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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뢰매 시리즈’ 저작권 다툼 소송 끝에 법원 “김청기 감독 것”

    ‘우뢰매 시리즈’ 저작권 다툼 소송 끝에 법원 “김청기 감독 것”

    1980~1990년대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특촬물 영화 ‘우뢰매’의 저작권을 놓고 김청기 감독이 당시 영화제작사 간부와 법정 다툼 끝에 승소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상윤)는 우뢰매를 제작했던 서울동화사의 전 대표 김모씨와 A엔터테인먼트사가 “우뢰매 시리즈의 저작권을 양도받았다”면서 김청기 감독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김청기 감독은 서울동화사 대표로 재직하던 1986년 ‘외계에서 온 우뢰매’를 시작으로 1989년 ‘제3세대 우뢰매 6’까지 6편의 우뢰매 시리즈를 제작, 연출했다. A사와 김씨는 이들 6편에 대한 저작권을 2001년 서울동화사로부터 넘겨받았는데도 김청기 감독이 2015년 다른 회사에 임의로 양도했다면서 소송을 냈다. 이들은 김청기 감독이 우뢰매 시리즈를 서울동화사에서 업무상 제작한 것인 만큼 최초의 저작권은 서울동화사에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서울동화사로부터 넘겨받은 자신들이 현재 우뢰매 시리즈의 저작권을 보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우뢰매 1~3편은 법인·단체의 기획으로 만든 저작물에 관련한 규정이 저작권법에 반영된 1987년 7월 이전에 제작된 작품이므로 김청기 감독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밝혔다. 1987년 7월 이전 작품은 법인 명의의 저작권이 인정되지 못한 것이다. 4~6편의 경우 저작권법에 해당 규정이 만들어진 이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이 역시 서울동화사의 기획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이들 작품의 경우에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등에 ‘제작, (총)감독 김청기’라는 문구가 표시된다는 점을 주요한 근거로 판단했다. 당시 저작권법은 법인 명의 저작물의 저작권이 법인에 있다고 규정하되 ‘기명 저작물’은 그렇지 않다고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법인의 기획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에 제작자로서 김청기 감독의 이름이 올라간 만큼 우뢰매 4~6편이 김청기 감독의 기명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밖에 김청기 감독이 1992~1993년에 제작한 우뢰매 7~8편에 대해서는 김청기 감독이 서울동화사 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제작한 만큼 서울동화사가 아닌 김청기 감독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서울동화사 전 대표 김씨는 1995년 김청기 감독이 자신에게 우뢰매 시리즈를 포함한 작품의 ‘판권’을 양도한다고 증서를 써준 것을 내놓으면서 자신에게 저작권이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권이라는 용어는 저작권법에 없는 것으로, 해당 증서만으로는 김청기 감독이 저작권을 양도한 것인지, 단순히 이용을 허락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면서 “명백하지 않은 경우 저작자에게 권리가 유보된 것으로 유리하게 추정해야 한다”면서 이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이 증서에서 ‘판권’이라는 표현 앞에 ‘CD, LD, 홈비디오’ 등이 구체적으로 적힌 만큼 포괄적 저작권 중 일부에 국한한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고, 해당 증서에 권리 양도의 대가가 전혀 적히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포괄적 저작권을 내준 것이라고 납득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아들의 못다 이룬 꿈 이뤄달라” 31년 모은 유족연금 육사에 기부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발병한 위암으로 숨진 이상엽 소위의 아버지 이승우(84)씨가 31년간 모아온 아들의 유족연금을 육사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이씨는 지난 8일 육사를 방문해 1억원을 육사발전기금으로 기탁했다고 육군이 14일 밝혔다. 이씨의 아들 이 소위는 1984년 육사 44기로 입학, 생도 1학년 시절 우수생도로 선발돼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로 파견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이 소위는 미국에서 공부하던 도중 생도 2학년 때 위암에 걸렸고 미국 내 최대 군 병원인 월터리드 육군의료센터에서 치료받았지만 1987년 2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후 육군 소위로 추서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매달 나오는 유족연금을 31년간 모았고 아들이 중·고교 시절 저금통에 모았던 용돈까지 더해 1억원을 기금으로 전달했다. 이씨는 기금을 전달한 자리에서 “육사는 국가에 헌신하는 청년 장교를 양성하는 곳”이라며 “이 돈은 아들이 못다 이룬 꿈의 값이다. 이 돈으로 아들이 못다 이룬 애국의 꿈을 후배 생도들이 이뤄달라”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탁 치니 억 하고…’ 박종철 사건 조작, 검찰 알고도 덮었다

    당시 청와대·안기부에 굴복해 은폐 방조 김근태 사건도 검찰이 검찰권 남용했다 피해 당사자에 공식 사과·재발 방지해야 1980년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 당시 검찰이 정권의 외압을 받고 사건을 축소·졸속 수사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11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에 대해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보고를 받고 당시 검찰의 졸속·부실 수사와 사건은폐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박종철 사건에 대해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 수사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검찰총장 이하 검찰 지휘부에 전달되는 청와대 및 국가안전기획부의 외압에 굴복해 졸속·늦장·부실 수사로 점철됐음을 확인했다”며 검찰이 당시 정권으로부터 외압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과거사위는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검찰의 공식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한편 사실상 정권의 외압을 가능하게 했던 안보수사조정권 폐지를 권고했다. 1964년 도입된 안보수사조정권은 정보기관이 안보사범에 대한 검찰 수사를 통보받거나 사건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현재도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박종철 사건은 1987년 1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물고문으로 질식사한 사건이다. 당시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사망 원인을 거짓 발표했고, 경찰은 가해자를 2명으로 축소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준비하던 상황에서 ‘손을 떼라’는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결정에 굴복해 수사를 치안본부에 일임하는 등 사실상 사건 은폐·조작 기회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또 치안본부장의 발표가 거짓이라는 점을 알았음에도 “조작·축소 가담 혐의가 없다”고 처분하는 등 수사 의무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씨의 부친을 찾아가 사죄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이후 같은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확립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거사위는 김근태 사건에 대해서도 당시 검찰의 검찰권 남용을 인정했다. 1985년 당시 민청학련 의장이었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은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대공분실에 강제 연행돼 고문을 받은 사실을 검찰에 알리고 수사를 요구했으나 검찰은 이를 묵살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고문 사실을 인지하고도 안기부가 제공한 대응방안을 받아들이고 이를 은폐하는 데 가담했다고 전했다. 당시 검찰은 수많은 사람들이 대공분실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검증이나 구속 장소에 대한 감찰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분단의 시간을 넘어 돌아오다- 통영 윤이상 기념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분단의 시간을 넘어 돌아오다- 통영 윤이상 기념관

    “나의 아이들아, 나는 스파이가 아니다.” 1969년 윤이상(1917-1995)은 고문실 유리재떨이로 숨을 끊고자 하였다. 머리가 터져 흘러내린 피로 벽에 유언을 적는다. 자살은 실패한다. 동백림 사건, 혹은 동베를린 사건이라고 불리는 간첩단 사건을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다. 말인즉슨 194명의 독일, 프랑스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넘나들며 간첩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 사형 선고를 받았던 윤이상은 1967년 12월 13일 1차 공판에서 무기징역, 재심·삼심에서 감형을 받은 뒤 1969년 2월 25일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다. 이후 그는 조국을 떠났다. 그리고 살아서는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죽어서야 맡을 수 있었던 고향의 바다 내음. 2018년 대한민국은 그를 품었다. 통영의 윤이상 기념관이다. 1970년대 유럽에서 윤이상은 이미 세계적인 음악가였으며 생존하는 유럽 5대 작곡가로 꼽힐 정도였다. 윤이상 음악의 시작은 1959년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초연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었는데 이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유럽 현대음악계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는다. 그는 동양 음악의 특징인 '주요음(Hauptton)' 기법과 주요음향 (Hauptklang) 기법을 도입하였는데, 이런 방식은 점과 점의 연결을 기본으로 하는 서양 음악과는 달랐다. 한자(漢字)의 획과 부수 개념을 응용한 음의 굵기로 높낮이를 조절하는 그의 음악적 세계는 한계에 다다른 서양 음악 에 새로운 지평을 넓혀준다. 그가 1966년 도나우에싱엔(Donaueschingen) 음악제에서 발표한 <예악>의 '주요음' 기법은 기존 서양 음악 세계에서는 크나큰 충격 그 자체였다. 이후 윤이상은 1969년부터 1970년까지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1977년부터 1987년까지는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수상경력도 화려해서 1988년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 1992년 함부르크 자유예술원 공로상, 1995년 괴테 메달까지 받은 그였지만 조국은 냉정하였다. 대한민국은 그가 작곡한 음악의 국내 연주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5년 11월 3일 폐렴으로 생을 마감한 윤이상은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23년이 지난다. 2018년 3월 20일 통영 국제 음악당 언덕에 그의 유해는 조용히 이장된다. 그리워하던 통영의 푸른 바다를 맘껏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고단한 생과 사의 이력이 고향에서 끝을 맺었다. 현재 윤이상 기념공원 1층과 2층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윤이상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작곡하던 방을 본 뜬 공간과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들을 통해 관람객들은 인간 윤이상을 만날 수 있고 진본 악보와 악기를 비롯한 귀중한 전시품들을 통해 음악가 윤이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야외에는 기념비와 아울러 호수 및 정원, 야외 공연장이 마련되어 있어 윤이상 기념공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작은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윤이상 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통영을 들러 시간이 넉넉히 남는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 혼자라도 3. 가는 방법은? - 경남 통영시 중앙로 27(도천동 150-4)/644-1210(055) 윤이상 기념공원 내 4. 감탄하는 점은? - 윤이상의 진품 유물들, 악보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조용한 곳이다. 아직은. 6. 꼭 봐야할 장소는? - 전시관 2층에 마련된 윤이상 선생의 유품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알쓸신잡의 ‘분소식당’, 멍게비빔밥 ‘대풍관’, 물회 ‘통영해물가’, 복어 ‘만성복집’, 시래기국 ‘원조시락국’, 해물뚝배기 ‘통영식도락’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timf.org/memorial/submain_memorial.do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박경리 문학관, 스카이루지, 케이블카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이념과 분단의 시간을 넘어 예술의 혼을 불태운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남아 있는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생모 몰래 신생아 빼돌려 입양시킨 스페인 의사 결국 처벌 면해

    생모 몰래 신생아 빼돌려 입양시킨 스페인 의사 결국 처벌 면해

    49년 전 생모 몰래 신생아를 빼돌려 불임부부에게 제공한 스페인 의사가 공소시효 만료로 유죄 판결을 면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지방법원은 8일(현지시간) 유괴와 사기, 서류 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산부인과 의사 에두아르도 벨라(85)에 대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인정되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영국 BBC방송 등이 전했다. 벨라는 프란치스코 프랑코 총통 독재체제였던 1969년 갓 태어난 여자아기였던 이네스 마드리갈(49)을 생모에게서 몰래 빼앗아 서류를 조작한 다음 다른 여성에게 준 혐의로 기소됐다. 생모에게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고 말하고 병원이 알아서 시신을 매장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마드리갈은 그를 입양한 부모가 죽기 전인 2010년 자신들이 불임부부이며 의사로부터 아드리갈을 선물로 받았다는 고백을 들었고, DNA 조사 결과 이것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마드리갈은 지난 2012년 4월 벨라를 고소했고, 스페인 검찰은 그를 기소한 뒤 11년형을 구형했다. 스페인에서는 인민전선정부를 쿠데타로 뒤엎고 정권을 잡은 독재자 프랑코 총통 집권 시기(1939~1975년) 배후를 알 수 없는 신생아 납치나 강제 입양 사건이 많았다. 처음에는 독재정권 편에 선 세력이나 그 하수인들이 공화주의 좌파 세력을 말살시키고자 좌파 정치인이나 운동가들의 아이를 몰래 병원에서 빼돌려 암매장하거나 다른 가정에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50년대 시작된 이런 잔악한 범죄는 좌파진영을 넘어 빈곤층 또는 동거커플 등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아기들로까지 확대됐다. 또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종교적으로 신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그릇된 믿음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스페인에서는 유사한 의혹이 수천 건 제기됐지만 모두 증거불충분이나 공소시효 만료로 실제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었다. 마드리갈 역시 결국 벨라를 법정에 서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처벌하는 데는 실패했다. 스페인 현행법상 마드리갈은 성인이 된 1987년 이후 10년 안에 불법 구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이미 시한이 지났다는 것이다. 마드리갈은 벨라의 죄를 묻기 위해 대법원 상고까지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내우외환 빠진 푸틴 ‘힘’으로 돌파하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지율이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인의 ‘역린’ 연금을 건드려서다. 해외 사정도 푸틴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국제기구에 대한 전방위적 해킹 시도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고 관련자를 기소·추방했다.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 가능성도 점쳐진다. 텔레그래프 등은 4일(현지시간) 여론조사 전문기관 ‘레바다 센터’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58%에 불과하며 이는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5월 79%, 7월 67%로 꾸준한 하락세다. 지지율 폭락은 푸틴 대통령이 강행한 연금법 개정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푸틴 대통령은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지난 3일 러시아인 대다수가 반대한 연금법 개정안에 최종 서명했다. 이 개정안은 정년 연령을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0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이날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유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반도핑기구(WADA) 등을 해킹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OPCW를 자국 영토에 둔 네덜란드 정부는 이번 사건에 개입한 러시아 군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요원 4명을 국외 추방했다. GRU가 해킹을 시도했을 당시 OPCW에서는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독살 시도 사건 때 사용된 신경안정제, 시리아 두마에서 사용된 화학무기의 성분 등 러시아와 얽힌 업무가 진행 중이었다. 네덜란드 정부에 따르면 이들 요원은 OPCW 해킹에 실패했으며, 인근 호텔에서 검거됐다. 같은날 미국 법무부는 이들 4명을 포함해 미국 원전업체인 웨스팅하우스, FIFA, WADA에 대한 해킹을 시도한 혐의로 러시아 정보요원 7명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 4명은 네덜란드에서 추방된 GRU 요원들이다. 존 데머스 미 법무부 국가안보 차관보는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이 악의적인 사이버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날 국방장관 회의를 열어 사이버 공격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에 “무모한 행동을 중단하라”면서 “나토는 사이버 영역을 포함한 하이브리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방어력과 억제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나토 동맹국들에 사이버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러시아 측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군사적 영향력 및 군비 확장으로 이번 난국을 타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산 최첨단 방공 미사일 체계 S400을 중국, 터키는 물론 미국의 오랜 우방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 판매했거나 할 계획이며 시리아에는 S400의 전 세대 방공망인 S300을 배치했다. 시리아는 S400 추가 배치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987년 12월 미·소 정상회담에서 금지하기로 한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을 비밀리에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남도의 가락과 여성의 처연함을 읊은 허수경 시인 타계···수목장

    남도의 가락과 여성의 처연함을 읊은 허수경 시인 타계···수목장

    위암 말기 투병하다 별세···이달말 고향 진주서 추모행사 예정독일에서 꾸준히 우리 말로 시를 쓴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오후 7시 50분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시인의 작품을 편집·출간한 출판사 난다 김민정 대표는 4일 “어제저녁 시인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택에서 밤새 병세가 악화해 다음 날 아침(현지 시간)에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장례는 현지에서 수목장으로 치른다고 한다”고 전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54세. 시인은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했으며, 이 사실을 지난 2월 김 대표에게 알린 뒤 자신의 작품 정리에 들어갔다. 지난 8월에는 2003년 나온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15년 만에 새롭게 편집해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이 산문집 개정판에 서문으로 이렇게 썼다. “내가 누군가를 ‘너’라고 부른다./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불안하고,/초조하고,/황홀하고,/외로운,/이 나비 같은 시간들.//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경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국 스크립터 등으로 일하다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뒤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갔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와중에도 꾸준히 시를 써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까지 총 6권의 시집을 냈다.시인은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 그리움을 노래했다. 또 독일에서 오랫동안 이방인으로 지낸 삶은 그의 시에 고독과 쓸쓸함의 정서를 짙게 드리우게 했으며,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 연구 이력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시 세계를 만들어냈다.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시 세계는 독일로 가기 전엔 고향인 남도 가락과 정서, 여성적인 처연함이 결합해 최고의 사랑 시로 볼 만한 작품을 남겼다. 독일에 가서는 먼 나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고고학이 시간의 오래된 지층,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어서 그런지 시에서도 아주 긴 시간을 사유하는 상상력이 두드러졌다. 유고시집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보면 오래된 시간에 대한 상상력, 현생의 이전과 이후 시간까지 함께 상상하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고인은 동서문학상(2001년), 전숙희 문학상(2016년), 이육사 시문학상(2018년)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독일에서 지도교수로 만나 결혼한 남편이 있다. 한편 고인의 유해는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10월말쯤 진주에서 허수경 시인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헤겔 철학 대가‘ 임석진 교수 별세

    ‘헤겔 철학 대가‘ 임석진 교수 별세

    헤겔 철학 권위자인 임석진 명지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86세. 임 교수는 국내에 처음으로 헤겔을 소개한 철학자다. 1987년 한국헤겔학회를 창립한 뒤 초대 회장을 맡아 20년간 이끌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고인은 서울대 철학과 강사를 거쳐 1967년부터 1998년까지 명지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 ‘논리학’ 등을 번역하고, ‘헤겔의 노동의 개념’, ‘헤겔 변증법의 모색과 전망’, ‘변증법적 통일의 원리’등 헤겔 관련 저서를 집필했다. 임 교수는 1961년과 1966년 평양을 방문하고 유학생을 북한대사관에 소개하기도 했다. 1967년 이기양 조선일보 서독특파원이 취재차 체코에 입국했다가 실종되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북한 접촉 사실을 털어놨다. 이후 중앙정보부가 작곡가 윤이상, 이응로 화백, 천상병 시인 등 예술가와 학자 등 194명을 간첩으로 몰면서 ‘동백림(東伯林) 사건’이 일어났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박정희 정권이 동백림 사건을 무리하게 확대 포장했다고 발표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한·미 방위비 협상, 무엇이 쟁점인가…트럼프 연합훈련 비용 또 언급

    한·미 방위비 협상, 무엇이 쟁점인가…트럼프 연합훈련 비용 또 언급

    “나는 솔직히 한국에 ‘이 게임(연합훈련)에 당신들이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뉴욕 롯데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훈련을 ‘군사 게임’(military game)이라 부르며 “그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 우리가 그 돈을 모두 지불한다”며 이같이 밝혔다.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한·미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거론된 상황에서 불거졌다. 한반도에서 진행되는 한·미연합훈련 비용을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괌에서 폭격기가 날아가는데 7시간이 걸린다면서 “나는 그것을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고 (훈련 중단으로) 납세자의 세금을 절약한다”고 말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한반도 평화분위기 조성보다 비용 절감 차원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는 “미국이 3만 2000명의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데 그들(한국)은 아주 부자 나라다”라며 “당신(한국)들은 왜 우리에게 돈(방위비)을 보전해주지 않느냐고 한국에 물었는데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답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만일 가난한 나라이면서 보호가 필요하고 사람들이 죽을 위기에 처해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10센트도 안받고 지켜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에게서 엄청난 무역 흑자를 가져가는 부자 나라들의 군대에 돈을 주는 것은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현재 미국과 진행하고 있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어떤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미는 내년부터 적용될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해 지난 3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19~20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7차 회의까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는 다음달 중순 한국에서 열릴 제8차 회의를 앞두고 있지만 방위비 규모를 비롯한 핵심 사안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과 미국 간의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반도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의 주둔경비 중 SMA 협정에 따라 한국이 일부 부담하는 부분이다. SMA 협정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SOFA) 제5조에 대한 특별조치를 위한 한·미 간 협정이다. SOFA 제5조는 1항에서 미측은 한측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경비를 부담하도록 했고, 2항에서 한측은 미측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시설과 구역을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한국이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면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 경비를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재정 적자 누적 및 동맹국의 경제 성장으로 인해 미국은 미군 해외 주둔 비용 분담을 동맹국에 요청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일본은 1987년부터 협정을 체결했고 한국은 1991년 이후 2~5년 단위로 SMA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1991년 최초 1억 5000만달러 수준이었던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2018년 현재 9602억원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직·간접 지원을 통해 약 3조 4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2015년 기준 현황을 조사한 결과 방위비 분담금은 9320억원이었지만, 주변도로사업 등 기지주변정비비 1조 4542억원을 비롯해 무상공여토지 임대료 평가 기회비용 7105억원 등 총 3조 3869억원을 직·간접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국방예산을 통한 기지이전특별협정(YRP·LPP) 지원비용 7169억원과 국방예산 외 반환공여구역 토지매입비용 1조 3442억원 등 총 2조 695억원도 한시적으로 추가 지원된 상황이다. 이처럼 천문학적 수준의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지원하고 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비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전개되는 전략자산 비용 일부를 요구하는 차원을 넘어 주한미군의 상시 준비태세를 위한 연합훈련비용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측 주도 연합훈련 참가시 한국군이 자국군 비용 부담 원칙에 따라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해볼 때 부당한 측면이 있다.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미 하와이에서 열린 대규모 연합훈련인 ‘환태평양(RIMPAC·림팩)훈련’에 참가했던 한국 해군은 자체 비용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당시 7600t급 이지스구축함(DDG) 율곡이이함, 4400t급 구축함(DDHⅡ) 대조영함, 1200t급 잠수함(SSⅠ) 박위함, P3 해상초계기 1대, 해상작전헬기(Lynx) 2대, 특수전전단(UDT/SEAL) 2개 팀과 해병대 1개 소대를 포함한 장병 710여 명이 훈련에 참가했다. 한국으로부터 7000여㎞ 떨어진 곳에서 열린 훈련에 참가한 해군은 자체 준비태세 강화를 위해 연합훈련에 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 태평양공군사령부가 주관하는 다국적연합 공중전투훈련인 ‘레드 플래그 알래스카’에 참가한 공군 조종사·정비사·지원요원 등 140여 명과 F15K 전투기 6대, C130H 수송기 2대도 지난 27일 미 알래스카로 출발해 다음달 27일 복귀하기까지 자체 비용으로 훈련을 진행한다. 이들은 레드팀(방어), 블루팀(공격), 화이트팀(중립·통제)으로 나뉘어 연합작전 수행과 항공차단, 방어제공, 공중비상대기 항공차단, 공중엄호 등 공중전투 기술을 익히게 된다. 2001년부터 이 훈련에 참가한 공군은 2007년까지 수송기만 참가하다 2008년 미 현지에서 인수한 F15K가 네바다의 넬리스 공군기지에서 열린 ‘레드플래그 넬리스’ 훈련에 참가한 후 전투기도 참가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 한·미 연합으로 실시되는 ‘맥스선더훈련’도 여기에서 비롯된 훈련이다. 2013년에는 F15K가 8000㎞가 넘는 태평양을 횡단해 연합훈련에 참가했다. 미 공중급유기의 6~7번 공중급유를 받은 공군은 그 비용을 미군에 지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4년에는 KF16D 전투기와 C130H 수송기, 2015년엔 KF16D, 2016년엔 F15K와 C130 수송기, 지난해에는 KF16 전투기와 C130가 각각 참가할 때마다 자국군 비용 부담 원칙은 유지됐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 행정부로부터 한·미연합훈련 비용 부담 요구를 받게 된 것은 전임 정부 시절부터 대북 방위태세 강화를 목적으로 한국 정부가 연합훈련 증가를 요구해왔던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올해 말 대규모 한·미 연합 공군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가 열릴 경우 연합훈련 비용 부담에 대한 미측의 요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다음달부터 이어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비롯해 2차 북·미 정상회담 논의 등 한반도 평화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방위비 협상팀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는 이유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경남 김해지역 가장 오래된 최초 읍지(邑誌) 발굴

    경남 김해지역 가장 오래된 최초 읍지(邑誌) 발굴

    경남 김해지역의 가장 오래된 읍지(邑誌)가 발굴됐다. 김해시는 20일 시 문화재과 시사편찬연구팀이 ‘김해시사’ 편찬을 위해 관내 마을 기초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진영읍 신용리 한 주민이 보관하고 있던 읍지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를 발굴해 기증을 받았다고 밝혔다.분성은 김해의 옛 이름이다. 시에 따르면 분성여지승람신증초는 김해지역 읍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최초의 읍지로, 편찬 시기는 18세기 전반기인 1730년대 중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이 읍지가 발굴되기 전까지 확인된 김해에서 가장 오래된 읍지는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김해진김해도호부’(1775년)이고 다음으로 ‘김해부읍지’(1786년)가 있다. 분성여지승람신증초는 각촌 항목에서 주촌, 상동, 진례, 생림, 활천, 칠산 등 동리별로 위치, 인구, 토지 결수를 구분해 상세히 기록했다. 끝 부분에 김해 전체 인구와 결수를 표기했다.18세기 이후 편찬된 읍지에서는 분성여지승람신증초와 같은 표기 방식이 사라지고 김해 전체 인구와 호수, 토지 결수만 간략히 기재했다. 동리별로 상세하게 표기한 방식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읍지로 알려진 1587년(선조20년)에 편찬된 함안의 ‘함주지’와 비슷하다. 시는 따라서 분성여지승람신증초 최초 판본 편찬 시기는 ‘함주지’가 편찬된 16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시에 따르면 분성여지승람신증초는 몇 차례 증보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해도호부사 안몽윤이 쓴 ‘임관선생안’ 서문 작성 연도인 1630년(인조 8년) 무렵에 첫 신증(新增)이 이뤄졌다. 이 책 발문에는 1699년(숙종 25년) 조정의 명령을 받은 김해 사람 송수(宋洙), 노문필(盧文弼), 조구령(曺九齡) 등이 1700년(숙종 26년)에 증보하였다는 서지(書誌) 사항이 기록돼 있다. 이후 김해부사 한형(韓珩) 재직 시기(1733년 9월~1736년 7월, 영조 9년~12년)에 한 차례 더 증보됐다.시는 분성여지승람신증초에는 김해의 연혁과 성씨, 인물, 고적, 풍속, 효행, 산천, 토산물 등 김해의 박물학적 내용이 모두 기록돼 있어 조선중기 김해 지역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 된다고 밝혔다. 시는 이 책을 토대로 이후 김해읍지가 계속 추가 보완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가장 오래된 김해읍지인 분성여지승람(신증초)은 18세기 후반 ‘김해읍지’부터 1929년에 마지막 편찬된 ‘김해읍지’의 모본(母本) 역할을 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시는 분성여지승람신증초 관련 연구를 보완해 사료 가치를 엄격하고 세밀하게 고증한 뒤 앞으로 김해시사 편찬에 기초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세상에 우주를 보여준 ‘망원경 성자’ 존 돕슨 이야기

    [이광식의 천문학+] 세상에 우주를 보여준 ‘망원경 성자’ 존 돕슨 이야기

    “이리 와서 망원경으로 토성 고리를 한번 보세요.” “목성 줄무늬와 4대 위성 한번 보실래요?” 밤의 길거리 한 모퉁이에서 이런 말로 호객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이 입성은 허름하고 흰머리를 뒤통수에다 질끈 맨 노인이 그런다면? 그 옆에 서 있는 사람 키만한 망원경 역시 주인을 닮아선지 값싼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지고 긁힌 자국이 뒤덮고 있어 영 볼품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여주겠다는 유혹을 쉽게 뿌리치기 어렵다. 하나 둘 망원경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토성 고리와 목성 줄무늬를 보며 감탄하는 사람의 귀에 노인은 우주에 관한 지식을 열심히 속삭인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 거리와 국립공원들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우주를 보여주고 있는 이 노인이 바로 돕슨식 망원경의 발명자 존 돕슨이다. 그는 평생을 자신이 디자인한 돕슨식 망원경 한 대를 가지고 떠돌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우주를 보여주는 일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았다. ​ 돕소니언이라고 불리는 이 망원경은 아이작 뉴턴이 발명한 반사 망원경을 더욱 단순한 설계방식으로 개량한 것으로, 경통 아래쪽에는 별빛을 모으는 오목거울이 앉아 있고, 위쪽에는 그 빛을 측면의 접안렌즈로 보내는 작은 평면거울이 비스듬히 달려 있다. 이 망원경의 장점은 아주 값싸고 쉽게 만들 수 있어 일반 소형 반사 망원경을 살 돈이면 대형 돕슨식 망원경을 만들거나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존 돕슨은 이 망원경을 특허등록하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만들어 우주를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망원경에 관한 그의 소신은 “많은 사람이 보는 망원경이 가장 좋은 망원경이다”라고 일찍이 밝힌 바 있었다. 값싸고 기동성이 있는 이 망원경의 등장은 천체관측을 돕소니언 이전과 이후를 가를 만큼 획기적이었다. 이 디자인은 합판, 호마이카, PVC 옷장 플랜지, 골판지 건축 튜브, 재활용 현창 유리, 카펫과 같은 일반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뉴턴식 망원경이다. 이 유형의 단순한 경위대 마운트는 일반적으로 아마추어 천문계에서 ‘돕소니언 마운트’라고도 한다. 이로써 전에 없는 대구경 망원경이 출현하게 되어 천체관측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돕소니언은 제작과 조작의 단순함으로 인해 오늘날 특히 아마추어 천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디자인이다.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은 박물관의 관측대에서 다른 태양 망원경과 함께 돕소니언 망원경을 사용한다. 존 돕슨, 어떤 사람인가? 돕슨은 원래 수도승 출신이었다. 이 유니크한 인물의 생애를 간략히 더터보면, 그는 1915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베이징 대학을 설립했고, 어머니는 음악가였으며, 아버지는 동물학 교수였다. 돕슨과 그의 부모님은 1927년에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 돕슨은 대학 연구실에서 근무한 1943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에서 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돕슨은 우주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점차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돕슨에게 하나의 전기가 찾아왔다. 1944년 그는 힌두교의 한 교파인 베단탄 스와미(Vedantan swami) 강연에 참석했다. 돕슨은 “내가 본 적이 없는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회고했다. 같은 해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베단타 공동체 수도원에 합류하여 청빈서약을 하고 라마크리슈나 수도회의 스님이 되었다. “수도원에서 돕슨의 책임 중 하나는 천문학과 베단타 철학을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직분은 그에게 망원경 제작에 눈을 돌리게 했다. 그는 망원경에 바퀴를 달아 수도원 바깥으로 끌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망원경 제작과 수도 생활을 병행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고, 1967년 그는 23년간 몸담았던 수도회를 떠나게 되었다. 수도회를 떠난 돕슨은 이듬해인 1968년 브루스 샘스, 제프리 롤로프와 함께 천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조직 ‘샌프란시스코 길거리 천문학회(San Francisco Sidewalk Astronomers)’를 창립했다. 그리고 망원경 제작과 천문학 대중화, 우주론 강연 여행으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의 강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87년 7월 25일 미국 버몬트주 스프링필드 부근 산꼭대기에서 한 것이 전설로 남아 있다. 그 산 정상은 스텔라파네(별들의 성지)라는 이름의 관측지로서, 쟁쟁한 아마추어 망원경 제작자, 별지기들이 모인 가운데 돕슨은 이렇게 우주와 인간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저는 망원경의 크기가 얼마이고, 광학장비가 얼마나 정교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이 광대한 세계에서 여러분보다 혜택을 덜 누리는 사람들이 함께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입니다. 저를 줄곧 앞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유일한 신념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같은 존 돕슨의 철학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망원경을 내놓고 사람들에게 우주를 보여주는 별지기들이 적지 않다. 서울 청계천 같은 곳에서도 가끔 그런 별지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들에게 존 돕슨은 영원한 사표이다. 존 돕슨의 삶과 아이디어는 2005년 다큐멘터리 ‘길거리 천문학자(A Walkway Astronomer)’로 제작되었다. 그는 PBS 시리즈 ‘천문학자들(The Astronomers)'에도 출연했으며,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도 두 차례 출연했다. ​2004년 크레이터 레이크 연구소(The Crater Lake Institute)는 돕슨에게 천문학의 대중화에 대한 업적을 기려 그해의 공로상을 수여했다. 또한 2005년 스미소니언 연감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35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2014년 1월 15일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있는 성요셉병원에서 영면. 향년 98세였다.​ 사람들에게 우주를 보여주고자 하는 열정으로 평생을 떠돈 '망원경 성자' 존 돕슨은 한마디로 '사람들이 우주를 많이 볼수록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었던 낭만주의자'였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사상 초유의 아프리카 코끼리 ‘부부교환’ 작전 개시…日동물원 임신·번식 위해

    사상 초유의 아프리카 코끼리 ‘부부교환’ 작전 개시…日동물원 임신·번식 위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번식을 위해 일본의 동북지역 3개 동물원이 사상 초유의 ‘부부 교환’을 시도한다.요미우리신문은 16일 미야기현, 아키타현, 이와테현 등 동북지역 3개 현의 동물원들이 이달 하순부터 아프리카 코끼리 암수 짝짓기를 유도해 번식을 꾀하는 합동 짝짓기 작전에 나선다고 전했다. 워싱턴 조약에 따라 국제 거래가 엄격히 제한돼 있는 아프리카 코끼리는 일본에서 2014년 이후 번식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일본동물원수족관협회에 따르면 아프리카 코끼리는 1986년 일본에 80마리가 살았지만, 지난해에는 절반도 안되는 34마리에 그치고 있다. 워싱턴 조약에 따라 동물원 등의 전시 목적으로 야생 코끼리를 수입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일본내 번식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아프리카 코끼리 공동 번식에 참여하는 곳은 미야기현 센다이시 야기야마 동물공원, 아키타현 아키타시 오모리야마 동물원,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동물공원 등 3곳이다. 야기야마와 오모리야마는 암컷·수컷 각각 29세, 모리오카는 수컷 28세·암컷 16세로 모두 번식에는 적합한 연령이다. 그러나 야기야마에서는 암수가 번식을 위한 교미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며 오모리야마와 모리오카에서 교미는 했지만 임신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일본동물원수족관협회는 같은 커플이 너무 오래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에게 별다른 매력을 못 느끼는 탓이 큰 것으로 보고, ‘체인징 파트너’를 시도하기로 했다. 3개 동물원이 같은 동북지역 내여서 이송에 따른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란 점이 우선 고려됐다. 이에 따라 각각 암컷인 오모리야마의 ‘하나코’과 야기야마의 ‘릴리’를 상대방 동물원에 보내기로 했다. 모리오카의 암컷 ‘마오’도 성과를 보아가며 커플 교환에 합류시킬 계획이다. 그동안 아프리카 코끼리의 번식을 위한 동물원간 교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암수 맞교환은 아니었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찾아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통상 코끼리는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우리에서 안보이게 되면 해당 동물원으로서는 입장객의 감소가 불가피했다. 협회 관계자는 “이번에는 암수 양쪽을 서로 맞바꾸기 때문에 그런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육상 최대의 동물로 아프리카 사바나에 주로 살며, 평균수명은 60세 전후다. 초산은 30세 이전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 따르면 야생 아프리카 코끼리는 상아를 노린 밀렵 등으로 1987년 약 74만마리에서 2016년 약 42만마리로, 약 30년 새 43%나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사설] 비상상고 권고 형제복지원 사건, 이번엔 바로잡히길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될 전망이다. 대검 검찰개혁위원회는 어제 형제복지원 사건을 대법원에 비상상고하라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했다. 비상상고는 형사사건 확정판결에 법령 위반이 발견되면 이를 바로잡아 달라고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비상 절차다. 비상상고가 받아들여지면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법원 확정판결 20여년 만에 진상 규명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박인근(2016년 사망) 당시 원장 등이 정부 비호 아래 시민 3만 7000여명을 가둬놓고 폭행과 가혹행위, 강제노역, 성폭행 등 온갖 학대를 일삼았던 사건이다. 500여명이 숨졌고 일부 시신은 유족 동의 없이 의대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 나갔다. 생존자들은 그 충격으로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의 주범인 박 원장은 살인과 가혹행위 등에 대해선 재판조차 받지 않았고, 국고지원금 횡령죄로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이후 복지원을 건설사에 팔아 수백억원의 시세차익까지 챙겼다. 이처럼 야만적인 사건이 가능했던 것은 수사 외압과 부실 수사, 행정기관의 방조 탓이다. 1987년 수사 검사가 사건 축소 지시를 받은 정황과 부산시가 복지원에 각종 특혜를 준 사실도 밝혀졌다. 국가의 전방위적인 비호 속에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범죄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대법원은 이제라도 과거에 놓친 수많은 증거와 재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정치권도 피해자들이 명예회복을 하고 그간의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계류 중인 형제복지원특별법 통과에 각별히 신경써 주길 바란다. 그게 진상 규명을 외면해 온 과오에 대해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길이다.
  • 잊힌 국가 범죄 ‘형제복지원 사건’, 30년 만에 진실 바로잡힐까

    잊힌 국가 범죄 ‘형제복지원 사건’, 30년 만에 진실 바로잡힐까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발생한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이 약 30년 만에 다시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라고 13일 권고했다. 비상상고란 형사사건 확정판결에 법령 위반이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며 대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비상 절차다. 피해 생존자들은 검찰개혁위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이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정부가 시민들을 사회복지시설인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연행하고, 복지원이 시민들을 감금해 국가의 방조 아래 강제노역·구타·학대·성폭력·살인 등 인권 유린을 자행한 사건이다.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인원만 최소 3164명이었고, 12년 동안 확인된 사망자 숫자만 최소 551명이다. 1980년 삼청교육 과정에서 사망한 54명의 열 배에 가까운 숫자다. 검찰개혁위는 이날 “위헌·위법인 ‘내무부 훈령 410호’를 적용해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등 원생들에 대한 특수감금 행위를 형법상 정당행위로 보고 무죄로 판단한 당시(1989년) 판결은 형사소송법이 비상상고의 대상으로 규정한 ‘법령위반의 심판’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권고 사유를 밝혔다. 검찰개혁위가 언급한 ‘내무부 훈령 410호’란 1975년 12월 15일에 발령된 훈령으로, 이름은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사회정화 작업’의 일환으로 적용된 이 훈령은 ‘일정한 정주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터미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사람’을 ‘부랑인’으로 따로 규정했지만, 사실상 모든 시민이 정부의 단속 대상이 됐다. 형제복지원의 원장이었던 박인근씨는 특수감금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1987년 6월 1심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6억 8178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89년 징역 2년 6개월형이 최종 확정됐다. 당시 대법원은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개혁위는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결과 검찰권 남용과 그로 인한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지면 검찰총장이 직접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해야한다”고도 권고했다.1987년 1월 박씨를 구속했던 당시 김용원 검사(현재 변호사)는 검찰 지휘부가 이 사건을 축소·은폐시켰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부산지검 울산지청(지금의 울산지검)에서 근무하던 1986년 12월 21일 지인과 경남 울주군 삼정리에 있는 야산(울주 작업장)을 지나가다가 허름한 옷을 입은 청년들이 괭이와 삽을 들고 땅을 파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 주위를 몸집이 큰 개들과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했던 김 변호사는 내사에 착수했고, 형제복지원 원생 180여명이 박씨 소유의 야산에 감금된 채 임금 없이 하루에 10시간 이상 강제 노역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원생들로부터 형제복지원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울주 작업장에서 강제 노역한 원생들뿐만 아니라 부산 형제복지원 안에 수용된 원생들도 모두 조사하기 위해 부산지검 차장검사에게 승인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뭘 수사를 해. 당장 철수시켜”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또 “울주군 작업장에서 맞아 죽은 원생의 사망 원인을 신부전증이라고 허위로 기재한 형제복지원 의사를 구속하려고 했지만, 검찰총장 동생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당시 부산지검장에게 청탁해 불구속 수사 지휘가 떨어졌다”고 김 변호사는 밝혔다. 문 총장이 검찰개혁위의 권고에 따라 비상상고를 청구하면 형제복지원 사건 재판이 열렸던 1987년 이후로는 31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이 나온 때로부터는 29년 만에 대법원의 사건 심리가 다시 이뤄지는 셈이다. 검찰개혁위의 비상상고 권고 소식이 전해지자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은 성명을 통해 “사람이 죄도 짓지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막 사람을 구금해도 되느냐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좋은 사람 얼굴로 우리들에게 ‘부랑인’이라 낙인찍던 사람들의 배제를 처절하게 겪어왔다”면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형제복지원에서 인권 유린을 당한 사실에 그 어떤 진상규명과 사과도 받지 못하고 풀려났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비상상고를 법원으로 제출하여 잘못 잡힌 과거를 바로 잡아가주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내년 20돌 문화재청… 문화재 안전·보존·활용에 초점”

    “내년 20돌 문화재청… 문화재 안전·보존·활용에 초점”

    화재 대비 점검·CCTV 교체 진행 중 세계에 자랑할 유물의 콘텐츠화 노력 평양 고구려 고분 발굴 등 교류 계획“1999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승격한 문화재청이 내년이면 20돌을 맞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선입견이나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 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기자 정신을 지닌 만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이 원하는 것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직 언론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문화재 행정을 지휘하게 된 정재숙(57) 문화재청장이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포부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땅속에서 매장된 유물을 찾는 작업은 사실 바로 효과가 나는 일은 아니다”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문화재청이 ‘성년’이 되는 만큼 새로운 각오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이날 향후 문화재청 운영 방향을 설명하며 안전, 보존, 활용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내세웠다. 정 청장은 “숭례문, 브라질국립박물관 화재에서 보듯 문화재는 한 번 망가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인류의 얼”이라면서 “브라질국립박물관 사건 이후 화재에 취약한 국내 문화재 점검 및 정비를 시행했고, 화질이 떨어지는 문화재 관련 폐쇄회로(CC)TV를 200만 화소로 교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청장은 1987년 평화신문을 시작으로 서울경제신문, 한겨레신문, 중앙일보에서 30여년간 문화재와 미술 등 문화 전반에 대해 취재해 왔다. 그는 기자로 활동했을 당시 아쉬웠던 점을 청장 재임 기간 동안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아울러 “죽은 목숨이 아닌 사람의 얼굴을 한 유물”을 강조하며 문화재 활용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재 안내판 정비가 상징하듯 모든 유물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보겠다”면서 “유물 발굴 현장이나 복원 작업장에 투명 유리를 설치해 시민들이 그 과정까지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께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부부를 창덕궁으로 초청했던 것처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유물의 콘텐츠화에 애쓰겠다”고 덧붙였다. 남북 문화재 교류와 관련해서는 “평양 고구려 고분의 남북 공동 발굴, 3·1 운동 100주년 남북 공동 유적 조사, DMZ 태봉국 철원성(철원 궁예도성) 발굴 조사 등을 북측과 협의해서 추진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청장은 또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과 감수에 참여한 문화재 위원은 양심에 따라 다음 행동을 하길 바란다”며 날선 발언도 쏟아냈다. 이는 박근혜 정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3명의 문화재 위원에 대해 사실상 사퇴를 종용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2) 위기탈출 선봉에 나선 현대기아차 CEO들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2) 위기탈출 선봉에 나선 현대기아차 CEO들

    양웅철-권문식 부회장, 기술개발 ‘쌍두마차’김용환 부회장, 정몽구 회장 ‘그림자 보좌’박한우 기아차 사장, 부회장 없는 대표맡아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글로벌 판매실적이 725만대에 그쳤다. 이는 2013년의 755만대에 미치지 못하고 2011년 712만대를 조금 넘겨 6년 전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어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위기상황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신차 출시지연으로 인한 미국시장의 부진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등의 영향으로 인한 중국시장의 부진이 뼈아팠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불황도 한몫했다. 현대차그룹은 도요타, GM, 폭스바겐, 르노·닛산에 이어 글로벌 완성차 가운데 5번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올해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 반등의 기회를 맞지 못하면 ‘글로벌 메이커 빅3’의 꿈은 영원히 좌절될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의 운명은 전문경영인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윤여철(66) 현대기아차 부회장은 서울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자동차 판매영업 직원 출신인 윤 부회장은 운영지원실장, 경영지원본부장, 노무관리지원담당, 울산공장장 등을 거쳐 현대차와 기아차의 노무관리와 국내생산 부문을 총괄하는 부회장에 올랐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라는 전례없는 노사협상을 이끈 장본인으로 그룹내 최고의 노무관리 전문가로 불린다. 또한 윤 부회장은 그룹을 대표해 대외 활동을 하는 등 선임 부회장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양웅철(64) 현대기아차 부회장은 광주고-서울대 기계설계학-미 텍사스대 기계설비학 석사-미 UC 데이비스대 기계설계학 박사학위를 딴 ‘학구형’이다.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 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1987년부터 미국 포드자동차 연구·개발(R&D)센터에 근무하다, 2004년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로 합류했다. 하이브리드카 개발실장, 전자개발센터장 등을 맡았고, 연구개발본부 본부장, 사장 등을 거쳐 2011년 4월 현대차 연구개발총괄본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양 부회장은 그동안 현대기아차의 친환경차와 전장기술 개발에 주도적이 역할을 해왔다. 친환경차 시장 본격 진입을 위한 초기 하이브리드카 개발부터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전기차에 이르기까지 현대기아차의 친환경차 포트폴리오 확장에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했다. 최근에는 자율주행, 인공지능 등으로 대표되는 스마트카 부문에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한 기술 협력 등에 있어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권문식(64) 현대기아차 부회장은 경복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왔다. 독일 아헨공대 생산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양 부회장이 ‘미국파’라면 권 부회장은 ‘독일파’인 셈이다. 1991년 현대정공에 입사한 권 부회장은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에서 선행개발실장, 선행개발센터장,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치며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현대제철 제철사업관리본부장과 제철사업총괄 사장에 올라 현대차그룹의 숙원 사업이었던 일관제철소 건설을 진두 지휘했다. 이후 자동차 전장부품 계열사 케피코 대표,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맡은 신생 계열사 현대오트론을 맡았다. 2012년 현대기아차로 복귀해 연구개발본부장 사장을 맡았고, 2015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공학부문 최고 영예인 공학한림원 정회원이자, 2016년부터 제29대 한국자동차공학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용환(62) 현대기아차 부회장은 인창고, 동국대 무역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유럽사무소장 등을 거쳐 2003년에는 기아차 해외영업본부장을 맡았다. 2008년에는 현대차로 복귀해 해외영업본부 사장, 기획조정실 사장을 지낸 후 2010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 부회장은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기획조정실을 맡아 현대건설 인수, 신사옥 건립 등 그룹의 굵직한 주요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특히 2010년 현대건설을 놓고 현대그룹과의 인수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가장 큰 공적 중 하나로 회자된다. 정몽구 회장의 해외 출장이나 중요 행사 때는 대부분 수행하는 등 정회장의 신임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회장 아래 ‘실세라인’으로 알려진 현대정공 출신이 아닌데도 능력을 인정받아 최고경영진 반열까지 올랐다. 이원희(58) 현대자동차 사장은 대광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웨스턴일리노이대 회계학 석사 출신이다. 현대차 재정팀장, 국제금융팀장, 미국판매법인 재경담당 상무, 재경본부장 전무, 부사장, 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재무통’으로 통한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재무담당으로 일하면서 공격적 마케팅으로 실적을 개선해 미국 금융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10년 재경본부장을 맡은 이후에는 현대차가 글로벌 완성차 회사로 입지를 다지고 재무건전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진일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현대차는 2010년부터 5년 여간 10% 안팎의 높은 영업이익율을 기록하고 글로벌 신용등급이 상향되는 등 높은 외형성장을 달성했다. 박한우(60) 기아차 사장도 현대차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관리 분야 전문가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부회장이 없는 기아차 대표를 맡고 있다. 중앙상고와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현대차 인도법인에서 재경담당으로 이사, 상무, 전무를 거친후 법인장(부사장)까지 역임했다. 법인장 시절 i10, i20 등 현지전략 차종들을 성공적으로 히트시키며 인도시장에서 현대차가 2위 업체로 입지를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2년 기아차 재경본부장(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2014년에는 기아차 사장으로 승진했다.   피터 슈라이어(65) 사장은 현대기아차의 디자인 변천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슈라이어 사장은 독일 뮌헨의 산업디자인 전문학교와 영국 런던의 왕립예술학교에서 자동차디자인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아우디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근무하며 TT, A6 등 아우디 디자인의 변혁을 주도했으며, 2002년부터 2006년까지는 폭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근무했다. 2006년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되며 현대기아차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피터 슈라이어의 영입에 각별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BMW의 크리스 뱅글, 아우디의 월터 드 실바와 함께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에 꼽힌다. 그는 기아차의 디자인 방향성을 ‘직선의 간결함’으로 제시하고, 호랑이 코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로 상징되는 패밀리룩을 정립시켰다. 이러한 디자인 혁신을 바탕으로 기아차는 2008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0년 출시된 K5는 현재까지도 슈라이어 사장이 탄생시킨 역대급 명작으로 남아 있다. 슈라이어 사장은 최근 제네시스 브랜드의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알버트 비어만(61) 사장은 현대기아차의 차량성능 시험과 고성능차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독일 출신인 비어만 사장은 독일 아헨공대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전공했다. 1983년 BMW에 입사해 고성능차 주행성능, 서스펜션, 구동, 공조시스템 등의 개발을 담당했으며, BMW M 연구소장직을 맡아 고성능차 개발을 총괄했다. BMW의 모터스포츠 참가 차량 개발 주역으로, 30여년간 고성능차 개발에 매진해온 세계 최고의 전문가다. 2015년 현대기아차에 부사장으로 영입된 비어만 사장은 남양연구소에서 출시전 차량의 안전성, 내구성, 소음진동 등 성능시험과 함께 현대차 N으로 대표되는 고성능차의 개발 총괄을 담당해오고 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박보영 전 대법관, ‘아름다운 인생 3막’으로 여수 부임

    박보영 전 대법관, ‘아름다운 인생 3막’으로 여수 부임

    박보영(57·사법연수원 16기) 전 대법관이 ‘시골판사’로 법관 생활을 이어간다. 박 전 대법관은 소송액 3000만원 이하 사건을 다루는 시·군 법원 판사로 직을 수행한다. 대법관 등 최고위급 판사 출신이 시·군 법원 판사로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29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다음 달 1일자로 박 전 대법관을 원로법관에 임명하고,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의 1심 소액사건 전담 판사로 전보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이 전남 순천 출신인 점을 고려해 근접한 여수시법원으로 전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1월 2일 퇴임한 박 전 대법관은 변호사 개업 대신 사법연수원과 한양대에서 사법연수원생과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지난 6월 재판업무 복귀를 희망하며 법원행정처에 법관 지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법관은 “봉사하는 자세로 여수시법원 판사의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겠다”는 짧은 소감을 대법원에 전했다. 여성 대법관인 박 전 대법관은 1987년 법관으로 임용돼 17년간 재직하면서 서울가정법원 배석판사, 단독판사, 부장판사를 거쳤다. 2004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가사 분쟁에 힘을 쏟아 국내에서 손꼽히는 가사사건 전문가로 평가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기고] 횡성댐 규제 완화 바란다/한규호 강원 횡성군수

    [기고] 횡성댐 규제 완화 바란다/한규호 강원 횡성군수

    농촌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도시를 꿈꾸는 강원 횡성군이 각종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횡성군 전체면적의 30%에 해당하는 287㎢가 규제 구역이다.현재 원주시 지방상수도 상수원보호구역에 39개리, 광역상수도 보호구역에 22개리 등 횡성지역 대부분이 2~3중 규제로 묶여 있는 실정이다. 중심지인 횡성읍까지 규제지역에 포함돼 주민들이 해제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특히 횡성읍 묵계리 군부대 이전부지에 대한 해제가 시급하다. 군 예산 300억원을 들여 부대이전을 끝내고, 일대 1142㎢를 청정녹색산업단지로 개발할 계획이지만 상수원보호구역에 묶여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횡성군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난 30년 동안 도시개발에 제약을 받아 오며 주민 재산권 행사에도 제동이 걸렸다. 횡성댐은 인접한 원주 시민의 식수 공급을 위해 2000년 11월에 건설됐다. 원주광역상수도 공급이 목적이었다. 이후 원주지역 상수도 공급이 가능해졌다. 횡성댐 건설로 갑천면의 아름다운 5개 마을과 문전옥답이 수몰되었고, 대대로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253가구, 938명의 주민들은 실향과 이산의 아픔까지 겪었다. 하지만 횡성군민들은 댐 하류 지역의 원주상수원보호구역이 곧 해제될 것으로 믿고 감내해 왔다. 1987년 12월 원주취수장이 생기면서부터 묶인 원주상수원보호구역 해제에 대한 희망으로 댐 건설을 반겼다. 그러나 댐이 만들어진 지 20년 가까이 상수원보호구역 규제는 풀리지 않고 주민들의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원주시가 횡성댐 외에 당초 댐 하류에 있던 취수장도 계속 사용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횡성군은 강원도와 원주시, 한국수자원공사와 함께 2013년부터 실무적 논의를 계속해 오며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경제성과 현 정책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됐다. 군민들은 ‘국가 정책은 국민의 편익과 지역의 발전, 나아가 국가의 발전을 목적으로 수립된다’고 믿고 있다. 정부가 권장하는 규제개혁의 취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삶을 지키겠다’는 환경부의 슬로건처럼 환경부와 장관님께서 횡성군민들의 애절한 삶에 귀 기울여 규제를 해제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
  • [인터뷰 플러스] “전관예우 관례 깨는 등 법조인 스스로 자정 노력해야”

    [인터뷰 플러스] “전관예우 관례 깨는 등 법조인 스스로 자정 노력해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중심으로 한 사법개혁이 사회의 중심이 된 요즘 연수원 동기 황동욱 변호사(한양대 88학번)와 후배인 김병길, 공성록 변호사(한양대 90학번) 등 4명이 일산의 고양지원 앞에서 새로운 운영방식으로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변호사들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 사법시험 과락에 해당한다는 일침도 가하고, 사법개혁을 넘어 군사법원의 개혁도 힘주어 말하는 원용선 대표 변호사를 만나 사법개혁에 대한 담론과 그의 법 사랑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인터뷰는 지난 8월 8일 고양지원 앞 고양합동법률사무소에서 이루어졌다. 편집자 주→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사법개혁이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데 변호사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사법부 승진제도가 문제의 본질입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면 차관급인데, 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에 관한 권한을 매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전체 사법부를 장악하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상고법원을 신설하려는 의도도 그렇습니다. 누가 임명합니까.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을 하지만 상고법원의 법관은 대법원장이 모두 임명하는 거죠. 이 막강한 인사권을 가지고 사법부 전체를 장악하려고 한 것이 양승태의 저의가 아닌지 의심이 갑니다. 저는 박근혜 탄핵 시점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채웠다면, 양승태 임기 만료 후 차기 대법원장도 역시 박근혜가 임명했을 것이고, 대법원장의 임기가 6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개혁은 요원해졌을 것이에요. 더구나 최근 드러나고 있는 양승태의 사법농단 사태는 전혀 문제조차 되지 않고 그대로 덮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요. 최근 김선수 대법관이 임명되었는데, 이 분이 대법관이 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겠죠. 촛불혁명이 사법부에게 매우 소중한 개혁의 기회를 국민이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는 승진과 무관하게 재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사실에 의하면, 대법원 행정처 또는 대법관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에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어요. 폐기하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문건에서 드러나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이는 법질서를 문란케 함은 물론, 헌정사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에요. 법조인들 스스로 자정 노력도 해야 합니다. 전관예우의 관례를 깨는 노력들이 보다 많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최근 박보영 대법관이 여수시 시·군판사를 지원한 것은 좋은 사례로, 대법관 퇴임 후 진로를 새로이 개척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또 법조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데, 그중에 법원의 조정센터 같은 곳이 그런 곳이라 봅니다. 법조인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 페이스북에 통진당 해산과 이석기 의원직 박탈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찌라시 수준의 헌재 결정문’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 그 이유는. -사법시험에는 과락 제도가 있어요. 다른 법 과목에서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더라도 한 과목에서 40점 미만의 점수를 받으면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없죠. 법조인으로서 자질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재 재판관들의 결정문을 사법시험에서 그대로 썼다면 그 답안은 반드시 과락인 것이죠. 사실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하는데 헌재 재판관들은 이를 무시했어요. 증거에 의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회합에 참석하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을 거명했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이고 그 방대한 양의 재판기록을 그 짧은 시간 내에 모두 검토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법원의 판결이나 헌재의 결정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야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입니다. 헌법이나 헌법재판소법 어디에도 헌재가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할 권한은 없어요. 의원 자격을 문제 삼으려면 그건 국회가 하면 되는 것인데 헌재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주어지지도 않은 권한을 행사한 것이죠. 정부의 국회의원 자격상실 청구는 법적 근거가 없어요. 정부의 청구를 그대로 인용한 헌재는 스스로 법치주의를 부정한 꼴이 된 거죠. 사법시험에서 헌재 결정문을 답안으로 받은 채점자는 무조건 과락에 해당하는 점수를 줄 것입니다.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죠. →현 문재인 정부가 사법개혁을 위해 무엇을 중시하고 실행하여야 하는지. -양승태 대법관 문제와 달리 저는 최근 기무사령부의 촛불혁명 당시 계엄령 준비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황에 군사법원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군사법원에는 고등군사법원과 보통군사법원이 있어요. 보통군사법원은 군단사령부 등에 설치되고 군사법원에는 ‘관할관’이 있습니다. 고등군사법원의 관할관은 국방부 장관이고, 보통군사법원의 관할관은 설치되는 부대의 사령관 등이죠. 관할관은 유기징역 등의 판결을 확인하는데, 이를 관할관의 ‘확인조치’라 하죠. 2016년 개정을 통하여 피고인이 작전, 교육 및 훈련 등 업무를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로 제한하고, 선고된 형의 3분의 1 미만 범위에서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였어요. 그러나 전시가 아닌 평시에, 계급이 지배하여 인권 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있고, 지휘관이 관할관이 되어 형을 마음대로 감경할 수 있도록 한 군사법원은 폐지되어야 마땅한 것이죠. 군사법원은 군판사와 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재판관으로서의 인격과 학식이 충분한 영관급 이상의 장교 중에서 관할관이 임명합니다. 법에 관하여 전문적 지식이 없는 장교가 재판관이 된다는 것이죠. 또한 군인들의 범죄라고 하여 일반법원과 구별되는 특별법원으로서의 군사법원에서 다룰 이유가 있습니까? 전시와 같이 특별한 상황에서 군인 범죄에 한하여 특별한 사법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군인이라고 하여 특별한 절차에 따라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봐요. 이에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군의 개혁과제 중에 군사법원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법은 보수적이다’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법학이란 학문은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개혁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만들어진 것, 즉 있는 것을 공부하고 가치관에 의해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죠. 법조인은 무엇인가를 개혁하고 변화를 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가 있어요. 저는 이를 넘어서야 한다고 봐요. 법조인들 스스로 국민을 우선시하는 가치관 정립이 중요하고 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시대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물론,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법을 제정하고 개정할 때 국민의 편에 서서 한다면 사법부나 법조인의 가치관 정립의 문제는 보다 수월해 지리라 봐요. →대학 시절 학생운동과 이후 노동운동에도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1987년 12월 대선 당시 KBS 점거 투쟁으로 집행유예 판결로 석방된 후 1988년도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했어요. 한양대학교에서요. 총무부장 일보다는 전대협 중앙정책위원 역할을 더 많이 했어요. 당시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생 전방 입소철폐 투쟁의 성공이에요. 한양대에서 시작한 전방 입소거부 운동이 전대협으로 확산되어 1988년에 대학생의 전방 입소교육이 완전 폐지됐어요.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는 당시 전대협 3기 임종석 총학생회장에게 학생회 사업을 인수인계하느라 학교에 남아 후배들을 지도하고 노동운동을 위한 준비 기간을 통해 동료들과 울산으로 내려갔죠. 동료 중에 지금은 의정부지방법원에 있는 박정길 부장판사가 있어요. 그 친구도 고생 많이 했는데 아마 판사가 아닌 변호사가 되었다면 지금도 함께 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울산에서 3년 있었어요. 제가 일했던 회사는 현대자동차 하청회사로 컨베이어에서 자동차 보닛에 고무 패킹을 삽입하는 노동을 했어요. 물론,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는데 당시에도 이러한 노동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으나 지금도 해결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어떤 연유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고양시로 옮긴 사법연수원 1기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양에 자리를 잡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1993년 복적 이후 저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법학은 현실 문제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학문이라는 면에서 현실을 잘 반영한다는 판단이 들었고 매력을 느껴서 고시 공부를 했어요. 초등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 하신 부친이 젊은 시절 사시 공부를 하셨기에 저에게는 제일가는 후원자가 되어 주셨어요. 당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이 이루길 바라는 순수한 부정(父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복적 후 결혼하고 1997년에는 첫째 딸도 출산했어요. 그리고 2001년에 사시 합격하고 2년간 연수원 생활을 위해 고양으로 바로 이사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고양은 저에게 제2의 고향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연수원 동기였던 황동욱 변호사(한양대 88학번)는 사법시험 준비를 할 때 스터디그룹 멤버였어요. 황 변호사의 제안에 따라 고양지원장을 역임한 강현 변호사사무실을 인수·인계받은 이곳에서 황 변호사와 법조인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던 첫 약속을 지금도 지키며 운영하고 있어요. 즉, 두 사람의 수임료 전체를 2분의 1로 분배합니다. 보통 사람은 실행하기 쉽지 않은 방식인데 황 변호사의 제안과 도움으로 지금도 우리 두 사람은 깨지지 않는 신뢰와 믿음으로 실천하고 있어요. 이후 우리와 결합한 김병길, 공성록 변호사(한양대 90학번)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변호사 사회에서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앞으로의 포부와 꿈이 있다면.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올 때는 사건이 끝까지 간 거죠.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분쟁 소지도 없고 재판을 청구할 이유가 없겠죠. 우리 법원이 아직은 합리적인 정황 증거보다 실체적 진실을 부합하지 않는 서증을 중심으로 판결이 이루어지기에 억울한 민원인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서증에 따른 사실보다는 여러 가지 정황증거에 따른 사실관계가 능히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서증에 따른 사실관계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기존의 관행에 맞고 상급법원에서 판결이 파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합리적인 정황증거에 의한 판결사례가 우리 법원에서도 더 늘어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그래야 이 사회에 억울한 사람이 적어질 것이고 법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국민의 법조인으로서, 이 시대에 맞는 법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작은 역할을 담당하고 천직으로 삼고 살고자 합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주요 프로필 1965 강원 횡성 출생 1984 원주 진광고등학교 졸업 1985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88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 및 서대협 중앙정책위원 1989 노동운동 1993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복직 1995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2001 제4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33기) 2004 고양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조정위원, 고양세무서 과세 전 적부심사위원, 일산동부경찰서·일산서부경찰서 상담위원 역임.
  • “성 불평등 해소”로 출발한 페미니즘…수세대 거치며 분화

    “성 불평등 해소”로 출발한 페미니즘…수세대 거치며 분화

    ‘남성과 동일한 권리’ 주장하던 1세대 노동·민주화운동하며 70년대 새 국면 80년대에 성차별·성폭력 등 철폐 외쳐 성폭력특별법·호주제 폐지 등 큰 성과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복 매장 여자 화장실 변기 위 천장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 여기서 유출된 비디오테이프가 동남아 섹스숍에서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백화점을 이용해 온 여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성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백화점은 공식사과했다. 어제의 몰카 범죄 뉴스가 아니다. 1997년 당시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자 화장실 천장 구멍에 설치된 3㎜ 크기의 특수렌즈를 통해 백화점 방재실 직원들이 화장실 안을 지켜봤다. 불법 촬영의 수법, 대상, 장소 등이 요즘 범죄와 판박이다. ●각자 피켓 들고 참여… 美 급진주의와 닮아 2018년 한국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은 2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반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다. 1997년 백화점 앞에서 성명을 발표한 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기존 여성단체였다. 올여름 혜화역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항의 시위’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 참가한 40대 김모씨는 “집회에 시민 단체나 정당의 깃발이 없어 어색했다”고 했다. 20대 초반 여성은 “여성 집회에 운동권 깃발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각자 만든 피켓과 붉은 드레스코드만이 동질성의 징표였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고 익숙한 구호 대신 온라인의 미러링(여성 혐오를 거울처럼 뒤집어 남성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 단어가 터져나왔다.20년간 못 봤던 여성들의 등장에 한국 사회는 놀라고 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고정된 조직도 없이 여성집회를 끌어 온 이들. 일각에서는 이들을 급진적 여성주의자(Radical Feminist)라 부른다. 1960년대 미국 급진주의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 미국, 유럽, 남미까지 전쟁,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19세기 제1세대 페미니즘이 참정권 획득과 같은 정치 제도 개선에 노력했다면 제2세대 페미니즘인 이들은 보다 일상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낙태 결정권, 포르노 반대 등을 이슈화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1968년에는 미스아메리카 반대 시위도 일어났다. 브래지어처럼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국 페이스북 사옥 앞 상의 탈의시위, 탈코르셋 유행, 1999년 시작된 한국에서의 안티미스코리아대회와 겹쳐지는 장면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의 변화는 페미니즘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인 차이와 평등을 함축한다. 페미니즘 역사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다. 1세대는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이성적 인간”이라며 평등의 언어를 내세웠다. 그러나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몸의 경험, 개인의 일로 치부됐던 성폭력, 가정폭력이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자매애는 강하다”는 유명한 구호도 등장했다. ●1987년 21개 단체 모여 ‘여성단체연합’ 결성 서구의 반권위주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였다. 탄압받던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과 뒤이은 민주화 운동 속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드러났고, 동일방직, YH무역 등 젊은 여성 노동자가 밀집된 제조업에서 노조 설립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운동은 성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여성 노동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여성운동은 1980년대 전면에 등장했다. 19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다. 이들은 ‘여성은 정치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깼다. 1983년 6월 여성평우회 창립을 계기로 여성의 전화, 또 하나의 문화, 교회여성운동단체 등이 여성 의제를 이끌었다. 결혼 퇴직, 임금 차별 등 노동현장의 성차별, 성폭력, 성매매 철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 부천서 성고문대책위 등을 함께한 21개 여성단체는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9년엔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가족법 개정을 추진한 지 약 50년 만이었다.●LGBT 등 소수자 주체… 영 페미니스트 나와 이전 30년간 여성계가 굵직한 제도 성과를 거뒀다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페미니즘의 주제들이 빛을 봤다. 성소수자(LGBT), 여성장애인, 이주여성 등 소수자 주체들이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운동에 두각을 나타낸 젊은 페미니스트인 ‘영(young) 페미니스트’ 도 등장했다. 이들은 몸, 섹슈얼리티, 환경 등 새로운 문제를 꺼내고 월경페스티벌 등 축제를 통해 일상 속 주제를 풀어냈다. 2015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0년간 페미니즘은 대중과 다소 멀어져 있었다. 이 단절을 끝낸 여성들은 20대 ‘영영(young young) 페미니스트’ 들이다.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베 등 여성 혐오를 학습한 남성들과 공존한 세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안전 문제에 눈을 떴다. 이전 세대보다 미러링에 익숙하고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급진·상호교차 등 그룹 다양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각에선 이들을 4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면서 “SNS를 기반으로 한 활동, 몰카나 여성 대상 범죄 등 안전 이슈에 적극 나선다는 차별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은 단일한 것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여러 세대가 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급진주의, 상호교차 페미니즘 등 여러 정신이 공존하며 다양한 그룹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들의 이합집산도 유동적이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이나 난민 혐오에 대해 기존 여성계는 반대 의사를 보이며 선을 그었지만 ‘몰카 편파 수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무죄 판결 비판에는 같은 목소리를 낸다. 영영 페미니스트도 단일한 집단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지난 18일 여성단체가 주최한 시위에 20대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영미권에서만 보던 다양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것이 페미니즘을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여름을 달군 페미니즘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의 몰카 범죄가 반복되듯 성차별은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여성들을 또 광장으로 소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죄 폐지, 불법 촬영 수사 등 현안도 뜨겁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지 광장으로 시선이 쏠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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