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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든은 경제의 히딩크?

    엘든은 경제의 히딩크?

    26일 ‘이명박 인수위’에 벽안(碧眼)의 외국인이 포함됐다.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 국제금융감독센터 회장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의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지난 1987년 이후 다섯차례 이뤄진 인수위 인선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으로 기용된 기록을 남기게 됐다.16대 인수위 때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의 인수위 합류설이 돌았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다만 당시 인수위는 그가 주장한 ‘동북아 금융허브국가 전략’을 받아들여, 참여정부 5년 동안 추진했다. 이 당선자는 올해 초 두바이를 방문한 길에 엘든 회장을 만나고,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외국인인 그가 국적의 제약을 받지 않고 두바이 투자유치를 위해 뛰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 받은 감명이 이번 인수위 인선까지 이어진 셈이다. 엘든 신임 위원장은 이 당선자와 10년이 넘게 친분을 이어오면서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이 당선자의 신념과 정책을 응원했다. 앞서 대선전에서는 선대위의 경제살리기 특위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이 당선자도 후보 시절 “엘든 회장이 새만금 개발에 국제투자 유치를 주선하겠다고 했다.”고 자신하는 등 엘든 회장에 대한 신뢰를 감추지 않았다. 한반도 대운하 경제성 논란이 일었을 때에는 엘든 회장이 사업의 타당성 등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언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는 2005년까지 37년 동안 중동·아시아 지역 HSBC에서 일해 최고경영자에까지 올랐다.2002년부터 4년 동안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회장을 역임했다. 서울을 동북아중심 비즈니스 도시로 키워 나가기 위해 2001년 고건 시장 시절 설립한 SIBAC를 활성화시킨 장본인이 이 당선자이다. 외국인 투자인센티브 확대와 용산 외국인학교 건립, 상암 DMC 마케팅과 투자유치 등이 SIBAC의 제언에 따라 반영된 시정들이다. 두바이나 홍콩 사례에서 배워 관광객을 유치하고 국내 도시를 국제화시켜야 한다는 개척정신이나, 이를 위한 방법으로 서울이나 새만금 등에 ‘랜드마크’를 건립하자고 주장하는 게 이 당선자와 엘든 회장의 닮은 점이다. 엘든 회장은 이 당선자와 함께 앞으로 5년 동안의 경제살리기와 해외투자 유치 방법에 대해 교감을 나눌 것으로 관측된다. 그가 5년 뒤 ‘한국 경제의 히딩크’로 평가받게 될지 주목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靑 가는 길 ‘한 방’의 유혹 버려야”

    “靑 가는 길 ‘한 방’의 유혹 버려야”

    역대 대선은 ‘적대적 프레임’의 역사라고 단정지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큰 틀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대결, 세대와 지역의 대결이 관통했다. 하지만 당락을 정하는 결정적인 한 방은 적대적 프레임이었다. 개혁진영에만 국한시켰을 때 지난 1987년 후보 단일화와 비판적 지지,1992년 반수구대연합,1997년 DJP연합으로 대표되는 정권교체론,2002년의 반 이회창 연대를 들 수 있다. 이번 17대 대선은 적대적 프레임의 결정판이었다.1년여 동안 ‘반 노무현 VS 반 이명박’ 구도로 치러졌다.‘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손우정 연구원은 ‘최악회피 효과’라고 규정했다. 상대방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대화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상쇄한다는 논리다. 손 연구원은 “확실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모호한 차선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는 李당선자의 구호이자 굴레 적대적 프레임은 정책·비전 중심의 선거를 방해한다. 가장 큰 후과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상 BBK 대혈투로 치러진 이번 대선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한나라당만 해도 초창기 제기했던 7·4·7 경제정책이나 대운하 프로젝트를 손놓아 버렸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처음 양극화 문제를 제기하다 나중에는 평화론, 급기야 반부패에 거의 올인했다. 양측 모두 경제살리기라는 합의쟁점이 있었지만 적대적 프레임의 그늘에 갇혀 진보·보수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대선이 통합적인 시각을 던져 줘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들에게 단선적인 가치를 강요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단순한 선악 싸움으로 정리되면 승자와 패자 모두 오히려 자신이 내건 구호가 굴레가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내건 ‘반 노무현’ 구도는 무능과 민생파탄을 막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경제 회생이 되지 않을 경우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정권심판론과 최악의 후보를 피하자는 싸움은 차기 정부의 정책과 노선을 간과하게 만든다.”면서 “이 당선자가 어떤 국정시책을 내놓더라도 제대로 된 검증없이 치러졌기 때문에 국민이 일관된 지지를 보낼지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인물 물갈이보다 정책 기조가 중요 더 이상 적대적 프레임으로 대선이 치러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정당 구조가 안정화돼야 한다는 것이 선결조건으로 제시된다. 한 정치평론가는 “미국의 경우 공화·민주당 양당 구조에서 유권자는 지지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면서 “각 당은 안정된 상태에서 정책적 일관성을 갖고 이슈를 제기하며 유권자에게 통합적인 판단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정당이 급조되는 등 뿌리가 없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바람직한 대선구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충고로 들린다. 인물 물갈이가 아닌 비전과 세력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대립하는 정치세력이 적어도 합의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비전 중심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후 정국의 쟁점이 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책의 경우, 김 교수는 “한나라당은 이미 경쟁력 중심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진보개혁 진영은 아직 기조를 세우지 못했다.”며 비전 중심의 세력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혜영 박창규기자 koohy@seoul.co.kr
  • [이명박 시대-진보·신당 어디로] 위기의 진보세력 “성찰 기회”

    20일 출근길에 나선 회사원 김모(44)씨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1987년 ‘6월항쟁’을 지켜 봤던 김씨는 지난 밤 대통령선거 개표를 지켜 보며 대학 동창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세월의 흐름 탓일까.‘동지들’ 중 절반은 한나라당 집권을 당연시했고, 김씨를 비롯한 나머지는 무력감을 곱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분배와 복지를 말하면서 세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는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렸어야 했는데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거죠. 정책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설득해 가는 과정이 중요했는데….” ●평범한 386들의 자괴감 자신을 ‘왼쪽’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보통 시민들, 특히 87년 민주화운동과 2002년 대선의 흥분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이번 대선을 지켜 보고 느낀 자괴감은 자못 컸다. 현 정부의 실정과 대안 부재로 이명박 당선자의 승리가 예상됐지만,“솔직히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것이다. 김현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세대에게 진보는 정치적 자율성의 획득과 억압에 대한 항거이지만, 시민들에게 진보는 행복추구권 등 다양한 권리의 확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도적 위치에 오른 386세대들이 정치적 민주화의 노스탤지어에서 깨어나 후배 세대들과 함께 새로운 진보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 선거”라고 지적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두 번 연속 집권한 진보세력은 정책의 당위성만 강조했지 실정에 대해 사과할 줄은 몰랐다. 민주노동당 역시 여론과는 동떨어진 이데올로기를 강조했다.”면서 “진보세력들이 민심을 읽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진영, 반부패운동으로 새 출발 “머리로는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만 마음으로는 쉽지 않다.” 이 당선자의 압도적 승리에 대한 진보진영의 솔직한 속내다.19일밤 서울 모처에서 열린 전국시민사회단체 비상대책회에서는 허탈감과 함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선거무효와 불복종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강경론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되 BBK사건 등 당선자의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한편,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민만기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거짓이 교란한 선거라도 국민의 심판은 분명하다.”면서 “현실정치의 진보세력이 대안으로 선택될 만큼 신뢰를 얻지 못했고, 시민사회단체도 유권자들의 판단이 오염되지 않도록 후보자의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진보진영이 충분한 비판과 견제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일부 공감한다.”면서 “삼성비자금을 비롯,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비리의 고리를 끊기 위해 반부패운동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386정치세력의 맏형 격인 대통합민주신당 이인영 의원은 “서민들의 삶에 와 닿는 사회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개선된 효과를 국민들이 느끼게 하지 못했다.”면서 “깊이 자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새출발하겠다.”고 말했다. 임일영 이재훈기자 argus@seoul.co.kr
  • [이명박 시대-17대 대선 평가와 전망] 한나라,‘중도실용’ 각인 성과

    [이명박 시대-17대 대선 평가와 전망] 한나라,‘중도실용’ 각인 성과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 헌정 사상 두번째로 맞이한 수평적 정권교체이자 10년 만에 이뤄진 개혁·보수 진영 간의 권력이동이다. 서울신문의 대선 여론조사·분석을 전담했던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 소장 이남영 세종대 교수, 김형준 명지대 교수, 김욱 배재대 교수의 좌담을 통해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에서 던진 의미를 성찰하고 이후의 정국 흐름을 전망해 본다. 황진선 서울신문 정치담당 부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 이명박 당선의 정치적 의미 ●이남영 교수 역사적으로 볼 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라는 의미가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민주화 세대로 사회 진출 후 산업화 현장을 누볐다. 역사적 부담이 되어 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갈등이 완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김형준 교수 두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87년 이후 5번의 선거를 통해 보수정권 10년, 진보정권 10년을 거쳐 다시 보수정권으로 회귀했다. 좌·우로의 ‘진자운동’은 정치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같은 교체주기는 앞으로 더 짧아질 수도 있다. ●김욱 교수 두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정치의 일상화’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민주화에 대한 전통적 갈망이 표면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치가 개혁·평화와 같은 거대 슬로건보다 일자리 등 일상적인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명박 당선의 핵심 요인 ●이남영 교수 실제 지표가 어떠했든 국민들은 경제·교육 등 국가 근간을 이루는 주요 정책들이 실패했다고 체감했다. 이같은 ‘체감의 벽’을 정동영 후보나 진보진영 후보들은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김형준 교수 우선 범여권의 안일함을 지적할 수 있다.2002년 후보단일화 같은 ‘한방 신화’에 젖어 있었다.BBK에 모든 걸 걸다 보니 국민에게 어필할 정책이 없었다. 다른 요인은 전통적으로 ‘도덕성’을 후보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삼아 왔던 유권자들이 이번엔 ‘업적’에 대한 평가와 기대치에 따라 투표했다는 점이다. ●김욱 교수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 덕분에 한나라당은 고공비행을 할 수 있었다. 범여권이 네거티브에 매몰돼 실패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 말고는 의지할 수단이 없는 선거구도였다. ●김형준 교수 덧붙이자면, 지난번 한나라당 경선은 영남출신 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승리한 경선이었다. 이것이 한나라당에 수구가 아닌 중도실용의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중도와 보수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 이번 대선의 특징 ●이남영 교수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의 도덕성에 대한 검증이 끝났어야 하는데 미진했다. 이 때문에 본선에 와서도 검증문제로 수개월을 끌었고 정책이나 이념이 선거구도의 변수가 되지 못했다. ●김형준 교수 역대 선거에서 힘을 발휘했던 세가지 프레임이 실종됐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일찍 탈당해 여당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여야 프레임’이 사라지고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만 만들어졌다. 둘째 ‘진보·보수’ 프레임도 이회창 후보가 출마하면서 깨졌다. 셋째 ‘이슈 프레임’이 없었다. 경제살리기가 하나의 쟁점으로 합의된 상태에서 각자의 입장을 드러내는 대립쟁점이 형성되지 못했다. ●김욱 교수 더 큰 요인은 여야가 모두 분열되면서 선거가 다자구도로 짜여졌다는 점이다. 선거구도가 불안정하니 정책대결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 이번 선거의 긍정적 측면 ●이남영 교수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지역연고에 함몰돼 표를 던지던 유권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중도실용을 표방한 정권이 출현함으로써 통치스타일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김형준 교수 ‘돈선거’가 완화됐다는 점은 성과다.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465억원을 썼다는데 이번엔 300억원대밖에 안된다고 한다. 조직보다 홍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나타난 긍정적 조짐이다. 또 지역·이념·세대가 아닌 실리에 따라 투표를 하게 됐다. ●김욱 교수 일상적인 정권교체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을 꼽고 싶다. 또 문국현 후보 등 새로운 세력이 등장함으로써 한국의 정당정치가 다당제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점도 평가할 대목이다. ■ 대선 이후 정국전망 ●이남영 교수 범여권이 총선을 위해 이명박 특검을 집요하게 활용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특검의 영향력을 차단·완화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다. 이회창 신당이 창당되는 데다, 한나라당 역시 박근혜 세력 포용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2∼3개월이 이명박 정권 5년의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 ●김형준 교수 특검은 진보진영의 재편성도 가져올 것이다.520만표 차이로 패배했다는 것은 정동영 체제로는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 남으려면 신당과 민주당, 창조한국당이 뭉치는 수밖에 없다. 연결고리는 특검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선 특검이 있고 내부의 박근혜 세력과 외부의 이회창 세력이 건재하는 한 전당대회가 있는 7월까지는 당내 갈등을 최소화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안전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김욱 교수 이명박 특검은 정치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이 당선자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범여권과 타협하면서 최악의 대결을 피해야 한다. ■ 박근혜·이회창의 진로 ●이남영 교수 총선을 앞두고 공천의 상당 부분을 박근혜 전 대표측에 할애해야 하는데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새 대통령이 모든 세력을 끌어 안고 지분 나누기식으로 당을 재편하면 과연 국민의 지지를 얼마나 받게 될지도 의문이다. 이회창 후보가 15.1%를 얻었는데 상당한 규모다. 이 정도면 충남·대전권에선 영향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김욱 교수 이회창 후보는 충남지역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했다. 충남을 연고로 둔 국민중심당과 연합해 지역에 기반을 둔 새 정치세력의 등장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다양한 이념·지향을 가진 세력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 범여권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남영 교수 대선 정국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세력은 문국현 진영이다. 갓 데뷔한 정치 신인이 10년 역사의 민노당을 제쳤다.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갖고도 26%의 득표율에 머문 정동영 후보로선 지역 기반도 없는 혈혈단신 후보가 5.8%를 얻은 사실을 곰곰히 새겨 봐야 한다. 총선 때 신당에 합류할 것이란 예상도 있지만 과연 새롭게 떠오른 세력이 낡은 배에 오르려 하겠는가. ●김형준 교수 만약 내년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진영이 당권을 장악한다면 수도권의 개혁성향 후보들이 문국현 쪽과 결합할 가능성도 있다. 정동영 후보가 일선에서 퇴진한 상태에서 대통합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소선구제 아래서는 수도권을 한나라당에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욱 교수 다당제는 대통령 중심제와는 잘 안 맞는다. 소선거구제와도 안맞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화되고 있는 만큼 이를 반영하는 새 선거제도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 이명박 당선자의 과제 ●이남영 교수 싫더라도 참여정부와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정책도 상당 부분 인수받게 된다. 재평가하면서 수정할 부분은 고치면 된다. 다만 대북관계 등 몇가지 대립되는 지점이 있다. 이 역시 연속성과 일관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수정·보완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김형준 교수 노무현 정부의 상징적 정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북핵과 평화체제,3불정책, 부동산정책 등이다. 만약 집권 초기부터 전임 정부의 정책을 청산하는데 매달리다 보면 경제살리기는 뒤로 밀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 전임 정부의 것이라도 정치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욱 교수 이명박 정부도 큰 틀에선 개혁세력이 지금까지 만들고 다져온 정책들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큰 성과가 복지확대인데, 성장을 중시한다고 이미 주어진 복지를 빼앗는 것은 국민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 차기정부 임기 초 최우선 과제 ●이남영 교수 업적·성과중심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 그러다 보면 허점이 생기고, 그걸 메우려다 보면 실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군사정권 시절처럼 ‘하면 된다.’식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은 지치고, 그것이 실패할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청계천 신화’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한반도 대운하도 조급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다. ●김형준 교수 역대 대통령들이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은 집권 초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정치에 쏟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서면 안 된다. 정치는 당과 국회에 맡겨야 한다. 다음으로 합리적·화합적 인사가 중요하다. 야당에 국가적 과제에 관한 중요 정보는 기꺼이 제공하고 동조를 얻는 것도 필요하다. ●김욱 교수 이 후보의 당선은 국민들이 보수화됐기 때문이 아니라 두터워진 중도층이 보수쪽으로 잠시 이동한 결과다. 중도층의 특성상 정부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실정이 이어지면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한다.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정리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 정치 입문~청와대 입성 ‘정치인 이명박’이 걸어온 길은 ‘기업인 이명박’과 달랐다. 현대그룹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하며 달려온 출세가도가 아니었다. 좌절을 맛보기도 했고,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도 했다. 정치무대를 떠나 전공인 건설이 아닌 금융분야에서 제2의 신화를 꿈꾸다 여의치 않아 접고는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도약기를 거쳐 최고 권좌에 오르게 됐다. ●현대와의 결별… 정치 입문 그는 ‘왕 회장’으로 불리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을 만류하면서 현대그룹과 결별하게 된다. 이후 왕 회장의 상대 진영인 김영삼(YS) 진영으로 합류, 지난 1992년 14대 총선 때 전국구(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1995년 지방선거 때 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YS가 밀던 정원식 전 국무총리에게 패하고 만다. 첫번째 정치적 시련이었다. 그 이듬해 15대 총선을 준비하며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다. 여당의 중진 이종찬 국민회의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98년 이 당선자는 다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총선 때 적발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아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했다. 당시 비용 초과 지출을 폭로했던 김유찬 당시 비서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되면서 “이명박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서울시장으로 화려한 재기 이후 2년간 미국에서 ‘정치 방학’을 보내며 와신상담하다가 2000년 귀국해 정치 재개에 나섰다.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한나라당에서 5선의 중진 홍사덕 의원과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쟁해 후보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본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를 꺾으면서 세번째 서울시장 도전만에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때 내건 청계천 복원과 시내 5개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중앙차로제 도입을 내걸었다. 막상 당선되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주변에선 적잖이 만류했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4년 만에 해결했다.‘제2의 신화’는 ‘청계천 신화’로 이어지면서 대선 주자로서 주목받게 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지독한 경선 2006년 6월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 당선자는 다시 여의도 정치로 들어온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는 그가 살아온 세상과 달랐다. 한나라당의 벽은 높고 높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당내에서 철옹성을 세우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보다 높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는 높기만 하던 당심을 허물기 위해 민심을 공략했다.‘한반도 대운하’ 등의 공약과 성공한 경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며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그 해 추석 전후로 북한의 핵 실험 후 지지율 40%를 돌파,‘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경선룰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측과 사사건건 갈등하며 극한의 대치에 이르기도 했다. 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로 돌파해 나갔다. 이상득 부의장의 동생 평이다.“내가 명박이보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나도 대기업(코오롱) 최고경영자(CEO)까지 해봤다. 하지만 명박이에게는 나에게 없는 게 하나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 담대하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명박이는 그걸 가지고 있다.” 그는 땅 투기 의혹과 ‘도곡동 땅’ 차명 의혹,‘BBK 주가조작 의혹’ 등 ‘지독한 경선’을 거쳐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다. 박 전 대표와 불과 2452표차(1.5%)밖에 나지 않는 신승이었다. 그나마 현장 투표에서 500여표 뒤진 것을 여론조사에서 뒤집었다. ●더 지독한 본선…‘BBK 공세’와 김경준의 귀국 경선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주요 당직을 놓고 친박(친 박근혜)과 친이(친 이명박)의 갈등은 계속됐다. 박 전 대표가 ‘오만의 극치’라고 직격탄을 쏜 최측근 이재오 최고위원은 물러나야 했다. 여권의 ‘BBK 주가조작’ 공세도 거셌다. 자녀들의 ‘위장 전입’과 위장취업으로 한때 이 당선자는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와의 틈새를 파고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회창 후보는 “불안한 후보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며 박 전 대표에게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당선자도 박 전 대표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며 “도와달라.”고 SOS를 보냈고 박 전 대표는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이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BBK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당선자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나가 수사를 받았고 본인도 서면조사를 받았다. 급기야 대선을 한달 앞두고 ‘BBK 의혹’의 당사자인 김경준씨가 범죄인 인도 송환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대선판은 요동쳤다. 검찰수사 결과 ‘BBK 주가조작’에 이 당선자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여론은 냉정했다. 검찰의 무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BBK와 이 당선자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여론이 출렁거렸다. 이 당선자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운다. 부부가 살 집 한채 빼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오랜 기업인 생활을 끝내고 공인으로 나섰던 10여년 전부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작정했다.”며 “재산 환원은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면서도 아들을 바르게 키워 주신 어머니와의 약속이자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당은 소위 ‘이명박 특검’을 내세워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높였다. 여야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며 극한 대치를 이뤘다.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밤 11시30분에 대선후보 TV합동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격적으로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고비와 시련마다 과감한 승부수로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9일은 공교롭게도 이 당선자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대통령 당선으로 세번째 축하 케이크를 받게 됐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유년기~현대건설 회장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상 처음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당선자는 만 35세인 1977년 현대건설 사장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월급쟁이’들의 우상으로 통했다. 기업인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그는 92년 정계입문 후 시련을 딛고 마침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기업생활 27년, 정계입문 15년 만의 일이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등으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했지만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가난과 싸웠던 소년 시절 소년 이명박을 키운 건 가난과 어머니였다. 목장 목부로 일하던 이충우씨의 4남 3녀 중 다섯째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상(相)자 돌림이지만 본인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시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다.”고 설명했다. 족보에는 ‘상정’(相定)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소년 이명박은 가족들과 함께 1945년 11월 귀국선에 오른다. 하지만 배는 쓰시마섬 앞바다에서 가라앉고 말았다. 가족들은 구조됐지만 살림살이와 짐은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맨몸뚱이만 귀국했다. 고향에 대한 첫 기억은 포항 시장통의 가난이었다.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가난이 굴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 들러 붙었다.”고 말했다.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학교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 때 영양실조로 쓰러져 넉 달간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등록금을 가져오라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린 이명박은 철들기도 전에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좌판을 벌였다. 김밥, 풀빵, 엿, 아이스크림, 뻥튀기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생활비를 벌었다. 어머니는 엄격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가난했지만 자식들을 당당히 키웠다. 자식들에게 “정직하다면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새벽 4시면 가족들은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심부름으로 이웃집 일을 하러 가더라도 어머니는 어린 이명박에게 “물 한모금이라도 얻어 먹으면 안 된다. 음식을 준다고 받아 와도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다. 가난은 그의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군의관은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준다.”고 병역 면제 처분을 내렸다.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집에 돌아온 막내아들을 부둥켜 안으며 “내 자식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팽개치고 있었구나.”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엄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이명박은 그 때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 시절 6·3사태로 옥고 그에게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집에서는 막내아들의 고교 진학도 말렸다. 집안의 기둥 작은형(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학비를 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학비는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동지상고 야간부에 수석 합격했다.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가족들은 상득이형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 이태원으로 이사갔다. 이 당선자는 이태원 재래시장 환경미화원으로 돈을 벌며 살림에 보탰다. 하지만 학업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돈이 없어 중퇴하더라도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낫지 않겠나.”하고 생각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수험서를 사서 입시를 준비, 고려대 상대에 붙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이태원 시장 상인들이 새벽에 쓰레기 넝마주이 일을 맡겨준 덕에 학비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64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며 6·3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죄목은 내란선동죄였다. 어머니는 그가 구속됐을 때도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라.”고 가르쳤다. 출소 후 한달 여 만에 인생의 스승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는다. 그는 “돈 벌면 어머니에게 새옷 한벌 사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말하곤 한다. ●현대그룹 입사… 초고속 승진 거듭 청년 이명박은 여느 운동권 출신과 달리 정치권이 아닌 기업을 택한다. 운동권 출신의 취직은 쉽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발목을 잡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나라가 열심히 사는 젊은이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편지를 썼다. 결국 박 대통령의 배려로 그는 당시 중소기업이던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왕 회장’으로 불리는 오너 정주영 회장의 눈에 띄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9세에 이사,35세에 사장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써내려 간다. 그는 종업원 96명의 현대건설을 16만명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현대그룹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오너가 정해 주는 목표치를 항상 초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오너와 경쟁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기업인 시절 ‘왕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에피소드도 많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 각목과 칼을 든 폭도들에 맞서 금고를 지킨 ‘태국 금고 사건’은 그 중 하나다. 현대건설 과장 시절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불도저가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기술자들이 텃새를 부려 공사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명박 과장은 밤새도록 불도저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구조를 익혀 나중에는 불도저를 직접 몰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웃들은 현대건설 사장과 살고 있는 부인 김윤옥씨를 가리켜 “세컨드(둘째부인)아니냐.”고 뒷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사업상 건설부 장관실을 방문했을 때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이 당선자를 장관실로 안내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이 당선자가 따지자, 장관 비서는 “사장 비서를 어떻게 장관실로 모시냐. 빨리 사장 데려 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에 27년 동안 몸담으면서 주요 계열사 10개사의 사장 및 회장을 역임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초·중·고 학적부 열어보니 궁핍했던 시절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초·중·고교 성적은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행동발달사항에 “그림을 좋아한다.”라는 평이 인상적이다.2학년 때는 담임교사로부터 “경솔하다.”는 평도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결석이 없었지만 4학년에서 6학년까지는 몸이 아파 결석하는 일이 잦았다.4학년 때 16일,5학년 때 5일,6학년 때 32일을 병으로 결석했다. 이 당선자측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실조 탓으로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도 질병으로 인한 결석이 많았다.1학년 때는 결석이 74일에 이른다. 담임 교사로부터 “명랑하고 온순하다.”는 평을 받았다. 동지상고 시절에는 지금처럼 석차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당선자는 성적이 가장 안 좋았을 때가 3등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장래 희망으로 ‘관리’(官吏)를 썼고, 이 당선자의 부모도 ‘본인과 동일’이라고 기재했다.‘취미 또는 특기’란은 영어로 적었다.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특기는 ‘체육(탁구)’이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오늘 선택의 날] “이번 선거서 금품살포 사라졌지만 정치 냉소주의로 최저 투표율 걱정”

    “현장을 다니면서 느낀 국민들의 정치 냉소주의로 볼 때 역대 대선 최저투표율을 기록할 것 같습니다.” 17대 대선 투표를 하루 앞둔 18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만난 박이석(52) 홍보과장은 개표참관인들의 참석여부와 투·개표함 설치 등을 확인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낮은 투표율을 우려했다.13대 대통령선거운동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선관위에 발을 들여놓은 뒤 20년 동안 선거문화 혁신에 앞장 선 그의 얼굴은 사상 최저 투표율 걱정에 그리 밝지 않았다. 박 과장은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선거가 실종되다보니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유권자들이 늘었다.”면서 “다음 대선에서는 각 정당들이 훌륭한 지도자를 내세워 투표장으로 국민들의 발길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과장의 선관위 생활 20년은 한국 선거 최대의 ‘아킬레스건’인 ‘돈 선거’와의 싸움이었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된 87년 대선만 해도 선관위는 아예 부정선거 단속권한이 없었다”면서 “당시 각 정당들이 ‘50만·100만 집회’등 대규모 군중대회를 개최하면서 일당과 차비 등 대규모 금품을 살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행히 1994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통합선거법)이 제정돼 돈 적게 쓰는 ‘미디어 선거’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돌아봤다. 박 과장이 생각하는 대통령 선거 혁신의 1등 공신은 역설적으로 200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모 정당이 특정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수수했던 이른바 ‘차떼기 파문’. 더 이상 돈선거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면서 지금의 개정 선거법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최고 5억원에 달하는 신고 포상금과 받은 금액의 50배를 물어내야 하는 과태료 제도 등이 담긴 개정 선거법이 국회의원들의 저항없이 통과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올해 증시도 ‘대선 효과’ 통할까

    올해 증시도 ‘대선 효과’ 통할까

    19일 치러지는 17대 대통령 선거 이후 주가는 어떤 궤도를 그릴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주가의 움직임은 어떻게 변할까. 전문가들은 당선자가 누구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탈)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기적으로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로 주가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통령 선거 하루전인 18일 코스피지수는 전일보다 1.18%(21.65포인트) 오른 1861.47에 마감됐다. 장중 한때 1.66% 내리기도 했으나 싸게 주식을 살 기회라고 생각한 일반 투자자와, 펀드 자금 유입 등으로 매수 여력이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사들였다. 이날 변동폭이 60포인트를 웃돌았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외국인 순매도액은 24조원이다. 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된 1992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대선 이후 연말·연초 상승 지난 1987년 13대 대선부터 2002년 16대 대선까지 주가는 선거 이전에는 횡보세를 보였다. 선거 이후에는 2002년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보였다.2002년에는 신용카드 사태로 주식시장이 부진했던 해였다. 대선 이후 주가 상승은 ‘1월 효과’에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린 현상이라고 보인다.‘1월 효과’란 새해를 맞아 각종 정부시책이 발표되고 낙관적인 경제수치가 제시되면서 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대신증권 성진경 선임연구원은 “차기 정부의 다양한 경기부양책과 혁신 정책 등에 대한 기대가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지난 4번의 대선 이후 주가 움직임을 보면 기대감이 미리 반영되면서 취임일을 전후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민 연구원은 대선 효과를 기대해 시장에 참여한다면 연말·연초 장세를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여전한 외부 변수 부담 미국의 경기 불안은 여전히 부담이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물가상승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선 이후 상승 시점에서도 상승폭이 제한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교보증권 이종우 상무는 “정치 자체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우리 경제 구조가 선진화됐고 커졌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할 것을 주문했다.13∼16대 정부 중 유일하게 집권 말기에 주가가 오른 경우는 현 정부다. 전문가들은 정책효과라기보다는 전세계적으로 주식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삼성증권 김성봉 연구위원은 “당분간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화두가 되겠지만 장기화될 가능성이 적고, 기관들이 연말 주가관리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외국인의 매도세에도 주가는 박스권내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부증권 신성호 상무는 “주가는 기업 이익의 반영이고 한국 기업 이익의 예상 성장률이 15∼20%라는 점에서 내년에 국내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오늘 선택의 날] 반부패 명분속 李vs反李 구도

    [오늘 선택의 날] 반부패 명분속 李vs反李 구도

    대선을 하루 앞둔 18일 정치권엔 ‘반부패’가 화두로 나돌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반부패 연대’를 말하더니,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역시 ‘반부패 5자 회동’을 제안했다.‘반부패’란 공통분모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만 ‘왕따’시키고 힘을 합치자는 전략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인 ‘이명박 대 반(反)이명박’ 전선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특히 두 후보가 반부패라는 이름 아래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포함시킨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는 이 두 후보쪽 사람들, 즉 현재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쪽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정치적으론 ‘원수’에 가깝다. 그런 이들이 서로 연대할 가능성이라도 열어둔 것은 그만큼 이명박 후보에 대한 적대 프레임이 견고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이번 선거는 기존과 달리 정책·TV토론·관심이 전혀 없는 3무(無)로 치러졌다.2002년엔 수도 이전이라는 큰 이슈를 놓고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치열하게 토론했지만 이번엔 ‘경부 대운하’가 잠깐 주목을 끌다 이내 묻혀 버렸다.TV토론도 유력 주자들이 거부해 선거법에 따라 3번만 겨우 치렀다.1년 가까이 지속된 ‘이명박 대세론’에 유권자들은 무관심으로 응수했다. 반면 3탈(脫)의 선거학은 앞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다. 우선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과 상극이었던 젊은 층과 노동계가 한나라당을 지지한 일이 눈에 띈다. 한국노총이 조합원 투표를 거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대학 총학생회장들도 철회 해프닝을 겪긴 했지만 어쨌든 이명박 후보에게 무더기 지지선언을 했다.‘노동계→진보정당’,‘20대 젊은 층과 대학생→진보정당’으로 향했던 기존 지지 공식에 변화가 온 것이다. 즉 탈이념화·탈연령화 현상이다. 여기에다 1987년 이후 영·호남으로 갈린 ‘지역정서’가 적어도 이번 선거 과정에선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 이색적이다.2002년만 해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광주, 전·남북, 즉 호남권에서 5%에도 못 미치는 득표율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여론조사 수치상으로 이명박 후보가 10% 이상 지지율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지역화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체적인 흐름, 큰 예상을 줄줄이 깨버린 선거라는 점도 특이하다. 일단 ‘거물’이 잇따라 중도하차했다. 올 초만 해도 고건 전 국무총리가 굳건한 위치를 지켰고, 정운찬 서울대 교수의 출마설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두 사람 다 실제 출마했다면 파괴력 있는 변수가 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럼에도 둘은 모두 선거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불출마 선언을 했고, 끝까지 중립을 지켰다. 선거 막바지가 되면 범여권 후보가 어떤 식으로든 단일화를 이룰 것이란 전망도 여지 없이 빗나갔다. 정동영·문국현·이인제 후보 3명이 모두 완주해 표를 나눠 먹는 형상이다. 보혁 1대1 구도가 물 건너 갔다. 보수는 이명박 대 이회창, 진보는 정동영 대 문국현 대 이인제의 3파전으로 구도가 복잡해졌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특검 후보 3인의 면면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 후보로 추천된 3명의 공통점은 검사장 출신이라는 점이다. 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은 감찰·특수통이고 고영주 전 서울남부지검장, 조준웅 전 인천지검장은 공안통으로 알려져 있다. 정홍원 전 원장은 1988년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특수부장 검사를 지냈으며 1989년에는 대검 강력과장을 거쳐 1993년에는 서울지검 특수부장을 지냈다. 부산지검장 등을 거쳐 현재는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고영주 전 지검장은 1995년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출신으로 현재는 법무법인 KCL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조준웅 전 지검장은 1987년 대검 공안과장을 시작으로 서울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기획관,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역임한 ‘공안통’이다. 현재는 법무법인 세광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정홍원 전 원장과 고영주 전 지검장은 각각 1999년과 2004년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지냈다는 공통점도 눈에 띈다. 3명의 특검 후보들은 일반 수사업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차장 및 검사장을 하면서 휘하 검사들을 지휘하는데서도 특수ㆍ경제사범 등 여러가지 문제에 있어 수사기법을 잘 알고 있어 추천하게 됐다는 게 대한변협의 설명이다. 관계자는 “감찰·공안 등의 전공분야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 부조리 수사와 함께 검찰 내에서의 ‘떡값 검사’ 및 최고 권력자에 대한 대선자금, 당선축하금 부분도 특검 수사 대상이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감안해 특수ㆍ공안 출신이 추천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검의 특성을 감안할 때 특수통이 다소 유리하리라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색다른 견해를 갖는 방법,통계학

    통계 또는 통계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거부감 또는 신비감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통계 과정에서 수학 공식들은 매우 접근하기 어려운 낯설음을 주고, 신문 등에 가끔 나오는 통계 왜곡 논란은 “통계는 거짓말”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통계가 논란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통계를 만드는 기준에 따라 때로는 정반대의 해석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통계가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다양한 의견과 주장들의 사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 간에는 의사소통과 합의가 쉽지 않게 된다. 여론조사가 없었던 1987년도의 대선에서는 같은 진영의 양 김씨 측은 각자의 승리를 주장하였고, 후보 단일화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통계를 활용하여 이를 바탕으로 대화할 때,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좀 더 접근할 수 있다. 통계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대안은 통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GE, 삼성,POSCO 등 많은 기업들에서 실시해오고 있는 6시그마는 그런 노력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사내 직원을 선발하여 통계학을 10일 정도 교육하고, 이를 업무에서 활용하도록 한다. 모 기업에서 6시그마 컨설팅을 하던 때의 일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가끔 불만을 토로하곤 하였다.“다른 사람들은 어려운 통계분석을 수행하여 멋진 그래프도 나오고 어려운 통계수치도 나오는데, 왜 최 박사님의 과제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까? 부서장이 궁금해하고 추가되었으면 하십니다.” 나는 통계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로 무마할 수 있었다.“필요 없으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통계학 박사가 그렇게 말하였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실제로 내가 관여한 과제들 중에서 통계분석의 ‘고유한’ 결과인 p-value값이 계산될 정도로 ‘고난이도의 분석’이 활용된 경우는 열 개 중에 한 개 꼴도 안 되었다. 나와 같이 프로젝트를 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의 자료 활용과 관련된 조언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또는 그렇다고 나는 믿고 있다). 쉬운 분석만으로도 현상을 잘 파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경험을 같이 하였기 때문이다. ‘통계의 미학’은 내가 학교를 졸업한 후 약 11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한 경험 중에서 쉽고 유용한 것들만을 모아서, 사람들에게 친숙한 실생활 사례와 회사의 업무 경험을 이용하여 설명한 책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 책을 통해 ‘통계의 유용성’을 알고, 세상에 대해 색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최제호 통계학자·디포커스 상무이사
  • [선택 2007 D-8] 여론조사 3대 관전 포인트

    [선택 2007 D-8] 여론조사 3대 관전 포인트

    이번 대선은 ‘여론조사 선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각종 조사가 봇물을 이뤘다. 여론조사 시한이 오는 12일로 다가옴에 따라 막판 여론조사의 흐름이 표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최근 흐름을 토대로 3대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한나라 “李, 호남서 선전땐 50%이상 득표” 검찰의 BBK 수사발표 이후 40%대 지지율을 회복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10일 밤 KBS 선거방송 연설에서 “1987년 직선제 이후 처음으로 동서를 가로질러 국민의 과반수 이상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압도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후보측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날 국민일보·동아일보·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 지지율은 40.3∼45.2%의 분포를 보였다. 여기에 부동층 표심이 쏠리고,1위에게 표를 몰아 주는 밴드왜건 효과까지 겹치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호남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표에 성공하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50% 이상 표를 모으면 전국적으로 과반 득표가 가능하다고 중앙선대위는 판단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8∼9일 자체 조사한 결과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응답자가 77.9%였던 점을 감안하면 가능한 수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반론도 있다.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역산하면 정동영 후보가 25∼30%, 이회창 후보가 12∼13%만 얻는다고 해도 이미 40% 가까이 상대가 가져가는 것이고, 여기에 문국현·권영길 후보가 각각 4∼6%를 득표하면 이명박 후보를 빼고도 벌써 50%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락세 昌, 김혁규 지지선언으로 반등 기대 전날 MBC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는 13.5% 지지율로 15.1%를 기록한 정동영 후보에 이어 3위로 내려앉았다. 중앙일보 조사로는 정동영 후보가 18.5%, 이회창 후보가 15.1%를 기록 3.4%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회창 후보가 출마선언을 한 직후 이명박-이회창 두 보수 후보 지지율 합이 60%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회창 후보가 현재 하락세라는 것만은 뚜렷해 보인다. 정동영 후보를 중심으로 한 진보 진영이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결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측은 11일 김혁규 전 경남지사측이 지지선언을 하는 데 이어 금명간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의원 1명이 탈당해 이 후보 캠프에 합류할 것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외연확대를 통한 대역전에 자신감을 보였다. ●鄭·文 단일화 안되면 鄭에 표 몰릴 가능성 현 시점에서 정동영-문국현 두 후보의 단일화는 12일 이전에 하는 게 가장 ‘편리’하다. 그 날까진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해 후보 단일화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이튿날부터는 일반에 공개할 수 없으니 단일화를 해도 12일이 마지노선이 되는 것이다. 단일화에 실패하고, 이런 구도가 선거날까지 굳어진다면 유권자들이 투표장에서 ‘각자 알아서’ 단일화에 응해야 하는 의외의 현상이 나올 수 있다. 범여권 지지층이 사표(死票) 방지심리로 지지율이 더 높은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가능성이 일단 높다. 같은 범여권이라고 해도 문국현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지지층에 차이가 있는 데다 문 후보는 정 후보보다 정치적인 기반과 조직, 자산이 부족한 편이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정치’를 타이틀로 내세워 출마한 문 후보의 상징성도 희석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구혜영 박지연 홍희경기자 anne02@seoul.co.kr
  • [씨줄날줄] ‘럭키’ 대통령/이목희 논설위원

    지난 주말 뉴욕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한국 대선에서의 정책실종을 꼬집었다.“누가 되더라도 정책적 부담이 없기 때문에 가장 ‘럭키’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 백악관 관리를 지낸 빅터 차는 한국계로 우리 정세에 밝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은 항상 정치투쟁에 휩싸여 있으며 정책공약은 뒷전이라는 사실을 빅터 차는 간과했다. 1987년 직선제 실시 직후 무더기 정책공약을 내놓았던 후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농어가부채 경감, 고속전철 건설 등 그야말로 죽기살기식으로 선심성 공약을 만들어 냈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이런 공약으로 인해 밤잠을 설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를 괴롭힌 공약이 있긴 했지만 정치적인 것이었다. 중간평가 약속을 했다가 없던 일로 돌려 버렸다. 노 전 대통령은 공약보다는 여소야대로 고통받았다. 이를 타개키 위해 3당합당을 했으나 이번에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치받아 소화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어 YS와 김대중(DJ) 전 대통령,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도 정책보다는 주로 여권내의 권력투쟁, 여소야대 상황으로 곤란을 겪었다.YS·DJ 정권에서는 연합체 성격의 국정운영이 문제였다. 정권을 잡기 위해 손을 잡은 김종필(JP)씨와 이념성향이 너무 틀려 불협화음을 빚었다. 결국 둘다 JP와 갈라서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출발은 ‘럭키’했다. 보수적인 정몽준 의원이 나중에 지지를 철회했음에도 노 대통령은 당선되었다. 아무 부담없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펼칠 수 있었고, 함께 일할 인물을 선택하는 데 재량권이 넓었다. 이렇게 좋은 조건과 환경을 노 대통령은 활용하지 못했다. 좁은 인재풀로 ‘코드인사’ 논란을 낳았고, 끊임없이 적대세력을 넓혀왔다. 차기 대통령 역시 ‘럭키’하다고 하기엔 넘어야 할 장애가 많다. 이명박 한나라당,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소속당 장악력이 떨어진다. 이회창 후보는 무소속이다. 당선된 뒤 야당과 관계에 앞서 집안정리부터 쉽지 않다. 빅터 차의 지적처럼 정쟁보다 정책공약을 지키는 것에 골머리를 앓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BBK 수사 발표] 檢 ‘李후보 불기소 처분’ 배경은

    검찰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리게 된 데는 ‘자금 흐름’ 확인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검찰은 양측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계좌추적과 회계장부ㆍ주주명부 분석 등을 통해 돈의 흐름을 면밀히 확인한 결과 김경준씨의 진술은 믿기가 힘들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김씨 진술이 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바뀐 점, 증거물인 ‘이면계약서’가 위조된 점 등도 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검찰의 판단을 뒷받침했다.BBK 소유 의혹과 ㈜다스 실소유 의혹, 주가조작 공모 혐의 등에 대한 김씨의 ‘장외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는 조사에서 “BBK는 내가 100% 지분을 가졌고, 이 후보는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진술, 본인의 진술과 증거를 스스로 부정했다.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과 횡령에 이 후보가 가담했다는 김씨의 주장도 거듭된 진술 번복과 검찰의 물증 제시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김씨는 구속된 뒤 검찰 조사에서는 자신의 주가조작 사실을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 후보와 주가조작을 공모한 바가 없고 언론 등에 그렇게 얘기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옵셔널벤처스 인수 및 주식매매 자금의 흐름을 추적한 결과도 마찬가지. 김씨가 BBK를 통해 모은 투자금을 역외펀드로 보냈다가 외국 유령회사 명의로 국내에 들여온 뒤 다시 옵셔널벤처스 주식 매집과 유상증자 참여에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고, 이 후보가 인수 및 주식매매 대금을 제공했거나 그에 따른 이익을 나눠 받은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실소유주가 밝혀지지 않은 도곡동 땅 매각자금의 일부가 다스에 유입되는 등 다소 의심스러운 돈 흐름이 발견됐지만 이 후보의 돈이 흘러들어갔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주주명부와 회계장부를 분석한 결과, 다스가 1987년 설립된 뒤 주요 주주들간의 주식 이동은 1999년 끝나 ‘지분 이동’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 후보가 다스의 실제 주인이라면 회사의 배당금 등 ‘경영 이익’이 지급돼야 하는데 이 같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열린세상] 색깔을 분명히/ 김형태 변호사

    [열린세상] 색깔을 분명히/ 김형태 변호사

    동네 골목어귀에 사진들이 길게 붙었다.12명의 대통령 후보들이 저마다 한 표를 바라며 웃고 있다. 질풍노도의 저 1987년 대선. 서울 여의도 광장이며 보라매 공원에는 수십만 인파가 몰려들었다. 지지후보를 놓고 택시기사와 손님이 멱살잡이를 하던 그 시절의 국민적 열정은 이제 간 곳이 없다. 정치의식이 높아지고 이성적 판단이 대세를 이루게 되어서가 아니다. 후보들 사이에 정책상 뾰족한 대립각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럴 법도 하다. 서민을 내세운 정권에서 집값이 치솟고 부자와 없는 이의 간격이 더 커졌다. 그러니 정책선거가 아니라 인기투표가 될 수밖에 없다. 제일 인기 높은 아이를 반장으로 뽑는 초등학교 교실 같다. 후보들도 그렇다. 짚신장수 큰 아들과 나막신장수 둘째, 모두 다 잘되길 비는 어머니라도 된 걸까. 비가 오면 첫째가, 해가 나면 둘째아들이 장사를 망치니 두 아들 모두 잘되는 방법이 없다. 부자와 없는 이, 돈과 환경보호, 양쪽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 그런데도 일부 후보들은 ‘부자와 중산층 그리고 서민을 위한 대통령’식의 구호를 내건다. 정동영 후보의 ‘가족행복’ 구호도 그렇다. 어떻게 하면 가족이 행복하게 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노동자 월급이 오르면 대체로 그 가족은 행복할 게다. 하지만 월급을 올린 사장 가족은 수입이 주는 만큼 불행할 터. 월급이 올라도 그 회사가 공해를 쏟아놓거나 부정비리로 사회와 국가를 오염시킨다면 노동자 가족들도 결국은 불행하리라.‘가족의 행복’이란 구호를 보고 노동자, 사장, 환경보호론자 중 어느 가족들이 표를 던질지 모르겠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허름한 해장국집에서 국밥을 먹고 있는 이명박 후보는 또 어떤가. 모두가 가난했던 1960,70년대나 IMF 경제위기 시절도 아니고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본다는 후보가 해장국집이 웬 말인가. 물론 그 상황이 절실히 와닿는 이들도 아직은 많다.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 145만원을 못 버는, 무려 18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이 광고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 후보가 대표하는 정당이나 정책은 궁극적으로 하위계층이 아니라 대기업이나 상류층에 가깝다. 삼성같은 산업자본이 은행을 설립할 수 있게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게 그의 공약이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해서 해장국집이 아니라 송도신도시 고층빌딩에서, 규제철폐를 선호하는 대기업 경영자들과 회의하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게 맞다. 아파트 분양원가를 어느 수준으로 공개할 것인지, 종합부동산세를 유지할 것인지, 비정규직은 어떻게 할 것인지, 환경보호를 위해 개발을 자제하여 돈을 포기할 것인지. 후보들마다 자신이 어느 계층을 위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표를 위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고 국민 모두를 잘살게 하겠다는 식으로 자신의 색깔을 흐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19세 사회초년병이나 아흔살 은퇴교수, 영등포 쪽방 주민이나 재벌기업 회장, 사리판단이 정확한 이나 지역감정에 휩쓸리는 이, 모두 똑같은 한 표다. 그래도 그것이 정당한 이유는 누구나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유지하면서 생존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누가 내 편인지를 분명히 알고 자기 편에 표를 던져야 다양한 가치가 정확히 정치에 반영되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된다. 정당제도를 헌법차원에서 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에 ‘중간’이나 ‘모두’는 없다. 어느 한쪽을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노동이냐 자본이냐, 환경보존이냐 돈이냐. 후보들이나 유권자 모두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색깔을 분명히 할 때다.
  • “美·러 핵전쟁” “컴퓨터로 대통령 선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그동안 발간된 여러 소설들 속에 그려진 2008년은 어떤 모습일까?러시아 출신의 미국인으로 유명한 공상과학 소설가이자 화학자였던 고(故) 아이작 아시모프는 1955년 발간한 단편소설 ‘프랜차이즈’에서 “2008년에는 미국의 대통령을 컴퓨터가 뽑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초고성능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를 토대로 미국 국민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낸다는 것이다.2008년에 대선이 열리는 것은 맞지만 컴퓨터를 통한 대통령 선출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예언이 됐다. 래리 나이븐과 제리 푸르넬이 1974년 공동으로 쓴 ‘신의 눈 속의 티끌’에는 2008년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적혀 있다. 역시 내년에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일이다. 줄리안 메이의 1987년 소설 ‘갈락틱 밀리유’에서는 2008년 6월20일 인류가 처음으로 외계인종과 만나는 상황이 묘사돼 있다. 또 이안 맥도널드의 소설 ‘차가 사가(1995)’는 2008년 3월13일 외계에서 차가라는 식물이 지구에 도착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두 소설속 상황은 모두 아직 실현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다. 사회비판적인 공상과학 소설을 써온 존 반스는 1995년 발간한 ‘마더 오브 스톰’에서 “2008년 유엔이 모든 국가의 핵 무기를 금지하며, 위반할 경우 선제공격을 가한다.”고 서술했다. 반스의 예견은 유엔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현실에서는 유엔이 아니라 미국이 ‘선제공격’이라는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캐스퍼 와인버거 전 미국 국방장관이 1996년 펴낸 ‘넥스트 워’에는 2008년 미국과 러시아의 ‘핵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가장 암울한 내년 전망 가운데 하나다.dawn@seoul.co.kr
  • [선택2007 D-19] 3無대선에 열기 실종

    [선택2007 D-19] 3無대선에 열기 실종

    29일 서울 여의도 전철역 근처.A 대선 후보가 유세를 시작하자 기다리고 있던 수백명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화이트칼라’들이 많은 곳이어서 그런지 주변 상가 위쪽에서 적잖은 시민들이 지켜봤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맞은편 건물에서는 이따금 창 밖을 내다봤지만 식사에 열중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투표일이 19일 앞으로 임박했지만 시중의 선거 열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관심을 유인해야 할 후보간 TV토론도 실종됐다. 네거티브 선거전이 판치는 가운데 정책·공약 대결은 뒷전 신세다. 무정책·무토론·무관심이 지배하는 최악의 ‘3무(無) 선거’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예전 선거 때는 동료들끼리 김영삼이 좋다, 김대중이 좋다고 다투거나, 노무현이 낫다, 이회창이 낫다고 입씨름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누구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선뜻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예전보다 선거 얘기가 화제가 잘 안 된다.” 회사원 김지일(41·경기 용인시)씨의 말이다. 후보들마다 커다란 약점 하나씩을 갖고 있다보니 유권자들이 소신을 갖고 지지 의사를 밝히기를 꺼려한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각종 의혹,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무(無)경선 출마,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참여정부 책임론 등이 유권자 불신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명박 후보의 일방 독주로 팽팽한 양자구도가 형성되지 않는 것도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번 대선의 부재자투표 신고자가 16대에 비해 5만 6721명이나 줄어든 것은 유권자의 무관심도가 심상치 않은 수준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거리의 무관심을 상쇄해야 할 TV토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 지지율에서 ‘잘 나가는’ 후보들이 하위 후보들과 한 자리에 앉기를 거부함에 따라 올해는 후보자 간 토론이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다음달 유력 후보 간 토론이 3차례 잡혀 있긴 하지만, 그나마 출연자 난립(7명)으로 밀도 있는 토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앉아서 차분하게 토론할 기회가 없으니 상대방을 물고뜯는 네거티브 선거전이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이번 대선만큼 정책·공약이 실종된 경우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87년에는 노태우 후보의 중간평가 발언,1992년에는 정주영 후보의 반값 아파트,1997년에는 김대중 후보의 내각제 개헌,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등의 공약으로 시끄러웠다. 반면 올해는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이 잠시 쟁점이 되는 듯하더니, 지금은 온통 BBK 의혹 등 네거티브 차지가 됐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지나친 규제가 선거 열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후보등록 역대최다 12대1

    후보등록 역대최다 12대1

    17대 대선 후보등록 마감일인 26일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 경제공화당 허경영 후보 등 3명이 후보등록을 마쳤다. 이로써 새달 19일 치러질 이번 17대 대선에는 25일 후보 등록한 9명을 포함, 모두 12명이 출마함으로써 역대 대선 최다 출마자 기록을 세우게 됐다.1987년 제13대 대선과 1992년 14대 대선에 각각 8명씩 출마했던 기록을 15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후보 기호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1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2번,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3번, 민주당 이인제 후보 4번,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 5번,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6번, 참주인연합 정근모 후보 7번, 경제공화당 허경영 후보 8번,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후보 9번,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 10번,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 11번, 무소속 이회창 후보 12번으로 확정됐다.12명의 후보들은 선거법 규정에 따라 27일 0시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26일 후보등록을 마친 정당추천 후보자는 사망하지 않는 한 교체될 수 없다. 또 사망으로 후보가 유고된 때에도 해당 정당은 12월1일까지만 추가로 후보를 등록할 수 있다.17대 대선에 투표할 유권자는 3767만여명으로 집계됐다. 선거인 명부는 새달 12일 확정된다. 부재자 투표는 새달 10일 투표용지가 발송돼 13∼14일 이틀 동안 치러진다. 일반 투표는 새달 19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실시된다. 고현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공식 선거전에 앞서 26일 대국민 담화를 내고 “무엇보다도 불법을 용납해선 안 되고, 대통령이 될 후보자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이나 헐뜯기, 흑색선전에 흔들려선 안 된다.”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국민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는 그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선택 2007 D-23] 사상 최다 ‘생존게임’… 어젠다 실종

    [선택 2007 D-23] 사상 최다 ‘생존게임’… 어젠다 실종

    25일 후보 등록과 함께 17대 대선의 공식선거일정이 시작됐다.1987년 대선 이후 지난 20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번갈아 10년씩 정권을 이끌어 온 끝에 맞이한 이번 대선은 민주화 이후의 시대를 여는 중대선거로서의 정치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주장만 난무할 뿐 실체를 가늠하기 힘든 BBK연루의혹 공방과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선거공학적 논의는 새 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의 담론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역대 최다를 기록할 정도로 후보는 난립했지만, 정책 어젠다는 사라졌고 오로지 12월19일까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게임만이 펼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막판 대선 구도의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면서 정책 경쟁이 사라진 점은 이번 대선 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대선이 이미지와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지지율에 좌우되고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대립이 격화되는 속에서 정책공약의 검증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각 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정책공약의 검증이나 우열의 판단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와 대통합민주신당의 ‘개성 동영’ 이 외에는 대선 후보들의 경제·교육·복지·대북 등 각종 정책을 둘러싼 논쟁과 검증이 실종됐다. 이번 대선은 또 후보 난립에 따른 사상 초유의 다자대결 구도에도 불구하고 선거 막판 과연 어떤 후보들이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게 될지조차 불확실한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이명박·이회창·정동영 후보를 중심으로 ‘1강 2중 다약’의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나 검찰의 BBK수사와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 및 연정 논의와 맞물려 이들 가운데 대체 누가 후보로서 살아남을지 여전히 의문부호를 달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이명박 후보의 BBK 실소유 여부, 주가조작 관여 여부,㈜다스 및 도곡동 땅 실소유 여부 가운데 일부라도 사실로 밝히면 이 후보는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 쪽은 일대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일단 다자구도로 시작됐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의 단일화 여부도 관심사다. 여론조사 지지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두 후보는 검찰 수사의 결과에 따라 지지세력의 무게중심이 갈리기 때문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지난 87년 민주화 이후 실시된 네 차례 대선에서는 나름대로 시대정신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 선거는 무정책, 무정견, 무비전 등 3무(無)로 일관한 ‘최악의’‘나쁜’ 선거”라고 평가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정당경선,법으로 관리하자/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열린세상] 정당경선,법으로 관리하자/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프로야구에나 있는 ‘플레이오프’ 제도가 이제는 대선에서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와 관례처럼 되었다. 각 정당들이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뽑은 지도 한참이 되었건만 12월19일 선거의 최종 명단에 들어갈 이름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당대당 통합과 후보단일화 작업을 이제 막 시작하였다. 양당의 후보단일화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다음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 그리고 좀더 성공적이라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까지 포함하는 또 다른 최종예선이 기다리고 있다. 범여권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라면 예비경선, 경선, 준 플레이오프, 그리고 플레이오프라는 네 단계를 치른 후에야 비로소 최종 후보가 결정되는 셈이다. 한나라당도 이회창 후보의 돌발 출마로 인해 보수 진영의 최종 후보를 결정하는 플레이오프를 거쳐야만 대선승리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몇달 동안 온갖 추태를 다 보이고 국민의 진을 빼 놓으면서 치른 정당경선이 고작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예선리그에 불과한 것이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후보단일화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국민의 열망이었던 적도 있었다.1980년 봄과 1987년 대선에서 온 국민은 김영삼과 김대중 양자간의 단일화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그러나 양김의 권력욕은 끝내 민주세력의 희망을 저버렸다. 한편 1997년 대선에서의 DJP 연합,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양 진영의 플레이오프는 국민이 바라는 바도 아닐뿐더러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진보이념의 김대중과 원조보수 김종필의 연대, 그리고 서민후보인 노무현과 대한민국 대표재벌 정몽준의 만남에서 원칙과 명분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연대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던 것도 본질적으로 잘못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당대당 통합도 원칙과 명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4년 전 민주당을 뛰쳐나오면서 만든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타파와 정당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구태정치세력과 결별한다고 선언하였다. 이제 ‘도로 민주당’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상황을 무슨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세력 대연합이든 반부패 연대든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진성보수를 외치면서 뜬금없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씨의 행보도 정당정치 질서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계란 세례를 받을 만하다. 만약 선거 막판 이명박 후보와 단일화하는 모습을 연출한다면 출마의 진정성마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후보들 간의 합종연횡은 정당정치의 질서를 어지럽힐 뿐 아니라 선거의 본질마저 훼손한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온통 후보단일화에 쏠리면서 선거의 중심에 있어야 할 정책과 공약에 대한 검증이 오간 데 없어졌다. 선수명단 결정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다 써버리고 나니 정작 정책대결의 본 게임은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승자를 판가름해야 한다.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무질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현명한 판단과 올바른 처신은 더이상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법과 제도로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는 방법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경선방식과 시기를 결정한다. 독일도 공천에 관한 모든 절차를 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도 정당 경선의 절차와 시기, 방식에 대해 상세히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정책과 공약을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법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치르는 경선이니 만큼 법으로 관리하는 것도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 [2007 대선 릴레이 시론 (5)] 통일문제의 대선 정략 이용을 경계한다/서보혁 이대 이화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 연구위원

    [2007 대선 릴레이 시론 (5)] 통일문제의 대선 정략 이용을 경계한다/서보혁 이대 이화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 연구위원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짓 앞둔 상태인데도 정치세력간 합종연횡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대통령 후보 지지율은 20% 정도의 낮은 설문결과에 바탕으로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후보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차별화해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후보차별화 경쟁이 심해지면서 지역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한 소모적이고 갈등지향적인 양상이 되살아나고 있다. 통일문제도 후보 진영내 정책 개발과 후보 진영간 정책 경쟁으로 나아가지 않고 편가르기식 이념 논쟁의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다. 다른 관심사와 마찬가지로 통일문제 역시 유권자의 판단기준은 후보의 통일관과 관련 상황 인식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통일관은 통일, 북한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문제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북한을 붕괴 혹은 흡수하여 현 남한체제가 북한지역까지 통치권을 갖는 것을 통일이라 볼 수도 있다. 또 남북한 두 체제의 장점을 살펴 새로운 통일코리아를 전망하되 평화공존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질 수 있다. 유력 대선 주자들의 통일 관련 발언을 볼 때 통일관은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 그 소신의 타당성 문제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통일문제와 관련한 현 상황인식에 있어서 후보들의 입장 차이는 뚜렷해 보인다.2007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둘러싸고 여당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반면, 제1야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조정 문제와 남북경협 확대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거론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여권 후보는 평화경제론을 제시하며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한 공동번영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1야당의 후보는 정상회담 직후 남북정상이 “차기정부에서도 만나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북핵 완전 폐기를 전제로만 평화체제 협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입장 변화는 자신의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한 이회창씨의 대선 무소속 출마 선언 이후 나온 반응이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 출마의 변으로 ‘대북정책 및 외교정책의 근본적 재정립’을 제기하고 있는데 대선 3수의 명분을 냉전적 안보논리에서 찾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이밖에 진보성향의 대선 후보 중에는 정상회담을 지지하는 쪽과 경제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통일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후보도 있다. 그러나 어느 후보이든 북핵 불능화 진전과 남북관계 진전 등을 반영하여 통일지향적 평화체제 혹은 평화와 함께하는 통일 실현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치란 최선의 길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이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상대적으로 평화지향적, 통일지향적 후보를 골라야 할지도 모른다. 분단 이후 통일문제는 늘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경제가 어렵다고 남북관계 혹은 통일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언제까지 통일문제가 정치적 무기력 혹은 경제만능주의에 빠져 소외당할 것인지 안타깝다. 우리 현대사는 1987년 정치 민주화의 성과에 기반하여 경제 민주화와 함께 통일을 실질적으로 준비할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판단기준의 하나가 통일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보혁 이대 이화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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