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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년 대선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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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선천성 상생 결핍증과 정계개편/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10·25 재보선 참패 이후 여당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봇물 터지듯하고 있다.1987년 대선을 앞두고 이뤄진 각종 정계개편을 고찰해 보면 대선 환경, 제도, 유권자 의식 구조라는 3대 요인이 연결되어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대선 환경은 정계개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제도나 유권자 의식 구조와 결합되어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를 들면 87년 민주화 운동이 촉발한 정치상황은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도록 유도했고, 이러한 예기치 않은 변화는 궁극적으로 김영삼·김대중이 주도했던 야권을 분열시키는 정계개편 요인으로 작동했다. 향후 여권발 정계개편은 당 개조와 리모델링을 통해 열린우리당이 중심이 되는 방식보다는 열린우리당 해체 후 헤쳐모여식으로 신당을 창당하는 방식이 채택될 개연성이 크다. 그 이유는 현 집권당은 과거 집권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구조적 환경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었고, 진보세력의 거품이 걷히면서 중도층이 두꺼워지고 있으며, 젊은 세대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2002년 대선에서 형성되었던 현 여권의 선거승리연합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기 때문에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이 대세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대선에 임박해서 정권만 잡고 보자는 식의 선거공학적인 측면에서 진행되었던 정계개편을 수없이 경험했다.90년 3당 합당,97년 DJP연대,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문제는 이러한 졸속적이고 명분 없는 정계개편이 정권을 잡는 데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집권 후 통치하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철학과 원칙은 실종된 채 간판만 바꾸는 식의 정계개편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여당이 추진하려는 정계개편 역시 이러한 실패 인자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지역적 뿌리가 같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간판을 내리고 당명을 바꿔 통합하는 식의 정계개편은 국민을 일시적으로 현혹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국민들이 습득한 ‘정계개편 학습 효과’를 감안한다면 과거와 같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열린우리당이 해체 후 통합하든, 노 대통령을 배제시키든, 고건 전 총리가 참여하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을 창출해서 자신들의 정책을 구현하는 것이 정당의 존립 이유다. 따라서 지지도에서 절대 열세인 정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계개편을 시도하려고 몸부림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정계개편이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내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철학과 원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중인 여당의 정계개편 논의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가안보가 위기에 처해있고, 외교·안보라인이 전면 교체됐으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둘러싸고 한·미간에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여당이 정계개편에 몰입하는 것은 국정을 포기하는 것이고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다. 따라서 여당은 정계개편 논의를 중지하고 정기국회 이후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정계개편 추진의 또 다른 원칙은 새로운 당명과 대표 선출 등 당의 껍데기에 해당하는 하드웨어만 바꾸는 신당 창당이 아니라 전근대적이고 갈등지향적인 정당 운영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정당 운영의 소프트웨어 변혁에 치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적이고 진취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정당 구성원의 합의가 정계개편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계개편이 한국 정치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면서 고질적인 ‘선천적 상생 결핍증’을 치유할 수 있는 길도 열리는 것이다.
  • [씨줄날줄] DJ 그늘/이목희 논설위원

    남재희 전 국회의원은 최근 펴낸 ‘아주 사적인 정치비망록’이라는 저서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해 “대단히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내가 항상 존경하고 두려워해 왔었다.”고 적었다. 남 전 의원은 특히 ‘말의 정치’ 측면에서 DJ를 높게 평가했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쪽에 있었던 남 전 의원은 ‘위대한 평민의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한다. 노태우 진영은 이를 변형해 ‘보통사람의 시대’란 용어를 선택했다. 그때 DJ는 ‘평민당(평화민주당의 약칭)’을 창당했다. 서민이 중심에 서는 정치를 함께 예견한 셈이다.DJ는 이어 ‘햇볕정책’이란 말을 공식 정치용어로 등장시켰다. 서민정치와 햇볕정책, 지금 한국 사회를 요동치게 하는 두가지 쟁점어는 모두 DJ가 만들어 낸 것이다. DJ가 지난 주말 8년만에 고향 목포를 방문해 ‘無湖南 無國家(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란 글을 남겼다.DJ의 총기가 예전처럼 작동한다고 전제하면 굉장한 ‘정치 언어’다. 군사정권 시절 차별받던 호남인들에게 “표로 뭉쳐야 한다.”는 전략적 사고를 말과 행동으로 학습시킨 이가 DJ였다. 나중에 영남, 충청권이 따라왔지만 전략적 투표에서 아직 호남권이 앞서 간다.DJ의 은퇴 후 영향력이 다른 이보다 훨씬 큰 배경이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DJ가 일궈놓은 전략적 득표기반으로 갑자기 떠서 당선까지 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DJ그늘을 벗어나려 했다. 이후 정책에서, 또 인사에서 탈(脫)DJ 현상이 나타나자 호남인의 전략투표가 본격화했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40전 40패라는 치욕의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다. DJ가 햇볕정책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나섰다. 호남인들의 전략투표 성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 심지어 한나라당 당직자마저 호남권에서는 햇볕정책을 헐뜯지 못했다.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들도 DJ그늘 복귀를 외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 측근 그룹은 노사모 재건 등으로 맞받아칠 조짐이다. 노 대통령과 DJ의 치열한 수싸움을 제대로 읽어야 내년 대선 정국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사설] 대선주자들 책임감부터 느껴야

    차기 대선주자가 주목받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선까지 남은 1년2개월이 각 주자에게 긴 시간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치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른 현안은 묻혀버리는 우리 풍토에서 대선 정국의 조기 과열이 바람직한지 여야 정당과 대선주자들은 숙고해야 한다. 특히 정책과 비전을 준비하기보다는 이벤트성으로 지지율만 높이고 보자는 식이라면 더욱 곤란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후보경선 출마 의사를 밝혔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경선 도전의 뜻을 내비쳤다. 이명박·박근혜씨는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렇듯 유력 예비후보라면 자신의 정체성과 정책 비전을 가다듬는 데 먼저 신경을 써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바닥이라고 해서 그 반사이익으로 지지율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자칫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경제를 회복시키고, 외교안보를 다잡을 정책대안을 내놓을 때 책임감 있는 대선 예비주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양 진영간 헐뜯기가 지금처럼 계속되고, 후보선출 방법이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는 상황이 이어져선 안 된다.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열린우리당은 ‘100% 국민참여 경선제’를 도입키로 확정했다. 정동영 전 의장은 독일에서 귀국해 대권 도전 채비를 갖추고 있다. 국민참여경선제의 장단점을 따지기에 앞서 이를 통해 판을 흔들어보자는 의도라면 옳지 않다. 여당의 영입 1순위로 거론되는 고건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여야를 넘나들면서 눈치 보지 말고,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1987년 직선제 개헌 후 네차례의 대통령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제대로 된 정책을 준비하는 예비후보가 누구인지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 민생입법을 비롯, 정치·경제를 무분별한 선거판으로 만들지 않는 책임감을 가진 후보를 국민은 벌써 고르고 있을 것이다.
  • [열린세상] 한탕주의식 정계개편은 독(毒)이다/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분출되고 있다. 정권 재창출에 대한 위기감이 짙게 배어 있는 범여권이 정계개편론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최근 “수구보수대연합에 대응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 개혁진보세력이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전 총리는 기존 정당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연말에 정치권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면 중도실용개혁세력의 통합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정계개편론에 불을 지폈다. 한편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지역감정 해소와 국민통합을 위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쳐질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는 “내년초 다른 보수세력과 연대한 뒤 3,4월쯤 한나라당과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 정치권과 연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실시된 한국 대선에서는 국민들의 상식을 뛰어 넘는 깜짝 놀랄 만한 역발상의 정계개편을 주도한 세력에 선거 승리라는 달콤한 열매를 안겨 주었다.92년 대선에서는 정통 야당의 한 축이었던 김영삼 후보(PK)가 군부독재세력의 뿌리라고 할 공화당의 김종필(충청)과 민정당의 노태우(TK)와 함께 정계개편을 통해 반DJ(김대중), 반호남 연대를 지향하는 3당 합당을 이끌어 냄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97년 대선에서는 유신저항세력이었던 김대중 후보(호남)가 유신 본류세력인 김종필(충청)과 내각제를 매개로 반한나라당, 반영남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승리했다.2002년 대선에서는 재벌개혁 세력인 노무현 후보가 재벌본류인 정몽준과 극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룩함으로써 승리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해 철학과 뿌리가 다른 이질적인 정치세력간에 추진된 인위적인 정계개편의 최대 비극은 이것이 통치 실패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90년 3당 합당이나 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는 결과적으로 개혁 세력과 개혁 대상이 뒤범벅되어 함께 국정운영에 참여함으로써 한국 정치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정의를 실종시켜 버렸다. 개혁은 용두사미식으로 변질되었으며, 대통령의 지지도는 끝없이 추락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으로 한때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민주화운동 출신 대통령들이 통치하면서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정도정치를 벗어나 독(毒)이 든 정계개편의 열매를 두려움 없이 따 먹었기 때문이다. 정권창출을 준비하는 세력과 유력 대권후보들은 이러한 통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현 시점에서 여야 정치권이 앞장서서 취할 행보는 정계개편 논의가 아니라 자기 성찰과 반성이다. 민생을 챙기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철학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민생 파탄에 대한 자신들의 무능과 오만에 대해 진솔하게 참회해야 한다. 정권재창출의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는 비장함과 용기도 필요하다. 한나라당도 보수대연합을 운운하기 전에 차떼기 부패정당, 기회주의적 잡탕 정당, 기득권 옹호 수구꼴통 정당이라는 낡은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당의 환골탈태를 위한 제대로 된 개혁 논쟁을 전개해서 한나라당판 과거사 정리를 한번쯤은 실시해야 한다. 철학과 정체성이 없는 정당들이 추진하는 한탕주의식 정계개편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권의 현란함에 현혹되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누가 독이 든 정계개편의 칼춤을 또 다시 추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선별해서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 [2007대선과 시대정신] ‘시대정신’의 역사적 흐름

    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4번의 대선을 치러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4명으로 대통령을 배출했다. 대권을 거머쥔 4명의 대통령들은 저마다 당시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며 승리를 낚았다. 16년만에 국민의 직접선거로 치러진 87년 대선은 ‘직접 민주주의의 복원’이란 성격이 강했다.87년 이후 봇물처럼 터졌던 민주화 요구를 동력으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형성됐다. 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고 DJ(김대중)와 YS(김영삼)의 분열로 대선에서는 패했지만 이후 2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87년 체제’를 탄생시켰다. 1992년 대선은 ‘군정종식과 문민정부 탄생’이 화두였다. YS는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충청이 손잡은 3당 합당을 발판으로 승리를 거머쥐었고 ‘민간인이 주도하는 정부의 출범’이란 의미를 지녔다.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97년 대선은 선거를 통한 첫 정권교체라는 의미가 강하다. IMF 금융위기 속에서 DJ는 ‘정권교체와 경제민주화’의 시대정신을 국민들에게 설파했다. 반(反)한나라당 전선인 ‘DJP(김대중, 김종필)연합’을 성사시켜 DJ를 괴롭혔던 ‘색깔론’의 덫을 통과했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200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구시대 정치와의 단절과 ‘개혁’을 외친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시기적으로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시대’의 종언과 일치했고, 노 후보는 ‘낡은 정치의 단절, 선명한 개혁’이란 시대정신을 최대한 활용했다. 노 후보는 대세론으로 기세를 올렸던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권위주의와 3김 정치의 아류’로 몰아치며 기득권 유지의 표상으로 부각시켜 승리를 낚았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이경형칼럼] ‘盧 차별화’를 許하라

    [이경형칼럼] ‘盧 차별화’를 許하라

    TV광고 기법 가운데 브랜드의 차별화 메시지가 소비자 설득에 가장 효과가 크다고 한다. 선거, 정치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열린우리당의 재선 의원들과 가진 만찬에서 “(대통령과) 차별화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다음 대선을 위해서 당이 (나를) 비판해야 한다면 감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은 ‘차별화 허용’ 등의 확대 해석을 부인하면서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차별화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게 기본 인식”이라고 토를 달았다. 청와대는 당정 분리 원칙과는 달리 정무비서관을 신설하고, 정무특보단도 설치할 계획이다. 일차적으로는 청와대와 당 사이에 소통을 원활히 하고, 정치적 조율을 다잡으면서, 한편으로는 임기 말의 레임덕을 최소화한다는 의도다. 그러나 그보다는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 작업처럼 보인다. 비록 대통령의 지지율이 14∼15% 선에 맴돌고 있지만, 합종연횡을 하든, 한판 엎어치기를 하든, 상황 타개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엄밀히 말해, 현행 5년 단임제 헌법체제 아래서 정권을 재창출한 정권은 없었다.6공의 민자당 정권이 김영삼 정권을 탄생시켰다 해도,5공의 연장선상에 있던 노태우 정권이 YS 문민정부를 창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이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켰으나, 뒤이어 탈당, 창당 수순을 밟은 현 노무현 정권을 민주당이 진정으로 재창출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에 몸담고 있는 인사든, 앞으로 영입될 인사든 간에 후보군으로 나설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미 ‘노(盧)메뉴’에 식상했기 때문이다. 5공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10항쟁 이후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대통령직선제 개헌 수용 등 ‘6·29선언’으로 항복했다. 그 와중에서도 이 선언은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당총재인 전 대통령과 사전 상의 없이 결행한 것으로 정리하여, 모든 공로는 노 대표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전두환이 ‘죽일 X’가 되어도 노태우가 살면 된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여권 후보군이 내세워야 하는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답은 자명하다. 평등보다 경쟁에, 분배 정의보다 성장 동력에, 이념보다 실질 숭상에 좀 더 역점을 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를 일거에 ‘우파 시장주의’로 전환하라는 말은 아니다. ‘노(盧)차별화’엔 노선의 차별화와 못지않게 리더십의 양식, 용인술, 화법의 차별화가 필수적이다. 분열을 통한 지지세력 확보보다는 통합을 통한 사회 전체의 안정을 꾀하고, 코드·회전문 인사보다는 정권지지층의 외연을 두껍게 하는 용인 철학을 가져야 한다. 달변가 노무현 화법은 분명 일품이지만,“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등의 거리낌 없는 직설화법보다는 어눌하지만 진중하고 격조 있는 화법의 소유자라야 차별화가 이뤄질 수 있다. 차별화는 차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비판, 부정, 극복의 수순을 밟게 마련이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열린우리당에 진정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대권후보들에게 ‘나를 딛고 일어서라.’고 말해야 한다. 정권재창출은 밀알이 썩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khlee@seoul.co.kr
  • 종교적 양심으로 사회변혁 앞장

    지난 80년대 중반 원불교 교역자인 교무들을 주축으로 결성되어 사회 현안이 생길 때마다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여온 사회개벽교무단(상임대표 김대선 교무)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다음달 3일 서울 유스호스텔에서 기념식과 세미나를 갖는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은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던 1987년 6월17∼18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대각전에서 100여명의 원불교 교무들이 시국토론 철야기도회를 가진 것을 계기로 결성된 모임. 당시 철야기도회에 참석한 교무들이 사회의 현안에 전면대응할 것을 결의했고 3개월 후인 9월20일 창단 모임을 대전교구 사무소에서 가졌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인 사안에 소홀했던 원불교 안에선 이례적인 모임이었던 만큼 반대의견이 많았으나 지금은 종교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단체 중 하나로 꼽힌다. 원불교 교단에 국한하지 않고 타종교,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활동을 펴와 2000년 총선시민연대에서 낙천낙선운동을 벌인 것을 비롯해 2002년 11월부터 시작된 반핵국민운동에선 김성근 교무가 원전건설과 핵폐기장 설치에 반대하며 36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2003년 3월28일부터 5월31일까지 새만금간척사업에 반대하는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에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이희운 목사와 함께 김경일 교무가 순례행진을 함께해 주목받기도 했다. 한편 다음달 3일 기념식에는 교무단 역대 단장을 비롯한 교단 각 단체장, 교무단과 연대 사업을 펼쳐온 실천불교승가회·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정평) 대표와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한다.‘참여·소통·개벽’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는 ‘사회개벽교무단 20주년 성과와 전망’(우세관 교무) 등 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생각나눔] 김근태의 ‘뉴딜’구상

    [생각나눔] 김근태의 ‘뉴딜’구상

    열린우리당 김근태 당의장의 ‘뉴딜(New Deal)’구상은, 당 안팎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복지국가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평생을 민주와 개혁에 투신한 ‘정치인 김근태’가 구체제와의 뒷거래 정도로 비춰질 것을 알면서도, 욕먹을 각오하고 뉴딜을 제안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 생각은 가지를 친다. ●김근태를 위한 변명(?) 뉴딜 제안의 요지는 재벌의 경영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대신 근로자의 ‘사회적 시민권’을 확보하자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제든, 정치든, 노동이든 더이상 ‘인간’을 배제하고 소외해선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잠식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깔고 있는 것이다. 뉴딜 구상의 내용은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1930년대 스웨덴·스위스를 비롯한 북유럽과 70년대 스페인 등의 사회적 대타협 모델은 자본가의 소유권 인정과 노조의 발언권 강화, 사회평화 구축 등을 통해 복지와 성장, 사회통합이라는 난제를 풀어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학계에서도 복지국가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97년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빈곤이 일상화되고, 공동체성이 해체되고 있는 현실에서, 뉴딜 구상을 ‘정략적 우향우’,‘정치적인 제스처’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생산적인 담론과 상상력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한계 극복은 신뢰와 연대에서… 하지만 발상의 전환이 현실화되기에는 여건이 결코 녹록지 않다.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양보와 공유의 경험이 일천한 사회 풍토에서 ‘마지노선’없는 타협의 도출이 연목구어만큼이나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는 노사정위원회의 한계에서 이미 현실로 드러났다. 특히 지지율 10%대를 오락가락하는 여당이, 그것도 레임덕에 빠져들고 있는 참여정부 후반기에, 사회·경제·정치 주체들의 대타협을 일궈낼 추진력과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당내에서조차 뉴딜 구상이 이념 논쟁과 주도권 다툼으로 변질되는 상황에서 야당과 정부, 재계, 노동계 등 다양한 주체들을 담론 속으로 끌어들이기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생각의 가지는 다시 정치로 돌아간다.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부가 출범 초 강력한 의지와 실천력을 토대로 대타협의 구상을 내놓았다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물론 현실이 어렵다고 한국적 상황에 부합하는 복지 모델의 구축이나 사회통합을 위한 시도를 멈출 순 없다. 그런 점에서 김 의장의 행보는 시대의 고민과 의미를 담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김 의장의 제안이 현실로 한걸음 더 내딛기 위해서는 정교한 프로그램과 지속적 신뢰의 형성을 간과할 수 없다. 내년 대선에서 대타협을 이슈로 내걸고 국민의 지지를 확인하거나, 지금부터라도 신망받는 각계 지도자들과 연대의 틀을 만들어가는 방안도 고려해 봄 직하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김현희 대선前 국내압송 노력”

    “김현희 대선前 국내압송 노력”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1987년 KAL 858기 폭파사건을 당시 대선에 유리한 국면으로 조성하기 위해 ‘무지개 공작’을 수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KAL기 폭파는 북한 출신 김현희·김승일씨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안기부의 기획조작이나 사전인지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잠정 결론났다.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간첩사건’으로 불렸던 1992년의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은 안기부에 의해 부풀려졌던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1일 서울 세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이같은 내용의 KAL기 사건 조사결과 중간보고서와 남한 조선노동당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안기부는 KAL 사건 발생 사흘 만인 1987년 12월2일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 공작)’을 통해 사건을 대선에 유리한 국면 조성에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진실위는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대선 하루 전날인 12월15일에 맞춰 김현희씨를 바레인에서 압송해온 것은 아니지만, 안기부와 외무부는 그날까지 데려오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 전문 등을 통해 확인됐다. 진실위는 미얀마 동남쪽 300㎞ 지점의 무인도인 하인즈 복 군도의 해저 15∼20m 지점에 KAL기의 동체 잔해로 추정되는 인공조형물이 매몰돼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인공조형물은 조종석을 포함해 동체가 3조각으로 동강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진실위는 김낙중·손병선·황인오 등 3개 간첩망을 기계적으로 결합시켜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이란 단일 사건으로 부풀려졌다고 밝혔다. 남한조선노동당이 경인·호남·중부지역당으로 구성된 것처럼 발표됐으나,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됐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1992년 10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간첩단과 정치인 관련설’과 같은 미확인 첩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공개한 것은 문제”라며 “대선 이후에 ‘간첩단 관련 정치인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관련기사 5면
  • [사설] KAL기 참사를 대선에 이용했다니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진실위)가 1987년 115명이 희생된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재조사 결과를 어제 내놓았다. 그동안 일부 재야진영에서 제기해 온 옛 안기부의 공작설 및 조작설은 일단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5공화국 정권이 이 사건을 13대 대선에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실을 분명히 밝힌 점은 성과라 하겠다. 참사 직후부터 범정권 차원에서 이른바 ‘무지개 공작’을 통해 노태우 후보 당선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사건을 적극 이용했다는 것이다. 과거 정권의 부도덕성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사건 직후 안기부를 중심으로 내무부, 국방부 등 10개 기관에 기획팀을 꾸려 대북 규탄대회를 주도면밀하게 펼쳤다고 한다. 또 대선 직전까지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서울로 압송하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가 노 후보 당선을 위해 반북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상황과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정권이 빚어낸, 지난날의 슬픈 자화상이라 하겠다. 비록 법원 판결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나 훗날 벌어진 ‘총풍’‘북풍’ 논란도 결국은 이런 비도덕적 행태가 빚어낸 소모적 갈등인 셈이다. 이번 조사로 많은 의혹들이 해소되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떨치지 못하는 재야단체들도 있다. 일말의 의구심까지도 털어내려면 추가적인 조사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건조작 논란은 이제 끝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폭파범 김현희의 고해가 뒤따를 차례라고 본다. 사면으로 법적 책임을 면한 자연인이지만 그가 동족에게 해야 할 일은 남아 있다. 그가 입을 열고 이를 통해 사건의 아픔도 역사로 넘길 날을 고대한다.
  • KAL 858기 동체추정 물체 발견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KAL 858기 폭파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얀마 해저에서 비행기 동체로 추정되는 인공조형물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위는 이같은 내용을 포함해 1987년 ‘KAL 858기 폭파사건’과 1992년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1일 서울 세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공식 발표한다. 진실위 관계자는 31일 “국정원이 2004∼2005년 자체적으로 미얀마에서 현지 주민들로부터 취득한 KAL기 동체 추정 물체에 대한 증언을 바탕으로 진실위가 지난 4월 현지 관련자 면담에 이어 5월 7∼16일 해양탐사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제2차 현장탐사를 벌인 결과 바위와 모래가 섞여 있는 곳에서 인공조형물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진실위 관계자는 “국정원이 지난해 1∼3월 세차례에 걸쳐 미얀마 인근에서 KAL858기 잔해 수색에 나섰다가 유사한 동체를 확인했지만 공식 활동 기관인 진실위 측에 비밀로 숨겨왔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진실위는 6월에 잠수조사를 벌이려 했으나 기상악화에 따른 안전문제를 우려한 미얀마 정부의 요청으로 우기가 끝나는 10월로 잠수조사를 미뤘다. 진실위는 폭파사건을 1988년 대선에 활용하라는 지침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지침은 사건 발생 한달 뒤인 1987년 12월 초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아울러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공작 여부와 폭파범으로 지목됐던 김현희씨가 북한 출신이고 실제 범행했는지 여부,폭탄의 종류와 양,잔해수색 문제 등의 의혹에 대한 조사결과를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폭파범으로 검거됐던 김현희씨를 아직 조사하지 못했으며,종전 조사결과가 날조 또는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KAL기 폭파사건은 승객 95명 등 115명을 태운 KAL 858기가 1987년 11월 29일(한국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해 아부다비를 거쳐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진실위는 조선노동당 사건의 경우 안기부 발표처럼 이선실이 10여 년간 잠복하면서 공작활동을 했는 지와 김낙중씨가 36년간 고정간첩으로 활동했는지 여부,안기부가 사건을 사전에 기획했거나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 등 위법행위를 했는지,그리고 사건의 정략적 이용 여부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다.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은 대선 막바지인 1992년 10월 북한의 지령에 따라 남한에 지하당을 구축했다며 ‘김낙중 간첩망’,‘손병선 간첩망’,황인오를 책임자로 조직원이 400여명인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등 3개 간첩망을 적발했다고 발표한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의 간첩사건이다. 박정현 구혜영기자 jhpark@seoul.co.kr
  • 실종 KAL機 동체추정 물체 미얀마 해저서 발견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KAL 858기 폭파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얀마 해저에서 비행기 동체로 추정되는 인공조형물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위는 이같은 내용을 포함해 1987년 ‘KAL 858기 폭파사건’과 1992년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1일 서울 세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공식 발표한다. 진실위 관계자는 31일 “국정원이 2004∼2005년 자체적으로 미얀마에서 현지 주민들로부터 취득한 KAL기 동체 추정 물체에 대한 증언을 바탕으로 진실위가 지난 4월 현지 관련자 면담에 이어 5월7∼16일 해양탐사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제2차 현장탐사를 벌인 결과 바위와 모래가 섞여 있는 곳에서 인공조형물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진실위 관계자는 “국정원이 지난해 1∼3월 세 차례에 걸쳐 미얀마 인근에서 KAL 858기 잔해 수색에 나섰다가 유사한 동체를 확인했지만 공식 활동 기관인 진실위 측에 비밀로 숨겨왔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진실위는 폭파사건을 1988년 대선에 활용하라는 지침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침은 사건 발생 한달 뒤인 1987년 12월 초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공작 여부와 폭파범으로 지목됐던 김현희씨가 북한 출신이고 실제 범행했는지 여부, 폭탄의 종류와 양, 잔해수색 문제 등의 의혹에 대한 조사결과를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폭파범으로 검거됐던 김현희씨를 아직 조사하지 못했으며, 종전 조사결과가 날조 또는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KAL기 폭파사건은 승객 95명 등 115명을 태운 KAL 858기가 1987년 11월29일(한국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해 아부다비를 거쳐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진실위는 조선노동당 사건의 경우 안기부 발표처럼 이선실이 10여년간 잠복하면서 공작활동을 했는지와 김낙중씨가 36년간 고정간첩으로 활동했는지 여부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다. 박정현 구혜영기자 jhpark@seoul.co.kr
  • [씨줄날줄] 제3후보론/이목희 논설위원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은 정치권의 러브콜을 고사했다.“학계에 남겠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정 전 총장의 정치 야망이 큰 것 같다.”고 추측했다. 서울시장보다는 대권을 염두에 둔 인상이라고 했다. 정치학교수 A씨는 “정운찬씨가 의외로 정치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 청와대·교육부와 적절히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파국으로 몰고가지도 않았다. 밀고 당기는 강도와 시점을 조절하는, 정치기술의 전형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도 어제 제3의 대선후보로 정 전 총장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열린우리당 대부분, 민주당, 국민중심당, 고건 전 총리와 한나라당 일부가 모여 새 정치체를 만든 다음 정 전 총장 같은 사람을 내세워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로 복귀한 뒤 제3후보론은 끊이지 않았다. 대권후보가 유력시되는 2인자로 말미암은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기 위한 견제용이 대부분이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노신영·장세동씨는 노태우씨의 조기부상을 막는 역할을 했다. 노태우 정권에서 박태준·노재봉씨도 비슷했다. 김영삼 정권에서는 이홍구·이수성씨가 이회창 후보를 경선 막판까지 견제했다.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 제3후보론에 변화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므로 엄밀한 의미의 제3후보는 아니지만 마치 딴 정치판에서 온 듯한 이미지를 풍기며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노무현 후보가 급속히 떴던 사례, 정치혐오증의 확산은 어느 때보다 제3후보론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여권의 기대가 크다. 여권 관계자는 “대선후보 선출방법을 완전 국민경선으로 바꾸면 참신한 인사를 단기간에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또 한번의 정치실험 의사를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노 대통령도 정 전 총장 등 새 인물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시민사회단체 쪽에서는 박원순 변호사가 득표력이 있다는 견해를 여권에 전하고 있다고 한다. 제3후보론이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정치권의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지역기반이 약한 제3후보가 당선권 가까이 부상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깜짝 후보가 검증없이 반사이익만을 노리는 현상 역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오늘의 눈] 한나라당에 묻는다/박찬구 정치부 차장급

    노무현 대통령의 화두는 도전적이다.“한 시대의 막내가 되고 싶다.”며 3김정치로 상징되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바람을 표현한 것도 한 사례가 될듯 싶다. 열린우리당도 5·31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를 고민했다. 비세(非勢)를 뒤집기 위해 호남을 안고 가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는 구상은 유혹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동영 당의장 측근의 표현처럼 “지더라도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원칙은 노 대통령의 화두와 맥이 닿아 있다. 정치고비마다 재연되는 지역주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개혁의 ‘초심’으로 읽힐 만하다. 표심을 얻진 못했지만 “어떻게 만든 우리당인데…”라는 격정에서 87년 체제를 넘어서려는 여권의 진정성을 굳이 폄하할 이유를 찾긴 어렵다. 정치권이 지방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이율배반적인 팍스아메리카나의 질서를 강요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역풍은 비정부기구로부터 거세게 불붙고 있다. 여야의 뒤늦은 호들갑이나 도심 시위로 인한 퇴근길 시민의 불편한 표정이 FTA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노동시장과 정규노동, 재화와 공공서비스로부터 ‘배제’된 장기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빈곤층은 그나마 시위에 나설 여력도 없는 소외된 그늘이다.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탈출구 없는 쳇바퀴를 맴돌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한·미 FTA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의 7·11전당대회에서는 동시대의 화두인 탈(脫)지역주의나 FTA의 고민을 읽을 수 없었다.‘박심’(朴心)은 있었지만, 민심은 실종됐다.‘미사일’과 ‘영남’은 위력을 발휘했지만, 민생 대안과 통합의 메시지는 찾기 어려웠다. 정치학자들은 박근혜의 서진(西進)과 고건의 동진(東進)을 차기 대선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로 여긴다.FTA의 후폭풍이 97년 쇼크 못지않게 심각할 것이라는 각계의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묻고 싶다. 민심의 순풍을 타고 있다는 한나라당은 과연 시대와 역사를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가. 박찬구 정치부 차장급 ckpark@seoul.co.kr
  • ‘개헌’놓고 사제지간 충돌

    87년 6월항쟁 19주년을 맞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29일 프레스센터에서 ‘6월민주항쟁과 한국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발표가 주목을 끌었다. 사제지간인 두 학자는 그러나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박 교수는 ‘민주헌정주의’를 내세워 개헌론을 제기하지만, 최 교수는 “정치의 실패를 정치 밖 다른 수단에서 찾으려 한다.”며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교수는 87년체제(노태우-김영삼)에 이어 97년체제(김대중-노무현)가 들어서면서 그 어느 때보다 헌법과 제도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뿐 아니라, 환경문제나 직업선택의 자유 등이 모두 헌법문제로 부상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 이는 정치적 합의·타결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영역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헌법적 사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민주정부의 무능과 정치공학의 산물만은 아니다.”라고 분석하면서, 헌법에 따른 민주주의인 ‘헌정민주주의’ 대신 민주적 헌법을 마련하자는 ‘민주헌정주의’를 내세웠다.구체적으로 대통령 4년중임제 도입, 대선과 총선의 일치, 정당명부제에 따른 비례대표를 지역대표의 50% 수준으로 늘린 뒤 비례대표 선거는 ‘중간평가’로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한다는 등의 내용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제도란 제도가 잘 작동할 수 있는 정치의 하부기반과 사회적 조건을 포함하는 일련의 세트”로 이해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제대로 된 조건이나 토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결과적으로 나쁜 제도”가 된다는 것. 최 교수는 “(지금 현재 거론되는)제도개혁의 핵심은 미국 대통령제 모델에 더 가깝게 하자는 것”이지만 미국과 우리는 정치적 토대·조건 자체가 다르다. 특히 “구체제로부터 현재 민주정부까지 ‘고도의 정책적 연속성’이 있다.”면서 “민주파들이, 그리고 그들이 대거 참여한 정권이 아무런 대안적 비전과 정책을 갖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했다.자칫 개헌론이 알맹이 없는 민주파들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그래서 모든 문제를 제도로 환원하지 말고,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정당체제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 고민하자고 제안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7대 후반기 국회의장단 프로필

    ●임채정 신임 국회의장 ‘재야 출신’의 첫 입법부 수장이다. 개혁성과 실용주의를 곁들인 합리적 리더십으로 당내 신망을 얻고 있다는 평. 지난해 1월 당 지도부가 개혁입법의 국회 통과 실패로 총사퇴했을 때 범계파의 추대로 임시의장을 맡았다.1975년 자유언론수호투쟁으로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임 의장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1987년 평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1997년 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장,2000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장,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정책선거특별본부장,2005년 열린우리당 기획전략자문위원장과 열린정책연구원장 등 기획·정책분야를 두루 거쳤다.2002년 대선 직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아 참여정부의 산파역을 맡았다.4선 국회의장 등극은 1983년 채문식(11대) 의장 이후 23년 만이다. 언론인 출신으로는 채 의장과 이만섭(14·16대)·김원기(17대) 의장에 이어 네 번째다. 부인 기영남(64)씨와 2남. ▲전남 나주(65)▲고려대 법대 ▲동아일보 기자 ▲14·15·16·17대 국회의원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상임위원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장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열린우리당 의장·열린정책연구원장 ●이용희 부의장 정치경력만 45년을 넘긴 17대 국회 최고령 4선 의원. 총선과 지방선거에 13번 출마해 8번은 낙선했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1971년 신민당 선전국장 시절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을 맺어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부인 유정순(72)씨와 3남2녀. ▲충북 옥천(75) ▲대전사범학교 ▲9,10,12,17대 국회의원 ▲국민회의 부총재 ▲국회 행정자치위원장 ▲열린우리당 고문단장 ●이상득 부의장 전문 경영인 출신의 5선 의원.1988년 13대 국회 때 코오롱 상사 사장직을 그만두고 민정당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어린 시절 동생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배를 곯았다. 평사원에서 경영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답게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평. 부인 최신자(65)씨와 1남2녀. ▲경북 포항(71) ▲서울 상대 ▲코오롱상사 사장 ▲국회 재경위원장 ▲한나라당 원내총무·사무총장 ▲13,14,15,16,17대 의원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색의 정치/이목희 논설위원

    우리 선거판이 흑백에서 벗어나 알록달록해진 때는 1987년 대통령선거였다. 신문에 컬러지면이 생기고, 컬러 TV방송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치른 직선제 선거였다. 당시 여당의 노태우 후보는 보수파가 애용하는 파란색을 택했다. 김영삼(YS) 후보는 적홍색, 김대중(DJ) 후보는 노란색, 김종필(JP) 후보는 녹색으로 유세장을 뒤덮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DJ의 노란색.DJ는 대선에서 3등을 했지만 다음해 국회의원 총선에서 제1야당을 만들어내면서 ‘황색돌풍’을 일으켰다. 한국정치에서 이전부터 색깔론은 있었다.18세기말 프랑스대혁명에서 급진파들은 빨간 깃발을 애용했다. 그것이 러시아로 건너가 공산혁명의 대표색이 되었고,‘빨갱이’ 논쟁은 한국정치에서 지금까지 이어진다. 한국인 스스로 의미를 둔 첫 정치색은 노랑이었다.YS·DJ가 노란색을 민주화 추진의 상징으로 삼아 전두환 정권 타도에 손을 잡았다. 군사정권의 색깔공세에 시달렸던 DJ는 노란색을 고수, 평화와 통합의 이미지를 주려 했다. 사상문제에 자유로웠던 YS는 빨간색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하다가 파란색으로 변신했다. 1노3김 대결 이후 색은 보수·진보를 나눔과 동시에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파랑은 보수진영이면서 영남쪽을 대변했다. 노랑은 진보·호남을 상징했다. 녹색은 충청권의 보수쪽이면서 파랑·노랑 누구와도 합작할 수 있는 색이 되었다. 현재의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색깔은 노랑,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파랑이다.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요 후보들이 소속 당색을 멀리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보라색, 경기지사 예비후보 진대제 전 정통장관은 파란색을 각각 자신의 색으로 내세웠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나선 오세훈 전 의원은 녹색이 뼛속까지 박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색깔파괴’는 한국정치의 기회이자 위기라고 본다.‘87년 체제’의 후유증인 지역대결·이념대립을 희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화·과학기술·환경 등 다른 차원의 색깔정치를 편다면 고무적인 일이다. 반면 기성정치 혐오증을 이용해 튀고 보자는 식이라면 무책임하다. 엉터리로 덧칠하면 결국 회색, 검정색이 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씨줄날줄] 정당의 역사/한종태 논설위원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해산된다고 한다. 한나라당에 흡수되기 때문이다.11년만에 간판을 내리는 자민련은 현존 최장수(?) 정당이다. 자민련의 해산으로 불과 8년의 역사를 가진 한나라당(1997년 창당)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뒤이어 민주당(2000년 1월), 민주노동당(2000년 5월), 열린우리당(2003년), 국민중심당(2006년)이 있다. 이들 5개 정당은 의석 수 등에 따라 국고보조를 받는다. 이밖에 기독민주복지당과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이 중앙선관위에는 등록돼 있다. 총 7개인 셈이다. 우리 정당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110개의 정당이 명멸했다. 지나치게 많은 숫자다.10년 이상 존속한 정당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5·16쿠데타나 10·26사건,12·12 쿠데타 등 정변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선거 때마다 있어 온 지역 맹주(盟主)나 대통령 중심의 분당과 창당 도미노 현상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탓에 김영삼(YS)·김대중(DJ)전 대통령과 김종필(JP)전 총리 등 이른바 3김 발(發) 창당이 눈에 많이 띈다.3김은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987년 일제히 창당을 했다. 통일민주당(YS), 평화민주당(DJ), 신민주공화당(JP)을 말한다.YS와 JP는 90년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3당 합당(민자당)의 주역이 된다.YS는 대통령이 된 96년 신한국당으로의 명칭 변경을 이끈다.DJ는 평화민주당을 신민당으로 당명을 바꾼 데 이어 91년 이기택씨가 이끌던 ‘꼬마 민주당’과 합당, 민주당을 창당한다.14대 대선 실패 후 정계은퇴 과정을 거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드디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DJ는 2000년에 또다시 새천년민주당을 창당, 정당을 가장 많이 만든 인물로 기록돼 있다. 반면 JP는 95년 YS의 냉대에 반기를 들고 다시 창당하는데 바로 자민련이다. 우리 정당사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게 없다고 한다. 단명으로 끝난 정당이 많은 때문이리라. 오죽했으면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1963∼1980년)이 17년의 역사로 최장수 정당 1위가 돼 있겠는가.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처럼 적어도 몇십년은 존속하는 정당이 이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코스타리카 대선 발표 지연 중도우파 아리아스 당선 유력

    5일(현지시간) 실시된 중미의 코스타리카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야당 국가자유당 후보인 오스카르 아리아스(65)가 근소한 표차로 앞선 가운데 개표 결과에 대한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아리아스 후보가 40.6%를 얻어 40.2%를 얻은 중도좌파 후보 오톤 솔리스를 조금 앞질렀다고 전했다.그러나 솔리스측이 개표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어 아리아스측도 “아직 단정지을 수 없다.”며 “승리 축하를 24시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리아스 후보는 1986∼1990년 대통령을 지냈으며 1987년엔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내전에서 평화를 중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미 자유무역지대 참여를 주창하고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세금논쟁’ 올 정가 핫이슈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화두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조달’ 언급이 증세(增稅)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여야간 첨예한 대립각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재원조달 논란이 5·31 지방선거를 거쳐 대선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여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청와대는 이에 대해 ‘경국대전’(사회적 합의구조)이 필요하다면서 세금논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노 대통령의 진정성은… 여야의 현상적인 반응과는 별개로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정치적 파장과 논란이 예상되는 화두를 던진 배경과 함의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87년 체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사회경제적인 민주화로 나아가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문제제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20일 “야당의 공세를 염려해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방치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구시대의 막내’라는 노 대통령의 고백에서 드러나듯 당장의 정치공학적 손익계산보다는 역발상의 정치를 통해 새 시대를 위한 논의의 틀을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노 대통령의 문제제기가 긍정적인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 학계, 경제계,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등 구성원간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포퓰리즘”vs“국민 합의 거칠 것” 하지만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언급이 지방선거는 물론 차기 대선까지 감안한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간 이분법적 갈등구조를 형성하는 포퓰리즘 정치”라고 각을 세웠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지방선거용으로 세금정책을 발표,‘한나라당은 있는 사람 편, 우리당은 없는 사람 편’이라고 말하기 위해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국면에서는 ‘정책실패로 인한 양극화의 책임을 서민의 부담으로 돌리려 한다.’는 논리로 여당을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동당도 ‘재원조달=증세’라는 등식에는 반대한다. 노회찬 의원은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거나 부유세를 도입하지 않고, 왜 빈곤층에게 세금을 더 걷으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얽히고 설킨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논의와 합의과정의 주도권’을 잡아나갈 수 있느냐가 최대 관건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는 재원조달 언급을 세금인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정략적 태도라며 초당적 협력과 논의구조를 이끌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하지만 “증세는 조세저항을 유발할 수 있다. 사전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유재건 당 의장),“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재원확보 방안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원혜영 원내대표 대행) 등의 발언에서 우리당의 현실적인 고민을 엿볼 수 있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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