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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환경 ‘모래 필터’ 거친 수돗물… 생수병 찾기 힘든 네덜란드

    친환경 ‘모래 필터’ 거친 수돗물… 생수병 찾기 힘든 네덜란드

    물의 나라 네덜란드의 거리와 공원 곳곳에는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음수대가 있다. 네덜란드의 수돗물 음용률은 90%에 이를 정도로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일이 생활화돼 있다. 손에 생수병을 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1인당 먹는샘물 소비량(25ℓ·2017년 기준)은 유럽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우리나라(108ℓ)와 비교해 4분의1 수준이다. ●소독약 냄새 안 나는 수돗물 사실 네덜란드의 원수 질은 좋은 편이 아니다. 라인강 하류에 위치한 네덜란드는 라인강 지류의 강물을 암스테르담 등 대도시에 공급하는 물의 원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원수 자체가 결코 깨끗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러 단계에 걸친 정화 시스템과 우수한 관망 관리로 가장 흔한 소독제인 염소를 사용하지 않고도 안전하고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고품질의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된 데는 지역별 식수를 담당하고 있는 상수도회사와 물연구기관인 KWR 간의 긴밀한 협력이 바탕이 됐다. KWR 국제연구·혁신팀 책임자인 제라드 반 덴 베르크 박사는 “수십년 동안 상수도회사들과 기술과 경험, 연구 결과 등을 공유하며 물 분야를 발전시켜 왔다”면서 “이것이 양질의 수돗물을 만드는 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10개 상수도회사와 벨기에의 가장 큰 상수도회사 더바테르흐룹(De Watergroep)이 연간 700만 유로(약 90억원)를 KWR과의 공동 연구 프로그램에 투자한다. KWR은 네덜란드 수돗물의 특징으로 ▲무(無)염소 ▲다중여과 ▲낮은 누수율 ▲자체 정화망 등 4가지를 꼽았다. 네덜란드는 전역에서 염소를 쓰지 않고 친환경적인 정화 시스템을 활용해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다. 염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물맛이 훨씬 좋다. 염소를 쓰면 사 먹는 생수에서는 나지 않는 소독약 냄새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염소는 1900년대부터 콜레라나 페스트 등 수인성 전염병을 막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수돗물 소독제다. 네덜란드도 과거엔 염소를 사용했다. 하지만 1970년대 염소의 부산물로 나오는 총트리할로메탄(THMs)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현재는 염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식수를 공급한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염소를 사용하지 않고 물을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여러 단계의 여과 시스템(multi-barrier system)을 꼽는다. 대표적인 것이 모래언덕 정화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해수면보다 육지가 낮은 이곳에서 제방 역할을 하던 해안가 모래언덕이 물을 여과해 박테리아를 제거한다는 사실을 알고 19세기부터 모래언덕을 물 공급에 이용해 왔다. 그러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심이 형성돼 상수도를 구축하게 되자 강물을 모래언덕으로 끌어와 정화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강물을 모래언덕에 지하수 형태로 저장했다가 공급하는 원리다. 로베르트 호프만 KWR 선임연구원은 “네덜란드에서는 미생물을 비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의 먹이가 되는 동화유기탄소(AOC) 자체를 없앤다”며 “만일 박테리아가 소독에서 살아남더라도 더이상 증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염소를 쓸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래언덕을 비롯해 캐스케이드(폭포), 산소 처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단계에 걸쳐 물을 정화하며 역삼투, 완속 모래여과 또는 자외선(UV) 투사로 물을 소독한다.●큰 관보다 수압 높은 작은 관 깨끗이 유지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것만으로 물의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다. 상수관을 통해 가정의 수도꼭지까지 공급되는 과정에서 박테리아의 침입에 노출될 수 있고, 침전물이 쌓여 있는 경우 지난여름 인천 적수 사태처럼 녹물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물의 안전성을 결정하는 것이 관의 상태다. 네덜란드는 수돗물 공급 과정의 손실률이 5.7%(2017년 기준)인데, 이는 관 청소(플러싱)나 소화전 물 사용량 등이 포함된 것으로 실제 누수율은 3% 미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세계 최저 수준으로 그만큼 누수 틈새로 미생물이 침입해 물이 오염될 위험도 적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누수율은 10.5%다. 좁은 관을 사용하고 일정한 유속을 유지하는 것 역시 관을 깨끗하게 유지·관리하는 비결 중 하나다. 이른바 자체 정화망(Self-cleaning network)이다. 반 덴 베르크 박사는 “대부분의 상수도회사가 물을 공급하기 위해 큰 관을 갖고 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지름이 좁은 관을 써 유속을 빠르게 한다. 그러면 미생물막(바이오필름)뿐만 아니라 큰 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이나 망간화합물 같은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큰 관에서보다 수압이 높고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게 해 별도로 관을 세척하거나 자주 교체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깨끗한 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철저한 위생 관리는 네덜란드의 수준 높은 물 관리 시스템을 잘 보여 준다. 수도 암스테르담과 그 일대 120만명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는 워터넷(Waternet)의 식수 공급 및 관리 총책임자인 레온 코어스는 “누수 공사나 수도관 작업을 시작할 때는 매뉴얼에 따라 공사를 하는 사람과 장비 모두 철저하게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공사가 끝나고 나면 다시 한번 수질 검사를 해 오염원이 없는지 확인한다”고 강조했다. 물의 온도를 항상 25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 역시 네덜란드의 고품질 수돗물 공급 비결 중 하나다. 반 덴 베르크 박사는 “일반적으로 물의 온도는 지하에서 11도 정도로 유지가 되고 가정의 수도꼭지로 전달될 때까지 25도 이상 넘으면 안 된다”며 “물의 온도는 청량감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온도가 올라가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물 회사들은 수온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유럽 선진국들이 물 공급 시스템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부분이 물 자체를 보호하는 일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의 원천인 강과 하천의 수질을 보호하고 개선하는 것이 안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수돗물회사들이 정화 단계에서 활용하는 네덜란드의 모래언덕은 유럽연합(EU)의 생태보호구역인 ‘나투라(Natura) 2000’으로 지정돼 있다. 모래언덕 지역의 소유주이기도 한 상수도회사들은 수돗물 공급 회사일 뿐만 아니라 환경보호 회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델프트공대 교수이자 워터넷의 최고혁신책임자인 얀 페터 반 데르 호크 교수는 “워터넷은 물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을 전부 재활용하기 때문에 산업용수나 폐기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철가루 같은 것은 벽돌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역세정 뒤 나오는 물은 정화해 다시 세척용 물로 사용한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화학 비료 안 쓰고 유기농으로 전환 프랑스 파리의 경우 농약으로 인해 토양과 수질이 오염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지역 농부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유기농법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농부들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 재배를 하고, 여기서 수확된 농산물은 파리 도시에 있는 학교 급식 등에 공급된다. 에릭 필제도퍼 오드파리(Eau de Paris·파리상수도) 대외협력팀장은 “유기농 재배는 물의 오염을 줄여 물을 정화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공급함으로써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암스테르담·파리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르포]모래언덕 이용해 강물 정화...‘無염소 수돗물’ 네덜란드를 가다

    [르포]모래언덕 이용해 강물 정화...‘無염소 수돗물’ 네덜란드를 가다

     물의 나라 네덜란드의 거리와 공원 곳곳에는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음수대가 있다. 네덜란드의 수돗물 음용률은 90%에 이를 정도로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일이 생활화돼 있다. 손에 생수병을 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1인당 먹는샘물 소비량(25ℓ·2017년 기준)은 유럽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우리나라(108ℓ)와 비교해 4분의1 수준이다. 사실 네덜란드의 원수 질은 좋은 편이 아니다. 라인강 하류에 위치한 네덜란드는 라인강 지류의 강물을 암스테르담 등 대도시에 공급하는 물의 원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원수 자체가 결코 깨끗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러 단계에 걸친 정화 시스템과 우수한 관망 관리로 가장 흔한 소독제인 염소를 사용하지 않고도 안전하고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고품질의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된 데는 지역별 식수를 담당하고 있는 상수도회사와 물연구기관인 KWR 간의 긴밀한 협력이 바탕이 됐다. KWR 국제연구·혁신팀 책임자인 제라드 반 덴 베르크 박사는 “수십년 동안 상수도회사들과 기술과 경험, 연구 결과 등을 공유하며 물 분야를 발전시켜 왔다”면서 “이것이 양질의 수돗물을 만드는 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10개 상수도회사와 벨기에의 가장 큰 상수도회사 더바테르흐룹(De Watergroep)이 연간 700만 유로(약 90억원)를 KWR과의 공동 연구 프로그램에 투자한다. KWR은 네덜란드 수돗물의 특징으로 ▲무(無)염소 ▲다중여과 ▲낮은 누수율 ▲자체 정화망 등 4가지를 꼽았다. 네덜란드는 전역에서 염소를 쓰지 않고 친환경적인 정화 시스템을 활용해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다. 염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물맛이 훨씬 좋다. 염소를 쓰면 사 먹는 생수에서는 나지 않는 소독약 냄새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염소는 1900년대부터 콜레라나 페스트 등 수인성 전염병을 막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수돗물 소독제다. 네덜란드도 과거엔 염소를 사용했다. 하지만 1970년대 염소의 부산물로 나오는 총트리할로메탄(THMs)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현재는 염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식수를 공급한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염소를 사용하지 않고 물을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여러 단계의 여과 시스템(multi-barrier system)을 꼽는다. 대표적인 것이 모래언덕 정화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해수면보다 육지가 낮은 이곳에서 제방 역할을 하던 해안가 모래언덕이 물을 여과해 박테리아를 제거한다는 사실을 알고 19세기부터 모래언덕을 물 공급에 이용해 왔다. 그러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심이 형성돼 상수도를 구축하게 되자 강물을 모래언덕으로 끌어와 정화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강물을 모래언덕에 지하수 형태로 저장했다가 공급하는 원리다. 로베르트 호프만 KWR 선임연구원은 “네덜란드에서는 미생물을 비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의 먹이가 되는 동화유기탄소(AOC) 자체를 없앤다”며 “만일 박테리아가 소독에서 살아남더라도 더이상 증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염소를 쓸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래언덕을 비롯해 캐스케이드(폭포), 산소 처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단계에 걸쳐 물을 정화하며 역삼투, 완속 모래여과 또는 자외선(UV) 투사로 물을 소독한다.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것만으로 물의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다. 상수관을 통해 가정의 수도꼭지까지 공급되는 과정에서 박테리아의 침입에 노출될 수 있고, 침전물이 쌓여 있는 경우 지난여름 인천 적수 사태처럼 녹물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물의 안전성을 결정하는 것이 관의 상태다. 네덜란드는 수돗물 공급 과정의 손실률이 5.7%(2017년 기준)인데, 이는 관 청소(플러싱)나 소화전 물 사용량 등이 포함된 것으로 실제 누수율은 3% 미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세계 최저 수준으로 그만큼 누수 틈새로 미생물이 침입해 물이 오염될 위험도 적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누수율은 10.5%다.  좁은 관을 사용하고 일정한 유속을 유지하는 것 역시 관을 깨끗하게 유지·관리하는 비결 중 하나다. 이른바 자체 정화망(Self-cleaning network)이다. 반 덴 베르크 박사는 “대부분의 상수도회사가 물을 공급하기 위해 큰 관을 갖고 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지름이 좁은 관을 써 유속을 빠르게 한다. 그러면 미생물막(바이오필름)뿐만 아니라 큰 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이나 망간화합물 같은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큰 관에서보다 수압이 높고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게 해 별도로 관을 세척하거나 자주 교체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깨끗한 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철저한 위생 관리는 네덜란드의 수준 높은 물 관리 시스템을 잘 보여 준다. 수도 암스테르담과 그 일대 120만명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는 워터넷(Waternet)의 식수 공급 및 관리 총책임자인 레온 코어스는 “누수 공사나 수도관 작업을 시작할 때는 매뉴얼에 따라 공사를 하는 사람과 장비 모두 철저하게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공사가 끝나고 나면 다시 한번 수질 검사를 해 오염원이 없는지 확인한다”고 강조했다.  물의 온도를 항상 25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 역시 네덜란드의 고품질 수돗물 공급 비결 중 하나다. 반 덴 베르크 박사는 “일반적으로 물의 온도는 지하에서 11도 정도로 유지가 되고 가정의 수도꼭지로 전달될 때까지 25도 이상 넘으면 안 된다”며 “물의 온도는 청량감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온도가 올라가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물 회사들은 수온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유럽 선진국들이 물 공급 시스템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부분이 물 자체를 보호하는 일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의 원천인 강과 하천의 수질을 보호하고 개선하는 것이 안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델프트공대 교수이자 워터넷의 최고혁신책임자인 얀 페터 반 데르 호크 교수는 “워터넷은 물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을 전부 재활용하기 때문에 산업용수나 폐기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철가루 같은 것은 벽돌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역세정 뒤 나오는 물은 정화해 다시 세척용 물로 사용한다”고 소개했다.수돗물회사들이 정화 단계에서 활용하는 네덜란드의 모래언덕은 유럽연합(EU)의 생태보호구역인 ‘나투라(Natura) 2000’으로 지정돼 있다. 모래언덕 지역의 소유주이기도 한 상수도회사들은 수돗물 공급 회사일 뿐만 아니라 환경보호 회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행정수도 헤이그가 있는 자이트홀란트주 130만명의 식수를 담당하고 있는 뒤네아(Dunea) 역시 이런 맥락에서 사구공원이 있는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추진하고 있다. 뒤네아의 기업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니콜 반 벨트호번은 “우리는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이 지역을 모두가 협력해서 지켜야 할 땅이라는 걸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헤이그·암스테르담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40여년간 새끼 800마리, 절멸 종족 되살린 ‘번식왕 거북’ 고향으로

    40여년간 새끼 800마리, 절멸 종족 되살린 ‘번식왕 거북’ 고향으로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1859년 남미의 외딴섬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종의 기원’을 썼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수많은 해양생태종이 서식하고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윈은 특히 갈라파고스땅거북(코끼리거북)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지구상에 서식하는 거북 중 몸집이 가장 크고 가장 오래 사는 육지거북인 갈라파고스땅거북은 갈라파고스 제도 외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다윈이 처음 갈라파고스 제도를 찾았을 때만 해도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15종류의 아종이 있었지만, 선원과 어민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16세기 수십만 마리였던 개체 수는 현재 약 2만 마리까지 급감했다. 1972년 헝가리 출신 과학자가 발견한 갈라파고스 제도 핀타 섬의 마지막 갈라파고스땅거북 ‘조지’가 수십 년간의 보존 노력에도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2012년 100살이 조금 넘은 나이로 단명하면서 ‘켈로노이디스 니그라 아빙도니’ 종마저 공식적으로 멸종됐다. 갈라파고스땅거북의 평균 수명은 180년~20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몇몇 아종에서 복원의 기미가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 산타크루즈 섬에서 진행 중인 ‘셸로노이디스 후덴시스’(Chelonoidis hoodensis) 종 보존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 에스파뇰라 섬에 주로 서식하는 셸로노이디스 후덴시스 종은 50년 전만 해도 수컷 3마리와 암컷 12마리 등 15마리가 전부였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에스파뇰라 섬에 사는 셸로노이디스 후덴시스 종은 2000마리까지 늘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절멸 위기에 놓였던 종족을 되살린 건 다름 아닌 수컷 거북 한 마리였다. BBC에 따르면 늘어난 2000마리의 거북 중 800마리가 모두 한 수컷 거북의 자손으로 밝혀졌다. ‘정력왕’이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로 왕성한 번식력을 보인 거북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온 ‘디에고’다. 디에고는 1900년~1959년 사이 에스파뇰라 섬을 찾은 원정대가 발견해 미국으로 옮겨졌다. 이후 동물원에서 살던 디에고는 수십 년이 지난 1976년 종족 보존의 특명을 띠고 다시 갈라파고스 제도로 가게 됐다. 거북의 주 먹이인 선인장 나뭇잎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야생 염소들이 쫓겨난 산타크루즈 섬에서 디에고는 다른 14마리의 거북과 함께 본격적인 번식 작업에 들어갔다. 유별난 성욕으로 눈에 띄는 암컷마다 짝짓기를 시도한 디에고는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800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종족 번식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거북이 보존 전문가 워싱턴 타피아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핀타 섬에 살았던 ‘조지’는 무정란을 낳는 등 번식력이 떨어졌고 결국 한 마리의 새끼도 낳지 못한 채 멸종됐다. 반면 디에고는 짝짓기를 정말 좋아했고, 암컷들도 그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100살이 넘은 나이에도 남다른 번식력을 보여준 디에고 덕에 셸로노이디스 후덴시스 종이 멸종 위기를 벗어난 셈이다.이처럼 종족 보존의 특명을 성공적으로 마친 디에고는 오는 3월 산타크루즈 섬을 떠나 귀향한다. BBC는 11일(현지시간) 디에고가 산타크루즈 섬에서 태어나 에스파뇰라 섬으로 옮겨진 다른 1800마리의 거북의 뒤를 따라 고향인 에스파뇰라 섬으로 돌아간다고 보도했다. 고향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다시 갈라파고스 제도로 보내져 종족 번식의 사명을 수행한 지 약 80년 만이다. 800마리의 자손을 본 디에고는 이제 고향 땅에서 여생을 보내며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지난해 2월 갈라파고스 제도 페르난디나 섬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추측됐던 갈라파고스땅거북의 아종 ‘페르난디나 자이언트 거북’ 한 마리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1906년 배설물과 이빨 자국 등이 발견됐지만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113년 만의 일이다. 100살이 넘은 것으로 보이는 암컷 거북은 현재 산타크루즈 섬의 전용 사육장으로 옮겨진 상태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멕시코 정글서 최소 1000년 이상된 ‘마야왕궁’ 유적 발견

    멕시코 정글서 최소 1000년 이상된 ‘마야왕궁’ 유적 발견

    멕시코 정글서 최소한 10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야 왕궁 건축물이 발견됐다. 멕시코 인류학역사연구소에 따르면 건축물은 유타칸 반도 쿨루바 지역에서 최근 발굴됐다. 건축물의 규모는 길이 55m, 길이 15m, 높이 6m로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인류학역사연구소는 바닥과 계단, 양쪽으로 뻗어 있는 복도, 복도에 세워져 있는 기둥 등 건축 특징을 분석한 결과 왕궁 건축물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건축물에서 발견된 사각기둥 등을 볼 때 당시 최고의 기술이 사용됐다”며 “마야문명 최고위층을 위한 시설이었던 분명하다”고 말했다. 건축물의 상태와 발견된 유물 등을 볼 때 건축물이 사용된 시기는 크게 서기 600~900년, 850~1050년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건축물이 발견된 장소의 지정학적 연구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건축물이 발견된 쿨루바는 마야문명의 영향력 아래 대도시가 만들어졌던 치첸 이뜨사로부터 동쪽으로 약 130km 떨어져 있다. 마야문명의 영향력이 이곳까지 이르러 왕족이 살았다는 가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쿨루바에 대규모의 왕궁이 존재했다는 가설도 이미 나온다. 왕궁의 일부로 보이는 건축물이 앞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쿨루바에서 왕궁의 일부로 보이는 건축물의 발견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인류학역사연구소는 회반죽으로 바닥을 처리한 건축물을 발견했다. 바닥처리의 기술로 볼 때 건축물은 마야문명 최고 엘리트 계층이 사용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두 번째로 발견된 왕궁 건축물은 T자형이다. 이 건축물은 정교하게 깎은 돌로 장식한 정문이 특징이다. 왕궁 건축물들이 발견된 곳에선 마야문명 때의 것으로 보이는 무덤도 발견됐다. 무덤은 이장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게 특징이다. 원래의 무덤에서 꺼낸 시신들을 다시 묻은 것으로 보이 엘리트 계층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연구소 관계자는 “쿨루바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아직은 더 필요한 단계”라며 “이번에 발견된 왕궁 건축물과 무덤이 소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멕시코 인류학역사연구소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학술대회의 여러 부가가치들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학술대회의 여러 부가가치들

    매년 12월 둘째 주에 열리는 미국지구물리학술연합회 학술대회는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이 학회에는 전 세계 137개국 6만여명의 학자들이 정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1주일간 열리는 학술대회는 지구과학 분야의 중요한 이슈와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이다. 올해 학술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2만 8000여명의 지구과학자들이 참석해 유발지진, 기계학습, 빅데이터 분석, 인사이트 화성탐사 1주년 연구 결과 등을 주제로 열띤 토의가 진행됐다. 이 학술대회 참석 인원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참석 인원이 많다 보니 학술대회 기간 여러 진풍경들을 볼 수 있다. 일시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다 보니 학술대회 수개월 전 시내 호텔 예약이 마감되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호텔 숙박비가 평소의 배로 오르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점심시간 식사도 쉽지 않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많은 사람이 매년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학술대회를 통해 얻는 수확이 크기 때문이다. 최신 연구 결과와 이슈를 짧은 시간에 종합하고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문제를 집중 토의하고 국제 협력을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도 한다. 2005년 학술대회 주제가 좋은 예이다. 당시 학술대회에서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 수마트라섬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9.1의 대지진을 주요 주제로 다뤘다. 이 지진은 1900년 이후 발생한 전 세계 지진 가운데 역대 세 번째로 큰 지진으로 인도네시아 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1200㎞에 이르는 충돌대 단층이 500초 동안 차례로 부서지며 발생한 것이다.또 수심이 깊은 바다에 위치한 단층면이 수직으로 차례로 솟구치며 단층면을 따라 거대한 지진해일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23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 피해도 막대했다. 이 지진 피해는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인도양 연안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음이 확인되면서 지진해일에 대한 경각심이 부쩍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 개최된 학술대회에서는 지진해일 피해를 크게 일으킨 해저 단층 운동의 특징과 향후 지진 전망 등에 관한 다양한 최신 연구 결과들이 발표됐다. 또 지진해일이 도착하기까지 2~10시간이 소요됐음에도 지진해일 피해를 줄이지 못한 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미비했던 인도양 연안 국가에 대한 지진해일 경보시스템 보완을 유엔 차원에서 지원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렇듯 학술대회는 학문적 교류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진해일에 대한 관심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2만명의 인명피해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다시금 높아졌고 지진해일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공조와 협력의 계기가 마련됐다. 여기에 학술대회는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각국은 큰 학술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도 내년에 ‘아시아오세아니아 지구과학학회’, 2024년에는 ‘세계지질학총회’를 개최한다. 학문발전, 국제교류, 지역 경제 발전의 세 축이 조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반인반수 사냥 ‘最古 동굴벽화’ 기록 바뀌었다

    반인반수 사냥 ‘最古 동굴벽화’ 기록 바뀌었다

    인류 최고(最古)의 동굴벽화 기록을 고쳐 써야 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서 발견된 벽화가 4만 4000년 이전에 제작됐다고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11일(현지시간) 게재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이 동원된 반인반수(半人半獸) 그림이 등장해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부리·꼬리 달린 ‘인간 같은’ 8명 묘사 술라웨시섬 남부의 석회암 동굴인 ‘리앙 불루 시퐁4’에서 발견된 벽화는 길이 4.5m의 벽에 적갈색으로 ‘인간 같은’ 인물이 동물을 사냥하는 것 같은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멧돼지 두 마리, 물소 네 마리와 함께 창과 밧줄을 든 인물 8명이 그려져 있다. 이 인물들은 부리가 달려 있거나 꼬리가 달린 수인(獸人)이다. 벽화는 2017년 12월 발견돼 그동안 조사 과정을 거쳤다. 조사에 참여한 호주 그리피스대 애덤 브럼 교수는 “수인 그림은 술라웨시에 정착한 초기 인류가 자연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네이처 “이전 벽화보다 4000년 빨라” 연구팀은 이 동굴 벽화를 우라늄 방사선 동위원소 측정법으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멧돼지 한 마리 그림은 최소 4만 3900년, 물소 두 마리는 4만 900년 이상 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네이처는 전했다. 1만 7000년쯤 전에 제작된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보다도 2만년 이상 먼저 제작된 셈이다. 라스코 동굴벽화에도 부리 모양의 입을 가진 수인이 나타난다. 또 4만년 전에 제작된 독일의 ‘인간·사자’ 상아 조각 역시 수인 작품이다. 브럼 교수는 “(술라웨시 동굴) 그림은 사냥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신화적이거나 초자연적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냥이 아닌 동물 영혼을 묘사한 샤머니즘 의식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간 빙하기의 구석기 동굴벽화는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대해 영국 사우샘프턴대 고고학자 아리스테어 파이크 교수는 “벽화 기원이 유럽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또 영국 더덤대 고고학자이자 암각화 전문가인 폴 퍼티드는 “한 시대인지 의심스럽다”며 해당 벽화에 대해 수천년에 걸쳐 그린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연구팀을 이끈 그리피스대 고고학자 맥심 오버트 교수는 “인수 그림의 재료와 동물 그림 재료가 색상과 빛이 바랜 방식으로 볼 때 같은 시기”라고 주장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지금처럼 북극 해빙 땐 2100년엔 4억명 홍수”

    국제사회에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지구 냉각 시스템’ 역할을 하는 북극 얼음이 돌이키기 어려운 속도로 녹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현 추세로 북극 얼음이 녹으면 2100년까지 해수면이 67㎝ 올라가며, 현 세기 말부터 매년 4억명이 홍수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美해양대기청 “북극 기온, 평년보다 1.9도↑” 11일(현지시간) CNN, 가디언 등에 따르면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전날 발간한 연례 보고서를 통해 올해 북극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1.9도 높았다고 밝혔다. 이는 1900년 기록을 시작한 이래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또 CNN은 ‘북극이 온난화에서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2014년 이후 북극 연평균 온도는 1900~2014년 온도를 단 한 번도 회복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여름이 지난 직후인 9월 측정하는 북극의 최소 해빙 면적은 역대 두 번째로 좁았다. 겨울 최대 해빙 면적 역시 7번째로 좁은 수치가 기록됐다. 이는 지구가 햇빛을 덜 반사하고 더 흡수한다는 얘기다. 즉 바다를 더 따뜻하게 하고 얼음이 녹는 걸 가속화한다. 북국 빙하의 두께 역시 크게 줄어 ‘두껍고 오래된 얼음’의 비율은 1985년 3월 33%에서 올해 3월에는 1%대로 감소했다. ●두껍고 오래된 얼음, 34년새 33%서 1%로 뚝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그린란드에서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아 매년 2670억t이 사라지고 있다. 2002~2019년 이곳에서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은 지구 해수면을 연평균 0.7㎜씩 상승시켰다. 1년 단위로 보면 미미한 수치지만 현 추세가 2100년까지 계속된다면 약 1억 9000만명이 살고 있는 땅이 바닷속에 잠긴다. 해빙 감소로 북극지방 해양 생태계는 이미 변하고 있다. 미국 어획량의 40% 이상을 책임지는 베링해 지역에서 한류 어종은 북쪽으로 쫓겨 올라가고 난류 어종은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생계형 음식이 줄어들고 있다. 사냥과 낚시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안녕? 자연] 겨울왕국 ‘스벤’ 온난화 피해가지 못했다…북극 순록의 수난

    [안녕? 자연] 겨울왕국 ‘스벤’ 온난화 피해가지 못했다…북극 순록의 수난

    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부에 거주하는 ‘사미족’에게 순록은 삶 그 자체다. 전통적으로 순록과 함께 이동하며 살아온 유목민족인 사미족은 현재는 그 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소수가 여전히 순록의 고기와 가죽, 뿔, 우유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화 ‘겨울왕국2’의 배경이 된 노르웨이 북부에도 아직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미족이 있다. 겨울왕국 제작진은 이들과 협력해 영화 속 ‘사미 언어’를 만들었다. 눈사람 올라프와 함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스벤’은 사미족이 키우는 순록을 모델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미족과 순록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은 셈이다.그러나 현실 속 사미족과 스벤이 처한 환경은 영화와는 영 딴판이다. 지구 평균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북국의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먹이를 구하지 못한 순록의 개체 수는 급감했고 사미족의 삶도 위협받고 있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최근 12개월 동안 북극 평균기온은 1981∼2010년 평균보다 1.9도 높아졌다. 관측이 시작된 1900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AP통신은 스웨덴에 사는 사미족의 말을 빌려 “10년에 한 번씩 겨울 날씨가 이상하긴 했지만, 따뜻한 겨울이 점점 잦아진다”라고 전했다. 기후변화로 비 섞인 눈이 내리면서 땅은 얼어붙었고, 풀과 이끼 등이 함께 파묻히면서 순록은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주리고 있다. 스웨덴에서 약 8000마리의 순록을 사육하고 있는 한 사미족 사람은 “기후변화로 날씨 패턴이 바뀌면서 순록이 먹이를 구하지 못해 배를 곯고 있다. 만약 순록이 풀을 뜯을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한다면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우려했다.그는 순록 무리의 절반은 전통 경로대로 이동시키고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먹이를 찾아 포식자가 많은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눈사태가 날 가능성이 높아 순록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걱정했다. 사미족 사람들은 암컷 순록의 유산 및 사산도 잦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해양대기청은 ‘2018 북극 보고서’에서 1990년대 470만 마리였던 순록이 20년 사이 210만 마리로 급감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겨울왕국 속 ‘스벤’과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루돌프’를 현실에서 더는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이 때문에 사미족 청년단체는 지난해 유럽연합(EU)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초 절차상의 이유로 기각됐지만 항소했다. 산나 반나르(24) 사미족청년회 회장은 AP통신에 “더 나은 날씨를 돈으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유럽연합이 지금 당장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역설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일제 수탈로 해조류 씨말라… ‘몸국’ 대신 돼지고기 육수로 부활

    일제 수탈로 해조류 씨말라… ‘몸국’ 대신 돼지고기 육수로 부활

    제주에는 100년 전까지만 해도 밀국수가 없었다. 제주의 부엌살림 유물을 아무리 뒤져 봐도 국수틀이나 홍두깨는 없으며 밀국수 얘기가 구전으로도 전해진 바 없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에 ‘건면’ 들어와 1900년대 일제강점기에 ‘건면’이 제주에 들어온다. 고기국수는 이 건면의 도입과 제주의 전통혼례 풍습이 결합한 새로운 음식으로 100년도 채 안 된 것이다. 제주의 전통혼례는 돼지를 잡으면서 시작해 최소 3일 이상 진행된다. 마을 사람들이 잔치 음식을 그 기간 나눠 먹는다. 이때 끼니마다 접시에 수육 세 점과 두부와 순대도 한 점씩 담아 주는데, 이를 ‘괴기반’이라 한다. ‘반’(槃)은 한 사람분의 음식이라는 의미다. 또한 밥과 괴기반과 함께 돼지고기 육수에 해조류인 모자반을 넣어 ‘몸국’이라는 국을 끓여 먹는다. 과거에는 구경하기 힘든 육수로 만든 국으로 제주만의 잔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돼지를 잡는 풍습은 이어졌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일본인들은 고기를 그다지 탐내지 않아 돼지를 공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톳이나 천초, 모자반 등 해조류를 탐해 해녀들을 앞세워 제주 해조류를 채취해 전량 본국으로 가져가 버렸다. ●1990년대 ‘향수 상품’으로 인기 몰이 결국 모자반이 없어 몸국을 끓일 수 없던 제주 사람들은 육지의 음식인 잔치국수를 돼기고기 육수에 말아 먹었다. 이때 괴기반에 담을 고기를 고명으로 얹으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식 잔치국수인 고기국수가 완성됐다. 그렇게 고기국수는 90여년 전 제주시의 무근성(현 삼도이동 일부) 일대와 애월읍 등지를 거쳐 섬 전체에 확산됐다. 1970년대 군사정권에는 가정의례 간소화 정책을 빌미로 집안 대소사에 돼지 도축을 금지했다. 그로 인해 전통적인 ‘반’이 사라지고, 혼식과 분식 장려 정책으로 국수가 일반화돼 멸치 육수가 제주에도 확산됐다. 이에 고기국수는 그 명맥이 끊어지는 듯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른바 향수 상품으로 고기국수가 재등장했다. 이때부터 돼지 사골 육수를 사용했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 [씨줄날줄] 공기업의 무개념 홍보/장세훈 논설위원

    [씨줄날줄] 공기업의 무개념 홍보/장세훈 논설위원

    공기업들이 홍보를 위해 내놓은 광고가 잇따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른바 ‘흙수저·금수저’ 논란을 부추기는 옥외 광고로 비판을 받았다. 광고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 형식을 빌려 한 사람이 “너는 좋겠다. 부모님이 집 얻어 주실 테니까”라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나는 네가 부럽다. 부모님 힘 안 빌려도 되니까”라고 답하는 내용이 담겼다. 애초 취지는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을 홍보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금수저 청년이 흙수저 청년을 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LH는 지난 3일 사과와 함께 해당 광고물을 모두 철거했고 새 광고를 제작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말에는 한국관광공사가 내놓은 홍보 영상이 일제강점기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관광공사의 일본 오사카 지사는 일본 관광객 유치를 위해 1900년대 초 개화기 시대 서울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현지에서 유행인 ‘뉴트로’(새롭다는 단어 NEW와 복고를 뜻하는 RETRO의 합성어)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상에 등장하는 ‘경성’이라는 간판과 ‘해방촌 108계단’ 등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성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지은 서울 이름이고, 해방촌 108계단은 일제가 신사 참배를 위해 조성한 길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관광공사 측은 결국 해당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물론 논란과 파격의 광고 캠페인으로 주목받는 민간기업도 적지 않다. 광고 자체가 화젯거리가 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베네통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인종의 남녀 누드모델들이 서로 팔짱을 낀 장면, 에이즈로 죽어가는 환자와 가족, 흑인 여성의 젖을 먹는 백인 아기, 오염된 바다에서 기름으로 범벅이 된 물새, 연인처럼 키스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합성사진 등 파격적인 이미지의 효과를 극대화해 유명하다. 이러한 광고 캠페인은 베네통의 기업 가치 상승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반대로 최근 ‘위안부 조롱’ 논란을 낳은 일본 의류 기업 유니클로의 광고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는 일이다. 민간기업과 달리 공기업의 소유권자는 정부로 대표되는 국민이다. 국민 생활의 기초재가 주요 사업 분야다. 공기업으로서는 사회적 가치가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흙수저·금수저 논란, 일제강점기 미화 논란 등은 철저히 피해 가야 할 가치다. 광고에 파격보다 절제를, 논란거리보다 진솔함을 담아내야 한다. shjang@seoul.co.kr
  •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2차 국립서울현충원’ 편이 지난달 30일 동작구 상도동과 동작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7호선 상도역 4번 출구를 출발했다. 구립 김영삼도서관을 거쳐 김영삼 전 대통령 가옥에 방문했다. 김영삼 기념도서관은 내년 3월쯤 개관할 예정이어서 외관을 살펴보고 경과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대정치사에 ‘상도동’이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 가옥 응접실에서 차를 대접받으며 김상학 비서관으로부터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과 연금생활 등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눈에 익은 사진과 기념품, 휘호, 단풍나무를 즐겼다. 가옥에는 손명순(92) 여사가 기거하고 있다.서달산 명물로 떠오른 숲속도서관 가는 길은 11월의 마지막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현충원에서 호국지장사(옛 화장사)~박정희~김대중~임시정부 및 애국지사 묘역 순으로 둘러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앞에 화환이 즐비했는데 마침 전날이 고 육영수 여사의 94번째 생일이었다고 한다. 상도동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현충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다들 아쉬워했다. 묘역 곳곳에 깃든 숱한 사연들이 저마다 앞다퉈 얘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김 전 대통령 가옥과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해설을 맡은 엄태호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의 만추 속으로 참가자들을 안내했다.동작은 서울과 과천을 연결하는 한강 남쪽의 중요 나루였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던 동작진(銅雀津)이자 병선 6척이 주둔하던 군사기지 동작진(銅雀鎭)이기도 했다. 우리말로는 동재기나루라고 불렀다. 1954년 이곳에 국군묘지가 세워졌다. 풍수지리상 장군대좌형의 명당이므로 군인과 인연이 있는 땅이다. 본래 동작이란 무덤을 장식한 구리봉황을 뜻하므로 땅 이름과 땅 주인이 서로 들어맞았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성이자 무덤이던 동작대에서 딴 동작이라는 지명이 조선 한양의 한강변 나루터 마을에 붙고 그곳이 현대 서울의 동작구와 동작동이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가 결국 국립묘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국군묘지에서 1965년 동작동 국립묘지로 승격됐다가 1996년부터 국립현충원이 됐다. 국립묘지라는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되 묘역 관리기관의 명칭만 바꿨다.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 등과 구별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이 됐다. 144만㎡의 부지에 무명용사 11만여위를 비롯해 모두 17만 9000여기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다. 신라를 통일한 문무대왕이 “아! 산천은 변천되고 세대는 바뀌기 마련이다. 저 오왕 합려의 북산 무덤에 색칠한 금오리가 남아 있지 않고, 위왕 조조 서릉의 망지는 동작이라는 명칭만 남았을 뿐이다…”라며 “내가 죽으면 동해바다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했다. 이 세상 영웅과 화려한 무덤이 다 사라지고 결국 ‘동작’이라는 이름만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조의 무덤에 구리로 만든 거대한 새를 세운 동작대에서 이름을 이어받은 동작구와 동작동에 국군묘지와 국립묘지가 세워지고 독립지사와 임정요인, 전직 대통령 등을 모신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장소인문학에서 말하는 땅의 내력이다.조선시대 한강이 오늘의 철도와 고속도로를 합친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할 때 왼쪽 서빙고나루, 오른쪽 노량나루의 중앙에 놓인 동작나루는 남대문을 나서서 용산 청파역을 거쳐 경기도 과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에 이 길을 과천로라고 이름 붙였다. 청파역에서 노량나루를 건너면 시흥으로 향했다. 동작진을 건너 과천으로 가거나 노량진을 건너 시흥으로 가는 두 길은 수원에서 만나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으로 이어졌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경인선과 1900년 노량진~용산 간 제1한강교(한강대교)가 놓이면서 동작진은 노량진에 밀렸다. 조선시대 가리기 힘들었던 두 나루의 우열은 근대기 들어 노량진이 앞섰다. 그 덕분에 비어 있던 동작진에 국립묘지가 깃들 수 있었다.옛 동작나루를 그린 실경산수화 2점이 전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동작진’과 장시흥(1714~1789)의 ‘동작촌’이다. 동작진이 나루터를 포함한 마을 전체를 그렸다면 동작촌은 동작나루의 솟은 암산과 나루에서 사당, 과천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즐비한 기와집을 클로즈업했다. 정선이 1744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작진’은 오늘의 현충원을 중심에 두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을 배경 삼았다. 동작나루 일대 한강을 동작강이라고 불렀다. 권문세가의 별서(별장)가 자리잡았다.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가 세운 창회정이 정선의 그림에 엿보인다. 광해군 때의 권신 박승종의 별서 퇴우정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인조의 동생 능봉군이나 남용익, 이세필, 윤두수 등 문신의 별서도 상지동에 있었다. 조선시대 현충원 일대를 상지동이라고 했다. 현충원의 터줏대감 호국지장사는 신라 고찰 화장사다. 삼성동 대부분이 봉은사 땅이었듯 현충원 대부분이 화장사 소유였다. 선조의 조모 창빈 안씨 묘도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다.동작나루에는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은 31세 때 ‘동작나루에서 진주로 가시는 부친을 송별하며’란 제목의 시를 남겼다. “나루터에 저 멀리 떠나가는 배/모래밭에 말 세우고 바라본다네…”로 시작하는 효심 어린 시를 썼다. 그러나 이 시를 쓴 해 부친이 진주에서 숨졌으니 마지막 이별 인사가 된 셈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동작나루 풍경을 그린 ‘동작진’이라는 시가 전한다. 동작나루는 정치의 공간이기도 했다. 숙종 때 남인의 영수 윤휴는 왕의 부름을 받자 “신의 애초의 뜻은 전하가 계시는 궁전의 뜰에 나아가 하직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면서 동작나루의 숙소에 3달을 머물며 출사 거부의 사직상소를 올렸다. ‘정치 쇼’였다. 그러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세상이 바뀌고, 남인이 제거되면서 윤휴는 죄인이 돼 국문을 당한 뒤 사약을 받았다. 동작나루에서 여유작작하며 석 달을 버티다 동작강을 건넌 뒤 한 달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민족민주영령들의 성지이자 국가 정통성의 뿌리다. 죽은 자의 공간이지만 산 사람들을 위한 정치공간이기도 하다. 혁명이나 변환의 시기나 행사 때마다 주요 인사들이 얼굴을 내미는 정치무대이기 때문이다. 246만명의 전사자와 전범자를 합사한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국립묘지로 성지화되면서 참배 여부를 놓고 나라 안팎에서 논란이 빚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조조의 무덤 동작대에서 전래된 동작나루의 전설이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어진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땅의 숙명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33회 양천고성 ■집결 장소:12월 7일(토) 오전 10시 양천향교역 2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깊은 역사만큼 묵직한 ‘한 잔의 추억’

    깊은 역사만큼 묵직한 ‘한 잔의 추억’

    보통 커피를 만들 때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드리퍼를 이용하기 때문에 ‘커피를 내린다’고 표현하지만 터키에서는 다르다. ‘커피를 끓인다.’ 어쩐지 꽤 아날로그스럽다. 터키 이스탄불의 노천 카페. 커피집 주인은 긴 손잡이가 달린 작은 황동 주전자인 제즈베에 원두를 몇 스푼 넣고 휘휘 저어 숯불로 달군 모래에 넣었다. 보글보글 끓어 오르자마자 제즈베를 꺼내 에스프레소 잔보다 약간 큰 커피잔에 따랐다. “1분 기다렸다가 마시면 됩니다.” 커피가루가 잔 아래에 충분히 가라앉은 후 마시라는 뜻이다. 터키 커피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마셔도 입에 커피가루가 들어가기 마련이어서 입을 헹구라는 의미로 냉수 한 잔이 반드시 함께 나온다. ‘커피는 지옥처럼 검어야 하며 죽음처럼 진해야 한다’는 터키 속담처럼 터키 커피는 깊고 진한 풍미가 있다. 워낙 진하니 설탕을 넣어 달라고 미리 주문하는 것도 방법이다. 블랙으로 주문했다면 터키의 국민 디저트인 로쿰을 곁들이면 조화가 완벽해진다. “커피를 다 마시면 점을 볼 수 있어요.” 다 마신 커피잔을 뒤집어 놓은 후 커피가루가 잔 안쪽에 남아 있는 패턴을 보고 직업이나 운세 등을 알아맞힐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연유에서 커피점이 시작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커피점만 전문적으로 보는 점쟁이도 있다고 하니 커피 한 잔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해 보였다. 커피는 900년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칼디라는 목동에 의해 발견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엔 열매 자체를 끓여서 마셨지만, 아라비아 반도와 터키로 넘어오면서 원두를 갈색이 되도록 볶아 분쇄한 다음 끓여 마시는 방법이 보편화됐다. 이후 십자군전쟁으로 인해 유럽으로 커피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커피가루가 입안에 남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융드립 커피 등으로 발전해 왔다. 커피 하면 떠오르는 나라도 여럿이다. 커피의 원조 에티오피아, 에스프레소 머신을 처음 개발한 이탈리아, 비엔나커피의 원조 오스트리아, 아메리카노와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미국 등이 저마다 자부심을 드러낸다. 커피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터키는 묵묵하다. 500년 전에도 뜨거운 숯불과 모래 앞에서 커피 주전자를 돌려 가며 커피를 끓여 냈던 터키 사람들. 요란한 기술이나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커피 전통을 이어 간다. 이렇다 할 커피 브랜드도, 세련된 커피 용품도 없지만, 터키에선 커피 한 잔에 무언의 묵직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터키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면 40년을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터키 커피는 맛도 맛이거니와 사회적 기능을 함께 지녔다는 뜻으로, ‘터키식 커피 문화와 전통’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다. 그래서인지 이스탄불에서 마신 커피의 추억은 그 어떤 여행보다 진하게 남아 있다. 보스포루스해협을 물들이던 새빨간 노을과 함께.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때가 어느 때인데 중국에 페스트가… 항생제 쓰면 치명률 10% 이하로

    때가 어느 때인데 중국에 페스트가… 항생제 쓰면 치명률 10% 이하로

    1990년 이후 주로 아프리카서 발병 쥐벼룩 물려 고열·두통·근육통 시달려 올바른 손 씻기 등 위생 관리 신경 써야 정부, 테러 대비 100만명 분 항생제 보유세상의 기억에서 잊힌 페스트가 가까운 중국 베이징에서 발생했다. 지난달 중국에서만 환자 4명이 발생했으며, 이들 모두가 페스트 풍토병 지역인 네이멍구 자치구 주민이었다. 이 중 2명은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호흡기 전파가 가능한 ‘폐 페스트’ 진단을 받았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 환자가 나온 터라 공포가 컸다. 질병관리본부는 네이멍구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직항 노선이 없고, 베이징에서 보고된 폐 페스트 환자 접촉자 중 유증상자가 없어 추가 전파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전파되더라도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다. ● 중세 유럽 인구 3분의1의 목숨을 앗아가 페스트는 페스트균으로 알려진 그람 음성 세균에 의해 감염되는 급성 발열성 인수공통감염병(사람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감염병)이다. 고대 북부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발병한 기록이 남아 있고, 성경 새뮤얼서에도 페스트로 의심되는 질병의 기록이 있다. 6세기 비잔틴 왕국에서 대규모로 유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14세기에는 중국에서 시작한 유행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산해 당시 유라시아 대륙에서 1억명 이상이 사망했다. 마지막 대유행도 1850년대 중국에서 시작됐다. 윈난에서부터 광저우까지 퍼졌고, 1894년에는 홍콩으로 확산했으며, 이후 남아프리카, 미국, 태국, 스리랑카, 인도, 유럽으로 전파돼 190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다. 하지만 이후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유럽의 역사 지형을 바꾼 감염병’으로 불리던 페스트의 기세도 꺾였다. 지금은 의학 기술이 발달해 치명률이 낮아져 중세 유럽 인구 3분의1의 목숨을 앗아갔던 것처럼 맹위를 떨치지 못한다. 1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페스트는 1990년 이후 주로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고 있다. 2010~2015년 환자가 3248명 발생해 이 중 584명(치명률 18%)이 숨졌다. 마다가스카르·콩고민주공화국·페루에서 유행했고, 우간다·탄자니아·중국·러시아·키르기스스탄·몽골·볼리비아·미국 등에서 산발적 발생이 보고됐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2017년 8월부터 11월까지 2417명의 환자가 나와 209명이 사망했다. 이중 폐 페스트가 1854명(77%)으로 가장 많았다. 콩고민주공화국 이투리주에서는 올해 2~10월 31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 우리나라 발병 없어… ‘법정감염병 4군’ 관리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마다가스카르는 초반에는 몇몇 환자만 산발적으로 보고되다가 어느 순간 급격히 늘었고, 인구가 밀집한 수도에서마저 환자가 발생하면서 통제 불능의 대유행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질병을 얼마나 잘 제어할 수 있느냐에 따라 페스트 환자가 발생했을 때 확산할 수도, 산발적 발생에 그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페스트 환자가 나온 적도, 페스트균에 오염된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발견된 적도 없다. 올해 상반기 마다가스카르를 다녀온 사람이 페스트 의심증세를 보였으나 검사 결과 페스트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보건당국은 페스트를 법정감염병 4군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4군은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감염병 또는 국내 유입이 우려되는 해외 유행 감염병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이 4군 감염병이다. 페스트 매개체는 쥐와 벼룩이다. 사람이 페스트균을 가진 벼룩에 물리거나 페스트균에 감염된 동물의 사체를 만졌을 때, 페스트에 걸린 사람의 화농성 분비물이나 비말(작은 침 방울)에 접촉했을 때 감염된다. 이번에 중국 베이징에서 발생한 환자는 감염된 동물의 사체를 만져 감염됐다. 가장 흔한 감염 형태는 페스트 풍토병 지역에서 균에 감염된 쥐벼룩에 물리는 것이다. 벼룩에 물린 자리가 붓기 시작해 림프절 부종이 발생하는 페스트를 림프절 페스트라고 한다. 고열과 권태감, 두통, 근육통이 함께 나타난다. 치명률은 낮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균이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패혈증 페스트로 사망할 수 있다. 또 균이 폐를 침범하면 폐렴 증상이 생겨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림프절 페스트는 림프절 고름 등 환자의 화농성 분비물을 직접 만지지 않는 한 사람 간에 전파되지 않는다. 가장 잘 전파되는 페스트 유형은 폐 페스트다. 페스트는 림프절 페스트, 폐 페스트, 패혈증 페스트로 나누는데 이 중 폐 페스트만 호흡기로 전파된다. 폐 페스트는 비말로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며 병의 진행이 매우 빠르다. 폐 페스트의 잠복기는 1~4일로, 림프절 페스트 잠복기(1~7일)보다 짧다. 그만큼 상태가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폐 페스트는 환자가 객담(가래 등)을 통해 균을 배출하는 기간에 전파될 수 있다. 효과적인 항생제를 투여한 후에도 48시간 동안 균이 완전히 죽지 않을 수 있어 격리 치료를 해야 한다. 항생제를 쓰고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파 가능성이 떨어진다. 세계보건기구(WHO) 문헌에 따르면 비말이 옮겨가는 거리는 약 2m 정도의 매우 가까운 거리이고, 폐 페스트 발병 초기보다 농이 많이 섞인 객담을 배출할 때 더 많은 페스트균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환자와 가까울수록, 환자가 기침을 많이 할수록 위험하다. 폐 페스트에 걸리면 대개 심한 발열과 두통, 피로, 구토, 쇠약감 등의 증상을 보이다 기침, 호흡곤란, 흉통, 중증 폐렴 등의 증상으로 사망할 수 있다. 패혈증 페스트는 림프절 페스트나 폐 페스트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을 때 발병한다. 피가 엉겨 ‘피떡’(혈전)이 생기고 모세혈관이 막혀 피부가 괴사한다. 흔히 페스트를 일컫는 ‘흑사병’(Black Death)이라는 명칭은 패혈증 페스트에 걸려 괴사로 피부가 검게 변한 환자의 모습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이 병의 법정용어는 ‘페스트’다. ‘흑사병’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 풍토병 지역 여행 땐 쥐벼룩·동물 사체 주의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중세시대나 과거 항생제가 충분하지 않았을 때는 림프절 페스트로 시작해도 결국에는 패혈증 페스트로 악화해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사망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되는 사례가 흔치 않다”고 말했다. 페스트는 주로 항생제로 치료하며, 진단과 동시에 항생제를 투여해야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 항생제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림프절 페스트의 치명률은 50% 이상, 폐 페스트나 패혈증 페스트는 30~100%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다가스카르 대유행 사례에서 보듯 현재의 치명률은 10% 이하다. 페스트에 사용하는 항생제는 국내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것으로, 보건당국은 생물테러에 대비해 100만명분 항생제를 비축하고 있다. 페스트는 상용화된 백신이 없다. 1999년까지는 생산했지만 부작용이 발생해 중단했다. 현재는 일부 백신 후보군을 놓고 연구와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다만 감염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에게는 예방 차원에서 항생제를 쓸 수 있다. 밀접접촉자에게 항생제를 투여하면 발병 우려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페스트 예방수칙은 모든 호흡기 질환이 그러하듯 올바른 손 씻기와 개인위생 준수다. 이 밖에 페스트가 풍토병인 지역을 여행할 땐 쥐벼룩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야생동물이나 그 사체를 만져서도 안 된다. 폐 페스트 유행지역을 여행할 때는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좋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우산과 촛불… 비폭력은 폭력보다 강하다

    우산과 촛불… 비폭력은 폭력보다 강하다

    지난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고인 71.2%를 기록했다. 인두세를 내야 유권자 자격을 주는 데다 복잡한 등록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홍콩 투표율은 한국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홍콩 구의원 선거 가운데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때가 2015년 47.0%였다. 이번 선거에 관한 관심은 올 3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시작했다.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정부와 그 뒤에 버티고 선 중국에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시민에게 실탄을 발사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끝까지 ‘비폭력’을 고수했다. 홍콩 시민은 이번 선거로 친중 구의원들을 몰아내고, 시위를 주도한 젊은층의 정치 진입을 이끌 수 있었다. 이들이 만약 정부 당국과 경찰에 ‘폭력’으로 맞섰다면 어땠을까. 역사 속 폭력·비폭력 시민운동을 조사한 뒤 성공 여부와 그 이유를 분석한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겠다. 저자들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폭력·비폭력 운동 323건을 분석했다. 우리의 1960년 4·19혁명을 비롯한 비폭력 운동이 106건, 폭력 운동이 216건이었다. 비교 결과 비폭력 운동이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둔 비율은 55%에 이르지만, 폭력 운동은 25% 정도에 그쳤다.‘왜?’라는 의문이 떠오를 법하다. 성공한 비폭력 운동들을 분석한 저자는 공통점으로 ‘시민의 참여’를 찾아냈다. 폭력 운동에 참여하려면 목숨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하지만 비폭력 운동은 장벽이 낮아 더 많은 사람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형태로 참여할 수 있어 효과도 더 좋았다. 비폭력 운동은 일상생활을 하며 참여할 수 있고 운동에 참여하고 나서 언제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꼭 집회가 아니더라도 불매 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반대편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 “한국,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레바논, 이집트 등에서 일어난 최근 비폭력 운동은 시민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시민이 참여한 대형 운동에서 비폭력 운동 성공률은 70%까지 올라갔다. 시민 참여 규모가 가장 컸던 25건 가운데 20건이 비폭력 운동이었고 성공률도 두드러지게 높았다. 1978~1979년 팔라비 왕조 체제에 반대해 200만명이 참여한 이란혁명과 같은 비폭력 운동 14건(70%)이 명백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폭력 운동의 경우 1937~1945년 450만명이 참여한 중국의 일본 점령 반대 운동을 비롯한 5건 중 2건(40%)만 성공했다. 책은 1부에서 전체 사례에 관한 통계를 분석하고 2부에서는 실제 사례 4건을 들어 좀더 자세히 분석한다. 이란의 국왕을 몰아낸 이란혁명,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맞서 유례없는 진전을 이뤄 냈지만 결국 실패한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1987~1992),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필리핀 피플파워(1983~1986), 폭력·비폭력 운동 모두 실패한 미얀마혁명(1988)을 살핀다. 저자는 시민운동을 ‘비제도적인 행동 방식을 사용하는 정치 행위’라 규정하고, 여기에 사용한 여러 전술을 다양하게 풀어낸다. 시민운동을 고려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어 봐야 할 듯하다. 그러나 폭력·비폭력 운동의 지난 100년 흥망성쇠를 그저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공부가 될 수 있다. 폭력이 적은 노력으로 파괴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는 판단에 저자는 “승리와 혼란은 구별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폭력의 결과가 자극적이어서 주목을 많이 끌고, 따라서 효과도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얼마 전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바꿨던 우리로선 이미 방향을 알고 있지 않은가. ‘비폭력이 정답’이라고.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城안에 물자 대던 ‘수도의 관문’ 뒤편… 오밀조밀 봉제공장 깃들다

    城안에 물자 대던 ‘수도의 관문’ 뒤편… 오밀조밀 봉제공장 깃들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1차 서울역 뒷동네-서계동’ 편이 지난 23일 용산구 서계동과 청파동 일대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역 1번 출구를 출발했다. 서울로7017로 변신한 서울역고가도로를 따라 만리동 방향으로 내려가서 서울시 공공미술작품 제1호 ‘윤슬’을 구경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 도시를 미술관으로 만드는 서울시 프로젝트에 의해 물결이 일렁이는 도심 지하 노천극장을 만났다. 한옥과 적산가옥이 점점이 남아 있는 오밀조밀한 골목을 따라 수제화공장과 봉제공장이 산재한 계단과 오르막을 오르니 서계 청파언덕이 나타났다. 서울역과 남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조망이 펼쳐졌다. 비록 마을은 낡고 오르막 경사도는 가팔랐지만 전망은 일품이었다. 일행은 화려한 체리 색깔로 장식한 국립극단을 거쳐 피라미드형 외관이 특이한 대산빌딩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1938년에 철공소 건물로 지어진 높이 26m의 뾰족탑 모양의 대산빌딩은 현재는 재활용품점과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이 거리를 지배하던 철공소의 존재감을 내뿜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역광장, 서울역고가도로 등 두 개였다. 한이수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서계동이 품은 얘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냈다.서울역은 근대의 산물이다. 원래 명칭은 경성역이고 남대문정거장에서 비롯됐다. 조선의 첫 번째 철도 노선인 경인선이 1900년 8월 한강철교의 개통과 함께 남대문까지 이어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경성에는 경성·용산·노량진·영등포·서빙고·왕십리·청량리·원정(원효로)·당인리·서강·동막(마포)·신촌·성동 등 크고 작은 13개의 역이 생겼다. 이때 염천교 논 한가운데 세워진 46평 규모 목조 간이 건물이 남대문정거장이다. 일제강점기 남산 아래 남촌을 중심으로 일본인의 거주지와 지배기관이 들어서면서 남대문정거장의 위상이 강화됐다. 특히 1919년 서대문정거장이 폐지되면서 남대문정거장은 서울의 중앙역 위상을 갖게 됐다. 1905년에 경부선, 1906년에 경의선, 1914년에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1910년 남대문정거장의 이름은 경성역으로 변경됐다. 현재의 서울역사는 1925년 완공됐다. 당시 도쿄역이 동양 최대 역이라면 경성역은 두 번째쯤의 규모를 자랑했다.경성역은 일본과 만주를 잇는 경유지이자 한반도의 관문 역할이었다. 종착역이 아닌 통과역이었다. 철도는 일제의 대륙 진출을 달성할 목적으로 건설됐다. 철도의 간격을 일본 철도의 폭과 같은 협궤가 아니라 중국 철도의 폭과 같은 광궤를 사용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경성역의 건설 주체를 남만주철도주식회사로 하고, 시공은 시미즈건설에 맡긴 것도 대륙 진출을 염두에 둔 수순으로 풀이된다.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도쿄제국대학 쓰카모토 야쓰시 교수가 경성역의 설계 입면도 두 장을 남겼기 때문에 설계자로 추정할 뿐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이 보유한 ‘경성역 정면도’와 ‘경성정거장 본옥 기타개축공사준공도’는 경성역의 사후 유지 관리를 위해 제작된 유일 원본 도면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성역은 1896년에 건축된 스위스 ‘루체른역’을 모방해 건설된 건물이다. 실제 경성역은 루체른역과 외관이 흡사하다.건축 사조로는 19세기 서양 역사주의 건물로 볼 수 있다. 한 건물 안에 르네상스, 바로크 등 여러 양식이 혼합돼 있지만 중앙 돔과 로마 도리스식 기둥, 아치 등이 뒤섞인 절충주의적 르네상스 리바이벌 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는 “수도의 관문답게 웅장한 느낌을 주나 크게 위압적이지는 않다. 자체 완결성이 높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품위를 잃지 않고 20세기를 관통하며 버텨 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리 손으로 설계하거나 지은 것도 아니고 터만 내준 낯선 외국풍 건물이 하루아침에 수도의 관문으로 나타난 파격성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고 봤다. 경성역 앞쪽에는 주요 간선도로에 면해 광장을 계획했으며, 뒤쪽은 승강시설과 화물시설로 구성했다. 광장은 남대문과 경성역을 잇는 폭 38m의 남대문로와 경성역과 갈월동을 잇는 폭 30m의 도로가 만나도록 배치됐다. 1920년대 일반인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개방된 공공건물로는 최대 규모였다. 1926년 승차 인원이 143만명, 하차 인원이 132만명에 이르렀다. 이는 1910년 승차 및 하차 인원 25만명에 비하면 놀랄 만한 신장이었다. 경성역의 발전은 경성의 번창에 비례했다. 도입 당시 의도한 통과역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 대륙을 잇는 중심지로 발돋움했다.서울역 뒷동네는 서울역의 화려한 이면이자 그늘이다. 만리동·서계동·청파동 일대를 지칭한다. 지리적 특징으로는 만리동 배문고등학교에 있는 연화봉을 기점으로 청파동으로 이어지는 서고동저의 지형이다. 동쪽으로는 경부선 철길이 있고 북쪽으로는 중림로가 있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줄기가 안산(무악)을 거쳐 한 줄기는 효창공원 쪽으로 내려가면서 청파동을 이루고, 서울역 쪽 줄기가 서계동을 형성한다. 예전에는 모두 청파동이었다. 청파는 고려시대 전국 22도 중 청교도에 속하던 큰 고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병조에서 관리하던 청파역이 들어섰다. 청파역은 사대문을 나서서 삼남으로 연계되는 교통의 요지였다. 조선시대 마포, 서강, 용산에서 부린 물자가 만초천을 따라 올라오는 물길이고, 마포에서 만리재를 넘어 칠패시장에 이르는 뭍길이기도 했다.조선시대 서부 용산방 청파 1, 2, 3, 4, 5계에 속하던 지역 중 4, 5계가 나중에 신교동, 주교동, 신촌동이 되는데 지금의 서계동이다. 서계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의 행정 개편 때 처음 등장한다. 청파 4계가 서계로 바뀐 듯하다. 청파동과 서계동은 태생적으로 한동네다. 청파동은 작작골이라고 해 장작과 참새가 많은 곳으로 통했다. 서계동은 만리동과 청파동 사이에 끼여 있다. 성문 안 사람들의 먹거리와 생활물품을 공급하던 남대문 성문 밖 첫 마을이다. 만리동 고개를 넘어온 마포 새우젓 장사가 칠패시장에 어물을 공급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어시장이, 그 이전에는 장안 사람들에게 땔감을 공급하는 시탄시장이 있던 곳이다. 이 성문 밖 첫 동네가 봉제산업 지대가 됐다. 소규모 봉제공장의 유입으로 부분적인 개발이 이뤄지고 4, 5층 정도의 오피스들이 들어오면서 이 동네는 아파트가 없는 동네가 돼 버렸다. 골목골목마다 점점이 적산가옥이나 한옥이 박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봉제공장은 다세대, 빌라, 원룸, 게스트하우스로 구조 변경되고 있다. 과거 중구 만리동이었다가 지금은 용산구 서계동이다. 1970~80년대에 지어진 연립주택과 다세대 빌라가 서계동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다.서울역고가도로(서울로7017)에 올라 서울역사와 서울역광장 그리고 전국으로 이어지는 철길을 내려다보면 철길의 동쪽과 서쪽 풍경이 대조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철길 동쪽은 빌딩숲을 이루지만, 철길 서쪽은 새로 들어선 아파트 아래 가려진 허름한 집과 골목이 대부분이다. 서쪽이 이른바 서울역 뒷동네다. 서계동 수제화공장과 봉제공장이 깃든 곳이다. 서울역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철도는 이 지역을 자연스럽게 동과 서로 양분했다. 철길 동쪽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남산과 조선군사령부가 있었고 많은 중요시설과 관청이 모여 있어서 번성했다. 반면 서울역 배후지인 철길 서쪽은 서울의 뒷동네를 형성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32회 국립서울현충원 ■집결 장소:11월 30일(토) 오전 10시 7호선 상도역 4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달콤한 그 이름, 참다래와 키위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달콤한 그 이름, 참다래와 키위

    얼마 전 전북 김제에서 열린 국제종자박람회에 다녀왔다. 다양한 작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실외 전시장에는 우리나라 주요 채소의 다양한 품종을 소개한 정원이 펼쳐졌다. 그중 한 무밭엔 ‘전무후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나만 이 이름이 흥미로웠던 게 아니었는지 박람회 관련 뉴스에서 전무후무 무 육성자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꽃이 안 피는 무에 전무후무하다는 의미로 이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지인은 작년에는 이곳에서 ‘따다죽어’라는 고추를 보았다며, 결실률이 워낙에 좋아 따다 죽을 정도라는 설명에 같이 웃었다. 모든 식물에는 이름이 있다. 산과 들에서 남몰래 살던 어느 식물을 인간이 발견하는 순간 그에겐 이름이 붙고 세상에 알려진다. 모든 것은 이름을 붙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몇 년 전 한 식물학자가 제주 백약이오름에서 참나물속 미기록종을 발견했고 국명을 무엇으로 지을지 고민한 끝에 이름을 백약이참나물이라 했다. 또 다른 식물학자는 울릉도에서 바늘꽃속 신종을 발견하고, 크기가 큰 바늘꽃인데 ‘큰바늘꽃’은 이미 있다며 결국 ‘울릉바늘꽃’이라 이름 붙였다. 산과 들에 사는 자생식물의 이름에는 대체로 원산지 정보나 식물의 특징을 띠는 이름이 많다.그러나 우리가 도시에서 이용하는 원예 식물은 다르다. 식물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이름으로 붙여지기 쉽다. 도시의 식물은 원예 ‘산업’ 안에 있고, 산업에서 식물은 우리에게 선택돼야 비로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 기관에서 육성한 품종은 상업적인 이유보다는 공공의 목적에서 탄생한 것이기에 식물의 특징이 드러나는 이름이기 쉽지만, 기업에서 육성한 경우엔 좀더 직관적인 이름을 띠게 된다. 기업은 이익 창출을 위한 곳이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름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 곁 식물들은 다들 그만한 사연으로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여기 조금은 특별한 사연으로 이름을 가진 과일이 있다. 요즘 한창 마트와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키위. 키위의 원래 이름은 키위가 아니었다. 1900년대 초 식물에 관심 많은 프랑스와 영국 출신 선교사들이 중국 서남부에서 다래나무속 한 종의 종자를 뉴질랜드에 가져가 ‘차이니즈 구스베리’라는 이름으로 재배했다. 그렇게 재배와 개량을 거쳐 1950년대 이후 재배 면적이 증가하며 과일로서 산업화됐다.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을 하려고 보니 ‘차이니즈 구스베리’라는 이름이 거슬린 것이다. 새로운 이름을 고민하던 차, 당시 헤이워드라는 우량 품종이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새와 닮았다며 키위라 이름 붙여 수출길에 올렸다. 그렇게 중국의 다래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위라는 이름을 얻었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세계 최고의 마케팅이자 ‘희대의 식물 납치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언제나 인간이 끼어드는 순간 모든 일은 늘 이렇게 흘러가지 않는가. 키위는 뉴질랜드의 대표 과일로서 세계로 퍼져 나갔다. 현재 뉴질랜드와 이탈리아에서 키위 생산의 80%를 차지하며, 중국도 최근 생산이 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키위’라는 이름은 결국 브랜드명이기에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것은 ‘다래’에 진짜라는 의미의 ‘참’을 붙여 참다래라 부르고 있다. ‘다래’라는 이름 또한 ‘달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니 키위와 참다래는 결국 같은 말이다.이들은 사과처럼 수백 년 전부터 우리가 이용해 온 과일이 아니다. 불과 50여년밖에 안 된 과일이고, 기억을 돌아보면 나 역시 키위의 그림 기록은 본 적이 없다. 모두 사진 기록이다. 키위가 육성된 후에는 이미 사진 기술이 발달해 품종을 사진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건 지금 우리가 먹는 헤이워드 품종 외에 아보트, 브루노, 몬티 등의 품종이 존재했으나 크기와 맛에서 헤이워드만 못해, 사라진 이 품종의 기록 또한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조급한 마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참다래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달콤한 골드키위인 스위트골드 참다래, 그리고 골드원과 감록. 모두 이름에서 달콤함을 띠는 우리나라 육성 신품종 참다래들이다. 최근엔 그려야 할 ‘다래’가 더 생겼다. 우리나라 자생의 토종 다래를 개량한 새로운 품종들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어 소비자 입맛과 선택의 폭은 넓어졌고, 결국 품질이 좋다면 이름이 어떻든 알려지고 사랑받을 수 있는 여지는 많아진다. 이름이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는 있지만,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은 결국 품질에 있다. 자연과 식물에 있는 ‘진정성’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재갑의 감염병 이야기] 페스트 이야기

    [이재갑의 감염병 이야기] 페스트 이야기

    중국 베이징에서 페렴형 페스트 환자가 발생했다. 환자가 거쳐 간 병원 응급실은 폐쇄됐고, 방역 당국은 페스트에 노출된 사람들을 상대로 역학조사를 하며 예방 차원에서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다. 페스트는 매우 오래된 질병이다. 고대 북부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발병했다는 기록이 있고 성경 새뮤얼서에도 페스트로 의심되는 질병의 기록이 남아 있다. 첫 대규모 유행은 6세기 비잔틴 왕국에서 발생해 약 4000만명이 사망했다. 14세기에는 중국에서 시작된 유행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산해 7000만~2억여명이 사망했다. 페스트로 유럽의 역사적 지형이 바뀌었다. 마지막 대유행은 1850년대 중국에서 시작했다. 1894년에는 홍콩으로 확산했고, 이후 남아프리카, 미국, 태국, 스리랑카, 인도, 유럽으로 퍼져 1900년대 초반까지 유행이 지속됐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의 비참한 사회상을 다루기도 했다. 이렇게 위세를 떨치던 페스트도 1900년대 이후 미생물학의 발달로 쥐와 벼룩이 옮기는 세균성 감염병이란 사실이 확인되고, 위생이 점점 나아지면서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사라진 감염병은 아니다. 아직 중국 내륙지역, 아시아, 미국,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과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연간 2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의 가장 큰 대규모 유행은 2017년 마다가스카르에서 발생했다. 무려 2417명이 페스트에 걸렸다. 페스트의 원인균은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다. 쥐벼룩에 물리거나 감염된 동물의 사체와 접했을 때, 감염된 동물의 분비물을 흡인하거나 오염된 음식을 먹었을 때 전파된다. 폐렴형 페스트는 비말(침 방울)을 통해 사람 간에 전파될 수 있다. 잠복기는 1~6일(평균 1~4일)이다. 림프절을 주로 침범하는 림프절형, 패혈증형, 폐렴형으로 발병할 수 있으며 패혈증형이나 폐렴형은 잘 치료해도 50%가 사망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최근 마다가스카르의 유행 상황을 보면 2417명 중 80% 이상이 폐렴형 페스트였음에도 사망자는 209명(약 9%)이었다. 기록에 남은 50% 이상의 사망률은 의료 자원이 부족해 치료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페스트는 주로 항생제로 치료하며, 진단과 동시에 항생제를 투여해야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 또한 노출된 사람에게 항생제를 투여하면 발병을 줄일 수 있다. 일부 백신이 나와 있긴 하지만 상용화되어 유통되고 있진 않다. 그렇다면 이번 중국의 페스트는 전 세계로 확산할 것인가? 14세기나 19세기 말과 달리 인류는 페스트의 전파 경로도 알고 있고 예방과 치료를 할 수 있는 항생제도 있어 전 세계적인 유행이 다시 시작될 것 같진 않다. 노출자들에게 예방적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어서 베이징 내에서 대규모로 유행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우리나라로 확산할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1~2주 동안 중국 베이징의 상황을 지켜보면 앞으로 유행이 어떻게 될지 알게 될 것이다.
  • 모랄레스도 멕시코行....멕시코는 어떻게 좌파 망명의 천국이 됐나

    모랄레스도 멕시코行....멕시코는 어떻게 좌파 망명의 천국이 됐나

    유명 좌파지도자들, 정치적 위기 때 멕시코와 ‘인연’‘스탈린 정적’ 트로츠키는 멕시코에서 생 마감하기도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의 ‘멕시코행’으로 과거 좌파 지도자들의 망명지로 선호됐던 멕시코의 위상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의혹을 받고 불명예 퇴진한 뒤 지난 11일(현지시간) 멕시코 망명을 선언했다. 자국에서 정치적 위기를 겪고 멕시코로 떠난 좌파 지도자들은 모랄레스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모랄레스의 12일 멕시코 도착 소식을 전하며 “지난 세기와 앞선 반세기 동안 멕시코는 스페인 좌파와 미국 내 사회주의자, 유럽 공산주의자들에게 안식처가 됐다”고 전했다. 멕시코 망명을 선택한 대표적인 인사로는 쿠바의 ‘건국 영웅’ 호세 마르티를 꼽을 수 있다. 19세기 스페인에 맞서 독립투쟁을 했던 마르티는 수형생활 끝에 스페인을 거쳐 1875년 멕시코로 건너가 약 2년간 생활했다. 그는 멕시코에서 ‘오레스테스’라는 필명으로 시와 글을 쓰며 활동하기도 했다. 멕시코를 거쳐간 그는 아바나 국제공항의 이름이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일 정도로 쿠바에서 최고 영웅으로 추앙받게 됐다. 1900년대 말에는 중남미 국가 인사들이 자국의 내전을 피해 멕시코로 넘어왔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멕시코로 떠났고, 이가운데에는 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한 살바도르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도 있었다.유럽에서도 많은 좌파인사들이 멕시코 망명을 선택했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때 적지 않은 스페인 좌파 인사들이 멕시코로 떠났고, 이 가운데에는 초현실주의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루이스 브뉴엘도 포함돼 있었다. NYT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천명의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이 멕시코에 보호 요청을 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예술가와 작가들이었다”고도 소개했다. 또 미국에서 매카시즘 광풍이 불 때도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은 국경을 넘어 멕시코행을 택했다. 일부는 망명생활 뒤 자국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멕시코에서 결국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었다. 멕시코에서 사망한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러시아 혁명의 주역 레온 트로츠키다. 러시아에서 멕시코로 추방됐던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스페인 공산주의자에게 피격돼 사망했다. 프리다 칼로의 집 바로 옆에 있는 트로츠키 박물관은 멕시코를 찾는 관광객들의 대표적인 여행코스이기도 하다.이처럼 멕시코가 좌파 망명의 주요 선택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자 로렌조 마이어는 “멕시코 정부가 미국의 외교정책에 표면적으로 도전하지 않는 대신 (외국의 좌파지도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의 주권을 주장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으로서는 국경 바로 옆 국가에 좌파 지도자들이 오가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삼기는 어려웠고, 멕시코 정부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최근 멕시코가 중남미 좌파정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모랄레스의 멕시코 망명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지난달말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당선인의 첫 해외방문국도 멕시코였다. 멕시코는 내년 중남미·카리브해국가공동체에서 의장국을 맡을 예정이기도 하다. 세계사 속 멕시코 망명 인사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앞으로 재기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모랄레스는 15일 AP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은 여전히 볼리비아의 대통령이라며 “유엔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볼리비아의 위기에 중재자로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시론] 광장은 차별하지 않고 꿈꾸게 한다/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시론] 광장은 차별하지 않고 꿈꾸게 한다/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 그들은 춤을 추고 있다. 격렬한 동작의 춤이다. 얼마나 환희에 차 있으면 저런 자세가 나올까. 그것도 모든 사람이 같은 모습으로. 바로 이응로 화백의 ‘군상’ 작품이다. 대형 화면을 속도감 있는 붓질로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 채웠다. 거기에는 남녀노소 구별도 없고, 계급도 없고, 빈부 차이도 없다. 그냥 즐거운 통일의 춤이다. 이는 개관 50주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의 기념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의 포스터 작품이기도 하다. 이응로 화백의 작품은 대동 세상을 꿈꾸듯 ‘차별’이 없다. 거기는 이데올로기의 쟁투도 없고, 갈등도 없고, 반목도 없다. 모두들 동등한 입장의 존재들이다. 오늘의 광장은 춤을 필요로 하고, 또 춤은 광장을 필요로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미술관은 반세기의 전통을 바탕으로 삼아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분기점에 와 있다. 게다가 지난해 말 청주관까지 개관해 덕수궁관, 과천관, 서울관과 더불어 4관 체제에 진입했다. 이는 세계적 규모의 현대미술관이다. 하지만 ‘외형적 확장에 버금갈 만큼 내실을 다졌는가’라고 질문한다면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규모에 걸맞은 인력과 예산 그리고 직제 등 아직 갈 길은 멀다고 본다. 물론 다양한 성향의 관객이 요구하는 미술관 역할도 채워야 할 부분이다. 현대미술이란 장르는 국제적 보편 언어로 각광받고 있고, 또 미술시장의 역할로 짐작할 수 있듯 경제적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스타 작가의 작품 한 점은 자동차 수천대 이상 수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한국 미술의 확장 기회와 잠재성은 매우 크다.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은 덕수궁, 과천, 서울 3관에서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대형 전시다. ‘미술과 사회’라고 부제를 달았듯이 이 전시는 한국 근현대 역사를 바탕으로 꾸며졌다. 1900년부터 1950년대를 조명한 1부는 덕수궁에서, 1950년대부터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정리한 2부는 과천에서, 광장과 개인의 관계를 살피는 3부는 서울관에서 진행 중이다. 20세기의 한국은 격동의 역사, 정말 변화무쌍한 세기였다. 일제 강점에 저항한 독립운동, 해방에 이어진 전쟁, 그리고 군부정권 등장과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역사의 현장에서 미술가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달리 말한다면 ‘광장’은 미술작품으로 엮은 한국 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이제 4차 산업의 인공지능(AI)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은 전쟁을 치르고 해외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 해외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급성장했다. 물론 급성장은 갈등과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20세기는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온 시대다. 봉건사회의 밀실에서 민주사회의 광장이다. 광장은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같은 종류의 나무들끼리만 있는 숲은 건강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양한 나무의 종류가 섞여 있는 숲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이다. 단일 색깔보다 변화를 주는 색채 환경이 생산성을 더 좋게 한다는 연구도 있다. 획일화 현상보다 다양성이 훌륭하다. 특히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이웃과 함께 어울리기는 하되 각자 개성은 갖도록 하자. 우리 민족은 오방색을 선호한다. 원색의 색깔들은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까망이 있으니까 하양이 돋보이는 것이다. 지옥이 있으니까 천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했다. 같은 사물도 주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슬을 소가 먹으면 젖이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소인가, 뱀인가. 오늘날 갈등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언제 환희의 춤을 볼 수 있는가. 광장은 극단적 주장으로 갈등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은 제3의 공간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사한 ‘광장’ 전시는 아픈 과거를 헤아려 보면서 미래를 희망하게 한다. 다양한 작품과 주제로 격렬하게 움직인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광장의 역사를 써야 하는 미래를 안고 있다. 전시장에서 무지개를 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이다. 무지개는 여러 색깔들로 조화를 이룬 결과다. 바로 화이부동이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바로 광장이 주는 의미다.
  • 기혼男도 신부 허용, 연말 교황 결정에 달렸다

    기혼男도 신부 허용, 연말 교황 결정에 달렸다

    시노드 투표 결과 찬성 128표·반대 41표 구속력은 없지만 900년 금기 깨는 사건 “성직자 부족 해소… 교세 확장에도 도움” “전통을 하루아침에 허무는 위험한 편법” 표결은 안 했지만… 여성 부제 인정도 촉각 ‘결혼한 남성에게도 사제 서품 허용?’ 요즘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천주교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세기적인 이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Synod)가 기혼 남성에게 사제 서품을 허용하는 권고안을 냈기 때문이다. 올 연말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따라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 올해 시노드에서 주교 대의원들은 남미 아마존 지역에 한해 기혼 남성에 대한 사제 서품 허용 여부를 표결에 부쳐 허용 권고안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채택했다. 표결 결과는 찬성 128표, 반대 41표였다. 사제 수가 턱없이 부족한 아마존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구성되고 안정적인 가족을 지닌 공동체에 적합하고 존경받는 남성’이란 자격 단서를 달아 사제품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 권고안은 올 연말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종 결정에 따라 효력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노드의 권고안은 구속력이 없으며 ‘사도적 권고’ 형식을 통해 교황이 결정하고 선포하는 것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천주교계는 교황이 아마존 지역에서 기혼 남성에 대한 사제품 허용을 결정할 경우 900년 만의 가롤릭 전통을 깨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제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에서 어쩔 수 없는 허용’, ‘가톨릭의 전통을 하루아침에 허무는 위험한 편법’ 등 이번 시노드 권고안을 놓고 천주교계에선 보수·진보 측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이다. 허용 찬성 측은 갈수록 가속화하는 천주교 신자 감소를 해결하고 교세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을 치켜세운다. 이들은 개신교나 동방정교회, 영국 성공회에서 오래전부터 사제의 결혼과 출산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에 비해 반대 측은 ‘사제 독신’이란 천주교 전통의 전형을 하루아침에 깨는 단초라는 점을 들고 있다. 천주교도 초기엔 사제 결혼에 특별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중세 들어 종교의 세속화가 논란이 되면서 금욕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1123년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독신제를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천주교계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허용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독신주의를 ‘가톨릭의 축복’이라면서도 이 독신주의가 교리가 아닌 규율과 전통이라는 점을 감안해 바뀔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이번 시노드는 프란치스코교황이 2017년 ‘사제 독신주의’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방안을 표결에 부쳐야 한다고 요청해 열렸다. 기혼 남성에 대한 사제품과 함께 여성 부제 허용도 관심을 끄는 사안이다. 이번 시노드에선 가톨릭이 여성에게 더 큰 역할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이 사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진 않았다. 대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노드 말미에 “초기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며 관련 연구를 지속할 뜻을 비쳤다. 전형적인 입장이 나올 여지가 아직 충분하다는 것이다. 현재 천주교에선 여성 사제는 물론 단 한 명의 여성 부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황이 여성 부제 허용 쪽에 방점을 찍을 경우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안봉환 신부는 “기혼 남성 사제와 여성 부제 인정은 종교적 문제에 국한한 교황 혼자만의 독단적 판단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연말 교황의 결정에 따라 그동안 천주교 안에서 지적돼온 사안들에 대한 성찰과 파급 효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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