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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년 체제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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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순 여만철씨에 들어본 앞으로의 북한

    ◎「탈북 도미노」 더이상 막기 힘들다/식량난속 기강도 해이… 체제불안 가속/탈출기도자 공개처형… 공포정치 나설듯/김경호씨 일행 탈출로 재미교포 입북 심사 강화 예상 지난 94년 3월18일 압록강을 건너 탈북에 성공,귀순한 여만철씨(51)는 앞으로도 김경호씨(62)가족의 탈북과 같은 집단탈북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데다 체제의 나사가 풀려 탈북을 막을 수가 없어 그렇다는 것이다.그러나 여씨는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대량탈북을 막기 위해 공개처형 등 공포분위기 조성으로 맞설 것이기 때문에 그리 쉽지만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북전 함흥시 혜산구역 안전부 호안과 종합지도원이었던 여만철씨로부터 집단 탈북자의 속출 가능성과 김경호씨 일가족 탈북사태후 북한에서 취해질 조치들에 대해 들어 보았다. 북한주민 김경호씨 일가족 17명의 탈북은 체제회의와 신변위협 등이 계기가 된 죽음을 각오한 탈출이란 점에서 다른 탈북사건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그러나 망명자 수가 17명에 이르는 대규모라는 점과 재미교포가 개입된 탈북이란 점에선 주목을 받기에 족하다.집단 탈북사례로 지금까지는 지난 87년 1월 김만철씨 일가족 11명 탈북사건이 최대 규모였으며 이후 여만철씨 일가족,정순영씨 일가족 탈북사건이 이어졌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는 아니었다.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사실을 모아보면 이번 김씨 일가족의 탈북은 북한 내외부 가족간의 합작품이라는 인상이 짙다.북한내 김씨의 가족과 미국거주 김씨의 장인 최영도씨(79)가족이 함께 연출한 완벽한 탈출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렇다. 당국에 따르면 최영도씨 가족은 먼저 북한 사회안전원을 매수,김씨 가족을 중국으로 빼돌리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이후 최씨는 조선족 안내원을 고용해 홍콩으로 잠입케하는데 성공,분단 이후 최대 규모의 일가족 탈북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김씨 일가족 탈북의 가장 큰 원인은 최악의 식량사정과 남한출신 가족에 대한 차별 대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이번 김씨 일가의 탈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회안전원이직접 안내를 맡았을 뿐 아니라 함께 탈북한 사실이다.이는 북한의 체제이완이 통제불능의 상태에까지 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동시에 북한사회 전체의 부패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어쨌든 북한은 이번 김경호씨 일가족의 집단탈북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며 유사한 집단탈북을 막기 위해 통제를 일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만철씨는 먼저 북한이 국경경비강화와 주민단속을 철저히 하고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이로 인해 외부로의 주민이동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동시에 해외교포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지금까지 북한은 외화(달러)벌이를 목적으로 재미교포들의 방북을 권장해왔으며 실제로 많은 외화를 끌어모은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이번 김경호씨 일가족 집단탈북에 재미교포가 개입된 사실이 밝혀진 만큼 향후 재미교포사업 즉 재미교포들의 방북은 상당히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많다.외화도 좋지만 그냥 방치할 경우 체제가 흔들릴 염려가 있기때문에 고삐를 단단히 죌 것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처한 형편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의 탈북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여만철씨는 북한측의 요청으로 중국측의 탈북자 입국단속이 강화되더라도 탈북을 막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발각되는 경우 뇌물만 주면 중국입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북한주민들 사이에선 북한땅만 벗어나면 살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여만철씨는 향후 북한의 체제불안정이 가속화될수록 탈북사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특히 올겨울 두만강과 압록강이 얼어붙을 경우 대량탈북사태도 베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 탈북일가 17명 내주초 입국/사회안전부원 1명 포함

    ◎10월 두만강건너 홍콩서 망명 신청 함경북도 회령에 거주하던 김경호씨(62)의 일가족 16명이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의 인도를 받아 북한을 탈출한뒤 홍콩으로 밀입국,한국으로의 망명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5일 밝혀졌다. 이에따라 홍콩의 상수 수용소에 수용돼 있는 김씨 일가와 안전원 최씨등 17명의 송환교섭을 위한 한국협상단이 이날 홍콩에 도착했으며,김씨 일가는 빠르면 이번 주말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홍콩당국은 김씨 일가의 한국 망명의지가 확실하기 때문에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HCR)의 입회조사 절차 없이 망명을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는 김씨와 부인 최현실씨(57),김·최 부부의 5남매와 그 가족등으로,임신부 1명과 5명의 어린이가 포함돼 있다고 서대변인은 밝혔다. 김씨 일가는 지난 10월26일 새벽 회령을 출발,최영호의 인도로 두만강을 건넌뒤 현실씨의 부친인 재미교포 최영도씨(79)가 채용한 중국 조선족의 안내로 용정과 심양 북경 광주 심천을 경유,지난달 23일 홍콩에 도착했다. 북한의 체제유지를 담당하는 사회안전부 안전원이 주민들을 이끌고 귀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이는 북한 체제의 이완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17명이나 되는 북한 일가족이 한꺼번에 귀순한 것도 이번이 처음으로,지금까지는 지난 87년 2월 김만철씨 일가 11명이 귀순한 것이 최대규모였다.
  • 53년 제정이후 7차례 개정/노동법 제­개정 연혁

    ◎73년­보호대상 연소근로자 18세미만으로/80년­3자개입 규정 신설·유니언숍제 페지/89년­법정근로시간을 주44시간으로 단축 지난 53년 제정된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은 이번에 정부안이 확정됨으로써 43년만에 대수술을 받게 됐다. 노동관계법은 지금까지 63년 5·16 군사정부하에서,71년 국가비상사태하에서,73년 유신체제하에서,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86년 5공정권하에서,87년 「6·29선언」 직후,89년 「여소야대」 상황에서 모두 7차례 개정됐다. 말하자면 급격한 정국변화 상황에서 노사 당사자가 배제된 채 법개정이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화시에,노사 당사자들이 협의에 참여하고 국민의 여론이 충분히 감안됐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63년 노조의 결격사유를 보다 엄격히 규정하고 노조의 정치활동 제한조항을 강화하는 등 규제 일변도로 개정됐다. 71년에는 근로자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미리 주무관청에 조정을 신청하고 그 조정결과에 따르도록 제한했으며 대통령은 국가안보 또는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을 규제하는 특별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했다. 73년에는 산별체제 관련조항을 삭제하고 공익사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노동운동 제한조치와 함께 근로시간 보호대상 연소근로자를 16세에서 18세 미만으로,근로기준법 적용대상 사업장을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80년에는 제3자 개입규정 신설,유니언숍제 폐지,국영기업체 및 방위산업체 쟁의행위 금지,일반사업에도 직권중재제도 도입 등 노동계가 「독소」조항으로 주장하는 대목들이 도입됐다. 86년에는 냉각기간이 단축되고 제3자 개입금지 대상이 축소되는 등 80년의 이른바 「독소조항」이 다소 완화됐다. 87년에는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신설되는 대신 공익사업 범위가 축소되고 변형근로시간제가 폐지됐다. 89년에는 법정 근로시간을 주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한 근로기준법만 확정되고 공무원의 단결권을 허용하고 방산업체 근로자 쟁의금지 조항을 삭제한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개정이 무산됐다.
  • 남북경제지표 비교/통계청

    ◎남한 작년 자동차생산 북의 100배 넘어 남북한의 경제력은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그러나 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시설지표와 대학생수 등 사회부문의 지표는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다.통계청이 발표한 「남북한 경제사회상비교」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일반현황/남북총인구 6,880만… 83.9%가 분단이후 출생/89년이후 상호방문 1,896명… 제3국 접촉 5,674명 남한인구는 지난 49년 2천18만9천명에서 올해 4천5백24만8천명으로 47년동안 2.2배 증가했다.북한은 49년 9백62만2천명에서 올해 2천3백55만8천명으로 2.4배 늘었다.남북한 총인구는 2천9백81만1천명에서 6천8백80만6천명으로 2.3배 증가했다.성별로는 남한은 49년도 성비가 102.1명,올해 101.4명으로 남초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북한은 49년도 98.8명에서 91년에는 99.9명으로 여자가 많았으나 95년과 96년에는 100.3명으로 남초현상으로 바뀌었다. 46년이후 출생한 분단이후 세대는 올해 남한이 3천7백35만3천명으로 총인구대비 83%,북한은 2천37만1천명으로 86.5%였다.전체로는 5천7백72만4천명으로 83.9%다.54년이후 출생자인 전후세대는 남한이 3천3백32만1천명으로 73.6%,북한은 1천8백63만명으로 79.1%였다.전체로는 5천1백95만1천명으로 75.5%였다. 핵가족화 현상은 남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남한의 평균가구원수는 80년 4.6명에서 지난해 3.3명으로 1.3명 감소했으며 북한은 5.1명에서 4.4명으로 0.7명 줄었다. 경제활동인구가 15세이상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경제활동 참가율은 북한이 65년이후 줄곧 높아 95년 69.8%로 남한의 62%에 비해 7.8%포인트 높다.자발적 실업을 허용하지 않는 체제상의 특성과 노약자나 병약자도 일을 하지 않으면 식량배급에 차별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 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지침에 따라 인적교류가 이루어진이후 지난 6월까지 북한을 방문한 남한사람은 93건에 1천321명이며 연도별로는 95년이 536명으로 가장 많았다.반면 남한을 방문한 북한인은 12건에 575명이었다.제3국에서 남북한이 접촉한 건수는 1천831건에 5천674명이었다.분야별로는 학술분야가 105건에 1천393명,경제분야 707건에1천359명,이산가족 상봉 806건에 900명,종교분야 46건에 478명이었다. ◎경제총량/95년 남북교역총액은 2억8,729만달러 지난해 남한의 국민총생산은 4천5백17억달러로 북한의 2백23억달러에 비해 20.3배 많다.남북간 격차는 65년 1.6배에서 94년 17.8배로 커지고 있다.특히 북한은 90년부터 95년까지 연평균 마이너스 4.5% 성장,95년의 실질 국민총생산은 89년의 76%수준에 불과했다. 66∼95년까지의 연평균 명목성장률은 남한이 18.2%,북한은 8.6%였다.1인당 GNP는 65년에는 남한이 105달러로 162달러인 북한의 64.8%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남한이 1만76달러,북한이 9백57달러로 10.5배 차이가 났다.지난해 무역총액은 남한이 2천6백1억8천만달러로 북한의 20억5천만달러에 비해 1백26.9배 많다.65년에는 남한이 북한에 비해 1.6배 많았었다.남한의 총외채는 80년 2백71억7천만달러,지난해 7백84억4천만달러로 늘었으나 총외채에서 해외자산을 뺀 순외채는 80년 1백96억3천만달러,지난해 1백70억6천만달러로 감소했다.그러나 북한은 총외채가 80년 22억3천만달러,지난해 1백18억3천만달러로 증가했다(북한은 해외자산이 없어 총외채가 바로 순외채다).GNP에 대한 총외채의 비율은 남한이 80년 44.8%에서 지난해 17.4%로 개선됐으나 북한은 16.5%에서 53%로 악화됐다.지난해 통관기준으로 남북간 총교역액은 2억8천7백29만달러로 남한은 일본(5억9천만달러),중국(5억5천만달러)에 이어 북한의 3대교역국이다. ◎산업/단보당 쌀생산량 남 445㎏­북 210㎏ 남한의 쌀 생산량은 65년 3백50만1천t에서 지난해에는 4백69만5천t으로 증가했다.북한은 1백25만8천t에서 1백21만1천t으로 감소했다.65년 남한의 단보당 쌀생산량은 285㎏으로 북한의 229㎏에 비해 1.2배,지난해에는 445㎏으로 210㎏에 그친 북한의 2.1배였다. 지난해 남한의 어획량은 3백34만8천t으로 65년에 비해 5.4배 증가했다.북한은 77만3천t에서 1백5만2천t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남북간 격차는 65년 0.8배에서 지난해에는 3.2배로 반전됐다.어선의 노후화와 유류부족 때문이다. 남한의 지난해 석탄과 철광석 생산능력은 각각 5백71만7천t,47만6천t으로 북한의20%,10% 수준이지만 공업부문의 생산능력은 최고 100배이상 차이가 난다.지난해 자동차 생산능력은 남한이 3백36만1천대로 북한의 3만3천대에 비해 101.8배 ,TV수상기는 84.6배,냉장고는 43.7배 많다.이밖에 공장기계 생산능력은 10배,조선능력은 26.5배,시멘트는 4.7배,섬유는 11.2배 차이가 난다. ◎간접자본/지하철 총연장 남 194㎞… 북은 34㎞ 지난해 남한의 철도연장은 6천554㎞로 북한의 5천112㎞에 비해 1.3배다.지난해 남한의 지하철총연장은 194.6㎞로 34㎞인 북한에 비해 5.7배 길다.남북간 도로연장은 70년 2배에서 지난해에는 3.2배로 확대됐다.남북간 고속도로 연장은 75년에는 76.1배 차이가 났으나 지난해에는 격차가 2.8배로 좁혀졌다.항만하역능력은 80년 3.6배에서 지난해 8.1배로 격차가 확대됐다.지난해 남한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북한의 31.1배,항공기 보유대수는 11.6배,선박 보유t수는 7배였다. ◎사회/북 쌀 1㎏ 31원… 암시장애선 1,238배나 비싸/직종별 임금수준은 남이 북보다 11∼31배 높아 지난 5월 기준으로 남한의 쌀 1㎏ 산매가격은 1천813원,북한의 국정산매가격은 31원이다.그러나 북한의 암거래가격은 국정산매가격의 1천238.7배인 3만8천400원으로 남한보다 20배 비싸다.달걀 암거래가격은 4천992원으로 남한(110원)의 45배,돼지고기는 6만9천1백20원으로 남한(5천400원)의 13배,두부는 600g기준으로 6천912원으로 남한(333원)의 20배가 넘었다. 공산품은 고가정책에 따라 컬러TV·카세트·카메라·자전거 등은 북한의 국정산매가격이 남한보다 모두 비쌌다.특히 16인치 컬러TV는 92년 남한이 23만8천원인 반면 북한의 국정산매가격은 2배가 넘는 49만5천450원,암거래가격은 7백34만원으로 30배를 넘었다.공공요금은 90년도 남한의 지하철요금이 200원으로 34원인 북한에 비해 6배 비쌌으며 우편요금·전보요금·버스요금도 북한이 남한보다 싸다.그러나 전화는 시내기준으로 남한이 20원,북한이 34원,택시요금은 남한이 600원,북한이 1천508원으로 북한이 비쌌다.대중목욕료는 북한이 남한에 비해 29.4배 싸고 이발료·숙박료·영화관람료·유원지입장료도 저렴하다. 임금은 92년도 기준으로 남한이 북한보다 직종별로 10∼30배 가량 높다.행정관리직은 남한이 1백43만2천원으로 북한의 당·정무원 부장(1백10만∼1백28만원)보다 11.2∼13배 수준이었다.전문기술직은 15.7∼7.9배,생산직은 23.2∼16.3배,사무직은 31∼26.2배,서비스직은 33.4∼20.1배 차이가 났다.92년도 사무원 1개월평균임금으로 남한은 쌀 495.3㎏을 살수있으나 북한사무원은 국정산매가격으로 875㎏,암시장에서는 2.8㎏을 살수 있다. 95년 남한의 평균수명은 72.9세로 북한의 70.3세에 비해 2.6세 높다.1천명당 영아사망률은 94년 남한이 8.8명,북한은 27.7명이었다.86년 남한의 병·의원수는 9천81개로 북한의 7천172개에 비해 1.3배 많다.90년 남한의 의·약사수는 9만5천83명으로 5만8천644명인 북한에 비해 1.6배다.그러나 인구 1만명당 의·약사수는 남한이 22.2명,북한이 27명으로 북한이 남한보다 4.8명 많다.이혼건수는 87년의 경우 남한이 4만1천912건,북한이 4천231건으로 남한이 북한보다 10배 가량 많다. 92년 남한의 교육기관은 초등학교는 북한에 비해 1.3배,중등학교는 1.1배,대학교는 1.7배 많다.1만명당 대학생수는 남한이 270.9명으로 140.6명인 북한에 비해 1.9배 많다.언론기관은 96년 남한의 일간지가 66개로 16개인 북한보다 4.1배 많고 TV방송국은 3배,라디오방송국은 5.1배 많다.95년 종교인구는 남한이 2천2백77만8천명인데 비해 북한은 3만5천3백명에 불과했다.
  • 도스 6.22와 운영체제(컴퓨터 걸음마:20)

    영구가 캑캑댑니다.좌식식변비약은 항문에 넣어야 하는데,입에다 넣은 것입니다.이걸 컴퓨터 용어로 말하면 운영체제가 잘못된 것입니다.운영체제는 「입으로 가라」,「항문으로 가라」하고 입출력장치를 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개인용컴퓨터에 가장 널리 사용되어온 운영체제가 엠에스 도스입니다.5백만명 이상되는 우리나라의 엠에스 도스 사용자 중에서 초·중·고교의 교육용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버전 3.2나 3.3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버전 6.2나 6.22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윈도 3.1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도스 버전 6.2 이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다만,윈도95는 도스가 없어도 됩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서 1981년에 엠에스 도스 버전 1.0을 최초의 아이비엠 피시(IBM­PC)용 운영체제 프로그램으로 발표했습니다.플로피디스크의 양쪽을 다 사용할 수 있도록 고친 것이 버전 1.1,아이비엠 엑스티 용으로 10메가바이트(10MB) 하드디스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 버전 2.0입니다. 1984년 아이비엠 에이티가 개발되고 에이티용으로 버전 3.0을발표하고,1985년에는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버전 3.1을 발표합니다.1986년의 버전 3.2는 3.5인치 디스크드라이브(2디:720 킬로바이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하드디스크도 32메가바이트까지 한번에 사용할 수 있게 개선되었습니다. 1987년의 버전 3.3은 3.5인치 디스크를 1.44메가바이트까지 쓸 수 있고 32메가바이트가 넘는 하드디스크는 나누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40메가바이트 하드디스크는 32메가와 8메가로 나누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버전 3.3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운영체제 프로그램의 면모를 보인 것입니다. 그후 버전 4.0이 나왔으나 별볼일 없었고 1991년에 나온 버전 5.0은 메모리 관리 기능이 향상되고 버전 4.0에서 처음 시도된 기능도 조금 나아졌습니다. 1993년에 자동메모리 조정 기능과 하드디스크를 늘려 쓸 수 있는 더블스페이스 프로그램이 추가되고,바이러스를 체크하는 프로그램이 추가된 버전 6이 나왔습니다.이상하게 버전 6.0이라 하지 않고 버전 6이라고 하던군요.그런데 더블스페이스 기능이 문제가 있어서 이를 개선하고 스캔디스크 기능을 추가한 버전 6.2가 같은 해에 나왔습니다. 윈도95는 윈도 버전 4.0에 해당합니다.굳이 도스 버전으로 치자면 버전 7.0이 될 것입니다.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입니다. SYSTEM7은 미국 애플컴퓨터 회사의 제품으로 매킨토시 컴퓨터에 사용되는 운영체제입니다.유닉스(UNIX) 운영체제는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개발하여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나 미니컴퓨터,32비트 이상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CPU로 사용한 펜티엄컴퓨터 같은 개인용컴퓨터 등 다양한 기종의 컴퓨터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 대북정책과 잘못된 가설들(김호준 정치평론)

    북한의 김정일정권은 정말 뻔뻔하고 악랄하다.아마 도척과 같은 천하의 불한당이 살아 있더라도 그처럼 후안무치하지는 않을 것이다.남녘 동포들이 구호미를 보낸 그 바닷길로 잠수함과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다니….세상에 그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단 말인가.못된 짓이 들통 났으면 사죄하고 용서를 빌 일이건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천배 만배 보복하겠다』고 협박하는건 또 무슨 행악질인가.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번 강릉 무장공비사건은 북한 정권의 무도한 실체와 우리의 대북 통일정책의 현실성에 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그런 불한당들을 상대로 평화노력을 과연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그들과의 공존·공영을 전제로 한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3단계 통일방안은 북한 사회의 개방이 가능하다는 전제와 북한 지도층을 선의의 우호적 동족이라고 보는 잠재적 가설 위에 서 있다.그리하여 화해와 협력의 제1단계,남북연합의 제2단계를 거쳐 마지막제3단계에서 남북한 양측이 각자의 정치권력을 통일국가에 귀속시켜 통일을 완결토록 돼있다.그런데 여기서 갖게되는 의문은 북한 지도층이 과연 남한과의 공존·공영을 바라고 있으며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통일에 호응하겠느냐는 것이다.답변은 물론 『아니올시다』가 지배적일 것이다.그들은 남한에 대해 동족으로서의 연민의 정을 갖기 보다는 공산혁명을 위한 타도의 대상이요,북한의 정치권력을 빼앗으려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멀리 6·25남침을 비롯하여 68년의 청와대 습격기도,83년의 아웅산 테러,87년의 KAL기 공중폭파사건,그리고 줄기찬 남한배제 정책및 이번 강릉사건 등은 남한에 대한 그들의 적대적 파괴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고 집요한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그렇다면 남북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선의의 동반자관계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통일방안은 근본가설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남북한간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선 남한이 북한의 경제난해결을 도와주면서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맏형론·햇볕론의 타당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북한을 경제적으로 고양이에서 호랑이로 키워주면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북한이 과연 남쪽과의 화해·협력관계를 증진시키겠느냐는 것이다.그런 기대는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연방제통일 운운하는데 호랑이가 된다고 해서 그 속성이 변할리가 없다.오히려 독립국가의 옹벽을 더욱 높이 치면서 남침용 무기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남쪽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적대의식이 북한 지도층의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있을 것이다.철저하게 세뇌되고 통제받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남한의 어설픈 관용주의나 동정론이 발붙일 자리가 없을 것 같다.이번에 산속으로 도주하던 무장공비 11명의 「집단자살극」은 우리의 안이한 북한관에 경종을 울려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북한 사회의 개방이 가능할 것이라는 가설도 오류일 수 있다.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으로 4,5년후에 전면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본다.그러나 지금같은 추세라면 10년이 지나도 전면 개방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한 전례에 비추어 사회개방은 북한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체제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에서만 제한적 소극적으로 개방을 시도하며 그밖의 분야에서는 폐쇄적 통제를 계속할 것이다.북한사회가 개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추진하는 체제연합식 통일은 오랜 기간동안 실현 불가능하게 된다. 통일을 원만하게 이루려면 흡수통일방안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북한을 경제적으로 돕기 보다 자체붕괴토록 방치해 뒀다가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후에 조건없는 통일을 수용하는 것이다.체제연합식 통일이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이상이 걸린다면 흡수통일은 금세기 내에 가능할 수도 있다.통일의 지연은 부도덕한 북한정권의 생명만을 연장시킬 뿐임을 깨달아야 한다.조기통일은 남한에 엄청난 통일비용을 안긴다지만 일방적 지출이 아니라 언젠가 이윤을 내는 투자의 개념으로 파악한다면 훨씬 가볍게 느껴질수 있다.
  • 공로명 외무장관 유엔총회 연설

    ◎“유엔,21세기 대비 개혁의 틀 준비하자”/파괴적 무기확산 억제·평화유지 능력 강화/환경보호·인권존중 보장 등 장치 개선해야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지난 27일 제5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유엔의 개혁을 위한 유엔의 구조개편을 주장하고 유엔개혁의 4대 기본방향을 제시했다.공장관은 특히 안보리의 개편과 관련,『안보리는 유엔회원국의 확대를 충분히 반영하고 지리적으로 더욱 공평하게 균형잡히며,민주적이고 투명성있게 활동하는 방식으로 현대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다음은 공장관의 연설요지이다. 이번 총회앞에 놓인 가장 시급한 과제는 유엔개혁을 위한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다.비전과 결의를 가진 회원국들이 유엔을 현재의 위기로부터 구해내고 전세계가 21세기의 도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그러한 개혁방향에 대해 컨센서스를 이뤄나가야 한다. 한국은 유엔강화 16개국의 일원으로서 다자주의 원칙의 고양을 위한 노력에 기꺼이 참여할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회원국들이 재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거나 지속적이고 심도있는 개혁을 이뤄나가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타협에 실패할 경우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유엔이 기반위에 서있는 다자주의 원칙자체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유엔은 회원국들의 미납금 및 체납금으로 인해 지금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져있다. 유엔개혁을 위한 새로운 구조를 숙고할 때 유엔은 다음 네가지 우선순위에 더욱 잘 대응하도록 재편돼야 한다.첫째 위험하고 파괴적인 무기의 확산을 감시하고 억제하는 일,둘째 평화유지 및 평화건설을 위한 유엔의 능력을 강화하는 일,셋째 환경보호를 강화하면서 경제 및 사회개발을 촉진하는 일,넷째 국제법 및 인권의 존중을 보장하는 장치를 개선하는 일등이다. 한국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조기비준할 것이다.CTBT조약을 전세계적이고 실효적인 조약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정부는 모든 국가가 동조약에 최단시일내에 가입하기를 촉구한다.우리나라가 핵군비통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한반도가 아직 핵확산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은 핵의 투명성을 달성해야 한다.다시 한번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무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안전규정을 포괄적으로 준수하고 미국과 체결한 기본합의를 충실히,그리고 완전하게 이행하기를 요구한다. 화학무기와 생물무기의 제거를 위해 한국은 화학무기협약의 1993년 원서명국으로서 최근 동 협약의 비준을 위한 국내절차를 종결지었다.이 협약은 화학무기의 전면적 금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하므로 전세계 국가가 협약에 가입,동 협약이 조속히 발표하기를 기대한다. 1987년 생물무기협약에 가입한 한국정보는 동협약에 엄격한 사찰제도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 한국은 또 전세계 1억개 이상 산포돼 있는 대인지뢰에 대한 국제적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 유엔개혁의 두번째 우선순위는 변화하는 새로운 도전에 맞게 유엔평화유지활동 및 평화건설활동을 조절하고 강화시켜 나가는 일이 돼야 한다.빈번한 민족분쟁 및 테러행위에 직면하고 있는 세계속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의 범위 및 성격이 끊임없이 시험을 받고 있다.최근 유엔의 신속배치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몇가지 유력한 제안이제출됐다.우리는 현재 한국을 포함,59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유엔상비체제가 비상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실제적이고 혁신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또한 신속배치주도그룹이 제안한 유엔평화유지활동(PKO)사무국내 신속배치본부 설치를 지지하며 그곳에 한국요원을 파견할 계획이다. 테러리즘의 피해의 경험이 있는 당사국으로서 한국은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을 강력히 규탄하며 테러리즘 근절을 위해 국제사회가 단호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유엔개혁의 세번째 과제는 최빈국 특히 아프리카 극빈국들을 돕는 일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유엔의 아프리카 개발 특별기획」의 활동을 전폭 지지한다.우리는 개발경험을 다른 개도국들과 나누고 우리의 발전의 두가지 핵심요소인 국민총체적 능력증진노력과 인적자원 개발을 개도국들이 실행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유엔개혁의 4번째 주제는 국제법과 인권에 대한 유엔의 조정·감시·장려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보편적 인권에 대한 관심제고를 위해 유엔의 기능이 전면적으로 한단계 높이 강화돼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과 인권센터의 조정기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으며 한국정부는 여기에 의미있는 기여를 하고자 한다.우리는 인권유린범죄를 저지할 수 있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조기설립을 고대하고 있다.
  • 무장공비 11명의 집단자살/양승현 정치부 차장(오늘의 눈)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강릉 청학산 능선 해발 3백여m에 자리한 빈터 남쪽 가장자리에서 발견된 무장간첩 11명의 집단 자살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40대 책임자가 1명씩 쏴죽이고 자신이 마지막에 자살한 것 같다고 한다.현장정황에 따른 추론이지만 현재로는 달리 설명할 뾰족한 묘안이 없다.도주중인 무장공비들이 자기들의 안전한 탈주를 위해 위장하려고 집단사살한뒤 옮겨놓은 흔적도 없고,그렇다고 권총이 한자루 밖에 없었으니 나란히 서서 동시에 자살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어찌됐건 이 과정에서 적어도 한두명쯤은 반항했을 법도 한데,그런 흔적 또한 없다고 한다.한사람 한사람이 차례를 기다리면서 옆자리 동료의 죽음을 지켜봤다는 얘기밖에 안된다.그들도 북녘땅에 부모형제가 있고 어떤이는 사랑하는 처자까지 있었을 텐데….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키 어려운 충격적인 「현실」이다. 좌초된 잠수함에서 이들이 쓴 김정일을 향한 「충성서약결의문」이 발견됐다고 한다.『우리 영웅들은 절대로 죽지않고… 명령은 곧 승리였고… 적화통일의 그날을…』이라는 내용을 보면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 같다. 자유사회에서도 간혹 이런 일이 벌어져 사회전반에 충격을 주곤 한다.우리나라에서도 지난 87년 30여명이 집단자살한 이른바 「오대양사건」이 있었고,세계적으로는 93년 미 텍사스주 와코에서 다윗파교도 80여명이,94년엔 스위스 한 농가에서 태양사원 광신도 48명이 그릇된 「믿음」을 위해 스스로 불을 질러 집단자살한 적이 있다.그러나 상상을 초월한 이러한 탈선은 자유주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모두 「집단히스테리」 증세에 빠진 사교집단의 광신교도들이나 저지르는 경악스런 행각일 뿐이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몇몇 대학생을 빼놓고 북한이 이미 사교집단화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그런 점에서 이들의 집단자살은 북한의 광신적 교조주의가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를 보여주는 드문 실례인 셈이다.죽음을 불사하는 그들의 체제에 대한 맹목적 「광신」의 깊이와 그 해악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를 깨우쳐준다. 우리의 「민족우선」을적용할 수 있는 북한의 봄은 언제쯤일까 안타깝다.
  • 노사분규 악순환 고리를 끊자(G7으로 가는 길:38)

    ◎분배갈등에 생산성 향상은 뒷전/10년간 연평균임금 17% 올라 원가부담 가중/노·사관계 혁신… 상호 동반자관계 구축해야 올해 상반기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33만1천5백18일.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백69%로 늘었다.이에 따른 생산차질액은 9천9백83억여원에 이른다.수출차질액도 2억5천2백만달러를 넘었다. 노사분규는 90년대 들어 점차 안정되는 국면을 맞고 있다.90년 3백22건이었던 분규수가 지난해 88건으로 급격히 줄었다.하지만 분규가 대규모·장기화 추세를 보이면서 여전히 우리의 국가경쟁력 향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요즘같이 국경이 의미를 잃은 무한경쟁 시대에 노사분규로 기계를 멈추는 것은 전시의 적전분열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다.과거에는 쟁의행위로 생산이 중단되면 국내의 다른 기업이 대신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외국의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분규 대규모·장기화 자칫 다함께 망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소모적인 분규가 계속되는 것은 뿌리깊은 노사의 대립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정부는 통제에 비중을 둔 노동정책을 시행했고,사용자들도 근로자를 관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관행이 자리잡았던 게 사실이다.노동조합도 정부와 사용자에 대해 적대적인 의식을 갖게 됐다. 87년 이후 노사간의 대등성은 거의 회복됐지만 노동운동은 단기적인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향상에만 급급해왔다. 분배 문제를 둘러싼 갈등만 있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생산성 향상운동이나 국민경제의 중장기 발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후진적인 풍토가 굳게 자리잡은 것이다. 이같은 관행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상승률이라는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고임금은 금리·지가와 함께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주요국의 제조업 임금수준 비교」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제조업의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자국통화 기준으로 15.3%로 중국(16.1%)을 제외한 주요국 가운데 최고치를 나타냈다.달러화를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는 16.7%로 미국(3%),일본(12.7%),대만(9.8%),중국(2.8%)에 비해 크게 높다. ○임금상승 생산성 추월 한국노동연구원이 산출한 「국민경제 노동생산성과 임금추이」에 따르면 87∼95년 사이의 명목임금은 농업 이외의 전 산업부문에서 14.9%,제조업부문에서 16%가 오른데 비해 국민경제 노동생산성은 각각 11%와 11.1% 오르는데 그쳤다. 90년대 들어 명목임금 상승률과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격차는 줄어들었지만 임금상승률이 앞서가는 경향은 계속되고 있다. 이같이 높은 임금상승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87년부터 지난해까지 5백인 이상 사업체의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17%로 전체 평균 상승률(14.9%)을 훨씬 웃돌았다.임금이 안정되기 시작한 90년대에도 15.3%대 13.7%로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은 지불 능력이 갖춰져 있고 대규모 노조가 강한 힘을 발휘하는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별 노조조직과 교섭구조에 따른 노사의 기업이기주의,임금 위주의 노동운동,비효율적인 교섭방식 등에서 찾을 수 있다.기업 단위의 단체교섭에서 노조의 목표는 최대한의 임금인상을 쟁취하는 일이다.지불능력을 갖춘 대기업은 분규를 막기 위해 일정한 보상책을 강구하게 된다.경쟁회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회사가 주도적으로 고임금전략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노사자율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임금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구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대목이다.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임금수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에 맞춰 각 사업장이 단체교섭을 하는 식이다. 일본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기업별 교섭이지만 노·사·정 대표로 구성된 산업노동간담회나 업종별 노사협의체가 단체교섭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서구 선진국들도 노·사·정이 참여한 가운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임금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 때 기업단위에서는 분배보다 생산에 역점을 둔 협력체제가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 그러나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이루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많다. 노동계에서는 사회복지 수준이 더욱 향상돼야 한다고 요구한다.일본과 서구선진국의 주택보급률이 모두 1백% 수준인데 비해 우리는 90%에도 못미치고 있다.교육비와 물가상승률도 선진국보다 높고 노후보장도 취약하다.사회보장제도의 정비가 노사 협력관계의 대전제라는 것이다. ○통제의존 정책 탈피를 또 노사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조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지난해 12월말 현재 6천6백6개인 전체 노조 가운데 5천8백75개가 한국노총에,8백62개가 민주노총에 가맹하고 있다.민주노총에 가입한 16개 산별연맹 가운데 6개 연맹만 합법화된 상태이다. 결국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이루는 것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정부와 기업은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근로자 또한 노조원이기 이전에 국가경제의 주체임을 새롭게 인식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펼쳐질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산업조직이 수평화되고 노동도 다기능화되면서 노동현장에 대한 감독·통제만으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없게 된다.일선 근로자의 창의력과 책임성,자발성 등이 생산성과 직결된다. 서울대 배무기 교수(경제학)는 『노사관계의 혁신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라고 전제하고 『경영자는 근로자들에게 협력할 마음이 생기도록 인간적인 대우와 참여기회를 줘야하고 노조도 힘을 사용하는데 자제력을 발휘해야 국민적인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사협력 체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느냐 못하느냐가 앞으로 국가 경쟁력의 우열을 가르는 시금석이 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전문가 인터뷰/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선씨/“독·일 경쟁력 뿌리는 협력적 노사관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노사관계나 임금 등 노동문제가 앞으로 경제성장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선 선임연구위원(47)은 본격적인 정보산업화 시대를 맞아 노동문제가 국가경쟁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엇보다 크다고 강조한다. 소품종 다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생산 체제로 이행하면서 생산현장에서의 일방적인 지시나 통제는 더이상 생산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게 된다.대신 근로자의 자발성과 정보·기술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이때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노사관계는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는 『독일이나 일본의 꾸준한 경쟁력은 서로 협력하고 생산력 향상에 적극 참여하는 노사관계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업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비해 노사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전통의 수립이 더뎠기 때문에 해마다 임금투쟁 위주의 소모적인 노사분규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노동운동 방식은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뿐아니라 노동운동 자체도 생명력을 잃고 말 것이라는게 그의 진단이다. 『개별기업 단위의 교섭은 임투 위주의 노동운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임금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정부의 통제가 아니라 임금교섭 구조의 변화입니다』 업종별 협의를 통해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 등 선진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교섭방식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노조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정책형성에 직접 참여하고 개별기업에서도 경영참여를 통해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이끌어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이 때 경영참가는 경영권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협력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노동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취약했고 사용자단체에서도 적극적인 대응이나 투자는 않으면서 불만만 많았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할 대목이다.
  • “정리해고제 등 「3제」도입해야”/재계 노동관계법 개정요구 내용

    ◎근로자 파견·변형근로제 함께 인정… 불황 타개/교섭균형력 갖춰 「고임금 저효율구조」 타파해야 재계가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임금과의 전쟁을 선언하는 한편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노동관계법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개정해 달라고 나섰다. 재계의 노동관계법 개정요구는 크게 복수노조금지,제3자 개입금지,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등 이른바 「3금」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변형근로제 등 「3제」는 도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재계는 현행 노동관계법 개정 필요성의 근거로 당면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 외에 노사교섭력의 균형도 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기업주들은 지난 87년 이후 노조는 민주화라는 명분아래 다소의 불법성까지 수반한 단체행동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기업주들을 몰아세우고 있으나 기업주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직장폐쇄」라는 소극적인 수단밖에 없다며 불만을 터뜨려 왔다. 그 결과 노조의 「힘의 논리」에 밀려 임금상승률이 생산증가율보다 무려 5%포인트 이상 높은 악순환이 거듭됐다는 것이다. 파업에 따른 손실은 손실대로 감수하면서,결국 노조의 요구에 굴복해야 할 바에야 적당한 선에서 미리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노사관행이 현재의 고임금 구조를 낳았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3제」를 법제화해야만 교섭력의 균형을 확보할 수 있고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인 고임금­저효율 구조를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 이후 국제화·개방화가 가속되면서 기업이 생존하려면 비용이 적게 드는 개도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든가,기업간의 인수·합병(M&A) 또는 노동수요의 탄력적인 대응을 통해 내부경쟁력을 강화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노동관계법은 근로자가 절대 열세였던 50년대의 노동환경을 근거로 근로자의 지위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업의 변화 노력을 가로막고 있다고 재계는 보고있다. 재계가 노동관계법 개정의 목청을 높이는 배경에는 12일로 예정된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동관계법 개정방향을 확정하기 전에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의 의도야 어쨌든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대외적으로는 국제기준이나 관행을 내세우면서도 국내에서는 노동관계법 운영을 그나라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 대학운동권 계보(한총련의 실체:5)

    ◎강경주사계 「자주파」가 조직 장악/강력 반정투쟁 주장… 분파싸움 승리/한총련 조통위·정책협 등 실질 주도/온건NL파·PD파완 앙숙… 조직 별도 운영 지난 93년 전대협의 후신으로 출범한 한국 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전국적인 조직이다. 운동권내의 모든 계파는 물론 비운동권도 포함,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총학생회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한총련은 출범 당시부터 민족해방(NL)계열이라는 학생운동권내의 다수파가 장악해 왔다. 이번 연세대 폭력시위를 주도한 현 제4기 한총련의 지도부는 NL계 가운데서도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맹신하며 강경파로 분류되는 「자주파」다. 「자주파」의 한총련 장악은 학생운동의 쇠퇴와 이에 따른 운동권 내부의 치열한 분파투쟁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운동은 지난 87년 「6·29」선언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줄곧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반독재 투쟁이라는 명분이 퇴색하면서 학생운동은 학생들의 관심권으로부터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94년 제2기 한총련 출범 직후 서강대 박홍 총장의 운동권 실체폭로도 운동권을 위축시키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물론 대외적으로 소련 등 동구권의 몰락도 운동권의 사상적인 기반을 와해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에 따라 90년대 초반만해도 전체 대학생의 5% 수준까지 달했던 운동권 추종학생들이 올해는 0.5%도 안되는 3만여명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당국의 분석이다. 지난해의 「8·15 통일 대축전」에는 2만여명이 참가했으나 올해는 그 규모가 8천여명으로 줄어든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학생운동이 이처럼 몰락의 길을 치닫자 「과감한 정치투쟁에 의한 운동권의 위상제고」를 내건 「자주파」가 운동권내 분파투쟁에서 승리,올해 한총련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현재 운동권에서 「자주파」 등 NL계열과 대립하는 분파는 우리 사회를 계급사회로 규정,계급투쟁을 우선시하는 「민중민주주의」(PD)계열이다. 80년대초 삼민투시절 운동권을 장악했던 PD계는 지난 86년 건국대 사건 때 지도부가 대량 검거되면서 87년부터 주도권을 NL계에 빼앗겼다.소수파로 전락한 PD계는 한총련에 가입해 있으면서도 92년부터 「전국 학생연대」라는 별도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이들의 영향력은 극소수의 조직원과 서울·대전·부산지역 11개 대학 학생회에만 국한돼 있다. 이들은 지난해 한총련 의장자리를 놓고 NL계와 표대결을 벌인데 이어 올해는 한총련의 차기 주도권을 겨냥,꾸준히 세력을 규합 중이다.이들은 올 한총련 대의원대회 및 출범식 때는 NL계의 간부독점과 친북적 투쟁노선 결정에 반발해 독자적인 대회를 가졌다.이번 연세대 「통일축전」에도 참가를 거부,서강대에서 독자적인 8·15 기념행사를 가질 정도로 NL계와는 앙숙관계다. NL계내에서도 2개의 분파가 있다.지난 94년 김일성사망이후 NL계에서는 김정일체제 추종문제로 분파투쟁이 일어나 「자주파」와 「사람사랑파」로 분열됐다. 「자주파」는 학생운동이 온건노선으로 방향을 틀면서 쇠퇴했다며 운동권의 입지확보는 강력한 정치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타 계파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총련의 주요 목표를 반미반정부 투쟁과 연방제·국가보안법 철폐 등 친북적 정치투쟁으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한총련의 단결을 위해 간부의 일정수를 다른 운동권 분파에 배분하던 전례를 무시하고 각 지역 총련의장·조통위원장은 물론 정책협의회·중앙상임위 등 요직을 독식했다. 「사람사랑파」는 주체사상에서 한발 비켜서는 대신 정당형태의 합법운동을 지향한다.따라서 「자주파」에 비해 온건파로 분류된다. 이들은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자주파」가 주도한 「통일 대축전」과는 별도의 기념행사를 가질 정도로 「자주파」와는 담을 쌓고 있다. 이밖에 NL 및 PD계 양쪽에서 이탈한 세력들이 결성한 「21세기 연합」이 6개 대학 총학생회를 장악하고 있다.
  • 어떤 조직인가(한총련의 실체:1)

    ◎주사파 주도… 노선·이념 “북의 나팔수”/전국 1백여대 장악… 강·온파 대립/범청학련 연계… 연방제 통일 주장 많은 사람들이 이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을 폭력시위의 주역처럼 여긴다.그들이 내건 통일의 기치에는 관심도 없다.주장과 행태 모두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과거 권위주의시대 때의 학생운동에 대한 평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한총련」은 북한의 노선과 주장을 답습하며 이미 실패로 끝난 이데올로기의 실험에 집착하고 있다.북한은 요즘들어 이들의 「투쟁」을 선동하는데 열을 올린다.북한의 꼭두각시 놀음을 계속하는 꼴이다.「한총련」의 조직과 성격,학생운동의 실상 등을 시리즈로 점검한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 정명기 전남대 총학생회장)은 지난 93년 5월 한양대에서 출범,현재 제4기를 맞고 있다.대학 총학생회 회장들의 연합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후신이다. 「한총련」은 출범 당시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이는 87년 6월의 민주화 투쟁 이후로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결구도가 깨지면서 학생운동에서 멀어져가는 학생들을 겨냥,대중성을 담보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강·온건파 등 이념과 노선을 달리하는 다양한 세력들로 구성돼 있다.크게는 절대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민족해방(NL)계열에서부터 민중민주(PD)계열 및 「21세기 진보학생연대」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들의 노선 및 이념이 북한의 통일전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한총련이 93년 4월 창립대의원대회에서 북한의 주장과 동일한 「연방제」를 공식강령으로 채택한 점에서 잘 드러난다.활동내용도 북한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어 「이적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공안당국의 판단이다. 검찰과 경찰은 올해 전국 1백69개의 4년제 대학 총학생회 가운데 이른바 운동권이 장악한 곳은 1백17개 대학으로 파악하고 있다.김일성 주체사상을 사상적 토대로 삼는 주사파 NL계열이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곳은 연세대·전남대 등 94개 대학이다.압도적인 수치다.NL계열이 한총련의 주도권을 거머쥠에 따라 연방제 통일안(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혁명전략(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 등 북한의 대남혁명노선과 일치하는 투쟁노선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공안당국은 그러나 「한총련」이 전국 대학 총학생회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한총련」 자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는데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다만 산하의 일부 기구를 「이적단체」로 규정,사법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적성」의 근거로는 「한총련」이 지난 93년 9월 이적단체로 확정판결이 난 「조국통일 범민족 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는 것 등이다.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 등 범청학련의 노선 및 이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범청학련」은 지난 92년 8월15일 판문점과 서울대에서 동시에 발족됐다.당시 「전대협」은 박성희씨(26·여·경희대 4년 제적) 등 2명의 학생대표를 밀입북시켜 남북한의 공동결성을 제의했다.북한이 대남적화전술에 따라 설립한 「범청학련」은 남측본부와 북측본부 및 미국·일본 등의 교포·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해외본부 등 3개로나눠져 있다. 공안당국은 「한총련」의 의장이 「범청학련」의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한총련」의 노선이 「범청학련」의 그것과 궤를 같이 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한총련」은 해마다 「범청학련」의 운영을 위해 일정액의 보조금을 내고 있으며 「한총련」의 중앙위원이 「범청학련」의 대의원을 겸임하고 있다.결국 이적단체인 「범청학련」을 떼놓고는 한총련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말 그대로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한총련은 조직체계상 「조통위」 산하에 범청학련 남측본부를 두고 있지만 스스로도 한총련이 범청학련의 하부조직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지난 94년의 한총련 제2기 대의원대회 자료집에 따르면 『범청학련은 한총련의 상급조직이다.범청학련과 한총련은 생사를 같이 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87년 1천3백여명이 구속되고 4백여명이 기소돼 90여명이 실형선고를 받은 이른 바 「건대사태」이후로 규모와 내용면에서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인 이번 「통일대축전」 행사를 두고 공안당국은 「최대한의 엄벌」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막대한 피해 남긴 「통일축전」/경찰차 15대·진압장비 7백28점 파손/화염병 5천개·쇠파이프 3천개 “난무” 운동권학생이 주도한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은 「축전」이 아닌 엄청난 물적·인적 피해만 남겼다. 대회의 강행과정에서 5일동안 계속된 학생의 과격시위는 그 규모나 격렬함에서 문민정부 출범이후부터 「최대」로 꼽힌다. 특히 학생들이 각종 화공약품 등 위험물질이 산재한 연세대 이과대건물을 아지트로 삼고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을 벌임에 따라 경찰도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진압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12일부터 대회 다음날인 16일까지 동원된 전경은 하루평균 1백77개 중대 2만여명에 이른다. 연세대 안팎에서 시위를 벌인 학생수는 지난 13일의 8천2백명(경찰추산)을 정점으로 평균 4천5백명선을 유지했다. 이번 시위로 인한 인적 피해를 보면 학생이 휘두른 쇠파이프와 화염병 등으로 부상당한 경찰관과 전·의경은 이날 현재 6백77명이다.이 가운데 전치 4주이상의 중상을 입은 경찰은 두개골 골절상으로 6주이상의 중상을 입은 강원경찰청 기동2중대 소속 장성국상경 등 26명이다. 타박상·골절·최루액에 의한 수포 발생 등의 부상을 당한 학생도 1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자체집계됐다.이 가운데 3백여명은 인근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나머지는 자체 응급치료소를 이용했다. 학생이 던진 화염병과 돌에 전경 호송버스 12대와 지휘차량 3대 등 15대가 파손됐으며,방석복·방석모·방독면·방패 및 진압봉 등 진압장비도 모두 7백28점이 학생에게 탈취됐거나 파손됐다. 학생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5일동안 쏜 최루탄·다연발탄 등 화학탄은 1만6천23발이다.또 최루액 살포를 위해 헬기가 무려 12대나 동원되는 기록을 세웠고 15일 밤에는 시위현장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조명탄 50여발이 발포됐다. 이번 시위에서 학생이 투척한 화염병은 5천개,쇠파이프는 3천개를 동원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이 세번이나 교내에 진입했음에도 진압에 실패한 것도 보기드문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 평화의 첫걸음은 대화다/김동익 새문안교회 목사(서울광장)

    동남아를 여행하던 중 방콕의 어느 여행사를 들렀을 때 여행사 벽에 걸린 이색적인 지도 하나를 보았다.세계지도의 그림이 거꾸로 인쇄되어 있었다.남극이 위쪽에 있고,북극이 아래쪽에 있었다.글자가 바로 인쇄되어 있는 것을 봐서 의도적으로 거꾸로 제작한 것같다. 사연을 물어본 즉 여행사 직원이 설명하기를 호주사람이 제작한 지도라 했다. 지도 아래에 Printed in Australia(호주에서 인쇄)라 적혀 있는 것을 보아서 틀림없이 호주에서 제작한 지도였다.호주는 땅이 넓고 큰 나라인데 보통 세계지도에서는 북반구 강대국의 발바닥에 밟혀 있듯이 아래쪽에 놓여 있으니까 호주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손상을 느낀 것 같았다.그래서 한 괴짜 호주사람이 세계지도를 거꾸로 인쇄하여 마치 세계가 호주를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한 괴짜 호주사람이 세계지도를 통해 세상을 한번 바꿔 놓으려 했던 것처럼 역사를 두고 세상을 변혁시켜 보겠다고 시도한 사람이 수없이 많이 나왔었다.그중 대표적인 두 사람을 든다면 마르크스와예수 그리스도이다.마르크스는 세상을 상과 하로 구분해 놓고 있다.즉 사람을 강한 자와 약한 자,부자와 가난한자,권력자와 국민,기업주와 노동자로 구분해 놓고 낮은 자는 혁명적 투쟁을 통해 높은자를 거꾸러뜨리고 낮은자가 높은자의 자리를 차지하려한다.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하고,투쟁에서 승리한 자는 자기 체제 유지를 위해 또 싸워야 한다.대결은 또 다른 대결로 이어지고 있다.이러한 대결의 사회가 바로 공산사회이다.그러나 대결로 세워진 공산사회는 90년대 들어서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러 등 공산주의 몰락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이념은 이미 무너졌고,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다. 아시아의 공산주의 국가들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오직 북한만 경직되어 있을 뿐이다.인간은 대결을 통해 행복을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공산주의 몰락을 통해 산 교훈을 얻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면,대결이 아닌 다른 차원의 변혁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다.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도되었던 대화와 평화의 방법이다.그래서성경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복음 5장 9절)라고 가르치고 있다. 타임지는 1977년도 인물로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을 선정했었고,10년후 87년도 인물로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뽑았다.이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사다트는 중동평화의 첫 씨앗을 심었고,고르바초프는 동서냉전 종식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역사는 대결이 아닌 평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평화의 첫 걸음은 대화이다.민주주의는 대화를 통해 성숙해 진다.남북간의 대화의 발전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첫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남북간의 대화가 긴요하지만,거기에 앞서 우리 안에서의 대화가 먼저 성숙해 가야 하겠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대화문화를 성숙시켜가야 하겠다.민주주의는 대화를 통해 이해와 협력,공동선을 추구해 가는 제도이다.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말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실제 행동은 마르크스적 대결과 투쟁으로 일괄되어 있다.지금은 대결의 때가 아니고,대화의 시대이다. 민주사회는 대화의 사회이다.대화문화가 성숙하지 않고서는 열린 사회가 될 수 없고 미래지향적 사회가 될 수 없다.칼 포퍼는 그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에서 한 사회가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발전되어 갈 때 창조적인 사회가 될 수 있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존엄을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사회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열린 사회의 첫째 조건이 대화문화라 했다. ○열린사회로 가는 길 이제 우리 사회는 대화문화의 발전을 통해 제반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이루어 갈 수 있어야 하겠다.
  • “부실건설방지 종합대책 마련”/추 건교부 장관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답변/식량자급추진 특별위 설립할 용의는·「전기통신법」 경쟁 제한요소 개선하라­질문 ○대정부 질문 ▲김영진 의원(국민회의)=수입쌀 추가도입 결정은 정부의 비교우위론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식량자급 포기 선언이다.식량자급추진 특별기구를 설립할 용의는.전두환·노태우씨의 부정축재 재산을 농어가부채 경감재원으로 사용할 용의는.정부의 20만t 쇠고기 수입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현재의 경제위기와 농어촌 파탄의 책임을 지고 경제내각은 총사퇴하라. ▲나오연 의원(신한국당)=납세자의 저항과 마찰때문에 현행 고세율 구조의 종합토지세를 지방정부가 제대로 시행하는 것은 역부족이므로 대책을 마련하라.배합사료 영세율 적용을 부업규모 축산농가에서 전체 축산농가로 확대하라.결손금의 소급공제제도를 도입하고 올 연말까지 적용되는 생산성향상 시설투자등에 대한 세액공제제도의 시한을 몇년 더 연장하라. ▲노승우 의원(신한국당)=정부의 물가정책은 목표수치에 얽매여 단기적인 땜질처방에만 의존하고 있다.인위적으로 금리인하정책을 취할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 자체의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그린벨트 지역을 재검토해 도시인근을 제외한 임야는 과감히 개발해야 한다.물류시설 건설과 운영에 민간 경영기법을 활용하고 민자유치를 확대해야 한다. ▲정한용 의원(국민회의)=정부의 각종 규제완화조치가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기구가 축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30대 재벌그룹의 증여세·상속세 추징내역을 밝히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킬 대책을 밝히라.87년 이후 95년까지 한국정부가 조사한 반덤핑조사 건수는 미국의 20분의 1정도인 불과 14건이며 그중 덤핑방지 관세부과 결정이 난 것은 6건에 불과하다.덤핑에 의한 국내기업의 피해사례와 대응책을 밝히라. ▲김충일 의원(신한국당)=국내통신시장 보호와 국내통신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차원에서 전기통신기본법의 지분율 제한등 경쟁제한요소를 과감히 개선하라.감사원 감사 결과 초고속국가망 구축사업비가 3백70억원 과다 책정됐다는데 이런 주먹구구식 계획의 재발을 방지할대책은.부처간 이견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보화추진위원회의 기능을 더욱 강화할 방안은. ▲권오을 의원(민주당)=정부는 말로만 물가안정을 외치지 말고 서민들의 체감물가를 안정시킬 대책을 밝히라.국회에 규제완화특별위원회를 구성,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각종 규제를 정치권이 과감히 처리해야 한다.육상·해상·공중등 분야별로 제각각 추진중인 전산망사업을 조속히 하나로 통합,종합물류정보망을 구축해야 한다.북한에 대한 1회적 식량지원 보다는 통일에 대비,남북 농업교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정부측 답변 ▲이수성 국무총리=대기업의 위장계열사 실태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5월부터 조사를 벌이고 있고 9월에 결과를 발표하겠다.앞으로 대기업의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침해에 대해 단호하게 의법처리하고 명단을 공개하는등 적극 대처하겠다. 단체수의계약제도의 부작용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체간 경쟁체제로 전환하겠다.현재 연간 쌀 수요량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쌀의 추가 수입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웅배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외국금융기관 진출에 대비,올해안에 금융기관의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42조원의 농어촌 구조개선자금과 15조원의 농특세 특별회계를 통해 수입보조에 주력하겠다.재벌의 체질개선을 위해 경영공개등 투명성 확보의 제도 개선책 추진,비계열업체와의 공정한 경쟁여건 조성과 불공정행위 엄격 제재,경쟁체제로 전환,상속·증여세 등 징수강화 등의 측면에서 노력하고 있다.상속·증여세의 강화와 엄정 집행을 위해 현재 세법개정 자료를 만들고 있으며 오는 정기국회때 개정안을 제출하겠다. ▲강운태 농림수산부 장관=지난해 농산물 수출이 사상 최고치인 35억 달러에 달했고 농가소득도 90년보다 2배이상 늘었다.2004년까지 농업규모는 GNP의 12%,농지면적은 1백10만 정보,농업인구는 전체의 10%선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반도체·철강·자동차 등 11개 수출 주력 업체에 대해서는 1주에 1∼2개 기업씩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한국통신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유로운 요금 결정 권한을 점진적으로 부여할 방침이다.2015년까지 초고속 정보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아래 5개년으로 나눠 세부계획을 수립,추진중이다. ▲추경석 건설교통부 장관=개발제한구역내 투기에 단호히 대처하되 골격을 흐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생활과 직결된 규제완화책을 지속적·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범정부차원의 부실건설방지책을 마련,오는 정기국회때 입법화하겠다.위천공단지정은 부처간 협의와 환경전문가의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히 검토하겠다.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과학기술특별법 제정을 통해 과학기술 혁신에 노력하고 있다.〈진경호·박찬구·오일만 기자〉
  • 옐친 재선/1억 유권자 「개혁·안정」 선택

    ◎개혁 부작용 보완… 수정 노선 채택할듯/옐친 건강·연정·민족주의 강세 변수로 3일의 러시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의 가장 큰 의미는 러시아 1억8백만 유권자들이 그들의 미래가 공산주의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것이다.이번 선거로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개혁과 안정」이라는 옐친의 프로그램이 지속되게 됐으며 공산주의가 부활,냉전체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국제적인 의혹도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옐친 개인의 승리는 아니었다.지난 5년간의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국민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다.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부패의 고리에 놀아났고 국민들은 범죄와 부패의 소굴속에서 허리띠를 죄어갔다.그런데도 국민들이 옐친을 선택한 것은 그가 러시아의 미래,러시아의 희망에 대한 최선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유권자들에게는 억압정치,공포정치로 상징되는 옛 공산주의가 뇌리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며 공산주의에 미래를 맡기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옐친후보는 캠페인 기간중 자신의 개혁추진이 많은 부작용을 낳은 것은 사실이라며 솔직이 시인했다.따라서 집권2기 옐친정부는 개혁프로그램을 지속시켜나가면서도 그 노선은 다소 수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민족주의 색채가 가미된 정책도 적지않게 나올 것으로 분석된다.보수·민족주의화되고 있는 국민들의 의식은 옐친의 대외정책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옐친은 캠페인 내내 「국가안보와 국익의 극대화」를 천명해왔으며 이는 40%에 달하는 공산주의 지지자들의 마음을 달래는데도 유용할 것이다.이같은 변화는 나토확장,독립국가연합(CIS)정책 등을 둘러싸고 서방과의 마찰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더욱이 민족주의자로 대변되는 레베드의 가세로 이같은 물결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레베드의 등장은 사회내부적으로 범죄의 퇴치,부정부패 추방운동을 강화,헌법질서를 잡으며 옐친의 집권초반을 도울 것이다.경제적으로는 기업의 민영화,토지의 사유화,조세체제의 확립등에 박차를 가하면서 동시에 국가관리강화라는 계획경제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이같은 정책들은 새로 구성될 내각의 면면에서 드러날 것이다.이와 관련,옐친진영은 『공산주의자라 하더라도 이해가 같으면 내각에 포용하겠다』면서 공산당 일부 간부의 등용을 시사하고 있다.공산주의자의 입각은 다수지지를 받고 있는 공산당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 민족주의화되고 있는 국내분위기를 감안한 전략적 선택으로 파악된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옐친의 건강상태다.그는 결선투표 직전 다시 한번 건강상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레베드의 부통령직위요구는 이와 관련해 여러가지 시사하는 점이 많다.많은 분석가들은 옐친후보가 직무수행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상의 문제가 다시 드러날 경우 새 권력투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한다.권력투쟁 가능성은 어렵게 쌓아올린 러시아 민주주의 미래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불안요인이다.〈모스크바=유민 특파원〉 ◎옐친이 걸어온 길/87년 정치국 축출·91년 보수파 쿠데타…/고비마다 투혼·재기 “오뚝이”/음주벽·심장발작·「체첸 희생」 등 흠집도 옐친 대통령의 일생을 관통하는 가장 뚜렷한 족적은 한마디로 불같은 투지이다.조국 러시아와 자신의 정치생명이 위기에 처한 고비마다 그는 초인같은 의지로 이를 돌파해 나갔다. 그의 최초의 정치적 위기는 모스크바당 제1서기로 있던 때.당시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던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그의 눈에는 적당주의자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사사건건 고르비와 맞서다 마침내 87년 그 자리에서 쫓겨났고 이어서 정치국에서도 축출됐다.그때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는 것 같이 보였다.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일대 도박에 나섰다.소연방이 종말을 향해가던 91년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출마,당당히 당선된 것이다.그해 8월 연방와해에 두려움을 느낀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그는 또한번 불같은 투사의 기질을 발휘했다.국방·내무·KGB 등 모든 권력부서들이 쿠데타세력 밑에 모일때 그는 단신으로 탱크위에 올라가 쿠데타 분쇄를 외쳤다.이 감동적인 장면은 민주투사로서의 그의 명성을 확고히 다져주었다.그해말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대러시아의 대통령이 됐다. 「권력의 아편」에중독돼가는 징조인가.그후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너무 쉽게 무력에 의존하려하고 음주벽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3만여명의 희생자를 낸 체첸전쟁은 민주지도자로서의 그의 명성에 결정적인 흠집을 냈다.건강이상설이 밑도끝도 없이 나돌기 시작했다.지난해에는 두차례의 심장발작을 겪으며 모두 4개월의 휴가를 가야했다.그의 병세가 정확히 어떤지는 누구도 발설치 않았다.이런 가운데 그는 또다시 초인적인 투혼을 발휘했다.5개월여에 걸친 대통령선거운동 유세를 거뜬히 치러낸 것이다. 나이 65세.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다시 한번 건강이상설이 흘러나왔다.공개석상에서 사라진 그는 투표도 모스크바 교외 별장지역에서 해야했다.세계는 지금 그가 과연 2000년까지 임기를 제대로 마칠수 있을는 지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나이와 건강앞에 그가 다시 한번 마지막 투혼을 발휘할수 있을는지 주목되고 있다.〈이기동 기자〉 ◎레베드 역할 “눈길”/킹 메이커 대가 안보·군사 등 장악/독자정책 발표… 「포스트 옐친」 암시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건강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보이는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과연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있는 가에 관한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레베드(46) 대통령 안보보좌관 겸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주목을 받고있다. 그는 옐친 진영에 합류할 때 옐친으로부터 차기대통령 후보 지명을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전직 장성출신인 그는 지난 6월의 대선 1차투표때 15%라는 적지않은 득표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있는 유리한 위치에서 옐친지지를 전격 선언하면서 그 대가로 안보,군사,치안,정보분야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레베드는 최근 경제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방위산업및 농업에서의 개혁정책을 재정립하는 것등을 골자로하는 22페이지짜리 정책프로그램을 발표하기도 했다.그는 또한 그가 필요로 하는 권한을 옐친이 자신에게 주기로 동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옐친이 재임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오랜 지병인 심장병 등으로 사망할 경우 레베드는 체르노미르딘 총리와 치열한 파워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직이 공석이 될 경우 총리가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되며 3개월 이내에 새로운 선거를 치르도록 되어있다.서방의 분석가들은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후보로 주목할 인물이 레베드라고 예측하는 이들도 있지만 러시아의 민주주의 및 개혁지지자들이 레베드를 불신하는 측면이 많아 그의 경쟁상대인 체르노미르딘이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유상덕 기자〉 ◆미·일 등 해외 반응 ◎역사 전환에 또 하나의 공적­미·일/21세기 「전략적 동반자」 희망­중국 ▷미국◁ 보름전 1차선거 때와 달리 옐친 대통령의 재선 뉴스를 의외일 정도로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모든 방송들이 옐친의 당선이 확정적인 순간에도 일반국내 뉴스에 이어 4∼5번째 순서로 별 논평없이 보도하는데 그쳤다. 앞서 클린턴 대통령은 개표 초기에 이번 러시아 대통령선거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옐친의 초기 승세가 알려지자 보브 돌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옐친 대통령이 또다시 러시아의 민주주의 전환에 역사적 공을 세웠다』고 치켜세웠 듯이 미국내에선 클린턴 대통령이나 야당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옐친의 재선성공에 안도하는 모습.〈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일본◁ 일본정부는 4일 러시아 대선에서 옐친 대통령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나자 『러시아 민주주의의 진전에 분수령을 이룬 기념비적 사건』이라며 환영을 표하면서도 앞으로 러시아 개혁의 성패 여부는 옐친 대통령의 건강에 달려 있다며 그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보였다.〈도쿄=강석진 특파원〉 ▷중국◁ 중국은 러시아 대선과 관련,『러시아 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할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의 대변인은 4일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21세기의 전략적 동반과 관계의 발전을 바라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두 나라는 상대방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대변인은 또 러시아는 중국의 최대 인접국이라면서 중국은 러시아 대선결과를 줄곧 관심을 갖고 주시해 왔다고 말했다. ◎러 공산당의 장래/40% 지분… 건실한 견제세력 변신/강경파 입지 약화… 정책대안 찾기 이번 대선에서의 패배로 공산당은 내부 체제정비는 물론 노선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공산당은 4일 성명을 통해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한편으로 『옐친은 40%라는 공산당 지지유권자들의 여망에 부응하도록 노력하라』고 촉구했다.동시에 선거후 긴장이 야기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당원들에게도 『거리시위에 나서지 말 것』도 당부했다.공산당의 이같은 대응은 변신을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분석가들은 이번 패배로 공산당이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며 대신 건실한 견제세력으로의 변신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실제로 러시아의 국회인 두마의 제1당을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 공산당이다.또 선거에는 졌지만 국민가운데 2천8백만명이 공산당에 표를 던졌다.현실정치에서는 앞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계속 남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들 내부의 정비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우선 강경파의 목소리가 다소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그렇지만 이들도 「선동과 대중집회」라는 그들 특유의 방식을 벗고 정책적 대안제시 혹은 과학화된 대중에의 접근방식으로의 변신이 예상된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대선으로 공산당이 현대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모스크바=유민 특파원〉
  • 홍콩(중국반환 앞으로 1년:1)

    ◎“예측못할 미래” 낙관·불안 혼재/중국과의 경제통합 가속화… 무역중심지 자부심/주민 대부분 대륙출신… 체제·인권문제엔 회의적 세계적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 홍콩은 여전히 역동적이다.침사초이와 몽콕등 홍콩의 중심가는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밤 11시가 넘도록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는 불안도 함께 증폭되고 있다.내년7월1일로 예정된 중국반환이 1년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홍콩에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 불안이 혼재하고 있다.홍콩의 반환은 단순히 홍콩이라는 영국식민지의 반환을 의미하지 않는다.19세기 제국주의 잔재의 청산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접목이라는 세기적 실험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중국은 홍콩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귀속시키며 발전의 기회와 동시에 도전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홍콩에는 실업률이 3.5%에 이르고 물가도 6.5%선을 넘어서는등 경제적 우려와 함께 반환후의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다.하지만 94년 폭등이후 내리막길이던 부동산값이 올들어 4∼5%가량 오르고 있고 연간 1천만명을 넘어선 여행객과 외국출장자들의 행렬이 이어지는등 미래에 대한 낙관도 건재하고 있다.신공항 건설사업,지하철 확장,부두 확장,간척사업,대형 건물 신규건설등….대형 토목사업이 제주도의 5분의 3만한 크기에 인구6백30만명의 복잡한 도시를 더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홍콩의 대표적 TV채널인 TVB 기자 곽방씨(28·여)는 『지난 84년12월 중·영 공동성명을 통해 반환이 발표된뒤 10여년간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거쳐 비교적 담담한 상태』라고 소개했다.80년대초 부모따라 북경서 이주해온 곽씨는 『달라질 것이 없다.경제 통합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낙관했다.지금도 매일 1백여명의 대륙인들이 중·영 합의에 따라 홍콩이주를 계속하고 있다. 부동산 및 건설업,금융등의 업체를 갖고 있는 캐피털 차이나그룹의 매니저 마이클 탕씨(40세)도 『홍콩과 중국경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상태』라며 『오히려 홍콩 통합은 무역활동에 도움이 되고 경제발전에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주재 미국상공인회와 일본상공인회도 지난해말 조사결과,경제적으로 장래를 낙관한다는 결과를 얻었으며 이같은 관점은 여전하다고 일본무역진흥회(JETRO) 마사루 이노우에 홍콩소장은 지적한다.이런 낙관론뒤에는 금융과 무역경제지로서의 장래에 대한 자신과 낙관이 깔려있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10여년간 중국정부의 유화적 태도와 설득도 친중파의 세력을 더욱 확고하게 확산시키고 있다.중국지도층은 향후 50년간 자본주의제도를 유지시킬 것이라는 1국 2체제 방침,홍콩은 홍콩인들에 의한 고도의 자치를 보장할 것이라는 향인향치원칙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그러한 약속을 지킬지에 대한 의문과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강하다.홍콩인들의 불안은 80년대초 해마다 2만명가량되던 해외이민자수가 87년 3만명으로 늘더니 반환이 임박한 92년엔 6만6천명,93년 6만2천명,95년 4만3천명으로 급증하는 데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떠나간 사람의 절반가량이 고학력 전문직이거나 부유층이란 사실도 홍콩사회에 타격이 되고 있다.대부분의 홍콩인들이 49년 대륙공산화와 함께 광동과 상해에서탈출해왔거나 62·63년 문화대혁명초기에 이주해온 사람들이고 보면 이들의 불안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지척거리인 광주의 중산현이 고향이라는 택시운전자 황철일씨는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같은 서민들에겐 더이상 갈곳이 없다.오직 잘되길 희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는 『많은 사람들이 내색은 않지만 대륙에서 살려고 넘어온 사람들』이라면서 『정치개혁을 하지않는 중국의 영향이 이곳까지 미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홍콩의 상위계층 6분의1가량이 다른나라 여권과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는 사실도 미래에 대한 강한 불안의 한 단면을 말해준다.이들은 캐나다나 호주,영국등에 집이 있고 아이들도 이곳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집 살림」을 하는 예가 대부분이다.홍콩에선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계속 머물러 있지만 언제고 사태가 악화되면 훌훌털고 떠나겠다는 입장이다.경제에 대한 안정된 전망에도 불구,이런 불안은 인권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정치권리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친중계 신문 대공보의 부사장겸 편집국장인 증덕성씨(47)는 『홍콩인 스스로가 홍콩을 관리하게됐으며 서구 식민지를 청산하게 됐다는 민족적 자부심의 회복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 가치관과 국가운영방법의 차이로 인해 두체제간에 갈등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양면적이고 이중적인 감정이 적잖은 것 같다』고 반환을 1년앞둔 홍콩인들의 심리상태를 설명했다. 홍콩은 중국표준어인 보통화(북경어)로는 의사소통이 안될 정도로 중국과는 이질적 요소가 적지않다.홍콩은 국민소득이 중국의 46배인 2만3천달러며 대외교역은 세계8위인 자유무역의 도시다.1백50년동안의 식민지로 영국식으로 길들여져온 홍콩과 홍콩 차이니즈들이 어떻게 1국2체제의 실험속에서 자유와 번영의 꽃을 피울수 있을지….평화적 주권이양과 1국2체제 실험에 세계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잇단 정치개혁… 중­영 갈등 불씨로/“민주개혁 명분의 중국견제용,친중파 비난 홍콩 구룡역에서 출발하는 심천행 전철은 40분이면 심천 나호세관 입구에 도착한다.나호세관 쪽으로 이어진 10m 남짓한 다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세관건물 벽에 설치된 반환시계가 눈에 띈다.남은 반환일을 일수와 초로 나타내는 이 전자시계는 북경 천안문광장옆 역사기념박물관의 대형 반환시계와 같은 것이다.최근 홍콩에선 신화사,대공보,중국계 기업들이 이 시계의 축소모형을 만들어 기념품으로 돌리면서 반환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반환이 임박하면서 중국정부의 주권접수 준비도 가속화하고 있다.주해의 특구 주비위(PC)는 지난달 전체회의에서 8월 전체회의를 다시 열어 추천위(SC)의 구성방법을 최종결정하기로 했다.4백명으로 구성될 추천위는 홍콩특구의 첫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선임하고 현행 국회를 해산하는 대신 잠정 입법의회를 선출하는 문제를 결정한다.추천위 구성원의 색깔에 따라 홍콩특구의 모습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신화사 홍콩분사 관계자들은 95년 11월 이후 12차례에 걸쳐 홍콩정청 국장급 이상 관계자들로부터 관련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홍콩경영 준비에 대비하고 있다.그러나 정치분야에서의 중·영대립은 첨예하다.중국은 영국이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다가반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뒤에야 민주개혁이다 직접참여 확대다 법석을 떠는 것은 여론조정과 반대파 육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처사라고 불만이다. 91년 6월 기본권법 제정,92년10월 각급선거에서의 연령 인하(18세 선거권 부여)와 직접참여 확대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 등은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또 지난해 9월 치러진 입법의회(국회) 선거에 대해선 중국측과 합의되지 못한 사항임을 들어 97년7월 이후 해산을 선언했다.총건설비 2백2억달러 가량이 소요될 첵납콕 신공항건설 등 대형토목사업에 대해서도 중국은 재정을 바닥내고 이익은 영국계회사들이 챙기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고 있다.그럼에도 중국은 반환 시간표대로 홍콩접수를 위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고 홍콩내 친중파의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다. ◎약사 ▲1841.1=영국,1차 아편전쟁을 계기로 홍콩섬 점령 ▲1842.8=남경조약 체결로 홍콩섬,영국에 영구할양됨 ▲1898.7.9=북경조약에 따라 신계를 영국에 99년간 조차 ▲1941∼45=일본,홍콩점령 ▲1979.3=등소평,홍콩총독과 만나 홍콩반환문제 첫 논의 ▲1979.4=등,97년 홍콩반환후 현체제 유지의사 표명 ▲1983.7=중·영,홍콩반환회담 개시 ▲1984.4=하우 영국외무,97년이후 홍콩통치는 「비현실적」선언 ▲1984.5=등,97년이후 인민해방군의 홍콩주둔방침 천명 ▲1984.12=중·영,홍콩반환협정 조인(영국은 97년7월1일 0시를 기해 홍콩을 반환하고 중국은 50년간 홍콩의 자본주의체제 유지 약속) ▲1990.4=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홍콩기본법 비준 ▲1992.10=패튼홍콩총독,입법국 직선의원확대등 민주개혁안 발표 ▲1993.7=중,홍콩반환에 대비할 예비운영위원회(PWC)설립 ▲1994.8=중,홍콩기본법에 따르지 않고 구성된 입법국 해체경고 ▲1994.9=홍콩입법국선거서 반중국 민주당 압승 ▲1996.1=중,PWC를 대신할 홍콩특별행정구주비위 발족 ▲1996.3=홍콩정청,홍콩인들에 대한 영국여권 발급 마감
  • 「눈높이 교육」 대교/학습지 팔아 재벌 “도약”

    ◎새달 9개 회사·1개 문화재단 「그룹」 출범/작년 매출 4,200억… 강영중 회장 체제로 코 묻은 돈으로 재벌을 일궜다.지난 76년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가정학습지로 출발한 대교가 오는 7월1일 창립 20년만에 「대교그룹」으로 대변신한다.한국공문수학연구회로 출발,「눈높이 교육」으로 알려진 대교는 기존의 교육·문화사업에 멀티미디어를 도입,세계적인 교육·문화 정보서비스 및 멀티미디어 그룹으로의 도약을 선언하는 것. 87년 1월 (주)대교로 법인을 바꾼뒤 사업을 종합학습지에서 유통,엔터테인멘트,정보통신,건설 등으로 다각화시켜 현재 유통,컴퓨터,출판,방송,엑스피아월드(엑스포과학공원),프레스빌,하얀마음,대교아메리카 등 9개 회사와 대교문화재단을 거느리고 있다.지난해 총매출액은 4천2백82억원.이중 교육문화 부문이 82%를 차지한다.올해 매출 목표액은 5천3백억원이다. 지난 85년 5만2천명에 불과했던 학습지 회원수는 10년만인 96년 6월 현재 1백70여만명으로 불어나 눈높이 교사도 1만여명에 이른다.대교는 다음달 13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1만3천여명의 그룹 임직원과 외부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화려한 그룹출범식을 갖는다.강영중 (주)대교 대표이사(57)는 그룹회장으로 정식 취임할 예정.〈김균미 기자〉
  • 한·미 미사일 각서 개정돼야(사설)

    한국과 미국간 대량파괴무기비확산정책협의회가 10∼11일 이틀동안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이번 협의회는 90년 체결당시부터 말이 많던 이른바 한·미미사일양해각서의 문제점을 처음으로 재검토하는 기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가 한·미미사일양해각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이 각서에 따라 한국은 사정거리 1백80㎞이상,탑제중량 5백㎏이상의 로켓체제개발을 못하도록 제한받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은 최고사거리 5백㎞의 스커드B,C개량형 6백50기를 이미 실전배치한 상태에 있고 사거리 1천㎞의 노동1호와 사거리 3천5백㎞의 대포동2호 개발까지 서두르고 있다.이런 때에 북한 미사일공격의 1차적 가상표적인 한국은 1백80㎞급에 손발이 묶여 있어야 하는 것은 형평성에 우선 문제가 있다. 물론 미국은 장거리부분에 대해 미국이 커버한다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으나 한국으로서는 납득키 어려운 대목이다.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도로 87년 출범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는 사거리 3백㎞,탑재중량 5백㎏까지를 허용하고 있다.그런데 그뒤 체결된 양해각서는 그 제한을 더욱 옥죄고 있다. 한국은 이제 MTCR와 화학물질의 수출통제를 목표로 85년 출발한 호주그룹(AG)에도 가입키로 이미 결정,국내법 정비절차까지 마친 상태다.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한·미간 미사일양해각서의 제한까지 계속해서 받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북한과 미국간 미사일협상이 곧 시작될 시점이어서 한·미양해각서의 전면개정이나 폐기는 북한을 자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그러나 북·미협상과 한·미간의 문제는 별개다. 더구나 미사일기술개발은 이제 군사적 목적에서뿐 아니라 우주개발사업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우리는 우주개발사업에서까지 발이 묶이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협의회가 이런 모순과 문제점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한국을 잘아는 카트먼 주한 미 부대사 귀국 인터뷰

    ◎“4자회담 북 체제유지에 필요”/경제에 도움… 한국 파트너로 인정해야/핵 합의 이행땐 경제제재 추가 완화/한국 배제한 미­북 비밀협상 없었다/한국 선진국 되려면 자신감 중요… 특유의 「집단주의」 장점이자 단점 한국과 미국이 공동제안한 4자회담은 북한의 붕괴 방지를 위해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이기때문에 북한 지도자들은 이를 받아드려야 한다고 찰스 카트먼 주한 미국부대사(48)가 말했다.그는 또 폭발적인 한국민의 비자발급 수요를 현재의 미대사관 인적자원으로는 따를 수 없기때문에 장기적인 해결책은 비자면제밖에 없다고 밝혔다.카트먼 부대사는 지난 87년부터 90년까지 주한 미대사관 정치참사관으로 근무한후 미국무부의 한국과장을 거쳐 93년 8월 부대사로 다시 한국에 부임했다.2차 임기를 마친 그는 이달말 미국으로 돌아가 현재 토머스 허바드가 맡고있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직을 이어받게 된다.6년여 한국생활과 그가 맡아온 직책때문에 그는 한국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또 한국을 가장 잘 아는 미국관리들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그래서 귀국준비에 바쁜 7일 그를 찾아가 한국사회에 대한 평가와 미·북관계의 전망등을 들어봤다. ­북한은 아직 4자회담을 받아들이지않고 있다.북한은 결국 어떻게 할 것으로 보는가. ▲4자회담은 북한에 유용한 신축성 있는 제안이다.북한은 식량·경제·안보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미국과 대화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4자회담은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4자회담은 특히 북한의 붕괴 방지를 위해 도움을 주기위한 제안이기도 하다.그렇기때문에 북한은 결국 4자회담을 수용할 것이다.북한은 4자회담을 수용할 경우 한국을 적법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미국과 동등한 상대로 대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한다. 북한은 미국을 신뢰하고 회담에 응해야하며 회담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의 결단을 내릴때가 됐다. ­북한은 왜 아직까지 4자회담을 받아들이지않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북 지연할 이유없어 ▲솔직히 말해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4자회담과 관련,미국과 북한간의 비밀 접촉은 없는가. ▲한국과미국은 동반자 관계이기때문에 미국만의 단독 협상은 있을 수 없다.미국은 한국을 제외시킨 어떠한 비밀 접촉도 하지않았으며 그러한 의도도 없음을 분명하게 단언할 수 있다. ○미도 서두르지 않아 ­미국은 북한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 완화를 검토하고 있는가. ▲그렇다.미국은 북한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 완화를 검토중이며 제네바 기본합의가 충족되면 경제제재를 추가로 완화할 것이다.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북한의 미사일 생산과 수출문제도 경제제재 완화 조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평양과 워싱턴에는 언제 대표부가 개설되는가. ▲2∼3개월내에 개설되어야한다.대표부 개설을 막을만한 큰 이슈가 없다.그러나 북한측이 개설문제에 큰 비중을 두지않고 있으며 미국도 서두르지않고 있다.최근 이 문제와 관련된 어떤 움직임도 없다. ○붕괴임박 징후 없어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북한의 붕괴문제는 자주 등장하는 이슈다.하지만 붕괴가 임박하다는 징후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물론 붕괴의 가능성은 분명히있다.그러나 북한 자신 뿐만아니라 한국·미국·일본등 주변국가들도 모두 공통적으로 북한의 붕괴를 원치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지도부가 식량난과 북한 내부문제등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기위해 군사적 도발을 단행할 가능성은 없는가. ○도발 가능성 없다 ▲그럴만한 동기가 충분치않다고 생각한다.북한은 이미 공개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식량원조를 요청하고 있다.북한이 인위적으로 도발을 하는등 문제를 만드는 것은 북한 자신에게 어떤 이익도 되지않는다. ­한국문제로 이슈를 돌려보자.한국에 대한 인상은. ○민주 화열망 강점 ▲한국에 처음 부임했을때인 87년에는 서울에서 민주화시위가 한창이었다.이때문에 미국대사관의 주요 관심사는 민주화 시위였다.미국의 정책 목표는 한국의 민주화와 공명선거를 지지하는 것이었다.한국의 강한 민주화 열망과 눈부신 경제발전이 인상적이다.민주화 열망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강점이다. ­선진국이 되기위해 한국이 필요한 것은. ▲한국의 국민들과 정부는 올바른 국가관을 갖고 있으며 세계화등 국가의 지향목표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현재의 지향목표대로 정진하면 될 것으로 본다.하지만 한국인들은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역사적 경험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자신감을 가질만한데,외국인의 객관적인 눈으로 볼때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 ○솔직함도 인상적 ­한국의 장·단점은. ▲높은 교육수준이 단연 가장 큰 장점이다.솔직함도 인상적이다.옳바른 정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국인들은 또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한국인들은 빠른 시간내에 같은 방향,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탁월한 집단주의적 능력을 갖고 있다.그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일 수도 있다. ­한국인의 미국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하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다.그러한 변화는 양국간의 국방·경제·외교등의 협력에 도움을 주고 있다.하지만 미국관이 현실화되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줄었다.그리고 신세대들은 일반적으로 미국이 왜 한국문제에 개입하고 있으며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지키는목적에 대한 생각이 과거세대 보다 깊지못하다. ­비자발급과 관련한 불만이 많은데. ○불편사항 대폭 개선 ▲미국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비자발급문제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미국대사관은 가능하면 많은 한국인들에게 비자를 발급하려고 노력하지만 비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그 수요를 따를 수 없다.하지만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비자발급 부문에 대한 인적·재정적 투자를 강화해 왔다.비자발급에 따른 불편한 사항도 많이 개선됐다.전에는 인터뷰를 받기위해 여러시간 줄을 서서 기다렸으나 지금은 약속된 시간에 대사관에 나와 인터뷰를 받도록 개선했다.인터뷰시간도 직접 나올 필요없이 팩스를 통해 정하고 비자가 나왔을때도 직접 대사관에 오지않고 약간의 수수료만 내면 집으로 배달되는 제도를 도입했다.그러나 한국인들의 국민소득 증가등에 따른 비자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현재의 대사관 인적·재정적 자원으로는 따를 수 없기때문에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비자면제밖에 없다.그러나 한국은 아직 미국의 비자면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한국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비자면제 요건도 충족시킬수 있을 것이다.비자면제는 시간문제일 뿐이다.〈이창순 기자〉
  • 지대지미사일 규제협약 손질/한·미 미사일협상 뭘 다루나

    ◎기술통제체제(MTCR) 가입도 타진/대량무기 비확산기구 참여방안 논의 한·미간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 협의회」가 10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다.이번 협의회의 주된 의제는 한·미 양자간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규제 협약」(미사일각서)을 손질하고 우리나라가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하는 문제이지만,미사일 뿐만 아니라,화학무기,핵물질 이동 등 국제적인 대량무기 비확산 정책에 관한 전반적인 협의가 이뤄진다.이는 한·미간의 군사적 동맹관계가 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중심으로 한 양자관계에서 점차로 다자간 속에서의 동맹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번 협의회에서 한·미간에 논의될 국제적인 비확산기구들은 다음과 같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87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선진 7개국(G­7)이 미사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수출통제 지침을 마련하면서 MTCR를 출범시켰다.미사일 제조능력을 가진 국가들이 로켓엔진,추진제,구조물 재료,비행계기,관성유도장치,항공전자장비,미사일컴퓨터 등 기술과장비의 제3국 이전을 통제,제3국이 사정거리 3백㎞,적재중량 5백㎏이상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기술과 장비의 이전 통제는 MTCR 가입국이 국내입법을 통해 이행해야 하지만 불이행에 대한 제재조치는 없다.현재 28개국이 가입하고 있다.우리나라는 미가입. ▲바세나르 체제(Wassenaar Arrangement)=2차대전이후 대 공산권 전략물자 수출을 통제해온 COCOM(대 공산권 전략물자기술 통제체제)을 해체하고 이를 대신해 새로 출범하는 기구.오는 7월 정식발족할 예정이다.국제평화에 심각한 우려를 야기시키는 국가에 대해 무기와 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품목의 수출을 규제하는 것이 목적이다.현재 회원 신청국은 31개국으로 우리나라도 지난 4월 가입했다. ▲호주그룹(Austrailia Group)=화학·생물 무기 제조원료의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85년 호주의 제의로 설립된 기구.수출통제제도는 각 회원국들이 국가별로 사정에 따라 취하도록 되어있다.통제 품목은 54개 화학물질과 군사목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관련장비,73개 생물작용제와 관련장비등이다.각 회원국은 화학·생물 무기 보유 의심국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현재 29개국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가입중이다.우리나라는 미가입. ▲원자력공급국그룹(Nuclear Suppliers Group)=핵확산금지조약(NPT)을 보완하기 위해 78년 설립된 기구.핵무기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물질과 장비의 수출을 참가국들이 자율적 결정에 의해 통제한다.핵기술을 갖고 있는 국가(원자력공급국)는 핵폭발 장치의 제조목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수령국(수입국)의 확약을 받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가 적용될때만 규제대상 품목을 수출하도록 되어있다.수령국은 공급국의 동의없이 20%이상의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없다.34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도 포함돼 있다. ▲쟁거위원회(Zangger Committee)=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 평화적 목적으로 핵물질과 장비를 공급할 경우의 안전조치를 마련하는 기구로 74년 8월 설립됐다.규제품목을 수출할 때는 IAEA의 안전조치를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회원국은 31개국으로 우리나라는 95년에 가입했다.〈이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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