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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라산 8000년 전 화산활동 끝...900년부터 물 고여

    한라산 8000년 전 화산활동 끝...900년부터 물 고여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남한 지역의 대표적인 화산인 한라산은 8100년 전 마지막 화산활동을 했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제주시 봉개동 물장오리 분화구 퇴적층 분석을 통해 아래쪽(7.5m) 퇴적층은 약 8100년 전, 위쪽(0.43m)은 약 300년 전에 쌓인 것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전체적으로는 아래 쪽부터 고운 입자 형태를 띠다가 약 1.3m 깊이를 경계로 모래 크기 광물이 급격히 증가했다. 1m 깊이 인근에서부터는 탄소동위원소 값도 커졌는데 그 시기는 900년 전후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한라산 물장오리(해발 937m)는 8100년 전 마지막 분화를 하고 900년 전까지는 우기에만 만들어진 습지였다가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산 꼭대기 호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과거 8000년 동안 제주의 기후 변화를 추적해 360년, 190년, 140년 주기로 우기와 건기가 반복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재수 지질연구원 지질환경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과거 제주도 환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타임캡슐을 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의 2016∼2019년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 목적으로 수행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지난해 한라산 백록담 퇴적층을 시추해 분화구 형성 시기가 최소 1만 9000년 이상 됐음을 확인하고 동아시아 내륙지역 고기후와 차별화한 제주도 만의 특징을 일부 발표했다. 이번 2차 조사를 통해 연구팀은 항공 라이다(레이저광을 활용한 측정장비) 측량을 바탕으로 한라산 북동부 지표고도 디지털 자료도 수집했다. 또 한라산 북동부 지역 식생 연구로 해당 지역에 93과 239속 375종의 식물이 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다 같은 민들레가 아니다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다 같은 민들레가 아니다

    몇 년 전 허브차의 원료가 되는 식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려야 할 첫 식물은 민들레였다. “무슨 민들레를 그려야 하죠?” 나는 물었다. “민들레요.” “아니, 민들레가 종류가 많아서요. 무슨 민들레인가요?” 상대는 당황하며 길가에 나는 민들레가 한 종류가 아니냐는 질문을 내게 다시 던졌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민들레만도 10종이 넘어요. 정확한 종을 가르쳐 주시면 관찰해 그릴게요.” 내 작업 첫 대화는 늘 상대방의 “무슨 무슨 식물이 한 종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아니 그렇게 다양한 종이 있군요”라는 감탄사로 끝나곤 한다.최근 식물 문화가 확산되고 식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 빈도수는 점점 줄어, 장미가 다 같은 장미가 아님을, 튤립이 다 같은 튤립이 아님을 아는 이는 많아졌지만 여전히 몇몇을 제외한 식물들은 그들의 개인 이름(종명)이 아닌 가족 혹은 친척 이름(속명)으로 불린다. 마치 내 이름을 ‘이소영’이 아닌 ‘이씨’라고 부르듯, 우리는 식물의 성만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식물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민들레일 것이다.도시의 공터 어딘가, 도로 옆 시멘트나 콘크리트 벌어진 틈, 하수구 구멍 아래,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는 도시 곳곳에서 누군가 심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나 샛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는 그 이름을 모르는 이 없을 정도로 우리에겐 익숙한 식물이다. 대부분 식물이 일 년에 단 한번 꽃을 피우는 데 비해 민들레는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고 지기를 반복하며 일 년 내내 꽃을 피우니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가 가장 많이 봐 왔던 꽃일지도 모르겠다.그런데 우리가 늘 보는 이 식물의 이름은 사실 그냥 민들레가 아니다. 이들의 정확한 이름은 서양민들레다. 우리가 늘 부르는 ‘민들레’란 이름은 민들레속 식물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이고, 이 민들레속에만도 세계적으로는 400여종이, 우리나라에만 13종이 자생한다. 민들레, 털민들레, 흰민들레, 산민들레, 좀민들레 등. 우리와 식생이 비슷하고 식물 연구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민들레만 모아 엮은 두꺼운 ‘민들레 도감’이 있을 만큼 민들레는 다양하고, 형태와 특징이 모두 다르다. 흰민들레는 이름처럼 꽃이 흰색이며, 주로 산에서 볼 수 있는 산민들레는 다른 민들레보다 잎의 톱니가 굵거나 없고,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좀민들레는 이름처럼 다른 민들레보다 길이가 짧고 여린 형태다. 꽃의 색이 보통의 샛노란 민들레보다 옅고 흰민들레보다 진한 흰노랑민들레도 있다. 그리고 그 많은 민들레 중 우리가 가장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종은 서양민들레와 그냥 ‘민들레’라 부르는 토종민들레다. 민들레속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종이 바로 이 둘인데, 총포라고 부르는 꽃잎 아래 꽃받침과 비슷한 녹색 잎이 꽃을 향해 위로 올랐는지(토종민들레), 아래로 처졌는지(서양민들레)가 다를 뿐 대체로 비슷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이 둘이 처한 현실은 많이 다르다. 서양민들레가 점점 개체수를 늘려가는 반면 토종민들레는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들레라 부르는 도시 안의 민들레는 대부분 서양민들레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 서양(유럽)에서 왔고 1900년대 초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스스로 뿌리를 내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귀화식물(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살았던 식물이 아니라 어쩌다 우리나라에 와서 번식을 스스로 해서 식생의 한 부분이 된 식물)이면서 흔하디흔한 잡초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서양민들레를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 쭈욱 자생해왔던 토종민들레는 따뜻한 남부지역에서만 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서양민들레는 일 년 내내 꽃을 피우지만 토종민들레는 봄에만 꽃을 피운다. 그래서 일 년 내내 꽃을 피우는 서양민들레는 씨앗도 많이 생겨 번식을 많이 하는 반면 토종민들레는 서양민들레에 비해 번식력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민들레 두 종의 성격과 처한 현실이 이토록 다르니 사람들은 곧잘 이 민들레에 싸움을 붙인다. 서양민들레가 토종민들레의 영역을 침범해 토종민들레가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싸움’이란 건 인간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지, 식물은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서양민들레의 개체수가 점점 늘고 토종민들레가 줄어드는 이 현상의 중심엔 인간의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곳곳에 도시를 만들며 산을 깎고 들은 흙으로 메우는 바람에 산과 들에 살던 토종민들레는 점점 살 곳을 잃게 되었고, 우리가 도시를 만들기 위해 흙으로 메운 빈 공터는 어쩌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와 자리잡을 곳을 찾던 서양민들레의 알맞은 보금자리가 되었다. 인간의 환경파괴 면적이 는다는 건 곧 서양민들레는 점점 늘어가고 토종민들레는 점점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도 우리는 산을 깎고 들을 메워 도시를 만들고 있다. 우리가 늘 보는 민들레는 어쩌면 다 같은 민들레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집 앞 공터에서 보았던 서양민들레와 지난주 밭두렁에서 보았던 토종민들레는 같은 민들레이면서도 서로 다른 이름과 운명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 [임한웅의 의공학 이야기] 초음파 기술의 미래

    [임한웅의 의공학 이야기] 초음파 기술의 미래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날씨가 건조해지면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습기다. 필자는 어릴 적 가습기에서 나오는 하얀 증기를 보고 호기심에 물이 나오는 부분에 손가락을 댔다가 통증으로 놀란 경험이 있다. 일부 가습기는 초음파로 물을 진동시켜 수증기를 만드는데 이런 진동이 통증을 일으켰던 것이다.가습기 외에도 생활 속에서 초음파를 이용하는 기기는 많다. 대표적으로 안경을 세척할 때 ‘초음파 세척기’를 쓰고 있고 모기와 같은 해충 퇴치에도 초음파를 이용한다고 한다. 이렇듯 초음파를 이용한 물건들은 우리 생활 속에 많이 있지만 흔히 초음파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의료용 초음파 검사다. 의료 분야에서 널리 초음파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초음파의 물리학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초음파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보다 높은 음의 소리인데 이 음파를 이용하면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인체 내부를 관찰하거나 진단할 수 있다. 의료용 초음파는 1942년 오스트리아 신경과 전문의인 칼 두식이 뇌종양 환자에서 사용한 것이 최초라고 한다. 뇌종양 진단에 어려움을 겪었던 두식은 금속 안의 결함을 찾아내는 데 사용하던 초음파를 처음으로 사람의 뇌 구조를 파악하는 데 이용했다. 의료용 초음파는 크게 진단적 용도와 치료적 용도로 나눌 수 있다. 진단적 초음파는 주파수 차이를 이용해 우리 몸의 피부에서 가까운 부위부터 안쪽 깊숙한 부위의 장기까지 다양한 내부 영상을 얻는 기술을 의미한다. 갑상선, 유방, 근육, 힘줄, 고환과 같은 표층 조직은 높은 주파수를 사용하고 간, 신장 같은 깊은 부위의 장기는 낮은 주파수를 사용해 영상을 얻는다. 진단적 초음파는 태아의 상태와 질환을 판별하는 산부인과부터 눈의 구조 확인, 수술 검사를 하는 안과까지 의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치료용 초음파도 치석 제거부터 종양 제거까지 기술 발달로 지속적으로 활용 범위가 늘어나고 있다. 치료용 초음파 기기는 인체의 깊은 부위에 초음파를 쏴 열을 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안정성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안과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는 수술 중 하나인 백내장 수술에서도 딱딱해진 수정체를 제거할 때 초음파를 이용한 ‘수정체유화 기술’을 사용하는데, 최근 레이저 정밀기술이 접목돼 더욱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게 됐다. 의료용 초음파 기기는 지속적 기술 발전으로 점차 소형화되고 휴대까지 가능하게 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게 됐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산악지대 같은 오지에서 초음파 영상을 전송해 전문가가 바로 판독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됐다고 한다. 이런 기술을 이용하면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인도 초음파 검사를 시행해 그 영상을 지구의 전문의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고 질환의 조기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1900년 초 유럽에서 처음 개발한 초음파 기술은 현재 우리 일상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고 특히 의료분야에서 첨단 기술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한 초음파 기술의 발전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더욱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래의 초음파 기술은 더욱 정밀한 결과를 내고 보다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청진기처럼 모든 진료에 필수적인 진단 도구가 되거나 초음파의 여러 특성을 활용한 효과적인 치료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하루 걸러 한 번꼴 휘청인 ‘불의 고리’

    하루 걸러 한 번꼴 휘청인 ‘불의 고리’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 7.0 강진 두 달간 환태평양지진대 일대 6.0 이상 지진만 20여차례 발생 한반도 지각판에 영향 우려도남태평양 군도 뉴칼레도니아에서 연쇄 지진이 일어났다. 최근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지진대에서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전 세계 대지진의 전주곡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일 오전 9시 43분 뉴칼레도니아의 타딘 동쪽 82㎞ 해상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상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뉴칼레도니아에서는 지난 19일 오후 8시 25분 첫 지진이 일어난 뒤 타딘 앞바다에서 조금씩 장소를 바꿔 가며 총 20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잇따랐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뉴칼레도니아에서는 지진이 빈발하고 있다. 규모 6.0 이상 강진만 해도 지난달 31일에 이어 이달 1일 세 차례나 일어났다. 뉴칼레도니아는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해 있다. 세계 지도에서 지진이 빈번히 일어나는 지역과 활화산이 고리 모양으로 보여 ‘불의 고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구 전체 지진 90%가 불의 고리를 따라 발생하고, 활화산의 약 75%가 이곳에 분포한다. 그런데 이 ‘불의 고리’가 요즘 들어 심상치 않다. USGS에 따르면 최근 두 달 새 전 세계에서 발생한 규모 6.0 이상 강진은 모두 28건으로, 지난 12일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한 이라크·이란(알파인·히말라야 조산대에 속해 있음)이나 18일 규모 6.4의 지진이 발생한 중국 티베트 자치구(환태평양지진대에 간접 영향)를 제외하면 대부분 환태평양지진대에 위치한 곳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뉴칼레도니아에서 가장 많은 7차례, 통가와 일본에서 3차례, 파푸아뉴기니와 인도네시아에서 2차례 순이었다. 지진의 특성상 한 번 발생하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환태평양지진대를 중심으로 불안함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경주에 이어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며 환태평양지진대가 한반도 지각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에는 세계적으로 규모 7.0 이상 강진이 예년보다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영국 옵서버에 따르면 미국 콜로라도대 로저 빌럼 교수와 몬태나대 레베카 벤딕 교수는 지난 10월 미국 지질학회 연차총회에서 지구의 자전 속도가 미세하게 느려질 때 지진 활동과 지진 강도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190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규모 7 이상 강진에 대해 분석한 결과, 약 5년마다 상대적으로 강진 숫자가 늘어났다는 점을 발견했다. 약 5년마다 강진이 연 25~30차례 발생했는데, 그 이외의 해에는 약 15차례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조금 느려질 때, 즉 하루에 1밀리초(1000분의1초) 정도 늘어날 때 강진이 늘었다고 밝혀냈다. 지구 자전 속도가 미세하게나마 변하면 지구 자기장 역시 변화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지구 외핵 안에 있는 액체금속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지구 자기장과 지구 표면 지각현상에 다시 변화를 불러일으켜 지진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빌럼 교수는 약 4년 전부터 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자전 속도와 강진 상관성) 추론은 분명하다”면서 “내년에 우리는 강진 숫자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봐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이 발생할 장소에 대해 빌럼 교수는 지구의 자전 속도가 변할 때 강진이 일어난 곳이 대부분 적도 근처였다며, 연구진의 예측이 맞다면 내년에 적도 부근에서 강진이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옵서버는 덧붙였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60달러에 팔린 다빈치 ‘예수그림’ 역대 최고가 5000억원 낙찰

    60달러에 팔린 다빈치 ‘예수그림’ 역대 최고가 5000억원 낙찰

    단돈 60달러에 팔렸다가 복원 이후 ‘21세기 최대 재발견 작품’ 부상 이탈리아 천재 미술작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희귀한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세계의 구세주)가 역대 최고가인 약 5000억원에 경매에 낙찰됐다.AP통신 등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다빈치가 그린 ‘살바토르 문디’가 4억 5000만 달러에 낙찰됐다. ‘21세기 최대의 재발견 예술품’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러시아의 억만장자이자 미술품 수집가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가 소장하다 1억 달러(약 1135억원)에 내놨으나 거의 5배 가격에 팔린 것이다. 이 가격은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 가격이라고 AP는 전했다. 이 작품은 과거 단돈 60달러(6만 7000원)에 팔렸었다. 살바토르 문디는 예수의 모습을 목판 위에 유화로 그린 작품이다. 1500년쯤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은 오른손 둘째, 셋째 손가락을 살짝 겹쳐 들어 축복을 내리고, 왼손으로는 세계와 우주를 상징하는 투명한 크리스털 보주를 잡고 있는 예수의 상반신을 담았다. 이 작품은 다빈치가 프랑스의 루이 12세를 위해 1506년에서 1513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아 없어진 것으로 여겼으나 1649년 영국 찰스 1세의 소장목록에 등장했고 1763년 버킹엄 공작의 아들이 경매로 넘긴 기록을 끝으로 다시 사라졌다. 이후 심한 덧칠로 손상된 채 1900년 영국의 그림 수집가 프란시스 쿡을 통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쿡의 후손들은 1958년 이 작품을 영국 소더비 경매에 내놓았는데 다빈치의 제자인 지오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가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겨우 60달러에 팔렸다. 하지만 2005년 미국의 화상 컨소시엄이 이 작품을 취득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이들은 전문가들을 동원해 이 작품에 얹혀 있던 덧칠을 벗겨내는 등 6년에 걸쳐 복원작업을 벌였다. 2011년 르네상스 미술 전문가들이 과학적 기법으로 검증한 결과 다빈치의 작품으로 확인되며 ‘21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적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현재 20점도 남지 않은 다빈치 그림 중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하던 작품이다. 대표작 ‘모나리자’를 비롯한 다빈치의 나머지 작품들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등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한국 문화 알리는 경주엑스포에 외국 소나무라니…

    [단독] 한국 문화 알리는 경주엑스포에 외국 소나무라니…

    “토종 소나무로 알았는데 놀라워…남산·안강 소나무로 바꿨으면”천년고도 경주에서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안에 일본을 통해 국내에 유입된 리기다소나무가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서울신문 취재 결과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정문 진입로변 100여m 구간에 리기다소나무 23그루(정문에서 공원 방향 오른쪽 13그루, 왼쪽 10그루)가 자리잡고 있다. 이 소나무들은 경북도와 경주시의 공동출자 재단법인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이사장 경북도지사)가 1997년 엑스포공원을 만들 때 새로 가져다 심은 것으로 수령(樹齡) 20~40여년, 높이 10~20여m다. 이날 현장에서 소나무들을 직접 확인한 홍성천 경북대 임학과 명예교수는 “줄기 여기저기에 맹아가 많이 나와 있고 잎이 3개씩 모여 난 것으로 볼 때 미국이 원산지인 리기다소나무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무도 하나의 소중한 문화인데, 우리 문화를 알리는 현장에 외국 문화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수치”라며 “경주에는 우리 토종인 경주 남산 소나무나 안강 소나무가 있는데도 굳이 외래수종을 심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리기다소나무는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으며, 자라는 속도가 빨라 1960~1970년대 녹화사업 때 전국 곳곳에 집중적으로 심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문화를 내외국인들에게 홍보하는 현장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정문에 외래수종을 가져다 심고 그 후로도 20년간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2001년 상시 개장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은 연간 관람객이 30만명을 넘는다. 특히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애국가 2절에 나올 만큼 우리 국민의 기상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자들이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리기다소나무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본에 많은 리기다소나무에 일본인들이 친숙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경비원 김모씨는 “일본인 방문객들이 리기다소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나무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본다”고 전했다. 이날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서 만난 경주시민 이모씨는 “당연히 우리 토종 소나무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놀랍다”며 “하루빨리 우리 소나무로 교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두한 경주엑스포 사무처장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정문의 소나무는 경주 연안에서 자생하는 해송 정도로 알고 있었다”며 “문제가 제기된 만큼 관계 전문가의 구체적인 조언을 받은 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붉은 절정, 일러 무삼하리오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붉은 절정, 일러 무삼하리오

    꼭 높은 산에 올라야 예쁜 단풍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눈부신 가을빛은 들녘에도, 두메의 야트막한 산자락에도 고르게 내려앉습니다. 어르신, 장애인 등 여행 약자들도 차를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자연이 벌이는 빛의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거지요. ‘과로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직장인 역시 그럴 것이고요. 그렇게 단풍이 걸개그림처럼 걸려 있는 곳들을 찾아 나선 길입니다. 차문만 열면 단풍이 훅하고 밀려들 만한 곳들을 겨눴습니다. 목적지는 설악산과 오대산. 두 단풍 명산을 휘휘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이번 주말께 설악이 먼저 절정에 이를 듯하고, 오대는 비로소 흐드러지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 나들목으로 내려선다. 이어 속초·인제 방면 44번 국도로 갈아탄 뒤 약 6㎞ 정도 직진하면 철정교차로다. 한계령을 겨냥해 가는 이들은 대부분 여기서 직진한다. 인제를 거쳐 한계령까지 빠르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데 가을 단풍철엔 제법 차량 통행량이 많다. ‘단풍 정체’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국도 따라 빠르게 가는 길이라 단풍 물든 풍경과 제대로 마주하기도 쉽지 않다. 해결책은 우회다. 이번엔 경로를 달리해 철정교차로에서 451번 지방도 상남·내촌·국군홍천병원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홍천을 우회해 한계령까지 가는 길이다. 길 이름은 아홉사리로. 홍천과 인제가 경계를 이루는 아홉사리고개에서 이름을 따온 도로다. ●홍천 우회 구곡치… 수수한 단풍 레이스 아홉사리는 한자로 구곡치(九曲峙)라 쓴다. 이름 그대로 길이 구절양장 휘돌아 간다. 아홉사리로에서 만나는 단풍들은 수수하고 곱다. 아찔하거나 현란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깊은 맛이 있다. 아홉사리로를 따라 인제 상남면 소재지까지 간 뒤 31번 국도로 갈아탄다. 이쯤에서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필례약수로 바꿔도 좋겠다. 이어 기린면 진방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가다 진다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땅이 기름지다 해서 진다리다. 여기서부터는 산길이다. 외길이나 다름없는 산길을 구불구불 넘어간다. 산길이라 해도 포장이 잘돼 있어 어려울 건 없다. 곳곳에서 만나는 두메의 가을 소경은 그야말로 풍경의 덤이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곧 귀둔리. 저 유명한 홍천의 ‘삼둔’처럼 인제의 ‘깡촌’으로 통하는 곳이다. 다시 고개 넘어 하추리 갈림길과 군량밭 등을 줄줄이 지난다. 군량밭은 조선말 의병들의 양식을 조달하는 밭이 있었던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계곡 주변의 단풍이 곱다. 필례약수는 한계령 바로 아래 있다. 길섶으로 단풍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완연히 물들지는 않았지만, 그마저도 빼어나다. 필례는 약수터 주변 지형이 베 짜는 여자, 필녀(匹女)와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1900년대 초 심마니들이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약수는 위장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필례약수에서 한계령 휴게소까지는 5.4㎞ 정도다. 한 작가가 필례약수에 머물며 소설을 썼다고 해서 이 구간을 따로 은비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길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일러 무삼하리오’(굳이 이야기해 봐야 무엇하겠는가)다. 중언부언할 것 없이 여기서부터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한계령 정상에서 굽어보는 양양 쪽 풍경이 빼어나다. 단풍 물든 암릉이 구름과 만나 희롱하는 모습이 압권이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분재를 보는 듯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인제 방향 44번 국도를 되짚어 장수대까지 다녀오길 권한다. 암봉과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한계령 정상에서 오색약수 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불길’이다. 거리는 대략 8㎞ 정도. 내려가는 동안 단풍 곱기로 소문난 흘림골 들머리와 주전골 들머리를 차례로 만난다. 이 길 중간쯤에 만경대가 있다. 지난해 46년 만에 개방하면서 밀려드는 등산객들로 홍역을 치른 곳이다. 올해는 탐방예약제로 운영된다. 평일 2000명, 주말과 공휴일엔 5000명으로 등산객을 제한한다. 탐방 예약은 국립공원관리공단예약통합시스템 홈페이지에서 받는다. 개방은 오는 11월 14일까지다. 체력이 된다면 만경대 아래 주전골은 꼭 걸어 보길 권한다. 설악의 험준한 암봉 사이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들머리인 오색약수에서 주전골까지 2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계곡물 따라 수채화 풍경 속에 들어간 선재길 이제 오대산권으로 넘어간다. 산정의 단풍은 이미 절정을 넘어섰고 산 아래는 이제 물들고 있다. 이번 주와 다음주 사이 절정에 이를 듯하다. 첫손 꼽히는 곳은 선재길이다. 단풍철에 한한다면 ‘오대산의 진리’라 해도 틀리지 않을 길이다. 선재길은 오대천 옆으로 446번 지방도가 나기 전, 스님들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가던 옛길이다. 거리는 9㎞. 길은 평탄하다. 일반적인 산행에 견줘 그렇다. 걷기 불편한 이들이라면 목재데크가 깔린 무장애 탐방로를 걷는 게 좋겠다. 순환형 구간으로 거리는 약 1㎞ 정도다. 해탈교, 금강교, 월정사 전나무 숲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선재길은 혼자는 넓고, 둘이라면 딱 좋을 너비다. 숲길을 걷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다시 숲길에 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상원사까지 이어진다. 숲속 옛길은 조붓하다. 나뭇잎이 켜켜이 쌓여 푹신하고, 졸졸대는 계곡물 소리와 산새 소리도 정겹다. 숲에 깃든 공기 역시 청량하기 그지없다. 길섶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늘어섰다. 단풍나무는 붉게 물들었고, 자작나무는 흰 수피를 드러내고 있다. 여태 초록빛의 나무가 있는가 하면, 거무튀튀한 고목도 있다. 노란 잎의 활엽수도 드문드문 섞였다. 해마다 가을철에 오대산이 펼쳐 보인다는 ‘오색단풍’의 자태가 여기에 있다. 오대산 비로봉(1565m)에서 내려온 불길은 진고개를 거쳐 남하하는 중이다. 고도가 얼추 1000m에 달하는 진고개 휴게소에 서면 겹겹이 늘어선 산등성이와 오대산 다섯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붉게 물든 오대산 단풍과 햇빛에 비친 산이 만들어 내는 음영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처럼 수려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고개 휴게소는 노인봉을 거쳐 소금강으로 내려서는 등산로의 들머리다. 거리가 제법 길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 구간의 단풍은 아직 영글지 않았다. 10월 하순부터 제 모습을 보여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진고개에서 동대산을 거쳐 오대산 선재길까지 가는 등산로도 있다. 다만 제법 발품을 팔아야 한다. 오대산은 크게 월정사 지구와 소금강 지구로 나뉜다. 소금강 지구는 암봉으로 이뤄진 산을 단풍이 뒤덮고 있는 곳. 대한민국 명승 1호다. 금강산과 견줄 만큼 빼어나다고 해서 이름도 소금강이다. 산 이름은 율곡 이이가 지었다고 전한다. 소금강에서 노인봉까지 오르는 구간도 제법 험하다. 소금강 들머리의 단풍만 감상해도 충분하지 싶다. 오대산을 먼저 본 뒤 설악산 쪽으로 짚어 올라가겠다면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빠르다. 홍천·인제·양양 angler@seoul.co.kr■여행수첩(지역번호 033) →맛집:필례약수터 앞 필례식당(463-4665)은 산채비빔밥을 낸다. 고향집(461-7391)은 두부전골이 맛있다. 기린면 진방삼거리 오른쪽에 있다. 피아시 매운탕(462-3334)은 잡어 매운탕이 맛있다. 양념이 강하지 않아 약한 불로 끓여 가며 먹어야 맛있다. 인제 쪽 내린천변에 있다. 한계령 너머 범부리의 범부막국수(671-0743)는 이른바 ‘가성비’ 뛰어난 맛집이다. 막국수와 메밀만두를 잘한다. 외양은 투박하지만 맛은 차지고 부드럽다. 오대산 진고개 일대에선 꾹저구탕을 맛볼 수 있다. 꾹저구는 한국 특산 어류로 영동 지역 수계에서 주로 발견된다. 꾹저구를 갈아 추어탕처럼 걸쭉하게 끓여 낸다. 연곡꾹저구탕(661-1494)이 알려졌다. 오색약수 등산로 주변의 식당들에선 제철 맞은 도루묵구이를 판다. 막걸리 한 사발 곁들여 얼요기하기 딱 좋다. 양양에선 홍합을 ‘섭’이라 부른다. 이 섭으로 전골, 칼국수 등을 끓이는데 칼칼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별미다. 양양군청 인근의 수라상(671-5857)이 알려졌다.
  • 아인슈타인·퀴리… ‘현대과학 전설’의 회동

    아인슈타인·퀴리… ‘현대과학 전설’의 회동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를 인류 역사에서 ‘축의 시대’라고 불렀다.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이 시대에 등장해 지금까지 인류 사상사의 중심을 이뤄왔기 때문이다.현대 과학, 특히 물리학 분야에서 20세기 초는 물리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까지 이 시기에 완성됐기 때문에 과학사학자들은 이때를 현대 과학의 ‘축의 시대’라고 평가한다. 특히 90년 전인 1927년 10월 24~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는 20세기 현대과학을 완성한 중요한 때 였다. 솔베이 회의는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고 심화’시키자는 취지로 탄산나트륨의 대량생산법을 개발한 벨기에 기업가 어니스트 솔베이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졌다. 솔베이 회의라고 하면 흔히 물리학자들만의 모임으로 알고 있는데 정식 명칭은 ‘물리학과 화학을 위한 국제 솔베이 기구’로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토론하기 위해 1911년에 처음 열렸다. 1913년 2차 회의 이후에는 화학과 물리학 분야가 나뉘어 3년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각 분야 최고 권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 최초의 물리학 및 화학 학회인 솔베이 회의는 대중 강연과 관련 연구자들 간 토론의 장도 마련돼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초청자만’ 참석할 수 있게 돼 있다.실제로 5차 솔베이 회의에 초청됐던 29명 중 17명이 노벨상을 수상했고 ‘퀴리부인’으로 알려진 마리 퀴리는 노벨 물리학상(1903년)과 화학상(1911년) 두 부분에서 수상했다. 이 때문에 과학저술가 J P 매키보이 박사는 5차 솔베이 회의 참석자들이 찍힌 사진을 두고 “아르키메데스, 케플러,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패러데이, 맥스웰이 모두 모여 고전물리학의 발전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5차 회의 주제는 ‘전자와 광자’로, 양자역학이 만들어 낸 물리학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핵심 논의사항이었다. 특히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한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이론에서 측정에 관한 역할, 파동함수 등 이른바 ‘코펜하겐 해석’이 맞는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광전효과와 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방정식을 만들어 낸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이 완성되는 데 무척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양자역학의 무작위성과 모호성에 거부감을 느꼈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한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계의 명료한 인과성과 연속적 실재성을 옹호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결과를 여럿 내놓고 있지만 아직 올바른 궤도에 들어서지는 못했다”고 평가하며 관찰자의 관찰행위에 따라 대상의 실제 상태가 바뀐다는 양자론의 모호성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5차 솔베이 회의에서는 보어를 위시한 ‘코펜하겐 학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5차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의 업적이 아니라면 현대인들의 삶은 여전히 19세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위치확인시스템(GPS)의 기반이 되고 있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는데 GPS 신호를 보내는 위성의 시간도 지표면의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여기에 중력의 영향까지 받는다. 이런 속도와 중력효과를 상대성이론으로 바로잡아 주지 못한다면 차량 내비게이션의 순간 오차는 10m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5차 솔베이 회의에서 승자가 된 양자역학도 현대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반도체가 탄생할 수 없었으며 컴퓨터, 스마트폰, 레이저, 엘리베이터 출입문 개폐장치 등은 그저 SF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기술들이었을 것이다. 남순건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현대 물리학의 핵심 기둥으로 인류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과학을 뛰어넘은 철학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생체의 물리학-생물학에서의 공간, 시간과 정보’라는 주제로 19~21일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27회 솔베이 물리학 회의가 열린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노벨상의 계절... 그것이 궁금하다

    노벨상의 계절... 그것이 궁금하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이 되면 전 세계의 눈은 풍요로운 북유럽 국가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쏠린다. 1901년 첫 수상자를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11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 때문이다.노벨상 수상자 발표 한 달 전부터 ‘예비 노벨 생리의학상’이라고 불리는 래스커상 수상자와 세계적인 학술정보 서비스 기업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옛 톰슨로이터)의 예상 노벨상 후보자 명단이 발표된다. 여기에 노벨상을 패러디해 기발한 연구성과에 상을 주는 ‘이그 노벨상’도 9월 2~3째주에 시행되면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다. 더군다나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가 올해 노벨화학상의 유력 후보로 태양전지 전문가인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를 꼽으면서 한국인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몇 년 전에도 노벨화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유룡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가 꼽힌 바 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된 10월 2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이미 발표했다. 이어 오늘 저녁 6시 45분(한국시각)에 물리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4일 화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문학상(미정)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될 예정이다. 올해 수상자에게는 기존보다 100만 스웨덴 크로나가 늘어난 9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2억 7000만원)의 상금, 금메달과 상장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석학’이라는 영예가 주어지게 된다. 노벨재단은 기금의 장기적 운용에 위기가 올 수 있다며 2001년부터 1000만 크로나이던 상금을 2012년 800만 크로나로 깎았지만 기금의 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100만 크로나를 증액시킨 것이다. 노벨상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이 기부한 유산 3100만 스웨덴 크로나를 기금으로 삼아 노벨재단이 설립된 뒤 1901년부터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의학, 평화 5개 분야에 상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상은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 창립 300주년을 맞아 만든 상으로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리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이다. 상금을 노벨재단에 기탁하는 조건으로 노벨상 시상기간에 포함돼 발표되고 있지만 여전히 태생적 문제 때문에 ‘노벨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물리, 화학, 경제학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생리의학은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문학은 스웨덴 학술원,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 노벨위원회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노벨이 사망한 12월 10일 열리는 시상식도 생리의학, 물리, 화학, 문학, 경제학 분야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며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이는 노벨재단이 설립된 1900년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한 나라였지만 1905년 분리되면서 나눠서 심사하고 시상식을 갖고 있다. 노벨상은 수상자 발표 당일 “노벨 재단입니다. 당신이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라는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당사자마저도 수상 여부를 알지 못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고 수상자 심사위원이 누구인지도 비밀에 붙여있다. 이 때문에 노벨과학상(생리의학, 물리학, 화학)을 누가 받을 것인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노벨과학상 관전 포인트는 몇 가지 있다. 우선 노벨과학상 중 단독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일단 올해 래스커상 수상자나 톰슨로이터 예상 후보자 명단을 보더라도 단독 수상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없다. 실제로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노벨과학상 46건 중 42건이 2명 이상 과학자들이 함께 수상했으며 1명의 연구자가 상을 받은 단독수상은 4건에 불과할 정도로 공동수상 경향이 강하다. 1901년부터 2016년까지 전체 노벨과학상 325건 중 176건(54%)이 2명 이상 공동수상했다. 1950년대를 기점으로 공동수상 비율이 전체 수상건수의 50%를 상회하기 시작해 최근 30년간은 노벨과학상 공동수상 비율은 80%를 훌쩍 넘어섰다. 이처럼 노벨과학상 공동수상 비율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은 첨단과학의 대형화와 융복합화에 따른 한계와 연구실패 부담을 최소화하고 연구자들이 보유한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집단연구 증가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2000년대에 들어서 일본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을 다수 배출해 미국에 이어 2위 수상국가로 등극했으며 비서구 국가 중에서는 최고의 과학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가 발표하는 노벨상 후보자 명단에는 일본인이 항상 끼어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연구원 출신인 정재훈 울산대 화학과 교수는 “일본은 1920년대부터 해외 공동연구와 유명 과학자와의 네트워크 확보를 통한 과학기술역량을 확보해옴으로써 그 결실을 지금 거둬들이고 있는 셈”이라며 “단기적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이고 도전적 연구를 적극 투자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모나리자와 수난당한 미술품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모나리자와 수난당한 미술품

    미술품에 대한 감정은 이율배반적이다. 보통은 창조의 산물로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기지만 한편으론 부유층의 사치와 자기과시 그리고 부의 은닉 수단으로 인식한다. 미술품은 문화적 재화지만 유일하게 환금성을 지닌 경제적 재화라는 점 때문에 그렇다. 미술품은 소유욕을 자극해 사기와 절도의 대상이 되어 왔고 가끔은 민족적 자부심까지 보태져 일부 광신적인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도난당하는 수난도 겪었다.빗나간 애국주의가 낳은 최대 미술품 도난사건은 1911년 8월 21일 루브르미술관의 모나리자 도난사건이다. 세기의 명작이 세계 최대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는 사실과 후일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등극하는 피카소가 연루됐다는 점이 보태져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페르난도 콜로모 감독이 2012년에 만든 영화 ‘피카소: 명작스캔들’은 이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스페인 영화답게 피카소(이냐시오 마테오 분)가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고 입체주의(Cubism)를 만들었는지 보여 준다. 1900년 고향 바르셀로나를 떠나 파리로 나온 피카소는 로트레크를 만나 청색시대를 연다. 1904년 영화의 주 배경으로 삐걱대는 목조계단 때문에 ‘세탁선’으로 불리던 화실에서 전성기를 맞는 피카소는 2년 뒤 20세기 회화의 출발점으로 칭송받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완성한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함께 세잔의 미학에 감화돼 3차원적 현실을 2차원적 회화로 변환한 입체파의 싹을 틔웠다. 영화는 이 시절을 그린다. 피카소는 어렵지만 항상 몰려다니는 친구들, 시인 막스 자코브, 조각가 마놀로 위그, 문학도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연인 페르낭이 있어 외롭지 않다. 재료조차 구할 수 없던 그를 돕고자 친구들은 미국 여류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를 그릴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때 받은 선금이 ‘아비뇽의 연인들’의 씨앗이 됐다.피카소가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은 친구 아폴리네르의 친구로 남작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리 피에레 때문이었다. 피카소는 이들과 함께 간 루브르에서 이베리아 조각을 보고 매료됐다. 며칠 뒤 남작은 루브르에서 그 조각상을 훔쳐 피카소에게 속여 팔았고 이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아 피카소는 거트루드의 초상을 완성했다. 피카소가 브라크와 함께 피레네 산맥 근처 시골마을에 내려가 그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모나리자 도난사건이 터진다. 남작이 수사 선상에 오르고 조각을 샀던 전력 때문에 피카소와 아폴리네르도 경찰 수사망에 오른다. 피카소는 아폴리네르를 모른다고 발뺌해 위기를 모면하고 아폴리네르는 감옥에 수감됐으나 며칠 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현실에서 도난사건은 엉뚱하게 풀렸다. 모나리자가 사라진 지 2년 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모나리자를 팔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미술관은 즉시 신고했고 범인인 빈센초 페루자가 붙잡혔다. 이탈리아 출신인 페루자는 임시직으로 루브르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미술관 창고에 숨어 있다가 그림을 훔쳐 나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침대 밑에 2년 동안 숨겨 두었던 모나리자를 팔려다 걸려든 것이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이탈리아인인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고국으로 환수하고자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어 고작 6개월 형을 살고 나왔다. 이것이 모나리자 도난사건의 결말이다. 대개 도난 미술품 시장규모를 연간 약 6조 2000억원으로 추산한다. 내로라하는 미술관들도 도난에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1990년 이후 미술품 절도만 봐도 대단하다. 보스턴의 이저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은 1990년 렘브란트의 ‘갈릴리의 바다’(1663)를 포함해 페르메이르의 ‘연주회’(1664~ 1666)등 총 12점, 3억 달러어치의 그림을 도난당했다. 올 초 현상금을 약 112억 5000만원으로 2배 인상했지만 여전히 미궁이다. 2000년에는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 르누아르 작품 2점, 렘브란트 작품 1점을 도난당했다. 1년 뒤 르누아르 작품 1점을 회수했고, 두 작품은 2005년 미국에서 나왔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돈으로 600억원에 달한다는 다빈치의 ‘성모와 실패’(1510)가 스코틀랜드 드럼랜리그 성에서 도난당했다가 7년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두 번이나 도난당해 유명해진 ‘절규’(1893)는 1994년 4명의 괴한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의 창문을 깨고 넘어들어와 작품을 훔쳤는데 3개월 만에 경찰이 이를 되찾았다. 2004년 3명의 무장강도가 대낮에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 들어와 수십 명의 관람객을 위협한 뒤 템페라 버전의 ‘절규’(1910)와 ‘마돈나’(1894)를 훔쳐갔다. 두 작품은 2006년에 다행히 되찾았지만, 회수 과정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2007년 12월에는 브라질 상파울루미술관에서도 3인조 도둑이 피카소의 ‘수잔 블로흐의 초상’ 등 627억원어치의 작품을 싹쓸이해 갔다. 또 2008년 스위스 취리히의 에밀 뷔를르 콜렉션이 세잔의 ‘붉은 조끼 입은 소년’을 포함해 모네, 드가, 고흐 등의 작품 4점을 도난당했다가 2012년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찾았다. 2012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쿤스트할은 약 3000억원에 육박하는 피카소, 마티스, 모네의 그림 7점을 도난당했다. 나중에 루마니아에서 범인을 찾았으나 범인의 어머니가 아들의 죄를 감출 목적으로 불태웠다고 진술해 그림은 찾지 못했다. 도둑이 성하면 잡으려는 노력도 그에 못지않은 법. 인터폴 등 수사기관뿐 아니라 보험회사와 경매회사들이 출자해 1991년 설립한 도난미술품등록협회(www.artloss.com)가 런던과 뉴욕 그리고 뒤셀도르프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작품을 도난당한 화가는 단연 피카소(514점)다. 고흐가 43점으로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도둑들도 거들떠보지 않을 작품들도 많다. 국내 방방곡곡에 산재한 흉물스러운 조각과 키치류의 벽화, 조악하기 그지없는 공공미술이 그것이다. 미술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각적 폭력도 문제지만 그런 작품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훔치려는 자치단체장들도 문제다. 이런 단체장들 훔쳐가는 도둑은 어디 없을까.
  • 을미사변때 희생된 선열 추모…중구 28일 장춘단 추모문화제

    조선 말기 을미사변 때 궁궐로 난입한 일본 낭인에게 맞서다 희생된 선열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서울 중구와 중구문화원은 오는 28일 남산공원 장충단비에서 제122주기 장춘단 추모문화제를 연다고 25일 밝혔다. 장충단제로 불려온 제례는 궁내부대신 이경직, 군부대신 홍계훈, 시종 임최수, 참령 이도철, 진남영 영관 염도희, 무남영 영관 이경호, 통위영 대관 김홍제, 장위영 대관 이학승, 진남영 대관 이종구 등 9명의 충신과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1900년부터 매년 올리기 시작했다. 이듬해부터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 순국한 대신과 장병들까지 함께 배향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어진 장충단 제향을 구에서 부활시킨 것은 1988년이다. 을미사변일인 1895년 8월 2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매년 10월 8일마다 장충단비 앞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다만 올해는 추석 연휴와 겹쳐 행사일을 앞당겼다. 추모제향에서는 전통방식의 제례와 분향 등이 50분간 진행될 예정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물 사시오! 수돗물 사시오!…수도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물 사시오! 수돗물 사시오!…수도박물관

    “똥구멍이 원수로다!” 1908년 10월 23일,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옛 제호)의 시사평론은 이렇듯 한탄했다. 지금 보기에는 황당하기만한 글이지만, 당시 조선의 사정에서는 결기마저 느껴질 정도의 과단한 사설이었다. 이유인즉슨 절실하기만 하다. 그때 일본인들이 길거리 널린 조선인의 인분을 모아 거름으로 돈을 벌었기에 똥을 함부로 길바닥에 누는 것도 친일행위라는 것이다. 똥조차도 항일(抗日)을 해야 하던 시기였다. 우리나라에 공중화장실이 들어선 것은 1904년 6월에 제정된 ‘위생청결법’ 이후였다. 이전에 서민들은 주로 큰 길이든, 장터 한 가운데든, 골목 뒤안길이든 상관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였다. 자연히 봄 여름 한양 도성은 말 그대로 인분과 가축 분뇨 냄새로 숨을 못 쉴 지경이었고, 도성의 길바닥 청소는 개가 담당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에도 웃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당시 서울 시민들의 주요 상수원 공급처인 중랑천과 청계천은 사시사철 분뇨와 두엄찌꺼기, 생활하수들로 인해 이미 어지간한 오염 단계를 훌쩍 넘어섰다. 더구나 홍수라도 한 번 나게 되면 수인성(水因性) 질병인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은 늘 창궐하였으며 호열자니, 염병이니 하는 명칭으로 귀신처럼 우리의 역사에 달라붙어 왔다. 1927년 경성의대 자료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평균수명은 33.7세였으며 유아 사망률을 포함하면 생존수명이 24세에 불과했다. 2017년 현재 한국인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가는 것에 비하면 그때 조상님들의 삶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깨끗한 물이 필요했다. 서울 수도박물관이다. 1900년대 초 한양의 수도(水道)사업 문제는 단순한 식수 해결의 차원이 아니라, 백성의 안위가 달린 문제였다. 이에 고종황제는 1903년 12월 9일 미국의 기업인 콜브란(C.H.Collbran)과 보스트위크(H.R.Bostwick)에게 상수도 부설 경영에 관한 특허권을 준다. 1906년 8월 대한수도회사(Korean Water Works Co.)는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을 준공하여 1908년 9월에 처음으로 4대문 안과 용산 일대 주민들에게 하루 1만 2500㎥의 수돗물을 공급하였다. 당시의 정수방식은 화학식 정수가 아니라 완속여과방식으로 모래와 자갈틈으로 물을 천천히 통과시켜 정수하는 물리적 정수방식이었다. 이로써 근대 상수도 역사의 첫 단추가 꿰어진다. 이후 서울시내 공용수도 220전(栓)이 만들어졌고 이 곳에서 물장수들의 연합체인 수상조합원들이 집집마다 요사이 생수 배달하듯이 깨끗한 물을 배달했고 이런 형태는 상수도가 본격화되던 196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당시의 뚝도정수장은 현재 ‘뚝도아리수정수센터’로 탈바꿈하여 현재 35만㎥의 시설용량을 갖추고 102만 5000여 서울시민들에게 하루 평균 25만㎥의 아리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일부는 수도박물관으로 조성하여 체험학습의 장으로서 활용하고 있다. 1900년대 초에 이루어진 한양의 상수도 기반의 건설은 아시아권에서는 굉장히 빠른 사회 기반 시설이었고, 이에 점차 4대문 도성 안 백성들의 수인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급격히 낮아졌다. 서울의 수도박물관은 단순히 물을 정수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벗어나 국가에 의한 사회 기반 시설 인프라가 어떻게 국민 복지에 기여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우리 역사의 산 증거물이다. 초가을, 선선한 바람을 아리수 가득한 한강변에서 맞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서울 수도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서울숲에 가 볼일이 있다면 2. 누구와 함께? -초등학교 학생들의 견학 장소. 3. 가는 방법은? -지하철 2호선 뚝섬역 2번 출구→초록버스 2224번, 2413번 환승 (3번째 정거장 이동 ‘뚝도아리수정수센터/수도박물관’ 하차) 4. 감탄하는 점은? -서울 상수도 역사의 오래됨. 완속여과장치.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조용하다. 서울 시내 조용한 휴식장소로서는 최고 수준. 6. 꼭 봐야할 장소는? -완속여과지 7. 주의할 점은? -막연히 가지 말고 서울 상수도 역사에 대해 좀 더 배우는 시간이 되길.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arisumuseum.seoul.go.kr/content/c1/sub1.jsp 9. 관람 정보는?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무료 10. 총평 및 당부사항 -음식물을 준비해와서 박물관 야외 휴식공간이나, 한강사업본부 옥상정원 혹은 서울숲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희귀본 2만여권 훔친 ‘책 바보’ 블룸버그… 나도 古書에 빠졌네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희귀본 2만여권 훔친 ‘책 바보’ 블룸버그… 나도 古書에 빠졌네

    주름이 깊게 잡힌 얼굴과 허름한 옷차림. 그는 계절이나 유행에 상관없이 언제나 한두 치수 정도 큰 옷을 입고 다녔고 사실상 그런 모습은 대학교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 누구에게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온종일 책과 씨름하는 연구자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어느 면에서 정확한 표현이다. ‘20세기 최고의 책 절도범’으로 불리는 스티븐 블룸버그, 이것이 그의 이름이고 정말로 대부분의 일상을 책과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좋아했고 언제나 연구했으며 책이라는 물성 그 자체를 즐겼다. 문제는 책을 향한 열정이 너무도 지나쳐서 거의 정신병 수준이었다는 것이다.블룸버그는 왜 책을 훔쳤나 블룸버그는 훌륭하고 가치 있는 책에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국가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는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희귀본들을 훔쳐 자신의 집에 보관하기로 했다. 훌륭한 책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계획은 성공적으로 실행됐고 10여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빼돌렸다. 1990년에 그가 체포되기까지 훔친 책은 2만 3000여권에 달했고 268개 도서관이 피해를 입었다. 재판에서 밝혀진 훔친 책의 가치는 최소 530만 달러 이상이었다. 놀라운 것은 블룸버그가 재판에서 했던 말 그대로 훔친 책 중 어느 것도 다른 곳에 팔지 않았으며 줄곧 집에 보관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법정에서 다른 의도는 없이 책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해프닝치고는 워낙 규모가 커서 블룸버그와 그가 했던 일은 큰 뉴스거리가 됐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책 절도 행각으로 규정했다. 블룸버그는 아무 책이나 훔치지 않았다. 책에 대해서 철저하게 공부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선별한 희귀본들만 목표로 삼았다. 재판이 끝난 후 그의 집에서 발견된 책들은 “블룸버그 컬렉션”이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이후에 모범적인 희귀본 목록으로 널리 알려졌다. 한편 블룸버그에게 책을 도난당하지 않은 도서관들은 약간의 수치심마저 느껴야 했다. 그가 책을 훔치지 않은 도서관에는 별 볼 일 없는 책만 갖추고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우리는 왜 책을 탐내나 왜 책을 탐내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희귀한 책을 손에 넣기 위해 범죄까지 저지르게 될까? 책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글자가 적힌 종이를 여러 장 겹쳐서 한쪽 면을 실로 엮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 어디에서 참을 수 없는 소유욕을 자극할 만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자면 값비싼 보석은 빛나는 돌멩이일 뿐이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아서 래컴이 삽화를 넣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07년 초판과 최상품 다이아몬드 중에 무엇을 갖겠느냐고 묻는다면 생각해 볼 것 없이 아서 래컴이 삽화를 넣은 책 한 권을 선택할 것이다. 내 눈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책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무조건 오래된 책, 값비싼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산해진미가 눈앞에 있더라도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나에게는 나만의 아름다움에 관한 기준이 있다. 우선 오래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보기에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니까 오래된 아름다움이 중요한 요건이다. 오래된 책에는 말로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기운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책 한 권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오래된 책을 부르는 말은 의외로 여러 가지이고 이를 나누는 기준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고책’이나 ‘헌책’, ‘고서’라는 말을 주로 쓴다.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중고책이라고 하면 보통 출간된 지 10년 안팎의 책을 말한다. 헌책은 느낌상으로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책, 절판된 책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범위가 넓다. 문제는 고서라는 것을 어떤 기준을 두고 나누느냐인데, 어떤 사람은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나온 책이면 고서, 이후면 중고책이나 헌책으로 부른다. 일제강점기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1920~30년대까지 고서로 분류한다. 이상, 김기림, 박태원, 김유정 등의 작품 초판이 여기에 들어간다. 책에 쓰인 언어를 가지고 나누는 방법도 있다. 개화기 이전, 그러니까 한문을 주로 쓰던 시대의 한적본만 고서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런 기준을 적용하다 보면 애매한 책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했을 때 1953년에 초판을 펴낸 박목월 ‘문장강화’나 한하운 ‘보리피리’ 1955년 초판은 고서라고 해야 할까, 그저 중고책이나 헌책으로 분류해야 할까?중고책·헌책·고서 어떻게 구분하나 일본의 경우는 1945년에 끝난 전쟁을 기준으로 하거나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메이지유신을 기점으로 그전을 고서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보다는 분류체계가 조금 더 명확한 편이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고서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엄격할 뿐 아니라 전문가와 수집가들도 많다. 유럽에서 고서를 나누는 기준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다. ①세계대전을 기준으로 삼는 방법(1900년대 초반) ②산업혁명 즈음(18세기 중엽) ③르네상스(14~16세기) ④중세시대(기원후 500~1500년 사이). 일반적으로 수집가들이 탐내는 책은 주로 유럽의 고서들이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출간된 책 같은 경우 국가적인 보물 취급을 받기 때문에 개인이 소장하기란 어렵다. 이런 책들의 아름다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책 표지를 보석세공 기법으로 장식한 것도 있다. 중세 문학에 정통한 이탈리아 학자 움베르토 에코나 영국의 희귀본 전문가 릭 게코스키라고 하더라도 이런 책을 손에 넣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수집가들이 탐내는 유럽고서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자신만의 수집영역을 설정해 놓고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쪽은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중반 시대에 출판된 책들이다. 여기에 속하는 작가로는 영국의 찰스 디킨스, 명탐정 홈스를 탄생시킨 아서 코넌 도일, 루이스 캐럴, 제인 오스틴 등이 있고 아일랜드의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예이츠, 프랑스에선 에밀 졸라, 쥘 베른, 플로베르, 발자크, 그리고 미국 작가라면 에드거 앨런 포, 허먼 멜빌 등이다. 실로 이 시기에는 수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활동했으며 구할 수 있는 책도 산업혁명 이전 시기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무엇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읽었던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애정이 간다. 중요한 건 가격인데, 작가의 서명이 들어 있는 등 특별한 판본이 아닌 이상 도저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는 않기에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 외국어에 능통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런 책을 왜 가지려고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블룸버그가 그랬듯이 책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읽고 감명을 받았던 그 책이 실제로 출판됐던 시기의 판본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기쁨이다. 책이 놓여 있는 책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귀중한 책을 훔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책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인연이 맞닿아서 좋아하는 책과 만나는 것 역시 소중한 즐거움이다. 오늘도 자신만의 아름다운 책을 꿈꾸며 살고 있을 세상 모든 애서가들에게 위대한 시인 단테의 문장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너만의 길을 가라. 누가 뭐라고 하든!”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7년 뒤 파리올림픽선 ‘에펠탑 마라톤’ 본다

    7년 뒤 파리올림픽선 ‘에펠탑 마라톤’ 본다

    두 대회 개최지 최초 동시 결정 파리 대회, 베르사유서 승마 열려 LA올림픽, 야구 존속 기여할 듯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배경으로 트라이애슬론, 마라톤, 장거리 수영 경기가 펼쳐진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는 승마 경기가 열린다.7년 뒤 하계올림픽에선 파리의 관광명소가 올림픽 명소로 탈바꿈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3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131차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파리와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각각 2024년과 2028년 하계올림픽 개최 도시로 결정했다. 두 대회 개최지가 한번에 결정된 것은 처음이다. 유치 도시들의 과열 경쟁을 막고 올림픽 운동의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는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유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비용 대비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올림픽이 되게 할 것”이라고 역설했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화상으로 파리의 올림픽 개최를 희망한다고 힘을 보탰다. 이어 에릭 가세티 LA 시장도 “가능한 한 많은 도시들에 영감을 주고 싶다”고 호소했다. 파리는 세 차례 좌절 끝에 1900년과 1924년에 이어 100년 만에 올림픽을 개최한다. LA 역시 1932년과 1984년에 이어 세 번째다. 특히 LA는 당초 2024년 유치를 강력히 바랐으나 IOC의 펀드 지원 약속을 받아내고 4년 뒤에 열겠다고 양보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에펠탑의 남동쪽 샹드마르스 공원에서 비치발리볼 경기가 열리고 투르드프랑스 마지막 구간의 종착점인 샹젤리제 거리에 사이클 도로 경주의 결승선이 차려진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결승과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16 결승이 열린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는 육상 경기가 열리게 된다. LA는 유치 과정에 ‘우리가 지으려는 건 기존의 것이 아니다’라는 이색 구호를 내걸었다. 럭비와 근대5종 경기를 메이저리그사커(MLS) LA 갤럭시의 홈 구장인 스타헙 센터에서 치르고 배구 경기는 샌타모니카 해변을 활용할 계획이다. 야구의 인기가 높은 곳이라 올림픽 야구의 존속에 큰 기여를 할 것이란 기대도 낳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7년 뒤 에펠탑, 샹젤리제,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는

    7년 뒤 에펠탑, 샹젤리제,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는

    2024년 하계올림픽은 프랑스 파리, 2028년 하계올림픽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개최하기로 최종 확정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3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131차 총회를 열고 투표를 통해 파리와 LA를 각각 2024년과 2028년 하계올림픽 개최 도시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IOC가 두 대회 올림픽 개최지를 동시에 선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투표에 앞서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비용 대비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올림픽이 되게 할 것”이란 골자의 유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화상 연결을 통해 IOC 위원들에게 파리 올림픽 개최를 희망한다며 힘을 보탰다. 이어 에릭 가세티 LA 시장도 “가능한한 많은 도시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파리는 세 차례 고배 끝에 마침내 1900년과 1924년에 이어 100년만에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LA 역시 1932년과 1984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데 이어 세 번째 대회를 개최한다. 특히 LA는 당초 2024년 대회 유치를 강력 희망했으나 IOC의 펀드 지원 약속을 받아낸 뒤 4년 뒤에 개최하는 방안을 받아들인 바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파리는 상징인 에펠탑을 배경으로 트라이애슬론, 마라톤, 오픈워터 수영 등이 펼쳐진다. 비치발리볼 경기가 샹드마 근처에서 열리며 로드 자전거 경주는 투르 드 프랑스 마지막 구간의 종착점인 샹젤리제 거리에 결승선이 차려진다. 육상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결승전과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16 결승이 열린 스타드 프랑스에서, 승마의 여러 종목이 옛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펼쳐져 색다른 볼거리를 안기게 된다. LA는 유치 과정에 “우리가 지으려는 건 기존의 것이 아니다(what we have, not what we’re going to build)”는 색다른 구호를 내걸었다.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은 앞서 두 대회 육상을 치렀는데 2028년 대회에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주최측은 럭비와 근대5종 경기를 메이저리그사커(MLS) LA 갤럭시가 홈 구장으로 쓰는 스타헙 센터에서 치르려 계획하고 있으며 배구 경기는 샌타모니카 해변을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두 개의 주요 종목 경기장은 아직도 건립되지 않았는데 야구 그라운드를 끼고 있는 Dedeaux 필드를 수영과 다이빙을 천정없이 치를 수 있도록 개조할 계획이다. MLS LA FC는 여전히 축구 경기를 개최할 수 있도록 2만 2000명이 들어가는 스타디움을 건립 중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근대화의 최전선’ 덕수궁·정동, 잊혀진 대한제국이 말을 건넸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근대화의 최전선’ 덕수궁·정동, 잊혀진 대한제국이 말을 건넸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6회 ‘서울의 근대교육’ 편이 9월의 첫 주말인 지난 9일 중구 정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선선해진 날씨 때문인지 가족, 친구 단위 참가자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선착순 예약자 30명과 대기자 10명까지 꽉꽉 채운 만원사례를 기록했다. 중·고교 교사를 비롯, 답사 프로그램 단골손님이 대부분이다. 밀도 있는 해설을 원하는 수준 높은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된 해설자’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기가폰을 잡았다.정동과 덕수궁은 슬프다. 우리는 무심하게도 덕수궁을 조선이 남긴 5개 왕궁 중 하나로, 정동은 망국의 한이 서린 근대문화의 일번지쯤으로 여긴다. 두 가지 기억 요소 모두 조선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한제국이라는 어엿한 나라의 역사는 간과되고 있다. 정동은 이 땅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궁이 자리한 궁역이요,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 경운궁의 후신이라는 점을 자꾸 잊는다. 정동과 덕수궁을 볼 때마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엮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3년간 이어진 대한제국의 역사는 망각의 늪에 빠졌다. 대한제국기를 느끼고, 대한제국의 시선으로 보아야 정동과 덕수궁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동과 덕수궁은 이 땅의 마지막 왕조, 대한제국의 모든 것이다.개방군주 고종은 북쪽에 치우친 경복궁과 창덕궁 대신 덕수궁의 전신 경운궁을 택했다. 1895년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정동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고종은 경복궁으로 환궁하지 않았다. 구미열강의 힘을 빌려 일본과 청으로부터 벗어날 작정이었다. 비어 있던 경운궁의 복원을 은밀하게 지시했다. 외국공사관으로 둘러싸여 안전하고, 사방으로 뚫려 근대국가의 궁궐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왕실 최고어른인 명헌태후와 왕태자비의 거처도 경운궁으로 옮겨 놓았다. 당시 초대 주미공사를 지낸 박정양은 “워싱턴DC의 현대도시적 특징과 바로크식 방사상 도로체계를 서울에 도입해 대한제국의 본궁을 짓고 대안문(대한문) 앞을 결절점으로 삼아 광장을 만드는 등 서울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려 했다”고 말했다.고종이 취한 결정적 조치는 황제국의 상징적 건조물 환구단(원구단)과 황궁우의 건립이었다. 환구단이 자리한 현재의 조선호텔은 중국 사신이 묵던 남별궁 자리다. 영은문을 뜯고 독립문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남별궁 자리에 환구단을 축조한 것은 중국과의 500년 책봉과 조공 관계의 청산을 의미했다. 중국이 일본이나 러시아 황제국과 동격이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첫 도심궁궐이자 마지막 근대궁궐인 경운궁은 불운했다. 1900년 선원전 화재에 이어 1904년 대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탔다. 갈 곳을 잃은 고종이 덕수궁 밖 중명전에서 머물 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었다.우리가 보고 있는 석어당, 즉조당, 중화전은 1906년 복원된 것이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나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동문이던 대한문이 정문이 되었다. 공사관과 교회, 학교 용도로 야금야금 잠식당해 본래의 3분의1 크기로 줄었다. 고종은 1919년 승하할 때까지 23년간 경운궁과 정동을 떠나지 않았다.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일본은 환구단이 청나라 칙사의 숙소였다며 철도호텔을 지어 새 종주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경운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보다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덕수궁 절반이 중앙공원으로 이름을 바꿔 벚꽃놀이 명소로 둔갑했다. 원구단은 해체됐고 석조전은 이왕가미술관으로 용도변경됐다. 근대의 문화적 향기는 서구 제국주의를 모방한 일본 팽창주의의 그늘에 묻혀 버렸다. 정동의 최고 전성기는 조선이 열강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던 근대의 새벽이었다. 당시 정동은 구미열강 공사관을 비롯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 배재학당, 이화학당, 구세군 본영, 정동 제일교회 같은 모두 25개의 큰 건물이 들어선 서울에서 가장 화려하고 분주하던 동네였다. 정동에는 서양 신문물의 수용과 극일, 자주독립을 향한 약소국 대한제국의 마지막 몸부림이 담겨 있다. 지금 덕수궁 바깥 정동엔 근대의 향기만 흐를 뿐 근대의 자취는 대부분 사라졌다. 한국전쟁과 도심재개발 과정에서 옛 미국 공사관저(하비브 하우스)와 옛 러시아 공사관 3층 석탑의 잔재 이외에 모두 땅속으로 들어갔다. 서구 열강의 자존심을 건 건축의 경연장이었던 정동 옛 공사관 거리가 그때 그 모습으로 보전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중국 상하이가 조계지 와이탄(外灘)을 꾸며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서 정동의 근대풍경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다음 일정 <서울의 물길:한강 선유도공원> 일시: 16일 오전 10시 선유도공원 입구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반도 지진 발생 빈도 늘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반도 지진 발생 빈도 늘어”

    지난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쳐 한반도에서의 지진 발생 빈도가 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동일본 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지진이다. 인명피해만 1만 5000여명에 달해 1900년 이후 세계에서 발생한 4번째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11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린 ‘2017년 지진 워크숍’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반도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했다”면서 “이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한반도 지각이 확장해 작은 임계 압축응력(단위면적당 작용하는 힘)에도 지진이 발생할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홍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의 대표적 사례로 2012년 2월에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연쇄 지진을 꼽았다. 2012년 2월 울산 동구 남동쪽 50㎞ 인근 해역에서는 19일부터 27일까지 규모 2.0 중·후반대의 지진이 총 5차례 발생했다. 홍 교수는 지난해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지목했다. 홍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반도에는 소규모 지진과 함께 중규모 이상의 발생도 늘었다”면서 “응력 환경이 회복될 때까지 현재의 지진 발생 특성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국내 연구기관과 학계 전문가뿐만 아니라 미국 지질조사국(USGS), 국제 환경인증기관인 독일 튀브노르트, 일본 기상청(JMA), 이탈리아 지진화산연구소(INGV), 대만 기상국 등 해외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진에 관한 최신 기술 동향을 공유하고 한반도 지진 현상과 대응 정책 현황, 원자력 안전 등 지진 방재 정책에 관해 의견을 나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치광장] 옛 경춘선 화랑대역, 철도공원으로/김성환 노원구청장

    [자치광장] 옛 경춘선 화랑대역, 철도공원으로/김성환 노원구청장

    노원구 공릉동에 자리한 화랑대역. 경춘선 복선 구간 개통에 따라 2010년 12월 20일 그 역할을 다한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다. 외진 곳에 있고 고즈넉해 산책 주민들이나 사진 마니아들이 간혹 찾는 곳이다. 하지만 나무들 사이로 시원하게 뻗어 있는 넓은 철로가 잡풀로 뒤덮여 방치되는 것이 늘 아쉬웠다. 그러던 중 3년 전 새해를 맞아 정동진을 갔었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시계박물관이 있었는데 실제 운행하던 기차를 리모델링해 시간의 역사부터 해시계, 연소시계 등 다양한 볼거리를 채워 놓았다.  순간 화랑대역이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나라에 철도가 도입된 지 120년이 돼 가지만 철도 역사와 체험을 위한 공간은 드물다. 화랑대역은 71년 된 등록문화재다. 철로도 거의 남아 있어 철도 공원을 만들면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았다. 마침 서울시가 주변 6.3㎞ 경춘선 폐선 구간을 공원으로 꾸미고 있어 추가로 ‘화랑대역 철도공원’ 조성을 건의했다.  그러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기차다. 그것도 우리나라 철도 역사와 때를 같이한 초기 운행하던 것이면 좋겠다 싶었다. 자료 조사와 수소문 끝에 고종 황제가 탔다는 서울의 첫 노면전차가 서울민속박물관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황제가 직접 탔던 것은 아니고 2002년 실물과 똑같이 복원한 것인데 이전을 진행 중이다.  뜻밖의 성과도 있었다. 1960년대 서울 도심을 다니던 당시 노면전차 모델이 지금도 일본에서 운행된다 하여 구매를 위해 나가사키를 방문했다. 그런데 관광청장 면담 자리에서 한?일 문화 교류 차원에서 무상으로 기증받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철도공원 조성 과정의 협력을 약속했고 실제 노면전차 도입이 가능한지 살피기 위해 전 국토교통성 차관의 현장 방문도 있었다. 이 외에도 구한말 노면전차와 비슷한 모델 도입을 위해 체코 대중교통박물관과 구매계약도 체결했다. 지금 화랑대역에는 1950년대 일본에서 수입해 경부선을 오가던 미카형 증기기관차와 수인선 협궤열차가 옮겨와 있다.  철도공원에는 구한말부터 1900년대 초까지 운행한 노면전차, 1950년대 일반 기차, 1974년 서울의 첫 지하철 등을 시대별로 갖추어 전시할 예정이다.  철도 박물관은 8량 규모의 열차 내부에 세계 여러 나라와 한국, 서울의 철도 역사 등 다양한 교육 자료들을 구비한다. 우리나라와 세계 철도 역사를 한눈에 볼 화랑대역 철도공원은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의 효과를, 어른들에게는 진한 추억의 향수를 제공할 산 교육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16개국어 정복 비결? 스스로 언어 천재라고 믿으라

    16개국어 정복 비결? 스스로 언어 천재라고 믿으라

    언어 공부/롬브 커토 지음/신견식 옮김/바다출판사/280쪽/1만5000원 언어 전공자도 아니고 유학 경험도 없으면서 16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게 가능할까. 헝가리 출신의 통역사 롬브 커토(1909~2003)는 심지어 언어적 재능이 없어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외국어 능력이 점점 중시되는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들의 귀가 솔깃해진다.저자가 외국어를 공부한 1900년대는 지금처럼 체계적인 학습법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다. 어릴 적 외국어에 관심은 많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던 그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취업 진로를 정하면서 영어 가르치는 일을 선택한 그는 학생들보다 겨우 몇 주 앞선 실력으로 수업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이때를 시작으로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중국어, 루마니아어, 덴마크어, 일본어 등 16개국 언어를 차츰 정복해 나가기 시작한다. 저자는 독학으로 언어를 깨친 원리를 나라별 문화적 특성과 비교해 가며 꼼꼼하게 전수한다. 그가 들려주는 공부법은 시대가 지난 지금도 깊은 통찰력을 준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헝가리어 사전과 러시아 소설을 한 페이지씩 제본한 책을 공습 대피소에서 읽으며 러시아 군인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한다. 2년 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용감하게도 러시아어 통역사를 자처했다. 한번은 중국어 통역으로 나섰다가 북경어가 아닌 광둥어를 쓰는 상대를 만나 한자로 쪽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 나간 일도 있다. 새로운 언어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사전을 사서 글자 읽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절대 단어를 외우려 하지 말고 낱말 퍼즐을 풀듯 훑어보면서 언어의 규칙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새 언어에 대한 시식(試食)이 끝나면 교재와 문학 작품을 사서 읽는다. 그리고 라디오와 뉴스 방송을 들으며 발음을 가다듬는다. 이런 식으로 언어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매우 놀랍고 유기적이다. 다만 이 책의 학습법이 성공하려면 언어적 재능은 없을지라도 언어에 미친 열정과 낙천적 성격을 갖춰야 한다. 88세에도 히브리어에 도전할 정도로 ‘언어 애호가’였던 저자의 언어 공부 십계명 가운데 마지막은 ‘스스로 언어 천재라고 굳게 믿으라’였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군주론·에밀·사상계… 인간의 삶을 비춘 ‘어둠의 책들’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군주론·에밀·사상계… 인간의 삶을 비춘 ‘어둠의 책들’

    때는 1762년, 한 지식인 청년이 로마 당국의 수배를 피해 스위스로 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수백년이 흐른 다음에도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가 쓴 책으로 공부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청년 지식인은 오직 진실을 탐구하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 어려움을 참아냈지만 로마 가톨릭의 분노를 산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의 책은 모두 불태워졌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문제는 그가 최근에 쓴 책 한 권으로부터 비롯됐다. 책 제목은 ‘에밀’이고 이처럼 위험한 책을 쓴 사람은 장 자크 루소( 1712~1778)다.현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이제는 ‘에밀’을 두고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위험천만한 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사회계약론’과 함께 루소의 대표적인 저작이고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봤을 중요한 사상서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됐을 당시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에밀이라는 한 아이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이야기를 다루며 그의 교육과 성장에 관한 견해를 써 내려간 ‘에밀’에서 루소는 자연친화적인 교육방법이야말로 최상의 지성을 길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종교를 밑바탕으로 한 당시 사회 분위기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루소가 주장한 자연종교이론과 성직자를 비판하는 문장은 가톨릭교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결국 ‘에밀’은 금서(禁書)로 지정되어 모두 회수되었고 루소에게는 수배령이 내려졌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 여럿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금지 사항을 만들었다. 처음엔 맹수나 다른 부족의 공격으로부터 구성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권력자들이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 국가는 국민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고 이와 반대로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은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특히 그들이 쓴 책은 사람들의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검열의 대상이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가 훌륭한 인류의 유산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책들이 실은 금서였다. 그것을 쓴 저자는 물론 읽거나 책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진리를 향해 걸음을 옮긴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인간의 삶은 조금씩 발전할 수 있었다.오늘날 이탈리아의 정치가, 역사학자인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 삶의 교과서가 된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출판조차 될 수 없었다. 메디치 가문의 편에 서서 정치를 하다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한 마키아벨리는 석방된 이후 숨어 지내면서 편지글 형식으로 ‘군주론’의 초안을 완성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이 다시금 정부에 기용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군주론’은 그만큼 획기적인 책이었다. 그러나 이 원고는 아예 출판될 수 없었고 일부 사람들만 단편적인 내용을 조심스레 돌려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 출판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 책은 그가 숨을 거두고 몇 년이 더 흐른 1532년이 되어서야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세상에 나오게 됐다.비슷한 시기 영국에선 정치가 토머스 모어가 장차 ‘유토피아’라고 불리게 될 책을 집필하고 있었다. 1516년 처음 출판됐을 때 이 책은 당시 관례에 따라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하여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島)에 관한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이라는 긴 제목을 달고 있었다. 모어는 저작을 통해 당시 영국사회가 갖고 있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출판된 후 200년 이상 흐른 1789년에 가톨릭교회는 이 책의 내용이 종교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금서로 처리했고 시중에 있는 모어의 모든 책을 회수하도록 명령했다.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금서도 늘어났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위대한 서사시 ‘신곡’은 190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는 금서로 취급됐다.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편지글 형식으로 쓰인 소설로, 이루지 못한 사랑에 좌절하여 주인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내용이 큰 줄거리다. 현대에는 괴테와 그의 작품을 가지고 학술 논문을 쓸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출간 당시에는 젊은이들이 책에 영향을 받아 자살하는 사건이 이어지자 서점에서 이 책을 팔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명작들도 한때는 금서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 보면, 비교적 최근까지도 상당히 많은 금서가 존재했다. 사회를 통제할 목적으로 금서 목록을 만든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남쪽에선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관한 책들이 줄줄이 금서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특히 남북의 이념 대립이 극에 달했던 1970~80년대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 자체가 억압됐던 시기였다. 금서 목록만 해도 상당한 분량이었다. 우선은 ‘마르크스’나 ‘레닌’ 같은 단어가 제목이나 본문 목차에 들어가 있다면 거의 무조건 금서 처분을 받았다. 그들이 쓴 책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회과학, 정치철학을 다루고 있는 연구서들도 이적출판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책들이 대학교 주변 사회과학서점을 중심으로 불법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잘 알려진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저자가 소련에서 활동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취급했다. 프레이리의 교육연구서 ‘페다고지’는 민중교육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체 게바라 등 혁명가와 관련된 서적 역시 출판이 금지됐다. 외국 번역서뿐만 아니라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같은 책도 금서였고 김지하 시인의 ‘황토’, ‘오적’처럼 국가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것이라면 문학작품도 금서 처분을 받았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조태일의 ‘국토’, 김정환의 ‘해방서시’, 신경림의 ‘농무’ 역시 1980년대까지 불온서적으로 분류됐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억압과 통제의 역사도 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굳이 헤겔의 유명한 ‘정반합 이론’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세상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함께 공존할 때 인류는 비로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진리는 영원히 가둬 놓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저절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올바른 가치를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아끼지 않고 붓을 손에 들었던 용기 있는 개인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이다. 카프카의 말대로 책은 그야말로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려 물을 흐르게 하는 도끼와 같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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