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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수석 새얼굴 6인

    ◎구본영 경제수석/KDI출신 경박… 친화력에 균형 감각 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의 경제학 박사로 재무부·경제기획원 등 경제 부처를 두루 거쳤으며 88∼91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내 4년여만에 금의환향한 셈이다.깔끔한 용모와 유연한 매너로 친화력이 뛰어나며 합리적인 사고와 순발력 있는 판단이 돋보인다는 평이다.과기처 차관시절에는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역 주민을 직접 만나 설득력을 발휘하기도 했다.취미는 바둑(1급).이길혜여사(46)의 사이에 1남1녀.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KDI 수석연구원 ▲재무부장관 자문관 ▲경제기획원 장관 자문관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 제3협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 ▲주미 경제공사 ▲교통부차관 ▲과기처 차관 ◎심우영 행정수석/총무처 터줏대감… 정책위상 뛰어나 7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행정고시에 합격,총무처차관·경북지사를 지낸 뚝심의 총무처 관료출신.행정관리국장 등 총무처내 요직을 두루 거쳐 한때 「총무처 터줏대감」으로 불리기도 했다.합당후 첫 민자당 전문위원으로 7개월동안 일하면서 정책입안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후문.보스기질이 있어 부하들로부터 인기가 높다.부인 정신자씨와의 사이에 1남2녀. ▲서울대 법대졸 ▲행시 10회 ▲총무처 행정관리국장 ▲민자당 전문위원 ▲총무처 기획관리실장 ▲총무처 차관 ▲경북지사 ◎문종수 민정수석/검사 출신… 장로로 신앙심 두터워 깨끗한 이미지에다 청렴성이 돋보여 민정수석에 발탁됐다는 평이다.교회 장로로 신앙심이 두텁기로도 유명하다.검사 재직시 「세월의 한자락을 붙잡고」라는 시집을 낸데 이어 최근 「두려움의 혼돈속에서」라는 시집을 또 다시 출간했다.전주·광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이들 지역 건설업계에 기생하는 조직폭력배를 뿌리 뽑았다.김두희 전법무장관,안강민 대검중수부장,김유후 전민정수석 등과 경기고 55회 동기다.부인 박진순씨(53)와의 사이에 1남2녀.취미는 음악감상. ▲서울법대·고시16회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천지검장 ▲변호사 ◎박세일 복지수석/법경제학교수 출신… 업무처리 꼼꼼 미국·일본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두루 공부한 국제감각을 고루 갖춘 교수 출신.서울대 법대에서 법경제학으로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으며,교육개혁위원으로 대학교육체제개혁방향에 대해서도 폭넓은 연구를 했다.지난해말 청와대에 신설된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돼 세계화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다소 이상론에 치우친다는 평가도.진지하면서도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성격이며 등산과 독서가 취미.부인 조미경씨(39)와의 사이에 1남1녀. ▲서울대,미국 코넬대 ▲서울대 법대 교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보좌관 ◎이각범 정책수석/87년 대선 YS지원 「참여파 교수」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해온 참여파 교수로 통한다.87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의 선거진영에 참여,조언과 실무를 맡았었다.박세일 전임 정책수석과는 절친한 친구사이다.산업사회학·정보사회학이 전공으로 「한국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가지고 있다.현재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자문위원과 한국노사관계학회 이사,한국방송공사 위원으로 있는 등 사회활동도 두드러진 편이다.부인 이남주씨(46)와의 상이에 1남1녀. ▲경기고·서울대 사회학과 ▲독일 뷜레펠트대 사회학박사 ▲동국대 사회학과 조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부교수 ◎유도재 총무수석/상도동 출신… 경륜 출범 산파역 맡아 오래전부터 김영삼 대통령과 연을 맺었으나 87년 대선 때 통일민주당의 경남 사천지역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YS캠프에 합류한 상도동출신.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시절에는 올림픽공원을 무료 개방하고 경륜을 출범시켜 국민들의 여가생활에 한몫을 담당했다.강직하고 경우가 바르면서도 원만한 대인관계로 교류폭이 넓다.최금순여사(59)와의 사이에 1남1녀. ▲오사카 시립대 경제학부 ▲국립 러시아 체육대학 명예체육학박사 ▲유한양행 전무 ▲유한 SP 사장 ▲민자당 국책 자문위원 ▲월드컵축구대회 한국유치위원회 집행위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 「12·20」 개각/새 얼굴 9인

    ◎김우석 내무/YS 직계… 소탈한 성격에 배짱 두둑 김영삼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일때 특별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해 줄곧 주변을 지킨 상도동계.소탈한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배짱도 두둑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특히 토지개발공사 사장에 발령이 난뒤 노조가 취임저지 등 강력히 반발했으나 며칠만에 노사갈등을 해소하고 조직을 장악해 일화를 남겼다.지난 87년 정계에 입문할때까지는 언론계·경제계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김대통령의 신임으로 토지개발공사사장과 건설부장관을 지낸뒤 이번에 총선을 치를 내무부장관에 발탁됐다.부인 김정자씨(51)와의 사이에 1남1녀. ◎안병영 교육/대학교육에 남다른 관심… 조화 중시 완벽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조화와 화해를 중시하는 합리주의자라는 것이 중론. 전임 박영식 장관이 연세대총장 때 교무처장으로 보필하는 등 평소 대학 교육정책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학자는 갈고 닦은 지식을 사회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인색해선 안된다는 것이 평소 소신.경실련에서 발간하는 정책전문지 경제정의 편집장,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학교 교무위원,계간지 사상 편집위원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벌여왔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부인 윤정자씨(54)와의 사이에 1남1녀. ◎김영수 문체/업무처리 매끈하고 기획력 돋보여 민자당 전국구의원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한 정세분석통. 검사시절에는 문세광 8·15저격사건과 울릉도간첩단 사건 등 굵직굵직한 공안사건을 많이 다뤘다.지난 92년 대통령선거 기간중 대선기획위원을 맡으면서 뛰어난 분석력과 기획력을 발휘,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민정수석에 발탁됐다. 특히 6공말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차기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제안,김영삼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업무처리가 매끄럽고 빈틈이 없는 데다,소리를 내지않고 맡은 업무만 충실히 해 윗사람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형이라는 중평.부인 원종순씨(50)와의 사이에 1남1녀.취미는 테니스와 등산. ◎강운태 농수산/내무행정 베테랑… 광주시장 역임 일처리가 깔끔하고 업무에 관한 아이디어가 많은 내무전문관료 출신.대학재학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72년 공직에 발을 디뎌 내무부 주요부서를 두루 거친 내무행정의 베테랑. 단신에 치밀한 성격으로 상하간 신망이 두텁다.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했고 기관장이 돼서도 책을 놓지 않는 노력가로 평가받고 있다.재기가 넘치는 재사형으로 작은 일도 놓치지 않는다는 게 주위의 평가. 청와대 내무행정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시·군통합 등 행정구역개편에 깊이 관여했다.이를 인정받아 광주시장으로 발탁됐었다.부인 이덕희씨(40)와의 사이에 2남. ◎이석채 정보통신/해박한 지식 평판… 추진력 뛰어나 어딜 가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다.아는 게 많고 일단 입을 열면 속사포다.정연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힘과 추진력이 있다.경제차관회의에서 그나마 말상대가 되는 사람은 박운서 통산부 차관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그래서 일부 오해도 있고,「적」도 있다. 한이헌 전 경제수석과 고시 7회동기이며 이번 입각으로 7회출신 장관 1호가 됐다.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순방때 기내 브리핑을 완벽하게 해내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출세가도를 달려 왔다.지난 6월엔 북경 남북쌀회담 대표로 활약.부인 문경자씨(47)와의 사이에 2남. ◎정종택 환경/정·관계 두루 경험… 민방위 창설 일익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실무행정가로 지방재정에 정통하다.충북지사를 거쳐 농수산부장관 재직중 청주에서 출마,11대부터 12·13대까지 내리 당선됐으나 지난 14대에는 고배를 마셨다.계수에 밝고 기억력이 비상하면서도 관료출신답지 않게 친화력이 좋아 주변에 사람이 많은 편이다.정계진출 이후에도 정무1장관을 지내는 등 관운이 좋은 정치인으로 통한다.지난 71년 대통령 정무비서관 재직시 새마을운동을 추진했고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낼 때는 민방위 창설의 산파역할을 맡았다.부인 이신직여사(53)와의 사이에 1남4녀. ◎김양배 복지/정통 내무관료… 따르는 사람 많아 「불도저」로 불릴 만큼 뛰어난 업무 추진력을 지닌 정통 내무관료 출신.그러나 일이 끝나고 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막바지에 농림수산부장관을 맡았으나 UR 수정계획서 파문으로 취임 3개월만에 물러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5공」때 초대 광주직할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광주시민의 응어리 해소와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문민정부 초대 행정수석을 맡아 현정부와 인연을 맺었다.취미는 독서.부인 김영희씨(53)와의 사이에 2녀. ◎추경석 건교/국세청서 잔뼈… 공직 36년만에 입각 정통 세무관료 출신으로 59년 주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36년만의 장관 입성.83년 국세청 조사국장으로 재직하며 「명성그룹사건」을 맡아 「명성」을 날렸고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뒤 국세청장으로 4년동안 장기 재직했다. 6척장신의 큰 체구에 조직장악력과 추진력이 뛰어나고 부하직원들에겐 온화한 외유내강형으로 상하간에 신망이 두텁다.누구에게나 비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거는 형이다.독립유공자로 전남지사를 지낸 고 추규영씨의 장남으로 부인 정수자씨(53)와의 사이에 1남3녀.취미는 등산. ◎주돈식 정무1/기자 출신… 조용한 성격의 「일꾼」평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충청도 양반」.잠깐의 교사생활을 거쳐 65년부터 조선일보에서 정치부 기자만 했다.정치부장·논설위원을 하며,성격답게 평형감각을 잃지않는 명칼럼으로 필명을 드높였다.「야당투사」였던 김영삼 대통령과 일찍부터 가까웠다.계속 신임받고 있다. 하버드대학 연수시절 아키노 전필리핀대통령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낮은 목소리로 조용한 성격이지만,업무처리는 야무지다.문민정부 출범후 줄곧 맡아온 중책을 너끈히 해냈다.자제력도 탁월해 한마디로 「소리없는 개혁주의자」다.부인 변성숙여사(53)와의 사이에 1남2녀.
  • 9백억 정치권 음성유입 추정/노씨 기소­비자금 조성·용처

    ◎기업서 3천5백억… 총 4천6백억 조성/사채놀이 등 3천7백억만 사용처 확인 5일 검찰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발표결과 최대관심사이던 노씨 비자금의 정치자금 유입은 13·14대 총선유입분의 총규모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더 밝혀지지 않은 채 「장기미제」사건으로 미뤄졌다. 검찰은 일단 향후 광범위하고 보다 심층적인 계좌추적을 통해 그 전모를 밝히겠다고 확언했으나 사안의 성격 및 상당한 시일을 요하는 계좌추적 작업의 특성으로 미루어 단시일안에 진상이 밝혀지거나 공개될 전망은 어두워 보인다. 그러나 이날 검찰은 이 문제에 대한 수사결과를 비록 밝힐 수는 없지만 중대한 진전상황이 있음을 내비춰 주목된다. 안부장은 이날 5공화국으로부터 6공화국으로 흘러들어온 돈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우리가 밝힌 내용으로는 없었다』고 말했다.또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받은 돈이 20억원뿐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수사중이다』라는 한마디를 던진 뒤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안부장은 그러나 그동안 노씨 비자금의 정치권유입여부에 대해 『말할 수 없다』『수사상 기밀이다』로 일관해오던 답변에서 이날 처음으로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설령 정치권에 유입됐다고 하더라도 수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 공표하지 않겠다』고 한걸음 나선 대답을 했다.이같은 답변은 사실상 정치권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암시로 풀이된다. 검찰이 이날 발표한 노씨의 조성비자금총액은 4천5백억∼4천6백억원.35명의 재벌총수로부터 떡값,대형공사수주의 대가 및 신규사업진출시 특혜를 대가로 5억∼2백50억원씩 모두 3천4백억∼3천5백억원을 거둬들였다는 것이다. 나머지 1천1백억원은 87년 대통령선거를 위해 조성한 자금중 사용하고 남은 돈과 당선후 취임시까지 받은 성금이라고 검찰은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계산은 노씨의 진술을 근거로 한 것이며 기업체로부터부터 받은 돈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돈을 모두 합친 액수다. 이 가운데 검찰이 확인한 돈은 신한은행 등 9개 금융기관에 개설돼 있던 37개 계좌의 입금액과 양도성예금증서의 매입금액을 합쳐 4천1백89억원이다. 특히 검찰은 노씨와 이현우전청와대 경호실장 등 자금조성관여자와 돈을 준 기업체관계자에 대한 조사결과 2천8백38억여원에 대한 구체적인 수수사실을 밝혀냈고 사용처로는 13·14대 국회의원선거지원금 1천4백억원과 부동산의 위장매입자금 3백82억,그리고 퇴임당시 남아 있던 금융자산 1천9백9억원(변칙실명전환하여 기업체에 사채놀이한 돈 9백69억원 포함)등 모두 3천6백90여억원만 밝혀내는 데 그쳤다. 따라서 조성금액과 사용처 사이에는 8백억∼9백억원의 돈이 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이 돈이 정치권을 비롯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대선자금 및 정치권 유입자금일 가능성이 짙지만 이 돈의 구체적인 행선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재산 몰수·추징 어떻게 하나/수사·재판기간 은닉막게 보전 청구/형 확정땐 증식된 재산도 국고 환수 검찰이 5일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에 따라 노태우전대통령이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서울지법에 노씨의 전재산에 대해 보전을 청구,그 절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이날 ▲노씨의 금융자산 1천9백9억원 ▲친인척 명의의 부동산 유입 채권 3백82억9천4백만원 등 2천3백∼2천4백억원과 서울 연희동 자택과 대지,대구 소재 전답 등 본인 명의의 부동산을 포함해 2천8백억여원의 재산에 대해 보전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은 지난해 인천 세도사건 직후,공무원이 뇌물 또는 횡령죄 등을 범하더라도 형이 확정되기 전에는 재산을 몰수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수사 또는 재판 과정에서 빼돌리는 경우가 많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지난 1월5일 제정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법이 적용된 사례는 없기 때문에 노씨는 범죄행위로 재산을 몰수당하는 최초의 전직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법에 따르면 뇌물·횡령 등 범죄를 범한 전·현직 공무원에 대해 기소 전에도 수뢰·횡령액과 증식분에 대해 몰수 보전 청구를 통해 재산을 빼돌릴 수 없도록 묶어둔 뒤 형이 확정되면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도록 돼 있다. 검찰은 법원이몰수·추징의 보전 신청을 받아들여 징역형과 함께 노씨 재산에 대해 몰수형과 추징형을 병과하면 국고에 환수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몰수 보전은 민사소송법의 「가압류」와 같은 것으로 법원이 검찰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노씨는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재산을 처분할 수 없다. 검찰이 노씨가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은 물론 개인 재산 전액에 대해 몰수 또는 추징을 구형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노씨는 재산을 모두 몰수·추징당하고도 국가에 대해 채무자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 꿈과 도전의 21세기… 50인을 주목하라(서울신문 50돌 특집)

    꿈과 도전의 시대인 21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21세기의 주역으로 기대되고 있는 각계의 유망주 50인을 서울신문이 뽑아 소개한다. ▷정계◁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 43세.부인과 1남1녀.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신문기자를 거쳐 12대부터 내리 당선한 3선의원.문민개혁 완성을 위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97년 대선에서 민자당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포부. ◎손학규 민자당 대변인 49세.부인과 2녀.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교수를 지낸 초선의원.선진정치 문화를 이룩하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첨병이 되는 것이 포부. ◎이인제 경기도지사 46세.부인과 2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다.13·14대 재선의원을 거쳐 6·27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충실한 지방살림꾼으로 지방자치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포부. ◎강재섭 민자당 국회의원 48세.부인과 1남1녀.서울법대를 나와 서울고검 검사,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재선의원.만성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법치가우선하는 정치문화 정착이 포부. ◎박종웅 민자당 국회의원 42세.부인과 1남1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초선의원.건전한 청소년문화 정착과 환경보존에 힘써 통일조국 기반조성에 기여하는 것이 포부. ◎이철 민주당 원내총무 47세.부인과 2녀.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3선개헌반대투쟁 전국학생대표를 지냈으며 민청학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3선의원.변화와 개혁으로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 ◎이석현 국민회의 국회의원 46세.미혼.서울법대를 나와 전국 카톨릭학생총연합회장과 평민당부대변인을 지낸 초선의원.계층,지역간 차별을 해소하는 조세제도로 경제정의를의 실현하고 정치권의 자정을 이루겟다는 것이 포부. ◎신계륜 국민회의 국회의원 41세.부인과 2남.고려대 법대 재학시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전민련 민중1위원장을 지낸 초선의원.세대간,지역간,계층간 대립을 극복하는 「열린 정치」와 「통합정치」를 이루겠다는게 포부. ◎허대만 포항시의원 26세로 지방의회에 진출한 경북도 최연소의원.포항지방자치연구소의 정책실장을 맡아 지방의회발전방향 연구.포항 대동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졸.경실련의 서울대 대표및 포항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관계◁ ◎유재웅 공보처 방송행정과장 38세.고려대 신문방송학과졸.정부안에서 방송실무에 관한한 최고 전문가.지난해 지역민방 선정과 통합방송법 제정의 산파역을 했다.방송선진화에 미력이나마 다하겠다는 것이 포부. ◎김영목 경수로기획단국제협력부장 43세.서울대 불문과 졸.73년 외무부에 들어왔다.외시 10회.경수로 건설 사업과정에서 미국·북한과의 협상 업무를 맡고 있다.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완공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사항. ◎조현 외무부 통상기구과장 38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57년부터 외무부에 몸을 담았다.외시 13회.WTO출범 과정에서부터 우리 통상외교를 맡고 있는 실무 주역.WTO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나가는 것이 포부. ◎송영무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 47세.부인과 2녀.대령·해사 27기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기획과장과 해군본부 작전상황실장·호위함 함장등을지낸 작전통.통일 이후 영국이나 일본에 못지않은 해양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이 포부. ◎추경호 재정경제원 사무관 35세.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행시 25회.재정경제원 종합정책과에 근무.신경제5개년계획의 추진 및 각종 경제운용 계획 수립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경제정의를 바탕으로 한 활력 넘치는 경제사회 실현이 꿈. ◎정승일 통상산업부 행정사무관 31세.서울대 경영대를 나와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행시 33회.통산부 미주통상과에서 근무하고 있다.자율화 시대에 부합되는 새로운 정책개발이 포부. ◎맹병렬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 27세.충남 천안출신으로 경찰대학 7기.법학은 물론 사격·운동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전교 5등으로 졸업.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과 가까운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차세대경찰의 기대주. ▷사회◁ ◎김진학 사회복지전문요원 37세.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보건복지부 공채 1기.사회복지전문요원 동우회회장.현인원은 3천명.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걸맞는 사회복지수준을 일구겠다는 포부. ◎최예용 환경운동연합정책실장 30세.서울공대 산업공학과 졸.91년 페놀사건,지난해 낙동강 식수오염사태 조사활동.그린피스와 시베리아 산림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답사.지방자치와 통일시대에 걸맞는 환경정책 개발과 시민운동이 꿈. ◎박찬운 변호사 35세.인권변호사.서울변협의 당직변호사제도 운영규칙 입안주도.대한변협 기획실장 및 성폭력상담소·소비자보호원 법률자문위원.「알기 쉬운 인권지침」 「국제인권원칙과 한국의 행형」등 저서 다수. ◎정유성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사무국장 39세.교육운동가·공동육아연구회운영위원·연세대강사·독일 뮌헨대학 교육학박사.학부모와 학생이 주도하는 민간교육운동을 이끌어갈 인물.학부모 프로그램인 「학부모 아카데미」 개설. ◎이정식 한국노총조사부장 35세.서울대 경제학과 졸.86년부터 노총 정책연구위원으로 활동.노동문제나 임금문제에 정통한 노동계의 이론통이자 행동가.학계·법조계·언론계를 망라한 21세기 노사관계연구회 주도. ◎최헌규JC대전지구회장 36세.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졸.7년째 청년운동을 이끌고 있다.변화와 개혁을 제시하며 지역감정을 없애고 국민대화합을 실천하는 데 앞장.지방의 청년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포부. ◎김경호 경실련 부정부패추진위간사 29세.91년 연세대 법학과 졸.시민의 민원과 고발,진정사항을 검토하고 정부기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경실련의 포괄적인 시민운동을 보다 전문화·구체화시키겠다는 포부. ▷학계◁ ◎성영철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부교수 39세.분자생물학자.연세대 생화학과를 거쳐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학박사,하버드 의과대등에서 연구.만성 간질환의 주요원인인 C형 간염 유전자 백신 개발에 이어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중.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과 조교수 38세.한국 과학계의 자존심인 이론물리학 연구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소장 학자.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연구.인간 뇌의 물리학에 도전중. ◎이성환 고려대 전산학과 조교수 33세.인공지능 연구자.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공학박사.종이 위에 휘갈겨 쓴 글씨를 읽을수 있는 필기체 인식 컴퓨터 개발이 전공.사람 닮은 똑똑한 로봇을 만들겠다는게 꿈.▷경제계◁ ◎김병기 삼성전자 소프트웨어팀 과장 32세.서강대 전자계산학과 졸.85년 입사,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과 신규 프로젝트 기획 등을 맡아왔다.유망 분야중 하나로 꼽히는 멀티미디어 CD롬 타이틀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차인규 현대자동차 연구개발팀 과장 36세.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졸.베스트셀러카인 쏘나타Ⅱ의 외장 부품을 설계했고 엘란트라 프로젝트를 관리.벤츠와 도요타 등 유명한 자동차 업체의 엔지니어를 능가하는 것이 꿈. 나인용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33세.홍익대 대학원 제품디자인과 졸업.크레도스와 프레지오 디자인을 맡았다.앞으로는 강한 개성을 추구하는 스포츠 쿠페의 디자인을 맡고싶어 한다.교통난을 해결할 차세대 교통기기 개발의 꿈. ◎김석규 한국투자신탁 펀드매니저 35세.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졸.미국 오리건주립대 경영학석사.13개 펀드 운용.연간 운용 총자산규모 3천8백억원으로 국내 펀드매니저중 최상급.국제적 펀드매니저로 이 분야의 명저서를 남기는 것이 꿈. ◎김두별 대우 기계부품부 사원 26세.고려대 경제학과 졸.21세기 무역거래의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잡을 3국간 거래 전문가로 활약 중.3국간 거래가 활발한 중동지역을 집중 연구,중동 전문가로 활약이 기대됨. ◎전진한 포항제철 기획조정실 26세.한양대 정외과 졸.포철의 심장부 투자기획파트에서 활약.사내 어학연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어학에 발군의 실력.포철의 해외영업파트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희망. ◎조윤제 한국과학기술원선임연구원 31세. 암 정복에 도전하고 있는 구조생물학자. 서울대 식품공학과 졸. 코넬대에서 박사학위. 30세때 코넬대 의대 부속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쓴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지에 표지에 소개. ◎최흥섭 대한항공 선임연구원 33세.연세대 대학원 기계공학과 졸·공학박사.항공기의 중요부품을 가볍고 강한 복합재료로 바꾸는 세계적인 추세에맞춰 이 분야의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국산 항공기가 세계 하늘을 누비는 것이 희망. ◎이지희 오리콤크리에이티브 디렉터 34세.84년 한양대 신방과를 졸.(주)오리콤 입사.중앙일보 광고상 공모부분 대상,한국일보 신인부 대상 수상(84년).오리콤의 유일한 여성 CD.기억에 남을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게 꿈. ◎오충렬 외환은 외화자금부대리 33세.연세대 경영학과 졸.88년 외환은행에 입행,2년8개월동안 일선 은행업무를 익힌후 4년2개월동안 외환딜러로 근무.3개월간 미국 시카고 금융선물중개회사에서 연수.한국 제1의 데리버티브(파생금융상품)딜러가 꿈. ▷문화예술◁ ◎이병헌 연기자 25세.한양대 불문과졸.91년 KBS 탤런트 14기로 데뷔.드라마 「사랑의 향기」 「아스팔트의 사나이」 「해뜰 날」등에 출연.신선한 감각에 연기력도 우수하다는 평.차세대스타로 가장 유망. ◎신경숙 소설가 32세.85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소설집 「겨울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출간.삶의 속내를 들추는 우수젖은 문체의 미학 보여줌. ◎이미경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45세.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 정외과를 나왔다.87년 여성단체연합 태동때부터 살림을 도맡아왔다.가정·일터에서의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해결,여성도 당당히 주체가 되는 사회를 일구겠다고. ◎최용훈 극단 「작은 신화」대표 32세.서강대 철학과를 나온 연극연출가.「황구도」 「매직 아이스크림」 「쿠데타」등 연출.창작극 활성화와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우리연극만들기」운동주도.우리연극의 모델을 정립하는 게 꿈. ◎조덕현 서양화가 38세.서울대 회화과와 대학원 서양화과졸.이화대 미대 교수.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89년)·동아미술전 대상(90)을 수상.90년대 이후 미국화단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국제무대에 알려진 젊은 작가. ◎백혜선 피아니스트 30세.예원중 재학중 도미,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아티스트 디플롬과정 졸업.94년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1위 없는 3위로 입상,올해 서울대 교수로 발탁.국내 음악계의 기대주. ◎박호빈 무용가 29세.서울예술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을 전수받았다.94년 젊은 무용가을 대상으로 하는 「신세대 신작무대」대회에서 현대무용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박은주 김영사대표 38세.미혼.이화여대 수학과를 나와 83년 김영사에 입사.편집장 때 뛰어난 기획능력을 보여 베스트셀러를 많이 냄.89년 출판사 대표취임.전문지식의 대중화,대중의 고급화를 이루는 게 꿈. ◎이광모 영화사 「백두대간」대표 34세.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미 UCLA에서 영화연출 전공.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객원교수로 재직.예술영화 보기운동을 통해 상업영화에 물든 우리 영상문화를 바로잡는 것이 포부. ▷체육계◁ ◎현주엽 고려대 농구선수 20살.키 195㎝와 체중 103㎏.고무공같은 탄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호쾌한 덩크슛에 경기의 흐름을 읽는 감각까지 탁월.지난 5월 「청소년 월드올스타」로 뽑혔다.세계적인 농구지도자가 되는게 꿈. ◎박세리 공주금성여고 골프선수 18살.여자 프로골프계 「천하통일」을 노리는 신예.올시즌 아마추어 3개대회와 프로대회 4개대회 우승.1라운드 평균타수 71·1타.내년 2월 여고 졸업과 함께 프로 진출을 결심,삼성물산과 후원계약을 맺었다. ◎전미라 군산 영광여고 테니스선수 17살.94년 윔블던 주니어테니스대회에서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준우승한 「무서운 샛별」.내년 여고를 졸업하고 현대해상 테니스팀에 입단 예정.세계 50위권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에 차있다. ◎주형광 프로야구 롯데 투수 19살.프로 최연소 완봉 및 완투 신기록을 보유한 고졸 2년생.배짱과 마운드 운용이 뛰어난 10대 투수 가운데 선두주자.한·일 슈퍼게임에 최연소 대표로 선발됐다.최고 왼손투수가 되는 게 꿈. ◎이경출 상무 양궁선수 25살.경남 복산국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양궁과 인연을 맺은 뒤 15년째인 올해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오른 늦깎이 남자 양궁 희망주.승부욕이 뛰어나다.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게 꿈.
  • 각의 전직대통령 예우법 개정안 의결 안팎

    ◎노태우씨 「진짜 보통사람」 전락 위기/유죄 확정되면 연금지급 중단/가족 병원가료 특권도 사라져/국가기밀 보호차원 경호·경비는 계속 말이 씨가 된 것일까.노태우 전대통령이 마침내 법적으로 「보통사람」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게 됐다.21일 전직대통령 예우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됨으로써 지난 87년 대선에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선거구호로 당선됐던 그가 전직 국가원수로서의 모든 예우를 박탈당할 처지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전직대통령 예우법개정안은 예상 보다 훨씬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전직 대통령이 재직중 탄핵결정으로 퇴임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연금지급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정부 일각에서는 3년 이상의 실형이 확정되는 경우를 예우박탈 대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였다.하지만 이번에 노씨에 대한 국민여론이 워낙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한 듯하다. 때문에 이번 비자금 조성비리로 노씨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일체의 예우가 사라진다.이를테면 본인 및 유족에 대한 연금 지급이 중단 된다.그는 올해만 해도 6천62만4천원의 연금과 차량 및 사무실 유지비조로 5천2백54만8천원의 예우보조금을 지급받았다. 노전대통령은 또 교통·통신 및 사무실 제공,기념사업 지원등의 혜택이 사라지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더욱이 1급 1명,2급 2명등의 비서관 보좌와 본인 및 가족에 대한 병원 가료 특권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다. 다만 이 법개정안의 통과와 관계없이 경호실법에 따른 경호·경비 혜택은 계속 누리게 된다.야권 일각의 주장과 달리 일단 경호실법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한 것은 노씨가 예뻐서라기 보다는 국가기밀 보호나 사회안녕을 위해서 일정수준의 경호등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대통령이 사면받게 되어도 당초 받기로 돼있는 예우를 받지 못하게 된다.이 경우의 예우 회복문제에 대한 법리 해석과 관련,한 당국자는 『양론이 있으나 회복될 수 없다는 쪽이 다수설』이라고 못박았다.이번 개정안에도 사면이 될 경우의 예우 재개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정부는 사법처리된 전직대통령의 서훈까지 박탈하는 상훈법 개정안 제출은 이번에 유보했다.현행법에도 3년 이상의 금고 또는 징역을 선고받으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최고 서훈인 무궁화대훈장등을 포함해 각종 훈장을 치탈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데다,법적용상 많은 논란이 있는 탓이다.민주당은 의원입법으로 이 법개정안을 제출해 놓고 있다.
  • “집권당 사무총장이 설갖고 말할수있나”/강삼재 민자총장 문답

    ◎DJ 스스로 진퇴 밝혀야… 정치권 의도적 사정 없을것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21일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정치자금 수수의혹에 대해 『집권당 사무총장으로서 단순히 설만 갖고 말할 수는 없다』고 밝히고 나서 정치권의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김총재는 노태우 전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 말고는 한푼도 안 받았다고 고해성사까지 했는데. ▲김총재는 정계은퇴를 결정할 때도 고해성사를 했고,뒤에 이를 번복했다.모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0%가 김총재가 정치적 고비고비마다 돈거래를 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김총재의 20억원 이외 추가 자금수수 의혹에 대한 물증은.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시점에서 정치권에서 수사에 영향을 주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검찰은 지금 전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철저히 수사하고 있다.집권여당의 사무총장인 나도 수사내용을 신문 보고 알 정도다.증거가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 확인해 줄수 없다.노씨가 수사에 협조해야 나라가 조용해진다. ­김총재의 정계은퇴를 주장할 만한 어떤 확증을 갖고 있나. ▲정치인의 정계은퇴는 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국민이 판단하고 본인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집권여당의 사무총장이 단순히 설만 갖고 말할 수 없다.나름대로 정황이 있고 생각하는 바도 있다.그러나 지금 얘기하면 공신력을 입증할 수 없다. ­김총재 정계은퇴 주장의 배경은. ▲개인감정은 없다.김총재가 민주화에 기여한 점은 인정한다.그러나 입만 열면 광주학살 원흉이라고 비난한 노씨한테서 돈을 받은 사실은 액수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비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87년 김총재는 대선을 불과 한달 앞두고 평민당을 창당,결과적으로 노씨의 당선을 도왔다.89년에는 야3당 합의를 무시하고 중간평가 유보에 동의했고 5공 청산과정에서도 노씨를 도왔다.김총재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자금수수의혹이 있었고 노씨한테서 대선자금 20억원을 받았다고 시인함으로써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개혁시대를 맞아 김총재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 ­사정대상 정치인의 명단이 적힌 괴문서가 나도는 등 정치권 사정설이분분한데. ▲현재 검찰 수사의 방향과 폭은 정확히 알 수 없다.풍문에 떠도는 의도적인 정치권 사정은 있을 수 없다.다만 노씨사건과 직접 연루된 자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할 것이다. ­민자당이 먼저 대선자금을 공개할 용의는. ▲두가지는 분명하다.김대통령은 노씨 탈당 이후 한푼도 받지 않았다.또 당운영비와 관련해서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았고 김대통령 자신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노씨가 탈당 이전에 총재 자격으로 당운영비를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대선자금을 당 스스로 밝힌다 해도 불신풍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국민이 받아들일지 난감하고 야당이 수긍하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대국민 특별담화 등 사태수습 조치계획은.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 민자당이 거듭 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고 현재 세부적인 방안을 내부적으로 강구하고 있다.지금 조치를 취하면 정치적 절충이나 협상이란 오해를 산다. ­노씨가 여권 핵심부와 거래하기 위해 대선자금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노씨와 협상을 하거나했다면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문민정부의 개혁이 없었다면 이 사건이 터지지도 않았다.어떠한 정치적 절충이나 협상도 있을 수 없다. ­정치권 판도 변화와 관련,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는데. ▲정치권의 변화는 인위적으로 할 수 없고 오직 국민의 판단과 표를 통해 이뤄진다.다만 정치권은 새 시대에 걸맞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깨끗한 정치를 구현할 복안은. ▲전직대통령 구속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다.종래의 정경유착시대와 근본적으로 단절하는 의미가 있다.이제 우리 당은 제도개혁을 통해 재벌의 부정한 자금이 근본적으로 조성되지 않도록 하고 정치권의 자체 정화노력이 이뤄지도록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등 관계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 깨끗한 정치 구현의 시험(노씨 구속 해외사설)

    한국의 노태우 전대통령은 지금 한국 역사상 최대 정치부패사건에 있어서 기소를 기다리며 서울구치소의 독방에 앉아있다.그의 구속은 오랫동안 뇌물과 다른 부패관행에 감염된 한국정치를 깨끗하게 하겠다는 정부의 공언에 대한 시험이다.그러나 노씨는 한국의 정치계와 재계에 깊게 뻗친 스캔들에 혼자 책임을 져서는 안된다. 노씨는 6억5천만달러의 정치비자금의 조성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지만 어느 재벌이 조성에 기여했으며,어느 정치인이 수혜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검찰조사관들은 노씨의 재임기간중 큰 규모의 공공계약들이 정치비자금의 기여를 기초로 해 주어졌으며 그돈은 부패한 개인들 뿐아니라 모든 주요 정당에 나눠졌다고 믿고 있다. 비록 노씨는 한국의 민주화에 일조를 했지만 그의 경력은 한국정치 최악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그는 1979년 군사반란에 가담했으며 1980년 광주시민 학살시 군대를 지휘했다.그러나 1987년 그는 군사정권이 만들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돼있는 선거를 통한 대통령직 인수기회를 버리고 대신 자유선거를 감수했다.그것은 한국의 도시와 대학을 들끓게 했던 격렬한 정치불안정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됐다. 노씨의 대통령 재직 기간은 많은 부패가 이뤄진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보다 커지고 현대통령인 김영삼씨 같은 당시 반체제인사들에게 정치생활 재개 기회가 주어진 새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노씨는 지금 자신이 추진한 개혁조치의 가장 뚜렷한 희생자가 됐다.노씨로부터 자금을 받았다고 시인한 야당지도자 김대중씨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도 희생될지 모른다.또 김대통령까지도 그럴지 모른다.집권당(민자당)은 정치비자금의 일부를 받았다고 시인했는데 그 돈은 92년 대선에서 사용됐을지 모르는 일이다.그러나 김대통령은 개인적 개입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야당의원들은 사법당국이 계속 조사에 임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새 민주제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면 조사와 기소는 계속돼야 한다.노씨만이 유일한 부패정치의 종사자가 아니었으며 그가 유일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돼서는 안된다.
  • 노씨 구속­육사서 구치소까지

    ◎「2인자 처신」 성공후 「탐욕의 추락」/9사단장때 「12·12」 가담… 권력 전면에/올림픽 조직위장→민정대표→대통령으로 팔공산 기슭.꿈많던 피리부는 소년 노태우는 마침내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그러나 그가 평생 이루었던 꿈은 이제 한낫 물거품이 됐다. 현재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차디찬 감방.만인지상으로 일국을 호령했던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되는 역사의 오점을 남겼다.또 온 국민들의 가슴속에 참담한 상처를 남기게 됐다. 꿈많던 소년시절,명예를 존중했던 육사시절,화려했던 군생활,세계에 올림픽개막을 선언하던 당당한 대통령의 모습은 이제 과거사가 됐다.가난한 시골 면서기의 아들에서 대통령으로,또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죄인으로까지 그는 전락했다.노씨가 예순넷 평생을 걸어온 길은 한 인간이 얼마만큼 화려하게 변신할수 있는가,또 얼마만큼 비참해 질수 있는까 하는 점을 극한적으로 보여준다. ○51년 육사11기 입학 그는 1932년12월4일 팔공산 기슭인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룡리(현재 대구시 동구 신룡동)에서 태어났다.7살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뒤 삼촌의 도움으로 공산국민학교를 거쳐 대구공업중학교에 입학했다.대구공업중학교 4학년때 경북중학에 편입해 졸업한뒤인 51년 육사 11기로 입학하면서 무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육사는 그의 인생항로를 크게 뒤바꿔놓았다.노씨는 육사에서 동기생인 전두환전대통령,김복동자민련부총재 등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전전대통령과는 군요직과 대통령직을 주고받는 동지로,후계자로 인연을 맺게 된다.김씨와는 59년 김씨의 여동생 옥숙씨와 결혼해 처남 매부지간이 됐다. 노씨는 대위로 서울대사대 ROTC교관으로 지내던 중 5·16을 맞았으며 전두환대위와 함께 하나회를 이끌며 박정희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계기를 마련한다.이후 67년에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68년에는 대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했고 70년에는 대령진급을 했다.74년 장군에 진급해서는 전씨의 뒤를 이어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지냈다.78년 소장으로 진급해 9사단장을 맡았다.그는 9사단장 시절 자신의 병력을 12·12군사쿠데타에 동원함으로써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이미 그때부터 그의 영광과 오욕의 운명이 예고되었을지도 모른다. 노씨는 12·12거사의 주모자였던 전두환보안사령관과 함께 하극상에 성공함으로써 권력의 길을 걷는다.12·12 다음 날인 79년 12월13일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옮겼고 다음해 국보위 상임위원으로 기용되면서 중장으로 진급했다.또 그해 8월 보안사령관으로 취임하는등 권력의 핵심인 신군부의 2인자로 부상했다.마침내 81년 7월 대장계급을 달고 29년 6개월의 군생활을 마감했다. ○전국구로 국회 진출 그는 정무장관,초대 체육부장관,내무부장관을 거쳐 올림픽조직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을 맡는 등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85년 2·12총선에서는 민정당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초선이며 전국구인 그는 전대통령의 후광으로 민정당대표위원에 올라 본격적인 차기대권수업에 나섰다.이때 그는 최고권력자에게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는 2인자의 처신을 완벽하게 해냄으로써 전전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잃지 않았다.친구였던 전씨에게 사석에서도 반말은 커녕 다리를 꼬고 앉지도 않았다.마침내 그는 87년 6월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전씨로부터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았다. 그는 87년 12월 대선에서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세우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와 대결해 유신이후 16년만에 직선제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 됐다.이에 앞서 그는 재집권 시나리오의 하나인 직선제 개헌수용등을 「6·29선언」으로 묶어 자신의 것으로 발표함으로써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이는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평가된다. 그는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88년 4월26일 13대총선은 여소야대로 나타나 정국운영에는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됐다.과거청산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급기야는 자신을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려준 전씨를 국회증언대에 세우고 백담사에 유배시키는 등 평생동지의 관계가 돌이킬수 없는 원한관계로 돌아섰다.전씨의 형과 동생,처남 등 친인척과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전씨측 사람들은 이를두고 노씨를 배은망덕하다느니,배신자라는 소리가 나왔으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비난에 묻혀버렸다. ○외교치적 긍정 평가 노씨는 재임시 「물태우」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다소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과도기에 무난한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특히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과 중국등 구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를 하면서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넓혔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또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여세를 몰아 모두 8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어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이나 남북유엔동시가입을 성취해 내는등 외교적인 치적에는 상당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93년 2월 퇴임후 밝은 얼굴로 연희동 사저로 돌아갔다.그는 한때 보통사람으로 돌아가 이웃의 환영을 받은 전직대통령이었다.전씨와 화해를 한 것도 사저로 돌아간 뒤였다.그러나 퇴임후 불과 얼마 안돼 과거정권의 비리설이 끊임없이 나돌았고 측근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 6공시절 장관들이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그에게도 거액의 정치자금 은닉설이 공공연히 떠돌았고 급기야 금융실명제의 위세는 그를 더 이상 보통사람으로 남겨놓지 않았다. ○「역사적 책임」 망각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역사적 책임을 망각했다.국책사업과 관련한 이권개입,수천억원대에 이르는 비자금 착복은 그가 역사를 의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그의 불행은 대한민국 역사의 불행이라는 점을 그는 몰랐던 것일까. 그는 지금 무얼 생각할까.그는 대통령후보가 됐을 때 『정상적인 사람이 사는 길이라면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다.나는 대장이 되고자하는 목표를 세운 적이 없었지만 우연히 대장이 됐고,장관을 꿈꾸지 않았는 데도 3부장관을 지냈고,민자당대표나 대권후보를 목표로 하지 않았는데도 오늘에 이른 것을 보면 내 운명은 기구하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도 「영광은 사라지고 오욕만 남은」지금의 처지에 까지 이를 정도로 기구한 운명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 고함·욕설 난무…여­야 치열한 공방/비자금 정국…국회본회의 중계

    ◎DJ 6공서 거액 수수설 해명 요구­민자/“이젠 92년 대선자금 밝힐 차례” 공세/3야 16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은 「4분 자유발언」을 통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92년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특히 민자당과 국민회의는 각각 5명과 6명의 소속의원들을 단상에 내세워 상대측을 맹렬히 공격,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는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선공은 민자당이 폈다.황명수 의원은 『야당지도자가 입만 열면 노태우씨를 광주학살의 원흉이라고 하는데 그에게 돈받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공격했다.황의원은 『지난 87년 대선때 김대중씨는 국민들의 후보단일화 여망을 저버리고 평민당을 창당,노씨가 정권을 잡게 함으로써 오늘날 전직대통령이 구속되는 비극적 사태를 잉태했다』고 비난했다.황의원은 이어 『김총재는 당시 평민당을 창당하면서 여권으로부터 3백억원을 받았으며 6공 때인 90년3월에는 중간평가를 유보하는 조건으로 노씨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이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박주천 의원은 『국민회의가 검은 돈을 받았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민족의 사표인 김구 선생을 팔고 있다』고 비난했다.박의원은 『김총재가 받았다는 20억원은 중소기업인들도 쉽게 만질 수 없는 거금』이라면서 『노씨 사건을 정치권 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국민회의를 압박했다.박의원은 이어 『김총재는 고해성사를 했다면서 마치 모든 것을 사면받은 듯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어느 국민이 이를 믿겠느냐』고 힐난하고 『국민회의측이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것은 비자금정국을 호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명환 의원은 국민회의 한화갑 의원을 겨냥,『민족의 사표인 김구선생을 욕되게 한 데 대해 즉각 사죄하라』고 촉구했다.이어 『노씨의 전재산을 몰수,이른바 「민주화운동재단」을 만들어 5·18희생자 위로사업과 복지사업에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자당이 김대중 총재에게 직격탄을 쏘아대자 국민회의측은 김영삼 대통령을 집중공격하고 나섰다.황명수의원의 뒤를 이어 등단한 김영진 의원은 『노씨의 부정축재는 3당야합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반박했다.이어 『김총재가 20억원을 받은 사실을 밝힌 것은 자신의 명예보다 역사와 국민이 소중했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김대통령이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힐 차례』라고 주장했다. 장영달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김대통령은 노씨와 공범관계에 있으면서 야당동지 살해공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맹비난 했다. 이윤수 의원은 『한 푼도 안받았다는 김대통령의 말은 소와 개가 웃을 일』이라고 비꼬았다.이의원은 『이번 수사를 노씨 개인의 부정축재로 몰기 위해 재벌들을 줄줄이 소환,짜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을 중단한 것이나 서석재전장관의 발언파문을 막은 것은 모두 청와대의 지시』라며 『김대통령은 지금이라도 3당야합 자금과 대선자금,정권인수자금을 공개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정상용 의원은 여권의 김대중 총재 퇴진요구에 대해 『김대통령이 비자금 정국을 악용,정치술수를 부리려 하고 있다』면서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자당과 국민회의의 원색적인 비난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 양측을 싸잡아 비난하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격도 거세게 터져나왔다.민주당의 박석무 의원은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검은 돈을 받은 것은 제쳐두고 많이 받고 덜 받고의 문제로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있어 가치관의 혼란과 국가기강의 붕괴위기가 초래되고 있다』고 질타했다.박의원은 이어 『이제라도 검찰은 김옥숙씨와 이원조·박철언씨등 노씨의 친인척들에 대해 수사해 진실을 밝혀야 하며 김대통령은 즉각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정기호 의원도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전부 남의 탓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노씨 비자금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의원은 또 『노씨가 파렴치범인 것이 드러났으니 전직대통령으로서의 공헌을 참작했다는 검찰의 12·12사건 불기소처분 논리는 이유가 없게 됐다』면서 즉각 12·12사건 관련자 기소문제를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의 김진영 의원은 일본 각료의 잇따른 망언이 현정권의 도덕성 실추로 국가기강이 추락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김의원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일본 각료의 망언이 6차례나 거듭됐으며 강택민 중국주석도 방한동안 우리나라를 반도로 표현했다』면서 『이처럼 주변국들이 최근 우리나라를 얕잡아보는 언동이 계속되는 것은 현정권의 도덕성이 실추된 때문』이라고 말했다.
  • 노씨 비리수사­여의 수습방향

    ◎민자 “검찰 수사뒤 정국 해법 모색” 확고/“비자금사건 흥정대상 될수 없다”/국민회의측 공세 강력대응 태세 10일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향한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의 어조는 부드러웠다.김총재에 대해 『무슨 뜻으로 말씀하셨는지 모르지만…』이라고 경어를 쓰기까지 했다.김총재가 노태우 전대통령으로부터 돈을 받은 의혹을 제기하던 전날의 강하고 격앙된 말투와는 사뭇 달랐다. 강총장의 이같은 변화는 김총재의 유화제스처에 대해 화답한 것으로 일단 풀이된다.김총재는 이날 『정치문제는 정치권에서 풀어야 한다』고 대선자금시비를 둘러싼 장외투쟁방침을 사실상 철회하는 발언을 했다.이에 강총장은 『뒤늦게나마 다행』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민자당은 사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원칙적으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파문을 조기에 수습해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치협상」을 제의하는 듯한 김총재의 입장표명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비자금사건은 정치적 흥정거리가 아니므로 「검찰수사종료전협상불가」라는 것이다. 강총장의 화답이 정치적 절충을 수용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 듯 손학규 대변인이 협상불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나섰다.조기수습을 위한 정치적인 해결모색은 검찰수사 뒤에야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국민회의측 공세에는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방침은 확고하다.국민회의측이 이날 김총재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강총장을 고소키로 결의하고,김영삼 대통령이 3천3백억원의 정치자금을 노씨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자 즉각 「맞불작전」으로 반격에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여기에는 손대변인은 물론 이신범 부대변인등 대변인단이 총동원됐다.손대변인은 『평민당 창당에 의한 야권분열,87년 중간평가유보,89년 광주 5공 청산합의등 주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자금수수설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날 강총장의 공격을 되풀이했다. 민자당은 국민회의측이 당분간 「이중플레이」로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김총재도 「비자금수렁」에 빠져 있는 만큼 확전을 원치 않으며 『서로 아픈 데는 건드리지 말자』고부분휴전을 제의하면서도 여권에 대한 압박전을 계속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강총장에게는 김총재의 측근들로부터 『너무 심하다.그럴 수 있느냐』는 항의 내지는 경고에서부터 『서로 헐뜯어서 좋을 게 있느냐』는 타협조의 말에 이르기까지 전화가 잇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 “김대중씨 노씨 돈 더 받았다”/강 민자총장

    ◎5공 청산 대가 상당액 수수설/“김 대통령 대선·취임무렵 수천억 받아”­국민회의 주장 여야는 9일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러한 가운데 여야는 「비자금 정국」의 장기화는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불신만을 심화한다고 판단,국면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해법에 대한 시각차로 대치상황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민자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를 겨냥,『지난 88년 5공청산을 끝내주는 대가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노씨로부터 받았다는 설이 있다』고 김총재가 밝힌 20억원과는 별도의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제기했다. 강총장은 『김총재는 87년 대선 때 평민당을 창당해 야권을 분열,노씨가 대통령이 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89년 중간평가 때 위헌소지를 제기해 유보하도록 하는 한편 비자금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노씨의 돈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강총장은 『이처럼 주요 정치사안 고비고비마다 노씨를 지원했으며 그때마다 김총재의 정치자금 수수설이 난무했던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면서 『국민회의측은 겸손한 자세로 자숙해야 할 것』이라고 정치공세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측은 『김대중총재는 20억 이외의 돈을 중간평가 때는 물론 그 어떤 경우에도 받지 않았다』고 반박했다.박지원대변인은 『검찰에 압력을 가해 권력의 시녀로 만드는 전근대적인 각본은 이제 끝내야 한다』면서 『국민적 의혹의 대상인 김대통령의 노씨 자금수수는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국민회의의 최재승 의원은 이날 국회 예결위 질의를 통해 『김대통령이 취임 직전인 93년 2월24일 노전대통령과 비밀리에 만나 1천수백억원의 정권인수자금을 건네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자당의 이신범 부대변인은 『김대통령은 2월24일 비밀회동한 일이 없으며 25일 아침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자격으로 청와대에서 노전대통령을 만나 먼저 식장을 가도록 한 일이 있지만 비밀회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하고 근거없는 흑색선전을 퍼뜨리는 정치적 술수라고 비난했다.
  • 민자 강 총장 DJ 수수설 발언 요지

    ◎87년 대선때 창당… 노씨 당선 도움/20억 수수설 비난높자 김 대통령 모략/92 대선자금 검찰서 모든것 밝혀질것 ▲김대중 총재 거액수수설=김총재는 그동안 일관되게 노태우전대통령을 도왔다.지난 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총재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후보단일화 여망을 저버리고 평민당을 창당,노전대통령이 당선되도록 했다.89년 중간평가 유보 때도 김총재가 중간평가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앞장섰다.광주문제 등 5공비리청산을 해 준 대가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도 있다.박계동 의원(민주)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을 때 김총재는 『노전대통령의 돈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 은근히 노전대통령을 지원했다.그러면서 노전대통령으로부터 단순히 인사치레로 20억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를 누가 믿겠는가.김총재는 이제 「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라 「잠자는 양심」이다. 물론 김총재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안다.그러나 김총재가 시일이 늦기전에 역사의 물줄기를 돈으로 바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국민에 의해 강제로 은퇴당하는 불행을 맛볼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민자당 대응=국민회의는 김총재가 20억원 수수사실을 밝힌 이후 국민의 비난이 가중되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우리당과 김영삼대통령을 도리어 모략하고 나섰다.이에따라 우리는 중간평가와 5공비리청산 등 고비고비마다 김총재의 정치자금 수수설이 난무했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아무리 중립내각이었다지만 어떻게 야당총재가 대통령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느냐.미안하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국민회의에서 우리당이 지난 92년 대선 때 각 지구당에 30억원씩 내려보내는 등 1조원을 썼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지구당에 분란이 심하다.김총재가 아태재단을 어떻게 운영했는지 아느냐.우리도 앞으로는 맞대응하겠다. ▲대선자금 수사=검찰수사를 통해 우리당과 관련된 부분도 밝혀질 것이다.김대통령은 노전대통령 탈당후 한푼도 받지 않았다.검찰수사 발표후 우리가 해명할 것이 있다면 해명하겠다.지금 수사가 진행중이고 대선자금 1조원설이 나오는 마당에 우리가 내용을 밝힌다고 국민들이 믿어주겠느냐.과거 불행했던 시절에 대통령 마음대로 기업인들을 불러 돈을 받고 선거비용이 법정비용을 훨씬 초과한 적이 있었다.이는 관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해방 이후의 지금까지의 각종 선거자금을 미주알 고주알 들춰낼 필요가 있겠느냐.
  • 민자­국민회의 대선 자금 폭로전

    ◎“DJ 일관되게 노씨 지원” 직격탄­민자/“김 대통령도 2천억 받았다” 반격­국민회의 민자당이 9일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스스로 실토한 20억원 말고 노태우 전대통령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자,국민회의는 김영삼대통령이 노씨로부터 1천수백억원의 정권인수자금을 받았다고 반격하는 등 양측간의 공방이 폭로전 양상으로 가열되고 있다. ▷민자당◁ 국민회의측의 잇따른 공세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서 「이에는 이」식의 맞대응으로 나섰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이날 국민회의 김총재가 5공청산을 끝내주고 중간평가를 취소해 주는 대가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비자금 정국과 관련해 공개적으로는 처음으로 김총재를 표적으로 삼았다.강총장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를 자청,준비한 자료를 격앙된 어조로 읽어 작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했다. 강총장은 『DJ는 말로 일관되게 노씨를 도왔던 사람』이라고 결론부터 내린 뒤 이를 뒷받침하는 세가지 사례를 열거했다.『87년 대선 때 평민당을 창당해 야권을 분열,「노대통령 만들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89년 3월 중간평가 논란 때 DJ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유보토록 해 노씨를 도왔다.노씨의 비자금 계좌의혹이 처음 나왔을 때 DJ는 노씨 돈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총장은 『이처럼 주요 사안 고비고비마다 DJ가 노씨를 지원했을 때마다 정치자금 수수설이 난무했던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국민회의◁ 강총장 발언에 대해 한마디로 음해와 중상모략이라고 일축했다.무엇보다 여권핵심부의 「김대중죽이기」각본에 따른 것으로 믿고 있다. 박지원 대변인은 『20억원 이외의 돈은 한푼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이 나라 정보를 한손에 쥐고 있는 집권당 사무총장이 설을 빙자,음해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박대변인은 5공청산과정에서 상당한 액수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아마도 당시 김영삼통일민주당총재가 돈을 받았기에 우리당 총재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잘못 짚었다』고 주장하고 『먼저 김대통령이당시 얼마를 받았는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한편 김총재의 측근인 최재승의원은 이날 예결위 질의자료를 통해 『김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을 하루 앞둔 지난 93년2월24일 노태우전대통령과 회동,1천수백억원의 정권인수자금을 건네받았다』고 주장하며 역습을 시도했다.
  • 노태우씨 비리 수사­금진호씨 뭘 밝혔나

    ◎“비자금 599억 한보에 중개” 시인/1백2억 김우중 회장에 실명화 부탁/리베이트 수수·비자금 조성등엔 함구 노씨 비자금을 재벌에 실명전환토록 중간다리역할을 한 민자당의 금진호 의원(63·경북 영주·영천)이 7일 검찰에 출두함에 따라 금의원을 상대로 한 검찰수사내용과 사법처리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의원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재벌들을 상대로 한 노씨측의 「사채놀이 알선자」였음이 사실로 드러나 사법처리될 경우 이는 노씨 사법처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날 금의원을 상대로 △노씨 비자금을 실명으로 전환하게 된 경위 △비자금조성에 관여한 정도를 집중추궁했다. 금의원은 노씨 비자금 5백99억원을 한보그룹을 상대로 실명전환하는데 중개역할을 한 부분은 대체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93년9월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을 찾아가 『이름을 빌려주면 5백99억원을 5년거치 연리 8.5%로 쓸 수 있다.상환은 5년뒤부터 원금과 이자를 포함,매달 1백억원씩 한보그룹이 발행하는 어음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는것이다. 당시 한보그룹은 아산만 철강단지 부지매립공사에 의욕적으로 매달리고 있었으나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금의원은 또 금융실명제 실시직후인 지난 93년 노씨의 비자금 3백억원이 입금돼있던 중앙투자금융의 가명계좌를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을 찾아가 실명화를 부탁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금의원이 이 과정에서 재벌들로부터 별도의 리베이트를 챙겼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추궁했다. 금의원은 그러나 리베이트수수와 비자금조성혐의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검찰은 금의원을 노씨에게 돈을 준 기업인들과 함께 소환한 사실에서보듯 금의원이 비자금 실명전환뿐만 아니라 조성에도 깊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는 금의원이 이원조전의원과 함께 6공 비자금조성의 주역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실정이다. 이때문에 검찰의 금의원에 대한 사법처리여부가 관심사다. 검찰은 우선 업무방해혐의적용은 검토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 의원의 실명전환알선행위가 금융기관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위법사항이나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제정명령」에 변칙실명전환을 처벌할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노씨 비자금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작성한 친·인척 21명의 명단에 금의원을 포함시킨 것은 앞으로 금의원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방향을 암시하는 중요한 단서다. ◎스위스계좌 수사/친인척 21명 누구 누군가/사건 단초 제공한 소영씨 부부 우선 추적대상/아들 재헌씨 부부와 사업가 동생 재우씨 주목/노씨 사촌동생 성우씨 사기 전과로 구설수에 검찰이 지난 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보유설과 관련,노씨의 친·인척명단 21명을 외무부에 통보하고 비밀계좌여부를 스위스정부에 확인해줄 것을 요청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이들 21명은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셈이다.검찰은 친·인척이라고만 밝힐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21명의 신원은 다 알 수 없다.그러나 여려가지 정황으로 대략 짚어볼 수 는 있다. 우선 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노소영­최태원 부부를 꼽을 수 있다.최씨는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의 아들이다.따라서 노전대통령과 최회장은 사돈관계가 성립된다. 최회장은 「재계대통령」이라는 전경련회장을 맡고 있다.양사돈이 성격이 다른 「대통령」을 지낸 셈이다. 다음으로는 노전대통의 아들인 재헌­신정화씨 부부를 들 수 있다.신씨는 신명수 동방유량회장의 딸이다.노씨는 신회장과도 사돈을 맺어 재계와의 연결고리를 완성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물론 노전대통령과 김옥숙씨도 포함되어 있을게 틀림없다. 사업가로 알려진 동생 재우씨도 주목받고 있는 인물중의 하나다.87년 대선당시 태림회회장을 맡아 대선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이권개입소문이 파다했었다.최근에는 장남인 호준씨가 대주주로 있는 법인명의로 시가 1백억원대의 동호빌딩을 93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 의혹을 받고 있다. 이밖에 노씨의 사촌동생 성우씨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올해 초 주택건설업체 한성개발(주)을 설립한뒤 첫사업으로 경북 포항시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만들고 있으나 사업자금출처와 관련,구설수에 올라있다.그는 93년 구속된 사람을 풀어주겠다면서 거액을 챙겨 변호사법위반혐의로 구속된 전력도 있다. 현재까지 노씨의 처가쪽에서는 거론되는 사람이 별로 없다.다만 동서인 금진호 의원이 7일 검찰에 소환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 금의원은 노씨의 부인인 김옥숙씨의 동생인 정숙씨의 남편으로 노씨와는 동서지간이다. 김옥숙씨의 오빠인 김복동 자민련 수석부총재와 김씨의 고종사촌동생인 박철언 자민련 부총재는 노씨의 비자금사건이 터지자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거나 『비자금에 한번도 관여한 바 없다』고 주장하는등 비자금연루설을 일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 “10원짜리 동전에 불상” 논란

    ◎“87 대선때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삽입” 소문/한은 “불상 아닌 돌사자상… 판별 가능” 해명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이 확산되면서 지난 87년 대선 직전에 나돌았던 10원짜리 주화의 도안과 관련한 루머가 최근 다시 유포되고 있다.불교신자인 노 전대통령의 당선과 관련된 미신 때문에 10원짜리 동전 앞면에 새겨진 불국사 다보탑 상에 새로 불상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지난 66년부터 10원짜리 동전 앞면에 불국사 다보탑의 실상을 새겼다』고 밝히고 『83년 1월15일부터 액면표시,글자 및 숫자 등 주화체계를 개편하면서 다보탑 내부에 불상이 아닌 돌사자상을 추가로 새겼다』고 해명했다.또 돌사자상이라는 사실은 조폐공사가 보관 중인 원 도안을 보거나 10원짜리 동전을 확대경 등을 통해 자세히 관찰하면 판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87년 대선 때부터 노 민정당후보가 불상 3백만개를 집집마다 세우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미신 때문에 10원짜리 동전에 불상을 새로 새겨 넣었다는 마타도어가 나돌았으며,최근 비자금파문이 확산되자 기독교 법률센터 등에서 법화로 특정 종교를 옹호하는 것은 헌법 11조1항에 위배된다며 한은에 해명을 요구했다. 불상이 새겨진 10원짜리 동전은 지난 83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35억개가 발행됐다.
  • 어디로 가나(외언내언)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비리에 관련된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는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한다.출두하는 노씨의 마음속엔 만감이 교차하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착잡하다.당사자의 수모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을 허탈과 분노에 빠져들게 하고 대외적으로 나라의 치부를 한껏 드러내게 한 사건이다. 이유야 어떻든 전직 대통령의 단죄는 현대사의 불행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87년 대선 후보시절 노씨는 『이사람 노태우 믿어주세요』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청와대에 들어가면 재산을 한푼도 늘리지 않겠다』는 공약도 했다.91년 수서사건이 터졌을때 노씨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정치자금은 한푼도 안 받았다』고 단호하게 천명했었다.그런데 지금 그는 그 모든 철석같은 약속을 뒤엎고 부정축재 혐의로 법 앞에 선 것이다. 노씨의 사법처리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집행될 것으로 믿는다.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겠지만 현재의 정황으로는 구속 가능성이 높다.대다수 국민들의 감정도 그 쪽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수감될 경우 교도소로 가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갈 곳은 마땅치 않다.살던 동네 연희동 주민들조차 노씨가 떠나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고향인 대구의 시민단체들도 「구속처벌 재산몰수」를 주장하며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는 판국이다.사법처리되어 응분의 벌을 받은 뒤에도 노씨의 갈 곳은 역시 막연하다.고향에서도 동네에서도 배척하면 도대체 어디로가야 할 것인가. 5천억원의 비자금 조성에,1천8백57억원의 은행잔고가 있지만 결국 갈 곳이 없어진 전직대통령이다.본인이 독실한 불교신자인 데다 검찰소환을 앞두고 스님들의 발길이 잦았던 점으로 미루어 사찰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달성 파계사나 김천 직지사가 거론되기도 한다.그렇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백담사행 재판이 아니겠는가. 불가에서는 일체의 소유를 덧없는 것으로 가르친다.그 가르침도 외면한채 탐욕에 눈먼 한 인간의 파멸이 가슴을 짓누른다.
  • 동생 재우씨 1백억대 빌딩 소유/「노씨 비리」관련 친·인척들

    ◎김복동·박철언·금진호·사돈기업 등 의혹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전모로 밝힌 5천억원외에도 부동산투자나 해외에 은닉된 재산이 적지않다는 주장과 함께 부인 김옥숙씨 등 친인척도 상당한 규모의 자산을 별도로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검찰의 칼날은 노씨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김옥숙씨와 노씨의 동생인 재우씨,김복동 자민련 부총재(처남),금진호 민자당 의원(동서),박철언 자민련 부총재(처고종사촌) 등 친인척과 사돈인 최종현 선경그룹회장,신명수 동방유량 회장 등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6공의 한 고위관계자는 『6공 때 인가난 1백50여개 골프장 허가와 관련,건당 20억∼30억원을 안방에서 챙겼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소개하고 『또 김옥숙씨의 생일 때에도 이현우 전경호실장이 국영기업체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생일선물로 1억원씩 상납토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공개했다. 김복동씨의 경우 지난 87년 노씨가 대통령후보로 부상하자 『내가 노씨를 돕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살하는 것이고,다음으로는 입산하거나 해외로 떠나는 것』이라며 『위의 3가지 방법 외에는 무엇을 하든 노씨에게 부담이 된다』고 주위사람에게 말하곤 했다.그러나 김씨는 노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권력을 좇는 「불나방」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자 국제문화연구소라는 단체를 만들어 차기를 꿈꾸며 이들로부터 정치자금을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김씨가 정계에 진출한 지난 92년 총선때 2백억원이상을 뿌렸다는게 당시 정가의 소문이었다. 금진호씨는 무역협회 고문으로 비켜앉아 있을 때도 재계와 금융계 인사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후문이다.금씨는 이때 재계와 청와대를 잇는 비자금창구를 맡은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그는 초기에는 경제부처의 인사에만 관여했으나 91년부터 금융계 인사에까지 손길을 뻗으 것으로 전해졌다.금융계의 황제로 군림하던 이원조씨와 박철언씨의 반대를 뿌리치고 동향인 김준협씨를 서울신탁은행장에 믿힌 일은 금씨의 대표적인 인사개입으로 꼽힌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공계출신인 이원조씨가 완벽주의자로 분류된다면 법대출신인 금씨는 마당발형에 가까웠다』고 회고했다. 박철언씨의 경우 정치자금과 관련한 각종 풍문이 끊이지 않았으나 물증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6공 당시 89년까지 박씨가 월계수회 관리라는 명목으로 모금한다는 소문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자 이원조씨에게로 바통이 넘어갔다는 말이 나돌았다.지난 87년 대선때 사조직인 태림회를 이끌며 형의 당선에 기여한 재우씨는 이권개입과 함께 서울 반포에 1백억원상당의 동호빌딩을 소유,의혹의 눈길을 받고있다.6공의 한 경제부처장관은 노씨의 사돈인 최회장과 신회장에 대해 『노전대통령이 사돈을 만난 뒤 두차례나 경제정책이 바뀌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최회장은 지난 91년 태평양증권(현선경증권)인수때 동원한 자금 5백71억원의 출처에 대해 신회장은 서울시청 앞의 서울센터빌딩과 노씨의 자금을 증시에서 세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전세계 은행에 1백억달러 예치/수하르토 정권 환수 고심

    【방콕 연합】 인도네시아정부는 인도네시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아온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이 1백억달러이상으로 추산되는 이른바 「혁명기금」을 전세계 은행에 은닉해놓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윤곽을 드러냄에 따라 이의 환수등 처리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29일 자카르타소재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특히 수카르노 전대통령의 혁명기금조사및 환수는 97년 총선과 98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6선 장기집권의 현 수하르토대통령(74)의 정치적 장래와도 맞물려있어 민감한 문제가 되고있다는 것이다. 수하르토대통령은 그의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수카르노 전대통령의 딸이며 그의 최대 라이벌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여사(48·야당 인도네시아민주당총재)가 차기대권주자로 강력히 부상하고있는 가운데 아직 98년 대선에 출마할지의 여부를 밝히지 않고있다. 수카르노대통령의 혁명기금은 87년 이 기금의 존재를 처음 공개했던 현 수하르토대통령의 최고자문협의회 부의장 수하르디만씨가 지난 8월초 다시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있다.
  • 5·18 특별법 공방/쟁점과 배경

    ◎여­청산합의 잊었나/야­진상규명 덜끝나/“용서” 동의한 DJ 해명 요구­민자/총선호재 판단… 몰아붙이기­국민회의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다소 처진 분위기속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이 주장하는 5·18 관련 특별법 제정 문제가 시시각각 정기국회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여야의 시각차가 워낙 큰 데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이해까지 개입하는 듯한 징후도 나타나고 있어 정치권의 공방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민자당은 「용서」에 동의했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발언번복을 들어 야당측의 요구를 「정치목적의 선전공세」로 치부하며 학생·교수 등과의 연계가능성 차단에 나섰다. 손학규 대변인은 3일 『김총재는 정부를 공격하기에 앞서 5·18관련자 처벌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변경에 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특별법제정 및 관련자 처벌 요구의 논리적 모순을 거론했다. 한마디로 지난 89년 여야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청문회 증언과 정호용 의원의 의원직사퇴,보상법제정등으로 종결짓기로 합의했던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총재도 당시 평민당총재로서 합의에 참여해 놓고 이제와서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정치도의에 어긋나고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처사라는 얘기다. 특히 김총재가 14대 대선 직전인 92년 12월2일 관훈클럽토론회에서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과거를 과감히 용서하고 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대목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국민회의가 『정부는 진상규명이나 관련자 처벌,피해자들의 명예회복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한데 대해 민자당은 『진상규명은 검찰의 5·18수사로,명예회복은 광주관련자 전과말소와 보상법제정 등으로 이루어진 상태』라고 반박했다.전직대통령 등의 처벌여부와 직결된 검찰의 불기소처분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출돼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의 최종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법적 영역이지 정치적인 타협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자당의 한 중진의원은 『야당은 진상규명을 위한 기소를 얘기하지만 진상규명은 국회와 검찰수사에서 이루어진 상태』라면서 『사법부는 재판을 하는 곳이지 진상규명에 동원되는 기관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삼재 사무총장도 『우리는 냉정한 판단으로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해 정기국회에서 「정면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민회의 등 야권은 「5·18」의 진정한 진상규명은 법의 심판이 내려질 때만이 완결된다는 주장이다.관련자들을 우선 재판에 회부,유죄여부를 가린 뒤 처벌여부를 따지자는 것이다. 이미 5공청문회와 검찰수사등으로 진상규명이 이뤄졌다는 여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5공특위가 공식 종결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또 김대중총재가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김영삼대통령도 과거 야당 총재 때 5·18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주장했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일단 국회에 제출한 5·18관련 특별법을 회기안에 통과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회의적이다.다만 학생시위 등으로 5·18문제가 사회이슈화하고 있는 만큼강도 높은 투쟁 자체가 그만큼 내년 총선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공청산」 89년 1노3김 합의로 매듭/6공때 피해보상… 문민정부서 「민주의거」 규정 5·18의 아픈 상처를 달래려는 노력은 87년 7월1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의 광주사태 치유책 마련 지시로부터 시작됐다.노대표의 이같은 지시는 그가 그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후 88년 1월11일 민주화합 추진위원회(민화위·위원장 이관구)발족으로 이어졌다. 민주발전·민주화합·사회개혁등 3개 분과위로 구성된 민화위는 2월13일 ▲광주 위령탑 건립및 망월동 묘지 공원화 ▲사상자 재신고 접수 ▲유가족 및 부상자에 대한 조속하고 충분한 보상과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 및 취업 알선 ▲광주어린이공원 관리권의 유가족단체 이관등 4개 항을 노대표에게 건의하고 해산했다. 노대통령 정권이 출범한 뒤 4월1일 정부는 광주사태 치유방안을 발표하면서 광주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규정했다.4월15일 광주를 방문한 노대통령은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노대통령은 11월26일 특별담화를 통해 광주특별법 제정을 발표했다. 88년 7월25일 첫 전체회의를 갖고 활동을 개시한 국회 광주특위(위원장 문동환)는 11월18일 청문회를 시작했다.광주특위는 11월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백담사에 머무르고 있던 전전대통령을 89년 12월31일 광주특위·5공특위 연석회의에 증인으로 세우기도 했다. 광주특위는 89년 2월24일까지 모두 6차례 청문회를 열어 65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89년 2월27일 정부는 중앙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지원협의회」,광주에 광주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회」를 각각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본격적 보상작업에 착수했다.3월10일 노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양자 회동에서 상무대의 시민공원화 등 치유책에 일부 합의했다. 드디어 89년 12월15일노대통령과 당시 김대중 평민당·김영삼민주당·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 네 정치지도자들은 5·18을 비롯,과거청산에 대한 대타협의 내용을 담은 11개항의 합의문을 도출해 냈다.이 합의문에 따라 그해말까지 전전대통령의 국회 증언과 정호용의원의 공직사퇴가 이루어졌다.정치적으로 5·18문제가 매듭된 것이다.그 바탕위에 90년 1월 전격적인 여야 3당 합당이 단행되기도 했다. 90년 4월20일에는 5·18 사상자들에 대한 생활안정금 지급이 시작됐다.사망자 유족과 중상자 2백78명에게는 3천만원씩,일반 상이자 5백85명에게는 1천만원씩,일반 경상자 4백39명에게는 5백만원씩이 지급됐다.7월30일에는 광주보상법이 국회를 통과해 8월17일부터 보상신청 접수가 시작됐다.8월29일 광주보상지원위원회가 구성돼 광주사태 피해자들에 대해 모두 1천5백87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차원을 넘어 광주의거로 규정됨으로써 4·19와 같은 수준으로 대접받게 됐다.정부는 5월2일 5·18을 민주의거로 규정하기로 했다.5월4일에는 광주사태와 관련해 형을 선고받은 6백16명에 대한 전과를 말소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김대통령은 5월13일 5·18과 관련한 특별담화를 통해 광주사태 관련자 전과기록 말소와 전남도청 이전등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5·18」처리관련 일지 ▲87·7·1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 광주사태 치유책 마련 지시. ▲88·1·11 민화위발족. ▲〃2·23 민화위 4개항 건의문 노대통령 당선자에게 제시하고 해산. ▲〃4·1 정부,광주사태 치유방안 발표.광주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규정. ▲〃4·15노대통령 광주방문,「광주시민 명예회복 최선」다짐. ▲〃11·18 광주특위 광주청문회 시작. ▲〃11·26 노대통령 특별담화 통해 광주특별법 제정 발표. ▲89·2·24 광주청문회 마감. ▲〃2·27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 마련. ▲〃3·10 노대통령·김대중 당시 평민당총재 회담에서 치유책 합의. ▲〃12·15 민정·평민·민주·공화 4당 총재 11개항 합의. ▲〃12·31 전두환 전대통령 광주특위·5공특위 연석회의 증언. ▲90·7·30 광주보상법 통과. ▲〃 5·13 김영삼 대통령 5·18관련 특별담화 발표.전남도청 이전하고 그 자리에 기념공원 조성,광주사태 관련자 전과기록 말소 등.
  • “호남당 탈피” DJ의중 반영/국민회의 주요 당직자 인선의 언저리

    ◎“선거돌풍” 겨냥 수도권인사 대거 기용/당 화합·실무능력·지역안배 원칙 고려 새정치국민회의는 7일 당 6역과 당무위원 70명 등 주요 당직자를 인선했다.지난 5일 지도부를 임명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지역당」과 「사당」의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내년 총선과 97년 대선에 대비하려면 호남성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김대중 총재의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이다.이같은 연유에서 가신그룹의 당직자 인선은 철저히 배제됐으며 대신 수도권에 연고가 있는 인사는 과감히 기용하는 용인술을 보였다. 당직자 면면에서도 국민회의를 「수도권당」으로 키우려는 김총재의 의도는 뚜렷이 엿보인다.당 6역의 출신지는 충남 2·부산 1·전남북 3으로 호남과 비호남이 같지만 선거와 연관된 지역구는 서울 4·호남 2로 서울이 우세하다. 또 기조실장과 비서실장·대변인의 출신지도 호남 2·경기 1로 호남이 우세하지만 조직책은 경기 2·전남 1로 수도권이 앞선다.이에 따라 당 9역중 3분의 2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연고를 두고 있다.조순형 총장과 장석화 지방자치위원장의 중용도 이같은 지역안배의 결과다.두 의원 모두 서울에 지역구를 갖고 있으면서 출신지도 똑같이 충남이다.총선시 당세를 수도권에서 충청도까지 확산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특히 장석화 지방자치 위원장은 민주당 이기택 총재계에서 신당으로 이적한 점이 평가돼 중용됐다는 후문이다.신기하총무는 당내 비주류의 대표격인 김상현 지도위의장의 계열로 분류됨에도 유임됐다.내년 5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선출직 총무이기도 하지만 장위원장과 함께 당내 화합차원에서 기용됐다. 정책위의장에는 박상천 의원(고흥)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호남배제의 원칙에 밀려 부산출신이면서 서울 은평갑에 지역구를 둔 손세일의원이 발탁됐다.문희상 의원의 기조실장 임명도 경기 의정부출신이라는 점과 이기택총재의 비서실장을 지냈으면서도 신당에 합류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 경우다.박지원 대변인과 정동채 비서실장은 김총재의 신임이 워낙 높아 오래전부터 예견됐으며 박실 홍보위원장과 김충조연수원장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실무형 당직자라는 평을 받아 기용됐다. 한편 당무위원중 45세 미만이 10명이나 차지했으며 당내 최연소의원인 신계륜의원(41)과 김민석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영입케이스인 허인회 전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30대를 겨냥해 임명된 케이스다.여성계에서도 7명이 임명됐으며 원외지구당위원장중 영남지역의 정영모·신용석(인천)·장한양씨 등은 지역안배를 고려해 당무위원에 포함됐다. ◎국민회의 신임당직자의 면면/조순형 사무총장­원칙중시 3선의원/손세일 정책의장­언론인 출신 국제통/장석화 지자위장­율사 거친 재선의원/박실 홍보위장­성격 호방한 소신파/김충조 연수원장­「연청」 회장 출신/문희상 기조실장­의리파 동교동맨/정동채 비서실장­언행 신중한 「DJ 입」 새정치 국민회의의 신임 사무총장에 기용된 조순형 의원(60)은 원칙과 합리를 중시하는 3선의원이다.유석 조병옥 박사의 3남이자 전국회부의장 조윤형 의원의 동생으로 11대때 정치규제에 묶인 형을 대신해 출마,정계에 입문했다.87년 대선때 후보단일화를주장했으며 3당합당후에는 「꼬마」민주당에서 부총재를 지냈다.14대 국회 상반기에 교육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공정한 회의진행으로 여당의원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천안출신. 손세일 정책위의장(60)은 언론인 출신의 당내 대표적 국제통이다.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뒤 11대에 민한당의원으로 입문했다.13대엔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에 몸담았으나 90년 3당통합때 평민당으로 옮겼다.부산생. 장석화 지방자치위원장(49)은 서울남부지원판사를 거친 율사출신의 재선.「꼬마」 민주당 출신으로 이기택계였으나 국민회의에 합류,발탁됐다.국회노동위원장때 동료 김말용의원의 자동차보험 돈봉투 폭로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홍성출신으로 온화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보위원장을 맡은 박실 의원(55)은 한국일보 기자·한국기자협회장을 거친 언론인 출신의 3선.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지부장으로서 조순후보의 당선에 기여했다.호방한 성격으로 논쟁을 마다않는 소신도 지니고 있다.정주생. 김충조 연수원장(53)은 동교동계 청년조직인 「연청」회장출신으로 김홍일 목포지구당 위원장과 각별한 재선의원이다.여수태생으로 선이 굵은 의정활동이 돋보인다는 평.민주당에서도 정치연수원장을 지냈다. 문희상 기조실장(50)은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비서실장을 지내다 친정인 국민회의로 돌아온 동교동 가신그룹의 일원이다.초선으로 철저한 「DJ(김대중 총재)맨」이면서도 지난 2월 이전총재의 의원직사퇴파동 때는 함께 의원직을 던질 정도로 의리를 중시한다.신당창당에 서슴없이 반대하면서도 DJ와의 연을 중시,국민회의를 택했다.외모와는 대조적으로 정국상황에 대한 분석력과 기획력이 남다른데다 대인관계가 원만해 안팎의 신망이 두텁다.의정부생. 원외인사로 눈길을 끌고 있는 정동채 총재비서실장(44)은 아태재단에서도 비서실장으로 DJ의 「입」이 돼 온 화순태생의 김총재 심복.합동통신·한겨레신문을 거친 언론인 출신으로 부친이 DJ와 목포상고 동창으로 절친하다.82년 김총재가 미국에 체류해 있는 동안 비서를 맡기도 했다.깨끗한 외모에 언행이 신중해 김총재의 신임이 두텁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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