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87년 이후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이벤트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931
  • [Weekend inside] 한은 ‘내년 3.7% 저성장’ 의미

    [Weekend inside] 한은 ‘내년 3.7% 저성장’ 의미

    한국은행은 9일 새해 경제성장률을 3.7%로 전망하면서 내년 선거가 경제에 미칠 영향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상우 한은 조사국장은 “과거 행태로 미뤄 봤을 때 선거에 따라 어떤 경제행동이 늘어나는지는 성장과 물가 모든 부문에서 고려한다.”고 말했다. 내년은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이 동시에 치러진다. 1992년 이후 20년 만이다. 침체냐 둔화냐를 놓고 따질 정도로 경제전망이 암울한 상황에서 총선과 대선의 동시 개최는 그나마 희망을 가질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열리는 내년에는 수요 확장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봤다. 한은은 “내년에 큰 선거가 2개나 열려 선거에 따른 경제활동을 고려해 성장 및 물가 모두에 반영했다.”면서 “일례로 평소 없었던 선거 포스터, 선거운동에 따른 음향시설 등의 수요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물가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경기둔화로 인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경제전망에서 총선·대선의 효과는 수치가 아닌 역대 선거에서 경험적으로 반영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선거로 인해 경제성장률은 다소 올라갈 전망이다. 선거와 관련된 물품의 수요가 늘어나는 한편 정치 기부금이 증가하면서 이 돈은 선거기간 동안 소비로 이어진다. 일자리 역시 늘어날 전망이다. 통상 선거를 앞두고 공공요금을 억제하기 때문에 물가도 다소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내년의 경우 경기둔화로 인해 일자리 확장과 물가 안정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경기둔화로 선거철 수요가 줄어들 경우 일자리가 늘어나는 대신에 근로자의 초과근무시간만 증가하는 데 그칠 수 있다.”면서 “공공요금도 올해까지 장기간 억제했기 때문에 내년에 선거가 있음에도 공공요금이 상승할 수 있어 물가 안정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는 가계 소비를 증가시키고 기업의 설비투자를 줄이기도 한다. 한국경제학보(2011년 봄호)에 실린 논문 ‘정치적 불확실성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13대 대선(1987년)~17대 대선(2007년) 및 13대 총선(1988)~18대 총선(2008년)의 경우 선거 때마다 가계 소비는 0.01% 늘었고 설비투자는 0.03~0.07% 줄었다. 선거 전후에는 코스피지수가 하락하고 이자율 등 금융변수의 변동성이 커지는데 이에 따라 기업은 불확실성 증가로 투자를 미루고, 가계는 저축보다 소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통상 코스피지수는 대선날로부터 1년까지는 크게 오르지 않다가 이후 상승하기 시작해 2년이 되는 달에 최고점(선거일 주가의 160%선)에 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거의 경제적 효과는 총선보다는 대선의 영향이 더 많았다. 총선보다는 대선이 법이나 제도의 변화를 더 많이 가져오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거의 영향을 수치로 환산해 경제전망에 반영하는 것이 좋지만 대통령제가 연임제, 7년 단임제, 5년 단임제 등 개헌을 통해 계속 바뀌어 왔기 때문에 경험치가 충분하지 않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의 경제전망으로 금융시장은 내년 금리 인하-인상을 놓고 헷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금리를 동결하면서 “유럽과 같은 마일드 리세션(완만한 경기침체)이 없다.”고 말해 금리인하 가능성을 낮게 잡았다. 하지만 이날 경제전망에서는 “유로존 파국이 있을 경우 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금리 인하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중국의 긴축완화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은 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해 국제적으로는 긴축 완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는 내년 2분기에 인하될 것”이라면서 “2분기에 마일드 리세션에 대한 위협을 받고 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전분기 대비 0.5% 성장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통화정책 기조 전환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승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최근 태국과 호주의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시장에서 금리인하를 예측하지만 둘 다 자연재해로 통화량을 늘려야 하는 상황으로 우리나라와 여건이 다르다.”면서 “오히려 내년 초까지 금리가 동결된 후 하반기에는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경주·오달란기자 kdlrudwn@seoul.co.kr
  • ‘수술 감염’ iCJD 두 번째 환자 발견

    지난해 11월 사망한 54세 여성환자 이후 국내에서 두 번째로 뇌경막 이식에 의한 의인성(醫因性)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iCJD) 환자가 발견됐다. 이 환자는 뇌경막 감염을 차단하는 기술이 개발된 1987년 5월 이후에 수술을 받았음에도 원인물질인 ‘프리온’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향후 환자 추가발생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보건당국은 언론 보도 후 뒤늦게 환자를 추적한 데다, 수술기록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sCJD)이라고 발표했다가 다시 외부 감염에 의한 iCJD라고 말을 바꿔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sCJD로 진단받은 뒤 법정감염병 신고체계를 통해 보고된 48세 남성의 병력을 조사한 결과, 뇌경막 이식 후 외부 감염에 의해 발생한 iCJD 환자로 확인됐다고 8일 밝혔다. 이 남성은 1988년 5월 사고로 두경부 손상을 입은 뒤 거주지인 광주광역시의 한 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받았다. 이때 환자는 프리온 감염 위험성이 제기된 뇌경막 ‘라이요두라’를 이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라이요두라는 iCJD 환자 급증에 따라 1987년 5월부터 프리온을 제거한 제품이 생산돼 이후 수술 환자는 감염가능성이 낮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1987년 5월 이전에 생산한 제품이 뒤늦게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어 보건당국의 발표는 신뢰를 잃게 됐다. 이번 환자의 사례에서도 수술에 사용된 뇌경막 제품이 언제 생산됐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보건 당국은 설명했다. 이 환자는 지난 5월 어지럼증과 기억상실 등의 증상을 보이다 갑자기 쓰러져 식물인간이 됐다. 당시 병원 측은 이 환자를 sCJD로 분류했으며, 보건복지부는 추가 조사도 없이 이를 sCJD로 발표했다가 가족들이 최근 환자 사례를 외부에 알리면서 뒤늦게 당국이 조사를 벌였다. 질병관리본부가 “뇌출혈 환자는 뇌경막을 이식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일부 신경외과 전문의의 말만 듣고 “sCJD로 확인됐다.”며 엉뚱한 결과를 발표했던 것. 이후 라이요두라를 사용한 수술기록이 나오자 다시 이날 iCJD 환자라고 정정 발표를 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관련, 질병관리본부는 법정전염병 감시체계가 구축된 2001년 이후 신고된 CJD 의심환자 210명의 의료기록을 모두 추적하기로 했으며,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신경과학회 등에 CJD 의심 환자의 수술기록 등 병력을 상세히 기록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전설의 팝 DJ, 45년 음악인생 김광한씨

    [김문이 만난사람] 전설의 팝 DJ, 45년 음악인생 김광한씨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좋은 단어를 꼽으라면 무엇일까. 우선 사랑이겠다. 그 다음은? 아마 추억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니 말이다. 사랑도 쌓인 추억만큼 오래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연말 분위기에 맞춰 추억의 여행을 한번 해 볼거나. 아이돌 문화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7080문화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세시봉’도 그렇고 ‘7080콘서트’도 그렇다. 해는 저서 어두운데, 갈 곳이 딱히 없거들랑 1970~80년대 많은 인기를 끌었던 스타들의 모습과 추억의 장소를 가 보면 무척 반가움을 느낄 수 있다. 다름 아닌 서울 세종로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이다. 제목이 그럴듯하다. ‘여기는 대한민국 1970KHz’, 이쯤 되면 대충 감이 잡히겠다. 청바지와 생맥주, 통기타로 기억되는 시절, 힘들고 지친 삶 속에서도 낭만과 꿈이 있었던 1970년대의 추억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로 1960~80년대 근현대 생활 유물들을 재현하면서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역동력과 고단했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한껏 추억의 여행을 맛보게 한다. 여기에서는 과거의 TV광고 영상과 ‘국민체조’ 노랫소리 등 옛 기억의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고, ‘선데이서울’ ‘소년중앙’ 등 각종 잡지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시절 구멍가게에서 팔았던 과자, 음료수, 껌, 담배 등의 물품도 진열돼 있어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이런 것을 반추하며 전시실 끝 부분에 가면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추억의 음악실’이 있다. 1970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음악다방 DJ가 직접 당시 가요와 팝송을 틀어 주기에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옛날처럼 DJ가 신청곡을 받고 노래를 들려주던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한다. 특히 매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까지는 당시 유명했던 DJ 김광한, 박원웅, 최동욱 등이 직접 출연해 팬들과 만난다. 지난 5일 추억의 음악실에서 김광한(65)씨를 만났다. 1966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FM 전파를 내보낸 서울 FM방송에서 DJ로 처음 일을 시작했으니 45년 동안 팝송 전문 DJ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특히 방송 사상 ‘최연소 팝송 전문 DJ’라는 이름과 함께 이 방면에서 ‘전설’로 통한다. 그는 이런 수식어가 별로 반갑지 않은 듯 “그저 영원한 현역일 뿐”이라며 웃는다. 이런 그에게 요즘 무슨 일로 바쁜지부터 물었다. “인천 교통방송(밤 10시부터 12시까지)과 인터넷방송, 그리고 남양주 김준 재즈 클럽에서 음악 DJ와 감독 일을 하고 있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나면 제 사무실(뮤직코리아)에서 팝송을 연구합니다. 또 이곳(추억의 음악실)에서 DJ도 하고 있구요. 참, 또 있네요. 번역가 최경순씨의 매니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최씨는 그의 부인이다. 얼마 전 모리쓰 준코의 ‘내가 나에게 돌아가는 여행’을 번역 출간할 때 출판기념회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김씨는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고 지금도 닭살 돋는 신혼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웃었다. 어렵게 살아가는 젊은 학생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도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 중 하나다. 억의 음악실에서 팬들과 만나는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인사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분들을 보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보다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낭만과 감성을 버무린 관계라고나 할까요. 팝스타 레이프 가렛 내한 공연 때 만났던 팬들도 가끔 만납니다. 그 얘기를 하면 정말 반가워하지요. 요즘 추억의 음악실에서 레이프 가렛 음악을 신청하면 당시를 떠올리고 서로 추억을 얘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지요.” 레이프 가렛은 자신의 수호신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30년 전 내한 공연 때 TBC FM 89.1MHz ‘탑 튠 쇼’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이때 공연 소식을 매일 전하면서 구름처럼 팬들의 귀를 불러들였다. 이후 김광한은 최고의 스타 DJ로 인기를 끌었다. 1983년부터 85년까지 3회 연속 인기 1위를 차지했다. DJ 사상 처음으로 CF를 찍고 영화 출연까지 했다. 또한 1987년에는 ‘김광한의 쇼 비디오 쟈키’라는 TV 프로그램에도 고정 출연했다. 출연료 대부분은 미국과 일본 등에서 음반을 직접 사 오는 일에 쏟아부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돈을 벌면 음반을 사고 책을 사고, 각종 비디오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라디오 시절 DJ는 선망받는 직업이었습니다. 특히 팝송을 안다는 것은 지식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으니 오죽했겠습니까. 팝송 DJ는 당연히 매력적이었지요.” 제대 후 그는 9년 동안 병아리 장사, 하숙집 관리인, 우유 배달, 신문 배달, 보험 판매, 아크릴 간판업 등 16가지 일을 경험했다. 정규 직업을 갖지 않은 것도 음악 공부에 올인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벌면 꼭 음반을 사고 음악 공부를 하는 등 일에 몰두했다. 음악다방 DJ 일도 그런 차원이었다. “1970년대에는 주로 음악다방 DJ였습니다. 이때 제가 원하는 팝송을 소개할 수 있었지요. 방송에 대한 대리만족도 됐지요. 음악다방 DJ는 무명 가수처럼 훈련 기간인 셈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신문 배달 시절을 떠올렸다. 이때 어려운 학생들을 접하면서 나중에 일이 잘되면 이들을 위한 공연을 하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 결국 1986년 서울 이태원에서 신대철, 임재범, 김종서 등이 무료 출연하는 자선 콘서트를 열어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방송을 떠나 있을 때에도 DJ라는 꿈을 결코 버릴 수 없었지요. 결국 1980년 4월 1일 TBC FM 89.1MHz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됐습니다. 2년 뒤에는 KBS FM에서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이라는 이름을 걸고 매일 오후 2시 방송하기 시작했지요. 당시 MBC FM에서는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방송에 복귀한 것은 1979년 DJ 박원웅씨가 음악 애호가를 초대하는 코너에 해박한 음악 지식을 갖고 있던 그를 작가로 기용하면서 인연이 됐다. 이듬해 김씨는 꿈에 그리던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을 맡았다. 이후 KBS와 MBC FM은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1980년대 팝음악의 절정기를 이끌게 된다. 음악 인생 45년 동안 음반은 어느 정도 모았을까 궁금해졌다. “한 1만여장 됩니다. 돈만 생기면 음반 사는 데 올인했지요. 팝의 본고장인 미국 등 여러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가서 직접 음반을 사 오고 했으니 현금으로 환산하면 아마 몇억원대 정도는 될 걸요(웃음). 마포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 잘 보관해 놓고 있습니다.” 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어 그동안 모아 온 음반이나 각종 음악 자료들을 통해 데뷔 50년 되는 해에는 ‘여기는 대한민국 1970KHz’처럼 ‘사색하는 김광한의 음악대학’을 열어 팬들과 정겹게 만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김씨는 2년 전부터 결식 아동을 돕기 위해 ‘찾아가는 김광한의 음악대학’을 열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악기에 대해 잘 모릅니다. K팝도 음악 소리가 아닌 율동으로 보여 주기 때문에 무엇으로 음악 소리를 내는지 알 수가 없지요. 저는 이들에게 영상을 통해 기타의 소리, 드럼의 소리 등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자신은 음악인으로 성공했다고 말한 뒤 “부모가 아이들에게 어느 대학 인기학과에 가라는 식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뭘 하고 싶은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도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음악을 했기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거듭 역설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젊게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별명이 17살 아저씨입니다. 젊게 생각하면 행동이 젊어지고 습관이 젊어집니다. 그러면 젊은 운명을 살게 되지요(웃음). 저는 40년 전 옷 스타일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진바지에 부츠, 헤어스타일, 잠바 등이 그러하지요. 유일한 스트레스는 부인과 싸울 때밖에 없습니다. 돈이야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고 하면 되는 것이구요.” 편집위원 km@seoul.co.kr ■김광한은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6년 서라벌예술대를 졸업했다. 그해 1월 우리나라 최초로 FM 전파를 내보낸 서울FM에서 최연소 팝송 전문 라디오 DJ가 됐다. 대학 시절부터 해박한 팝송 지식을 갖고 있던 것이 인연이 됐다. 1967년 군에 입대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9년 동안 병아리 장사, 우유 배달, 신문 배달 등 궂은일을 하면서도 음악다방 DJ 등을 하며 음악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다 1980년 TBC FM에서 다시 라디오 DJ로 복귀했다. 이듬해에는 KBS FM에서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 진행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인기 몰이를 시작했다. 이어 1999년 KBS 2FM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팝스’, 2004년 경인방송 FM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 등의 진행을 맡았다. 현재는 인천 교통방송과 김준 재즈 클럽 등에서 DJ 일을 하며 여전히 팝송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내년 2월까지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계속되는 ‘여기는 대한민국 1970KHz, 추억의 음악실’ DJ를 맡고 있다.
  • iCJD 추가환자 사례 조사 전문위 소집

    질병관리본부는 30일 의료 행위 과정에서 감염된 의인성(醫因性)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iCJD)에 따른 첫 번째 사망 환자와 관련, 추가 환자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1일 ‘CJD감시평가전문위원회’를 소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문위원회는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신경외과 전문의 등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회의체다. 회의에는 정부 및 민간 전문가 10명이 참석, 1987년 전후의 국내 의료기관 의무기록 등을 검토해 추가 환자 존재 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1987년 이전에는 이식용 뇌경막에서 iCJD의 원인인 변형 단백질인 프리온(Prion)을 수산화나트륨으로 제거하는 기술이 없었던 탓에 확인된 여성 사망자처럼 감염자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iCJD 추가환자 확인을 위한 조사 범위와 검사방법, 이후 조치 등도 중점 논의할 계획이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수술감염’ iCJD 국내사망 첫 확인] 보건당국 대책은

    [‘수술감염’ iCJD 국내사망 첫 확인] 보건당국 대책은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의인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iCJD) 환자수는 20개국 400명 수준. 이 가운데 뇌경막 이식수술로 감염된 환자는 20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38명이 독일 비브라운사가 제조한 뇌경막 ‘라이요두라’를 이식한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발생 시기는 인체조직을 그대로 사용한 1980년대에 집중돼 있다. 문제의 비브라운사는 1987년 5월부터 가공 과정에 iCJD 원인인 프리온 단백질을 제거하는 기술을 도입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망자의 뇌경막을 추출해 이식할 경우 여전히 iCJD 감염 위험이 있다고 판단, 1997년 사람의 뇌경막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현재는 소·돼지의 심장 조직이나 합성화학물질을 뇌경막 이식술에 주로 이용하고 있다. 소·돼지 뇌경막 조직도 iCJD 감염 위험이 있어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4개사 5개 제품을 수입해 사용하지만 안전성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규제하고 있고, 인체 뇌경막 조직 수입은 아예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련 연구에서 iCJD의 잠복기가 최대 30년까지도 가는 것으로 보고돼 있기 때문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1980~90년대에 수술을 받은 환자 중에서 추가로 iCJD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1987년 제품 리콜을 결정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 수년간 일부 제품이 유통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질병관리본부는 설명했다. 비브라운사는 현재 라이요두라 대신 라이요플란트라는 제품명을 사용하고 있다. 인체조직을 관리하는 식약청이 1998년에 설립된 데다 건강보험공단은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의료기록 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과거 수술 자료조차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 가나자와의과학대학원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신경병리학(Neuropathology) 2009년 10월호에 투고한 논문에 따르면 라이요두라가 1993년까지도 뇌수술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일단 신경과학회와 신경외과학회 등 관련 전문가들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해 1980년대 뇌경막 이식 등 위험요인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를 파악할 계획이다. 뇌경막 이식 위험 요인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본인 동의를 받아 의무기록을 확인하고 신경학적 검사를 통해 추적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박혜경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장은 “라이요두라는 사용한 지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 문건으로는 사실상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면서 “신경과와 신경외과를 통해 뇌경막 수술 환자 사례를 하나씩 발굴해 추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수술감염’ iCJD 국내 사망 첫 확인

    ‘수술감염’ iCJD 국내 사망 첫 확인

    감염된 조직 이식 등 의학적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인성(醫因性)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iCJD)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됐다.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중에서도 의인성은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인 프리온에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의 생체장기를 이식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발생한다. 마치 스펀지처럼 뇌에 구멍이 뚫리면서 빠르게 뇌세포가 죽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다. 보건 당국은 발견된 iCJD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촉발했던 ‘인간광우병’인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9월 iCJD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도 발표하지 않아 은폐 의혹을 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1987년 뇌경막 이식 수술을 받은 뒤 지난해 11월 숨진 여성 환자(당시 54세)에 대한 조직 검사와 동물실험을 한 결과 국내 첫 iCJD 사망자로 판명됐다고 29일 밝혔다. 이 환자는 CJD 환자의 몸에서 추출한 독일제 수술용 뇌경막인 ‘라이요두라’를 이식받았다. 수술 후 23년이 지난 지난해 6월부터 쇠약해지고 감각·운동장애 증세가 나타났다. 이후 5개월간 심한 공포증과 감정변화, 불면증, 환각 등의 증상을 잇따라 보여 한림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발병 5개월 만에 사망했다. 박혜경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장은 “확인된 iCJD는 소의 특정 조직을 먹었을 때 생기는 vCJD와는 무관하다.”면서 “추가 환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관리가 미흡했던 1980년대에 뇌경막 수술 등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에 대한 추적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수술감염’ iCJD 국내사망 첫 확인] 23년 잠복후 5개월만에 급속 악화… 추가감염 배제못해

    [‘수술감염’ iCJD 국내사망 첫 확인] 23년 잠복후 5개월만에 급속 악화… 추가감염 배제못해

    지난해 사망한 54세 여성에게서 의인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iCJD)이 발병한 것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에 감염된 사람의 뇌경막 조직을 이식했기 때문이라고 질병관리본부는 밝히고 있다. 뇌경막은 뇌조직 등 중추신경계를 감싸고 있는 3개의 뇌막 중 가장 바깥에 있는 뇌막이다. 이 여성은 1987년 암의 일종인 뇌수막종 제거수술을 받았다. 뇌수막종은 뇌경막에 발생하기 때문에 뇌경막을 다시 이식하는 수술이 필요했다. 이후 환자는 퇴원해 별 탈없이 일상생활을 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해 6월. iCJD 감염 사실을 모른 채 20년이 넘게 생활해 왔으나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지고 운동기능이 급격히 떨어졌다. 왼쪽 얼굴과 발가락의 감각도 점차 소실됐으며, 근육이 갑자기 수축하는 ‘간대성근경련’이 나타나기도 했다. 증상이 심해지자 환자는 서울의 대학병원 등 3곳을 옮겨다니며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뇌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뇌자기공명영상(BMRI) 촬영을 했지만 특이사항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퇴행성인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sCJD)이 의심돼 질병관리본부에 보고됐다. 이후 환자의 증상은 빠르게 악화됐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하면 심한 공포감으로 불안에 떨기도 했다. 게다가 수시로 감정이 변해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갔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환각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한 사물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이는 복시증상도 나타났다. ●iCJD 9월 최종확인후 발표 미뤄 이후 질병관리본부와 한림대 의료진의 공동 연구가 진행됐다. 환자가 23년 전 독일 비브라운사가 제조한 뇌경막 조직인 ‘라이요두라’를 이식한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에는 사망자의 뇌경막을 가공해 그대로 이식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었고, iCJD의 원인인 ‘프리온 단백질’을 수산화나트륨으로 제거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감염자의 인체조직을 통한 감염 위험성이 컸다. 질병관리본부는 환자가 사망하기 직전인 10월 한림대 성심병원에 환자의 뇌조직을 보내 정밀검사에 들어갔다. 검사 결과, 신경세포 주변에서 프리온 단백질이 관찰됐다. 1차로 iCJD로 판명됐다. 하지만 이전에 국내에서 동종의 환자 사례가 없었던 만큼 확진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질병관리본부의 설명이다. 환자는 결국 11월에 사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후 김윤중(한림대병원) 교수에 의뢰해 동물의 뇌에 사망자의 뇌조직을 이식, 올해 9월 최종적으로 iCJD임을 확인했다. 이후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은 데 대해서는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김 교수는 “해외 역학연구에서 200건의 사례가 있고, 대부분 같은 제품을 사용했으며, 잠복기도 유행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조직 이식과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CJD 안전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달 26일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CJD 의심환자 210명 중 CJD로 의심된 20명에 대해 2006년부터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우리나라 CJD 안전지역 아니다” 그 결과, 이번 iCJD 환자 외에 자연 발생한 sCJD가 7명, 유전에 의한 가족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fCJD)이 1명 등으로 확인됐다. 2명은 알츠하이머로 진단됐고, 2명은 대상에서 배제됐으며, 나머지 7명은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척수나 뇌조직, 장기를 먹어 생기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 환자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31)첫 여성 연쇄살인범 김선자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31)첫 여성 연쇄살인범 김선자

    ▲마리 라파르즈(1816~?) 늙은 남편과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결혼 1년 만에 남편을 비소로 독살한 프랑스의 여성 살인범. 그녀의 사건은 법의학사(史)에서 독살 혐의를 최초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강력범죄에서 여성의 위치는 대개 피해자다. 목 졸리고, 찔리고, 베이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강력범죄의 피해를 본 여성은 1만 9254명이었다. 남성(5649명)의 3.4배에 이른다. 하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늘 피해자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연쇄살인도 예외는 아니다. 1986년 10월 31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목욕탕 탈의실. 평일 아침 한적한 여탕 문앞에서 40대 여성이 가슴을 부여잡고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증상은 점점 더 악화됐다. 몸에 심한 경련이 일더니 여성은 곧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은 여성을 급히 응급실로 옮겼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병원에서 판단한 사인은 독극물 중독. 경찰은 어리둥절해하는 목욕탕 손님들을 모두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를 했지만 이렇다 할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가족들은 “평소처럼 이웃집 여자 K씨가 목욕을 하자고 해 아침 나절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자살할 만한 이유도 전혀 없었다. 이상한 점도 있었다. 목욕갈 때 걸고 나갔던 목걸이와 반지 등 패물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것은 줄줄이 이어질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신당동 목욕탕 독살사건으로부터 5개월이 지난 1987년 4월 4일 시내버스 내부. 의자에 앉아 있던 50대 여자가 갑자기 쓰러졌다. 여성의 입은 타들어 갔고 전신에 심한 경련이 나타났다. 한 버스 젊은 승객이 여인을 들쳐업고 병원 응급실을 향해 뛰었지만 그녀는 이미 절명해 있었다. 사망원인은 이번에도 독극물 중독사. 죽은 여성의 주변을 조사하던 경찰은 50대 여성이 6개월 전 비슷한 사건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K씨와 같은 계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게 전부였다. 석연치 않았지만 증거도 없는 상황에 무조건 그녀를 잡아넣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건은 그렇게 잊혀가는 듯했다. 1988년 7월 8일. 시내버스 독극물 사건으로부터 다시 1년 3개월이 흘렀을 즈음. 오후 2시쯤 동숭동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40대 여인이 쓰러졌다. 역시 병원으로 가는 도중 여성은 숨을 거뒀다. 구토에 어지럼증, 갑작스러운 호흡곤란과 경련.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죽음의 그림자에 경찰은 비로소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그때는 88서울올림픽을 두 달여 남겨둔 상황. 지구촌을 상대로 잔치상을 차려 놓은 상태에서 연쇄 독살사건이라니, 경찰은 물론이고 당시 정권 차원에서 반가울 리 없었다. 경찰은 어느 때보다 조용히 움직였다. 죽은 여성의 당일 행적을 쫓던 경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버스에서 숨진 40대 여인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바로 먼 친척 올케뻘 되는 K씨였다. “집을 사는데 480만원이 모자란다.”는 말에 12촌 조카는 돈을 챙겨 다방으로 나갔고, 둘은 서로 차용증을 주고받았다. 그러고 나서 헤어진 지 3시간여 만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걸 어찌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까. 경찰은 K씨를 잡아 들였다. 경찰수사가 진행되면서 엽기적인 실체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사건이 벌어지기 4개월 전인 1988년 3월 27일에는 친척의 회갑잔치에 다녀오던 K씨의 아버지가 시외버스 안에서 갑자기 숨을 거뒀다. 다시 한달 후인 4월 29일에는 그녀의 동생이 똑같이 버스 안에서 세상을 떴다. 그들이 숨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K씨가 있었고, 둘 다 K씨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신 뒤 사망했다. 두 사람 모두 심장마비 등 병사로 처리됐다. 법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병원 의사로서는 원인이 독극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K씨는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증거를 대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검찰은 신당동 목욕탕 희생자 등 이미 묻혀 있는 시신 4구에 대해 부검을 결정했다. 무덤 속 시신에 대한 부검은 유족이나 수사당국으로서는 극도로 피하고 싶은 일. 관을 쪼개고 무덤을 헤집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데다 소득이 없을 경우에 쏟아질 세간의 비난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경찰은 어렵게 유족의 동의를 얻어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4구의 시신 중 3구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됐다. 가장 먼저 죽은 40대 여성은 시신은 너무 부패한 탓인지 청산염 성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통상 청산가리라고 부르는 물질은 청산염의 일종이다. 정식명칭은 시안화칼륨(potassium cyanide). 극소량만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순수한 청산은 수십㎎만 먹어도 10분 안에 목숨을 잃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가스실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사용했던 게 청산염이다. 맹독류는 강한 만큼 증거도 오래간다. 해외에서 사형용 물질로 쓰이기도 하는 바르비투르산염의 경우 7년이 지난 무덤에서 성분이 검출된 사례도 있다. 아무튼 무덤을 파헤친 덕에 K씨의 엽기 연쇄 독살극은 종지부를 찍는다. 경찰이 K씨의 집을 수색하자 그동안 피해자들로부터 훔친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통장 등이 쏟아져 나왔다. 도박과 향락에 빠졌던 그녀가 아버지, 동생, 친구 등을 살해한 후 얻어낸 물건들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다소 황당하게도 압수수색을 하던 경찰관이 K씨의 집에서 변을 보다가 발견했다. 쪼그리고 앉자 일본식 가옥 나무기둥 뒤에 난 작은 구멍이 보였다. 손을 넣어 보니 돌돌 만 신문 뭉치가 나왔다. 그 속엔 밤알 크기의 청산염 덩어리가 숨겨져 있었다. 화공약품 회사에 다니는 친정 조카로부터 “꿩을 잡는다.”며 구한 것이었다. 기세 등등하던 K씨가 고개를 떨구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20개월 동안 아버지와 동생을 포함해 5명의 목숨을 뺏아갔다. 그녀의 이름은 김선자. 1988년 검거 당시 49세였다. 우리나라에 서양 법과학이 도입된 이후 최초로 검거된 여성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녀는 검거 후 9년 만인 1997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유해성 논란 ‘CS최루액’ 30년만에 폐기

    국내에서 시위 진압 때마다 빈번하게 사용돼 온 ‘CS최루액’이 30여년 만에 전량 폐기된다. 유해성 논란이 불거진 탓이다. 대신 상대적으로 인체에 덜 해로운 것으로 평가되는 신형 파바(PAVA) 최루액과 캡사이신 성분의 근접 분사기로 대체된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20일 “현재 경찰이 보유한 CS최루액 전량을 내년 중 전부 없애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초 도입 기록은 없으나 1981년 CS최루액을 사용했다는 문서가 경찰청에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독재정권 당시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시위대와 일반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던 문제의 CS최루액은 이로써 최소 3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CS’(화학명 올소클로로벤질리덴 밀로노 나이트릴)가 주성분인 CS최루액은 1928년에 처음 개발됐다. 최루액은 1980년대 들어 물포가 등장하면서 본격 사용됐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1991년 강경대 열사 치사사건 등 대규모 집회 때마다 물포에 섞은 CS최루액을 쏘아대다 2009년 쌍용차 사태를 마지막으로 CS최루액 사용도 중단했다. 올해 부산 한진중공업 사태 때는 신형 파바를 물에 희석해 물포로 분사했다. 경찰은 앞서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 CS최루액 4만 9103ℓ를 폐기했으나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2009년에는 2137ℓ를 집회·시위 현장에서 다시 사용했으며, 이후 긴급 사태에 대비해 4528ℓ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김선자의 최후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김선자의 최후

    ▲ 마리 라파르즈(1816~?) 늙은 남편과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결혼 1년 만에 남편을 비소로 독살한 프랑스의 여성 살인범. 그녀의 사건은 법과학사(史)에서 독살 혐의를 최초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강력범죄에서 여성의 위치는 대개 피해자다. 목 졸리고, 찔리고, 베이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강력범죄의 피해를 본 여성은 1만 9254명이었다. 남성(5649명)의 3.4배에 이른다. 하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늘 피해자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연쇄살인도 예외는 아니다.  ● ‘K’ 그녀를 만나면 죽는다 1986년 10월 31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목욕탕 탈의실. 평일 아침 한적한 여탕 문앞에서 40대 여성이 가슴을 부여잡고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증상은 점점 더 악화됐다. 몸에 심한 경련이 일더니 여성은 곧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은 여성을 급히 응급실로 옮겼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병원에서 판단한 사인은 독극물 중독. 경찰은 어리둥절해하는 목욕탕 손님들을 모두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를 했지만 이렇다 할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가족들은 “평소처럼 이웃집 여자 K씨가 목욕을 하자고 해 아침 나절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자살할 만한 이유도 전혀 없었다. 이상한 점도 있었다. 목욕갈 때 걸고 나갔던 목걸이와 반지 등 패물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것은 줄줄이 이어질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신당동 목욕탕 독살사건으로부터 5개월이 지난 1987년 4월 4일 시내버스 내부. 의자에 앉아 있던 50대 여자가 갑자기 쓰러졌다. 여성의 입은 타들어 갔고 전신에 심한 경련이 나타났다. 운전기사는 급히 버스를 병원으로 돌렸지만, 응급실에 도착할 때쯤 여성은 이미 절명해 있었다. 사망원인은 이번에도 독극물 중독사. 죽은 여성의 주변을 조사하던 경찰은 50대 여성이 6개월 전 비슷한 사건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K씨와 같은 계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게 전부였다. 석연치 않았지만 증거도 없는 상황에 무조건 그녀를 잡아넣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건은 그렇게 잊혀가는 듯했다. 1988년 7월 8일. 시내버스 독극물 사건으로부터 다시 1년 3개월이 흘렀을 즈음. 오후 2시쯤 동숭동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40대 여인이 쓰러졌다. 역시 병원으로 가는 도중 여성은 숨을 거뒀다. 구토에 어지럼증, 갑작스러운 호흡곤란과 경련.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죽음의 그림자에 경찰은 비로소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그때는 88서울올림픽을 두 달여 남겨둔 상황. 지구촌을 상대로 잔치상을 차려 놓은 상태에서 연쇄 독살사건이라니, 경찰은 물론이고 당시 정권 차원에서 반가울 리 없었다. 경찰은 어느 때보다 조용히 움직였다. 죽은 여성의 당일 행적을 쫓던 경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버스에서 숨진 40대 여인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바로 먼 친척 올케뻘 되는 K씨였다. “집을 사는데 480만원이 모자란다.”는 말에 12촌 조카는 돈을 챙겨 다방으로 나갔고, 둘은 서로 차용증을 주고받았다. 그러고 나서 헤어진 지 3시간여 만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걸 어찌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까. 경찰은 K씨를 잡아 들였다.   ● 무덤에서 파헤쳐진 시신들, 스스로 한을 풀다 경찰수사가 진행되면서 엽기적인 실체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사건이 벌어지기 4개월 전인 1988년 3월 27일에는 친척의 회갑잔치에 다녀오던 K씨의 아버지가 시외버스 안에서 갑자기 숨을 거뒀다. 다시 한달 후인 4월 29일에는 그녀의 동생이 똑같이 버스 안에서 세상을 떴다. 그들이 숨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K씨가 있었고, 둘 다 K씨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신 뒤 사망했다. 두 사람 모두 심장마비 등 병사로 처리됐다. 법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병원 의사로서는 원인이 독극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K씨는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증거를 대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검찰은 신당동 목욕탕 희생자 등 이미 묻혀 있는 시신 4구에 대해 부검을 결정했다. 무덤 속 시신에 대한 부검은 유족이나 수사당국으로서는 극도로 피하고 싶은 일. 관을 쪼개고 무덤을 헤집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데다 소득이 없을 경우에 쏟아질 세간의 비난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경찰은 어렵게 유족의 동의를 얻어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4구의 시신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됐다. 통상 청산가리라고 부르는 물질은 청산염의 일종이다. 정식명칭은 시안화칼륨(potassium cyanide). 극소량만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순수한 청산은 수십㎎만 먹어도 10분 안에 목숨을 잃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가스실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사용했던 게 청산염이다. 맹독류는 강한 만큼 증거도 오래간다. 해외에서 사형용 물질로 쓰이기도 하는 바르비투르산염의 경우 7년이 지난 무덤에서 성분이 검출된 사례도 있다. 아무튼 무덤을 파헤친 덕에 K씨의 엽기 연쇄 독살극은 종지부를 찍는다. 경찰이 K씨의 집을 수색하자 그동안 피해자들로부터 훔친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통장 등이 쏟아져 나왔다. 도박과 향락에 빠졌던 그녀가 아버지, 동생, 친구 등을 살해한 후 얻어낸 물건들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다소 황당하게도 압수수색을 하던 경찰관이 K씨의 집에서 변을 보다가 발견했다. 쪼그리고 앉자 일본식 가옥 나무기둥 뒤에 난 작은 구멍이 보였다. 손을 넣어 보니 돌돌 만 신문 뭉치가 나왔다. 그 속엔 밤알 크기의 청산염 덩어리가 숨겨져 있었다. 화공약품 회사에 다니는 친정 조카로부터 “꿩을 잡는다.”며 구한 것이었다. 기세 등등하던 K씨가 고개를 떨구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20개월 동안 아버지와 동생을 포함해 5명의 목숨을 뺏아갔다. 그녀의 이름은 김선자. 1988년 검거 당시 49세였다. 우리나라에 서양 법과학이 도입된 이후 최초로 검거된 여성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녀는 검거 후 9년 만인 1997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6) 살인현장에서 왠 대변검사(?)…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다른 피를 타고난다? 혈흔 속 성염색체가 지목한 ‘악마’’의 정체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시던 A씨, 갑자기 사망한 이유 알고보니… 생명을 잃을 수 있게 만드는 ‘죽음의 물’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 사연 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백골로 발견된 여성 시신, 단서는 성형수술 자국? 백골의 한 풀어준 광대뼈 축소술 15) 무참하게 살해 당한 20대女…6년만에 연쇄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 CCTV가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자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8) 완전 범죄 될 뻔한 헤어드라이어 살인…범인 잡은 것은 바로…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전류반’은 못 숨겼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에서 발견된 2구의 여성 시신…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한밤중 돌연 사망하는 젊은 남자들…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의 비밀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9) 살인자의 화장품 향기…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 여자 살인사건 30) 완전범죄 노리던 컴퓨터 교수, 시신 쇠사슬에 묶은 뒤…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 “나이 드는 게 좋아요… 지혜가 따라오니까”

    “나이 드는 게 좋아요… 지혜가 따라오니까”

    이맘때쯤이면 떠오르는 영화 ‘가을의 전설’(1994) 주인공 브래드 피트(48)가 한국을 찾았다. 자신이 직접 투자하고 주연한 영화 ‘머니볼’ 홍보를 위해서지만, ‘흐르는 강물처럼’(1992) 이후 20년간 미국 할리우드 톱스타 자리를 지켜온 유명 배우의 첫 방한에 국내 매스컴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나의 생존 비결은 차별화” “작년에 한국을 찾은 아내(앤젤리나 졸리)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들어 언젠가 한국을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피트는 “야구에 대한 한국인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들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머니볼’은 좋은 야구 선수들을 부자 구단에 빼앗긴 가난한 구단의 성공 실화를 다룬 영화다. 15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트는 “극한의 상황에서 캐릭터들이 어떻게 경쟁하느냐는 점을 다뤘다는 점에서 영화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자신도 실패를 거듭하던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1987년 ‘회색도시’ 출연 당시 몇만원(38달러)에 불과했던 그의 출연료는 2001년 ‘오션스 일레븐’ 때 몇백억원(3000만 달러)대로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동료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과의 결혼과 이혼, 톱스타 앤젤리나 졸리와의 사실혼 등 숱한 로맨스도 함께 뿌렸다. 할리우드라는 치열한 밀림에서의 생존 비결에 대해서는 ‘차별화’라고 진지하게 답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다른 배우와 차별시킬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한 작품의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그 작품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면서도 나를 남들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지점을 연구한다.” ●“좋아하는 야구팀은 세인트루이스” 그래서일까. 그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일반적인 궤적을 따르지 않는다. 수억 달러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뿐 아니라 저예산 독립영화에도 자주 출연한다. 올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트리 오브 라이프’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50살에 배우를 그만두려 한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서는 “배우로서의 활동 기한을 두지는 않았다.”면서도 “제작(과 투자)에 흥미를 느끼는 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가장 좋아하는 야구 팀으로는 올해 미국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꼽았다. 그는 명성에 비해 상복이 적은 편이다. 아카데미 주연상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머니볼’로 내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목표는 언제나 좋은 영화 만드는 것” “목표는 언제나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거다. 나머지는 추가적인 즐거움이다. 물론 오스카상(아카데미상 별칭)을 받으면 즐겁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미남 배우로 꼽히는 그이지만 검정 뿔테 안경 너머의 깊은 주름은 숨기지 못했다. 외모에 대한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나이 드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나이와 함께 지혜가 따라온다. 젊음과 지혜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항상 지혜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나 자신을 더 많이 관리하게 된다.” 전날 밤 김포공항을 통해 전용기로 입국한 그는 16일 오전 출국한다. 인터뷰 등 한국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변경해 뒷말을 낳기도 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이달말 한국 찾는 두 스타] 암 딛고 재기 3대테너 호세 카레라스

    [이달말 한국 찾는 두 스타] 암 딛고 재기 3대테너 호세 카레라스

    1974년 전 오페라 팬들은 한 테너의 출현에 ‘경악’했다. 불과 스물여덟의 나이에 ‘라 트라비아타’(알프레도 역)로 영국 코벤트가든, ‘리골레토’(만토바 공작 역)로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 ‘토스카’(카바라도시 역)로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잇따라 데뷔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이듬해 이탈리아 라 스칼라극장에서 ‘가면무도회’의 리카르도 역까지 맡으면서 4대 오페라 극장 데뷔를 모두 끝냈다. 스페인 출신의 테너 호세 카레라스(65)를 두고 하는 얘기다. 1987년 그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팬들이 얼마나 낙담했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와의 작별을 예감했다.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생존율이 고작 10%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등 지난한 과정을 딛고 1년여 만에 기적적으로 완치됐다. 1989년 1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복귀무대에서 마지막 대목의 ‘빈체로’(나는 승리하리라~)를 열창했을 때,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듬해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 플라시도 도밍고(70)와 함께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에서 펼친 ‘더 스리 테너스’ 공연 역시 클래식 공연사에 남을 한 장면으로 꼽힌다. 다른 두 테너가 한자리에 선 것도 그의 회복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카레라스가 오는 23~24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무대에 선다. 2009년 이후 2년 만에 갖는 국내 팬들과의 만남이다. 데이비스 히메네스가 지휘하는 서울필하모닉과 소프라노 마리아 루이지아 보르시, 바이올리니스트 브래드 렙이 함께한다. 15만~25만원. 1544-1555.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엑스맨’ 매그니토, 리메이크판 ‘로보캅’ 변신할까?

    ‘엑스맨’ 매그니토, 리메이크판 ‘로보캅’ 변신할까?

    ’엑스맨’ 매그니토가 ‘로보캅’으로 변신할까? 리메이크가 확정된 영화 ‘로보캅’의 주연 후보로 떠오른 마이클 패스벤더(34)가 배역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 출연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매그니토 역으로 인기를 끈 패스벤더는 최근 인터뷰에서 “난 모든 배역에 항상 열려있다.” 며 “각본을 신중히 읽어보고 감독과 마주앉아 대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금속 슈트를 입고 헬멧을 쓰고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고 덧붙여 출연에 흥미를 보였다. 패스벤더의 이같은 반응은 앞서 ‘로보캅’ 리메이크판 감독인 브라질 출신 호세 파딜라가 “주연으로 패스벤더를 강력히 원한다.”는 보도에 이어진 것이다. 한편 이번에 리메이크 되는 영화 ‘로보캅’은 네덜란드 출신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을 원작으로 한다.      1987년 개봉한 영화 ‘로보캅’은 당시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속편과 게임 등으로도 출시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노숙인들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 무대 올리는 제임스 전

    [김문이 만난사람] 노숙인들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 무대 올리는 제임스 전

    노숙인A:발레가 뭐죠? 노숙인B: (질문같지 않다는 듯이)백조의 호수처럼 아름답게 춤추는 것. 노숙인A:(잠시 고민하다가)그랑 플리에(Grand Plie)는? 노숙인B:무릎과 발이 아웃턴. 노숙인A:그러면 그랑 주테(Grand Jete)는? 노숙인B: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것. 노숙인A:앙바(En Bas)는? 노숙인B:어깨를 내린 후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노숙인A:(더 질문할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에이, 얼른 신발 신고 호두까기나 합시다. 차이콥스키가 작곡했다. 소녀 클라라가 크리스마스에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는다. 그 인형이 꿈 속에서 쥐의 대군을 퇴치하고 아름다운 왕자로 변한다. 그리고 클라라를 과자의 나라로 데리고 간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서울발레단에 의해 초연됐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그렇게 우리들 가슴속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새달 29~31일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서 선보여 그 진행형 속에 노숙인들이 등장한다. 진짜? 그렇게 물어볼 사람들이 많겠다. 맞다. 노숙인들이 직접 출연하는 발레무대가 오는 12월 29~31일 경기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에서 펼쳐진다. 여기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노숙인도 출연한다. 파티에 참석하는 첫 장면이기에 어색함이 전혀 없다. 이들은 요즘 매주 일요일 과천에 있는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 연습실에서 ‘호두까기 인형’ 춤을 추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웬만한 발레용어도 익숙해졌다. 기존의 단원들과 호흡도 척척 맞는다. ‘호두까기 인형’뿐만 아니다. 지난 10월 발레 ‘솔리스트’(Soloist)에도 등장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렇듯 직접 출연은 물론이고 올해만 발레공연을 10여 차례 관람하면서 예술적 감각, 새로운 삶에 대한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열심히 발레 교육을 받고 있다. 주로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파는 이른바 ‘빅판’ 10여명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길거리에서 잡지를 팔고 일요일에는 발레 연습실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는 동안 두 명은 연세대 병원 등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됐을까. 노숙인들을 지도하는 사람은 서울발레시어터의 상임 안무가인 제임스 전(52)이다. 그는 노숙인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를 하다가 영감을 얻어 지난 10월 ‘솔리스트’안무를 하게 됐다. 좋은 업을 쌓아서 그런지 최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는 복도 받았다. 지난 8일 서울발레시어터 연습실에서 제임스 전을 만났다. 김인희 단장과 먼저 인사를 했더니 옆에 있는 제임스 전을 향해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제임스 전은 부끄러운 듯 웃는다. 나이 50이 넘었지만 웃음이 천진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짐작이 갔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노숙인 자활잡지 ‘빅판’ 파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직접 길거리에 나서기도 한다. 이날도 제임스 전은 그러기에 앞서 잠시 시간을 냈다. 먼저 연말 공연, 그러니까 ‘호두까기 인형’ 버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호두까기 인형은 모던과 클래식이 있는데 이번 공연은 클래식 스타일입니다. 2007년에 안무했던 적이 있지요. 그때와 다른 것은 노숙인들이 무대에 올라선다는 것입니다.” 정식 발레단원이 아닌데 노숙인을 출연시킨다고 하니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혹시 작품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맨 앞부분, 그러니까 제1막 1장에 등장합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죠.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로 들떠 있습니다. 한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바쁘게 걷는 어린아이들과 부모들이 행복으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파티장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노숙인들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파티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잖아요.” 발레 무대에 오르는 노숙인 김모씨는 관절이 좋지 않아 똑바로 서기가 쉽지 않다. 불편한 몸이지만 균형 감각을 찾기 위해 발레를 시작했단다. 파티 장소에서 술에 취한 귀족역할을 맡았다. 조금은 휘청거리고 바닥에 쓰러지기도 하는 역할이라 별 무리가 없다. 김씨는 1년째 연세대 앞에서 잡지 ‘빅판’을 팔고 있다. 한때 번듯한 PC방 주인이었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처자식과 이별한 뒤 노숙인이 됐다. 또 다른 노숙인 구모씨는 종각역에서 ‘빅판’을 팔고 있지만 올 연말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 발레 솔리스트에 출연했을 때 난생 처음 박수를 받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제임스 전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친구처럼 대한다. 발레를 배우는 노숙인들은 30대에서 50대 남성들이다. 이들 중 열의를 갖고 고정적으로 발레를 배우러 오는 사람은 8명이다. 많을 땐 12명까지 오기도 했다. 제임스 전은 이들에게 오든 안 오든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번 주 일요일부터 연말 공연을 위해 이들과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해 발레 10번 관람… 이들이 ‘1% 엘리트’” “(노숙인들은)나이도 있고 몸도 굳어 있어 유연성을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발레용어를 알 만큼 많이 익숙해 있지요. 세상 사는 이야기도 서로 거리낌없이 주고받을 정도로 처음보다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 또한 그분들과 친해져 같이 잡지도 팔고 삶의 공감을 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제임스 전은 12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뉴욕에 있을 때 노숙인들과 자주 만났다. 당시를 잠시 회고한다. “아주 돈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자식을 잃고 노숙인이 됐습니다. 그때 저도 생각이 난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도 없고, 저 또한 노숙인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가정불화나 알코올, 마약,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한순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노숙인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국내 한 대기업의 홍보영상 ‘나눔’ 제작에 참여할 때였다. 아이템은 ‘노숙인과의 발레’였다. 현역 발레단원들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후 노숙인들은 발레연습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발레 공연을 관람하는 등 ‘발레리노’로 거듭나기 위한 자세로 변해갔다. “잡지 빅판을 통해 선발했지요. 그들은 발레 공연만 10번을 봤습니다. 우리 국민 중 1년에 발레 10번 보는 사람은 아마 1%도 안 될 겁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1% 선택된 엘리트입니다’라고 매주 일요일에 만나 3시간 동안 발레연습을 하고 나서 다과회를 합니다. 이때 책 팔린 얘기, 살아온 얘기 등을 진솔하게 나누지요.” 여기에 참여하는 노숙인들은 웬만한 발레용어도 알지만 처음보다 몸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제임스 전은 말했다. 스텝이나 마임, 걸어가는 자세, 여자와 손잡고 회전하는 동작 등이 그러하다. 노숙인들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제임스 전은 이에 용기를 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문화재단 등이 후원하는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지원사업’에 신청, 약간의 지원금을 따내 본격적으로 발레 수업을 하게 되면서 탄력을 얻었다. 발레를 통해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겠다는 의욕도 더욱 커졌다. “저도 발레를 하면서 많은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노숙인들도 몸의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분들도 정말 신이 나서 열심히 따라하고 있고요. 발레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배우고 몸을 단련시키면서 잡지를 판매하기 위한 체력도 기르고 파트너와 협동심도 배우고 말입니다.” 같이 발레를 하면서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때는 예술을 왜 하는지를 느낀다고 했다. 고통을 이겨나가면서 그 과정을 얘기하는 진지한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고. “예술단체란 좋은 작품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이 예술이지요. 그러면서 마음을 변화시키고 같이 호흡을 하고, 소외계층을 배려하고 그들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도 예술의 한 작업입니다. 기존의 우리 단원들도 노숙인들과 자연스럽게 같이 발레를 하면서 교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발레에 참여하는 노숙인들이 오늘은 어디에서 잡지를 팔고 있는지 목록을 들여다본다. ‘아, 강남 신사동에 가야겠네.’ 편집위원 km@seoul.co.kr [제임스 전은…] 서울에서 태어나 12살 때 미국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갔다. 1977년 스티브 잡스의 모교인 홈스테디 고등학교를 나온 뒤 캘리포니아 멘로파크 댄스 아카데미(Menlo Park Dance Academy)에서 발레를 배운 그는 1982년 줄리어드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1984년 유럽의 20세기 센추리-오리스 베자르(20th Century Ballet-Maurice Bejart)에서 춤을 추었다. 플로리다 발레단의 잭슨빌과 함께 일했으며, 1987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초대돼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그는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동했다.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 창단과 함께 상임 안무가로 16년 동안 70여개가 넘는 작품을 안무했다. 주요작품은 ‘현존 I, II, II’, ‘사계’, ‘위험한 균형’, ‘창고’, ‘이너무브’, ‘백설공주’, ‘결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2를 위한 변주’, ‘호두까기 인형’, ‘작은 기다림’, ‘봄, 시냇물’, ‘슬픈 천사의 춤’ 등이 있다. 2001년 한국 최초로 ‘Line of Life’를 미국 네바다발레시어터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 후 2002년에는 ‘이너무브’를 네바다발레시어터에 소개했으며 ‘12를 위한 변주’도 미국에서 공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8년 ‘현존 I, II, III’으로 무용예술사선정 올해의 안무가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백설공주’로 제11회 무용예술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5년 ‘봄, 시냇물’로 ‘올해의 예술상’ 무용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3년부터 한국체육대학에서 생활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내게 면허증은 세상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불씨”

    “내게 면허증은 세상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불씨”

    30대 1급 지체 장애우가 무려 460차례의 도전 끝에 운전면허증을 움켜쥐었다. 8일 도로교통공단 청주운전면허시험장에 따르면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거주하는 경상선(32)씨가 최근 뇌성마비를 이겨내고 학과시험에 합격한 데 이어 장내기능시험과 도로주행시험에도 당당히 합격, ‘2종 자동’ 면허증을 획득했다. 경씨는 1987년 청주운전면허시험장이 생긴 이후 가장 많은 도전 끝에 시험에 합격한 도전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경씨의 첫 도전은 2004년 5월 21일. 손발이 불편해 힘들게 걸을 수 있는 몸을 이끌고 이때부터 해마다 50차례에서 100차례씩 필기시험을 봤다. 그러나 줄줄이 합격점수 60점 이상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경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도움없이 혼자 운전해 목적지를 찾아가는 꿈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운전면허증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불씨와도 같았다. 결국 경씨는 지난달 12일 458번째 도전한 시험에서 65점을 받아 학과시험을 통과한 뒤 학원의 도움을 받아 두 차례 만에 기능시험에 합격, 그토록 꿈에 그리던 면허증을 갖게 됐다. 필기시험에 들어간 응시료만도 237만 8000원이다. 경씨는 “차를 장만하면 가장 먼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박성회 서울대 교수 “내 연구는 당뇨 아닌 면역학… 이종 이식거부 해결한 것”

    박성회 서울대 교수 “내 연구는 당뇨 아닌 면역학… 이종 이식거부 해결한 것”

    서울대 의대 박성회(64·병리학) 교수는 제자들에게 자주 강조해 온 “연구성과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으면 살리려고 애쓰지 말고 오류가 있다면 폐기하라.”라는 말을 곱씹고 있다. 지난달 31일 돼지 췌도(膵島·랑게르한스섬)를 당뇨에 걸린 원숭이에 이식한 뒤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7개월 이상 정상 혈당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한 이래 쏟아지는 격려와 지적에 대해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다. 박 교수의 연구는 국내 350만명의 당뇨병 환자, 나아가 세계 3억명에 이르는 환자들에게 분명 ‘희망의 빛’임에 틀림없다. 이종(異種)간 장기 이식을 통한 당뇨병 치료에 주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박 교수를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병원 기초연구동에서 만났다. →당뇨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사실 내가 연구한 것은 당뇨가 아니라 면역학이다. 이종 장기이식에서도 내가 한 것은 면역억제항체를 통해 이식거부반응을 해결한 것이다. 뭐, 굳이 연(緣)이라면 아버지가 당뇨병을 앓으시다 합병증으로 돌아가셨고, 나를 키워 준 할머니도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아내도 당뇨병이다.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나서 어떤 지인은 “자기 집안 사람들이나 조심시키지.”라고 농담 섞인 핀잔도 하더라. 특별히 당뇨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병리학과 면역학은 다른 분야인데. -내 눈을 보면 약간 튀어나와 항상 화난 사람처럼 보인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의 후유증 때문이다. 19살 때 이 병에 걸렸다. 당시 65㎏이던 체중은 45㎏까지 급격히 줄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원인을 찾지 못했다. 삼수 해서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 졸업반이 돼서야 내 병명을 알았다. 병을 앓은 지 거의 10년 만에 이게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갑상선을 전공으로 했다. 그런데 갑상선을 연구하다 내 병이 면역하고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댔다. 1985년 미국 하버드대학의 다나 파머 연구소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면역학을 공부했다. →25년간 연구를 했다. -연구하는 게 즐거웠다. 힘들면 못 하는 일이 연구다. 사람들은 내가 돼지췌도를 원숭이에 이식시키는 실험만 줄곧 매달려 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면역학을 계속해서 연구하다 이런 연구로 발전된 것이다. 원숭이로 넘어가게 된 지는 불과 5~6년 정도다. 2005년쯤에 ‘인간화 생쥐’(인간의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는 생쥐)를 만났다. 이후 생쥐 면역거부반응을 없애는 연구에 성공하고 원숭이 단계로 넘어갔다. →연구비 조달은. -보건복지부에서 2005년부터 5년간 해마다 1억원씩 지원을 받았다. 올해는 5억원을 받았다. 거대한 시설이 필요한 연구가 아니라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았다. 무균돼지도 지원을 받았다. 마리당 700만원쯤 하는데 도움이 컸다. (박 교수 스스로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청춘을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너무 긴 지루한 연구, 시간과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실적 부풀리기, 데이터 조작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황우석 사태를 염두에 둔 듯) 황우석 교수 이후에 우리 사회에 그런 시선이 많다. 기본적으로 학문적 발표에 대해서 검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계속해서 데이터를 공개하고 검증을 받을 생각이다. 하지만 검증 전부터 “저거 가짜다.”라는 말은 안 했으면 한다. 앞으로 수개월간 아니 몇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검증은 계속해서 받는 것이 ‘과학자의 책무’다. 신랄한 비판과 지적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박 교수는 기자회견 때 “스스로 검증을 계속해 나가고 또 외부의 검증도 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이종이식학회 에마누엘레 코지 회장은 박 교수의 연구성과에 대해 “앞으로 이종간 장기이식은 한국과 미국, 유럽연합(EU)이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랑 같아 그렇지만 2001년 한국학술원상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연구성과를 내야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이번도 지속적인 연구과정의 결실이다. →앞으로 일정은. -일단 2012년 말까지 동물(원숭이)대상 실험을 마치고 2013년부터 사람을 상대로 임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2015년쯤에는 본격적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데 활용하고 싶은데 아직 딱 언제까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임상에 아내도 참여하게 할 생각이다. 물론 아내를 설득해야 하지만…. 주변에서 서두른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소아당뇨 환자들을 보면 한시라도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경쟁이 될 여지가 많다.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논문이 발표됐기 때문에 외국계 제약사 등에서 건드릴 여지도 있다. →이종간 장기이식 연구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 전에 복지부에서 이종간 장기이식과 관련해 법제화를 검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검증이 안 된 단계에서 (정부에 대고) 뭘 달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학계와 의료계의 검증이 마무리되면 그때 이종간 장기이식 연구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요구해도 늦지 않다. →의대교수로서 의사의 길보다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스스로 생각하건대 좋은 의사가 되기는 힘든 성격이다. 병은 잘 본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의사가 기본적으로 환자를 이해하고 좀 따뜻하게 다가가야 하는데 내 성질이 별로 그렇지 못하다. 환자가 이거저거 물어보면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편이다. 그래서 연구소에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젊었을 때는 선배들한테 진찰실에 안 붙어있고 틈만 나면 연구실로 간다고 혼도 많이 났다. 그때는 진료가 먼저였다. →짬짬이 즐기는 취미는. -없다. 아니 있다. 술과 수다다. 바둑은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가르치려고 했는데 적성에 안 맞았다. 요즘 말로 ‘알까기’만 하다가 바둑알 다 깨뜨리고 그만뒀다(웃음). 나이 들고서는 골프를 배워 보려다 복잡하기도 했지만 시간도 많이 필요해 그만뒀다. 대신 술 마시고 제자들 하고 떠드는 걸로 스트레스를 많이 푼다. 저녁 먹으며 소주 몇잔 하고, 2차로 생맥주 한두잔 하면서 떠들면 안 좋은 일도 싹 잊혀진다. 주변에서는 “애들 모아놓고 뻥 친다.”고 놀리기도 하는데 일리 있다. 박 교수는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제자들과 소주를 마시러 간다고 했다. “지금의 결과물은 어떻게 어떻게 연구를 지속하다 보니 나왔다. 앞으로도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종교가 없어서 ‘신의 뜻’이니 뭐니 하는 말도 쓰기 싫다고 했다. 박 교수는 내년에 정년을 맞지만 서울대 측은 박 교수의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박성회 교수는 서울대 의대 출신의 병리학자로 갑상선암 전문가다. 서울대 석사와 박사과정에서도 병리학을 전공했다. 1985~87년 미국 하버드대의대 암연구소에서 면역학을 연구했다. 2000~2001년 대한면역학회 부회장과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99년 에밀 폰 베링 의학대상을, 2001년 면역학 연구로 대한민국 학술상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의대 병리학 교수다.
  • [커버스토리-복권 열풍] 美 ‘파워볼’ 22개주 연합발행… 日 ‘점보복권’ 1등 42억원

    ●미국, 로또 이월횟수 무제한 ‘복권 천국’ 미국은 복권 당첨금의 제한이 없고 만 18세 이상 성인이면 국적을 불문하고 복권을 구입할 수 있어 ‘복권의 천국’으로 불린다. 1980년대 주별로 복권발행기관이 생기면서 추첨식 복권이 사라지고 지금은 로또와 같은 온라인 복권과 즉석 복권만 발행되고 있다. 특히 로또는 이월 횟수의 제한이 없다. 미국은 주별로 복권 제도가 다르다. 앨라배마 주 등 몇 개 주만 복권 발행이 금지돼 있고 대부분 복권 발행을 하고 있다. ‘파워볼’로 불리는 복권은 무려 22개 주가 연합해 발행하기 때문에 당첨금이 천문학적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당첨금 비과세 일본에서는 에도시대(1603~1867)에 처음 복권이 생겼다. 주로 절이나 신사의 공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이 판매됐다. 1954년부터 47개 현과 12개 지정도시에서 지방의회와 총무성의 승인을 받아 6종류의 복권을 발행하고 있다. 로또를 비롯해 스크래치(즉석복권), 지자체 발행복권, 점보복권으로 나뉜다. 연말이나 여름 휴가 등 특별한 시기에 발행하는 점보복권은 1등 당첨금이 무려 3억엔(약 42억원)에 이른다. 한국과 달리 당첨금은 비과세다. 수익금은 50%가 도·부·현 등 광역 지방자치단체와 지정도시의 공공사업 재원으로 충당된다. 나머지 50%는 분담금의 계상 기금으로 사용된다. 일본은 복권 발행규모와 조건, 자금운용 등에 관한 철저한 감독장치가 마련돼 있다. 복권위원회는 별도의 계정을 만들어 용도를 엄격히 규제해 사행성 조장 풍토를 막고 비효율적인 사업에 기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중국 2억명 상시 참여 ‘복권맨’ 중국에서는 본격적인 복권제도가 도입된 지난 1987년 이후 24년간 총 6000억 위안(약 105조원)어치의 복권이 판매돼 그 절반인 3000억 위안이 당첨금으로 지급됐다. 복리복권과 체육복권 등 두 종류의 복권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로또형 추첨방식의 복권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억명 이상이 복권에 상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민’(彩民·복권맨)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사설복권 범람 등 복권 폐해가 잇따르자 국무원이 직접 ‘복권관리조례’를 제정해 2009년 7월 1일부터 복권의 발행 및 판매 등을 관리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복권 발행 및 판매기구 재무관리 방법’ 등을 통해 복권판매액을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는지 등을 규제, 감독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박홍환·워싱턴 김상연특파원 jrlee@seoul.co.kr
  • [시민단체 정치속으로] 시민단체의 뿌리는…

    [시민단체 정치속으로] 시민단체의 뿌리는…

    1987년 6월항쟁의 경험과 성과는 시민사회운동단체 설립의 토대를 마련했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출범을 시작으로 정치·경제·행정·환경·교육·여성·언론·문화·소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이슈와 연결된 시민단체들이 봇물처럼 늘어났다. 이전까지 사회 변혁의 동력이 학생·노동운동에서 나왔다면, 1990년대 절차적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단연 돋보였다는 얘기다. 물론 1987년 이전에도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존재했다. 출범 배경과 목적, 운동의 방향과 양상이 시대적 좌표에 따라 달라졌을 뿐이다. 100여년 전 첫발을 뗀 이후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하고 있는 YMCA(기독교청년회)는 물론, YWCA(기독교여자청년회), 흥사단 등을 보면 시민단체들의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의 시초로 평가받는 YMCA가 가장 먼저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란 이름으로 첫발을 디뎠다.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민족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흥사단이, 1922년에는 YWCA(당시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가 뒤를 이었다. 일제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이 단체들은 근대화 및 민족 계몽과 더불어 독립운동의 인큐베이터 및 운영자금 조달 역할에 집중했다. 105인 사건(1911)과 2·8 독립선언, 3·1운동(이상 1919), 신간회(1927) 등이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 구호·부흥사업 등에 주력하던 시민단체들이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한 것은 역설적으로 군사독재정권의 압제와 맞물려 있다. 흥사단이 1963년 한국사회의 지도자 배출을 목적으로 전국 대학·고교생을 대상으로 운영한 아카데미는 훗날 민주화 및 시민운동 인력을 키워내는 핵심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초 떠들썩했던 학림(전국민주학생연맹)사건의 주역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씨와 이선근씨 등이 대표적이다. 1973년 발족한 ‘서울YMCA 사회개발단’은 시민의식 개발을 위한 시민논단, 시민권익 옹호를 위한 시민중계실, 양곡은행, 이동사회관 등을 통해 민중 속으로 다가가면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모형을 제시했다. 1986년 YMCA 중등교사협회 소속 교사 600여명의 교육민주화선언은 훗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평화의 댐 보강 논란

    정부가 내년부터 3년간 다시 1650억원을 투입해 평화의 댐 치수능력을 보강한다고 밝히면서 과잉투자 논란이 일고 있다. 1987년 착공된 평화의 댐은 지금까지 총 390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2단계 보강공사까지 마친 상태다. 24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정부는 2003년부터 국토부가 관리하는 32개 댐 가운데 극한강우(PMP·Probable Maximum Precipitation) 발생에 대한 보강이 필요한 24개 댐에 대해 치수능력증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까지 2조 1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며, 이 중 1조 3000억원이 내년 이후 쓰인다. 하지만 평화의 댐이 뒤늦게 보강공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시민단체 등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나머지 23개 댐은 2003년 일괄 선정됐다. 2005년 평화의 댐 2단계 완공 직후 당시 건설교통부 측은 “북측 임남댐(금강산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나 북한강 상류 지역의 집중 호우에도 홍수 피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평화의 댐은 1987년 북한의 임남댐이 200년 빈도의 강우(378㎜)에 붕괴할 것에 대비해 건설됐으나 최근 기상이변으로 집중호우 등이 잦아지면서 다른 댐처럼 PMP 기준(587㎜)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밟히고 잘리고… 독재자 시신 수난

    밟히고 잘리고… 독재자 시신 수난

    스스로 ‘아프리카의 왕’이라 칭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시신이 정육점 냉동창고 바닥에 나뒹구는 신세로 전락하면서 세계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폭압에 분노한 시민들의 분노에 죽어서도 조롱거리로 유린당한 사례는 이전 독재자들에게도 반복돼온 역사였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가 대표적인 예다. 무솔리니는 1945년 연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스위스로 도주하다 이탈리아 유격대에 붙잡혀 즉석 재판을 받고 총살당했다. 이후 두 사람의 시신은 밀라노로 보내져 시민들에게 얼굴 형태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밟혔다. 로레토 광장의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리는 수모도 겪었다. 무솔리니가 죽은 지 64년이 지난 2009년 11월 말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무솔리니의 뇌 일부분과 혈액을 1만 5000유로를 최초 가격으로 정해 매물로 내놓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시 이베이 측은 죽은 사람의 신체 일부는 경매에 부칠 수 없다며 해당 경매를 삭제했다. 1989년 민중봉기로 축출돼 총살형을 선고받은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와 아내 엘레나는 160여 발의 총탄 세례를 맞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의 시신은 지난해 차우셰스쿠의 자녀들이 신원 확인을 요청하면서 다시 파헤쳐지기도 했다. 빈민층의 사생아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1919~1952).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죽은 그녀의 시신은 포퓰리즘의 대표적 사례인 페론주의의 부활을 우려한 아르헨티나 군부에 의해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떠돌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코가 부러지고 발이 손상되는 등 심하게 훼손됐다. 후안 페론 대통령도 사망한 뒤인 1987년 손이 잘려나갔다.독일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무솔리니의 처형 소식을 전해들은 다음 날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 전 측근들에게 시신을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