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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SNS 가짜뉴스에 정치인 편승… 진영 양극화 부추긴다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유튜브·SNS 가짜뉴스에 정치인 편승… 진영 양극화 부추긴다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선관위에서 中 간첩 90여명 체포”尹측 변호인, 헌재서 가짜뉴스 언급김어준씨 ‘한남동 관저 굿판’ 주장민주당 대변인, 이틀 뒤 인용해 논평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여플랫폼 기업에 ‘규제 의무’ 부여해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연수원에 있던 중국인 90여명이 (간첩 혐의로) 미국 오키나와 미군 부대 시설 내에서 조사를 받았다.” 지난 1월 1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12·3 계엄 사태의 배경 중 하나로 꼽혔던 ‘부정선거’의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펼쳤다. 극단적인 보수 성향의 유튜버와 온라인 매체가 검증도 없이 주장한 의혹을 ‘사실’인 것처럼 법정에서 언급한 것이다. 이날 변론은 녹화영상으로 공개돼 온 국민이 지켜봤다. “사실이 아니다”란 주한미군의 공식 입장 발표로 ‘가짜뉴스’라는 게 확인됐지만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세력이 ‘사실’이라고 호도하며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됐다. 윤 전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지난 1월 23일 소셜미디어(SNS)에서 “(윤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가 매일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한 열렬한 탄핵 지지자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일부 유튜버가 근거 없이 제기한 것인데 오피니언 리더가 거론하면서 확산됐다. 당시는 서부지법 폭동 사태로 나라 전체가 충격에 빠졌던 시기였다. 서부지법은 사실과 다르다며 신 변호사를 고발했고, 신 변호사는 그제야 사과하며 게시물을 수정했다. 유튜버발 가짜뉴스의 확대 재생산은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이른바 ‘대통령 관저 굿판’ 의혹은 진보 유튜버 김어준씨가 지난해 12월 20일 유튜브 방송에서 관저에 이삿짐 박스 등이 실린 트럭이 들어가는 것을 두고 “그날 굿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해당 트럭은 국방부 장관 공관에 이삿짐을 나르러 간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틀 뒤 “(한남동 관저에서) 행여나 굿판, 술판을 벌이며 탄핵 기각 주문을 외우고 있다면 꿈 깨라”면서 당의 공식 입장에 ‘관저 굿판’을 인용했다. 유튜버발 가짜뉴스가 확산되고 정치권이 이에 편승하는 양상은 ‘정치적 양극화’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장승진 국민대·한정훈 서울대 교수가 2021년 보수·진보 대표 유튜브 채널 6곳을 구독·시청하는 1523명을 설문조사한 논문을 보면 특정 이념에 치우친 채널만 구독·시청할 경우 반대편 이념 정당 호감도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송정민 연세대 교수 역시 지난해 논문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유튜브와 SNS를 통한 정치적 콘텐츠 소비가 많을수록 정치적 타협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강화되는 경향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한국에선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많다”며 “이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기보다는 ‘네 생각이 맞다’는 내용의 콘텐츠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가짜뉴스 유통에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기성 언론도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2022년 7월 변호사 30명과 강남구 청담동 바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의혹의 확산을 분석한 홍주현 국민대 교수는 논문에서 “주류 언론은 가짜뉴스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퍼다 나르는 식의) ‘전달’을 통해 확산 과정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가짜뉴스에 관한 처벌은 명예훼손죄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적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선거에서 당선되거나 낙선시킬 목적이 아니면 가짜뉴스를 처벌할 수 없는 셈이다. 이에 국회는 가짜뉴스를 처벌하거나 규제하는 법안을 지속적으로 발의했다. 22대 국회에서는 양부남 민주당 의원이 ‘불법 정보’를 명문화하고 이를 유통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다만 가짜뉴스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에 나서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에 정부가 유튜브 등 플랫폼 기업들에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 의무를 부여하고 이행하지 않을 시 제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디지털 중개서비스 제공자는 불법정보 삭제 및 차단을 위한 특별 의무를 부담하고 이용자의 피해 예방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디지털서비스법을 시행했다. 강연곤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플랫폼 기업들이 자체적 가이드라인을 엄격히 그리고 신속하게 작동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튜버 교육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강진숙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극단적 유튜버들이 미디어의 올바른 역할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에 가짜뉴스가 양산되는 것”이라며 “유튜버의 미디어 역량을 지원하는 제도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 안철수 “법률가 아닌 과학자가 이끌어야” “87년 체제 혁파”…10대 대선공약 발표

    안철수 “법률가 아닌 과학자가 이끌어야” “87년 체제 혁파”…10대 대선공약 발표

    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인공지능(AI) 등 전략산업 육성으로 제2의 ‘과학입국’(科學立國)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했다. 안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과거의 법률가가 아닌 미래를 이해하는 과학자, 경제인이 나라를 이끌어야 할 시대”라며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그가 제시한 공약은 ▲5대 초격차 산업으로 대한민국 재도약 ▲‘87년 체제’ 혁파 ▲연금개혁 등 5대 개혁 완수 ▲지방균형발전 ▲안심복지 ▲주거복지 ▲한미동맹 강화 속 비정치적 남북협력 동시 추진 ▲스마트 농어촌 육성 ▲에너지 주권 확보 등이다. 안 의원은 “AI, 반도체, 미래 모빌리티, 바이오, K-서비스 산업을 5대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성 있고 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며 2035년까지 AI 세계 3강 진입, 과학기술 핵심 인재 100만명 양성 등을 약속했다. 반도체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연구개발 국가 투자 비중을 국내총생산(GDP) 5%까지 높이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20조원 규모의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해 ‘창업국가’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안 의원은 “AI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제가 제일 전문가라고 자부한다”며 “이런 중요한 AI라든지 반도체에 대해 남들이 써준 것만 읽는 사람은 그걸 최우선 공약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또 개헌을 통해 낡은 87년 체제를 극복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분권형 개헌 국민투표를 2026년 지방선거와 함께 추진해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적절하게 축소하겠다”라며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 책임총리제·중대선거구제 도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연금·교육·노동·의료·공공 등 5대 개혁을 통한 지속 가능한 국가를 만들고 지역대학 혁신·광역교통망 구축·메가시티 육성으로 지방정부 시대를 열겠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복지 사각지대 해소, 실수요자 중심의 부동산 정책, 0∼5세 돌봄 국가책임제 등 저출생 대책 등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안 의원은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공정한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한덕수 출마론’에 “국내외 문제 해결·대선 공정관리가 韓의 소명” 당 일각에서 나오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 요구에 대해서는 “한 대행은 국내 서민경제, 외교, 관세를 포함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집중해도 버거운 형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거기에 집중하시고 이번 대선에서 제대로 공정하게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도록 열심히 관리하시는 것이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안 의원은 말했따. 향후 제3지대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리 당 후보가 최종적으로 뽑히면 그 후보가 판단할 것”이라면서도 “2022년 대선 때 저는 (지지율) 17%를 받은 후보다. 과연 지금 바깥에 5%가 넘는 후보라도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안 의원은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대선 직전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당시의 후보 단일화는 자신이 유의미한 지지율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다른 정당에 그럴만한 후보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李 꺾고 대한민국 구할 필승 후보…이번 대선 체제 전쟁” 나경원, 대선 출마 선언

    “李 꺾고 대한민국 구할 필승 후보…이번 대선 체제 전쟁” 나경원, 대선 출마 선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위험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꺾고 대한민국을 구할 유일한 필승 후보”라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나 의원의 출마 선언식에는 한기호·이종배·송언석·이만희·정점식·강승규·임종득 등 의원 10여 명과 지지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나 의원은 이날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진정한 국민 승리의 시대를 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대선을 두고는 “체제 전쟁”이라며 보수 지지층을 겨냥한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간첩 잡는 예산, 마약 수사 예산을 통째로 삭감해 사실상 대공수사 기능을 무력화했다. 이제는 간첩법 개정안 통과를 막고, 국가보안법 폐지까지 시도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반국가 이적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했다. 5선 중진으로서 경륜도 강조했다. 나 의원은 “이런 체제 전쟁 속에서 만약 이번 대선에서 우리 국민의힘은 재집권하더라도 여전히 소수 여당으로서 무도한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한다”며 “의회를 알지 못하고 정치를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다. 5선 국회의원 정치력으로 나경원이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4년 중임제·국회 추천 책임총리제 도입·외치와 내치 분담형 권력 구조 개편 등을 핵심 축으로 하는 개헌 방향도 설명했다. 나 의원은 “87년 헌법 체제가 남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물론 ‘제왕적 의회 독재’의 폭주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며 “2028년에는 개헌과 함께 총선·대선을 동시에 실시하겠다”고 했다. 의회 해산권 도입도 시사했다. 나 의원은 “일정한 요건 아래의 의회 해산권 도입과 ‘사기 탄핵 방지법’을 통해 제왕적 의회의 폭주를 견제할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경제 분야 공약으로 ‘1·4·5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과감한 노동 개혁과 구조 개혁,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초격차 기술 개발, 신성장 동력 확보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1% 이상 끌어올리고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나 의원은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G5 경제 강국 반열에 올려놓겠다”고 했다. 출마 기자회견에 앞서 나 의원은 연금개혁청년행동이 국회에서 주최한 ‘연금개악 규탄집회’에 참석해 청년층을 겨냥한 목소리를 냈다. 나 의원은 “예전부터 신연금·구연금을 따로 만들어 여러분이 낸 연금을 반드시 여러분이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며 “여러분의 주머니를 지켜드리겠다”고 말했다.
  • 나일론 대명사에서 바이오 개척자로… 코오롱 승계 구도는 아직[2025 재계 인맥 대탐구]

    나일론 대명사에서 바이오 개척자로… 코오롱 승계 구도는 아직[2025 재계 인맥 대탐구]

    이원만 창업, 국내 첫 나일론 생산2세 이동찬 때 건설·車 영토 확장 3세 이웅열 ‘인보사’ 개발에 올인작년 말 1심 무죄판결로 숨 고르기2027년 FDA에 허가 신청 내기로“시판 땐 미국 4조원 시장 열릴 것”4세 이규호, 모빌리티 ‘차기’ 수업 코오롱(KOLON)은 한국(Korea)과 나일론(Nylon)의 합성어로 사명을 지었다. 코오롱의 시작이 섬유에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코오롱그룹은 섬유에서 화학, 건설, 바이오, 첨단소재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다. 현재는 상장사 7곳을 포함한 계열사 40여개로 이뤄진 재계 서열 40위 기업이 됐다. 총자산은 약 13조원, 종업원 수는 1만 2000명에 이른다. 다만 이웅열 명예회장이 아직 아들 이규호 부회장에게 핵심 지분을 넘기지 않아 향후 경영권 승계가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코오롱그룹의 시작은 1957년 대구에서 나일론 생산을 시작한 한국나일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원만 창업주는 해방 전 일본 오사카에서 모자 제조업체를 설립했고 해방 후 삼경물산이라는 무역회사를 세워 일본과 한국에서 사업을 이어 갔다. 한국에선 나일론을 독점 공급하며 부를 축적했다. 이후 나일론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1954년 한국에 나일론 유통회사인 개명상사를 창업했고 나일론을 직접 생산하는 한국나일론을 설립한 것이다. 수입에만 의존하던 나일론사(絲)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체제를 갖춘 것이다. ●순탄치 않은 ‘넷째 자식’ 인보사 1970년대 코오롱그룹은 나일론 제품으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꾀하고 기업공개를 하는 등 점차 그룹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1971년 한국폴리에스테르 구미 공장을 준공했으며, 같은 해에 최초로 오사카·홍콩·뉴욕 지사를 설립했다. 1973년에는 코오롱스포츠가 탄생했다. 그리고 1975년에는 한국나일론, 한국폴리에스테르 양사가 동시에 기업공개에 나섰다. 1976년에는 코오롱유화를 설립해 국내 최초로 석유수지를 생산하기도 했다. 이동찬 선대회장의 2세 경영이 시작된 1977년부터 코오롱그룹은 건설·자동차 유통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나갔다. 1978년에는 건설업에 진출해 협화실업을 코오롱종합건설로 상호를 변경하고, 경주에 코오롱호텔을 개관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1983년 삼영신약을 인수했는데 이 회사가 현재의 코오롱제약이다. 1987년에는 코오롱상사가 국내 최초로 BMW와 계약을 맺고 자동차 유통 사업에 나섰다. 동시에 본업인 섬유에 집중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1983년 고려나일론을 인수해 한국을 대표하는 나일론 제조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갔고, 1984년 2월에는 프랑스의 롱프랑사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부문에 대한 기술 제휴를 맺었다. 그리고 1985년 4월에 폴리에스테르 필름 공장을, 10월에는 스펀본드 생산공장을 잇달아 세워 섬유 사업 영역도 크게 확장해 나갔다. 2009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코오롱그룹의 사업 부문을 떼어 내 만든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슈퍼섬유 아라미드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아라미드는 첨단 산업 분야의 중요 소재로 500도 이상의 고열에도 견딜 수 있고 전기차 타이어, 우주항공 소재 등에 활용된다. 코오롱그룹 역사에서 바이오도 빼놓을 수 없는 분야 중 하나다. 3세 경영인인 이 명예회장은 1996년 회장 자리에 오른 뒤 미래사업으로 바이오를 점찍었다. 1999년 미국에 코오롱티슈진을 설립했고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케이주(인보사·미국명 TG-C) 개발을 시작했다. 인보사는 연골 재생을 돕고 염증 반응을 낮춰 주는 주사제로, 한 번 맞으면 2년 정도 환자가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판권을 가진 코오롱티슈진은 2006년 TG-C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1상에 착수한 후 2010년 2상, 2014년 3상에 진입했다. 국내에서도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받아 판매에 들어갔다. 이 명예회장은 당시 인보사 양산을 앞둔 충주 공장을 직접 방문해 “성공 가능성이 0.00001%라고 할지라도 그룹의 미래를 생각할 때 주저할 수 없었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면서 “내 인생의 3분의1을 인보사에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자부심과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1남 2녀를 둔 이 명예회장이 인보사를 ‘넷째 자식’이라고 칭한 것도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위기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코오롱 측이 2019년 FDA 임상 과정에서 세포 기원 착오를 발견했고 이른바 ‘인보사 사태’로 번졌다. 당초 인보사가 허가받은 ‘연골 세포’가 아니라 ‘신장유래 세포’ 성분으로 제조·판매됐고 상장 과정에서 코오롱 측이 이를 은폐했다는 것이다. 또 이 명예회장 측이 인보사 개발 과정에서 각종 불리한 사실을 숨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미국은 임상을 중단했고 국내에서는 품목 허가가 취소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인보사의 성분을 속여 정부 허가를 받고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이 명예회장은 1심에서 검찰 기소 4년 4개월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하기 어렵다. (인보사 의혹과 관련한) 주요 쟁점들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오랫동안 신약 개발을 위해서 코오롱이 투자해 왔던 진정성을 인정받게 된 판결”이라고 말했다. 코오롱그룹은 미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으며 새출발을 꿈꾸고 있다. FDA는 인보사에 대해 임상 보류 조치를 내렸다가 2020년 4월 이를 해제했고 코오롱티슈진은 지난해 7월 임상 3상 투약을 재개해 1000명이 넘는 환자를 대상으로 투약을 완료한 바 있다. 코오롱티슈진은 내년 3~7월 환자 관찰 기간이 끝나면 데이터 분석 등을 거쳐 2027년 1분기에 품목 허가를 FDA에 신청할 계획이다. 노문종 코오롱티슈진 대표는 지난달 11일 간담회에서 TG-C의 미국 내 품목 허가와 관련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장 큰 허들은 넘었고 앞으로 한두 걸음 정도 남았다”면서 “2028년 품목 허가를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판이 된다면 미국에서만 30억 달러(약 4조원) 규모의 시장이 열리게 된다”며 “한국에서 출발한 기업이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만드는 최초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오롱 주가는 지난달 20일 3만 1000원으로 거래를 마감해 2년여 사이 최고점을 찍으며 지난해 12월 9일(종가 1만 2570원)과 비교해 140% 이상 뛰었다. 코오롱그룹의 지배구조는 현재 과도기 상태에 놓여 있다. 코오롱그룹의 핵심 지분(49.74%)을 보유한 이 명예회장이 2018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그룹 회장직이 7년째 공석이다. 그는 회장직에서 내려온 바로 다음날 간담회에서 경영권 승계 시기에 관한 질문에 “기회를 준 것뿐이지 본인이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아들에게도 ‘스스로 (회사를)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답했다. 만약 아들이 경영 능력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주식을 한 주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핵심지분 49.74% 이웅열, 0% 이규호 실제로 이 부회장은 명실상부한 차기 총수로 평가받고 있지만 지주사인 ㈜코오롱의 지분은 0%다. 이 부회장은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 공장에 차장으로 입사해 제조 현장 근무부터 시작했다. 이후 코오롱글로벌 부장,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코오롱 전략기획 담당 상무 등 그룹 내 주요 사업 현장을 두루 거쳤다. 2019년부터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온라인 플랫폼 구축, 글로벌 시장 개척, 새로운 트렌드 변화에 따른 브랜드 가치 정립 등으로 지속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연말 정기인사에서는 사장 승진 1년 만에 부회장으로 내정되며 미래사업을 이끌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모빌리티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으며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통해 수입차 판매와 중고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 우주 사업을 위해 코오롱스페이스웍스를 출범시켜 방탄 소재와 수소 탱크 등 복합소재 사업을 통합해 시너지를 창출하려고 하고 있다. 코오롱ENP 역시 수소차 부품 소재를 통해 수소 사회에 대비하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 부회장의 젊은 리더십과 그룹의 미래 비전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사업 혁신도 진행 중이다. 코오롱베니트는 클라우드 및 정보통신(IT) 인프라 사업을 통해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룹 내 디지털 경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을 도입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외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IT 사업 확장도 추진 중이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아직 지배구조와 관련해 내부에서 논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 국회의장 “이번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 함께 하자”

    국회의장 “이번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 함께 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6일 대통령 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대선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권력 구조 개편이라도 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드러난 ‘19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친명(친이재명)계 중심으로 반대 기류가 감지되는 가운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우 의장 제안에 화답할지 주목된다. 우 의장은 이날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특별 담화를 갖고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기한 내에 합의할 수 있는 만큼 하되, 가장 어려운 권력 구조 개편은 이번 기회에 꼭 하자는 것”이라며 “부족한 내용은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2차 개헌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의장은 이를 위해 개헌투표를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다만 윤 전 대통령 파면 후 60일 이내인 오는 6월 3일까지 조기 대선 일정이 진행될 예정인 만큼 촉박한 일정상 실제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가능할지에 대해선 우려의 시각도 있다. 헌법상 개헌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며, 국민투표법상 최소 18일간 공고해야 하는 규정이 있는 만큼 최소 38일을 제외하면 조기 대선까지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2일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우 의장은 “여야 지도부와 개헌 논의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며 “시대정신에 맞게 정당이 합의만 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 직무 복귀를 전제로 개헌특별위원회를 꾸렸던 국민의힘은 이날 비공개의원총회를 열었는데, 우 의장의 개헌 제안과 관련해선 별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헌에 대한 당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에게 “변함없다”며 “원내대표가 (국회) 개헌특위 구성 인원을 추천하고 그 뒤 논의는 당 개헌특위에서 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보수 진영 잠룡들도 우 의장의 ‘60일 개헌 논의 속도전’에는 호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개헌 논의를 촉구했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2026년에 개헌 투표와 지방선거를 함께 치르자”며 우 의장의 제안을 사실상 일축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대통령 4년 중임제, 국회 양원제 등이 제 권력 구조 개헌 의견”이라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국민의힘은 ‘거대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이재명 집권’을 엮어 개헌에 소극적인 이 대표 맹공에 나설 수도 있다. 민주당은 우 의장의 제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자제했지만 당내에선 반대 입장이 불거졌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고,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지금 개헌이 최우선 과제인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은 “개헌 필요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다 때가 있다”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내 대권 주자들은 찬성 입장을 밝혔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이번 대선에서 여야가 합의 가능한 범위의 개헌부터 먼저 하자”고 했고,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제 새로운 질서를 만들 시점”이라고 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개헌 논의에 거리를 두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던 이 대표는 이날도 우 의장 제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21대 대선 후보 때는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감사원 국회 이관 등 개헌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이 대표가 개헌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뒤 발표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다른 주자들처럼 개헌에 적극 드라이브를 걸지는 미지수다.
  • [최광숙 칼럼] 헌법재판소 무용론

    [최광숙 칼럼] 헌법재판소 무용론

    오는 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선고된다. 어떤 결정이 나와도 누구든 승복해야 한다. 하지만 헌재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을 제대로 감당할 만한 능력이 되는 기관인가 하는 의구심을 남겼다. 헌재의 위상만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최고의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87년 헌법 체제에서 출범한 초기에는 파리만 날려 일부 재판관은 변호사들을 만나 사건 제소를 부탁할 정도였다. 그러다 과외 금지·간통죄 위헌 등 적극적인 결정을 통해 사회 갈등을 매듭지으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 위상이 올라가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영화검열 위헌 결정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의 ‘제한적 위헌 결정’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헌재의 정치적 효능감이 특히 두드러졌던 사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었다. 헌재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 주면서 여권에 ‘한 방’ 먹인 셈이 됐다. 이후 헌법재판을 선거에 패한 세력이 이긴 세력에게 반격하는 기회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 톰 긴즈버그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는 이를 헌법재판의 ‘보험이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치권은 당시 한나라당처럼 ‘정치보험금’을 타면 대박이다. 그렇지 못해도 정치적 효과는 누리니 손해 볼 것이 없다. 문제는 과감한 ‘사법 적극주의’를 발동한 헌재다. 사법 적극주의는 양날의 칼. 그 위상은 올라갔지만 정치권의 정략적 도구로 활용되는 줄도 모르고 힘자랑을 하다가 깊은 늪에 빠졌다. 우리 헌재의 롤모델인 독일의 한 법학교수는 적극적인 한국 헌재를 보고 “용감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은 “위험하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미국 사법부가 ‘정치적 문제’(political questions)라는 개념을 만들면서까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판단하지 않는 ‘사법자제’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적 문제는 의회에서 해결하라는 원칙이다. 그래서 미국은 대통령 탄핵도 상·하원에서 최종 결정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 탄핵소추에 대해 헌재가 최종 결정하도록 한 것은 사법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초시계까지 사용하는 등 속전속결 처리에 치중하고, 검찰의 신문조서를 무리하게 증거로 채택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빚었다.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국민 다수를 납득시키기 어렵게 됐다. 헌재가 자초한 부주의와 무리수가 빚은 결과다. 이번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양 진영은 찬탄·반탄으로 쪼개져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그럴수록 실체적 진실에 집중하면서도 정치 편향성·절차적 흠결 논란으로 진실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했어야 했다. 원래 큰일 할 때는 사소한 것도 책잡히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법. 헌재는 어땠나. 취임 이틀된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탄핵안이 재판관들의 정치 성향이 반영된 4대4로 기각된 뒤 많은 이들은 헌재가 정치에 오염됐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용납할 수 없다며 탄핵에 공감하던 보수·중도층에서도 헌재의 행보에 “이거 뭐지”라는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 한덕수 대행의 탄핵 기각 결정문은 보수·진보 양쪽 법학자로부터 “정제되지 않았다”는 평을 들었다. 어떤 이는 “처음에는 인용을 하려다 급히 기각으로 바꾼 것 같은 이상한 결정문”이라고 했다. 재판관의 정치 지향성과는 별개로 논거의 타당성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래저래 헌재가 나라를 뒤흔드는 사안을 다룰 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우려가 커졌다. 특히 선고가 기약 없이 지연돼 정국 혼란의 주범으로 지목된 현실은 뼈아픈 대목이다. 한쪽은 “윤석열을 빨리 파면하지 않아 헌재가 혼란을 낳고 있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헌재의 침묵이 나라를 혼돈으로 몰고 있으니 빨리 기각하라”고 했다. 헌재가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국가적 혼란을 제대로 종결짓기는커녕 도리어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럴 거면 헌재가 왜 필요한가”라는 시중의 ‘헌재 무용론’은 누구의 탓도 아닌 자업자득이다. 최광숙 대기자
  • [서울광장] 대권 법정의 오징어게임

    [서울광장] 대권 법정의 오징어게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은 왜 지연되고 있을까. 이 질문의 힌트는 지난달 7일 이미 제시된 듯하다. 헌재 선고가 예상됐던 그날, 서울중앙지법은 윤 대통령의 구속취소 결정을 내렸다. 속도전으로 진행되던 윤 대통령 사법 절차에 급제동을 건 사건이자, 사법부가 절차적 엄격성을 심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또한 법원과 헌재라는 별개 기관이 암묵적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신호였다.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사법 소극주의 속에서 육성된 법관들이 자신의 결정으로 파면이나 피선거권 제한이라는 정치적 결과가 초래되는 상황을 회피하려는 전략이 엿보였다. 윤 대통령의 탄핵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재판은 거대한 사법 시스템의 작동이지만, 결국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건 법관 개인이다. 87년 체제는 사법부의 위상을 강화했으나 법관이 자율성과 재량으로 판단했을 때 존중받고 보호되는 체계까지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여론과 흔들리는 사법부 권위 속에서 법관들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졌다. 결국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아닌, 그들의 사건을 맡은 법관들이 오징어게임 참가자가 되어 게임을 무난히 끝내기에 급급해졌다. 윤 대통령 구속이 취소된 이후 사법부의 시계는 속도와 방향을 바꿨다. 헌재는 최우선으로 심리하겠다고 선언했던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앞서 국무총리 탄핵 사건을 선고해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라는 안정적인 국정운영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서울고법은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법리 해석의 엄격성을 강조하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제 공은 다시 헌재로 넘어왔다. 헌재는 이 대표 판결의 법리를 윤 대통령 탄핵 심리에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마치 오징어게임에서 참가자들이 동일한 규칙 아래 게임을 수행해야 하듯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술래가 참가자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세세히 보듯 서울고법은 이 대표의 선거법 관련 행위를 쪼개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탄핵심판에서도 윤 대통령의 계엄 행위를 세세하게 봐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특히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에 관해 다른 합리적 해석 가능성을 배제한 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로만 해석하는 것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윤 대통령 측의 “극소수 병력으로 국회의원을 끌어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항변에도 형사법 기본원칙을 적용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된다. 도형이 깨지는 ‘행위’로 탈락하는 달고나 게임처럼 서울고법은 이 대표가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 처장이 기억에 없다고 한 것이 ‘인식’에 관한 것이어서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이 국토교통부의 “협박을 받은 변경”이란 이 대표 발언도 “과장된 표현일 뿐 허위로 보긴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이 논리가 탄핵심판에 적용된다면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실제 국회의원 체포가 없었던 ‘행위’는 정치적 맥락에서 더 넓은 해석의 여지를 가질 수 있다. 법정 밖 줄다리기 게임의 열기는 더 뜨겁다. 국민의힘이 “법원이 사진 확대를 조작으로 인정한 건 판사들의 문해력을 의심케 한다”고 성토하면, 이 대표는 왜곡된 프레임을 보여 주는 우화 그림으로 반박하는 식이다. 민주당의 ‘국무위원 줄탄핵’에 국민의힘은 ‘내란선동 고발’로 맞선다. 양측이 팽팽한 줄 끝에서 기습의 틈을 노린다. 사법리스크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연금개혁 전장에선 1% 포인트 차이로 난항이었고, 추경은 일인당 25만원 지역화폐 이견에 묶여 논의의 적기를 놓쳤다. 대권 스케일의 혈투가 ‘사법리스크’라는 좁은 경기장에 갇혀 자구와 숫자 고치기에 역량을 소진하는 사이 체제개혁 논의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이야말로 87체제가 보여 주는 비극이다. 서로의 발목을 잡는 데는 능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한 교착 속에서 게임의 판을 바꿀 거시적 개혁 어젠다는 제시하지 못한다. 우리는 계속 오징어게임에 갇혀 시즌마다 다른 참가자가 등장하는 모습만 보게 될 것이다. 홍희경 논설위원
  • 양육비 먹튀·헌재 평의 기획 눈길… 현안, 배경까지 함께 전해야 [독자권익위]

    양육비 먹튀·헌재 평의 기획 눈길… 현안, 배경까지 함께 전해야 [독자권익위]

    양육비 이행률 낮은 이유 잘 보여줘헌재 평의 일목요연한 그래픽 도움‘비하人드 AI’ 기획 정책 변화 이끌고‘87 체제’ 기획 각 통계 분석 돋보여홈플러스 등 쟁점·배경 더 짚어줘야AI 생성물·머그샷 게재 기준 필요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184차 회의를 열고 3월 한 달 동안의 서울신문 보도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에는 김영석(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명예교수) 위원장과 최승필(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허진재(한국갤럽 이사), 김재희(김재희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윤광일(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재현(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석사과정) 위원이 참석했다. 위원들은 ‘양육비 먹튀 부모들, 눈물로 크는 아이들’, ‘도청 방지·비밀 서약하고… 재판관 8명, 매일 철통 보안 원탁회의’ 등 시의성 있는 기획 보도에서 심층적인 분석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지난달부터 연재한 ‘비하人드 AI’는 인공지능(AI) 산업계의 허점을 짚어 보고 정책적인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에 대해선 여러 통계를 꼼꼼히 분석한 점이 눈에 띈다고 했다. 다만 홈플러스 사태 등 현안을 보도할 때 문제의 배경을 풀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긱워커’ 등 기사와 관련한 용어 설명이 아쉬웠다는 의견도 나왔다. 머그샷 등을 지면에 넣을 때는 명확한 게재 기준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위원들의 주요 의견이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 12일자 ‘도청 방지·비밀 서약하고… 재판관 8명, 매일 철통 보안 원탁회의’는 국민의 관심이 헌법재판소 평의에 쏠려 있던 시점에 의견을 나누는 방식, 결정문 작성 방법을 굉장히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헌재 평의 과정과 탄핵심판 5대 쟁점 등을 그래픽으로 일목요연하게 전달해 눈에 띄었다. 독자 입장에서 궁금증이 많이 해소됐다. 18일자 ‘이대남 이대녀는 없다?… 20대 56% “지지하는 정치인 없다”’는 8년 전인 2017년 대통령선거 이전 조사와 현재의 조사를 비교 분석했다. 이미 공개된 데이터들을 통해 20~30대의 변화를 전달한 기사라 더욱 눈에 띄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경하 논설위원의 ‘나는 2025년 2030이다’도 인상 깊었다. 20~30대 성별 성향에 대한 언급뿐 아니라 고용률, 자살률 등 다양한 사회 요인을 설명하면서 20~30대 내에서 성별 양극화가 심해진다고 분석했다. 2월 26일자 글로벌 인사이트 ‘중국 해양 굴기·보호주의에 무너진 미 해군력… 피난처는 K조선’도 심층적인 분석이 돋보였다. 소재가 시의적절했고, 내용도 깊이가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는데, 이 기사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됐다. 13일자 김하늘양 살해 교사 관련 기사에는 머그샷이 3장 모두 실렸는데,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굳이 정면과 좌우측 사진을 모두 실어야 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7일자 ‘주말엔 책’ 섹션과 20일자 ‘尹 지지자 방탄복 중무장’ 기사에는 AI 생성 사진이 사용됐는데, 어떤 식으로 생성한 것인지 설명하는 등 게재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 윤광일 숙명여대 교수 4일자 ‘비하人드 AI’ 기획의 하나인 ‘AI 만능주의의 함정’은 AI에게 좋은 질문을 해야만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한 질문으로 굉장히 실감 나게 표현했다. 6일자 같은 시리즈에 실린 ‘서울신문 보도 그 후’에선 AI·노동권 공존 입법 추진과 ‘AI 가면’ 쓴 광고 실태조사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서울신문이 이번 기획을 통해 정책적인 변화를 끌어냈다는 것을 알렸는데, 보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경제 분야는 여러 통계를 꼼꼼히 분석해 엮어 기사의 수준과 질을 높였다. 11일자 ‘임금은 계급… 연봉 3000만원 아싸는 결코 못넘볼 1억 인싸’는 한 면엔 현황을 열거하고 또 다른 한 면에는 대안을 제시했다. 각계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의 인터뷰까지 제한된 지면에서 다양한 시각을 담으면서도 한 편의 논문을 읽은 것 같은 꼼꼼함이 돋보였다. 김영석 연세대 명예교수 21일자 ‘떠날 준비 끝냈지만… 장차관들, 탄핵 정국에 뜻밖의 임기 연장’과 같은 기사는 서울신문에서만 볼 수 있는 좋은 기사다. 이 기사를 포함해 퍼블릭 인사이드 같은 기획은 서울신문의 강점이다. 최근 부상하는 홈플러스 사태, 의대생 제적 등도 이런 관점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단순 전달에 그치지 않고 현안에 대한 배경과 핵심 쟁점, 거기서 쓰이는 용어 설명 등을 조목조목 짚어 줬으면 한다. 탄핵심판 등 한국 사회의 현안이 많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변화 등 대외적인 현안도 더 신경 써서 보도했으면 한다. 특히 ‘민감국가’ 지정에 관해 핵무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보단 우리나라가 이로 인해 어떤 위치에 처할 수 있고 어떤 해결책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또한 환율로 인해 고통받는 서민들을 조망하고 4월에 관세 부과가 본격화되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미리 짚었으면 한다. 김재희 변호사 오는 7월 양육비 선지급 제도 시행에 발맞춰 보도된 2월 28일자 ‘양육비 먹튀 부모들, 눈물로 크는 아이들’은 양육비 이행률이 낮은 이유 등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심도 있게 보여 줬다. 특히 양육비 이행 절차를 직접 거치고도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실감 나는 인터뷰로 풀어내고 현행 양육 비용 제도의 문제점도 짚었다. 다만 실제 집행이 되지 않는 이유를 교수가 아닌 변호사나 실무 전문가들에게 물어 본질적인 이유까지 접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7일자 ‘신고 1시간 만에 삭제… 딥페이크戰 최전선서 싸우는 디성센터’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해당 기관의 역할과 인력난 등을 소개했다.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보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퍼블릭 인사이드’라는 코너에 실린 만큼 어느 기관 소속이고 어떻게 이런 업무를 하게 됐는지 등이 좀더 상세하게 포함됐으면 더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12일자 ‘도청 방지·비밀 서약하고… 재판관 8명, 매일 철통 보안 원탁회의’는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평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잘 보여줬다. 특히 시각화를 통해 이해도를 높인 점이 좋았다. 이재현 이화여대 석사과정 6일자 ‘악! 이불킥… 망한 생기부 대회, 지친 어른이의 유쾌한 자아찾기’는 젊은층 사이에서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소환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는 유행을 소개했다. 이런 행위가 단순 놀이를 넘어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정체성을 확인하고 위로받으려는 심리와 연결된다고 해석한 점이 인상 깊었다. 요즘 서울신문이 젊은층의 트렌드를 많이 보여 주고 있다. 이번 보도도 흥미롭게 읽었다. 3일자 ‘전국 탄핵 찬반 집회에 정치권도 가세…3.1절 두 쪽 난 대한민국’은 제목이 눈에 띄었으나 함께 실린 찬반 집회 사진은 각각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습으로만 보여 어디가 찬성이고 어디가 반대인지를 알 수 없어 아쉬웠다. 17일자 ‘그냥 쉬는 30대 6개월째 최대… 취업 청년 4명 중 1명 긱워커’는 청년 고용의 양적, 질적 위기를 다룬 중요한 보도다. 다만 용어 사용과 설명이 조금 아쉬웠다. 긱워커를 일하는 시간이 짧고 일시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했지만 정규직 고용과 관계없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유연하게 일하는 노동자라는 뜻도 있다. 최승필 한국외대 교수 ‘비하人드 AI’ 4일자 ‘AI 만능주의의 함정’은 생성형 AI 모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비교한 그래픽을 넣어 AI 답변의 불안정성과 편파성을 적절하게 지적했다. 6일자 ‘미래 그릴 주체는 AI 아닌 인간… 도구로서 협업하고 공생해야’는 AI 앱을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보여 줬다.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경제 기획에선 경제 양극화를 사례와 통계 수치로 풀어냈다. 경제 민주화에 대한 헌법 조항으로 시작한 기사인 만큼 이를 위한 입법 작용과 제도적 노력으로 무엇이 있었는지를 다루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계에 도달한 경제 민주화를 논할 때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여러 번 개헌 논의가 있었던 만큼 어떻게 변화하려 했는지를 담고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짚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예산·교사 수급까지 수도권 쏠림… ‘개천용’ 사라지는 지방 학교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예산·교사 수급까지 수도권 쏠림… ‘개천용’ 사라지는 지방 학교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비수도권서 교과 중심 교원 감소소규모 학교·지역 여건 고려 없이학생·학급 수 비례한 예산 배분 탓명문대 진학율도 서울·강남 쏠림“예산 일정 비율 국가가 보전해야” “올해 들어 예산이 깎여 학급비가 절반 정도로 줄었습니다. 부족한 건 사비로 충당하고 있어요.” 경기도 내 한 읍면 소재지의 고등학교 교사 정모(26)씨는 30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학급 물품부터 교구비, 수업 교재비까지 전반적으로 예산이 감축됐다”며 “입학생이 줄어 지원도 계속 감소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구 감소와 함께 재정 여건이 나빠지면서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교가 많아지고 있다. 예산과 교사가 학생·학급 수를 고려해 배분되니 지역별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교육 격차를 줄이려면 공교육 인프라 격차부터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교원 1인당 학생수는 매년 감소해 2015년 17.28명에서 2024년 13.92명으로 떨어졌다. 전반적으로 교사 1명이 맡는 학생수는 줄었지만 학생 쏠림에 따라 ‘교사 쏠림’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전국 고교 교원 수는 2015년 총 12만 6032명에서 지난해 9만 2514명으로 규모가 작아졌는데, 이 가운데 경기도(2만 6914명)와 서울(1만 3841명)에 총 44%가 몰려 있다. 반면 세종시(1088명), 제주(1359명) 등은 교사가 가장 적었다. ‘학생이 줄면 교사도 줄여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교육부 등 관계 부처는 올해 총 2232명의 교원을 감축할 계획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교원 감소는 수업에 직접 영향을 준다”고 전한다. 비수도권에선 교과 교사를 중심으로 교원이 줄어들고 있다. 충청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영어 교사 김모(31)씨는 “올해 영어 교사가 1명 감축돼 수업이 주당 2시간 이상 늘어 학생 개인에게 집중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전북 지역 중학교 교사 엄모(29)씨는 “소규모 학교에서는 교과 교사가 1명 줄어드는 것도 학교 운영에 타격을 준다”고 말했다. 교육 환경 격차는 학업성취도로 이어진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2023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중학교 3학년 수학의 경우 ‘상당 부분 이해하고 수행한다’는 답변이 대도시(56.2%)에 비해 읍면 지역(38.6%)이 17.6% 포인트 낮았다. 이른바 명문대 합격에서도 서울, 강남 편중은 심하다. 지난해 서울대가 공개한 ‘2024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출신 고교 현황’(최초 합격자 기준)에 따르면 전국 고3 중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출신은 6%인데 서울대 전체 합격자 3726명 중 12.5%(466명)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지역 여건을 폭넓게 고려해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교육재정은 크게 중앙정부가 내국세와 연동해 지원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과 국고보조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교육교부금은 학생·학교·교원 수 등을 기준으로 배분된다. 이 때문에 재정당국은 학생 감소에 맞춰 교육교부금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유보통합(영유아 교육·보육 통합)·디지털교육·고교학점제 등 새로운 수요와 미래 교육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지역 소멸 가속화를 막으려면 소규모 학교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희규 신라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교부금 배정 때 50%는 학급·학생 수에 따라 예산을 배정하고 나머지 50%는 지역별 빈부 차나 교육 격차에 따라 차등 지급해야 한다”며 “재정의 일정 비율을 국가가 책임지는 형태로 소외계층 교육 예산을 보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저소득층 아이들 기초학습력, 공교육이 책임져야”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저소득층 아이들 기초학습력, 공교육이 책임져야”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기저귀도 떼지 못한 어린아이가 영어유치원 진학을 위한 이른바 ‘4세 고시’를 준비하는 조기 사교육. 해마다 힘을 키우는 사교육시장과 비교해 점점 약화하는 공교육으로 인해 소득과 지역에 따른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30일 서울신문은 교육 분야 전문가 10명에게 더이상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육 현실에 대한 해결방안을 물었다. ●공교육 틀에서 맞춤형 진로 지원 단기적인 대안으로는 공교육의 변화가 주로 거론됐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선행학습을 포함한 사교육의 요소들을 공교육에서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 안 된다”며 “공교육에서 끌어안을 수 있는 것들은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교육 시장의 일부 기능 등을 공교육의 틀 안으로 흡수하자는 얘기다. 이수정 단국대 교직교육과 교수도 “학교 차원에서 외부 강사를 초빙해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 줄 수도 있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취약계층 부모들의 실질적인 교육비용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나 총신대 교직과 교수는 “공교육에서 개별화된 맞춤형 진로지도를 통해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기초 학습력’을 확보하도록 돕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와 관련해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차상위계층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가구의 학생들은 공교육의 틀 안에서 품고 가야 한다”며 “저소득층 학습 추가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 격차 메워 줄 입시 제도의 전환 이런 변화를 위해선 충분한 예산지원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학생수만으로 일괄 배정되는 교육 예산을 지역과 학교 실정에 맞게 현실화해야 한다”(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상대적으로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는 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성기선 가톨릭대 교직과 교수), “교육 재정을 기초 교육에 우선으로 투자해 저학년부터 교육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제안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는 ‘한 번 실패하거나 뒤처지면 끝’이라는 공포로 사교육 시장을 키우고 있는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가장 빈번하게 거론된 것은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였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입시만이 우선시되는 경쟁적인 현 교육체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고 권은경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도 “부모의 조바심을 초래하는 한 줄 세우기식 입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 4세에 캐리어 끌고 학원 입성… 교육 첫 단추부터 ‘부의 대물림’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4세에 캐리어 끌고 학원 입성… 교육 첫 단추부터 ‘부의 대물림’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학원비 비싸도 입학 경쟁 치열책·간식 등 담긴 큰 가방 메고 등원‘4세·7세 고시’까지 선행학습 열풍강남 ‘초등 의대반’은 타 지역 확산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 사교육저소득층·고소득층 사교육비 지출월 47만 1000원까지 격차 벌어져“방과후 수업만으론 뒤처질까 봐…” 1987년 개정된 헌법 31조는 교육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해 교육의 기회균등과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87체제’에 명문화된 교육의 권리 보장은 날이 갈수록 몸집을 키워 가는 사교육 시장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에는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의미하는 ‘4세 고시’, 유명 학원에 가기 위한 시험인 ‘7세 고시’까지 등장했다. 저소득층 등 사회 취약계층의 교육권이 위협당하고 과거 ‘사다리’로 여겨졌던 교육은 부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실질적인 교육 격차 해소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엄마 전화 온다, 학원 갈 시간이네.”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A군이 졸린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A군 옆에는 줄넘기·태권도 학원 이름이 적힌 가방과 각종 교재가 가득 담긴 에코백, 간식 거리가 담겨 있는 쇼핑백 등 한 무더기의 짐이 있었다. A군은 익숙한 듯 샤프와 지우개를 꺼내 중학교 과정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카페 맞은편의 한 유명 어학원 앞에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 여럿이 부모, 조부모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 키만 한 큰 가방을 메거나 아동용 캐리어를 끌고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영어유치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반 등 어린 나이에 시작되는 사교육은 강남만의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생과 유치원생까지 두 아들을 키우는 김모(39)씨는 “둘째를 영어유치원으로 옮기면서 아이들 교육비로 한 달에 320만~330만원이 나간다”며 “영어유치원만 해도 월 140만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박모(38)씨도 하나뿐인 유치원생 딸을 영어·수학·미술·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있다. 박씨는 “영어유치원은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 나고, 유치원 하원 이후 퇴근할 때까지 여러 학원을 보내고 있다”며 “한 달 학원비만 1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 교육부의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7~9월 국내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 2000원으로 집계됐다. 4세·7세 고시가 지나면 사교육비 지출은 더 커진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직장인 구모(39)씨는 “지금도 월 100만원이 학원비로 들어가는데, 본격적으로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 학원을 보내기 시작하면 월 200만원은 쉽게 넘지 않겠느냐”며 “학교 돌봄도 있지만, 아이에게 크게 도움이 되진 않기 때문에 학원을 여러 군데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13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초중고교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29조 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2조 1000억원(7.7%)이나 늘었다. 학생 10명 중 8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9만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사교육비는 소득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부모의 소득이 자녀 교육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에 기대는 구조가 여전한 상황에서 교육은 ‘사다리’가 되기는커녕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월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와 가장 낮은 소득구간(통계청 기준)에 속한 가구 간 지출 격차는 2017년 38만 9000원에서 2024년 47만 1000원으로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는 유모(40)씨는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여러 곳 보내 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며 “학교 돌봄교실이나 방과후 수업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유치원생 자녀를 키우는 최모(37)씨는 “한 달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 영어유치원이나 교육과정, 학습법이 일반 유치원과 다르고 소수만 모집하는 ‘놀이학교’ 같은 곳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불안이 커지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철저하게 돈으로 나뉘어 있는 사교육 시장은 진입 장벽을 만들면서 사회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차별·혐오는 ‘철창 없는 감옥’… 다양성 존중하는 무지개 사회 돼야”[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차별·혐오는 ‘철창 없는 감옥’… 다양성 존중하는 무지개 사회 돼야”[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내가 더 낫다’는 그릇된 인식 개선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목소리도 일상에 흘러넘치는 차별과 혐오는 사회 구성원 간 신뢰와 연대를 무너뜨리고 갈등을 부추긴다. 전문가들은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공생하는 이른바 ‘무지개 사회’가 돼야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차별 철폐를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최소한의 법적·제도적 장치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목소리도 있다. 차별과 혐오는 특정 집단이나 대상을 사회에서 철저하게 고립시킬 수 있다. ‘철창 없는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선 배타적인 태도가 커지고 이에 따라 집단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손실도 적지 않다. 국무조정실의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분석’에 따르면 2013~2022년 사회 갈등 비용은 2326조 6000억원에 달한다.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달하는 돈을 내는 셈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영향을 불러오는 차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매년 실시하는 ‘인권의식실태조사’를 보면 최근 1년간 차별로 인해 정신·감정적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사람(1만 5597명 대상 조사)은 지난해 70.4%에 달한다. 특히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북한이탈주민들이 혐오 표현을 경험한 경우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력, 학벌, 인종 등 특정한 기준을 가치의 잣대로 두면 ‘내가 너보다 낫다’는 그릇된 비교 의식과 우월감이 쉽게 형성돼 차별과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차별과 혐오에 무감각해지지 않으려면 사회적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봤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평등이 심해지고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받는 심리적 부담을 사회 약자에게 전가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정치권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으로 지지자를 결집하는 행태부터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결국 자신도 절대적인 강자가 아니며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의 기본 원칙이 빛바랜 상황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근거로 해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집단이 있다는 이유로 정치권이 법안 논의에 소극적인 상황”이라며 “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제받을지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법은 ‘차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국가적 차원의 의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발달장애인 혼자 못 살아”… 여전한 편견·차별에 갇힌 홀로서기[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발달장애인 혼자 못 살아”… 여전한 편견·차별에 갇힌 홀로서기[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대한민국 헌법 11조) 1987년 개정된 헌법, 이른바 ‘87체제’에 명시된 간단명료한 이 내용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이주민·성소수자 등에게 동등한 기회나 출발선이 주어지기는커녕 의심과 혐오 섞인 시선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차별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과 발전까지 저해한다. 갈등 공화국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사문화됐던 87체제를 넘어 실질적인 차별 철폐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립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봤다. 의욕 넘치는 경인씨줄곧 시설에 있다가 24세 돼 독립“밖은 위험해” 시설서 여러 번 막아바리스타·장애인 자립 활동가 생활“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 살래요”늘 미소 짓는 현철씨부모님과 살다가 자신만의 삶 꾸려집·사무실 구했지만 집주인이 꺼려부모님 대동하고 나서야 계약 진행“시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어” 때아닌 3월 폭설이 내렸던 지난 18일 박경인(31)씨와 박현철(38)씨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보리밥집을 찾았다. 동료들과 지인들은 의욕 넘치는 데다 활발한 경인씨와 늘 웃는 표정의 현철씨를 ‘꿋꿋맨’이라고 부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묘하게 닮은 두 사람은 자립한 발달장애인(지적장애 3급)이다. 경인씨는 장애인 시설에서, 현철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독립해 각각 자신만의 삶을 꾸려 가고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지낸 경인씨는 스물네살이 되던 2019년에야 시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한 경인씨는 일해서 번 돈도 시설 관리자에게 맡겨야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시설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외출할 수 있었고 시설을 나오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시설 관계자들은 “밖은 위험하다”며 여러 번 경인씨의 자립을 막았다고 한다. 2008년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장애인은 생활 전반에 관해 자기 의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지만, 현실에서 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은 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여전해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 차별이 있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2023년 80.1%로 2020년 조사(63.5%)에 비해 오히려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우려 속에 시설을 나온 경인씨의 세상은 ‘무탈’했다. 편견 가득한 시선과 실질적인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또래의 청년들처럼 성실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 카페에서 일하고 소중한 친구들도 만났다.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피플퍼스트’ 활동가이기도 한 경인씨는 “시설에서는 정부 지원 등을 이유로 장애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매번 증명하며 살아야 했다”면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4년 전인 2021년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혼자 살기 시작한 현철씨 역시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시작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자취방과 사무실을 구한 뒤 부동산 계약을 할 때도 집주인은 “장애인이라 무섭다. 이렇게 계약해도 되는 것이냐”며 계약을 꺼렸다. 결국 부모님까지 대동하고 나서야 계약을 할 수 있었다. 현철씨는 지금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들도 분명히 있지만, 지금까지 잘 헤쳐 왔던 것처럼 한 명의 시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 “탈북민이라니 왕따” “중국인 싫어”… ‘2등 시민’ 차별 넘어 혐오[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탈북민이라니 왕따” “중국인 싫어”… ‘2등 시민’ 차별 넘어 혐오[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탈북민, 외국인보다 더 이방인 취급”최근 1년간 차별·무시당한 경험 16%“미세먼지는 다 중국 탓” 욕설 듣기도 중국인 왜곡된 정보 퍼져 혐오 심화동성애자, 여러 번 댓글 테러 타깃 돼4% 이주 노동자, 임금체불 피해 8%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는 순간, 곧바로 ‘약자’ 또는 ‘왕따’가 되더라고요.” 북한이탈주민(탈북민) 김순영(70)씨는 자신의 처지를 “뿌리는 같지만 한국에서 외국인보다 더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존재”라고 했다. 지난 16일 서울신문과 만난 김씨는 “7년 넘게 일했던 식당에서 일거리를 모두 도맡았는데도, 다른 직원처럼 쉬는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했다. 2004년 한국에 온 김씨는 식당에서 서빙과 요리를 하고 여러 가정집을 돌며 가사노동자로도 일했다. 그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다 미끄러져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급여는 물론 치료비도 받지 못했다”며 “무시당하지 않으려 조선족이라고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2018년 한국에 온 맹효심(24)씨가 겪은 차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맹씨는 “대학 신입생 때 소개팅 상대방에게 북한 사람이라고 말하자 ‘나는 탈북민과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라며 “‘북한에서 태어난 게 잘못인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북하나재단의 ‘2024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500명 중 16.3%가 ‘최근 1년간 차별이나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탈북민, 이주민, 성소수자들은 출신·인종·국적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2등 시민’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이미 공공기관, 기업, 학교 등 일상 곳곳에 자리잡고 있지만 아직도 차별을 넘어 혐오와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3 때부터 한국에서 지낸 중국 출신 대학생 심건학(22)씨의 학창 시절도 혐오로 얼룩져 있다. 미세먼지가 심한 어느 날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은 교실에서 “미세먼지는 다 중국에서 공장을 돌린 탓”이라며 심씨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고 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분노는 지난해 비상계엄을 겪으며 더 심해졌다. 심씨는 “사람들이 중국인을 싫어하는 마음에 왜곡된 정보를 읽고 퍼트리다 보니 갈수록 혐오가 심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주민이나 성소수자, 탈북민 등은 쉽게 범죄의 타깃이 되곤 한다. 김미루(27)씨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소셜미디어(SNS)에서 여러 차례 댓글 테러를 당했다. 김씨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데, ‘여자가 어떻게 여자를 좋아하느냐’며 손가락질하고 SNS에 몰려와 단체로 비난을 퍼부었다”고 했다. 이주 노동자에게 월급을 적게 주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하는 일부 악덕 사장들도 여전하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이주 노동자 2만 3254명이 체불임금 1108억원을 받지 못했다. 이주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약 4% 수준이지만 임금 체불 피해자(28만 3212명) 가운데 8%를 차지한다. 임금 체불 피해자 중 이주 노동자의 비중이 유독 높다는 얘기다. 이주민 지원단체인 ‘이주민센터 친구’의 송은정 센터장은 “이주민 등을 한국 산업에 꼭 필요한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법·최저임금 적용 등 차별 없는 대우를 보장해야 한다”며 “임금 체불 근절·산재 예방을 위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확대 등 권리 구제 접근성을 높이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수능이 공정하다는 건 착각…부정확한 자로 재고 절대시”[월요인터뷰]

    “수능이 공정하다는 건 착각…부정확한 자로 재고 절대시”[월요인터뷰]

    “현 수능, 학력고사처럼 됐다”교과 지식 평가 제대로 하지도 않아학생들 만점 못 받으면 계속 N수일정 수준 평가 원래 취지 잃었다“수능 290점·280점 차이 없어”美 정교한 검사 오차도 100±6점지식 일부만 물어… 타당성이 없다0.1㎜차 키로 선발하는 것과 같아“논·서술형 수능, 괜찮은 방향”수능 하나로 다 해결 생각하면 안 돼대학들 직접 학생 뽑도록 열어주고신분제 된 학벌, 사회적 해결해야“대학, 엘리트 교육기관 아냐”대학, 우수한 학생 선발에만 몰두이젠 차별화된 교육 방향 생각하고잘하는 분야 선택 구조로 바뀌어야 ‘재필삼선 사심오운.’ 재수는 필수고 삼수는 선택이며 사수는 심장이 시키고 오수는 운명이라는 요즘 수험생들의 유행어다. 의대에 가려고, 대학 간판을 따려고,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에 매달리는 ‘수능 낭인’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대학에 합격했어도, 취업을 했어도 다시 수능을 본다. 이미 수능 응시생의 3분의1이 ‘N수생’인데, 올해 수능에선 2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과열된 입시 속 2024년 사교육비 지출은 29조 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993년 첫 시행 이후 대입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쳐 온 수능이 사회적 낭비를 키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30여년 ‘대학 입학의 가늠자’로 쓰인 수능의 탄생은 1987년 교육개혁 종합 구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력고사는 사고력과 창의성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고 1~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등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드러나 정부가 새 대입 시험을 고민했다. 1992년 국립교육평가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전신)이 발간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교수학습방향’ 보고서를 보면 “학력고사를 대신할 대학교육 적성시험은 ‘대학 학업에 기초적이고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보편적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구상했다. 30여년 전이지만 요즘 수능에 대한 비판이나 대입 개편에 대한 논의와 비슷하다. 박도순(83)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런 사회적 요구가 나오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수능을 연구하고 개발한 교육학자다. 수능을 출제하는 초대 평가원장을 지낸 박 교수는 대중에겐 ‘수능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노태우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교육 정책에 관여한 박 교수는 경기 성남시의 한 공유 오피스에서 23일 서울신문과 만나 “현재 수능은 대학의 교육 목적과 전혀 맞지 않는다”며 “공정한 시험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수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노태우 정부 때 학력고사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당시 나는 교육정책자문회의에 있었는데, 새로운 입시 정책을 고민하는 와중에 대학 적성검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이 왔다. 그때 구상은 시험을 통해 수험생이 어느 대학 어느 과에 갈 수 있는지 예측하는 목적이었다가 교육개혁 종합 구상 안에 입학 적성검사가 들어가면서 대입 제도에 포함됐다. 연구를 거쳐 1990년부터 1992년까지 7번 실험평가를 했고 1994학년도(1993년 시행)에 처음 도입됐다. -초기 수능의 모습은 어땠나. “처음에는 언어·수리 두 가지로 고안했다. 대학에서 공부하려면 강의를 잘 듣기 위한 언어 능력과 논리력·추론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후 영어 원서를 보려면 영어도 필요하다고 해서 언어·수리·외국어(영어)를 하기로 했다. 목적은 고교 교육과정을 잘 이수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보편적 능력, 통합 교과적인 능력을 재는 것이다. 교과별 평가가 아니었다. -수능 과목이 점점 늘어났다. 지금은 선택과목까지 20개가 넘는다. “수능 도입 당시 언어·수리만 한다고 하니까 과학 등 다른 교과 관계자들이 반발했다. 이건 학력고사가 아니라 탐구 능력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학이 들어갔으니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도 필요하다고 해서 과학·사회탐구가 추가됐다. 현실적으로 교과 이기주의가 작용한 것이다. -난이도는 어땠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를 판단하는 시험이고,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려면 따로 공부를 안 해도 풀 수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1993년 첫 수능 전에 문교부(현 교육부) 기자실에서 시험 취지를 설명하는데 한 기자가 ‘만점을 몇 명 예상하냐’고 하더라. 당시 고교가 1600개여서 한 학교당 만점이 5명만 나와도 8000명이 나올 거라고 했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사람이 학교에 1명도 없다는 건 교육이 엉망이라는 말 아닌가. 그러니까 그 기자가 ‘그럼 대학에서 학생을 어떻게 뽑냐’고 하더라. -지금 수능은 ‘변별력’에 목을 맨다 “대학에서 수능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뽑아서다. 그러니까 만점을 못 받으면 계속 다시 응시한다. ‘N수생’이 양산되는 거다. 지금 수능은 옛날 학력고사처럼 돼 버렸다. 그렇다고 교과 지식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물리나 화학 문제를 보면 분야별로 3~4문제밖에 못 낸다. 이걸 가지고 물리의 세부 교과 지식을 평가한다고 할 수 있나. 수능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원래 취지를 잃었다. -자격고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인데. 대학은 왜 수능에 의존할까. “대학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내고 시험을 보려면 수십억원의 비용이 든다. 수능은 효율적이고 행여 출제 등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학이 책임질 일이 없다. 만약 대학이 수능을 참고자료 정도로만 쓴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N수생’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수능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공정하지 않다. 일단 통계적 오차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정교하게 만든 지능검사, 적성검사도 표준오차가 100에 ‘±6점’이다. 수능으로 치면 290점과 280점은 아무 차이도 없단 이야기다. 오차가 있는데 290점은 뽑고 280점은 대학에서 떨어지는 게 공정한가. 뿐만 아니라 문항 하나가 특정 영역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과학 시험이라면 과학 안에 있는 수많은 지식 가운데 아주 일부만 묻는다. 타당성이 없다는 얘기다. 0.1㎜까지 키를 측정해서 키로 선발하는 것과 똑같은 거다. 학력의 아주 작은 부분을 부정확한 자로 측정하고, 이걸 절대시하는 게 현재 수능과 대입의 문제다. -수능이 쉬우면 ‘물수능’이라고 비판한다. “교육 심리 연구를 보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3년이 지나면 고교 때 배운 것의 75% 이상을 잊어버린다. 수능은 ‘결국 잊어버릴 것’을 묻는 시험이다. 기자들에게 현재 수능 문제를 풀어 보라고 하면 80점을 못 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처음에 수능 실험평가를 할 때 언어 문제를 당시 기자들에게 풀게 했더니 다 80점이 넘었다. 암기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암기해야 하는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미래 수능으로 거론되는 논·서술형은 바람직한가. “수능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면 서·논술형 도입은 괜찮은 방향이라고 본다. 하지만 약간의 변화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하긴 어렵다. 수능 하나로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대학들이 직접 자신들이 교육할 학생을 뽑도록 열어 주고, 열린 부분을 대학들이 활용해야 한다. 지금도 수능 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학생을 뽑을 수 있지만 대학들이 하지 않는다.” -대학별 선발이 강화되면 사교육이 증가한다는 우려도 있다. “사교육 증가는 다른 문제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과외 금지령’을 내렸다. 가족이 가르쳐도 처벌했다. 그런데도 사교육을 못 잡았다. 재수를 못 하게 하려고 만든 ‘재수 감점제’도 있었다. 안 해 본 것이 없는데 사교육을 못 잡았다. 결국 대학 서열 파괴가 먼저 돼야 한다. 학벌이 일종의 신분제가 된 게 문제다. 이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학 서열화를 없애려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폐지’나 ‘모든 국립대 서울대 만들기’도 논의했는데 국회도 반대하고 정치적 이유로 무산됐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문 닫는 대학도 나오는데. “대학은 더이상 엘리트 교육기관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에 ‘교양 교육’을 하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중등학교(중고교)를 대학의 하위 학교처럼 인식한다. 하지만 중등교육은 중등교육 나름대로 목표와 교육과정이 있다. 지금은 대학이 성적 높은 학생들을 데려가서 좋은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들이 어떤 교육을 할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지 고민을 안 한다. 우수하지 않은 학생을 데려다가 우수하게 만드는 게 교육인데, 선발에만 몰두한다. 커리큘럼도 다 똑같다. 학생을 어떻게 뽑을지에 대해선 신경을 좀 접고, 어떻게 기를지, 어떻게 차별화된 교육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는 대학 이름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잘하는 분야나 영역을 고려해 선택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학부모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지금은 대부분 자녀가 1~2명이라 ‘아이가 좋은 대학 가서 좋은 데 취업하고 돈도 잘 벌었으면’ 하는 바람에 투자를 많이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학교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대학에서 어떻게 학생을 가르치는지 봐야 한다. 진로 교육을 일찍 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찾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를 잘 관찰하다 보면 ‘이 부분을 잘하는구나’ 보이는 게 있다. 이걸 어떻게 잘해 나갈지 유도해 줘야 한다.
  • 여전히 車·반도체뿐… 성장엔진 잠 깨울 ‘수출 플랜B’ 세워라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여전히 車·반도체뿐… 성장엔진 잠 깨울 ‘수출 플랜B’ 세워라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車·반도체 수출액 비중 36% 신기록정부 지원정책도 기존 품목에 쏠려서비스·콘텐츠 등으로 다변화 시급스타트업→대기업 성장 환경 필요“헌법에 ‘경제 양극화 해소’ 담기길” ‘헌법 제9장 경제, 제119조 2항 경제의 민주화.’ 1987년 헌법에서 ‘경제’는 마지막 장인 ‘10장 헌법개정’ 바로 앞에 기술됐다. 경제민주화는 헌법 총 130개 조항 중 119조 제2항에 딱 한 문장 언급됐다. 이처럼 경제민주화는 태생부터 주목받지 못했다. 1970~1980년대 산업화 시대에 불변의 가치로 여겨진 성장 지상주의는 87년 체제에서도 상당 부분 이어졌다. 갈수록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산업구조의 균형이 무너졌고, 서비스·인공지능(AI)·로봇·플랫폼 등 급변하는 신산업에 대한 대응력은 떨어졌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폭탄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1%대 저성장 터널에서 그나마 빨리 벗어나려면 일부 품목과 대기업 의존이 과도한 산업 및 수출구조 전반에 대해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수출 실적은 반도체와 자동차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전체 수출액에서 반도체 수출액이 차지한 비중은 23.5%, 자동차는 12.1%로 합산 35.6%를 기록하며 수출액 점유율 역대 신기록을 썼다. 하지만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 효자’만 주목받으면서 고부가 서비스·콘텐츠 산업과 로봇·AI 등 신산업은 뒷전이 됐다. 정부의 각종 재정·세제 지원마저 주력 품목에 집중되면서 산업 양극화는 깊어졌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자동차 수출액이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12.2%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 비중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자동차(부품)·철강을 관세 부과 대상으로 정조준하자 한국 경제가 휘청이는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주력 품목에 대한 쏠림 현상이 워낙 큰 탓에 대체할 만한 ‘플랜B’도 마땅치 않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엔비디아·아마존·넷플릭스가 이렇게 성장할지 누가 알았겠느냐”며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만 쳐다보고 있어선 안 된다. 서비스·플랫폼·콘텐츠 등 고부가 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리모델링’을 통해 품목을 다변화하고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기존 주력 수출 품목이 너무 오래 유지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로봇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활성화된 중국과 기술 경합을 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뒤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로봇처럼 산업화 초기 단계에 많은 투자가 필요한 분야를 중심으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출 주력 품목을 다변화하려면 ‘안목’이 필요하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공한 산업을 집중적으로 도와주느냐, 성공할 것 같은 산업을 미리 지원하느냐의 문제인데 예측을 잘못하면 돈 낭비가 되고, 모든 산업을 보호하려다간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게 된다”면서 “상업성이 없는 좀비 기업은 과감히 퇴출을 유도하고 실업보험을 강화해 재창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 경제가 저성장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신산업을 발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반도체 등 기존 전략 산업은 고부가가치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철강 산업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같은 신기술을 개발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며 “AI 기술력에서 미국을 거의 따라잡은 중국처럼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앞세워야 유능한 기술 인재들이 한국으로 몰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의 리밸런싱도 필요하다. 1987년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도입됐지만 대기업의 자산 집중화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100대 그룹의 자산 총액 규모는 3027조 3200억원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2549조 1207억원을 18.8% 웃돌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SK·현대자동차 등 수출 상위 10대 기업의 무역집중도(수출액 비중)는 36.6%로 2018년 37.8%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력이 한쪽에 집중되기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돼야 적절한 리스크(위험) 관리가 되고 경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서 “시장경제가 역동적으로 발전하려면 스타트업부터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커 나가는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제학자들은 87년 헌법이 개정된다면 모호한 경제민주화 조항 대신 양극화 완화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명시적으로 담을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양준석 교수는 “헌법 해석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호한 경제민주화 규정은 빼고 경제활동의 정의와 권리, 재산권 보호, 양극화 방지 등 구체적 내용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는 “경제성장은 당연하고, 경제 양극화를 줄이는 방향의 규정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밝혔다. 하준경 교수는 “독점 규제, 공정한 시장 질서, 강자의 횡포를 견제하는 가치가 담겼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 OECD에 20년 뒤처진 K복지… “성장·분배 황금 밸런스 찾아야”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OECD에 20년 뒤처진 K복지… “성장·분배 황금 밸런스 찾아야”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37년간 17배 늘어난 국민총소득상위 20%·하위 20% 소득 차 11배국민 행복지수는 6.058점 ‘52위’저출산·고령화에 생산성 하락세한은, 2040년대엔 ‘0% 성장’ 경고 “갱제(경제)를 학실히(확실히) 살리겠습니다.”(김영삼 전 대통령), “경제를 살립시다.”(김대중 전 대통령),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명박 전 대통령),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겠습니다.”(박근혜 전 대통령)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8차례 대선에서 경제는 언제나 화두였다. 역대 대통령 모두 후보 시절엔 “경제를 살려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지만 오롯이 약속을 지킨 정부는 없었다. 국가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양극화의 그늘은 점점 깊어졌다. 계층 사다리는 허물어지고 사회안전망은 복지 재원 부족으로 헐거워졌다. 삶에 대한 만족도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옅어지면서 87년 헌법이 규정한 경제 민주화도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288조 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987년 375조원에서 37년 만에 6.1배 커졌다. 이 기간 성장률은 연평균 13.4% 꼴이다. 국부가 매년 10% 이상 늘어났다는 의미다. 명목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87년 297만 3000원에서 지난해 4995만 5000원으로 16.8배 불어났다. 하지만 분배는 고르지 못했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는 시장소득 기준으로 1990년 3.93배(도시 2인 이상 가구)에서 2023년 10.7배(전체 가구)로 벌어졌다. 국민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이 외형적으론 높아졌지만 과실은 골고루 나눠지지 않았단 의미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 흔들린 탓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도 국민들은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늘 경제가 어렵다고 인식한다. 유엔의 ‘2024 세계행복보고서(WHR)’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2021~2023년 6.058점으로 52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33위로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튀르키예, 콜롬비아, 그리스, 헝가리, 포르투갈뿐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복지 수준이 높다. 반면 한국의 복지 지출 비중은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2022년 기준 14.8%로 1990년 2.6%에서 32년 만에 12.2% 포인트 증가했다. 해당 통계가 있는 OECD 35개국 중 바닥이다. 프랑스 31.6%, 이탈리아 30.1%, 독일 26.7%, 일본 24.9%(2020년), 미국 22.7%(2021년), 영국 22.1%(2021년) 등과 10% 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2039년이 돼야 OECD의 2019년 수준인 20.1%에 도달할 전망이다. 이는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창용 한은 총재와 함께 쓴 ‘경제학원론’(1997년)의 7번째 개정판(2025년)에서 불평등도가 큰 나라일수록 세대 간 이동성(경제적 지위의 변화)이 적다는 ‘위대한 개츠비 곡선’ 이론을 소개했다. 그는 “금수저·흙수저란 말의 유행은 세대 간 이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음을 증언한다”면서 “양극화가 심화하는 마당에 이동성마저 떨어지는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장 동력 실종도 심각하다. 한 나라의 노동과 자본을 최대한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경제 기초 체력을 뜻하는 ‘잠재성장률’ 추락이 원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1981~1990년 잠재성장률은 8.6%였다. 이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2%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잠재성장률은 2%까지 추락했다. 실질성장률은 1.5%(한은 전망치)로 전망됐다. 한은은 잠재성장률이 2030년대에 1% 초중반, 2040년에 0%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했다. 15년 뒤면 성장 엔진이 사실상 멈출 것이란 뜻이다. 국민 소득 증가에도 제동이 걸렸다. 1인당 GNI는 2014년 3만 달러대에 진입한 이후 지난해까지 11년째 앞자리가 그대로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터널에 진입한 1차적 원인으로는 저출산·고령화가 꼽힌다. 산업 생산성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실질 GDP가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결과가 나타났다. 국민 평균 나이 격인 올해 중위연령은 46.7세로 1987년 25.4세에서 38년 만에 21.3세 높아졌다. 특히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19년 3763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줄곧 하락해 올해 3591만명을 기록, 6년 만에 4.6%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이 거론된다. 성장에 따른 혜택이 특정 계층에 편중될 경우 소외된 계층은 경제활동 의지가 저하된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통합도 어렵다. 물론 시장경제체제에서 성장에 기여한 사람에게 더 많은 분배가 이뤄지는 건 불가피하다. 지나친 분배정책은 경제 성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동안 한국 사회의 무게중심이 분배보다는 성장에 쏠렸다는 점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 지출이 작다고 늘리면 성장은 어떻게 하나, 성장할 힘도 없는데 복지 재원은 또 언제 확충하나’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서 “쉽지 않겠지만 성장과 분배의 황금 밸런스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서울광장] 탄핵심판 후 尹·李에 관한 발칙한 상상

    [서울광장] 탄핵심판 후 尹·李에 관한 발칙한 상상

    “국민 여러분. 오늘 헌법재판소가 내려 주신 탄핵 기각 결정은 누구의 승리도, 누구의 패배도 아닙니다. 오직 이 나라 헌정을 파국이 아니라 정상적인 정치로 복원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누구도 원치 않는 적대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청산하고 헌법의 아버지들이 꿈꿨던 대화·타협의 의회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개헌에 즉시 착수할 것을 여야 정치권에 정중히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기각 결정이 나올 경우 윤 대통령이 이와 같은 대국민 담화를 내놓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실제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87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개헌과 정치개혁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고 했었다. “잔여 임기에 연연해할 이유가 없다”는 말도 했다. 실제 과도한 대통령 권력과 의회의 권한남용이 빚어낸 계엄과 국회 폭주라는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제왕적 대통령제와 극한 대결로 상징돼 온 87년 체제 청산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또한 대통령 스스로가 어떠한 기득권도 주장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한 마중물 역할에만 충실하다면 탄핵 기각에 실망하고 분노한 국민들까지 끌어안는 국민통합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 지방분권화 등 개헌의 큰 방향에 대해선 이미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면 시행 시기는 복수의 선택지가 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탄핵심판이 인용으로 결정 나고 60일 안에 대선을 치르게 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정국의 ‘키맨’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될 것이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내란 극복이 먼저”라며 개헌에 소극적 입장이었다. 대선 공약으로 ‘임기 중 개헌’을 내놓는다 해도 과거 대통령들이 그랬듯 이 대표 스스로도 진짜 할 거라고 믿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내놓는다면 어떠할까. “국민 여러분. 이제 이 나라를 짓눌렀던 계엄의 공포는 종식됐고,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헌정질서가 작동하는 민주국가의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면 대선을 통해 주권자의 뜻에 따른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저에게 주어져 있는 각종 사법절차와 관련한 결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비록 정치검찰이 제게 이러저러한 혐의들을 씌워 기소했지만,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재판을 회피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겠습니다. 선거법 재판도, 사법리스크가 국민의 선택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신속·공정하게 결론을 내 주실 것을 사법부에 요청드립니다. 만일 제가 당선되더라도 권력을 방패 삼거나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소추 금지를 규정한) 헌법 84조를 빌미 삼아 진행 중인 재판을 중단시키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대표가 이처럼 사법질서 준수를 선언한다면 거리를 메웠던 탄핵 반대 세력의 분노와 반발도 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무법자 낙인찍기에 의해 형성됐던 ‘이재명 포비아’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는 26일로 잡혀 있다. 여기서 1심처럼 의원직 상실형(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향후 10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이 대표는 이 밖에도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사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 8개 사건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대표의 지지율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유리한 환경에서도 30% 초중반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는 그에게 헌법수호와 법치주의 구현의 최고책임을 맡길 수 있느냐 하는 중도층 유권자들의 법감정도 작용하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방식을 전격 수용해 후보 단일화 경선과 본선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이 대표가 자신의 최대 리스크를 ‘담대한 승부수’로 바꿔 낸다면 대선판은 물론 우리 정치도 원칙과 상식이 지배하는 세계로 급속한 진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 [데스크 시각] 위대한 개츠비, 2025년 대한민국

    [데스크 시각] 위대한 개츠비, 2025년 대한민국

    “극도로 불평등한 소득분배 상황에서는 호레이쇼 앨저의 신화(J D 밴스 미 부통령처럼 가난하고 배경 없는 인물이 성공하는 ‘아메리칸 드림’)가 더이상 실현될 공간이 없어진다. 아무리 근면하고 절약한다 해도 뛰어넘기 힘든 현실의 장벽이 가로막기 때문이다.”(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어떤 집에서 태어나느냐는 본인이 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로또와 다를 게 없다. 오롯이 운에 따라 누군가는 금수저를 물고, 다른 누군가는 흙수저를 쥐고 태어난다. 운에 의해 학교, 직업, 결혼까지 영향받는 사회를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식에게 이전되는 경향성이 짙을 때 ‘세대 간 이동성’이 작다라고 말한다. 개천에서 태어난 사람이 능력과 노력만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기 어렵다는 의미다. 일시적으로 불평등하다 해도 사다리가 튼튼하다는 믿음이 있으면 희망이 있다. 내 세대에서는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지만 자식대에선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어서다. 1970~80년대 한국사회가 그랬다. 문제는 오늘의 분배 상태가 너무 불평등하면 미래의 이동성이 커지기 힘들다는 데 있다. 경제학에선 ‘위대한 개츠비 곡선’으로 설명한다. 세계경제가 가장 뜨거웠던 1920년대 미국에서 무일푼으로 태어나 막대한 부와 신분상승을 일군 소설 ‘위대한 개츠비’ 주인공을 세대 이동성의 아이콘으로 보고 이름 붙였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회의(CEA) 의장이던 앨런 크루거(1960~2019)가 마일스 코랙 교수의 ‘대대로 이어지는 불평등’(2011) 연구를 인용해 알려졌다. 이 곡선은 소득불평등 정도(지니계수)가 높은 국가일수록 세대 간 소득탄력성, 즉 부모의 소득과 자녀가 성인이 된 후의 소득이 비슷한 정도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저소득층 아이들은 교육 기회의 제한으로 계층 이동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할 개연성이 더 크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급여와 복지가 좋고 근속 연수가 길며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 첫 일자리로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한국사회에서 한 번 고용시장의 ‘인사이더’에 포함되지 못하면 평생 ‘아웃사이더’로 남기 쉽다. 2022년 일자리를 옮긴 근로자 415만 9000명 중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긴 사람은 10명 중 1명에 그쳤다. 부모 세대의 경제력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직업, 학력, 친구, 결혼까지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세습중산층사회’(저자 조귀동)의 단면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부유층 부모의 경제자본이 자녀의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와 연결되고 있으며, 경제자본과 인적자본을 활용한 사회적 연결망 획득이 또다시 경제자본의 축적에 유리한 영향을 주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사회이동성과 교육격차’)”고 짚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사회이동성 방안과 관련, 교육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위 90%도 상위 10% 수준의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한국사회의 양극화 구조를 깨뜨리기 불가능해서다. 과세 강화도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을 열어 주고, 그들의 자녀들이 경쟁 기회조차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 보수 쪽에선 면세자 비율이 과도하게 높다는 점만 지적하지만, 고소득자의 실효세율이 주요국에 비해 낮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외환위기 이후 악화 일로를 걷는 불평등의 근원과 해결의 단초를 찾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정책적 고민은 허망한 결말이 예상되는 87년 체제 권력구조 개헌 논쟁보다 의미 있고 시급할지 모른다. 임일영 경제정책부장
  • 임금은 계급… 연봉 3000만원 ‘아싸’는 결코 못 넘볼 ‘1억 인싸’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임금은 계급… 연봉 3000만원 ‘아싸’는 결코 못 넘볼 ‘1억 인싸’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대기업 등 1차 노동시장의 ‘인싸’급여·복지 여건 좋고 근속 길어비정규직인 2차 노동시장 ‘아싸’대기업 임금 58%뿐… 격차 심각무너진 사다리에 삶도 저당잡혀대기업으로 이직 10명 중 1명뿐#1. 대기업 연구개발직 과장급인 이모(34)씨가 2017년 입사했을 때 연봉은 4200만원이었다. 성과급과 각종 수당을 더하면 실제 받는 돈은 본봉의 2배 규모인 84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입사 4년이 지나자 세전 1억원을 돌파했다. 이씨는 “주 52시간도 철저히 지켜져 이직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2. 중소기업 계장급인 안모(34)씨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취업에 번번이 실패해 지방의 한 산업단지에 있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안씨의 2020년 첫 연봉은 3000만원 정도였는데 4년이 지나고도 앞자리가 바뀌지 않았다. 회사에 노동조합이 없어 제대로 된 임단협도 없다. 안씨는 “대기업으로 경력직 이직을 꿈꾸고 있지만 바늘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다”며 한숨지었다. 동갑내기 두 사람의 현주소는 한국 노동시장에 뿌리내린 이중구조의 단면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된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이전까지는 고용 형태나 규모별로 비교적 임금 격차가 작고 높은 이동성을 보인 노동시장이었지만 노동자 대투쟁 시기를 거치면서 블루칼라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또 구직자 대부분이 근로 조건이 좋은 대기업 취업을 원할수록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 노동시장에 다른 의미의 계급화가 진행된 것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대규모 정리해고와 맞물려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이중구조화는 더 빠르게 진행됐다. 급여와 복지 등 근로 조건이 좋고 근속 연수가 길며 연공서열제가 강하고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인사이더’들의 1차 노동시장(대기업·정규직·공무원 등)과 ‘아웃사이더’들의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비정규직 등)으로 나뉜 이중구조가 한국 사회에 절차적 민주화를 이식한 87년 체제에서 촉발된 것은 아이러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대표적 예는 임금 격차다. 지난 9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70.9%에 불과하다.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는 더 크다. 300인 미만 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300인 이상 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57.6%에 그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한·일·유럽연합(EU) 기업 규모별 임금 수준 국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57.7%에 불과했다. EU는 65.1%, 일본은 73.7%였다. 한국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022년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 8만 7130달러(약 1억 2700만원)로 분석 대상 22개국 중 상위 5위였다. 월평균 소득은 대기업 593만원, 중소기업 298만원으로 격차는 2배에 가까웠다. 나이별로는 더 심각하다. 20대 대기업 종사자의 소득은 월 342만원, 중소기업은 223만원으로 119만원 차이가 났다. 하지만 30대는 대기업 551만원, 중소기업 310만원으로 격차가 200만원 이상, 50대는 대기업 772만원, 중소기업 330만원으로 400만원 이상 벌어졌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어디에서 내딛느냐에 따라 생활 수준과 삶의 궤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건너가는 ‘사다리’도 끊어지기 직전이다. 2022년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옮긴 등록취업자 중 대기업으로 옮긴 사람은 10명 중 1명(12.0%)에 그쳤다. 중소기업에서 아무리 숙련된 경험과 기술을 쌓아도 대기업에 발을 들이기는 쉽지 않다. ‘아웃사이더’로 출발해 ‘인사이더’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란 얘기다. 고용 안정성 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2023년 대기업의 평균 근속기간은 8.0년, 중소기업은 5.0년이었다.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2년 10개월에 불과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노동조합 조직률과도 맞닿아 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노조 설립 비율이 커 노동권이 잘 보장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사업체의 노동조합 설립 비율은 2021년 19.4%였다. 대기업은 33.7%지만 중소기업은 12.9%로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가 급증하면서 노동시장에 분절화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는 고용 사각지대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러한 이중구조는 ‘주인 없는’ 일자리를 양산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1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구인 중이고 30일 내 채용할 수 있는 ‘빈 일자리’는 16만 1000개로 집계됐다. 조선·뿌리산업 등 제조업과 물류업·보건복지업·음식점업·농업 등 근로 조건이 대기업보다 못한 업종을 중심으로는 일자리가 남아돌고 있다. 생산성이 뛰어난 청년층 대다수가 대기업 취업만 바라보는 상황과 맞물려서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청년 세대 입장에선 안정적이고 소득이 높은 좋은 일자리와 그렇지 못한 일자리의 격차가 너무 커져 버렸다”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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