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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일본 문화 중심지서 만난 1700점 한국 문화재…누구나 찾는 ‘공동의 광장’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일본 문화 중심지서 만난 1700점 한국 문화재…누구나 찾는 ‘공동의 광장’

    언젠가 일본 교토에 가게 되면 반드시 방문하겠다고 마음먹은 장소가 있다. 고려미술관(高麗美術館)이다.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갖는 ‘천년의 고도’ 교토에 우리나라 유물만을 모아 전시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그 미술관을 세운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생각으로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에 우리 문화재로 미술관을 세웠는지도 궁금했다. 5월 초 교토 여행길에 시간을 내어 이 미술관을 찾았다. 교토역 앞에서 시영버스 9번을 타고 교토 시내의 북동쪽 가모가와 중학교 앞에서 내리니 바로 ‘고려미술관’ 방향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뜩이나 조용한 교토의 주택가,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속에 새소리가 듣기 좋았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낯익은 우리의 돌담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우락부락하지만 맘결은 한없이 부드러울 것 같은 석인(石人)상이 반겨주듯 철문 양쪽에 지키고 서 있는 곳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고려미술관이다.일본 땅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술관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이나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등에 설치된 한국유물 전시실을 찾았을 때와는 감동의 질이 완전히 달랐다. 고려미술관은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 혹은 기업의 도움 없이 정조문(1918~1989)이라는 재일동포 실업가 한 사람의 집념과 열정으로 설립된 곳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유일한 한국역사유물 전문 미술관인 고려미술관은 소장품 전시뿐 아니라 연구실을 두고 소장품의 조사연구와 강좌, 일본 내 다른 미술관·박물관과 전시교류 등을 하면서 조선고고학 연구, 민속학도서 자료수집 및 연구자료 출간도 하고 있다. 정부 기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해 나가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났다.●‘재일동포 실업가’ 정조문의 집념과 열정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왼쪽의 정원으로 들어가자 연둣빛 이끼가 가득 덮인 오층 석탑과 다양한 석인상 등 석물들이 5월의 햇살 아래서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고베 부농의 밭에 흩어져 방치되던 것을 발견한 정조문이 15년 동안 찾아다니고 설득해 2000만엔을 주고 손에 넣은 것이라고 한다. 수백년의 세월을 품고 일본 땅 위에 서 있는 석물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관계를 생각하면 우리 문화재를 기반으로 하는 이 미술관이 1000여년에 걸쳐 일본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 교토에 자리잡았다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고려미술관을 설립한 정조문은 경북 예천군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정건모)가 구한말 과거 급제 후 정삼품대부의 벼슬까지 한 관리여서 집안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으나 37세에 낙마 사고로 별세한 뒤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더욱이 정조문이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정진국)가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가산은 거의 바닥이 났다. 6년 만인 1924년 상해에서 돌아온 정진국은 일본 경찰의 감시로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내, 큰아들 귀문(당시 8세)과 둘째 조문(당시 6세)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에 터를 잡고 베 짜는 일을 시작했지만 경찰의 감시 속에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학교에 갈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정조문은 소학교 4학년에 겨우 편입해 3년을 공부했다. 그가 유일하게 받은 학교교육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배달하며 9살부터 다녔던 학교생활 3년간이다. ‘아야어여’도 모르는 나는 갑자기 소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고 학우들을 따라가느라 고생했다. 1년이 지나 어려움은 사라졌지만 역사수업만큼 나를 괴롭힌 것은 없었다. 신라정벌, 조선정벌, 조선병합…. 역사에서 조선은 언제나 약한 입장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못된 애들이 ‘조선 정벌이야!’ 하면서 나에게 돌을 던지며 때렸다. 그 무렵부터 내 가슴에는 역사에 대한 의문의 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왜 조선은 늘 약할까?” 1937년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후처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정조문은 할머니, 동생들과 함께 오사카에 가서 부두 노동자가 됐다. 그러다 광복을 맞았다. 일본에 있던 한국인들은 귀국하거나 일본에서 다시 국적을 취득해야 했다. 그러나 몇 해 만에 조국이 분단되면서 남한의 민단과 북한의 조총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조문은 조국은 하나라며 어느 쪽도 취득하지 않고 ‘조선 국적자’로 남았다.●우연히 만난 조선백자의 매력과 상상초월 가치 오사카에서 어느 정도 돈을 모은 그는 교토로 가서 1951년부터 파친코 사업을 시작했다. 선술집, 초밥집, 찻집을 개업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가던 어느 날 교토 시내의 고미술상가를 지나다 ‘야나기’라는 고미술상 쇼윈도에 놓인 백자 항아리를 발견했다. 아무 장식도 없는 하얀 도자기가 지닌 고졸한 아름다움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즐겨 입으시던 하얀 치마저고리를 떠오르게 했다. 빨려들 듯이 가게로 들어간 그는 상상 외로 비싼 가격에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비싼지 물으니 조선 도자기의 가치에 비하면 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공사판에서 ‘조센징’이라고 놀림받고 따돌림받으면서 살아온 그에게는 그야말로 세상이 뒤바뀌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는 우리 문화재의 가치가 그렇게 높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고 한다. 1년간 할부로 도자기를 구입한 뒤 다짐했다. “문화재를 수집해 보자. 일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미술관을 세우고 자신을 잃은 재일동포들에게 ‘조선의 자랑거리’를 보여 주자. ” 그는 재일동포와 자라나는 2세들이 이유 없이 멸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문화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하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진품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전국의 고미술상을 찾아다니며 우리 문화재 수집에 온 힘을 다하는 한편 조선의 역사와 문화 연구 활동을 시작하며 비뚤어진 고대 한·일 관계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형 정귀문과 도쿄에서 활동하는 재일작가 김달수와 함께 한·일 고대사에 관한 의문점들을 하나씩 풀어 보고자 교토대에 재직하고 있던 역사학자 우에다 마사아키를 찾아갔다. 우에다 교수는 저서 ‘귀화인’(歸化人·1965)을 통해 조선반도에서 고대 일본에 온 사람을 귀화했다고 말할 수 없다며 도래인(渡來人)이 맞다는 주장을 폈던 진보적인 학자였다. 우에다 교수는 비뚤어진 한·일 관계사를 바로잡는다는 뜻에 흔쾌히 동참했다. 사쓰마요를 만든 도래인 심수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 시바 료타로도 합류했다. 정조문은 일본인 지식인 및 학자들과 조선인 학자들의 공동 연구로 1969년부터 계간지 ‘일본 속의 조선문화’를 발간했다. 조선 고대사 연구에 일대 선풍을 일으킨 이 잡지는 1981년 50호 발간으로 휴간에 들어갈 때까지 한·일 역사학은 물론 조선 고대 불교학, 민속학, 풍속학, 고대 언어학 등에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잡지는 광고가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광고를 실으면 의미는 퇴색한다. 북측 기업광고가 게재되면 북측의 읽을거리가 되고 남측 기업광고가 실리면 남측의 잡지가 된다. 일본 기업은 당치도 않았다.●통일된 조국 꿈꾸며 미술관 이름 ‘고려’로 이런 정조문의 사고방식은 고려미술관 건립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미술관 이름을 한반도 최초의 통일왕조 이름을 따와 ‘고려’로 한 것은 남도, 북도 아닌 오직 통일된 조국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누구나 찾아와 선조들이 남긴 아름다운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공동의 광장’을 그리며 그는 미술관 건립에 온 힘을 기울였다. 교토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일본 문화의 중심지이며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그런 교토에 미술관을 지어 한국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다. 장소를 물색하다 여의치 않자 교토의 자택을 헐고 지하 1층, 지상 2층의 미술관을 지었다. ●교토 자택 헐고 미술관 지어… 1988년 10월 개관 1988년 10월 25일 고려미술관이 개관했다. 학교라고는 소학교 3년이 전부인 파친코 사업자가 백자 항아리와 운명적인 만남을 한 지 40여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되찾은 우리 문화재 1700점이 관람객을 맞았다. 소장품은 고분 부장품부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도자기, 회화, 나전 바둑판과 목가구 등 생활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개관 후 1개월간 미술관 입구에서 늘 관람객을 맞았던 정조문은 개관 후 얼마 되지 않은 1988년 11월 미술관에서 쓰러져 1989년 2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세였다. 장례 당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2000여명의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국제인이 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조선이나 한국의 풍토 속에서 성숙한 아름다움은 여기 일본에서도 언어, 사상, 이념을 넘어 이야기합니다. 부디 조용한 마음으로 그 흥취를 느껴 주시기 바랍니다.”(고려미술관 초대이사장 정조문, 고려미술관 리플릿 중) 운영은 어렵지만 고려미술관은 건재하다. 장남 정희두, 차남 정혜윤이 중심이 되어 공익재단법인 고려미술관을 유지관리하고 있고 장녀 정령희의 작은딸 이수혜가 미술관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외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가고 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과자 한 봉지 훔친 아이들…폭행에 삭발 뒤 옷 벗긴 주인

    과자 한 봉지 훔친 아이들…폭행에 삭발 뒤 옷 벗긴 주인

    아직 미성년자인 초등학생들에게 죄의식이 아닌 성적 수치심을 가르친 어른들의 체벌 행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인디아타임즈는 22일(이하 현지시간) 인도 뭄바이 근처 울하스나가르에서 두 명의 사내 아이가 발가벗겨져 거리를 활보하는 영상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궜다고 보도했다. 사건은 지난 20일 울하스나가르의 프렘 나가르 지역에서 발생했다. 당시 아이들은 집 근처에서 놀다가 배가 고파 인근 사탕 가게로 들어갔고, 몰래 과자 한봉지를 훔쳐 달아났다. 그러나 가게 주인 메무드 파탄(62)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괘씸한 마음이 들어, 자신의 두 아들 이르판(26)과 살림(22)에게 아이들을 혼내주라고 일렀다. 아빠의 부탁에 이르판과 살림은 도망친 아이들을 붙잡아 가게까지 질질 끌고 왔다. 어린 아이들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잘라버렸고 신발을 벗겨 목에 매달았다. 또한 나체 상태로 아이들이 거리행진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손바닥으로 여러 차례 때리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녹화했다. 충격적이게도 8살, 9살에 불과한 남자 아이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폭행과 모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를 저지하며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피해 소년의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의 상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처음엔 기소하기를 꺼렸던 다른 아이의 부모와 함께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 세 부자를 형법과 아동 성범죄법에 따라 폭행, 명예훼손, 상해혐의로 체포했다”고 설명했다. 현지언론은 가게 주인 메무드와 그의 아들들은 하루 정도 경찰서에 수감 된 뒤, 21일 칼리안의 한 법정에 소환됐다고 전했다. 사진=인디아타임즈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사면초가 속의 리커창/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사면초가 속의 리커창/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다.’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을 잃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리 총리는 2012년 후계 경쟁에서 아깝게 밀렸지만, 총리직을 서열 3위에서 2위로 끌어올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권력을 분점하는 실세 총리로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공청단(共靑團)이라는 탄탄한 인맥과 베이징대 경제학 박사라는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이른바 홍(紅)과 전(專)을 겸비한 그는 1990년대 과감한 개혁을 통해 중국 경제를 구해 낸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에 버금가는 ‘명재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리 총리는 2013년 취임 직후 ?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고 ?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실시하며 ? 경제개혁을 단행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단기적 고통은 감수하더라도 중장기 안정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말로 요약되는 이 정책은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이 그의 이름을 붙여 ‘리코노믹스’라고 포장해 준 덕분에 세계경제의 핵심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천리마처럼 내달릴 것 같던 리 총리는 2014년 들어 반부패운동을 통해 권력 강화에 올인하는 시 주석의 공격적 행보에 밀려 주춤거렸다. 리코노믹스가 재미를 보지 못한 데다 내놓은 정책마다 ‘헛발질한다’는 평가가 잇따르며 그는 총리 소관이던 중앙재경영도소조장 자리마저 시 주석에게 내놓아야 했다. 시 주석이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마저 직접 챙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와중에 2015년 진두지휘한 위안화 절하 조치와 증시 부양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베이징 외교가에는 총리 교체설까지 나돌았다. 그해 8월에는 17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톈진(天津)항 물류창고 폭발 때 사고 수습 총책임자인 리 총리가 사고 발생 5일 만에 뒤늦게 나타나 중국 정부에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비난 여론마저 들끓었다. 이 때문에 ‘리코노믹스’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시진핑의 경제학’을 뜻하는 ‘시코노믹스’가 그 자리를 메웠다. 시 주석은 이 틈을 노려 심복들인 ‘시자쥔’(習家軍)을 권부에 포진시키고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반열의 ‘1인 권력 체제’를 뜻하는 ‘핵심’이란 칭호를 받아 전방위로 리 총리를 압박했다. 시 주석이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이후에도 당총서기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장기 집권의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공산당 7상8하 관례에 따르면 시 주석은 69살이 되는 2022년에는 당직을 맡을 수 없다. 하지만 올가을 ‘애장’ 왕치산(王岐山)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주 전 총리처럼 69살에 총리로 승진시키고 자신도 연임하는 길을 열어 놓을 것이라는 베이징 외교가의 관측이 우세하다. 그나마 1분기 성장률이 6.9%를 기록해 선방했지만 중국 경제는 그다지 밝지 않은 편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의 종잡을 수 없는 미?중 관계, 미 금리 인상에 따른 위안화의 향방, 부동산시장 조정 등 경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자본 해외 유출과 그림자금융 문제 등이 리스크로 떠오르며 경착륙 가능성도 제기되는 형국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리 총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khkim@seoul.co.kr
  • [월드피플+] 뇌성마비 아들 하버드대학 보낸 싱글맘

    [월드피플+] 뇌성마비 아들 하버드대학 보낸 싱글맘

    중증 뇌성마비 아들을 중국 최고 명문대인 베이징 대학에 이어 미국 하버드 대학에까지 보낸 싱글맘의 사연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중국 신화국제는 15일 ‘어머니의 날(母亲节·5월 둘째 주 일요일)’을 맞아 매우 특별한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조우홍옌(邹翃燕)은 29년 전 아들 딩딩(丁丁)을 낳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지난 1988년 의료과실로 자궁 내 태아질식을 일으켰고, 담당 의사는 “정상적인 아이가 나오기 어려우니, 아이를 포기할 것”을 권유했다. 남편 또한 “아이는 평생의 짐이 될 터이니, 아이를 포기하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사와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를 낳았다. 결국 남편은 아내의 곁을 떠났다. 딩딩은 소뇌운동 신경이 손상을 입어 한 살이 되어도 손에 물건을 쥘 수 없었다. 두 살에 몸을 일으켰고, 세 살에 걸었으며, 여섯 살이 되어서야 뛸 수 있었다. 또래 아이보다 발육이 한참 뒤처졌고, 그만큼 엄마에게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당시 우한 유아사범학교에서 예절수업을 가르쳤던 조우의 월급은 100위안(약 1만7000원)이 채 못됐다. 그 돈으로 아들의 치료비와 부모님, 아들 네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빗물이 새는 좁은 방 한 칸에서 네 식구가 함께 생활했다. 의사는 “딩딩이 어느 정도까지 회복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낮에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저녁에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직접 안마사 과정을 훈련받아 아들에게 직접 안마를 해주었다. 점심시간이면 집에 와서 아이와 종이접기 놀이를 하면서 두뇌훈련을 겸했다. 딩딩은 “엄마는 무척 강한 분”이라면서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내가 어릴 적 하루는 큰 눈이 내린 날이었어요. 엄마는 자전거에 나를 태우고 병원을 가는 길이었는데, 그만 진창에 빠지고 말았죠. 자전거를 세우면 내가 넘어지고, 나를 일으켜 세우면 자전거가 넘어지기를 반복했죠. 결국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온몸이 진흙투성이였어요. 의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눈시울을 붉혔어요” 엄마 역시 어렵게 얻은 아들에게 받는 감동이 크다. 그녀는 “아이가 처음 일어선 순간, 아이가 처음 걷던 순간, 아이가 처음 ‘엄마’라고 부르던 순간… 그 모든 순간이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선물이었다”고 기억하며, 늘 하늘에 감사한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엄격한 엄마’이기도 하다. 아들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기 위해 1년의 세월을 보냈다. 주변에서는 사소한 일은 그냥 넘어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아들이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몸에 익혀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1년 만에 딩딩은 올바른 젓가락질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들이 신체결함과 학습의 걸림돌을 극복하게 하려고 연필 쥐는 법, 글씨 쓰는 법, 그림 그리는 법까지 모두 가르쳤다. 한 살부터 매일 책을 읽어준 덕에 딩딩은 두 살에 이미 100개의 한자를 익혔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스스로 학습하는 법을 깨우치게 하려고 한걸음 물러섰다. 언제까지고 아이의 학업을 곁에서 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딩딩은 2011년 베이징대학 환경과학 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베이징대 국제법학원에 입학했다. 지난해 3월에는 하버드대학 법학원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하버드대학에 응시할 엄두를 못 냈어요. 하지만 엄마의 끊임없는 독려에 시험 삼아 해봤는데,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매번 내가 주저앉을 때마다 엄마의 힘찬 두 손이 나를 앞으로 나가도록 뒤에서 밀어주었다”고 말했다. 그의 학비는 하버드 대학에서 3/4을 지원해 주지만, 나머지는 엄마의 몫이다. 적지 않은 부담이다. 올해 29살이 된 그는 “아직도 엄마에게 부담을 준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하루빨리 자립할 힘을 길러 엄마를 편하게 모시고 싶다”라는 간절한 소망을 전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에스컬레이터가 집어삼킨 9살 소년

    에스컬레이터가 집어삼킨 9살 소년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9살 소년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장난 치다가 몸이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빠져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구조됐다. 10일 데일리메일은 터키 이스탄불의 한 건물에서 한 소년이 에스컬레이터 안으로 몸이 빠지는 사고를 겪은 뒤 몇 시간에 걸친 구조작업 끝에 가까스로 구해졌다고 보도했다. 폐쇄회로(CC) TV에 찍힌 영상을 보면 사고는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9살 소년은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신나게 뛰어올라간다. 아이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흔히들 하는 거꾸로 오르내리는 장난이다. 소년은 몇 계단 오르기 전에 몸이 에스컬레이터에 끼는가 싶더니 아예 다리가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쑥 빠져버렸다. 곁을 지나던 한 중년여성이 급하게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고, 주변의 시민들도 가세했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삼켜버린' 아이의 몸을 빼낼 수는 없었다. 이후 소방관들이 출동해 전기톱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잘라내는 등 몇 시간에 걸친 구조작업을 벌인 끝에 소년을 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소년은 발이 약간 짓눌린 정도의 찰과상을 입었을 뿐 큰 부상은 없었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이재은, 이혼설..과거 ‘SBS스페셜’ 통해 이혼 연습 재조명

    이재은, 이혼설..과거 ‘SBS스페셜’ 통해 이혼 연습 재조명

    8일 이재은이 남편과의 이혼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과거 방송이 재조명됐다. 배우 이재은과 그의 남편은 과거 방송된 ‘SBS 스페셜’에서 이혼 연습을 했다. 이재은은 2006년 9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한국무용과 교수와 결혼에 골인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난 두 사람은 결혼직후 잉꼬부부의 면모를 보여 부러움을 산 바 있다. 그러나 결혼 10년차가 된 현재 이재은은 달라진 부부의 모습에 속상함을 토로했고, 남편은 연애 시절을 그리워했다. 이재은은 개그우먼 김미화를 찾아 위기의 결혼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김미화는 이재은의 얘기를 들은 뒤 “이혼이라는 게, 법적으로 가게 되면 서로 안 좋은걸 다 헐뜯고 공방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혼신청서가 한 페이지 이지만 그러면서 100페이지가 되는 것”이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이어 “원래 모든 사람이 쓸쓸하고 외롭다. 나도 남편이 있지만,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건 나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다.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재은을 격려했다. 이재은은 남편에게 “일단 그동안 내가 조금 많이 나태하게 생활했다. 그리고 당신이 나로 인해서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고 마음을 털어놨다. 이에 남편은 “내가 이혼 합의서 너한테 내민 건 미안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펼치게 되고. 나도 많이 들어주지 못한 거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해”라고 사과하며 당시 훈훈하게 마무리 된 바 있다. 한편 8일 한 매체에 따르면 이재은은 최근 남편 이모 씨와 합의 이혼을 했다. 두 사람은 합의 하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고, 서로의 행보를 응원하기로 했다. 이에 이재은의 소속사는 “개인적인 부분이라 말하기 어렵다. 우선 보도를 확인한 뒤 말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하니 “중2병, 양푼으로 머리 맞고 정신 차렸다” 고백

    하니 “중2병, 양푼으로 머리 맞고 정신 차렸다” 고백

    하니가 자신의 일화를 털어놨다. 8일 방송되는 KBS 2TV ‘대국민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 오프닝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아 출연진의 부모님과 관련된 일화가 공개된다. 하니는 “중2병에 걸렸을 때 비빔밥을 드시던 어머니에게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라고 대들었다가 비빔밥이 들어있던 양푼으로 머리를 맞았다. 그때 중2병이 심각해지지 않았던 건 어머니의 교육 덕분”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일라이는 “어머니 모르게 비밀결혼을 했던 게 죄송하다. 어머니는 ‘소속 계약이 끝난 후에도 여자친구를 사랑하면 그때 결혼을 해라’라고 하셨지만 나중에도 변함없이 사랑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몰래 결혼을 진행했다”며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런 가운데 이날 매일 오해받는 19살 남학생이 출연했다. “전 토종 한국인이지만 사람들은 멋대로 외국인이라고 오해해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너 국산이냐~?’라고 하지를 않나, 길을 가다가도 술 취한 아저씨가 ‘어디 외국인 같이 생긴 게 길을 막아! 안 비켜?’라며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네요. 더 이상 이런 취급받지 않게 도와주세요!”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주인공은 “사람들이 외모 때문에 편견을 갖지 말고, 외국인도 비하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성숙한 가치관을 보여줬다. 이에 신동엽 역시 “우리나라에 다문화가정이 많은데, 오해가 아닌 실제 사람들은 얼마나 수모를 견디고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주인공의 말에 시의성 있는 의견을 덧붙였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생길 편견을 걱정하는 주인공에게 신동엽은 “나는 학창시절 졸업식 때마다 부모님이 참석 못하셔서 친구 부모님을 따라가 밥을 얻어먹어야 해서 서러웠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분위기를 잘 맞추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됐다”라며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응원했다. 방송은 8일 월요일 밤 11시 10분.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타깃 향해 물총 쏘는 ‘군인 바다표범’ 영상

    타깃 향해 물총 쏘는 ‘군인 바다표범’ 영상

    돌고래에 이어 바다표범도 전쟁터로? 러시아의 한 아쿠아리움이 올해로 72주년을 맞은 러시아 전승절(Victory Day)을 기념해 군모를 쓰고 물에서 훈련을 받는 바다표범 2마리의 모습을 공개했다. 중부 이르쿠츠크의 바이칼 실(Baikal Seal) 아쿠아리움에서 공개된 바다표범은 올해 16살 된 티토와 9살 된 릴로이며, 이들은 해군의 깃발을 들어 올리거나 폭탄을 피하는 법, 총기를 드는 법 등을 훈련받고 있다. 앞발로 총을 든 채 물 위를 빙글빙글 돌거나 타깃을 향해 물총을 쏘기도 하고, 자신의 ‘상관’에게 경례를 하는 모습 등도 공개됐다. 이번 훈련은 아쿠아리움 측이 전승절을 맞아 특별하게 공개한 장면이며, 티토와 릴로는 이를 위해 꾸준히 연습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쿠아리음의 한 관계자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애국심을 유발하고, 우리 스스로 고향을 지킬 준비를 하기 위해 이번 훈련을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상은 전승절을 맞아 기획됐지만, 러시아와 미국은 실제 바다표범뿐만 아니라 돌고래를 전쟁터에 내보내기 위한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1960년대에 옛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해군은 해저 정찰과 수색, 적군을 포착하는 ‘전투 돌고래 부대’를 운영한 바 있으며,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돌고래 부대는 현재 러시아 소속으로 변경된 상태다. 미군은 돌고래와 바다표범에 카메라를 장착해 적군의 무기를 탐지하거나, 기뢰를 장착한 채 자살특공대처럼 적진 한 가운데로 돌진하도록 훈련시키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 전승절은 옛 소련이 나치 독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1945년 5월 9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박지원 “마크롱은 프랑스의 안철수”

    박지원 “마크롱은 프랑스의 안철수”

    프랑스 중도신당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39살의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 박지원 국민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마크롱 대통령 당선자와 안철수 대선 후보를 비교하며 “프랑스의 안철수가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박 위원장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프랑스의 안철수’ 마크롱이 승리했다. ‘변화와 미래’라는 시대정신이 승리했다”면서 “낡은 이념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던 마크롱, 의석 수 하나 없는 신당으로 오직 국민을 믿고 전진한 마크롱은 말 그대로 ‘프랑스의 안철수’”라고 말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변화와 미래’라는 시대정신이 ‘안풍(안철수바람)과 마풍(마크롱바람)’을 일으켰다”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문재인 패권은 의석 수 하나 없는 마크롱이 어떻게 프랑스를 이끄느냐고 비아냥거리겠지만, 시대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면서 “낡은 이념 대결을 뛰어넘어 새로운 길을 가려는 혁신과 통합, 안철수가 이미 이뤄내고 있다. 미래가 이긴다. 안철수가 이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크롱 당선자는 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이어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여덟 번째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앞서 마크롱 당선자와 그의 라이벌이었던,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48)은 프랑스 현대 정치를 양분해 온 주류 거대정당(공화당·사회당) 소속이 아닌 정계의 ‘이단아’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정치지형의 대변혁을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마지막 도전이 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나를 웃게 했다

    마지막 도전이 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나를 웃게 했다

    다음달 5~21일 올해 1491명을 선발하는 제1차 순경 공채의 마지막 관문인 면접 시험이 치러질 예정이다. 지난달 18일 전국 64개 고사장에서 실시된 필기 시험에는 모두 6만 1091명이 응시원서를 제출해 40.9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모집 단위별 선발 인원을 살펴보면 일반공채 1221명(남 1100명·여 121명), 전의경경채 150명, 101경비단 120명이다. 일반공채 경쟁률은 남성 35.5대1, 여성 117대1로 집계됐다. 서울신문은 다가오는 순경 공채 시험 준비생들을 위해 지난해 31대1의 경쟁률을 뚫고 중앙경찰학교 291기 교육생이 된 합격자 3명으로부터 공부 방법, 생활 패턴 등 합격 전략을 들어 봤다.우리나라 경찰 공무원 11만 6674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지난해 처음 10%대로 진입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여경이 되려면 100대1에 육박하는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남성에 비해 2~3배 정도 더 치열한 경쟁률이다. 지난해 12월 순경 공채로 선발된 김소연(30)씨는 합격하기까지 2년 3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김씨는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합격의 밑거름이 됐다”며 웃었다. 대학에서 법·경찰행정학을 전공한 김씨는 졸업 후 은행권에 취직했다가 도피성 해외 연수 등 방황을 거듭했다. 수험 생활에 본격 돌입한 시기 김씨의 나이는 29살이었다.그는 자신의 합격 비결로 ‘나만의 시간표’를 꼽았다. “늦깎이 도전이다 보니 처음엔 다른 수험생들을 따라 무작정 공부시간을 확보했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공부 효율성은 떨어졌죠. 이후 제가 정신이 가장 맑은 시간대를 파악해 시간표를 다시 짰습니다.” 과목 별로 집중해야 할 포인트를 달리한 것도 김씨의 합격 비결 중 하나다. 그는 “경찰·수사학은 암기 위주인 반면 형법 및 형소법은 세부적인 내용까지 짚고 넘어가야 고득점을 할 수 있다”며 “형법은 필수 판례의 전체 내용을 알고 유추해야 하며, 새로운 판례는 수시로 익혀 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2차 공채 면접 시험에는 상사와의 의견 충돌 시 해결 방안, 스트레스 해소법, 경찰의 다양한 입직 경로에 대한 생각, 경찰의 비효율적 업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경찰이 되기 위해 준비해 온 과정, 외국 경찰과 우리나라 경찰의 차이점 등이 나왔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수험생들을 향해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붙을 수 있을 것”이라며 “쉴 땐 푹 쉬고, 집중할 때는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간부후보(경위) 시험을 준비하다 순경 공채로 전환한 이준기(33)씨는 합격 비결을 묻자 “책, 시간, 과목 배당 점수 등 요소를 고려해 철저한 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5개 수험과목 가운데 형소법·경찰학을 제외한 영어·한국사·형법 위주로 자신의 공부 방법을 설명했다. 이씨는 “영어는 문장 이해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단어 암기가 안 돼 있으면 해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1~2일에 한 번씩 30분간 텝스 단어집을 암기했다”며 “기출 문제는 실제 시험일에 임박한 시점에 풀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한국사 시험의 특징은 다른 공무원시험에 비해 지엽적으로 출제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요약집으로 국사 연표 흐름을 외우되, 국정교과서 지문을 눈에 익혔다”며 “각 시대별 왕, 사건 순서를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법의 경우 각론은 단순히 외우는 방식으로도 문제를 풀 수 있지만, 총론은 내용 전반을 이해하지 못하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게 이씨의 표현이다. 그는 “이론을 숙지하고 판례에 적용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에도 필기 시험에 합격했지만, 면접 준비와 어머니의 병 간호를 병행하다가 최종 면접에서 한 차례 낙방한 후 고된 시기를 보냈다는 이씨는 “당시 인터넷으로 면접 관련 자료만 찾아보고 실제로 다른 사람을 마주해 면접 시험을 보듯 연습을 한 적이 없었다”며 “면접 대비 때는 반드시 상대방에게 받은 질문에 답해 보는 연습을 해 볼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는 면접에서 경찰 시험 지원 동기, 2015년 면접에서 낙방한 이유, 수험 기간, 응시 횟수, 전공을 경찰 업무에 연계시킬 방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등의 질문을 받았다. 이씨는 “중앙경찰학교에 처음 입교해 훈련을 받을 때 기쁜 마음에 숨어서 울기도 했다”며 “온 힘을 다해 맡은 바 본분을 다하고, 위험 앞에 등 돌리지 않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단 8개월 만에 순경 공채 합격 문턱을 넘은 최성현(27)씨는 “한국사와 영어는 공통과목이라 원점수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수험 생활에 돌입 후 2개월 정도는 법 과목 말고 한국사, 영어 위주로 봤다”고 말했다. 지엽적으로 암기해야 하는 내용은 점심·저녁 식사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했다. 대신 주간에는 기본서와 요약집 암기를 반복해 모든 과목의 회독 수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 최씨의 비결이다. 특히 최씨는 매일 오전 기상 후 아침 식사 전까지 1시간 30분 정도와 매 식사 후 30분씩 영어 문제 풀이와 단어 암기에 투자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수준의 독해집부터 국가직, 서울시, 지방직 등 다양한 공무원시험 영어 문제를 풀었다”며 “3월이 돼서야 시작한 형법은 첫 강의를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였지만 이해가 될 때까지 강의를 무한 반복해 들었다”고 했다. 최씨는 “필기 시험이 9월이었는데, 시험 두 달 전부터 점수가 가파르게 올라 기분 좋게 마무리한 과목”이었다며 “형사소송법 역시 매일 할당량을 충실히 공부해도 점수가 나오지 않다가, 문제 풀이양을 엄청나게 늘리면서 합격할 만한 점수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학개론은 외운 것도 금세 잊어버려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휘발성이 강한 과목’이라 불린다”며 “강의를 듣기보다는 스스로 집중해서 공부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전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中 베테랑 사육사, 호랑이에 물려 숨져

    中 베테랑 사육사, 호랑이에 물려 숨져

    동물원 베테랑 사육사가 호랑이에 물려 결국 숨진 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7일 오전 중국 상하이동물원 사육사들은 호랑이 담당사육사인 저우(周, 56)씨가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아 찾아다니다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저우씨는 호랑이 번식장을 청소하러 들어갔다 호랑이에 물려 봉변을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저우씨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그는 30년 가까이 호랑이 사육사로 일한 베테랑이었지만, 갑작스럽게 공격한 호랑이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육사가 사고를 당한 우리 밖은 핏자국이 선명해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동물원측은 9살 된 이 호랑이가 지금까지 사람을 공격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밝혔으며,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개장을 미뤘다. 경찰은 동물원 우리 내 안전시설 등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저우씨를 숨지게 한 호랑이는 멸종위기로 알려진 화남호(華南虎)로, 남중국호랑이, 중국호랑이 등으로 불린다. 화남호는 백두산 호랑이와 벵골호랑이보다 덩치는 작지만 포악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부처님 오신 날, 붓다핸섭…다시 보는 스님들의 랩 ‘쇼미더붓다’

    부처님 오신 날, 붓다핸섭…다시 보는 스님들의 랩 ‘쇼미더붓다’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인 3일 전국 2만여 개 사찰에서 봉축 법요식이 일제히 봉행된다. 자승 스님은 미리 배포한 봉축사에서 “모든 존재가 본래 자유롭고 평등한 불성(佛性)의 소유자이며, 모두가 존귀하고 스스로 온전하여 소중한 존재. 시비분별을 멈추면 본래부터 완전한 자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자성이 청정한 줄 알게 되면 순간순간 대하는 온 중생을 부처로서 마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출가에 대한 신념을 랩으로 노래했던 스님들의 영상도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BBS 불교방송은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출가 콘서트 ‘청춘, 자유를 향한 날개짓’ 축하무대에 오른 스님들의 공연 영상을 소개했다. 이 무대에서 법상스님과 동국대학교 비구(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인 250계를 받고 수행하는 남자승려) 기숙사 ‘백상원’의 스님 10여명은 ‘쇼미더머니’의 이름을 패러디한 ‘쇼미더붓다’(Show me the buddha)라는 곡을 불렀다. “그동안 짧지 않았던 내 출가생활에 많은 사람들이 물었어. 왜 승려 됐냐고. 우리는 할 수 있어 ‘정정’을.” 스님들은 속사포 같은 랩과 비트박스로 불교의 메시지를 전해 큰 화제가 됐다. 특히 비트박스을 한 ‘법상 스님’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출가한 22살의 진짜 스님으로 19살 때 여자친구가 있는 상태로 출가해 지금은 당시의 여자친구와 신도와 스님의 관계로 지내고 있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들 9명, 배 속에 또 아들… 英부부 “딸 없어도 돼”

    아들 9명, 배 속에 또 아들… 英부부 “딸 없어도 돼”

    아들만 9명을 잇따라 출산한 ‘아들 부자’ 부부의 이야기가 영국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더 선 등 현지 언론의 2일자 보도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에 사는 알렉시스 브랫(37)은 15년간 무려 9명의 아들을 출산했다. 알렉시스와 남편 데이비드는 1998년 결혼한 뒤 약 2년에 한 명씩 총 9명의 아이를 낳았고, 놀랍게도 두 사람의 자녀는 모두 아들이다. 올해 15살이 된 첫째 아들 캠벨을 시작으로 각각 13살, 11살, 9살, 7살, 6살, 4살, 3살 등의 아들을 뒀고, 막내는 현재 생후 14개월은 블레이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현재 10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뱃속 아이의 성별은 역시나 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녀는 “사람들에 내게 딸을 갖고 싶지 않냐고 묻지만,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나는 내 아들들과 함께인 것이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물론 아들 9명을 키우는 일이 쉽지는 않다. 알렉시스 가족은 매주 치약 1통, 샴푸 2통, 비스킷 4팩, 파스타 1㎏, 바나나와 사과 20개, 우유 약 48ℓ, 시리얼 8상자 등을 소비한다. 한 주 간식과 생필품을 사는데 드는 평균 비용은 250파운드, 한화로 약 37만원에 달한다. 한 주 동안 아이들을 목욕 시키는 횟수만 80회, 도시락을 싸는 횟수는 58번, 세탁기를 돌리는 횟수는 28회 정도다. 알렉시스는 “이달 말 뱃속 아들을 낳고 나면 더 이상 아이를 출산하지 않을 예정이다. 허리통증이 심해지는 등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라면서 “영국에서 이렇게 많은 아들을 낳은 사람은 아마도 내가 최초일 것”이라고 전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냉장고를 부탁해’ 바다 9살 연하 남편에 솔비 “설레는 스타일”

    ‘냉장고를 부탁해’ 바다 9살 연하 남편에 솔비 “설레는 스타일”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새신부 바다가 남편을 언급했다. 1일 방송된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에는 바다, 솔비가 게스트로 출연해 입담을 뽐냈다. 이날 방송은 신혼 1개월 차 새댁 바다가 결혼 후 처음으로 출연한 예능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바다는 “처음엔 남편과의 나이 차이 때문에 연애조차 망설였었다”고 털어놓으며 남편을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남편은 바다를 ‘애기’라고 부른다고 애칭을 공개하기도 했다. 솔비는 바다 남편에 대해 “손호영 씨를 닮았다. 진짜 계속 웃고 계신다. 가만히 있어도 여자분들이 설레는 그런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바다는 “누가 설렜니?”라며 솔비를 견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바다는 “그 사람은 저한테만 설레는 사람이니까”라고 덧붙였다. 한편 바다는 지난 3월 약 1년간 교제한 9세 연하 연인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사진=JTBC ‘냉장고를 부탁해’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바다 “9살 연하 남편, 날 ‘애기’라고 불러” 달달 신혼 이야기

    바다 “9살 연하 남편, 날 ‘애기’라고 불러” 달달 신혼 이야기

    바다가 신혼이야기를 전했다. 바다는 1일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 9살 연하 남편과의 신혼비화를 공개했다. 김성주는 “대화할 때 미혼과 기혼의 괴리가 있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이에 바다는 “그거 때문에 결혼했다”라며 “아닌 듯하면서 자극이 되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편 바다의 남편은 9살 연하의 훈남이다. 바다는 “애칭이 있나?”라는 질문에 “남편이 나를 ‘애기’라고 부른다”라 고백, 부부금슬을 엿보게 했다. 사진 = JT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14시간 부당 노역”…미국서 산 지갑서 중국어 쪽지 발견

    “14시간 부당 노역”…미국서 산 지갑서 중국어 쪽지 발견

    미국 여성이 새로 산 지갑 안에서 중국어로 된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이 쪽지에는 자신이 14시간 부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국 폭스뉴스 계열의 채널 KPTV의 보도에 따르면 애리조나에 사는 로라 월러스는 최근 월마트에서 구매한 새 지갑의 포장지를 뜯었다가, 안에서 낡은 종이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이 쪽지에는 중국어로 된 글이 적혀 있었고, 그녀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쪽지에 담긴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 쪽지를 쓴 사람은 자신이 중국 남부 광시성의 한 교도소에서 하루 14시간 부당한 부역을 하고 있으며, 식사나 의료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를 발견한 여성은 “이 쪽지를 쓴 수감자를 도우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 함께 이 일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방송사에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월마트 측은 "해당 쪽지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공정한 방식을 통해 만든 제품만을 판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물건을 구매한 사람이 중국어로 된 쪽지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영국의 한 여성은 자신의 아버지가 한 의류브랜드의 양말을 구매했다가, 이 양말 안에서 위와 같은 내용의 쪽지를 발견했다. 당시 쪽지에는 스스로를 39살이라고 밝힌 남성이 안후이성의 한 교도소에서 부당하게 복역하며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쪽지가 포함된 양말을 판매한 의류브랜드 측은 “과거에도 우리 브랜드는 몇몇 가짜 사건에 이용당하곤 했다”며 “편지를 쓴 사람에 대한 역추적이 시작되면 (편지 속) 노역자들에게 악영향이 갈 수도 있다”며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20대 여성과 60대 남자…39살 나이차이 극복한 부부

    20대 여성과 60대 남자…39살 나이차이 극복한 부부

    요즘 10살 이상 나이 차가 나는 커플들이 많음에도 30살 이상은 다소 심한 편이라 생각 될 수 있다. 그러나 39살의 나이차가 나는 한 잉꼬커플은 주변의 무수한 비판을 잠재웠다. 27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영국 요크셔 굴 출신의 여성 에밀리 페더(23)와 중년이 훌쩍 지난 비릴(62)의 특별한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사연에 따르면, 에밀리는 18살 때, 빌리를 처음 만났다. 새로운 문신을 하려고 빌리가 운영하는 타투샵에 들어갔는데, 그만 빌리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이후 타투 디자인에 대해 연락을 주고 받던 에밀리는 빌리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먼저 고백했고, 타투를 하러 자주 방문하면서 서로 가까워졌다. 1년이 지나 연인으로 발전해 약혼과 결혼이야기까지 나누는 진지한 사이가 됐다. 에밀리는 “빌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2번의 이혼으로 생긴 다섯 아이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나를 만난 건 행운이라 말하는 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면서 "빌리의 인성, 파란 눈동자, 배려심과 이해심 등은 나를 매료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다. 그들을 연인관계라고 예상하지 않은 마을 밖 사람들은 커플의 애정 행각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이를 무시해온 에밀리는 “나이차가 많이 나지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나이, 인종, 언어가 더이상 중요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녀의 당찬 의지와 달리 가족들의 입장은 난처했다. 에밀리가 자신의 아빠보다 11살이나 많은 남자를 집으로 데려와서 큰 충격을 받았다. 가족들은 에밀리의 연령대에 맞는 누군가를 만나길 바랐지만 결국 4년 만에 관계를 인정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8월 20일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1월에는 아기 다코타를 낳고 빌리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들의 관계는 안정적이고 애정이 넘치며, 한번도 다툰적이 없다. 한편, 빌리에겐 걱정이 한가지 생겼다. 아들과 아내 옆에 오래 있지 못할까봐, 아이의 어린시절을 놓칠까봐서다. 아이가 어린 나이에 아빠의 장례식을 참석하게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이에 에밀리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면서 "빌리는 좋은 남편이자 아빠라는 사실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편 빌리 역시 “4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매일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그녀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유라 망언 “내 몸 단점도 많다..허리 짧고 팔뚝살 많은 편”

    유라 망언 “내 몸 단점도 많다..허리 짧고 팔뚝살 많은 편”

    다섯 번째 미니앨범으로 1년 8개월 만에 컴백, 약 3주간 ‘아윌비 유어스’로 활동하며 한층 더 성숙해진 걸스데이 유라가 bnt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하이니크, 율이에, 티에드 등으로 구성된 3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화보에서 그는 특유의 매력을 뽐내며 원피스부터 모던한 블라우스 룩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라는 연습생 시절부터 7년 동안 가수로 지낸 삶에 대해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데뷔 전 이름 모를 회사부터 유명한 엔터테인먼트까지 약 60여 곳에 캐스팅이 됐다. 그때 저는 19살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전에 데뷔를 하고 싶었다. 빨리 데뷔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던 기회를 놓쳤다. 현재 소속사에서 한 달 연습 후 걸스데이로 데뷔했고 바쁠 때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자면서 활동 중이다”며 말문을 열었다. 유라는 데뷔 시절 카메라 울렁증을 겪었다. “지금은 카메라가 너무 편하지만 과거에는 선배보다 카메라가 더 무서웠다. 그리고 초창기에는 제가 그룹 내 시크를 담당하는 멤버였기 때문에 제 본연의 모습을 숨겨야 했다. 매우 털털하고 장난기가 많은 편인데 신비로운 이미지를 유지해야 해서 답답한 적도 있었다”고 웃으며 전했다. 각종 프로그램에서 털털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 걸스데이. 신비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말에 유라는 “걸그룹에게 신비주의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더라 하하. 요즘 시대에는 진실된 모습을 더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울산 얼짱으로 유명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그때 당시 미니홈피가 한창 유행했는데 제 홈페이지 하루 방문자 수가 200~300명 정도였다”고 웃으며 답했다. 유라와 명품 각선미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는 “데뷔 초창기에 다이어트 스트레스가 있었다. 회사에서 하루에 한 번씩 몸무게 체크를 했다. 지금은 몸매 관리를 독하게 하지 않는다. 활동 시기에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편. 제 몸은 단점도 많다. 골반 위치가 높은 편이라 다리가 길어 보이지만 반대로 허리가 짧아서 허리 라인이 없어 보인다. 팔뚝에 살도 많은 편이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느덧 데뷔 8년 차, 긴 시간 동안 많은 무대에 서며 걸스데이 팀워크는 더욱 단단해졌다. “멤버들끼리 나이가 달라서 그런지 서로 존중하게 된다. 서로에게 언니이자 동생이기 때문에 오히려 트러블이 없이 잘 지내는 것 같다”고 전했다. 멤버들에게 부러운 점이 있는지 묻자 “혜리는 얼굴이 정말 작다. 저도 얼굴이 큰 편은 아닌데 혜리 옆에 있으면 얼굴이 커 보인다”고 답했다.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고 있는 유라. tvN ‘인생술집’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공개하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내숭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반전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제 주량을 알기 때문에 ‘인생술집’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방송에서 소주 7잔 정도 마셨고 이후 한 병 반 정도 더 마셨다. 주량은 소주 2병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두 번째 출연이다.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개그맨 김기수와 시청자 수가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전했다.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은 MBC ‘라디오스타’ 빼고 다 출연해본 것 같다. 최근에 김구라 선배님과 함께 MBC ‘발칙한 동거 빈방 있음’을 촬영하면서 친해졌다. 선배님이 MC로 있는 프로그램이니까 더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사랑스럽고 솔직한 매력을 가진 유라. 그의 이상형은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다. “과거에는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등 디테일하게 어떤 점에 대한 바램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저를 좋아하는 남자가 최고다”는 말에 진솔함이 느껴졌다. 남다른 섹시 카리스마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걸스데이. 언제까지 섹시한 콘셉트를 가져갈 수 있을지 묻자 유라는 “여자들은 서른 살에도 섹시한 것 같다. 서른 살이 제일 섹시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연륜은 무시 못한다. 앞으로도 열심히 행복하게 활동할 생각이다”며 포부를 전했다. 사진 = 레인보우 미디어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컬투쇼 보이프렌드 박현진 김종섭 “과학자-경찰관 꿈꾸다 9살 때 가수 결심”

    컬투쇼 보이프렌드 박현진 김종섭 “과학자-경찰관 꿈꾸다 9살 때 가수 결심”

    ‘컬투쇼’에 ‘K팝스타6’ 우승 그룹 보이프렌드가 출연했다. 25일 SBS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는 ‘K팝스타6’ 출신 보이그룹 보이프렌드(박현진, 김종섭)와 걸그룹 민아리(전민주, 고아라, 이수민), 퀸즈(크리샤츄, 김소희, 김혜림)가 출연했다. 이날 보이프렌드 김종섭은 “9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며 “4살 때 과학자, 5살 때 경찰관, 6살 때는 의사였다”고 밝혔다. 박현진도 “5살 때는 경찰관하고 소방관이었다. 7살 때는 트로트가수였고, 9살 10살 때 비로소 가수가 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컬투는 “트로트가수도 가수”라며 트로트를 불러볼 것을 권했다. 박현진은 쑥스럽게 “오빠 한번 믿어봐~”를 부른 뒤 민망해 하는 모습을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SBS파워FM ‘컬투쇼’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단독] 이참에 전업주부 할까?… ‘男육·휴 1호’ 퇴직하면 2호는 영원히 못 나와!

    [단독] 이참에 전업주부 할까?… ‘男육·휴 1호’ 퇴직하면 2호는 영원히 못 나와!

    재취업한 아내 대신 휴직… 회사선 “한창 일할 연차에? 미쳤냐”… 하루 종일 집안일·육아에 3㎏ 빠져 김정훈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살이다. 대법원 통계를 보니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 태어난 남자아이의 가장 흔한 이름이 ‘정훈’이었다. 정훈씨는 5년 전인 2012년 5월 결혼했다. 32살이었다. 직원 50여명 규모의 정보기술(IT) 서비스 회사에서 만난 아내 차지영씨는 29살이었다. 누가 ‘대한민국 평균’ 아니랄까 봐 그해 결혼한 남녀 평균 나이(32.1세)와 꼭 같았다. 2013년 8월 딸 서연양이 태어났다.정훈씨는 오전 6시 30분 출근하는 아내에게 사과와 시리얼을 챙겨 주고 서연양 옆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오전 9시 30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집에 돌아온 정훈씨는 엊저녁 남긴 김치찌개를 데워 아침을 때웠다. 왼손에는 지난밤 아내가 권한 책 ‘82년생 김지영’을 펼쳐 들었다. 지난해 10월 나온 책인데 뒤늦게 한국 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정훈씨는 소설 주인공이 낯설지 않았다. 아내와 같은 이름이라서만은 아니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원치 않는 경력단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독박 육아’ 스트레스에 내몰린 김지영은 곧 정훈씨의 모습이기도 했다. 5개월 전이었다. 정훈씨는 회사 인사팀에 육아휴직 신청서를 냈다. 잘 알고 지낸 팀장은 “미쳤냐. 이직하려고 그러느냐. 한창 일할 7년차 ‘허리’가 빠져나가면 대체 인력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말렸다. 사장은 “회사 창립 20년 만에 1호 남자 육아휴직자가 나오게 생겼다”며 혀를 끌끌 찼다. 아내와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지영씨는 서연양을 품은 지 4개월 만에 회사를 관둬야 했다.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못 쓰니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게 사측의 마지막 배려였다. 프로그래머로서 이 바닥에서 인정받아 온 아내의 능력이 아까웠다. 육아와 살림을 도맡던 지영씨는 열심히 원서를 넣은 끝에 서연양의 돌잔치를 한 다음날 재취업에 성공했다. 종전 직장보다 대우가 좋았고 프로젝트 성과에 따라 보너스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육아였다. 양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였고, 부부 모두가 밥 먹듯 야근을 해야 했다. 그나마 좀 늦게까지 아이를 봐 주는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 순위는 100번 밖이었다. 베이비시터를 알아봤지만 한 사람의 월급을 고스란히 인건비로 줘야 할 판이었다. 정훈씨가 결정을 내렸다. “지영아, 내가 서연이 볼게. 너가 일해라.” 각오했지만 독박 육아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정훈씨는 휴직 첫 두 달 동안 3㎏이 빠졌다. 그래도 평일에는 깨어 있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던 딸과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 정서적 유대감이 깊어졌다. 아내는 처음엔 자신이 할 일을 미룬 듯이 미안해하고 어색해하더니 지금은 직장 일에 만족하고 있다. 야근을 마치고 들어온 지영씨 앞에 정훈씨는 시간 맞춰 주문한 치킨과 맥주를 내놓았다. “지영아, 나 이참에 아예 회사 그만두고 전업주부나 할까? 공무원시험 준비하면서 말야.” 그러자 지영씨가 말렸다. “‘남자 육·휴 1호’가 퇴직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2호는 영원히 못 나와. 후배들 생각해서라도 그런 마음은 접어.”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2016 사회지표, 2015 신혼부부 통계, 노동패널연구 등 각종 통계를 근거로 육아기 남성근로자의 평균적인 삶을 재구성한 기사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서술 방식을 차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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