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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여름 거의 매일 비/비온날 30년 이래 가장 많아

    올 여름에는 비온 날이 30년 이래 가장 많았고,평균 강우량도 기록적이었다.기상청은 9일 올 여름철 기상특성 분석을 통해 “평균 강수일수가 47.2일을 기록,지난 30년 동안 최고였다.”고 밝혔다. 전국 평균 강우량도 평년의 140∼180% 수준인 1000㎜인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지난 30년 동안 1987년,1998년에 이어 3번째로 많다. 올 여름에 비가 많이 온 이유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여름철 후반에 세력을 크게 확장하지 못하고 한반도 부근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기상청 윤석환 홍보과장은 “6월 중순부터 자주 내리던 비가 장마와 연결되면서 7월 하순까지 비오는 날이 많았다.”면서 “장마 이후에도 저기압과 대기 불안정,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올 여름에 많은 비가 내렸다.”고 분석했다. 예년보다 많은 비가 내리면서 지상의 온도가 하락,평균기온도 평년보다 1.1도 낮은 22.4도를 기록했다.지난 30년 동안 1993년,1980년에 이어 3번째로 낮은 기온이다. 한편 기상청은 추석 연휴가 끝난 뒤에는 중국 내륙에서 발달하는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맑은 날이많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9월 하순에는 일시적인 고온 현상을 보이고,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차례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지령 20000호-’권력과 언론’ 여론조사 / 언론자유 어떻게 보나

    현재 우리 사회에 언론자유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는가에 대해 국민의 49.4%가 긍정적으로 응답한 반면 부정적 의견을 가진 이는 28.4%였다. 1987년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 이후 민주화가 상당히 이뤄졌는데도 언론자유의 실현 정도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것은 언론에 대한 신뢰성 및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평가와 맥을 같이한다. 즉 언론 보도에 대해 신뢰하는 사람(35.3%)과 신뢰하지 않는 사람(36.3%)이 거의 비슷하며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평가하는 사람(45.9%)이 ‘공정하다.’고 평가하는 사람(22.6%)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한국 언론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상당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8%가 의제설정 기능 부정적 동시에 국민들은 우리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을 회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언론이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사항을 제대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은 28.9%인 데 반해 부정적으로 응답한 사람은 48.2%에 달했다. 언론이 국민의 편에 서서 제대로 기능을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하며 이것이 언론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연결되는 것으로 추론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언론에 대해 신뢰하지도 않고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대통령과 정부의 권력을 견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36.8%가 언론(TV방송 23.6%+신문 13.2%)을 지적했다.다음으로 시민단체(29.3%),야당(10.1%),인터넷(6.4%),지식인(4.8%),여당(3.9%) 순이었다. 특이한 것은 권력견제의 역할수행에서 신문보다는 TV방송에 상대적으로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권력견제에 있어 호남지역 거주자들은 상대적으로 TV방송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반면 영남지역 거주자들은 신문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학력자들은 신문에,저학력자들은 TV방송에 권력견제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더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국민들은 자신들의 이념성향에 따라 권력견제의 역할 기대에도 차이를 보이는데 진보적인 사람이 TV방송에 더 많은 기대를 하는반면,보수적인 사람들은 신문에 더 기대를 하고 있다. 한편 방송매체 권력이 활자매체 권력보다 국민들의 의사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중요한 사회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할 때 어느 매체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까.’라는 질문에 절반 이상인 54.7%가 TV방송을 꼽았으며,25.5%만이 신문을 지적한 데서 잘 나타나 있다. 그 다음으로 인터넷 12.2%,라디오 2.6%,잡지 1.0% 순이었다.특히 여성(60.2%),고연령층(64.7%),저학력층(75.2%),저소득층(68.5%),농림어업층(75.1%)에서 TV방송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수적인 사람들이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문의 영향을 더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지지층 TV영향 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도 매체 선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TV방송을,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신문을 자신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매체로 선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지금처럼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TV방송이 정치적 목적으로 신문과의 갈등을 증폭시킬 경우 일반 국민들은 큰 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크며 언론 자체를 불신하게 돼 언론계 전체의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김승훈신부 타계/박종철치사 폭로… 6·10항쟁 기폭

    지난 70년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핵심으로 활동하면서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승훈(마티아·사진) 신부가 2일 오전 2시35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숙환으로 선종했다.64세. 김 신부는 암울했던 군사정권 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일관되게 주장,정의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현장 목회를 실천하면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고통을 함께 나눈 대표적인 성직자였다.193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김 신부는 서울 성신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 서울대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멤버로 가입했고 이후 삭발과 단식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민주화 운동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특히 1987년 박종철군 고문 치사 조작 사건 폭로는 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불을 지펴 서슬퍼런 군부독재를 무너뜨린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당시 천주교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명의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김 신부는 바로 이 성명 발표를 주도한 인물이다. 평범한 목회자로 현장을 지키다가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에 발을 내디딘 것은 1974년 9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 지학순 주교가 구속될 즈음 탄생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면서부터.이후 “한 줄기 정의와 양심의 횃불을 밝혀 분단의 장벽을 걷어내자.”는 구호를 내걸고 정의와 평화통일의 일선에 나섰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았다.대학생 신분으로 방북해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통일의 꽃’ 임수경씨 방북 때도 당초 문규현 신부 대신 고인이 동행자로 내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76년 명동성당에서 있은 3·1시국선언에 연루된 이후 선종할 때까지 각종 시국선언의 공동대표나 발기인으로 활동했으며,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씨 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냈고 김재규씨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는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도 맡았었다.고인의 유해는 2일 명동성당으로 옮겨졌으며 장례미사는 4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02)777-0641∼3. 정부는 김승훈 신부의 생전공로를 기려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키로 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주5일 근무시대 삶이 바뀐다 / 도입후 외국은

    |파리 함혜리·도쿄 황성기·베이징 오일만특파원|프랑스,일본,중국은 모두 우리와 비슷한 시기인 최근 5년 사이 주5일제 도입으로 근로시간을 단축시켜 고용창출,근로자들의 근로의욕 상승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1998년 6월 사회당의 선거공약에 따라 주5일제가 도입돼 주당 39시간에서 주당 35시간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졌다.시행시기는 20인 초과기업은 2000년 2월부터,20인 이하 기업은 2002년 1월부터 적용했다.근로시간 단축 시행 후 총 근로시간은 주당 약 2.5시간이 감소했다.정규직 근로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96년 1·4분기 38.9시간에서 2001년 1·4분기 36.3시간으로 줄었든 것으로 나타났다.근로시간 단축으로 2000년 16만 5000개,99년에는 5만 5000개의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졌다.2000년의 경우 총 고용창출이 58만 3000개였으므로,근로시간 단축은 총 고용창출에 있어 3분의1 정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단기간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국제사회에서 ‘경제동물’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열악한 근로조건을 유지해왔다.1987년 노동기준법 개정 때 법정근로시간을 주48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선언적으로 단축한 후 88년부터 99년까지 11년에 걸쳐 근로시간 단축을 단행했다. 그 결과 주 2일 휴무제를 시행하는 기업은 90년 66.9%에서 99년 91.3%로 대폭 증가했다.현재 석유·석탄화학업종의 경우 80% 이상이 완전 주5일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직률이 2%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반면,실시율이 20% 미만인 가죽·목제·의복 업종의 경우 이직률이 7∼10%에 달해 주5일제의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 이후 임금인상이 매년 약10% 정도 이루어져 왔지만 일반 근로자의 생활은 계속 열악한 상태가 유지돼 왔다.내수 촉진 및 고용증대 효과를 목적으로 1995년 5월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개정했다. 근로시간 단축 결과 관광관련 소비증가로 교통,항공,요식업 등 업종에서 약 100여만개의 고용창출 효과를 거두었다. 주5일제 실시 첫해인 95년 국내 관광객수는 전년 대비 20%인 약 1억명이 증가했다.소득증대와 여가시간 증가가 국민의 소비패턴을 변화시켜 레저,스포츠 관련 소비도 크게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lotus@
  • 와당은 ‘시대의 문화’ 깃든 예술품/ 세계최고 ‘와전 컬렉션’ 꿈꾸는 유창종 변호사

    우리 조상들은 처마 끝에 예술품을 장식하고 살았다.그러나 후손들은 그것을 잘 알지 못했고,알려고도 하지 않았다.그런 무지몽매를 일깨운 사람이 유창종(58) 변호사다. ●기와등 1800여점 중앙박물관 기증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지검장 시절,국립중앙박물관에 25년 넘게 모아온 1873점의 와(瓦·기와) 전(塼·벽돌)을 기증했다.고구려·백제·신라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와전 1100여점,기원전 4세기 전후 전국시대에서 진(秦)·한(漢)을 거쳐 명(明)·청(淸)나라까지 중국 와전 700여점,일본 와전 60여점,태국과 베트남의 와전 10여점이었다. 박물관 직원들은 문화재에 값을 매길 수는 없지만 억지로라도 매긴다면 최소한 2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중앙박물관은 귀한 뜻을 기려 그중 600여점을 선별,지난해 12월24일부터 올 2월16일까지 ‘유창종 기증 기와·전돌’ 전을 열었다.전실을 찾은 사람들은 와전 중에서도 지붕 처마 끝 수키와와 암키와에 달려 있는 와당(瓦當),우리말로 막새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달았다. 홍익대 미대 교수들조차와당의 문양을 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충격을 받았다.”고 했다.입소문이 돌면서 관람객들이 몰려 자원봉사자들은 신이 났고,공무원 신분이어서 주말에만 전실을 찾은 유 변호사는 사인 공세를 받았다. ‘와당 선생’,‘유 도사’ 등의 별명을 갖고 있는 유 변호사를 지난 주말 서울 중구 순화동 법무법인 세종에서 만났다.그는 변호사로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그러나 기와 이야기를 건네자,이제 한국미술사와 고고학을 공부하려면 입문 과정으로 반드시 와당을 공부해야 한다고 열변을 쏟았다. “와당의 아름다움과 미술사적 의미를 모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와당은 그 시대·지역의 건축 및 불교 문화,문화의 이동경로,예술적 특성과 미의식 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예품입니다.당시 종교,철학,사상,권력체제까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이를테면 발해의 와당은 모두 공통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가 유지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아울러 발해 와당은 중국이 아니라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발해는 우리 땅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지요.” ●1978년 충주 근무때부터 수집 나서 기와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충주지청 검사 시절.당시 충주 중원탑평리칠층석탑 부근에서 와당 파편 몇 점을 수습한 것이 계기였다.대학 때부터 미술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와당 수집에 나선다.지금은 값이 폭등했지만,당시만 해도 값이 헐한 데다 수량도 적지 않아 공무원 월급으로도 수집이 어렵지 않았다. 79년엔 그의 문화재 답사 모임이 중원고구려비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고,그가 초대 회장을 맡았던 ‘예성동호회’는 84년에 대한매일의 전신인 서울신문이 제정한 제4회 ‘향토문화상’을 수상했다. 1987년 일본인 의사 이우치(井內)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와당 1082점을 기증하자 와당 수집에 더 몰두했다.그는 이우치 와전실을 둘러볼 때마다 부끄러움과 감사하는 마음,소박한 애국심 등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고 한다.이런 감정은 나중에 기증 결심으로 이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와당 파편을 수집한 다음해인 79년 완전한 6엽 연화문 와당을 구했을 때와,2002년 12월 국내엔 유물이 전무한 발해의 와당을 구입했을 때다.2005년에 개관하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자신이 기증한 와당들을 중심으로 발해 전시실을 연다는 계획이다. 기증을 결심한 뒤에는 시대별 또는 지역적으로 귀중한 것이지만 값이 비싸 구하지 못했던 와전들이 마음에 걸렸다.그래서 부인 금기숙(52·홍익대 섬유아트부 교수)씨와 의논해 적금을 해약하고 주식까지 처분해 빠진 와전을 보완했다. 그의 행복관은 어떤 것일까.“인생을 깊이 있고 풍성하게 느끼는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고,더 많이 깨우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능력을 개발해야 합니다.법률가들은 자만심과 논리에만 빠져 우물안 개구리처럼 옹색하기 쉽지요.논리적이면서도 예술가처럼 감성적이어야 인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가의 와전 사느라 적금도 해약 그는 86년부터 단소를 불기 시작해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대검 중앙수사부장 시절,직원들은 아침마다 그의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영산회상곡 등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단소를 불면 잡념이 사라져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고 저절로 단전호흡이 돼 건강해진다. 그는 서울지검장으로 재직하던 중 중수부장 시절에 ‘이용호 게이트’를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이유로 좌천된 뒤 지난 4월에 31년의 공직생활을 마쳤지만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는 몇 안되는 선배다.그는 당시 바르고 당당하게 수사했으며 그것은 후배 검사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그러면서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검찰권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지요.검찰권 행사의 금도를 넘어서면 안됩니다.휘두를 수 있을 만큼 휘둘러 모든 것을 까발린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검찰권 존재의 의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요즘도 골프를 치지 않는 대신 주말마다 절터를 답사하고 인사동 등 고미술가를 순례한다.한 주만 거르면 가게 주인들이 “지난주에는 왜 나오지 않으셨느냐.”고 물을 정도다.기증 후에 모은 와·전만 200점에 가깝다.계속해서 와전을 모으는 것은 용산 중앙박물관에 들어설 ‘유창종 와·전실’을 세계 최고의와전 컬렉션으로 꾸미기 위한 것이다.딸 영지(28),아들 영상(26)씨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 대를 이어 와전을 수집해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황진선기자 jshwang@
  • “한국 애니메이션 잠재력에 베팅”/한국에 영화사 설립 佛제작자 레지스 게젤바시

    최근 영화 ‘플라스틱 트리’ 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벽안의 프랑스인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주인공은 국산영화 ‘플라스틱 트리’ 제작사인 ‘알지 프린스(RG Prince) 필름’의 레지스 게젤바시(52) 대표.98년 한국에 회사를 세운 뒤 처음으로 한국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그는 “어일선 감독의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선뜻 제작에 나섰다.”고 말했다.그 말에는 우리 영화계의 현실을 가늠할 수 있는 여러 의미가 들어 있다. 약간은 컬트적인 이 영화는 원래 투자자가 재정 형편이 어려워 손을 든 이후 한동안 마땅한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그러다가 게젤바시 대표를 만났는데,그는 ‘플라스틱 트리’에 14억원을 투자했다.그에게 한국에 영화사를 설립한 이유와 한국 영화를 제작한 이유 등을 물어보았다. “87년부터 필리핀 중국 일본 한국에서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습니다.그러던 중 95년에 분산 제작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해 한 나라에 회사를 세우기로 했습니다.여러 조건을 검토해 한국이 최적지라는결론을 내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이국의 제작자를 움직였을까.“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애니메이션 기술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다른 영상 분야의 발전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습니다.또 교육열이 높고 일할 때 열정이 뜨거워 동기 부여만 잘 되면 엄청나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잠재력도 느껴졌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애니메이션과 극영화와 관련해 골고루 경험을 쌓았다.그르노블 3대학(스탕달대학) 시청각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딴 뒤 현장에 뛰어들어 CF감독,영화 아트디렉터를 거쳐 87년 극영화 ‘내게 탱고를 그려줘(Dessine-moi Tango)’를 감독했다.이후 ‘닌자 거북이’ 등 애니메이션 제작자 겸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2002년 MBC-TV에 방영한 애니메이션 ‘쥐라기 원시전’ 공동제작으로 한국 영화제작판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자신의 역할을 가이드에 비유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인력의 잠재적 창조력은 뛰어납니다.다만 이것을 국제 무대에 통할 수 있도록 하는 감각과 통찰력이 부족합니다.예를 들면 캐릭터나 작품 분위기가 너무한국적이어서 한국시장엔 어울리지만 해외판매엔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일본의 경우는 오래 전에 세계적 아이디어를 개발했기에 요즘엔 일본적 성향만으로도 먹히는 거죠.제 일은 이런 점을 보완하여 세계시장에 통할 수 있도록 세련되게 다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98년 한국에 본사를 세운 뒤 2000년 4월에는 파리에 자회사 ‘알지피 프랑스(RGP France)’를 세웠다.자신이 쌓아온 휴먼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한다는 전략에 따라 자회사는 유럽 영화계에서 한국작품의 기획·배급·합작·투자유치 창구 역할을 담당토록 했다. 장선우·박재동 공동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리데기’의 유럽 배급권을 맡은 것을 비롯,‘청풍명월’과 곤충 캐릭터로 성서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등의 유럽 배급권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애니메이션 세계는 복잡다단해 아이디어를 갖고 작품을 제작한 뒤 세계 시장에 팔려고 하면 이미 늦다.”고 강조한다.이를 위해 현지 사정에 능통한 자매회사가 한국 작품의 컨셉트나 콘티 등 기초작업을 검증·조율하는 프리 프로덕션은 물론,주요 제작과정이 끝난 뒤 성우의 더빙이나 음향효과 등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맡아 작품의 시너지효과를 최대로 올린다는 전략이다. 이런 원활한 협조체계는 역방향 즉,현지에서 제작 혹은 공동제작한 영화를 수입 배급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 히트한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를 국내에 수입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는 그에게 한국에서 영화산업하기의 고충을 들어보았다. “한국에서는 관객들이 예술영화를 찾지 않아 투자자를 찾기가 힘듭니다.그러나 관객 취향만 따라가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고 영화 산업도 곧 죽습니다.마찬가지로 흥행성만 따지면 마치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가 판치는 것처럼 영화도 ‘가벼움으로 인스턴트화’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예술성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그는 예술성만이 아니라 상업성도 고려해야 함을 잘 알고 있는 비즈니스맨이었다.“투자자에게 지분이 되돌아가야 한다.그들을 만족시켜야 더 큰 투자가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그의 해박한지식에 힘입어 화제는 영화지원 정책으로 돌아갔다.프랑스에서는 시나리오·제작·판매·배급 등 여러 단계에서 지원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많다.한국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야한다고 강조했다.그는 “프랑스에는 스크린쿼터 제도는 없지만 수입한 외국 영화에서 얻는 수익을 프랑스 영화 제작에 지원토록 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새 아이디어를 개발할 기회를 줘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간첩가족 몰려 이혼·정신질환·사망 / ‘수지김’유족 16년고통 국가 42억 위자료 판결

    “언니도 이제는 한을 풀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겠지요.” 지난 87년 홍콩에서 살해된 뒤 간첩으로 조작됐던 수지 김(김옥분)씨의 동생 옥경(46·여)씨는 15일 ‘수지 김’ 사건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42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법원이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배상금 국가에 억울한 사람 위해 쓸 것 김씨는 “정부의 잘못이 밝혀지고 누명이 벗겨진 게 중요하다.”면서도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서 지난 16년 동안 고통 속에 지내왔던 참담한 상처가 치유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이들은 민사 재판이라 법정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변호사의 말에 생업에 종사하다 변호사로부터 뒤늦게 판결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들은 다음 주 가족회의를 갖고 법원 판결에 대한 소회를 함께 나누기로 했다.김씨는 “배상금을 국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사용키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국가는 앞으로 권력의 횡포로 우리와 같이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라고 신신당부했다. ●법원 “위자료로나마 배상해야” 서울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지대운)는 수지 김씨의 유족 10명이 국가와 수지 김씨 살해범 윤태식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42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수지 김씨 사망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받았을 것임에도 국가는 조직적으로 국가권력을 이용해 수지 김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고 윤씨를 오히려 반공투사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와 같은 남북분단 상황에서 원고들은 간첩가족으로 몰려 그동안 신분상의 불이익으로 인해 경제적 궁핍을 겪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까지 당했다.”면서 “이 모든 사정을 참작해 위자료로나마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재판부는 또 “원고들로서는 윤씨가 기소된 2001년 11월에야 진실이 조작됐음을 알게 됐으므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은 이유없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의 비참한 삶 수지 김 사건은 87년 1월 윤씨가 수지 김씨를 살해한 뒤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될 뻔 했다고 허위 신고하면서 시작됐다.안기부는 윤씨의 범행임을 간첩사건으로 조작했다. 사건 이후 16년 동안 수지 김씨의 형제 자매 6명은 인간다운 생활을 박탈당했다.사건 직후 전매청에 다니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던 언니 A씨는 갑자기 해고당한 뒤 정신이상까지 생겨 그해 겨울 숨졌다.남편은 술로 날을 지새우다 교통사고로 폐인이 됐다.오빠 B씨도 술로 세월을 보내다 2000년 7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4명의 여동생들도 불행한 삶을 살았다.C씨는 남편과 불화 끝에 결국 이혼했다.현재 딸과 함께 단칸방에서 살면서 울화병과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홍콩에서 수지 김씨와 함께 살았던 D씨는 사건 발생 후 안기부의 강요에 따라 이혼하겠다는 어이없는 결정을 내렸다.다른 두 동생도 가정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2001년 검찰의 재수사로 진상이 밝혀진 이후 소송을 하려 했으나 비용이 없어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간신히 독지가의 도움으로 2800만원을 구하고 나머지 1000만원은법원에 소송구조 신청을 내,소송 인지대 3800만원을 해결했다. 사건을 맡은 이덕우 변호사는 “이례적으로 법원이 거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해 환영하지만 늦은 감이 있다.”면서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법무부장관 등 정부대표자가 나서 사죄,배상했어야 옳았는데 이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영표 정은주기자 tomcat@
  • 양동현 ‘美사냥 특명’/ 세계청소년축구 오늘 첫 격돌

    ‘양동현 너를 믿는다.’ 한국 청소년축구대표팀(17세 이하)이 프랑스 유학파 양동현(사진·바야돌리드)을 앞세워 북중미 강호 미국 사냥에 나선다.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은 14일 밤 핀란드 라티에서 미국과 D조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한국이 이 대회 본선에서 미국과 격돌하는 것은 지난 1987년 캐나다대회 이후 16년만.당시 서정원 신태용 노정윤 등의 활약속에 4-2로 이기고 8강에 올랐다.이번에도 미국과의 첫판을 이겨 1차 목표인 8강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은 양동현의 플레이에 큰 기대를 건다.부산대회 미국전에서 2골을 폭발시키며 상대 수비수의 경계대상 1호로 떠올랐다.핀란드 카메룬과의 현지 연습경기에서도 골을 터뜨리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양동현은 “기회가 오면 반드시 골로 연결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발이 빠르고 개인기가 좋은 어경준(FC 메츠)은 후반 ‘조커’로 투입될 예정이다.4-4-2 시스템의 다이아몬드형 허리 좌우에는 이용래(유성생명과학고)와 신영철(풍생고)이 기용돼 측면 공략에 나서고,이상협(동북고)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는다. 윤덕여 감독의 말처럼 미국팀의 경계대상 1호는 프레디 아두.현란한 드리블과 골 결정력을 갖춰 공간을 내줄 경우 자칫 낭패를 볼 공산이 크다.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흑인 특유의 유연한 몸동작속에 틈만 나면 1∼2명쯤은 쉽게 제치는 개인기를 갖고 있다. 북중미 예선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미국의 본선 진출을 이끈 아두는 비록 나이가 14세에 불과하지만 ‘미국축구의 미래’로 불릴 만한 실력을 갖췄다.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명문인 인터 밀란이 ‘러브콜’을 보낸 바 있고 나이키도 지난 5월 100만달러 이상의 스폰서계약을 맺은 것에서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한편 국제축구연맹(FIFA)은 프리킥 때 주심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비수가 공으로부터 9.15m 떨어지지 않으면 프리킥 지점을 골문쪽으로 전진시키는 ‘9.15m 전진’이라는 새로운 룰을 시범적용키로 했다. 박준석기자 pjs@
  • [폴리시 메이커]통일부 윤미량 이산가족1과장

    ‘1&1(원 앤드 원)’ 통일부 윤미량(사진) 이산가족1과장이 추구하는 정책의 목표다.한 사람이라도 더,하루라도 빨리 이산가족들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다짐이다. 윤 과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1∼7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줄곧 직·간접적으로 담당해 왔다.지난해 10월 이산가족 주무 과장이 된 뒤에는 직접 금강산 상봉 현장도 방문하고 있다. 윤 과장의 이산가족 정책은 ▲현재의 제한된 상봉 채널을 최대한 활용하고 ▲앞으로 만남의 채널을 더욱 다양화하는 것이다. 윤 과장은 최근에는 비동수(非同數)·비동시(非同時) 상봉 추진에 중점을 두고 있다.북한의 이산가족 자원이 적기 때문에 남측 가족이 더 많이,더 자주 가야 한다는 것이다.또 금강산에 남북이산가족 면회소가 건설되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영상 상봉’도 추진할 계획이다.어렵지만 국군포로나 전시납북자들을 이산가족상봉 행사 때마다 드러나지 않게 포함시키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윤 과장은 “6·15 이후 남북의 1399가족,7109명이 상봉했고,1만7000명이 생사를 확인한 뒤 서신을 교환했다.”고 밝히고 “아쉽지만 지난 85년 일시적으로 65가족이 상봉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윤 과장은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7차까지 진행되면서 차츰 덜 민감해지고,덜 이벤트적인 행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북한측도 다른 경협사안과 비교할 때 이산가족 문제는 비교적 유연하게 다루며 협조도 잘 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산가족 정책의 핵심은 공정성이다.윤 과장은 “1,2차 때 상봉가족을 선정하면서 정책적 배려를 했다가 부작용이 난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기회균등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강영훈 전 총리도,심지어 이산가족을 이끌고 금강산에 오가는 적십자사 서영훈 총재도 아직 상봉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산가족 보도와 관련,윤 과장은 “다른 정책에 비해서 언론의 협조를 많이 받는 편”이라고 말했다.윤 과장은 그러나 “노인들은 마음이 약해서 신문에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좋은 소식이 나오면 정말로 믿다가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날 때 쇼크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희망했다. 윤 과장은 남북적십자회담의 대표도 맡고 있다.여성이 적십자회담 대표에 임명된 것은 30년 회담역사상 윤 과장이 처음이다.올해 43세인 윤 과장은 마산여고,중앙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87년 행정고시 30회에 합격,통일부에 들어왔다.또 ‘제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가 있는 영국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윤 과장이 특별히 연구한 분야는 여성학. 윤 과장은 이를 북한 여성 연구에 접목시켜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북한여성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핵 폐기장 “안전” 20년간 설득 주민들이 유치 앞장

    전북 부안의 핵폐기장 유치가 보상 문제 등을 둘러싼 지역주민과 정부간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다.개별 보상을 하지 않고도 주민들의 지지 아래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미국과 일본의 경우를 소개한다.일본 아오모리(靑森)현 롯카쇼무라는 지방주민이 적극 참여한 대책협의회를 통해 모든 일을 대화로 풀어냈고 미 네바다사막의 유카 마운틴 핵폐기장은 정밀지질조사를 통한 안전평가등 과학적인 방법으로 주민설득에 성공했다. ■美 네바다사막 유카 마운틴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은 20여년에 걸친 논쟁 끝에 지난달 네바다 사막의 ‘유카 마운틴(Yucca Mountain)’을 사상 첫 핵 폐기물 영구 처분장 부지로 선정했다.지금도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시위가 잇따르지만 ‘개별보상’이나 ‘부지선정 철회’ 등의 요구는 아니다.주로 핵 폐기물을 처분장까지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수십년에 걸친 정밀 지질조사와 과학적인 환경평가를 토대로 진행된 데다 각 단계마다 의회의 승인하에 사업이 이뤄져 부지 선정 이후정부에 번복을 요구하는 집단시위는 보기 어렵다.20년간 계속된 공청회 등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설득,폐기장 안전에 신뢰도를 높인 게 주효했다. ●의회가 주도하는 핵 폐기장 건설 민간 원자력 발전소와 핵 개발 및 군사시설 등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영구히 보관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1957년에 나왔다.미 국립과학협회는 공공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핵 폐기물을 지하 깊숙이 수천년간 저장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지금까지는 각 주와 민간 발전소의 임시 저장소 등에 폐기물을 보관했으나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면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미 의회는 1982년 ‘핵 폐기물 정책법(NWPA)’을 제정,행정부가 핵 폐기물 영구 처분장의 건설에 책임지도록 규정했다.관리 및 처분 비용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민간 발전소와 군사시설 등이 부담한다. 에너지부는 1983년 10년에 걸쳐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6개주 9개 후보지를 선택했다. ●18년간에 걸쳐 40억달러의 조사비용 투입 의회는 1987년 유카 마운틴만을 대상으로 한 타당성 검토를 지시했다.법안은 유카 마운틴이 적합하지 않다는 증거가 나오면 즉각 계획을 취소하고 다른 부지를 선정하라고 덧붙였다.의회는 핵 폐기물 기술 검토위원회까지 신설,에너지부의 기술적·과학적 타당성을 별도로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1999년에는 의회 산하 핵규제위원회(NRC)와 연방정부 기관인 환경청이 폐기장의 안전성 기준과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이중·삼중으로 평가기준이 강화되고 과학적 조사가 뒤따르자 당초 1998년을 목표로 한 영구 처분장 건설은 2003년에서 다시 2010년으로 연기됐다. 2001년 에너지부는 유카 마운틴을 의회에 최종 부지로 추천했으며,지난달 미 의회는 이를 승인했다.2005년 건설 허가를 받으면 2010년 완공이 목표다. ●지자체를 위한 예산지원만 있을 뿐 개별 보상은 ‘NO’ 핵 폐기장이 들어설 나이(Nye) 카운티는 에너지부와의 협상을 통해 폐기장 건설에 따른 사회·경제·공공안전 등에 대한 보상책으로 3000만달러의 연방예산 지원을 다짐받았다.하원에서 통과됐으나 상원에서는 2000만달러로 삭감돼 상·하원 조율을 남겨두고 있다.그러나 법안은 주민 개개인에 대한 보상은 규정하지 않고 있다. 나이 카운티가 얻어낸 조건은 ▲방사성 누출에 대비한 비상 및 의료 시스템 구축 ▲핵 연구 및 발전센터 건립 ▲직업과 기술지원을 위한 과학·교육 프로그램 마련 ▲연방 소유지 일부 카운티로 이전 ▲태양력 및 풍력과 같은 대체 에너지 프로젝트 투자 ▲핵 폐기장 감시를 위한 지속적인 자금 지원 등이다. ●핵 폐기물 운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커 지난달 25일 라스베이거스에는 미 국립과학협회 주최로 공청회가 열렸다.나이 카운티뿐 아니라 네바다 주민 대표들이 참석해 핵 폐기물 운반이 대도시를 경유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성토했다.주민 대표들은 핵 폐기물 차량들이 관광지이자 인구 밀집지역인 라스베이거스와 리노,토노파 등을 관통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통량이 적은 도로를 택하거나 새로운 도로 또는 철로의 건설을 주장한다.지역 주민들은 폐기물 운송이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이슈라고 말한다.단순히 방사성 노출 때문만이 아니라 핵 폐기물은 테러세력들이 노릴 만한 ‘움직이는 핵무기’인 점을 내세우고 있다. 현재 핵 폐기물은 39개 주 129개 임시 저장소에 분산 배치됐으며,이 가운데 35개주 78개 저장소는 인구 밀집지역과 강·호수·해변 등 테러공격시 환경오염과 주민피해가 큰 곳으로 분류됐다. mip@ ■日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도쿄 황성기특파원|“안전제일을 바탕으로 마을의 웅대한 자연과 핵 연료 사이클을 공존공영시키는 것이 우리의 기본입장입니다.” 지난달 29일 일본에서 유일한 핵 폐기장이 있는 아오모리(靑森)현 롯카쇼무라 마을사무소.후루카와 겐지 촌장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견학온 한국 시찰단에 이렇게 설명했다. 홋카이도(北海道)와 바다를 두고 떨어져 있는 롯카쇼무라는 도쿄에서 700㎞ 떨어진 혼슈(本州)의 최북단 바닷가 마을.인구 1만 1600여명의 조그만 이 마을에는 전북 부안군 위도에 지으려는 것과 같은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은 물론 한국에는 없는 우라늄 농축공장,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임시저장소 등도 자리잡고 있다. ●시설유치에 주민들이 적극 나서 1974년 7월 일본의 10개 전력회사 연합체인 ‘전기사업연합회’가 롯카쇼무라에 원자력 시설의 입지신청을 했다.한달 뒤 신청을 심의하기 위해 롯카쇼무라 의회,단체장,주민 등 80명이 ‘원자연료 사이클시설 대책협의회’를 구성했다.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이듬해 1월 협의회는 “관련시설 건설에 협력하겠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전력회사의 입지신청에서 주민의 폐기장 건설 승인까지 딱 반년.롯카쇼무라 기획조정과의 기무라는 “당시 반대가 없지는 않아 옛 사회당,공산당 등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을 펼쳤으나 주민의 상당수는 건설에 찬성을 했다.”고 덧붙였다. ●폐기장 유치의 키워드는 지역진흥 롯카쇼무라의 한 관계자는 부안군 위도 얘기를 꺼내자 “우리 마을도 옛날에 현금보상이 이뤄졌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 사정’을 들은 적 있다며 부러운 듯 응수한다.그러나 기자가 “현금보상 말이 있었으나 각료회의에서 백지화됐다.이미 과거 얘기”라고 소식을 전하자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주민들은 가난한 롯카쇼무라에 원자력 시설 유치가 지역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국가에 두 가지 제안을 했다.첫째,공사 가운데 지역 건설업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롯카쇼무라에 맡길 것.둘째,국가가 지원하는 보조금은 롯카쇼무라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유연성’을 인정해줄 것. 지역진흥의 핵심은 국가로부터의 지원금.공사착수 2년 뒤인 1988년부터 2002년까지 롯카쇼무라가 국가로부터 받은 교부·보조금은 211억엔에 달했다.명목별로 보면 ▲전원(電源)입지촉진대책 교부금 183억 5000만엔 ▲전원 입지특별교부금 13억 2000만엔 ▲원자력발전시설과 입지지역 장기발전대책 교부금 8억 4000만엔 ▲홍보안전대책 3억 1000만엔 ▲전원입지와 초기대책 교부금 2억 8900만엔 ▲전원지역 산업육성지원 보조금 8600만엔 등이다. ●가장 가난했던 마을이 윤택한 고장으로 14년간 투입된 교부·보조금은 주민 한 사람으로 치면 182만엔 가량.덕분에 일본에서 손꼽힐 정도로 가난한 고장이던 롯카쇼무라의 1인당 소득은 아오모리현의 평균 소득 251만엔을 훌쩍뛰어넘는 320만엔(2000년 아오모리현 조사)이 됐다.이런 소득수준은 일본 전국 평균(299만엔)을 웃도는 것이다. 학교 등 교육·문화시설 건설에 55억엔,도로·하수도 정비에 42억엔,양로원 등 사회복지 시설에 30억엔,산업진흥에 25억엔,나머지는 스포츠·의료·통신 등에 투자됐다. 폐기장 주변에 동양 최대의 화훼단지도 들어서는 등 외형적으로는 살기좋은 고장이 된 것은 분명하다. ●지역진흥을 위해 다른 지자체도 손들어 막대한 돈이 지원되고,숫자상으로는 풍요한 고장이 됐으나 원자력 시설이 집중돼 있는 데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아오모리현 지역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주민의 87.5%가 “불안하다.”고 대답했다. 건설 중인 재처리 공장의 부실공사가 지난해 적발됐는가 하면 우라늄 농축공장에서 우라늄의 농도 조절용기에 이상이 발생하는 등 적지 않은 사고가 일어났다. “지역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스기야마 마사시(杉山肅) 무쓰 시장은 지난 6월26일의 기자회견 때 일본 최초의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시설의 유치를 표명했다. 얼마 전 당선된 미무라 신고(三村申吾) 아오모리현 지사의 동의를 얻으면 도쿄전력은 일본 정부에 사업허가를 신청하게 된다.순조롭게 진행되면 2010년부터 사용후 연료의 저장이 시작된다. marry01@
  • 盧 “정부 자율권 위협 심각”장차관급 2차 국정토론회

    노무현 대통령은 1일 “지난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정부가 국가방향을 주도하는 힘을 상실해 정부의 자율권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으나 아직 바로잡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장·차관급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차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적어도 정부권력은 국가권력으로서 자율권을 가져,권위적이든 민주적이든 정부가 결정하면 그 방향으로 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여러 사회갈등 문제에 대한 지역·계층·집단간의 이견으로 정부가 제대로 자율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은 “국민선거로 선출된 국회와 정부가 국정주도의 힘과 자율성을 상실하고 타율적으로 이끌리면 선거라는 민주주의 기능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공직사회가 먼저 혁신해야 한다.”면서 “공직사회가 혁신을 하지 않고 국가가 먼저 혁신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혁신을 앞장서서 이끌어 나간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우리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오늘의 눈] 명분 약한 현대차 파업

    현대자동차가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벌이다 지난 28일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갔다.노조측이 휴가가 끝나는 8월2일 이후에도 파업을 강행키로 해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회사측은 “파업 한달이 지나면서 내수와 수출 주문이 밀리고 해외공장은 부품조달이 잘 안돼 가동을 중단했거나 가동중단 위기”라며 관리직 간부들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협력업체 도산소식도 들려오고 있다.노조는 “회사가 성실한 자세로 협상을 했으면 빨리 타결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합법파업에 따른 생산차질을 노조에 뒤집어씌우지 말라.”고 주장한다. 현대차의 파업은 지난 87년 노조가 생긴 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94년 딱 한해만 파업이 없었다.노조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개선 등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파업도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현대차 근로자들의 근로여건이 한달넘게 파업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한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현대차의 평균 임금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4배 수준으로 알려졌다.미국과 일본자동차 업체의 근로자임금이 자국국민소득의 각각 2배와 3배인 것보다 높다.하지만 현대차 근로자들이 자동차 1대(전차종 평균)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시간으로,일본 도요타의 21시간,미국 GM의 24시간보다 훨씬 길다. 올해 현대차 회사측이 내놓은 기본급 9만 5000원 인상과 각종 성과급 300% 지급 등의 임금안도 노조지도부는 기대 이하라고 거절했다.그렇지만 현재의 전반적인 경기상황으로 볼 때 결코 낮지 않다는 게 울산시민 등 외부의 일반적인 평가다. 노조가 협상테이블에서 양보하지 않고 있는 최대 쟁점인 ‘기득권 저하없는 주 40시간 근로 즉시시행’ 요구의 경우는 노조측도 회사차원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임을 인정하고 있다.정부에 대한 요구와 압박에 초점을 두고 있는 셈이다.합법이라고는 하지만 명분과 정당성이 약한 파업이라는 지적이 여기서 나오고 있다.이 점에서 휴가 뒤 노사의 새로운 협상 자세를 기대해본다. 강원식 전국부 기자kws@
  • 심판받지 않는 권력, 대법원 ‘대해부’/ KBS ‘한국사회를 말한다’ 새달2일 첫 방영

    “사법부의 개혁에 관한 글을 쓰고 난 후 ‘사표써라.안 그러면 좋지 않을 거다.’라고 법관회의에서 집중공격을 받았습니다.”(‘사법부의 관료화’라는 글을 한 주간지에 실은 뒤 재임용에서 탈락한 신평 전 판사) KBS1 ‘역사스페셜’의 뒤를 잇는 ‘특별기획-한국사회를 말한다’가 새달 2일 선을 보인다.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KBS가 추진한 일련의 개혁 프로그램 가운데 마지막 타자인 ‘한국사회를…’는 첫 방송부터 큼직한 아이템을 들고 나왔다.‘심판 받지 않는 권력,대법원’을 통하여 대법원에 정면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것. 오는 9월에는 대법관 인사가 예정되어 있다.최종영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다수 대법관도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임기가 끝난다.법조계가 새로운 대법관 임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이 시민단체,재야법조계는 ‘대법원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6년 동안 ‘추적 60분’‘일요스페셜’ 등 대표적인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맡아온 황용호 책임프로듀서는 “재야와 시민단체가 대법관 문호를 개방하라고 요구하는시점에 맞춰,지금까지의 대법원 구성의 과정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황 CP는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법원 내부에서 ‘사법파동’이라는 형태로 개혁흐름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사법개혁 문제를 제기할 적기”라고 덧붙였다. ‘한국사회…’는 사법부의 개혁을 촉구하는 법관공동회의 문흥수 부장판사 등 내부의 위기의식과 자성의 목소리를 전한다.또 최근 잇달아 도마 위에 오르는 대법원의 판결들,‘피라미드식 승진 구조’로 대변되는 인사 시스템,유신헌법 이래 바뀌지 않는 대법관 선임 방식 등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미국 연방대법원 취재 등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 본다. 제작관계자는 “앞으로도 정치자금,언론개혁,역사청산 등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아이템들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전의 ‘무늬만 개혁’인 프로그램들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걸어다니는 아마야구 기록실’ “11년간 3000여경기 챙겼어요”/대한야구협회 운영팀장 김용균 씨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라고 한다.프로야구 삼성 이승엽의 세계 최초 최소경기 40홈런 등 기록을 통해 다양한 관심거리가 불거진다.이같은 일은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으로 담아내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어 가능하다.야구는 기록지만 보면 경기 자체를 실제 본 것처럼 ‘복기’해 낼 수 있다. 대한야구협회 김용균(사진·37) 운영팀장은 11년째 3000여 경기의 기록을 아마추어야구 실록에 남긴 ‘기록의 달인’이다.웬만한 선수의 성적쯤은 언제,어디서든 줄줄이 꿴다.지난 1992년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공주고 노장진(삼성)이 선린상고를 상대로 세운 4-0 노히트노런,92년 고려대 이상훈(LG)의 14연속 탈삼진 기록 등을 주저없이 기억해 낸다.프로야구에서는 지난 87년부터 활약하고 있는 김재권(43) 기록위원이 28일 현재 1648경기를 지켜봤지만 김 팀장에게는 훨씬 못미친다.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판정관’ 기록원은 3시간 안팎의 경기시간 내내 한순간도 한눈을 팔 수도,자리를 비울 수도 없다.물론 몸이 아프다고쉴 수도 없다. 다른 종목과는 달리 심판이 내리는 볼,스트라이크,아웃,세이프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실책 여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도 따른다.타자가 진루하게 되면 안타나 실책에 의한 것인지,득점의 경우에는 타점과 자책점 여부를 결정해 기록해야 한다.심지어는 승리 투수 여부를 정해야 할 때도 있다. 실책을 주면 타자와 야수가 불만이고,안타로 판정하면 투수가 싫어해 늘 고민이다.“실수야 있었겠지만 제 권한을 과신하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워 냉정하게 판정하려고 늘 노력합니다.기록은 평생 선수를 따라 다니기 때문이죠.” 야구와 아무 관련이 없는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지난 92년 그저 야구가 좋아 봉급이 일반 직장에 견줘 절반에 불과한 이 길을 택했다.수천 경기를 기록하다 보면 야구가 지겨워질만도 하지만 여전히 경기를 보는 게 즐거운 ‘야구광’이다. ●야구가 좋아 선택한 ‘외길 인생’ 쉬는 날 경기 중계가 있으면 그는 어김없이 텔레비전 채널을 고정시킨다.오히려 기록원 생활을 하면서 이전보다 야구를분석적으로 보게 돼 또다른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한쪽은 점수를 내려고,한쪽은 점수를 안주려고 하는 긴장감과 경기가 끝난 뒤 작전 등을 복기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기록원은 경기중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챙겨야 하기 때문에 성격이 꼼꼼해야 한다.또 야구에 대한 센스와 순발력도 필수다. 매년 2월쯤 열리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강습회에 참여하는 것이 유일한 등용문이다.3·4수생이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22번째인 올해의 경우 모두 229명이 참여해 2명이 선발됐다.현재 KBO 기록원은 14명이지만 2000년 이후 들어온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대한야구협회 소속 기록원은 김 팀장을 포함, 모두 3명. ‘금실 좋은 부부는 서로를 닮는다.’는 말처럼 결혼도 잊은 채 기록에 빠져 지내다 보니 야구공을 닮는 것 같다는 그는 오늘도 소박한 소망을 안고 아마추어 야구의 보금자리인 동대문구장으로 향한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20년 외줄인생 후회는 없어요”최연소 인간문화재 ‘줄광대’ 김대균

    3m 높이의 팽팽한 줄 위로 한발 한발 내딛는다.이내 얼음을 지치듯 한가운데로 나가 부채를 펼치며 몸을 솟구친다.위아래로 출렁거리는 줄을 타며 동작은 더욱 현란해진다.줄광대는 갑자기 소리와 재담을 섞어가며 갖가지 잔재주를 부린다.숨죽이고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어느새 신명나는 줄박자에 빠져든다. 른 셋이라는 나이에 최연소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일명 인간문화재)가 된 김대균(37·경기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씨.사람들은 그를 이 시대의 마지막 ‘줄광대’로 부른다.하지만 20여년 동안 스무 걸음 남짓한 줄 위를 걸어 온 ‘외줄인생’의 서러움이 싫어 고단한 여행이지만 함께 나설 길동무를 찾고 싶어한다. “스승님의 그늘없이 홀로 줄타기 원형을 보존하고 지켜내는 일은 마치 1300년 세월의 무게로 다가오는 그런 압박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줄 위에 오르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천년의 맥을 이어온 위대한 예술,우리 고전 줄타기의 화려한 부흥을 꿈꾸기 때문이다.그 밑거름은 ‘줄타기의 대중화’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갖고 안성의시골마을에서 첫발을 내딛으려 한다.바로 예비 줄광대들을 키우는 터전을 그 곳에 마련하는 것이다. ‘줄타기 판줄’은 줄광대가 두 길 높이의 공중에 매단 줄 위에서 삼현육각의 반주에 맞춰 재담을 하고 춤도 추며 잔재주를 보여주는 연희예술.곡예만 보여주는 서양의 서커스와는 다르다.조선조 말까지만 해도 임금님 앞에서 공연했을 정도로 마당놀이의 꽃이었다.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 의해 수많은 명인들이 사라졌지만,줄타기 판줄은 조선 영조 때 명인인 김상봉 이래 최상천·김관보에 이어 스승인 김영철에서 김씨로 이어지는 계보를 갖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옛 것,자기 것만 고집하려는 올곧은 성격이 너무 강했어요.기술은 서로 공유해야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서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처음 줄을 만났을 때만 해도 외로움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줄을 타는 것으로 여겼다.그래서인지 배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50여년의 긴 세대간 공백이 생겼다. “제게 기술을 전수해준 스승님이 살아계신다면 80세가 되는데40∼60대 전수자 없이 곧 바로 저한테 넘어왔습니다.” 자신이 포기하면 이땅에 전통 ‘판줄’이 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을까? 공연이 없는 날이면 후원회나 문화재 관계자들을 만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2000여평 규모의 땅을 확보해 그 곳에 줄타기 놀이마당과 전수관을 짓겠다는 것이다.안성시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일이 잘 될 것같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그 곳을 아이들 놀이마당으로 개방하고,줄타기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보다 많은 전수자들을 키우고 싶어한다.나아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1곳씩을 ‘줄타기 지정학교’로 선정해 예비 줄광대들이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하는 계획도 세웠다. 발을 굽히고 한발을 줄밑으로 늘어뜨리는 외홍잽이.몸을 날려 돌아 앉는 거중틀기.외발을 꿇고 오른발을 세우는 무릎꿇기 등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입으로는 연신 걸쭉한 재담을 쏟아낸다. 김씨는 196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아홉살 되던 해 판소리와 북을 다루며 예인의 길을 꿈꾸던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용인으로 올라왔다.아버지가 일하던 용인민속촌에 자주 놀러갔다가 그곳에서 줄을 타며 후계자를 찾고 있던 김영철 선생(1920∼1988)의 눈에 띄어 줄 위에 올려진다.이후 15세 때 처녀공연을 가졌으며,87년 20세 때 줄타기 전 과정을 이수한 전수조교 자리에 올랐다. 중요문형문화재로 선정되던 지난 2000년 7월,국내 모든 매스컴이 역대 최연소 인간문화재의 탄생을 앞다퉈 보도했다.그는 당시 “줄 위에 서있을 때의 어려움보다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이 더 나를 외롭게 했다.”며 줄타기의 명맥을 꼭 잇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축제의 계절인 봄과 가을에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놀이공원 등에서 공연 제의가 쇄도하는 바람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일년에 서너차례 준비되는 해외공연에도 나서야 한다.여름철인 요즘,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지만 연습시간 말고는 집에 머물 때가 거의 없다.줄타기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을 펴내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틈틈이 원고도 쓰고 있다. 줄타기보전회장도 맡고 있는 김씨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 향기를 느끼게 하고 싶어요.그럴려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며 말을 맺었다. 안성 김병철기자 kbchul@
  • [열린세상] 벤처산업의 숙명

    벤처산업의 붐과 그 이후에 오는 거품의 붕괴는 우리 사회에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의지를 믿고 알토란 같은 자금을 코스닥 주식과 벤처기업 지분에 투자했던 대다수가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였다.정부도 거품붕괴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달래 줄 속죄양으로 매를 맞았다.부동산 졸부들의 흥청망청한 행태를 답습한 일부 벤처기업인들도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이런 경험들이 벤처 육성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를 낳고 있다.벤처기업에 관련된 사람들은 알맹이가 없는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협잡꾼으로 몰리고,벤처기업의 긍정적인 기능이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거품붕괴 후 3년.최근에 미국에서 IT산업 경기회복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다시 벤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벤처기업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이미지가 여전하다.이로 인하여 민간부문의 참여가 부족하고 정부도 벤처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벤처에 대한 이런 부정적 선입견은 얼핏 타당해 보일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벤처 붐과 거품 붕괴가 정치자금 조달을 위한 음모나 거액 전주들의 한탕주의로 발생했다고 굳게 믿는 투자자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다.실제로 매스컴에 보도된 실례들이 있으니 그런 선입견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붐과 거품 붕괴는 벤처투자의 구조적 문제로서,발전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로 보아야 할 것이다. 벤처기업의 붐과 거품 붕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같은 시기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모두가 겪은 세계적인 재앙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영국,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일본,타이완,이스라엘 등이 미국의 성공에 자극 받아 벤처육성에 관심을 기울였으나,IT경기 부진과 함께 찾아온 거품 붕괴로 고통을 받고 있다.또 벤처의 최선진국인 미국에서는 과거에도 이런 붐과 거품 붕괴 현상이 있었다.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의 폭발적 성공은 곧잘 과잉투자를 야기하여 추후에 거품 붕괴에 따른 후유증을 남긴다. 1980년대 초반에 미국 하드디스크 산업에서벤처투자자들이 근시안적 행태로 과잉투자를 했던 것을 상기해보자.당시의 시장 상황을 보면,1977년 2700만달러에 불과하였던 하드디스크 산업전체 매출은 1984년에는 24억달러에 달했다.또한 3년 뒤인 1987년에는 매출규모가 45억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이러한 시장의 확대는 벤처기업 창업과 자금조달 급증으로 이어졌다.1977년부터 1984년 동안 벤처캐피털 회사들은 약 4억달러를 투자하였는데,거품형성이 극에 달했던 1983년과 1984년에 이중 2억 7000만달러가 집중되었다.상장된 벤처기업들도 신주공모나 유상증자를 통해 8억달러를 유리한 조건으로 조달하였다.이들 하드디스크 벤처기업의 시가총액이 1983년 중반에 54억달러에 이를 정도였다.하지만 거품이 꺼진 1984년 말에는 14억달러로 추락하게 된다. 이때 형성된 투자의 거품은 나중에 과도한 경쟁을 촉발시켜 이익률을 감소시켰다.그 결과 자금공급이 축소되고 추가적인 연구개발이 지연되었다.기술발전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용이한 자금조달을 통해 연구개발을 촉진하는 선순환 고리가무너지면 경기위축을 초래하는 악순환 고리가 오는 것이다. 우리가 겪은 벤처대란은 정보화 시대 대두에 따른 IT산업의 급속한 성장기회를 인식하고,여기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다.성장에 대비한 투자를 멈추면 도태를 감수해야 한다.그러나 투자를 집행해도 성장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투자손실,인력감축,공장폐쇄와 같은 고통스러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그것이 성장산업이 안고 있는 숙명이다. 강 대 석 충남대 교수 경영학
  • [시론] 사공 많은 새만금

    농지와 수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추진해온 새만금사업이 환경단체의 반대와 정치인들의 동상이몽으로 배가 산으로 가는 모양이 될까 심히 우려된다. 새만금사업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 가운데 하나가 추진 배경이다.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여당 후보의 공약사업으로 낙후된 전북에 대한 정치적 배려에 의해 추진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사실은 그렇지 않다.60년대의 극심한 가뭄과 70년대의 세계적 식량파동으로 70년대에 이미 ‘서남해안 간척농지개발계획’이 수립됐고,80년대초 냉해로 인한 쌀 흉작을 계기로 이 계획이 타당성 분석과 관계 부처의 협의를 거쳐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 91년 착공해 13년 동안 1조 5000억원이 넘는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5대 정부에 걸쳐 추진되어온 대규모 국책사업이 방조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사업추진 목적이 흔들리고 있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22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조정실은 “새만금사업의 매립지 면허를 산업·연구·관광단지 등 다른 용도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아마도산업개발을 원하는 전북도민의 희망과 해수유통을 바라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모두 만족시키고,법원에서 제기한 수질문제를 비켜가기 위한 그럴듯한 해법인 것 같다. 결국 이것은 이솝우화에서 방앗간 주인이 아들과 함께 당나귀를 팔려고 가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에 이끌려 당나귀를 탔다가 나중에는 당나귀를 어깨에 메고가다 결국은 당나귀마저 잃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사업은 결코 비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해서 풀어갈 것은 아니다.간척사업은 전문성을 요구한다.새만금과 같은 대규모 간척사업은 섣부른 상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이 사업은 설계에서부터 공사에 이르기까지 당초의 사업목적에 맞게 일관되게 추진돼 왔다.그리고 쌀이 남아 휴경보상을 하는 상황에서 농지조성이 필요 없다는 주장도 새만금사업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우선 새만금의 농지는 지금 당장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10∼15년 이후에나 경작이 가능하다.공장,아파트,도로 등으로 매년 2만㏊ 이상의 농지가 전용되고 있는 현재의 추세라면 머지않아 우량농지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기상이변과 남북문제 등을 고려할 때 집단우량농지 확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도 새만금사업의 친환경적 추진과 활용을 위해서도 농지조성은 필연적이다.간척지의 농지조성은 갯벌을 성토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농지는 식량생산 외에도 자정능력,수자원 보호,생물서식지 제공 등의 환경적 기능이 뛰어나다.최근 국제사회에서는 농지의 식량생산기능보다 오히려 환경적 기능을 더 인정하고 있다.그리고 농지로 활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성이 낮은 것은 아니다.농지에 쌀 외에도 화훼단지와 같은 첨단농업으로 얼마든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아울러 담수호 조성도 결코 포기돼서는 안 된다.우리나라는 물 부족국가이다.더구나 새만금 주변지역은 만성적인 물 부족 지역이다.설혹 농지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담수호는 반드시 필요하다.일부에서는 수질에 상당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환경처리기술도 91년 환경영향평가서를 만들 당시보다 현저히 발달해 있어 추가적인 수질개선이 가능하다. 농지와 담수호 조성방안에 대해서는 99년부터 2년간 운영된 민관공동조사와 수차례의 공청회,토론회 등을 거쳐 타당성과 경제성,효율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 본래의 사업목적을 변경하면 더 큰 혼란이 빚어진다.거듭 강조하지만 농지가 다른 어떤 토지이용보다 환경 친화적이며,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권 순 국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
  • 기고 /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 시급

    한국 경제는 지금 선진경제(Developed Economy)로 도약할 수 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 뒤 8년이 지났다.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1만달의 함정’에 빠져 있다.일본이 지난 81년에 1만달러를 달성하고 6년 뒤인 87년에 2만달러를,5년 뒤인 92년에 3만달러를 달성한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상당히 뒤처져 있다. 최근 국내외의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국내 잠재성장률의 하락 추세는 일본의 80년대 고도성장 종료 시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제조업 수출경쟁력의 하강 조짐도 장기화되고 있다.이 같은 제조업의 침체와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탈출을 방치하면 우리도 일본과 같이 극심한 경기침체에 직면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전략이 매우 절실한 문제다.지금이 바로 그때다. 미국은 80년대까지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서비스업이 경제성장을 주도했다.그러나 93년 이후엔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선(先)순환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제조업이 경쟁력을 되찾고 성장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산업연구원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대(對) 개발도상국 수출변화 추이(90∼99)를 분석한 결과 일반기계,자동차,화학제품 등 주력 기간산업 제품군의 수출비중이 10년간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OECD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주력 기간산업이 여전히 강력한 성장엔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있어서도 국내총생산(GDP) 규모나 산업성숙 정도를 볼 때 국내 주력 기간산업의 역할은 10년 뒤에도 변함없이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다만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주력기간 산업의 역동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기술혁신과 산업의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심 부품소재의 원천기술 확보와 마케팅 역량 강화 등 질적 성장 추구 ▲주력 기간산업에 정보기술(IT),생명기술(BT) 등 신기술 접목을 통한 수요창출 및 경쟁력 확보 ▲안정적 노사관계 유지,우수 인력공급 등 기업환경 개선 ▲산업별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정부와 기업의 역량 집중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여기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는 지능형 연료전지(하이브리드)자동차,홈네트워크,인텔리전트SOC,나노섬유,한국형 액화천연가스(LNG)선,액정디스플레이(LCD),바이오칩 등 총 55개 제품(분야)을 꼽을 수 있다. 국내산업의 연구개발은 상용화에 가까운 개발연구 비중이 약 85%로 높은 반면,응용 및 기초연구의 비중은 각각 13%,2%로 낮은 수준이다.이런 구조로는 기술수명 주기상 후발 개도국의 빠른 추격을 받게 되며,선진국과의 근본적인 격차를 줄일 수 없다고 확신한다.따라서 기술개발 대상을 보다 본원적인 기술개발로 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공공부문 주도의 산·학·연 공동연구가 산업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세계 R&D(연구개발) 투자의 1∼3위 국가인 미국,일본,독일은 산업계 중심의 연구를 유도하기 위해 각각 회사 형태,재단법인,협회조직 등을 만들어 이용하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을 중점 육성하고 벤처기업 확인제도를 민간평가체제로 전환하며,인수합병(M&A) 및 코스닥시장 활성화 등의 중소기업 혁신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지주회사를 활성화하는 등 선진적 회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시장기능 중심의 구조조정 시스템과 법적 퇴출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박중구 산업연구원 산업동향분석실장
  • 빛으로 스러져간 ‘광주의 어머니’/ 인권운동 대모 조아라 여사 타계… 향년 92세

    광주 인권운동의 대모로 불려온 조아라(曺亞羅·92) 광주YWCA 명예회장이 8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조 회장은 1912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일제 때인 1931년 광주 수피아여고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다 1945년 광주YWCA와 인연을 맺은 뒤 26년동안 총무를 맡았다.73년부터 82년까지 9년동안 이 단체 회장으로 일하면서 여성들의 법적·사회적 권익향상에 몰두했으며,83년부터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광복 전에 일제의 폭압정치에 항거하다 광주학생운동과 신사참배 거부 조종자로 몰려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를 만들고 문을 닫았던 광주YWCA를 재건하는 데 힘을 쏟았다.또 전쟁고아를 돌보는 성빈여사를 개원했고 52년에는 3년제 야간중학교인 호남여숙을 설립했다.또 소외받은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계명여사를 세우기도 했다. 조 회장은 지난 80년 현대사의 비극인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수습대책위원으로 일했고 이 일로 투옥돼 6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했다.이후 구속자와 부상자를 돌보면서‘광주의 어머니’로 불렸다.지난 87년부터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사업추진회 고문을 맡았고 92년에는 처음으로 열린 남·북 여성들의 간담회에 남측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광주시민대상(1988년),제2회 정일형 자유민주상(1998년),제35회 YWCA전국대회 대상(2003년)을 받았다.유족으로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큰 아들 이학인씨와 전주 예수병원 의사인 작은 아들 학송씨 등이 있다. 장례는 민주사회장(5일장)으로 치러지며,빈소는 광주 북구 중흥동 무등장례식장과 광주YWCA에 마련됐다.발인 12일 오전 10시,장지는 5·18 광주 국립묘지.(062)524-3511.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씨줄날줄] 보리밥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하동군 평사리에는 아직도 넓은 보리밭이 있다.바람에 물결치는 보리밭은 수채화처럼 서정적이었다.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평사리 사람들의 고달팠던 삶의 애환도 물결치는 듯했다.옛날의 보리밭은 가난의 보릿고개를 넘는 푸른 희망이었다.젊은이들의 사랑과 보리피리의 낭만도 있었다.그러나 보리밭은 생활이 윤택해지며 점점 줄어들고 있다.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지도 모른다.군의 식단에서 보리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7월1일부터 군 장병에 대한 급식에서 보리쌀을 완전히 없앴다고 밝혔다.창군이래 55년만에 보리쌀 급식이 중단됐다.쌀밥만 먹어온 신세대 장병들의 입맛에 맞추고 정부의 쌀소비 확대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다.군의 급식은 1985년까지 쌀 70%에 보리 30%였다.그 이후 보리의 비율은 단계적으로 줄어들었다.87년에는 15%,88년에는 10%,2002년에는 5%였다. 보리밥은 이미 오래전에 주식의 자리에서 밀려나 ‘건강식품’이 되었다.그런데도 군대에서 보리밥이 사라졌다는소식을 접하니 왠지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다.가난한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보리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열무김치와 된장에 썩썩 비벼먹던 보리밥은 정말 꿀맛이었다.농가월령가에도 나오듯 상추쌈에 싸먹는 보리밥은 여름철 별미였다. 보리밥에는 비타민 B1과 B2가 풍부하다.식이섬유가 많고 혈당 조절 효과도 있다.그래서 당뇨병·대장암·심장병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각기병을 예방하고 변비를 방지하는 데도 좋다.그러나 뒤집어 보면 설사를 유발하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그리고 쌀보다 영양가가 떨어진다.쌀중에 현미가 건강에 좋듯이 보리도 눈을 벗겨내지 않은 통보리가 더 좋다.보리눈에는 칼륨·칼슘·비타민C·마그네슘 등 여러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이 들어 있다. 옛날의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었다.쌀이 없어서 보리밥을 먹었다.그러나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환영받고 있다.서울에 있는 어느 호텔은 열무 보리밥 세트 메뉴를 만들어 3만원을 받고 있다.보리밥이 값비싼 식품이 됐다.그러나젊은 세대들에게는 상상의 식단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이창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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