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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남 “바람 피워서 윤여정과 이혼, 후회…‘미나리’ 봤다”

    조영남 “바람 피워서 윤여정과 이혼, 후회…‘미나리’ 봤다”

    가수 조영남이 과거 결혼 생활을 했던 배우 윤여정에 대해 언급했다. 20일 오전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에는 조영남이 출연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날 조영남은 첫 번째 이혼이었던 윤여정과의 결별에 대한 물음에 “내가 뭐가 힘들었겠나”라며 “내가 바람 피워서 이혼을 한 거다”라고 얘기했다. 이어 “그때 내가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조영남은 “왜 아이들을 두고 바람을 피웠을까 이해가 안 간다”라며 “후회도 된다”고 털어놨다. 조영남은 두 번째 결혼에 대해서는 “두 번째는 동거 비슷하게 됐다”라며 “그 친구(두 번째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는데 나는 배 다른 아이를 가지기 싫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미국 가서 어학원 다니면 세계에서 젊은 청년들이 오니깐 거기서 하나 골라서 결혼하라고 했다”라며 “그렇게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후 조영남은 즉문즉답 코너에서 ‘나는 배우 윤여정이 나오는 영화나 TV프로그램은 챙겨본다’라는 질문이 나오자 긍정하며 “‘미나리’는 개봉 첫날 봤다”고 답하기도 했다. 조영남은 윤여정과 1974년 결혼, 1987년 이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국언론진흥재단 정봉근 신임 신문유통원장 취임

    한국언론진흥재단 정봉근 신임 신문유통원장 취임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표완수) 신문유통원장(임원급)에 정봉근 前 한국언론진흥재단 전문위원이 15일 취임했다. 정봉근 신임 신문유통원장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전신인 한국언론연구원에 입사했다. 이후 한국언론재단 출판팀장, 관리운영팀장, 조사분석팀장에 이어 한국언론진흥재단 광고국장, 미디어진흥실장, 미디어연구센터장으로 근무했다. 신임 신문유통원장은 공모를 거쳐 재단 이사회 추천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승인 후 임명되었으며, 임기는 임명일로부터 2년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민의힘 5선 서병수, 초선 당대표 도전 촉구 “젊은 세대 앞서가라”

    국민의힘 5선 서병수, 초선 당대표 도전 촉구 “젊은 세대 앞서가라”

    국민의힘 차기 당권 불출마를 선언한 서병수 의원은 15일 “(산업화 세대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 하면 젊은 세대들이 두 걸음 앞서가라”며 초선 의원들의 당권 도전을 촉구했다. 서 의원은 5선으로 국민의힘 최다선 중진이다. 차기 지도부의 세대교체 필요성을 강조하며 불출마했던 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4·7 보궐선거를 통해 1987년 체제가 역사적 사명을 다하였다고 믿는다”며 재차 당 중진들의 불출마 동참을 압박했다. 서 의원은 “솔직해져야 한다. 1987년 이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낡아빠진 패러다임에 갇혀 권력을 나눠왔던 정치인들은 공정, 생태, AI와 같은 가치들을 시대정신으로 이끌기에는 힘이 달린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말 잘 듣고 줄 잘 서는 순응형 인간들이라 아랫목이나 차지하는 데 익숙하다’는 혼찌검을 들었다”며 “내일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이 도전과 분투로 살아있는 정당임을 보여주리라 믿는다”고도 밝혔다. 서 의원은 지난 13일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연일 중진 불출마를 촉구하고 있다. 당을 쇄신하기 위해 올드보이들은 퇴장하고 신세대가 젊은 감각으로 당을 이끌도록 판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다만 중진 가운에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이 없자 역으로 초선들의 당권 도전을 격려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서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저를 비롯해 당 안팎에서 힘깨나 쓴다는 분들부터 지금은 나서지 않아야 한다. 지금껏 산업화의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분들이 나서지 않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백혜련, 최고위원 출마…“민심 괴리, 조국 사태부터 시작”

    백혜련, 최고위원 출마…“민심 괴리, 조국 사태부터 시작”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재선·경기 수원을)은 15일 “민주당을 쓴소리도 귀담아듣는 민생중심정당, 민심과 함께하는 개혁정당, 합리적 균형감각과 책임감이 있는 집권여당으로 혁신하겠다”라며 최고위원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연 백 의원은 “혁신의 시작은 쓴소리를 듣는 것부터 해야 한다”면서 “집권여당이라면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 하고,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들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 의원은 “총선과 이번 재보선을 보면 국민의 개혁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실망을 모두 읽을 수 있다”며 “이제 민생을 바꾸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1회 현장 최고위원회의 개최, 당정청간 상설회의체 신설, 당내 구성원의 공정·정의 원칙에 반하는 반칙적 행태에 대한 무관용 원칙 적용, 당내 인재 양성 등을 약속했다. 백 의원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문자폭탄 등 강성 당원 논란에 대해 “민주당은 강성당원의 당이 아니다”라며 “민주당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지도부도 입장을 표명해야 할 때에는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국 사태’에 대해선 “민심과의 괴리, 공정과 정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된 시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며 “떠나간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그 부분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백 의원은 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87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1997년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0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로 법조인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대위 사법개혁특보단장·유세본부 부본부장을 거쳐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2018년 제20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제21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서 출마해 재선 의원이 됐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톈안먼 민주항쟁의 마지막 흔적 역사의 뒤안길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톈안먼 민주항쟁의 마지막 흔적 역사의 뒤안길로

    중국 베이징 중심가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핏빛으로 물들인 중국 민주주의 항쟁의 마지막 흔적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공산당 총서기의 유족이 베이징 둥청(東城)구 왕푸징(王府井)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푸창후퉁(富强胡同) 6호’ 사합원(四合院)에서 이삿짐을 싼 까닭이다. 자오쯔양 유족들이 푸창후퉁 6호를 떠난다는 것은 이 옛집의 자오쯔양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지난 5일 평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서민)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추념하며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는 일이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다. 사실 중국에서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중국 본토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오쯔양 옛집 퇴거 소식은 찾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 당국이 인공지능(AI)를 활용해 톈안문 민주화 운동 관련 콘텐츠를 거의 완벽하게 온라인에서 통제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톈안먼 광장의 상흔은 평소 일반인들은 접근 자체가 어려운 금단의 공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ㅁ’자로 닫힌 형태의 중국 전통 주택양식인 사합원 형태의 푸창후퉁 6호는 중국 공산당이 1949년 10월 1일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이후 중국 공산당 소유의 관저였다. 1987년까지 당총서기를 지냈던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도 한동안 베이징시 시청(西城)구 후이지쓰후퉁(會計司胡同) 25호 사합원에서 머물렀다. 중국 공산당은 사망한 국가 지도자 주택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자오쯔양의 딸인 왕옌난(王雁南· 본명 趙亮)과 남편 왕즈화(王志華)가 머물고 있던 푸창후퉁 6호 사저를 당중앙판공실이 회수할 예정이다. 시진핑(習近平) 당총서기는 앞서 2016년 11월 30일 당중앙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당과 국가 지도자 예우와 관련된 규범을 통과시켰다. 당시 정치국 회의에서는 사무실·사저·관용차·교통편·비서 규모·휴가 격식 등 당과 국가 지도자에 대한 대우 수준을 규정하고 당과 국가 지도자가 퇴임한 뒤 적시에 사무용 관저에서 퇴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1989년 4월 후야오방 전 당총서기가 사망하자 이를 추모하는 대학생·시민들이 그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 몰려들면서 시작됐다. 당시 당총서기였던 자오쯔양은 무력 진압을 결정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실각했다. 그는 실각한 이후 2005년 1월 사망할 때까지 16년 가까이 이 집에 가택연금 생활을 했다. 자오쯔양은 후야오방과 함께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주목받았으나, 당총서기였던 1989년 5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로 궁지에 몰리며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야 했다. 자오쯔양은 회고록에서 “1989년 6월3일 밤 가족과 함께 마당에 앉아 있다가 총소리를 들었다”며 “세계를 놀라게 한 비극은 피할 수 없었으며 결국 발생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학생운동이 반당분자와 반사회주의 세력들의 계획된 음모라고 규정하고 배후 지도부와 향후 계획, 당내 결탁 세력 등을 알아내기 위해 고심했다”며 “그러나 나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지 우리의 단점을 고칠 것을 요구한 것이지 정치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을 동원한 당총서기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자오쯔양은 1989년 5월19일 새벽 비장한 마음으로 톈안먼 광장에 섰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당시 장면을 보면 그가 빨간색 메가폰을 잡고 학생들과 시위 참가자들에게 행한 7분 가량의 연설은 여전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비판하건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학생들에게 단식 중단을 요구하며 “대화의 문은 열려 있고 당신들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냉정하게 생각하기를 간곡하게 부탁 드립니다”라고 설득하는 그의 마지막 연설을 50대 이상의 중국인들이 적잖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자오쯔양은 30시간 가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남겼다. 그의 절친한 친구 3명이 몰래 중국 밖으로 갖고 나간 것을 녹취한 것으로 그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Prisoner of The State)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 이 책에서 자오쯔양은 무력 진압을 주도한 강경 보수파 리펑(李鵬) 총리의 당지도부 내부 모임 발언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리도록 배후 역할을 해 시위가 격화됐고, 덩샤오핑이 권력을 상실할까 조바심을 내 민주화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자오쯔양은 이른바 개혁파로서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유력했기에 실각의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컸다. 이후 6월 4일 무력 진압이 현실화됐고 권좌에 쫓겨난 그는 가택 연금을 당하다가 2005년 1월 별세했다. 작고한 뒤에도 자오쯔양의 유골은 사저를 떠나지 못했다. 자오쯔양의 묘지가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체제 세력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한 탓이다.이런 까닭에 자오쯔양은 이 세상을 떠나서도 통상적으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사망 후 안치되는 베이징 근교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 지도자 구역에 안치되지 못했다. 2015년 중국 당국은 그의 매장을 허락했으나 베이징과 멀리 떨어진 허난(河南)성 고향을 요구하는 중국 당국과 이에 반대하는 유족 사이의 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결국 2019년 10월 18일 그의 부인 량보치(梁伯琪·1918~2013)와 베이징 도심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창핑(昌平)의 민간 묘지 천수원(天壽園)에 합장됐다. 매장 의식은 물샐 틈 없는 보안 속에 비밀리에 치러졌다. 자오쯔양 사망 후 해마다 6월 4일을 비롯해 그의 생일(10월 17일)과 기일(1월 17일), 중국 전통명절인 칭밍제(淸明節·4월 5일 전후) 등 기념일이 되면 자오쯔양의 푸창후통 집에는 공안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에도 아랑곳 없이 적지 않은 지지자와 추모객들이 찾았다. 2019년에는 자오쯔양의 옛집 부근 곳곳에 출입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얼굴인식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고인의 옛집 서재에는 고인의 사진과 기록물, 소장품들을 보관한 소규모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고 고인의 유해도 2019년 10월 부인과 합장하기 전까지 이 집에 안치돼 있었다. 후야오방의 후손 역시 2019년 5월 19일 그가 생전에 머물던 후이지쓰후퉁 25호 사합원에서 퇴거했다. 공산당 내 대표적 개혁파였던 후야오방은 1989년 4월 15일 사망했는데, 그 추모 물결이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를 추앙하던 베이징대 등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보수파에 대한 비난 등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들이 확산됐다. 마침내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계기로 그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집회를 갖고 여기에 라오바이싱들이 가세해 민주화운동의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자오쯔양 유족이 사저를 떠나는 모습이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기자 가오위(高瑜·77)가 지난 4일 올린 트위터였다. 가오위는 칭밍제 당일 자오쯔양 푸창후퉁 집에서 짐을 싸는 모습을 과거 자오쯔양 유족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자오쯔양의 생전 사진과 2018년 그의 기일에 찍은 사진, 사합원 정문과 유족이 싼 이삿짐까지 모두 4장의 사진을 올렸다. 원로 여성 언론인인 가오위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 직후 6년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중국 정부의 언론 조치를 담은 문건을 폭로해 다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반체제 인사이기도 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뒤퐁에게 베시가 없었다면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뒤퐁에게 베시가 없었다면

    파리에서 고속전철 A선을 타고 낭테르 프레펙튀르 역에 내려 5분 남짓 걸으면 커다랗고 하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의 대표적 현대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르잠파르크가 설계한 파리오페라 발레학교다. 소박한 문패가 정체를 알려줄 뿐, 여느 현대식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프랑스 발레의 자존심을 길러낸 요람이다. 파리오페라 발레학교는 루이 14세의 명에 따라 1713년 설립됐다. ‘밤의 발레’에서 ‘아폴로’ 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태양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직접 발레를 즐겼던 루이 14세였기에 체계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훌륭한 발레무용수를 대거 배출하며 예술강국으로서의 프랑스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1987년 지금의 현대식 건물에 입주했다. 1990년대 초, 철제 교문이 굳게 닫혀 있고 출입관리도 철저해 외부인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파리오페라 발레학교를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됐다. 지금은 국가학위로 정착한 프랑스 예술강사 자격증제도 준비단계로, 이 학교에서 발레교사자격증 취득과정을 운영할 때였다. 소르본대학에서 석사를 막 마치고 이론공부를 계속할 계획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학교를 다닐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고 다행히 프랑스 정통발레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나의 열정이 통했던지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날부터 일년 동안 비밀의 성을 탐방하며 프랑스 발레교수법을 익히느라 하루하루가 신났었다.첫날 등교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건물 내부의 원형계단이었다. 계단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둘러 설계한 다양한 크기의 연습실이 마치 퍼즐처럼 구성돼 있고 방마다 어린 학생들이 피아노 선율에 맞춰 구슬땀을 흘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또렷하게 빛나던 눈망울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대건축의 거장답게 드 포르잠파르크의 설계는 선율과 율동을 모두 감싸 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호령소리. 건물이 떠나갈 듯 큰 목소리로 지도하는 클로드 베시 교장 선생님이었다. 이 학교에서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베시 교장 선생님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자태가 압도적이었다. 14세의 나이에 현대발레의 아버지 조지 발란신의 눈에 들어 프랑스 발레리나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무대에 섰고, 진 켈리와 함께 영화를 찍었던 금발의 미녀는 이후 후학 양성에 혼신을 다해 32년간(1972~2004) 성공적으로 학교를 이끌었다. 당시에 베시와 함께 학생을 지도했던 20명 남짓의 교사 중에는 세르주 골로빈, 막스 보조니, 질베르 메이에르, 프란체스카 줌보 등이 있었다. 기계적인 기능을 가르치는 발레교육이 아니라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손끝 발끝에 각자의 예술성이 녹아나도록 하는 어려운 작업을 하고 있었고, 최고의 교수법은 다름 아닌 그들의 사랑과 열정이라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최근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상징적인 무용수 파트리크 뒤퐁이 만 61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프랑스인 최초 바르나 콩쿠르 금상 수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후 루돌프 누레예프, 모리스 베자르, 앨빈 에일리 등 거장의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파리오페라발레단 예술감독까지 맡았던 인물이다. 말년엔 TV쇼 ‘스타와 춤을’에 출연해 심사위원으로 입담을 보여 주기도 했지만 폐암 악화로 갑작스럽게 떠나자, 어린 뒤퐁을 발굴했던 막스 보조니(1917~2003)와 누구보다 그를 아들처럼 아꼈던 클로드 베시(1932~)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스승과 제자 사이를 넘어 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발레를 사랑했던 그들이었다. 내가 지켜보았던 파리오페라 발레학교의 풍경을 추억하면서 사제 간의 사랑으로 가치를 더했던 예술세계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 억울함 다 못 풀고 하늘로 떠난 ‘7번방의 선물’

    억울함 다 못 풀고 하늘로 떠난 ‘7번방의 선물’

    파출소장 딸 강간 누명 쓰고 15년 옥살이2008년 재심서 36년 만에 무죄 받았지만시효 10일 지나 소송 이유로 배상 못 받아“억울함을 다 못 풀었지만,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당시 9세)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87)씨의 장례식이 30일 경기 용인 평온의숲에서 열렸다. “억울함 때문에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 것 같아 모질게 생명을 이어왔는데…이제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고 2008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직후 소감을 밝혔던 정씨는 이날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그는 지난 28일 별세했다. 류승룡 배우 주연의 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정씨의 억울한 사연은 49년 전인 1972년 9월 27일 춘천경찰서 파출소장의 9살 난 딸이 춘천시 우두동 논둑에서 강간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만화가게 주인인 정씨는 숨진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 점표가 나오자 체포됐다. 정씨는 조사과정에서 범죄사실을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1973년 강간치상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5년간 복역한 뒤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됐지만, 정씨의 삶과 그의 가정은 엉망진창이 됐다. 정씨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2001년 10월 기각됐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결백을 호소한 정씨는 2007년 12월 재심 권고 결정을 끌어냈다. 2008년 11월 재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마지막 희망으로 기댄 법원마저 적법 절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했다”면서 “피고인의 호소를 충분히 경청하지 않았던 점에서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정씨와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2013년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는 국가가 정씨와 그의 가족에게 26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6개월’이란 소멸시효가 발목을 잡았다.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는 상태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권리가 사라지게 하는 제도다. 정씨는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 10일 뒤 소송을 낸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정씨의 지인은 “억울한 누명과 옥살이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원섭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면서 “부디 그곳에서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별세…15년 누명 옥살이 배상 ‘0원’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별세…15년 누명 옥살이 배상 ‘0원’

    15년 누명 옥살이 배상 0원‘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별세국가 상대 손해배상 못 받아소멸시효 10일 지나 소송 제기 이유 “억울함 때문에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 것 같아 모질게 생명을 이어왔는데…이제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당시 9세)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2008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직후 춘천지법 법정을 나오면서 한 말이다. 류승룡 배우 주연의 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정씨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억울함 때문에 구천을 떠돌 것 같아 모질게 생명을 이어왔다는 정씨는 30일 모든 장례 절차를 끝으로 비로소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SNS에 “사법 피해자 고 정원섭님. 국가배상을 받을 권리마저 억울하게 빼앗긴 아픔 안고 영면에 드셨다”며 “공정한 하늘에선 억울함 없이 편안하게 쉬시길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군사독재 시절 강간 살인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 정원섭씨는 춘천 파출소장 초등학생 딸 살인범으로 몰려 15년 옥고를 치른 뒤 재심으로 무죄판결 받았다. 1972년 9월 27일 춘천의 한 논둑에서 파출소장의 9세 딸이 강간, 살해당한 상태로 발견됐다. 정부는 이 범죄를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해 경찰에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춘천경찰서는 검거 기한 하루 전 정씨(당시 36세)를 검거했다. 15년간 복역한 뒤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됐지만, 정씨의 삶과 그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교도소 복역 중 정씨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사망했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아내마저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불운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씨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2001년 10월 이마저도 기각됐다. 정씨의 억울함은 영원히 묻히는 듯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결백을 호소한 정씨는 2007년 12월 재심 권고 결정을 끌어냈다.“고문과 증거 조작”…수사관도 정씨에게 사과·재판부도 머리 숙여 정씨는 재심 청구 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고 유력 증거도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2008년 6월 정씨의 재심이 열린 춘천지법 법정에서 그는 자신을 수사한 경찰관들을 다시 만났다. 36년의 세월이 흘러 서로 칠순을 훌쩍 넘겼지만, 이들의 재회는 묘한 긴장이 흘렀다. 재심 법정의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의 한 수사관은 심문을 마치고 방청석으로 돌아가던 중 증인석에 앉아 있던 정씨를 향해 “죄송합니다”고 말해 술렁이기도 했다. 법정을 나설 즈음 정씨와 당시 수사관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모질었던 시절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결국 그해 11월 재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2012년 5월 18일 형사보상 결정이 확정됐고 정씨는 같은 해 11월 28일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2013년 갑작스럽게 대법원 판례가 바뀌면서 정씨는 국가로부터 아무런 배상을 못 받게 됐다. 재심 무죄판결 확정 후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시작한 경우만 인정하기로 한 새로운 기준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씨는 6개월에서 겨우 10일 넘긴 날짜에 소송했다는 이유로 2심과 3심에서 패소했다. 그렇게 그는 15년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했다. 고인이 된 정씨의 장례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엄수됐다. 장지는 용인 평온의숲 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JTBC ‘설강화‘ 논란에 2차 해명 “민주화 운동 폄훼 없다”

    JTBC ‘설강화‘ 논란에 2차 해명 “민주화 운동 폄훼 없다”

    “대선 정국 속 가상의 이야기” 반박 실존 인물 연상 지적에 “이름 수정”JTBC 드라마 ‘설강화’ 측이 방송 전부터 제기된 역사왜곡 의혹에 재차 입장을 내고 “억측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JTBC는 30일 “앞서 ‘설강화’와 관련해 밝힌 입장 이후에도 이어지는 억측과 비난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재차 입장을 전한다”며 “현재의 논란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드라마 측은 ‘설강화’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적극 해명했다.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서는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설정은 대본에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민주화 운동이 아닌 1987년 대선 정국”이라며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반박했다. 안기부 요원에 대한 미화 논란도 언급했다. “안기부 요원을 ‘대쪽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국내파트 발령도 마다하고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동료들에게 환멸을 느낀 뒤 해외파트에 근무한 블랙요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이 인물은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고 끝까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원칙주의자로 묘사된다”고 덧붙였다. 실존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에는 “천영초 선생님을 연상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관련 여주인공 이름은 수정하겠다”고 했다. 올해 6월 방영 예정인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성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과 그를 치료해 준 여대생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최근 시놉시스 일부가 유출되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역사 왜곡이 우려된다”며 논란에 휩싸였다. JTBC는 이를 부인했지만, 상암동 사옥 앞에서 드라마 폐지를 주장하는 트럭 시위가 벌어지는 등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추가 입장을 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잊어서는 안 될 그 이름 PCC-772 ‘천안함’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잊어서는 안 될 그 이름 PCC-772 ‘천안함’

    초계함은 평시 경비 및 초계임무를 수행하고 대함전, 대잠전, 대공전 능력을 통해 적의 해상 도발을 억제하는 해군 해역함대의 주요전력이다. 지난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경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제2함대 소속 초계함 PCC-772 천안함은 북한군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다.선도함인 포항함의 이름을 따 포항급으로도 불리는 초계함은 지난 1984년부터 해군에서 운용되기 시작했으며 총 28척이 건조되었다. 이 가운데 천안함은 14번째 초계함으로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가 건조했다. 지난 1987년 7월 24일 진수식을 거행한 후 1989년 1월 5일에 취역했다. 해군 제2함대에 배치된 천안함은 NLL 경비 임무, 어로보호작전, 밀입국 선박 단속지원 등 서해 책임해역 수호에 최선을 다했다. 특히 1999년 6월 15일 발생한 제1연평해전에 투입되었고, 당시 북한군과 교전 중 14.5mm 중기관총탄 3발이 기관부를 관통했으나 다행히 큰 피해는 아니었다.하지만 불시에 어뢰 공격을 받은 천안함은 바닷속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특히 불과 수 분만에 함미가 완전히 가라앉는다, 이 과정에서 승조원 104명 중 58명은 구조되었지만 46명은 실종된다. 3월 27일 실종자 발견을 위한 탐색구조작전이 본격화 되었다. 3월 28일과 29일 도착한 해군 소해함 옹진함과 양양함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천안함의 함미와 함수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3월 30일 탐색구조작전에 참가했던 해군 특수전여단 소속 한주호 준위가 탐색작전 중 전사하게 된다. 또한 4월 2일에는 수색작전 후 조업구역으로 이동하던 저인망 어선 금양 98호가 상선과 충돌해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다.그 결과 4월 3일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수색작전 중단 요청 기자회견을 열고, 4월 4일부터는 실종자 구조 및 수색작전에서 함체 인양작전으로 전환된다. 4월 15일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어 해군 제2함대에 도착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실종자 36명의 시신이 수습된다. 4월 23일에는 연돌이 인양되었고, 4월 24일에는 천안함 함수가 인양되어 해군 제2함대에 도착한다. 4월 29일에는 천안함 46용사 합동 영결 및 안장식이 거행된다. 5월 15일에는 천안함의 프로펠러, 추진모터, 조종장치 등이 수거된다. 인양된 천안함 선체는 해군 제2함대의 유류부두에 보관되다가 이후 안보 공원으로 옮겨져 2014년 12월 4일 천안함 전시관으로 재탄생한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조선구마사’ 폐지 이끈 시청자들…방영 전 정해인 드라마까지 ‘불매’ 조짐

    ‘조선구마사’ 폐지 이끈 시청자들…방영 전 정해인 드라마까지 ‘불매’ 조짐

    ‘철인왕후’ 등 역사왜곡 반발 누적단순 항의에서 불매운동으로 확산JTBC ‘설강화’ 속 설정에도 ‘우려’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가 결국 시청자들의 불매운동과 후폭풍에 폐지 결정을 내렸다. 시청자들의 항의 방식이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방송을 앞둔 드라마까지 불매운동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SBS는 26일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관련 장면을 모두 수정하고 한 주 결방을 통해 작품을 재정비해 방송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광고 및 지원 철회가 이어지자 하루만에 폐지를 결정했다. 드라마 제작사들 역시 이날 “SBS의 편성 취소 이후 제작도 중단됐다”며 “해외 판권 계약도 해지 수순을 밟고 있으며, 서비스 중이던 모든 해외 스트리밍도 모두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SBS는 드라마의 방영권료 대부분을 선지급했고 제작사는 80% 촬영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에는 3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폐지할 경우 방송사 및 제작사의 경제적 손해가 불가피하지만, 더 큰 후폭풍을 우려해 결국 전면 중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앞서 ‘조선구마사’는 지난 22일 1회 방송 중 월병 등 중국식 소품을 사용한 점과 태종, 충녕대군 등 인물 묘사가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드라마 폐지 요구 글에는 이틀만에 20만명이 동의하기도 했다. ‘조선구마사’ 폐지는 역사 왜곡에 대한 반발이 누적된 결과다. 작가의 전작인 tvN ‘철인왕후’에서 이미 ‘조선왕조실록 한낱 지라시네’라는 대사가 나와 문제가 됐고, 철종 등 인물 왜곡도 논란도 나왔다. 여기에 중국이 김치와 한복을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문화 동북공정’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tvN 드라마 ‘여신강림’과 ‘빈센조’ 속 중국 상품 간접광고가 등장하며 중국 자본에 대한 반발감까지 더해졌다. 상황이 되풀이되자 시청자들은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입히는 방식으로 드라마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넣거나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는 것으로는 변화가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광고 기업 목록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으로 공유하며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중단을 끌어냈다.이같은 움직임은 아직 방영을 하지 않은 드라마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JTBC가 6월 방영 예정인 ‘설강화’는 시놉시스만 공개된 상황인데도 시청자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배우 정해인과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지수가 주연으로 나서는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과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의 시대를 거스른 사랑을 그린다. ‘SKY캐슬’의 유현미 작가와 조현탁 감독이 의기투합해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남주인공이 운동권 학생인 척하는 간첩으로 설정된 점, 남녀 주인공 이름에서 실존 인물이 떠오르게 한 점,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던 시기 안전기획부 팀장 캐릭터가 미화된 점이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해외 영향력이 강한 블랙핑크의 지수가 주연으로 나선다는 점도 철저한 고증에 대한 요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드라마 측은 내부 모니터링을 지속하면서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은 수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병도 몬시뇰 선종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병도 몬시뇰 선종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병도 프란치스코 몬시뇰이 24일 오후 노환으로 선종했다. 86세. 1935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김 몬시뇰(원로사목)은 1961년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1971년부터 15년간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을 보필하며 교구 비서실장 겸 홍보담당을 지냈다. 이후 가톨릭출판사 사장과 서울 대방동 본당 주임, 교구 사무처장, 서울 명동·가락동·구의동 본당 주임 및 제8지구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1987년 사무처장 겸 명동 본당 주임 신부로 6·10 민주항쟁의 보루가 된 명동성당을 지켜낸 바 있다. 김 몬시뇰은 정진석 추기경과 서품 동기로 올해 사제수품 60주년(회경축)을 맞았다. 김 몬시뇰은 1991년부터 경기 광명 ‘글라라의 집’ 등 네 곳의 무의탁 노인공동체를 설립해 노인 사목에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에 서임됐고 의정부교구가 신설되기 전까지 경기도 지역 교구장 대리를 지냈다. 2004년 10월부터는 교육담당 교구장 대리, 2006년 2월부터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를 맡았다. 빈소는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26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다. 장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 묘역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르면 내년 남자 ATP투어 개최” 테니스협 ‘정희균 체제’ 공식 출범

    “이르면 내년 남자 ATP투어 개최” 테니스협 ‘정희균 체제’ 공식 출범

    정희균(54) 대한테니스협회장이 “이르면 2022년 국내에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24일 기자들과 만나 “올해를 한국 테니스 기초 체력 회복의 해로 삼고 2022년에는 ATP 투어급의 대회를 유치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남녀 프로테니스 투어 대회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지난 1월 제28대 협회장에 당선된 뒤 왕년의 스타 이형택, 전미라 등을 투어대회 유치 공동위원장으로 내정했다. 정 회장은 “ATP 투어 일반대회인 250시리즈 또는 이벤트 성격이 강한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국내 개최와 관련해 ATP와 논의 중”이라며 “넥스트 제너레이션 대회 계약이 2023년 만료되는 이탈리아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우선권을 가지는 것으로 답변을 받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대회는 21세 이하가 치르는 ‘차세대 왕중왕’ 대회로 2017년 정현(25)이 우승했다. 정 회장은 또 “ATP 250시리즈 대회도 1년 계약이 가능하다”면서 ‘다년 계약으로 하고 싶지만 우선적으로 1년 계약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TP 투어 대회는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열린 칼(KAL)컵 서울 코리아오픈 이후 맥이 끊겼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속이 든든, 힘이 불끈… 한 뚝배기 하실래요?

    속이 든든, 힘이 불끈… 한 뚝배기 하실래요?

    16시간 푹 고아낸 육수쫄깃한 수육 일품 콜라겐아미노산 풍부… 기력보강에 탁월 골퍼들 입소문 타고 국밥 거리 문전성시 지금은 코로나 직격탄… 손님 절반으로 뚝 ‘소머리국밥’은 한우 사골을 푹 고아 만든 국물에 쫄깃한 소머리고기를 넣어 만든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속풀이 해장국인 ‘효종갱’과 함께 경기 광주 지역의 대표 음식이다. 광주는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지나던 길목으로 광주에서 묵을 때 지친 선비들이 보양식으로 먹던 음식으로 전해진다. 설렁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음식이 소머리국밥이다. 소고기와 뼈를 함께 넣고 끓여 사골국물을 내는 것은 같다. 이 사골국물에 양지머리를 넣으면 설렁탕, 소머리고기를 넣으면 소머리국밥이다. 곤지암에 소머리국밥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다. 원조는 최미자 할머니로 알려졌다. 최 할머니는 1980년대 초 지금의 곤지암고등학교 인근에서 연탄불에 끓인 소머리국밥을 팔았다. 인근에 중부컨트리클럽과 그린힐CC 등 골프장이 대거 들어서면서 골퍼들에게 입소문이 나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1987년에는 중부고속도로 곤지암나들목이 생기면서 손님이 더욱 많아졌다. 이후 인근에 생긴 스키장 손님이 더해지면서 20여곳의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됐다. 주말이면 골퍼들이 몰려 30~40m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관광버스가 단체 손님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곤지암에는 한때 20곳이 넘는 소머리국밥집이 있었으며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등 유명세를 탔었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광우병 파동 등으로 쇠퇴해 현재는 골목집소머리국밥, 구일가든, 동서소머리국밥, 본가소머리국밥, 배연정소머리국밥 1·2관, 최미자소머리국밥 등 7곳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선비들의 보양식서 서민들의 보양식으로 지난 18일 점심시간인 낮 12시에 찾아간 곤지암소머리국밥 거리는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더욱 썰렁해졌다. 현재 남아 있는 7곳 가운데 들어간 골목집소머리국밥도 손님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노부부 두 쌍과 인근의 사무실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이 몇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식사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 문을 연 골목집소머리국밥은 박영자(71)씨가 30여년 운영하다가 2009년부터 아들인 전태근(43)씨가 합류해 맛을 전수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숨을 짓는 전 대표는 “2000년대 초 소머리국밥이 한창 인기가 있을 땐 하루에 500~600명이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건물을 뺑 둘러 줄을 섰다”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진정돼 곤지암 소머리국밥의 명성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0년 역사의 곤지암 소머리국밥은 푹 고아 낸 진한 육수와 야들야글하고 쫄깃한 수육맛이 일품이다. 우선 소머리는 한우를 골라야 잡내가 없다고 한다. 전 대표는 “소머리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한 차례 삶은 후 찬물에 다시 씻은 뒤 지방을 제거하고 숙성 과정을 거친다”면서 “소머리뼈와 사골을 16시간 이상 고아 만든 육수에 소머리고기를 넣고 3~4시간 삶으면 쫄깃쫄깃한 수육이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소머리에는 잔털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깨끗이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우설(소혀)은 냄새가 나므로 1차 데친 후 따로 삶아 하얀 껍질을 벗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형 솥에서 소머리뼈와 사골을 밤새 끓일 땐 수시로 기름을 떠내고 물을 보충해 줘야 해서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예부터 소머리국밥은 뼈와 위장에 좋고 기운 보강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보양식으로 알려져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음식이다. 소머리와 사골을 푹 끓여 낸 고단백 음식이다. 쫀득쫀득한 살들이 많은데 이곳에 콜라겐과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푹 고아서 우려낸 만큼 영양이 풍부한 아미노산이 흡수되기 쉽게 국물에 우러나 있다. 철분,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해 면역력을 높여 주고 힘든 육체 운동을 한 뒤 먹으면 좋다. 기력을 회복시켜 주는 음식인 것이다. 곤지암 인근의 직장인 A(56)씨는 “진한 사골국물에 쫀득쫀득한 머리고기가 질리지 않아 점심시간에 자주 온다”며 “퇴근할 때는 수험생 아들의 건강식으로 자주 포장을 해 간다”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에서 왔다는 B(76)씨 부부는 “국물이 구수하고 고기가 부드러워 기력이 달리는 노인들의 보양식으로 그만”이라며 “친구들과 와서 머리고기로 반주도 들곤 하는 30년 단골”이라고 말했다.●광주시, 소머리국밥 거리 되살리기 나서 광주시가 곤지암 소머리국밥 거리 명성 되살리기에 나섰다. 광주시는 음식 문화거리 지도와 종합 안내도를 제작해 곤지암을 찾는 방문객들이 소머리국밥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식당에는 포장용기 등 위생용품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경강선 곤지암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점을 알리기 위해 경강선 전철 내 광고판을 설치하고 시 홈페이지(www.gjcity.go.kr)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도 집중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소머리국밥을 주제로 한 지역 축제도 준비하고 있다. 글 사진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김창열 ‘물방울’ 인기 고공행진…케이옥션 경매서 9점 완판

    김창열 ‘물방울’ 인기 고공행진…케이옥션 경매서 9점 완판

    지난 1월 타계한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인기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케이옥션이 지난 17일 개최한 3월 경매에 출품된 김창열의 작품 9점이 모두 새 주인을 찾았다. 1979년에 제작된 ‘물방울 LSH70’이 3억 6000만 원에 낙찰돼 출품작 중 최고가를 기록했고, 단 하나의 물방울이 그려진 1977년 1호 사이즈(가로 15.8㎝, 세로 22.7㎝)의 작품은 시작가 1200만원의 7배인 8200만원에 낙찰됐다. 작품 9점의 총 낙찰액은 14억 6200만원이다. 앞서 지난달 23일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도 1977년 작 ‘물방울’이 작가 경매 최고가인 10억 4000만원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연대별로 출품된 ‘물방울’ 8점이 모두 낙찰되는 성과를 거뒀다. 케이옥션이 최근 10년간 개최한 경매 중 가장 많은 금액인 약 170억원(낮은 추정가 합계) 어치 작품이 출품된 이날 경매는 낙찰률 74%, 낙찰총액 135억 8030만원을 기록했다. 2017년 4월 경매 이후 4년 만의 최대 낙찰총액이다. 이날 최고가 낙찰 작품은 야요이 쿠사마의 ‘Infinity Nets (ZZOOX)’로, 12억원에 경매를 시작해 13억 1000만원에 거래됐다. 이우환 작품은 1987년에 제작된 ‘바람과 함께’가 13억 원에 낙찰되는 등 5점이 팔렸다. 낙찰 총액은 26억 5500만원이었다. 영국 런던 화이트큐브에서 전시를 시작한 박서보 작품 5점도 완판됐고, 5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예정된 정상화 작품 5점도 모두 낙찰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진실 담은 사진 한 장, 역사를 바꾸는 병따개”

    “진실 담은 사진 한 장, 역사를 바꾸는 병따개”

    난민 사진으로 한국 국적 첫 퓰리처상책 통해 역사적 사진 이후의 변화 짚어“사진 잘 찍는 법? 좋은 이야기 담겨야많이 찍는 것보다 자르고 고르는 미학”“무언가가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 진실을 담은 사진은 사람들의 감정적인 동의를 이끌어 내고, 이걸 틔우는 병따개 역할을 하면서 역사를 바꿉니다.” 최루탄에 피격당한 이한열 열사의 사진 한 장은 1987년 한국의 민주화를 불렀다. 어떤 사진은 국가 간 전쟁을 종식하기도 하고, 다른 사진은 인종 갈등에 관한 고민을 이끌어 냈다. 김경훈 로이터통신 사진기자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진들을 가리켜 ‘역사의 병따개’라고 했다. 그는 ‘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시공사)에서 이런 사진들을 이야기한다. 베트남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준 에디 애덤스의 ‘길거리 즉결 처형’(1968), 수단의 기아 참상을 고발한 캐빈 카터의 ‘독수리와 소녀’(1993), 천안문 사태에 당당히 맞선 남자를 통해 독재를 고발한 ‘탱크맨’(1989) 등 사진의 당시 상황과 이후 사회 변화를 짚었다. 전쟁, 언론, 기아, 가짜뉴스 등 함께 생각해 볼 문제들도 제안한다.책의 첫 사진은 2019년 그에게 세계적 권위를 가진 퓰리처상을 안겨 준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온두라스 난민’(2018)을 실었다. 한국 국적 사진기자로는 첫 수상이었다. 멕시코 쪽 미국 국경에서 미국 국경 수비대가 쏜 최루탄을 피해 아이들을 끌고 도망치는 가족을 포착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경을 넘으려는 난민들을 “폭력적인 갱들”이라고 했지만, 사진은 트럼프의 거짓말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그는 “변화를 원하는 적절한 시점에 나온 적절한 사진이어서 큰 상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책에는 또 스마트폰 대중화로 달라진 사진의 생산·소비 환경에 대한 생각도 담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생산하고) 보면서(소비하면서)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고민한다”면서 “좋은 사진은 좋은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는 걸 알려 주고,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길 바라면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책의 마지막 사진이 전몽각 전 성균관대 부총장의 사진집 ‘윤미네 집’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딸 윤미가 태어나고 결혼하기까지를 아버지가 찍은 사진집이다. 조금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데, 그는 “아이의 성장과 가족의 성장, 나아가 한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를 잘 표현했기 때문”에 골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많이 찍는 데 집착하지 말고, 내가 보여 줄 사진, 간직할 사진을 잘 골라내야 한다”며 “사진은 자르고 고르는 미학”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앞으로 명함 직책을 ‘비주얼 저널리스트’로 바꾸고 뉴스 동영상을 찍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사진기자 중에는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하지만, 저는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매체가 하나 더 생긴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어쨌든 핵심은 이야기이니까요.”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文개혁 망가졌다”… 진보가 꾹꾹 눌러쓴 질타

    “文개혁 망가졌다”… 진보가 꾹꾹 눌러쓴 질타

    “우리 정부는 여러 분야에서 적폐 청산을 이루어 왔으나 ‘부동산 적폐’ 청산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촉발된 부동산 문제를 ‘적폐’로 규정하고, “부동산 적폐 청산이 우리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진보 지식인들은 그 잘못이 문 대통령에게 있다면서 촛불정신을 훼손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진보 지식인들, 정책 실패 조목조목 비판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등 진보지식인 323명이 참여한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다시 촛불이 묻는다’(동녘)를 통해 문재인 정부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3년 전 창립 당시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며 “문 대통령이 촛불 시민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들이다. 이병천 교수는 서문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은 적지 않은 부분에서 정상 국가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국제사회에서 방역 모범국이라고 크게 칭찬받았다”면서도 “오늘의 한국은 권력구도, 제도적 틀, 정치문화, 대중의 가치지향 등 모든 면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나라’임이 확인된다”고 비판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 부동산정책을 강하게 질타한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들어 “2018·2019년 한국의 GDP 대비 토지자산 배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부동산 투기 열풍이 초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무분별한 공공 도시개발이 이어지고,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하는 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근본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물었다. 네트워크 소속 필진 16명은 이 밖에 의료, 기후변화, 노동, 금융 등 정책을 꼬집고, 해결책을 제시했다.●기득권 꿈꾸는 ‘귀족진보’ 586세대 비판 현 정부를 이끄는 운동권 출신 586세대, 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1990년대부터 정치평론을 해 온 ‘1세대 정치평론가’ 유창선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인물과사상사)는 지금 현실에 대해 “촛불 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폐라고 단죄되고, 의견이 다르면 ‘토착왜구’라고 낙인찍힌다”면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리더십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JTBC에서 앵커를 지낸 김종혁의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백년동안)는 정부의 586 핵심세력을 ‘귀족진보’라 명명한다. 저자는 “입으로만 진보일 뿐 사실은 귀족이 누리는 권력과 기득권을 꿈꾼다.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라고 비판하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한 7명의 대통령 중 이렇게 업적이 전무한 대통령은 없었다”면서 “문 대통령이 자아도취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우리 군에서 영구 결번된 비운의 국산장갑차 ‘K66‘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우리 군에서 영구 결번된 비운의 국산장갑차 ‘K66‘

    지난 2월 24일 방위사업청은 육군의 주력 자주포 중 하나인 K55A1에 자동화 탄약보급이 가능한 K56 탄약운반장갑차의 3차 실전배치를 지난 2020년 12월에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K56 탄약운반장갑차는 2006년 소요가 결정되어 2008년부터 체계적인 설계와 시제품 제작 그리고 시험평가 등을 거쳐 2011년 10월에 개발을 완료했다. 사실 K55 계열 자주포를 위한 탄약운반장갑차는 과거에도 있었다. ’K66‘이 그것이다. K55 자주포의 탄약보급을 위해 개발된 K66 탄약운반장갑차는, 국내 방산 업체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결국 사업이 공중분해 되었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흑역사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된 K55 자주포는 K9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실상 육군의 주력 자주포였다. 애초 우리 군은 1980년대 초 자주포의 독자개발을 추진했으나, 국내 기술 부족으로 기술제휴를 통해 자주포의 국내 생산을 추진하게 된다.그 결과 미국의 M109A2 자주포가 채택되었고, 이후 K55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 받는다. K55의 ’55‘는 155mm 자주포를 의미한다. 1985년부터 양산을 시작, 1997년까지 네 차례의 생산을 거치면서 총 1,000여 대가 육군과 해병대에 배치되었다. K55 자주포는 M109A2를 참고로 했지만 우리 전장환경에 맞게 일부 개량되었다. M109A2 자주포의 경우 화학전 상황에 대한 방어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K-55는 화학전에 대비한 화생방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또한 피격 시의 화재를 대비한 할론 소화 장비를 갖추고 있어, 원형인 M109A2에 비해 생존성이 향상되었다.K55의 후속사업으로 K66으로 알려진 국산 탄약운반장갑차 사업이 진행되었다. 당시 K55 자주포를 만들던 삼성항공은 1987년 M109A2 자주포의 제작사였던 미 FMC사의 M992 야전포병탄약지원차량을 기반으로 탄약운반장갑차를 개발한다. M992는 지금도 미 육군에서 사용 중인 장갑차로 야전에서 M109A6와 M109A7 자주포에 155mm 탄약을 보급하는데 사용된다. 이에 맞서 당시 대우중공업은 K200 장갑차 차체를 키워 탄약운반장갑차를 만든다. 경쟁 끝에 대우중공업의 탄약운반장갑차가 K66으로 선정되었지만 시험평가에서 떨어지면서 복마전 양상을 띠게 된다. 결국 소송전으로 확대되면서 K66 탄약운반장갑차 사업은 1990년대 중반 유야무야 돼 버린다.K66 탄약운반장갑차 사업은 백지화되었지만 삼성항공은 차체를 활용해 K55 그리고 K9 자주포 부대의 지휘 및 사격통제용 장갑차인 K77을 만들어 육군과 해병대에 납품한다. 이밖에 대우중공업은 개발된 탄약운반장갑차를 기반으로 육군이 운용중인 천마 자주대공미사일의 미사일운반장갑차를 만들게 된다. 천마의 미사일운반장갑차는 국산 장갑차 가운데 수가 적어 희귀아이템으로 꼽힌다. 과거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이 만든 탄약운반장갑차는 지금의 K56과 달리 수동 탄약 보급 방식을 채택했다. 반면 현재 전력화 중인 K56은 로봇형 탄약운반차로 K55A1 자주포의 전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탄약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자동 보급한다.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은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 한화디펜스로 통합되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문재인 정권 실패했다” 진보의 쓴소리…비판서 봇물

    “문재인 정권 실패했다” 진보의 쓴소리…비판서 봇물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검찰개혁, 부동산 정책 실패와 이어 터진 LH 투기 사태 등으로 문재인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를 담은 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등 진보 지식인 323명이 참여한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최근 ‘다시 촛불이 묻는다’(동녘)를 출간하고 정부의 각종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네트워크는 2018년 7월 창립 당시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며 “문 대통령이 촛불 시민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책에는 지난 3년 동안 망가진 개혁을 지적하는 16명의 필진의 목소리가 담겼다. 책의 서장을 맡은 이병천(사진 왼쪽) 교수는 “문재인정부 들어 한국은 적지 않은 부분에서 정상 국가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서 국제사회에 방역 모범국이라고 크게 칭찬받았다”면서도 “오늘의 한국은 권력구도, 제도적 틀, 정치문화, 대중의 가치지향 등 모든 면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나라’임이 확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들어 “2018·2019년 한국의 GDP대비 토지자산 배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후 발생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초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무분별한 공공 도시개발이 이어지고,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하는 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근본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물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핀셋규제, 핀셋증세 등 집값의 뒤만 쫓아다니는 무능한 모습을 연출했다”고도 했다.저자들은 이밖에 “K방역은 일정 정도 성공했지만 K의료는 실패했다”면서 신자유주의적 의료 대신 공공의료를 복원하라고 주장했다. 책은 이와 함께 기후변화, 노동, 금융, 재벌개혁, 성평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도 제시했다. 문재인정부를 이끄는 운동권 출신 586세대에 대한 비판과 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1990년대부터 정치평론을 해온 ‘1세대 정치평론가’ 유창선(사진 가운데)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인물과사상사)는 “촛불 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정부에서는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폐라고 단죄되고, 의견이 다르면 ‘토착왜구’라고 낙인찍힌다”면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조국과 추미애 사태’를 들어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서 진영의 좁은 폭을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JTBC에서 앵커를 지낸 김종혁(사진 오른쪽)의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백년동안)는 586 핵심세력을 ‘귀족진보’라 명명한다. 저자는 “입으로만 진보일 뿐, 사실은 귀족이 누리는 권력과 기득권을 꿈꾼다.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라고 비판하고 대통령에 대해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한 7명의 대통령 중 이렇게 업적이 전무한 대통령은 없었다. 문 대통령이 자아도취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코로나19보다 전파력 강한 디프테리아 팬데믹… “항생제 내성 탓”

    코로나19보다 전파력 강한 디프테리아 팬데믹… “항생제 내성 탓”

    급성 호흡기 질환인 디프테리아를 일으키는 세균이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세계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섞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 국제연구진은 1896년부터 2018년까지 122년간 채집한 디프테리아균 표본 512개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디프테리아균에는 항생제 내성을 갖게 하는 유전자의 수가 늘고 있어 언젠가 현재의 백신을 넘어 진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디프테리아는 디프테리아균 독소가 함유된 기침이나 재채기와 같은 호흡기 비말 또는 감염된 피부 분비물과의 접촉으로 발병하는데 치사율이 5~10%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고 특히 5세 미만 소아나 40세 이상 성인이 감염될 경우 치사율은 20%에 이른다. 또 1명의 환자가 전염시킬 수 있는 환자 수인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가 6~7로, 코로나19(2.2~6.47)나 독감(1.4~1.6)과 비교해도 높다. 국내에서는 디프테리아를 치명률이 높거나 집단 발생 우려가 커 발생 또는 유행 즉시 신고하고 읍압격리가 필요한 ‘제1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디프테리아는 질환이 감염된 뒤 회복돼도 자연면역이 형성되지 않아 과거 영유아에서 주요한 질병 및 사망의 원인이었지만 다행히 백신이 개발되면서,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에서의 발생률은 현저히 낮아졌다. 국내에서도 1950년대 말 백신이 도입되고 1982년 DTaP 백신을 사용하면서 환자 발생이 급격히 감소해 1987년 1명의 환자가 보고된 이후 추가 감염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발생으로 전 세계적으로 디프테리아 예방접종 일정이 늦어지고 있어 디프테리아 발병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환자에게서 분리한 61개의 박테리아 유전체(게놈)의 배열을 정하고 이를 다른 변이 디프테리아균 411종에 관한 공개 자료와 통합해 서로 다른 발병이 어떻게 관련되고 확산했는지를 밝혀냈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여러 대륙, 특히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유전적으로 비슷한 디프테리아균 군집이 발견됐는데 이는 박테리아가 적어도 한 세기 동안 인간 집단 안에서 정착해 이동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놈 데이터는 또 항생제 내성과 독소 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의 존재도 밝혀냈다. 디프테리아균 독소는 주요 발병 성분으로 독소 유전자에 의해 암호화돼 있으며 18종의 변이가 발견됐으며 그중 몇 개는 독소의 구조를 바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연구 저자인 케임브리지대의 고든 듀건 박사는 “디프테리아 백신은 독소를 중화하도록 설계됐기에 독소의 구조를 바꾸는 유전자 변이체는 백신의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우리의 데이터가 현재 쓰이는 백신이 효과가 없게 될 것임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독소 변이체의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백신과 독소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법을 정기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또 디프테리아균의 항생제 내성을 관찰하면서 최근 10년간의 박테리아가 90년대보다 4배나 많이 내성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에 참여한 로버트 윌 박사는 “디프테리아균의 게놈은 복잡하고 엄청나게 다양하다. 디프테리아균은 임상 치료에 사용하지 않는 항생제에 대해서조차도 내성을 얻고 있다”면서 “무증상 감염이나 다른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한 대량의 항생제 노출 등 다른 요인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연구 저자로 감염증 연구자인 안쿠르 무트레자 박사도 “디프테리아가 어떻게 진화하고 확산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게놈 배열 결정은 우리에게 디프테리아균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강력한 도구를 제공해 공중보건기관들이 너무 늦기 전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디프테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프테리아가 잠재적으로 변형돼 더 잘 적응하는 형태가 돼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큰 위협이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신호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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