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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 반전매력 덴버 Denver

    해외여행 | 반전매력 덴버 Denver

    Unexpected Denver 미국 로키산맥 위 해발 1,600m에 둥지를 튼 도시, 덴버Denver를 만났다. 로키의 웅장함만 기대하며 찾아갔다가 통통 튀는 젊은 도시의 반전매력에 무장 해제되고 말았다. 풍선껌의 추억으로 시작한 여행 나에게 ‘덴버’라는 이름은 어릴 적 즐겨 씹었던 ‘내 친구 덴버’ 풍선껌으로 익숙하다. 귀여운 공룡 판박이 스티커로 포장된 풍선껌 하나에 50원이었다. 콜로라도주관광청 마이클Michael Driver에게 이 이야길 했더니 실제로 미국에 ‘마지막 공룡 덴버Denver, the Last Dinosaur’라는 만화영화가 있었고 덴버가 공룡 화석으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알려준다. 그게 내가 실제 덴버에 대해 처음으로 접한 정보다. 그 정도로 생소했단 이야기다. 덴버는 미국 서부 콜로라도주의 주도다. 해발 1,600m(1마일)에 자리해 있다. 1마일 높이에 있다는 의미로 ‘마일하이시티Mile High City’라고 부른다. 이 높은 곳에 도시가 생길 수 있었던 건 금 때문이다. 1858년 금광 캠프가 설립된 뒤 행운을 캐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신흥도시로 발달했다. 오늘날 덴버는 개성 있는 미술관과 수제맥주 브루어리, 화려한 나이트라이프가 가득 채웠다. 덴버와 그 옆 도시 포트콜린스Fort Collins의 통통 튀는 매력을 만나고 돌아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덴버의 놀이터 Life Style 덴버 유행 따라잡기, 여기서 시작 오늘날 덴버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한눈에 보려면 유니온스테이션Union Station을 찾아가면 된다. “유니온스테이션은 1881년부터 100년 넘게 덴버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해 왔어요. 작년 여름부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콜로라도주관광청 리디아Lydia Cheng가 설명했다. ‘기차역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라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선 순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딱 봐도 특색 있는 상점들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금빛 조명과 푹신한 갈색 소파, 클래식한 소품들로 꾸며진 라운지는 몇 시간이고 앉아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큼지막한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역 안 가득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새롭게 문을 연 유니온스테이션의 2~4층엔 112개의 객실로 구성된 크로포드호텔The Crawford Hotel이 들어섰어요. 1층엔 콜로라도 출신 셰프 소유의 레스토랑들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디저트가게, 커피숍, 꽃집, 로컬상점 등이 입점했고요.” 그렇다고 유니온스테이션이 ‘교통 허브’ 기능을 버린 건 아니다. 암트랙Amtrack, RTD 등 버스·기차 노선과 무료 셔틀버스 등이 여전히 유니온스테이션을 지나고 있다. 2016년엔 덴버국제공항과 유니온스테이션을 30분 만에 주파하는 철도 서비스도 시작될 예정이다. 덴버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또 한 곳, 16번가 쇼핑몰 거리다.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다양한 상점들이 16km 넘게 죽 늘어서 있다. 놀라운 점은 매일 새벽 5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까지 무료셔틀버스16th Street Free Mall Ride를 운행한다는 사실. 무료셔틀버스 외 다른 차량은 16번가 도로에 진입이 금지되어 있어 길이 막힐 일도 없다. 공원도 스케일이 달라 서울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러 한강을 찾듯, 덴버 사람들이 찾는 곳이 있다. 바로 레드록스공원 & 공연장Red Rocks Park & Amphitheater이다. 거대한 붉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이곳은 덴버 시민들의 운동 장소로 인기다. 관중석으로 쓰이는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좌우로 달리며 하체 근육 단련을 하는 사람들의 진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까지 달려와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나란히 앉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그 속에 섞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넋 놓고 보고 있는데 마이클이 말을 걸었다. “기회가 된다면 여름철에 다시 와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세계적인 록그룹과 오페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즐길 수 있거든요.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나요?” 1900년대부터 비틀즈, 존 덴버, 스눕독 등 다양한 장르의 세계 정상급 가수들이 이곳에서 공연했다고. 레드록스 홈페이지에 1년 치 공연 스케줄이 모두 나와 있으니 꼭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미리 예약하는 것이 현명하다. 밤새도록 깨어 있어도 좋아 이태원 인근으로 이사한 뒤부터 클럽의 재미를 알았다. 덴버에서의 밤을 호텔방에서 맥주만 홀짝이며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다. 금요일 밤 11시, 덴버 다운타운 거리는 서울처럼 환했고 여기저기서 신나는 음악과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덴버는 나이트라이프Night Life로 유명해요. 밤늦도록 문을 여는 바, 클럽이 많으니 한번 경험해 보세요!” 리디아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을 꼬드겨 클럽행을 감행했다. 가장 ‘핫’하다는 클럽에선 여권을 챙겨가지 않아 퇴짜 맞고, 대충 보아 사람이 많아 보이는 다른 클럽에 입장했다. 한참 놀다가 알았지만 거긴 한국의 8090 추억의 가요 클럽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여행자 몰골(?)인 우리를 여권 없이 입장시켜 주었는지도. 어찌되었든 덴버에 갔다면 클럽도 좋고 바도 좋으니 나이트라이프를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댄스, 코미디, 라이브음악 등 선택지도 다양하다. 단 클럽 입구에서 퇴짜 맞지 않으려면 여권과 클럽용(?) 복장을 갖추시길. 유니온스테이션 1701 Wynkoop, Denver unionstationindenver.com 레드록스공원 & 공연장 Red Rocks Amphitheatre, 18300 West Alameda Parkway, Morrison www.redrocksonline.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맥주의 나파밸리 Craft Beer “어서 와, ‘맥주의 나파밸리’는 처음이지?” 콜로라도주는 미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맥주 애호가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브루잉Brewing’ 문화는 수많은 브루어리를 탄생시키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1980년대부터는 소규모 수제맥주 브루어리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맥주의 종류와 특색도 더욱 다양해졌다. “덴버 시내에서만 매일 200가지 넘는 종류의 크래프트 비어가 만들어져요. 매주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가 탄생하고 있죠. 거리마다 탭하우스, 브루펍, 개스트로펍 등이 넘쳐나요. 콜로라도를 ‘맥주의 나파밸리Napa Valley of Beer’라고 부르는 이유예요.” 덴버도 좋지만 사실 콜로라도주에서 크래프트 비어로 가장 유명한 도시는 따로 있다. 덴버에서 자동차로 1시간 15분 거리에 있는 포트콜린스Fort Collins다. 인구 15만의 아기자기한 이 도시에서 콜로라도주 전체 맥주 생산량의 70%가 만들어진다. “콜로라도주에 약 300개의 브루어리가 있고, 그중 포트콜린스에 있는 건 약 16개뿐이에요. 적은 브루어리 숫자에 비해 생산량이 많은 건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브루어리가 2개나 있기 때문이죠.” 뉴벨지움브루어리New Belgium Brewery는 미국에서 3위, 오델브루잉컴퍼니Odell Brewing Company는 미국에서 5위 규모라고. 포트콜린스는 CNN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0위권에 꾸준히 들어 온 도시이기도 하다. 자전거 문화가 발달해 어딜 가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포트콜린스를 찾아간 첫날 저녁, 핑크빛 석양이 아름답게 내려앉은 ‘올드타운Old Town’을 걸었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영감을 받았다는 하늘색 지붕 건물과 로컬디자이너들의 의류·액세서리·인테리어소품숍, 80년 역사의 베이커리 카페와 캐주얼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오밀조밀 모여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New Belgium Brewery ‘뉴 벨기에’에서 맛보는 11가지 맥주 ‘뉴벨지움브루어리’의 첫인상은 이랬다. 야외 테라스 옆에 일렬로 주차된 자전거, 맥주잔 하나씩 손에 들고 대화삼매경에 빠진 젊은이들, 아이를 데려와 맥주를 즐기는 가족, 빨간 푸드트럭과 손 글씨 메뉴판,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미국 소도시의 즐거운 맥주 문화가 한 장면에 다 녹아 있었다. 뉴벨지움은 포트콜린스에서 가장 인기 있고 규모가 큰 브루어리다. 미국 전체에서 3위에 꼽히는 생산량을 자랑한다. 이 브루어리의 이름이 ‘새로운 벨기에New Belgium’가 된 배경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우리의 브루어리 투어 가이드로 나선 케빈Kevin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뉴벨지움브루어리의 설립자 제프Jeff의 원래 직업은 전기엔지니어였어요. 여가시간에 집에서 맥주 만드는 것을 즐기던 그는 1988년 산악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벨기에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3주 동안 자전거를 타고 맥주로 유명한 마을의 브루어리와 펍을 찾아다니며 ‘맥주 투어’를 했어요. 제프는 여행을 마친 뒤 다시 엔지니어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아내 킴Kim이 그를 설득했죠. ‘당신은 엔지니어 일을 할 때보다 맥주를 만들 때 훨씬 행복해 보여요. 당신의 훌륭한 맥주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브루어리 사업을 해 보는 게 어때요?’라고요. 제프는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맥주 양조에만 전념하기 시작했고 1991년 6월29일 정부에서 브루어리 사업 자격을 취득했죠. 그날이 뉴벨지움브루어리가 탄생한 날입니다.” 이 브루어리의 이름이 ‘뉴벨지움’인 것, 로고가 자전거인 것, 최고 인기 맥주의 이름이 ‘팻 타이어Fat Tire’인 것은 그 배경에 이러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뉴벨지움브루어리에서는 하루 11회(1회당 정원 약 25명)의 퍼블릭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투어에 참가하면 이곳에서 만든 수제맥주를 마음껏 맛보고, 직접 탭을 당겨 맥주를 따라 보고, 맥주 양조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뉴벨지움의 역사와 경영 철학에 대한 실감나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맥주를 즐기러 온 사람들과 투어 참가자들을 합해 매일 400~500명이 이곳을 찾아온다고. 뉴벨지움브루어리 500 Linden Street, Fort Collins newbelgium.com 맥주 테스터 USD1.50, 16온스 1잔 USD4 ●친근한 거리예술의 도시 Art 16색 물감 팔레트 같은 도시 덴버에서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만나기 위해선 특별한 운이 따르지 않아도 된다. 365일 중 300일 맑은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 이 도시의 파란 하늘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건 거리 곳곳의 공공예술작품들이다. 곰, 말, 버팔로 등 동물을 모티브로 한 색색의 개성 있는 작품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덴버는 시 예산의 일부를 공공예술에 투자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어요. 모든 공공건물은 의무적으로 옥외 예술작품을 설치해야 하죠. 덴버의 명물이 된 블루베어작품명 ‘I See What You Mean’도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덴버의 예술을 대표하는 장소는 ‘덴버미술관Denver Art Museum’이다. 1893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아메리칸인디언 예술품 컬렉션을 포함해 6만8,000여 점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로키마운틴의 뾰족한 산봉우리를 본뜬 미술관 건물도 볼거리다. ‘히스토리콜로라도센터History Colorado Center’에선 콜로라도 역사 관련 전시품을 직접 만지고 눌러 보고 올라타 보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다. 또 세계적 추상화가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의 작품 2,400여 점을 볼 수 있는 ‘클리포드스틸미술관Clyfford Still Museum’, 1,600여 마리의 나비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덴버보태닉가든Denver Botanic Gardens’ 등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마일하이컬처패스Mile High Culture Pass’를 이용하면 할인된 요금으로 관람할 수 있다. 덴버미술관 Denver Art Museum, 100 W 14th Ave Pkwy, Denver www.denverartmuseum.org 화·수·목·토·일요일 10:00~17:00, 금요일 10:00~20:00, 월요일 휴관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히스토리콜로라도센터 History Colorado, 1200 Broadway, Denver www.historycolorado.org 매일 10:00~17:00 마일하이컬처패스Mile High Culure Pass 덴버의 7개 어트랙션 중 원하는 것을 골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 3일 동안 3개 어트랙션을 이용할 수 있는 ‘3일 패스’는 USD25(USD12 할인). 5일 동안 7개 어트랙션을 이용할 수 있는 ‘5일 패스’는 USD52.80(USD25 할인). 클리포드 스틸 뮤지엄Clyfford Still Museum, 덴버미술관Denver Art Museum, 덴버보태닉가든Denver Botanic Gardens, 덴버자연사박물관Denver Museum of Nature & Science, 덴버동물원Denver Zoo, 히스토리콜로라도History Colorado Center, 커클랜드미술관Kirkland Museum of Fine & Decorative Art에서 이용 가능하다. www.MileHighCulturePass.com ▶travel info Denver AIRLINE 우동 한 그릇 ‘뚝딱’ 하고 드림라이너, 어때? 현재 한국에서 덴버로 가는 직항은 없다. 가장 빠른 길은 유나이티드항공UA의 인천-나리타-덴버 노선이다. 나리타에서의 경유 시간은 약 2시간. 일본에서 먹어야 가장 맛있다는 우동 한 그릇 ‘뚝딱’ 하고 면세점에서 일본 생초콜릿 몇 개 사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리타-덴버 노선에선 보잉사 항공기종 중 으뜸이라는 ‘B787 드림라이너’가 운항한다. 드림라이너는 쾌적한 기내환경을 제공하는 기재로 알려져 있는데, 창문 크기가 타 항공기보다 30% 더 크고 천장 높이도 15~20cm 높다. 타 항공기보다 기내 압력이 낮고 습도가 높아 피곤함과 건조함이 덜한 것도 장점이다. 비행 소요 시간은 인천에서 나리타까지 2시간 15분, 나리타에서 덴버까지 10시간 35분. www.kr.united.com Hotel ‘팝아트’ 같은 호텔 커티스The Curtis 덴버 다운타운 심장부에 위치한 개성 강한 호텔. 알록달록한 인테리어와 독특한 그림, 소품들이 ‘팝아트’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체크인 할 때 달달한 초콜릿쿠키와 호텔 근처 스타벅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커피 쿠폰을 하나씩 나눠 준다. 근처에 밤 늦게까지 문을 여는 펍과 클럽이 많아 교통편 걱정 없이 놀 수 있다. 1405 Curtis Street, Denver www.thecurtis.com 캠핑 온 듯 즐겨 봐 캔들우드 스위트Candlewood Suites 모든 객실이 스위트로 구성된 콘도형 호텔이다. 부엌에는 큼지막한 냉장고와 널찍한 조리 공간, 식탁, 각종 조리도구와 식기가 깔끔하게 갖춰져 있다. 호텔 바로 앞에 대형 마트가 있어 장을 보기도 쉽다. 객실에 갖춰진 물품 외에 보드게임, 믹서기, 바비큐 시설 등을 호텔에서 대여할 수 있다. 2014년 12월2일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신상 호텔이라 더 깨끗하다. 314 Pavillion Lane, Fort Collins CandlewoodSuites.com Restaurant ‘핫’한 멕시칸 레스토랑 타마요Tamayo 요즘 덴버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멕시코 퓨전 레스토랑. 멕시코에서 성장한 미국의 유명 셰프 리차드Richard Sandoval의 여러 레스토랑 중 하나다. 감칠맛 나는 아보카도소스, 살사소스에 찍어 먹는 나초가 일품이다. 마가리타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1400 Larimer Street, In Larimer Square, Denver www.richardsandoval.com/tamayo 스테이크와 함께 수제맥주 한잔 메인라인Mainline 포트콜린스 올드타운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맛있는 수제맥주와 함께 스테이크, 베이비백립, 감자튀김 등 전형적인 미국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격도 참 착하다. ‘라지 플레이트’에 속하는 메뉴인 뉴욕스트립 스테이크가 USD22, 베이비백립 하프사이즈 USD12 등이다. 다양한 종류의 생맥주는 1잔당 USD5. 125 South College Ave, Fort Collins www.mainlinefoco.com Shopping 명품부터 미국 브랜드까지 한곳에 체리 크릭Cherry Creek 세포라, 아베크롬비, 코치, 갭 등 인기 미국 브랜드부터 오메가, 루이비통, 티파니, 버버리 등 명품까지 160개 매장이 한곳에 모인 대형 쇼핑센터다. 여행객들에게 제공하는 ‘쇼핑 패스포트Passport to Shopping’를 이용하면 60여 개 매장에서 추가 할인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3000 East First Avenue, Denver 월~토요일 10:00~21:00 일요일 11:00~18:00 shopcherrycreek.com 글·사진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유나이티드항공 www.kr.united.com, 콜로라도관광청 www.colorado.com
  • [포토+] 中 저장성에 ‘짝퉁 원명원’ 개장… 입장료 18만원

    [포토+] 中 저장성에 ‘짝퉁 원명원’ 개장… 입장료 18만원

    중국 저장성에 실물 크기의 복제 원명원(圓明園)이 10일 개장했다. 11일 신경보에 따르면 민간기업인 헝덴그룹이 300억위안(5조2800억원)을 투자한 원명신원(圓明新園)이 저장성 둥양시 헝뎬진에 1기 공사를 마무리하고 손님맞이에 나섰다. 기획에서 1기 마무리까지 7년이 소요된 원명신원은 공사기간 토지허가와 자금출처, 베이징 원명원과의 지적재산권 침해 논란 등 오랜 분쟁을 겪었다. 베이징의 원명원은 청나라 황실정원으로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당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파괴됐다가 일부 복원됐으나 1900년 다시 완전히 불타고 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해 중국의 외세 수탈 피해의 상징으로 꼽히는 문화유적이다. 헝덴그룹 명예회장 쉬원룽(徐文榮)은 베이징 원명원은 중국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국치로 유적으로 보호해야 하지만 헝덴의 원명신원은 당시 도면에 근거해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어서 지적재산권 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원명신원 가운데 이미 개방한 춘원(春苑)의 입장료는 280위안(4만9000원), 야간유람구역도 280위안, 얼음, 눈 조각관과 야생동물원도 별도 요금이 책정돼 원명신원을 모두 둘러보는 데는 1000위안에 가까운 입장료가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하! 우주] 우리 태양계의 크기, 과거 학자들은 어떻게 쟀을까?

    [아하! 우주] 우리 태양계의 크기, 과거 학자들은 어떻게 쟀을까?

    -천문학자들의 줄자 '우주 거리 사다리’(2) 삼각법으로 알아낸 태양계의 크기 달까지의 거리를 자로 재듯이 정확하게 측정한 히파르코스의 후예는 무려 1,800년 뒤에야 나타났다. 이탈리아 출신의 천문학자 조반니 카시니가 그 주인공으로, 그가 발견한 토성의 카시니 간극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사람이다. 1625년 니스에서 태어난 카시니는 일찍이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겨우 25살 나이에 볼로냐 대학의 천문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특히 행성 관측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 1665년 목성의 대적반 변화를 관찰, 목성의 자전주기가 9시간 56분임을 밝혔고, 이듬해에는 비슷한 방법으로 화성의 자전주기가 24시간 40분임을 확인했다. 카시니가 태양까지의 거리를 재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도전한 것은 그가 프랑스 루이 14세의 초청을 받아 파리 천문대장에 취임, 거금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천문학자가 되었을 때였다. 당시 태양과 각 행성들 간의 거리는 케플러의 제3법칙,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의 세제곱은 그 공전주기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공식에 의해 상대적인 거리는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거리가 알려진 게 없어 태양까지의 절대 거리를 산정하는 데는 쓸모가 없었다. 카시니는 먼저 화성까지의 거리를 알아내고자 했다. 방법은 역시 시차(視差)를 이용한 삼각법이었다. 시차를 알고 두 지점 사이의 거리, 곧 기선의 길이를 알면 그것을 밑변으로 하여 삼각법을 적용해서 목표물까지의 거리를 구할 수가 있다. 이 기법은 이미 1,900년 전 히파르코스가 38만km 떨어진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써먹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좀더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와의 거리를 정확하게 재기 위해서는 좀더 긴 기선이 필요하다.  카시니는 먼저 제1단계로 시차를 이용해 화성까지의 거리를 구하기로 했다. 마침 화성이 지구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는 곧 큰 시차를 얻을 수 있는 기회임을 뜻한다. 1671년, 카시니는 조수 장 리셰르를 남아메리카의 프랑스 령 기아나의 카옌으로 보냈다(기아나는 ‘빠삐용’에 나오는 유명한 유형지 악마의 섬이 있는 곳이다). 파리와 카옌 간의 거리 9,700km를 기선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리셰르는 화성 근처에 있는 몇 개의 밝은 별들을 배경으로 해서 화성의 위치를 정밀 관측했고, 동시에 파리에서는 카시니가 그와 비슷한 측정을 해서 화성의 시차를 구했다. 계산 결과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화성까지의 거리는 6400만km라는 답이 나왔다. 이 수치를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사이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케플러의 제3법칙에 대입하니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1억 4000만km로 나왔다. 이것은 실제값인 1억 5000만km에 비하면 오차 범위 7% 안에 드는 훌륭한 근사치였다. 오차는 화성의 궤도가 지구와는 달리 길죽한 타원인 데서 생겨난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는 태양과 행성, 그리고 행성 간의 거리를 최초로 밝힌 의미 있는 결과로, 인류에게 최초로 태양계의 규모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당시 태양계는 토성까지로, 지구-태양 간 거리의 약 10배였다. 이로써 인류는 태양계의 크기를 최초로 알게 되었다. ‘광속’도 천문이 알려준 것이다 태양-지구간 거리는 천문학에서 ‘천문단위’(Astronomical Unit 또는 AU)라 하며, 태양계를 재는 잣대로 쓰인다. 천문단위는 단지 길이의 단위일 뿐만 아니라 천문학에서 중요한 상수이다. 태양계 내의 행성이나 혜성 등의 천체 사이의 거리는 천문단위를 이용함으로써, 취급하기 쉬운 크기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때, 화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0.37AU 정도이고, 태양에서 토성까지는 약 9.5AU, 가장 먼 행성 해왕성까지는 약 30AU가 된다. 30AU부터 100AU까지에는 명왕성을 비롯한 태양계 외부 천체가 분포하고 있다. 태양계의 경계이며 혜성의 고향이라고 여겨지는 ‘오르트 구름’은 수만 천문단위에 걸쳐져 있으며, 천문단위가 사용되는 한계이다. 빛이 8분 20초를 달리는 거리인 1AU, 곧 1억 5000만km는 시속 100km의 차로 밤낮 없이 달려도 170년이 걸리는 엄청난 거리지만, 우주를 재기에는 턱없이 작은 단위다. 그래서 별이나 은하까지 거리를 재는 데는 광년(Light Year 또는 LY)을 쓴다. 빛이 1년간 달리는 거리로, 약 10조km쯤 된다. 그런데 카시니 시대에 이르도록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 또는 속도가 있는 건지 무한대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인류에게 빛이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역시 ‘천문’이었다. 카시니는 갈릴레이가 발견한 목성의 4개 위성에 대한 운행표를 계산했는데, 이것은 해상에서의 경도(經度) 결정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의 보정을 위해 카시니는 제자인 덴마크 출신 올레 뢰머에게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는 1675년부터 목성에 의한 위성의 식(蝕)을 관측하여, 식에 걸리는 시간이 지구가 목성과 가까워질 때는 이론치에 비해 짧고, 멀어질 때는 길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성의 제1위성 이오의 식을 관측하던 중 이오가 목성에 가려졌다가 예상보다 22분이나 늦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이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든 한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지나갔다. “이것은 빛의 속도 때문이다!” 이오가 불규칙한 속도로 운동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분명 지구에서 목성이 더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 거리만큼 빛이 달려와야 하기 때문에 생긴 시간차였다. 뢰머는 빛이 지구 궤도의 지름을 통과하는 데 22분이 걸린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지구 궤도 반지름은 이미 카시니에 의해 1억 4천만km로 밝혀져 있는만큼 빛의 속도 계산은 어려울 게 없었다. 그가 계산해낸 빛의 속도는 초속 21만 4,300km였다. 오늘날 측정치인 29만 9,800km에 비해 28%의 오차를 보이지만, 당시로 보면 놀라운 정확도였다. 무엇보다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는 기존의 주장에 반해 유한하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한 것이 커다란 과학적 성과였다. 이는 물리학에서 획기적인 기반을 이룩한 쾌거였다. 1676년 광속 이론을 논문으로 발표한 뢰머는 하루아침에 광속도 발견으로 과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제자가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카시니는 가만 있지 않았다. 그는 이오가 늦게 나타나는 것은 그 자체의 궤도가 불규칙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제자를 깎아내렸다. 목성 위성을 수도 없이 보아왔던 카시니는 자신은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감추어지지 않는 법이다. 빛의 입자설을 내세웠던 뉴턴과, 그에 맞서 파동설을 내세웠던 하위헌스가 모두 뢰머를 지지하고 나서자 카시니의 주장은 자연 무시되고 말았다. 우주에서 광속보다 빠른 것은 없다. 그러나 이 광속으로도 우주의 크기를 재기에 버거울 만큼 우주는 광대하다. 3000억 개의 별들이 버글거리고 있는 우리은하지만, 별들과의 평균 거리는 약 4광년이다. 그러니 다른 은하와 충돌하더라도 별들끼리 부딪힐 확률은 아주 낮다. 동해 바다에서 미더덕 두 개가 우연히 부딪힐 확률과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천문학자는 별들 사이의 아득한 거리에는 신의 배려가 깃들어 있다고 표현했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센타우리 프록시마란 별인데, 거리는 4.2광년이다. 빛이 거기까지 갔다오는 데 8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바로 이웃에 다녀오는 데 8년이 걸린다면 광속도 우주에 비하면 달팽이 걸음과 다를 게 없다. 한편, 카시니는 행성관측에 매진해, 토성 근처에서 4위성을 발견하고, 토성 고리에서 이른바 카시니 간극을 발견하는 등, 천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고 1712년 생을 마감했다. 향년 87세. 그의 이름은 1997년에 발사된 토성 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 호’와 화성의 지명에 남아 있다. 그가 죽은 지 13년 뒤인 1725년, 영국의 천문학자 브래들리가 광행차(光行差)를 발견하여 빛의 속도가 유한함을 결정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뢰머의 광속 이론은 완전히 입증되었다. 지하의 카시니도 그제야 제자의 업적을 인정해줬을까? ​중학교 중퇴자가 최초로 별까지 거리를 쟀다 별까지의 거리를 재려면 시차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지구 궤도 반지름을 기선으로 삼아 별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낼 수 있다. 이 궤도 반지름을 기선으로 삼는 별의 시차를 연주시차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천체를 태양과 지구에서 봤을 때 생기는 각도의 차이를 연주시차라는 말이다. ​‘연주(年周)’라는 호칭이 붙는 것은 공전에 의해 생기는 시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주시차를 구할 때, 관측자가 태양으로 가서 천체를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지구가 공전궤도의 양끝에 도달했을 때 관측한 값을 1/2로 나누어 구한다. 이것만 알면 삼각법으로 바로 목표 천체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한 이래, 천문학자들의 꿈은 연주시차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지구가 공전하는 한 연주시차는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 공전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도 직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후 3세기가 지나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연주시차는 난공불락이었다. 불세출의 관측 천문가 허셜도 평생을 바쳐 추구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이 연주시차의 발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가까운 별들의 평균 거리가 10광년으로 칠 때, 약 100조km가 되는데, 기선이 되는 지구 궤도의 반지름이라 해봐야 겨우 1.5억km이다. 무려 1,000,000 대 3이다. 어떻게 그 각도를 잴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극한의 정밀도를 요구는 대상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한 지 거의 300년 만에야 이 연주시차를 발견한 천재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중학교를 중퇴하고 천문학을 독학한 프리드리히 베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천재는 삶의 내력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베셀의 최대 업적이 된 연주시차 탐색은 그가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 대장으로 있을 때인 1837년부터 시작되었다. 별들의 연주시차는 지극히 작으리라고 예상됐던만큼 되도록 가까운 별로 보이는 것들을 대상으로 선택해야 했다. 고유 운동이 큰 별일수록 가까운 별임이 분명하므로 베셀은 가장 큰 고유운동을 보이는 백조자리 61을 목표로 삼았다. 이 별은 5.6등으로 어두운 편이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베셀이 굳이 선택한 것이다. 베셀은 1837년 8월에 백조자리 61의 위치를 근접한 두 개의 다른 별과 비교했으며, 6달 뒤 지구가 그 별로부터 가장 먼 궤도상에 왔을 때 두 번째 측정을 했다. 그 결과 배후의 두 별과의 관계에서 이 별의 위치 변화를 분명 읽을 수 있었다. 데이터를 통해 나타난 백조자리 61번별의 연주시차는 약 0.314초각이었다. 이 각도는 빛의 거리로 환산하면 약 10.28광년에 해당한다. 실제의 10.9광년보다 약간 작게 잡혔지만, 당시로서는 탁월한 정확도였다. 이 별은 그후 ‘베셀의 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지구 궤도 지름 3억km를 1m로 치면, 백조자리 61은 무려 30km가 넘는 거리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연주시차를 어떻게 잡아내겠는가. 그 솜털 같은 시차를 낚아챈 베셀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10광년의 거리는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그러나 그 거리 또한 알고 보면 솜털 길이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우리는 알게 된다.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의 아들이자 런던 왕립천문학회 회장인 존 허셜 경은 베셀의 업적을 이렇게 평했다.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천문학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성공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토록 넓으며, 우리는 그 넓이를 잴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한 것이다.” ​베셀의 연주시차 측정은 우주의 광막한 규모와 지구의 공전 사실을 확고히 증명한 천문학적 사건으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별들의 거리에 대한 측정은 천체와 우주를 물리적으로 탐구해나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독학자 베셀은 천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씨줄날줄] 밀라노 엑스포/서동철 논설위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스시가 대표하는 일본 음식이 세계 음식의 반열에 오른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그것도 건강한 고급 먹거리로 세계인의 뇌리에 벌써부터 똬리를 굳건하게 틀고 있다. 반면 한국 음식의 세계 진출은 아직 초창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을 부러워하는 것은 좋지만, 시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두 나라 문화의 서구 진출 역사가 그만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 미술이 19세기 유럽 미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고흐와 마네, 모네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일본 미술에 열광했다. 고흐 특유의 선명한 색감과 강렬한 터치도 우키요에(浮世繪)의 직접적인 영향일 것이다.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시대(1603~1867) 서민의 삶을 담은 풍속화를 가리킨다. 실제로 고흐는 안도 히로시게의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 같은 그림을 베끼며 일본 화풍을 연구했다. 자신의 그림 배경에도 우키요에를 자주 등장시켰다. 일본은 당시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청화백자의 주요 수출국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한국 도공을 납치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하이테크였던 청화백자 제조 기술을 습득한 결과다. 이전에는 청화백자의 공급을 중국이 독점했지만, 17세기 중반부터는 일본이 양대 수출국의 하나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유럽과 이슬람 세계는 일본을 ‘문화 산업 선진국’으로 인식했고, 19세기 중반 국제 박람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일본 문화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이렇게 유럽 사회에서 일본 문화를 동경하는 분위기를 ‘자포니즘’, 동경하다 못해 아예 따라하는 현상을 ‘자포네스크’라고 불렀다. 인상파의 일본 사랑이 바로 그렇다. 일본 음식, 즉 일식은 이런 분위기를 틈타 서구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일본 문화 열풍 속에서 일식은 누구나 한번 먹어 보고 싶은 음식이었다. 일식이 갖는 시각적인 아름다움도 우키요에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서구인들을 매료시키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현지인들이 먼저 원했던 만큼 일식은 갑(甲)의 행세를 하며 서구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한국 음식, 즉 한식은 어떤가. 한국 문화의 서구 진출은 일본보다 크게 늦었다. 대한제국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해 한국관을 짓는 등 의욕을 보였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본격적인 유럽 진출은 이제 수십년 정도의 역사를 헤아릴 뿐이다. 그러니 서구에서 한국 문화의 이미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식은 철저히 을(乙)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2015 밀라노 엑스포’가 오늘 개막한다. 한국관은 달항아리를 형상화한 모양이라고 한다. 한식이 20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관람객 모두에게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식 세계화’에서 조급증은 떨쳤으면 한다. 역사를 살펴보아도 이제 시작이 아닌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네팔 대지진 참사] 공동주택 40% 내진설계 안해… “서울 강진 땐 사상자 11만명”

    [네팔 대지진 참사] 공동주택 40% 내진설계 안해… “서울 강진 땐 사상자 11만명”

    “드문드문 보이는 빨간색 표시가 관측된 ‘P파’를 뜻합니다. 지진파의 한 종류인 P파는 초속 7~8㎞ 속도로 도달하지만 진폭은 작아 피해가 적습니다. 이 P파가 동시다발적으로 관측될 때 지진을 의심해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갑니다.” 27일 오후 서울 동작구 기상청 국가지진·화산감시센터. 국내 127개 지진·화산관측소에서 보내오는 지진파를 전달받아 분석하는 이곳에서는 네팔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25일에도 어김없이 지진파를 감지했다. 이지민 기상청 지진화산감시과 연구관은 “네팔 현지시간으로 25일 낮 12시쯤 지진이 일어났고, 7분 뒤 이곳에서도 지진파가 관측됐다”며 “우리나라와 네팔이 직선거리로 4000㎞가 넘기 때문에 시간차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은 우리나라에서도 규모 6.5의 강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1978년 9월 충북 속리산 부근에서 진도 5.2의 지진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지난해 충남 태안 해역(규모 5.1)까지 규모 5.0 안팎의 지진은 여러 차례 관측된 바 있다. 기상청은 지난 1월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면 자동 경보가 발령되는 지진조기경보 시스템을 도입했다. 덕분에 지진 발생 후 50초 안에 경보가 발령되지만, 아직 예보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 연구관은 “지진은 판과 판이 부딪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예측이 아예 불가능하다”면서 “판과 판 사이에 위치해 지진 피해가 잦은 일본조차도 1900년대 초부터 관측된 지진 자료를 축적해 확률적으로 발생 시기를 겨우 가늠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에서도 지진 발생 시 피해 규모를 예측하는 연구는 이뤄지고 있다. 2010년 국민안전처가 실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서울 중구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일어나면 전국에서 사상자 11만 5200여명과 이재민 10만 4000여명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규모 7.0 지진이 일어난다면 67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지만, ‘재앙’이 닥쳤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은 미진하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실에 따르면 내진설계 대상인 전국 공동주택 30만 7597동 가운데 18만 5334동(60.3%)만 실제로 내진설계가 이뤄졌다. 특히 인구 과밀화지역인 수도권 지역의 공동주택 내진설계 비율은 30~40%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1988년부터 6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 건물에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는 기준이 제정됐다. 2005년에는 3층 이상, 연면적 1000㎡ 이상으로 기준이 강화됐다. 하지만 1988년 이전 건물에 내진설계를 강제할 법은 없다. 권영덕 도시공간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건축물의 70~80% 이상이 1988년 내진설계 규정 도입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며 “정부가 주택기금을 활용해 내진설계를 보강하는 아파트 리모델링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은종 한양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내진설계 기준은 강화됐지만 구조기술사가 내진설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6층 이상 건물만 해당한다. 또한 층수 관계없이 모든 건축물을 내진설계하도록 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2층 이하, 연면적 1000㎡ 미만 건물은 내진설계 대상으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내진설계 대상이 아닌 민간건물이 내진설계를 보강하면 재산세·취득세를 감면해 주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활성화되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1900년 전 파피루스에 적힌 ‘숙취해소법’ 보니

    1900년 전 파피루스에 적힌 ‘숙취해소법’ 보니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서 ‘숙취 해소법’과 관련한 내용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런던 옥스퍼드대학과 런던대학교 합동 연구진은 최근 고대 이집트 도시인 옥시링쿠스에서 발견된 1900년 전 파피루스를 연구하던 중 위와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스어로 쓰인 이 파피루스에는 숙취로 인한 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안 월계수(alexandrian laurel)라 부르는 관목의 잎을 사용하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이 월계수의 잎사귀를 잘 엮어 이를 목어 걸어주면 증상이 완화된다는 것. 이 파피루스에는 숙취로 인한 두통해소법 외에도 궤양이나 치액, 치통, 병 등을 예방할 수 있는 ‘고대 레시피’ 24개가 빼곡하게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숙취해소 방법이 담긴 파피루스 옆에서 고대 그리스 의사로 알려진 갈레노스 (130-200)와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적혀진 것으로 보이는 의서 파피루스 11점을 추가로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이집트 파피루스 전문가인 마가렌트 마운트포드 박사는 “이 문서들은 1900년 전 고대 인류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내포한다”면서 “예컨대 숙취해소를 위해 월계수 잎을 목에 감싸는 방법은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위약효과(플라시보 효과)가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파피루스 해석을 담당한 전문가들은 고대 파피루스에 숙취해소법이 언급된 이유에 대해 “고대인들이 물 보다는 와인을 더 많이 마시는 습관 때문에 자주 숙취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파피루스가 발견된 옥시링쿠스 지역은 지금까지 총 50만 점이 넘는 파피루스가 발견된 고대 도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900년 전 파피루스에 언급된 ‘숙취해소법’

    1900년 전 파피루스에 언급된 ‘숙취해소법’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서 ‘숙취 해소법’과 관련한 내용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런던 옥스퍼드대학과 런던대학교 합동 연구진은 최근 고대 이집트 도시인 옥시링쿠스에서 발견된 1900년 전 파피루스를 연구하던 중 위와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스어로 쓰인 이 파피루스에는 숙취로 인한 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안 월계수(alexandrian laurel)라 부르는 관목의 잎을 사용하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이 월계수의 잎사귀를 잘 엮어 이를 목어 걸어주면 증상이 완화된다는 것. 이 파피루스에는 숙취로 인한 두통해소법 외에도 궤양이나 치액, 치통, 병 등을 예방할 수 있는 ‘고대 레시피’ 24개가 빼곡하게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숙취해소 방법이 담긴 파피루스 옆에서 고대 그리스 의사로 알려진 갈레노스 (130-200)와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적혀진 것으로 보이는 의서 파피루스 11점을 추가로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이집트 파피루스 전문가인 마가렌트 마운트포드 박사는 “이 문서들은 1900년 전 고대 인류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내포한다”면서 “예컨대 숙취해소를 위해 월계수 잎을 목에 감싸는 방법은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위약효과(플라시보 효과)가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파피루스 해석을 담당한 전문가들은 고대 파피루스에 숙취해소법이 언급된 이유에 대해 “고대인들이 물 보다는 와인을 더 많이 마시는 습관 때문에 자주 숙취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파피루스가 발견된 옥시링쿠스 지역은 지금까지 총 50만 점이 넘는 파피루스가 발견된 고대 도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돌강이 흐른다…세월을 빚는다

    돌강이 흐른다…세월을 빚는다

    비슬산(琵瑟山, 1084m)은 흔히 ‘대구의 어머니 산’이라 불린다. 대구를 상징하는 팔공산에 빗댄 표현이지 싶다. 산정에는 옹골찬 바위들이 시립해 있고, 비탈을 따라서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암석들이 널려 있다. 말잔등 같은 능선 위엔 참꽃(진달래) 군락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부드럽게 팔을 뻗은 지맥들은 대구의 들녘과 굽이치는 낙동강을 깊게 껴안는다. 그 위로 석탑 한 기가 다소 힘겨운 듯한 자태로 서 있다. 대견사지 삼층석탑이다. 어렵사리 세월의 강을 건너오느라 외모는 다소 남루해졌지만, 꼿꼿한 기상만은 잃지 않은 듯하다. 비슬산은 4월이 되면 늘 산꾼들의 머릿속을 맴돈다. ‘참꽃’ 때문이다. 해마다 봄이면 정상 아래 너른 고위평탄면에 참꽃이 만든 연분홍 세계가 펼쳐진다. 이 모습 보려고 산꾼들이 그야말로 장사진을 친다. 하지만 비슬산이 산꾼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이뿐 아니다. 세월의 흔적 켜켜이 쌓인 암석들이 펼쳐 낸 ‘장사진’도 꽃 못지 않게 볼 만하다. 비슬산을 ‘암석 전시장’이라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산비탈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듯… 비슬산은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다. 비슬산 휴양림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암괴류(岩塊流, 천연기념물 제435호)가, 왼쪽으로는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암괴류는 둥글거나 각진 바위덩어리들이 산비탈이나 골짜기를 따라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일컫는다.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모습을 하고 있어 ‘돌강’ 또는 ‘바위강’이라 부른다. 비슬산 암괴류는 해발 약 1000m의 산정에 터를 잡은 대견사 인근부터 시작된다. 여러 개의 암괴류가 각기 다른 산비탈을 따라 내려오다가 해발 750m 지점에서 합류해 450m 지점까지 이어지는데 길이 약 2㎞, 최대 폭 80여m에 달한다. 세계 최대 규모다. 기이한 형태의 암석들을 병풍처럼 두른 대견사는 개창 연대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연스님이 고려 고종 4년(1227) 22세 때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한 뒤 초임 주지로 22년간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사찰이기도 하다. 대견사는 일제강점기 때 폐사됐었다. 경내 일곱 건축물의 가람배치(칠당가람, 七堂伽藍)가 일본의 대마도를 바라보는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산정에 높이 앉은 대견사가 째려보는 탓에 일본인의 기가 꺾인다는 것이다. 이후 흔적으로만 남았던 ‘대견사지’ 위에 현재의 대견사가 중창된 건 지난해 3월 1일이었다. 일제에 항거해 만세운동을 벌였던 3·1절에 산문을 열어 강제 폐사의 수모를 씻겠다는 뜻이 담겼다. ●100여년 만에 복원된 신라시대 대견사 절집 앞은 절벽이다. 이 깎아지른 암봉 위로 석탑 한 기가 서 있다. 신라시대 세워진 대견사지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42호)이다. 수차례의 전란과 강제 폐사에 이어 지난 2009년 낙뢰를 맞아 탑 일부가 훼손되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옛 모습를 잃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탑 주변은 그야말로 암석 전시장이다. 앞으로는 암괴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특이한 형상을 한 ‘토르(tor)’도 곧잘 눈에 띈다. 토르는 부분 침식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자잘한 물질은 제거되고 특이한 형태의 모습만 남게 된 대형 화강암이다. 석탑 주변의 거북바위, 부처바위, 형제바위, 스님바위 등이 토르다. 특히 톱(칼)바위는 토르이면서도 비슬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덜의 형성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대견사 위에서부터 비슬산 정상 아래까지는 고위평탄면이 펼쳐져 있다. 봄이면 참꽃이 무리 지어 피어 방문객을 경탄케 하는 곳이다. 해마다 4월 하순께 절정을 이루는데, 올해는 18일부터 참꽃 축제가 열린다. ●문익점 후손들이 절터에 일군 인흥마을 비슬산의 지맥이 안온하게 감싼 땅 화원읍에 남평 문씨 세거지지인 인흥마을이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인흥사 절터 자리에 일군 마을이다. 인흥사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전해지는 절집이다. 마을에 들면 날아갈 듯한 처마의 한옥들과 세월의 흔적이 더께로 쌓여 있는 돌담길, 그리고 오래된 나무들이 단박에 이방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는 살림집과 재사, 문고 등이 돌담을 경계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대부분의 집들은 문이 잠겼다.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을 이겨 만든 돌담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관광객을 위해 문을 연 집은 종가인 죽헌종택과 수백당이다. 특히 노송과 어우러진 수백당의 정취는 정말 일품이다. 주로 손님을 맞거나 일족의 모임 장소로 이용됐던 곳으로, ‘우물 정’(井)자 형태의 우물과 대나무로 경계를 이룬 뒷간 등이 옛 건물과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 터를 잡은 광거당(廣居堂)에도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 등 볼거리가 많지만 아쉽게도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다. ●천리마 한 쌍의 전설 깃든 마비정 벽화마을 인흥마을에서 산자락을 거슬러 오르면 마비정(馬飛亭) 벽화마을이다. ‘비무’와 ‘백희’ 등 천리마 암수 한 쌍의 애달픈 전설이 깃든 마을이다. 대도시 대구에 속해 있지만, 대중교통이라곤 하루 8번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고작일 정도로 도심 속 오지로 꼽히기도 한다. 마을에 들면 토담을 따라 그려진 벽화들이 외지인을 맞는다. 쟁기질하는 황소, 난로 위에 도시락을 빼곡하게 올려놓은 옛 교실 풍경 등 향수를 자극하는 벽화들이다. 200년 된 초가집과 동네 할머니들이 음료수와 과자 등을 파는 이른바 ‘점방’도 시선을 끈다. 화원읍 낙동강 변의 사문진나루터는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를 들여온 장소다. 마비정 벽화마을에서 15분 남짓한 거리다. 안내판은 1900년 3월 대구에 온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탐 부부가 미국에서 가져온 피아노를 배편으로 사문진나루터까지 싣고 온 뒤 대구 시내 사택으로 옮겼다고 적고 있다. 당시 피아노 소리를 처음 들은 지역 주민들은 빈 나무통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귀신통’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귀신통 납시오’란 조형물과 피아노 장승 등도 세웠다. 사문진나루터는 1932년 나운규 주연의 ‘임자 없는 나룻배’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명화’로 꼽히는 ‘임자 없는 나룻배’는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정신과 리얼리즘이 결합된 우리 영화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나루터 초입에 세워져 있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3) →가는 길 : 비슬산 대견사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나들목으로 나가 현풍·비슬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된다. 인흥마을, 마비정 마을 등을 먼저 보겠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인 화원·옥포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낫다. 직선거리로는 남대구나들목이 가깝지만 대구 시내를 관통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비슬산 휴양림에서 대견사까지는 ‘반딧불이 전기차’를 타고 오른다. 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견사 입구까지 5.8㎞를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편도 30분으로 길다. 급경사와 급커브가 반복되는 산길이라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요금은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이상 편도)이다. 비슬산 자연휴양림 614-5481. 휴양림에서 걸어서 대견사까지 오르는 건 편도 1시간 30분 이상 소요된다. 대견사 뒤편의 능선에 진달래가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는 이달 말부터는 교통 체증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맛집 : 달성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현풍면의 곰탕이다. 현풍면 성하리 인근에 원조 현풍할매집곰탕(614-2031) 등 곰탕집들이 몰려 있다. 화원읍 천내리의 교동면옥(634-9222)은 진주식 냉면을 내는 맛집이다. 대구 시내 쪽에선 안지랑 곱창골목이 유명하다. 푸짐한 돼지곱창구이를 내는 집들이 길 양쪽으로 40여곳이나 늘어서 있다. 이곳의 가게들은 재료를 공동으로 구매한다. 구입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 덕에 매콤한 양념의 돼지곱창 한 바가지를 불과 1만원 안팎에 맛볼 수 있다. 북성로 철물 공구 골목은 밤이면 포장마차촌으로 변한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연탄에 구워 먹는 불고기집들이 많다. →잘 곳 : 달성 쪽에선 비슬산자연휴양림을 추천할 만하다.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진달래 핀 산자락 속에 조성돼 있다. 가창면 삼산리, 성서공단 등에 모텔들이 있지만 낡거나 유흥가와 인접해 만족도는 떨어질 수 있다. 가족단위 여행객이라면 대구 시내에서 숙소를 찾는 게 낫다. 호텔인터불고 대구, 노보텔앰배서더 대구 등 특급호텔을 비롯해 엘디스리젠트호텔, 호텔대구, 대구그랜드호텔, 프린스 호텔 등 수준급 숙소가 있다.
  • [기고] 시간선택제, 혁신사회로 가는 길/오호영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기고] 시간선택제, 혁신사회로 가는 길/오호영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로마의 1년 휴일은 120일 전후, 하루 노동시간은 7시간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중세 수도원의 하루 노동시간은 6시간 내외였다. 100년 전 한국 머슴들 역시 연간 200일 정도만 일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노동시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어졌다. 산업혁명의 영향이 크다. 다행히 근로시간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미국의 경우 생산직 근로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1900년 55시간에서 현재 34시간 수준으로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079시간으로 멕시코의 2237시간에 이어 2위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712시간이고, 가장 짧은 나라인 네덜란드는 1380시간, 독일은 1388시간이다. 주 40시간 근로로 볼 때 우리는 네덜란드보다 19.5주, 약 5개월 더 일하는 셈이다. 그런데 근로시간이 짧은 네덜란드나 독일이 우리보다 잘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규 근로시간, 휴가일수, 야근문화, 휴일근무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시간제근로 보급 면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2013년 기준 전체 취업자 중 시간제근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네덜란드 38.7%, 독일 22.4%이다. 반면 한국은 11.1%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 평균 16.8%와 비교해도 크게 낮다. 이들 국가가 짧게 일하면서도 높은 소득을 누리는 것은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날 고부가가치는 생산 과정이 아닌 혁신에서 비롯되고 있고 혁신의 주체가 되는 개인의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소수의 정규 근로자가 장시간 일하는 1960~70년대의 성공 도식은 더이상 효과가 없다. 정규 근로자의 근로부담을 줄이면서 노동시장 외부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이라는 고정된 근로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간제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확대되면 출산, 육아, 학습, 돌봄, 건강, 은퇴 및 창업 준비 등으로 전일제 근로가 어려운 인력이 노동시장에 남을 수 있게 되고 우수 인력이 노동시장에 유입된다. 시간제를 한시적 일자리가 아닌, 제대로 된 일자리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시간제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전일제 근로자보다 짧게 일하지만 근로조건 등에 차별이 없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시간제 근로자가 전일제 근로자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 성수기, 피크타임에 인력을 집중 활용하면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기존 근로자의 피로도가 낮아지므로 업무 집중도를 높일 수 있으며 산업재해도 예방할 수 있다. 핵심 인력의 이직을 막을 수 있어 효율적인 인력 운영도 가능해진다. 시간제 확대로 일자리의 질이 전체적으로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경제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 총량을 늘리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나 혁신 사회로 진입하려면 시간선택제를 확대해 사장되고 있는 우수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의 사회학] 때론 정치적, 때론 감동적… 공 하나에 메시지를 담다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의 사회학] 때론 정치적, 때론 감동적… 공 하나에 메시지를 담다

    시구(始球)는 영어로 ‘퍼스트 볼’(first ball)이다. 한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공이지만, 선수가 아닌 외부 인사가 던지기 때문에 ‘초구’(初球·first pitch)와 구분된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1900년대 초반부터 시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KBO리그도 원년인 1982년부터 시구가 행해졌다. 특히 시즌의 시작인 개막전에서 시구를 하는 것은 큰 영예다. 28일 5개 구장에서 2015시즌 개막전이 일제히 열리는 가운데 눈에 띄는 인사가 시구자로 선정돼 눈길을 끈다. 롯데와 kt가 맞붙는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고(故) 최동원 선수의 모친 김정자 여사가 시구를 한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거두며 롯데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긴 최동원은 부산은 물론 한국 야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삼성-SK전이 열리는 대구구장에서는 삼성의 원년 어린이 회원 출신 팬 박용현씨 가족이 시구와 시타, 시포를 맡았다. 두산-NC의 잠실 경기는 걸그룹 ‘AOA’의 지민, 찬미가 시구와 시타를 하고, KIA-LG의 광주 경기에서는 윤장현 광주시장과 초등학생 임지용 군이 함께 시구할 예정이다. 넥센과 한화가 맞붙는 목동에서는 걸그룹 ‘포미닛’의 전지윤이 시구자로 선정됐다. 올해 개막전에는 선수 가족과 팬, 연예인 등 다양한 계층이 시구의 영광을 안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개막전 시구는 대통령이나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인의 전유물이었다. KBO리그 출범 첫해인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MBC와 삼성의 개막전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시구를 했고, 이듬해에는 이원경 체육부 장관이 나섰다. 1984년에는 정선호 차관과 염보현 서울시장, 김찬회 인천시장이 각각 3개 구장에서 공을 던지며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역대 시구자 명단을 보면 1982~1995년 개막전 시구를 한 41명 중 35명(85.4%)이 정치인이다. 대통령이 2명, 체육부 장차관 7명, 지방차지단체장 24명, 국회와 지방의회 인사 2명이었다. 정치인들은 얼굴을 팔고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시구를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시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989년 해태-빙그레의 광주 개막전에서 영화배우 강수연이 김집 체육부 장관과 함께 연예인 중 처음으로 마운드에 섰다. 강수연은 2008년 10월에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삼성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시구를 했다. 1998년에는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안상미가 다른 종목 스포츠 선수로는 최초로 개막전 시구를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시구자 면면이 한층 다양해졌다.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가 없는 장애를 안고 미국으로 입양된 애덤 킹이 2001년 두산-해태 잠실전에서 아홉 살의 나이로 의족을 단 채 시구를 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2002년과 2004년에는 ‘불사조’ 박철순과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이름을 알린 감사용 등 은퇴한 선수들이 시구자로 나서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2006년에는 한국계 미국 프로풋볼(NFL) 스타 하인스 워드와 여덟 살에 인하대에 입학해 국내 최연소 대학생이 된 송유근군이 개막전 시구자로 초청받았다. 지난해 개막전에는 ‘빙속여제’ 이상화가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LG전에 시구자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각 구단은 이색적인 시구자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로 시즌 첫 경기를 찾은 팬들을 즐겁게 한다. 롯데는 개막전에서 고급 외제 승용차를 경품으로 내걸었다. KIA는 걸그룹 ‘여자친구’와 강남-치타의 공연을 준비했고, 현대자동차그룹 오케스트라(HPO)가 경기 개시 음악 ‘전쟁의 서막’을 연주한다. 넥센은 태권도 시범공연과 ‘턱돌이’와 함께할 새 마스코트를 선보인다. 삼성은 ‘라이온즈 메모리홀’을 운영하며 대구구장의 마지막 해를 기념하고, 두산은 9명의 두산 팬이 선수와 함께 입장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겨우내 야구를 기다려 온 팬들의 치열한 티켓 경쟁으로 5개 구장 모두 온라인 예매분은 거의 동난 상태다. KBO는 올 시즌 관중 목표를 850만명으로 잡았다. 역대 최다인 2012년의 715만 6157명보다 훨씬 많다. 10구단 kt의 가세로 경기 수가 576경기에서 720경기로 크게 늘었고, ‘야신’ 김성근 한화 감독의 복귀 등 흥행 요소가 많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500년 비밀 풀어보니 미라의 정체는 3살 여아

    500년 비밀 풀어보니 미라의 정체는 3살 여아

    잔뜩 몸을 움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페루 어린이 미라의 나이와 성별이 확인됐다. 미국 신시내티박물관은 페루 어린이 미라의 나이가 약 3살로 추정된다며 성별은 여자로 판명됐다고 최근 밝혔다. 신시내티박물관에선 전시회 '세계의 미라'가 열리고 있다. 내달 26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에선 페루에서 발견된 어린이 미라도 관객을 만나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정밀검사 결과 어린이 미라의 뼈와 장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며 외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질병의 흔적도 미라엔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영양분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돼 영양실조가 유력한 사인으로 추정됐다. 어린이 미라는 20세기 중반 리마로부터 약 25km 떨어진 엘시마에서 발견됐다. 엘시마는 기후가 덥고 건조한 곳이다. 현지 언론은 "사망한 어린이가 특별한 방법으로 매장되진 않았지만 특유의 덥고 건조한 기후가 자연 미라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라는 그간 비밀을 품고 있었다. 약 500년 된 미라로 추정됐지만 그간 나이와 성별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라를 훼손하지 않으면 정밀조사가 불가능했던 1900년대 기술의 한계 때문이었다. 어린이 미라는 1978년 한 남자에 의해 미국 샌디에고의 인류박물관에 기증됐다. 이후 줄곧 어린이 미라를 보관해온 샌디에고 인류박물관은 지난 1월 신시내티로 미라를 옮겼다. 신시내티박물관이 기획한 미라 전시회를 위해서다. 어린이 미라의 비밀은 여기에서 벗겨졌다. 신시내티박물관은 전시회를 앞두고 현지 병원과 협력해 단층촬영을 통해 미라의 나이와 성별을 밝혀냈다. 미라가 발견된 지 약 40년 만이다. 신시내티 박물관 관계자는 "나이와 성별을 밝혀졌지만 아직은 어린이 미라가 우리에게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디아리오코아우일라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서울 정릉 재실 복원…15억 들여 복원한 모습 보니

    서울 정릉 재실 복원…15억 들여 복원한 모습 보니

    서울 정릉 재실 복원…15억 들여 복원한 모습 보니 ‘서울 정릉 재실 복원’ 서울 정릉 재실이 3년 만에 복원됐다.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는 23일 “1960년대 멸실됐던 서울 정릉의 재실(齋室·제사를 준비하거나 왕릉 담당 관리들이 머물던 곳)을 3년 만에 복원 완료했다”고 밝혔다. 복원된 서울 정릉 재실은 25일 오전 10시 기념행사를 통해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정릉은 조선 초대 왕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으로, 원래는 중구 정동에 있었다. 당시 규모는 현재보다 크고 화려했지만 태조의 정비였던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고 태조가 승하하면서 1409년 현재 자리로 이장됐고 능의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이후 폐허처럼 방치됐던 정릉은 1669년에 정비, 1900년에 재실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초석만 남은 채 1960년대 멸실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능제복원 차원에서 2012년 재실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 6칸 규모의 재실터와 건물 배치 등 양호한 형태의 유구를 확인했다. 이런 결과와 사료를 근거로 2012년부터 3년간 총 사업비 15억원을 투입해 정릉 재실의 본채, 제기고, 행랑, 협문(3개소)과 담장 등을 복원했다. 문화재청은 “재실 복원을 통해 조선 왕릉이자 세계유산으로서 정릉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역사성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국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창출을 통해 그 본연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정릉 재실 복원…멸실됐던 사연은?

    서울 정릉 재실 복원…멸실됐던 사연은?

    서울 정릉 재실 복원…멸실됐던 사연은? ‘서울 정릉 재실 복원’ 서울 정릉 재실이 3년 만에 복원됐다.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는 23일 “1960년대 멸실됐던 서울 정릉의 재실(齋室·제사를 준비하거나 왕릉 담당 관리들이 머물던 곳)을 3년 만에 복원 완료했다”고 밝혔다. 복원된 서울 정릉 재실은 25일 오전 10시 기념행사를 통해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정릉은 조선 초대 왕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으로, 원래는 중구 정동에 있었다. 당시 규모는 현재보다 크고 화려했지만 태조의 정비였던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고 태조가 승하하면서 1409년 현재 자리로 이장됐고 능의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이후 폐허처럼 방치됐던 정릉은 1669년에 정비, 1900년에 재실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초석만 남은 채 1960년대 멸실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능제복원 차원에서 2012년 재실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 6칸 규모의 재실터와 건물 배치 등 양호한 형태의 유구를 확인했다. 이런 결과와 사료를 근거로 2012년부터 3년간 총 사업비 15억원을 투입해 정릉 재실의 본채, 제기고, 행랑, 협문(3개소)과 담장 등을 복원했다. 문화재청은 “재실 복원을 통해 조선 왕릉이자 세계유산으로서 정릉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역사성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국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창출을 통해 그 본연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정릉 재실 복원…25일 공개될 모습 미리 봤더니

    서울 정릉 재실 복원…25일 공개될 모습 미리 봤더니

    서울 정릉 재실 복원…25일 공개될 모습 미리 봤더니 ‘서울 정릉 재실 복원’ 서울 정릉 재실이 3년 만에 복원됐다.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는 23일 “1960년대 멸실됐던 서울 정릉의 재실(齋室·제사를 준비하거나 왕릉 담당 관리들이 머물던 곳)을 3년 만에 복원 완료했다”고 밝혔다. 복원된 서울 정릉 재실은 25일 오전 10시 기념행사를 통해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정릉은 조선 초대 왕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으로, 원래는 중구 정동에 있었다. 당시 규모는 현재보다 크고 화려했지만 태조의 정비였던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고 태조가 승하하면서 1409년 현재 자리로 이장됐고 능의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이후 폐허처럼 방치됐던 정릉은 1669년에 정비, 1900년에 재실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초석만 남은 채 1960년대 멸실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능제복원 차원에서 2012년 재실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 6칸 규모의 재실터와 건물 배치 등 양호한 형태의 유구를 확인했다. 이런 결과와 사료를 근거로 2012년부터 3년간 총 사업비 15억원을 투입해 정릉 재실의 본채, 제기고, 행랑, 협문(3개소)과 담장 등을 복원했다. 문화재청은 “재실 복원을 통해 조선 왕릉이자 세계유산으로서 정릉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역사성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국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창출을 통해 그 본연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대학로 문화지구/서동철 논설위원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1900년 시어터 리퍼블릭이 대형 극장으로는 처음으로 문을 열면서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공연예술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 극장은 벨라스코 극장과 빅토리아 극장이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는 뉴빅토리 극장으로 불린다. 1903년 동시에 개관한 리시엄 극장과 뉴암스테르담 극장도 여전히 ‘더 비짓’과 ‘알라딘’을 각각 장기 공연하고 있는 ‘현역’이다. 1920년대 브로드웨이의 대형 상업 극장은 80개까지 늘어나지만, 이후 줄어들어 현재는 30개 남짓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의 공연 문화가 쇠퇴한 것은 아니다.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형 극장 건물주들이 더 나은 수익을 기대하며 업종을 전환했을 뿐이다. 브로드웨이 공연 문화는 오프 브로드웨이와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를 포괄한다. 브로드웨이가 상업화로 치닫자 예술성을 추구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외곽에 생겨난 것이 오프 브로드웨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프 브로드웨이의 상업성 또한 짙어지자 실험성 강한 예술인들은 다시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로 나갔다. 단계적 개념이 형성된 것은 공공기관의 지원도 한몫했다. 당국은 500석 이상의 극장은 브로드웨이, 100~499석은 오프 브로드웨이, 99석 이하는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로 규정해 세금 및 지원금에서 차등을 두었다. 3단계 개념이 극장의 물리적 위치에 따른 것은 아니지만 예술성에 대한 열망이 강한 극장일수록 외곽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이다. 문화의 거리가 형성되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치솟은 부동산 값에 밀려난 문화는 다시 외곽에 재편되기 마련이다. 전통 문화의 거리 인사동이 그렇고, 인디밴드 문화의 본거지인 홍대앞이 그렇다. 상업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 전통 문화와 인디 문화는 벌써부터 카페와 레스토랑, 옷과 신발 가게, 화장품과 장신구 가게로 대치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사동 문화는 삼청동으로 흘러가고 서촌으로 넘어가면서 대형 전통 문화권으로 발전하고 있고, 홍대앞 특유의 문화 역시 분위기를 주변으로 크게 넓혀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제 신문에는 ‘대학로는 죽었다’면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위를 벌이는 연극인들의 사진이 실렸다. 동네 터줏대감인 대학로극장이 호되게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을 위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한 정부에도 반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문화지구 정책은 브로드웨이처럼 문화가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것을 막고 있다. 지금처럼 문화가 집중된 곳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가 없는 곳, 있어야 할 곳을 문화지구로 지정해야 한다. 상업화한 대학로는 시장 원리에 맡기고, 또 하나의 연극 거리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문화지구 정책이 필요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뉴스 플러스] IS, 끝없는 ‘아시리아 유적’ 파괴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고대 유산 훼손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 당국은 5일(현지시간) IS가 이라크 북부에 있는 ‘님루드’의 유적을 불도저를 동원해 파괴했다고 밝혔다. 님루드는 기원전 900년 티그리스강 인근에 세워진 고대 아시리아의 두 번째 수도로, 1980년대 님루드의 왕조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은 20세기 고고학사에서 기념비적인 것으로 꼽힌다.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곡물 조·기장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곡물 조·기장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밀렛’(millet)은 벼의 사촌격으로 알갱이가 작은 곡식 종류를 통틀어 말한다. 한자어로는 ‘서속’(黍粟)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 기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밀렛류는 조와 기장이지만 세계 생산량으로 보면 진주조와 조, 기장, 손가락조 등을 의미한다. 또 일부 국가에서 중요한 식량인 피, 코도, 포니오, 기니, 테프 등도 밀렛에 해당된다. 조, 기장 등의 밀렛류는 인류 농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유라시아와 중국 북부 지역, 한반도 등에서 재배됐다. 중국의 초기 신석기인 ‘츠산문화 유적지’(기원전 8300~6700년)에서 기장의 껍질과 기장 재배와 관련된 석기가 발견됐다. 기원전 2400~1900년 전 ‘제가 문화 유적지’에서는 기장과 조를 섞어 만든 인류 최초의 국수도 나왔다. 유럽에서는 중세 시대 빵이 전파되기 전까지 기장죽이 서민들의 주식이었다. 한반도에서 조, 기장 재배는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부산 영도구 동삼동의 패총에서 발견된 불에 탄 조 75알과 기장 16알의 방사선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신석기 중기인 기원전 3360년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반도에서 농경이 신석기 중기에 시작됐고 지역적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조와 기장은 쌀이 우리 밥상을 차지하기 전까지 우리의 주식이었다. 조는 해방 직후인 1940년대까지 벼 다음으로 재배 면적이 많을 정도로 중요한 곡식이었다. 전통문화 속에 조, 기장과 관련된 문화와 속담, 음식도 풍부하다. 일례로 사극에서 국가를 이르는 말인 ‘종묘사직’(宗廟社稷)에는 기장이라는 곡식이 숨어 있다. 종묘는 역대 임금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사직은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을 뜻한다. 이때 직(稷)은 기장을 뜻하는 한자어다. 조와 관계된 재미있는 어원과 속담도 많이 있다. 우리가 답답할 때 자주 쓰는 말 ‘조바심’에서 ‘바심’은 ‘타작한다’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수확된 조를 비벼서 알곡을 떼어내는 과정인 조타작은 막상 해보면 좀처럼 비벼지지 않고 힘이 든다. 그래서 생각만큼 되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지고 초조해지기 쉬운 상태를 ‘조바심’이라고 한다. 경남 지방에는 ‘조밭을 맬 때는 부부 간에 싸워야 날 수가 난다(수량이 많아진다)’는 말도 있다. 소립종자인 조는 빡빡하게 심는 경우가 많아 싹이 올라온 후 과감하게 솎음 작업을 해줘야 한다. 부부 싸움에 대한 분풀이를 하듯 마구 솎음질을 해줘야 채광 통풍이 잘되고 병충해 발생도 적어진다. 밀렛은 전통 음식문화와도 관련이 많다. 밀렛과 관련된 음식으로는 오곡밥을 빼놓을 수 없다. 오곡은 시대에 따라 그 종류가 조금씩 바뀌어왔다. 다만 오곡 중 조, 기장, 수수가 빠진 적은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벼, 보리, 콩, 피, 기장을 뜻했고, 지금은 찹쌀, 차수수, 검은콩, 차조, 팥으로 오곡밥을 만든다. 오곡밥 외에도 밭이 농경지의 전부인 제주도에는 전통적으로 ‘흐린조’(차조)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그중 대표적인 음식인 오메기떡은 차조를 반죽해 도넛 모양으로 만든 떡이다. 오늘날 오메기떡은 소비자 기호를 고려해 찹쌀과 팥을 이용한 퓨전 형태의 떡으로 변화했다. 존재감 없던 밀렛이 최근에는 슈퍼푸드로 재조명받고 있다. 건강 곡물로 잘려진 현미 등의 통곡물보다 영양과 기능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다. 밀렛류는 다른 곡물보다 곡식의 알갱이가 작아 배아와 ‘호분층’(단백질 알갱이가 모여있는 세포층) 비율이 높다. 이는 같은 양을 섭취했을 때 밀렛류가 상대적으로 단백질, 식이섬유, 여러 가지 미량 원소를 더 섭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밀렛류는 곡류 중 단백질 함량이 9~12%로 높고(쌀 6%, 현미 7%), 식이섬유와 미네랄 함량도 풍부하다. 식이섬유는 쌀에 비해 3~10배, 칼슘 3~5배, 철분은 3배가량 더 많다. 베타카로틴 함량도 많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아프리카와 인도, 네팔 등에서 많이 먹는 손가락조(finger millet)는 밀렛 가운데 칼슘 함량이 월등히 많다. 조의 10~20배, 쌀의 30~100배에 해당하는 양이 들어있다. 비타민 B도 풍부하다. 밀렛에는 티아민(비타민 B1), 리보플라빈(B2), 니아신(B3) 등이 모두 함유돼 있다. 그 외에 폴리페놀과 피트산 등의 항산화물질도 많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당뇨 예방에 뛰어나다. 이런 장점 때문에 밀렛을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섭취하는 경향도 강하다. 밀렛류는 선진국에서 영양가가 높은 작물의 종류에 불과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곡물이다. 선진국에서는 영양 과다와 비만 등으로 대사증후군이 증가하고 있는 반면 세계 인구의 9억명은 기아, 20억명은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사망하는 어린이 중 절반인 500만명 이상이 영양 부족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런 국가에서는 조, 기장, 피 등의 밀렛이 매우 중요한 식량 작물이다. 밀렛은 고온에서도 벼나 밀에 비해 성장이 좋을 뿐 아니라 필요한 물의 양도 적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는 뜻이다. 인류 역사의 가장 오래된 곡물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곡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고지연 농촌진흥청 밭작물개발과 농학박사 ■문의 golders@seoul.co.kr
  • 강릉선교장 태극기 문화재 등록 예고

    강릉선교장 태극기 문화재 등록 예고

    문화재청은 25일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를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존 형태와 역사적 유래, 4괘와 태극문양의 위치, 제작 방식, 게양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역사성과 희귀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강릉 선교장 태극기는 1900년 전후 제작돼 1908년 선교장 내 설립된 근대식 학교 동진학교에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탄압으로 폐교 뒤 광복 때까지 땅속에 묻혀 있다 광복 후 하나는 임시정부에 기증됐고 하나는 선교장에서 보관해 오다 지난해 발견됐다.
  • 세계 최초 컬러 영화 만든 카메라 경매 나온다

    세계 최초 컬러 영화 만든 카메라 경매 나온다

    영화 역사상 가장 의미가 깊은 카메라가 경매에 나올 예정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카메라는 1908년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 사용됐던 것으로 1906년에 제작된 키네마컬러 카메라다. 이 카메라는 현존하는 키네마컬러 카메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개인 수집가가 보관하다 최근 경매에 나왔다. 경매 진행업체 측은 이 카메라의 예상 낙찰가를 최소 2만 파운드(약 3400만원) 상당으로 보고 있다. 2012년에는 이 카메라로 촬영한 런던의 1900년대 초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당시 영상은 런던의 거리 모습과 어린이 3명이 집 뒤뜰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이를 찍은 사람은 무명의 사진작가였던 에드워드 레이몬드 터너로, 그는 천연색 영화(테크니컬러, Technicolor) 기술이 발명되기 10여 년 전 키네마컬러 기술로 영상을 촬영했다. 터너는 빨강, 초록, 파랑의 필터를 통해 연속적으로 프레임을 만든 후 이미지를 겹쳐 촬영하는 방법으로, 영상에 등장하는 세 어린이는 터너의 자녀들이다. 당시 터너가 개발한 이 기술은 ‘키네마컬러’ 기술로 재탄생해 1906년 특허를 획득했고, 이후 세계 최초의 컬러 제작 기술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키네마컬러 필름은 터너의 후원자였던 찰스 어반이 보유하다 1937년 영국 과학박물관이 보관해왔다. 컬러영화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 키네마컬러 카메라의 경매는 올해 하반기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계 최초 ‘컬러 영화 카메라’ 경매 나온다

    세계 최초 ‘컬러 영화 카메라’ 경매 나온다

    영화 역사상 가장 의미가 깊은 카메라가 경매에 나올 예정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카메라는 1908년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 사용됐던 것으로 1906년에 제작된 키네마컬러 카메라다. 이 카메라는 현존하는 키네마컬러 카메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개인 수집가가 보관하다 최근 경매에 나왔다. 경매 진행업체 측은 이 카메라의 예상 낙찰가를 최소 2만 파운드(약 3400만원) 상당으로 보고 있다. 2012년에는 이 카메라로 촬영한 런던의 1900년대 초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당시 영상은 런던의 거리 모습과 어린이 3명이 집 뒤뜰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이를 찍은 사람은 무명의 사진작가였던 에드워드 레이몬드 터너로, 그는 천연색 영화(테크니컬러, Technicolor) 기술이 발명되기 10여 년 전 키네마컬러 기술로 영상을 촬영했다. 터너는 빨강, 초록, 파랑의 필터를 통해 연속적으로 프레임을 만든 후 이미지를 겹쳐 촬영하는 방법으로, 영상에 등장하는 세 어린이는 터너의 자녀들이다. 당시 터너가 개발한 이 기술은 ‘키네마컬러’ 기술로 재탄생해 1906년 특허를 획득했고, 이후 세계 최초의 컬러 제작 기술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키네마컬러 필름은 터너의 후원자였던 찰스 어반이 보유하다 1937년 영국 과학박물관이 보관해왔다. 컬러영화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 키네마컬러 카메라의 경매는 올해 하반기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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