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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UFO 관련자료 총정리

    ◎한국UFO협회 허영식회장 「충격 UFO보고서」 발간/목격자 증언·연구기관 기록 취합/외계인 사체 주장 사진 공개 “눈길” 지난해 9월 경기도 가평 상공에서 신문기자 카메라에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선명하게 찍혀 떠들썩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또 지난 연말에는 TV에 외계인 사체부검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UFO와 외계인은 실재하는가.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데 발맞춰 전세계 UFO 관련자료를 총정리한 책 「충격 UFO 보고서」가 최근 출간됐다(제삼기획).한국UFO연구협회 허영식회장이 쓴 이 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그동안 UFO·외계인을 직접 본 사람들의 증언과 그들이 남긴 사진,각 기관의 연구기록을 모았다. 책 내용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UFO가 추락해 타고 있던 외계인들이 숨진 채로,또는 산 채로 발견됐다는 주장이다.지은이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지구상에 떨어진 UFO는 30건정도이며,현장에서 그 잔해와 함께 외계인 사체도 상당수 회수했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1947년 7월2일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부근에서 발생한 사건을 대표적인 예로 들어 자세히 설명했다.연구자들이 「로즈웰 UFO추락사건」이라고 부르는 이 경우 UFO잔해와 외계인 사체 4구가 발견됐다고 한다.사건이 일어나자 인근 군부대가 출동,현장에 남아 있던 물증을 모두 거둬가고 목격자들을 부대안에 감금한다.그리고 언론에는 기상관측용 기구가 떨어진 것이라고 발표한다. 그러나 이를 연구한 미국 정부의 극비 프로젝트인 「머제스틱(MJ)­12」문서가 지난 87년 공표된 데 이어 당시 외계인 사체를 부검한 필름이 지난해 영국에서 처음 공개돼 그 실상이 어느정도 밝혀졌다.국내 TV가 방영한 외계인 부검 장면이 바로 「로즈웰 UFO추락사건」때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UFO목격담과 사진은 적잖게 남아 있다. 이처럼 UFO 존재가능성이 높은데도 관련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정부는 왜 이를 부인하거나,침묵으로 일관할까.지은이는 외국 연구자들의 입을 통해 그 까닭을 몇가지 제시했다.먼저 지구인보다 훨씬 우수한 문명을 가진 외계인의 존재가 드러나면 인류는 크나큰 공황과 문화충격을 받으리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또 현재 지구상에서 운영되는 각종 체제가 무너질 것도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 노동정책/진념장관 인터뷰(올해 국정 이렇게)

    ◎“기술 자격제 전면 개편… 인력개발 부축”/중소기업 장학금 1백억원 조성/「외국근로자 체류」 1년 연장 검토 □대담=이경형사회부장 올해를 노사협력의 새 지평을 열면서 21세기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해로 설정한 진념노동부장관은 1일 서울신문 이경형사회부장과의 인터뷰에서 『노조도 이제는 주적개념을 바꿔야 한다』며 『근로자의 적은 경영자가 아니라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선진국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전반적인 경기하락,총선과 비자금정국,민노총과 한국노총과의 선명성 경쟁 등으로 노사문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됩니다.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할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노사 불문하고 엄단 ▲지난 87년 「6·29」 이후 표면화된 노사갈등과 대립이 10년째 되는 해를 맞아 우리의 노사관계도 바뀌어야 합니다.「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노사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정착돼야 합니다. 정부로서는 산업사회의 준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나 근로자의 불법 연대파업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임금교섭철이 다가오는데 임금정책,특히 민간부문에 대한 임금정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임금교섭이란 기업별 경영성과를 토대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우 임금교섭 자체는 물론이고 인력확보 측면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또 대기업도 경쟁기업 임금수준과의 비교심리 등으로 임금교섭에 애로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중앙차원의 교섭준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만약 노총과 경총 간의 임금인상률에 합의하지 못하고 각기 독자안을 발표하게 되면 정부는 양쪽 안을 토대로 국민경제 차원에서 바람직한 안을 마련,개별기업의 임금교섭에 권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 국정연설에서 대통령께서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근로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노동부의 대책이 있으신지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가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근로자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은 경영자 뿐 아니라 정부의 책무라고생각합니다. 정부는 올해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한 장학기금 1백억원을 별도로 조성하고 중소기업 복지시설 설치자금 지원 및 근로자 의료비 융자 등 중소기업 근로자의 복지증진에 역점을 두고 각종 시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최근 3년간 경기호황세가 지속되면서 숙련인력의 공급이 절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인력개발과 관련한 마스터 플랜이 있습니까. ○중기 자체진단 실시 ▲지난해 5월부터 우리 부에서는 「종합적인 산업인력개발체제 계획」을 추진,거의 마무리단계에 와있습니다.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의 연계 및 재직근로자 「능력향상훈련」을 강화하고 중간 기술인력 배출을 확대하기 위해 산업현장 중심으로 국가기술자격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외국인 근로자 도입문제와 관련한 해결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작년 11월 말 현재 3만3천6백명의 산업연수생이 국내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으나 낮은 처우 등으로 이중 30.1%나 이탈해 불법 취업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산업연수생제도의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국의 직업훈련기관과 연계해 외국인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국내 기업에 공급하는 방안을 시행할 계획입니다.또 외국인 근로자도 1∼2년이 지나면 국내 기능사자격을 딸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체류기간도 현재 최장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장관께서 의욕적으로 추진하신 근로자파견제도가 정치권의 반대로 입법이 무산됐는데 이 문제에 대한 장관의 소신을 밝혀 주십시오.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확보하려면 근로자파견제도는 반드시 도입돼야 합니다.현실적으로 파견·대체·파트타임 형태의 근로자가 10만명을 웃돌고 있으나 법적인 뒷받침이 없어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파견근로자제도는 노조의 위치를 약화시키거나 임금을 착취하는 제도를 양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노동법의 바람직한 개정방향과 추진시기 등을 밝혀 주십시오. ○「산업연수생제」 개선 집단적 노사관계법에서 문제가 되는 일부제한조항과 개별적노사관계에서 일부 경직된 보호규정을 함께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노사간 갈등구조가 완전히 불식되지 않은 현실에서 노동관계법 개정을 추진하면 우리의 노사관계를 흐트려 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산업현장에서의 노사관계 발전상황을 보아 가면서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갈 계획입니다. ◎「노동문제」 진장관의 견해/“주근로시간 단축 시기상조/이달중 임금인상 준거 제시” 약간 치켜올려진 짙은 눈썹.자신만만한 태도.정연한 논리……. 진념노동부장관을 그릴 수 있는 단어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이론이 분명하고 정책을 보는 시야가 넓다.노동주무장관이라고해서 정책의 시각이 노동범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경제기획원에서 25년간 잔뼈를 키워왔고 차관보만 5년을 지내 「최장수」를 기록하기도 했다.지난 93년2월 동자부장관을 그만두고 노동장관으로 발탁될 때까지 2년3개월의 공백기간(?)중엔 미 스탠퍼드대에서 교환교수로 한국경제발전론을 강의했고 전북대 초빙교수로도 출강했다. 4월 총선정국과 올 임금단체협상시기가 맞물려 간단치 않겠다면서 정부의 대응책을 물었다. 그는 세계경제전망과 국제경쟁력문제등을 구체적으로 진단한뒤 『늦어도 이달중에 임금인상의 준거를 제시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노총·민노총등의 주 40∼42시간제 주장에 대해서도 해박한 경제사회논리로 『방향은 맞을지라도 속도가 문제』라며 「불가」입장을 밝혔다. 그가 스탠퍼드대 교환교수로 있을때 학생이 몇명이나 강의를 들었으며 한국정치발전단계와 경제발전과정을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수강생은 15명정도였는데 아프리카출신 2명,일본인 1명도 끼어있었지요.1주일에 4일간을 강의했고 강의준비때문에 새벽2시까지 밤잠을 설치고 아침에는 다시 리허설까지 했어요』『경제사회발전단계에 따라 어떤 정책과 전략을 구사하느냐는 경제의 성패를 좌우합니다』『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의 발전이 정치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외자이름으로 염인데 옥편을 찾아보면 음은 「임」이다.왜 「임」인데 「념」으로 읽느냐고 물었다.진장관은 『할아버지가 작명을 하신 것인데 「념」이라고 불렀고 관행적으로 「염」으로도 읽는다』고 말했다. 염의 새김은 『곡식이 늦게 익는다』는 뜻이다.이름풀이로는 늦게 출세한다는 운세인데 『앞으로 더 출세하실 일이 있을 것같은가』고 물어보았다. 그는 『올해의 노동정책에 관해 묻겠다고 해놓고 왜 쓸데없는 것은 묻느냐』고 가볍게 응수한뒤 『내 이름은 한 알의 밀알로 썩는다는 것이 올바른 풀이』라고 「똘똘이」별명에 걸맞는 명답을 제시했다.
  • 정치범 11개 수용소에 20만명 복역/북한 탈출 3인 일문일답

    ◎“96년안에 무력통일 된다”… 군사훈련 강화/작년 10월 노란부대 쌀 배급… “남한산” 수군 ­귀순동기는. ▲이순옥=나는 함북 온성군 상업관리소 간부물자공급소 책임자였고 남편 최정학(56)은 온성남자고등중학교 교장이었다.85년 10월쯤 옷감구입을 위해 중국에 다녀온뒤 온성군 안전부장 김병준이 아들 혼수용 양복을 상납하라고 요구,불응하자 「국가재산 탐오죄」라는 누명을 씌워 13년형을 받고 평남 개천교화소에 수감됐다.6년간 갖은 고초를 겪다 출소한 뒤 충성으로 섬겨온 중앙당에 억울함을 호소했더니 오히려 재수감하겠다고 협박하고 남편과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던 아들마저 모두 쫓겨나 그 동안의 믿음이 사라져 죽더라도 외아들인 동철이만은 자유롭고 보람된 곳에서 살게 하고 싶어 탈출을 결심했다. ▲최동철=평소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아 몰래 들은 남한방송을 통해 경제가 발전되고 자유로운 남한사회를 동경하게 됐으며 김일성대학의 학생들 수준이 너무 형편없어 실망을 하고 있던중 어머니의 누명으로 강제 퇴학당했다. ­아편 재배실태는. ▲최동철=91년부터 담배농장의 부업토지의 아편재배 현장에서 근무했다.북한은 「도라지(양귀비)를 심어 생활필수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아편농장을 운영,외화벌이에 나섰다.안전원들의 철저한 감시속에 대규모로 재배되며 주로 홍콩·일본 등지에 밀반출되거나 중국교포들과 생필품을 직접 바꾸는 밀매가 성행하고 있다고 들었으며 재배중인 아편을 몰래 뜯어 당간부에게 뇌물로 바치거나 몇몇이 모여 몰래 피우기도 한다.최근에는 중독자도 크게 늘었다고 들었다. ­당간부의 부패실태는 어떤가. ▲이순옥·최동철=어려운 식량사정에도 불구하고 당간부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어 최근 빈부차가 더욱 극심해 졌다.고위간부인 1호간부는 한달에 육류4㎏·기름 3㎏·담배 30갑이 지급된다. 몰수당한 우리재산이 중앙당에 귀속되지 않고 컬러TV는 형을 내린 재판장이,냉장고는 검사가,자전거는 도안전원이,외투는 감찰간부가 중간에서 차지한 것에서 부패의 실상을 알았다.「당일꾼은 당당하게먹고,안전원은 안전하게 먹고,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먹는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정치범의 숫자 등 실태는. ▲최동철=함남·북지역에만 11개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다.한 관리소에 2만여명이 수용된 것으로 미루어 20여만명이 있는 것 같았다. ­북한 교도소내의 인권실태는. ▲이순옥=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이다.개천 여자교화소의 경우,수용능력은 6백명정도이나 80년대 중반이후 사회범죄가 크게 늘어나 1천8백∼2천여명까지 수용하고 있었다.나는 수용소에서의 고문으로 이 4개가 부러졌고 수용생활 중 입이 돌아가고 허리와 다리 통증이 심해 거동도 할 수 없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 ­북한군의 갱도적응훈련이란. ▲최광혁=지난해 12월 두차례 실시했다.많은 용도의 갱도 가운데 남한으로 통하는 것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1개 군단의 2개 연대가 합동으로 갱도공사를 하는 것을 보았고 전쟁준비와 관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화학무기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최광혁=핵무기를 직접 본적은 없지만 남한에 핵무기가 많으니 우리도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특히 간부들은 지구를 깨뜨릴 수 있는 무기가 있으니 신심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최광혁=지난해 10·11월 평소와는 달리 노란부대의 쌀이 1차분 들어와 남한쌀이란 수군거림이 있었다.휴가를 가도 직접 얼굴을 보이기 전에는 배급을 주지 않는다.이대로 가면 곧 폭동 등 변화가 예상되는 분위기다. ­북한군의 사기,특히 김정일 체제이후의 상황은. ▲최광혁=최근 식량난과 보급품부족으로 하사관들의 사기가 낮다.하루 식량배급량이 8백g이지만 수송도중 간부들의 편취로 6백50g정도밖에 안되고 부식도 시래기국·미역국·염장무 3쪽정도가 고작이다. 지휘관들은 『96년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이제는 무력통일이다』라며 훈련을 강화하고 작년 11월에는 『조국통일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무기관리를 잘하라』는 말도 들었다. ­김일성 종합대학의 입학자격과 생활상은. ▲최동철=출신성분이 좋은 중앙당 간부의 자식들은 공부를 잘 못해도 입학하고 학교생활에 별 문제가 없다.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실력은 너무 낮다.27살에 입학하는 제대군인의 경우 수학과 영어 기초가 모자라 예비반을 만들어 가르친다.정치사상에 대한 교육이 많고 모내기와 건설사업,행사에 동원되는 일이 너무 많아 전공을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이순옥씨,북 교화소 실상 폭로/“신생아 태어나면 즉시 살해·암장”/우는 여죄수는 7일간 독방에 수감/물고문에 화로 고문… 억지 자백 강요/수형자 거의 영양실조… 흙까지 먹어 25일 귀순자 3인의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정치범과 일반죄수들은 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순옥씨는 우리로 치면 구치소인 함북 청진 농포집결소와 교도소인 평남 개천 사회안전부 제1교화소에서 자신이 6년 2개월동안 겪은 참상을 폭로했다. 이씨는 지난 86년 10월 농포집결소에 수감돼 1년여동안 지내면서 벽돌을 굽는 뜨거운 노속에 갇혀 극심한 호흡곤란 속에 화상을 입는 등 악랄한 고문을 받았다. 또 ▲담요를 온 몸에 씌우고 집단구타한 뒤 실신하면 짐승처럼 질질 끌고가서 물을 뿌리는 고문 ▲형틀 의자에 묶어놓고 채찍을 휘두르는 고문 ▲감옥 창살에 양손·발을 묶고 고무호스로 손가락을 때리며 발로 차고 몽둥이로 구타하는 고문이 되풀이됐다. 그래도 말을 안듣자 주전자로 물을 강제로 먹인 뒤 실신하면 배위에 판자를 올려놓고 밟아서 먹은 물을 토하게 하고 의식이 회복되면 재차 반복하기도 했다. 3백㎏짜리 벽돌을 4명이 들것으로 나르게 시키고 제대로 못 움직이면 무차별 구타하거나 잠을 안재우며 공포·억압적 분위기에서 억지 자백을 강요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혹한에 알몸으로 1∼2시간 무릎을 꿇도록 해 동상에 걸렸고 남자들 앞에서 알몸이 된 채 채찍질을 당할 때는 여자로서의 수치심 때문에 차라리 죽고싶었다고도 말했다. 하루 3백g의 소금국으로 연명하거나 「감식처분」이라는 명목으로 2∼3일 동안 굶기는 일도 흔했다. 87년 11월 개천교화소로 옮겨져 겪은 일은 더 참혹했다. 이 교화소에서는 임신 7∼8개월이 된 여죄수는 위생원이 주사를 놓아 사산시키고 아이가 살아 태어나면 목졸라 죽이는 만행이 저질러졌다. 시체는 인근 야산에 암매장됐으며 이 과정에서 임산부가 울면 「당에 대한 반감」이라며 7일동안 독방에 수감됐다. 생활고가 가중되면서 특히 가정주부 수감자들이 급격히 늘어 20명을 수용하는 한 감방에 70∼80명씩 수용돼 겨울에는 한 이불을 10여명씩 덮고 「다른 사람의 발을 안고」 자야 했다.작업복 한 벌,죄수복 한 벌로 10년정도를 버텨야해 옷감이 절어 살이 베어질 정도였다. 작업에 필요하거나 질문에 대답하는 것 말고는 말을 할 수 없고 화장실 용무도 단체로 감시하에 봐야했다. 이러한 참혹함 때문에 대부분 척추뼈가 굽어 곱사등이가 되고 다리가 「문어처럼」 휘어지는 등 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일부 수용자는 극심한 영양실조 때문에 외부작업을 할 때는 진흙을 파먹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땅위의 지옥」이라고 부른다』고 전하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살아나왔는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 망명 최수봉·차성근씨 진술 내용

    ◎“북 외교관도 못믿어 자녀동반 금지”/대사의 손찌검이후 남편과도 불화·자살 기도했다 깨어나서 귀순 결심­최씨/한국공관원 포섭 정보빼내라 독촉·최씨탈출 문책두려워 뒤따라 망명­차씨 잠비아 북한대사관을 탈출,16일 서울에 도착한 외교관부인 최수봉씨와 태권도 교관 차성근씨는 이날 저녁 정부 관계자에게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개인사정등 자신들의 망명동기를 밝혔다.이들이 관계당국에서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수봉씨 진술◁ 부친은 과학원 금속부문 부원장을 지낸 최흥수씨(69)다.고위층 출신 자녀만 입학하는 남산고등중학교를 나와 김일성종합대 문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삼촌등 일가중 조총련계가 있다.남편은 현성일로 시아버지는 함경남도 도당 총책인 현철규다.93년 11월 잠비아 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아이는 북한에 남겨두고 잠비아로 갔다.대사관 타자수를 겸했다.외국 문물,특히 남한상황을 들을 기회가 많아 북한체제에 환멸을 느끼게 됐다.94년 6월 김응상(56)이 새로 대사로 부임해 왔다.그는 정치적 조직생활을 원칙대로 한다면서 사생활을 일일이 감시하며 직원들을 괴롭혔다.한번은 대사가 김정일에게 보내는 신년축전을 타자쳐서 갖고오라고 해 『문안을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조잡한 문안을 가져와 그대로 타자쳐 보냈다.나중에 축전이 문제되자 대사가 『나를 골탕먹였다』며 불만을 터뜨렸다.대사 부인도 아랫사람에게 악랄해 별명이 「악어」였다.공관내 공동생활에 환멸을 느끼던중 지난 1월5일 사건이 터졌다.남편이 출장간 사이 대사가 전 직원에게 청소를 지시했다.직원 가족들이 반발하자 대사가 여자들에게 손찌검까지 했다.남편이 돌아오자 대사는 남편을 불러 다시 혼냈고 남편은 내게 듣기싫은 소리를 해 남편과도 불편한 관계가 됐다.처음에는 죽으려고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그러나 죽지않고 정신이 들어 『죽을 팔자도 못되나 보다』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한국대사관을 찾아 귀순을 신청했다.당시엔 검은 원피스를 입었었으나 한국대사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옷을 얻어 입었다.북한은 외교관도 믿지못해 자식을 북한에 인질로남겨두게 하고 자식이 없으면 처를 남게 한다.최근 예산이 모자라 아프리카 지역공관을 많이 폐쇄하고 있다.잠비아대사관은 공관유지비가 1년에 불과 2만달러(한화 1천6백만원상당)였으나 그나마도 최근 1만5천달러로 줄었다.밀수도 하고 물건은 아주 싼 시장에 가 신분을 속이고 사오곤 한다. (최씨의 남편 현성일은 최씨 망명 뒤 동반망명을 시도했으나 북측 공관원들이 한국대사관 주변을 감시해 전화로 망명의사를 한번 밝힌 뒤 영국대사관으로 갔다가 망명에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성근씨 진술 「유세도」란 가명을 썼는데 본명은 차성근이다.부친은 가봉대사를 지냈고 지금은 외교부 영접국장(의전실장)인 차순권이며,3남매 중 장남이다.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했다.87년부터 공작요원으로 교육받았다.89년 10월 폭탄 제조 실습중 폭발사고로 얼굴에 10㎝ 가량의 흉터가 생겼다.92년 11월 조사부에 배치된 뒤 러시아에 태권도사범으로 위장파견됐다.주로 기업인,선교사를 포섭하는 일을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1년만에 작전부에 배치돼 북한으로 소환됐다가 94년 11월 북한에 처(26세)와 아들(3세)을 남겨둔 채 공작요원으로 잠비아에 파견됐다.태권도교관으로 위장해 1년여 근무하는 동안 한국대사관 직원을 포섭,암호체계등 고급정보를 빼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나 아무리해도 안됐다.위로부터 임무수행 독촉을 받은데다 평상시 대사부부가 너무 지독하게 굴어 『저럴 수가 있느냐』는 생각을 갖게 됐다.또 강명도씨 등이 남한가서 잘사는 모양인데 우리도 기회있으면 가자는 얘기를 젊은 사람끼리 하곤 했다.그런 상태에서 최수봉씨가 탈출했고 그로 인해 보안책임자인 나도 추궁받을 것이 두려워 귀순케 됐다.
  • 서울대 농대·수의대 99년까지 「관악」 이전

    서울대는 오는 99년까지 수원캠퍼스에 있는 농생대와 수의대를 서울 관악캠퍼스로 이전키로 하고 올해 안에 세부 마스터플랜을 수립,내년부터 본격적인 시설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서울대는 8일 지난 87년부터 추진해 온 농생대 이전계획을 수도권정비위원회(위원장 이수성국무총리)의 의결을 거쳐 이같이 최종 확정,발표했다. 이전대상지는 관악캠퍼스내 출판부와 체육관 부근 부지 등 2만6천여평으로 교육 및 연구시설,공동지원시설,부속시설등이 들어서게 된다. 서울대는 캠퍼스 이전에 9백8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현 수원캠퍼스 부지를 매각해 이전비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서울대는 그러나 이전에 따른 관악캠퍼스 과밀화를 방지하기 위해 전체 건폐율을 현행 4.33%로 유지하고 수목원과 농장,연습림은 수원캠퍼스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서울대 이인원기획부실장은 『캠퍼스 이전을 통해 각 학문분야간의 협동체제 조성이 활성화되고 농업 및 농수의학분야의 기술개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전사업은 학부제 도입과 정원감축등 농생대 장기발전계획과 연계해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김정일 정점으로 군실세 권력전면에

    ◎「승계」지연속 김영춘·김광진·조명록·이하일차수 떠올라/당제치고 군부가 실권 장악… 모택동식 통치/최악의 식량난속 체제유지에 안간힘 북한은 누가 다스리고 있는가.김정일인가,아니면 군부인가.김일성이 사망한지 1년6개월이 지났는데도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하지않은 상태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이 감지됨으로써 이같은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1일 공동사설 형식으로 발표된 북한의 신년사는 김정일을 「당 수반」이라고 호칭하고 있고 북경주재 북한대사 주창준은 3일 김정일이 오는 7월이후 권력을 승계할 것임을 시사했다.또 4일에 있은 인민무력부 궐기모임에서 참가자들은 「김정일 영도체계를 확고히 세울 것」을 다짐했다.이로 미루어 현재로선 최고실권자인 김정일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상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당이 군보다 우위인 북한 체제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반면 당은 무력화되고 있음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으며 이같은 군부의 부상은 권력구조상 심상치 않은 조짐이라는 것이정부 당국과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회복불능 상태의 경제난에,지난 여름의 대홍수로 최악의 식량난까지 겹쳐 심각한 사회불안에 휩싸이고 있는 상황에서 군부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대내외에 긴장을 조성하면서 통치전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그 결과 권력의 중심이 당에서 군으로 이동했으며 김정일은 김일성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군부에 의존해 군사비상통치를 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북한군의 최고통수권자는 국방위원장으로 김정일은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으로 군을 지휘하고 있다.또 주석직이나 당총비서에 취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명령을 군최고사령관 명의로 하달하고 있다.이처럼 모택동식 군사통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부가 당을 제치고 권력의 중심축을 형성했으며 그 중심축에는 총참모장 김영춘 등 4명의 차수그룹이 포진,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떠오르는 별로 주목받고 있는 김영춘(64),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69),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 조명록(66),당 군사부장 이하일(66)이 바로 4인방이다.이들은 모두 혁명 2세대로 60대이다. 총참모장 김영춘은 지난해 갑자기 부상,주목을 받고 있다.그는 92년 대장으로 진급한 후 94년 김일성 사망 당시와 지난해 오진우 사망 당시 장의위원을 맡으면서 이름이 오르내렸을 뿐 그동안 군관련직책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그러다가 작년 당창건 50돌을 앞두고 이뤄진 군고위층인사에서 차수로 승진하고 총참모장이라는 요직에 발탁됐다. 김광진은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사망했을 때 차기 부장으로 유력시 됐던 김정일의 핵심 측근.원로인 최광이부장이 됐기 때문에 그를 보좌하는 자리에 임명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인민무력부를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김정일과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최광(78)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원수로 승진시키고 부장으로 앉혔을 뿐 인민무력부의 실권자는 김광진이라는 것이다. 군부대에서 정치공작업무를 총괄하는 요직을 맡고있는 조명록은 지난 78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17년간 공군사령관을 역임한 공군통.육군의 지휘능력까지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김영춘과 함께 인민무력부의 두 대들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당 군사부장 이하일은 당의 군실세로 지난 87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그는 당 군사위원과 국방위원을 겸직하고 있으며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현재 북한군 고위층 가운데 당군사위원과 국방위원을 모두 겸직하고 있는 사람은 원수인 최광,이을설과 차수인 김광진을 포함 모두 4명이다. 대장급으로는 김정일의 군사보좌관인 원응희,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국장 이봉원,평양방어사령관 김명국,당창건 50돌 기념행사때 제병지휘관이었던 3군단장 장성우,당 군사위원인 박기서,김하규 등 5명이 핵심요직에 포진,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중 김명국,이봉원,장성우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이들은 김광진,이하일차수 등과 학연으로 군맥을 형성하고 있다. 군부의 부상과 관련,민족통일연구원의 정영태연구원은 『식량폭동 등으로 김정일 지도체제가 붕괴돼 사회혼란이 발생하면 군부가 진압을 위해 적극 개입할 것』이라며 군부의 친위쿠데타 가능성을 제기했다.그러나 군부의 영향력 증대가 김정일의 지도력을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인정하고 있는 한 김정일을 배제한 대안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따라서 북한 군부와 김정일은 북한이 식량난 및 경제난으로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는 현 상황에서 권력을 공유하는 집단체제로 체제존립 위기를 극복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 북한 기폭제개발 집착…70차례 폭발실험/러시아정부의 북핵평가내용

    ◎핵관련시설 영변·길주·구성 등 20곳/기술 낙후… 「노동2호」 개발 어려울 것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본격 착수한 것은 80년대 후반.옛소련과 동구권에 민주화바람이 일면서부터이다.대내적으로는 체제수호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남한과의 경제·군사적 격차를 메우는 대안으로,대외적으로는 북한내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핵무기개발을 서둘렀다는 것이다.또 김일성과 김정일이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을 직접 관장했으며 다른 지배계층을 다스리는 방편으로도 활용해왔다는 평가다.따라서 『핵개발은 김부자의 최대업적이며 북한의 상징과도 같아 쉽게 포기하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최초 핵개발에 착수한 것은 56년 소련과 「핵연구에 관한 협정」을 맺으면서부터.소련이 일방적인 협력을 주는 방식이다.이 협정으로 북한은 영변에 핵연구센터를 설립했다.김책공대와 김일성대학내 핵물리학부등 핵관련학과도 설립했고 이어 박천지역에 일련의 핵시설들을 세웠다.이후 북한 핵과학자와 기술자가 소련의 두브나에서 훈련을 받았다.길주 이웃에는 방어개념에서의 핵훈련센터도 세워졌다.함흥지역 핵과학기술자 연구교육센터,코발트시설과 원자로 건설,방사화학실험실의 건설등이 80년 후반까지 소련의 지원하에 이루어졌다. 소련측은 60년대 중반 기술자를 파견,영변에 2㎿ IRT­2000연구용원자로를 처음으로 건설해주었고 67년에 이 원자로는 처음 가동을 시작했다.이후 연구용원자로는 8메가톤으로 개량됐으며 80년 중반까지 제약용·연구목적으로만 운용됐다.이어 소련은 이른바 원자로의 핵심부품을 공급,영변지역에 설치해주었으며 다시 80년 초반 영변 이웃에 30㎿ 원자로 건설에 도움을 줬다. 소련측은 북한이 해금강·운기·함흥·평산 등지의 상용우라늄광을 발견하는데도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평산우라늄생산센터는 60년후반 소련·중국·동유럽에 우라늄을 수출,북한이 핵연료부문에 상당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짐작케하고 있다.소련은 영변가까운 구성지역 우라늄처리시설도 건설해주었다. 북한은 최고지도자와 당중앙위의 지휘아래 국방위원회·핵에너지부·공안부·광산위원회·북한과학아카데미·인민군등 6개조직이 직간접적으로 핵계획에 연계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소련의 협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북한은 84년에 스스로 50∼2백㎿ 원자로의 건설을 시작,94년부터 부분 가동에 들어갔는데 바로 여기서 플루토늄이 추출됐다.플루토늄은 30,0.1,50∼2백㎿ 원자로에서 모두 추출됐다.북한측이 87년 건설을 시작한 신포지역 원전(1천7백60메가)은 북한이 IAEA핵사찰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러시아측이 지원해줬었다는 사실이 흥미를 끌고 있다.85년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면서 소련과 북한과의 핵협력은 강화됐으며 김일성은 핵협력을 위해 고르비의 대내·대외정책을 지지하고 크렘린의 요구에 순응했다고 한다. 94년 북한은 7∼22㎏의 플루토늄(1∼3개의 원자폭탄분)을 추출,영변의 특별구역에 저장시켰다.91∼94년 핵탄두에 쓰이는 고성능 기폭제 제작에 온 힘을 쏟아부은 북한은 영변교외지역에서 지금까지 70회의 폭발심험을 수행했으나 괄목할만한 성공은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70년대 미사일프로그램을 처음 중국과 함께 설계하려다 실패했고 소련의 스커드­B를 수입,84년 스커드 모드A를 설계·제작했으나 배치하지는 못했다.85년 북한은 개량된 스커드 모드B를 이란의 재정지원으로 제작,87년 1백기를 이란에 선적시키기도 했다.91년 이후에는 이를 개량한 사정거리 4백㎞의 스커드­C미사일을 이라크와 시리아에 수출했다. 북한이 핵·화확탄두적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자체 개발한 것은 지난 93년 노동1호.북한은 같은해 5월 29,30일 일본해 쪽으로 5백㎞(실제사정거리 1천㎞)를 날렸다.그러나 『노동1호는 엔진설계와 수행능력·정확도·목표지향성·비행안전성등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돼 군사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무기는 아니다』는게 러시아측의 평가이다.또 북한이 노동1호의 사정거리를 1천3백㎞까지 올리고 사정거리가 2천㎞ 가까이 되는 노동2호를 계획한다는 설에 대해서는 『북한의 경제·과학수준으로 볼 때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동정과 관련,내부적으로 북한은 경제·사상·정치적으로 「갈때까지 간」상태이며 북한에 대한 국제 원조국도 중국 밖에 없고 조건마저도 이제는 까다롭다고 러시아측은 평가했다. 때문에 김정일과 개혁세력과의 「한판」가능성 때문에 북한지도층이 언제 「위험한 도박」을 벌일지 모른다고 러시아측은 보고 있다.
  • 제1부 창의력을 키우자(G7으로 가는길:1)

    ◎2010년 세계 7위 경제대국 도약/WTO체제속 기술전쟁 극복이 과제/“「창조의 산실」은 자유로운 사회환경”/2IC 국가경쟁력 고도기술·정보가 결정/통제된 분위기서 독창성 발휘 기대못해 21세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우리가 넘어야할 과제는 무엇인가.서울신문은 오는 2010년 G7수준의 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G7으로 가는 길」을 96년 사회발전캠페인의 주제로 설정하고 제1부 「창의력을 키우자」를 오늘부터 연재한다.주2회 연재될 「창의력을 키우자」는 서울신문 특별취재단이 세계 각국의 유수한 창의력 교육및 연구개발현장을 직접 취재하여 소개하고 아울러 우리의 실태를 비교·분석한다.서울신문이 연중 계속하여 펼칠 「G7으로 가는 길」은 제1부에 이어 2·3부가 계속된다.서울신문이 엮는 「G7으로 가는 길」은 한국이 21세기 중심국 대열에 당당히 진입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광복 50주년이었던 지난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사에 또 하나의 커다란 획을 그었다.사상 처음으로 수출 1천억달러를 기록한 것이다.지구상에는 2백개가 넘는 나라가 있지만 수출액이 1천억달러를 넘는 나라는 10여개국 뿐이다.G7등 선진 경제 대국 9개국과 후발주자로서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을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지난 64년 수출 1억달러였던 우리나라가 그 1천배인 1천억달러를 돌파하기까지는 정확히 31년이 걸렸다.한해 평균 25%,31년동안 1천배의 수출 증가는 세계적인 신기록이다.아마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일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 경제는 이것 말고도 여러 기록을 갖고 있다.19 55년 연간 국민소득 3백달러 수준에서 오늘날 1만달러로 도약한 초고속 성장이 대표적인 것이다.94년을 기준으로 우리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교역규모 세계 12위의 상위권 수준을 달리고 있다.조선공업 생산량은 세계 2위이며 전자공업 생산량은 세계 6위로 선두그룹에 서 있다.올해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국제 사회에서의 발언권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20 10년쯤에는 G7 수준의 경제·사회적 발전을 실현시킬 작정이다.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선진국의 위치를 꿈꾸며 뛰고 있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더욱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기술전쟁이라는 새로운 국제 질서 아래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는 환경 속에서 이와같은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일까. 냉전 체제가 종식된 뒤 세계 경제 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의 발전을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인상이 짙다.미국은 일본과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보여준 놀라운 경제성장을 주목하며 미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 노력과 함께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의체(APEC)등을 통한 시장 개방 압력을 강화해 왔다.이 지역의 경제 공세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새 발전전략 수립 시급 그러나 아시아 국가의 발전은 과장된 것이며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는 진단도 있다.장차 노벨상 후보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만 교수는 「아시아의 기적­그 잘못된 신화」라는 논문에서 『아시아의 성공은 투입물의 급격한 증가에 기인한 것이지 경제의 효율성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라고 장래 아시아의 가능성을 일축했다.『아시아가 성공한 것은 그동안 사장됐던 인적 물적 경제요소를 한꺼번에 투입해 기세를 올린것 뿐이지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혁신에 의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더이상 투입물의 증가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수확체감의 법칙에 봉착해 성장은 한계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과거 발전사도 이같은 분석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한국 경제는 높은 저축률과 정부가 주도한 인적·물적 자원등 투입물의 증가,외국 자본과 기술을 이용한 대기업 위주의 중화학 공업 육성,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출 주도 전략으로 오늘날의 성공을 이룩했다.그러나 이제 한국 경제는 수확 체감의 법칙에 따른 한계에 이르렀으며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전환기적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발전 전략의 수립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OECD의 한국 과학기술 조사 사업단장으로 참여했던 미국 하버드 대학 르위스 브란스콤교수(존슨대통령 과학고문)도 『한국은 단순한 양적 성장으로부터 다양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도입·모방 중심의 캐치 업(catch­up)전략에서 창의적·독자적인 혁신전략으로 넘어가야 하는 전환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그는 특히 국가경쟁력 결정의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인 과학 기술 개발 분야의 후진성을 지적하고 전통적인 「하면된다」(can do) 정신에서 벗어나 적극성과 창의성을 극대화 하는,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개혁을 권고했다. 물론 90년대 한국의 발전은 지나간 개발 연대와 같이 단순히 양적 성장에 머무른 것만은 아니다.실례를 살펴봐도 단순가공품,경공업 제품이 주도를 하던 한국의 수출 주력 상품은 반도체 가전제품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같은 기술집약적 중공업 제품으로 바뀌었다.첨단 기술 제품인 반도체 한 품목의 수출액은 2백억 달러에 이를 지경이다.또한 독자적인 기술기반의 한 척도인 특허 분야만 해도 지난해 출원 20만건을 넘어서 세계 5위권에 들어섰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같은 선진 분야가 극히적고 내실도 미미하다는게 우리의 문제다.우리 경제 성장에 대한 기술 진보의 기여도는 일본 75%,미국 42%,대만 32%에 비해 훨씬 낮은 19%에 그치고 있다.전자분야 하나만 보더라도 매출액에 견준 기술사용료의 지출이 70년대 3%에서 91년 12%로 늘어 수출 증가가 오히려 기술 수입을 늘리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더욱이 미국 일본등 선진 기술 강국은 산업재산권 보호등 기술 장벽을 강화하고 경쟁상대로 떠오른 한국에 핵심기술의 이전을 기피하는등 국제 환경은 우리에게 날로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초과학 공헌도 25위 이 파고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핵심적이고 독창적인 기초 과학 기술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상황은 모방과 통제에 의존해 왔지 창의와 자율에 바탕을 둔 저변 확보를 못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한국의 총체적인 과학기술 능력은 세계 13위로 평가되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공헌도는 25위에 머문다는 것이 과기처의 추정이기도 하다.기초과학 수준의 한 척도가 되는 연구 논문 한편의 국제 학계 평균 인용횟수는 30위로 이보다 더욱 떨어진다.세계 수준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인력 양성과 활용문제,대학의 정체,소극적인 과학기술 정책,산·학·연 연계 부족 등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많다.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새로운 체제가 대두할 때 이에 신속히 참여하고 적응할 수 있는 흡수능력을 갖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술정보실장 한석기박사는 『기존의 획일적,통제적 사회분위기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창조의 시너지(상승작용)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21세기를 준비할 새로운 틀은 국민의 창의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사고가 보장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21세기의 국제질서는 고도의 지식과 기술,정보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질높은 교육을 통한 창의적 인력 양성과 활용,자율과 독창성을 인정하고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사회제도를 갖춰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1더하기 1은 4」라는 엉뚱한 주장도 들어줄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 환경이 가꾸어져야 창의력은 자랄 수 있다. ◎전문가 진단/배병훈대우전자 회장/차의적 활동이 고부가가식 창출/인간자본 축적에 국가경쟁력 달려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산너머무지개가 시작하는 곳을 찾으려는 습성이 있다.무지개는 산너머 먼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굴절 현상으로 둥그렇게 보이는 것이다.시작하는 곳이 따로 있는 것이다.1980년대 기업의 문제점은 기술개발능력의 부족이라고 해서 기업연구소도 수없이 만들고 그런 기업연구소들간의 협력을 하기 위해 산업기술진흥협회하는 기구도 성립했다.그러면 이제 기업의 문제점은 해소되었는가? 1987년부터 노동임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더니 이제 대기업의 노동임금은 가히 세계적이 되었다.어찌 보면 복합적인 경제사회 요소들 중에 일부만 급격히 세계 수준이 되다 보니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중소기업의 경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마당에 창의성이 부족하니 창의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기초과학을 진흥하고 교육개혁을 해야국가경쟁력을 회복할수 있다고 주장한다.창의성을 좇아서 2차대전후 아인슈타인이 이론연구로 여생을 보냈던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원(Instite for Adv­anced Study·프린스턴 대학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기관)을 본보기로 하여「고등과학원」을 설립해서 노벨상 수상후보자를 양성하고 서울의 주요 대학을 선별하여 연구중심대학을 만들도록 자금을 대폭 지원하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창의력이 증진되어 국가경쟁력이 제고되는 것일까?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창의성은 세계시장에 상품을 수출하고 필요한 재화를 수입하여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살 수 있게 소득을 분배하는 제혜를 창출한는 데 발휘해야 하는 창의력은 그런 의미에서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창의적 활동은 개인적인 활동이다.조직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집단활동은 이미 창의력이 아니다. 창의성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그독창성이 인류사회 복지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우선 남과는 달라야 한다.남과 같지 않기 위하여 남이 어떤가를 알아야 하고 그런 지식 위에 새로운것을 생각해 내야한다.그리고 그런 독창적인 생각이 인류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앞으로의 국가경쟁력은 인간자본(Human Capital)의 축적에 달려 있다.인간은 기계와는 달리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가치가 있다.미국의 라이시 노동장관의 주장대로 고부가가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세계화시대에 헤게모니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해야할 일니다. 고부가가치는 수급의 균형에서 발생하며 정보가 신속하고 편리하게 전달되는 시대의 수급의 균형은 수요자,공급자의 창의성에 의해 조절이 된다. 창의적인 활동이 바로 부가가치가 높은 활동이다.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도 자유스럽게 이동하고 자본은 창의적인 활동에 투자되게 마련이다.따라서 인간자본의 축적은 국민의 창의적 능력의 제고에서 이루어지고 인간자본 축적이 바로 국가경쟁력이다. □특별취재단 이중호편집부국장·취재단장 이재일과학정보부장 신연숙과학정보부차장 박건승과학정보부 고현석 〃 육철수경제부 박희준 〃 이기동국제1부 오일만국제2부 함혜리사회부〃 박상열 〃 이종원사진부 손원천 〃 김재영워싱턴특파원 이건영뉴욕특파원 황덕준LA특파원 이석우북경특파원 박정현파리특파원 강석진도쿄특파원 유민모스크바특파원
  • 다자주의·자유무역질서 뿌리내린다/미 찰스 쿱찬 교수 지구촌 조망

    ◎정치­고립주의 탈피… 분쟁 단체해결 보편화/경제­실업 등 개방초기 부작용 극복이 과제/중·러의 국제체제 효과적 편입이 21세기 평화 좌우 20세기가 끝나려고 하는 지금 국제 체제는 역사적 교차로에 다다랐다.냉전시대에 길러진 국제주의 시각과 국가간 기구들의 조직망들은 쇄신의 기로에 서있다.앞으로 수년동안 세계지도자들은 국제질서를 관리하는 새로운 정신적 틀과 구체적 구조를 끌어내야만 한다.이 일이 잘되느냐 못되느냐에따라 90년대가 어두운 격동기 1930년대 바로 전 착각의 평화시대였던 1920년대의 재판이 되느냐,아니면 굳건한 안정과 성장의 새 시대 초두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각국 개방조치 잇따라 이 미래의 선택에대해 낙관적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여럿 들 수 있다.다음 3가지 측면에서 세계정치는 지난 89년이래 결정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첫째,냉전의 블럭체제가 무너지자 세계 경제의 극적인 개방이 뒤따랐다.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유럽연합(EU) 등의 지역교역체의 결성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완료에 의한 전세계적 자유화가 동반되었다.옛 시장들은 다시 뛰어오르고 새 시장들은 반듯이 줄을 맞추고 있다.경제적 부의 증가는 각국의 국내안정에 크게 기여한다. ○경쟁시대로 복귀 안해 둘째,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국제적 문제해결에 다자주의와 단체적 행동방식을 신봉하고 있다.소련붕괴 이후 힘우위의 정치가 팽배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민주국가들간의 협력체제가 와해되거나 자기만의 이득 쟁취를 위한 각국간의 경쟁시대로 복귀하지는 않았다.걸프전 때의 역사적 결집,동구 민주전환국에 대한 나토의 개방적 태도,러시아군의 보스니아 평화실현군 참여,동아시아국가간의 협력,중동평화에 관한 지역국가들의 도움 등 최소한 지금까지는 통합력이 분해의 힘을 이겨내고 있다. 셋째,냉전이후의 첫 5년간은 변혁의 심대한 폭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평화스러웠다.국내·외적 체제전환은 불안정과 알력을 낳기 마련이다.그러나 90년대는 이의 예외 케이스로 선뜻 지목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자화자찬하고 자기만족에 빠지기에는 때가 너무 이르다.이 3가지 긍정적 추세의 하나하나는 금방 뒤집어질 수 있다.번영과 상호의존의 증가를 약속하는 세계경제의 자유화는 다른 한편으론 기존 경제강국들에게 어려운 변화를 요구한다.철의 장막에 의해 동구권 상품에 대한 보호주의를 가만히 앉아서 누렸던 서구는 정책조정이 긴요하지만 최근의 프랑스파업에서 보듯 선거로 뽑힌 관리들이 시도할 수 있는 개혁의 범위는 몹시 한정되어 있다.미국도 NAFTA,APEC 동반자들의 약진을 국내실업 원인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를 감당해내야 한다. 작금의 다자주의,지역협력체,특별사안에 대한 연합형성 바람은 아무리 열렬하다 해도 아직은 뿌리가 깊지 못하다.보스니아 평화유지를 위한 다국적군의 실현도 미국의 단독플레이에 의해 3년이나 뒤늦게 이루어졌다.각국의 국내정치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수십년간의 냉전체제에 물든 선진 민주국가의 일반국민들은 긴박한 위협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만 희생의 필요를 인정하는 버릇이 붙었다.더 이상 핵심적인 국가이익이 위협에 처해지지 않아 정치가들이 눈치를 봐야하는 유권자들은 생명이나 재정의 충당을 요구하는 외교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험할 정도로 고립주의의 기만적 안락함 뒤로 몸을 숨기려 한다. ○침략국가로 돌변 가능성 역시 평화적 체제전환도 외관보단 빈약하다.러시아는 아직도 커다란 장애물을 눈앞에 두고있다.경제적 고통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신상실에 대한 반발로 최근 총선에서 공산주의자와 국수주의자가 기세를 얻었다.지난 1930년대의 일본,독일의 역사가 예시하듯 경제적 불안정은 막 날아오르려는 신흥 민주정체를 악의적인 침략국가로 단숨에 돌변케 할 수 있다.중국 역시 아직 커다란 의문부호다.중국은 10∼20년내에 경제·군사 강대국으로 자리잡을 것이나 이 힘을 중국이 어떤 목적에다 쓸 것인지 지금 잘 알 수가 없다.중국의 발전방향과 외교정책의 행로는 아마도 다음 세기 세계의 틀을 잡는 가장 중요한 미지수라고 할 만하다. 세계 정치지도자들은 탈냉전 초기시대의 긍정적 추세가 뒤엎어지지 않고 한층 심화되도록 구체적 정책을 세워야 하며 이는 능히 할 수 있는일이다.먼저 자유 국제무역질서 이념에 확고히 발을 내디뎌야 한다.각 나라마다 보호주의 물결과 맞서야 하며 자유무역의 장기적 혜택을 유권자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세계경제로부터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 미국을 시장의 일원으로 포함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일·독 국제적 역할 늘려야 정치지도자들은 또 다자적 참여 외교정책의 혜택과 고립주의의 위험을 국민들이 깨우치도록 힘써야 한다.현상유지 세력들이 국제적 책임을 회피하고 뿔뿔이 자기 길만 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19 30년대가 잘 말해준다.일본과 독일은 세계의 위기관리와 평화유지에 보다 더 큰 역할을 떠맡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평화적인 상태에서 국제체제의 전환이 계속되도록 국제사회는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특히 러시아와 중국 두나라를 세계정치와 경제 틀에 자연스럽게 통합시키는 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이뤄진다고 해서 21세기가 미증유의 평화시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그러나 역사적 교차로에 다다른 국제사회는 최소한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서 있음을 확신할 것이다. □찰스 쿱찬(CHARLES A.KUPCHAN) 현 미 조지타운대 외교학 교수 겸 외교연구위원회(CFR.『포린어페어즈』발간) 유럽담당 위원 클린턴행정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 유럽국장 역임 프린스턴대 정치학 교수/하버드대 졸업 옥스포드대 박사학위 저서 「새 유럽의 민족주의와 민족국가」(95년) 「제국의 취약성」(94년) 「걸프만과 서양」(87년) □96년도 주요 국제행사일정 ◇1월 △14일:과테말라 대통령 결선투표 △14일:포르투갈 대통령선거 △17일: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총리의 부패 재판시작 ◇2월 △1일:미국­프랑스 정상회담(워싱턴) △5일:교황 요한 바오로2세 과테말라등 남미5개국 순방 △20일:미국대통령 예비선거 시작­콩코드(뉴 햄프셔주) △26일:베를린 국제 영화제 ◇3월 △1일:제1회 아시아­유럽 정상회담 △5일:콜로라도주,메릴랜드주 미국대통령 예비선거 △7일:뉴욕 미국대통령 예비선거 △23일:대만,최초의 직선 총통 선출 ◇4월 △9일:국제원자력기구 체르노빌 원전사고10년 기념회의 △16일:클린턴 미대통령 일본방문 △26일:제9차 유엔 무역 및 개발회의 ◇5월 △5일:국제여성 리더십 포럼(남아프리카) △9일:칸 영화제 △19일:에콰도르 대통령선거 및 총선 ◇6월 △5일:석유수출국회의(OPEC)총회­비엔나(오스트리아) △16일:러시아 대통령선거 △22일:유럽연합 정상회담­플로렌스(이탈리아) △29일:G7 정상회담­리옹(프랑스) ◇7월 △19일:하계올림픽 개막­애틀랜타(미 조지아주) ◇8월 △12일: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 △12일:리베리아 대통령 및 의회 선거 △26일: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시카고(일리노이주) ◇9월 △17일:유엔총회 개막 ◇10월 △10일:노벨상 수상자발표 ◇11월 △5일:미국대통령 및 의회선거 ◇12월 △10일:노벨상 시상식
  • 현대 전격 세대교체…「MK체제」출범/정몽구씨 그룹회장 취임 배경

    ◎정주영씨 건강 등 고려… 「후계」 조기 매듭/자동차는 정몽규씨가 독립경영 할듯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정세영씨에서 정몽구씨로 넘어갔다.지난 87년 창업자인 정주영씨로부터 대권을 물려받은 정세영체제가 8년만에 막을 내리고 2세 경영체제를 맞게 됐다.몽구씨는 창업자의 차남이지만 정씨 가계의 사실상의 장자(장남 몽필씨는 사망)이다. MK(몽구씨의 영문 이름 이니셜)체제의 출범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돼온 일이긴 하다.그러나 28일 공식발표 직전까지도 그룹 내부의 핵심권에서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전격적으로 단행됐다.그룹의 경영전략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6인의 그룹운영위원회가 마련한 당초의 인사초안에는 경영권 교체에 관한 사항은 포함되지 않았었다.그룹의 관계자들은 당시 『한두명의 계열사 사장을 포함하는 통상적인 인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그룹 경영권의 교체는 그룹운영위가 인사초안을 창업자에게 보고하고 재가를 받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창업자의 뜻에 따라 창업 1∼2세대간의 구획정리를 통해 세대교체를 매듭지은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가 이날 전격적으로 그룹회장 교체를 단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재계에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정세영씨의 퇴진과 MK체제의 출범이 비록 예견된 일이라고는 하지만 왜 이 시점에 이뤄졌는가에 관한 얘기들이다.비자금 사건 이후 재계에 불고 있는 세대교체 바람의 여파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재계는 새로운 경영풍토의 조성과 실추된 이미지의 회복을 위해 기업 내부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새인물의 등장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구태경영에서 벗어나라는 요구이다.이같은 요구는 창업세대에게는 무언의 퇴진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현대의 이번 회장 교체도 예정된 코스이지만 시기를 앞당기게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여기에는 청와대 측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창업자인 정주영씨 건강 문제도 회장교체 시기를 앞당긴 요인으로 지적된다.현대그룹은 과거 정전회장 시절에는 「1인경영체제」로 움직여 왔다.넷째 동생인 정세영씨의 재임시절에는 창업자2세 형제들이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소그룹 연합체제」로 바뀌었다.따라서 정세영씨의 회장재임기간은 경영권이 상속권자에게 넘어가는 중간 단계였고 과도체제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정주영씨는 자신의 나이와 건강 상태로 보아 과도체제를 장기간 끌고 가기는 어렵다는 판단과 함께 후계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현대의 2세경영체제 전환은 창업세대의 원로 전문경영인의 퇴진과 40∼50대인 MK라인의 부상을 골자로 하는 그룹내 인맥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이번 인사에서 이춘림 현대종합상사 회장,현영원 현대상선회장,김동윤 현대증권사장,송윤재 대한알루미늄회장 등이 고문으로 물러앉고,백창기(대한알루미늄 사장)·이익치씨(현대증권 부사장)등이 전면으로 부상했다.최고경영자들이 10년이상 젊어져 그룹경영에 활력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임 정몽구회장은 대규모 일관 제철소 사업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다만 통상산업부가 이에 반대하고 있어 이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가 신임회장으로서의 첫 관문이자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세영씨가 일궈낸 현대자동차는 사실상 그룹분리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정세영씨의 아들인 몽규씨가 자동차회장을 맡아 독립경영을 할 것으로 보인다.정세영씨는 아직도 현대자동차 경영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2세회장 체제하에서 역할을 맡는 것이 부적절하고 세대교체의 이미지를 흐릴 수 있다고 판단,아들인 몽규씨를 내세우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정주영씨의 3남 몽근씨의 금강개발,5남 몽헌씨의 현대전자,6남 몽준씨의 중공업,7남 몽윤씨의 상선,8남 몽일씨의 국제종금 등은 계속 「그룹내의 소그룹」으로 남겠지만 독립성은 이전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 수입피해업체 구제신청 저조/무역위 발족 87년이후 40건에 그쳐

    『수입품으로 타격을 입은 업체는 무역위원회를 이용하라』 시장개방이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국내업계는 수비(국내시장을 지키는 것)가 공격(수출) 못지 않게 중요해졌다.특히 내수시장에만 의존해온 중소업체들은 더욱 그렇다.그러나 WTO체제하에서도 무차별 수입공세로 피해를 입은 국내기업이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있다.무역위원회의 산업피해구제제도가 그것이다. 구제방법은 긴급수입제한제도(세이프 가드)와 반덤핑제도 두가지로 나뉜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가 있음에도 기업들의 인식부족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지난 87년 7월 무역위원회가 발족된 이후 산업피해구제신청건수는 40건(반덤핑 14건,긴급수입제한 26건)에 불과하다.무역위원회관계자는 『일단 구제조치를 신청하면 수입국에서 미리 문단속을 실시,물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높이는 등 간접적인 예방효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우성호선원 송환/북 「쌀더얻기」 여건 조성용인듯

    ◎최악 식량난에 SOS 신호 추정/강경파,“억류 실익없다” 판단한듯 가제목:송환배경과 남북전망 기자명:구본영 부서명:정치부 북한이 지난 5월30일 서해상에서 납치했던 86우성호선원들을 송환하겠다고 발표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로써 억류중이던 우성호 선원중 생존자 5명은 거의 7개월만에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됐다.하지만 납치 과정에서 북한의 총격을 받은 3명은 끝내 유골로 돌아온다. 물론 북한이 이들 생존 및 사망 선원들을 돌려보내게 된 주된 이유는 인도적 차원에서 더 이상 억류할 명분이 없는 탓이다.우성호의 북한영해 침범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항로착오로 인한 우발적 사고라는 객관적 상황이 확연히 드러난 터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실수로 북한해역에 들어간 몇척의 우리 배를 송환해준 전례가 있다.또 지난 87년 1월 동진호 납북때 송환을 결정했다가 때마침 터진 김만철일가 귀순으로 번복한뒤 지금까지 억류하고 있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따라서 북측은 선원억류등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한마디로 북한은 모종의 「거래」가 가능한 카드라고 여기면 국제적인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이번 우성호 억류사건도 그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우성호 선원들을 이 시점에서 보내기로 최종 결정한 북한당국의 계산이 궁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6월부터 북경에서 열린 쌀관련 남북회담에서 선원송환을 사실상 약속했다.그러다가 4개월여만인 지난 9월20일 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공화국 법률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며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었다.이 때문에 북한내부에 강온파간 노선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을 불러일킨 바 있다. 그렇다면 북한내 강경파들도 이들 선원들을 억류하고 있는 게 더이상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요컨대 북한군부도 체제유지를 위한 고의적 대남 긴장조성보다는 경제난과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국제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함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우리측에 간접적으로 SOS를 보냈다는 해석도 있다.이를테면 지난 9월30일 이후 중단된 쌀관련 남북접촉을 재개하자는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얘기다.최근 방북하고 돌아온 국제구호기관 관계자들은 북한이 올수해 여파등으로 외부 지원이 없을 경우 50만명의 주민이 굶주림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 인사와 지역감정(이동화 칼럼)

    정기국회가 끝나자 곧바로 대폭개각이 단행되었다.이같은 주요인사가 이루어지고 나면 일반적으로 발탁된 사람의 출신지역과 학교,그리고 나이등을 살펴보게 된다.특히 지역감정이 거품처럼 부풀어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지역안배를 했느니,안했느니 하는 문제가 오르내리게 마련이다. 이번 개각에서는 비교적 지역안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적으로 역이용하려는 사람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일부 정치인은 오히려 독식체제라는 억지비난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실제로 일부 야당의 반응은 그렇다.그런 주장이 지역감정을 심화시키고 나라를 멍들게 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혈연·학연보다 심한 지연 지금 국제사회에는 민족이나 종교간의 갈등으로 분쟁과 전쟁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남북한의 대치는 민족대립의 문제가 아니며 다만 철지난 이념의 대립이라는 양상을 띠고 있을 뿐이다.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들간에 파괴적인 대립이나 갈등은 없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파벌을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그 어떤 형태의 것보다 오늘날의 지역감정은 심각하다.혈연과 학연등의 파벌성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은 워낙 다양하게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 전체로 보아서는 지연에 기초한 지역감정에 비해 사소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애향심 오도하는 정치인 다만 지연 자체도 여러 형태가 있다.조그만 군안에도 재나 강을 사이에 두거나 행정·상업중심이 나누어져 있는 지역간에 경쟁이 있다.그러나 이것 역시 나라 전체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애향심 오도하는 정치인 오늘날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는 지역감정의 문제는 영남·호남·충청 운운하는 것이며 PK다,TK다 하는 것이다.오랫동안 잘못된 정치에 오도되어 문제점과 부작용이 커진 지역감정의 문제인 것이다. 일부 정치지도자가 순수한 애향심에 불을 지르고 왜곡시켜 지지세력화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 지역감정은 이제 당분간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짐이 되고 말았다.아니,이제는 오히려 지역감정에 불을 질러야만 정치생명을 이어가게 되었으니 자신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 되어버렸다.늦었지만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만 한다. ○뿌리깊은 영·호남경쟁 지역감정이란 원래 자기가 태어나고 살아온 고장을 사랑하고 아끼는,순수한 소속의식이다.그러나 이같이 맹목적이고도 논리가 전혀 없는 감정을 오도하여 정치적 기반으로 얽어매려한 것이 한국적 비극의 시작이었다. 특히 영남·호남간의 지역감정은 역사적 뿌리가 있다.조선조 5백년간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정치에서 영·호남은 주류가 아니면서도 경쟁하는 관계를 지속해왔다.현대사를 보아도 지난 71년 박정희·김대중씨의 대통령선거는 지역감정이 표로 증명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김씨의 87년과 92년 대선출마는 지역감정을 더욱 심화시켰다.호남에서의 지지율은 높아진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역작용을 불러왔다.87년과 91년 국회의원총선에서도 김씨가 소속한 정당은 호남을 석권했으나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이제 내년 4월총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이나 지역갈등이 또다시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총선을 전후하여 더 심화될 가능성마저 적지않다.정치지도자들이나 사려가 깊지 못한 후보자들이 이를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서울의 어느 지역은 어느 특정지역 출신이 많이 살고 있어 어느 정당의 공천경합이 극심하다』는 보도는 희극인지 비극인지…. ○지역독점은 역풍맞아 또 3김씨중 일부는 내년총선을 그 다음해 대선의 징검다리로 활용할 생각이라니 지역감정을 최대의 무기로 활용할 것은 불문가지다.과연 국가적짐을 키우면서까지 대권을 추구해야 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그렇더라도 특정지역의 지지도가 높을수록 다른 지역에서 역풍을 맞아 목표에 다다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개각에 지역안배가 안되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출신지역에 다른 정당소속 의원이 몇명이라도 나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지역감정이라는 국가적 폐해를 줄여나갈 정치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한다.
  • 청와대 수석 새얼굴 6인

    ◎구본영 경제수석/KDI출신 경박… 친화력에 균형 감각 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의 경제학 박사로 재무부·경제기획원 등 경제 부처를 두루 거쳤으며 88∼91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내 4년여만에 금의환향한 셈이다.깔끔한 용모와 유연한 매너로 친화력이 뛰어나며 합리적인 사고와 순발력 있는 판단이 돋보인다는 평이다.과기처 차관시절에는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역 주민을 직접 만나 설득력을 발휘하기도 했다.취미는 바둑(1급).이길혜여사(46)의 사이에 1남1녀.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KDI 수석연구원 ▲재무부장관 자문관 ▲경제기획원 장관 자문관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 제3협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 ▲주미 경제공사 ▲교통부차관 ▲과기처 차관 ◎심우영 행정수석/총무처 터줏대감… 정책위상 뛰어나 7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행정고시에 합격,총무처차관·경북지사를 지낸 뚝심의 총무처 관료출신.행정관리국장 등 총무처내 요직을 두루 거쳐 한때 「총무처 터줏대감」으로 불리기도 했다.합당후 첫 민자당 전문위원으로 7개월동안 일하면서 정책입안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후문.보스기질이 있어 부하들로부터 인기가 높다.부인 정신자씨와의 사이에 1남2녀. ▲서울대 법대졸 ▲행시 10회 ▲총무처 행정관리국장 ▲민자당 전문위원 ▲총무처 기획관리실장 ▲총무처 차관 ▲경북지사 ◎문종수 민정수석/검사 출신… 장로로 신앙심 두터워 깨끗한 이미지에다 청렴성이 돋보여 민정수석에 발탁됐다는 평이다.교회 장로로 신앙심이 두텁기로도 유명하다.검사 재직시 「세월의 한자락을 붙잡고」라는 시집을 낸데 이어 최근 「두려움의 혼돈속에서」라는 시집을 또 다시 출간했다.전주·광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이들 지역 건설업계에 기생하는 조직폭력배를 뿌리 뽑았다.김두희 전법무장관,안강민 대검중수부장,김유후 전민정수석 등과 경기고 55회 동기다.부인 박진순씨(53)와의 사이에 1남2녀.취미는 음악감상. ▲서울법대·고시16회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천지검장 ▲변호사 ◎박세일 복지수석/법경제학교수 출신… 업무처리 꼼꼼 미국·일본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두루 공부한 국제감각을 고루 갖춘 교수 출신.서울대 법대에서 법경제학으로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으며,교육개혁위원으로 대학교육체제개혁방향에 대해서도 폭넓은 연구를 했다.지난해말 청와대에 신설된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돼 세계화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다소 이상론에 치우친다는 평가도.진지하면서도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성격이며 등산과 독서가 취미.부인 조미경씨(39)와의 사이에 1남1녀. ▲서울대,미국 코넬대 ▲서울대 법대 교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보좌관 ◎이각범 정책수석/87년 대선 YS지원 「참여파 교수」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해온 참여파 교수로 통한다.87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의 선거진영에 참여,조언과 실무를 맡았었다.박세일 전임 정책수석과는 절친한 친구사이다.산업사회학·정보사회학이 전공으로 「한국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가지고 있다.현재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자문위원과 한국노사관계학회 이사,한국방송공사 위원으로 있는 등 사회활동도 두드러진 편이다.부인 이남주씨(46)와의 상이에 1남1녀. ▲경기고·서울대 사회학과 ▲독일 뷜레펠트대 사회학박사 ▲동국대 사회학과 조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부교수 ◎유도재 총무수석/상도동 출신… 경륜 출범 산파역 맡아 오래전부터 김영삼 대통령과 연을 맺었으나 87년 대선 때 통일민주당의 경남 사천지역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YS캠프에 합류한 상도동출신.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시절에는 올림픽공원을 무료 개방하고 경륜을 출범시켜 국민들의 여가생활에 한몫을 담당했다.강직하고 경우가 바르면서도 원만한 대인관계로 교류폭이 넓다.최금순여사(59)와의 사이에 1남1녀. ▲오사카 시립대 경제학부 ▲국립 러시아 체육대학 명예체육학박사 ▲유한양행 전무 ▲유한 SP 사장 ▲민자당 국책 자문위원 ▲월드컵축구대회 한국유치위원회 집행위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 초고속 국가통신망 개통(사설)

    1백60개의 행정기관·연구소등의 전산망이 연계되고 이것이 1차로 22개 도시 광전송로에 연결되는 초고속국가통신망이 27일 첫 개통된다.민원업무 등 대국민서비스목적만을 위해서도 국가행정전산망가동은 기다려온 일이다. 이 일은 87년부터 시작된 것이고 좀더 빠른 운용을 목표로 하였으나 여러 시행착오속에 다소간 지연된 바 없지 않았다.그러나 디지털기술은 상상을 초월하여 다음단계로 발전하는 양식을 갖고 있어 지나간 시간이 꼭 손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최신의 적절한 운용프로그램을 장착했다는 이득이 더 클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 국가전산망은 행정서비스만으로도 상당한 내용을 갖고 있다.통합사무자동화망을 주축으로 자동차·고용·국방·병무·체신금융·기상전산망자료가 들어 있다.이점에서 올드미디어 패러다임으로서는 경이로울 만큼 행정의 선명성이 국민 개개인에게 전달되고 확인될 것이다.행정정보를 사실대로 공개한다는 점에서 문민정부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상징성도 가질 수 있다. 한편 자료의 정확성 유지와 철저한 관리의 책임은 전산망이전 시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것을 명심해야 한다.컴퓨터 보급률이 높아지고 컴퓨터사용 소프트웨어가 간편해짐에 따라 오늘에는 특정한 전문가만이 해커가 되는 시대가 끝났다고 보고 있다.보통사람도 별다른 의식 없이 중요사항이나 자료를 찾아내고 복사할 수가 있다.때문에 컴퓨터범죄문제에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에 의한 범죄」가 따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이점에서 보면 국가전산망의 모든 내용은 국가와 개인의 보호를 철처히 지켜주어야만 할 자료다.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접근통제기술과 암호화 프로그램도 부단히 연구하고 강력한 점검체제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단계부터는 기능적 행정서비스만이 아니라 디지털세계가 인간의 삶의 양식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대해서도 정책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대덕연구단지/연구개발 예산개혁 앞으로 1개월

    ◎세계적 「싱크탱크」 도약 계기로/열심히 일하는 연구원 우대 분위기 조성/과학기술사업 경쟁력·효율성 크게 높여/안정적 연구위한 제도적 뒷받침 마련해야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PBS)이라는 혁명적인 예산회계제도의 전면실시를 1개월 앞두고 대덕 과학기술연구단지가 긴장에 휩싸여 있다.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은 투입비용과 성과측정이 분명한 연구관리의 투명성,열심히 연구하고 성과있는 연구원이 우대받는 경쟁적인 연구분위기 조성,연구원이 중심이 되는 연구소운영등을 내걸고 과학기술처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국가연구관리체제 개혁방안. 하지만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해야 할 연구원은 「지원」측면보다 「생존경쟁」을 요구하고 있는 낯선 새 제도를 놓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연구를 지원해야 할 행정직은 새 제도를 익히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과학기술처는 지난 2월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 도입의지를 처음으로 공표,이를 추진한 끝에 오는 96년부터 22개 정부출연 과학기술연구기관에 전면실시하기로 했다.연구소들은 오는 10일까지 이와 관련된 자체규정 개정안을 마련,과기처에 보고하고 이달말까지 이사회에서 확정시켜야 한다.갈길이 바쁜 속에 뭔가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는데도 아직 확실한 것이 잡히지 않는다는 게 연구원의 지적이다.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의 출발점은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국가연구개발사업과 정부출연 연구소 운영에 경쟁력과 효율성 향상이 시급해졌다는 인식에 있다.특히 시장개방바람을 타고 정부연구개발사업도 가까운 시일내 개방이 불가피한 시점에서 연구사업관리체제도 선진화가 불가피하고 지금처럼 느슨한 체제로는 투자의 생산성도 제고시킬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연구소 일정인원에게 정부예산으로 인건비를 주고 여기에 연구사업비를 더하는 방식으로 연구소예산을 지원해오던 것을 고쳐 연구사업(프로젝트)단위로 정부지원비를 주는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 회계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이렇게 되면 인건비 따로,연구비 따로 이원화돼온 회계방식이 연구사업단위로 일원화돼 연구소는 연구소대로 정원조정등을 자유롭게할 수 있고 정부는 정부대로 어떤 연구원이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 파악이 쉽게 돼 효율적인 연구관리,연구활성화를 기할 있다는 것이다.정부는 이에 덧붙여 연구사업은 대학과 민간연구소·출연연구소중에서 능력 있는 기관에게 주는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개혁방안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는 않다.한국화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이 되면 연구소가 종전처럼 인원동결 때문에 곤란을 겪을 필요도 없고 일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이 분명히 가려질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어차피 가야 할 방향』이라는 전제 아래 『혼란 없이 잘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연구원도 있다. 그러나 대덕연구단지의 많은 연구원은 새 제도에서 프로젝트를 따지 못한 연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당장 돈이 되지 않는 연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궁금증을 나타내며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소의 또 다른 한 연구원은 『새 제도는 정부가 연구소운영비를 주지 않고 연구소가 스스로 벌어서 해결하라는 것인데 이 경우 연구원의 봉급보장이 안돼 우수인력이 연구소를 떠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한국기계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지금까지 민간기업연구소의 70%도 안되는 대우를 받고도 국가에 기여하는 연구를 한다는 긍지로 마음만은 부자로 살아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앞으로 당장 돈댈 고객이 있는 연구만을 하라고 한다면 그마저 사라져 더이상 정부연구소에 몸담을 이유가 없어질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새 제도로는 실패할 확률도 있는 창의적인 연구,진취적인 도전을 할 수가 없을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현실만 좇아가는 연구를 하다가 첨단추세에서 낙오돼 후진연구자로 전락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연구자도 있다.『아직도 국내 중소기업은 재정이 열악한데 앞으로 인건비까지 모두 내고 연구소에 연구의뢰를 하라고 하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며 중소기업의 기술지원위축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이같은 지적에 따라 기관고유사업을 발굴,지원하고 핵심 우수연구원을 선발해 창의적인 연구를 3년간 안정적으로 지원하며 중소기업 수탁연구사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대응자금을 지원하겠다는등 3개항의 보완책을 발표했다.그러나 이것도 연구원의 마음을 붙들어놓는 석연한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생명공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한 연구소에 1∼2명 핵심연구원 선정은 연구소의 팀워크를 해칠 우려가 있는데다 1인당 연간 연구비 1억원은 대기업에 비하면 많은 액수도 못된다』고 지적했다.그는 또 『기관고유사업비의 경우 연구소의 모자라는 인건비 보전항목이 있어 결국 예산일원화라는 당초목표가 실종된 셈이고 중소기업 대응자금도 확보대책이 분명치 않아 변수가 많다』며 어느것도 분명한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이 잘되고 있는 선진국과 우리와는 기술개발여건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한 연구자는 『지난 1년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매달려온 프로젝트의 연구비가 8백만원이었는데 미국에서는 비슷한 성과를 낸 연구를 갖고 4년동안 12만달러 정도를 받았다』며 열악한 국내여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그러나 연구자는 새 제도의정착여부를 떠나 이의 출발점이 됐다는 연구소에 대한 인식 자체를 무엇보다 더욱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다.거기에는 지난 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설립 이후 약 30년간 기술의 불모지에서 반도체수출대국의 신화를 일궈낸 한국의 산업발전을 뒷받침해온 과학기술자가 지금 받고 있는 대우는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깔려 있다. 과학기술자는 한국과학기술 1기는 기술개발계획수립을 위한 정책연구가 필요했고 2기에는 해외기술이식을 위한 자료연구가 필요했으며,3기인 지금은 국제경쟁을 위한 창의적 연구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한다.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이 창의적인 연구라 해서 1,2기 수요에 부응하던 연구자를 생산성 없는 개혁대상으로 규정해야 하는지 한 연구자는 되물었다. 『예전 KIST시절에는 통근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그러나 지금은 집에 돌아가 아내 쳐다보기가 안쓰러울 뿐이다』라고 말하는 대덕연구단지의 분위기는 인근 민간연구소에게도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LG화학기술원의 한 간부는 『정부연구소가 잘될 때선의의 경쟁도 되고 정부가 앞장서 연구를 해줄 때 기업도 따라가는 연구를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분위기는 너무나 침체돼 과학기술계 전체의 앞날을 걱정할 정도』라고 말했다.과학기술계 전체가 문제점이 있는 것처럼 언급되고 개혁이 반복되면서 우수한 젊은 인재가 이공계 지원을 회피하는 경향마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기처 집계에 따르면 올해 정부연구소에서는 8월 현재 전체의 3.7%인 3백15명이 연구소를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그중에는 박사가 1백명이나 된다.경제전쟁시대에 과학기술개발의 국가적 중요성이 인정된다면 연구인력에게는 압박보다는 오히려 획기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대덕연구단지는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도 연구소 안정성확보등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한 후 각 부처가 동시에 실시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대덕연구단지는 어떤 곳인가/동양 최고의 「테크노폴리스」 74년 조성… 52개 연구소 두뇌 1만명/834만평에 생활기반시설 모두 갖춰 대덕연구단지가 명실상부한 세계수준의 연구·교육단지인 「테크노폴리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처가 최근 발표한 「대덕연구단지의 인원변화추이분석」결과에 따르면 95년11월 현재 모두 52개 연구기관이 입주,1만5천4백23명이 연구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출연연구기관의 박사급 연구인력이 매년 1백여명 안팎으로 이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사인력의 증가는 이를 상쇄하고도 매년 1백여명씩 증가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덕연구단지는 지난 74년 단지기반시설조성과 연구기관건설이 착수됨으로써 세계적인 연구단지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연구단지내에 본격적인 연구소가 들어선 것은 지난 78년3월.한국표준연구소가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입주했으며 이후 출연연구소 이외에도 79년3월 쌍용중앙연구소가 입주한 이래 각종 민간기업연구소도 앞을 다퉈 대덕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는 정부출연연구소 17개 기관에 7천6백40명,민간연구소는 21개 기관 3천2백63명이 종사하고 있다.앞으로도 산업보건연구원·한진종합연구소 등이 입주할 계획이어서 대덕연구단지는 국내 최고의 연구단지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실히 굳힐 것으로 기대된다. 대덕연구단지에는 연구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KAIST·충남대·충남전문대 등의 고등교육기관,6개 국민학교,3개 중학교,3개 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어 연구원 및 종사자의 자녀교육을 전담하고 있다.이밖에도 문화센터,2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탁아시설,종합운동장,체육공원 등이 들어서 있어 대덕단지가 하나의 생활기반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는 설립당시 선진국의 사이언스파크를 모델로 미국의 「트라이앵글 리서치 파크」,소련의 「노보시빌 스키」,일본의 「쓰구바 파크」등이 중심이 됐다.현재 8백34만평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는 경부고속도로 회덕인터체인지를 기점으로 광주행 호남고속도로와 대전엑스포단지 갑천을 경계로 조성돼 있으며 대덕과학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서부와 동부로 나누어져 있다. 1차 서부지역에는 주로 정부관련 연구소가 입주하고 있고 동부는 87년 공영개발방식에 의해 삼성·유공 등과같은 기업부설연구기관이 입주해 있는 상태다. 전체적인 시설분포를 살펴보면 총 8백34만평 가운데 자연녹지가 44%,연구교육시설 47%,기타 주거지역이 9%로 구성돼 있어 전형적인 전원형 과학기술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대덕연구단지는 진정한 의미의 테크노폴리스로 자리잡기 위해 정부 제3종합청사 유치를 비롯,단지 동쪽의 대전 제1,제2공단과 연계해 연구단지에서 쏟아지는 첨단과학기술을 바로 산업화시켜 생산라인으로 직결시키는 야심찬 계획을 실현해갈 예정이다.
  • 「파랑도」를 종합해양과학기지로(서울신문 50돌 특집)

    ◎기상관측·수자원개발 탐사 등 활용/한반도 주변해역 환경오염도 감시/이상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지구기후는 인류생활의 기초,해양기상은 지구 환경변화의 원인 지구표면의 71%는 물로 덮여있어 최근 세계적인 기상학자들은 육지기상보다 바다기상에 더욱 관심을 두고 조사·연구하고 있다.기후변동 문제는 국제적으로 정치·외교·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산업혁명 이후 누증된 온난화가스의 영향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와 지구표면이 점점 더워지고 해면상승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1987년에 오존층을 파괴하는 오염물질인 프레온(CFC)가스의 생산량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었고,1992년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규제,대체에너지 개발 및 에너지효율 극대화 방안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기후변화 기본협약」이 주창돼 대부분 국가에서 동의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지구기후의 변화를 자연현상의 어쩔 수 없는 조화로 간주해 그 폐혜를 피동적으로 감수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기후변화의 원인을 세밀히 파악하고 분석해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를 최소화시키고 더 나아가서 마치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예측해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두듯이 이러한 기후변화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국민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 영토에는 오래전부터 해양관측기지,어업전진기지,더 나아가서 무한한 해양자원의 개발기지로 적합한 천혜의 자연적인 고도가 있었다.전설속의 「이어도」라고 확증은 안되지만 극동지역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동지나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파랑도(Socotra Rock)가 바로 천혜의 해상 전진기지인 것이다. □지구상 최후의 프론티어,해양개발 1961년초 미국의 케네디대통령이 「해양은 지구상에 남아있는 최후의 프론티어」임을 주창한 이래,미국과 프랑스등 선진국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해양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인류역사상 과거에는 단순히 어업을 통한 생계유지와 교통수단으로만 이용해오던 해양을 20세기 과학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지구기상 및 환경변화의 관측과 자원의 개발 등 인류생활의 주요한 터전으로 새롭게 이용하려는 노력이 국가 전략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해양개발의 동향은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배경으로 해양개발의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고조돼 가고,인간의 물질적인 충족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충족을 바라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해양에 대한 개발요청이 다양화 해가고 있으며,더 나아가서는 지구환경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됨과 동시에 지구가 본래 갖고있는 정화능력 등의 유한성에 관한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등 새로운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해양개발대책중 주요한 사업은 「해양자원의 개발」이다.첫째,우리나라 동물성단백질 공급량의 60%를 차지하는 해양생물 자원이 개발돼야 하며 둘째,심해저에 부존해 있는 망간,코발트,니켈 등 하이테크산업의 원자재가 되는 광물자원의 중장기적인 안전공급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 「해양 광물자원의 조사·개발」사업이 수행돼야 한다.셋째,해양유전·천연가스의 탐광과 조력·파력·온도차 등의 해양에너지 개발사업이 이뤄져야 한다.세계적으로 청정하고 무한정한 자연에너지의 탐사·개발활동은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동향이다.넷째,「해양공간의 이용」이다.도시화의 진전,산업구조의 변화,지역 및 국제적 교류확대,여가시간 증대,고령사회 등에 대비해 무한한 해양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과제가 국가적 과제로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이와함께 국제적인 해양환경보전 문제 등을 위해 해양의 조사연구사업 등 해양을 보전하고 개발할 수 있는 전진기지의 구축은 시기적으로 매우 절실한 과제이다.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는 이제 미래 지향적이고 국민생활의 풍요와 함께 인류전체의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시각에서 종래의 현실위주의 단편적인 발상을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해양개발 전진기지,파랑도를 개발하자 지금까지 해양환경 보전 및 해양개발에 대한 정책은 실체적이고 충분한 자료에 근거하지 못하고 국지적이고 간접적인 조사에 의존하여 해양개발계획이 수립·시행됨에 따라 막대한 예산의 낭비와 태풍·해일 등의 자연재해에 많은 인명 및 재산피해를 입고 있을뿐 아니라 연안 및 해양환경오염,해운업·수산업 등 해양산업의 안전성·경제성 결여 등의 문제점을 노출해 왔다.따라서 이제부터는 원격탐사 기술과 현지 관측망을 통한 수치 해양예보 기술과의 연계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근본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파랑뿐만 아니라 해양오염·해상풍·해수유동·이상해면 변동·연안퇴적물 이동,해양 기초생산량의 추정 등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의 중요한 해양환경 요소를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예보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설치하고 이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관련 정부기관과 산업계 등에 제공함으로써 연안이용·개발,자연재해 방지,해양환경 보전,해양산업 지원 등 국가적 과제수행에 핵심적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파랑도는 이와 같은 종합적인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하는데 최적지로 손꼽히고 있다.파랑도와 제주도 사이의 거리 1백50㎞는 세계기상기구(WMO의 World Weather Watch)의 제언사항인 고층 기상관측망의 평균격자거리에 해당돼 고도·기온·바람·제트기류·습도·기압·해무·구름 등의 기상을 관측하는데 아주 적합한 장소로 평가되고 있어 국가적 차원의 종합해양전진기지 건설·활용계획이 매우 바람직하다.이러한 계획은 각 정부부처뿐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관심을 갖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파랑도를 해양개발 전진기지로 활용코자 함에는 육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해양기상·해상관측 예보의 정확성을 높여 자연재해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할뿐 아니라,해양개발을 통해 인류의 삶을 오래도록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더 나아가서는 해상영역의 확대와 국제적으로 배타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국가적 목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파랑도 해양과학기지 건설계획은 범부처적인 공동협력사업으로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며 이의 조기건설을 위한 예산조치 등 정책적 지원이 아쉬움없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수중섬 파랑도 어디있나/마라도 서남쪽 152㎞… 면적 37만㎡ 4.6m 물밑에… 암초 맑은날 뚜렷이 파랑도는 동경1백25도 북위 32도 동지나해 중앙에 위치한 수중 섬이다.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백52㎞,일본의 도리시마(조도)에서 서쪽으로 2백76㎞,중국의 퉁타오(동도)에서 북동쪽으로 2백45㎞ 떨어져 있으므로 3국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그러나 앞으로 2백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할때는 3국에 모두 포함된다. 파랑도는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가 발견,영국 해군성에 통보해 국제적으로는 소코트라 암초로 불리고 있다.지형은 길이가 남북 약 5백m,동서 약7백50m로 넓이는 약 37만5천㎡며 암초 정상은 해수면 하 약4.6m까지 돌출돼 있다. 논란은 있지만 파랑도는 제주도민의 전설에 나오는 이어도일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생각하고 있다.
  • 서울신문사 성장사(서울신문 50돌 특집)

    ◎국익·공익 우선의 정론 50년/반세기 달려 온 서울신문/최첨단 제작시설 구비… 제2의 도약기에/타블로이드로 출발 정간 49일 시련겪고 85년 새 사옥 준공/국내 첫 납활자 없애 서울신문 50년사는 곧 우리나라의 광복 50년사이다. 겨레가 광복을 맞아 국가의 독립을 다지는 시기인 45년 11월 22일 창간된 서울신문은 창간 이후 50년동안 국가의 발전과 민족이 겪은 영광과 고난의 길을 함께 해왔다.「해방조국의 진실한 대변기관」임을 밝힌 창간호는 타블로이드 양면으로 해방직후의 정국과 세태를 그대로 투영한 최고의 권위지였다.일간지 총발행부수가 50만부 미만이었던 당시 서울신문의 발행부수는 10만부였다. 좌익과 우익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울신문은 엄정 중립을 표방했다.서울신문은 1949년 5월 3일 공보처에서 내린 발행정지처분으로 정간되는 시련을 겪고 49일만인 6월22일자부터 다시 속간됐다.속간 직후 국내 언론사상 처음으로 4면 조·석간제를 도입,사세 신장을 꾀했다.6·25가 일어나자 서울신문은 28일 새벽 2시 반까지 12차례의 호외를 찍으며 전쟁상황을 알렸다. 1·4후퇴 당시 부산으로 피란했던 서울신문은 그해 4월 6일 중앙일간지중 가장 먼저 폐허가 된 서울로 환도,유일하게 진중 신문을 발행하는 신화를 남겼다.56년부터 60년까지 「한글판 서울신문」을 석간으로 발행하던 본사는 68년 11월 22일부터 국내최초로 전지면의 한글 전용을 단행했다. 서울신문은 세월과 역사의 아품을 겪으면서 중립지·정간사태·반공지,또 다시 정간·휴간·화재등 거친 풍파를 헤치면서 성장해왔다.65년 창간 20주년이 되던 해 서울신문은 활자를 개혁하고 국내 최초로 고속 윤전기를 도입했다.68년 11월 22일 본지 전지면을 한글전용으로 바꾸고 70년에는 6인승 취재용 경비행기를 도입했다. 80년 언론 통폐합 당시 서울신문은 12월 1일부터 종래 석간으로 발행하던 관행을 바꾸어 조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일대의 스카이 라인을 바꾼 현재의 서울신문사옥은 지난 85년 1월 1일 준공했다.새 사옥을 짓는 동안 서울신문은 82년 1월1일 을지로 5가 임시사옥으로 이전한 뒤 3년동안 그곳에서 신문을 만들었다.대지 2천35평위에 연건평 1만7천8백49평,지하 4층 지상 22층의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선 서울신문 사옥에는 25개 국내언론단체와 5개의 주한외국언론기관이 입주해 명실상부한 프레스 센터기능을 하고 있다. 새 사옥 입주와 함께 서울신문은 85년 1월 1일자를 국내 일간신문으로는 처음으로 납활자 대신 전산제작방식인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로 발행했다.서울신문의 CTS 도입은 1백년의 한국신문사상 신기원을 이룩한것이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서울신문은 컴퓨터를 이용한 기사작성과 입력·송고체제를 도입,90년 5월 국내신문사로는 최초로 기자입력 하드웨어를완비했고 93년 6월1일부터 편집국에 펜과 잉크를 없앴다. 95년 1월 16일 손주환사장은 『서울신문은 국내정상의 고급정론지로 거듭 태어나 정부와 국민의 가교역을 하는 신문으로 맡은바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제2의 창간을 선언했다.지난 8월에는 4백억원이라는 자본금 확충이 이루어짐으로써 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증자를 통해 서울신문은 CTS체제 정비와 최신형 윤전기도입등 토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됐다. 특히 서울신문사는 광복·분단 50년과 창간 50돌을 맞아 95년 10월30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LG구룹 협찬으로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을 개최,정론지로서의 위상을 한층 드높였다.「한민주 통합을 준비한다」는 주제로 열린 이 포럼에는 한·미·중·일·독·러시아의 세계적 석학 및 전문가들이 참석,한민족 통합방법에 대한 진지한 의견 개전과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통일준비 방안을 놓고 심도있는 토론을 벌였다. 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해 신문사에서 대규모 국제포럼을 마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앞으로 이같은 국제적인 학술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국가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이 서울신문의 방침이다. ◎스포츠·대중문화 발전 “선도”/언론 소명 다해 온 자매지/스포츠 서울­스포츠지 대명사… 정상 질주/QUEEN­여성·주부에 다양한 정보 제공/TV 가이드­X세대∼노년 모두에 사랑받아/뉴스피플­뉴스 분석·화제 인물 집중발굴 광복의 기쁨 속에서 태어난 서울신문이 지난 반세기동안 민족 정론을 이끌어 온 것과 더불어 서울신문사는 숱한 자매지를 내 언론의 소명을 다했다.이 자매지들은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선보였고 제 구실을 다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울신문사가 서울신문 말고도 현재 발행하고 있는 자매지는 스포츠서울,TV가이드,뉴스피플,QUEEN(퀸)등 4종. 19 85년 6월22일 창간한 일간지 스포츠서울은 여섯달만에 경쟁지를 압도하고,스포츠신문 시장을 석권하는 「기적」을 이루었다.그러나 이는 「기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스포츠서울은 언론사에 남을 획기적인 방식을 몇가지 도입했기 때문이다.먼저 일간지로는 처음으로 전면 가로쓰기로 편집하고,1면등 주요 지면을 컬러로 제작했다.또 철저하게 한글만으로 지면을 채웠다.스포츠신문이라는 특성에 걸맞는 「보는 신문」「즐기는 신문」을 만든 것이다. 지난해 말 자체 조사에서 스포츠신문 가운데 스포츠서울을 첫손에 꼽은 독자는 56.6%였다.스포츠서울이 변함없는 정상임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TV가이드는 19 81년 7월「젊은 잡지,가족 잡지」를 내세워 창간됐다.본격적인 컬러TV시대에 발맞춰 나온 이 주간지는 10대에서 노년층까지 가장 폭넓은 독자층에게서 사랑을 받는 잡지로 꼽힌다.방송·연예계의 따끈한 뉴스,인기인에 관한 화제기사를 다루되 스캔들 보다는 건전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다른 주간지와 구분되는 장점이다. 전파매체인 방송과 시청자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성실하게 해낸 점도 인기 요인의 하나이다. 월간 여성지 QUEEN은 1990년 7월호로 출발했다.여성지가 범람하는 상황에서도 QUEEN이 5년여만에 정상권에 우뚝 선 원인은 무엇보다 흥미있고 유익한 기사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데 있을 것이다.변화하는 신세대 주부들의 문화 진단,화제인물의 숨은 이야기 공개,다이어트 비법,육아·부부 문제,건강정보등 QUEEN이 싣는 기사는 여성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사 주간지 뉴스피플은 1992년 12월12일 첫호를 냈다.20∼40대 중산층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이 잡지는 시사뉴스와 함께 화제인물 발굴에 주력했다.아울러 주간지라는 특성을 살려 시사뉴스를 깊이있게 분석한 특집을 발빠르게 처리했다.이같은 차별화에 힘입어 뉴스피플은 창간 3년만에 광고 신장률 6백%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간행 당시 제 구실을 톡톡히 한 자매지는 많다. 먼저 1968년 9월22일 등장한 「선데이서울」을 들 수 있다.이 잡지는 1991년 송년호(제 1192호)를 끝으로 폐간될 때까지 주간지의 대명사로 불릴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60∼70년대 선데이서울은 국민에게 흥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하며 대중문화 발전을 이끌었다. 서울신문 간행 초기인 1940년대에는 월간지 「신천지」와 시사잡지 「주간서울」이 나와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신천지는 서울신문 창간 석달 뒤인 1946년 2월에 나와 55년 63호로 마감했다.주간서울은 1948년 10월18일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6월26일까지 맥을 이었다. 또 주간지 「소년서울」은 1953년 9월 첫 간행돼 54년 6월 중단됐다가 1970년 4월 같은 제목의 다블로이드판 주간신문으로 부활한다.다시75년 11월 286호로 막을 내렸다. 스포츠 잡지시장을 12년동안 선도한 「주간스포츠」는 1975년 3월30일 창간돼 87년 7월25일 632호까지 냈다.주간스포츠는 TV의 스포츠중계가 많아진데다 스포츠신문의 인기에 밀려 폐간됐다.하지만 간행 당시 스포츠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들었다. 1984년 봄호로 창간한 계간 비평지 「예술과 비평」은 비록 긴 생명을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문화는 있으나 비평은 없는」당시 문화 현실에서 「예술과 비평」은 단단히 한몫을 했다.3년여 뒤에 폐간됐다가 「계간 문예」란 제목으로 1991년 겨울 복간됐다. 이밖에 주간 「서울평론」이 1973년 11월4일에서 75년 11월6일까지 나왔고 1959년에는 「서울연감」을 간행하기도 했다.
  • 서울신문에 미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Ⅱ(서울신문50돌 특집)

    ◎70년대/「보릿고개」 넘기자 미니스커트 상륙/비상계엄 후유증 「카더라 통신」 난무 70년대 70년대는 유신체제라는 스펙트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잣대로 작용했다. 유신체제는 우선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로 국민들의 새벽단잠을 깨우며 다가왔다. 전국 농·어촌에 새마을기가 나부끼기 시작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등 해외에서도 새마을 붐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신문도 71년부터 정부의 본격적인 사업전개에 앞서 새마을가꾸기 선두부락을 소개하는 기획물 「번영을 가꾸는 희망가족 시리즈­의욕의 현지,북돋는 자립,땀흘린 보람의 합창」이란 고정컷으로 본지 최초의 새마을운동 기획물을 72년초까지 50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이 운동의 확산에 큰 몫을 담당했다. 72년 3월24일자 사설에선 이 운동을 「농민들이 스스로 잘살기 위해 자조·자립·협동하는 정신의 계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70년 7월7일 경부·호남고속도로 개통에다 71년 3월31일 서울·부산 자동전화 개통은 「일일생활권」이라는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정부의 이러한 불도저식 경제 최우선 정책으로 국민들의 배고픔도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해 국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띠기 시작했다. 환해진 모습은 먼저 옷차림에서 띠였다.67년 가수 윤복희씨가 선보인 미니스커트는 73년에는 무릎위 17㎝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그 길이가 짧아져 경찰이 경범죄처벌대상에 미니스커트 길이를 포함시켜 자를 들고 다니며 이를 단속하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남자들의 긴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은 청바지를 즐겨 입고 통기타와 생맥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청통맥문화」를 만끽했다.「사랑해」「왜불러」등의 포크송이 거리를 메웠으며 「아침이슬」「고래사냥」등 금지곡도 양산됐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통일을 염원해 온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소용돌이쳤다. 이날자 본지는 「피맺힌 4반세기…이제 전쟁은 사라지는가! 3천리에 벼락환성」「대화있는 남·북대결의 시대 열리다」라는 제목으로 당시 시민들의 반응을 실감있게 전하고 있다.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며 평화시장 교복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씨의 분신자살 사건은 이러한 고도성장 드라이브 정책이 필연적으로 맞을 수 밖에 없는 종착점을 예고한 사건과 다름 없었다. 72년 10월 17일에는 비상계엄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대학이 문을 닫고 신문·통신마저 사전검열을 받으면서 국민들은 「카더라 방송」「유비통신」으로 불리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유신국회의원들이 장충체육관에서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거수기」로 변한 것이나 비상계엄 아래서도 반체제 인사들의 저항과 민주회복운동,양심선언 등이 계속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사건을 예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신정권은 「그때 그사람」이라는 노랫가락 속에 울린 몇발의 총성과 함께 79년 10월26일 막을 내렸다. 10·26사태 뒤엔 「한다면 합니다」란 말과 5·17후의 떡고물 얘기가 유행했다.부정축재자로 지목된 L씨가 자신은 떡(정치자금)은만졌으나 고물(부스러기돈)만 떨어졌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70년대 종반은 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군사반란에 이어 80년 5·17일 쿠데타로 또 다른 군사정권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80년대/“금융사기” 장영자에 “큰손” 조롱/테러범 김현희에 구혼 줄잇고/“탁치니 억하고 죽었다”엔 분노 79년 10월26일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을 뒤로 하고 80년대를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비로소 「서울의 봄」을 맞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79년 12월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탈취를 노린 신군부는 압제와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시대로 80년대를 열고 있었다. 80년 5월17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8일 군부독재 연장기도에 맞서 광주에서 발생한 항의시위를 공수부대 특전단을 동원해 총검으로 유혈진압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결국 신군부는 그해 9월1일 전두환 정권을 탄생시킨다.그리고 이날부터 TV에는 「땡전뉴스」가 등장하게 된다.9시 뉴스는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됐던것이다. 80년 11월12일에는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등이 제정돼 기자들은 강제해직을 면치못했고 언론은 통폐합 됐다. 이같은 압제는 학생운동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학생운동은 광주항쟁에서의 좌절을 계기로 반미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표출됐고 급기야 82년3월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했다.이는 85년 서울·광주 미문화원 점거로 이어졌다. 82년 5월에는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6천억원대에 달하는 건국후 최대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이때부터 사람들은 씀씀이가 큰 사람을 「큰손」이라 일컫기도 했다. 분단의 아픔은 80년 대에도 지워지지 않았다.83년 9월1일에는 사할린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 보잉007기를 소련의 전투기가 공격,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고 그해 10월9일에는 서남아시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관리 13명이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북한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에 절명,분노를 자아냈다. 그같은 분노는 87년 6월 테러범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에 폭탄을 설치,1백51명의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로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압송돼온 김현희의 미모에 반해 결혼하고 싶다는 남성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남겼다. 87년 1월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도 시대의 아픔을 공유케 했다.「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표는 폭력적인 공권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켜 6·29선언을 낳게 했다.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굴복해 나온 이 선언은 후에 「죽이구」선언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였지만 변화의 물결도 뚜렷했다.80년 컬러TV 시대가 개막됐고 82년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됐다.또 비디오문화가 새롭게 열리기 시작하면서 외설문화의 범람을 초래하기도 했다. 80년에는 또 대입본고사 폐지,대학정원의 졸업정원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교육개혁조치와 함께 과외 전면금지가 단행 됐다.이에 따라 숨어서하는 과외가 성행,수백만원대의 과외풍조가 생겨났으며 「쪽집게과외」 등 돈으로 교육을 사는 세태를 낳기도 했다. 82년 중·고생 두발자율화,83년 교복자유화 등의 조치는 청소년들의 유흥업소 출입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기도 했으며 유니섹스모드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90년대/3D기피 현상속 세계화 바람타고 외국어 수강 “붑” 93년 2월25일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5·16 이후 30여년만에 민간대통령이 탄생한 만큼 90년대는 사회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안으로는 금융실명제 등을 통해 사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사이 49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는 등 안팎으로 많은 소용돌이가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90년대를 특징짓는 함축적인 표현은 이른바 「X세대 문화」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성장가도를 달려온 부모·선배 세대가 만들어 놓은 과실을 향유하는 신세대들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주의적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개성적인 새대라는 의식이 공존 한다.알아들을 수 없는 「랩」을 흥얼거리며 록카페를 드나드는 「오렌지족」인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배낭하나 덜렁 메고 유럽이고 미국이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찾아나서 모험을 즐기기도 하는 세대들인 것이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수 없지만 정보화시대를 앞당기며 국제화와 세계화를 이끌 첨병도 바로 그들이다. 젊은이들의 문화가 인간성 상실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대중문화의 병폐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컴퓨터나 외국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30∼50대 「컴맹세대」가 느끼는 세대간의 문화적 격차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수대교 붕괴사고,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삼풍백화점 붕괴 등 90년대 들어 빈발하고 있는 대형사고들은 선배세대들의 부정적 부산물일 뿐이며 그점에서 그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것이다. 하지만 즐기는 신세대로서의 그들은 3D 기피현상이라는 어두운 한 단면을 90년대에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고학력 구직난,저학력 구인난」현상과 외국인근로자의 양산도 바로 그들의 시대를 특정짓는 모습들이다.
  • 깨끗한 정치 구현의 시험(노씨 구속 해외사설)

    한국의 노태우 전대통령은 지금 한국 역사상 최대 정치부패사건에 있어서 기소를 기다리며 서울구치소의 독방에 앉아있다.그의 구속은 오랫동안 뇌물과 다른 부패관행에 감염된 한국정치를 깨끗하게 하겠다는 정부의 공언에 대한 시험이다.그러나 노씨는 한국의 정치계와 재계에 깊게 뻗친 스캔들에 혼자 책임을 져서는 안된다. 노씨는 6억5천만달러의 정치비자금의 조성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지만 어느 재벌이 조성에 기여했으며,어느 정치인이 수혜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검찰조사관들은 노씨의 재임기간중 큰 규모의 공공계약들이 정치비자금의 기여를 기초로 해 주어졌으며 그돈은 부패한 개인들 뿐아니라 모든 주요 정당에 나눠졌다고 믿고 있다. 비록 노씨는 한국의 민주화에 일조를 했지만 그의 경력은 한국정치 최악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그는 1979년 군사반란에 가담했으며 1980년 광주시민 학살시 군대를 지휘했다.그러나 1987년 그는 군사정권이 만들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돼있는 선거를 통한 대통령직 인수기회를 버리고 대신 자유선거를 감수했다.그것은 한국의 도시와 대학을 들끓게 했던 격렬한 정치불안정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됐다. 노씨의 대통령 재직 기간은 많은 부패가 이뤄진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보다 커지고 현대통령인 김영삼씨 같은 당시 반체제인사들에게 정치생활 재개 기회가 주어진 새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노씨는 지금 자신이 추진한 개혁조치의 가장 뚜렷한 희생자가 됐다.노씨로부터 자금을 받았다고 시인한 야당지도자 김대중씨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도 희생될지 모른다.또 김대통령까지도 그럴지 모른다.집권당(민자당)은 정치비자금의 일부를 받았다고 시인했는데 그 돈은 92년 대선에서 사용됐을지 모르는 일이다.그러나 김대통령은 개인적 개입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야당의원들은 사법당국이 계속 조사에 임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새 민주제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면 조사와 기소는 계속돼야 한다.노씨만이 유일한 부패정치의 종사자가 아니었으며 그가 유일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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