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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8) 경남 하동군 화개면 삼정·의신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8) 경남 하동군 화개면 삼정·의신마을

    벽소령 대피소의 북쪽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이고, 남쪽 초입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삼정 마을’, 그러니까 벽소령 등산로를 기준으로 남과 북에 각각 ‘삼정’이란 똑같은 이름의 동네가 있는 셈이다. 마천의 삼정은 지난 호에 소개했던 대로 음정, 양정, 하정을 합친 이름이고, 화개의 삼정은 대성리 안에 속한 작은 마을이란 게 다를 뿐. 어디에서 시작하든 산 밑까지 바짝 들어선 이 마을들 곁을 따라 산행에 나서야 하는데, 마천 삼정(음정)이 벽소령까지 6.7㎞인 반면 화개 삼정은 고작 4.1㎞로 그 거리가 대폭 줄어든다. 다만 화개 삼정에는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므로 버스 종점인 의신에서 치자면 이 역시 6.8㎞. 따라서 남이든 북이든, 마천이든 화개든,‘삼정’을 거쳐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은 비슷비슷한 편이다. 굳이 걷는 맛을 따지자면 임도가 잘 뚫린 마천 쪽보다는 오롯한 산길이 남은 화개 쪽 길이 조금 더 나을 듯도 하다. ●의신서 벽소령까지 6.8㎞ ‘화개면지’에 따르면 의신은 대성리의 중심 마을로 화개에서도 사찰이 가장 많았던 불교의 요람지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의신사’ 혹은 의신의 암자에서 도를 닦은 ‘의신조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신 윗마을 삼정은 삼각등, 말안장터 등 ‘세 곳의 길지가 있어 이곳에 묘를 쓰면 세 사람의 정승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삼정 혹은 삼점이 되었다 한다. 삼정에는 벽소령 등산로 말고도 빗점골, 왼골, 사태골, 절골 등의 샛길이 주능선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이기도 하다. 슬하에 9남매를 둔 채 빗점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조성오(77)옹은 “지리산 산신령의 은총” 덕분에 산삼을 무더기로 캐는 횡재를 하고 20년 전쯤 의신마을의 가장 끝, 그리고 마을에선 거의 처음으로 ‘운해산장’이란 민박집을 열게 된다. 정확히는 전쟁이 끝나고 원래 살았던 집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의신에서 삼정을 지나 벽소령을 넘나들던 길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녘에서 서울을 오가던 가장 짧은 길 중 하나였다. 가깝게는 남해의 소금가마를 지고 마천으로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조옹의 장남과 차남은 국립공원 대피소가 생기기 전까지 그 길목에 간이천막을 치고 막걸리며 부침개를 팔았다. 그 대가로 묻혔던 샘물을 찾아내고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환경지킴이 역할을 자처해 왔다. 이들의 부침개 냄새를 맡고 멀리 선비샘에서부터 “지짐 해 놔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등산객들도 있을 정도였다고. 산꾼들의 목을 적셔 주던 막걸리는 부인 최다엽(73)씨의 솜씨다. 지금도 운해산장에선 지리산 맑은 물로 빚은 최씨만의 비법을 맛볼 수 있다. ●1950년대까지 남녘서 서울가던 가장 빠른 길 약초꾼으로 살던 1978년까지만 해도 야생곰을 더러 보아 왔다는 조성오 옹은 선대와 자손까지 4대째 의신에 터를 잡고 있다. 그 이는 이곳을 청학동이라고 믿는다.“화개에서 제일 큰 부락인데도 그 난리(6·25전쟁) 속에 희생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그 이유. 게다가 50여 가구 대다수가 식당과 민박을 겸하지만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했다 하여 원주민들과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기며 물이며 산이며 숲이며, 여기보다 더 좋은 데가 있습니까?”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국립공원에 묶여 제한받는 불만과 불편은 별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 먼당 칠불사가 불에 타고, 빨치산을 피해 몇 번씩 마을에서 쫓겨 가는 등 그보다 더한 고통도 잘 견디어온 까닭이다. #가는 길 경남 하동군 화개면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을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장수나들목,88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 남해고속도로 하동나들목 등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로 진입한다. 이후로는 쌍계사 방면으로 직진하여 길이 끝나는 곳까지 계속 올라간다. 도로 마지막 지점이 의신이고 의신에서 다시 비포장 수준의 소로를 2.7㎞ 올라가면 삼정마을에 닿는다. 글·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7) 경남 함양군 마천면 양정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7) 경남 함양군 마천면 양정마을

    이름 그대로 양지여서 ‘양지정쟁이’로 불리는 양정마을은 위쪽의 음정, 아래쪽 하정과 함께 마천면 삼정리에 속한다. 벽소령대피소가 지척인 데다 영원사∼삼정산(1261m) 산행이 가능한 곳으로 30여가구 대부분이 토종벌꿀, 고사리, 고로쇠, 곶감 등을 수확해 생계를 잇는다.10여년 전 부산에서 들어온 표용기(56)씨는 “때가 묻지 않은 곳”이라고 표현하는데, 인근 마을과 달리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집이 없기 때문이란다. 양정마을 사람들은 벽소령 옆 형제봉(1452m)을 부자(父子)바위라고 부른다. 성불하던 형제가 지리산녀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등을 맞대고 부동자세로 있다가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형제봉의 전설은 외지인들을 통해 들은 낯선 이야기일 뿐이다.“왼쪽에 홀로 선 바위가 아빠, 우측에 줄줄이 늘어선 건 애들.” 정자에 앉아 바람을 쐬던 양용암(71)옹은 눈썹 끝에 걸린 바위를 가리키며 옛날이야기 한 토막을 쭉 늘어놓는다. “예전 이곳에 살던 ‘인걸’이란 나무꾼이 우연히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인걸은 선녀의 옷을 숨겨놓았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 ‘아미’는 인걸과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인걸이 예전 일을 털어놓으며 아내에게 선녀 옷을 입혔더니 아미가 그 옷을 입고 그만 훌쩍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겁니다.” 그렇게 떠난 아미를 기다리다 지친 인걸과 삼 남매가 벽소령의 바위로 굳어진 게 부자바위, 그러니까 주능선 상의 형제봉이다. 인걸과 아미의 이야기는 슬픈 전설에 불과하지만, 반세기 전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에서 생명줄을 내어놓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기록되지도 못한 지리산의 혹독한 역사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그리고 휴전이 되고도 몇 년간은 전쟁보다 더한 날들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빨치산들은 들에 심은 곡식은 말할 것도 없이 돼지, 소, 닭 등 가축을 되는 대로 잡아갔다. 급기야 주민들은 공공기관, 약국, 여관, 가게 등이 밀집된 마천면소재지에 통나무 목책을 3중으로 돌려 방어선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련 서적에 따르면 이 방어선은 막강 남부군에게도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하지만 통나무 봉쇄선은 1952년 9월2일 뚫렸고(마천 9·2사건), 빨치산들은 생포한 민간인특공대와 이장 등 소위 반동분자들을 바위 밑에다 몰아넣고 잔인하게 죽이고 만다. 하정마을에 있던 끔찍한 바위는 도로 공사로 이젠 찾을 수가 없다. 무차별적인 학살은 빨치산뿐만이 아니었다.‘마천 향토지’는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역시 죄 없는 주민들이 국군의 손에 죽어나갔다고 적고 있다. 지리산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산마을의 수많은 주민들이 토벌대에게, 또 빨치산에게 억울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겨우 60년밖에 안 된 이 땅의 역사이다. 양지정쟁이의 비탈진 골목 사이로 큰바람이 분다. 마을의 상처를 보듬는 바람, 어딘가 앉아 슬프게 울고 있을 영혼을 위로하는 바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 바람…. 이제는 기억조차 외면한 아픔 대신 산마을 사람들 모두 이 산이 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받기만 하면 될 터이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양정마을까지 군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지리산자연휴양림∼영원사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 쏟아지는 물폭탄 뼛속까지 ‘덜덜덜’

    쏟아지는 물폭탄 뼛속까지 ‘덜덜덜’

    폭염이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끈적거리는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비책을 찾는다면 폭포가 좋은 대안이 된다. 폭포수에 몸을 맡기면 더위쯤은 어느새 남의 일이 되고 만다. 내 나라 안에 폭포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물을 맞을 수 있는 폭포는 흔하지 않다. 이름난 대형 폭포들은 대부분 폭포수가 수면으로 직접 떨어지거나 깊은 물 웅덩이를 안고 있기 때문에 출입할 수가 없다. 전국의 유명 물맞이 폭포들을 모았다. 혹서와 짜증, 불쾌지수 불가침 지역들이다. ●물맞이 폭포 1번지 수락폭포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던 예전엔 어떻게 무더위를 이겨냈을까. 선조들은 절기에 맞춰 폭포에서 물맞이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옷날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에 목욕을 하면 무병하다 하여 ‘단오물맞이’를 했고, 칠월칠석에도 ‘칠석물맞이’라 해서 산간계곡의 폭포를 찾아 목욕을 하는 물맞이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자락의 수락폭포는 ‘물맞이 폭포 1번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낙수 지점의 공간이 넉넉해 어른 10명 정도가 동시에 물을 맞을 수 있는 것이 자랑거리. 폭포와 이어지는 계곡 또한 크고 넓어서 많은 관광객을 품을 수 있다. 주차장에서 계곡길을 따라 100m 정도 올라가자 우렁찬 파열음이 들린다. 물 떨어지는 소리다. 옆으로 입술이 파래진 채 아래턱을 덜덜 떨며 지나는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나같이 팔로 몸을 꼭 감싸안은 모습이다. 물맞이가 더위를 피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구례군청 박미연(35) 문화관광해설사는 “의학적 근거는 없지만 낙수의 안마 효과를 보기 위해 수락폭포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신경통이나 관절염, 특히 산후통이 있는 여성들이 물맞이를 즐긴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온 이상훈(43)씨도 “처음엔 물줄기가 따가웠지만,5분 정도 지나자 통증이 사라지고 스트레스도 씻겨나가는 듯했다.”며 말을 보탰다. 많은 사람들이 쉼없이 폭포 아래를 오가며 2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로 ‘자연 마사지’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폭포 밑이 사람으로 넘쳐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래 머물 수 없기 때문에 자리가 쉽게 나는 편이다. 찬물을 뒤집어쓴 다음, 폭포 아래 발을 담근 채 시원한 수박 한쪽을 먹는다. 무더위가 끼어들 틈이 없는 풍경이다. 수락폭포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진다. 폭포 원줄기가 떨어지는 곳은 남녀가 함께 물을 맞는 ‘혼탕’이다.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 워낙 물살이 세 모자와 옷을 갖춰 입어도 2분 이상 버티기 어렵다. 원줄기 왼쪽은 별도 물줄기로 만든 ‘여탕’이다. 물에 젖은 몸의 실루엣을 보이기 부끄러워하는 여인들이 주로 찾는다. 약 30m 윗쪽은 남자들을 위한 공간. 여성들의 시선을 피해 좀 더 ‘과감한’ 모습으로 물맞이를 즐긴다. 폭포 아래쪽으로 갈수록 계곡수가 완만하게 흐르며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맞춤한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박 해설사에 따르면 차로 15∼20분가량 떨어진 지리산 온천랜드와 수락폭포를 번갈아 이용하며 냉·온탕을 오가는 관광객들도 많다고 한다. 폭포에서 물맞이를 하려면 머리에 뒤집어쓸 수건이나 모자, 두툼한 비닐봉투를 반드시 가져가는 게 좋다. 주의할 점 한 가지. 폭포수를 맞을 때 윗도리는 바지 바깥으로 빼놓는 게 좋겠다. 세찬 물살에 속옷이 드러나는 낭패를 피하려면 말이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55. ▶가는 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함양 분기점→88고속도로 광주방면→남원 나들목→19번국도 구례방면→밤재터널→산동→수락폭포 ▶맛집:산동면 탑정리 은행나무집(781-6006)은 염소고기 수육(3만 3000∼5만 5000원)을 잘하기로 소문난 집 ▶주변 볼거리:산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사성암과 조선시대 양반 가옥인 운조루, 지리산 화엄사 등이 대표 볼거리. 어린이와 함께라면 농업기술센터를 찾아도 좋겠다. 장수풍뎅이 애벌레 분양, 봉숭아 꽃물들이기(23일까지) 등의 행사를 벌이고 있다.780-2551. /ci0000 ●청도 8경 낙대폭포 청도의 진산, 남산 중턱에 있는 높이 30여m의 폭포다. 기암괴석과 울울창창한 숲이 어우러진 가운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깊은 계곡에서 밀려오는 바람이 한기를 느끼게 할 정도. 청도군청 문화관광과 (054)370-2372. ▶가는 길:경부고속도로→신대구∼부산간고속도로→청도 나들목→우회전→청도군청→남산 등산로→낙대폭포 ▶맛집:청도는 추어탕이 유명한 곳. 청도추어탕(371-5510), 역전추어탕(371-2011) 등이 잘한다. ▶주변 볼거리:▲화양읍 송금리 와인터널은 내부온도가 항상 13∼15℃내외를 유지해 여름철 피서지로 제격인 곳. 현재 감와인 숙성저장고와 와인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입장은 무료. 간단한 와인 시음도 할 수 있다.▲운문면 운문사는 ‘청도의 눈’으로 불리는 명찰. 대웅보전 등 7점의 문화재와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소나무 등이 있다.▲화양읍 유등리 유등연지는 8월 중순까지 연꽃이 절정을 이룬다./ci0000 ●남녀의 애절한 사랑 깃든 만연폭포 예로부터 한여름이면 신경통 환자들이 제집 드나들듯 했다는 유명한 물맞이 폭포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만석이와 연순이가 폭포 아래로 함께 떨어졌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높이는 10여m. 수량이 많아 소리만 들어도 더위가 가실 만큼 물소리가 우렁차다. 화순군청 문화관광과 (061)370-1227. ▶가는 길:호남고속도로→동광주 나들목→지원 나들목→광주광역시→너릿재터널→화순읍→아파트단지 사거리→만연폭포 방향 좌회전→큰재→수만리→만연폭포 ▶맛집:달맞이 흑두부는 검정콩으로 빚은 흑두부에 돼지고기를 얹은 보쌈이 맛있는 집.372-8465. 영벽정 식당은 메기매운탕으로 소문났다.372-1210. ▶주변 볼거리:▲중국 양쯔강 적벽에 비유되는 ‘화순적벽’은 동복호로 흘러드는 창랑천을 따라 늘어선 노루목적벽, 물염적벽 등을 합쳐 부르는 말.▲운주사는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유명한 절집이다./ci0000 ●바다와 마주한 제주 소정방폭포 서귀포시 소정방폭포는 돈내코계곡의 원앙폭포와 더불어 제주도의 대표적인 물맞이폭포로 꼽힌다. 물맞이와 해수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 높이는 7m쯤 된다. 특히 물마사지가 신경통에 곧잘 듣는다는 입소문을 탄 이후 여름철만 되면 ‘아줌마 부대’가 대거 찾는다. ▶가는 길:정방폭포 주차장→파라다이스 호텔 옆 오솔길→소정방폭포 ▶맛집:보목리 보목항은 제주도민들이 즐겨찾는 자리돔 생산지. 자리돔 물회 등을 파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주변 볼거리:▲쇠소깍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깊은 소를 이루고 있는 곳.▲천지연폭포와 인근 삼매봉 등은 야경과 함께 산책을 즐기기 좋다./ci0000 ●찬바람 나오는 얼음골도 있어요 바위틈에서 차가운 바람이 품어져 나와 더위를 식혀주는 ‘천연 에어컨’ 풍혈도 무더위를 피하기 딱 좋은 곳. 경남 밀양시 산내면 천황산 자락의 얼음골이 대표적이다. 한여름에도 찬바람 때문에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 얼음이 얼기도 한다. 이 밖에 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의 빙혈, 충북 제천시 수산면 수레골 동굴, 경북 청송 얼음골 등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얼음굴이다. 전북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풍혈냉천과 강원 정선군 북평면 북평5리 한골, 경기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풍혈 등은 여름 내내 찬바람이 불어나오는 곳이다. 글 사진 구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6) 전남 구례군 토지면 안한수내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6) 전남 구례군 토지면 안한수내마을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 19번 국도변에 자리한 ‘송정리’는 4개의 작은 마을로 나뉘는데, 각각 한수내(川) 안쪽에 위치했다 해서 안한수내(내한),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한수내, 새로 생긴 동네이므로 신촌, 사적 제106호로 지정된 ‘석주관 칠의사묘’ 옆 원송마을이 되겠다. 원래는 4개 마을을 합쳐 내한이라 부르던 것을 한수내 근처에 쉬어가기 좋은 큰 나무 정자가 있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리로 개칭했다. ●일제강점기때 마을 존재조차 몰라 1590년쯤 금녕 김씨가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1800년께 창녕 성씨가 입주해 크게 번성했지만, 여순사건 때 마을 전체가 소개되면서 가구 수가 줄었다. 안한수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된 건 50년 전쯤으로,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도 없고 딱히 마을을 떠난 사람도 없어 22호 40명 남짓한 주민이 한 가족처럼 거주 중이다. 당시 뿔뿔이 흩어졌던 집들 중 일부가 신촌에 정착했는데 그런 연유로 ‘새로 생긴 마을’, 즉 ‘신촌’이 된 것이라고. “큰길에서 산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터라 일제시대 전까지만 해도 내한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가 많아 의병장 고광순이 은거하며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담양 창평 출신의 고광순은 임진왜란 때 활동했던 고경명의 후손으로 산능선 너머 연곡사에서 순절했지요.” 여기저기서 마을 설명이 줄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고영만(70)씨는 말이 없다. 그이는 고광순의 손자이다. 안한수내는 한학자들에게도 좋은 피난처였던 터라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한자에 능하다고 한다. 마을 초입 정자의 현판과 상량문도 이장이 직접 쓴 것이란다. 예전엔 개울가 주위로 다랑이 논이 많았지만 소득을 올릴 수 없어 20년 전부터 과실수 재배가 부쩍 늘었다. 두릅, 고로쇠, 고사리, 젠피(초피)도 수확한다. 요즘 같은 계절엔 피서를 즐기려는 외지인들이 적잖이 몰려드는데, 부녀회에서 두 명씩 짝을 지어 매일매일 쓰레기 수거와 오물 처리를 한다. 그렇다고 펜션이나 최신식 민박집이 있는 건 아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평상과 유산각 대여료를 받는 게 전부다. 모기가 거의 없을 뿐더러 여름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선 잠을 못잘 만큼 시원하다. ●봉화산 봉화축대 아직도 흔적 남아 간혹 등산객들도 보이는데 봉애산을 거쳐 왕시루봉(1212m)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부산에서 봉화를 올리면 이곳을 거쳐 서울까지 소식이 닿았다 해서 마을 주민들은 봉화산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축대 흔적이 남은 봉애산에는 불을 피웠던 옛 기억 대신 산불을 감시하는 무인 감시탑이 들어서 있다. 왕시루봉은 2017년까지 출입통제로 묶여 있어 공개적인 산행은 할 수 없다. 마을을 관통하는 한수내는 이 왕시루봉 기슭에서 발원한 물줄기다. “고생한 건 이루 말할 수도 없지. 나무를 해다 팔아 식량을 구입했어. 새벽밥이라도 먹으면 다행이었지. 소나무 껍질을 말려서 돌로 빻아 먹었는데 먹기 싫어도 먹을 수밖에 없었어. 산죽 열매를 먹으려고 화개 연동골까지 가곤 했는데 열매를 갈아 채에 내려 죽을 쒔어. 그 열매조차 매년 열리는 게 아니었는데 일설엔 산죽 열매가 맺히면 흉년이 든다는 말도 있고, 봉황이 먹는 음식이란 전설도 있지. 그야말로 안한수내 사람들 모두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송기홍(77)옹이 씁쓸히 술잔을 들었다. 마을 자랑은 딱히 할 게 없단다. 전기, 전화, 차가 다 들어오니 불편할 것도 없다.5년 전 2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하루 세 번씩 군내버스도 다닌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가는 길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도 하동을 거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송정리는 구례읍과 하동군 화개면 중간쯤에 위치한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5)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5)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

    지난 호에 구인월마을을 소개하면서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 전투를 기념해 세운 황산대첩비가 있는 곳이 인월과 이웃한 운봉읍 비전마을이다. 지명만 놓고 보면 언뜻 외래어처럼 들리지만 ‘비(碑)가 전해져 내려온 마을’ 혹은 ‘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해서 그러한 이름이 되었다고. 지척에 1000m 이상의 지리산 고봉들을 두고 있는 터라 황산(697m)은 그야말로 동네 뒷산 격이지만, 고려 우왕 6년(1380년) 이성계와 휘하 장수들이 수많은 왜구를 물리친 역사적인 곳이자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도운 마을이기도 하다. “당시 왜장은 아지발도였는데 두꺼운 갑옷을 입어 섣불리 죽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생각 끝에 아지발도의 투구에 화살을 쏘았고 이에 놀란 아지발도가 ‘악!’하고 입을 벌린 사이 이성계가 그 목구멍에 화살을 쏴 죽였지요. 그때 아지발도의 피가 흘러 붉게 물이든 피바위가 지금도 저 아래 남아있습니다.” 비전에서 태어나 자란 장병옥(64세) 씨는 어려서부터 이성계와 아지발도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7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하고 옮겨지는 과정에서 살이 붙고 과장되었을 이 야사는 왜구에게 욕을 당하자 젖가슴을 잘라냈다는 여원재의 아낙네 이야기, 아지발도를 교란한 노파 이야기 등과 더불어 마치 ‘전설의 고향’의 한 대목처럼 줄줄 이어진다. ●사적 104호로 지정된 황산대첩비 지리산에는 이 밖에도 이성계와 관련된 이야기 몇 개가 더 전해진다. 조선 개국을 앞둔 이성계가 전국 명산에 기도를 올려 창업의 뜻을 물었는데 유독 지리산만이 반기를 들어 ‘불복산’이라 이름붙였고, 천왕봉 아래 중산리 칼바위는 태조가 왕위에 오른 후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지리산 중턱 큰 바위 밑에 은거 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장수에게 그의 목을 베어오라고 했다는 식이다. 사적 104호로 지정된 황산대첩비는 조선 선조 10년(1577년)에 세워졌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에 의해 파괴되었고, 지금의 비석은 1957년 새로 세운 것이다. ●판소리의 중시조인 송홍록이 태어난 곳 비전마을의 역사는 이게 다가 아니다. 비전마을은 전라도 남원, 구례, 순창 등 지리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동편제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판소리의 중시조라 불리며 가왕(歌王)의 칭호를 받은 송흥록(1780년)이 태어난 곳이다. 송흥록은 철종 10년(1859년) 정3품 통정대부 벼슬에 제수된 명창으로 계면조와 진양조의 완성, 메나리조 도입 등 모든 가사를 집대성해 판소리를 민족음악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송흥록이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동편제는 그의 동생 송광록, 손자 송만갑이 대를 이어 완성한다. 운봉읍은 한국국악협회 초대 이사장을 지낸 국창 박초월의 고향이기도하다. 그가 살았던 집이 아직도 비전마을에 남아있다. 지난 2000년 마을 중심부에 송흥록 생가와 박초월 고택이 복원되었다. 하지만 정작 근래의 마을 주민들은 판소리를 즐기지 않는단다. 복원된 생가에선 연신 ‘흥보가’ 한 대목이 흘러나오지만 농사일이 기계화되면서 노동요마저 부를 일이 없어졌다는 것. 그저 시원한 노거수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 한 솥 가득 쪄온 감자를 나누어 먹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져온 막걸리에 맥주를 들이켜며 더위를 식힐 뿐이다. 다만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도 숱한 역사와 전설, 득음을 위해 깊은 산을 헤매었을 명창들의 열정을 묵묵히 지켜본 황산만이 시원한 산바람을 후후 불어대느라 쉴 틈이 없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가는 길 서울 용산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에 남원까지 가는 교통편이 있다. 남원 또는 경남 함양에서 운봉이나 인월을 거쳐 비전마을로 가면 된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 또는 호남고속도로 전주IC로 나오면 되는데, 전주IC로 나왔다면 국도 17호선을 타고 장수방면으로 이동 후 요천 검문소에서 우회전해 인월 방향으로 직진한다. 비전마을은 운봉읍 소재지로부터 함양방면 약 4.5㎞ 지점에 있으며 마을 옆으로 국도 24호선이 지난다. 도로변에 ‘황산대첩비’ 안내판이 있고 멀리 좌측 산기슭으로 시골마을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흰색 건물이 보인다. 황산 기슭의 이 건물은 ‘국악의 성지’로 판소리 전시관, 민속국악실 등이 있어 한번쯤 들러보는 것이 좋다. 황산대첩비, 송흥록 생가, 국악의 성지 모두 입장료와 주차료가 없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4) 남원시 인월면 구인월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4) 남원시 인월면 구인월마을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던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 토벌을 위해 급파된 삼도순찰사 이성계와 남부 내륙을 휩쓸던 왜장 아지발도 부대는 그해 가을 남원 황산(697m)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그러던 중 날이 저물어 더 이상의 전투가 어려워지자 이성계는 급기야 하늘의 달을 끌어와 끝까지 싸워 이기는데, 이로 인해 ‘달을 당겨온’ 곳, 즉 ‘인월(引月)’이란 지명이 생기게 된다. ●전라도·경상도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 인월이 신·구로 나뉜 것은 약 반세기 전쯤. 상권이 집중된 지금의 인월이 커지면서 ‘구인월’로 물러났지만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의 중간에 위치해 예전엔 두 지역을 오가던 사람들이 쉬어가던 주막과 말터(역)가 있던 곳이었다.88고속도로 지리산IC와 연결된 인월은 예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전국의 보부상이 다 모여든 지역이기도 하다. 인근 운봉·아영·산내뿐 아니라 경남 함양(마천)과 산청 등 지리산에서 생산된 각종 특산물이 거래되던 곳으로, 번창기에는 그 이름이 전국에 두루 퍼질 정도였다. 요즘도 3일과 8일 5일장이 서는데 시장 상인 절반은 경남 함양 사람들이다. 지리산 남쪽의 화개장터처럼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화합의 장이지만 ‘없을 건 없는´ 화개장터와는 달리 소전(우시장)을 포함, “안 나오는 게 없는” 장이었다는 게 구인월 주민 허이봉(62)씨의 설명이다. 물론 그것도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로 근래엔 고사리와 고추를 포함한 채소가 대부분이란다. 산꾼들에게 구인월은 태극종주의 초입 마을이다. 이곳에서 3.2㎞를 오르는 덕두봉(1150m)은 바래봉으로 이어져 서북릉 끝까지, 이후 노고단에서 주능선, 천왕봉에서 다시 동부능선을 따라 웅석봉으로, 웅석봉에선 달뜨기능선을 훑듯 덕산으로 무려 90여㎞ 이어지기 때문. 흥부골자연휴양림 등 덕두봉을 오르는 다른 길이 있긴 하지만 이 마을이야말로 지리산 태극능선의 탯자리 같은 땅이다. 마을 입구에 선 날망(언덕)은 빨치산을 토벌하던 고지였다. 지금도 오래된 집들엔 총알 박힌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 운전을 하다 10여년 전 고향으로 내려온 허씨는 그때 받던 월급의 절반만 주는 곳이 있어도 당장 상경해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만큼 농사일이 쉽지 않다. 그야말로 말도 할 수 없이 죽을 맛이다. ●비료·농약·사료값 폭등에 농사짓기 어려워 작년보다 감자 시세가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비료값, 농약값, 사료값이 폭등해 노력의 대가도 없이 적자만 보고 있다. 마을에 저온창고가 없으니 농작물을 장기 보관할 수 없고, 직거래가 성사되는 것도 아니어서 대부분의 작물은 중간 상인들이 소위 밭떼기로 다 가져간다. 올라만 갔지 내려올 줄 모르는 물가 때문에 농사를 지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없다. 이맘때면 자매결연으로 맺어진 서울의 모 대학 학생들이 내려와 일손을 돕곤 하는데 그마저도 2년 전부터 끊겼다. “‘장구 칠 때 옆에서 고개만 까딱대도 수월하다.’고, 그 학생들 도움이 적잖이 컸는데 요즘은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인지 내려오질 않네요. 섭섭하지만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닙니다. 대학에 다니는 우리 애도 대통령 얼굴 보기보다 더 힘드니까요.” 최근엔 상수도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수질검사에서 늘 합격점을 받는 덕두봉 자연수를 먹고 있으니 굳이 부담금을 내가며 수돗물 먹을 이유가 없는데도 시에선 자꾸 상수도 설치를 강요하고 있다. 이 문제 저 문제로 진정서를 올려보지만 ‘돌을 차면 제 발만 아픈 격’으로 아무 소용이 없단다. 도시든 농촌이든 관광지든 올해는 다들 힘이 드는 모양이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용산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에 남원까지 가는 교통편이 있다. 남원 또는 경남 함양에서 인월은 버스로 30분 거리고, 인월 정류장에서 구인월마을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 걸린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로 나오면 된다. 마을 입구에 ‘흥부골자연휴양림’ 이정표가 있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1)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1)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피아골 단풍이 유독 붉은 이유를 “그 골짜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 또는 “양쪽 비탈에 일구어낸 다랑이논마저 바깥세상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굶어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환생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산 산장지기로 약 40년, 피아골대피소에서만 20년을 지낸 함태식(81)옹의 저서에 따르면 1984년 산장 신축 굴착공사 중에 나온 인골만도 한 트럭분이나 된다고 한다. 피아골, 피로 물든 격전지쯤으로 각인되기 쉽지만 실은 식용 피가 많이 재배돼 피밭골로 불리던 것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다. 계곡 초입의 직전(稷田)마을도 그로 인해 유래했다는 게 보편적이다. 원래는 8세기 중엽 연곡사를 찾던 사람들 중 김해김씨와 밀양박씨 2가구가 농경지 이용이 가능한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고 그 후 평도·직전·죽리 등의 자연마을을 합쳐 토지면 내동리가 되었지만 국립공원 구역 내 자리한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 직전마을을 따로 떼어내 직전리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사무소가 자연환경 복원을 위해 마을을 철거하고 오는 2011년까지 주민 이주 작업을 완료키로 결정했으니 오히려 직전만 외톨이가 된 셈이다. ●규제 심해 관광객 발길 뜸해져 마을에서도 제일 깊은 곳에 자리한 ‘산아래첫집’ 한형석(46) 한선임(40) 부부는 20년 전 피아골로 들어왔다. 남편 형석씨는 결혼 전부터 설악과 지리를 누볐던 산꾼이었다. 멋모르고 들어와 적응하지 못하고 쫓기듯 떠나는 이도 많지만 다행히 한씨 부부는 TV도 라디오도 접할 수 없던 산중생활을 슬기롭게 견뎌냈다. 적어도 철거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타 관광지가 그렇듯 비수기와 성수기 구분이 뚜렷한 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규제가 심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심지어 이미 ‘마을이 철거된 게 아니냐?’고 문의 전화를 해오는 손님들도 있을 정도예요.” 이주 단지 신규 조성이나 금전적 보상 등의 대안이 있긴 하지만 용역만 끝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전무하다는 게 한선임씨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국립공원 권역을 아예 마을 위쪽으로 옮겨 규제가 심한 공원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바라기도 한다. 마을 진입로에서 징수하는 연곡사 문화재관람료(2000원)도 관광객들에게 부담을 준다. 따라서 이주단지는 연곡사 아래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찌 되었든 피아골 산행 초입, 가장 끝 마을은 유지해야 한다는 게 주민들 대다수의 의견이다. ●성수기는 고로쇠 한달, 여름 한달, 가을 한달뿐 8년 전 ‘노고단산장’(상호)을 인수한 정명곤(48)씨는 이주단지가 연곡사 아래로 정해질 경우 그냥 그곳에 머물 계획이다. 어중간한 지역에 뚝 떨어져나가 식당을 계속 꾸려갈 자신이 없어서다. 정씨의 말대로라면 피아골 주민들의 성수기는 고로쇠 한 달, 여름 한 달. 가을 한 달뿐. 그렇다고 나머지 달은 마냥 노는 게 아니어서 고로쇠가 끝나는 3월 말부터 산나물을 뜯고, 새끼를 낳은 벌들을 위해 분봉 작업을 해야 하고, 그것마저 끝나면 슬슬 여름 장사를 준비하며 짬짬이 죽순 수확도 한다. 여름이 정신없이 지나면 산열매를 따고, 가을 장사 준비도 해야 하고, 후딱 단풍철이 지나면 눈 오기 전 고로쇠 호스 점검 작업에 들어간다. 눈이 폴폴 쌓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1월에나 자녀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그저 “실속은 없이 바쁜 생활”이라며 너스레다. 적어도 이번 여름 동안은 민박과 식당을 겸한 직전의 30여집들 모두 철거와 이주의 머리 아픈 시름을 접어둔 채 복작복작 관광객들로 바빠져야 할 터, 피아골을 훑는 시원한 바람이며 맑은 물줄기도 덩달아 분주하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에서 하차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남원IC 등으로 나와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이후 19번 국도 외곡삼거리에서 피아골 방향으로 들어선다. 연곡사 입장료 2000원은 마을에 식사하러 간다고 얘기하면 안 낼 수도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 (www.emountain.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9) 경남 햠양군 마천면 창원·동구 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9) 경남 햠양군 마천면 창원·동구 마을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해 오는 2011년까지 완공 예정인 국내 최초 장거리 도보 트레일 ‘지리산길’의 시범구간 약 20.8㎞가 지난 4월27일 개통됐다. 이번에 선보인 도보길 중 제1구간인 ‘다랭이길’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까지의 10.68㎞로 전체 구간을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이 ‘지리산길’을 따라 전라도 남원땅에서 해발 700여m의 등구재를 숨 가쁘게 넘어서면 경상도 함양땅에 닿는데, 중봉∼천왕봉(1915m)∼제석봉 능선이 뚜렷한 경상도의 첫 마을이 바로 닥종이(한지) 생산지로 유명한 창원마을이다. 전북과 도계를 이루며 마을 서쪽을 감싸 안은 삼봉산(1186.7m)∼백운산(902.7m) 사이 등구재는 ‘거북이 기어 올라간 지형’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은 곳이다. 판소리 6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등구(등구재와는 별도로 창원마을 건너편에 등구마을이 따로 있다) 마천이다. 등구재가 아직 산길로 남아 있는 것과 달리 마을 북동쪽 오도재에 도로가 뚫린 건 2003년 11월. 함양 마천 엄천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 인오조사(1548∼1623)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한 터라 ‘오도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온 남해 하동의 해산물이 이 고갯길을 통해 전북·경북·충청도로 운송되었다. 이 고갯길은 2006년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굵직한 두 고갯길 틈에 자리한 창원마을엔 그 고갯길만큼 굴곡진 다랑논이 촘촘하다.‘옛날에 한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 더 있더라.’는 유래에서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이 계단식 논들엔 자투리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지리산민들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웃에 사는 박금순(71) 할머니와 박순자(64) 할머니는 이제 막 논배미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참이다. “50년 전, 그러니까 스물한 살 노큰애기(노처녀의 사투리) 때 저 등구재 넘어 남원에서 경상도로 시집을 왔지요. 등구재는 주로 인월장 다니려고 넘었고, 오도재는 함양읍 나갈 때 이용했던 고갯마루예요.” 박금순 할머니가 처음 창원마을로 시집 왔을 때만 해도 동네에 길이라곤 거의 없이 돌뿐이었다더니 그 덕에 돌담장이 많은 마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로 논농사, 칠나무(옻), 감, 호두, 닥종이 생산을 주업으로 삼는데 한지의 경우 한때는 온 동네 사람이 다 했을 정도란다. 삼봉산과 백운산 등산로가 있긴 하지만 최근 공개된 ‘지리산길’이 창원마을 곁을 지나면서 부쩍 외지인들이 많아졌다. 박순자 할머니는 뜯어온 취나물을 팔라고 보채는 타지의 주부들에게 “이까짓 거.”하며 그냥 줘버린 일도 있다. 베풀기 좋아하는 아랫집 박순자 할머니의 가슴엔 상처가 가득하다. 지난해 장남과 남편을 모두 잃은 탓이다. 아들은 세 살배기 어린 딸을 두고 떠났다. 부산에 나가 있던 막내가 농사일을 돕기 위해 귀향했지만 그것 또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남원에서 시집온 박금순 할머니 역시 작년에 딸을 잃었다고 한다. 아들이 사준 휴대전화를 꺼내 그 속에 담긴 손자 손녀 사진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마당에서도 빠끔 올려다 뵈는 지리산 천왕봉만이 갈기갈기 주름진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두 여인의 슬픔을 위로한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창원리까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함양이나 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오도재(지방도 1023호선)를 넘어 창원마을로 갈 수도 있다.
  • 가야문화권 관광개발 탄력

    가야문화권 관광개발 탄력

    대구와 경남·북, 전남·북 등 5개 시·도 13개 시·군이 함께 추진 중인 가야문화권 광역관광개발사업이 정부 정책에 반영돼 추진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가야문화권 지역발전혁신협의회 의장인 이태근 경북 고령군수는 21일 ‘대구·경북 공동 발전 토론회’ 참석차 고령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들 지역의 역사·문화를 관광자원화하는 ‘가야문화권 광역 관광개발계획’을 보고했다. 이 군수는 이날 보고에서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지정 및 광역관광개발계획 국책사업화, 한반도 대운하 조기 건설을 통한 낙동강 옛 뱃길 복원,88고속도로 조기 4차선 확·포장 등에 대한 지원을 건의했다. 이 군수는 또 현재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고령읍 지산리 73·74·75호 대가야 왕릉급 고분 전시관 건립 및 의병장 김면 장군 성역화 사업,240여개 대가야 고분정비 및 개발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李 대통령, 지원방안 검토 약속 이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 “가야문화권이 이 같이 훌륭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것을 몰랐다.”면서 “소중한 문화 유산이 잘 활용되고 계승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각종 지원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은 이어 “가야문화권지역발전혁신협의회처럼 지방의 시·군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칭찬할 만하고 다른 지자체들의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사례”라고 격려했다. 경북 고령·성주군, 대구 달성군, 경남 거창·창녕·합천·산청·하동·함양·의령군, 전북 남원·장수군, 전남 순천시 등이 함께 추진 중인 가야문화권 광역관광개발사업은 총 1조 6088억원(국비 등 1조 2954억원, 민자 3134억원)을 들여 이들 지역을 3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한다. 구체적으로는 달성·고령·성주·거창권은 가야 역사·문화유적 관광지로, 창녕·합천·산청권은 문화생태 및 가야산 관광지로, 장수·남원·함양권은 역사문화 및 위락지로 개발된다. 사업은 승마레저타운(장수) 건립 등 10개 핵심 사업과 22개 연계사업에 걸쳐 있다. 이에 따라 가야문화권 발전협의회는 우선 이들 지역에 대한 정부의 특정지역 지정을 위해 한국토지공사 국토도시연구원에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지정 및 광역개발계획 수립 연구’ 용역을 발주해 놓고 있다. 오는 10월쯤 용역결과에 대한 주민 설명회와 최종 보고회가 있은 뒤 연말쯤 특정지역 지정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1조 6088억원 들여 2018년 완료 이들 지역이 특정 지역으로 지정되면 개발사업은 내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연차적으로 추진될 계획이다. 이 군수는 “낙후된 가야문화권에 대한 대통령의 큰 관심과 성원으로 개발사업이 날개를 달게 됐다.”면서 “대가야문화권을 관광 클러스터화해 ‘국내 관광 1번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특정지역은 문화·관광자원의 체계적 연계 개발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해당 자치단체의 요구로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정한다. 특정지역으로 지정되면 접근 도로망 등 인프라 구축 및 지역특화사업 추진에 권역당 5000억원 이내의 국비가 지원된다. 고령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전남 구례군 토지면 밤재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전남 구례군 토지면 밤재

    구례 문수리는 왕시루봉(1212m) 능선을 곁에 두고 평행선처럼 그어진 마을로,‘밤재’는 이 문수리 안에서도 제일 끝, 도로가 끊겨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들어서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온 김해 김씨가 처음 정착해 개척한 ‘율치’는 밤재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 해발이 600여m다. 덕분에 질매재의 잘록한 산길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올려다 보인다. 이 율치 아래에 신율이 있고, 신율 못 미쳐 밤재가 있다. 지금은 율치와 신율을 합쳐 통상 밤재라고 부른다. 예전부터 밤나무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두 곳 모두 밤 ‘율’자를 사용한다. 실제 밤재는 마산면 화엄사에서 연곡사가 있는 피아골을 오갈 때 거치는 형제봉 북쪽 해발 약 720고지의 고갯길 이름이기도 하다. ●첩첩산중 밤나무골 ‘개발 몸살´ 여수·순천사건과 한국전쟁 등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으며 마을이 불에 타고 방치되었던 율치와 신율과는 달리 밤재는 10여년 전에 새로 생긴 부락이다. 산간 논밭 터에 하나씩 집이 생기면서 이제 13호 남짓까지 가구 수가 늘었는데, 계곡을 끼고 형성된 민박집이나 퇴직을 하고 들어온 외지인들의 전원주택이 대다수다. 밤재 입구에는 집채만 한 큰 바위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이 두지바위(뒤주암) 안쪽 골짜기에 숨어 살던 사람들은 이 바위를 청학동 석문으로 여기고 살다가 1913년 3월11일 밤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두 쪽으로 갈라져 그 운세가 다했다고 믿는단다. 최근엔 마을 진입로 도로 공사가 한창인데 전태균(49)씨는 그게 또 못마땅한 모양이다. 길이 넓으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게 마을 주민들이겠지만 공사 때문에 큰 바위며 족히 80년은 되었을 법한 소나무를 마구 베어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무와 바위는 살리고 도로를 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어이 베어내고 조각조각 도려내는 것이 싫다. ●금싸라기땅 변신 ‘외지인 세상´ “길이 굽이지면 돌아가면 되고, 조금 늦게 천천히 가면 되잖아요.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라면 다른 마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길의 편리성이 오히려 이 마을의 정취를 빼앗아갔어요. 무분별한 개발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히려 돌아가는 길이 공사비도 적게 나오는데 마치 공사비를 늘리기 위한 편법 같다니까요.” 배낭 가득 두릅과 엄나무 새순을 따온 전씨는 도처에 그득했던 산나물이 줄었다며 연이어 한숨이다. 도벌이 금지돼 숲은 울창해졌지만 그로 인해 볕이 못 들면서 약초나 고사리 같은 산나물이 자랄 수 없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 종복원센터와 방사 곰들의 자연적응훈련장까지 이곳에 들어섰을까. 전씨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일대는 벌거숭이였다. 구례군 전체가 아궁이 군불을 때던 시대였으니 나무가 남아날 리가 없었다. 하나를 얻으면 어김없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게 자연의 이치다. 그래도 적당한 간벌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다. 가난한 이웃들은 꽉 막힌 산골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는데 전씨는 30리 고갯길을 지게질하며 넘나들어도 고향 떠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은 들어와 살 수 없는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첩첩산중이던 동네에 길이 뚫리면서 구례읍까지도 15분이면 족하다. 좋은 경치와 맑은 공기 덕에 저절로 땅값이 오른 것. 이제는 원주민보다 외지인들의 비율이 3배는 더 많을 정도다. 두지바위는 깨졌지만 21세기의 밤재는 새로운 청학동으로 급부상 중인 셈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19번 국도를 지나는 군내버스가 있긴 하지만 문수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없다. 구례읍에서 밤재까지 택시비는 1만 2000원 안팎.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문수사 이정표를 따라 들어서다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진행한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6) 경남 함양군 마천면 점태양지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6) 경남 함양군 마천면 점태양지

    ‘성안’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점태양지’는 하봉(1781m)에서 뻗은 초암능선과 두류능선 그리고 두 능선 사이의 굴곡을 곁에 둔 산중 은신처다. 추성리를 우측에 두고 광점동∼깨진박골까지 이어진 시멘트 외길 도로마저 끊겨 온전히 흙길뿐인 곳, 별장처럼 쓰이는 한 집을 제하면 마을을 통틀어 두 집이 전부다. 이곳 지명의 정확한 유래를 확인할 순 없지만 마을 주민 선득영(47)씨는 그저 ‘볕이 잘 드는 양지’라 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라고 귀띔한다. 요즘 같은 계절엔 오전 9시는 되어야 햇살이 들지만 해발 600m가 넘는 데다 마을 주위의 거대한 능선들을 감안하면 그 볕도 꽤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볕 잘드는 양지´라는 뜻… 마을 통틀어 두 집뿐 이름 그대로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안은 마을에서 두류능선 산행 초입 쪽으로 더 들어서야 만날 수 있다. 선씨가 어렸을 때만 해도 기와파편은 물론 놋그릇에 칼자루까지 발견되었다는데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니 갖고 놀다가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단다. 관련 자료에는 가락국 마지막 왕이었던 양왕(구형왕)이 군마를 이끌고 들어와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피난처로 이용한 성, 또는 신라가 백제를 방비했던 성 등으로 이곳의 석성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농막 한 채만 있을 뿐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은 아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남매를 인천의 장모님께 맡기고 아내와 단둘이 고향으로 내려온 선씨는 한봉과 염소 방목, 특용작물, 산나물 채취 등으로 생계를 잇는다.“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골이 좋아서” 귀농했다는 선씨의 주력 품목은 토종 벌꿀. 벌들이 충분히 먹을 만큼 빼곡한 꽃나무 덕에 양질의 벌꿀을 생산할 수 있다고. 작년 5월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방사한 반달곰이 벌꿀 20통을 거덜 낸 적도 있다. 다행히 적절한 보상은 받았지만 집을 잃은 벌들이 다른 벌통의 벌들과 싸우는 바람에 총 100통이었던 것이 39통으로 줄어버렸다.5월부터는 본격적인 분통 작업이 진행된다.1통당 많게는 3통으로 불릴 수도 있다니 올봄은 여느 해보다 더 바빠질 것 같다. ●선득영씨 부부, 아기염소 ‘깜순이´와 알콩달콩 고향으로 내려온 건 선씨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모 병원에서 행정직원으로 근무했던 셋째는 깨진박골에서 ‘두리봉펜션’을 운영한다.7남매 중 대구로 시집간 막내를 제하고 맏이인 형은 추성리에서 ‘칠선산장’을, 선씨의 동창과 결혼한 넷째 여동생은 광점동 초입에서 ‘두레박흙집’을, 다섯째는 면소재지, 여섯째는 현재 같이 살고 있고, 아버지 삼형제 중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빼곤 역시 다 추성리 거주 중이니 그야말로 이 동네에서 태어나 다시 이 땅의 흙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선씨 가족은 4대째 점태양지에 태를 묻었다고 한다. 아기 염소 ‘깜순이’는 선씨에게 귀여운 강아지나 마찬가지다. 깜순이 어미는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혹독한 겨울에 깜순이를 낳았는데 젖을 찾아 달려드는 새끼를 내치기 일쑤였다. 하는 수 없이 방안에서 분유까지 먹이며 키웠더니 이제는 선씨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얼마 전엔 뜨거운 쇠죽가마에 빠져 걷는 게 영 성치 못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는 녀석, 절대 내다 팔 수 없는 녀석이다. 나란히 걸터앉은 선득영씨와 깜순이 등 뒤로 웅웅, 우렁찬 계곡 물소리가 들려온다. 마을을 나서며 들른 ‘서암’에서 잠시 산쪽을 돌아보니 황갈색 두리봉펜션만 성벽처럼 보일 뿐 점태양지는 둥그런 봉우리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손바닥같이 작은 마을은 지리산 능선과 숲에 싸여 조용조용 하루를 접을 모양이다. 서암의 처마 끝 풍경소리만 산바람을 타고 그 마을에 가 닿는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추성리까지 군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칠선계곡 이정표를 보고 의탄을 지나면 광점동과 추성리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점태양지는 왼쪽 광점동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인근에 벽송사와 서암이 있으므로 오가는 길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5) 경남 산청군 단성면 청계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5) 경남 산청군 단성면 청계마을

    단성IC에서 국도 20호선을 따르는 길은 성철대종사 생가, 문익점 목면시배유지, 남사예담촌, 남명 조식의 산천재와 덕천서원 등 볼거리가 많아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더구나 천왕봉(1915m) 최단 코스 중산리까지 길이 닿으니 가히 지리산의 길목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사실은 중산리 가기 훨씬 전, 대원사로 갈리는 시천면소재지로 가기도 더 전, 남사마을을 지나 단속사터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지리산의 첫 관문, 첫 번째 봉우리 웅석봉(1099.3m)이 제일 먼저 길문을 연다. 이병주 대하소설 ‘지리산’ 속 웅석봉은 아픈 역사를 겪지 않은 이들에게도 절절하게 와 닿는다.“달뜨기는 지리산의 초입이다.(중략) 지리산을 찾은 빨치산들은 조개골 등에 숨어 이곳 달뜨기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과 가족을 생각했다. 낡은 총자루를 옆에 두고 구수하게 풍기던 된장냄새와 아내의 젖비린내와 어머니의 말라붙은 가슴팍을 떠올렸을 것이다.” 능선 위로 뜨는 달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해서 ‘달뜨기’란 이름이 붙었다지만 “천지가 개벽해 세상이 온통 물에 잠겼을 때 꼭대기에 딱 달 하나 앉을 만한 공간만 남았다더라.” 청계마을 주수돈(72) 할아버지는 웅석봉 능선의 다른 이름이 달뜨기가 된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주 할아버지는 “지리산에 가면 살길이 열린다.”고 믿었던 빨치산들이 바람처럼 탄성을 외쳤던 달뜨기 허리춤에서 한국전쟁을 겪었다. 열네 살 나이로 빨치산의 포탄을 단성까지 지고 가는 일이 허다했는데 “아직 어리니 집으로 가라.”는 혜택을 받고 돌아서면 또 다른 빨치산에 잡혀 다시 포탄을 지고 걸었다고 한다. 빨치산에 협조를 해도 죽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죽고, 새끼줄에 손목이 묶여 줄줄이 죽어나가는 사람도 많았던 난리를 바로 그 웅석봉에서 고스란히 겪으며 자랐다. 무려 9대째, 수백여 년을 이어온 고향땅이다. 아내 정하자(69) 할머니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주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못 먹고 못살아 입 하나 덜어내려고 딸자식을 시집보내던 시절. 지천에 흔한 쑥도 보이지 않던, 아니 쑥이 자라기도 전에 캐내야 했던 산중마을의 고단한 살림이었다. 청계리 경치 좋은 땅마다 펜션이며 전원주택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이들은 돈벌이가 없어 고생이다. 그렇다고 자식들 따라 도시로 나갈 생각은 없단다.“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도 몰라.” 다리쉼을 하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던 주 할아버지가 끙, 자리에서 일어선다. 짚과 풀을 섞어 만든 퇴비를 잔뜩 짊어지고 감자밭으로 향하는 길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부부의 그림자가 포구나무 커다란 그늘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진다. 임거수(47)·하순옥(49)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 ‘돌담(055-973-5478)’은 마을 입구에 있다.6년 전 업무차 처음 이곳에 내려왔다가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을 맛봤다는 임씨는 곧바로 서울 생활을 접고 청계마을 주민이 됐다.“진정한 부자는 물질에 있지 않아요. 마음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문화 혜택을 누리지 못해도 정말 행복하거든요.” 나물철인 요즘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웅석봉으로 향한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 눈앞에 아른아른 어두컴컴한 천장에 고사리가 맺혀 보일 정도다. 산나물을 가득 채취할 땐 일종의 희열, 그야말로 ‘산나물오르가슴’에 흠뻑 취하기도 한다. 취나물, 삿갓쟁이, 멍이나물, 개발딱주 등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후끈 몸이 다는 모양이다. 나물 이야기를 하는 임씨의 뺨이 소년처럼 붉다. 웅석봉을 맴돌다 청계계곡 따라 흘러온 쌉싸래한 봄나물 향기가 덩달아 푸릇푸릇 내려앉는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www.emountain.co.kr) ●가는 길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단성IC로 진입해 20번 국도를 타고 지리산 방향으로 이동하다 ‘단속사지’ 이정표에서 우회전한다. 남해고속도로에서는 서진주IC,88고속도로에서는 함양IC를 통해 각각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청계약수, 청계저수지, 청계계곡 외에도 보물로 지정된 단속사터 동서 삼층석탑, 이갑열 현대미술관 등을 차례대로 들러볼 수 있다. 웅석봉 허리를 따라 어천마을로 이어진 드라이브 코스도 괜찮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4)경남 하동군 화개면 호동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4)경남 하동군 화개면 호동마을

    바람이 불 때마다 함박눈처럼 흩날릴 꽃잎에 흠뻑 젖어보는 것도 좋고, 사람에 치이고 도로 정체에 시달려도 평생 한번, 딱 한 번만큼은 천천히 걸어볼 만도 할 화개 십리벚꽃길…. 사랑을 고백하면 이루어진다 하여 ‘혼례길’로 불리고 아무리 걸어도 길멀미가 나지 않는 곳.4월, 범왕리 호동마을로 가려면 절정기를 지나 폭탄처럼 내려앉는 이 벚꽃 가로수를 지나야 한다. 예부터 농악을 할 땐 호랑이가 놀라지 않도록 징을 치지 않았다는 호동의 총 가구수는 다섯 집. 차가 다닐 수 없는 산속 두 집은 스님들 공부하는 곳이고, 한 집은 아직 공사 중이니 결국 이집 저집 제하고 나면 실제 두 집뿐인 셈이다. 김옥곤(69) 할아버지가 이곳으로 들어온 건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대대로 선유동에 살다가 무장공비 사건 등으로 산중마을 대부분이 일괄 철거되던 시절 정부에서 지어준 집, 그러니까 범왕리 입구 신흥마을에서 몇 년쯤 살다가 호동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민가가 사라진 선유동엔 아직도 그때 심어둔 배나무며 감나무가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산중에 저절로 난 과실나무로 생각하고 따가버리는 터라 정작 주인인 김 할아버지는 마음먹고 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속상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깝거나 서운하지는 않은지 허허, 웃음을 보이신다. 장남이자 외아들 종복(43)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3년 전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 일을 돕고 있다. 산나물이나 매실은 먹을거리 정도로 조금 하고, 고로쇠와 녹차·송이 채취가 주 수입원이다. 직접 덖음차를 만들기도 하고 찻잎만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진즉에 무농약 인증을 받아놓은 상태지만 일손이 모자라 수확도 못하고 그냥 버려두는 잎이 허다하단다. “이런 산중에 누가 시집오겠습니까? 집도 허름하고요.” 종복씨는 아직 미혼이다. 회사가 어려워 겸사겸사 낙향했지만 그동안 여섯 명이나 되는 여동생들을 살뜰히 살펴온 믿음직한 오빠다. 중국으로 유학 간 두 동생도 종복씨의 도움을 받았다.“산 밑에 사는 사람은 도시로 나가기 힘들어요. 계산적이고 바쁜 서울 생활에선 맛볼 수 없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고된 걸로 따지자면 농사일 역시 만만치 않지만 그는 지금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김 할아버지댁 위쪽엔 황토집 공사가 한창이다. 경남 사천에서 이주해온 사내는(국수에 동동주까지 대접받았지만 끝내 이름은 알려주지 않는다) 10여년 전부터 지리산 일대를 다니며 살 곳을 알아보다 이 마을과 인연을 맺었다. 녹차작업장을 짓고, 흙과 볏짚을 섞어 벽을 바르고, 소나무와 대나무로 천장을 잇대어 모양새가 나는데도 입주 날짜는 기약없다. 설계한 사람도, 공사를 돕는 인부도 품앗이 개념이다.“집이 완성되면 맛있는 차를 언제든지 마실 수 있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게 전부라고.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 지리산 계곡수를 퍼다 당시 아파트에 살았던 아내에게 6년간 바친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산기슭 구석구석 숨어 있는 야생차밭에서 여린 찻잎을 따다 선물도 했다. 차를 좋아했던 아내는 사내의 정성에 마음줄을 놓았고, 이제는 돌을 갓 지난 딸까지 세 식구가 되었다. 김옥곤 할아버지는 이들 부부에게 고마운 존재다. 수년 전 처음 드나들 때부터 쌀, 감자, 과일까지 많은 지원을 받았다.‘평화공간 설정’을 모티브로 내건 이 댁의 분홍빛 벚나무가 이른 저녁 불 밝힌 가로등처럼 황톳빛 창틀을 살포시 비추고 있다. 새 이웃을 맞는 할아버지에겐 기다림마저 행복한 봄날이다. #가는 길 경남 하동군 화개면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을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남해고속도로 하동IC 등에서 구례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로 진입한다. 이후 쌍계사 방면으로 직진하여 10㎞쯤 달리다 칠불사 쪽으로 좌회전, 다시 곧바로 다리를 건너 우회전해서 길이 끝나는 곳까지 계속 올라간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www.emountain.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3)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락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3)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락마을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에 위치한 수락폭포는 동편제의 대가 국창 송만갑 선생이 득음했던 장소로 구례 10경 중의 하나다. 폭포 상단에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가 있고, 치마에 돌을 담아 올려 놓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할미암이 있다. 근래의 수락폭포는 여름철 물 맞으러 오는 관광객들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후통, 근육통,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 하여 삼복더위가 시작될쯤이면 물살을 맞으려는 인파로 북새통이라는 것. 임진왜란 때 해주 오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한 수락은 10가구도 채 안 되는 폭포 위쪽 산중마을이다. 해발 400m 남짓인데도 산동면에서 유일하게 여름 채소 재배가 잘 되는 곳인데다 예부터 땅이 기름지고 배수가 양호해 많은 밭작물이 생산되었다 한다. 높은 지대에 비해 오히려 첫서리가 평지보다 늦게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다만 요즘은 농사를 짓는 집이 총 가구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산 너머 상위마을에서 시집와 여든 해를 넘긴 오도임 할머니와 대대로 수락에 태를 묻은 정판길(81)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내내 생이별하며 살았단다. 당시 산동에서 12명의 젊은이가 징집되었는데 살아 돌아온 이는 2명뿐이었다. 할머니는 강원도에서 전투 중인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젊은 아내를 그리워했을 뿐 서로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3년 후쯤 “앵두설기떡을 했던 날”이라고 기억되는 그 반세기 전의 어느 날 편지가 도착했다. 할아버지가 부상을 당해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었다. 할아버지는 치열한 전투 속에 발가락 대부분을 절단해야만 했다. 몇 해 전 시멘트 소로가 뚫려 차량 통행이 가능해졌지만 양길순(71) 할머니가 이 마을로 시집왔을 때만 해도 네 명의 가마꾼이 새색시더러 “걸어가라.” 할 만큼 첩첩산중이었다. 한번은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마당에 나섰는데 맞은편 산속에서 호랑이불이 번득이는 게 아닌가. 질겁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섰지만 갓 시집온 각시는 시댁 식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긴긴 밤을 보내야 했다. 시집살이 고생은 말도 못한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 지쳐 쓰러질 때면 칡순으로 갈증을 해소했다. 그럼 거짓말처럼 “뽈딱” 일어나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하필 딸 넷을 내리 낳느라 시집살이는 더 고됐다. 9년 전 먼저 떠난 남편은 대단한 술보였다. 남편이 술 마시러 가는 날은 꼭 수락폭포까지 마중을 나가야 했다. 인사불성이 된 남편에게 날달걀을 먹이고 데려온 적도 많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중에서 제사를 치를 판이었다.“차라리 서울서 식모살이라도 해라.” 오빠의 권고도 있었지만 딸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양 할머니에게 수락에서의 젊은 시절은 배고파서 고생, 시집살이 고생, 애주가 남편 때문에 고생,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마을에서 차가 없는 집은 이 댁을 포함해 딱 두 집뿐이다. 버스가 다니는 중기(수락폭포 아랫마을)까진 그럭저럭 40분, 올라올 땐 1시간도 더 걸리는 데다 6000원인 택시비가 아까워 구례읍으로 나가는 일은 큰맘 먹어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다시 여름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폭포수에 온몸을 맡길 것이다. 그 물은 지리산 서부능선의 기운이 녹은 물, 수락마을 주민들의 오래된 아픔과 고통과 그리움이 절절이 밴 물, 그 물은 다시 섬진강이 되고 남해가 되어 머나먼 바다로 긴긴 여행을 떠날 것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전남 구례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 부산 서부 사상시외버스터미널 등에서 탈 수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로 들어선다. 이후 밤재터널 지나 ‘산동’ 혹은 ‘수락폭포’ 이정표를 따른다.
  • 동홍천~양양 고속도 올 착공

    서울과 양양을 연결하는 동서고속도로 중 동홍천∼양양구간 71.7㎞가 올해 착공되고, 평택∼시흥, 인천∼김포, 안양∼성남 등 3개 고속도로는 민자사업으로 추진된다. 또 교통량 증가로 확장이 필요한 남해고속도로 냉정∼부산,88고속도로 성산∼담양 등 4개 구간은 4∼8차로로 확장된다. 국토해양부는 이 같은 내용의 ‘2008년도 고속도로 사업 계획’을 2일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서울∼춘천∼양양을 연결하는 동서고속도로 가운데 동홍천∼양양 구간 71.7㎞를 올해 안에 착공키로 했다. 현재 건설 중인 서울∼춘천(민자), 춘천∼동홍천(국비) 구간 등은 내년에 개통된다. 또 수도권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평택∼시흥 등 3개의 민자고속도로도 금년 중 착공할 계획이다. 수도권 서남부와 충청권의 교통수요 분담을 위해 평택∼시흥간 고속도로가 3월말 착공된 데 이어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의 일부인 인천∼김포 고속도로와 안양∼성남(제2경인연결) 고속도로도 오는 6월과 10월쯤 각각 착공될 전망이다. 안양∼성남 구간은 향후 자동차전용도로인 성남∼장호원(국도3호 대체우회도로) 구간과 광주∼원주(제2영동) 고속도로와 연결돼 동서축을 형성하게 된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촌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촌마을

    백두대간 종주 산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지나쳤을 지리산 고기리 고촌(高村)마을은 1000고지 이상을 힘차게 달려온 고산준령이 고리봉(1304.8m)에서 급격히 해발 고도를 낮추며 처음으로 숨을 고른 땅이다. 대간 종주자들에겐 한 구간의 마지막 지점이자 다음 구간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 서북릉 산행에 나선 이들 중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부러 하산하는 경우도 많은 터라 고리봉 아래 고촌마을은 백두대간 종주꾼이나 지리산 산꾼들에겐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구룡·선유·비폭포 인접… 찾는 발길 이어져 원래 남원군 상원천면에 속했던 고촌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아랫마을 내기(안터)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이름을 딴 ‘고기리’가 되었고 이후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전라북도의 산중마을이지만 1680년경 영남에서 이주해온 경주 이씨, 밀양 박씨, 달성 서씨 등에 의해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1950년대 이전만 해도 130호에 달하던 면내 최대 마을이었다가 한국전쟁 때 소각돼 한 가구도 남지 않았고 주민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한두 사람씩 돌아오긴 했지만 다시 도시로 떠나는 가구가 많아 지금은 30여 집이 조금 못 된다. 빈집은 7가구쯤 되는데 거의 다 외지인에게 팔린 상태다. 주천면 마을 중 지대가 제일 높은 고촌의 주민들은 산나물, 상추, 감자, 오미자 등을 재배 혹은 채취하며, 인접한 구룡폭포 최상류 계곡과 선유폭포, 비폭포 등을 찾는 등산객은 물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민박과 식당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마을 풍경만 놓고 보면 해발 600여m의 높은 산지임을 쉽게 실감하기 어렵다. 고촌에서 태어나 결혼해 여태껏 살고 있는 정오분(75) 할머니 역시 마을이 불에 탔을 때 고향을 떠났다가 3년쯤 후에 돌아왔다. 그때는 돈 없는 사람만 들어와 살았던 척박한 산골이었다. 남의 논을 져먹으며 쌀 석 되로 시작한 반세기의 기억들은 말로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다. 눈이 ‘겁나게’ 많이 오는 곳이지만 성삼재, 운봉, 남원 등으로 삼거리가 뚫릴 만큼 도로 사정이 좋아 겨울에도 버스가 다니지 못하는 일은 없다. 다만 여느 집처럼 자가용이 있는 게 아니어서 벌써 몇 번이나 119 신세를 져야 했다고. ●주말이면 산행객 100여명 묵어가 남원 시내에 거주하다 11년 전 고촌으로 들어와 현재 이장을 맡고 있는 양해거(62)씨는 마을 속사정까지 훤하게 꿰뚫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100여 명의 산행객들이 고촌에서 묵어간다. 간혹 양 이장에게 숙박 문의전화가 오면 집집마다 번갈아 공평하게 소개해 주기도 한다. 아예 ‘반달곰 산채마을’이란 브랜드로 특성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고랭지 상추는 인근 대도시 청과시장에서 가져가니까 가격만 정해지면 판로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괜히 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조용하고 공기 좋고, 부지런하면 약초며 산채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몇 년 전만 해도 외지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와 분뇨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요즘은 성숙해진 산악문화 덕에 속상한 일이 덜하다. 쓰레기봉투를 무료 배포하면 그 봉투에 차곡차곡 담아 길가에 내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끔씩 양 이장이 직접 쓰레기를 수거하러 다니기도 한다. 마을 위쪽엔 올해 완공 예정인 고기댐이 있다. 반대도 해봤지만 정부 사업을 농민이 이길 수는 없었다. 오히려 폭우 시 홍수를 조절하고 농수와 생활용수로 유용하게 쓰이길 바랄 뿐이다. 고기댐 앞엔 상처 입은 노거송이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주민들을 묶어두고 무차별 총살이 자행된 나무란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이들은 조금씩 잊히겠지만 아직도 탄환 자국에 시름하는 늙은 나무는 묵묵히 그때의 참상을 대변하고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올림픽고속도로에서 남원IC로 나온 다음 19번 국도와 60번 지방도를 타고 고기리까지 갈 수 있다. 지리산IC로 나왔다면 인월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운봉으로 온 후 역시 60번 지방도를 타고 고기리로 이동한다. 남해고속도로에서는 진주분기점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따라 함양분기점으로 들어서 88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남원과 고기리를 오가는 시내버스는 하루 8회 운행한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0) 경남 산청군 단성면 소리당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0) 경남 산청군 단성면 소리당

    성삼재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해지면서 화엄사를 찾는 종주꾼들은 부쩍 줄었지만 1000고지가 넘는 산중 주차장의 단출함을 배제하고 굳이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지리산 종주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그 능선이 마치 태극 문양과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태극종주’.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전북 남원시 구인월을 출발, 덕두봉에서 서북릉을 타고 노고단까지,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잇는 주능선을 거쳐 동부능선으로, 거기서 다시 밤머리재를 넘어 웅석봉 찍고 이방산∼수양산을 지나 드디어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무려 90여㎞가 넘는 마지막 하산 지점이 바로 소리당마을이다. ●소나무 많은 데서 지명유래 지리산에서 10여 년을 살다 숨을 거둔 조선 중기 성리학자 남명 조식 선생 문헌에 ‘송당(松堂)’으로 기록된 소리당은 아무래도 소나무와 인연이 깊은 듯하다. 남명이 덕산으로 가던 길에 소나무가 유독 많은 이곳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자꾸만 솔가지에 머리가 걸려 아예 갓을 벗어 소나무에 걸어 놓고 갔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실제 소리당 근처엔 ‘갓거리’라는 지명도 있다. 어찌 되었든 한문식 표기인 송당 대신 솔당으로 부르다가 그것이 또 솔댕이, 솔대이, 소리댕이 등으로 불렸고 송리당으로 표기한 곳도 더러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반 마을 이름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한문으로는 송당, 한글로는 소리당으로 합의해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서쪽엔 수양산·우측엔 화장산이 서쪽엔 수양산(502.3m), 우측엔 화장산(615m)을 두고 마을 한 가운데로 실개천이 흐르는 소리당은 그나마 도로변과 인접한 아랫소리당과 비포장 소로를 따라 들어서는 윗소리당으로 각각 나뉜다. 아랫소리당엔 약 15호가 있지만 정작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그중 절반쯤. 나머지 절반은 버려졌거나 장기간 외지로 출타한 경우고, 미타사와 건명사 등 작은 사찰이 두 개나 있는 윗소리당엔 원주민은 전혀 없이 외지인들의 건물만 네댓 채쯤 남아 있다. 진입로부터 울퉁불퉁 소로여서 웬만한 자가용으론 접근조차 쉽지 않은데, 개별 우편함도 마을 훨씬 못 미친 전봇대에 달려 있는 걸 보면 집배원들의 곤욕도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아예 아랫소리당엔 ‘차 돌릴 곳이 없으니 여기서 돌아가시오.’라는 안내판까지 붙어 있을 정도다. ●남자라곤 할아버지 포함 두어분 7년 전 진주에서 이주해온 이인수(72) 할아버지는 농사를 거들며 생계를 잇는다. 도시에선 딱히 할 일도 없을 뿐더러 자녀들에게 마냥 의탁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란다. 다행히 이곳엔 일할 사람이 적어 할아버지의 손길도 아주 요긴하다. 밥은 밥솥이 알아서 해주고, 진주에 사는 할머니가 가끔씩 빨래하러 들르고, 공기 좋은 곳에서 일하는 데다 적게나마 수입도 얻을 수 있어 노구의 고단함쯤은 감내해 낸다고 한다. 마을에 남자라곤 이 할아버지를 포함, 겨우 두어 분. 동네 가득 쌓인 다랑이 논밭은 농사지을 이가 없어 버려둔 지 오래다. 60년 가까이 소리당에서 살아온 유복희(79) 할머니는 허리도 아프고 어지러워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30년 넘게 홀로 지내며 7남매를 키웠다. 오늘은 마침 큰아들이 찾아온 날. 병든 밤나무를 베어내고 감나무를 심을 작정인데, 덕분에 마당 한쪽에 밤나무 장작이 차곡하다. “하나 같이 몬 살아서 걱정, 아직 결혼 몬 한 게 있어 걱정” 툇마루에 나와 앉은 유 할머니의 이마에 주름이 깊다. 어느 산능선을 타고 왔는지 온순한 바람결 따라 여린 댓잎이 사그락사그락 노래를, 개울가 옆 연회색 버들강아지는 그렁그렁 할머니를 보드랍게 토닥인다. ▶ 가는 길 : 자가용의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단성IC로 진입해 20번 국도를 타고 지리산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 외 남해고속도로에선 서진주IC,88고속도로는 함양IC에서 각각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들어서 단성IC로 빠져나온다. 산청IC로 나왔다면 금서면 매촌(국도 59번)에서 밤머리재를 넘어 시천면소재지에서 좌회전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산청군 원지행(진주 종점) 버스를 탄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 [Let’s Go] 남도서 들려주는 봄의 왈츠

    [Let’s Go] 남도서 들려주는 봄의 왈츠

    바람결에 촉촉한 습기가 묻어나는 초봄입니다. 남도 끝자락 나로도의 섬 사이를 휘휘 돌아온 봄바람이 섬진강에 상륙해 내륙으로 내달릴 기세입니다. 바다로 향하던 강과 바다에서 내륙으로 거슬러 온 봄바람이 만난 자리마다 꽃망울이 맺히고, 곰실거리는 봄내음에 처녀 가슴은 섬진강 은어처럼 요동칩니다. ‘나는 오늘 좀 달려야겠다.’국내 한 자동차 회사의 광고문구지요. 봄소식을 들은 두 발이 그랬습니다. 오는 봄을 앉아서 기다릴 수 없어 두 발로 달려가 안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봄과 만나는 가장 빠른 길은 역시 남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땅의 해토머리(얼었던 땅이 녹아서 풀리기 시작할 때) 풍경을 찾아 내처 달려보리라 작정했습니다. 화신(花信)에 접한 섬진강을 지나 곧 대한민국의 우주시대를 열 전남 고흥반도의 나로도까지. 이 땅 끝에서 맞는 봄 풍경은 어떤 것인지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섬진강은 언제봐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모습이지요. 봄의 전령 자리를 두고 공명을 다툴 산수유, 매화 등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지만 그 강엔 봄빛이 완연했습니다. 산란을 위해 잠시 섬진강을 떠난 참게 자리는 경칩을 맞아 뛰쳐나온 두꺼비들 차지였습니다. 재첩이며 벚굴 등도 봄의 약동을 시작했지요. 사람 손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하동에서 곡성에 이르는 동안 아직은 찬 섬진강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강이 준 선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붉은 남천 잎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흥반도 끝자락 나로도로 향했습니다. 고흥땅엔 봉수대가 유난히 많지요.20여개쯤 됩니다. 적의 침입을 알렸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내륙으로 봄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듯 했습니다. 특히 유주산 봉수대에서 보는 다도해의 봄 풍경은 정말 멋들어지지요. 재작년 완공된 ‘새내기 호수’ 고흥만은 또 어떻습니까. 끝간데 없는 듯한 제방 도로며, 경비행장이 들어설 간척지 등 정말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그 드넓은 수면 위에 떠있는 물새들의 깃털 사이사이로 봄의 훈풍이 가득차 있었지요. 주 초반 철없이 많은 눈을 뿌려대는 등 겨울의 시샘이 여전합니다. 시간을 다시 겨울로 되돌린 듯도 합니다만 봄은 분명 봄입니다. 남도의 이른 봄 풍경을 담아 왔습니다. 이번 주말엔 해토머리 풍경을 찾아 남도로 ‘달려’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글 사진 구례·고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축제로 여는 섬진강의 봄 해마다 이른 3월이면 구례 산수유마을, 광양 매화마을 등 섬진강변 마을에서 전해오는 꽃소식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한없이 설레게 한다. 아직 꽃망울이 맺혀 있는 정도지만,3월 중순쯤이면 만개할 것으로 현지 주민들은 내다보고 있다. 매화꽃 동산 100여만그루의 매화가 하얀 꽃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노란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노란빛 선연한 산수유마을 골목마다 한껏 물오른 봄의 정취가 흥건할 터. 가슴 빡빡해진 도시인이라면 필경 꽃멀미에 어지러워질 게다. 유명세에서 밀릴지언정 하동땅 매화도 아름답기로 치자면 광양에 못잖다. 특히 광양 청매실농원과 섬진강을 두고 마주한 흥룡리 흥룡마을과 먹점마을 등이 소문난 매화마을. 지리산에 기댄 마을 골짜기와 밭두렁, 고샅길과 개울가까지 온통 매화나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는 법. 섬진강에 흩뿌려지는 꽃비를 맞으려면 서두를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축제 소식이 전해져 온다.8∼16일 광양시 다압면 일대에서 매화축제가 열리고, 구례의 산수유꽃축제도 13∼16일 산동면 상위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섬진강의 아름다움은 결코 꽃에만 있지 않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섬진강물을 따라가 보시라. 모래톱 사이사이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며 그 속에서 재첩잡이 벌이는 어민들의 모습에서 싱싱한 초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어디 그뿐일까. 강바람 일 때마다 춤사위를 펼치는 강변 대밭과 지리산 자락을 타고 오른 차밭, 그리고 하동 악양들의 보리밭 등이 뿜어내는 초록빛깔 또한 이방인의 가슴을 생동감으로 충만케 한다. ■ 고흥반도의 새내기 인공호수 고흥호 섬진강을 뒤로 하고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순천과 주먹 자랑 말라는 벌교를 차례로 지나니 고흥반도. 나로1대교를 건너 마주한 나로도의 들녘은 간지러움으로 몸살을 앓는 듯하다. 그럴 법도 하다. 땅 속 어린 새싹들이 위로 솟아 오르려 오죽 긁어 대겠는가. 고흥반도 초입의 고흥호는 재작년 선보인 ‘새내기’ 인공호수다.15년간의 간척공사 끝에 3100㏊의 간척지와 280㏊의 인공습지,745㏊의 담수호를 얻었다. 파도처럼 넘실대는 갈대와 물새, 너른 남해 등이 어우러지며 장관을 이룬다. 약 3㎞에 달하는 고흥만방조제는 득량만과 고흥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맞춤하다.‘Z’자 모양으로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 가슴의 체증이 뚫리는 듯한 느낌이다. 두원면 풍류리에서 시작해 도덕면 용동리로 이어지는 고흥만방조제에 서면 광활하게 펼쳐진 인공호와 농경지가 두 눈 가득 들어온다. 방조제 서쪽 끝은 고흥만수변공원. 대체로 드라이브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공원을 나와 배수갑문을 거쳐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호수와 나란히 달리는 호반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동쪽으로 간척지를 가로지르면 비룡교 지나 경비행장, 항공센터 등을 만난다. 이어 비아도와 비아마을, 인공습지 등을 차례로 지나면 고흥만 방조제 동쪽 끝에 이른다. 비아도 앞에서 간척지 중앙관리소로 이어지는 담수호 동편 도로변에는 3곳에 자연관찰용 데크를 만들어 놨다. 드라이브 도중 잠시 들러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다. 고흥반도 동쪽 포두면 옥강리에서 오도를 거쳐 영남면 금사리까지 이어지는 해창만 간척지도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갈대밭과 담수호 사이를 누비며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창만 1,2방조제를 합친 길이는 약 3.5㎞ 정도. 방조제를 따라 늘어선 갈대밭은 저녁 무렵이면 황금빛으로 물든다. ■ 남해의 봉래산 삼나무숲 고흥반도 끝자락의 나로도는 외나로도와 내나로도 등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륙교로 이어져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됐다. 배를 타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섬이라는 것이 큰 매력. 하지만 그 때문에 섬 특유의 고적함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로도는 지금 세계 13번째로 들어설 나로우주센터 덕에 유명관광지로 도약할 꿈을 꾸고 있다.4월쯤 고산씨가 우주로 향하게 되면 그 꿈은 더욱 가까워질 듯하다. 우주센터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봉래산 삼나무숲과 만난다. 일제 강점기 때 시험림으로 조성된 숲이다.30m 높이의 80년된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잘 조성된 숲길을 걷다 보면 어디서보다 깊은 숨을 쉴 수 있다. 꽁꽁 언 대지를 뚫고 노랗게 피어난 복수초를 만나는 것도 봉래산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 올해도 삼나무숲에서 헬기장에 이르는 구간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나고 있다.4월이면 별똥별이 쏟아지듯 노란 복수초가 숲을 환하게 밝힐 게다. 봉래산 앞자락 우주센터에서는 올해 말 대한민국 우주로켓 1호를 하늘로 쏘아 올리게 된다. 세계 9번째의 독자적 위성 발사국이 되는 순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삼나무숲에 올라 다도해를 가르며 힘차게 솟아 오르는 우리 위성을 지켜볼 날도 머지 않았다. 글 사진 구례·고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섬진강 자락 구례·하동·곡성 등으로 가려면 우선 경부·중부고속도로로 대전까지 간 뒤 비룡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대전∼통영 구간)로 바꿔탄다.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광주 방향으로 달리다 남원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로 들어서면 구례다. 구례에서 나로도까지는 17번국도로 순천까지 간 다음,2번국도로 바꿔타고 벌교까지 간다. 벌교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끝까지 가면 나로도다. ▶ 가볼 만한 곳 구례군 다무락골, 운조루, 사성암, 압록유원지 등과 광양시 다압면 청매실농원 등은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 우리테마투어(wrtour.com)는 8∼23일 매주 수·토·일 광양 청매실농원, 구례 산수유마을 등을 다녀오는 여행상품을 준비했다.2만9000원.02)733-0882. 나로도에서는 한센병환자들의 애환이 서린 소록도를 찾아야 한다. 녹동항에서 1㎞ 거리에 있다.15분 간격으로 배가 왕복한다.1000원. 도양해운 844-2086. 올 하반기엔 나로도와 소록도를 잇는 연륙교가 개통될 예정이다. 염포 자갈밭 해변, 나로도 해수욕장 곰솔밭과 상록수림, 금탑사 비자나무숲, 유주산 봉수대 등도 잊지 말고 찾아야 할 곳. 뭍에 못지않게 해안 풍경도 아름답다. 나로도 일주 유람선이 나로도항에서 출발한다.2시간 남짓 소요된다.1만 5000원. 우주스타 833-7279. 금어호 833-6905. 고흥군청 문화관광과 830-5224,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780-2450. ▶ 맛집 : 섬진강변 전원가든은 참게탕으로 유명한 집.3만∼5만원을 받는다.782-4733. 고흥군 도화면 중앙식당은 주꾸미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주꾸미해물찜, 데침 1인분 1만원.832-7757. 읍내 ‘소문난식당´은 가자미·병어 등 생선구이 잘하기로 ‘소문났다’.1인분 1만원.833-7787. ▶ 잠잘 곳 : 화엄사 아래 한화리조트 지리산은 호텔객실 1박+조식+사우나 입욕권 등이 포함된 봄꽃패키지를 8만 7000원(2인 기준)에 판매하고 있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도 살 수 있다. 배송비포함 18ℓ 6만원,4.3ℓ 4팩 6만 5000원,782-2171. 나로도의 경우 나로2대교 앞 하얀노을모텔이 깔끔하고 전망좋다.4만∼5만원.833-8311∼3.
  • [지리산 산마을이야기] (18) 전남 구례군 토지면 조동마을

    [지리산 산마을이야기] (18) 전남 구례군 토지면 조동마을

    경남 하동과 군계를 이루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중기마을은 1780년쯤 연곡사로 승과를 치르러 들어간 승려들이 아녀자를 데리고 오다 숨겨둔 곳, 김해김씨가 절터를 만들었던 곳, 혹은 승려가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하여 ‘중터’ 또는 ‘승기’라 불리다가 1950년쯤 외곡과 피아골의 중간 지점이라 하여 ‘중기’라 개칭했다. 작은 중기마을 안에 교집합처럼 들어선 조동마을은 지리산 왕시루봉(1212m)에서 갈라진 봉애산(613m)과 목아재를 뒷동산 삼고, 피아골에서 출발한 연곡천 물줄기 너머 중기마을을 마주하고 있다. 중기 뒷산이 구례와 하동을 나누는 삼도봉∼불무장등∼황장산∼촛대봉 능선이니 결국 조동은 앞뒤로 지리산의 험준한 산세, 피아골의 풍만한 청류를 고루 품은 셈이다. 마을 어른들은 녹차, 밤, 매실 농사에 종사하고 요즘 같은 계절엔 고로쇠 작업도 병행한다. 대체로 기온이 따뜻해 겨울 내내 눈이 쌓이는 날은 사나흘뿐. 그래서 녹차 농사가 잘되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선 녹차를 상비약처럼 사용한다. 싱싱한 찻잎을 바로 덖는 것이 아니라 아랫목에 일주일씩 널어 건조시킨다. 발효차는 외딴 마을 주민들의 감기약과 소화제 역할을 대신해 왔다. 조동마을 최고령 부부 박봉수(86) 할아버지와 임남례(80) 할머니는 슬하에 무려 9남매를 두었다. 할머니는 섬진강 건너 문척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50년을 살았다. 전에는 하동장 구례장 모두 걸어 다녔는데 이제 그럴 여력은 없다. 도로가 가까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피아골과 연곡사를 오가는 버스가 1시간에 1대꼴로 있어 불편함은 덜하다. 용케 일제 때나 한국전쟁 때 마을이 소개(疏開) 당하는 아픔도 겪지 않았다. 마을 이름의 첫 글자(助)대로 그 몹쓸 난리 속에서 정말 하늘이 도운 건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지난 1999년 지리산 일대의 물난리는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진이라고 믿을 만큼 강한 충격이었단다. 마치 물이 서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 물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풍광 좋던 계곡은 그렇게 한바탕 몰아친 홍수 때문에 황폐화되었다. 다리가 떠내려간 게 벌써 두 번째. 다리 위로 물이 넘쳐 휩쓸려 간 사람도 많았다. 모 심으러 왔다가 얼떨결에 떠내려간 이도 있었으니까. 마을과 도로를 잇는 시멘트 다리는 2006년에 새로 놓았다. 마을 위쪽엔 올해로 조동마을 주민 4년차인 정명엽씨가 산다. 시국사건에 휘말리는 등 고초를 겪다가 1980년대 초반 가족들을 데리고 독일로 훌쩍 떠났다고 한다. 그 후 10년을 조금 더 채우고서야 타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대구의 한 대학에서 강사로 일했다. 처음엔 이 산중생활이 유배나 진배없었지만 지금은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고 너스레다.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TV가 없으니 세상사 보고 듣는 것도 없이 삶의 꼬인 것들이 하나씩 풀어져버리는 느낌이란다. 가끔씩 그리운 산악회 친구들이 다녀간다. 동남향인 조동은 계곡 건너편 중기마을에 비해 아침이 빠르다. 정씨는 ‘조동’마을을 ‘아침이 빠른’ 마을로 해석하길 좋아한다. 마을은 모두 깊은골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데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물 흐름도 좋고 물맛과 수질이 뛰어나다. 마당 한쪽으로 흐르는 ‘서출동유’의 석간수 소리에 맞춰 정씨가 연주하는 나지막한 트럼본 소리가 겹겹이 덧칠하듯 포개진다. 땅거미 지는 지붕들 위로 함박눈처럼 음표들이 나풀나풀 내려앉는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고,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에서 하차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조동마을로 가려면 19번 국도 외곡삼거리에서 피아골 방향으로 들어서야 한다.
  • [산마을이야기] (17) 경남 함양군 휴천면 견불동

    [산마을이야기] (17) 경남 함양군 휴천면 견불동

    재작년 여름 성삼재를 출발, 마천∼밤머리재∼청학동∼회남재를 거쳐 다시 성삼재로 돌아오는 지리산자락 도보여행을 한 적이 있다. 전라남도에서 전북 산내를 거쳐 경남 함양 땅으로 들어섰을 때 우연찮게 견불동에 산다는 주민을 만났고, 그 분 댁에서 따뜻한 차를 대접 받는 기회를 얻었다. 단순히 차 마시는 일이 전부였다면 마을에 대한 기억이 크지 않았을 텐데 두고두고 더 그리웠던 건 그곳의 아름다운 정취였었다. ●산능선이 ‘누워 있는 부처´ 같다 하더라 ´1년 6개월만에 견불동을 찾은 날은 하필 일부 지역에 한파주의보가 내릴 만큼 절절한 날씨였다. 마을은 정지된 풍경화인 양 조용했고 신세를 졌던 집도 이미 누군가에게 매매되어 굳게 문이 잠겼다. 해발 약 600고지. 가구 수는 14∼15호쯤.60번 지방도로에서 이정표를 따라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서야 닿을 수 있는 곳인데 대체로 마을 하단부는 보수를 하지 않은 옛집이고, 상단부는 최근에 지은 현대식 건물, 또는 황토로 지었다 해도 역시 근래 외지인들에 의해 세워진 집들로 이뤄져 있다. 마을에서 건너 뵈는 산능선 모습이 마치 누워 있는 부처와 같다 하여 ‘견불동’이란 이름을 얻었고 통일신라 땐 견불사란 사찰도 있었다고 한다. 건너편 와불 능선은 휴천면 송전리 뒷산으로 사실 송대마을에서 훨씬 크고 정확하게 보인다. 점필재 김종직의 지리산 유람록 ‘유두류록’에는 ‘나 혼자 삼반석에 올라 지팡이에 기대섰노라니 향로봉, 미타봉이 모두 다리 밑에 있었다.’라고 표현돼 있다. 미타봉은 이 와불 능선의 부처바위를 일컫는다. 오늘날의 견불동은 ‘견불동 된장’과 ‘지리산선농원’으로 대표되는 된장 동네로 유명하다. 당연히 함양을 포함해 지리산 인근 콩만 사용하는 것은 물론 만든 이의 정성과 오염원이라곤 전혀 없는 견불동의 물이며 공기며 햇살이 어우러져 그 맛이 뛰어나다. 지리산선농원 대표 이강영(50)씨는 1998년 2월 정착했다.10년간 터를 보러 다닌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 결정대로 이곳에서 또 10년을 꽉 채워 살았다. 그때만 해도 버려진 전답뿐인데다 원주민도 몇 가구 살지 않을 때였다. 화전민이 살던 동네처럼 거의 허허벌판에 가까웠다. 처음엔 참선 공부가 목적이었지만 가장으로서 생계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늘 먹던 된장에 양만 늘린 것뿐”이라며 겸손해하지만 그 댁 된장 맛의 비결은 정성껏 구운 죽염에 있다. 미네랄이 배제된 정제염이나 간수가 섞인 천일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맛이다. 소위 해피밸리에 가까운 고도여서 기압과 산소량이 적당하다. 몸이 쾌청하고 음이온 발생량이 높아 음식의 잡균 번식을 억제한다. ●햇살로 담그고 공기로 간 맞춘 청정된장 이강영씨가 장독 뚜껑을 여는 이유는 딱 두 가지. 지리산 창창한 햇살의 살균력과 양질의 효모균 투입으로 인한 발효 효과 때문이다. 같은 곰팡이라도 부패와는 엄연히 다른 발효 과학인 셈이다. 단순히 소화돼 배설되는 것이 아닌, 몸속으로 온전히 흡수되는 영양분이라고 치켜세운다.3년 묵은 된장부터 상품으로 출시하는데 함양군과 자매도시로 맺어진 서울과 대전, 그리고 농협을 통해 부산 등으로도 판매된다. 찾는 이가 많다 하여 덩달아 많이 만들 욕심은 없다.‘지킬 수 있는 마음의 정성’으로 열심히 만들 뿐이다.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보단 질적·기능적으로 보완 발전시키는 게 전통 계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놓고 겨룰 순 없지만 제 된장에 자긍심을 갖고 있어요.” 외지에서 왔으니 언젠가 다시 떠나지 않을까 염려하였더니 “벌여놓은 일이 많아 떠날 수 없다.”고 웃어 보인다. 용인 이씨인 그이의 14대 할아버지가 용인을 버리고 평택에 정착한 것처럼 그도 평택을 버리고 지리산 견불동으로 내려왔다. 이제 견불동에 뿌리를 내리고 ‘견불동 이씨’로 살 작정이란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www.emountain.co.kr) ■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 부산과 대구 등에서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휴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24번 국도에서 오도재를 넘어 마천∼휴천 방면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한데, 겨울엔 드문드문 빙판 구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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