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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빈라덴 있을까… 40분이 너무 길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에 대해 미군 특수부대가 습격 작전을 펼쳤던 당시의 초조했던 심경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작전시간 40분에 대해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40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의 둘째 딸 사샤가 3개월 때 뇌막염에 걸렸을 때 의사가 “사샤는 괜찮다.”는 말을 해줄 때까지 기다렸던 시간 정도가 예외일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고위급 보좌진에도 비밀로” 그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습격 장면을 지켜볼 당시 미군 요원들이 탄 헬기 한 대가 불시착한 것은 파악했었지만 “은신처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보를 갖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요원들이 “제로니모(빈라덴 암호명)가 죽었다.”고 말했을 때에야 비로소 긴장하고 있던 모든 사람이 낙관적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빈라덴이 숨질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걱정하지 않았다.”면서 “정의가 구현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땅에서 대량 살상을 한 가해자가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뇌 검사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빈라덴이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면서 “작전 당일까지 (가능성이) 55대45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만약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 (빈라덴이 아니라) 두바이의 부유한 왕자라도 됐다면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공대 투입 작전에 대해 일부 보좌진이 반대했지만, 우리 요원들의 능력에 확신을 가졌다.”면서 “잡을 수 있다는 잠재적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고 느꼈었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작전에 대한 최종 결심은 작전 사흘 전인 지난달 28일 했으며, 그 다음 날 아침 작전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비밀 유지가 이번 작전의 생명이었다면서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백악관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작전 내용을) 알았으며, 나의 고위급 보좌진 대부분도 몰랐다.”는 비화도 공개했다. 그는 빈라덴에게 이슬람식으로 장례를 치러주고 시신을 바다에 수장한 것과 관련, “사전에 충분한 토의를 거친 결정이었다.”면서 “시신을 존중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이슬람법과 의례 전문가들과도 협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빈라덴이 (미국인)3000명을 죽였을 때보다 우리는 더 조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는 파키스탄 안에 빈라덴을 도와주는 조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최소한 빈라덴이 5년간 그곳에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美의원 “희생자에 현상금 지급 법안 발의” 한편 뉴욕 지역구 출신의 민주당 소속 앤서니 와이너, 제럴드 내들러 연방 하원의원 등은 이날 빈라덴에게 걸렸던 최고 5000만 달러(약 540억원)의 현상금을 9·11테러 당시 구조대, 생존자, 유가족 등을 돕는 기구에 주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미 NBC방송이 보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빈라덴 마지막 육성 메시지는 “미국의 평화는 없을 것”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 특공대의 공격으로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것으로 알려진 음성메시지가 공개됐다. 테이프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안전을 보장받기 전까지는 미국의 평화도 없을 것”이라는 경고가 담겼다.빈라덴은 8일(현지시간) 알카에다의 통신매체인 ‘Shamikh1.net’ 사이트에 올린 음성메시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가자지구의 우리 형제들이 평온하지 못한데 당신(미국인)들만 평화롭게 사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당신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한 우리는 신의 뜻에 따라 계속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빈라덴은 또 2009년 12월 25일 미국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여객기에서 나이지리아인인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가 폭탄테러를 시도한 사건이 미국에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에서 자신이 기획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말을 통해 당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여객기를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려 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전사 우마르 파루크가 탄 비행기를 통해 보내려 했던 메시지는 9·11 영웅들이 당신에게 전한 과거의 메시지를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그가 남긴 최후의 육성 메시지는 1분 남짓한 분량이다. 이슬람 과격세력들은 그동안 빈라덴이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최근 아랍권에서 불붙은 반정부 시위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고 주장해 왔으나 이번에 공개된 테이프에는 해당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다.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빈라덴, 美 곳간 비우는 데 성공

    빈라덴, 美 곳간 비우는 데 성공

    오사마 빈라덴은 생전에 미국을 몰락시킨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미국의 곳간을 텅 비게 만들어 미국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미국이 자신을 잡으려고 쏟아부은 예산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이르면서 막대한 재정적자의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대테러 비용만 6900만 달러 추가 투입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쓴 비용만 3조 달러(약 3207조원)를 넘고 여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따른 비용도 1조~2조 달러, 9·11테러 이후 국토안보를 강화하는 데 1조 달러가량이 더 들어갔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 의회조사국(CRS)도 최근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등 빈라덴이 미국에 직접적으로 안긴 비용은 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미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11회계연도(2010년 10월~2011년 9월) 예산안 가운데 일반 군사활동과 별개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수행하는 해외 군사작전 비용만 해도 1593억 달러나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 대비 비용도 급증했다. 존 뮬러 오하이오 주립대학 교수와 마크 스튜어트 호주 뉴캐슬 대학 교수에 따르면 2002년부터 올해까지 연방정부 차원에서 국토안보에 추가 투입한 직접적인 비용만 6900만 달러나 된다. 그러나 공항 검색 강화 등에 따른 간접 비용까지 모두 포함하면 무려 417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각에선 빈라덴이 애당초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미국을 파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알카에다 전문가인 다비드 가튼스틴로스는 최근 외교안보 전문 포린폴리시(FP)에 기고한 글에서 빈라덴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이 전쟁 비용에 허덕이다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으며 이는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가튼스틴로스는 “빈 라덴은 2004년 10월 아랍 전사들과 아프간 무자헤딘이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파괴했고 이제 알카에다가 미국을 상대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애당초 빈라덴 목표가 美 파산?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빈라덴은 미국 경제를 황폐화시키는 데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안으로는 경기활성화를 명분으로 부자 감세와 규제 완화를 강행하고 밖으로는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하면서 대외부채와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중동 등 외교관계도 악화됐다. 지난 3월 실업률이 8.8%로 2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고용사정이 다소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실업률과 가계부채, 대외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는 굴욕까지 당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빈라덴, 올해 美열차 테러 계획”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9·11테러 10주년인 올해 미국 내에서 대형 열차 테러를 기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와 CNN 등 미국 언론들은 5일(현지시간) 미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빈라덴 은신처에서 압수해 온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와 USB의 자료들에 대한 1차 분석 결과 이 같은 테러 계획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국토안보부와 연방수사국(FBI) 등은 테러 계획들이 구체적으로 진척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내 사법기관과 주정부, 철도 관련 회사들에 경고문을 보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손으로 직접 쓴 노트북에 빈라덴 등 알카에다 지도부가 9·11테러 10주년을 겨냥해 미국에서 열차 테러를 검토한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전했다. 알카에다는 선로를 훼손해 열차를 탈선시켜 객차들을 통째로 계곡이나 다리 밑으로 떨어지게 하는 방법을 고려했다. 테러 감행 시기로는 성탄절과 새해 첫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 당일, 또는 9·11테러 10주년 등을 고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알카에다는 특히 워싱턴과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미 대도시에 대한 공격에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 국토안보부 매트 챈들러 대변인은 “노획 자료들에 대한 1차 분석 결과 미국 철도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다는 정보는 없었지만 관련 기관들에 알카에다의 테러계획 사실들을 통보했다.”고 말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뉴욕타임스에 “그는 명목상의 최고 지도자가 아니었다.”면서 “그는 테러 기획단계에서부터 목표, 대상까지 모두 정하고 알카에다 고위 지도부에 자신의 생각들을 하달하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강조했다. 한편 알카에다는 6일 자신들의 지도자인 빈라덴이 사살된 지 나흘 만에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 미국의 이슬람권 웹사이트 감시단체 SITE에 따르면 알카에다는 이날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 인터넷 포럼에 올린 성명에서 빈라덴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성명은 또 빈라덴의 피가 “헛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죽음은 “미국인들과 미국 정부기관들을 따라다니는 저주가 될 것”이라면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계속 공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성명은 빈라덴이 공격당해 사망한 땅이라는 수치를 씻기 위해 파키스탄인들은 자국 정부에 맞서 싸우라고 촉구했다. 뉴욕타임스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지난해 8월 아보타바드의 주택의 존재를 확인한 뒤 파키스탄 정보당국과 경찰에 알리지 않고 근처에 집을 빌려 수개월 동안 잠복 감시해 왔다고 전했다. CIA 요원들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 등 최첨단 기기로 집 안과 주변, 왕래하는 인물들을 24시간 감시해 왔다. 대화 내용과 통화내용을 도·감청하는 것은 물론 위성을 통해 집 주변에 탈주용 지하터널 유무도 확인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감시활동에도 불구, 작전 개시 직전까지도 빈라덴이 집 안에 사는지 여부는 100% 확신하지 못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그라운드제로의 침묵, 연설보다 강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11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를 방문해 헌화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사살된 지 나흘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붉은색, 흰색, 푸른색 꽃들로 꾸며진 한 다발의 꽃을 바친 뒤 그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묵념했다. 그러나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묵념할 때 진혼곡 같은 음악마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정적이었다. 이슬람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는 침묵을 택했다. 행사에는 찰스 슈머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등 이 지역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재임 시 9·11테러를 겪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초청을 받았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그는 대변인을 통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뉴욕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오바마 대통령을 환영했다. 헌화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9·11테러 때 15명이 숨진 미드타운의 소방서를 방문해 소방관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곳은 10년 전 그 끔찍했던 날에 비범한 희생을 보여준 상징적 장소”라면서 “진심으로 여러분의 희생에 감사를 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빈라덴 사살에 대해 “우리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빈말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파키스탄의 빈라덴 은신처를 습격한 미군 장병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희생 때문이었다.”며 “그들은 목숨을 앗긴 여러분의 형제들 이름으로 그 작전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맨해튼 제1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 비극을 잊은 적이 없으며 뉴욕경찰과 긴급구조대원, 소방대원들이 보여준 용기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빈라덴 사살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하겠다고 말했던 것을 한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헌화 후에는 9·11테러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비슷한 시간 워싱턴DC의 국방부 건물(펜타곤)에서도 간단한 추도의식이 진행됐다. 9·11테러 때 펜타곤을 타격한 항공기 테러로 189명이 숨진 바 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는 헌화를 한 뒤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 경례를 했다. 바이든 부통령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침묵의 헌화였다. 다만 경례를 할 때 진혼곡이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행사장에는 9·11테러 유족은 물론 테러 당시 국방장관으로 재임했던 도널드 럼즈펠드도 참석, 눈길을 끌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테러위협 삼성 표정

    ■ ‘삼성 테러’ 위협 왜 反美, 한국 대표기업 공격대상 인식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과 주한 아랍국가 대사관을 폭파하겠다는 협박 메일이 접수됐다. 경찰과 외교당국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쯤 “삼성그룹 사옥과 주한 터키·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이란·오만·바레인·요르단·시리아·이집트 대사관에 2~6일 폭발물을 설치해 폭파시키겠다.”는 협박 영문 이메일이 삼성 캐나다 현지법인에 날아들었다. 발신자 아이디는 ‘DILARA ZAHEDANI(딜라라 자헤다니)’로 아랍계 이름이었다. 신고를 받은 서울 서초경찰서는 오전 8시 30분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특공대와 타격대 등 50여명을 투입해 탐지작업을 벌였지만,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메일 발신자 이름이 가명일 가능성이 커 폭파 협박 이메일의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장소들을 중심으로 철저히 수색했으나 다행히 별다른 테러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본관의 경우 외국인은 출입카드가 없으면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메일에 적힌 9개 국가 가운데 바레인과 시리아 대사관은 국내에 없는 점 등으로 미뤄 계획된 테러의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캐나다 현지 경찰에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또 외교통상부를 통해 해당 아랍국가 대사관 측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고 주변 순찰을 강화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발신자가 어떤 세력인지 확인해야겠지만, 시기적으로 봤을 때 오사마 빈라덴 사살에 대한 보복성 협박 메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 아랍권 반미 세력에 미국과 함께 공격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삼성이 타깃이 된 것은 그들이 삼성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태연히 이건희 회장 본사 출근, 혹시나 모든 우편물 X 선 검사 이슬람 테러단체로부터 폭파 위협을 받은 삼성은 3일 별다른 동요 없이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경찰은 삼성사옥 가운데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주차장, 지하상가 등 공용 시설을 4시간가량 살폈지만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삼성은 경찰 수색이 끝난 뒤에도 그룹 보안 인력과 에스원 직원들을 동원해 삼성사옥 주변 경비 및 수색에 나서며 감시를 강화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사옥 내부에 있던 택배 보관 장소를 사옥 밖 임시장소로 옮기고, 모든 우편물에 대해서도 엑스레이 검사 등 보안 검사에 나서는 등 공항 수준의 보안 단계를 유지했다. 임직원들에게 공지 메일을 보내 “경찰과 회사 측이 철저하게 수색하며 만전을 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는 메시지도 전달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찰이 와서 이곳저곳 살폈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경찰이 삼성사옥에 출동해 수색을 벌이는 와중에도 태연히 출근해 42층 집무실로 향했다. 삼성 관계자는 “만약 이 회장이 무슨 수상한 낌새라도 있었다면 출근해 근무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회장은 집무실에서 업무 보고를 받고 금융계열사 사장들과 오찬을 나눈 뒤 오후 1시 50분쯤 퇴근했다. 삼성전기의 한 직원도 “회사가 테러 위협 메일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퇴근한 직원들도 많았을 만큼 평소 분위기와 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삼성은 이번 메일이 삼성을 직접 겨냥했다기보다는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에 따른 우발적인 위협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일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보 가운데 부정확한 것들이 많아 실제 테러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라는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메일을 보낸 것 같다.”면서 “테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지만 만약에 대비해 보안 강화에 특별히 더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빈라덴 경호원 위성전화 한통에…

    오사마 빈라덴의 운명을 가른 것은 경호원의 위성전화 한통이었다. 파키스탄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정보당국이 빈라덴의 경호원이자 최측근 연락책인 셰이크 아부 아메드(쿠웨이트 출신)가 지난해 7~8월 사용한 위성전화를 도청하다 빈라덴의 은신처를 알게 됐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 등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빈라덴은 그간 미국의 추적을 피해 전화나 이메일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에 전할 메시지가 있어도 개인 연락책 편에 보낼 정도로 보안에 철저했다. 실제로 전날 미군이 사살 작전을 편 빈라덴 은신처에는 전화기도 없었고 인터넷도 아예 연결이 안 돼 있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했다. 하지만 위성전화가 한대 놓여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이 위성전화가 지난 10년간 신출귀몰하게 미국의 포위망을 피해 다녔던 빈라덴을 죽음으로 몰고 간 셈이다. 미 정보당국은 이미 수년전부터 2001년 9·11 테러 이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로부터 아메드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2004년 이라크에서 잡힌 알카에다 고위급 요원 하산 굴도 아메드에 대한 핵심 정보를 제공했다. 정보당국은 오랫동안 그를 가명인 ‘아부 아메드 알쿠웨이티’로 알고 있었으나 2007년 마침내 그의 진짜 이름을 알아냈다. 이어 지난해 8월 아메드와 그의 동생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 파악하면서 빈라덴 제거 작전에 속도가 붙었다. 미국 정부는 아메드가 동생, 제3의 가족과 함께 사는 이 집이 부유층이 사는 교외에 있는 데다 다른 저택보다 8배는 넓고 담장 높이가 최대 5.5m에 이르는 등 경계 태세가 아주 치밀했다는 데 놀랐다. 이에 따라 밀사가 살고 있는 주택의 가격(100만 달러)이나 다른 가족의 구성원과 규모를 감안했을 때, 빈라덴이 가장 젊은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는 추론에 이르렀다. 결국 이 추론은 100% 맞아떨어졌다. 미국은 지난 2월 중순 이곳에 빈라덴이 은신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3월 중순부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재로 5차례에 걸쳐 국가안보위원회(NSC) 회의를 열고 작전 계획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그리고 세계의 눈이 영국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쏠린 지난달 29일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美 “알카에다 괴멸” 테러戰 2막

    미국 정부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을 계기로 알카에다 조직을 완전히 괴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구심점을 잃어버린 알카에다 조직이 다른 이슬람 과격 테러 조직과 연대하거나 미국인들을 새로운 조직원으로 모집하는 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은 3일 NBC방송에 출연, “알카에다 조직은 지난 10년간 미국 주도로 진행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면서 “빈라덴의 사망을 계기로 나머지 조직도 타격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미군 특수부대가 빈라덴 은신처를 급습, 사살 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컴퓨터 하드드라이버를 비롯해 DVD·문서 등 알카에다 조직과 관련된 핵심 정보를 다수 입수했으며, 중앙정보국(CIA)이 이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브레넌 보좌관은 이를 통해 “파키스탄 내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빈라덴을 지원했는지도 면밀히 조사 중”이라고 A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 정부 당국자들은 현재 알카에다가 9·11테러 수준의 대형 테러를 저지를 역량은 갖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공격력은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빈라덴 은신처에 대한 습격작전의 윤곽이 잡혀 가던 지난 2월 “지속적인 미군의 공격으로 알카에다의 핵심 역량이 크게 약해졌다.”면서 “우리는 알카에다가 미국인을 새로운 조직원으로 모집하고 아라비아반도의 다른 테러 단체와 제휴하려는 움직임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인 파키스탄 서북부의 알카에다 세력권에 대한 미군 무인항공기의 지속적인 공습이 알카에다 전력 약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 무인항공기 공습을 더욱 가속화하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 사살을 승인하기 직전인 지난달 27일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을 CIA 국장,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을 새 국방장관에 지명함으로써 이 같은 기조를 뒷받침했다. 무인항공기를 통한 알카에다 공습은 2007년 5차례에서 지난해 120회로 급증했다. 한편 빈라덴 사망과 관련, 경찰은 주한 각국 대사관을 목표로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사관 주변 순찰을 강화했다. 경찰청 대테러센터는 3일 삼성 사옥과 주한 아랍국가 대사관을 폭파하겠다는 협박 이메일이 접수됨에 따라 수색 작업에 나섰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서울 백민경기자 carlos@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그라운드 제로 울릴 그의 승리 연설은?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9·11테러가 일어난 지 3일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처참하게 잔해만 남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점퍼 차림으로 찾았다. 사전에 알려지지 않은 방문이었다. 그는 휴대용 확성기를 마이크 삼은 간이연설을 통해 복수를 다짐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시 부시가 찾았던 그 곳,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한다. 댄 파이퍼 백악관 공보국장은 트위터를 통해 오바마의 방문 사실을 알렸다. 결과적으로 전임 대통령이 복수를 다짐한 곳에서 후임 대통령이 복수의 종결을 기념하는 그림이 펼쳐지게 됐다. 10년 전 부시는 어수선한 환경에서 격앙돼 있었지만, 오바마는 비교적 차분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라운드 제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짤막한 즉석연설을 한 데 반해 오바마는 정제된 연설을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연설 내용은 지난 1일 밤 오사마 빈라덴 사살 직후 백악관에서 발표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빈라덴 사살은 정의의 구현이라는 것, 미국은 반드시 테러를 심판한다는 것, 테러리스트가 아닌 평범한 무슬림은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오바마의 방문은 연설 내용보다 그 그림이 주는 상징성이 의미를 던질 법하다. 10년 전 부시의 방문은 예고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별로 운집하지 않았지만, 오바마의 방문은 널리 알려진 것이어서 수많은 인파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 그 현장에서 미국 시민들은 한껏 애국주의를 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네이비실 40분 만에 작전완료… “빈라덴 시신 바다에 수장”

    네이비실 40분 만에 작전완료… “빈라덴 시신 바다에 수장”

    2009년 1월 취임하기가 무섭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은밀하게 백악관으로 호출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거나 체포하는 일에 주력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미 정보 당국은 빈라덴에 대한 정보망을 더욱 열심히 돌렸고 마침내 석달 뒤인 그해 4월 심상찮은 단서가 포착된다. 빈라덴을 숨겨 주고 있는 남자의 소재를 통해 빈라덴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곳이 파악된 것이다. 그곳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도시 아보타바드에 있었다. 은신처는 주변의 집들보다 8배나 크고 고급스러운 3층짜리 고급 아파트였다. CIA는 그 건물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차츰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CIA는 지난해 8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빈라덴의 은신처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고 정식으로 보고한다. 하지만 100%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더 확인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CIA는 8개월을 더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확신이 들면서 오바마 안보팀은 긴박하게 움직인다. 확인된 것만 3월 14일과 19일, 4월 12, 19, 28일 등 다섯 차례의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팀 회의가 열렸다. 물론 여기에는 극소수의 핵심 멤버만 참여했고 웬만한 고위 각료들도 정보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마침내 금요일인 지난달 29일 아침 8시 20분 오바마 대통령은 토네이도 피해를 입은 앨라배마로 가기 직전 빈라덴에 대한 공격작전을 승인했다. 헬기에 소규모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을 실어 은신처를 습격하는 것이 작전의 골자였다. CIA는 작전 D데이를 일요일인 1일로 잡았다. 아무래도 상대편이 긴장을 풀기 좋은 때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1일 오후 1시 백악관에 오바마 대통령과 극소수의 참모들이 모여 공격을 위한 최종 점검을 했다. 3시 32분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다. 3시 50분 대통령은 빈라덴이 현재 은신처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파키스탄 시간으로는 2일 새벽 1시 15분)부터 30분 동안 은신처에 대한 공격이 헬리콥터를 통해 이뤄졌다. 이후 네이비실 요원 20~25명이 헬기를 통해 현장에 투입됐고 지상에서 약 40분간 임무를 수행했다. 헬기의 집중 공격으로 은신처는 화염에 휩싸였다. 상황을 목격한 현지 주민에 따르면 미군 헬기들이 빈라덴의 거처를 향해 접근하자 빈라덴 측 병사들은 지붕에서 로켓식 유탄 발사기를 발사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헬기 1대가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했다. 추락 헬기에 탄 네이비실 요원들은 헬기를 부수고 밖으로 나와 작전에 가담했다. 빈라덴은 그 후 양측 간 총격전의 와중에 최후를 맞았다. 사살 당시 상황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CNN은 이번 작전에 정통한 미 의회 소식통과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 빈라덴이 머리에 총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시간으로 저녁 7시 1분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보고를 받는다. 8시 30분 대통령은 빈라덴이 사망한 게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후 백악관 참모들은 의원들과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에게 대통령이 곧 중대한 발표를 할 것임을 알린다. 밤 11시 35분 오바마 대통령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빈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의 작전으로 사살됐다고 확인하면서 “정의는 실현됐다.”고 말했다. 미 특수부대는 교전 직후 빈라덴의 시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신을 헬기로 옮긴 뒤 바다에 수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의 한 관계자도 이날 “빈라덴의 시신은 수장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수장된 곳이 어느 바다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도자를 잃은 알카에다 조직원들이나 추종세력이 어느 바다인지 알게 되면 빈라덴의 주검을 탈취할 수도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국민에 대한 약속 지켰다”… 美전역 휴일밤 ‘승리의 환호’

    “국민에 대한 약속 지켰다”… 美전역 휴일밤 ‘승리의 환호’

    일요일 밤 잠자리에 들려던 미국 국민들은 뜻밖의 엄청난 뉴스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지난 10년간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잡지 못했던 오사마 빈라덴을 미군이 사살했다는 소식이었다. TV에서 접한 뉴스 속보를 시민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으로 실어나르면서 순식간에 미국 전역이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동부 시간으로 밤 11시가 넘은 심야에 워싱턴 시민들은 백악관으로 몰려가 ‘USA’를 연호하고 미국 국가를 목청껏 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기념촬영을 하는 시민들도 보였다. 삽시간에 백악관 뒤편 라 파예트 광장은 시민들로 가득 찼고 시내 곳곳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와 시민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9·11테러 현장인 뉴욕의 ‘그라운드제로’에도 시민들이 몰려 환호했다. 9·11 테러 당시 구출작업에 참여했다는 케네스 스페치는 CNN 인터뷰에서 “오늘 밤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미 국방부를 겨냥해 날아간 항공기에 타고 있다가 사망한 승무원의 여동생인 데브라 벌링게임은 “빈라덴이 미군 병사에 의해 사살됐다는 소식을 듣고 스릴을 느꼈다.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성명을 통해 “미국인들은 빈라덴을 사살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9·11테러를 당하고 알카에다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빈라덴의 사망은 미국의 승리라고 말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이번 임무를 위해 목숨을 내건 미군과 정보기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오늘 미국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정의는 실현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9·11테러로 숨진 희생자 가족은 물론 평화와 자유를 원하는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밤 CNN 등의 일부 기자는 집에서 자다가 불려나온 듯 급히 갖춰 입은 옷에 다소 멍한 표정으로 뉴스를 전하는 모습도 보였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에서는 한 출연자가 손을 번쩍 들면서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했으며, 진행자는 “역사적 순간”이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에서 영어로 방송되는 아랍권의 알자지라 방송도 미국 언론과 큰 차이 없이 빈라덴 사망소식과 시민들이 환호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또 빈라덴 사망 이후 아랍권 정세에 대한 전문가 분석을 인터뷰 형식으로 방송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발표 직전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빈라덴 사망 소식을 통보했고, 조 바이든 부통령도 의회 지도부에 이번 작전을 브리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미국 정부는 빈라덴 사살로 인한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에 대비해 재외공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자국민에게 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국무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빈라덴의 사망 소식을 공식 발표한 직후 성명을 통해 미국인을 겨냥한 폭력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빈라덴 사살” 테러戰 1막 끝났다

    美 “빈라덴 사살” 테러戰 1막 끝났다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키며 지난 10년 동안 지구촌을 아프간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 속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 오사마 빈라덴(54)이 마침내 사살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 밤(워싱턴 현지시간) 미 특수부대가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급습, 교전을 벌인 끝에 그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빈라덴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아보타바드의 고급 맨션에 머물고 있었다. 미 특수부대의 기습은 파키스탄 시간으로 2일 새벽 이뤄졌다. 이날 작전으로 빈라덴의 아들 1명을 포함한 남자 3명과 여자 1명도 사살됐다고 AP통신이 미국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교전 중 미군 피해는 없었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밤 12시쯤 백악관에서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발표한 성명을 통해 빈라덴 사살 소식을 전한 뒤 “빈라덴의 사살은 (지난 10년간 미국이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며 “이제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했다. 주요 서방 각국은 이날 빈라덴 사살 소식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반미 노선 국가들은 빈라덴 사망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등 엇갈린 기류를 보였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반미·반서방 테러를 주도해 온 빈라덴의 죽음으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도 전기를 맞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사망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면서 “빈라덴의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가 미국을 향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언 패네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이날 “빈라덴을 잃은 테러리스트들은 거의 확실히 복수를 시도할 것”이라면서 “조금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빈라덴 사살에 반발하는 반미 테러 세력들이 조만간 세계 각지에서 무장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해외 공관에 경계강화를 지시하는 한편 해외여행에 나서는 자국민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심야 발표에서 “수년간 공들인 작업 끝에 지난해 8월 빈라덴에 대한 단서를 보고받았다.”며 “수개월간의 정보 확인 뒤 지난주 우리가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확보해 빈라덴을 잡아 법정에 세우기 위한 작전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요일인 지난달 29일 공격작전을 승인했다고 AP 등이 전했다. 한편 빈라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전역은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워싱턴 DC의 백악관 앞에는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어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9·11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에서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carlos@seoul.co.kr
  • 10년만의 개가… ‘이름값’한 美 정부 기관들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의 제거로, 그동안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네이비실(Navy SEAL)이 오랜만에 웃을 수 있게 됐다. 빈라덴의 목에 2500만 달러(약 266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던 미 행정부도 체면치레를 하게 됐다. ●CIA ‘전담팀’ 불구 9·11테러 못 막아 CIA는 지난 10년 가까이 신출귀몰한 빈라덴과 숨바꼭질을 벌였다. 때문에 이번 작전에서는 빈라덴의 은신처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서도 최종 확신을 갖기까지에는 신중을 거듭했다. 그 결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빈라덴의 은신처에 대한 정식 보고를 CIA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발표에서 “첫 보고를 받은 뒤 정보를 확인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고 밝혔다. CIA는 마지막 순간에 빛나는 정보력을 발휘했으나 9·11테러 이후 10년 동안 헛발질을 되풀이하며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알카에다가 1996년 필리핀을 방문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CIA는 ‘빈라덴 전담팀’까지 만들었으나 결국 감시에 실패해 2001년 9월 11일 본토를 공격당했다. 또 미국은 빈라덴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대인 토라보라 산악지대의 복잡한 동굴 연결망에 숨어 지내는 것으로 예상해 이곳을 여러 차례 폭격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산악 지역은 지형이 파키스탄 정보기관도 침투할 수 없을 만큼 산세가 험해 서방 정보조직 사이에서는 “진정한 블랙홀”로 통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08년 테러와의 전쟁이 ‘소득 없는 싸움’이라는 비아냥을 듣자 빈라덴 체포를 위해 정찰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나 빈라덴이 안전 문제에 민감해 팩스나 전화기 등 추적 가능한 통신기기를 쓰지 않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CIA도 행방을 쫓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폭로 전문 위키리크스가 2001년 미국의 아프간전 개시 직후 빈라덴이 수도 카불 등 아프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추종자를 만나 공격 지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CIA의 정보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해군특공대 6년전 실패 딛고 명예회복 미국의 엘리트 부대로 불리던 네이비실도 빈라덴 사살에 성공하면서 구겨졌던 자존심을 회복했다. 미 해군 특공대인 네이비실 부대원들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맨션에 있던 빈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해 40분 만에 작전을 완료했다. ABC방송은 이번 작전에 미군 헬기 2대가 동원됐고 이날 오전 1시 30분~2시에 20~25명의 네이비실 대원들이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전 당시 정보 수집과 군사시설 폭파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로 군림해 온 네이비실은 미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더불어 미국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다. 총부대원은 2500여명으로 바다와 육지, 상공의 적 정보 분석 등으로 작전 수행을 지원하고 게릴라전과 대테러전, 특수 정찰 작전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에 투입된 부대원들은 1980년 창설된 테러 진압 특공대인 ‘SEAL팀6’ 소속으로 알려졌다. SEAL팀6는 현재 ‘데브그루’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고도의 체력단련 훈련을 통과한 정예 요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주로 대테러 훈련에만 집중한다. 최근 네이비실의 명성은 쇠락해 왔다. 2005년 네이비실은 아프간 동부 쿠나르 산악지대에서 알카에다 소탕 작전을 펴다 19명의 부대원을 잃었다. 2001년 이후 미군의 단일 작전으로는 최악의 실패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작전의 성공은 네이비실이 명예를 회복할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서린·유대근기자 rin@seoul.co.kr
  • 빈 라덴 ‘현상금 287억원’은 누가 받을까?

    빈 라덴 ‘현상금 287억원’은 누가 받을까?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한 가운데 그에게 걸린 현상금의 행방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첫 테러 이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공식 수배 명단에 오른 빈 라덴은 2001년 11월, 9·11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면서 현상금이 2500만 달러(약 266억원)까지 올라 국제 사회의 적으로 인식돼 왔다. 여기에 미국항공기조종사협회(APA)와 미국항공운수협회(ATT)가 내건 200만 달러(약 21억 원)까지 합치면 빈 라덴 목에 걸린 현상금은 총 2700만 달러(약 287억 원)가 된다. 미국의 공적 1호답게 최고의 몸값으로 알려졌다. FBI는 웹사이트 성명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잡거나 사살하는데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전 세계의 국제 테러 행위를 막은 사람들에게 현상금을 지급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현상금은 빈 라덴을 직접 사살한 미군의 특수부대보다는 정보를 제공한 현지 스파이가 받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파키스탄 정부에서 이 돈을 받아갈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살 소식을 전하던 중 “작전에 도움을 준 파키스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는 게 그 이유다. 그 누구도 현상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정보 당국에서 스파이에게 별도로 ‘정보비’ 명목의 돈을 지급했다면 미군이 직접 사살한 만큼 따로 현상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 2003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생포 때도 현지인 제보자가 있었지만 미군의 회유로 정보를 털어놨다는 이유로 현상금 2500만 달러는 지급되지 않은 바 있다. 당국은 보안상의 이유로 세부 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보상금은 발표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명문가 아들로 태어나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의용군 조직으로 활동했다. 이어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시 사우디 방어에 나섰고 사우디가 미국인들에게 방어를 맡기자 반대하다 연금됐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어 지내며 대미 테러 활동에 나서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맨해튼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 자살테러 사건을 일으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3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총감독 오바마, 재선 ‘파란불’

    총감독 오바마, 재선 ‘파란불’

    오사마 빈라덴 사살에 따른 정치적 수혜는 다른 누구보다 버락 오바마(얼굴)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군 통수권자로서 이번 사살작전을 총지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 밤(현지시간) 자신이 빈라덴 제거 작전 개시 명령을 내렸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작전이 본인의 직접적 결단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7년 동안이나 추적했어도 잡지 못했던 빈라덴을 취임 2년여 만에 제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유능한 군 통수권자의 이미지를 과시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보수세력으로부터 약점으로 공격받아 온 점들, 즉 안보에 무능하다거나, ‘후세인’이라는 중간 이름(middle name)으로 미뤄 무슬림이라거나, 미국 외 출생 의혹이 있는 등 애국심이 박약하다거나 하는 등의 의구심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내용을 보면 본인의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빈라덴 제거에 각별한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빈라덴을 잡기 위해 중앙정보국(CIA) 등과 긴밀한 작전을 가동했다.”는 비화를 공개했으며, 이 같은 노력의 결실로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1년 7개월 만인 지난해 8월에 벌써 빈라덴의 행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 제거라는 뚜렷한 업적으로 내년 재선을 앞두고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남은 변수는 경제다. 아무리 다른 쪽에서 공을 세워도 민생이 팍팍하면 재선에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은 누구보다 오바마 대통령이 잘 인식하고 있다. 그가 리비아 공습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서두르는 것도 전쟁에 쓸 돈을 민생에 투입하려는 계산이다. 반면 경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 엉망으로 하지만 않는다면 재선은 무난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미국 국민 입장에서 10년 만에 ‘나라의 원수’를 잡은 대통령을 선거에서 떨어뜨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특히 9·11테러는 미국이 진주만 피습 이후 당한 가장 자존심 상하는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빈라덴 제거로 분출되는 애국주의는 고스란히 현직 대통령에게 투영될 공산이 크다. 1일 밤 워싱턴 시민들이 백악관으로 몰려가 기쁨을 분출한 것이 단적인 현상이다. 만일 빈라덴 사살에 대한 보복으로 알카에다가 다시 테러를 자행한다면 그것 역시 오바마 대통령 재선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사건이 될 것이다. 미국은 위기에 처할 수록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알카에다 “다음은 핵공격” 위협

    알카에다 “다음은 핵공격” 위협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은 알카에다 등 과격 이슬람 세력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다. 실질적인 타격에서라기보다 상징적·심리적인 타격이다. 그렇다고 과격 이슬람 테러 조직의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9·11테러 이후 빈라덴은 실질적인 활동보다는 무슬림들의 테러 활동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정신적 지주로 상징적인 역할을 해왔던 탓이다. 알카에다 등 이슬람 테러 세력이 일사불란한 통합체라기보다는 지역적 기반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 알카에다의 기치를 걸고 각자 활동해 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아이만 알자와리 후계 승 계 유력 오히려 보다 공격적인 성향을 띠고 테러 행위를 더 많이 도발하지 않을까 하는 보복 공격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등 서방 측은 특히 “빈라덴이 체포되거나 암살될 경우 핵 공격을 시도할 것”이라는 경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25일 “알카에다 고위 사령관이 빈라덴이 잡히거나 암살당하면 유럽에 숨겨 놓은 핵을 폭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신문은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로부터 미국이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심문, 분석한 비밀문서를 입수해 “알카에다가 빈라덴이 체포되거나 암살당하면 서방에 ‘핵폭풍’이 불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빈라덴의 빈자리를 메울 후계자이자 알카에다를 이끌 지도자로는 아이만 알자와리(60)가 유력하다. 이집트 태생의 외과의사 출신인 그는 알카에다의 2인자로서 각종 테러활동을 지시하며 사실상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해 왔다. 그는 빈라덴의 마음을 읽고 말이 통하는 최고 참모이기도 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그를 빈라덴 다음으로 지명수배범 명단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도 그의 위상을 말해 준다. 알자와리는 주기적으로 동영상을 통해 미국에 경고를 보내고 무슬림들의 지하드, 즉 무력항전을 촉구하는 등 빈라덴의 대리인이자 알카에다의 입으로 활약해 왔다. 또 과격 집단들에 “국가 권력의 장악이 지하드의 목표”라고 강조하는 등 이슬람 통일국가 수립을 강조해 왔다. ●美 “알자와리 빈라덴 못지않은 과격파” 미국 당국은 “알자와리의 과격성이 빈라덴 못지않다.”면서 해외 공관에 비상령을 내리고, 여행객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알자와리와 함께 예멘계 미국인 이슬람 성직자 안와르 알올라키(40)도 빈라덴의 후계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꼽힌다. 알올라키는 2009년 텍사스 미군기지 총격사건과 지난해 예멘발 미국행 화물기 폭파 미수 사건의 핵심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사설] 빈라덴 사살 국제테러 종식의 계기 삼자

    미군 특수부대가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의의 승리라고 기뻐하는 등 미국 언론들은 환호하는 분위기다. 빈라덴은 전 세계를 경악시킨 테러를 주도했고, 그날 이후 10년간이나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을 잉태시킨 핵심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 더 이상 테러를 지휘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만으로도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그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나지는 않는다. 빈라덴의 사망을 테러와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무장 테러단체인 알카에다가 저지른 테러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아프간 전쟁을 시작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무자비한 보복테러로 맞서 왔다. 이로 인해 숱한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환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장기전에서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인 미국 등 막강한 서방국에 맞설 만큼 빈 라덴의 지도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는 알카에다의 정신적 지주이며, 그를 잃은 알카에다는 위축될 수도 있다. 반면 2인자 역할을 해 온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후계자로 나서 조직의 결속력을 강화하려고 빈 라덴 사살에 대한 보복 테러를 자행할 수도 있다. 오히려 후자의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보는 게 후회하지 않는 결과를 남긴다. 지금은 빈라덴의 죽음으로 국제테러가 사그라질 것이라고 섣부른 기대를 할 때가 아니다. 전 세계가 제2의 빈라덴, 제3의 빈 라덴 등장 가능성을 더 경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심야 성명을 통해 빈라덴의 사살 소식을 전하면서 알카에다의 도발에 대한 경각심을 주문했다. 알카에다 역시 민간인의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현재의 투쟁방식을 전환하려는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다. 물론 이런 기대만으로는 아프간에 파병돼 있는 국군 오쉬노 부대 장병의 안전을 기약할 수는 없다. 합동참모본부는 탈레반 세력이 춘계 공세에 나선다는 첩보가 있어 부대 경계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한치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일이다.
  • 빈라덴은 누구

    “미국이 우리를 죽이기 때문에 나도 늘 미국인을 죽인다.”고 했던 세계의 공적 오사마 빈라덴. 9·11테러 10년을 4개월 앞둔 1일 미군에 사살되기 전까지 그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지를 오가며 미국의 포위망을 10년간 보기 좋게 따돌렸다. 그런 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2500만 달러(약 267억원)였다. 1998년 8월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1999년 연방수사국(FBI)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2001년 9·11테러를 주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수배범이 됐다. 하지만 꼬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1998년 미 대사관 폭탄 테러로 아프간 캠프에서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지만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다국적군이 아프간전을 개시한 2001년 말 그가 아프간 산악지대 토라보라의 동굴 요새에서 교전 도중 숨졌다는 소식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미 파키스탄으로 넘어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야심차게 펼쳤던 대대적인 체포작전도 실패로 끝났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흔적도 없다.”는 굴욕적인 시인을 해야 했다. 이는 탈레반에 충성하는 파슈툰족이 은신처를 제공했기 때문으로 파키스탄에서 빈라덴은 팝스타나 영화배우급의 숭배를 받아 왔다. 2007년 다시 한번 빈라덴 사망설이 돌았다. 하지만 그는 미국을 놀리기라도 하듯 간간이 자신의 모습과 육성을 담은 테이프 등을 공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3월까지도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9·11테러 주동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사형시킬 경우 미국인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빈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사우디 최대 건설회사 사장이던 아버지 모하메드 빈라덴의 자녀 52명 가운데 17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도로 공사 80%를 독식하는 등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968년 헬리콥터 충돌 사고로 숨진 그의 아버지는 빈라덴에게 2억 5000만 달러(약 2700억원)의 유산을 물려준 것으로 알려졌다.전술 핵무기를 구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수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을 정도로 빈라덴의 재력은 막강했다. 사우디 킹압둘아지즈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던 학생 시절부터 종교에 열중해온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서방에 의한 타락을 막을 방어물로 여기게 됐다고 BBC는 보도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아랍 의용군을 무장시키고 소련군에 대항한 그는 1996년부터 2년간 미국에 대한 성전을 다짐하는 세 차례의 이슬람교 교령을 선포하고, 미국 군인과 민간인을 살해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 국적을 박탈당했고 집안과도 의절하는 등 개인적 희생도 치렀다. 17살의 나이로 시리아인 사촌과 처음 결혼한 그는 이후 최소 5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23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美, 주적 ‘빈라덴’ 제거에 10년간 430조원 쏟아부어

    美, 주적 ‘빈라덴’ 제거에 10년간 430조원 쏟아부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이 1일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환호하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미국인들이 9·11테러의 주범을 쫓아온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깊은 속앓이를 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명분 잃은 싸움’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지속해온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10년 만에 최대 성과를 얻었다. 미국의 대테러전은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대원들이 미 본토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테러범들은 이날 아침 미국 민간항공기 4대를 납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을 잇달아 들이받았다. 세계인의 눈을 의심하게 한 충격적 범행으로 모두 3000명 가까운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를 처음 꺼내들며 이슬람 무장세력 등 테러단체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특히 빈라덴을 숨겨 주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테러 주모자를 넘겨 달라는 요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같은 해 10월 7일 아프간을 공습했다. 전쟁의 최우선 목표물은 당연히 빈라덴이었다. 미 의회 산하 정책연구기관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국은 아프간전 개전 이후 2010년까지 4006억 달러(약 430조원)를 전비로 쏟아부으며 주적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백악관은 특히 아프가니스탄 등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한 해에 1593억 달러를 쓰겠다는 ‘2011년 회계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2003년 3월에는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확산 방지를 명분 삼아 이라크 침공도 감행했다. 그러나 빈라덴을 중심으로 한 테러 세력들은 미국의 노력을 비웃듯 대규모 테러를 기획해 성공했다. 9·11테러 이듬해인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 쿠타 해변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모두 202명이 숨졌다. 또 2004년 3월과 2006년 7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인도 뭄바이에서 통근 열차를 겨냥한 폭탄 테러가 터져 각각 191명과 20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간 공습 초기 주춤하던 탈레반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8년에는 탈레반 무장 반군의 역습이 극에 달해 미군 등 연합군 200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대테러전이 명분을 잃었다.’는 국제적 비판 역시 미국으로서는 부담이었다. 미군이 9·11 이후 테러 용의자를 수용해온 관타나모 수용소는 ‘인권의 무덤’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특히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최근 관타나모 수용소의 기밀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인권 수호자’로서의 미국 이미지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미국이 테러 용의자에게 소변을 자신의 몸에 싸도록 강요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아프간에서 미군 무인 공격기의 폭격 등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간 것도 부담이었다. 또 올해 재스민혁명 이후 아랍 지역의 반정부 시위가 불붙으면서 이 지역 친미 정권이 물러나거나 위기를 맞은 것도 미국에는 큰 고민거리였다. 특히 테러 조직의 거점인 예멘에서 정정 불안이 이어지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대대적인 역공을 위한 기지개를 펴 왔다. 올해부터 아프간 전력을 철군시키겠다고 공언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빈라덴 사살 소식은 미국의 위기상황에서 들려왔고 이 때문에 미 대륙은 더욱 들뜰 수밖에 없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속보]오사마 빈 라덴 사망...미국 정부 공식 확인

    [속보]오사마 빈 라덴 사망...미국 정부 공식 확인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사살됐다. 테러가 발생한지 9년 9개월 만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했다고 1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미군에 의해 살해됐으며 그의 시신을 미군이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직후 언론브리핑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승인한 것이 지난달 29일 아침이며 작전은 30일 이른 아침에 개시됐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작전 개시와 함께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아보타바드의 빈 라덴 은신처를 목표로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격이 이뤄졌으며, 헬기로 미군 특수요원들이 투입돼 지상에서 약 40분간 작전을 펼쳤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사마 빈 라덴과 더불어 성인 남성 3명을 사살했다.”면서 사망자 중 2명은 빈 라덴을 위해 일하던 급사이고 1명은 빈 라덴의 아들로 추정된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남성 전사가 인간방패로 내세운 여성 1명도 숨졌으며 또 다른 여성 2명이 부상했다면서 작전은 채 4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파키스탄 우르두어 방송인 두니야 채널도 소식통들을 인용, 이번 작전을 통해 빈 라덴의 아들 중 1명이 사망했으며 다른 자녀 6명, 부인 2명과 측근 4명이 체보됐다고 보도했다.9·11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등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지난 10년 간 빈 라덴 체포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되레 빈 라덴은 알자지라방송 등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등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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