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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송 전형필 가옥’ 문화공원 된다

    ‘간송 전형필 가옥’ 문화공원 된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간송 전형필 가옥’의 문화공원화를 위한 리모델링 공사가 25일 시작됐다. 도봉구는 전형필 가옥이 지난해 12월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등록문화재가 되자 가옥을 리모델링 해 관광 명소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필요한 경비를 6억 7000만원으로 예상하고 시비 등을 확보했다. 구는 인근에 있는 전형필(1906~1962) 선생의 묘역과 연계해 문화공원을 꾸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간송미술문화재단 등과 협의하고 있다. 특히 가옥은 유품 등을 복제해 전시하는 간송기념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전통 공예와 전통 다도, 한옥을 체험하는 공간으로도 꾸려진다.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수호자로 유명하다. 종로 대부호 집안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재산을 수탈 위기에 놓인 문화재를 사들이고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데 쏟아부었다. 국내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을 세워 수집한 문화재를 보관했는데 이곳이 바로 간송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은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외에도 공식 지정은 안 됐지만 국보급인 유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가옥은 전형필 선생의 집안에서 인근 농장 및 황해도 지역 소출을 관리하기 위해 도봉을 방문할 때 거처로 사용하려고 1900년에 지은 한옥이다. 전형필 선생도 농장을 관리하거나 양부였던 작은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자주 들렀다고 한다. 또 선생도 종로 자택에서 사망한 뒤 가옥 인근에 묘소가 마련됐다. 1970년대까지 관리인이 거주했으나 이후 사람이 살지 않아 훼손이 심한 상태다. 현재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마법의 주문’ 쓰인 ‘미스터리 지하실’ 최초 공개

    ‘마법의 주문’ 쓰인 ‘미스터리 지하실’ 최초 공개

    마법의 힘으로 보호받는 고대 무덤이 있다? 수단 북부의 나일 계곡에서 ‘잃어버린 중세 왕국’ 구 동골라(Old Dongola)의 흔적이 공개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 동골라는 6세기 중엽 약 900년 동안 번성한 마쿠리아(Makuria) 왕국의 수도로, 이 유적지에서는 수수께끼로 가득 찬 미지의 지하실이 발견돼 연구팀이 조사에 나섰다. 아직까지도 정확한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 지하실’은 당시 마쿠리아 왕국의 가장 강성했던 왕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지하실의 흰색 벽에는 검은색 잉크로 쓴 다양한 글자가 있는데, 그리스어와 고대 이집트 남부의 콥트(Coptic)언어 등으로 써져 있다. 특별한 것은 여기에 고대 마법사들이 쓴 것으로 알려진 사인과 오래된 기도문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미라 7구도 함께 발견됐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악마의 힘으로부터 이 지하실과 유적지 전체를 보호하는 ‘마법의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미라 7구는 모두 40세 이전에 사망한 뒤 자연적으로 미라가 됐으며, 매우 남루한 행색이었다. 얇은 천으로 된 심플한 디자인의 옷만 걸친 상태이며, 이중 한 구는 마쿠리아 왕국의 대주교의 것으로 추정된다.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의 전문가들은 “이것은 일종의 ‘보호무덤’으로, 왕의 시신과 영혼을 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마법의 의식과 연관이 있다”면서 “지하실 뿐 아니라 유적지와 관련해 더욱 자세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유적지는 원래 1993년 최초 발견됐지만 당시 연구가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2009년이 되어서야 발굴됐다. 이번에 공개된 미스터리 지하실은 연구가 시작된 뒤 최초로 대중에 공개된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폴란드 고고학 저널(the Journal Polish Archaeology)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6000년 전 제작된,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갈퀴 발견

    6000년 전 제작된,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갈퀴 발견

    완벽하게 보존된 6000년 전 사냥도구가 공개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잇다. 영국 고고학자들이 잉글랜드 북쪽에서 발견한 이 도구들은 단단한 참나무로 만들어진 갈퀴와 갈고리 등 여러 종류이며, 길이는 1.8m에 이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처럼 보존된 나무 칼퀴다. 이 갈퀴는 신석기시대의 선조들이 농사를 지을 때나 물고기를 잡을 때, 또는 산에서 사냥을 할 때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고고학자인 프레이저 브라운 박사는 “자연스러운 나무의 곡선을 이용해 좁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면서 “단단한 나무는 돌 도구를 이용해 갈아서 모양을 냈으며, 엄청난 기술과 힘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탄소측정법을 통해 최소 5400년에서 5900년 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해당 지역에서 최초로 농사가 지어졌을 때 활용된 도구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선조들이 이 갈퀴의 뾰족한 끝을 이용해 연어나 뱀장어 등 어업도 시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 도구들이 발견된 지역은 현재도 연어 포획이 매우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구들은 대부분 물 속 깊은 곳에 잠겨 있었으며, 물로 인해 공기가 차단되면서 부패를 막아 6000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브라운 박사는 “이번에 발견된 신석기 기구는 기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것들보다 1000년 이상 앞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완벽 보존’된 6000년 전 갈퀴 최초 공개

    ‘완벽 보존’된 6000년 전 갈퀴 최초 공개

    완벽하게 보존된 6000년 전 사냥도구가 공개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잇다. 영국 고고학자들이 잉글랜드 북쪽에서 발견한 이 도구들은 단단한 참나무로 만들어진 갈퀴와 갈고리 등 여러 종류이며, 길이는 1.8m에 이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처럼 보존된 나무 칼퀴다. 이 갈퀴는 신석기시대의 선조들이 농사를 지을 때나 물고기를 잡을 때, 또는 산에서 사냥을 할 때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고고학자인 프레이저 브라운 박사는 “자연스러운 나무의 곡선을 이용해 좁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면서 “단단한 나무는 돌 도구를 이용해 갈아서 모양을 냈으며, 엄청난 기술과 힘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탄소측정법을 통해 최소 5400년에서 5900년 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해당 지역에서 최초로 농사가 지어졌을 때 활용된 도구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선조들이 이 갈퀴의 뾰족한 끝을 이용해 연어나 뱀장어 등 어업도 시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 도구들이 발견된 지역은 현재도 연어 포획이 매우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구들은 대부분 물 속 깊은 곳에 잠겨 있었으며, 물로 인해 공기가 차단되면서 부패를 막아 6000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브라운 박사는 “이번에 발견된 신석기 기구는 기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것들보다 1000년 이상 앞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어도의 날’ 재추진

    제주도의회가 ‘이어도의 날’ 조례 제정을 재추진하고 나섰다. 제주도의회 농수축·지식산업위원회는 12일 ‘제주도 이어도의 날 지정·운영에 관한 조례안 번안동의안’을 상정해 가결시켰다. 이 조례안은 지난해 12월에 추진됐으나 중국과의 외교 분쟁 등의 이유로 박희수 제주도의회 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 상정을 보류한 바 있다. 번안동의안은 현재 계류 중인 조례안에 명시된 시행시점이 지나 효력을 발휘할 수 없어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된 부칙조항을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으로 변경한 게 골자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강경찬 의원(교육의원)은 “지난해에는 시기적으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부가 이어도 상공을 방공식별구역으로 공식화한 만큼 조례안을 처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박희수 의장은 “이번에는 상임위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밝혀 13일 열리는 제주도의회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조례안은 해군이 이어도를 발견하고 ‘대한민국령’이라는 동판을 수중암초에 설치한 9월 10일을 이어도의 날로 정하고 이어도 관련 문화행사 등을 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교부는 제주도의회의 이어도의 날 조례 제정 재추진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최근 “한·중 배타적경제수역(EEZ) 조정협상이 마무리된 이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을 제주도에 전했고 직접 제주도의회를 방문해 정부의 입장을 전달키로 했으나 박희수 의장이 면담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제주 중국영사관도 제주도의회의 ‘이어도의 날’ 조례안 재추진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임위를 통과한 ‘이어도의 날 지정·운영 조례안’은 내년 6월 말까지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이어도는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50㎞ 떨어진 곳에 있는 수중 암초로 1900년 이어도 부근 해역을 지나던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에 의해 처음 발견돼 ‘소코트라 록’(Socotra Rock)으로 세계 해도에 올라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미슐랭가이드 ☆☆ 일본 속 한식당

    미슐랭가이드 ☆☆ 일본 속 한식당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셰린이 1900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는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슐랭 가이드 도쿄 2014년판에 한국 전통 요리점 ‘윤가’가 새롭게 포함됐다. 지난 6일 발행된 2014년 미슐랭 가이드 도쿄에 따르면 ‘윤가’는 ‘일부러 찾아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을 나타내는 등급인 2스타를 받으며 새롭게 등재됐다.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은 음식점 13군데 중 한국 요리점은 없으며 2스타 중에는 궁중 요리 코스 한식당인 ‘모란봉’이 지난해 3월부터 이름을 올렸다. 미슐랭 가이드 도쿄에 이름을 올린 한국 요리점은 두 곳뿐이다. ‘그 장르 안에서 특별히 맛있는 레스토랑’인 1스타에 등재된 175개 요리점 중에도 한국 요리점은 없다. 일본 도쿄 중심가인 긴자 8초메에서 ‘윤가’를 운영하는 윤미월(56)씨는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재료들로 전통 방식의 한국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상황버섯, 구기자 등 동의보감에 나온 약재들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윤가’ 측은 밝혔다. 이번에 미슐랭 가이드 심사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털게 게장, 전복한방볶음, 작약 쑥탕 등이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얼짱’ 각도로 찍은 1839년 세계 최초 ‘셀카’ 화제

    ‘얼짱’ 각도로 찍은 1839년 세계 최초 ‘셀카’ 화제

    디지털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아마 가장 먼저 셀카 촬영을 하지 않을까?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셀피(selfie)’, 즉 국내 인터넷 용어로 ‘셀카’였던 것은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세계 최초 셀카로 추정되는 사진이 공개돼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온라인매체 허핑턴 포스트의 5일 보도에 따르면 해당 촬영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이뤄졌다. 기존 최초 셀카라 알려진 사진들은 대개 1900년대 초 사진들인데 해당 사진은 이보다 수십 년 앞선 것이다. 사진을 보면 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성이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네덜란드 출신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고넬료(Robert Cornelius)다. 이 사진은 1839년 10월,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그의 집 뒷마당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사진이 최초 셀카라 평가받는 이유는 인물 포즈에 있다. 초장기 사진 모델들이 뻣뻣하고 경직된 포즈를 취했다면 고넬료는 얼짱(?) 각도로 렌즈를 응시하며 표정도 자연스럽고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도 멋을 냈다. 현재 통용되는 셀카 촬영법에 가장 근접해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사진은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으로 촬영됐다. 이는 프랑스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가 개발한 초창기 사진촬영법으로 은판사진법(銀板寫眞法)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진촬영법은 은막이 씌워진 구리판에 광택을 낸 다음 표면에 요오드화은 감광막을 만들어 빛에 노출시킨 후 수은증기로 현상해 사진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해당 촬영법은 초기에 사실적 사진을 찍어낼 수 있어 각광받았으나 1850년 값싸고 신속한 유리판사진이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진=허핑턴포스트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민족주의로 가려진 아나키스트 신채호

    민족주의로 가려진 아나키스트 신채호

    신채호 다시 읽기/이호룡 지음/돌베개/332쪽/1만 8000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며 굴곡 많은 삶을 산 단재 신채호(1880~1936). 봉건 유학자에서 자강운동가로, 자강운동가에서 민족주의자로, 다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사상적 변신을 거듭했지만 ‘한국의 대표 민족주의자’로 통한다. 신채호는 그 통념처럼 그저 민족주의자였을까. ‘신채호 다시 읽기’는 그 통념과는 다른 ‘아나키스트 신채호’를 부각시킨 책이다. 1910년대까지는 한국의 대표 민족주의자로 자리매김되는 게 맞지만 그 이후의 사상과 실천운동은 다르다는 게 핵심 내용. 신채호의 저술과 관련 문헌, 새 발굴 자료들을 분석해 그가 아나키즘 수용의 선구자이자 한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였음을 밝히는 과정이 흥미롭다. 신채호는 1900년대에 제일 먼저 민족주의를 제창하고 1910년대 들어 민족주의에 기초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해 민족주의자의 색채가 짙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통념이 고착화된 건 1960∼1970년대라는 주장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관동군 장교의 이력을 가릴 도구로 민족주의를 내걸었고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운동세력들이 민족주의를 앞세우면서 박정희 정권의 반민족성을 비판했던 시절. 강권(强權)에 맞서 사상을 실천에 옮긴 저항적 지식인의 표상인 신채호가 대표적 민족주의자로 부각됐다는 지적이다. 책에 제시된 새 자료들은 통념과는 사뭇 다른 신채호를 새록새록 들춘다. 1905년 황성신문사 근무 시절 고토쿠 슈스이의 ‘장광설’을 읽고 아나키즘에 감명받은 신채호는 3·1운동을 계기로 아나키즘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1923년 발표한 ‘조선혁명선언’은 신채호의 아나키즘을 집대성한 글로 드러난다. 특히 ‘조선혁명선언’의 민중적 직접혁명론이 민족주의에 아나키즘을 접합한 것이라는 기존 학계의 주장을 일축해 주목된다. 신채호는 1936년 감옥에서 사망하면서 판결문 1통과 인장 1개, 수첩 2권, 서한 10여통, 중국 돈, 책 몇 권을 남겼는데 그중에는 ‘세계 대사상 전집’(크로포트킨 편)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신채호가 민족주의자보다는 아나키스트로 생을 마감했음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홍합탕/문소영 논설위원

    1970년대 초 스케이트장은 대부분 야외였다. 어린 시절 영하 17도까지 내려가던 청주에서는 별도의 스케이트 시설이 없어서 추수를 끝낸 논에 물을 채워 얼린 울퉁불퉁한 얼음에서 스케이트를 타야 했다. 머리가 쩡할 정도로 추운 겨울이 되면 매끄럽지 않은 얼음 위에서 놀다가 논두렁 간이 포장마차에서 어묵과 홍합탕으로 배를 채우며 추위를 녹이던 그때가 생각난다. 50원에 고봉밥 쌓듯 사발 한가득 홍합과 국물을 줬기 때문에 볼이 빨갛게 언 꼬마는 굉장히 좋아했다. 가격이 싸 서민적인 홍합을 나는 막연하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등 조상도 좋아했을 음식으로 믿어 왔다. 홍명희의 소설 ‘임거정’에서 말린 홍합이 술안주로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임거정은 조선 명종 때 의적이니 당연한 믿음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홍합이 외래종이란다. 지중해 담치로 1900년대 중반 유럽에서 들어와 국내에서 양식됐다는 게 해양수산부의 설명이다. 1550년대 임거정이 술안주로 먹던 홍합은 다른 거다. 묘한 배신감을 느낀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얼짱 각도,시크한 표정’…1800년대 세계 최초 셀카 화제

    ‘얼짱 각도,시크한 표정’…1800년대 세계 최초 셀카 화제

    디지털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아마 가장 먼저 셀카 촬영을 하지 않을까?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셀피(selfie)’, 즉 국내 인터넷 용어로 ‘셀카’였던 것은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세계 최초 셀카로 추정되는 사진이 공개돼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온라인매체 허핑턴 포스트의 5일 보도에 따르면 해당 촬영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이뤄졌다. 기존 최초 셀카라 알려진 사진들은 대개 1900년대 초 사진들인데 해당 사진은 이보다 수십 년 앞선 것이다. 사진을 보면 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성이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네덜란드 출신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고넬료(Robert Cornelius)다. 이 사진은 1839년 10월,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그의 집 뒷마당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사진이 최초 셀카라 평가받는 이유는 인물 포즈에 있다. 초장기 사진 모델들이 뻣뻣하고 경직된 포즈를 취했다면 고넬료는 얼짱(?) 각도로 렌즈를 응시하며 표정도 자연스럽고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도 멋을 냈다. 현재 통용되는 셀카 촬영법에 가장 근접해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사진은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으로 촬영됐다. 이는 프랑스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가 개발한 초창기 사진촬영법으로 은판사진법(銀板寫眞法)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진촬영법은 은막이 씌워진 구리판에 광택을 낸 다음 표면에 요오드화은 감광막을 만들어 빛에 노출시킨 후 수은증기로 현상해 사진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해당 촬영법은 초기에 사실적 사진을 찍어낼 수 있어 각광받았으나 1850년 값싸고 신속한 유리판사진이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진=허핑턴포스트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얼짱 각도,시크한 표정’ 1800년대 세계 최초 셀카 화제

    ‘얼짱 각도,시크한 표정’ 1800년대 세계 최초 셀카 화제

    디지털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아마 가장 먼저 셀카 촬영을 하지 않을까?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셀피(selfie)’, 즉 국내 인터넷 용어로 ‘셀카’였던 것은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세계 최초 셀카로 추정되는 사진이 공개돼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온라인매체 허핑턴 포스트의 5일 보도에 따르면 해당 촬영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이뤄졌다. 기존 최초 셀카라 알려진 사진들은 대개 1900년대 초 사진들인데 해당 사진은 이보다 수십 년 앞선 것이다. 사진을 보면 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성이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네덜란드 출신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고넬료(Robert Cornelius)다. 이 사진은 1839년 10월,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그의 집 뒷마당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사진이 최초 셀카라 평가받는 이유는 인물 포즈에 있다. 초장기 사진 모델들이 뻣뻣하고 경직된 포즈를 취했다면 고넬료는 얼짱(?) 각도로 렌즈를 응시하며 표정도 자연스럽고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도 멋을 냈다. 현재 통용되는 셀카 촬영법에 가장 근접해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사진은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으로 촬영됐다. 이는 프랑스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가 개발한 초창기 사진촬영법으로 은판사진법(銀板寫眞法)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진촬영법은 은막이 씌워진 구리판에 광택을 낸 다음 표면에 요오드화은 감광막을 만들어 빛에 노출시킨 후 수은증기로 현상해 사진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해당 촬영법은 초기에 사실적 사진을 찍어낼 수 있어 각광받았으나 1850년 값싸고 신속한 유리판사진이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진=허핑턴포스트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국내여행 |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젠 초량동이다!

    국내여행 |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젠 초량동이다!

    시작해 볼까 한다. 거의 40년 전 내가 태어났던 그곳에 대한 이바구를,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오르내렸던 까꼬막에 대한 이야기를.당신이 준비할 것은 기차를 타기 전 2시간뿐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이바구는 이야기, 까꼬막은 비탈길을 뜻한다.고향에 대한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오빠야~’를 쫓아 경사진 산복도로를 뛰어다니느라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던 가시내의 기억은7살에 멈추었다.이후 내가 태어났던 외갓집과 초량동은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사람들이 떠났고, 집들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그러나 32년 후 다시 찾아온 여행기자에게초량동은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바구 공작소가 생겼고, 유치환 선생과장기려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 만들어졌고,손님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전망대, 카페,까꼬막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산복도로 위에서 보는 초량동과 부산항,북항대교의 풍경은 비탈을 극복한 자만이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근현대사의 축소판, 초량동여행애호가들은 다 아는 이야기. 감천문화마을(감천2동 산복마을)은 부산 산복도로에 말 그대로 ‘르네상스’를 몰고 왔다. 2012년 감천마을을 다녀간 여행자가 10만명이라니, 마을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할 정도로 조용하던 산동네는 일약 관심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그 르네상스의 맥을 잇는 다음 주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량동이라고 했다. 초량동이라니! 전쟁 통에 결혼한 외할머니가 8명의 자식을 낳아 키웠고 그 자식의 자식인 내가 태어난 그 동네가 아닌가.초량동은 한국전쟁 당시 판자촌이 얼기설기한 피난민 마을에서 시작됐다. 그나마 물자와 일거리를 구하기 쉬웠던 항구 근처에 난민들은 터를 잡기 시작했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판잣집이 세워져 있곤 했다. 칸칸이 작은 방들로 이루어진 엉성한 집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며 구봉산龜蜂山(405m)의 거북이 등을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집과 집 사이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미로 같은 골목이었고 우마차가 흙길을 다졌다. 산복도로의 시초였다.마을의 풍경은 태생적으로 아름답다. 감천마을의 경우 이미 부산의 산토리니라는 수식어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피난민촌의 역사를 알고 나면 이 풍경은 더 이상 이국적이지 않다. 파랑색 물탱크를 옥상에 이고 다닥다닥 어깨를 붙인 파스텔톤의 집들은 보따리를 하나씩 머리에 이고 산비탈을 오르는 어머니들을 닮았다.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 나선 계집아이의 얼굴엔 때구정물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수도가 없으니 급수차가 오는 날에는 아이들도 세숫대야라도 들고 나서야 했었다. 만만치 않은 세월이었다.감천마을에서 시작되어 산복도로를 타고 질주해 온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초량동이나 수정동 같은 낙후된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구의 생활문화사를 유적과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곳인 이바구공작소를 포함해 새로운 랜드마크들이 올 초부터 줄줄이 문을 열었다. 웅장하거나 화려한 건물들이 아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유도하듯 평범한 주택들 사이에 전망대, 게스트하우스, 기념관, 카페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무엇이든 이 모든 장소들은 최적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바구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없이 주저앉아 경치를 감상하고 싶어지는 ‘구석’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과정이 고된 만큼 까꼬막길은 더 큰 보상을 안겨 준다.손쉬운 선택으로 산복도로에만 올라서도 건설 중인 북항대교는 물론이고 오른쪽으로는 남항대교, 왼쪽으로는 광안대교와 산 너머 해운대의 마천루까지 모두 보인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큰일이 있을 때마다 불을 지펴 다급한 소식들을 한양으로 올려보냈던 구봉산 봉수대에 올라서면 부산 앞 바다의 경치는 더 너르고, 더 깊어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 모든 풍경은 저마다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참으로 은하수 같은 야경이다.굽이굽이 이바구가 들린다경험상, 도보여행은 가벼워야 한다.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부산 지하철역 사물함에 필요 없는 짐을 맡겨두고 길을 건너니 이바구길종합안내판이 쉽게 눈에 띄었다.길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산 사투리, 중국어, 러시아어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생경한 외국인 거리를 정신없이 통과하니 사거리 한쪽에 붉은 벽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었던 구 백제병원 건물이었다. 한 때 외국의 의사들을 숱하게 초빙할 만큼 큰 병원이었지만 행려환자들의 시신을 인체표본으로 보관한 일이 밝혀지면서 도덕적 질타와 경영 악화로 문을 받았다는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평생 봉사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장기려(1911~1995) 박사가 알았다면 애통해 했을 일이다. 25년 동안 복음병원의 병원장을 지내며 1968년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던 그는 평생 집 한 채를 소유하지 않고 병원 옥탑에서 생활하며 낡은 의사 가운과 청진기만을 유품으로 남겼다. 그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 ‘더 나눔’은 올해 초량동의 복음병원 분원자리에 문을 열었다.병원에서 몇 발자국을 옮기자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였던 남선창고터가 병원 뒤에 남아 있었다. 부산항에 도착한 물건들은 1,000평 규모의 창고를 거쳐서 경부선(1905년 개통)을 통해 전국 각지로 보내졌는데 주요 품목이 함경도산 명태여서 ‘명태고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부산토박이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최초’라는 수식어는 종종 ‘임시’라는 수식어와 연결된다.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던 초량 교회는 부산이 임시 수도였던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예배를 봤던 곳이다. 그 시절 임시 수도의 정부 교통부로 사용했던 건물은 부산지하철 좌천역 근처에 남아있다.그 당시의 마을 풍경 사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골목길 갤러리다. 흑백 사진 속의 그곳과 지금의 이곳은 수십년의 시차를 마주하게 한다. 그 시차를 극복한 사람들이라면 168계단이 선사하는 아찔한 고도 차이도 우습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올려다보기에도, 내려다보기에도 아찔한 추억들은 168계단 옆 우물처럼 파도 파도 깊어진다. 시인 유치환, 개그맨 이경규, 노무현 대통령, 음악감독 박칼린, 가수 나훈아,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국회의원 안철수, 연출가 이윤택 등 동구 출신들을 마치 가족처럼 자랑하는 주민들의 정서는 2013년에도 유효하다. 그들의 사진과 이력이 벽에 걸려 있는 초량초등학교 동구 인물사담장 앞에 서 있으면 “이~갱규가 이 학교 나왔다 아이가. 나하고 동갑인데… 갸가…”로 시작되는 대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길을 오르내리며 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를 낳고, 손자를 마중 나가는 초량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부산역 앞 초량이바구길 안내도부산역에서 망양로 산복도로를 오르는 짧은 길은 가난하고 아팠지만 따스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다. 부산역에 내려 바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기만 하면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종합안내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2시간의 산책은 애환 어린 피난시절부터 현재까지 부산의 역사를 꿰어 줄 뿐 아니라 부산 특유의 정서와 서민생활을 깊숙이 느끼게 해준다.Route (옛)백제병원▶남선창고터▶담장갤러리▶동구 인물사담장▶168계단▶김민부 전망대▶이바구공작소▶장기려박사 기념관 ‘더 나눔’▶유치환의 우체통▶까꼬막까지 이어지는 1.5km①부산역 1905년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 계통 이후 부산역은 가장 중요한 부산의 관문 역할을 변함없이 해 왔다. 1953년 대화재로 이전의 부산역이 전소되면서 1968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역사를 신축했고 2004년 KTX 개통으로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부산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②부산항 부산항은 원래 아주 조그만 어촌이었지만 고종 때 개항하면서 최초의 무역항이 됐다. 물자가 넘쳐나고 그만큼 일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 전쟁이 터지자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항구 근처에 머물렀다. 산복도로 아래 피난민 마을은 그렇게 형성된 곳이다.③상해문 청관거리(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이곳에 있었다)라고 불렸던 이 지역은 중국인들이 밀집한 차이나타운이지만 현재는 러시아, 필리핀 사람들도 대거 거주하는 외국인 거리가 됐다. 소문난 중화요리점들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독해 불가능한 외국어 간판이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 한때 텍사스골목이라는 불명예를 품기도 했었지만 2007년 7월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되어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④(옛)백제병원 1922년 한국인 최용해가 만든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은 5층 규모의 건물로 외국인 의사들을 초빙할 만큼 번성했었지만 10여 년 만에 경영 악화로 폐업하게 되었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중국 요리집, 일본 아까즈끼부대의 장교 숙소로 사용되다가 해방 이후 치안대 사무소, 중화민국 영사관, 신세계 예식장 등 여러 용도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가다가 현재는 임대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1972년 화재로 5층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4층 건물로 남아있으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3층에는 부산그린트러스트가 입주해 있다. 주소 초량동 중앙대로 209번길 16⑤남선창고(터) 백제병원 뒤쪽 탑마트 주차장 정면에는 담쟁이가 엉켜 있는 붉은 벽돌담이 있다. 건물은 2009년 철거되고 담장만 남은 남선창고는 저 멀리 함경도에서 부쳐진 명태를 적재하던 창고라 하여 북선창고(1900년 건립)라고도 불리다 1914년 남선창고로 개명되었지만 명태고방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던 곳이다. 경원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함경도의 수산물과 강원도의 목재는 부산으로 옮겨서 경부선을 통해 전국으로 보급되었었다. 백제병원 옆(탑마트 주차장). 주소 초량동 393-1⑥김민부 전망대 김민부(1941~1972)라는 이름을 잘 몰라도 ‘기다리는 마음(장일남 작곡, 김민부 작사)’이라는 제목은 잘 몰라도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되는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부산시 동구 수정동 출신인 그는 부산고 3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이후 부산과 서울 방송국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었다. 부산항의 경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겸 야외카페도 있다.⑦당산 어디 시골마을이나 남아있을 것 같은 당산이 오밀조밀한 주택가 한가운데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매해 음력 3월과 9월의 보름날에 초량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어린 시절에는 당산이 무섭기만 했었지만 피난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런 기복신앙에 기대서 어려울 때마다 위로와 힘을 얻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⑧이바구공작소 해방, 한국전쟁, 월남 파병 등의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교과서적 역사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로 바꾸는 것은 6·25와 보릿고개를 넘으며 산복도로를 지켰던 어르신들의 생생한 목소리다. 2013년 3월 오픈한 이바구공작소는 산복도로를 관통했던 역사와 문화자원을 발굴하여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또 다양한 공연과 전시로 관광안내소와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486번길 14-13 관람료 무료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매주 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www.ebagu.or.kr⑨유치환의 우체통 왜 갑자기 우체통? 의아할 수 있다. 청마 유치환(1908~1967) 선생을 기리는 대형 우체통이 동구의 산복도로에 세워진 이유는 그가 이곳 경남여고의 교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고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부산항을 향한 통유리창 카페에 앉아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특권을 놓치지 말자. 커피 한잔으로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부산역에서 333번 버스를 타고 컴퓨터과학고에서 하차.⑩천지빼까리 카페 마을 정자 옆에 만들어진 카페는 이름이 예술이다. 이른바 ‘천지빼까리 까꼬막 카페’. 동구청장이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 카페는 시원하게 뚫린 유리창을 통해 세상 어느 곳도 부럽지 않은 전망, 특히 근사한 야경을 선사한다. 부산역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초량6동에서 하차.⑪까꼬막 게스트하우스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센터라는 설명보다는 게스트하우스로 이해하면 훨씬 용도가 명확해지는 곳이다. 그것도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2층 방에 올라가 불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면 산비탈 마을의 야경이 별빛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다고. 1층은 주방 겸 거실이지만 취사를 금지하는 대신 배달 가능한 동네 맛집 목록을 준비해 두었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interview 新 르네상스의 건축가 김진우그는 초량동에 아무 연고가 없는 이방인이다. 서울에서 판문점 ‘평화의 집’을 설계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지금도 성북동 주택을 설계하느라 바쁜 건축가다. 그런 그가 어느날 산복도로를 찾아와 집 한 채를 구입하더니 동네에게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변신시킨 것. 구청 직원들이 ‘꼭 가봐야 한다’며 앞장섰다. 이런 방문에 익숙하다는 듯 건축가 김진우 선생이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놀 유遊’자에 ‘벗 붕朋’자, 유붕정이라는 이름이 게스트하우스화된 이 집의 용도를 설명해 준다면 파티에 최적화된 너른 주방과 식탁, 직접 디자인한 난로와 가구들, 거실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앤디 워홀의 그림과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은 그의 취향을 말해 준다. 비밀스럽게 자리잡은 황토찜질방과 화장실, 기둥 역할을 하는 계단 등등 구석구석이 감탄거리다. 산에서 바다로, 막힘없이 내리꽂히는 이곳의 경치에 반해 버렸다는 그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위해 기꺼이 앞장설 생각이다. 그에게 자극받은 이웃들도 스스로 집 단장에 나서고 있다니, 이미 르네상스는 시작됐다.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부산동구청 051-440-4281
  • 女 히스테리 치료도 시대별로 제각각

    女 히스테리 치료도 시대별로 제각각

    짜증과 신경질이 반복되며 삶을 피곤하게 하는 ‘히스테리(Hysteria)’, 이는 정신의학에서 ‘전환성신경증’으로 분류되며 유독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허핑턴 포스트는 최근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까지 변해온 ‘여성 히스테리 원인과 치료법’을 전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특수한 관심 대상이었고 해석도 다양했던 히스테리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칼리아리 대 연구팀은 “고대인들이 여성 히스테리의 원인을 ‘자궁’의 불규칙한 이동 때문으로 정의했다”고 밝혔다. 기원전 1900년 생존했던 이집트인들의 기록을 보면 “자궁의 위치가 불안정할 때 혹은 다른 방향으로 이동됐을 때 여성들의 신경질이 늘었다”고 적혀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기록과도 연결되는데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히스테리의 원인이 ‘여성 자궁’의 뜨거운 기운 때문이라고 저서에 적어놨다. 참고로 ‘Hysteria’는 그리스어로 ‘자궁’을 뜻하며 히스테리의 단어의 유래는 여기에 기인한다. 19세기 영국 기록을 보면 히스테리의 중요 원인을 여성들의 성적 불만족으로 여겼다. 당시 치료법으로 여성 성기 주위의 골반 마사지가 성행했는데 전문가들 중 일부는 여성용 자위기구가 발달한 것도 히스테리 치료가 목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1800년 대 초에는 ‘고압 호스를 이용한 샤워’가 히스테리 치료법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프로이트 이론에 기초한 정신분석적 치유 기법을 사용한다. 정신과 전문의와의 지속적인 상담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치료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허핑턴포스트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女 히스테리,고대부터 특수 연구대상 史별 분석 보니

    女 히스테리,고대부터 특수 연구대상 史별 분석 보니

    짜증과 신경질이 반복되며 삶을 피곤하게 하는 ‘히스테리(Hysteria)’, 이는 정신의학에서 ‘전환성신경증’으로 분류되며 유독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21일 미국 허핑턴 포스트는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까지 변해온 ‘여성 히스테리 원인과 치료법’을 전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특수한 관심 대상이었고 해석도 다양했던 히스테리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칼리아리 대 연구팀은 “고대인들이 여성 히스테리의 원인을 ‘자궁’의 불규칙한 이동 때문으로 정의했다”고 밝혔다. 기원전 1900년 생존했던 이집트인들의 기록을 보면 “자궁의 위치가 불안정할 때 혹은 다른 방향으로 이동됐을 때 여성들의 신경질이 늘었다”고 적혀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기록과도 연결되는데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히스테리의 원인이 ‘여성 자궁’의 뜨거운 기운 때문이라고 저서에 적어놨다. 참고로 ‘Hysteria’는 그리스어로 ‘자궁’을 뜻하며 히스테리의 단어의 유래는 여기에 기인한다. 19세기 영국 기록을 보면 히스테리의 중요 원인을 여성들의 성적 불만족으로 여겼다. 당시 치료법으로 여성 성기 주위의 골반 마사지가 성행했는데 전문가들 중 일부는 여성용 자위기구가 발달한 것도 히스테리 치료가 목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1800년 대 초에는 ‘고압 호스를 이용한 샤워’가 히스테리 치료법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프로이트 이론에 기초한 정신분석적 치유 기법을 사용한다. 정신과 전문의와의 지속적인 상담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치료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허핑턴포스트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옥스퍼드 선정 2013년 올해의 단어는 셀피(selfie)…최초의 셀피는 1900년?

    옥스퍼드 선정 2013년 올해의 단어는 셀피(selfie)…최초의 셀피는 1900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가 선정한 2013년 ‘올해의 단어’로 ‘셀피’(selfie)란 단어가 선정된 가운데 세계 최초의 ‘셀피’ 사진이 화제다.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셀피’란 ‘자가촬영사진’의 줄임말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는 인터넷 용어인 ‘셀카’(셀프 카메라)와 같은 의미다. ‘셀피’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최근 1년새 급격히 많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스마트폰을 통해 자기 스스로 자신을 촬영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널리 쓰이게 된 신조어인 셈. ‘셀피’라는 신조어가 올 한해를 휩쓴 가운데 최초의 ‘셀피’ 사진도 화제다. 사진의 주인공은 신상이 밝혀지지 않은 영국의 한 여인이다. 1900년대 초로 추정되는 시기에 찍힌 이 사진은 한 중년 부인이 집에서 거울을 향해 커다란 박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오래된 ‘셀피’ 중 유명한 또 하나의 사진은 러시아에서 찍은 사진이다. 한 소녀가 거울을 향해 코닥사의 브라우니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찍은 것. 이는 10대가 찍은 최초의 셀피. 사진 속의 소녀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로 유명한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다. 아나스타샤 공주는 1914년에 자신의 친구에게 이 사진을 보냈고 그 사진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셀피’는 아직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공식 등재되지 않았지만 출판사 측은 향후 이 단어를 사전에 정식으로 올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시대] 독도지킴이와 해양안보의 새로운 양상/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독도지킴이와 해양안보의 새로운 양상/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소중한 우리 땅 독도를 처음 방문했다. 지난달 22일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 50여명을 실은 두 대의 시누크 헬기가 동해를 향해 날았다. 필자의 눈앞에 펼쳐진 ‘동도와 서도’를 아우르는 독도는 늠름한 모습 그 자체였다. 오랫동안 갈망해 왔기에 독도의 땅을 내딛는 그 가슴 벅찬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독도 곳곳이 보랏빛 해국이며 아름다운 들꽃들이 지천이었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도는 남쪽 비탈을 제외하곤 60도가 넘는 벼랑과 가파른 경사인데 북쪽에서 바라보면 한반도의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한반도 바위’가 있다. 독도의 국적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보여 주는 자연의 상징물인 것이다. 독립문의 형상과 닮은 ‘독립문 바위’는 신비로웠고 커다란 봉우리 서도에 우뚝 선 ‘탐건봉’은 아름다운 조각상처럼 보였다. 잘 알려진 대로 1년 중 독도 방문이 가능한 날은 40일 정도다. 파도 사정에 따라 선착장 접안이 어려우면 해상에서 독도를 마주해야 하는데, 접안을 해도 20분 남짓 머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독도를 찾는 관광객은 증가 추세다. 내국인 방문 30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곳엔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독도경비대’가 있다. 이들은 불철주야 거친 파도를 견디며 독도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의 노고와 열정에 다시 한번 감사를 보낸다. 일본은 2005년부터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올해는 고위 관리가 처음으로 참석했다. 현역 국회의원도 역대 최다인 21명이 포함됐다. 또 지난달 16일 일본은 ‘다케시마에 관한 동영상’이라는 일본어판을 외무성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올렸고, 31일에는 또 다른 2분 정도의 영문판 홍보 동영상도 게재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과 영토 분쟁화 시도 등 부당한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고, 체계적으로 홍보하며 지원 예산을 증액하고 있다. 그런데 독도의 주권을 훼손하는 일본의 이런 시도에 우리의 대처가 다소 소극적이고 조용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젠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땅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더 강화해야 한다. 마침 지난달 25일은 2010년 한국교총이 선포한 독도의 날이었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칙령 41호로 제정해 울릉군의 관할 구역에 석도(지금의 독도)를 포함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비록 민간 차원에서 제정한 날이지만 점점 많은 국민들이 독도의 날에 관심을 갖고 행사에 참여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또 이날 육·해·공군과 경찰이 대규모 합동 ‘독도방어훈련’을 실시했는데, 일본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이자 영토 수호의지를 국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최근 독도를 포함해 탈냉전기 이후 동북아 역내 국가들 간의 도서영유권 분쟁과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을 둘러싼 해양 갈등과 이해관계가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중·일의 영유권 분쟁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고, 최근 북극해에 대한 미·러의 해군력 증강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계속되는 선박 피랍과 테러, 해적활동, 마약과 불법난민 같은 전통적·비전통적인 해양안보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글로벌 시대 해양을 둘러싼 이른바 ‘신냉전 체제’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해군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커버스토리] 간헐적 단식 No! 유산소 운동 No! 근력 운동은 Yes!

    [커버스토리] 간헐적 단식 No! 유산소 운동 No! 근력 운동은 Yes!

    “1㎏의 무게도 안 되는 물병을 들고 팔을 앞뒤로 흔들면 과연 팔뚝 살이 빠질까.” 대답은 ‘아니오’다. 호주 모던 필라테스 협회의 한국 지부 수석강사이자 지난 10년간 연예인과 일반인 수백명의 개인 트레이너로 활동해 온 고병준(37)씨. 그는 “예쁜 몸은 결코 예쁘게 운동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살빼기에 관한 한 전문가인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이어트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을 털어놨다. 그는 가장 먼저 “다이어트에는 왕도가 없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왕도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덴마크 다이어트, 간헐적 단식, 핫요가, 필라테스 등 특정 식이요법이나 운동이 반짝 인기몰이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살을 빼고 유지하려면 고강도의 운동, 식이요법, 생활패턴 조절 등 3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고씨는 “전교 1등을 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노하우가 있는 것처럼 다이어트도 노하우가 있는 것이지 노력 없이 하는 경우는 없다”며 “힘든 노력을 들이지 않고 살과의 전쟁을 벌이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최근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운동을 안 하고 12~24시간 굶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간헐적 단식은 최근 몇몇 방송 매체에 소개되면서 서점에는 관련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복을 유지하는 상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그만큼 위의 크기가 줄어들고 자연스레 음식물에서 나오는 독소도 적어져 다이어트 및 건강 개선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씨는 “간헐적 단식의 효과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장시간 공복을 유지한 후 어떤 음식을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지 소개된 적이 없다”며 “이는 오히려 심각한 폭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체질적으로 위가 약한 사람들의 경우 위산이 분비될 확률이 높아 건강에도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살을 빼는 데 효과적인 운동으로 손꼽히는 유산소 운동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달랐다. 고씨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저강도 유산소 운동인 파워워킹이 퍼진 지 꽤 오래됐지만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는 심박수가 빨라지지 않는다”며 “심폐기능 개선 효과도 미미하고, 체지방 연소율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생활 속에서 이미 저강도 유산소 운동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별도의 운동 시간에는 차라리 뛰거나 근육량을 늘릴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최근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데 주력을 하고 있다는 그는 “필라테스를 요가의 한 종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몇몇 스트레칭 동작이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운동”이라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호흡법에 따라 매트 위에서 동작을 하는 요가와 달리 필라테스의 경우 요가, 웨이트트레이닝, 발레 등의 원리가 합쳐진 운동이다. 필라테스는 1900년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한 포로 수용소 병원에서 근무하던 독일인 요제프 필라테스가 당시 수용소 안에 있던 침대와 매트리스를 이용해 고안한 근육 강화 운동이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건너간 필라테스가 무용수들의 재활 치료에 이 운동을 보급했다. 1980년대부터 마돈나, 제니퍼 로페즈, 줄리아 로버츠 등 미국의 유명 연예인들이 필라테스로 몸매를 가꿔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다이어터’들에게 “2주 동안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상세히 수첩에 기록하고, 무엇이 살을 찌게 하는 요인인지 자각하는 게 가장 첫 번째 할 일”이라며 “근력 운동에 초점을 두되 운동의 강도를 서서히 높여 가야 흥미를 잃지 않고 다이어트 과정을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경제동맹으로 시작된 EU, 정치·사회에까지 악영향… 유로존 해체가 유일한 답”

    “경제동맹으로 시작된 EU, 정치·사회에까지 악영향… 유로존 해체가 유일한 답”

    현재의 유럽연합(EU)에 열렬하게 갈채를 보내거나 성과에 기뻐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회의론자들이 큰 힘을 얻고 있고,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내년에 치러지는 유럽선거에서 EU에 심각한 위기가 온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라는 얘기죠.” 세계적인 경제·국제관계학 석학이자 ‘탈세계화’ 진영의 대표 주자인 자크 사피르(59) 파리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 교수는 마스트리흐트 조약 발효 20주년을 앞두고 지난 29일(현지시간)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동맹으로 시작된 EU의 근본적 맹점들이 정치, 사회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개혁된 형태로라도 EU를 지키고 싶다면, 유로화를 버리고 유로존을 해체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진단했다. →EU가 본격적인 하나의 유럽을 표방한 지 20년이 흘렀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체제에 대해 대략적인 평가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정치인들은 EU가 유럽 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보호장치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1914년 프랑스와 독일은 상호 핵심무역국이었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엄밀히 말하면 EU가 유럽대륙에 평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평화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가져온 것이다. 대의명분이 단순한 정치적 도구라는 점을 인식하면 다른 점들이 보인다. 하나의 유럽이라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북유럽과 남유럽의 갈등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EU에 한 발만 담그고 있는 영국은 유럽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시한다. ‘평화’를 표방한 EU는 자신의 뒷마당에서 벌어졌던 유고슬라비아 내전조차 제대로 종식시키지 못했다. 현시점에서 EU는 분명 실패작이다. →EU가 저성장으로 신음하던 유럽대륙에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 아닌가. -EU는 1950년대 이후 꾸준히 ‘공동 시장’의 성공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럽의 경제적 성과 대부분은 EU 이전에 이뤄진 것들이다. 기본적으로 유럽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경쟁을 통해 발전해 왔으며, 통합되면 통합될수록 이 같은 창의력과 생산성은 떨어진다. 안정만을 목표로 한 유로화는 경제 활력을 갉아먹었다. EU 내에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1999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모든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쟁력이 없다는 얘기다. →EU의 경제적 실패가 사회·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해 왔다. -경제가 고착 상태에 빠지면 사회 체제 전체가 비판의 대상이 된다. 경제에서 시작됐는데, 경제가 망가지니 정작 중요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년간 회원국들은 임금과 사회적 혜택을 축소하기 위해 앞다퉈 경쟁하고 있고, 사회적 편익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규제 완화는 공공사업의 해체로 이어져 소외 계층을 돌보는 국가의 의무마저 막았다. 철도 사고 등 각종 안전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본다. →EU가 역할을 확대하면 회원국 간 입장을 더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 EU집행위원회의 생각이다. -1980년대 프랑스 동부는 탄광업과 관련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해결했고, 국민들은 ‘국가적 문제’라고 여겼기에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를 EU에 적용해 보자. 독일은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어도 10년간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8~10%를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독일 경제 자체가 흔들린다. 자국의 상황이라면 어렵더라도 받아들이겠지만 EU 차원에서는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각국이 안고 있는 경제적 불균형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이 같은 불균형 해소를 위한 메커니즘조차 없는 것이 EU다. →회원국들 사이에서 EU 탈퇴 움직임이나 국가 간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1900년 이후 부유한 북부 유럽과 빈곤한 남부 유럽의 대립이 지금처럼 첨예했던 적은 없었다. 독일은 EU를 통해 남부 유럽의 혜택을 빨아들였고, 독일이 부유해지는 만큼 다른 국가들은 빈곤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체제의 사소한 결함은 항상 그 결함보다 훨씬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경제위기 심화, 실업 증가, 일자리 부족, 공공사업 부족으로 인한 이민자 소외 등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찾아 올라가면 유로화와 EU로 귀결된다. EU에 반발하는 움직임을 단순히 ‘인종주의’ ‘극단주의’로 폄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반EU 움직임의 중심에는 EU 체제에서 태어나 성장한 젊은 세대가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나 보수화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년 유럽선거는 20년 EU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가 될 것이다. →EU와 유로화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그렇다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답인가. -어렵겠지만 빠를수록 좋다고 확신한다. 지역 통합이라는 생각 자체는 여전히 진행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국권은 매우 신중히 존중돼야 한다. 국민국가는 역사적으로 이뤄진 산물이고, 경제적 혜택을 위해 단기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 블록’은 엄밀히 말하면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얘기했던 전체주의의 개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치학적으로 보면 EU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정치인을 뽑는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파리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자크 사피르 교수는 195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10대학을 거쳐 1996년부터 파리고등사회과학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8년 러시아 경제의 붕괴 양상과 진행과정을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사회변동과 제도, 규칙의 역할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탈세계화’ 진영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저서로 ‘제국은 무너졌다’ ‘경제학자는 민주주의의 반대자인가’ 등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2001년 금융경제 분야 최고 권위의 ‘튀고르상’을 수상했다.
  • 로마 오페라극장 130년 서울서 떠나는 시간여행

    로마 오페라극장 130년 서울서 떠나는 시간여행

    이탈리아 오페라의 성지, 로마 오페라극장이 자랑하는 의상과 무대가 서울로 옮겨왔다. 내년 1월 5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는 ‘눈으로 듣다: 로마 오페라극장 의상·무대디자인 100선’이다. 로마 오페라극장은 1880년 개관 이후 푸치니의 ‘토스카’를 1900년 초연하는 등 엔리코 카루소, 루치아노 파바로티, 마리아 칼라스, 폰 카라얀 등 거장들이 잇따라 거쳐간 이탈리아 오페라의 요람이다. 극장은 조각가 자코모 만주, 추상화가 조르주 데 키리코 등 20세기 대표 예술가들을 무대로 불러들여 치밀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무대 미술을 구현해 냈다. 덕분에 극장은 이들이 손수 제작한 의상과 스케치한 의상·무대 디자인 1만 1000점을 유산으로 간직하면서 이탈리아 최대의 오페라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었다. 여기서 골라내온 의상 21점과 회화 81점(의상·무대 디자인 스케치), 가면 3점 등 총 105점의 작품이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난다. 오페라 ‘로엔그린’, ‘오이디푸스 왕’, ‘로미오와 줄리엣’, ‘율리우스 시저’, ‘카르멘’ 등의 공연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입었던 의상들을 두루 볼 수 있다. 무료. (02)724-0146.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우리 동네 Secret 스토리] ‘역사·문화 보고’ 성북동

    [우리 동네 Secret 스토리] ‘역사·문화 보고’ 성북동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일제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는 일화를 남겼다. 말년을 보낸 심우장 이야기다. 1933년 지인들의 힘으로 지었는데 8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비탈길에 꼿꼿이 서 있다. 낡고 낡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야 해 지나치기 일쑤였는데 최근 성북구에서 큰길가에 조그만 공원을 들여놨다. ‘님의 침묵’ 시비와 함께 돌 의자에 앉은 만해 동상이 발길을 붙든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북악산 아래, 한양도성 위에 자리한 성북동엔 전통의 숨결이 가득하다. 곳곳이 역사이고 곳곳이 문화다. 수려한 자연 환경은 덤. 심우장 아래쪽엔 마포에서 젓갈 장사로 시작해 거상에 오른 이종석 별장이 있다. 1900년쯤 지었다는 한옥이다. 한때 소설가 이재준이 살아 이재준 가옥으로도 불린다. 길 건너 수연산방은 소설가 이태준의 옛집을 외종손녀가 전통 찻집으로 개조한 곳이다. 이태준이 작품을 집필했던 공간에서 북악산을 바라보며 운치 있게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수연산방에서 성북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간송미술관과 만난다. 일제 수탈에 맞서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고 애썼던 전형필이 세웠다. 1년에 딱 두 번, 5월과 10월에 각각 2주 동안만 소장품 가운데 주제를 정해 전시회를 열 때면 관람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미술관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우리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미술사학자이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가 살았던 전통 한옥이 나온다. 재개발로 헐릴 위기였는데 시민들이 모금 운동을 벌여 사들이고 복원해 ‘시민문화유산 1호’라 불린다. 다시 천주교 성당 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면 길상사가 나온다. 1980년대 말까지 삼청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으로 꼽히던 대원각이었다. 이곳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에 감명을 받아 시주하며 사찰로 바뀌었다. 시인 백석과 김영한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깃든 곳이자 법정이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최근 이 같은 숨결을 널리 알릴 바탕이 마련됐다. 시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된 것이다. 대규모 건축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난개발 우려도 따르는데 역사·문화 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메카로 키우겠다는 취지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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