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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와 길] 개화기 유적 20곳 단장…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

    1900년대 초 벽안의 선교사들이 오갔던 ‘외국인 촌’. 광주 남구 양림산 자락 일대가 부활의 나래를 폈다. 조만간 국제 교류의 새로운 무대로 거듭난다. 제중로·서양길·양천길 등 주변이 모두 포함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7~2023년 모두 5조 3000억원을 들여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조성한다. 시내를 7개 권역별로 나눈 도심 리모델링도 추진된다. 7개 권역 중 양림동 일대는 ‘아시아문화 교류권’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310억원을 들여 양림동과 맞닿은 사직공원에 창작·기획인, 인권운동가 체류활동지원센터를 짓는다. 또 아시아 예술촌과 공방거리, 아시아 음악타운 등을 조성한다. 이와는 별도로 서양길·제중로·양천길 주변 등이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된다. 광주시는 최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문화마을 착공식을 가졌다. 2013년까지 모두 307억원을 들여 이 일대에 산재한 개화기 선교 유적 등 근대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새롭게 단장한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 보육 장소였던 ‘우일선 선교사 사택’(1910년대 건립)과 1909년 숨진 오웬 기념관, 네덜란드 건축양식의 수피아여고홀(1911년 건립), 선교사 묘역 등 20여 곳의 근대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웬은 1898년 한국에 들어와 목포 등 전남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다가 폐렴으로 숨졌다. 선교사 묘지에 묻힌 최초의 외국인이다. 양림교회 앞에는 최근 일제강점기 농촌운동가 GW 에비슨(1891∼1967)의 동상과 기념관이 세워졌다. 이들 유적은 모두 보행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주변의 생태 복원도 추진된다. 2014년 인근에 세워질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해 아시아문화 교류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서양 문물의 최초 도래지가 또다시 외국인을 향해 문을 활짝 열 태세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동행(KBS1 오후 11시30분)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아내 대신 엄마 역할까지 하느라 쉴 틈이 없는 병수씨. 하지만 그 역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간암 말기 환자다. 그런 병수씨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인 가족을 병수씨는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다.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날씨 예보의 역사 김동완. 최근 세계 기상의 날 국민훈장을 받은 감회, 옛날과 지금의 기상예보 적중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롯해 날씨라는 낯선 분야에 도전하기까지의 사연, 기상청 직원으로 시작한 날씨 인생을 엿본다. 가장 힘들었던 일기예보와 특별한 날 곤욕을 치른 기상예보 등에 얽힌 얘기도 들어본다. ●늘 푸른 인생(MBC 오후 5시45분) 당도가 높고 아삭한 맛이 일품인 사과는 물론 고소한 들깨와 담백하고 쫄깃한 옥수수를 맛볼 수 있는 곳,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입석2리를 찾아간다. 꽁한 성격의 남편이 하도 답답해 술을 배웠다는 아내. 50대에 뒤늦게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김명현·장인자씨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등을 들어 본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일을 할 때도, 마트를 갈 때도, 운전을 할 때도 통굽을 신는다. 기본 15㎝ 이상의 통굽만을 고집하는 선미씨를 만나 본다. 소금 한 주먹을 먹어도 짠맛을 모른다는 11살 동주의 소금 사랑도 들어 본다. 정확히 1900년생 111세 장수 할머니, 뭐든지 생각만 하면 뚝딱 만들어 내는 맥가이버 종수씨 얘기도 있다.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호주 본섬과 다른 자연환경을 가진 태즈매니아. 그 태즈매니아의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간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삶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태즈매니아의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태즈매니안들만의 사는 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살라망카 시장을 찾아가 본다. ●꿈꾸는 U(OBS 오후 6시55분) 요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자신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팝아티스트 겸 방송인 낸시랭이 MC로 합류한다. 평소 영화광이라고 밝힌 낸시랭은 시청자가 만드는 단편 영상물(극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실험영상 등)을 소개하며 해박한 지식과 자신만의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낼 예정이다.
  • [씨줄날줄]명동성당/김성호 논설위원

    한국천주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서울 남산자락의 명동성당(사적 제258호). 1898년 그 자리에 세워진 뒤 몇 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1900년 이전 세워진 건물 중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건물. 건축면적만 1412.12㎡, 연면적 2025.42㎡, 외곽길이 68.25m, 높이 23.48m의 위용이다. 가장 순수한 고딕 성당으로, 지금의 이름이 불리게 된 것은 광복 이후부터. 옛 지명을 딴 종현(鐘峴)성당의 이름이 컸고 높은 언덕에 우뚝 섰다 해서 오래도록 ‘언덕 위의 뾰족집’으로 불렸었다. 성당이 그 자리에 선 것은 인근 명례방(명동부근 수표교 옆)에 있던 최초의 신앙공동체 때문이다.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이 청나라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해 명례방서 비밀리에 세례를 베푼 것을 시작으로 천주교의 신앙집회는 번졌다. 이승훈의 영향으로 집회를 이어가던 역관 김범우는 고문으로 첫 순교자가 됐고 이후 한국천주교는 1만∼2만명의 순교자를 내기에 이른다. ‘박해의 역사’라 불리는 한국천주교사에서 뺄 수 없는 굵은 선이 명례방이요, 그 자리에 선 명동성당인 것이다. 민주화운동이 거셀 무렵 시위의 공간과 도피처로 각광받던 것도 우연은 아닐 듯싶다. 건립 터 못지않게 성당 건립엔 숱한 우여곡절이 얽혀있다. 쇄국의 조선 땅에서 천주교 전파를 막기 위한 조정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각국 천주교가 하느님을 우러른다는 앙천(仰天)의 공간으로 높은 언덕에 교회를 세우던 때이니 성당 건립은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성당 터가 왕궁을 내려다보고 있고 임금들의 영정을 모신 영희전의 주산맥이었으니 조정의 반대와 미움이 오죽했을까. 1887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비준돼 언덕을 깎는 정지작업이 시작됐고 부지 소유권 분쟁으로 기공식은 그 후 5년 뒤에야 있었다. 기공식 후 건립까지 무려 6년이 걸렸고 사상자가 속출해 공사가 숱하게 중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픔과 희생의 점철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명동성당 본당 주변에 지상 9층과 13층짜리 빌딩 2개 동과 함께 지하 4층 규모의 주차장을 건설한다고 한다. 좁은 공간 문제 해소와 주변 정비차원에서 추진하는 대공사에 문화재 훼손의 우려가 쏟아진다. 고층 건물을 짓는 공사가 지반에 영향을 미쳐 본당을 훼손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서울대교구는 무진동 공법 등을 통하면 새 건물 건립에 문제가 없다는 강변. 서울대교구의 형편도 이해는 하지만, 한국천주교의 심장에 이상은 없어야 할 텐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19세기에 출판돼 20세기 대표 사상서 된 사연

    19세기에 출판돼 20세기 대표 사상서 된 사연

    ‘꿈의 해석’의 출판연도는 1900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출판된 것은 1899년 10월이고 서점에 진열된 것은 11월4일이다. 새로 시작되는 세기에 맞추려는 흥행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출판업자의 이 거짓에는 예언적인 진실이 있다. 정신분석학의 신호탄인 ‘꿈의 해석’은 니체와 마르크스의 책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서가 되었다. 출판 후 몇 년 동안 ‘꿈의 해석’은 언론과 학계의 침묵 속에 내팽개쳐졌다. 그나마 입을 연 몇몇 학자들은 프로이트가 미신과 과학,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이성을 혼동했다고 혹평했다. 고대 해몽술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은 주관적인 해석일 뿐 과학적인 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프로이트 자신이 꾼 꿈에 대한 해석이고 꿈 해석의 대상도 수면 중의 꿈 자체가 아니라 깨고 난 이후 망각과 왜곡으로 ‘오염된’ 기억내용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분석 결과에 대한 사실 검증이 없다는 점에서 ‘꿈의 해석’은 과학서라기보다는 문학서에 가깝다. 프랑스어판은 책 제목을 ‘꿈의 과학(La Science des rves)’으로 달면서 정신분석학의 과학적 타당성을 인정해 주었지만, 오히려 프로이트 자신의 입장은 과학적 진실이야말로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공인된 해석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해석 대상의 왜곡 가능성에 대해 오히려 그런 거짓 속에서 무의식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단지 ‘게임’일 뿐인 진실게임을 통해 진실을 말하거나 ‘농담’의 포장지로 싸서 사랑을 고백하는 경우처럼, 인간은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특이한 존재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프로이트를 찾은 여자 동성애자가 있었는데, 얼마 후 그녀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욕망을 담은 꿈을 꾸었다. 프로이트는 그녀의 꿈이 프로이트 자신을 속여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속임수임을 간파했다. 그러나 이런 거짓된 욕망의 꿈은 무의식 속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매혹된 프로이트를 자기 아버지와 동일화시키고 있으며 그녀의 동성애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이성애적 욕망에 대한 도전 행위라는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꿈의 해석’은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日셰익스피어’ 나쓰메 소세키는

    [고전 톡톡 다시 읽기] ‘日셰익스피어’ 나쓰메 소세키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려졌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소세키(漱石)는 ‘진서(晋書)’에서 따온 필명이다. 진나라 손초가 침석수류(枕石漱流), 즉 돌을 베개 삼고 시냇물로 양치질한다고 말해야 할 것을 침류수석(枕流漱石), 시냇물로 베개를 삼고 돌로 양치질한다고 잘못 말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아무리 틀렸다고 해도 손초는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 것은 귀를 씻기 위함이고, 돌로 입을 헹구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함이라고 우겼다고 한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자기 고집을 밀고 나간다는 것이 소세키의 뜻인 셈이다. 그 이름처럼 소세키는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첫 소설을 쓴다. 이후 제국대학(지금의 도쿄대학)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신문사 전속 작가로 12년 동안 13편의 장편소설과 수십 편의 중·단편 소설을 쓰다 49세에 절명한다. 일본의 셰익스피어, 국민작가라는 별칭은 몇몇 호사가들의 칭찬만은 아니다. 그는 1900년 서른셋의 나이에 국비유학생으로 영국에 갔던 인재였고, 1909년에는 당대 손꼽히는 잡지 ‘태양’의 작가 투표에서 1등을 차지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 명성은 사후까지도 계속 이어져, 1984년부터 2004년 가을까지 20년 가까이 1000엔짜리 일본 지폐에 그의 초상이 새겨져있었다. 지금까지도 교과서를 비롯해 각종 여론조사, 인기투표, 판매량 등등에서 늘 손꼽히는 작가이다. 이런 소세키의 인기는 가장 국민다운, 가장 일본다운 대표 작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국민을 만들고, 국민과 비국민을 가르는 20세기 국가주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작가다. 소세키는 ‘개성’을 내세운 인물들을 통해 돌로 입을 헹구다 모든 이빨이 와장창 나갈지언정 멈추지 않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의 작품은 소소한 일상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기존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 주고, 독자들에게 삶을 재창조하는 힘을 불어 넣어준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는 국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국민’ 작가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한채영·이병헌,구한말 화려한 패션 ‘눈길’

    한채영·이병헌,구한말 화려한 패션 ‘눈길’

    배우 한채영과 이병헌이 20세기 초 구한말의 귀족으로 변신해 화려한 패션을 선보였다. 디지털 블록버스터 영화 ‘인플루언스’(감독 이재규·제작 윈저엔터테인먼트)는 18일 주인공 한채영과 이병헌의 화려한 패션을 담은 스틸이미지를 공개했다. 두 사람은 섬세한 고전미와 우아한 서양 스타일이 공존했던 개화기의 의상을 입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변신했다. 먼저 한채영은 1900년대의 신여성으로 분해 ‘바비인형’이란 별칭에 어울리는 화사한 자태를 드러냈다. 화려한 레이스 드레스와 붉은 벨벳 재킷을 매치한 한채영은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고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또 깃털 장식의 실크햇과 양산, 레이스 장갑 등 디테일한 소품들은 조선 말기의 시대상황을 반영함과 동시에 신비로운 여인 제이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극중 한채영의 연인으로 분한 이병헌은 단정한 블랙 수트 차림의 W와 조선의 마지막 황족 이설, 다이아몬드 쥬빌리를 파괴하려는 악인까지 1인 3역을 소화했다. 이중 구한말의 한채영과 함께 패션 감각을 뽐낸 이설 역의 이병헌은 쓰리 피스 수트에 다양한 넥타이와 행커치프를 매치해 황족의 특유의 낭만적인 패션 감각을 자랑했다. 또 이병헌은 중절모를 쓰고 콧수염을 연출하는 등 자주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을 시도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한편 지난 3일부터 공식 홈페이지(www.the-djc.com)을 통해 첫 번째 에피소드 ‘두 번째 시작’을 공개한 ‘인플루언스’는 오는 22일부터 영화의 또 다른 에피소드를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 윈저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전쟁의 슬픔 넘어 해외로 퍼진 아리랑을 아시나요”

    “전쟁의 슬픔 넘어 해외로 퍼진 아리랑을 아시나요”

    “전쟁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아리랑이란 이름을 달고 해외에 퍼져 나가게 된 스카프, 손수건, 라이터, 엽서, 사진, 음반 등 아주 특별한 실물 희귀자료들을 공개하고 같이 추억해 보자는 것이지요.” 정선아리랑연구로 잘 알려진 진용선(47·민속학자)씨는 강원도 정선에서 ‘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을 5년전에 개관해 ‘딱지의 추억’, ‘노래책으로 보는 세상’, ‘아리랑, 일본에 스며들다’, ‘삐라의 추억’ 등 이색전시로 전국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삐라의 추억’은 5년 전 처음 전시할 때 뉴욕타임스에 크게 실렸고 일본 언론에도 소개됐다. ●아리랑 스카프·엽서 등 희귀자료 공개 올해에는 어떤 ‘관심거리’를 준비하고 있을까. 먼저 6·25 60주년을 맞아 ‘6·25전쟁, 아리랑의 기억’이란 특별전을 마련한다. 앞서 그가 언급한 대로 아리랑과 관계된 스카프 등 100여점의 실물자료들을 한데 모아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하는 것. 그는 “6·25를 전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민요가 해외에 알려지는 광폭적인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7∼8월에는 19세기 말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초창기 고려인의 모습을 담은 1900년대 초반의 엽서와 당시 원본 사진을 대거 선보이는 엽서전 ‘러시아 땅의 조선인’을 개최한다. 이 전시가 끝나면 가치 있는 자료들을 모아 러시아와 일본 등 해외에서도 전시하는 네트워크를 추진할 예정이다. 현재 이들 국가에서 전시제의가 들어오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11월에는 일제 강점기 한강과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에서 목재를 실어 나르던 옛 뗏목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한국의 뗏목 엽서전’을 준비한다. 아울러 지난 20년간 신문 광고지인 ‘찌라시’를 통해 탄광촌에서 폐광촌으로 전락한 신동읍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찌라시로 보는 신동읍 역사’도 마련할 예정이다. ●“코끝 찡한 향수 속으로 안내” 평소 진씨는 큰 박물관과는 다른 이색적인 주제와 내용의 전시를 통해 작은 박물관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방점을 찍고 꾸준히 노력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어려서부터 각별한 호기심으로 우표나 상표, 장난감과 딱지, 음반, 책 등을 부지런히 모아온 것이 오늘날 귀중한 자료가 됐다. 그는 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에 대해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추억의 자료를 통해 코끝이 찡한 향수 속으로 안내하고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면서 “옛 물건의 가치와 의미를 통해 어느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문 부국장 km@seoul.co.kr
  • [칠레 강진] 역대 7번째 규모 단층 402㎞ 파괴

    [칠레 강진] 역대 7번째 규모 단층 402㎞ 파괴

    칠레를 강타한 규모 8.8의 강진은 ‘메가트러스트(megathrust)’ 지진으로, 2004년 23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인도네시아 슈마트라 강진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트러스트는 한 개의 지진판이 다른 지진판 아래로 들어갈 때 발생하는 지진으로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꼽힌다. 28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지질학자인 폴 카루소는 칠레에 발생한 지진이 50기가톤의 에너지를 발생시켰으며, 250마일(약 402㎞)의 단층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번 지진을 지난달 발생한 규모 7.0의 아이티 지진에 비해 500배 강한 위력을 지녔다고 평가한 반면 CNN은 규모 8.8의 칠레 지진을 규모 9.0으로 볼 경우 그 위력은 아이티 지진의 1000배에 육박한다고 전했다. 또 이번 지진이 동반한 쓰나미로 칠레 해안에서 700㎞ 떨어진 로빈슨크루소섬에서는 5명 이상이 사망하고 2m 이상의 쓰나미가 칠레 연안 11개 도시를 덮치는 등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하와이와 뉴질랜드 해안에서는 각각 2.1m, 1.5m의 쓰나미가 발생했다. 일본은 태평양 연안에 대형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이번 지진은 1900년대 이래 다섯 번째 큰 지진으로 기록된 지난 1906년 에콰도르 지진과 같은 규모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캐나다 마지막 1차대전 참전용사 사망

    캐나다 마지막 1차대전 참전용사 사망

    캐나다의 마지막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알려진 존 뱁콕이 숨을 거뒀다. 뱁콕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의 스포케인시의 자신의 집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올해 나이는 109세였다.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는 성명을 통해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65만 명의 캐나다인이 모두 떠나갔다.”면서 “그의 사망으로 우리의 독립을 세계에 선포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를 전 세계에 과시했던 한 세대가 끝났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뱁콕은 1900년 7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가 13살이 되던 1914년 유럽에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2년 뒤인 1916년에 그는 나이를 18살이라 속이고 군에 입대했고 몇 달 뒤 영국으로 파견됐다. 하지만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진 않았다. 그가 나이를 속인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뱁콕은 1917년 8월 소년병들로 편성된 부대로 전출됐다. 이 부대에 소속된 1300명 정도의 소년병들은 이곳에서 훈련을 받다 성인이 되면 전선으로 투입된다. 그러나 뱁콕은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그가 19살이 되던 해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뱁콕은 미군에 입대해 시민권을 얻은 뒤 작은 공장을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뱁콕의 사망으로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는 미국인과 영국출신 호주인, 영국인 등 단 세 명이 남았다. 사진 = AP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돌아온 하얄리야에 명품공원 조성

    돌아온 하얄리야에 명품공원 조성

    100여년만에 부산시민품으로 돌아온 부산 하얄리야 부지에 세계적 수준의 명품 공원이 조성된다. 부산시는 지난 1월 한·미간의 협상타결로 반환된 부산진구 하얄리야 부지에 들어설 (가칭)부산시민공원(조감도) 조성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시관계자는 “부지 오염 정화 사업및 지장물 철거등 일부 절차가 완료되면 오는 12월 시민공원 조성 공사에 들어가 2015년 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하얄리야부지 반환을 앞두고 2007년 국제공모를 통해 공원 조성 기본구상(안)을 마련했다. 당시 세계 유명 도시 조경전문가 5명으로부터 제안서를 받았으며, 미국의 제임스코너 씨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혔다. 이 기본구상 안에 따르면 시민공원의 5대 조성 목표는 ▲세계도시 부산을 향한 공원 ▲미래를 향한 공원 ▲모두를 위한 공원 ▲문화가 있는 공원 ▲도심 재생성을 촉진하는 공원이다. 시민 공원의 주제는 ‘얼루비움’(충적지·흐름과 쌓임을 상징화)으로 비옥한 새 기운이 흐르고 쌓이는 21세기 부산의 새로운 도시공원임을 표방하고 있다. 시민공원부지 52만 8278㎡ 중 69.7%는 녹지공간으로 만들고 나머지 부지에는 조경과 공원안내시설물 등이 들어선다.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를 테마로 하는 5개의 숲길이 조성된다. 지상의 시설물을 최소화하는 대신 공원 지하에 주차장과 편의시설 등을 설치한다. 숲길은 각각 폭 40m의 곡선형으로 조성되며 ‘기억의 숲길’에는 1900년부터 하얄리야부대가 폐쇄된 2006년까지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구분해 부산의 역사적인 사건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진다. 특히 2006년을 형상화한 중앙 부분에는 ‘기억의 벽’이 세워지며 나머지 구간은 후손들이 10년 단위로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둔다. 일본강점기 때 지어진 마권발매소(현 장교식당)는 리모델링해 역사 전시관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문화의 숲길’에는 다양한 문화공연이 펼쳐지는 문화마당이 조성되며 여기에서는 시낭송회 거리음악회 등과 같은 즉흥 거리공연이 벌어진다. ‘즐거움의 숲길’에는 시민들이 아침 운동 등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다목적 잔디 광장과 놀이마당 등이 들어선다. ‘자연의 숲길’에는 다양한 수목과 화초류 등을 심어 계절의 변화를 즐기면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참여의 숲길’은 시민들이 직접 꽃 등을 심고 가꾸는 터로 시민들에게 주인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공간이다. 참여정원의 화단은 매년 추첨을 통해 원하는 시민에게 분양된다. 시는 또 방범과 노점상, 미아 관리 등이 가능한 시민공원 정보통신 인프라구축 서비스도 개발해 공원 조성계획에 반영하는 등 앞으로도 시민단체, 전문가 등의 조언을 받아 구상 안을 수정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시민공원 조성에는 6010억원(부지매입비 4875억원, 공원조성비 1135억 원)이 투입되며 201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부지매입비의 3분의2를 부담하며, 시는 오는 6월쯤 국방부와 정식 매매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시는 지난해 487억원을 들여 하얄리야 부지 일부를 샀으며, 올해도 1410억원(국비 940억원, 시비 470억원)을 들여 2차로 부지 매입을 할 예정이다. 시는 나머지 부지 매입대금은 2015년까지 분할 상환할 계획이다. 부산시 김종철 원도심권 개발팀장은 “올해 상반기 중 부지 이전을 마치고 올 연말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얄리야 부지는 1910년부터 일제 강점기 동안 경마장과 군사 훈련장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는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 등 미군기지로 사용됐으며 2006년 8월 부대가 폐쇄됐다. 2004년 12월 한미 양국 간에 체결한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에 관한 개정 협정에 의해 2006년까지 우리 정부가 반환받기로 했으나, 환경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부지 반환이 지연됐다가 한·미 간 협상 절차를 거쳐 지난달 14일 마침내 우리 정부로 반환됐다. 하얄리야부지는 지난달 27일 부지 관리권이 시로 이관됨에 따라 현재 문화재 지표조사와 각종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 작업 등을 하고 있으며 이르면 4월쯤 부지 일부가 시민에게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100여년 만에 시민 품에 돌아온 이곳에다 세계 일류 공원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명품공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굿모닝 닥터] 주는 기쁨 의료봉사

    110여개의 의료품 상자와 함께 의사, 약사, 간호사 등 9명의 세브란스 의료봉사단이 지난달 21일 아이티로 출발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1억원이 넘는 의료품과 인력은 재앙의 그늘에 비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규모 7.0의 강진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전기는 물론 수도시설도 모두 붕괴됐다. 병원이라고 온전할 리 없었다.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폐허 자체였다. 봉사단이 가져간 물품도, 인력도 이들을 감싸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봉사단의 노력은 작지만 위대했다. 봉사단은 할 수 있는 모든 의료적이며, 인간적인 노력을 쏟았다. 봉사단은 수술실 한칸 없는 곳에서 무더위와 벌레, 환자, 그리고 자신과 싸웠다. 극악하고 처절했지만 뜨거운 나날이었다. 현지에서 우리 봉사단은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 다른 나라 의료진들도 우리의 능력을 인정해 나중에는 진료 범위를 넓혀야 했다. 봉사단이 철수할 때는 현지인들이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을 치료하기 위해 설립된 광혜원(제중원)의 모습이 연상된다. 의료선교사 알렌이 1884년 제물포에 도착해 명성황후의 조카였던 민영익을 치료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이자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광혜원을 세웠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조선의 백성을 보듬기 위해 선진문물인 서양의학을 소개했고, 후진양성을 위해 세브란스의전을 설립했다. 그 후 126년이 지난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강국은 그렇게 태동했다. 과거 의료선교사들이 그랬듯 지금 세브란스 후예들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1900년, 세브란스병원 설립을 위해 거금 1만달러를 기부한 루이스 세브란스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번 아이티 의료봉사단장인 김동수 교수도 의료봉사를 통해 주는 기쁨을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도 이제는 주는 기쁨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금기창 연세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 [도시와 길] 서울 종로

    [도시와 길] 서울 종로

    ‘길에서 길을 묻는다.’는 말이 있다. ‘길’은 단순히 차와 사람이 오고 가는 통로라는 사전적 의미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고, 그 길을 중심으로 집과 건물이 생기며 또 그곳에서 도시와 문화가 생긴다. 그래서 길은 도시나 나라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한다. 유행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있다. 서울신문은 ‘신년기획’으로 매주 월요일자에 ‘도시와 길’을 연재한다. ‘도시와 길’은 한국의 도시와 그 도시를 대표하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부침을 겪었는지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는다. ‘종로로 갈까요~.’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 말 그대로 ‘1번지 길’이다. 매년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수만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의 강추위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모두가 외치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되는 보신각종의 서른 세 번 울림.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도 지켜보는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시작. 1953년 이래 오늘날까지 ‘종로(鐘路)’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한 해를 시작하는 거리다. ●서민들 삶의 터전… 추억이 고스란히 종로는 서울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길’을 떠올릴 때 감히 비교할 만한 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에서 이름에 유일하게 길을 담은 곳도 종로구뿐이다. 구로구가 있지만 구로(九老)는 길이 아닌 아홉 명의 노인이 장수한 곳이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세종로 138번지 세종로사거리에서 종로6가 78번지 동대문에 이르는 너비 40m, 길이 2.8㎞의 왕복 8차선길인 종로는 수백 년 전부터 언제나 번화가였고, 지금도 그렇다. 세종로 사거리에 자리 잡은 교보문고의 철마다 바뀌는 초대형 간판은 버스를 기다리거나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종각에서 인사동 초입, 종로3가부터 시작되는 귀금속 거리와 종로5가의 약국거리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추억이 담겨 있다. 종로3가에서 귀금속점을 운영하는 우정호(60)씨는 “이곳에서 두 아들을 키워서 장가를 보냈다.”면서 “종로는 나에게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종로에 살거나 종로를 즐겨 찾는 사람들도 종로를 생각하는 의미는 특별하다. 종로 토박이로 살아온 김학수(85) 할아버지는 “처음 기억하는 종로와 지금의 종로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서울의 중심이자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점은 여전하다.”고 술회했다.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종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종로의 어학원 앞에서 만난 김호연(25·여)씨는 “다른 번화가들은 유행에 따라 모습을 바꾸지만 종로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만날 때 먼저 떠올리게 되는 곳”이라며 “항상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져 아무리 번화한 밤에도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고 전했다. 또한 탑골공원의 어르신들 모습을 얼른 떠올리기만 해도 종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편안하게 찾는 곳이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상점과 간판이 바뀌고, 건물의 높낮이는 달라졌지만 종로는 그 자체로 역사다. 종로라는 이름은 지금의 종로사거리에 종을 매단 종루(鐘樓)가 세워져 있던 것에서 비롯됐다. 종가(鐘街), 종루가(鐘樓街), 종루십자가(鐘樓十字街)라는 이름도 모두 같은 연유다. 태종 때 시전행랑(오늘날의 상가)이 종로사거리에서 동대문까지 들어선 후 조선 후기로 오면서 상점과 노점들이 길을 잠식하면서 도로폭이 오히려 줄어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조선말 대한제국 시기에 종로는 ‘최첨단’, ‘신문물’의 거리였다. 1899년 5월에는 전차가 개통됐고, 1900년 4월에는 종로사거리에 처음으로 전기 가로등 3개가 밝혀졌다. 당시 조선을 찾은 러시아인 파츨라프 세로셰프스키는 ‘코레야 1903년 가을’이라는 기록에서 “종로에는 서울에서 가장 좋은 상점과 가게, 시장들이 있다.”고 적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은 종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21년부터 일제는 종로를 동대문에서 경희궁 앞까지, 폭을 28m로 좁게 줄였다. 일제가 조선인 상가가 밀집돼 있던 종로를 의도적으로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종로의 번영은 멈추지 않았다. 1931년 종로사거리 북동쪽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들어섰고 1932년에는 동아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이를 중심으로 우리 상인들은 지금의 충무로인 ‘혼마치(本)’의 일본인 거리와 각축을 벌이며 상권을 지켜 나갔다. 3·1만세시위운동의 출발과 중심도 종로였고,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선 우리 민족의 경제자립운동인 조선물산장려운동의 거점도 종로였다. ●‘도심재창조’… 변화의 갈림길에 선 종로 광복 후에도 화신백화점, 신신백화점, 배오개시장의 맥을 이은 광장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세운상가는 종로 상업의 번영을 상징했고 피맛골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다. 그러나 1980~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이 급격히 커지자 종로는 번화가의 기능을 다른 곳에 나눠주고 있다. 젊은이들은 백양로로 대표되는 신촌과 대학로를 찾기 시작했고, 유흥가는 강남대로와 영등포로 옮겨 갔다. 오래된 건물과 노점은 서민의 정취를 담는 데 그쳤을 뿐 더 이상 유행을 만들지도 못했고,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다. 피맛골도 세운상가, 청진동 해장국 골목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가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과 간판들이 들어섰고, 오랜 세월 종로를 기억해 온 사람들의 ‘개발을 명목으로 역사를 지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신 서울시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도심재창조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세운상가 주변을 재정비해 창경궁~종묘~세운상가~퇴계로~남산을 잇는 대규모 녹지축을 조성하고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목표다. 종로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변화의 중심인 셈이다. 몇 권의 책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600년의 세월, 길 자체가 서울시민의 역사인 종로가 앞으로 또 다른 600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000년 된 마야문명 석관 멕시코서 발견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州)에서 10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는 마야문명 석관이 발견됐다. 멕시코 현지 언론은 “마야문명이 사라진 이유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고고학계는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관은 옛 마야도시 토니나 유적지에서 발견됐다. 석관은 길이 2m, 폭 70cm, 폭 60cm다. 크기와 중요성에선 지난 1994년 치아파스 팔렌케에서 발견된 ‘붉은 여왕’의 무덤에 견줄 만한 것이라고 멕시코 고고학계는 밝혔다. 특히 주목되는 건 시기다. 석관은 주후(主後) 840년 전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야문명이 토니나에 마지막으로 남긴 조각상이나 돌 등에 새겨넣은 기록과 때가 일치한다. 토니나 마야유적지 관리 책임자는 “주후 840년 이후의 유적은 발견된 게 없다.”면서 “마야도시가 갑자기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 석관이 연구에 단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토니나가 쇠퇴한 이유가 외부세력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마야도시 내부 진통이 있었기 때문인지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관에선 유골과 항아리 모양의 용기가 발견됐다. 두개골 아래로 뼈가 십자가 모양으로 놓여져 있었다. 관계자는 “유골이 아이나 여자의 것으로 보인다.”면서 “상당히 신분이 높았던 사람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마야문명은 멕시코 남동부, 과테말라 등지에서 번영했던 고대문명이다. 주후 300-900년 황금기를 보낸 후 쇠퇴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佛연구팀 “7000년 전에도 외과수술 했다”

    佛연구팀 “7000년 전에도 외과수술 했다”

    신석기시대인 7천년 전에도 외과수술이 시행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A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의 남쪽에 있는 센에마른현에서 기원전 4900년~4700년 전 왼쪽 팔 절단 수술을 받은 남성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를 조사한 프랑스 국립 예방고고학연구소(INRAP)는 “이번에 발견한 성인 남성의 유골은 왼쪽 팔꿈치가 관절 위에서 아래로 절단됐고, 아래쪽 팔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엑스레이 분석 결과 이 남성은 동물로부터 공격을 받았거나 싸우다가 중상을 입은 흔적이 있으며, 치료를 위해 날카로운 석기로 팔을 절단하는 외과 수술을 진행한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팀은 “당시 사람들이 지혈을 철저히 하고, 허브를 이용한 소독약을 만들어 감염 예방 조치한 흔적을 미뤄, 고도의 의료 행위를 보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은 현대와 매우 유사한 의료기술을 가졌으며, 절단 수술을 받은 남성은 수술 뒤 수 개월을 더 산 것으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의 고고학 학술지인 ‘앤티쿼티’ 지난달 호에 실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3D 혁명/이순녀 논설위원

    3D 입체영상의 기본 원리는 인간이 왼쪽과 오른쪽 눈을 통해 다른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데서 출발한다. 1900년 파리 박람회에서 왼쪽과 오른쪽에 빨강, 파랑 필터를 부착한 안경을 쓰고 보는 애너글리프 방식이 소개되면서 1915년 미국 뉴욕에서 최초의 3D영화가 상영됐다. 1950년대 극장 관객이 줄자 관객의 눈길을 끌려고 3D영화가 제작됐지만 외면당했다. 1970년대에도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붐을 이루지 못하다가 1990년대 들어 3D영화가 다시 제작되기 시작했다. 2004년 세계 최초 아이맥스 3D 장편영화인 ‘폴라 익스프레스’가 흥행하면서 ‘몬스터 하우스’, ‘베오 울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이 뒤를 이었다 (베니 김, ‘입체영화산업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3D 영화 ‘아바타’의 흥행이 파죽지세다. 작년 12월17일 개봉 이래 지난 10일 현재 전세계에서 13억 35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역대 1위인 ‘타이타닉’(18억 달러)의 기록을 바짝 뒤쫓고 있다. 국내에서도 개봉 25일 만에 800만 관객을 넘어섰고, 빠르면 다음 주말쯤 1000만 관객 돌파가 예상된다고 한다. ‘아바타’ 열풍은 영화관을 넘어섰다. 영화가 구현한 3D혁명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전자·가전제품 전시회 ‘CES 2010’의 핵심 화두였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업체를 비롯해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이 앞다퉈 첨단 3D TV를 선보이며 시장 선점을 위한 탐색전을 벌였다. ‘아바타’로 촉발된 3D영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안방극장으로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이처럼 ‘아바타’의 흥행은 잘 만든 영화에 대한 대중적 성공의 차원을 넘어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세계를 여는 ‘킬러 콘텐츠’로서의 가공할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업계에선 ‘아바타’가 3D TV시장을 2~3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내놨다. 국내에서도 3D 영상산업에 대한 준비가 본격화하고 있다. ‘해운대’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윤제균 감독과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차기작으로 3D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이달 초 영국, 일본에 이어 전세계 세번째로 3D 전문 채널 시범 서비스를 선보였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올 10월부터 고화질급 지상파 3D 실험방송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자원 획득을 둘러싸고 지구인과 외계 행성 판도라 원주민의 전쟁을 그린 ‘아바타’가 바야흐로 현실에선 3D 전쟁에 불을 붙였다. 승자는 누가 될까.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객원칼럼] 내 마음속 풍차 방앗간/김동률 KDI 연구위원

    [객원칼럼] 내 마음속 풍차 방앗간/김동률 KDI 연구위원

    풍차로 밀을 빻는 마을에 증기로 돌리는 기계 방앗간이 생겼다. 자연스레 발길이 끊긴 풍차 방앗간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이제 코르니유 영감의 방앗간 하나만 남았다. 물론 그곳에도 손님이 없다. 그러나 영감님의 풍차는 돌고 돈다. 영감님은 해질 무렵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밀가루 포대를 절름발이 당나귀에 싣고 마을을 가로질러 왔다 간다. 어느 날 도회에 나가 있던 영감님의 단 하나 혈육인 손녀가 약혼자와 함께 결혼 승낙을 얻으려 방앗간을 찾았다. 젊은 예비 부부는 할아버지가 어둠 속에서 밀 대신 희멀건 석회석을 빻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르니유 영감은 그동안 무너져 내린 석회 부스러기 등을 빻아 밀가루인 척하며 실어 날랐던 것이다.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에 죽고 싶어 하는 영감님 앞에 밀 포대를 실은 마을 사람들의 당나귀가 줄지어 몰려 온다. 그러나 잠시, 영감이 죽고 풍차날개 또한 멈춘다. 알퐁스 도데의 첫 단편집 ‘풍차방앗간 편지(Lettres de mon Moulin)’에 나오는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이라는 짧은 얘기다. 프로방스 지방의 아름다운 풍광과 서민생활의 애환을 섬세한 필치로 채색한 이 작품은 도데의 작가적 명성을 떨치는 데 한몫했다. 옛것을 고집하는 풍차 방앗간 노인이 기계 문명에 밀려나는 모습은 세월과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월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겠으나 언제부턴가 코르니유 영감처럼 시대에 뒤떨어지고 또 중요한 그 무엇을 하나씩 잃어버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 버렸다. 시력은 침침해지고 송년모임 2차에 들른 노래방에서 고음부분 처리가 하루가 다르게 힘들게 된다. 호기롭게 대여섯 잔을 사양 않던 폭탄주는 한두 잔에 손사래를 치게 된다. 티스푼으로 밥을 먹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서 큰 숟가락으로 아침밥을 먹고 있고, 지켜보는 아버지들은 스르르 늙어만 간다. 세월이 헛헛하게 흐르고,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가 되었다가 그마저도 옛얘기가 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 그랬듯이 거리에 ‘올드 랭 사인’이 울려 퍼진다. 올 한 해도 저물 만큼 저물었다. 올드 랭 사인을 떠올린다는 것은 지나온 인생을 추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제목은 ‘그리운 옛날’. 1759년 스코틀랜드의 민족시인 로버트 번스가 민요 선율에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다. 이 곡은 머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 ‘애수’(1940)로 더욱 유명해졌다.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가 등장하기 전인 1900년대 초 애국가 곡조로 사용되기도 해 우리와는 꽤 인연이 깊은 노래다. 저녁 거리에서 올드 랭 사인을 들으며 상념에 젖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청춘은 아니다. 밤은 깊어 가지만 집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올드 랭 사인이 울려 퍼지는 세밑 거리를 서성이고 있다. 한 해가 간다. 마음은 아직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봄날’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시간은 어김없이 한 해 맨 끝자락에 사람들을 야멸차게 세워 두고 있다. 떠나보내지 못할 미련과 안타까움이 남아 있지만 우리는 그 유혹을 뿌리치고 떠나는 한 해를 보낼 채비를 서둘러야겠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잠들기 전에 가야만 할 먼 길이 있다.’며 고단한 생의 영속성을 얘기했다. 12월은 한 해를 배웅하고 새해를 맞을 준비가 필요한 때다. 저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남아 있는 한 해의 끝자락이다. 김동률 KDI 연구위원
  • 국내 첫 사과 역사관 새달 경북 군위 개관

    국내 첫 사과 역사관 새달 경북 군위 개관

    국내 사과산업 100여년의 흔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유일의 사과 역사관이 다음달 문을 연다. 농촌진흥청 사과시험장은 22일 경북 군위군 소보면 위성리 사과시험장 내 터 3300㎡에 총 9억원을 들여 건립 중인 사과 역사관을 다음달 중순쯤 개관키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는 개관을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사과 역사관이 개관되기는 1900년 대구 동산병원 설립자인 존슨 박사가 처음으로 병원 뒤뜰에 사과나무를 심은 후 109년 만이다. 사과 역사관은 전시실(연면적 990㎡)과 야외 생태공원(3300㎡), 체험 공방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는 국내 사과 산업의 변천사를 비롯해 사과 재배 도구(전지가위 및 농약 관련 기구 등), 사과 바구니, 교육용 책자, 사과 관련 각종 용품 등 1000여점이 전시됐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겨울문턱… 山寺에서 나를 찾다

    겨울문턱… 山寺에서 나를 찾다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국어시간에 꾸벅거렸건, 땡땡이를 쳤건 어지간한 이라면 띄엄띄엄이나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한 구절 정도씩은 읊조릴 수 있죠. 국민시에 가깝습니다. 밑줄 그어가며 ‘속세의 번뇌, 종교적 승화’ 등을 적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느낌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것은 바로 가슴 한편에 뭔가 기구한 사연을 품고 있음직한 느낌의 비구니에 대한 첫 심상이었습니다. 겨울이 오는 초입, 비구니 스님들을 만났습니다. 비구니 수행 도량인 경상북도 문경시 사불산 중턱에 있는 윤필암(閏筆庵)입니다. 허리춤 꼬깃꼬깃한 돈으로 손자에게 과자 사주는 외할머니처럼 푸근한 느낌의 암주(庵主) 은우 스님부터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여쁜 누이 같은 자성 스님까지 여섯 분이 모여 공부하며 생활하는 곳입니다. 다음달 1일(음력 10월15일)부터 시작될 동안거(冬安居) 준비에 여념이 없으시더군요. 겨우내 땔 장작도 마련해야 하고, 매 끼니 공양할 메주도 떠놓아야 합니다. 연잎, 감자 등으로 만든 전통 사찰식 부각과 유과 등 주전부리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죠. 비구니 스님들 서른 명 남짓 모여 석 달을 지내야 하니 준비할 게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수수 찬바람은 산사의 겨울나기 준비를 더욱 부추기네요. 인생도 이처럼 예측 가능해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요. 힘들어도 웃으며 견딜 수 있을텐데 말이죠. 올 겨울 산중 암자 문 두드려 스님들의 마음 공부 요령을 한 번 배워가도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북방삭풍 몰아치는 날 괘념치 않도록 두둑하게 인생 겨울나기 준비하시기 바랄게요. ●겹겹이 펼쳐진 산세 가슴까지 후련 나그네는 길 자체의 아름다움에 혹하기 십상이다. 허나 진짜 아름다운 것은 길 너머에 있다. 감동을 아껴둬야 만날 수 있다. 바로 1인 수행도량인 묘적암과 윤필암, 그리고 거기까지 오르는 길이다. 윤필암은 본 사찰인 대승사와 묘적암의 갈림길 즈음에 있다. 왼쪽으로 가면 묘적암, 오른쪽으로 가면 대승사가 나오는 곳이다. 차를 갖고 왔다면 윤필암 아래쪽에 세우고 호젓한 산길의 정취를 느껴볼 만하다. 1㎞ 남짓 넘어가니 다리야 약간 퍽퍽하겠지만 쭉쭉 뻗어올라간 삼나무며, 상수리나무 등을 보노라면 눈이 맨 먼저 시원해진다. 인적 드문 호젓한 길 여기저기서 다람쥐들과 연신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을 무심히 쳐다보는 모양이 속계와 불계를 오가는 존재인양 영물스럽기까지 하다. 진짜 아름다운 풍광은 적멸 스님이 홀로 수행하고 있는 묘적암 앞에 펼쳐져 있다. 멀리 사불산의 사면석불이 내다보이고 겹겹이 펼쳐진 산세가 가슴 속에 시원함을 안긴다. 비라도 올라치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안개는 신비로움까지 더해준다. 적멸 스님은 “며칠 동안 사람 구경 못할 때도 많아 먼 발치에서 등산객만 보여도 반갑다.”고 했다. 낯선 이라도 불쑥 차 한 잔과 한 말씀 청하면 기꺼워하시겠다. 묘적암을 내려오다 보니 길 초입에 우체통이 하나 있다. 사불산 깊은 곳에 자리잡아 우체부 오토바이가 오르기 힘겨워하는 탓에 마련해둔 것이다. 넉넉한 마음씀씀이에 흐뭇해진다. 묘적암, 윤필암을 다녀온 발걸음은 전통의 향기 넘쳐나는 곳으로 향한다. 관광지가 아니어서 발길은 뜸하지만 문경에는 또다른 매력이 숨겨져 있다. 도예 무형문화재 32호 천한봉 선생의 문경요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훨씬 유명하다. ‘한국방문의해위원회’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배용준이 쓴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 등장한 뒤 일본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배용준은 이곳에서 5일간 머물며 도자기를 굽고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굳이 배용준이 아니더라도 천 선생의 작품은 찻사발 하나가 1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에서만 연 2억원 넘게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엔 일왕이 사절을 파견해 훈장을 줬을 정도. 여기에 방짜유기 중요무형문화재 77호 이봉주 선생 역시 장인의 기품을 보여주고 있다. 안산에 있던 공방을 옮기기 위해 산좋고 물맑은 곳 찾아 헤매다 2004년 문경으로 접어들었다. 주물로 만드는 안성유기와 달리 방짜유기는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것이다. 현대식 공장은 물론, 전통 방식 유기 대장간을 구경할 수 있다. ●경북의 또 다른 맛은 낙동강 줄기에 뱃사공의 뱃길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새로 놓인 다리는 튼튼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때 그 뱃사공들의 갈증과 허기,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곤 했던 그 강변의 주막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등이 만나는 곳이라 이름 붙여진 경북 예천군 풍양면의 삼강(三江) 주막이다. 1900년 무렵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이다. 여기저기 떠도는 장돌뱅이들, 찌그덕거리며 노젓는 뱃사공들이 컬컬한 막걸리 맛을 못잊어 삼강주막을 찾았다. 주막 안팎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까막눈의 주모는 술상 내주던 부엌 흙벽에다 빗금을 긋는 식으로 외상장부를 남겼다. 마지막 주모였던 유옥련 할머니는 2005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고, 뱃사공들도 이제는 없지만 텁텁한 술트림이 여기저기 맴돌고 있는 듯하다. 주막 뒤편엔 450년 된 홰나무가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며 서 있고, 싸릿대 얼기설기 빙 둘러쳐진 ‘통시(뒷간)’가 옛 주막의 운치를 더한다. 손두부와 도토리묵은 각 2000원, 배추 지짐이는 3000원, 동동주는 한 주전자에 5000원이다. 한 상을 시키면 에누리 없는 1만 2000원이다. 게다가 술상 내오는 것도, 내가는 것도 모두 ‘셀프’다. 주막 운영을 마을부녀회가 맡고 있다. ●여행 Tip ▲먹을 거리 문경은 약돌돼지석쇠구이가 유명하다. 약돌(거정석)을 사료에 섞어 먹인 돼지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연탄불에 구웠다. 비계는 쫀득쫀득하고 살코기는 야들야들하다. 문경새재 가는 길 어귀에 약돌돼지를 파는 식당이 많이 있다. ‘탄광촌(054-572-0154)’과 ‘새재할매집(054-571-5600)’이 유명하다. 밑반찬도 맛있다. 예천에서는 용궁시장 순대국밥을 꼭 먹어보자. ‘1박2일’에 등장하며 유명해진 박달식당도 좋지만, 식사 때 1시간 남짓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차라리 입소문으로 이름이 알려진 단골식당(054-653-6126)을 찾으면 기다리는 수고로움 없이 3500원짜리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행복한 포만감을 누릴 수 있다. 글·사진 문경·예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정부예산 대해부] 비대해진 국방예산 왜?

    국방비가 살찐 이유는 최첨단 무기 구입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구시대적인 무기나 업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다. 군대가 시대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 것이다. 가장 큰 예산이 들어가는 항공 전투기 ‘F-15K’ 2차 사업비는 올해 5468억원에서 내년엔 6800억원으로 24.4%나 증액됐다. 함정 사업인 ‘장보고-II’ 내년 사업비도 올해 3958억원에서 47.7% 늘어난 5844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이 밖에 내년 ‘탄도유도탄 조기경보레이더’ 사업비는 788억원으로 올해 69억원에서 1042.3%나 증가했다. 게다가 육군을 제외한 해군, 공군 무기는 대부분 첨단무기화돼 거의 전량을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군수산업 선진국들은 매년 무기값을 인상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군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업무에 많은 예산을 쏟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군 병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육군 보병중대만 살펴봐도 노후화된 군 무기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화기중대 전투편성표에는 1900년대 초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제작된 81밀리 박격포와 90밀리 무반동총 등이 여전히 편제돼 있다. 최첨단 전투기, 미사일과 같은 대량살상무기가 일반화돼 있는 오늘날 군은 1950년대 한국전쟁 때의 무기를 그대로 사용하며 이를 유지하는 데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군은 지난 10년간 해상침투간첩 발견 건수가 0건인데도 전투편성의 융통성 없이 562개 해안경계초소에 연간 53만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게다가 해안경계임무를 해안경찰에 이관하는 것도 2012년에서 2014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불필요한 조직운영의 단적인 예다. 군의 한 관계자는 “군 조직이 변화하기를 꺼려해 항상 예전에 하던 것을 답습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업무도 구시대적인 업무를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군 조직도 시대에 맞게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한 예산 전문가는 “지금까지 아무리 경제사정이 어려워도 군대는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다.”면서 “불필요한 군 조직을 통폐합하고 구시대적인 무기를 과감히 버리는 등 전투 편제도 현실에 맞게 구조조정한다면 늘어나는 첨단장비 구입비와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방비 낭비도 줄어 연례적인 과도한 예산 요구와 비정상적인 국방비 운용도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자손 240명과 110세 생일잔치

    올해 110세 생일을 맞은 중국의 한 할아버지가 무려 240명이나 되는 자손과 한 자리에 섰다. 장시성 이춘시에 사는 장바오쇼우 할아버지는 1900년 생으로, 줄곧 이춘시에서 살았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할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농사와 장사를 병행하며 3남3녀를 뒷바라지 했다. 110년이 지난 지금은 자손이 자손을 낳아 직계가족이 총 24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가장 큰 어른이 됐다. 대도시에 사는 몇몇 가족은 바쁜 일상으로 장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다가, 110세 생일을 기념해 어렵사리 한자리에 모였다. 장 할아버지는 “이렇게 기쁜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더 오래 살아서 가족들이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240여 명의 자손과 함께한 할아버지의 소식이 퍼지자 인근 주민 뿐 아니라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한 현지 언론은 “장 할아버지는 이춘시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인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나이에 비해 건강상태도 매우 양호하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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