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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생시위 갈수록 흉포/진압경찰 중상 급증

    ◎날세운 쇠파이프 휘두르기 예사/올들어 뇌진탕·골절 등 1백53명 폭력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일부 학생등 극렬시위대의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이들은 최근들어 화염병과 쇠파이프·각목등으로 「중무장」, 경찰의 진압에 조직적으로 맞서고 있어 경관들이 부상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 14,15일 불법강행한 「범민족대회」에서도 참가자들이 진압에 나선 경찰에 무자비하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공권력에 도전했다. 당시 집회장 전방에는 5백여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경찰의 진압에 맞서 전위대노릇을 했으며 실제로 경찰이 해산시키기 위해 진입할 때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경찰은 「범민족대회」 진압에 나선 경찰과 전경 44명이 학생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와 돌에 맞아 팔이 부러지거나 뇌를 다치는 등의 중상을 입고 경찰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 경찰병원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시위와 관련해 입원한 환자가 1년동안 42명이었지만 올들어서는 이미 1백53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이 대회에서만도 학생들에게 맞아 타박상을 입은 전경등을 합치면 모두 1백10여명에 이른다. 범민련 집회시 부상을 입은 경찰 3명과 전·의경 41명등 입원치료중인 44명 가운데는 팔과 어깨뼈가 금가거나 부러진 골절환자가 16명,뇌진탕등 뇌에 부상을 입은 사람이 16명등이며 이밖에 타박상등 12명이 대부분 중상자들이어서 최근의 시위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허리골절로 치료를 받고 있는 전경 조보현수경(21)은 『서울대안으로 진입했다가 나오는데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뒤 다시 무장해제를 당한 상태에서 쇠파이프와 발길등으로 몰매를 맞아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통일을 외치는 것을 어떻게 애국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머리를 내저었다. 입원한 전경들은 『학생들이 날카롭게 간 쇠파이프를 휘둘러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경찰병원 수간호사 성남기씨(39·여)는 『전에는 화염병에 의해 화상을 입은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골절상을 입은 사람은 20%정도 였으나 최근에는 골절이나 타박상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폭력시위의 실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차량을 비롯,방독면·취루탄발사기등 시위진압장비의 피해는 1억5천여만원에 달하고 있다. ◎범민족대회서 중상 김수일상경의 절규/“「쇠파이프 몰매」 누가 보상해 줍니까…”/5∼6명이 난타… 피토하고 실신/“대학생이 어떻게…” 부모 눈시울 『우리의 고통은 누가 보상해줍니까』 지난 14,15일 서울대에서 열린 「제5차 범민족대회」에 출동,해산작전에 나섰다가 학생들로부터 집단구타당해 병상에 누운 서울경찰청 제3기동대 29중대 김수일상경(20)의 절규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끼리 쇠파이프와 최루탄으로 맞붙어야만 하는 이땅의 현실을 마음아파했고 학생들을 이해해보려고도 노력한 김상경의 마음은 지금은 나락과 같은 고통만큼이나 찢어지는 듯하다. 김상경은 범민족대회가 서울대에서 기습적으로 열린 14일 하오10시쯤 소속부대원들과 함께 서울대정문쪽 해산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1만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밀고나와 전경부대는 오히려 쫓기는 처지가 됐고 선두에서 서서작전에 나선 김상경은 아차하는 순간 학생 5∼6명에 에워싸이고 말았다. 가지고 있던 액체가스분사기로 학생들에 맞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쇠파이프와 발길질에 의한 고통이 온몸에 느껴졌고 땀과 가쁜 숨에 흐려진 방독면유리밖은 온통 칠흑의 어둠뿐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을 때 김상경은 또다시 앞이 파래지면서 아득해짐을 느꼈다. 함께 퇴각하던 페퍼포그차가 가슴을 받은 것. 페퍼포그차에 질질 매달려 정문쪽으로 끌려나온 김상경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다시 쇠파이프를 든 학생들이었다. 몽둥이세례가 전신에 느껴졌다. 김상경이 피를 토하면서 의식을 잃어가자 겁이 난 학생들은 지나는 승용차를 불러세워 인근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말한 뒤 사라져버렸다. 김상경은 곧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의식을 잃었고 15일 하오가 돼서야 자신이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경찰병원에 누워 있음을 알았다. 92년 경남 김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상경은 「시대의 아픔」을 체험하기 위해 의경시험을 거쳐지난해 3월 의경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김상경은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벌이는 민주화·통일운동과정에서 입은 심신의 상처에 고통스러울 뿐이다. 아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김해에서 상경한 어머니 서종임씨(48)는 『문민정부가 들어서 안심하고 아들을 의경으러 보냈는데 동년배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 민족 자긍심의 회복(사할린한인 망향의 한 50년:4·끝)

    ◎「문화재생」 노력… 광복절 등 새 명절로/한글교육 중학교 생기고 한복 보급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온 1세 노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평생을 지냈다면 소위 2,3세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분명 이와 다르다. 『우리는 누구인가.러시아친구들과 어울려 러시아말을 하며 자랐는데 어느날 갑자기 한국이라는 나라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한동안 한국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구세주라는 기대도 가졌던게 사실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우리는 분명 한국인이지만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한다』­사할린컴퓨터연구소에 다니는 김용수(45)씨의 이 말은 이 땅에 사는 소위 한인 2,3세들이 겪는 또다른 고민을 보여준다. 한국과의 길이 열림으로써 사할린사회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변화를 겪었다.가장 큰 변화는 역시 애환과 탄식으로 점철된 이 사회에 희망과 활력이 생겨났다는 점일 것이다.그것은 수십년간 억눌렸던 민족문화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의 재생으로 연결됐다. 지진대인 관계로 사할린의 주거건물은 5층이하 아파트건물이 대종을 이룬다.그중 가장 인기없는 1,5층을 가리켜 이곳에서는 「카레이스키 에타쥐(한국인 층)」라고 부른다.소련시절 소수민족으로 한인들이 당한 설움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같은 한인이면서 러시아본토(원동,중앙아)한인들로부터도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한다.해방뒤 공산주의 사상을 교육시키기 위해 사할린으로 파견된 본토거주 한인(큰땅배기)들은 이곳 한인(본토배기)들을 소위 「삼방꼬(삼등자)」로 부르며 멸시했다고 한다.러시아인,본토 한인에 이은 삼등민족이라는 말이다.본토배기들은 큰땅배기들을 『빨갱이 선전하러 온 자들』로 욕했다. 두곳 출신 한인들은 그때 생긴 감정 탓에 지금도 자리를 같이하기를 꺼린다. 그 「삼방꼬」들이 이제는 반대로 러시아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입장이 됐다.한국상품의 대거진출은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이곳 한인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아직 한국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최고급이라는 한국식당이 지난해 문을 열었고 한국사업가가 사할린 유일의 「45분 필름현상소」도 이곳에 열었다.가게에는 한국산 가전제품,라면,과자,즉석식품들이 진열장을 가득 메우고 러시아 고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지난해 일본에 대한 쿠릴열도반환 반대집회장에서 한 러시아여인이 『일본은 필요없다.우리에겐 한국이 있다』고 소리치는 장면이 TV로 방영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외적인 변화는 한인사회 자체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사할린주 한인협회의 김홍지회장은 『그동안 추진해온 민족문화재생사업의 결과 설날,단오,추석 등 우리의 고유명절이 한인사회의 주요명절로 자리를 잡았고 어버이날,광복절 등 「한국에서 배운」 새로운 명절까지 추가됐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러시아 제9중등학교가 한글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돼 교장(신숙자)외 10명의 한인교사가 부임,주10시간씩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사할린시 대의원인 김춘경씨(여·57)는 『이곳에 진출한 선교사·사업가 부인들한테 한복입는 법도 배우고 서울의 모 교회에서 남녀한복 1백벌을 보내주어 한복도 많이 보급됐다』고 했다. 또한 지난해 6월에는 어느 재일한국인의 지원으로 건평 6백평짜리 극장을 구입,한인문화관을 열었고 서울의 모 독지가의 도움으로 장서 1만여권을 갖춘 도서관도 문을 열었다.지난해 발족한 「무궁화예술단」(단장 온명춘)은 한인들의 행사에서 모국의 음악을 연주한다. 하지만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 모든 게 미흡하다.김춘경씨는 『문화는 결국 행사를 통해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모국으로부터 재정지원은 물론 전문가들의 지도가 무엇보다 아쉽다』고 말했다. 사할린방송국에서 일하는 한 젊은 기자의 말처럼 이제는 「찔끔찔끔 도와주며 생색이나 내려는 짓」은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그보다는 1세 노인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그들의 후손들이 어렵게 찾은 모국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야할지를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때라는게 취재를 마치며 느낀 소회다.
  • 순경이 주부 성폭행/두차례 금품도 뺏어

    서울송파경찰서는 3일 이웃집에 들어가 주부를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서울경찰청 제1기동대 9중대 소속 원명호순경(31)에 대해 강도및 강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원순경은 지난달 28일 상오 3시45분쯤 술에 취해 이웃에 사는 이모씨(25·여·외판원)집에 부엌문을 부수고 침입,혼자 잠자던 이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한뒤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원순경은 또 지난 2일 상오 4시15분쯤 이씨집에 다시 들어가 이씨를 성폭행하려다 전화벨소리에 놀라 현금 8만9천원만 훔쳐 달아나던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 “소말리아를 푸르게”… 「상록수부대」 명명

    ◎첫 유엔군자격 공병대 이모저모/6개월 근무 원칙… 연장도 가능/경비·사상자 보상 등 유엔 부담/파견기간 1년… 사병급여 1천불 수준 소말리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한 한국건설공병대대의 장비수송선이 15일 현지로 출발함으로써 소말리아 파병이 개시됐다. 국군의 해외파병은 월남전및 걸프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이지만 유엔군 자격으로 파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정부는 이번 PKO파병에 무척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었다.월남전 파병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일부 국민들은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유엔이 우리나라에 PKO파병의사를 처음 타진해온 것은 91년 10월.정부가 당정협의 등을 거쳐 지난해 9월 유엔에 PKO참여의사를 통보했을 당시 규모는 보병 1개대대 5백40명·의료지원단 1백54명·군 옵서버 36명등 7백30명선이었다. 그후 의료지원단 파견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으나 외무·국방관계자들의 현지조사 결과 의료단은 파견신청국이 5개국으로 충분한 반면 파괴복구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공병부대를 보내기로최종 결정했다. 공병부대의 경우 평소 제한된 전투임무도 수행하는등 자체경계능력을 갖추고 있어 긴급사태 발생시 철수가 용이하다는 점도 감안됐다. 이번에 파견되는 부대는 경기도 안산의 육군 189중건설공병대대를 모체로한 정예공병부대로 장교 30명·하사관 32명·사병 1백90명등 모두 2백52명으로 지난 4월23일 구성됐다. 부대이름은 헐벗고 척박한 소말리아 땅을 푸르게 가꾸겠다는 뜻에서 「상록수」로 정했으며 부대훈은 「소말리아에 평화를,조국에 충성을」로 정하고 안산 육군건설단에서 4주동안의 기본교육을 마쳤다. PKO장병들은 구성당시 육군 각 부대에서 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엘리트 장병들로서 파견국 정세·국제관계법·군법·파견국 언어인 스와질리어·특공무술 등을 익혔다. 상록수 장병들은 6개월을 근무원칙으로 하며 본인의 희망에 따라 6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이들의 급여수준은 사병들의 경우 월급외에 1천달러수준의 유엔급여를 받으며 상록수 부대의 1년활동경비는 1백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모든 경비는 일단우리 정부가 부담한뒤 4∼5년뒤 유엔에서 되돌려 받게 되며 장비의 감가상각비 역시 반환받는다.상록수 부대의 파견기간은 원래 1년으로 돼있으며 만약 파견기간을 연장하려면 유엔협의와 우리 국회의 동의를 다시 얻어야 한다. 파견기간중의 사상장병은 국내법에 의해 보상을 받으며 보상금은 유엔에서 지급하게 돼있다. 상록수 부대장 장정훈중령은 『유엔의 도움을 받았던 우리가 유엔의 기치아래 소말리아를 돕는다는 생각에 장병들의 사기가 드높다』면서 『건설공병대대의 파견으로 향후 소말리아 전후 건설 진출참여의 기반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잠함 등 고가장비 선정­도입에 중점/율곡사업 주요감사대상 알아본다

    ◎값 도중에 높아져 정치자금 유입설/잠수함/전자장비수주에 미·유럽로비 치열/구축함/수백만불커미션 폭로 헬기 치밀한 조사 예상 74년이후 성역시돼온 한국군 전력증강사업(일명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3일부터 본격화됨에 따라 그동안 군사기밀 2급으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았던 고가무기 및 장비도입과정이 부분적으로나마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라서는 율곡사업을 둘러싼 비리·의혹의 실체도 어느정도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율곡사업에 대한 본격감사는 차세대전투기(KFP)뿐 아니라 잠수함·한국형 구축함(KDX)·대잠함초계기(P3C)·헬기·한국형전차(K1)·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사업등에 집중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FP사업을 제외한 주요 율곡사업의 주요감사대상사업을 점검해 본다. ▷잠수함사업◁ 북한의 잠수함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해군의 숙원사업으로서 82년 서독의 209형과 프랑스 아구스타급 잠수함이 경합,서독 HDW사의 1천4백t급 잠수함으로 결정됐다.척당가격이 약 1천3백억원으로 오는 2000년까지 모두 6척이 도입될 예정이며 지난해 11월 1번함이 진수됐다. 함정선정이 잘못됐다는 지적은 없으나 도입과정에서 가격이 높아져 정치자금 유입설이 나돌아 한때 국회에서도 문제가 됐었다. 일부 야당의원들은 계약가와 실제구입가가 척당 수억∼수십억원씩의 차이가 난다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해군당국은 환율변동에 따른 차액이라고 설명했다. ▷KDX사업◁ 해군의 3천1백t급 차기구축함을 건조하는 사업으로 현재 1번함의 선체건조가 진행중이다.함정에 탑재되는 무기·전자장비등을 수주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방산업체들이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로비에 의해 장비가 선정된 가능성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1척당 가격은 2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P3C사업◁ 노후한 해군의 대잠함초계기를 교체하려는 사업으로 오는 95년까지 미 록히드사의 P3C 8대가 도입될 계획으로 있다.대당 가격이 1억3천만달러에 달해 총사업규모가 10억4천만달러정도. 90년 기종선택시 프랑스 닷소사의 애틀랜틱­2와 미 록히드사의 P3C가 경합을 벌일때 애틀랜틱­2가 종합적인 면에서 유리하다고 본 해군이 이를 선호했으나 최종단계에서 뒤바뀌었다는 소문이 많았다. 미국측의 정부 고위층 상대 로비설이 끊이지 않았다. ▷헬기◁ 육군의 최대 전력증강사업.대형 경전투헬기,공격용 헬기,수송용 헬기사업으로 구분되는데 이중 경전투헬기사업은 규모가 크고 방만하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3월 권령해국방부장관의 지시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으나 예산문제 때문에 사실상 백지화 됐다.육군의 500MD헬기의 후속기종으로 내년부터 오는 2000년까지 서독의 BO­105,이탈리아의 A­109중에서 선택될 예정이었다. 대형헬기는 미 시콜스키사의 UH­60 블랙호크가 선정돼 국내에서 조립생산중이며 공격용 헬기로는 미국의 AH­1S코브라가 도입되고 있다. 일부 헬기도입과 관련해서는 커미션이 오고갔다는 것이 확인된 전례가 있는 만큼 세밀한 감사가 있어야 할 것 같다.87년 도입이 결정된 미 CH­47D 치누크는 결정과정에서 3백73만달러의 커미션이 전달됐음이 국회에서 폭로되기도 했다. ▷K1전차포수조준경사업◁ 86년 미 휴즈사의 GPSS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TI)의 GPTTS중 GPTTS가 선정됐다.방산관계자들은 당시 가격과 신뢰도면에서 GPSS가 유리한 것으로 봤었다. ▷휴대용 미사일 사업◁ 미국의 스팅어와 영국의 재블린이 경합하다 선호도가 높았던 86년 스팅어를 제치고 재블린이 최종 선택됐다.기종선택에 있어 영국과의 외교관계가 고려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재블린은 명중률이 매우 낮아 현재 사장화된 것으로 알려졌다.기당 가격은 6천여만원으로 그동안 2백여기가 들어왔다.
  • 소말리아 PKO참가 건설공병대 발대/새달까지 준비완료

    소말리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할 건설공병대대의 파병준비작업이 23일 하오 육군 제189중건설대대 연병장에서 열린 파병부대 발대식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방부는 이날 소말리아 파병준비를 5월말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에 따라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PKO파병병력을 상대로 한 교육훈련을 끝낸뒤 빠르면 5월말 또는 6월초 국방부장관의 주관하에 파병환송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 “14전대 조기개최 등 건강 우려때문”/홍콩지 보도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공산당이 14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당초 예상보다 다소 일찍 열기로 한것은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건강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홍콩의 더 스탠다드지가 북경소식통들을 인용,23일 보도했다. 홍콩신문들은 이날 중국관영 신화통신등을 인용,14차당대회가 오는 10월12일에 개막되어 5∼6일간 열리며 이에 앞서 10월5일에는 13기 마지막중앙위전체회의(9중전회)가 개최된다고 전했다. 중공당이 당초 결정했던 「44분기중(10∼12월)당대회개최」에서 가능한 한 가장 빠른 날짜를 선택한 것은 당지도층이 등의 갑작스런 건강악화등 예기치않은 문제가 발생,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 차기총리 선출로 북대하회의 진통

    【홍콩 연합】 중국 공산당 제14기 전국대표대회(14전대회)와 13기 당중앙위 9차 전체회의(9중전회)를 앞두고 현재 하기 휴양지 북대하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최고위 지도부 비공식 회의가 차기 중국 국무원 총리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20일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 소식통들을 인용,이같이 전하면서 부총리 주용기의 총리직 승진주장과 이붕 유임론이 팽팽히 맞설 것으로 내다봤다. 모닝 포스트지는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지난 15일 북대하에 도착한데 이어 국가주석 양상곤,당총서기 강택민 등 다른 당원로들과 정치국원들이 속속 현지에 도착,당의 정책과 주요 인사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토의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 목포서도 1명 사망

    【광주=남기창기자】 지난해 4월30일 전남 목포시내에서 시위진압중 시위대쪽에서 날아온 돌과 화염병에 어깨를 맞아 치료를 받다 악화돼 서울의 경찰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오던 전남경찰청 기동 9중대 소속 최성기상경(22·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135)이 23일 하오10시40분쯤 숨졌다.
  • 역무원과 시비 10대/경찰관 폭행에 숨져

    지난30일 하오10시45분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서울지하철2호선 아현역 구내 역무실에서 송진규군(19·대입검정고시준비 학원생·서울 마포구 염리동 8의 131)이 서울마포경찰서 아현2동파출소 김충건경장(37)과 방범순찰대 219중대 김철현수경(19)에게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하오 11시10분쯤 숨졌다. 송군은 이날 고모군(19·인천전문대1)등 친구 6명과 함께 술을 마신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돼있는 역구내 계단에 앉아 다른 3명과 함께 담배를 피우다 이 역 환경담당직원 홍모씨(50)와 시비를 벌인끝에 역무실로 끌려가 3명의 역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경장등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이날 이웃 생맥주집에서 술을 마신뒤 전철을 타고 이화여대 근처에 있는 송년회장으로 가던길이었다.
  • 당시 중대장 이대용씨의 회고:상/「내가 겪은 6.25」

    ◎“적 대규모 남침”… 휴일 아침 전령이 보고/도서관 가다 귀대… 한여름 방한화 신고 출전/빗속의 춘천방어전서 적 자주포 5문 노획/첫날 동기생 8명 전사… “무비유환” 한탄하며 퇴각 6·25전쟁이 일어난지 41년 37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동족상잔의 전쟁은 민족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국토는 아직도 두 동강이 나 있고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분단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국군 제7보병연대 1중대장으로 참전했던 이대용 예비역 준장(66·육사 7기·현 한국해음주식회사 사장)이 말하는 당시의 처절했던 전황을 몇차례 나누어 싣는다. 이 장군은 월남전 당시 주월 공사로 근무중 끝까지 대사관을 지키다 월맹에 의해 5년간 억류됐다가 우리 정부의 끈질긴 교섭으로 1980년 석방,귀국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경 야음을 틈타 남침한 인민군의 총격으로 이내흥 중위는 춘천 북방 모진교 부근에서 전사했다. 이날 하룻동안 이 중위를 비롯,일선 중대장인 육사7기생 8명이 전사했고 다음날인 26일엔 10명이,27일엔 5명이 목숨을 잃어 불과 3일 동안에 23명의 장교가 적탄에 맞아 전사했고 약 7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렇게 시작된 육사7기생 전사자수는 한국전쟁 3년1개월 동안 모두 1백27명이나 됐고 행방불명자(적군의 포위 속에서 전사한 것으로 간주됨) 수는 19명,부상자는 약 4백명에 달했다. 이는 동기생 5백64명에 비해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때의 내 나이는 25살이었다. 직책은 육군 제7보병연대 제1중대장이었다. 그날은 휴일이어서 나는 춘천시 죽림동에 있는 하숙집에서 조반을 들고는 춘천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읽을 참이었다. 카키색 군복 상하에,긴 고무장화를 신고 정모에 비닐 커버를 씌운 뒤 거울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하숙집 대문을 나설 때 비가 내리기에 우비를 꺼내 입고 봉의산 기슭에 있는 도서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디선지 「쿠쿠쿵 쿠쿠쿠쿵」하는 포사격소리가 들리더니 「따따따」하는 기관총 사격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일요일에도 가끔 사격훈련을 하는 부대가 있기에 나는 이를 무심히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 보냈다. 그래서 나는 앙드레 모로아가 쓴 책 내용을 머리에 되새기며 가던 길을 재촉해 걸었다. 내가 춘천시내 공회당 앞까지 걸어갔을 때 맞은 편에서 철모에 전투복 차림의 한 군인이 내 쪽을 향하여 뛰어오고 있었다. 제1중대 전령 안기수 하사였다. 그는 거수경례를 하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인민군(북한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나에게 『비상이 걸렸으니 속히 연대본부로 집합하라』는 제1대대장의 명령을 구두로 전달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지방도시에선 전화를 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춘천시민들의 가정에는 전화기가 한대도 없었다. 심지어 38선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즉각 출동명령을 받고 부대 복귀를 해야 할 중대장들의 영외숙소에 조차도 군용전화가 한대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태고시대의 통신이랄 수 있는 연락병에 의한 연락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대장급 이상이 돼야만 그 집에 군용전화기 한대가 가설되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중대장이나 소대장에게 연락을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특히 장병들이 고이 잠자고 있는 새벽,그리고 사병들 대부분이 외박을 나가 있는 휴일의 연락은 더욱 그만큼 더디게 마련이었다. 6월25일. 북한공산군 이청송 소장이 지휘하는 제2보병사단은 새벽 4시 조금전에 38선을 돌파,춘천을 향하여 남침을 감행했다. 이로부터 4시간반이 경과한 뒤에야 1중대장인 나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다. 이날은 특히 일요일이라 많은 사병들이 외박을 나갔으며,연대본부 영내에 남아있는 몇명 안 되는 사병들도 잠이나 실컷 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정신상태는 이완될대로 이완될 수밖에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상연락을 받는 장교들마저도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비상소집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 맥빠지는 일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매번 연대의 비상소집명령에 따라 집합해 출동하려 하면 38선 가까이에 있는 부대로부터 「북한공산군이 다시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후퇴해 버렸다」는 연락이 오는 것이 통례였다. 그럴 때마다 비상소집된 장교들의 맥은 빠지게 마련이었다. 나는 이날도 또 싱겁게 끝나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연대본부로 향했다. 연대본부 영문 앞에 다다랐을 때,소양로 쪽에서 확성기를 단 군용스리쿼터 한대가 달려오면서 『외출이나 외박을 나온 사병들은 비상이 걸렸으니 속히 소속부대로 돌아가라』는 가두방송을 했다. 그때 『이번엔 심상치 않구나』 하는 생각이 내머리를 스쳤다. 급히 연대 정문으로 들어서서는 제1대대장 방으로 달려갔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새벽 4시 조금전에 38선을 기습 돌파한 1개 사단 이상으로 추산되는 북한공산군 대병력이 38선 남쪽에 배치된 우리 제7중대와 제9중대를 격파하고 남진을 계속,현재 춘천 북방에 있는 옥산포에 육박하고 있으며,제9중대장은 이미 전사하고 내평방면에 있는 제7중대는 통신이 끊겼다』는 상황설명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1대대장 김용배 소령은 이어 긴장된 목소리로 『얼마 안 있으면 우리 연대본부에도 북한공산군의 포탄이 쏟아질 것 같다』고설명했다. 나는 하숙방에 전투복 군화 철모 등을 두고 왔지만 이미 나에겐 그런 것들을 가지러 다시 하숙집까지 갔다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중대 보급계 박 중사를 불러 중대보급창고에 가서 재고품 중에서 내 몸에 맞는 전투복과 철모와 군화 등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가 가져온 것 중에 다른 것들은 모두 내몸에 맞았으나 군화는 너무 작아서 신을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그가 다시 가지고 온 것은 겨울에 신는 방한화였다. 다행히 내 발에 맞아 한여름에 엄동설한용 방한화였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신었다. 외박이나 외출을 나갔던 사병들이 속속 중대로 복귀하고 있었다. 황급히 출동준비를 하고 제1중대 인원을 점검하니 상오 9시20분 현재 40여 명이 미귀상태였다. 나는 중대 선임하사관에게 외박으로부터 돌아오는 사병들을 계속 전방으로 내보내라고 지시하고 중대병력을 지휘하여 춘천 북방에 있는 우두산 북단에 구축해 놓은 방어지지로 달렸다. 제1중대를 포함해 제1대대 병력이 우둔산 일대의 방어진지에 배치,완료된 것은 상오 11시경이었다. 정오가 좀 지나자 북한공산군의 선두부대는 자주포를 앞세우고 옥산포에 들어오고 있었다. 봉의산 뒤에 배치된 우리 사단초병은 아주 효과적으로 옥산포의 적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좀 당황한듯 전진을 멈추고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나의 제1중대 병력은 산발적으로 적과 교전했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더니 금방 날이 샌다. 6월26일 아침이 됐다. 내리던 비는 멎었다. 구름 속의 햇볕이 수라장의 싸움터를 비춰 주었다. 상오 8시경,제1대대는 우두산에서 일제히 뛰어내려 서쪽에 있는 옥산포로 달려들었다. 우리 사단포병은 정말로 절묘하고 무섭게 옥산포에 포탄을 퍼부어 우리 보병부대의 공격을 지원했다. 의외의 기습을 받은 옥산포의 북한공산군 자주포 부대와 보병부대는 북쪽으로 후퇴해버렸다. 우리 부대는 적군 자주포 5대를 노획했다. 이중 한대는 후퇴하는 북한공산군 스스로가 파괴한 것이고,다른 한대는 아군이 2.36인치 로켓포탄 위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가까운 거리에서 뒤쪽을 보고 사격,일부를 파괴시켰다. 그리고 나는 소제 권총한정을 노획하여 허리에 찼다. 옥산포는 지형이 평탄했다. 그래서 우세한 병력과 화력,기갑부대까지 있는 북한공산군을 저지하기 위해 오래 머물러 있을 곳은 못되었다. 약 2시간쯤 뒤에 북한공산군 대병력이 자주포 부대와 함께 옥산포로 밀려왔다. 우리 제1대대는 우두산 방어진지로 되돌아가야 했다. 다시 날이 저물자 제1대대 병력은 우두산 방어진지를 나와 소양강을 건너 봉의산 방어진지로 이동했다. 여기서 적을 저지하며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다음날인 6월27일 해질 무렵에,원창고개 방면으로 이동,원창고개에서 적과 교전했다. 6월28일 하오 4시경 결국 원창고개 방어진지를 떠나 홍천 북방에 있는 동산리로 향했다. 서울이 북한공산군 수중에 함락되고 인제 방면에서 홍천으로 진격중인 북한공산군 제7사단이 우리 제7연대의 후방을 차단할 위험이 있다고 본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북한공산군의 1개 사단 병력은 약 1만1천명이며 그들 사단이 갖고 있는 1백22㎜ 곡사포의 최대사거리는 1만2천야드인 데 비해,우리측 사단의 1백5㎜ 곡사포는 최대사거리가 8천야드에 불과했다. 병력은 물론,화력이나 기동력·기갑력에 있어 적군은 아군보다 아주 월등하게 우세했다. 우리는 이를 사전에 모르고 대비를 하지 못했었다. 무비가 유환을 가져온 셈이었다. 어쨌거나 나의 6·25 첫 전투였던 춘천지구 방어전투는,우리들에게 상당한 피를 흘리게 한 뒤 끝나 버렸다. □약력 □1925.11 황해도 김천 생 □1948.11 육군사관학교 제7기 졸업 □1950.6 제7보병연대 제1중대장 □1951.10 제32보병연대 제3대대장 □1953.3 미 육군보병학교 졸업 □1960.12 미 육군참모대학 졸업 □1961.8 제23보병연대장 □1963.9 주월남 한국대사관 무관 □1968.1 육군 준장 진급 □1968.1 주월남 한국대사관 공사 □1975.4 월남 공산정부에 의해 억류 □1980.4 석방 귀국 □현재 한국해음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 상급자들이 집단 구타/의경 병원후송중 숨져

    14일 하오6시40분쯤 서울 마포경찰서 219중대소속 차경남의경(19)이 이 경찰서지하 구내식당에서 위성전의경(19)과 안경모의경(19)으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옮기던중 숨졌다. 한편 마포경찰서는 위의경 등 2명을 폭행치사혐의로 입건,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15일중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 경찰,시위 과잉진압 말썽/전주/시위대 각목 구타…항의 시민도 폭행

    ◎부산선 대학유리창등 파손 【전주】 시위진압에 나선 경찰이 쇠파이프와 각목등으로 시위대를 구타하고 이를 항의하는 시민까지 폭행하자 시위현장 주변에 있던 상인과 주민 6백여명이 파출소에 몰려가 농성을 벌였다. 16일 하오6시쯤 전북대생등 대학생 2백여명이 전주시 진북동 모래내 시장 주변에 모여 「민자당 해체」 「노태우정권 퇴진」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1개 중대병력을 출동시켜 최루탄을 쏘며 강제해산에 나섰으나 이과정에서 쇠파이프와 각목등으로 도망가는 학생들을 구타하고 이를 항의하던 일부 시민도 폭행하자 시장 상인과 시민 6백여명은 하오7시30분쯤 인근 진북동파출소(소장 노병호경위ㆍ53)에 몰려가 연행학생석방 및 과잉진압 사과를 요구하며 하오10시쯤까지 농성을 벌였다. 한편 경찰은 시민들에게 과잉진압에 대해 사과하고 자진해산을 유도했다. 【부산】 15일 하오4시10분쯤 부산시 남구 대연동 부산공업대 대연캠퍼스 앞길에서 이 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부산남부경찰서 도보대소속 179중대 등 3개중대 병력 2백50여명이 교내로 진입,학생들을 구타하고 학교기물을 마구 부수는 등 과잉진압을 해 말썽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이 학교 학생 3백여명이 학교앞에서 이 대학 운영개선을 요구,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자 최루탄을 쏘며 후문을 통해 교내로 진입,도서관과 체육관ㆍ교양관 등으로 달아나는 학생들을 뒤따라가 시위진압용 죽봉 등을 마구 휘둘러 유리창등 학교기물을 부수고 학생 5∼6명을 집단 폭행하는등 20여분간 과잉진압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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