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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조 공공시장 개방 파고 예고/최종안 내용과 파장

    ◎1차서 빠진 9개 지자체·23개 투자기관 포함/건설·서비스부문도 풀어… 중기 큰 타격 불보듯 국내 업체끼리 나눠먹던 정부 조달시장에도 개방의 험난한 파고가 닥치게 됐다.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정부조달 확장협상」의 연내 타결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정부가 18일 내놓은 「2차 양허안」은 지난해 5월의 「1차 양허안」보다 대상기관과 폭이 크다.협정타결시 10조원 규모의 국내 조달시장에 외국 업체의 참여가 허용된다.성역시돼온 정부조달의 「안방」에까지 외국 업체가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정부조달은 비상업적 거래이면서 각국이 경제정책의 수단으로 활용,GATT의 최혜국대우와 내국민대우의 원칙이 배제됐던 부문.60년대 이후 각국의 경제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며 정부조달의 차별적 구매관행이 비관세 장벽으로 인식돼 79년 동경라운드에서 다자간협정으로 성안됐다.협정가입국은 EC(9개국)와 미국 일본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 20개국.중앙정부와 중앙정부의 실질적 감시아래 있는 기관이 대상이며 지방정부와 통신,에너지,수송,상하수도 분야는 제외됐다.대상도 물품구매에 한정됐었다. 그러다 UR협상과 함께 협상대상이 중앙정부 외에 지방정부와 정부투자기관으로까지 넓어지고 적용범위도 물품 뿐아니라 건설·서비스까지 확대된 확장협상이 87년부터 시작됐다.우리 정부는 90년 6월 기존의 정부조달 협정에 가입하려다 바로 확장협상에 참여하게 됐다. 새로운 양허안에는 중앙정부의 경우 1차때와 차이가 없지만 지방정부는 9개도와 지방정부 산하기관(6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1차때 포함)이 새로 들어갔다.적용범위도 물품 외에 서비스,건설이 포함됐다. 정부투자기관의 경우 1차때 한국통신 주택공사 산업은행 농수산물유통공사 등 4개 기관이 대상이었지만 이번엔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상의 모든(23개) 기관이 다 포함됐다.그러나 투자기관의 협정적용 범위는 1차와 같이 물품구매로 한정했다. 이와 별도로 서비스는 14개 업종에서 35개로,건설은 정지작업,건축,설비,마감공사에다 토목,조립건축,전문건설을 추가했다.물품·건설·서비스 구매의 건당 하한선은 SDR(특별인출권,IMF에 사용하는 국제화폐단위로 1SDR는 약1천1백원)로 설정했다. 새 양허안 이상으로 타결되면 어려움이 크리라는 게 상공자원부의 분석이다.국내 업체도 시장잠식으로 상대적으로 혜택이 줄어들게 되고,중소기업 제품 특별구매 등이 반영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반면 정부조달이 국내외 업체간 경쟁체제로 전환돼 부실공사와 수의계약에 의한 특혜시비가 줄고,불합리한 조달관행이 개선되며 예산집행의 투명성도 한층 높아지는 이점도 크다.정부기관도 값싸고 질좋은 상품과 건설서비스를 받게돼 예산의 낭비소지도 줄일 수 있다. 더불어 현안이 돼온 일본 건설시장의 진출 등 선진국 조달시장(물품구매만 연간 5백20억달러)의 진출 문호도 자동으로 열린다.그러나 현재로선 얼마의 손익을 볼 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 「공존의 길」 선택… 전운 걷어내다(열리는 중동평화:1)

    ◎상호승인 의미/48년이후의 숙명적 대결을 해소/평화협정에 서명… 새 돌파구 마련/「팔」 과격파 반발·인접국 불만 등 난제로 지구상 최대의 화약고가 제거되면서 중동평화의 막이 올랐다.숱한 세월동안 서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응징만을 시도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마침내 공존공영의 길을 택함으로써 이 지역에 뒤덮였던 전운을 걷어내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영원한 물과 불의 관계로 인식됐던 시오니즘과 아랍민족주의의 절묘한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유대국의 멸망후 2천년 가까운 떠돌이생활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유태인들은 지난 48년 5월14일 하오4시 텔아비브에서 데이빗 벤 구리온 초대총리가 낭독한 이스라엘독립선언을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그 선언은 1천년 이상 이곳에 살아온 아랍인들에게는 새로운 유랑생활의 시작을 의미했다. 뒤엉킨 옛주인과 새주인의 「영토 소유권 분쟁」은 숙명적인 무력충돌로 이어져 결국 이스라엘 독립선언후 불과 12시간만인 다음날 새벽 4시 포성이 울리고말았다.양측은 이렇게 과거 45년간 4차례의 전쟁을 포함,끊임없는 살상의 소모전을 거듭하며 엄청난 인적·물적 대가를 치렀고 불구대천의 원수로 적대감을 키워왔다.이스라엘은 67년 3차중동전에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서안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시나이반도(82년 반환)를 점령,오히려 영토를 넓혔다. 64년 PLO창설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은 조직적인 테러와 게릴라전으로 점철됐고 이스라엘은 PLO를 테러집단으로 규정,상종을 거부했다.지난 87년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인티파다(봉기)는 6년동안 팔레스타인인 1천1백35명과 이스라엘인 1백4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91년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아랍권이 분열됐고 PLO는 이라크를 지지한 「죄」로 외교·재정적 타격을 입었으며 구소련의 해체와 냉전체제의 붕괴로 후원자 마저 잃어버렸다.불안과 가난에 시달려왔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지 봉쇄조치 이후 더욱 생활고에 시달려 안정을 갈구하게 됐다. 「45년간의 고독」에 시달려온 이스라엘도 정정불안과 지나친 국방비 부담에 따른 경기침체와 재정적자 실업률 증가에 허덕였고 군사·경제원조를 무기로 삼은 미국의 평화압력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이같은 요인들이 역사적인 상호승인과 예리코·가자지구에 대한 자치협정 합의를 가능케 한 것이다.내년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은 5년간의 과도자치에 들어간다.아랍국과 서방세계간의 관계 개선과 탈냉전 평화시대에 걸맞은 방향으로의 중동질서 재편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평화정착으로 가는 길목의 장애물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팔레스타인 내부 과격파들은 이스라엘 승인과 자치협정이 무효라며 투쟁을 선언하는 등 강력히 반발,자치가 실시되더라도 당분간 상당한 혼란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경제재건을 위한 막대한 재원마련도 관련국들의 난색표명으로 쉽지는 않아 보인다.이스라엘이 이미 합병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반환을 요구하는 동예루살렘의 지위와 팔레스타인 독립국이냐 요르단·팔레스타인 연방국이냐 하는 국가형태 등 과도 자치기간이 종료되기 전에 매듭지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골란고원문제도 시리아는 반환을 주장하지만 이스라엘은 비무장지대화를 원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중동은 이미 혹독했던 겨울을 지나 반쯤은 봄으로 접어든 느낌이다.
  • 제3세계 핵개발 저지에 큰 영향력/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란

    ◎87년 창설… 미­영­일 등 18개국 가입/핵 운반용 기술·장비 유출억제 목적 러시아의 항공기가 북한의 스커드미사일부품을 시리아로 운반했다.이 경우 러시아와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를 위반한 것인가. 최근 이스라엘은 북한제 미사일부품이 러시아항공편으로 중동국가에 수송되고있다고 주장했다.25일 미국무부의 마이클 맥커리대변인은 이같은 질문에 『미국으로서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대해 논평을 할 수 없다.왜냐하면 그 문제는 미국의 정보및 첩보수집에 대한 민감한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고 답변했다. 맥커리대변인은 이날 중국이 파키스탄에 대해 M­11 미사일 기술을 수출함으로써 MTCR을 위배했다면서 제한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국지적인 무기경쟁양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MTC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87년에 창설된 MTCR은 미사일확산을 막는 국제적인 다자간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결코 조약이나 협정은 아니다.왜냐하면 이 체제를 유지하고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국제적 조정기구나 집행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MTCR의 지침을 이행하거나 존중하기 위해서는 해당국가가 수출통제에 관한 국내법을 입법,이를 집행해야 한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는 3백㎞이상의 거리를 5백㎏이상의 적재중량을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이나 무인 항공기의 확산을 막는데 1차목적이 있다.북한이 중동지역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진 중거리 스커드미사일은 물론 최근 실험을 완료한 사정거리 1천㎞의 노동1호등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MTCR의 내용은 「지침」과 「부록」으로 이뤄져있는데 지침은 기본적으로 핵무기의 운반체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나 장비의 통제를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이 지침은 특정국가의 비군사적인 우주계획이나 이와 유사한 국제협력 계획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부록에는 통제를 가하는 미사일기술이나 장비에 대한 분류를 적시하고 있다.여기에는 1군과 2군이 있는데 1군에는 유도미사일,크루즈미사일을 포함한 「미사일완제품」과 여기에 사용될 수 있는생산장비,부속시스템등이 들어간다.2군에는 1군에 사용될 수 있으나 기술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로켓추진부품,구조물,컴퓨터,발사지원및 항법장치,비행조정장치등이 포함된다. 미국정부가 이번에 중국에 대해 취한 제재조치는 2군에 적용된 것으로 2군에 해당하는 미국의 첨단제품은 앞으로 2년간 중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된것이다. 87년 당시에는 회원국이 7개국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미·영·불·독·일등 18개국이다.러시아등 구소연방국가들과 동구국가들은 회원국은 아니지만 가입수속을 밟거나 MTCR의 준수를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다.중국도 회원국은 아니지만 지난 91년 중국에 대한 미국의 미사일관련제재조치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이의 준수를 공식 천명했었다. MTCR이 사실상 다자간협정으로 영향력을 발휘함에 따라 그동안 브라질,아르헨티나등이 핵과 미사일개발계획을 포기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러나 북한처럼 미국이 금수조치등 제재를 가한다해도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국가의 경우는 MTCR영역 이외의 통제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전 전대통령 대 국민 발표 전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 모두가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계신 이때,제가 새삼 재임중의 일에 관해 번거롭게 말씀을 드리게 된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 일기가 불순하여 농사마저 어려워져서 농민 뿐만아니라 많은 국민의 걱정이 더해가고 있는 터에,그동안 정부가 두번이나 바뀐 6∼7년전의 일이 또 다시 시비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대해 그저 민망할 따름입니다. 평화의 댐 건설은 제가 현직에 있을때 대통령으로서 정책판단을 하고 결정했던 일입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국회의 본회의와 관련 상임위원회,특히 1988∼89년의 국회특별위원회 등에서 되풀이 다루어졌고 더러는 일부 정당차원에서의 조사도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평화의 댐 축조에 관계했던 공무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필요한 자료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답변을 했던 것으로 알고있으며,저 자신도 1989년 12월의 국회증언에서 말슴드린바 있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정치권과 언론등에 의해 다시 평화의 댐에 관한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되었고,저 스스로는 침묵으로 일관한 결과 많은 사실들이 왜곡인식되고 있으며,이것이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상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른척 할 수 만은 없고,또 그것이 저와 관계된 사안인 만큼,이 기회에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하게 된 경위와 배경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를 돌아볼때,조선왕조 선조임금때 일본에 갔던 통신사가 『일본이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고,율곡 이이선생이 10만양병을 제창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때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비록 국고가 다소 축이 나고 민생이 어려워졌을는지는 몰라도 왜적의 침입을 받아 수년간 전국토와 백성이 유린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파적 입장때문에 『침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못 보고한 통신부사의 말을 따른 결과 엄청난 국난을 자초한 셈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 10만의 군사를 길러 대비했으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침략을 당했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세의 우리들은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영세중립국도 군대는 갖고 있고,수 백년간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나라들도 만일의 외침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953년 휴전이래 북한의 전면남침이 없었다고 해서 40년동안 매년 국가예산의 3분의1을 방위비에 투입하여,북한의 전면전도발에 대비하도록 한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판단이 단순히 「세금의 낭비」를 가져왔다고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말에 『한나절 싸움에 이기기 위해 1천일에 걸쳐 군사를 기른다』(양병천일 용어일일)고 했는데,9백99일동안은 전투가 없었다고 해서 공연한 정성과 시간을 투입했다고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국방문제는 본질상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이 금강산주변의 산악지대에 길을 닦고 도수터널 공사를 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국내외 관계기관으로부터 처음 입수한 것은 1986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어 같은해 4월에는 북한의 방송이 금강산 발전소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뒤 저들이 댐 공사의 착수를 공식 발표한 10월까지 수개월동안 북한의 동향과 의도를 면밀히 주시,분석한 결과 금강산댐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그들이 전력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전력생산단위가 3∼4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댐이 완공되면 그들 주장대로 산업용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댐 건설로 인해 금강군등의 농경지가 수몰되어 22만t 정도의 미곡감산이 예상되는 바,이것은 채산성이 안맞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경제성도 채산성도 없는 댐을 만들기 위해 그 험준한 지역에 인민무력부 주도 아래 수만명의 군병력을 동원해서 난공사를 강행하는 뜻은 분명히 군사적 목적 때문이며,그것은 우리에게 곧 수공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10만 병력의 상호감축을 제의했는데,이것도 감축된 병력을 댐공사에 투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했으며,실제 그들은 5만명을 초기공사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집단인가 하는 사실과,또 그들이 우리에게 기상천외 하고 악랄한 도발과 위협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해 왔는가 하는 점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일입니다. 6·25는 물론 1·21사태,남침용땅굴,아웅산 암살 폭파사건,KAL기 폭파사건 등 전쟁광이나 할 수 있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 바로 저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전과가 있는 북한이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인다면,그들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가 따져보고 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위에 열거한 사건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기는 커녕,모두가 우리의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워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북한이 서둘러 착공한 금강산댐이 인위적으로 폭파되거나 사고로 무너질 경우 한강수계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그들의 선의를 믿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설혹 「수공의도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이 1백% 확실한 것이 아니고,다만 1%의 의심이라도 남는다면,그리고 그 1%가 우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된다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대응책을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시기는 북한공산집단이 방송등 그들의 선전매체를 통해 『서울올림픽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고위당국자들이 「금강산댐을 만들어서 비상시에 문을 열어 놓으면 서울 시내에서 물에 잠기지 않는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남조선 것들이 올림픽한다고 우쭐대지만 금강산댐만 만들어 놓는 날에는 서울이 물바다가 될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을 귀순한 북한관리들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10여일 전에 귀순했다는 북한군 장교도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이 인민무력부에 대해 인민군의 전투 준비완성에 큰 몫을 할 금강산댐의 건설을 지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들이 귀순한 것은 제가 이미 퇴임하고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금강산댐의 수공가능성을 조작했다」고 비난 받는 저를 변명해주기 위해 없는 말을 만들어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오늘에 와서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여러 이점들을 지난 몇년간 헛되이 흘려 보냈다는 반성이 있지만,어쨌든 서울올림픽이 우리의 국가발전과정에서 선진국 도약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울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당시 우리의 시대적 과제요 국민적 합의였습니다. 아시아 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1986년에서 올림픽 때까지의 그 엄청났던 민족적 열의와 고조된분위기가 너무도 허무하게 사그라져 버린 오늘의 시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지만,그때 우리는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연달아 반쪽 올림픽으로 치른 국제올림픽 관계자들도 혹시나 서울올림픽마저 북한의 방해때문에 실패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가 붕괴된 오늘의 상황에서도 북한의 호전적이고 경직된 자세는 변함이 없지만,1986∼87년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승천하는 용」이라는 찬사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던 우리와의 체제경쟁에서 결정적 열세에 몰린 나머지 극도의 초조감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국운이 뻗어 오르던 그 소중한 시기에,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침략기도를 사전에 봉쇄하지 못해서 전쟁이 일어날까봐 애를 태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안보를 확고히 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상황,있을 수 있는 모든 위협의 가능성까지 철저히 점검해야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가금강산댐에 관해 처음 발표할때 2백억t이라고 한 것은 정보입수 초기에 댐건설 현장으로 추정되는 위치의 지형자료등을 토대로 계측한 그 지역의 용적의 최대치라고 이해했으며,나중에 외국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와도 일치한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북한이 겉으로 내세우는 건설목적과 규모야 어쨌든 일방적 댐건설이 공유하천이용에 관한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인 만큼 정부로서는 공사를 중단하라고 여러차례 촉구하였습니다. 금강산댐이 그들 주장대로 전력과 산업용수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우리 쪽에서 전력을 공급하는등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우방 여러나라는 물론 국제연합과 세계 대댐 학회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이고 무모한 댐건설을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모든 제의를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하였습니다.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을 각오하고 금강산댐 공사현장을 폭격할수는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불가피하게 정부는 대응댐의 축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측이 공사에 관한 사항을 극비에 부치고 있어서 그 시점에서는 댐의 정확한 위치나 규모등을 모두 추정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따라서 우리측도 대응댐에 관해 실무자사이에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응댐 공사를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자는 데는 쉽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1단계로는 우선 북한이 3억t 정도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을때의 위력에 대비하는 규모로 댐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984년 홍수때의 수량 9.4억t과 북한의 가물막이댐 3억t을 합쳐 12.4억t 정도의 수량이 될 것인바,이에 대응하는데에는 평화의 댐 5.9억t과 화천댐등 기존댐의 수위조절 저수량 7억t을 합친 12.9억t으로서 최소한의 응급책은 된다고 계산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2단계공사는 금강산댐의 최종적인 규모를 확인해가면서 그들의 공사 진도에 맞추어 추가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할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1단계 공사가 끝난 상태로 있는 평화의 댐이 물을 담고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어서,일부에서는 「막대한 국민성금을 삼긴채 쓸모없이 서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덩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것 자체가 평화의 댐의 본래의 「쓸모」인 것입니다. 발전을 하거나 산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 아니라 유사시 북으로부터의 수공을 막는 일종의 「방벽」의 성격이 그 1차적 기능인 만큼 일반적인 댐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 대전 엑스포 현장에서도 몇시간의 호우로 인해 적잖은 지장을 초래했었고,서울의 한강변은 몇년에 한번씩 홍수가 져 큰 물난리를 겪는것이 우리 실정인 것입니다. 1984년 홍수때에는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소양댐이 범람하고 파괴되더라도 수문을 열지않고 버텨야 하느냐,아니면 서울이 물바다가 되더라도 수문을 열어야 하느냐하는 심각한 기로에 섰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2백억t이 아니라 수억t만 더 쏟아져내려와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댐으로부터 2백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70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서울이 마비될 정도의 피해를 입게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단계 공사를 조기에 착공한 것은 북한이 초기에는 5만 병력을 투입했으나 1986년 가을에는 15만명의 투입을 결정하는등 공사를 급히 서두르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동향은 단기적 군사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서울 올림픽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갖게 한 것입니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3억t 정도의 저수량인 가물막이 댐은 북한이 5개월 안에 만들수 있다는 계산이었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우기이전에 최소한 10억t 안팎의 수공만이라도 막을 수 있는 5.9억t 규모의 1단계 댐을 조기착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부 잘못 알려져 있듯이 공사를 하다가 흐지부지 중단된 것이 아니고,예정했던 1단계 공사는 당초 계획대로 1988년 6월에 완공된 것이며,현재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쪽의 공사진도에 따라서는 2단계 공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계획이 서 있는 것입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화천댐등 우리의 기존댐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평화의 댐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그것은 비현실적인 얘기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수공에 대비해서 우리의 댐들을 모두 비워놓고 있어야 하는데,그로인한 경제적 손실은 평화의 댐을 만드는 비용보다 더 많을 뿐 아니라 화천댐은 수공을 받으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지질학적 분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듣기로는 지난해에만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금강산댐에 관한 교시를 발표하고 건설사령관인 인민무력부장에게 군병력의 집중투입을 지시하는등 직접 공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강산댐과 수공위협의 가능성은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댐이 지금은 우리의 시급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서,또 평화의 댐을 건설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금에 와서는 실감할 수 없다고 해서 그때의 일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속에 지난 일을 오늘의 상황과 기준에 서서 따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단임의 실현으로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부이양을 이룩하는 것이 저에게 부하된 최대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신념을 시종일관에서 지켜왔고 또 실천하였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착공할 당시 저로서는 잔여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앞둔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시국이 다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있지도 않은 북한의 위협을 날조해가면서까지 1년 남은 정권을 유지해야 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아니었다고 저는 믿고 있고 또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6·25때 「맥아더」원수가 막료들이 모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해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일도 있듯이,최고결정권자는 국가의 이익과 백년대계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부분적 진실에만 집착하기 쉬운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의 판단에 구애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사항도,모든 정보보고와 판단자료를 제가 검토하고 심사숙고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한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끝으로 한가지 간절히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1988년과 1989년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기회에도 호소한 바 있습니다만,지난 날의 허물과 잘못은 모두 저에게 물어 주시고,이제는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미래를 지향하면서,보다 살기 좋고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데 매진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재임중 과오도 많았고 부덕하고 불민한 이 사람이지만 그 점만은 국민 여러분께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성도 없는 금강산댐을 빨리 만들라고 오늘도 인민무력부장을 다그치고 있는 김일성 부자가 그 대응댐을 만든 전직 대통령의 「저의」를 거듭거듭 따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안타깝고 답답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덧붙여거듭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제가 재임중에 정부와 공직자가 한 모든 일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입안되어 어떻게 실행되었든,그것은 최종보고받고 결정하고 지시한 것은 대통령이었던 저였습니다. 따라서 그 책임은 비록 퇴임한 후인 지금에 와서도 모두 저에게 귀착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보고,건의와는 다른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전두환씨 감사원 회신(전문) 1,본인은 1993년 8월16일자 귀원의 「평화의 댐 감사관련 질문서를」를 받고 본인이 취할 수 있는 합당한 대응방법에 대하여 원로들과도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그런데 법률적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해준 분들은 대통령 소속하에 있는 감사원이 대통령의 정책결정의 배경·경위와 타당성에 대하여 직무감찰을 하는 것은 헌법 제97조와 감사원법 제24조의 규정내용에 비추어 볼때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헌정사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선례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귀하도주지하고 계시겠지만 대통령의 국법상의 행위는 문서로써 행하여 지는 것이 원칙이며 평화의 댐에 관련된 정책결정 역시 관련 부처에서 작성된 문서로써 행하여 졌습니다. 따라서 귀원의 감찰활동상 필요한 자료와 사실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보관중인 관련문서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는 지난 수년간 국회차원에서도 다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이르러 또다시 세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칫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대통령으로서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한 배경과 경위에 대하여 모든 국민에게 아는대로 설명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별첨한 「평화의 댐에 관하여」는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세습경영 허점노린 희대 사기극/범양상선상대 1백억대 사기사건 안팎

    9일 검찰이 발표한 범양상선을 상대로 한 김문찬씨(43)의 사기 행각은 세습 경영체제의 허점과 정치권력에 허약한 우리 기업의 병폐를 다시한번 확인시킨 사건이다. 국내 굴지의 해운회사가 무일푼의 사기꾼이 던진 「고위층」이라는 미끼에 걸려들어 4년이 넘게 1백억원에 가까운 거금을 고스란히 뜯겨왔다는 점에서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보사 사기 사건」의 재판이라 할 수 있다. 김씨가 범양상선 대표 박승주씨에게 접근 한 것은 지난 88년 3월.당시 김씨는 부친으로부터 해운회사인 대호원양을 물려받아 경영하다 부도가 난 처지였고 박씨는 부친의 자살로 미국 유학길에서 급거 귀국,26살의 나이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있던 회사를 떠맡았던 상태였다. 김씨는 우선 박씨의 선친과 잘 아는 고위층의 부탁이라며 자연스레 경영에「문외한」인 박씨에게 접근,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않고 자신의 회사 경영 경험등을 바탕으로 경영기법에 대한 자문을 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이부장」「이선생」등 기관원으로 신분을 위장한채 접대하려는 박씨를 호통까지 치며 신망을 쌓았으며 반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뒤를 봐 주는 고위층 4∼5명에게 수고비를 전해 주어야 한다』며 2천만원을 요구,본격적인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특히 지난 90년 8월 상속세 감면을 미끼로 박씨로부터 5억원을 받아 내면서 당시 민정당 고위 인사를 거명,박씨의 선친이 낸 정치자금의 영수증을 받아 주겠다고 약속하는등 든든한 배후세력이 있는 것처럼 속여왔다. 91년 12월부터 3차례 걸쳐 은행 채무금 7천억원의 상환기일을 연기해 주는 로비자금으로 47억원을 챙긴 김씨는 이듬해 9월 범양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사기행각이 들통날 것을 우려,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달아났다. 빼돌린 돈으로는 이미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한 양도성 예금증서(CD)를 구입해 놓은 뒤였다. 김씨는 뒤늦게 어처구니없는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안 범양측이 사회적 체면때문에 신고하지 못할것으로 알고 올 6월 귀국해 박씨와 재접촉을 꾀하다가 첩보를 입수한 검찰의 역공작에 걸려들어 지난달 19일 검거됐다. 김씨는 검거 당시에도 범양측과의 약속장소인 경복궁앞에서 약속시간보다 2시간 가량 먼저 나와 주변상황을 일일이 살피는 용의주도함을 보였고 검찰조사과정에서도 자신의 인적사항에 대해 철저히 함구한채 변호사및 가족들에게도 거짓말을 일삼는등 희대의 사기꾼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검찰조사결과 부정수표단속법위반으로 징역 8월의 실형을 산 것을 비롯,사기·배임등 혐의로 18번이나 입건됐으며 87년에는 Y백화점을 상대로 고위층을 빙자해 사기를 하려다 피소된 전력까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이계익장관에 듣는 교통정책/대담=김종일 사회부장(국정탐방)

    ◎“항공기 관제·착륙시설 현대화 입안중”/6대도시 지하철 5백58㎞ 추가 건설/경부고속철도 차종선정 이달말 발표/영종도 신공항 활주로·연륙교공사 연내 착공 예정 「통신」이 인체의 신경조직이라면 「교통」은 사람의 혈관과 같다. 혈관이 막히면 인체의 각 부위가 마비되거나 병을 일으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처럼 교통이 원활하게 소통되지 못하면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체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최근에 발생한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고나 지난 3월말에 있었던 구포역 열차사고는 물론 세계 최고의 교통사고기록 보유국이라는 불명예도 교통이라는 「핏줄」에 구조적인 결함이 있기때문이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도시까지도 교통난때문에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으며 이로인한 수·출입 화물체증등으로 해마다 입는 경제적 손실 또한 엄청나다. 우리사회가 지금 앓고 있는 고질적인「교통병」을 치유할 묘안은 없을까. 이계익교통부장관을 만나 얘기를 들어 보았다. ○시민들 불편 가중 ­국내에서는 처음 발생한 여객기 추락사고로 국민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앞으로 항공기사고 예방을 위해 어떤 개선책을 갖고 있습니까. ▲우선 이번 여객기추락사고로 큰 불행을 당한 희생자와 유족 및 부상자와 가족들에게 깊은 조의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또한 많은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 사고는 직접적으로는 기장의 무리한 착륙시도와 관제탑의 소극적인 관제활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잠정결론이 내려졌읍니다만 원인은 공항시설의 미비,관제활동의 비합리성,민항 조종사들의 안전운항의식 결여등에 있었다는 지적도 인정합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항공교통 전반에 대한 시책을 전면 재검토, 문제점을 개선하기위한 실무작업에 착수했습니다.민간항공 전문가는 물론 교통정책 실무자등으로 대책반을 편성,광범위하게 연구·검토를 벌이고 무엇이 문제점인지를 가려내 새로운 시책을 빠른 시일안에 마련하겠습니다. ○군시설 민간 이양 국내 항공수요는 지난 10년동안 해마다 평균 23%씩이나 증가하여 총항공량의 8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앞으로 10년간 평균 10%씩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특히 지금의 정기노선 이외에도 중·소도시간 소형 또는 경항공기 운항이 본격적으로 개시될 전망입니다. 때문에 2000년대의 항공수요에 대비한 마스터플랜을 세워 지방공항을 확장하고 첨단 안전착륙시설을 갖춰나갈 계획입니다.또 항공기 안전운항의 관건인 관제시설 현대화 및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현재 대부분 군에서 갖고 있는 관제권을 대폭 민간으로 이양받을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의하겠습니다. ­지금 대도시 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곳에서나 국민들이 교통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사실 교통문제 해결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최대 고비입니다. 영국·독일같은 나라는 원래부터 도로망을 잘 구축해놓아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으나 그 밖의 국가들은 우리처럼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나라는 솔직히 말해 그동안 먹고살기에 바빠 도로·철도·공항시설 확충에 제대로 손을 쓸 겨를이 없었고 그 결과로 지금 곳곳에서 「체증」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차량의 증가와함께 교통난은 더욱 심화되리라고 보는데 교통난 해소를 위해 어떤 대책을 갖고 있습니까. ▲지상교통난 해소를 위해서 이미 단기 및 중·장기대책이 마련되어 있습니다.우선 중·장기적으로는 지하철과 시내버스등 대량·대중교통중심체계로 교통체제를 전환시켜 나갈 계획입니다.이를 위해서는 지하철확충이 필수적입니다.좁은 국토에서 일반도로율을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지하철이 빠르고 편하다면 구태여 자동차를 끌고 나올 까닭이 없겠지요.2001년까지 서울·부산등 6대도시에 지하철 5백58㎞를 추가 건설,총연장 8백25㎞의 지하철망을 구축하여 지하철 수송분담률이 수도권은 50%,부산권은 40%가 되도록 하고 시내버스는 지하철이 완전 확충될때까지 주된 대중교통 수단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이와함께 과다한 자가용승용차 운행을 억제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승용차 10부제운행」과 「승용차 함께 타기」운동이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어 앞으로도 국민들의 적극 참여를 유도해나갈 계획입니다.또 제도적으로 1가구2차량이상에 누진세를 부과하고 자동차 보유자의 차고지확보 의무화와 여러사람이 탄 차가 빨리 갈 수 있는 「다인승 전용차선제」도입을 위한 공청회를 열 예정입니다. ○수송분담류 50% 단기적인 교통정책으로는 신호체계 개선·가각정리등 「교통체계 정리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간선도로의 체증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이면도로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현재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 등 6대 도시의 버스전용 차선제를 확대 실시하겠습니다. 이밖에 다음달부터 「교통생명 5천명 구하기 운동」을 98년말까지 전개,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각종 교통안전시설을 확충하고 차량에 대한 안전운행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입니다. 이 기회에 국민들께 간곡히 부탁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교통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들의 마음과 의식이 먼저 선진화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일본 도쿄는 자동차가 서울보다 훨씬 많고 도로가 별로 넓지 않으면서도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서로 양보·협조하는 탓에 교통소통이 잘됩니다. ­교통난 해소를위해서는 지하철망 확충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는데 그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계획입니까.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는 엄청난 재원투입에 비해 그 효능은 서서히,그리고 늦게 나타납니다.이때문에 이러한 투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지요.감나무 한 그루를 심어 미래의 알찬 수확을 도모하는 장기적인 국가발전 안목으로 투자해야 합니다.지하철 건설에는 막대한 돈이 들고 건설하는데도 보통 4∼5년정도 소요됩니다.한시가 급한 상황이지요.2001년까지 지하철 5백58㎞를 추가건설하려면 1㎞당 5백23억원이 든다고 계산할 때 총 24조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지하철 건설비의 30%는 중앙정부에서 보조하고 나머지는 지방채 등으로 충당시킬 계획입니다.이밖에 현행 휘발유 특별소비세를 조정하고 이를 목적세로 전환하여 교통관련 시설에 투입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습니다. ­경부고속철도 건설공사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가장 큰 관심사인 차종선택은 언제쯤 결말이 납니까. ○고속도 포화상태 ▲서울과 부산이라는 축은 우리나라 인구의 64%,국민총생산의 69%가 집결된 국가대동맥입니다.그러나 기존 철도와 고속도로는 이미 포화상태입니다.교통체증으로 인한 물류비용이 국민총생산의 15%를 차지해 대외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지적된지 오래됩니다.고속철도는 초기투자비가 많이 들지만 대량수송 능력·경제성·안정성등 종합적·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어떤 수송기관보다 효율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러한 큰 사업은 늦출수록 나중에 돈이 더 많이 듭니다.또한 남북통일이 되었을 때까지를 내다보아야 합니다. 차종선정을 위한 독일·프랑스 양국의 최종 수정제의서를 받아 현재 객관식 기준에의한 채점을 하고 있고 그 결과는 이달 하순쯤 발표할 예정입니다. ­영종도 신공항건설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주민들의 어업권 보상문제등은 해결되었습니까. ▲92년 11월에 착공하여 현재 부지조성을 위한 방조제 축조공사가 한창 진행중입니다.올 하반기에 활주로 및 청사부지 조성공사와 연륙교공사를 착공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어패류·김양식업자들에 대한 어업권 보상비 7백22억원을 모두 지급했습니다.기타 주민들의 남은 어업권보상은 오는 95년 보상 산정을 위한 용역작업이 완료되면 기준에 따라 보상할 계획입니다. ◎교통영향 평가 공정성 높인다/평가공탁·이의신청제 도입 검토/대량수요 유발사업 사전에 심사/교통개발연서 부실방지책 마련 교통부는 「교통영향평가제도」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공탁제·간이평가제·이의신청제 등을 추가하는 문제를 검토,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방침이다. 교통영향평가제도는 대량의 교통수요를 유발하거나 유발할 우려가 있는 사업을 시행하거나 시설을 설치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교통상의 각종 문제점을 미리 검토·분석하고 이에대한 대책을 강구하기위해 지난 87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교통영향평가가 실시되고 있는 지역은 도시교통정비촉진법이 적용되는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전주·울산·마산·청주·포항 등 상주인구 10만명 이상의 49개 도시이다. 교통부는 심의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서면심의와 사전심의를 강화하고 심의위원의 풀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중복평가 등 평가의 비효율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중·장기 지구교통계획(STM)의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이같은 방안은 교통개발연구원이 교통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교통영향평가제도 개선방안에 근거한 것이다. 이 개선방안은 현행 제도가 평가비용을 평가기관이 직접 사업주로부터 받도록하고 있어 사업주의 무리한 요구와 평가기관의 과당경쟁에 따른 부실 평가서가 남발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막기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평가공탁제」의 도입을 새로이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평가공탁제는 사업주가 평가의뢰를 정부에 공탁하고 정부는 평가의뢰기관에 대한 일체의 사항을 맡아 평가업무를 관리토록 하는 제도이다. 또 심의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제도는 심의에 따른 사업의 조정 또는 보완의 경우 심의결정에 불복하는 이의신청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이의신청서에는 불복이유와 함께 일정한 수의 전문가 의견서를 첨부해 재심의 또는 재조정을 거치도록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심의기간이 너무길고 심의위원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금까지의 운용상의 문제점도 개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면심의나 사전심의를 확대 실시하고 심의위원회의 구성방식도 하한선을 규정하는 한편 심의안건에 맞춰 다양한 전문가·관계자들로 심의위원회를 구성하는 심의위원 풀제의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또 교통영향평가를 회피하려고 시설의 연면적을 적용기준 이하로 낮추거나 용도별 비율을 조정하는 사례가 빈번해 교통유발량이 높은 일정규모 이하의 시설이 몰리는 경우에 대한 예방조치가 전혀 없는 상태임을 감안,적용기준의 약 80%정도까지는 간이평가제도를 도입해 고의적인 회피를 막도록 할 방침이다. 이밖에 현행 교통영향평가를 택지개발사업이나 도시설계 과정에서 중복되게 받는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시교통정비기본계획과 단위건축물의 교통영향평가를 이어주는 중장기 지구교통계획의 수립도 검토하고 있다.
  • 사양길의 부산업계 실태 점검(심층취재)

    ◎신발생산 고품질·다품종화 시급/불황으로 1천여업체중 백90곳 문닫아/정부,합리화업종 지정… 2천억원 지원/중·비 등 저가품공세 큰 타격… 협미화단지 조성 필요 부산의 신발산업이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불과 2∼3년전까지만해도 우리나라의 신발산업은 섬유·조선·철강·전자산업과 함께 5대 수출 전략산업으로 군림했다.특히 부산의 신발산업은 한동안 우리나라 전체생산량의 75%,전체수출량의 85%를 차지,「신발왕국」으로까지 불렸다.그러나 최근들어 부산지역 종업원 50인이상 신발업체 1천80여개 가운데 18%에 가까운 1백90여개 업체가 경기 침체로 인한 경영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다.특히 지난해에는 굴지의 삼화·진양·성화 등을 비롯,71개 업체가 문을 닫아 지역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안겼다.이처럼 신발산업이 사향길에 접어든 것은 밖으로는 세계적 불황인데다 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후발국의 중저가품 공세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시설의 노후화와 자체브랜드 개발 부진,고임금 등의 내부적 요인 등도 몰락을 부채질하고있다.국내 신발업계의 메카인 부산지역의 실태를 점검하고 향후 진로를 찾아 본다. ▷실태◁ 부산에는 현재 종업원 50명 이상을 기준으로 할때 전국의 75.9%에 해당하는 2백20개의 신발업체가 있으며 생산라인과 수출비중은 전체의 77%,85.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수치들은 국내 신발산업에서 차지하는 부산의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부산의 신발산업은 7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지난 20년 시작된 신발산업은 50년 도입기를 거쳐 도약기인 77년 한햇동안 무려 2억4천만족을 생산하는 가파른 상승세가 지속됐다.이 숫자는 전세계 신발 총생산량의 6%를 차지하는 것이다. ○70년대 황금기 누려 고용면에서도 내수위주로 생산하던 70년대까지는 종사자가 2만2천명에 불과했으나 수출산업으로 전환된 75년에는 6만명,77년엔 7만9천명까지 늘어나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이후 우리의 신발산업은 90년를 고비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지난 3년간 신발산업의 경기퇴조로 인한 불황을 이기지 못해 폐업한 업체수는 종업원 50명 이상을 기준할때 모두 1백90개에 이른다.이는 현재 부산지역에 남아있는 신발제조업체 8백89개업체(부품제조업체포함)의 21.3%에 해당된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내 굴지의 삼화고무·성화·진양 등이 잇따라 문을 닫아 지역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신발산업의 이같은 연쇄 도산에 따른 부도액 규모는 지난 90년 31억원에 머물렀으나 91년 2백47억원,지난해에는 무려 5백13억원으로 급증해 신발산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올 1·4분기중 부산지역 신발업체의 생산실적은 1억3천4백80만족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5% 줄었다. 최근의 수출 또한 크게 줄어 90년 35억2천4백만달러,91년 30억7천6백만달러,지난해에는 24억7천만달러를 나타냈다. 수출 주문이 계속 줄어 들면서 각 업체의 조업률도 함께 떨어져 현재 정상조업률은 85%에 불과하다.이같은 조업률은 공장가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치로 조업률이 여기서 더 떨어지면 휴·폐업이 불가피하다. ▷부진원인◁ 이처럼 신발산업이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원인은 여러가지로 분석된다. 가장 큰 원인은 신발업계에 불어닥친 세계적 불황을 꼽을 수 있다.국내 신발업계의 큰 시장이었던 미국이 지난 91년이후부터 경기침체에 빠지면서 수출주문이 급격히 줄어들어 부산신발업계를 강타했다. 이 여파로 주요 바이어들의 주문량도 해마다 감소,90년 1억1천3백여만족에서 91년 8천7백여만족,92년에는 5천5백만족으로 뚝 떨어졌다. 이같은 주문량 감소는 외국바이어들이 중저가품을 중심으로 값싼 인도네시아·태국·중국 등으로 수입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최근 3∼5년동안 기술을 축적한 후발국들은 이제 한국의 독무대인 고가품에까지 파고 들어 위기감을 더해가고 있는 어려운 실정이다. ○고채에 경쟁력 악화 결국 주문 물량부족은 우리업체들의 생산라인 축소를 강요했고 이 과정에서 하청에 의존해 온 신발부품업체들의 연쇄 도산이 꼬리를 이었다. 급격한 임금상승도 국제경쟁력약화를 초래해 업계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었다.지난 87년이후 신발업계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14.2%를 기록했다.이는 인도네시아·중국등에 비해 5∼10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제조원가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국내신발업계의 경우 31.5%로 중국의 6%,인도네시아 8% 등에 비해 크게 높아 이들 국가와의 가격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우리업체들은 채산성이 없는 중저가품 생산을 기피,오히려 이들 후발국으로부터 중·저가 제품을 대량 역수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부산세관에 따르면 올 2월말 현재 국내에 수입된 신발은 모두 33억원어치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업체의 방만한 생산시설 확충과 자체브랜드 개발부재,생산자동화 시설외면,홍보에 대한 투자인색 등도 쇠락의 원인으로 지적된다.현재 전체생산시설 가운데 6년이상된 노후시설이 37·6%에 달하고 있으며 자동화 설비보유율은 2.3%에 불과하다. 공정별 자동화율도 6.9%밖에 되지않아 선진국들의 50%와 비교할때 큰 차이가 난다. 이밖에 자체브랜드 개발부재도 한 원인.지난해 12월 부산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고유상표 부착수출업체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발업의 고유상표부착률은 16·7%로 부산의 다른 제조업과 비교할 때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 정부당국은 신발산업의 회생을 위해 지난해 4월 신발산업을 산업합리화 업종으로 지정하고 3년간 모두 2천여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합리화자금은 92,93년에 각각 7백억원씩 책정됐으나 지난해 사용실적은 8억4천만원에 불과했다.이처럼 사용실적이 저조했던 이유는 경영난에 허덕이는 업체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운전자금 지원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다. 시설자금은 차후의 문제라는 지적이 업계 일각에서 일자 정부는 해외시장 판로개척을 위해 산업합리화자금중 일부를 해외시장 판로개척비로 전환,투자키로 했다. 그러나 업계는 판로개척비의 대대적인 확충을 바라고 있다. ○공장자동화 급선무 부산의 신발산업이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계시장의 경기회복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업계의 자체 경쟁력 강화도 절실히 요구되고있다.신발산업 합리화자금의 적절한 운용과 함께 앞으로 예상되는 추가 소요자금에 대해서 정부와 제도금융권에서 어느정도의 자금지원을 뒷받침 한다면 얼마든지 현재의 어려움을 이길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밖에 자체브랜드 개발과 고품질·다품종의 소량 생산체제를 갖추는 일도 업계가 시급히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또 하나의 방안은 인건비를 제외한 기타 비용의 절감이다.이를 위해서는 부산지역에 흩어져있는 신발관련 업체들을 한곳에 모은 협업화 단지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신발협업화단지가 조성되면 원·부자재의 운반비절감과 신발골 등 일부 생산부품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어 10%가량 원가를 절감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은 고급기술을 전제로한 것이나 최근 숙련된 기능공의 3D 기피현상으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든데다 여성근로자의 고령화가 늘고 있어 생산자동 설비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신발산업의 부흥을 위해서는 업계자체의 군살빼기,경쟁력 강화 등 자구책마련과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그리고 근로자들의 애사심 등이 일치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처방이다. ◎당국자 의견/소상보 부산시 지역경제국장/“다각적 활성화대책 마련중”/업계의 시장개척 등 자구노력 절실 『신발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닙니다.아직도 단일 품목으로는 수출액이 연간 30억달러에 이르는 등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소상보부산시지역경제국장(55)은 현재의 불황은 호황기를 거친 조정국면일 뿐이며 신발산업이 결코 한물 간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소국장은 그 증거로 우수한 기능인력과 세계 정상의 기술 및 생산시설을 꼽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수출 감소세가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는 등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맥락에서 업체들의 자구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뒤따른다면 세계시장을 석권한 옛 명성을 반드시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부산시 역시 신발산업의 회생이 부산지역경제 활성화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아래 다각적인 활성화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소국장은 밝혔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3월 신발산업을 산업합리화업종으로 지정하고 오는 95년 3월까지 시설개체자금 2천억원을 지원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않고 있어 신발산업의 회생은 시간문제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는 또 업계의 가장 큰 숙원인 녹산공단내 신발산업협업화 단지 조성을 위해 관계기관에 건의해 놓은 상태이며 이 단지가 조성되면 10∼20%정도의 생산비를 절감시킬 수 있어 업계에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부산의 신발산업이 오늘과 같은 불황을 겪고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비즈니스의 기술부족에 있다고 지적한 소국장은 『업계도 이번 기회에 시장개척과 판촉부문의 근본적인 기술개선책을 함께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국장은 선진비즈니스 기술도입과 인력개발을 위해 업계 관계자의 해외연수를 비롯,각종 지원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해외판매망구축을 위해서는 업계가 해외판매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시장개척기금도 지원할 계획이다.아울러 부산에 국제신발박람회를 개최하고 신발상품 홍보강화를 위해 신발상설 전시관등을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소국장은 근로자들도 현재의 난국을 무사히 넘길수 있도록 사용자측과 한마음이 되어 적극 동참해 줄 것을당부했다.
  • 남대문 삼익구두상가(전문상가)

    ◎“구두값 백화점의 3분의 1”/도산매 병행… 신사화 1만8천∼3만원 진짜 멋쟁이는 구두를 보면 안다고들 한다.굳이 값비싼 구두가 아니더라도 자신에 잘 어울리고 깨끗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 서울 남대문 삼익패션구두백화점은 실속있게 멋을 내려는 알뜰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구두전문상가이다.서울 남창동 새로나백화점뒤 현대식건물인 삼익패션타운 6층에 들어선 이 상가는 숙녀화·신사화·아동화등 갖가지 구두를 망라하고 있는곳.87년 소규모 구두생산업자들이 소비자들과 직접 거래를 트기위해 마련해 현재 6백여평의 매장에 98개 점포가 산매상및 일반소비자를 상대로 도·산매를 병행하고 있다.전국 구두점에 나가는 구두의 집산지로 새벽1시부터 아침8시까지 지방및 서울근교 산매상을 상대로 도매를 하며 아침9시부터 하오5시까지는 일반소비자에게 산매도 한다. 자가생산브랜드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유명 대기업체 제품은 취급하지 않으며 개중에는 대기업체에 납품하는 점포도 있다.서울 청계천7,8가 신발시장이 종류와 품질이 천차만별인 신발을 모두 취급하고 있는 반면 이곳은 소가죽·양가죽·특수가죽등 천연가죽소재의 고급구두만을 전문으로 한다.대기업체제품에 비해 가죽소재의 질이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디자인은 훨씬 다양하다.중간유통단계를 줄여 가격도 매우 저렴해 일반 대형백화점의 3분의1선이다.이 상가 상우회 정경우회장은 『질이 결코 대기업제품에 뒤지지 않는데다 가격이 싸서 한번 왔던 손님은 또 찾게된다』고 말한다.또 재래시장에선 드물게 주차장시설을 갖추고 있는것도 큰 장점이다. 최근 잘 나가는 구두는 남녀화 모두 복고풍 스타일.숙녀화는 코가 뭉툭하고 바닥을 코르크로 두텁게 덧댄 복고풍으로 검정색과 아이보리색이 인기다.가격은 3만∼5만원선.여름용으로 최근 출고가 는 샌들·망사구두와 힐·단화 등은 각각 2만∼2만2천원선이다. 신사화는 끈을 매지않는 검정구두가 인기로 가격은 1만8천∼3만원선.아동화는 가죽으로 만든 샌들과 반질반질한 인조가죽 소재 구두가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 가격은 1만2천∼1만4천원선이다.이곳 상가는 공휴일엔정상영업하지만 일요일엔 문을 닫는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담화 전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오늘 1980년5월,광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광주의 아픔을 씻어내고 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정부의 방안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먼저 5·18광주 민주화운동때 피해를 당하신 분들과 그 유가족,그리고 광주시민 여러분에게 대통령으로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돌이켜보면 80년5월의 민주화운동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좌절이었습니다.그러나 문민 민주화를 향해 우리가 걸오온 고난에 찬 역정에서 볼 때,광주 민주화운동은 우뚝한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1980년5월,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희생은 바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80년5월의 민주화운동,그리고 87년6월 항쟁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이 땅에 문민민주정부를 세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처절했던 5·18광주민주화운동때 야당총재로서,맨처음 군부정권당국에 정면으로 항의했습니다.기자회견을 통하여 그 비극적 사태를 온 세계에 알렸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저는 3년여에 걸친 가택연금을 당해야 했습니다.광주 민주화운동 3주년이 되는 1983년5월18일,가택연금중에 저는 23일간 생명을 건 단식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광주의 유혈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서였습니다.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입니다.광주 민주화운동의 복권과 명예회복,그리고 그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하여 광주시민 여러분과 같은 입장에 서서 고뇌하는 정부입니다. 또한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개혁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입니다.광주문제는 더 이상 앙금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됩니다.결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거나,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광주 민주화운동은 정당하게 평가되고 올바르게 역사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광주의 아픔은 치유되고 명예회복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그것은 광주의 고통을 온 국민이 함께 나누고,광주의 민주정신을 전국적으로 승화시키는 방향에서,그리고 광주시민이 원하고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첫째,5·18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그 명예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우선 광주시민과 온 국민이 그날을 기념할 수 있도록 광주시에서 기념일을 먼저 제정하기를 희망합니다.망월동 묘역은 민주성지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묘역의 확정 등 필요한 지원을 다 할 것입니다.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의 의사에 따라 현재 광주시내에 있는 전남도청을 전남도 관내로 이전하고,당시 민주화운동의 현장이었던 현 도청위치에 5·18광주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을 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지원할 것입니다. 현재 상무대 부지의 일부를 광주시에 추가로 무상사용케 함으로써 시민공원을 조성하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둘째,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아직까지 억울한 처지에 있는 분들을 위로하는데 필요한 모든 노력과 지원을 다 할 것입니다.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및 부상자 중에서 아직까지 법률에 의하여 보상을 받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추가 신고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당시 연행·구금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아 사면·복권된 분들에 대하여 전과기록을 완전히 말소하고 지원방안을 강구하는 등,그분들이 이 나라의 민주화에 헌신한 만큼 떳떳하게 그 명예가 회복되도록 할 것입니다. 당시 부상을 당하신 분중,앞으로도 치료가 필요한 분들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치료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겠습니다.5·18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지명수배를 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이를 해제하고 해직된 분들에 대한 복직 역시 적극 검토할 것입니다.저는 우리의 법체제 안에서 가능하고,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합리적인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광주시민 여러분! 저는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과 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것을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주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저 역시 그 문제를 놓고 많은 고뇌를 거듭했습니다.그러나 진상규명은 역사를올바르게 바로잡고 정당한 평가를 받자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결코 암울했던 시절의 치욕을 다시 들추어 내어 갈등을 재연하거나 누구를 벌하자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따라서,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5·18광주 민주화운동의 명예를 높이 세우는 일입니다.진상규명과 관련하여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믿습니다.진실은 역사속에서 반드시 밝혀지고 만다는 것이 저의 확신입니다. 이제,미움과 갈등의 고리를 바로 우리 모두의 손으로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오늘에 다시 보복적 한풀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다같이 잊지는 말되 과감하게 용서함으로써 새롭게 화해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용서하는 것만큼 큰 용기는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모두 13년전의 악몽과 멍에로부터 자요로워집시다.시대가 남겨준 앙금과 한을 훌훌털고 일어나 신한국창조의 저 넓고 큰 길로 나섭시다.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은 신한국 창조를 향한 참여와 창의의 열린 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이미 신한국 창조를 향한 변화와 개혁에 광주시민 여러분께서 기꺼이 동참과 지지를 아끼지 않고 계신데 대하여 감사와 함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저는 광주가 과거에 매달려 있는 도시가 아니라 그 이름처럼 빛을 비추는 도시,우리 조국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밝은 도시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저와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과 노력을 다 할 것임을 거듭 말씀 드립니다. 저는 국민 여루분께 약속한대로,동서의 화해와 정의로운 국민 내부의 화해를 이룩해 나가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이겠습니다.변화와 개혁을 통해 신한국 창조의 기틀을 다져 놓고야 말겠습니다.제2의 건국을 한다는 각오로 앞장서 뛰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새롭게 일어선 광주시민 어려분과 함께 해내고 싶습니다.대통령인 저와 함께 힘을 합해 신한국을 창조합시다.그리하여 우리의 후손들로 하여금,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과 긍지로 여길 수 있는 그런,더불어 함께 잘사는 우리의 조국을 물려줍시다.감사합니다.
  • 한·ADB/“제3국에 차관 공동제공”/협조기본합의서 곧 체결

    ◎홍 재무,ADB총회 기조연설 한국이 후발 개발도상국들에 경제협력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설치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공동으로 제3국에 차관을 제공하는 내용의 협조융자 기본합의서가 한국과 ADB간에 체결된다.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중인 홍재형재무부장관은 5일 ADB본부에서 열릴 제26차 ADB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홍장관은 한국은 87년도에 후발개도국들에 경제협력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EDCF를 설치했다고 말하고 EDCF는 경제체제 전환과정에 있는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월 5천만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며 EDCF와 ADB간의 협조융자 기본합의서를 이달 중순 체결될 예정이라고 밝혔다.홍장관은 이번의 협조융자 체결은 앞으로 한국 금융기관과 ADB간의 협조융자를 촉진하는 촉매제가 될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협조융자란 특정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자금을 2개 이상인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융자해줌으로써 자금및 위험부담을 줄이는 금융기법을 말한다. 홍장관은 4일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이귀선총재와 만나 양국간의 금융협력 및 교류에 관한 양해각서를 빠른 시일안에 서명하기로 합의했다.양국은 이에 따라 금융분야에서 최혜국 대우를 해주기로 하고 개설후 1년이 지난 은행사무소에 대해 지점으로의 승격을 모두 허용,오는 하반기 은행지점이 상호 설치될 전망이다.
  • 김정일,직계세력 전면부상 자제(오늘의 북한)

    ◎권력승계 추이 분석/체제구축위한 “우상화” 선전 강화/장성택­강성산­김용순 등 행보관심 세계사에 유례없는 북한의 김일성부자간 권력세습은 과연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이에 대한 일차적 해답은 김일성 사후 북한정권 내부의 권력투쟁 양상과 북한주민들의 반응에 달려있다고 볼수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분명한 사실은 김일성이 지신의 사후에 대비,김정일로의 권력이양을 단계적으로 착착 밟아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군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방위원장직에 추대된 것도 권력승계작업의 일환이다.이는 당·정·군 3대 권력 가운데 군을 김정일에게 완전이양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일성은 이에 그치지않고 앞으로 국가주석과 당총비서직 등도 단계적으로 김정일에게 넘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이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 북한권력 주요 포스트에 자신의 친위세력을 대거 심어두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까지는 별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폐쇄사회의 특성상 설령 그런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쉽게 노출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김일성 추종세력과 김정일 친위세력이 대부분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직에 취임한 이후 김정일 직계세력이 표면에 부상한 사례로는 측근인 김용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이 통일정책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것과 개성직할시 인민위원장 임수만이 새로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물론 이 정도로는 김정일 친위세력이 전면부상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당·정·군에 걸쳐 포진하고 있는 이른바 「혁명2세대」인 김정일의 핵심친위세력들의 위상변화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장성택·김기남·김국태 등이 주목의 대상이며 군부에선 오극렬·김강환·김두남 등이 관심을 끄는 인물들이다.행정분야에선 강성산정무원총리와 외교통인 김용순·이화선·김영남 등이 마찬가지 맥락에서 동태를 지켜볼 만한 인물들이다. 북한은 김일성가계의 우상화와 체제유지를 위해 선전기능을 중시하고 있다.이같은 측면에서 지난 87년부터 당선전 선동부장을 맡아온 김기남도 김정일의 핵심측근으로 꼽힌다.당내 최고문장가로 통하는 그는 김정일 이름의 각종 연설문이나 축하문을 대필해주고 공적으로는 북한의 모든 보도와 선전을 총지휘한다.「우리식대로 살자」「우리당 중앙 목숨으로 사수하자」 등 북한의 최근 유명한 구호는 거의 그의 두뇌에서 나왔거나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북한 권부 곳곳에 김정일 직계세력을 대거 심는것이 곧 김부자세습체제를 굳혀주는 확고한 안전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왜냐하면 북한주민들이 세계적인 민주화 조류에 동떨어진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언제까지 용납할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 노동1호/화학­핵탄두 장착/북한 미사일 어느수준인가

    ◎87년 개발착수… 첫해 8억불 수출/전투기공격용 SA5도 위협적 북한은 무기를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는 나라로 소문날 만큼 가공할만한 여러종류의 첨단무기를 보유하고 있다.이 가운데서도 핵무기 다음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는 무기가 바로 미사일이다.왜냐하면 미사일은 각종 화학탄두는 물론 핵무기까지 장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특히 지난 87년의 경우 전체 무기 수출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7억7천만달러 어치에 이르는 미사일을 수출할 만큼 미사일 개발과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미국무부가 8일 북한에 대해 이란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촉구한 것은 북한이 확보하고 있거나 개발중인 신형 미사일이 한반도와 아시아는 물론 미국의 안보에도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때문이다. 북한이 이처럼 관심을 끄는 미사일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7년부터. 83년 이집트로부터 사정거리 3백㎞의 소련제 지대공B 미사일을 몇 기 들여온뒤 수차례 시험발사 한 끝에 자체 생산에 들어간 것이다. 이어 이듬해인 88년에는 사정거리가 5백㎞인 스커드C 미사일을 개발,이후 양산체제를 갖추면서 1백여기를 실전에 배치했다.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 가운데 가장 공포의 대상이 되고있는 것은 바로 신형 「노동 1호」이다.스커드C 미사일을 개량해 최근 자체 개발한 노동 1호는 탄도미사일로 사정거리가 1천㎞로 알려지고 있는데 한반도 전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구주까지도 사정권에 드는 성능을 갖고 있다. 핵과 화학탄두 장착이 가능한 이 미사일의 위력은 걸프전때 이라크의 주력 미사일이 북한이 83년 이집트로부터 들여온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이 최신 노동1호 중거리 미사일을 전면 생산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이밖에도 전투기 공격용인 지대공 미사일 SA5와 SA16을 보유하고 있는데 사정거리가 3백㎞이며 기지발사용인 SA5는 군산∼영덕 이북의 한국전투기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것이다.사정거리가 95㎞인 지대함미사일 실크웜도 북한이 자랑하는 최신예 무기의 하나. 최근 핵문제로 유엔의 경제제재조치등이 취해질 분위기등을 감안할때 북한은 이에 대비,앞으로 미사일 수출과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전자장치등 정밀기술에서는 북한의 군수산업이 낙후돼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미사일등 특정부문에서는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되는 점이다.
  • 도약의 출발선… 7대과제 분석(열리는 신경제:7·끝)

    ◎신기술정책 방향/생산현장 직결 중간기술 집중개발/산·학·연·정 「서로 업고뛰기」 체제확립/전문인력 30% 중소기업 지원에 투입 신경제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그 어느때보다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87년 우리나라가 첫 무역 흑자를 맞았을때 「땀과 노력의 결실」이라는 자찬과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한편에서 일단의 뜻있는 이들은 『뿌리없는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우려의 소리도 했던 바 있다.즉 연구와 기술개발의 땀으로 거둔 결실이 아니었음을 잘 아는 탓이었다. 결국 독자적인 개발기술이라는 저력이 없는 탓에 우리는 곧 국제기술 경쟁 대열에서 낙오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경제는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기술개발력 확보에 어느 때보다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신경제는 기업만의 「홀로뛰기」로서는 성공 할수 없다.홀로뛰기가 아닌 대학·출연연구소·정부가 함께 「발을 묶고 뛰기」요,「서로 업고 뛰기」로서만 성공 할 수 있다는 자각 아래 상공부 과학기술처등은 이들이 협동체제를 이루어 함께 연구에서 생산까지 연계해나가도록 적극 권장,지원하고 있다. 현대산업의 속성상 산학연협동에 의한 합성연구만이 연구된 결과를 쉽고 빠르게 산업체에서 응용할 수 있다는데 착안,이런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과기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핵심 선도기술개발사업인 G­7프로젝트와 함께 생산기술과 직결되는 중간기술(미디엄 테크닉)을 신경제의 전략 목표로 삼아 육성키로 했다. 즉 신발·섬유·기계류등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떨어진 제조산업등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원천기술보다는 소위 기술집약적인 「중간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데서 역점을 두고 있다. 과학기술처는 또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현장에 기술 인력의 30%를 투입,기술개발을 지원하도록 하는가 하면 출연연구소의 일부 산업재산권을 중소기업에 무상양허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 연구소의 연구비 지원 방법을 기존의 연구소별 지원방식에서 연구팀에 대한 과제별 연구계약방식으로 전환,시도할 예정이다.또 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실적에 따라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보상제도를 확대하고 직무순환등을 통해 연구원들의 능력을 높일 방침이다. 기술개발은 우리의 독자적인 것과 함께 외국 선진기술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에 재무부와 상공부등은 외국인 투자기업들의 토지에 대한 소유와 임대등에 대해서 종합적인 개선안을 확정,외국인의 국내 기술이전 환경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이런 신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지금 과학기술계나 산업계에서는 60∼70년대 기술개발 원년대를 이끌던 수준으로 보다 강한 기술개발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즉 기초과학과 첨단연구를 비롯하여 방위산업·정보산업·중화학공업등을 포괄하여 국가 종합 시스템속에서 기획해야하며 강력한 추진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외에 안정 성장을 부르짖는 이들도 있지만 어려울수록 기술 개발에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돌파구를 열어 가야한다며 이를 위해 국가예산의 기술 투자 비율의 증가,국방예산의 생산적 활용확대등이 조속히 실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 예산의 4분의1이상을 차지하는 국방비중 연구개발비의 비율을 7∼8%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고 군민기술협력을 기초·응용·개발·생산기술연구의 전분야로 확대함으로써 양용기술을 키우며 민간의 자금이 기술 개발과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생산적 투자로 유입될 수 있도록 획기적 유인제도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 세계적 조직망을 갖고 있는 기관을 활용하여 선진국의 신기술 개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안테나의 역할을 하도록 하고 해외 기술 협력을 범국가적 차원으로 일원화하여 효율성과 연계성을 확립하는등 전열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또한 산업현장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기능공,중견 기능사,엔지니어등의 질과 양의 확보를 위해 공고 기술고 기술전문대학 기술대학,전문박사급을 양산하는 체제가 갖추어져 최우수 기능공과 기능장,과학기술 혁신의 톱엔지니어와 과학자들에게 영광을 돌릴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잡아 가는 일이 필요하다.
  • 노동부의 산업재해 예방대책(국정탐방)

    ◎추진방향과 지원책/“산재율 1%이하” 94년 조기달성/사고 많은 건설현장 전담관리 강화/안전시설자금 올해 4백50억 융자 「재해율 1%미만을 잡아라」. 지난 91년 새해 벽두 노동부 산업안전국은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사업장에서의 근로자 안전관리와 직업병예방과 관련,중대계획을 마무리짓는 참이었다. 「산업재해예방 6개년계획」이었다.산업기술 발전에 비해 산재예방기술이 낙후되고 과거 산재예방정책의 한계노출로 지금까지의 산업안전보건정책을 전면 바꾼다는 획기적인 계획이었다. 주요골격은 91년부터 96년까지 총4천4백31억원을 집중 투입해 근로자 1백명당 재해인원수인 재해율을 1%미만인 0.93%로 감소시키고 사망재해율(만인률)을 1.50까지 끌어내린다는 엄청난 개혁의지의 표출이었다. 지난 90년만 하더라도 국내 재해율은 1.71%,사망재해율은 2.75로 산재에 관한한 「후진국」의 대표격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물론 국내의 경우 지난 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됐고 87년 한국산업안전공단설립,89년 노동부내 산업안전국(3개과)과 지방노동관서에 산업안전과 신설등 정부차원의 산업안전보건대책을 꾸준히 강구해온데다 훨씬 앞서 79년부터 각 사업장별로 실시한 무재해운동에 힘입어 재해율은 지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에선 산재가 끊이지 않는데다 사망등 중대재해는 계속 증가해 노사분규의 주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 근본적인 산재감소 대책으로 마련해낸 것이 바로 제1차 산업재해예방 6개년계획이다. 이 계획에 따라 사업장의 산재예방시설투자 자금을 융자해주기 위한 산재예방기금을 설치,지난해 2백1억원을 비롯해 올해 4백50억원,96년까지 2천6백억원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예방기금의 경우 사업주에 대해 연리 6%수준으로 3년거치 7년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해주고 있다. 이와함께 지난해 8월엔 「산업재해감소대책」을 새로 마련,당초 세웠던 96년까지의 재해감소목표를 94년도에 조기달성한다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 대책에 따르면 향후 ▲생산시설의 자동화와 신종화학물질의 개발,사용으로 인해 새 유형의 재해출현이 불가피하고 ▲시설 장비의 거대화등으로 인한 중대재해 발생요인 증가와 함께 ▲사무자동화등에 따른 사무직 근로자의 건강관리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될 것으로 보여 ▲기업의 자율적 재해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위험기계,설비의 근본적인 안전성 확보와 함께 ▲재해다발 사업장의 집중관리를 해나간다는 것. 이 대책에 따라 올해 노동부는▲기업의 자율적 재해예방활동 지원과▲건설재해등 중대재해 예방강화▲직업병예방사업 지속추진에 총력을 모으기로 했다. ◇기업의 자율적 재해예방활동 지원=우선 생산활동과 일치된 현장 안전관리강화를 위해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작업조·반장등이 무재해활동을 전개하게 하는 한편 안전보건관계자 미선임 업체에 대한 안전보건대행 사업의 내실화로 안전보건의 사각지대를 해소해 나갈 방침이다. ◇건설재해등 중대재해 예방강화=건설재해는 전체재해의 33%,전체사망재해의 35%를 차지하는 만큼 중대재해예방의 핵심사업으로 추진한다. 우선 장마철전에 공사발주처와 한국산업안전공단등 전문기관과 합동점검을 집중실시하고 아파트등 건설현장 4천개소를 대상으로 지방노동관서와 한국산업안전공단 직원을 총동원,현장별 전담지도체제를 확립해 착공에서부터 준공까지 추락 낙하재해를 중점지도해 사전예방을 철저히 한다. ◇근로자 건강관리 내실화=건강진단 대상근로자의 누락을 철저히 방지하고 건강진단결과 질병유소견자에 대해서는 작업전환 요양관리등 사후관리를 강화하며 유해부서에서 근무한 근로자가 이직시 건강관리수첩을 교부해 이직후에도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유해물질관리 강화=6백97개의 유해물질 허용농도를 정밀분석해 합리적인 조정작업을 실시하고 제조·사용허가 물질관리에 있어서는 유해물질의 제조단계에서부터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범국민 무재해운동/작년부터 본격 전개… 3만여 사업장 참여/성과 확산,첫해 재해자수 2만여명 감소 「범국민 무재해운동」은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고 특히 사망재해율이 급증하는 흐름에 쐐기를 박기 위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전국적인 예방운동이다. 물론 지난 79년부터 각 사업장에서 부분적으로 무재해운동을 벌여오긴 했지만 사실상 재해감소엔 미흡했다는 지적에 따라 노동부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예방측면을 강조하면서 벌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범국민 무재해운동」이다. 실재로 지난 91년 한해만 해도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총 손실액이 국민총생산 대비 1.7%인 3조5천억원으로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차질액의 2.8배나 되고 사망재해율이 일본의 5배나 되는 위험수위에 이르자 이 「범국민 무재해운동」을 통해 시정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7월 노동부가 「산업재해 감소특별대책」을 수립하면서부터. 즉 오는 94년까지 재해율 1%미만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다는 특별대책과 맞물려 지난해 8월 노·사·정 대표 2백여명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밝고 건강한 무재해 일터만들기 범국민 천만명서명운동」을 전개키로 결의,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다. 우선 이 운동은 무재해 예방인식확산과 홍보활동에 주력,「무재해운동추진중앙협의회(노사정대표로 구성)와 적국 12개 지역에 설치된 지방협의회를 주축으로 무재해 성명운동에 착수해 지금까지 7백30만여명이 서명하고 삼성그룹등 3천9백7개 사업장에서 노사가 산재추방결의대회를 개최하는등 총 3만3백9개 사업장이 무재해운동을 벌이고 있는 추세다. 이와함께 무재해 캠페인 전개,TV공익캠페인 방영,7천4백여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재해운동 실천기법 교육·세미나 3백여회 개최를 병행해 91년 대비 지난해엔 재해자수가 2만7백34명이 감소하는 가시적인 성과도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이같은 성과를 토대로 올해부터는 이 운동의 방향을 노사의 자율적 재해예방활동을 통한 실질적인 재해감소를 가속화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즉 지난해 서명운동등으로 산업현장의 재해예방 분위기가 어느정도 성숙했다고 보고 사업장내 재해예방활동을 적극적으로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우선 근로자수 10인이상 전 사업장 5만1천개소의 무재해운동 참여유도와 함께 무재해달성,또는 재해감소를 위한 각종 메리트제를 실시토록 권장할 계획이다. 무재해 달성 사업주에 대해 기업신용조사및 신용도 평가시 등급우대하고 근로자의 건강진단등 안전보건관련 제비용에 대해 투자비용의 15%를 당해연도 법인세에서 공제토록 하며 재해예방시설자금을 우선적으로 융자받을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재해감소 또는 무재해 목표달성시 공로가 큰 근로자에 대한 인사고과 반영,호봉승급,해외여행특전등의 근로자포상방안이 사업장에서 실시될수 있도록 유도하며 매년 7월1일을 「산업안전보건의 날」로 지정할 수 있도록 총무처와 협의할 방침이기도 하다. ◎“근로자 건강해야 생산성 향상”/정기검진 내실화로 직업병 사전차단/안영수 산업안전국장(인터뷰) 『산업재해예방은 비단 인명존중의 기본적인 인식뿐만 아니라 건강한 근로자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원리와 재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측면에서도 최우선의 정책배려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노동부의 산업재해 관련업무 실무책임자인 안영수 산업안전국장(53)은 산재예방사업이야말로 신명나는 「일터조성」에 무엇보다도 선행돼야하며 근로자의 노동생활의 질을 높이고 침체된 경기를 되살려낼 수 있는 기반이라고 설명한다. ­산업재해 예방사업의 중요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우선 사회적으로 열악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근로자에 대한 보호는 산업사회에 맞는 인도적 윤리관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다른 가치에 우선한다고 본다. 재해가 빈번한 업체는 경영이 건전할 수가 없고 기업체의 전반적인 사기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 최근 노사분규의 주요쟁점사항이 임금등 생존권적 욕구에서 작업환경개선등 복지후생으로 전환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사화합측면에서도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발생실태는 어느정도인가. ▲지난해의 경우 연간 재해자수가 10만7천4백35명으로 하루 평균 3백58명이 다치고 이가운데 8명이 사망,1백12명의 신체장해자가 생기는 실정이다. 이로인한 경제적 손실도 연간 4조6천5백억원으로 우리나라 GNP의 2·03%에 해당하는 규모다. ­올해 산업재해예방사업중 중점 추진사항은. ▲산업재해예방사업은 흔히 기업의경제행정규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환경과 산업재해문제는 행정규제라기보다는 「사회규제」라는 표현을 써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금년의 정책방향은 규제측면보다는 사업장의 자율적인 산재예방사업 추진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즉 사업주와 근로자의 산업재해예방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무재해운동을 적극 전개하면서 영세중소기업 사업주의 산재예방시설 투자를 촉진키 위해 융자재원을 대폭 확대 지원하고 재정적으로 능력이 없는 소규모기업체에 대해서는 국고에서 안전보건관리를 직접 지원할 방침이다. ­최근 건설재해가 크게 급증하고 있는데. ▲사망재해의 35%를 차지하는 건설업에 대해서는 가용행정력을 총동원해 착공시부터 준공까지 사전에 점검해주는 건설현장전담제를 실시할 방침이다.재해다발업체엔 정부발주공사 입찰참가제한과 재해다발 사업주에게는 산재보험료를 가중부과하는 개별요율제를 적용하는 간접규제를 강화해 산재에 대한 인식을 최대한 고취시킬 계획이다. ­근로자의 직업병 예방대책은. ▲우선 사업장의 위험요인 파악이 중요하므로 상시근로자 5인이상 전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작업환경실태조사를 실시해 전산관리키로 했다.이와함께 유해물질의 안전관리를 위해 유해물질표시와 작업방법등을 각 사업장에 보급해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근로자 스스로가 취급물질의 위험정도와 작업방법을 정확히 알도록 주지시킬 방침이다.또 직업병 조기발견치료측면에서 건강진단대상자의 누락을 철저히 방지해 나가겠다. ­무재해운동의 향후 전개방법은. ▲우리나라 산재발생중 64%가 노사의 안전의식부족에 원인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무재해운동은 작업관리와 교육적방법으로 재해를 감소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지난해 범국민 무재해 1천만명서명 운동에 3만7천개 업체 7백여만명이 참여해 어느정도 산재예방의식에 대한 분위기는 성숙됐다고 판단할 수 있어 금년에는 무재해운동이 실질적인 재해감소와 연결될 수 있도록 작업전 안전점검,정리정돈,보호구착용등 소위 무재해 3대 실천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 생계에서 복지까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보상정책(국정탐방)

    ◎18만 보훈가구의 실질생활 보장/무주택 4천가구 올 2백억 지원/유공자·유족 1만명에 직장 알선/병원증설·휴양시설건립 등 노후대책도 펴기로 보훈처는 61년 5·16 직후인 8월5일 당시 박정희대통령에 의해 「군사원호청」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됐다. 우리나라의 보훈제도는 국가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국가유공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각종 보상지원과 △그들을 위한 예우시책으로 구분된다. 특히 보상지원은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로서 보훈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처지이지만,창설 당시에는 국가재정이 빈약해 기본연금이 월5백원으로 쌀 한말이 채 되지않았다.그야말로 보훈제는 명목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후 정부는 기본연금 수준향상을 기하기 위해 80년까지는 쌀 반 가마니,85년까지는 한 가마니를 목표로 인상에 노력했다. 쌀을 기준으로 했던 것은,당시까지의 시대상황이 먹고 입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켜 왔기 때문이다. ○「원호청」으로 발족 그러나 85년 「국가유공자 예우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후에는 보상금을 현실적으로 생계에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인상을 추진,86년부터는 도시근로자 가계비의 40% 수준을 목표로 추진해왔다. 87년 이후 기본연금은 월3만원이었으나,93년 현재는 28만2천원까지 인상되었다.장족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에 공헌한 보훈대상자들은 아직 흡족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보훈처의 93년도 세출예산은 6천2백54억원.이중 87%인 5천3백70억원이 보상에 쓰여진다. 국가유공자및 유족은 현재 △애국지사 3천8백53가구 △전몰·전상군경 12만3천2백33가구 △무공·보국수훈자 4만2백48가구 △4·19혁명 희생자 1만2천4백가구등 모두 17만9천7백34가구에 이른다. 이들에 대한 주요 보상내용은 보상금 지급·교육지원·직업보도·의료지원·주택지원·대부지원사업등 크게 여섯가지로 대별된다. 이중 보상금 지급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에 대해 국가가 지급하는 금전적 보답으로,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위한 보훈제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갖고있다. 지급대상 인원은 11만5천여명.1인당 월지급액은 최저 28만여원에서 최고 1백18만여원에 이른다. ○외국보다 나은편 교육지원은 대학까지 각급학교에 재학중인 유공자및 자녀에게 공납금을 면제하고 학자금·장학금을 지급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육성하는데 쓰여진다. 현재의 취학인원은 4만2천여명.창설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졸업자는 45만5천여명에 이른다. 직업보도는 근로능력이 있는 유공자와 그 가족에게 직장을 알선해 생활안정을 도모케 하는 것으로 현재까지의 취업인원은 7만7천여명이다.올 직업보도계획인원은 1만명. 의료지원은 상이군경·공상공무원에게 보훈병원을 통해 의료시혜를 해주는 것이다. 보훈병원은 현재 서울 부산 광주 대구등 4개소에 있으며 이들의 병상규모는 총1천6여 베드.올해 대전에도 병원 건립을 할 예정으로 부지를 물색중에 있다.보훈병원이 없는 여타 지역들은 일반병원에 위탁가료를 시키고 있다. ○노령화추세 대비 주택지원은 집없는 보훈대상자에게 아파트 특별공급·주택구입자금및 신축자금 지원으로 주거안정을 도모케 하는 것으로 4만1천여가구가 대상이다.보훈처는 올해 4천2백여가구에 2백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부지원은 근로능력은 있으나 취업이 부적당한 대상자에게 장기저리로 생업자금을 대부해 주거나 각종 금융자금 알선을 지원하는 것이다.대부한도는 1백만원∼1천만원에 연리는 3% 또는 6%에 지나지 않는다.올해 7천8백여가구에 3백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같은 우리나라의 보상제도는 예산상 빈약한 형편이긴 하나,다른 나라에 견주면 좀 나은 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지원내용이 보상금지급·상이자 진료에 한정되고 있으나,우리나라는 부수적으로 교육·취업·대부지원등을 병행하여 미흡한 보상금 수준을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일종의 복합지원체제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앞으로 보상금의 인상은 국가재정이 허락하는 한 수준향상을 기하도록 노력하되,최소한 현수준의 실질가치가 하락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특히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한 중상이자와 무의탁자등에 대한 보상에 역점을 두고,앞으로 점차 「보훈가족」이 노령화되는 추세를 감안해 보훈병원 증설과 휴양시설 건립등 노후복지대책에 보다 중점을 둘 계획이다. 보상금은 국가유공자및 그 유족의 희생에 대한 보은적 성격으로,어느 정도가 적정수준이냐를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도 각각 현재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두었지만,그 당시에도 보상금 지급기준은 들쭉날쭉했다는 기록이 있다.그만큼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상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조직도 활대 전망 또 정부가 지난 30여년동안 보훈대상자의 생활지원과 병행해 공훈선양등 보훈이념을 확산시켜 왔으나,일반인은 아직도 보훈업무를 6·25이후 대량으로 발생한 전사상자에 대한 사후관리 기능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애로사항의 하나이다. 그리고 「원호」라는 이름 아래 생계지원을 위한 수단으로 사회보장적 방법을 사용함에 따라,구휼이 목적인 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인식되는 것도 장애가 되고 있다. 생활지원 측면에서도 보상모델을 확립치 못하고 임시적 욕구 관리에 급급함으로써,경제발전과 보훈대상자의 여건변화에 적합한 능동적 대응력도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따라 정부는 보훈대상자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한편,매년 배출되는 직업군인에 대한 사회정착 지원시책도 펴나갈 방침이다. 이같은 정책추진에 따라 행정대상및 업무량이 대폭 증가하면,이에 발맞춰 보훈처 기능과 조직도 확대 개편될 전망이다. ○편견불식 따라야 또 독립운동사등을 통한 민족정기 선양시책에 있어서는 독립운동과 6·25 관련 유공자의 감소에 대비해 예우의 당위성을 계속 부각시킬 계획이다. 한편 일반국민들의 국가유공자에 대한 인식은 「국가유공자 예우등에 관한 법률」제정과 예우시책 개선으로 많이 개선되었으나,일부에서는 존경보다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할 계층으로 인식하는 과거 편견이 남아있어 이를 불식시키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캐나다등은 보훈업무를 독자적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영국·독일등 유럽국가들은 일반사회보장 부문에 포함시켜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의 보상제도 발전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보훈정책은 국가안보와 사회보장의 한가운데 놓여진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상금인상기준 제도화에 최선”/재정난으로 충분히 지원못해 아쉬워/장귀호 보상지원국장(인터뷰) 보훈처 보상지원국장은 4계절중 봄에만 마음이 가장 넉넉하다. 예산안 편성에서 확정단계에 이르기까지 보훈대상자들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이다. 『저희들로선 18만여 가구에 이르는 국가유공자및 그 유족분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드리는게 소망입니다.그러나 국가재정이 어려워 수준향상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울산생인 장귀호국장은 투박한 사투리를 쓰며 연신 줄담배를 피워댄다. 보훈처 올 세출예산중 87%나 되는 5천3백여억원을 집행하는 주무국장으로서,그의 고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달 직제개편에 따라 보상지원국에 온 이래 일찍 귀가해본 적이 드물다.업무파악을 못해서가 아니다. 경제기획원에 「구걸」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보상예산을 많이따내는 궁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매년말 예산국회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내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이겠으나 예산확보 때문에 공무원들은 1차로 기획원이 무섭고,2차론 국회가 두려운 것이다. 더욱이 광복회관에 세들어 있는 보훈처는 코앞에 국회의사당이 있어 직원들은 항상 오금이 저린다. 『보훈처가 창설된 이후 30여년동안 보상지원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지원을 받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미흡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죠.그점이 저희 보훈처 직원들의 고민이랄 수 있습니다』 기획원이나 국회가 무섭긴 하지만,보상지원국장이 그보다 더 무서워 하는 사람은 보훈대상자들이다. 어떤 형태로든 국가에 공을 남긴 「그 분들」이,보훈처를 향해 『실질적으로 공무원 봉급인상 수준에도 못미치는 지원액을 따내면서 매번 국가재정만 들먹인다』고 힐책하기 때문이다. 지난 75년 제16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줄곧 보훈처에서만 근무해온 장국장은,「우리 대한민국의 오늘은 순국선열을 비롯한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런 희생이 우리들과 우리의 자손들에게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항구적으로 존중되고,그에 대응하여 유공자와 유족의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실질적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된다」는 보훈이념을 길게 설명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보상금의 획기적 수준개선은 어렵다고 보여집니다.그래서 저희는 매년 보상금 인상과 관련해 대상자와 예산당국간의 불필요한 행정력과 시간소모등 문제점을 개선키 위해 보상금 인상기준에 관한 사항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장국장은 그같은 기준설정은 당연히 물가등 사회지표와 연동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라가 발전할수록 보훈업무 영역도 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본 그는,또다시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 낙동강 대위기/쏟아지는 오폐수 모래마저 검붉다(심층취재)

    ◎그 오염실태와 수질개선대책 종합진단/하루 60만t 유입… 하류선 중금속 검출/일부 수계는 시궁창,농용수로도 부적/배출업소 2,542곳에 축산단지까지 “합세”/수원지 거의가 4급수… 몇곳만 「2급」 유지/하수·분뇨처리장 확충만이 맑은물 공급의 길 영남지역 젖줄 낙동강을 살리는 길은 없을까. 이 지역 1천만 주민들의 식수원이 죽어가고 있다.지난 91년 봄 페놀유출사고까지 겹쳤던 낙동강을 되살리기위해 환경처를 비롯한 관계당국이 수질오염방지대책을 펴고 있으나 별다른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환경처조사에 따르면 낙동강 일부 수계는 농업용수로 밖에 쓸수없는 4급수로 나타났으며 대부분의 수원지도 3급수 수준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반증하고 있다.게다가 철새 도래지인 낙동강하구 등지에서는 허용기준치의 수백배에 이르는 중금속까지 검출됐다는 학계의 보고가 나와 충격을 더하고 있다.낙동강물은 자연 정수처리후 마실수 있는지 오염실태와 오염방지대책 등을 진단해 봤다. ▷오염실태◁ 낙동강주변에는 대구 비산 염색공단을 비롯 구미·사상 등의 주요 공단이 산재해 있는데다 최근에는 김천·왜관 등지에도 새로운 공단이 들어서 이들 공단에서 배출되는 오·폐수로 낙동강은 하루가 다르게 오염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낙동강변 주요 수원지의 수질오염도를 보면 농공수원지는 지난 88년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이 5.3㎛이던 것이 90년에는 농업용수로밖에 쓸수없는 4등급수(6.1∼8㎛이하)의 6.7㎛으로 악화됐고 지난해는 7.2㎛으로 더욱 나빠졌다. 또 지난 88년 3·0㎛이던 구미수원지 역시 지난해는 4.2㎛으로 수질이 나빠졌고 다사수원지와 공산수원지도 88년 각각 2.9,2.7㎛이던것이 92년 모두 3.5㎛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오염수치는 정수처리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2급수(1.1∼3㎛이하)로 개선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 환경당국의 판단이다. 낙동강 수계중 2급수의 청정도를 기록하고 있는 수원지는 달성과 가창수원지정도(1.8㎛)에 불과하다. 낙동강의 주요 지점별 조사통계를 보더라도 지난해말 기준으로 강창교 20.0㎛,아양교 12.5㎛,고령 5.9㎛등을 기록했고 달성 2.0㎛,안동댐 1.2㎛ 등의 수치를 나타냈다.특히 낙동강지류로 대구시내를 관통하는 금호강은 대구와 인근지역의 공장폐수와 생활하수 등으로 70년대부터 물고기가 살수 없는 「시궁창」으로 바뀌는 등 죽음의 강으로 변한지 오래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팔달교,지천등 주변은 강 모래가 시커멓게 변할 정도로 오염이 심각해 인근 시설채소농가마저 물을 끌어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낙동강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이같은 지역별 오염수치가 아닌 총량개념의 오염도를 측정한 환경청의 자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낙동강 및 지류에 부하되는 BOD는 하루에 8만6천3백85㎏에 이르고 이 가운데 7천8백2㎏만이 하천의 자정작용에 의해 자연감소하고 7만8천5백53㎏이 하류로 유출된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하류로 유출되는 오염부하량 가운데 5만1천여t을 하수 및 분뇨처리장과 폐수처리시설 등을 통해 정화해야만 낙동강의 수질이 환경기준치 이하로 유지될 수 있다는게 환경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오염원인◁ 이같은 수질오염의주범은 물론 급격하게 늘어난 낙동강변의 각종 오폐수 배출공장의 난립과 무허가 축사의 증가 등을 꼽을 수 있다. 대구지방환경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낙동강수계에 위치한 공해배출업소는 모두 2천5백42개소로 이들 업소는 하루평균 55만여t의 일반폐수와 구리·납 등 중금속이 함유된 화학폐수 4만3천여t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낙동강유역에서 기르고 있는 가축의 수는 경상북도에서만도 90여만마리에 이르러 하루 1만8천여t의 배출물을 낙동강에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어림되고 있다. 그러나 각종 공장 경영자들이나 주민들의 환경의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아 기업체의 정화노력은 지금까지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고 주민들의 생활폐수줄이기 운동 역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계당국이 지속적으로 허용치 이상의 폐수를 무단 방류하거나 폐수방지시설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업체에 대한 단속을 벌여 나가고 있으나 적발업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와함께 각종 폐수를 정화·처리하는 지역별 하수종말처리장도 그 수나 규모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는 폐수량을 감당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4백50여개의 업체가 입주한 구미지역의 경우 지난87년 하루 16만t의 처리능력을 갖춘 낙동강하수종말처리장을 건설했으나 요즘 하루에 20만4천t의 공장및 생활폐수가 발생해 4만4천t은 정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더구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하수·분뇨처리장을 건설하려면 지방자치단체가 상당부분 비용을 부담해야 되지만 지역간 이기주의등으로 환경투자에는 인색해 수질개선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혐오시설 유치를 기피하는 이른바 「님비현상」도 하수처리장 건설등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밖에 지난해 7월부터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된 환경감시가 전문기술부족등으로 제대로 되지않는것도 수질오염을 부추기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일부 소비자단체나 새마을운동기구 중심의 정화운동만으로는 증폭되고 있는 주민들의 맑은물 이용욕구를 충족시킬수 없다는게 관계기관·전문가들의공통된 의견이다. ▷개선대책◁ 낙동강 수질개선을 위해선 3가지가 선결과제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 주민들 스스로 합성세제 덜쓰기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환경오염 감시권을 가진 각 지방자치단체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업체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력한 단속을 펴 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아울러 생활하수·공장폐수는 물론 각종 분뇨를 정화할수 있는 하수·분뇨처리장을 확대하는 것이다. 환경청는 오는 96년까지 내성천·영강·병성천·감천등 상류 지류를 1등급 하천수로,대구시내의 금호강을 94년까지 1등급으로,금호강 최하류 강창교는 96년까지 3등급으로 ,고령·구미·안동유역은 96년까지 2등급 수질로 개선할 계획이다. 환경청은 이를 위해 9천2백50억원을 들여 낙동강 수계에 하천처리시설 24개소,분뇨처리시설 8개소,축산폐수처리시설 6개소,농공단지 오·폐수 처리시설 8개소,하천정화사업 4개소등 48개 수질보전 사업을 펴기로 했다. 이와함께 오는 95년까지 금호강일대에 하수처리시설 13개소,분뇨처리시설 3개소,축산폐수처리시설 2개소,농공단지 오·폐수처리시설 1개소,하천정화사업 2개소등 26개 수질오염사업도 벌일 계획이다. 환경전문가들은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환경정책기본법에 대한 전면적인 조정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당국자의 말/10개 지류수질 1급수 개선/모든 산업폐수 공공처리장 거치게 『영남의 젖줄 낙동강을 살리기 위해 반변천·내상천·갑천등 낙동강 10개 지류의 수질을 오는 96년까지 기어코 1급수 수준으로 개선해나갈 작정입니다』 강성용대구지방 환경청장(43)은 이를위해 우선 95년까지 대구시 검단동등 상수원 상류에있는 6개공단지역에 폐·하수처리장을 완공하고 상수원하류지역에 있는 13개공단지역에도 곧 폐·하수처리장을 두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함께 『지금까지 배출허용치 이내이면 하천으로 직접 흘려 보낼수있게 되어있는 현행 산업폐수방출 규정을 대폭 개선,모든 산업폐수는 반드시 전량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종말처리장을 거치도록하겠다』고 밝혔다. 강청장은특히 『수질개선을 위해서는 관련부처간의 공조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현재 아무런 강제조항이 없는 규정의 개선과 협조행정체제의 정비도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강청장은 그래서 시험적으로 환경청·시도보건환경연구소·한국수자원공사·농어촌진흥공사 직원 5명을 1개반으로 하는 합동수질검사반을 편성,분기마다 1회이상 합동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들 합동검사반은 앞으로 낙동강의 수질측정지점 12개소를 대상으로 수질검사에 나서며 그 결과를 수계별 또는 유역별 협의체에 보고해 환경정책을 조정해 나가게된다. 그는 그러나 『맑은 물을 안심하고 마실수 있게 되는 것은 정부의 종합대책 만으로는 불가능 하다』며『정부의 수질개선 의지와 함께 환경문제에 대한 기업인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강청장은 이밖에 『환경이란 일단 오염이 되고나면 복원시키는데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추가되고 이 재원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며 환경개선을 위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 「친북한」 벗는 일 사회당의 새 노선(사설)

    일본사회당의 활발해진 대한접근 「구애호소」가 주목을 끌고있다.김영삼대통령취임축하사절 파견을 제의했는가하면 야마하나(산화정부)위원장은 한일기본조약을 무조건 승인하고 한국과 미래지향적인 우호교류를 촉진하겠다고 밝혀 대한정책 전면수정의사를 밝혔다.때늦은 감이 없지않지만 우선 환영할 일이라 생각한다. 일사회당은 한동안 한국을 부인하는 친북한일변도정책을 추구했었다.한일국교가 한반도분단을 고착시킨다는등의 이유로 한일기본조약을 반대했으며 일본정부의 대한반도외교 보완명분으로 북한체제를 적극 지지해왔다.87년 KAL기 폭파때는 일본공산당도 북한소행을 인정했으나 사회당만은 한국의 자작극이라는 북한주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미일안보조약과 일본자위대부정등과 함께 일본사회당의 그같은 한반도정책은 현실을 외면한 환상의 정책이란 비판을 받았다.사회당의 이같은 현실유리는 공산권붕괴와 세계적 우경화추세로 더욱 심화되었으며 정책수정이 불가피해진 결과가 오늘의 변화라 할수있다. 대한정책변화도 그 일환이다.88올림픽과 북방외교의 성공은 그것을 촉진시켰으며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출범이 더욱박차를 가하게 하고있다고 할수있다.다나베위원장시절의 91년7월 임시당대회에서 채택한 「당개혁을 위한 기본방향」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한반도의 2개정부존재를 처음 인정했다.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가 남한에 한정된다는 조건부였다.이번 야마하나발언은 그 조건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한걸음 진전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있다. 그러나 문제발언의 야마하나위원장은 친북한의 좌파계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그러한 발언이 사회당정책으로 구체화되기까지는 친북좌파세력이 여전히 강세인 당내의사 결정기구들을 거쳐야하는 과정이 남아있다.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이 어떤식으로 나타날지는 「93년의 선언」을 채택하게될 오는6월 당대회때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우리는 일본제1야당인 사회당이 하루속히 현실적인 정책정당의 하나로 새출발하게 되기를 바란다.그것이 한반도평화·안정은 물론 민주화통일을 위해서도 유익하거나 적어도 방해되지는 않는 요인의 하나가 될것이라 생각하기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 일본사회당은 비현실적인 대한정책 수정뿐아니라 맹종적인 대북한정책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할 필요가있다고 생각한다.세계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개발만류에 발벗고 나서야 할것이며 개방과 개혁도 적극권장하는 노력이 있어야할것이다.그것만 있다면 대한관계는 자동개선될 것이다.야마하나위원장의 이번 발언이 북한의 핵문제를 외면하고 있는것은 사회당정책변화의 한계성같은것을 보여주는 것같아 유감이 아닐수없다.
  • 지난달부터 서울신문과 뉴스 제휴/미 TAN방송 정계성사장(인터뷰)

    ◎“서울신문 뉴스릴리스 교포방송계의 귀감” 지난 91년 9월 북미주 전역에 최초로 한국어 위성TV방송을 개시한 이후 금년부터 서울신문과 음성뉴스를 제휴하고 있는 KBFD­TAN방송사 정계성사장(59)이 방송업무 협의차 최근 내한했다. 『그동안 「한국의 소리」가 미치지 못하던 미국내의 소외된 교포사회에도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위성방송 채널을 통해 생생하게 보급되고 있어 긍지를 느낍니다.번듯한 TV방송국 하나 이민 후세대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제소임이기도 합니다』 미국 전역과 캐나다 멕시코 일부등 북미 광범위한 지역을 동시 시청권으로 하고 있는 TAN은 하와이 호놀룰루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LA등지에 지국을 설치하고 있다.이 방송은 우리 교포는 물론 전체 아시아계 시청자들에게도 자긍심의 상징이 되고 있는 TV매체이기도 하다. 직접위성방송(DBS)방식으로 중계되는 TAN은 KBSMBCSBS등 국내방송사의 뉴스,인기드라마,오락프로그램등을 입수해 하루 5시간씩 방영한다. 프로그램의 질적 다양화를 강구하고 있다는 그는 『모든 드라마에 영문자막을 넣어 우리말을 모르는 교포2세들의 언어학습을 돕고,특히 외국인들에게는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줘야 한다』며 위성TV매체의 교육적 기능을 유달리 강조한다. 그의 이런 방송철학은 뉴스송출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본국의 주요뉴스를 신속히 알려줄 수 있는 속보체제의 구축이 절실합니다.그런 점에서 국내 언론사와의 뉴스제휴는 당연하죠』그는 그 구체적 사례로 서울신문사가 지난 1월부터 제공하고 있는 스포트 뉴스(하로 10∼15분)를 들었다. 『TAN에서도 물론 25명 규모의 자체 제작진과 첨단시스템을 갖추고 「교포뉴스」를 제작하고 있습니다.하지만 보다 현장감 있는 「살아있는 뉴스」가 요구되죠.서울신문의 뉴스 릴리스는 어느새 교포방송계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미주 전역에 위성방송되는 유일한 한인 TV방송으로 위치를 굳힌 TAN의 모태는 하와이 호놀룰루의 KBFD­32방송사.그가 역시 개국 당시부터 운영 전반을 맡아온 이 방송사는 지난 87년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정식 독자방송국 면허를 취득한 UHF채널이다. 『우리도 이제 과거의 「신세를 지는 방송」에서 벗어나 중국이나 필리핀 등에 시간대를 빌려줄 수 있을 정도로 「베푸는 방송」이 된 만큼 지역사회에 보다 공헌할 수 있는 매체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17년 각고의 노력끝에 하와이군도에서 태평양을 넘어 북미 전역까지 「한국의 소리」를 심은 정계성씨.그는 『1백50만 미주교포 모두가 전파를 통해 하나가 될수 있도록 앞으로도 방송사업에만 전념할 생각』이라며 『내년엔 우선 극동·동남아지역,96년까지는 전유럽에 이르는 거대 방송망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경남고·고려대를 거쳐 미국에 유학,미조리 주립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70년초 하와이로 건너간 이민1세대.하와이상공회의소 회장과 한인단체협의회 회장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90년 12월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받기도 한 의지의 한국인이다.
  • “강력한 노총 이끌겠다”/15대위원장에 박종근씨 재선

    ◎“산별노련 확립·재정자립 노력” 제15대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박종근현위원장(55)이 당선됐다.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위원장선거에서 박후보는 참석대의원 4백64명중 2백45표를 얻어 2백19표 획득에 그친 박인상금속노련위원장(54)을 26표차로 따돌리고 지난 88년 13대이후 3대째 노총위원장을 맡게됐다. 박위원장은 앞으로 강하고 단결된 노총의 새위상을 정립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선거는 노동법 개정과 임금조정등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해있고 전노협등 노동계의 재편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그 어느때보다 노·사·정의 첨예한 관심을 모았다. ­당선소감은. ▲지지해준 대의원과 조합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지난 4년동안 조합원들의 권익확보와 노총 위상강화에 애써왔지만 미흡한 점이 많다.앞으로 강력한 조직적 기반을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새 노동운동의 진로를 모색하겠다. ­26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는데 노총운영에 어려움은 없을 것인가. ▲예상보다 20∼30표가 덜 나왔지만 표차만을 갖고결과를 평가해선 안된다고 본다. ­승리요인은. ▲87년이후 급변해온 노동환경속에서 나름대로 노총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온데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에 있다고 본다. ­향후 노총의 가장 중점적인 정책방향은. ▲당면한 산별체제 확립과 재정자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현재의 기업별 노조체제가 아닌 산별체제 확립을 토대로 단결력 강화를 통한 노동자의 불이익에 강하게 대처하면서 산재나 고령으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원묘지마련과 함께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보험 장치등을 적극 추진하겠다. ­임금인상과 노동법개정등 현안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현재 진행중인 단일안마련협상은 최소한 산업사회 노사관계에 도움을 줄수 있는 분위기 차원에서 인내를 갖고 협상해갈 것이다.노동법개정은 노동자에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고치려할 경우 총 단결해 저지할 방침이다. ­문민정부에 바라는게 있다면. ▲아직까지 김영삼대통령과 면담을 약속한바 없다.그러나 면담이 이루어질 경우 신한국창조 과정에서 고통분담을 노동자만이 전담해선 안된다는 점과 민주·합리적인 노동법 개정을 적극 건의할 예정이다. ­전노협등 재야 노조와의 관계는.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노동자조직이 하나가 되도록 힘쓰겠다. 복수노조는 반대다.
  • 민주화와 통일의 초석을 놓다/노태우대통령의 퇴임에(사설)

    우리는 지금 우리 헌정사에 대단히 중요하고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 대전환의 순간을 맞고있다.노태우대통령 시대의 퇴장과 새로운 대통령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역사적 전환의 의미는 실로 장중하다.그것은 하나의 민선정부로부터 다른 하나의 민선정부로의 평화적 이양으로서 우리 헌정사상 최초의 「사건」이라는 데서 찾을수 있다. ○6·29로 시작된 민주화 도정 노대통령이 이끈 제6공화정의 시대적 소명은 한마디로 탈권위주의의 민주화였다.오랜 권위주의에 억눌렸던 국민의 온갖 욕구가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터져 나왔다.어느 정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6·29선언은 막힌 곳을 터준 물꼬였고 민주화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노대통령 정부의 5년을 평가할때 첫 손을 꼽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6·29선언이다.이 선언은 우리 헌정사에 큰 획을 그었을 뿐아니라 바로 6공화정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그가 대통령후보로서 국내외에 다짐했던 8개항의 민주개혁 선언은 자칫 거꾸로 돌아가려던 민주사의 시계바늘을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놓은 쾌거였다. 권위주의 체제와 경직된 사회분위기의 필연적인 귀결은 국론의 분열과 극한 대결 뿐이었다.국제사회로부터는 우려의 대상으로 지적받았고 88올림픽 개최에 대한 의구심마저 유발했다.권위주의체제의 종식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과감히 수용한다는 6·29선언의 기본정신은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 선언 당시 『한국은 미래를 가진 국가이며 한국의 민주발전은 희망적이다』『민주화의 빛이며 신선한 바람이다』『노대통령의 용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이라고 찬양했던 세계의 언론과 석학들은 오늘에 이르러 그 결과를 놓고『아시아에 새 정치의 수범을 보였다』(로버트 마이어 미카네기위 회장)는 평가로 발전했다.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최근 사설에서 노대통령의 민주화및 외교적 업적을 놓고 『그는 아시아 민주주의 또 하나의 승리를 일궈낸 장본인』이라고 쓴바 있다. ○모스크바,북경,평양으로의 길 노태우대통령이 이끈 6공화국 정부가 이룩한 여러 부문의 업적중 특히 외교분야가 가장 두드러진 가운데 괄목할 성과를 냈다는 사실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6회에 걸친 한미정상회담을 바탕으로한 한미간 성숙한 동반자관계의 강화,3회에 걸친 한소(러시아)정상회담과 북경입성을 낳게한 한·러,한·중수교등 북방외교의 성공적 결실은 6공정부가 이룩한 눈부신 업적이다.여기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통일 분야는 어떠한가.노대통령이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찾아간 모스크바·북경은 모두 평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그 자신 명백하게 지적한대로 북방외교의 최종 목표는 평양이었음에 틀림없다. 남북한관계는 7차에 걸친 고위급회담을 통해 민족통일에 접근하기 위한 첫 단계인 남북한평화공존체제 구축을 앞에 두고있다.남북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은 그 실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북평화공존체제 구축의 발판이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외교는 이제 북방외교의 최종 단계인 남북한관계개선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과 이를 바탕으로 한민족통일의 실현을 위한 능동적인 통일외교를 전개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있다.실로 그의 역사적 업적이라 할만하다. ○평화적 정권교체,역사에 남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대통령이 결단한 9·18조치는 6·29선언정신의 구체적이고도 집약적인 결실이었다.공명선거와 돈 안쓰는 선거를위해 집권 민자당적을 이탈하고 선거관리 중립내각구성의 결심을 밝힌 것이다.그 결과 사상 유례없는 최상의 공명선거가 이뤄졌고 전국민이 완전무결하게 수용하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례를 역사에 남기게 됐다.정권의 정체성과 권력의 정통성이 확립되게 된것이다. 노대통령 집권 5년의 평가는 긍정적 시각도 있고 부정적 시각도 있다.그러나 6공 5년의 정치,경제적 수치는 기록하고 넘어가야한다.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각종 법규의 개폐,관련 제도의 개선,자유와 인권이 크게 신장된 것은 정치적 수치이다.그 5년동안 1인당 국민소득은 3천1백달러에서 6천7백달러로 2배이상 늘었고 경제규모는 세계 19위에서 15위로,순외채 규모는 2백24억 달러에서 1백10억 달러로 조정됐으며 이밖에 수출신장률 10·6%,물가는 87년이후 최저수준인 4·5%를 기록한것은 경제적 수치이다. 역사와 인물은 실적으로 평가되지만은 않는다.그 보다는 어느 때에 그 인물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에게 어떤 역할이 주어졌느냐에 보다 큰 의미가 있을 수가 있다.사람들은 그래서 노대통령 자신의 술회대로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고 「북방의 길」을 튼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제 저는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납니다.다시 친애하는 보통사람 여러분 곁으로 돌아가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시민의 도리를 다할 것입니다.통일과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나라와 겨레의 앞날에,그리고 앞으로 5년간 우리를 영광스런 새 역사 창조로 이끌어줄 김영삼 새 대통령과 정부에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며 한 시대의 역사를 일구고 이제 국민의 전송을 받으며 담담히 떠나는 노태우대통령에게 영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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