50여분쯤 달리자 시내 외곽 라게르산 비탈에 도착했다. 검은색 철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에 직사각형 모양 5m짜리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놓여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묶어 놓은 태극기와 노란 리본도 눈에 들어왔다. 신한촌 기념탑이었다. 3개의 기둥은 우리 민족과 친근한 숫자인 3을 형상화한 것이다.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상징한다.1911년 러시아 당국은 페스트 창궐을 명분 삼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던 고려인 마을 구(舊)개척리를 철거했다. 한인들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한국’이라는 뜻의 신한촌을 세웠다. 1919년 3월 17일 우리 민족이 세운 첫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한때 1만명이 넘는 고려인이 여기에 살았지만 1937년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1878~1953년)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마을을 모두 파괴했다. 지금은 기념비만이 이곳이 연해주 고려인 독립운동의 구심지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3·1운동은 세계 각지에 임시정부 설립을 촉발했다. 독립선언서 첫 구절에 “이제 우리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다”고 밝히면서 여기저기서 뜻있는 이들이 주권 기관을 세워 이를 정당화하고자 한 것이다. 제대로 된 조직을 갖춘 곳은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 정부), 서울의 한성 임시정부 등 세 곳이었다.●전로한족중앙총회가 대한국민의회로 1917년 3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정부 수립을 위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300년 넘게 러시아를 지배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다.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년)은 열강의 제국주의 책동을 비난하며 “약소 민족의 자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일본이 패배하면 우리도 반제국주의 흐름에 힘입어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같은 해 5월 문창범(1870~1938년)과 최재형(1860~1920년)이 중심이 돼 니콜스크우수리스크(현 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열었다. 러시아 전역의 한인을 대표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의미다.이들은 1919년 3·1운동을 준비하면서 2월 25일 중국 간도 지역 동포들과 함께 총회를 열었다. 이때 이름을 ‘대한국민의회’로 바꾸고 연해주와 간도를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의회 의장에 문창범을 선출하고 외교부장 최재형, 군무총장 리동휘(1873~1935년) 등을 임명했다. 공식 선포는 20일쯤 뒤인 3월 17일에 이뤄졌는데, 이는 3·1운동과 궤를 맞추려는 의도였다. 대한국민의회는 ‘노서아(러시아) 영토에 있던 임시정부’라는 뜻으로 ‘노령정부’라고도 한다.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국가 기능을 한 곳에 모아 집행하는 소비에트제를 채택했다. 단시일 내에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에 나서고자 정부 조직 과정을 다수 생략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대한국민의회는 정부 선포 직후 각국 영사관에 전문을 보내 일본 제국주의와의 혈전(血戰)을 선언했다. 간도 뤄쯔거우(나자구)에 군사 훈련소도 마련했다. 신한촌 옛터에서 이원규 작가는 “전 세계 임시정부의 최종 목표는 독립 전쟁으로 영토를 되찾아 새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노령정부는 이런 임정의 본령을 구현할 최적지에 있었다”고 평했다.다만 이 정부는 상하이·한성 정부와 달리 별도의 헌법을 발표하지 않아 조직 구성이 체계적이지 못했다. 고려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유산계급인 원호인(러시아 귀화자)들이 무산계급인 여호인(미귀화자)들을 차별해 한인 사회가 둘로 쪼개지는 발단이 되기도 했다.●러·韓 어느 곳에도 최재형 추모비 하나 없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우수리스크. 발해성 등 2개의 성터가 있다고 해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쌍성자’로 부르던 곳이다. 민가가 즐비한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가자 단정히 정돈된 최재형 생가가 나타났다. 추운 날씨에도 러시아 인부들이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하느라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집은 그가 1919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살던 곳이다. 권 가이드는 “최재형을 빼놓고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이나 러시아 어느 곳에도 추모비 하나 세워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노령정부 태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을 들자면 단연 ‘연해주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최재형이 꼽힌다. 안중근(1879~1910년)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1841~1909년)를 저격할 수 있게 8연발 브라우닝식 권총을 건넨 인물이다.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1860년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였던 아버지 최형백과 기생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9살이던 1869년 가족들이 배고픔과 학정을 이기지 못하고 크라스키노(연추)의 한인마을 ‘지신허’로 이주했다. 11살 때 “밥만 축낸다”는 형수의 구박에 집을 뛰쳐나왔다가 포시에트라는 작은 항구에서 러시아 선장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최재형을 친아들처럼 보살폈다. 그는 이 부부와 전 세계를 항해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양문명을 체험했다.1877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 최재형은 군수업자로 변신해 성공을 거뒀다. 당시 이 지역 노동자 한 사람의 급여가 월 10~15루블 정도였는데, 그는 포시에트항을 근거지로 여러 사업을 벌여 매달 1만루블 이상을 벌었다. 거부가 되자 그는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고국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다. 1909년 10월 안 의사의 하얼빈역 저격을 도운 것이 대표적이다. 최재형의 막내딸인 엘리자베트 표트로브나의 회고록에는 “안중근은 아버지와 함께 거사를 준비했고 실행 전 우리 집에 기거하며 사격 연습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해주 한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페치카’(러시아식 난로)라는 애칭도 얻었다.●전 재산 독립에 쓰고… 日 헌병대에 총살당해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일본은 1920년 4월 러시아혁명 세력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에 상륙해 대대적인 체포·학살에 나섰다. 조선 독립에 전 재산을 쓰고 어렵게 살던 최재형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의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돼 4월 5일 처형됐다. 63세였다. 당시 막내딸이 아버지에게 “뒷문으로 도망가라”고 여러 차례 애원했지만 가족들이 고초를 겪을까봐 담담히 앞문으로 나갔다고 한다. 죽음을 맞으러 발걸음을 내딛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외로웠을까. 블라디보스토크·바라바시·우수리스크·크라스키노(러시아)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충주시 파격적인 쓰레기투기 신고포상금 준다

    충주시 파격적인 쓰레기투기 신고포상금 준다

    충북 충주시가 생활쓰레기 불법투기를 막기위해 새해부터 파격적인 신고포상금제도를 실시한다.31일 시에 따르면 신고포상금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 쓰레기 불법투기자에게 부과된 과태료의 80%가 포상금이다. 과태료가 50만원인 ‘차량 등 운반장비를 이용한 생활쓰레기 불법투기’ 현장을 신고하면 포상금이 40만원이다. 다른 지자체는 과태료의 10~20%정도가 포상금이다. 포상금을 받으려면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신고자가 신고일 기준 1년 이상 시에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한다. 신고내용이 중복되면 최초 신고자만 지급된다. 위반 장면이 찍힌 사진 및 동영상, 위반일시, 장소 등을 충주시 자원순환과(043-850-6911~14)로 직접 신고해야 한다. 동일한 신고자(배우자, 본인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 직계비속을 포함)에게 지급하는 포상금 합계가 월 100만원을 초과하거나 연 500만원을 넘으면 초과된 금액은 지급되지 않는다. 신고자 신상정보는 비공개로 보호된다. 시는 포상금지급을 위해 1000만원을 확보했다. 이 예산이 연말 전에 바닥나면 포상금 지급이 중단된다. 시 관계자는 “대학가 원룸촌이나 우리와 문화가 다른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생활쓰레기 불법투기가 늘어 포상금제도를 운영하게 됐다”며 “불법투기예방과 쾌적한 충주시 환경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2019년 세계는 소행성과 충돌? 푸틴과 트럼프의 운명은?

    2019년 세계는 소행성과 충돌? 푸틴과 트럼프의 운명은?

    “2019년 새해에는 미국과 아시아에 대형 지진이 닥치고, 러시아는 소행성과 충돌할 것이다. 미국·러시아 지도자들의 신변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2018년 한 해가 권력을 가진 ‘스트롱맨’들의 철권 통치가 득세하고 포퓰리즘이 몰아친 시기였다면 2019년은 세계 인류가 각종 자연 재해와 전쟁 위협의 공포 속에 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세계 유명 예언가들의 예언을 바탕으로 2019년 세계가 직면해야 할지 모르는 사건들에 대해 보도했다. 미국의 9·11 테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시각장애인 할머니 반젤리야 판데마 디미트로바는 1996년 85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 5079년까지 인류가 겪게 될 일에 대해 세세히 예언했고 2019년은 인류에게 여러 재앙이 닥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1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영적인 힘을 얻게 되면서 유명세를 탄 뒤 ‘바바 할머니’라는 뜻의 ‘바바 반가’(Baba Vanga)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익스프레스는 여태까지 바바 반가의 예언 가운데 85%가 맞아떨어졌다고 전했다.러시아 소행성 충돌 및 푸틴 암살 시도, 트럼프 청력 손실 바바 반가는 2019년에는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대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유럽에서는 경제 붕괴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러시아에는 커다란 운석(소행성)이 떨어질 것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러시아는 1908년에도 중부 시베리아에 소행성이 충돌해 나무 8000만그루가 사라지고 순록 수백마리가 몰살하는 사건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충돌의 위력은 히로시마 투하 원자폭탄의 185배로, 인간 거주 지역에 떨어졌다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뻔했다. 미국 대통령에 관한 예언도 눈길을 끈다. 바바 반가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이 의문의 병으로 쓰러져 청력을 손실할 것이며, 그의 가족 중 한 명이 교통사고 등으로 크게 다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밖에 ‘불의 고리’로 알려진 미국 서부 지역에 강진과 쓰나미와 같은 대형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바바 반가가 남긴 수많은 예언 가운데 “미국에 두 마리 강철 새의 공격이 찾아올 것”이라며 9.11 사태를 지칭한 예언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2010년부터 무슬림의 세력이 강해져 유럽을 장악할 것”이라며 이슬람 무장 단체의 테러를 예언하기도 했다. 이밖에 2043년에 무슬림이 전 유럽을 지배하게 되고 5079년에는 인류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남겼다.3차 대전 및 기후 변화 가능성도 16세기 프랑스 유명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년)가 2019년에 대해 예언한 글에도 유사한 점이 발견돼 주목된다. 익스프레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3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소행성 충돌, 기후 변화를 예견했다고 전했다.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노스트라다무스는 “두번은 일어서고, 두번은 넘어질 것이다. 동양은 서양을 약화시킬 것이다. 몇 번의 전투 끝에 적수는 어려운 시기에 실패할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는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추종자들은 이 예언을 미국과 러시아간 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3차 대전의 죽음과 공포가 지구를 파괴한 뒤 인류는 소행성의 충돌에 직면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밖에 그는 “수면이 올라오고 육지는 가라앉게 될 것이다”고 말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표면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르트라다무스는 1666년의 런던 대화재,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의 등장, 20세기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등을 예견해 유럽에서 예언가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서부 지진 및 영국 ‘노딜 브렉시트’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예측해 유명해진 영국의 크레이그 해밀턴 파커(63)도 중동에서의 전쟁, 트럼프 대통령의 신변 위협, 자연 재해,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 등이 2019년에 발생할 일이라고 예언했다. 파커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시도를 겪어도 결국 탄핵 당하지는 않겠지만 2019년에 질병을 앓게 될 것”이라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도 고조되겠지만 실제 전쟁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땅에서 상당한 지층 운동이 벌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해 지진이 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밖에 파커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의회를 설득해 브렉시트 합의문을 비준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결국 영국이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내년 3월 29일 EU를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커는 “결국 메이 총리는 내년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지난해 중대 산업재해 발생한 사업장 1400곳 명단 공개

    지난해 중대 산업재해 발생한 사업장 1400곳 명단 공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중대 산업재해와 근로자 사망사고 등이 발생한 기업 등 ‘산재 불량 사업장’ 1400곳의 명단을 28일 공개했다. 업종별로 건설업이 784곳(56%)으로 가장 많았다.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해마다 산재 불량 사업장의 명단을 공개한다. 산재에 대한 경각심과 재해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2004년부터 사업장 명단을 공개해 지금껏 3911곳이 공표됐다. 올해 명단 규모는 지난해(748곳)보다 2배 정도다. 규모별로는 100인 미만 사업장이 1210곳(86%)으로 대부분이었다. 100~299인(103곳), 300~499(27곳) 순이었다. 대부분 중·소규모 사업장이었다. 공개된 기업 전체 명단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용부는“올해 공표된 사업장 중에서 재발방지 교육이 필요한 최고경영자(CEO)에 대해선 지방청별로 4시간 이상 안전보건교육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암 걸려도 절반 이상 5년 넘게 산다

    암 걸려도 절반 이상 5년 넘게 산다

    남녀 통틀어 위암·대장암·갑상선암順과거 암은 ‘불치병’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암에 걸리더라도 3명 중 2명 이상이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대수명까지 생존한 사람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27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2016년 국가암등록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발생한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6%였다. ‘상대생존율’은 일반인과 비교해 암환자가 5년간 생존할 확률을 의미한다. 암환자 5년 생존율은 2014년 70.3%로 처음 70%선을 넘어섰다. 의술 발달로 1993~1995년 41.2%, 2001~2005년 54.0%로 5년 생존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암 종별 생존율은 갑상선암이 100.2%로 가장 높았고 전립선암(93.9%), 유방암(92.7%)도 비교적 높았다. 간암(34.3%), 폐암(27.6%), 췌장암(11.0%) 등은 상대적으로 생존율이 낮았다. 암 발생 통계를 처음 내놓은 1999년부터 2016년까지 암 진단을 받은 ‘암 유병자’는 173만 9951명이었다. 국민 29명 중 1명 꼴이다. 암 진단 후 5년 넘게 생존한 암환자는 91만 6880명으로 전체 암 유병자의 절반 이상(52.7%)을 차지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국민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때 암에 걸릴 확률은 36.2%였다. 2016년 새로 발생한 암환자는 22만 9180명으로 전년보다 5.8% 증가했다. 남자 12만 68명, 여자 10만 9112명이다. 남녀 통틀어 가장 많이 발생안 암은 ‘위암’이었다. 이어 대장암, 갑상선암, 폐암, 유방암 순이었다. 남자는 위암, 폐암, 대장암, 전립선암, 간암 순으로 환자가 많았다. 2015년과 비교해 전립선암은 간암을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여자는 11년간 1위였던 갑상선암이 2위로 하락하고 유방암이 1위로 올라섰다. 과잉진단 논란이 일면서 갑상선암 환자가 많이 줄었다. 다음은 대장암, 위암, 폐암, 간암 순이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인촌로→고려대로’ 성북, 일제 잔재 거리명 지운다

    ‘인촌로→고려대로’ 성북, 일제 잔재 거리명 지운다

    서울 성북구 ‘인촌로’가 ‘고려대로’로 바뀐다. 성북구는 지난달 15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실시한 ‘도로명 변경 서면동의’에서 인촌로 주소 사용자 9118명 중 5302명(58%)이 고려대로로 바꾸는 데 동의했다고 19일 밝혔다. 구는 지난 2월 항일독립지사선양단체, 고려대 총학생회와 인촌로 변경 논의를 착수했고, 8월엔 인촌로 직권 변경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설명회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고대병원~안암역~고대앞사거리 구간(약 1.2㎞)으로, 도로명판 107개와 건물번호판 1519개에 사용된다. 구는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을 교체하고, 공적장부의 도로명 주소 전환 작업도 최대한 빨리할 계획이다. 인촌 김성수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인물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성북동 심우장으로 옮겨온 후 그를 따르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성북구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쳐 온 만큼 인촌로 변경은 당연한 노력”이라며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을 앞두고 바른 역사 세우기에 동참해 주신 구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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