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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계 페미니스트 1012명 “램지어 주장, 위안부 피해자들에 2차 가해”

    전 세계 페미니스트 1012명 “램지어 주장, 위안부 피해자들에 2차 가해”

    세계 페미니스트 1000여명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계약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비판하는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정의기억연대는 1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79차 정기 수요집회에서 ‘존 마크 램지어 미쓰비시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논문에 관한 전 세계 페미니스트 성명’을 공개했다. 성명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 흑인 인권 운동, 미투 운동, 반식민주의 운동과 연대하는 국내외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역사왜곡을 통한 성차별, 식민주의 구조 재생산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작성하여 회람한 결과다. 지난 16일까지 한국, 미국, 일본, 필리핀, 영국, 호주, 뉴질랜드, 독일 등에서 1012명의 연구자, 활동가, 학생, 단체 등이 연명했다. 오랜 기간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페이페이 추 미국 뉴욕 배서대 교수, 엘리자베스 손 노스웨스턴대 교수, 린다 하스누마 템플대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성명에서는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대해 “식민지와 전쟁, 불평등한 권력 구조와 구조적인 폭력을 무시한 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계약 매춘부’로 묘사했다”며 “성노예제를 부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 중 자행한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비판적인 분석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피해 여성들에게는 2차 가해이며, 성노예제가 남긴 깊은 상흔에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히는 폭력적 행위”라고 썼다. 성명의 목적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자 함이 아님도 분명히 밝혔다. 성명에 참여한 페미니스트들은 “고착화된 억압과 상호 연결된 구조를 규명하는 대신 가부장적, 식민주의적 관점을 답습하는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리는데 목적이 있다”며 “여성의 권리와 생존자들의 정의를 위한 투쟁을 존중하는 사회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 과거부터 오늘날에도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착취를 끝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에는 전 세계 대학과 고등 교육기관을 향해 성차별·식민주의·인종차별의 피해를 줄이고 다양성과 평등 진작을 위한 학내 공동체 지침을 구축할 것, 혐오 발언·행위에 대한 적극 조사, 학내 다양성 및 성폭력 생존자 지원, 전범 기업에 투자하거나 투자 받는 것을 지양할 것을 촉구했다. 하버드 로스쿨 미쓰비시 교수 존 마크 램지어의 일본군 ‘위안부’ 논문 관련 페미니스트 성명(전문) 하버드 로스쿨 미쓰비시 일본법 교수 존 마크 램지어의 최근 일본군 ‘위안부’ 관련 논문은 2차 세계 대전 (아시아태평양 전쟁) 전후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수많은 여성들이 겪었던 잔혹행위에 대해 성차별적, 가부장적, 식민주의적 견해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이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성노예 및 성착취 제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음에 우려를 표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전쟁터 속에 수많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여성들은 납치당하거나, 속아서, 혹은 강제로 일본군의 ‘위안소’로 끌려갔습니다. 성차별주의, 가부장제, 식민주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가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진 일본군 성노예제 제도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 및 점령지 여성들은 반인권적 폭력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살아남은 일부 피해생존자들은 수십 년간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끔찍한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현재의 무력분쟁 하 성폭력, 대학 내 성폭력 문화, 포스트식민주의 트라우마, #미투운동의 문제의식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학자, 학생, 졸업생으로서 부정의, 억압, 폭력을 가해온 성차별적, 식민주의적 시각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자 이 성명을 작성했습니다. 학술지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에 실린 램지어 교수의 최근 논문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자발적인 매춘으로 소개하며 성노예제를 부정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식민지와 전쟁, 불평등한 권력 구조와 구조적인 폭력을 무시한 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계약 매춘부’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요금을 협상할 수 있었으며, 자유롭게 그만 둘 수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 중 자행한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비판적인 분석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수많은 연구, 유엔 특별보고관 및 국제기구가 작성한 보고서,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일본군 ‘위안부’의 본질이 조직적 성노예제임을 인정했으며, 이를 부정하고 진실을 왜곡하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를 비판해왔습니다. 성노예제 피해자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위협과 신체적 폭력에 시달리며, 지속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당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피해 여성들에게는 2차 가해이며, 성노예제가 남긴 깊은 상흔에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히는 폭력적 행위입니다. 폭력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지우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와 공모하며 정당화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우리는 램지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을 왜곡한 것을 규탄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증언이 있던 1991년 8월 14일 이후, 한국, 중국,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 일본에서 수백 명의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용감히 밝히고 #미투운동의 선구자가 되셨습니다. 비록 개별적 경험의 세세한 결은 다르지만, 생존자들은 일본군 성노예제가 조직적으로 자행된 전쟁범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램지어 교수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면서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옹호해 온 생존자들의 경험에 대한 총체적이고 다각적인 이해를 지워버렸습니다. 우리는 성폭력 생존자들이 침묵 당하는 걸 너무나 자주 목격했습니다. 사적 공간은 물론 다양한 공적 공간에서,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수많은 대학 캠퍼스 안에서조차 성폭력 생존자들은 침묵 당하곤 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생존자들은 용기 있게 침묵을 깨고 증언하며 전 세계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초국적 연대를 구축하여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끌어왔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고무된 연구자들은 일본 정부가 아시아 태평양 전역에 걸쳐 위안소를 체계적으로 설립하고, 조직적으로 운영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왔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규명한 문서와 기록물들 중에는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가 1992년 발견한 일본군 기록물도 포함됩니다. 일본군이 민간 업자를 감독하고, 직접 여성을 동원했다는 사실이 문건으로 밝혀지자,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정부 개입을 일부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일본제국, 미군, 네덜란드 정부 등이 작성한 많은 자료 역시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또한 “공창제”의 존재를 이용하여 일본군 성노예제를 정당화하며, 여성의 몸에 대한 착취를 정상화합니다. 남성 성욕을 정당화하는 성차별적인 담론에 기대어 일본 정부가 묵인하고 장려한 “공창제”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대체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들이 인신매매와 착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00년대 초 일본 국내법과 일본이 비준한 국제조약이 매춘을 목적으로 한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창제도는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여성 억압의 보편성을 통해 또 다른 억압의 지속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연구자들이 성차별적인 담론에 기대지 않고도 일본군 성노예제 체계와 현상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이 성명의 목적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고착화된 억압과 상호 연결된 구조를 규명하는 대신 가부장적, 식민주의적 관점을 답습하는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리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로서, 성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담론 앞에서 평등과 정의의 가치를 재확인하고자 합니다. 여성의 권리와 생존자들의 정의를 위한 투쟁을 존중하는 사회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 과거부터 오늘날에도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착취를 끝내야만 합니다. #BlackLivesMatter, #MeToo, #RhodesMustFall 과 같은 최근의 사회운동을 통해 우리는 진실, 정의, 평등을 추구하는 고등교육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역사와 현대의 부정의를 고민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 연구, 지식, 교육의 중요성을 믿습니다. 억압과 부정의의 역사를 마주할 때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학문 공동체는 성폭력에 대한 불처벌을 지속하는 성차별적인 담론을 묵인하도록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하버드 대학과 다른 고등교육 기관의 페미니스트 연구자, 학생, 동문들로서, 우리는 이 성명을 통해 학계 내 성폭력, 성차별, 가부장제, 식민주의, 인종차별을 지속하는 주장에 대항하여 학문 공동체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우리는 대학 및 고등교육기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성차별, 식민주의, 인종차별의 피해를 줄이고 다양성과 평등 진작을 위한 학내 공동체 지침을 구축하고 강화하라. -성차별, 식민주의, 인종차별적 혐오 발언과 행위를 관련 대학 규정 및 Title IX의 위반사항으로써 적극적으로 조사하라. -학내 다양성 등을 지원하고, 역사적 차별은 물론 현재의 구조적 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대화를 촉진하라. -학내 성폭력 생존자 지원과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신고체계 및 재원을 마련하고, 성폭력 불처벌을 종식시키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및 제도적 조치를 시행하라. -전범 기업에 투자하거나, 투자받는 것을 지양하고, 해당 기업으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라. 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1만 년 전 북미 대륙 털매머드는 기후 변화 탓에 멸종

    1만 년 전 북미 대륙 털매머드는 기후 변화 탓에 멸종

    약 1만 년 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털매머드와 같은 거대 동물이 일제히 멸종한 원인은 급작스러운 기후 변화 탓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진이 방사성 탄소 기록을 사용한 새로운 통계 방식으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서식한 거대 동물상(이하 메가파우나·체중 40㎏ 이상 거대 동물의 통칭)의 개체 수가 약 1만4700년 전 급격한 온난화가 발생했을 때 급증했지만 약 1만2900년 전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을 때 급감해 멸종에 이르게 됐다는 점을 발견했다.약 1만5000년 전 북아메리카에서는 털매머드뿐만 아니라 곰 만한 비버, 땅에 사는 거대 나무늘보 등 다양한 거대 동물이 서식했지만 1만 년 전 모두 멸종했다. 이유는 인간에 의한 과잉 사냥부터 기후 변화 그리고 두 요인의 복합적 작용까지 여러 가지가 제시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빙성이 큰 이론은 1960년대 제시된 과잉 사냥 가설이다. 털매머드와 같이 두꺼운 털을 지닌 거대 동물은 빙하기 전부터 빙하기 동안에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에서는 거대 동물이 1만4000년 전 북아메리카에 인간이 정착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반포식자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당시 인간은 동물보다 훨씬 영리하고 협동적일 뿐만 아니라 도구를 잘 다루는 사냥꾼이었고 이런 장점은 메가파우나를 회복할 수 없는 수준까지 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북아메리카의 거대 동물을 멸종에 이르게 하는데 필요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사냥 활동을 뒷받침할 충분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대 가설은 털매머드와 같은 거대 동물의 생명 활동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 중대한 기후 변화 및 생태학적 변화의 여파를 원인으로 지목했다.그런데 이번 결과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정착한 뒤 메가파우나를 과잉 사냥해 멸종에 이르게 했다는 기존 주장이 아닌 급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인한 멸종을 뒷받침한다. 문제의 기간 중에는 약 1만4700년 전 시작된 급작스러운 온난화에 적응한 거대 동물들이 1만2900년 전 몰아친 빙하기에 가까운 기후 변화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에 참여한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의 매슈 스튜어트 박사는 “일반적인 접근 방식은 메가파우나의 멸종 시기를 정하고 이들 동물이 아메리카 대륙에 인류가 도착하거나 일부 기후적 사건과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멸종은 하나의 과정으로 일정 기간 계속되는 것”이라면서 “북아메리카 메가파우나의 멸종을 초래한 원인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개체 수가 멸종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장기적인 패턴이 없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결과는 대략적인 우연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수렵채집가인 인간이든 거대 동물이든 당시 개체군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이런 문제는 이들의 규모가 머릿수나 발굽을 세는 것으로는 추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이 연구에서는 개체군 규모에 관한 대체물로 방사성 탄소 기록을 사용하는 새로운 통계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동물과 인간이 많이 존재할수록 이들이 남기는 연대 표시가 가능한 탄소를 화석과 고고학적 기록에서 각각 측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런 분석을 통해 북아메리카 메가파우나의 개체 수가 기후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튜어트 박사는 “메가파우나 개체 수는 약 1만4700년 전 북아메리카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증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후 북아메리카 지역이 급격히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1만2900년 전쯤 이런 추세의 변화를 보게 된다”면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메가파우나의 멸종이 목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약 1만2900년 전 기온이 빙하기에 가깝게 떨어진 것이 멸종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인 원인은 여전히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세계서 가장 오래된 5000년전 맥주공장 발굴…한번에 4만잔 뽑았다

    세계서 가장 오래된 5000년전 맥주공장 발굴…한번에 4만잔 뽑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맥주 양조장이 이집트 아비도스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됐다. 13일(현지시간)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이집트와 미국 고고학자들이 카이로에서 나일강 서안 아비도스에서 5000년 전 맥주공장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 연구팀이 이끄는 이집트-미국 공동 발굴단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450㎞ 떨어진 나일강 서안 아비도스에서 나르메르 파라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조장을 발견했다. 나르메르 파라오는 고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처음 통일한 파라오이자 기원전 3150년부터 기원전 2613년까지 이어지는 제1왕조를 건설했다.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 무스타파 와지리 사무총장은 이번에 발굴된 양조장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량 생산 양조장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의 양조장은 1900년대 초에 영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언급됐으나 위치가 특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집트-미국 고고학팀이 위치를 다시 잡고 발굴에 성공했다. 양조장은 길이 20m, 너비 2.5m, 깊이 0.4m 규모의 공간 8개로 구성됐다. 각 공간에는 맥주 원료인 곡물과 물을 섞은 혼합물을 가열하는 도기 40개 가량이 2열로 놓여있었다.발굴을 이끈 매슈 애덤스 뉴욕대 교수는 양조장에서 한 번에 생산하는 맥주량이 2만2400ℓ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500㎖ 기준 4만5000잔 정도다. 애덤스 교수는 고대 이집트 왕국에서 제물을 바치는 의식에 맥주가 사용되었다는 증거도 나왔다면서, 이곳에서 제조된 맥주가 파라오를 위한 장사시설에서 제례 때 사용됐을 것으로 봤다. 실제 아비도스는 이집트 신화에서 ‘저승의 왕’으로 불린 오시리스 신 숭배의 중심으로, 1왕조 등 이집트 초기왕조 파라오의 무덤 중 다수가 조성된 ‘네크로폴리스’(묘지)다. 고대 이집트인이 맥주를 만들었다는 점은 과거에도 확인됐다. 지난 2015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는 약 5000년 전 이집트에서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던 도기 조각이 공사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1900년 전 로마황제가 아침 햇살 받으며 조식 즐기던 연회장 터 발견

    1900년 전 로마황제가 아침 햇살 받으며 조식 즐기던 연회장 터 발견

    약 1900년 전 로마 제국의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황후 비비아 사비나가 성대한 조찬을 했을 가능성이 큰 연회장 터가 발견됐다. 9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이 로마 외곽 티볼리의 면적 약 120만㎡에 달하는 아드리아나 별장에서 이 유적을 확인했다. 서기 125년쯤 짓기 시작해 10년여에 걸쳐 완공한 이 별장은 황제가 128년부터 이곳에 머물며 공무를 수행했기에 별궁 성격을 갖고 있었다. 예술과 역사에 관한 열렬한 학자이기도 했던 하드리아누스는 여행 중에 방문했던 각 지역의 건축양식을 별장 설계에 반영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이에 따라 이 별장은 로마와 고대 그리스의 건축양식이 합쳐졌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에레크테이온 신전에서 접한 여인상 기둥인 카리아티드나 포이킬로로 알려진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구조물로 장식됐다. 이집트를 주제로 한 카노포 연못은 황제의 애인이었던 안티누스가 수행 중 나일강에 빠져 죽은 도시 카노푸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곳에 있는 긴 직사각형 연못이 바로 나일강을 상징하는 것이다. 세심하게 만들어진 각 방과 구조물은 황제의 취향과 황권을 확립하고 황제를 감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황제의 권위를 강화했을 것이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30㎞ 떨어진 아페닌 산맥 기슭에 있는 이 별장은 정원과 황야지대 그리고 경작지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전문가들은 황제가 원형 연못 가운데 있는 방에 설치된 거대한 대리석 식탁에서 아침을 먹는 것으로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두 분수대가 황제와 황후 뒤에서 공중으로 물을 뿜어냈을 것이고 반대편에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이들을 알현하는 것이 허락된 사람들에게 당당한 실루엣으로 비췄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아드리아나 별장의 책임자이자 이탈리아 미술사학자인 안드레아 브루시아티 박사는 “그 모습은 거의 연극적인 광경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곳은 4개의 침실과 연결됐을 것이고 각 대리석 판넬과 값비싼 돌로 장식된 선반이 있었다. 브루시아티 박사는 “이 별장은 황제의 신성을 나타내는 무대 장치로 거의 미래지향적이었다”면서 “오늘날 정치인들은 그에게서 연출 기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곳은 이 별장의 가장 웅장한 곳으로 이른바 해상 극장으로 불리는데 35개의 방이 분리돼 있고 하얀 모자이크로 포장된 콜로네이드(회랑)으로 둘러져 있었다. 두 개의 접이식 목재 다리를 통해 접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폭 40m의 섬 같은 공간은 로마의 전형적인 주택 배치에 부분적으로 영감을 줬다. 그 중심에는 임플루비움으로 알려진 빗물을 모으는 공간이 있었고 그 구변에는 휴게실과 도서관, 난방이 들어오는 욕실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다양한 침실이 있었다. 현재 해상 극장 안 중앙 섬의 출입은 2개의 영구 콘크리트 다리로 방문객들에게 개방돼 있다.138년 7월 황제가 세상을 떠난 뒤 이 별장은 그의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를 포함한 그의 후계자 중 일부에 의해 점령됐다. 이 별장은 또 270년대에는 시리아 팔미라 제국의 실질적 여왕 제노비아의 본거지가 됐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4세기쯤 로마 제국의 쇠퇴와 함께 이 별장은 버려졌고 값비싼 대리석과 조각상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이 별장은 동고트족과 비잔틴 제국 사이 전쟁 동안 양측에 의해 창고로 쓰였고 건물의 대리석은 현장 가마를 이용해 석회를 추출하기 위한 용도로 변경됐다. 남아있는 대리석 대부분은 16세기 인근 지역의 빌라 데스테라는 정원을 장식하기 위해 옮겨졌다. 오늘날 이 폐허 상태의 별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2013년 9월에는 지하 터널이 발견됐는데 이는 당시 황제의 하인들이 이용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900년 전 로마 병사의 급여명세서… “실수령액 사실상 0원”

    1900년 전 로마 병사의 급여명세서… “실수령액 사실상 0원”

    1900여 년 전 로마 병사가 받았던 급여명세서가 공개됐다. 파피루스에 새겨진 해당 문서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중 마지막 전투였던 마사다 항전에 참여한 군사의 것으로 확인됐다. 이스라엘의 고대 요새인 마사다에서 기원후 70년대 초에 일어난 마사다 항전은 기원후 70년대 초에 일어난 유대인과 로마군의 전쟁이다. 이번에 공개된 급여명세서의 주인인 로마 병사 가우스 메시우스는 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50데나리(denarri, 고대 로마의 통화 단위)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급여에서 식량과 군사 장비에 대한 비용이 공제돼 실수령액은 거의 ‘0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당시 로마 병사는 기병이었으며, 말과 노새에게 주는 사룟값이 병사의 급여에서 공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시 병사는 월급날이 되어도 사실상 무일푼이었을 것”이라면서 “고대 병사의 급여에서 의류와 음식 등 필수 비용에 얼마가 소비됐는지 관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해당 급여명세서에는 로마군이 마사다 항전이 끝난 뒤의 날짜와, 유대인 포로를 수용할 수용소를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모든 내용은 파피루스에 기록됐다. 이 문서는 지난해 전문가들이 군사 비문 데이터베이스와 파피루스 번역을 통해 내용이 밝혀졌으며, 최근 미국 군사전문매체인 태스크 앤 퍼포즈가 8일 소개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한편 마사다는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원전 37년 유대의 헤롯 대왕이 지은 요새화된 궁전이다. 성지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이나 갈릴리 못지않게 선호하는 필수 성지순례 코스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마사다 항전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군과 결사 항전 끝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되자 전사와 가족 900여 명은 집단 자살을 선택했다. 다만 자살을 금지하는 유대교 율법을 고려해 가장이 가족들을 먼저 살해한 뒤 다시 모여 서로를 죽여주는 방식을 반복해 죽음을 선택했다. 최후의 한 사람은 전원이 사망한 것을 확인한 뒤 성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다. 이후 마사다에 입성한 로마군은 시신 369구를 확인했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지하 동굴에 숨어있던 성인 2명과 아이 5명 뿐이었다. 마사다 항전은 로마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유대인들이 로마군에 대항해 끝까지 항전해 이스라엘의 자긍심과 일체감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꼽힌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모빌리티 혁명, 그 미래는 장밋빛일까

    모빌리티 혁명, 그 미래는 장밋빛일까

    바퀴의 이동/존 로산트 지음/이진원 옮김/소소의책/336쪽/1만 8000원 1885년 내연기관을 이용한 이륜차가 세상에 나온 뒤 자동차는 엔진과 외관을 바꾸면서 꾸준히 변화해 왔다. 1900년대 초반에 열린 비행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본격적으로 열리고 민간의 이동 수단으로 확장했다. 수많은 ‘탈것’들은 기술과 상상을 만나 자율주행과 에어택시, 초고속 지하튜브열차로 진화하고 있다.세계적인 도시연구 비영리 재단인 뉴시티즈의 창립자 존 로산트는 ‘바퀴의 이동´에서 이런 최첨단 이동 수단의 개발 현장을 보여 준다. 예컨대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있는 다이버전트3D는 컴퓨터가 자동차를 설계하고 3D프린터로 부품을 뽑아내는 식으로 개인 맞춤형 자동차를 제공한다. 팔로알토에 있는 딥맵에서는 자율주행차를 센티미터 단위로 안내하고, 심지어 길에 나뭇가지가 떨어졌다고 경고해 주는 차세대 지도를 제작 중이다. 두바이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2020년대에 하늘을 나는 에어택시를 대중화하고, 2030년에는 자동차 4대 중 1대가 자율주행으로 운행하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육지뿐 아니라 하늘과 땅 밑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각종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을 비롯해 에어버스와 보잉 같은 대형 항공사까지 100여개 기업이 새로운 전기비행선과 헬리콥터, 초고속 지하철을 개발 중이다.최첨단 하드웨어를 소개한 저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받쳐 줘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유나이티드 드웰링은 차고를 저렴한 주택으로 바꾸는 사업으로, LA의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교통체증도 줄이고 있다. 여기에 우버나 리프트와 같은 차량공유앱 등을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덧댈 수 있다. 자동차와 트램,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뒤섞인 헬싱키에서는 시간과 장소를 입력하면 예상 도착 시간과 최적의 교통조합은 물론 결제까지 사전에 처리해 주는 앱도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이처럼 조화를 이루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이 우선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키워드로 ‘네트워크’를 제시한다. 진화한 교통수단이 탄탄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삼아 제대로 연결돼야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까지 꼼꼼하게 짚는다.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됐다고 해도 갑작스런 사고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지,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는 에어택시가 추락하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건설 중인 고속 지하터널 루프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나아가 물건을 실어 나르는 아마존의 드론에 누군가가 장난으로 돌을 던지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사람의 얼굴까지 순식간에 인식하는 고도화된 기술이 통행 차량의 수, 속도, 보행자의 흐름 등을 보고하고 인공지능(AI) 엔진이 정보를 분석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소유하고 어느 정도까지 공개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혁명은 다가오지만, 저자는 그 미래가 무조건 장밋빛이 아닐 것이라 강조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는 어렵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부지기수다. 책을 덮을 때엔 혁명이 그리 멋지고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될 터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야생 백두산호랑이 발자국 선명…노루 쫓아 중러 국경 넘어 (영상)

    야생 백두산호랑이 발자국 선명…노루 쫓아 중러 국경 넘어 (영상)

    중러 접경지역에서 멸종위기 백두산호랑이의 흔적이 발견됐다. 21일 중궈신원왕은 중국 헤이룽장성 전바오섬(러시아명 다만스키섬) 인근에서 야생 백두산호랑이 발자국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경수비대는 20일 국경 순찰 도중 범상치 않은 족적을 발견했다. 성인남성 주먹보다 큰 발자국은 러시아에서 중국 방향으로 나 있었다. 주민 안전을 위해 관련당국과 서둘러 조사를 진행한 공안은 눈밭에 어지럽게 찍혀있는 발자국이 몸길이 1.5m의 암컷 백두산호랑이 새끼의 것임을 확인했다. 발 길이는 13~14㎝, 너비는 12㎝ 정도로 추정했다.현지언론은 코로나19 방역 기간 강화된 국경통제에 따라 밀입국 및 불법조업 단속을 위해 순찰을 돌던 국경수비대가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백두산호랑이 발자국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발자국이 관찰된 곳과 1㎞ 떨어진 산림지대에서는 노루와 호랑이 족적이 나란히 발견됐다. 인근에는 다시 러시아 쪽으로 향하는 호랑이 발자국도 찍혀 있었다. 습지관리국은 노루를 쫓아 우수리강을 건너 국경을 넘은 호랑이가 사냥에 실패해 다시 러시아 영토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011년 람사르 협약에 따라 습지로 등록된 전바오섬은 우수리강(러시아명 아무르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난해 백두산호랑이가 곰을 잡아 먹은 흔적이 발견된 타이핑거우 자연보호구역과도 연결돼 있다. 국가급 호랑이 보호구역인 타이핑거우 자연보호구역에는 최근 몇 년 사이 러시아에서 호랑이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습지관리국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백두산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된 것은 중러 국경지역의 생태환경과 자연자원이 효과적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호랑이, 중국에서는 ‘둥베이후’(동북호랑이)라 불리는 백두산호랑이는 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몸집이 크고 용맹하다. 1900년대에는 한반도를 비롯해 만주와 몽골, 러시아 극동지방에 분포했지만 서식지 파괴와 밀렵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무차별 학살에 밀려 종적을 감췄다. 1921년 10월 경주 대덕산에서 수컷 한 마리가 붙잡힌 것이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조선·대한제국 어보 어떻게 만들어졌나…과학적 분석서 첫 발간

    조선·대한제국 어보 어떻게 만들어졌나…과학적 분석서 첫 발간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500년에 걸쳐 제작된 왕실문화재 어보(御寶)의 재료와 제작 기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보고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소장 어보 322점(금보 155점, 옥보 167점)을 대상으로 2018년부터 3년 간 진행한 연구 결과를 담은 ‘어보 과학적 분석’ 보고서 3권을 발간했다고 15일 밝혔다. 어보는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릴 때나 왕비·세자·세자빈을 책봉할 때 만든 의례용 도장이다. 2017년 ‘조선왕조 어보·어책’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연구는 어보의 구성 재료와 제작 기법에 중점을 두고 비파괴 분석방법으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유물을 전수 조사한 첫 결과물이다. 금보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자체적으로 분석했고, 옥보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과 공동으로 진행했다.어보는 시대에 따라 재료 및 제작 기법이 변화했다. 금보는 구리·아연 합금 등에 아말감 기법으로 도금해 제작했는데, 시기별로 아연의 함량이 달라졌다. 15∼17세기 10% 내외였다가 18세기 이후 10∼30%로 폭이 넓어졌다. 19세기에는 아연 함량 20% 이상인 금보가 많이 제작됐다. 아말감 기법은 수은에 금을 녹인 아말감을 금속 표면에 칠한 후 수은을 증발시켜 도금하는 방법이다. 제작 기법에서도 변화가 발견됐다. 17세기 후기부터 18세기 중기까지 제작된 거북 모양 손잡이(귀뉴·龜紐)가 있는 금보에서만 점으로 새긴 무늬와 조이질(쇠붙이에 무늬를 쪼아 새기는 일)로 장식한 거북 등딱지 문양이 나타났다.옥보는 대개 사문암 계열로 제작됐지만 19세기 이후에는 대리암 및 백운암 계열이 일부 옥보에 사용되기도 했다. 손잡이 머리에 ‘王’(왕)자 등 글자가 새겨진 옥보는 총 25점이며, 거북 눈동자가 검게 그려진 옥보는 11점이었다. 어보에 달린 붉은 끈인 보수(寶綬)는 보통 비단으로 제작됐으나 1740년에 제작된 1점과 1900년대 이후 제작된 5점에서는 인조섬유인 레이온을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국내에 레이온이 들어온 시기가 1900년대 초였으므로 1740년 제작된 어보의 보수는 후대에 교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번 보고서가 앞으로 어보 환수나 유사 유물의 시기 판별에 기준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전하는 어보는 총 331점으로, 국립고궁박물관 외에 국립중앙박물관이 7점, 고려대박물관이 2점을 소장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www.gogung.go.kr)에 공개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인도네시아서 세계 최고 동굴벽화 또 발견

    인도네시아서 세계 최고 동굴벽화 또 발견

    최소 4만 5500년 전 황토색 색소로 그린 돼지 벽화인도네시아에서 최소 4만 5500년 전에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가 발견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호주 그리피스대의 애덤 브럼 교수 연구팀은 13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석회암 동굴에서 멧돼지 세 마리가 그려진 벽화와 사람의 손도장을 발견했다”며 벽화가 발견된 랑 테동게 동굴은 석회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외딴 계곡에 위치해 있었다고 밝혔다. 멧돼지 벽화의 크기는 가로 136cm, 세로 54cm이다. 멧돼지 벽화는 부분적으로 남은 두 마리 멧돼지와 마주 보고 있는 형태다. 검붉은 황토색 색소를 이용해 그렸으며, 얼굴에 사마귀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술라웨시섬 토종 멧돼지로 추정된다. 사람이 손을 대고 물감을 뿌려 만든 손도장도 보인다. 연구팀이 우라늄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으로 동굴 광물질의 연대를 측정해보니 벽화는 최소 4만 55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됐다. 브럼 교수는 “멧돼지가 자주 그려진 것은 인간이 현지 동물의 행동 생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라며 “세계 다른 동굴에서 발견된 구상화들을 현생인류가 그렸다는 점에 비춰 이들 그림도 현생 인류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술라웨시섬에서는 4만년이 넘는 동굴 벽화가 잇따라 발견됐다. 그리피스대 연구팀은 2019년 역시 술라웨시섬의 한 동굴에서 4만 3900년에 인간이 들소와 멧돼지를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인류 최고의 사냥도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1만년 전 실존한 육식동물 ‘다이어 울프’ 진짜 멸종 원인은 기후보다 진화적 고립”

    “1만년 전 실존한 육식동물 ‘다이어 울프’ 진짜 멸종 원인은 기후보다 진화적 고립”

    “현존하는 늑대와 외형만 유사한 다른 종생존에 도움주는 유전적 특성 획득 못 해빙하기 끝나면서 멸종 피하지 못했을 것”미국 판타지 작가 조지 R R 마틴이 쓴 장편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8부작 드라마 ‘왕좌의 게임’으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스타크 가문의 상징이 바로 ‘다이어 울프’이다. 다이어 울프는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해 상상의 동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약 1만년 전까지 북미 대륙을 중심으로 실존했던 동물이다. 현존하는 회색 늑대와 마찬가지로 개과 개속에 속하고 외모도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중간 크기 다이어 울프의 신장이 150㎝, 몸무게는 50~79㎏으로 회색 늑대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현재 늑대보다 무는 힘도 1.5배 정도 강하고 이빨도 커서 매머드같이 몸집이 큰 동물들을 주로 사냥했던 초(超)육식동물로 알려져 있다. 중생대 백악기 말 공룡을 포함해 지구상 존재했던 전체 생물종 중 75%가 사라지는 제5차 대멸종 이후 시대인 신생대 3기 플라이스토세에 살았던 다이어 울프는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매머드, 스밀로돈, 땅늘보 같은 거대 포유류들이 사라질 때 함께 멸종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가장 흔한 육식동물이었던 다이어 울프가 회색 늑대의 친척인지, 그리고 멸종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인지 인간의 사냥 때문인지는 여전히 고생물학 분야 수수께끼이다. 이런 가운데 영국 더럼대 고고학과, 호주 애들레이드대 생명과학부 고대DNA연구센터,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UCLA) 생태·진화생물학과 연구진을 중심으로 영국, 호주, 미국, 러시아, 스페인, 덴마크, 캐나다, 프랑스, 그린란드, 노르웨이, 독일 등 11개국 43개 연구기관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다이어 울프가 현존하는 늑대들과 외형만 비슷할 뿐 사실상 다른 종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4일자에 실렸다.연구팀은 미국 와이오밍, 아이다호, 오하이오, 테네시주 등에서 발견된 약 5만~1만 29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다이어 울프 5마리의 뼈 화석, 고대 개 3마리의 뼈 화석에서 채취한 DNA, 북미 지역에서 서식 중인 회색 늑대와 코요테 22마리에서 추출한 DNA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다이어 울프는 약 570만년 전에 회색 늑대와 갈라졌으며 약 510만년 전에는 아프리카 자칼에서 갈라져 진화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재 늑대와 코요테, 고대 개와는 유전자 공유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도 밝혀졌다. 회색 늑대, 아프리카 늑대, 개, 코요테, 자칼 등은 이종교배 사례가 있어 서로의 DNA를 공유하기도 하지만 다이어 울프는 다른 늑대 종들과 형태학적으로만 유사할 뿐 전혀 교배가 없이 북미 지역에서 단독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진화적 고립이 혈통의 순수성은 지켰을지 모르지만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유전적 특성을 획득하지 못해 빙하기가 끝나면서 생긴 거대 포유류 멸종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앤절라 페리 영국 더럼대 박사는 “‘왕좌의 게임’ 덕분에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다이어 울프는 외형 때문에 회색 늑대나 코요테와 가까운 혈연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돼 왔지만 이번 연구로 다이어 울프와 현존 늑대들의 관계는 마치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와 비슷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종의 진화의 비밀을 푸는 동시에 빙하기와 함께 사라진 거대 포유동물들의 멸종 원인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게 의의”라고 덧붙였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전기요금에 반영한다는 ‘연료비 연동제’...어떻게 얼마나?

    전기요금에 반영한다는 ‘연료비 연동제’...어떻게 얼마나?

    올해부터 유가 등 연료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이 달라지는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된다. 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인상하고, 유가가 하락하면 전기요금도 인하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유가가 올라도 모두 한국전력에서 부담했지만, 올해부터는 유가를 분기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기로 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여러 나라도 이미 1900년대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1년 7월 시행을 목표로 전기공급 약관까지 개정했지만, 시행 직전에 물가 상승 우려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다. 결국 시간이 지나 지난해 12월 17일, 정부와 한국은행이 발표한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의 핵심으로 시행하게 되었다.연료비 연동제의 시행은 유가 등락 반영뿐만 아니라 기후환경요금 분리, 할인제도변경, 계시별 요금제 등을 포함하고 있다. 기후환경요금에는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RPS),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ETS), 미세먼지 계절 관리제 시행 등 그동안 전기요금에 명시하지 않고 부과했던 기후환경 요금이 별도로 고지된다. 그동안은 ‘전력량 요금’에 포함되어 소비자들이 기후환경 비용을 알 수 없었다. 현재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정책에 맞춰, 전기를 쓰는 사람들도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움직임에 공감하게 하자는 취지다. 지금까지 1인 가구 등 전기를 적게 쓰는 약 991만 가구에 매달 4,000원씩 할인된 필수사용공제가 단계적으로 사라진다. 7월부터 월 2,000원 할인으로 변경되고, 2022년 7월부터는 아예 폐지된다. 하지만 정부는 필수사용공제를 축소·폐지하는 대신 약 81만 가구의 취약계층에는 할인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연료비 연동제의 도입으로 올해 1분기는 요금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국제유가가 기준연료비(50달러)보다 낮은 40달러 선에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월 350kWh를 쓰는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 달 전기요금은 1,050원 정도 내려가게 된다. 상반기에만 국민과 기업이 부담할 전기요금이 총 1조 원 정도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이 효과를 내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 전기요금도 오르게 될 것이다. 유가가 갑자기 폭등해 전기요금도 갑자기 오를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직전 요금 대비 kWh당 3원, 최대 5원까지만 변동될 수 있게 조정 범위에 제한을 두었다. 최대 5원까지 도달하면 그 이상으로 인상되거나 인하되지 않는 것이다. 월 350kWh를 쓰는 4인 가구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월 최대 변동 폭은 1,750원이 된다. 정부는 단기 유가 급상승 등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요금조정을 유보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 7월부터는 가정에서도 계절·시간에 따라 요금이 다른 계시별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다른 자신의 전기 소비 패턴에 맞춰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계시별 요금제는 시간대별 사용량 측정이 가능한 스마트미터기(AMI) 보급이 완료된 제주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한국전력은 연료비 연동제가 처음 적용된 전기요금 고지서가 11일부터 발송된다고 밝혔다. 유가에 따라 변동되는 전기요금 고지서. 당장은 요금 인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글 장민주 인턴기자 goodgood@seoul.co.kr영상 김민지·장민주 기자 mingk@seoul.co.kr
  • 나라 빼앗긴 왕의 눈물 이슬되어 참새 발 적신 곳 ‘노작’의 꿋꿋함 이곳에

    나라 빼앗긴 왕의 눈물 이슬되어 참새 발 적신 곳 ‘노작’의 꿋꿋함 이곳에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중략)//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홍사용,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에서) 세상 어느 곳이든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눈물의 왕이 사는 나라. 어머니께서 그토록 울지 마라 당부했지만 끝내 흐르는 눈물에 어머니와 나를 모두 가두어버린 시인이 사는 나라다. 그리하여 이곳은 여 리고 가여운 왕이자 시인이며 또 ‘나’인 사람이 기어코 흘리고 마는, 아침 이슬 같은 눈물에 다리가 젖어버린 참새의 터다. 빼앗긴 나라의 왕이자 시인인 ‘나’는 혼자 우는 버릇이 단단히 들린 채로 어머니의 당부마저 눈물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이 시를 지은 홍사용 시인은 노작(露雀), 소아(笑啞), 백우(白牛)라고 지은 여러 호들 중에서 ‘노작’을 주로 사용했다. ‘노작’은 이슬 로(露)에 참새 작(雀)자를 쓴다. 선생이 살던 시대는 그를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이면서 독립투사로 만들 수밖에 없던 일제강점기. 나라와 자신의 처지가 원통하여 밤새 흘린 눈물이 새벽이슬이 돼 가녀린 참새의 다리마저 젖게 한다는 뜻을 호로 삼을 수밖에 없던 이의 자리란 또 얼마나 외롭고 애달팠을 것인가.노작은 190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사망 후 백부가 살고 있는 화성으로 이주해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서울 휘문의숙을 졸업한 1919년에 기미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휘문의숙 재학 시절에 교우들과 문집을 간행했고, 졸업 후에는 문예지 ‘백조’와 ‘흑조’ 등을 기획해 창간했다. 노작 외에도 박종화, 나도향, 현진건, 이상화, 김기진 등이 합류해 만든 ‘백조’는 3호까지 나왔다. 편집은 노작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1호는 배재학당의 교장이었던 아펜젤러, 2호는 보이스 여사, 3호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로로 외국인들을 내세웠다.●박종화·나도향·이상 등과 ‘백조’ 발간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에 의해 검열당한 채 간행된 문예지 ‘백조’ 곳곳에는 출판물에서 내용을 밝히지 않으려고 지운 자리에 ‘O’ 혹은 ‘X’로 표시한 복자(伏字)가 곳곳에 표시돼 있다. 작가의 사상과 문장을 검열한 뒤에 출간을 허가했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 아픈 역사적 사료인 셈이다. 노작은 ‘백조’의 창간과 함께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이때 ‘나는 왕이로소이다’, ‘묘장’,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등의 시를 발표했다. 선생은 시뿐만 아니라 소설 ‘저승길’, ‘뺑덕이네’, ‘봉화가 켜질 때’ 등을 썼고 희곡으로 ‘할미꽃’, ‘출가’, ‘제석’ 등의 희곡이 있다. 수필과 여러 비평문도 발표하면서 다방면의 글쓰기 작업들을 하는 동시에 1923년에는 토월회(土月會)에 가담해 문예부장을 맡기도 했다.“현실에 토착해 있되 이상은 명월같이 높게 가져야 한다”며 발족한 연극문화운동단체 ‘토월회’는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김기진, 김복진 등이 매주 한 번씩 모여 시를 낭송하고 그림을 감상하며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십일월(十一月)에 결성됐다는 뜻으로 토월회라 부른다는 말도 있다. 당시 조선의 연극은 주로 신파극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극단이 없이 여기저기서 파편화된 채 단발성 공연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나는 왕이로소이다’ ‘묘장’ 등 시 발표 노작은 대중 속에 파고들어 깨우치는 데 연극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1927년엔 산유화회를 조직해 연극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대중적인 연극을 통해 민족의 아픔과 정한을 표출하고자 한 선생의 의도가 시대의 필요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일제 검열로 대본 전체가 삭제, 압수되고 공연의 막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선생은 조선총독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끝내 연극운동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번역극과 다채로운 신극 운동을 전개해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토월회는 경영난으로 1931년에 해산하게 된다.노작은 일제에 항거하는 작품들을 활발히 썼지만 저돌적인 투사의 문장이 아닌 1920년대 초에 붐이 일었던 낭만주의운동에 힘입어 향토적 서정, 자전적 전기 등의 감상이 짙은 작품들을 주를 이뤘다. 대다수 낭만주의 시인들이 외국 풍조에 영향을 받은 시들을 쓸 때 선생은 민중의식이 깃든 민요에 관심을 갖고 민족적 서정성을 끝없이 탐구하고 형상화했다. 그런 이유로 민요시, 향토시로 분류되기도 하는 그의 시들은 주로 비애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어 ‘비애의식을 민족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통적인 맥락에서 시를 창작하고 민족적인 이념과 독립의 의지를 시와 희곡 및 소설 등을 통해 널리 알리고자 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일제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독립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던 선생은 해방을 맞이해 근국청년당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다 1947년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생전에는 책을 출판하지 않았다가 1976년에 와서야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2010년에는 유년기를 보내고 그의 묘지가 있기도 한 경기도 화성에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 개관되기에 이른다. ●오늘날 토월극장 이름 ‘토월회’서 비롯 나는 홍사용 시인을 고등학교 3학년 때 언어영역의 지문으로 나왔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로만 알고 있었다. 사는 곳의 지척인 화성 동탄 신도시에 문학관이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노작과 홍사용 그리고 시의 제목은 여전히 뇌리에서 각기 따로 놀았다. 그러다 몇 년 후에야 시와 시인, 문예지 ‘백조’와 지금의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이 ‘토월회’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곳과 인연이 닿아 이 년 넘게 소설창작과 단편소설읽기 강좌를 진행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선생의 발자취에 대해 본격적으로 인지했다. 문학관의 지척에 살면서도 조금 더 빨리 선생의 자리에 대해 숙고하지 않은 것은 내 게으름의 탓일 것이다.오랜만에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신도시의 유일한 문학관답게 문화적인 정취를 원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시와 연극, 소설로 대중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던 선생의 뜻에 걸맞게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노작 출판학교, 노작문학제, 노작 문예지 ‘백조’의 발간, 작가의 방 대관사업, 노작홍사용단막극제, 노작문학상 등을 비롯해 문예강좌, 청소년 문예교실, 우리동네 작은 영화관, 문학이 함께하는 음악회, 시인과 함께 걷는 시숲 길, 문학현장답사, 산유화극장 정기공연 등과 시민극단 연극동아리까지 시와 희곡, 수필과 소설을 아우르는 프로그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유튜브까지 진출해 온오프라인을 종횡무진하는 프로그램들의 목록을 보며 1920년대 초에 낭만주의 문학의 선두주자이며 문학사를 주름잡던 선생의 활동을 겹쳐 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터. 현존하는 여러 문학관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가히 손꼽힐 정도로 체계적인 외향과 내실을 다져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학관 곳곳에서 선생이 살다 간 발자취와 시대정신, 문학에 대한 열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시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는 주변의 시민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홍사용’이라는 이름을 신도시의 문화거점으로 우뚝 서게 한 노력의 발로다. 문학관이 시민들과의 소통을 최우선하고 글자와 문장을 넘어서서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손택수 관장의 의지가 특히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에 호응하듯이 주체적으로 문학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모습이야말로 이 자리를 자리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문장’이 아닐까. 이 모든 일들이 한 세기 전에 노작이 행했던 시대정신과 민족의식에 대한 문학적인 물음에 대한 후대의 답임을 보여 주고 있는 공간이었다. 당대의 호명으로 박제된 이름만이 아니라 오로지 선생의 작품과 민족정신을 일깨우던 자리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생생하게 사람들 곁에서 살아 있는 문장으로 다가서는 그 이름. 그리고 그것을 일깨우는 여러 사람의 땀과 마음들. 나라를 빼앗긴 왕의 눈물이 이제는 동이 틀 무렵의 이슬이 돼 참새의 발을 씻어 주는 곳,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다.소설가 이은선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벨 에포크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벨 에포크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대’ 즉 ‘좋은 시절’이란 뜻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은 언제였나요?”1789년 대혁명부터 1871년 파리코뮌까지 무려 80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정치적 격동기를 보내고 평화와 번영의 시간을 맞은 프랑스. 오랜 고통의 시간이 헛되지 않아 드디어 ‘좋은 시절’을 만났다.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정치·사회·경제·과학·예술 등 다방면에서 크게 번성했다. 역사 속 ‘벨 에포크’는 바로 그 시절을 말한다.수도 파리는 조르주외젠 오스만이 펼친 개조사업 덕에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했고,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만국박람회 개최를 맞아 파리를 상징하는 많은 건축물이 만들어졌는데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1889년에는 에펠탑, 1900년에는 알렉산더 3세 다리가 세워졌다. 금빛 도금이 찬란한 다리 밑을 흐르는 센강변엔 연인들의 속삭임이 가득했다. 저녁이면 사람들은 세련된 옷차림으로 한껏 꾸미고, 아름다운 도시를 누볐다. 카바레 물랭루주, 레스토랑 막심스는 당시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였다. 힘들고 지쳤던 만큼 춤추고 노래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만끽했다. 그 시절 캉캉춤과 샹송도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카페 벨 에포크’에는 과거를 재현해 주는 서비스 업체가 등장한다. 의뢰인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세트장을 만들고, 의뢰인은 본인이 원하는 역사 속 인물이 돼 보기도 하며, 자신의 리즈 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연기 중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그 시절의 사람들과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업체에 주문이 넘친다. 삽화 만화가인 주인공 빅토르는 아내를 처음 만난 1974년 5월로 돌아간다. 우연히 그녀를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곳 카페 벨 에포크는 그때의 그 모습대로 재탄생했고, 젊은 대역배우는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그 시절 아내를 똑같이 재현한다.빅토르가 주문한 시나리오대로 추억 여행은 완벽하다. 빅토르가 잘못 기억해도 상관없다. 빅토르가 그날 비가 왔다고 주장하면 마른하늘에서 금방 비도 내린다. 이렇게 진정한 행복감을 다시 한번 느낀 빅토르는 결국 현실에서도 삶의 활력과 함께 잃었던 아내와의 사랑도 되찾는다.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또 다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년 작)는 좋은 시절을 좇아 ‘벨 에포크’ 시대까지 가게 되는 이야기다. 잘나가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길 펜더는 파리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마법의 자동차에 오르고, 자신이 가장 흠모하는 예술적 흥취가 풍만한 1920년대로 가게 된다. 당대의 명장들인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를 만나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 아름다운 여인 아드리아나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해 온 1920년대를 살게 되지만,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 ‘벨 에포크’로 가고 싶어 해 둘은 더 과거로 떠난다. 결국 어느 시대, 어느 시절에 살든지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힘든 시간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는 내용의 우디 앨런 감독 대표작이다.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암흑기는 새해에도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설렘과 흥분 대신 걱정과 근심만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과거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 추억을 재현하는 ‘레트로 감성’이 유난히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가요계에 불고 있는 디스코와 트로트 열풍도 같은 이유일 거다. 당신의 마음 속 ‘벨 에포크’는 언제인가요?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고 있나요? 아름다운 시절이 다시 찾아오길 기다리며 상상여행을 떠나 본다.
  • 김구·이동녕 등 요인 뒷바라지 26년… 살림 도맡은 ‘임정의 어머니’

    김구·이동녕 등 요인 뒷바라지 26년… 살림 도맡은 ‘임정의 어머니’

    “임정의 살림은 석오장(이동녕)과 백범(김구) 몇 분이 거의 다 짊어지다시피 한 상태였는데 돈이 바닥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면 그야말로 끼니가 간데없어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면서 한 술씩 얻어 드시기까지 했다.”(‘장강일기’·정정화) 정정화 선생은 1920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1946년 귀국할 때까지 임시정부 살림을 책임지고 요인들을 뒷바라지한 ‘임시정부의 안주인’이었다.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 임정 요인들 가운데 선생이 지어 준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김구는 여기저기 다니다가 “나 밥 좀 해줄라우” 하면서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임정의 살림은 늘 궁핍해서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고 그럴 때마다 선생은 자신의 잘못인 듯 애간장을 태웠다.선생은 1900년 8월 3일 수원 유수를 지낸 정주영의 2남 4녀 가운데 셋째 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향 충남 예산에 많은 땅을 가진 부자였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신식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러나 어깨너머로 천자문과 소학을 떼었고 성인이 돼 영어와 신학문을 공부해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선생의 인생은 겨우 열 살에 동농 김가진의 3남 김의한과 결혼하면서 완전히 바뀐다. 김가진은 황해도 관찰사, 농상공부 대신 등을 지낸 구한말의 문신이었다. 그러면서 대한협회 회장을 맡아 국권 회복에 앞장서고 경술국치 후에도 대동단을 결성해 총재로 활동한 우국지사였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10월 김가진은 아들 김의한과 중국 상하이로 망명,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한제국 대신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중국행을 뒤늦게 안 스무 살의 ‘겁 없는 여인’은 이듬해 1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일제의 눈을 피해 단신으로 상하이로 갔다. 가자마자 접한 것은 독립운동이라는 대의명분보다 먹을 것마저 부족한 가난이었다. 상하이 임정 가족들의 생활은 주먹덩이밥과 한두 가지 반찬으로 때울 정도로 어려웠다. 누구나 값싼 천으로 만든 중국 의복 창산(長衫)을 걸치고 헝겊신을 신고 다녔다. “이름, 명예, 자존, 긍지보다는 우선 급한 것이 생활이었다. 포도청 같은 목구멍이었다. 머리를 내밀고 팔다리라도 내놓을 만한 누더기 한자락이 절실했던 것이다.”(‘장강일기’)●외동아들 김자동, 현재 기념사업회장 맡아 홀몸으로 중국에 건너왔듯이 선생은 중국에 온 지 겨우 달포쯤 지난 후 홀로 독립운동 자금을 구하러 국내로 잠입하겠다고 ‘당돌한’ 결정을 내린다. 갓 스물의 당찬 아낙네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3·1운동 직후 일제의 서슬이 퍼렇던 국내로 숨어들어 왔다. 임정의 지시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닌 끝에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구해 중국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도 돈을 구해 무사히 귀환했지만 세 번째에는 일제에 붙잡히고 말았다. 동행인이 장담하는 바람에 인력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다 체포돼 신의주 경찰서로 끌려가 이틀 동안 고초를 당한 후 풀려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22년 7월 4일 일흔이 넘은 나이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시아버지 김가진이 세상을 떴다. 네 번째로 국내에 들어왔을 때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친정아버지가 별세했고 선생은 상을 치른 후 1923년 7월 다시 상하이로 돌아갔다. 선생은 1928년 외동아들 김자동을 낳았다.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으로 불리는 김자동(92)은 광복 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번역하기도 했다. 현재는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망명 10년째이던 1929년 7월 선생은 여섯 번째로 다시 고국 땅을 밟은 뒤 1년 6개월간 체류했다. 하지만 국내의 분위기는 지인들도 선생을 냉대할 만큼 변해 가고 있었다. 1931년 초 선생은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면서 독립이 되기 전에는 귀국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임정은 일제의 체포를 피해 상하이를 탈출, 자싱(嘉興)으로 옮겨 갔다. 선생은 그곳에서도 임정 요인들과 식구들을 챙겼다. 김구는 남호라는 호수의 배 안에서 은신했다. 김구에 대한 추적이 강화되자 임정은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를 가흥으로 모셔 왔다. 선생은 곽 여사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김구의 식구들을 보살폈다. 한번은 곽 여사의 생신 때 비단 옷을 사다 주었는데 곽 여사는 “지금 우리가 이나마 밥술이라도 넘기고 앉았는 건 온전히 윤 의사의 피값이야. 피 팔아서 옷 해 입게 생겼나”라고 야단을 치며 물려오라고 했다.●20여년 모셨던 이동녕 선생 임종 끝까지 지켜 그 무렵인 1935년 11월 선생은 임시정부 여당으로 창립한 한국국민당에 가입했다. 독립운동 단체에 적(籍)을 두게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정과 지도부는 후난(湖南)성 창사(長沙)로 옮겨 갔다. 선생은 이시영을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이듬해 5월 우익 3당 통합 회의 도중 이운환이 3당 대표들에게 권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김구는 중상을 입었고 현익철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절명하고 말았다. 이들을 간호하고 보살핀 것은 선생이었다. 일본의 공격이 거세지자 임정은 또다시 창사를 떠나 광주를 거쳐 포산(佛山)으로 옮겨 갔다. 1938년 가을부터 선생은 임정의 안살림을 본격적으로 맡게 됐다. 딸린 가족이 없는 이동녕 등 국무위원들을 수발하며 살았는데 선생은 혼자 망명 생활을 하던 너덧 사람을 광복이 될 때까지 모셨다. 포산 생활도 잠시였고 임정 식구 100여명은 일본군의 공습을 받으며 기차로, 배로 목숨을 건 피난을 계속했다. 힘든 여정 속의 뒷바라지는 선생의 몫이었다. “밥은 배 위에서 삼시 세끼를 다 해먹을 수밖에 없었다. (…) 국무위원 전원을 돌봐 드려야 했으므로 (…)육지로 올라가서 시장을 봐 오는 것도 일 중의 하나였다.”(‘장강일기’) 임정 식구들은 한 달 열흘을 배 위에서 지내기도 하는 등 장쑤성에서 출발한 후 장장 5000㎞의 대장정 끝에 치장(江)에 도착했다. 치장에서도 선생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안주인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1940년 3월 선생이 아버지처럼 여기며 20여년 동안 모셨던 이동녕이 별세했다. 마지막 열흘 동안 곁을 지킨 사람도 선생이었다.치장 근처 충칭(重慶)으로 옮긴 임시정부는 1940년 5월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광복군을 창설해 당·정·군 체제를 갖추었다. 정정화도 한국독립당 창립 당원이 됐고 같은 해 6월 한국독립당 여성 조직인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 간사로 선출됐다. 1941년 1월 임정 가족들은 충칭 근처의 투차오(土橋)로 이사해 5년 동안 모여 살았다. 여기서도 선생의 역할은 컸다. 특히 남편이 일제에 체포된 부인과 가족들의 바느질도 해 주며 보살폈다. 외국 손님 접대 등 임정의 큰일도 총책임을 맡았다. 장준하 등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 출신 청년 50여명을 위해 선생은 투차오의 교회 강당을 개조해 임시 막사로 제공하고 동생처럼 돌봤다. 1943년 2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대회에서 선생은 훈련부 주임으로 선임됐다. 한국애국부인회는 국내외 동포 여성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며 독립운동 참여를 호소하고 광복군을 위문하는 등 독립운동 지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갔다. 그러던 중 선생은 투차오에서 광복을 맞았다. 선생은 임정 요인들이 충칭을 떠나고 나서도 투차오에 남아 뒤처리를 마치고 이듬해 5월 9일에야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임정 요인들은 선생의 정성 어린 뒷바라지에 힘든 투쟁 속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나아가 26년이라는 기나긴 임시정부의 타국살이도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120년 된 초콜릿과 빅토리아 英 여왕, 그리고 호주 시인

    120년 된 초콜릿과 빅토리아 英 여왕, 그리고 호주 시인

    호주 국립도서관에서 120년 전에 만들어진 초콜릿이 온전한 형태로 발견돼 화제란 소식이 지난 22일 국내 언론에도 소개됐다. 지난 1900년 벽두를 앞두고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 당시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영연방 군인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하사한 이 초콜릿은 호주의 대표적인 자연 시인 앤드루 바톤 ‘밴조’ 패터슨의 유품 가운데 발견됐다. 호주 국립도서관이 21일 벤죠의 유품을 확인하는 과정에 아이 손바닥 만한 크기의 상자에 든 막대 초콜릿 6개와 포장에 들어간 짚과 은박지가 나왔다고 공개했다. 도서관 직원인 제니퍼 토드는 “‘밴조’ 시인의 습작품·일기·신문기사 더미 가운데 전혀 예상치 못한 초콜릿이 나와 깜짝 놀랐다”면서 “뚜껑을 열자 포장된 초콜릿 막대에서 아주 독특한 냄새가 풍겼다”고 말했다. 1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외형이 잘 보존돼 있었지만 먹을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고 호주 공영 ABC방송이 전했다. 상자 뚜껑에는 ‘남아프리카 1900’과 ‘빅토리아 여왕이 행복한 새해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초콜릿은 영국의 유명 초콜릿 회사 캐드베리의 것이었다. 이 회사 창업자는 전쟁을 극도로 혐오해 군인들에게 하사한다는 왕실의 제안을 마뜩찮아했다. 하지만 왕명을 어길 수 없어 결국은 납품하기로 했고, 대신 여왕은 깡통 상자 만드는 비용을 부담해 하사품이 제작됐다. ‘밴조’ 시인은 호주의 두 번째 국가로 쓰인 ‘마틸다와 왈츠를 추며’ 가사를 썼고 10 호주달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갈 정도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899년 시드니모닝헤럴드의 종군기자로 일년 동안 보어 전쟁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때 기념 초콜릿을 구해 호주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고 ABC방송은 전했다. 그가 1941년 사망할 때까지 40년 넘게 이 초콜릿을 먹지 않고 보관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영국 BBC 방송은 이 깡통 상자 디자인이 병사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어 당시로선 20파운드에 거래될 정도였다며 아마도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른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호주 국립도서관은 ‘밴조’ 시인의 초콜릿 등 관련 유품들을 전시하는 한편 온라인으로도 관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사진 호주 ABC방송 홈페이지 캡처
  • 세계 최고령 악어 ‘헨리’ 120세 생일 맞아…새끼만 1만 마리

    세계 최고령 악어 ‘헨리’ 120세 생일 맞아…새끼만 1만 마리

    야생 나일악어의 수명은 평균 45세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주(州)에 있는 ‘크록월드 보호센터’(Crocworld Conservation Centre)에서 살고 있는 한 나일악어는 최근 12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고 뉴스24 등 현지매체가 보도했다. 나일악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나일강 유역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에 분포한다. 나일악어는 매우 거칠고 사나우며 먹성도 강해 매해 2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1900년 남아공 이웃 국가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삼각주에서 태어난 나일악어인 ‘헨리’는 당시 매우 사나운 데다가 사람들을 습격해 식인 악어로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두려움을 사기도 했다. 아이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자 한 부족은 헨리 경으로 불리는 한 코끼리 사냥꾼에게 이 악어를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헨리 경은 1903년 마침내 이 악어를 포획하는 데 성공해 사람들은 이 악어에게 헨리 경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헨리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이후 악어 헨리는 85세가 되던 1985년 크록월드 보호센터로 오게 돼 현재까지 6마리의 암컷 악어와 함께 살며 지금까지 1만 마리가 넘는 새끼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헨리는 현재 몸길이 약 5m, 무게 약 700㎏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를 지녀 방문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17년 전 세계 모든 오래된 것을 소개하는 사이트인 올디스트닷오알지(oldest.org)에서 두 번째 장수 악어로 소개됐던 헨리는 올해 120세를 맞았다. 참고로 역대 최장수 악어는 ‘미스터 프레시’라는 이름의 호주 민물 악어로 2010년 폐사했을 때 나이가 140세였다. 따라서 헨리는 현존하는 최장수 악어다.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봉쇄령으로 한때 문을 닫았던 크록월드도 지난 9월 21일 다시 개장했으며 초등학교 방학 첫날인 지난 12월 16일에는 헨리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파티에는 입장객은 물론 직원에게도 케이크 한 조각씩 주어졌으며 헨리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고기 덩어리가 선물로 제공됐다. 매우 사나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헨리는 이제 평온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크록월드 보호센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제왕의 위엄’…中 옌벤서 야생 백두산호랑이 포착 (영상)

    ‘제왕의 위엄’…中 옌벤서 야생 백두산호랑이 포착 (영상)

    중국 지린성 옌벤조선족자치주에서 야생 백두산호랑이가 포착됐다. 중궈신원왕 14일 보도에 따르면 동북호랑이·표범국가공원 관리국이 톈차오링임업국 신카이임장에 설치한 원적외선 카메라에 야생 호랑이 한 마리의 모습이 두 차례 담겼다. 호랑이는 10월 25일 오전 4시 39분과 4시 57분 차례로 두 대의 카메라 앞을 지나갔다. 어두컴컴한 숲속을 거니는 호랑이의 걸음에서 제왕의 위엄이 묻어났다. 현지언론은 힘찬 걸음과 보폭이 영락없는 맹호의 것이라고 관심을 보였다.공원관리국 관계자는 “신카이임장에서 야생 호랑이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2015년 이후 이번이 6번째”라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지린성 왕칭현 도로 한복판에 야생 호랑이가 출현해 이목을 끈 바 있다. 호랑이가 출몰한 곳은 옌벤주 왕칭현 관광구역과 70㎞ 거리에 있는 국립공원 구역으로, 왕칭현의 작은 시골마을인 지관향에서는 30㎞ 떨어져 있다. 과거 러시아 접경지역에 머물던 백두산호랑이는 점차 중국 내륙으로 향하고 있다.2014년에는 지린성 지린시에서 불과 20㎞ 떨어진 곳에 야생 호랑이가 출몰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야생 호랑이 중 가장 서쪽에서 발견된 개체였다. 호랑이 서식지가 점점 백두산 쪽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이에 중국은 국립공원 조성은 물론 고속철도 노선까지 전면 수정하는 등 호랑이 생태 경로 보호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동북호랑이·표범국가공원은 2017년 정식 승인 후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칭·훈춘과 헤이룽장성 닝안·둥닝을 아우르는 라오예링 남부지역에 총 1만5천㎢ 면적으로 조성됐다. 서울 면적(605.21㎢)의 24.8배다. 이 중 지린성이 차지하는 면적은 약 1만700㎢(71.3%), 헤이룽장성 면적이 약 4300㎢(28.7%)다.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호랑이, 중국에서는 ‘둥베이후’(동북호랑이)라 불리는 백두산호랑이는 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몸집이 크고 용맹하다. 1900년대에는 한반도를 비롯해 만주와 몽골, 러시아 극동지방에 분포했지만 서식지 파괴와 밀렵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무차별 학살에 밀려 종적을 감췄다. 1921년 10월 경주 대덕산에서 수컷 한 마리가 붙잡힌 것이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안녕? 자연] 2020년 11월 지구 기온, 최고 기록 경신…지구온난화의 현실

    [안녕? 자연] 2020년 11월 지구 기온, 최고 기록 경신…지구온난화의 현실

    지난 11월 지구의 평균기온이 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지구온난화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유럽연합(EU) 산하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2020년 11월 지구의 평균기온은 1891~2010년 11월 평균기온보다 약 0.8℃ 높았으며 특히 유럽지역은 2.2℃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가장 뜨거웠던 2016년과 2019년 11월 기록보다는 0.13℃ 높았다. 북유럽과 시베리아에서 특히 이상기온이 관측됐는데, 노르웨이는 1900년 이후 가장 더운 11월을 보냈고, 스웨덴과 핀란드도 기록을 갱신했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 측은 “이번 기록은 지구의 장기 온난화 추세와 일치한다”면서 “알프스를 포함한 북유럽의 많은 지역의 기온이 매우 높았다. 유럽의 2020년 11월은 기록상 두 번째로 따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캐나다와 알래스카에서 비정상적인 높은 기온이 기록됐고, 시베리아와 북극해의 많은 곳이 예외적으로 따뜻했다”면서 “남미 동부와 호주 지역에서도 폭염이 있었고, 말라위와 모잠비크를 포함한 아프리카 지역의 11월도 특히나 높은 기온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측은 2019년 12월~2020년 11월까지 12개월 동안 거의 모든 유럽에서 평균 이상의 기온이 기록됐으며, 특히 1979년 관측이 시작된 이래 지난 11월 북극 해빙의 범위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온난화로 인해 얼음이 이전보다 천천히 얼고 늦봄과 여름에 더 많이 녹는 현상 때문이다.이에 반해 인도와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브라질 및 남극 대륙을 포함한 일부 지역의 11월 기온은 평균보다 낮았다. 이는 지난 9월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엘니뇨현상으로 태평양 동부 및 중부 열대의 해수면 온도가 정상보다 낮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지구 평균기온이 1℃만 높아져도 산불과 열대성 폭풍 등의 극심한 기상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경고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정체돼 있는 동안 탄소배출량이 급격히 감소했지만, 이는 일시적일 현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각국 정부가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명시된 국제공약을 잘 준수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는 “이러한 추세는 북극이 다른 지역보다 온난화의 영향을 더 빨리,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북극에 대한 포괄적인 모니터링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올해 지구 기온 ‘역대 TOP3’… 세계 곳곳 이상기후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2020년은 전 지구적으로 가장 따뜻한 3년 중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기상청이 6일 번역한 세계기상기구(WMO)의 ‘2020년 지구기후 잠정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10월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2도가량 높았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따뜻한 해는 2016년이었고, 그다음으로 2020년과 2019년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또 2011∼2020년은 역사상 가장 따뜻한 10년이 되고, 2015∼2020년은 가장 따뜻한 6년이 될 것으로 봤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봉쇄에도 온실가스의 대기 중 농도는 계속 상승했고, 앞으로 여러 세대를 걸쳐 지구온난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월 전국 평균기온이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2.8도를 기록했다. 평균 최고기온(7.7도)과 평균 최저기온(영하 1.1도)도 동시에 가장 높은 기온을 나타냈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도 발생했다. 북극에서는 새로운 기온 극값이 나타났고, 대형 산불로 호주, 시베리아, 미국 서해안, 남미 등 광대한 지역이 황폐해졌다. WMO 페테리 탈라스 사무총장은 “2024년까지 적어도 한 해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첨단기술로 푼 1900년 전 미라의 비밀…아이 배 속에서 풍뎅이 발견

    첨단기술로 푼 1900년 전 미라의 비밀…아이 배 속에서 풍뎅이 발견

    미국 과학자들이 손상 없이 미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25일(현지시간) CNN은 시카소 노스웨스턴대 의과대학과 아르곤국립연구소, 덴버 메트로폴리탄 주립대학교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이 1911년 이집트 하와라에서 발견된 미라의 주인공에 대해 몇 가지 단서를 알아냈다고 보도했다. 2017년 무렵부터 실험을 진행한 연구팀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미라의 주인공을 밝혀내는 데 집중했다. 마이크로-컴퓨터단층촬영(CT) 기술과 싱크로트론 X레이 회절분석을 조합한 첨단 기술을 활용했다. 첨단 방사광가속기 APS(Advanced Photon Source) 고성능 엑스레이 빔을 쏴 의료용CT의 100배에 달하는 3차원(3D) 이미지를 얻었다.마이크로CT와 방사광 X레이 회절분석을 활용한 뼈와 치아 구조 분석 선구자인 스튜어트 R. 스톡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수는 “CT 스캔을 통해 미라 내용물의 3차원 로드맵을 만들었다. 사람 머리카락 직경보다 작은 X선 빔을 미라 위에 비추며 내부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 세기 가까이 미라 내부는 침습적 방법을 통해 확인했다. 비파괴검사를 적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1911년 이집트 하와라에서 발견된 미라는 1900년 전 로마 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하와라 초상화 미라 4번’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하와라 초상화 미라’는 1888~1889년과 1910~1911년 고대 이집트 하와라 지역에서 발견된 미라들로 윗부분에 초상화가 그려진 점이 특징이다. 발견 당시 마 소재로 둘러싸여 있었던 미라는 초상화에 성인 여성이 그려져 있는 것과 달리 크기가 매우 작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과학자들은 미라가 몸무게 23㎏, 신장 94㎝ 상당의 여자 어린이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기술을 이용해 두개골과 치아 상태 등을 살핀 결과 영구치도 나지 않은 어린이의 나이는 5세 정도로 추정됐다.특히 장기를 모두 꺼낸 미라의 배 부분에서 발견된 탄산칼슘 덩어리가 눈길을 끌었다. 분석 결과 방해석으로 만들어진 7㎜짜리 풍뎅이 조각이었다. 스톡 교수는 “풍뎅이는 부활의 상징”이라면서 내세에서 고인의 영혼을 지켜달라는 의미의 부적으로 넣은 것으로 판단했다. 또 시신을 미라로 만들고 조각품까지 넣은 것으로 보아 상류층이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미라의 주인이 왜 죽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일단 미라 속 어린이는 특별한 외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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